• 최종편집 2026-04-18(토)
 
  • 김성은 목사(안양 샘병원 원목, 총신 목회상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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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은 목사 

Well dying(good life, good death) 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전 7:2)


병원 사역 속에서 참 감사한 것은 한 사람의 임종 과정에 동행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곧 죽음의 시간과 장소에서 그의 마지막 손을 잡아주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목사라는 이유로 한 사람의 가장 중요하고도 내밀한 시간에 초청받은 것은 실로 대단한 자격이다.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육체적 고통을 넘어서는 정신적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영적인 불안과 무서움이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간에 가장 의미 있는 목회적 돌봄이 이루어진다. 

한 사람의 임종 과정에 함께하는 것은 사람이 실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에 대한 최고의 섬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임종 과정에 함께하다 보면 나의 자리, 곧 목회자로 부름을 받은 이 자리가 참으로 귀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 사람이 인생을 마치는 그 순간에 그의 손을 잡고 둘러선 가족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때에 진짜 목회를 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하나님의 일에 거룩하게 쓰임받고 있다는 느낌이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을 체험하며 감사가 넘치게 된다.

병원 사역의 특성상 꼭 기독교인만 임종의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의 임종에도 가족들의 부탁으로 인해 동참해야 할 때가 많이 있다. 그런데 모든 임종의 순간을 통해서 경험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사람의 임종 과정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의 능력을 확신하는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분명히 육체를 넘어 영혼을 가진 영적인 존재라는 것, 이 세상의 삶과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죽음의 순간에 분명히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임종 돌봄의 그 순간에 하나님의 강한 임재와 구원의 은혜에 부딪히는 것이다. 


그러나 날마다 임재와 은혜를 체험하며, 영적으로 충만하고, 마음에는 슬픔을 넘어서는 기쁨과 소망이 있는 것만은 아니다. 나는 15년 동안 병원에서 200여회의 죽음을 목격했다. 처음 5년간은 열정을 갖고 호스피스와 중환자실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죽음에 다 참여를 하여 영적 돌봄을 제공했다. 그러나 결정적 한 사건 후에 한 동안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었다. 

바로 10여 년 전에 우리 병원 암병동에 입원 후 호스피스까지 약 4개월간 삶의 마지막 여정을 동행했던 22살 청년의 죽음 이후에 마음이 너무 힘 들어서 한동안 의욕을 잃었던 것이다. 그는 18살 때 대장암에 걸려서 이곳저곳의 병원에서 여러 치료를 받다가 우리 병원 호스피스에서 22살에 이 땅에서의 마지막을 맞이했다. 여러 치료의 후유증으로 인해서 몸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나머지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도 못 나누고 갑작스럽게 떠났다. 

그 청년의 죽음을 품에 안고서 한 참을 울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면서 전남 해남이 고향이었던 그 청년의 시신을 그의 어머니가 구급차에 태워 운구해서 떠날 때에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체험하지 못해도 좋으니 이런 죽음은 앞으로 더 이상 안 마주쳤으면 좋겠다’고 마음의 악다구니를 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다시 돌아보면 그 사건도 더욱 삶의 의미와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은혜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일 후에 거의 1년 정도 임종 돌봄을 할 때마다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었다.


전통적으로 목회에서 죽음은 가장 중요한 신앙의 주제 중 하나로 다루어졌다. 곧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목회를 통해서 잘 죽는 법을 배움으로 이 땅에서 잘 사는 법도 배우게 되고, 아울러 분명한 죽음에 대한 준비를 통해서 영원까지 준비하는 복된 삶을 살았던 것이다. 믿음의 선배들은 죽음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에 하나이며, 무엇보다도 영생을 위한 시작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근대 이전까지 교회 공동체에 속한 형제자매들은 다른 성도의 죽음을 통해서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처럼 이전시대 목회자들은 죽음을 포함한 성도들의 삶의 전 영역에서 깊은 준비와 통찰과 실천을 통해서 목회자의 사명을 감당한 것이다. 한 사람의 출생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처럼 한 사람의 죽음 또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라는 것을 병원에서의 임상적 경험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병원에서 원목으로서 호스피스 사역과 말기 암 환자들을 돌보는 영적인 사역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임종을 지켜주면서 깨달은 사실은 많은 성도들, 심지어는 목회자들도 죽음을 부정하는 신념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곧 죽은 자도 살리시는 주님께서 자신만은 죽지 않게 하실 것이며, 말기 질병에서도 자신만은 고쳐줄 것이라는 신념으로 임종의 순간까지도 죽음을 부정하는 성도들과 목회자들을 여러 명 목격하였다. 


우리는 인생을 사는 동안에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죽음을 직시하고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영생의 소망을 분명하게 가져야 한다. 죽음을 묵상하고 준비하고 영원을 준비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 안에서 가질 수 있는 축복이며 특권이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확실함을 믿는다면 죽음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죽음을 넘어 영원과 부활을 소망하는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보편적 진리 앞에 서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에 대해서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에 꼭 회복해야 할 중요한 가치는 죽음 자체의 극복도 중요하지만,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한 번은 죽는 존재이므로 죽음과 과정에 대한 새로운 세계관의 수립과 그 가치관을 따르는 목회적 사역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단순히 그 길이로만 평가 하지 말고, 인생의 깊이와 의미로써 평가하면서 죽음에 대해서도 의미와 목적을 갖고서 믿음으로 응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은 이 땅에서의 삶은 마무리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사는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시작이다. 그러므로 생의 마지막인 죽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선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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