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 김성은 목사(안양 샘병원 원목, 총신 목회상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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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은 목사 

Well Dying(good life, good death) 7 -- 의료와 죽음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죽음을 막아내는 것이 의사들의 최우선 과제이다. 그래서 의사들은 최선을 다해서 현대의 발달한 과학과 기술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것에 집중한다. 그 노력의 결과로 현대는 의료 기술의 현격한 발달로 인해 건강과 100세 이상의 장수가 가능한 시대를 맞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윤영호가 지적하는 것처럼 의학과 과학에 집중하는 의료만으로는 신체적·의료적 의미를 넘어서 죽음이 갖는 정서적·영적·사회적 의미에 역점을 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로서 현대는 과거 자연적으로 맞이하던 임종이 점점 의료화 되고 있으며, 지금은 과거에 비해 죽음이 더욱 낯설게 느껴진다. 곧 그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젊음과 건강을 바탕으로 성장을 이룩하는 데만 치열하게 매달리고 소원대로 물질적인 부의 확대를 이루어냈다. 그러는 사이에 삶의 외형적 측면은 놀랍도록 확장되었으나 필연적으로 그 뒤에 따라오는 노화나 죽음에 대해서는 외면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물질적인 풍요를 통해 삶을 즐기려는 현대인들에게 죽음은 즐기고 누리는 삶을 방해하는 부정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적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죽음은 언제나 생명과 동행하는 동반자이다. 그러므로 출생과 삶의 질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처럼 죽음의 준비와 그 질 또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 중요한 죽음을 잘 맞이하고, 죽음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분명하게 갖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에 대해서 전요섭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인간은 출생과 함께 죽음 앞에 던져진 단독자이다. 그러므로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이다. 다만 우리 인간의 유한성으로 인해서 그 날과 그 장소를 정확하게 알지 못할 뿐, 결국 우리 모든 인간은 다 죽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인간의 삶 속에 현존하고 있기 때문에 삶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고 결정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죽음은 인간이 체험해야 될 것 가운데 마지막 것으로써 모든 인간이 두려움과 호기심과 불안을 가지고 예외 없이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다. 참으로 죽음에 대한 불안은 인간 존재의 근원이며, 궁극적이고 가장 강력하고도 위협적이며 고통스러운 불안인 것이다”

생명을 가진 우리 모두는 현재 삶을 살고 있고 언젠가 때가 되면 죽는다. 하지만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하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한 사람의 이 땅에서의 수명이 다했을 때 그것을 가리켜 죽음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람은 그 누구도 죽음을 충분하면서도 분명하게 이해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이유를 전요섭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죽음을 체험한 자는 이미 죽음을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안다고 했을 때 그것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관찰하거나 단순히 주검을 보는 것으로써 이는 매우 피상적인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죽음을 생물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호흡과 심장 박동이 정지되고 모든 반사활동이 소실되어 유기체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모든 기능이 영구적으로 정지된 것을 말한다. 곧 생물학적 죽음에 대해서 황기석은 “죽음정의연구위원회는 심장 기능 및 호흡 기능과 뇌 반사의 불가역적 정지 또는 소실이라고 정의했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사회적이면서 문화적인 측면에서 죽음을 본다면 죽음이라는 현상보다는 그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철학, 심리, 종교, 의학 분야에서 죽음을 이해하고 다루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곧 이이정이 말하는 것처럼 “각 사람의 인격과 삶이 독특한 것처럼, 각기 다른 삶을 산 사람들에게 죽음은 다른 의미로 구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죽음에 관한 제 이론들을 종합하여 할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정의라고 할 수 있는 생물학적 죽음, 심리적 죽음, 의학적 죽음에 대해서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1) 생물학적 죽음

생물학적 죽음에 대해서 이일구는 생물학적 생명 현상과 함께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생명 현상이란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 내의 원형질이 쉬지 않고 일으키는 연속적인 화학변화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생물학적 죽음이란,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 원형질이 쉬지 않고 일으키는 연속적인 화학 변화의 중단, 곧 생물체가 활동을 멈춘 상태로 물질과 에너지에 대한 통제력이 상실된 상태를 말한다.” 

과학적 상식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유기체는 생명의 시작부터 각종 조직과 세포로 분리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고, 죽음에 이르러 세포내의 연속적인 화학변화는 줄어든다. 한 사람의 신체의 세포는 그 누구도 한 순간에 총체적으로 죽는 일이 없고, 각 장기나 조직의 구조적인 특징이나 특성에 따라서 상이한 속도로 죽음이 일어난다. 그러다가 마침내 마지막 세포 하나가 완전히 활동을 멈추는 순간 생물학적으로 죽음은 완결된다. 이처럼 생물학적 죽음이란 이을상이 말하는 것처럼 “유기체인 한 생명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모든 기능의 전체적이고 영구적인 정지”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죽었다’고 정의할 경우에는 가장 기본적으로 이런 생물학적이며 임상적인 신체의 죽음을 의미한다. 곧 생물학에서 말하는 죽음의 정의와 인식에 대해서 “세포 전체가 건강한 상태로부터 생명 현상의 정지에 이르는 전 과정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삶은 생물학적으로만 보아도 그 시작에서부터 죽음이 늘 함께 동행하고 있다고 이야기해도 결코 틀리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모든 세포가 생물학적으로 그 활동을 중지하는 죽음이 일어나면 가장 기본적으로 의료진을 통해 몇 가지 의학적 검사(심전도 검사, 의사에 의한 동공의 움직임 확인 등)가 이루어진다. 그 후에 의사를 통해서 가족들과 증인(의료인이나 간병인)이 보는 앞에서 법적으로 죽음이 선포되고, 사망증명서가 발급된다. 생물학적 죽음의 최종 확인은 법적인 것으로 이루어지는데, 법적인 죽음은 의학적 진술에 근거하여 한 사람의 생명이 끝났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선언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2) 심리적 죽음

심리적인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이정은 “심리적 삶이란 자아나 주변 세계를 인식하는 것을 의미하고, 심리적인 죽음이란 이러한 인식의 정지, 즉 정신 작용이 정지되었을 때 일어난다. 심리적인 죽음은 종종 나이 많은 노인, 혹은 사고나 알츠하이머병 등으로 뇌의 기능이 심각하게 손상된 사람에게서 발견된다”고 말한다. 곧 임찬란 등이 말하는 것처럼 “심리적 죽음에 대한 정의와 인식의 정도는 나이에 따라 다양한 변화가 나타난다. 특히 죽음에 대한 수용의 정도는 인지적·정서적 성숙도와 상관이 있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죽은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고, 온전한 정신 활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심리적인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 이전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심리적으로 죽음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해서 꼭 육체적으로 죽은 것은 아니다. 곧 심리적 죽음의 상태는 육체적 생명은 유지되고 있으나 온전한 의식이 없어서 정신 활동이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존재의 의미가 상실된 것이라고 보는 죽음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한 평생을 열심히 살고 그 후에 정신적인 문제나 뇌의 질병 등으로 인해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서 죽음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더욱 심사숙고해 보아야 할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때때로 심리적 죽음이라는 단계에 이른 사람들도 주변 환경이나 뇌의 어떤 화학적 작용에 의해서 이전의 기억을 회복하기도 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주변에 있는 가족들이나 사람들을 다시 알아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리적인 죽음에 이른 사람들은 더욱 사랑하고 보호해 주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가족들이 더욱 따뜻한 사랑으로 남은 생물학적 생명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함께 공존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죽음에 대해서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서 심리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으며,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서 그 나타나는 현상이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서 심리적 성숙과 죽음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단계에서 죽음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3) 의학적 죽음

현대는 그 어느 시대보다 의학이 발달하여 최첨단의학을 통해서 인간복제와 줄기 세포 등의 장기 배양을 통해 인간의 생명을 연장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런 연구들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현대 의학은 암을 비롯한 많은 질병을 치료함으로 현대인들의 수명을 더욱 연장시켜 주는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의학은 질병을 치료함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의학에서 말하는 생명과 죽음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 김정우는 “의학적 측면에서 생명이란 호흡하고 심장이 뛰고 뇌가 활동을 하고 모든 세포가 자기가 맡은 신지대사를 원활하게 수행함으로써 하나의 유기체의 역할을 이행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리고 죽음은 일반적으로 호흡과 심장 박동이 정지되고 눈동자가 빛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 반사 현상이 소실된 상태, 곧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생명이 존속되거나 유지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정의를 볼 때에 의학적 관점에서 죽음에 대한 이해는 생물학적 사건으로 취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생명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하몬의 주장처럼 “모든 인간의 생명은 세포로 이루어진 생체의 각 조직과 생명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원을 몸 밖에서 섭취하여 이를 몸 안에 흡수 분배하여 몸 안의 각 조직과 장기를 통괄하고 생체에 특유한 개성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므로 의학적으로 죽음을 이야기 할 때에는 한 생물의 심장의 박동과 호흡이 영구적으로 멈추었음을 확증하는 말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처럼 의학적인 죽음의 판정 기준은 죽음에 대한 개념의 포인트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변화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호흡 정지, 심장박동의 정지, 피부색의 변화(청색증), 근육의 이완과 경직이 죽음의 판정을 위한 지침이었다. 사실 한 사람의 죽음을 이야기 할 때에 이처럼 생물학적으로 심장이 멈추고 호흡이 정지된 상태를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이상의 논쟁이나 이의가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과학과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의학적 죽음의 기준에도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곧 노유자 등이 말하는 것처럼 “현대에 이르러 의학계에서는 심폐소생술의 발달로 호흡이나 심장박동 등의 활동을 연장시킬 수 있는 의료적 기술이 발달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심장이 멈추었다고 해서 사망했다고 정의할 수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의학적 죽음 판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죽음을 정의하고 선언하는데 있어서 대부분의 역할은 의학과 의사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 의학적인 죽음의 정의는 심폐기능설과 뇌사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심장과 폐장 그리고 뇌의 활동 정지가 죽음의 판정 기준으로 작용하는 이유는 이 세 기관이 인간의 생명 현상을 특징짓게 하는 데 주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해서 이부영은 <의학개론II>(1995)에서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한다.

  “먼저, 심폐기능설에 의한 사망은 ‘심장’(心腸)사(heart death)와 폐장(肺腸)사(lung death)로 구분 된다. 심장사는 심장 박동이 멈춘 후 호흡이 정지되는 것을 말하고, 폐장사는 호흡이 먼저 정지되고 다음으로 심장 박동이 정지되는 것을 말한다. 다음으로 뇌사설은 뇌 기능의 영구적인 정지를 인간 죽음의 최종 판단 기준으로 보는 입장이다. 곧 뇌가 완전히 파괴되어 다른 모든 장기의 기능적 중지가 절박하고 불가피한 상태를 말한다.”

문제는 이처럼 한 인간의 생명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의료적인 이유를 따라서 이해하고 정의하게 되면 환자가 품위 있게 죽을 권리와 마지막 임종의 시간을 인간으로서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맞이할 수 있는 기회를 의료의 적극적 개입으로 인해 제한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말기 질병의 경우 적극적 치료를 주장하는 의료진과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는 환자나 가족들과 평행선에서 대립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병원에서 종종 목격하는 것이다. 곧 현대에는 병원에서 온갖 의료적 기계 장치와 각종 약물에 의해서 생명을 연장하다가 중환자실에서 가족들과 따뜻한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한 생물체가 아침에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가 저녁에 아궁이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비참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러므로 지정의를 가진 인격체로서 우리 인간은 누구나 인생의 임종이 다가온 시점에 이르렀을 때 무조건적이며 무의미한 의료적 행위를 중단하고 자연스럽게 가족들과 사랑을 나누며 죽음을 맞이하도록 해야 한다. 곧 모든 인간은 생물학적 관점의 죽음이 아니라, 인격체로서의 아름답고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하도록 목회자들이 목회상담적으로 잘 지도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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