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14(금)
 
  • 김성은 목사(안양 샘병원 원목, 총신 목회상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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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l Dying(good life, good death) 16 - 죽음에 대한 다양한 관점 연구(6)

1. 죽음에 대한 종교적 관점

우리 인간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자연이나 현실에 그대로 순응하지 않고 도전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불굴의 정신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많은 문명을 이루고 기술과 과학을 발달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아울러 이러한 사람들의 도전 정신은 죽음 앞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래서 인류는 여전히 죽음을 넘어서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특히 인간은 죽음의 불안 속에서 언젠가 이르게 될 끝에서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존재이다. 이러한 노력 중에 하나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생명이 있다는 종교적 성찰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의 인간 종교에는 사람의 생명은 육체의 죽음을 넘어 영원하다는 믿음과 내세관을 갖고 있다. 종교는 오죠 라즈니쉬가 말하는 것처럼 “죽음과 삶의 의미를 물으면서 불안에 떨고 있는 인간의 불안을 해소하고 참된 인간으로서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여러 성찰과 해석을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곧 종교의 역할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입을 상처를 위로하며 삶에 대한 용기와 희망을 갖도록 한다. 아울러 죽음의 절망 앞에서 연원한 삶에 대한 희망을 주어서 이 땅에서부터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세계의 많은 종교 중에서도 우리 한국에 전래되어 토착화 된 종교들, 즉 유교, 불교, 도교, 무속종교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우리 한국에는 역사 이래로 우리 한민족의 심성에 깊이 뿌리를 내린 무속종교의 기반 위에 유교·불교·도교와 여러 종류의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에서 수 백 년 혹은 수 천 년 동안 이어져 오는 가장 대표적인 종교라고 할 수 있는 유교, 불교, 도교, 그리고 무속종교의 죽음관에 대해서 살펴봄으로 목회자들이 목회현장에서 봉착하는 실천신학적 문제들과 아울러 목회자들이 죽음과 사후에 대해서 목회적으로 어떻게 사역할 것인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1.1. 유교적 관점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기였던 춘추전국시대에 공자를 비롯한 유학자들의 사상을 그 배경으로 하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공자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다. 인본주의 사상을 배경으로 하는 유교는 현재 우리 한국사회를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가치관의 기초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유교는 그 특징이 삶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갖게 하고 내세 지향적이라기보다는 현세 지향적인 성격이 강하다. 곧 유교의 주된 관심사에 대해서 유학주임교수실 편에 보면 “어떻게 하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며 인간다운 공동체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제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유명한 유교의 인(仁)의 원리이다”라고 말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유교는 현재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종교적인 요소로서, 이러한 유교의 영향력에 대해 곽혜원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유교는 불교를 국교로 숭상했던 고려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나라인 조선을 건국한 이성개를 비롯한 개국파의 정치적 기조에 따라서 조선왕조 500여 년(1392-1910) 동안 국가 종교의 자리에서 양반들과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종교처럼 숭배되어진 사상이다. 곧 유교는 나라를 통치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가난하고 약한 일반 대중의 종교가 아니라 지배 계층의 종교이며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교는 사상을 넘어 정치적인 필요와 힘에 의해 종교처럼 되었기 때문에 우리 한국인들의 사고방식, 사회구조, 생활양식, 각종의례와 예의범절을 총망라하는 조선시대의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그 영향력이 오늘까지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죽음관과 관련하여 상장례와 조상제례에 미친 유교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어서, 조상제례는 조선 후기 이래 마치 국교와도 같이 신봉되었다. 그 이유는 단순히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차원을 넘어서 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지배 계층의 권력을 강화하는 정치적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선시대 지배계층은 인(仁)을 주요 사상의 원리로 주장하는 유교를 부모의 죽음 이후에 조상제례를 통해 부모를 늘 기억하게 함과 동시에 국가와 지배계층은 어버이와 같으므로 그렇게 부모를 섬기듯이 최고의 충성을 끝까지 바쳐야 할 것을 주입하는 정치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이런 맥락을 따라서 조상제례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적 유교는 조선시대에는 국교와 같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우리 한민족의 사고와 삶에 깊숙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유교에서 생각하는 죽음관의 기초가 되는 사상을 살펴보면, 첫째, 정영희는 “유교에서는 생과 사의 문제가 천명(天命)에 달려 있다고 보고 삶에 있어서나 죽음에 있어서나 하늘에 맡기는 순천명(順天命)이 자세를 보인다”고 말한다. 이렇게 한 이유는 유교는 현재적 도덕적 질서를 세우는데 우선했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종교학회의 연구에서는 “유교는 기철학을 인간 생명에 대한 사상의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불멸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유교의 죽음관과 내세관의 기초이다”라고 말한다. 유교에서는 인간은 기(氣)와 정선된 물질적인 힘이 결합된 결과로 보아 천지음양의 기가 뭉치면 사람이 되고 흩어지면 귀(鬼)가 된다고 본다. 곧 인간은 정(精), 기(氣), 신(神)의 결합체인 혼백으로 일정 기간 존속하다가 그 기운이 다하면 혼은 양(陽)으로 하늘로 돌아가고 백은 음(陰)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것이 곧 죽음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유교에서 죽음은 자연 현상의 일부이며,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이 하늘에 달려 있다는 자연 순응적 태도를 보인다. 그러므로 유교에 대해서 최영갑은 “종교라기보다는 철저하게 현실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며 삶에서의 윤리와 도리를 중요시하는 철학"이라고 주장한다. 계속적으로 "유교에서는 다른 종교와 달리 분명한 내세관이 없으며, 죽음 이후에 대한 깊은 성찰이나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죽음 이후의 혼백의 존재를 믿는 믿음, 특히 조상의 혼백을 믿는 믿음으로 이 땅에서 마땅히 해야 할 효의 연장 선장에서 철저하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준행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곧 유교에서는 삶 속에 죽음의 자리를 마련해 놓아 제사를 통해 죽은 자가 살아 있는 사람들(후손)의 세계로 돌아와 만나게 된다는 신념을 따르고 있다. 이는 유교에서는 생활 공동체를 살아 있는 사람들만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죽은 자와 더불어 이루는 공동체로 여기는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제사를 절대적인 사회 규범으로 하는 것은 삶의 공동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유교의 이러한 제사 문제는 죽음을 소멸이라고 여기지 않는 유교의 특징이 나타난 것으로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것은 모두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이런 현상은 기독교의 추도 예배 등을 통해서 발견하는 것처럼, 여전히 성도들도 조상에 대한 생각과 숭배의 마음, 그리고 제사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목회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분명하게 성경적으로 성도들을 잘 목양해야 할 부분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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