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은 목사(안양 샘병원 원목, 총신 목회상담학 박사)
Well Dying(good life, good death) 9 - 우리나라의 죽음학의 역사
우리나라의 죽음학에 관한 연구나 사회적인 분위기 그리고 학교에서의 죽음학에 대한 교육적 상황은 어떠한가? 그리고 우리나라의 죽음의 인식에 관한 상황은 어떤가? 서구의 여러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는 죽음에 대한 관심이 매우 낮고, 학문적으로도 이제 막 초기 단계를 벗어나고 있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죽음이나 죽음학에 대한 관심이나 연구는 대부분 말기 환자들을 돌보기 위한 방편으로 인식되거나 급증하는 자살 문제와 호스피스 돌봄을 중심으로 하는 의학적 연구가 중심에 있다. 그리고 문학과 철학 분야의 연구가 그 다음을 잇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죽음학에 대한 그 동안의 연구 상황에 대해서 김선숙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죽음학 연구의 시초는 1978년부터 서강대학교에서 죽음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고 <죽음에 대한 심리적 이해>를 출간한 김인자로 이야기 할 수 있다. 그 후 1991년 김옥라에 의해서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가 결성되어 죽음에 관한 근본적 성찰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해 지금까지 죽음에 대한 교육, 세미나와 공청회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어서 1992년에 서혜경의 노인을 위한 죽음 준비의 건강교육 프로그램인 “죽음을 준비하는 건강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제언”이 있었고, 1998년 정경숙의 ”발달수준에 따른 아동의 죽음에 대한 개념과 죽음준비교육에 과한 연구“를 통해서 아동의 죽음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이 재발견되었다.”
1978년이면 그렇게 늦지 않은 시기에 죽음학에 눈을 뜬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연구가 이어졌다면 매우 고무적인 발전이 이 분야에서 있었을 것이며, 아울러 사회 곳곳에 죽음과 관련된 연구나 교육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약 2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죽음학이 더 이상 발전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를 얼마 남기지 않은 1997년 한림대 철학과의 오진탁교수가 당시부터 급속히 늘어나고 있던 자살의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죽음교육과 생사교육에 근거한 자살예방교육을 전국에서 유일하게 시작함으로 다시 죽음에 대한 담론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2004년에는 ‘생사학연구센터’가 개설되어 죽음학·생사학에 기초한 자살예방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서 곽혜원은 “이처럼 척박한 땅에서 2005년에야 비로소 철학, 종교학, 심리학, 사회학, 의학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죽음에 대한 학계와 사회의 분위기를 바꾸어 보고자 ‘한국죽음학회’(회장: 최준식교수)가 창립되었다”고 말한다.
정리하면 1978년 이후 우리나라 죽음학 연구에 선구적 역할을 한 최준식교수와 김균진교수 비롯한 죽음학의 선각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그 뒤를 이어 원종순의 “죽음을 앞둔 암환자의 돌봄에 관한 연구”(이화여대대학원, 1994), 정영의 “회고 요법이 노인의 죽음 불안, 자아 통합과 생활 만족에 미치는 효과”(카톨릭대대학원, 1994), 한미정의 “대처방식 내외 통제성 자아존중감에 따른 죽음 불안의 발달적 고찰”(서울여대대학원, 2001), 정경숙의 “아동의 보존개념 발달개념 수준과 죽음에 대한 정서 경험 수준이 죽음의 개념과 발달에 미치는 효과”(계명대학교대학원, 2001), 오미나의 “재가 노인과 시설 노인의 자아 존중감 죽음 불안 및 우울에 관한 연구”(영남대학교대학원, 2003) 등을 통해서 죽음학을 연구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죽음학에 관한 연구는 아직까지 죽음 자체에 대한 깊은 철학적·심리학적·상담학적·신학적 연구가 매우 미흡한 실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 죽음을 터부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래도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노인들을 위한 죽음 준비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연구와 함께 자살이나 호스피스와 같은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내용이 주 내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근자에 외국의 유명한 학자들의 죽음에 대한 연구를 실은 책이 소개되어 우리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데, 대표적으로 셸리 캐이건(Shelly Kagan) 교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2013) 라는 책과 스티븐 케이브(Stephen Cave)의 <불멸에 관하여>(2015)를 들 수 있다. 특히 셸리 캐이건 교수의 책은 그가 예일대학에서 17년간 가장 인기 있는 강의를 했다는 부연 설명에 힘을 입어 출판과 함께 여러 언론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이 책들은 현대 과학 문명에 깊이 뿌리를 내린 유물론과 자연주의에 기초를 둔 신기계론적 철학을 바탕으로 한 책으로서 결국 우리들로 하여금 더욱 죽음을 멀리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왜냐하면 이런 책들은 죽음에 대한 철학적·신학적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잘못된 죽음 관을 갖도록 하는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죽음학에 관한 연구가 그렇게 깊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과학주의적이며 유물론적 사고에 뿌리를 내린 사조까지 소개됨으로 현대인들은 죽음을 더욱 터부시 하는 문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 10연 어간에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죽음과 관련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으나, 가장 긍정적 의견은 드디어 사람들이 죽음을 좀 더 실제적으로 생각하고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곧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죽음의 문제를 통해서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려는 철학을 가진 의사, 철학자, 종교인, 고인의 마지막 유품을 정리해 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 등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자기 분야에서 경험한 죽음의 이야기를 통해서 삶의 질을 높이려는 시도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사람들의 삶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죽음에 대한 바른 직면을 더욱 도외시하게 함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에 대한 준비 없이 오직 이 땅에서의 성공과 육체만을 위해서 본능적으로 삶을 살도록 하는 문화가 넘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도 하루 빨리 죽음과 관련하여 우리 삶의 목적과 의미를 연구하는 바른 죽음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곧 죽음학에 대한 다학제적이며, 성경적인 연구가 많이 이루어짐으로 인간의 삶과 죽음을 생명에 대한 사랑 안에서 새롭게 조명해야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