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은 목사(안양 샘병원 원목, 총신 목회상담학 박사)

Well Dying(good life, good death) 12 - 죽음에 대한 다양한 관점 연구(2)
1. 죽음에 대한 다학제적 관점
1.2. 심리학적 관점
심리학이 현대인들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력에 대해서 박노권은 브라우닝(Browning)의 말을 인용하여 “리프(Philip Rieff)는 프로이드의 심리학적 인간과 칼빈의 종교적 인간 사이의 싸움에서 프로이드가 승리했다고 말하면서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더 이상 종교적 상징에 의해서가 아니라 심리학적 이미지를 갖고서 세상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현대인들에게 심리학은 성경보다 더 인간의 삶에 도움을 주는 지식으로 인식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리학적 죽음 이해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은 현대인들이 가진 죽음에 대한 인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것이다.
심리학적 죽음 이해는 자신의 인생을 수용하고 죽음을 두려움 없이 직면하여 자아 통합을 이루고 죽음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있다고 정의하면서 이이정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1950년대까지 죽음은 심리학을 비롯한 거의 모든 분야의 연구로부터 배제 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그 이전까지는 행동에 대한 실험적이고 객관적인 연구와 논리적 실증 철학이 심리학의 과학적인 연구들을 주도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1950년대를 전후로 파이펠을 중심으로 변화되었다. 파이펠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학자들은 죽음이 단순한 생물학적 사건이 아닌 심리적 사회적 측면을 가진다는 점에 주목하였고, 철학·생리학·의학·정신의학· 정신분석·종교·문학 등의 지식을 심리학에 도입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죽음을 연구하는 경향을 낳게 되었다. 곧 심리학 분야에서는 죽음을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 대한 중대한 위협, 위기상황, 스트레스의 원천으로 간주하고 이에 어떻게 적응하고 대처하는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심리학적 죽음의 이해 연구를 위해서 대표적인 심리학자 몇 사람의 주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심리학적 죽음 이해의 시작으로 프로이트(S. Freud)의 이론을 소개한 김대동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능을 리비도(Libido) 라고 부르는 삶의 본능과 싸나토스(Thanatos)라고 하는 죽음의 본능으로 보았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죽음을 최종적인 것이며 유기체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봤다.” 곧 프로이드는 죽음을 도덕적이고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문제에서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변화시켰고, 생물학적이고 심리학적인 실재로서 죽음을 묘사한 것이다. 아울러 프로이드의 죽음에 대한 이론에 대해서 김선숙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프로이트는 죽음의 본능을 삶의 본능보다 더 근원적인 것으로 보았으며, 인간의 죽음은 최종적인 것이며, 모든 유기체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곧 인간의 삶의 원초로부터 이미 죽음이라는 것이 어떤 통일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어서 삶의 존재를 무생물의 상태로 충동질하여 끌고 가기 때문에 결국 죽음에 이른다는 의미에서 죽음을 삶의 목적이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프로이드는 인간의 삶은 두 본능 사이의 투쟁인데 삶의 원초로부터 이미 죽음이라는 것이 어떤 통일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어 결국 죽음에 이른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배형기는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의 생명의 역사란 죽음을 향해서 진행되는 역사가 되고 마는 것이며, 결국은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프로이트에 따르면 죽음이란 최종적인 것이며 해당하는 유기체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곧 프로이트는 죽음은 무기체적인 생명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보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죽음 이후 천국에서 주어지는 삶의 보상에 대한 환상은 가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불신앙과 무종교로 돌아가서 기독교의 권위를 없애려고 했지만, 프로이트의 후학이었던 융(Jung)은 신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인간의 출생이 의미가 있듯이 죽음도 분명한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자기실현이 이루어지면 그것이 바로 자신의 죽음으로서 죽음은 자기실현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융의 죽음에 대한 주장에 대해서 조계화외 2인은 “융에 의하면 인간의 삶은 어떤 궁극적 목적을 향한 준비로써 보통 인간은 인생의 상승기를 거쳐 정상에 이르면 거기에 멈추어 서게 되고, 그렇게 하여 자기실현이 이루어지면 그것이 바로 죽음이며, 따라서 죽음은 결국 한 사람의 자기실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융은 결국 프로이트가 했던 것처럼 죽음을 도덕적 중립적인 것으로 취급하려고 시도했으며, 결국 죽음은 순수하게 과학적이고 가치중립적인 경험으로 환원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죽음학의 의미와 가치에 있어서 더욱 현대적 의미로 심리학화 하는데 큰 기여를 한 사람은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퀴블러-로스(Kübler-Ross. E)이다. 그녀는 “인간을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로 이해하면서 죽음을 완성을 향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주장하며 개인의 성취를 증대시키기 위해서 죽음을 수용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곧 그는 죽음이란 삶의 최종적인 것이며, 완성의 순간으로 들어가는 변화의 과정이기 때문에 죽음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아름다운 체험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좀 더 그가 말하는 죽음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죽음은 아기가 태어나는 것처럼, 인간의 존재, 성장과 발달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다. 우리는 죽음을 슬프거나 놀랄만한 일로, 또 병적이거나 두렵거나 참극이거나 파괴적인 것으로 볼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죽음은 의학에서 말하듯이 정복되어야 할 적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여행길을 함께 하는 친구이다.”
그리고 의미요법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은 “죽음은 인간 존재에게 의미를 부여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스스로 유한성을 인정하고 언제나 의식적으로 죽음이 온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죽음에 대한 회피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랭클은 인간은 불멸하는 존재가 아닌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하는 모든 것들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인생에서 의미를 갖는 것의 중요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심리학적 관점에서 죽음의 이해는 인간이 죽음을 어떻게 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처음과 끝이 있는 인간으로서 갖는 근본적 유한성을 깨닫고 죽음에 대한 회피가 아니라,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오늘이라고 하는 현실이 가치 있는 것을 알고 살아가야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죽음은 생물학적, 심리학적 소멸을 가져오는 것이지만, 그러나 삶은 그런 소멸보다 앞서는 것이므로 오늘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삶을 역사와 문화와 인간관계 등과 연계하여 더욱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에 죽음은 결코 우리 인간의 적으로만 인식 될 수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