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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교육부, 성경통신대학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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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교육부(부장 이경조 목사)가 주관한 제38회 성경통신대학 · 제43회 주교교사통신대학 · 제30회 평신도성경교육대학원 졸업식이 2월 26일 오후 2시 총회회관 2층에서 열렸다.
교육부장 이경조 목사가 "열심히 노력해서 모든 과정을 마치고 졸업하신 분들을 축하드리며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며 교회를 잘 섬기기 바란다."라고 격려했다.
졸업식은 교육전도국장 나현규 목사의 사회로 전국주일학교연합회장 김충길 장로가 기도, 다같이 딤후 3:16-17을 봉독했다.
교육부장 이경조 목사가 ‘끝이 아닌 시작’이란 제목으로 “오늘의 졸업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나서는 시작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이기에 이것을 더더욱 굳건히 붙잡아야 한다. 그러므로 첫째, 말씀으로 시작해야 한다.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 이는 하나님의 숨결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자. 둘째, 말씀으로 온전해지기 바란다. ‘온전’은 하나님의 사람답게 세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말씀으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성경은 선을 행할 능력을 준다. 졸업장은 파송장이다. 말씀의 씨앗을 많은 곳에 심어 열매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설교했다.
졸업장 및 상장 수여
교육부 회계 임계빈 목사가 학사보고 후 교육부장 이경조 목사가 졸업생 대표에게 졸업장 수여 및 기념품 증정, 이경조 부장이 총회장상 · 교육부장상 수여, 전서노회평대원장 이순렬 목사가 전서노회평대원장상, 함흥노회평대원장 윤두환 목사가 함흥노회평대원장상, 서울강남노회평대원장 김인환 목사가 서울강남노회평대원장상, 인천노회평대원장 김호겸 목사가 인천노회평대원장상을 시상했다. 이어서 교육부장 이경조 목사가 축도 후 교육전도국장 나현규 목사가 광고하고 모든 순서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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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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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교육부, 총신대 장로권사대학과 업무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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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부장 이경조 목사) 제20차 임원회의가 2월 26일 오전 11시 총회회관 5층 회의실에서 열려 총신대학교(총장 박성규 박사)에서 실시하고 있는 장로권사대학과의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제110회 총회 때 총회 교육부가 총신대에서 실시하고 있는 장로권사대학과 협의할 것을 결의한 후속 조치이다.
이경조 부장은 “총회 교육부가 장로권사대학의 행사에 앞으로 더 관심을 갖고 협력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미 제106회기 때 교육을 필한 자는 총회장 및 총장 공동명의 수료증을 발급하고, 장로고시 일부과목(성경, 교리신조, 정치, 권징조례)를 면제키로 결의했다(총회신학원복원 및 편목과정소위원회 2차 회의 결의사항. 2021. 11. 22).
그러나 노회에 따라 과목 면제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각 노회에 총회와 교육부 명의로 협조 공문을 보내기로 했다. 아울러 이미 성경통신대학 과목 이수자는 고시에서 그 과목에 대한 면제를 받고 있기에 거점 별 지방신학교에서 장로권사대학을 진행할 때 이에 대한 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 논의의 필요성에 대해 합의했다.
앞서 예배는 회계 임계빈 목사가 기도 후 부장 이경조 목사가 고전 3:10을 본문으로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매사에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설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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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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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60】 경험하지 못할 죽음은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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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죽어야 하는데 경함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실체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이처럼 죽음은 미지의 세계이다. 단지 현상을 보고 추론해볼 뿐이다. 이 책은 여러 가지로 어려웠다.
우리는 죽음의 문턱을 넘는 전이의 사건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죽어가는 사람의 말은 언제나 상징적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죽음의 비밀에 가까이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큼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죽음에 대한 접근이 이처럼 제자리를 맴도는 이유 중 하나는, 개인의 개별적 경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죽음은 개별적인 동시에, 최후의 비밀에 가까이 다가서는 고유의 접근 방법만큼이나 다양한 형태를 띠기에 그렇다(p. 38).
원초적 불안과 대상에 대한 경험은 근원적이고 존재를 뒤흔드는 차원에서 일어난다. 이 불안과 경험은 대부분 의식이 있는 현존재가 한계에 다다를 때 순수하게 일어나는 몸의 반응으로 나타난다. 경련, 불안, 가려움, 메스꺼움, 오한, 알레르기 반응, 경직으로 말이다.
우리의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불안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불안을 느끼는가?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나는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인간은 깊은 내면에서 누미노제의 불안을 느낀다. 드레버만은 신에 대한 원초적 불안을 언급하며, 이 불안에서 인간의 중요한 위기를 관찰한다. 이 위기는 다른 여러 위기들의 근간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불안과 함께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p. 91)다. 내가 거리에 나가 아무나 붙잡고 무엇을 두려워하느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테러와 전쟁, 집단 괴롭힘이나 따돌림, 전염병과 고통, 마약 중독, 깡패와 폭력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기차를 놓칠까 봐 불안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혹은 '신 에 대한 두려움'은 모호하다는 다소 엉뚱한 대답도 들을 수 있다. 내가 여기서 예를 든 것처럼 사람들은 사건 그 자체보다는 불안한 사건의 배경 때문에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 그러니까 불안한 일들 뒤에 있는, 그 안에 내재된 원초적 불안 때문에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육체적인 일차적 실존성에 위협을 느낀다. 나를 두렵게 하는 대상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그 대상이 무엇인지를 알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원초적 불안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한 것, 압도적인 것, 탈출구가 없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하는 불안의 대상이다(p. 92).
임종 준비란 죽어가는 사람의 내적 요구를 들어주고 그 이후에 그가 편안히 숨을 거둘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죽음의 문턱을 넘는 과정과 인지 감각의 변화에 대해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죽어가는 사람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자극받았던 이전 상태로 복귀시켜서도 안 되고, 그들에게 아름다운 삶을 제공했던 자기중심적인 세계에 계속 머(p. 211)무르라고 말해서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세를 떠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우리는 그들 내면에서 충돌하는 모순에 개입해서는 안 되며, 과도한 의료 조치로 억지로 목숨을 부지하도록 해서도 안 된다. 그건 무의미한 생명 연장이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는 그들에게 자아 안에 내재된, 곧 있을 결말을 미리 보여주어야 한다. 이런 솔직한 대면을 통해 우리는 고통완화 단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조심스레 꺼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임종 환자들 가운데 가끔 우리의 보호를 받으면서 한 번 더 '기운을 차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 요양원이나 그와 비슷한 시설로 보내라는 의료보험공단의 압박이 있음을 조심히 일러주어야 한다. 이를 전해들은 환자의 의료기에 갑자기 심상치 않은 반응이 나타난다. 잠시 실망과 우울 상태에 접어들었다가 죽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구와 직면한다. 그러고는 마지막 숨을 거둔다. '그 안에 있던 원초적인 욕구'가 떠나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초적인 욕구가 떠나기 전에 숨을 거두는 것 같다. 요약하자면 임종 준비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으로 인도하는 도움의 손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경제적인 한계가 종(p. 212)종 죽음의 길로 인도한다(p. 213).
우리가 보는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이 생긴다는 것은 인지 전환이 우리에게 보여준 중요한 결과들 중 하나이다. 고통 완화 의사, 간호사, 간병인, 상담사 등의 의료 종사자들과 가족은 임종 환자들이 어느 순간에 그리고 언제든지 내적으로 다른 공간에 가 있다는 것을 귀담아듣는 게 좋을 것 같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현세도 내세도 아닌 중립적이고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한 곳에, 자아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고통과 실신에서 벗어난 다른 공간에 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 다. 죽음은 고통으로 삶을 채울 수도 있고 삶에 깊은 인상을 남길 수도 있으며 삶 전체의 의미를 다시 규정할 수도 있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거나 타인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인 간은 가장 비밀스러운 영역에 발을 들여놓기도 하고, 마음이 움직이기도 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인생에 관해, 죽음을 앞둔 현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비록 보이지 않지만 죽음은 한마디로 강렬하고 극단적인 경험이다. 흔히들 자아의 관점에서 죽음을 생각하고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오산이다. 여기서 내가 자아 기능과 감각으로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죽음을 설명했다면 나 역(p. 218)시 죽음을 왜곡했을 것이다. 가령 임종 환자를 병문안하러 온 한 방문객이 그의 고통이 안타까워 그 고통을 대신 젊어 진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방문객은 극심한 고통에 소리 지르고 몸부림치면서, 숨쉬기도 힘겨워하면서 그를 대신해 '고생할 것' 같은가? 전혀 그렇지 않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실제로 고통에 시달리지만 의식이 없는 상태로 접어드는 시점에서는 고통을 감지하는 감각은 상실된다. 종종 나는 이를 수면, 혼수상태 또는 마취와 비교해본다. 임종 환자들의 고통은 지속적이거나 우발적이지 않고 오히려 삶과의 이별 과정이나 변화를 향한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 의식을 갖고서 자기 몰락을 받아들이는 것인지 또는 무의식적으로 그러는지, 결과적으로 피곤한 상태에서 죽음을 수용하는지는 부차적이다. 중요한 것은 죽어가는 사람들이 고통, 불안과는 무관하게 죽음의 상태 안으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 대부분이 "괜찮아" "....좋아”라고 말한다(p. 219).
죽어가는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 시공간을 넘어 - 좇고 있는 것은 궁극적, 신적인 완성임을 예감 할 수 있고 추측할 수 있다. 그들의 마지막 비전과 반응을 살펴보면 나는 '최후의 것' 그리고 그로 인한 변화에 대한 일정한 앎을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 시간, 시간성과 현재, 현재성의 차원이 바뀔 것이다: 많은 것들이 동시성과 무시간성(영원)이라는 현존재 양식을 예고할 것이다.
• 공간, 공간성의 차원이 변할 것이다: 많은 것들이 공간적인 무경계를 암시할 것이다.
• 신체, 구체화, 경계 그리고 자기 정체성에 대한 느낌이 바뀔 것이다: 많은 것들이 경계 없는 존재와 관계된 존재를 가리킬 것이다. 이러한 존재를 나는 존재자, 즉 실체와 에너지로서 이해되는 존재자라고 생각한다.
• 중력에 대한 느낌이 변할 것이다: 신체적인 무게감은 와해되는 것처럼 보인다(p. 241).
• 강렬함, 감성도 변할 것이다: 많은 것이 강도를 높인다는 걸 보여주지만, 결국에는 감각을 넘어설 것이다. 그렇다고 감각적인 것이 배제되거나 무시되지는 않는다.
• 좋거나 나쁘다는 식의 평가도, 방식도 사라질 것이다: 많은 것들이 새로운 공존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여러 부분으로 쪼개지고 분열되었던 것들이 전체로 통합되는 것을 지시한다.
• 의식: 무의식과 더불어 자아와 연결된 의식에서부터 새로운 양식에 이르기까지 의식의 새로운 양식을 '보게 될 것이다.'
• 기운, 분위기가 바뀔 것이다: 떠밀림에서 완성으로, 찾기와 기다림에서 발견으로, 대결에서 평온과 목표로, 불안에서 신뢰로 말이다.
• 공동체: 죽어가는 사람들의 많은 표상들과 유대교, 기독교, 타 종교들에 산재한 텍스트는 분열이 집회, 공동(p. 242)체, 축제라는 새로운 질적인 특성으로 전환될 거라는 점을 암시한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증언과 이들의 마지막 변화가 내세에 대한 암시인지, 아니면 단지 임사체험을 표현한 것인지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열려 있다. 단지 해석만 있을 뿐이다(p.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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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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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59】 세상은 요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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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별의별 일이 다 있다.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들이다. 재미로 한 번 읽을 만한데 현재 이 책은 품절되었다.
죄를 없애기 위해 죄를 저지르다
고대 그리스에는 인신공양 제도가 있었다. 아테네에서는 남녀 두 명의 부랑자를 1년간 나랏돈으로 먹여 살렸다. 곡식을 수확하기 전 축제가 벌어지면, 사람들은 그들을 무화과 나뭇가지 로 때리며 마을 구석구석으로 끌고 돌아다녔다. 그들의 역할은 마을 사람들의 모든 죄와 더러움을 떠안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면 그들에게는 마을 변두리로 끌려가 절벽 위에서 떨어뜨리 거나 화형을 당하는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죽으면 사람들은 그 유골을 바다에 버렸다. 제물의 몸이 무로 돌아감으로써 비로소 사람들의 죄도 무로 돌아간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스의 식민지 마살리아(오늘날의 마르세유_-옮긴이)에서도 마을에 역병이 돌 때마다 신에게 사람을 바치는 제도가 있었다. 그리고 역시 제물이 되는 사람은 나랏돈으로 부양한 부랑자들이었다. 사람들은 제물에게 화관을 씌우고 축제 의상을 입혀서 마을 여기저기(p. 32)로 끌고 다닌다. 길에서 제물을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온갖 욕설과 악담을 퍼부어 자기에게 닥칠 위험과 재앙을 모조리 떠넘긴다. 그렇게 마을을 다 돈 후에는 제물을 인정사정없이 절벽 위에서 떨어뜨렸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사람들의 죄가 없어지기는커녕 더욱 무거워지지 않았을까?(p. 33).
사람 가죽 벗기기
사람 가죽 벗기기, 즉 '생피박리형'은 살아 있는 죄수의 피부를 벗기는 형벌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가죽을 벗기면 그의 온몸은 피가 뿜어 나오는 상처로 뒤덮인 것과 같다. 햇볕에 고스란히 드러난 몸은 경련을 일으키고, 겉으로 드러난 혈관은 연신 바들바들 떨린다."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지 않는가?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자기 직무를 태만히 한 판사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가죽을 벗기는 형벌에 처해졌다. 그리고 그 가죽으로 후임자의 의자를 만들었다. 캄비세스Cambyses 왕이 지배하던 시대, 어느 신임 판사는 법정에서 아버지의 가죽으로 만든 의자에 앉기도 했다. 아버지인 시삼네스 Sisamnes 판사가 불공정한 판결을 내려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가죽이 벗겨졌기 때문이다(p. 34). 그 당시 페르시아에서는 인간의 피부를 가늘게, 둥글게, 넓적하게 등등 여러 가지 모양으로 벗겨냈다. 때로는 머리에서 몸 쪽을 향해 5~10센터 미터 폭의 가느다란 띠 모양으로 가죽을 벗기기도 했는데, 훗날 순교자 성 바르톨로메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 옮긴이) 도 이 방법으로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가죽이 벗겨졌다고 한다(p. 35).
끔찍한 화형 이야기
유럽에 마녀 사냥의 광풍이 일었을 때 자주 사용된 처형법이 바로 화형이었다. 사실 화형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운이 나쁜 사람은 잔 다르크처럼 살아 있는 상태에서 화형에 처해졌지만, 운이 좋은 사람은 사형집행인에 의해 목이 졸려 목숨이 끊어진 다음에 화형에 처해졌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화형을 당하는 것은 죽고 나서 화형을 당하는 것과 당연히 고통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다. 전자의 경우 살점이 떨어지고 뼈가 문드러져도 의식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일반적으로 목숨이 끊어지기까지 30분 이상 미칠 듯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살아 있는 상태에서 화형에 처해졌을까? 그것은 자신이 마녀라는 사실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거나 일단 인정했다 나중에 말을 뒤집는 경우였다. 화형을 하는 도중에 사형수가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하면 얼굴(p. 53)에 물을 뿌려 정신을 차리게 하거나, 아니면 불에 물을 뿌려 불기운을 약하게 하고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불을 지피는 잔혹한 방법도 취해졌다. 그것은 소풍이라도 나온 기분으로 모여 있는 구경꾼들에 대한 서비스가 아니었을까? 화형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사형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작이나 지푸라기를 높이 쌓아서 불태우는 방법이다. 이것은 사형수가 빠른 시간에 질식사하기 때문에 비교적 온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장작을 쌓은 후 사형수를 기둥 높이 묶어 화형에 처하는 방법도 있었다. 이것은 아래부터 시작해서 불길이 천천히 위쪽으로 솟구치는 만큼, 사형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맛보게 된다(p. 55).
마녀 사냥이 성행했던 진짜 이유
일단 마녀로 지목되면 빠져나갈 구멍은 전혀 없었다. 그녀에게는 가혹한 고문과 화형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체포와 심문 그리고 고문에 드는 비용, 감옥에서의 식사비, 몸을 묶는 밧줄비, 화형에 필요한 장작비, 재판관과 관리와 사형집행인의 수당 일체를 본인이 지불해야 했다. 때문에 정부의 관리는 마녀로 지목된 여성을 체포함과 동시에 그녀의 집을 수색해서 모든 것을 압수했다. 동산과 부동산을 몰수함은 물론이고, 그녀가 남에게 돈을 빌려준 경우 상대를 찾아내 원금을 회수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처형당한 마녀를 대신해서 정부의 관리가 빛을 받으러 다닌 것이다. 사실 당시 마녀 사냥이 횡행한 원인 중 하나는 이런 재산몰수 때문이었다. 신성로마제국에서 마녀의 재산몰수를 금지했던 1630년에서 1631 년까지 마녀 적발이 급격히 감소한 것이 그 증거다(p. 80). 반베르크에서만 해도 1629년까지는 매년 100명 정도의 마녀가 처형 되었는데 1631년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p. 81).
장미 가시에 찔려 죽다
20세기의 천재 시인인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유달리 장미를 좋아했는데, 그가 만년에 살았다는 론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오래된 성의 정원에는 지금도 수많은 종류의 장미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차가운 돌로 지어진 오래된 성에서 수도승처럼 혼자 살며 시를 지었던 릴케. 그는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정원까지 배웅하다 나무 뒤에 피어 있는 장미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장미 가시에 손가락(p. 159)이 찔리는 바람에 패혈증으로 고생하다 그해 12월 29일에 5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실제 사인이 백혈병임에도 이런 전설이 전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릴케라는 시인의 섬세한 이미지와 함께 생전에 그가 기이할 정도로 장미를 좋아했다는 사실 때문이리라(p. 160).
허니문의 기원
'허니문'은 결혼식을 올린 다음에 떠나는 신혼여행을 이르는 다른 표현이다. 허니문은 결혼식을 마친 부부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의식으로, 원래는 한 달 동안 매일 밤 '봉밀주'를 마시는 관습이었다. 여기에서 허니문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허니문에는 재미있는 기원이 있다. 오랜 옛날 결혼이라는 것은 남자가 힘으로 여자의 부모로부터 여자를 훔쳐내는 방법이 일반적이었다. 그때 여자를 되찾으려 쫓아오는 사람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남자는 여자를 데리고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이렇게 한동안 두 사람이 숨어 지내던 관습이 오늘날 두 사람만의 허니문으로 변한 것이다(p. 182).
명작동화의 작가는 로리콘
어린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았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 책을 쓴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은 옥스퍼드 대학교의 수학 교수였다. 사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가 동료이자 고전학자인 리델의 딸 앨리스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쓴 작품이었다. 그는 기이할 정도로 어린 소녀에게 집착했다. 그에게는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었는데 항상 어린 소녀의 사진만 찍었다. 지금도 그가 찍은 수많은 소녀들의 사진이 남아 있는 데, 그 안에서 고민에 빠진 얼굴로 소파에 누워 있는 소녀, 어른스럽게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 등 기묘한 에로티시즘으로 가득 찬 소녀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p. 239). 루이스 캐럴은 전차에서 만난 소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아무도 몰래 연애편지를 보낸 적도 있었다. 어쨌든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진정 '로리콘'이었다. 심한 경우 소녀유괴나 소녀감금에까지 이르게 되는 롤리타 콤플렉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현실이 아닌 동화 속에서 아름다운 소녀들을 정복했다(p. 241).
우발적 연애를 즐긴 사르트르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는 첫 번째 철학교수 시험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다. 그러자 약혼자의 부모는 재빨리 그와의 결혼을 파기해버렸다. 그 후 그는 한동안 술독에 빠져 지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이듬해인 1929년에 치른 두 번째 시험에서 놀랍게 도 1등으로 합격했다. 그리고 그때 2등으로 합격한 시몬 드 보부아르 Simone de Beauvoir를 만나게 되는데, 후에 그녀는 그의 평생의 반려자가 된다. 이윽고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지독한 사랑에 빠져 함께 살게 되었다. 하루는 사르트르가 이렇게 말했다. "연애에는 필연적 연애와 우발적 연애가 있다. 양쪽 모두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러면서 보부아르에게 '2년 계약 결혼'을 제안했다. 두 사람 모두 다른 이성과 우발적 연애를 즐겨도 좋지만 서로에게 비밀은 없어야 한다는(p. 256) 것이 조건이었다. 순진했던 보부아르는 이 제안에 동의했다. 하지만 계약 결혼 후 우발적 연애를 즐긴 사람은 사르트르뿐이었다. 대신 보부아르는 항상 질투에 몸을 떨어야 했다. 사르트르는 끊임없이 새 애인을 만들어서 보부아르를 고뇌에 빠트렸으며, 40세가 넘어서도 그의 우발적 연애는 끝나지 않았다. 여배우, 유명인의 아내, 제자 등등... 그는 여자들을 교묘하게 '관리'했다. 연애가 끝난 후에도 헤어지지 않고 '보관'하면서 그녀들에게 아낌없이 '재투자'한 것이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들에게 힘과 재능, 지식 등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었다. 상대가 여배우라면 희곡을 써주고, 타이피스트라면 자기 소설의 타이핑을 맡겼다. 덕분에 연인 관계가 끊어지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자들은 그를 '좋은 친구'로 여겼다.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 조차 사르트르와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지만 사강이 무려 20페이지에 이르는 정열적인 러브레터를 사르트르에게 보내 보부아르를 질투에 불타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p. 258).
치열한 음식물 전쟁
파푸아뉴기니의 카라우나 족은 무기가 아니라 음식을 이용해서 적과 싸운다. 어느 쪽이 상대에게 더 많은 음식을 보낼 수 있는지 경쟁하는 것이다. 카라우나 족 남자들은 상대로부터 모욕을 당한 경우 -가령 아내를 빼앗겼다든지-그 즉시 복수에 착수한다. 상대가 갚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음식을 보내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은 부족 간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평소에 밭에서 필요한 것보다 많은 양의 음식을 수확해 보관한다. 물론 태풍이나 기근 등의 재해에 대비하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다른 부족과 적대관계가 되었을 때 무기로 삼기 위해서다. 카라우나 족의 유력자가 다른 부족과 적대관계가 되었을 때, 그는 일단 부하에게 감자를 주어 동이 트기 전에 적의 진영으로 보낸다(p. 294). 그것을 받아든 적은 도전에 응한다는 표시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와 사자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우리가 이것을 갚을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 우리에게 돼지가 없는 줄 아느냐? 우리가 농사짓는 방법을 모를 줄 아느냐? 어디 두고 보자. 누가 더 맛있는 감자를 가지고 있는지 똑똑히 보여주겠다!" 이렇게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감자를 보낸 후 카라우나 족은 부족의 창고를 전부 뒤지고 밭을 파내어 찾아낸 음식을 한곳에 모은다. 다음 날 적의 사자에게 내줄 감자와 고구마, 바나나, 돼지 등의 음식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 날 아침, 적의 사자가 모아둔 음식을 모두 가져간다. 이제는 적들이 음식을 모을 차례다. 하루가 지나 아침이 되면 이번에는 카라우나 족의 사자가 적의 마을에 가서 적이 모아놓은 음식을 가져 온다. 결정적인 순간이다. 만일 적에게서 가져온 음식이 자신들이 보낸 음식 보다 많은 경우, 다시 그보다 많은 음식을 끌어 모아야 한다. 이렇게 전쟁은 계속되는 것이다. 당신은 '이기든 지든 산더미만 한 음식이 남게 되니까 양쪽 모두 큰 손해는 아니다...' 하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얄팍한 우리 문명인들의 생각일 뿐이다. 그들이 느끼는 패배에 대한 수치나 승리에 대한 기쁨은 물질로 채울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일 테니까(p. 295).
에펠탑보다 인기 있었던 관광코스는?
19세기 에펠탑 관광보다 더 인기가 있었던 것이 바로 단두대 처형 관광이었다. 영국 여행사 토머스 쿡에서는 단두대 처형을 구경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대형마차 7대를 준비하는 등 관광객 모집에 열을 올렸다. 당시 단두대 처형은 대개 아침 일찍 이루어졌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전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느라 상당히 지친 상태였지만, 마차 7대에 마련된 40석의 자리는 언제나 모두 팔려나갔다. 또한 처형장이 보이는 창문과 테라스, 나무 위에는 꼭두새벽부터 나온 구경꾼이 일찌감치 자리를 차지했다. 특히 처형장이 잘 보이는 방은 늘 엄청난 가격으로 몇 달 전에 예약이 끝나 있었다. 처형 당일 단두대 주위에는 피에로나 장사꾼 그리고 구경꾼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며 소풍이라도 나온 듯한 기분으로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천박한 농담을 주고받았다(p. 314). 처형될 순서를 기다리는 내내 그런 소리를 들어야 했던 죄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마 이 세상에 인간보다 더 잔인한 동물은 없으리라(p. 315).
하늘나라로 메시지를 전해드립니다
1982년 4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회사의 광고가 실렸다. 저세상에 있는 고인에게 메시지를 보내준다는 내용이었다. 메시지 전달자는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었다. 고인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사람이 그 환자에게 전할 내용을 알려주면 그가 메시지를 머릿속에 넣고 저세상으로 가져간다. 요금은 보통편은 100단어에 60달러, 특급편은 50단어에 100달러였고, 과격한 내용이나 지옥으로 가는 메시지는 받지 않았다. 메시지 중에는 가족이나 친지에게 보내는 것뿐만 아니라 존 F. 케네디나 마릴린 먼로, 존 레논에게 보내는 것도 있었다(p.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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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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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58】 다양한 분야를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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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분야의 전문가는 제 역할을 한다. 화가는 그림으로 사실을 표현할 때가 있다. 이를 법의학으로 해석할 때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 조금씩이라도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을 때 보이는 것
최근에 이르러서야 의사와 과학자들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온 이들이 털어놓은 '죽음의 이미지 체험'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서 특이한 현상을 경험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임사체험 Near Death Experience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임사체험자들이 털어놓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몇 가지 공통된 현 상이 있다. 그 하나로 자신의 몸에서 영혼이 이탈하는 것을 체험했다고 하는데, 이를 '체외이탈 Out of Body Experience' 이라고 한다. 체외이탈 현상과 더불어 빛이 온몸을 감싸기도 하며, 넓은 꽃밭을 거닐기도 하고, 죽은 가족들과 상봉하기도 한다(p. 17). 체외이탈 연구는 19세기 말 스위스의 지질학자 알베르트 하임이 시작했다. 그는 알프스를 등반하다가 조난을 당한 적이 있는데, 사경을 헤매던 중 체외이탈을 경험했다. 그 후 하임은 비슷한 경험을 한 등산가와 군인 등의 사례를 모으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 미국에서는 체외이탈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정신과 의사 레이먼드 무디 2세는 당시 사망 판정을 받은 후 살아난 사람들의 체험을 수집해 《사후의 세계》(1975)라는 책을 펴냈다. 그 후 죽음학의 대가로 불리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도 체외이탈을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사후 생》(1991)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렇게 보고된 사례가 지금까지 수십만 건에 달한다. 그들의 체험이 반드시 일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사람들의 체험담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영혼의 체외이탈 → 깜깜한 터널을 지나는 터널 체험 → 빛과의 만남 → 저승 도착 → 지나온 생에 대한 반성적 회고 → 장벽과의 만남 → 육체로의 회귀
이러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촉감은 있지만 아픈 것은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이때까지 보고된 체외이탈이나 임사체험 경험에 대해서는 그것이 현실 세계에서의 실제적인 체험이건 아니면 단지 뇌에서 느낀(p. 18) 환각이나 환상이건 간에 그것을 보고 느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견을 내세울 수가 없다. 따라서 체외이탈과 임사체험처럼 생사를 가르는 순간에 체험되는 현상을 묶어 '임사현상 Near Death Phenomena' 으로 표현하기로 한다(p. 19).
한편 임사 체험자들이 한결같이 털어놓는 고백이 있다. "저세상은 너무도 아름다워 이승과 비교할 수도 없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저세상을 보고 난 후에는 이승에서의 삶이 싫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가장 이상한 예는 자살 미수에 그친 사람들이다. 그들은 체외이탈을 체험한 뒤 아주 캄캄한 곳에 있었으며, 아무도 자신을 돌보지 않아 강한 고립감이 들었다고 한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 가운데 빛의 존재를 만난 이는 한 명도 없었다(p. 21).
이 글을 쓰면서 죽음의 이미지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두렵고 무서운 것은 아니라는 점에 관심이 갔다. 임사현상 체험자들의 진술에(p. 22) 의하면 일단 죽음의 과정에 들어서게 되는 순간 고통 없이 편안하며,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는 점에 주목 하였다. 그리고 죽음을 편안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떠나는 인생의 마지막 여행으로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p. 23).
정신분석 전문가들은 도스토옙스키가 그의 작품에서 표현한 뇌전증과 살인의 관계에 주목하였고, 작가의 내면에 잠재된 심리에 대한 여러 가설을 세웠다. 예를 들어 그의 작품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는 간질과 살인의 상관관계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작품 속에서 뇌전증 발작과 환희, 격분상태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두드러지는 것은 도스토옙스키 자신도 실제로 측두엽 뇌전증 환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측두엽 뇌전증이란 무엇일까? 뇌전증의 일종인 측두엽 뇌전증은 의식의 상실이나 경련을 동반하지 않는다. 환자는 발작이 일어나면 청각, 시각, 후각 및 촉각에 이상을 느끼며 잠시 동안 망연자실 상태가 되거나 입을 씰룩거리며 움직이는 증상이 나타난다. 또 발작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특색 있는 증상을 보이는 게슈빈트증후군Geschwind syndrome 이라는 증상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즉 종교나 도덕성에 과잉으로 집착하며, 성에 대해 극단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 중 가장 특징적인 증상은 글을 쓰려는 욕구를 주체하지 못해 계속해서 글을 써내려가는 하이퍼그라피Hypergraphia라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p. 37).
고대 그리스의 신상들과 조각 작품은 모두 나체이다. 나체에는 평등사상인 '너나 나나 벗으면 똑같다'는 의미가 내포 되어 있는 것으로, 거짓의 옷을 벗어버린 인간의 진실함이 나타나기 때문에 모든 행동에 거짓이 없음을 의미한다. 클림트는 나체화를 그리는 확고한 신념에 의한 독창성과 예술적 특이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에서 들리는 잡음을 무시하고 극복할 수 있었다. 빈대학의 학부 회화를 둘러싼 잡음, 특히 나체의 여인에 대한 시비로 이 그림들을 새로 교정 하라는 제의는 단호하고 보기 좋게 거절 했다. 그리고 국가로부터 받았던 제작비(p. 69)는 전액 환불하고, '학부 회화' 최종판은 자신이 소유하였다. 만일 대학당국이 예술가는 장인과는 달리 어떤 구속에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입장에서 영원한 것을 창조한다는 것을 참작하였다면, 작품에 대한 시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클림트는 여성성의 무한한 힘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을 지니고 있으며, 나체의 진실성에 대해 확고한 신념으로 그림을 제작하였다. 하지만 당시 고고했던 대학으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야기된 사건이었다(p. 70).
채플린 친자확인 사건
한평생 웃음을 전하며 살아온 20세기 최고의 희극배우인 찰리 채플린 1889~1977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알고 있는 모습만이 그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의 우스꽝스런 몸짓과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미소에서 우리는 슬픔을 엿볼 수 있다. 채플린은 남을 웃기고 돌아서서 혼자 울던 사람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뛰어난 업적을 남긴 영화인 채플린의 사생활은 수많은 스캔들로 얼룩져 있다. 특히나 여자관계가 복잡했는데, 어린 여자들과의 스캔들로 '병아리 잡는 매Chicken Hawk'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채플린이 배우 지망생 조안 배리Joan Barry 1920~1996를 알게 된 것은 1941년이었다. 그는 배리의 미모와 재능을 알아보고 연극학교에 입학 시켰으며, 그녀를 배우로 키우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동거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채플린은 1942년 이상행동을 일삼으며 정신적으로 문제가 보이는 배리와 이별하게 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 후 배리가 임신을 해 1943년 10월에 출산을 했다는 점이다. 배리는 갓 태어난 아기가 채플린의 아이라고 말했고, 채플린은 이를 부인해 결국 소송으로 번지게 되었다. 수태일수와 배란일수를 계산한 결과, 배리는 1942년 12월 23일에서 24일 사이에 임신했다는 산부인과 의사의 보고가 나왔다. 따라서 문제(p. 133)는 임신 가능한 날짜인 12월 23일을 전후해 3일이라는 기간 동안 두사람이 동침한 사실이 있는가의 여부로 집중되었다. 문제 해결의 핵심이 되는 이 사실에 대해 채플린은 없다고 했고, 배리는 있다고 주장했다. 배리의 진술에 의하면 1942년 2월까지 채플린과 동거한 것이 사실이며, 두 사람이 헤어진 후 채플린과 연락이 두절되었다. 채플린은 더 이상 배리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배리는 채플린에게 집착했다. 급기야 1942년 12월 23일 밤 권총을 숨기고 채플린을 찾아갔는데, 그가 만나주지 않자 창문을 깨고 집 안으로 침입해 들어갔다. 자고 있던 채플린은 깜짝 놀랐고, 총을 들고 있는 배리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그날 밤 두 사람은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이상은 배 리의 진술이었다. 하지만 채플린은 이를 적극 부인했다. 하는 수 없이 아이의 친자확인 혈형검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채플린은 0형이었고, 배리는 A형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B형이었다. 0형의 아버지와 A형의 어머니 사이에서는 B형의 아이가 출생할 수 없다. 결국 ABO식 혈형검사로 채플린은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검증은 재판의 판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배심원들은 배리의 손을 들어주었고, 재판을 담당한 킨케트 판사는 채플린이 아이의 아버지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양육비로 주급 75달러와 변호사료 5,000달러 지급을 명하였다(1945년 5월 2일의 판결)(p. 134).
이렇게 확실한 과학적 증거를 무시하고 비논리적 판결을 내린 이면에는 배리의 법정 증언이 큰 역할을 했다. 배리는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 채플린을 살해할 생각으로 권총까지 준비해 찾아갔다. 하지만 놀라고 당황한 채플린이 거짓으로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 결과 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다고 배심원들에게 눈물로 호소한 것이다. 배리는 또한 재판 결과에 따라 아이와 함께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일생일대의 명연기를 펼쳤다. 그녀의 연기에 사로잡힌 배심원들은 그녀를 동정하여 채플린 패소라는 판결 을 내렸다. 이렇듯 배심원제 재판은 법 이외의 여러 요소에 의해 좌지우지될 우려가 다분히 있다. 지금도 이러한 판례들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최첨단 기술의 특허 침해를 놓고 미국의 배심원제 재판과 한국 법원의 판결 결과가 정반대로 나오는 것도 이러한 사례로 볼 수 있다(p. 135).
두 화가의 다르게 표현된 그림으로 제롬이 그린 밧세바는 '요부'에 해당되며, 팡탱 라투르가 그린 밧세바는 '숙명의 여인'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 문제를 풀 만한 가장 중요한 열쇠는 밧세바가 왜 하필 그날 저녁에 목욕을 했느냐는 것이다. 율법에 의하면 여인들은 달거리가 끝나면 몸이 부정하게 되었다고 하여 정결례(레 12:2)로 몸을 씻어야 했다. 사실 밧세바는 월경을 막 마친 후였고, 율법대로 부정함을 씻기 위해 정결례로서 목욕을 한 것이었다. 단순히 몸을 깨끗하게 하거나, 왕을 유혹하기 위한 목욕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구약의 기록을 보더라도 밧세바를 요부로 보는 관점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p. 143).
한편, 단 한 번의 육체적 관계로 임신이 가능한가의 문제에 대한 논란은 강간 사건에서 자주 등장한다. 동물들의 배란 양식은 여러 형태인데, 야생 토끼나 낙타는 수컷이 있어야만, 즉 수컷이 교미 동작을 취해야만 배란이 되고 평소에는 배란이 되지 않는다. 원숭이처럼 공포를 느껴야 배란이 되는 동물도 있다. 그래서 수 원숭이는 교미 전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암컷이 안고 있는 새끼를 뺏어서 던지고 때리기까지 한다. 새끼 원승이의 비명 소리를 들은 암컷은 공포를 느끼게 되면서 배란이 이루어지고, 발정이 되며, 교미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공포 배란 현상이 사람에게도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강간이나 간음같이 공포나 불안감이 조성되는 분위기에서 배란이 되는 여성이 있다. 그래서 단 한 번의 성교로 임신이 되었다는 예는 강간이 나 간음 사건에서 드문 현상은 아니다(p. 152). 앞에서 월경이 막 끝나고 정결례를 하는 밧세바에 대한 기록을 예로 들어 그녀는 요부가 아니며, 다윗 왕을 유혹하기 위해 일부러 술수를 부린 것도 아니라고 얘기하였다. 이번에는 밧세바의 임신에 대해 여러 정황을 기반으로 추측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밧세바가 다윗 왕과의 육체적 관계에서 무언가 공포나 불안을 느꼈을 수 있고, 그로 인해 공포 배란으로 임신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밧세바를 요부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되는 셈이다(p. 154).
수많은 걸작을 남긴 프랑스의 조각가 로댕 1840~1917은 작품 만큼이나 여성 편력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공분을 산 것은 젊고 유망한 여류 조각가의 사랑을 헌신짝 버리듯 버림으로써 정신이상이 되어 평생을 고통 속에 살다 죽음을 맞이하게 했다는 사실이다. 조각가 지망생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1864~1943은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파리의 에콕 데 보자르라 예술학교에 입학했다. 어린 나이에 당시 최고의 예술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 학교 교장은 그녀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서 당시 최고의 조각가였던 로명에게 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강력하게 추천했다. 그때 카미유의(p. 173) 나이는 열아홉 살이었고, 로댕은 마흔두 살이었다. 처음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로 만났고, 로댕은 그녀에게 작품의 모델이 되어줄 것을 제안 했다. 로댕의 예술을 이해하고 사랑했던 카미유는 거리낌 없이 옷을 벗고 원하는 대로 포즈를 취하였다. 로댕의 많은 제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솜씨를 보인 것은 역시 카미유이었다. 로댕 역시 그녀의 실력을 신뢰하여서 작품의 섬세한 마무리 단계를 그녀에게 맡기곤 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협력하여 빛나는 많은 작품을 완성하였고, 이렇게 작품의 작업을 함께해 나가면서 연인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법적으로 혼인관계는 아니었지만, 로댕은 로즈 뵈레Rose Beuret라는 여인과 동거를 하고 있었다. 로즈 역시 열여덟 살 때 로댕의 모델이 되었는데, 그 후 1년 뒤에 로댕의 아이를 낳게 된다. 로댕이 로즈를 모델로 택했던 것은 농촌 출신이었던 그녀의 단단한 근육질의 몸매 때문이었는데, 바로 로댕이 원했던 모델이었다. 또 그녀는 매우 순종적이었다. 그래서 로댕은 그녀를 말할 때 "로즈는 동물적이야"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그녀와 일생을 같 이 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가 이야기하는 동물적이라는 의미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로댕은 자신의 화실에 불러들인 모델을 작업만 마치고 그대로 보낸 적이 없었다. 모델들은 한결같이 그의 뜨거운 입김을 쏘이고 나서야 화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의 여성 편력은 매우 심해 관계를 맺은 여인은 알려진 것만도 수십 명이었다. 하지만 로즈는 그의 난잡한 여자관(p. 174)계에 대해 단 한마디 불평도 없었다. 어떨 때는 모델들이 포즈를 취하 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로댕은 일생을 그녀와 함께하였고, 죽기 16일 전에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그녀가 낳은 아이를 자신의 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로댕은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포즈는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는 취할 수 없다는 구실로 모델들의 몸을 마음대로 취하였다. 이에 에밀 졸라는 "그는 모델들의 아름다운 나신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녀들을 눈으로 애무하고, 때로는 손으로 애무하면서 키스하고 어루만졌으며, 자신의 기쁨을 위해 그녀들을 그렸다. 그는 그것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이해하는 노력이라고 하였다. 즉 그는 낮에는 그녀들을 그렸고, 밤에는 그녀들을 품에 안았다. 그의 여자 누드 작품의 중심축은 그와 모델들 간의 섹스였던 것이다." 로댕이 카미유를 유혹할 때도 이러했다. 카미유는 로댕과 동거중인 로즈를 신경 쓰며 이야기하면 로댕은 "너하고 정식으로 결혼할 거야" 라는 약속을 하였다. 하지만 로댕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다른 모델들과의 난잡한 관계를 이어갔다. 로댕은 예술적 영감을 얻는다는 구실로 수많은 여인을 농락했고, 카미유도 로댕에게는 그런 여자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자 1890년 결국 카미유는 그에게 결별을 선언하였다(p. 175).
뱀의 독이 사람 몸에 들어오면 어떤 변화와 고통이 일어난다는 것을(p. 214)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클레오파트라가 자신의 죽음에 뱀독을 이용했다는 것은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 나토 의과대학의 비오 그란 마레 박사는 독사설이나 핀에 의한 독액 설을 부정하였다. 또 여왕의 명에 의해 방문을 꼭 잠갔다는 사실을 통해 볼 때 클레오파트라는 탄이 연소될 때 발생되는 유독가스의 효능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안토니우스의 장례를 구실로 탄과 이를 태울 도구를 쉽게 방에 들여올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사망 상황을 묘사한 글에서 여왕은 침대 위에, 한 몸종은 발밑에 그리고 또 다른 몸종(p. 215)은 방문을 향해 쓰러져 죽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일산화탄소 중독을 연상하게 한다. 이러한 상황의 장면은 프랑스의 화가 릭싱의 〈클레오파트라의 죽음〉(1874)이라는 작품에 마레 박사의 설명이 실감나게 표현되고 있다. 이 작품과 마레 박사의 의견은 법의학적으로도 수긍이 간다. 여러 명의 사람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는 경우 그대로 누워 있는 사람도 있지만, 무의식중에 살기 위해 문 쪽을 향해 기어가다 죽어가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사망자가 여러 방향의 체위를 취하고 죽는 것이 집단으로 연탄가스에 중독사했을 때 보이는 특이한 현상인데, 이러한 특징적인 상황이 화가 릭싱의 그림에 잘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클레오파트라와 두 몸종의 동시 죽음을 보았을 때 일산화탄소를 이용하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생존 시 여왕은 향료를 매일같이 사용하여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향기가 풍기는 향의 애호가로, 평생을 향기 속에 살아왔다. 그러나 그녀는 최후에 이르러 어떤 냄새도 나지 않는 무취의 일산화탄소를 맡으며 그 속으로 사라졌다(p. 217).
차이콥스키의 죽음에 대한 의문
차이콥스키의 사인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그가 콜레라로 사망하였다고 러시아 정부는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즉 차이콥스키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비창〉의 초연을 지휘하고 나서 9일째 되는 날인 1893년 11월 6일에 사망하였다. 사인이 된 콜레라에 감염된 것은 11월 1일로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호텔에서 끓이지 않은 물을 그대로 마신 것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1세기 동안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였지만,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자살설이 제기되었다. 자살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차이콥스키가 정성을 다하여 작곡했다고 자랑하는 〈비창〉에 대한 일반의 반응이 그리 시원(p. 221)치 않은 것에 참담함을 느껴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인에 대해 일종의 강요된 자살이라는 설이 제기되었다. 차이콥스키 박물관의 기록 보관소에 근무하던 알렉산드라 오르로와라는 여직원의 증언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녀는 1940년 차이콥스키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행사를 준비하다가 한 통의 편지를 발견 하였다. 주치의가 차이콥스키의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였는데, 그 내용이 매우 세밀하였다. 이와 더불어 또 하나 의심되는 점은 콜레라는 전염병인데 기록에 의하면 차이콥스키는 격리되지도 않았고 면회도 자유로웠다. 그래서 오르로와 여사는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이에 대해 알아봤는 데, 차이콥스키는 그 당시 권세가였던 스텐보크 훼르모 공작의 조카와 동성애 관계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관계를 알게 된 공작은 황제에게 차이콥스키를 처벌해줄 것을 요청했고, 황제는 당시 검찰 부총장이던 니콜라이 보리소비치 야코비에게 그의 처벌을 명령하였다는 것이다. 그 당시 사회에서 동성애는 신에 대한 모독이며, 최대의 파렴치범으로 여겨져 극형에 처하거나 시베리아로 유배를 보냈다.
야코비 부총장은 차이콥스키와는 법률학교 동기생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모스크바에 있던 동기생(대법관, 판사, 변호사 등)들이 모여 상의한 끝에 불명예스러운 사형이나 시베리아 유형보다는 명예재판을 열어 그가 수용한다면 비밀리에 사약을 내리기로 한다. 차이콥스키는 이러한 제안에 응했고, 순순히 사약을 받았다(p. 222). 그런데 차이콥스키가 입원 당시의 차트를 보면 콜레라의 중요한 증상 중 하나인 쌀뜨물 같은 설사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기록을 통해 필자는 오르로와 여사의 수기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사망한 후에 조문객들이 줄을 지었는데, 조문객들은 그의 손이나 이마에 입맞춤하였다는 신문보도가 있었다. 이를 보면 그의 사망이 콜레라가 아니라는 유력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명예재판 후에 사약설이 맞는데 과연 독극물 중에서 복용 하면 쌀뜨물 같은 설사를 하는 증상을 보이는 독물이 있는지이다. 법의학적 기록에는 극량에 달하는 비소를 복용하는 경우 콜레라와 같은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러시아 정부가 차이콥스키의 사인을 발표하기에 앞서 상당한 검토와 연구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즉 콜레라로 발표해도 될 만한 증거를 구비한 후 사약을 내린 것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p. 223).
우리나라에도 유디트와 같이 적장을 술로 유인해 살해한 의녀로는 주논개가 있다. 논개에 대 한 기록은 광해군 때인 1621년 유몽인이 저술한 《어우야담》에 전해지는데, "진주의 관기이며 왜장을 안고 순국했다"는 간단한 기록만 남아 있다. 그 때문에 논개는 기생이었다고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실은 논개는 몰락한 양반 가문의 여식으로 아버지를 일찍 여읜 채 어머니와 함께 숙부에게 의탁하게 된다. 숙부는 이웃 마을의 김동헌이라는 사람에게 논개를 민며느리로 팔아버린다. 이를 알게 된 논개 모녀는 외가로 피신했지만, 잡혀 관아에 넘겨져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현감 최경회에 의해 무죄 방면된다. 어린 나이에도 너무나 고마운 처사에 감동한 논개는 자원해서 최 현감의 시중을 들게 된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되고, 전라도 지역에서는 고경명이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다. 이에 최 현감이 의병장으로 나서 싸우게 되었다. 최 연감은 의병을 이끌고 진주성을 지원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이 공로로 1593년에는 경상우병사로 임명되었고, 진주성에서(p. 253)의 전투를 지휘하였다. 그러나 왜군의 공세에 밀려 불리해졌고 수많은 군관민이 전사 또는 자결함으로써 진주성은 함락되었다. 그리고 최경회는 남강에 투신하여 자결하고 만다.
논개는 원수를 갚기 위해 적장을 살해할 것을 결심하고 기회만 엿보던 중 왜군이 진주성 함락을 자축하기 위해 촉석루에서 주연을 연다는 소문에 기생으로 위장하여 참석하게 된다. 논개는 적의 선봉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지목하여 술을 권하고 교태를 부리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그리고 동료 기생들에게 반지와 가락지를 달라고 하여 열 손가락에 모두 끼고는 촉석루 아래로 내려가 물위에 솟아 있는 평평한 바위 위에서 춤을 추며 게야무라에게 오라고 손짓한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바위로 건너가 논개를 끌어안았다. 논개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적장의 몸을 끌어안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를 보고 있던 왜병들은 소리 지르며 환호했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속으로 들어간 게야무라와 논개는 영영 떠오르지 못하고, 세차게 흐르는 남강의 물결 속으로 떠내려가고 말았다. 훗날 이 바위를 의암이라 불렀으며, 1956년에는 '논개사당'을 건립했다. 장수군에서는 매년 9월 9일 논개를 추모하기 위해 논개제전을 열고 있다. 두 사람의 의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한 굳은 결심으로 적장을 유(p. 254)인하여 살해하였다. 그러나 여인으로써 과연 가능하겠는가에 대한 의문을 낳게 한다. 아무리 술에 만취되었다 할지라도 적장의 목이 그렇게 쉽게 날아갈 수 있을까? 틴토레토와 젠틸레스키의 그림처럼 유디트 혼자서가 아니라 하녀가 도왔기 때문에 가능할 수도 있다. 논개의 경우를 보면 가녀린 여인의 팔로 적장의 몸을 꽉 껴안았다고 해도, 과연 힘이 센 남자가 뿌리칠 수 없을까? 이를 예측한 논개는 동료 기생들의 가락지와 반지를 받아 열 손가락에 모두 끼었다. 일단 손깎지를 끼면 자물쇠처럼 물리게 하여 풀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법의학적인 조언을 하면 사람이 죽을 때 극도로 긴장하고, 어떤 근육에 힘을 강하게 주고 죽으면 그 근육에 죽음과 동시에 강직이 일어난다. 이것을 즉시성 시강이라고 한다. 논개의 경우에도 즉시성 시강이 강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아무리 힘이 센 남자라 할지라도 꼼짝하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p.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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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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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10】 성품과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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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과 문제
사람마다 성품이 다릅니다.
어떤 성품을 가지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타고난 성품과 기질이 다릅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품의 열매입니다.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품이 나쁘고 과격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온유와 양선은 좋은 성품입니다.
성품이 부드러우면 관계가 잘 되고 갈등이 적어집니다.
성품은 타고나면서 다듬어집니다.
고난을 통해 성품이 다듬어지게 됩니다.
성품의 변화가 최고의 기적입니다.
성령 받고 은혜받아야 성품이 변화됩니다.
모세는 성품과 기질이 고집스럽고 강했는데 40년 광야 연단 받은 후 성품이 온유하고 부드러워졌습니다.
민수기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성품이 온유하고 겸손한 자는 문제를 만들지 않고 해결합니다.
사도행전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는 착한 사람, 착한 성품으로 격려자로 쓰임 받았습니다.
성품이 선해야 관계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성품이 악하고, 강하고, 교만한 자는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다가 큰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성품이 악하고, 과격하고, 급하면 함부로 말하고 폭언하게 되어 공동체에 큰 문제가 생깁니다.
한 번 쏟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 절제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언어는 성품과 인격의 열매입니다.
폭언하고 함부로 행동하면 문제가 생기고 후회하게 됩니다.
성품이 온유한 자는 인내하고 누구와도 다투거나 부딪치지 않습니다.
부딪치면 문제가 생기고 관계가 깨지며 후회하게 됩니다.
성품이 삶의 능력입니다.
성품이 좋은 자는 문제를 만들지 않고 덮어주고 해결합니다.
성품은 인격입니다.
사람이 되고 사역해야 합니다.
성품이 사납고 악하여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면 상처를 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됩니다.
리더의 성품이 중요합니다.
성품이 선해야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은 온유와 겸손인데 닮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태복음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이삭은 온유한 성품으로 다투지 않고 양보함으로 존경받게 됐습니다.
외유내강의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온유한 성품으로 변화됐습니다.
나쁜 기질과 성품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온유한 성품이 최고의 성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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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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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e Covenant Seminary(글로브언약신학교)교수봉사자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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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최상의 선교 모델: 선교 현지 ‘교수요원' 배출
미국 Atlanta에 소재한 Globe Covenant Seminary(글로브언약신학교)는 언약적 개혁주의 신학에 기초하여 초교파적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본교는 최근 무슬림 지역과 힌두권 지역에서 신학교 사역을 통해 ‘교육과 선교'를 통합하는 교육선교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Fiji 지역을 중심으로 석·박사 온라인 학위 과정을 새롭게 개설하였습니다.
선교지에서 신학 교육을 통해 ‘교수요원'을 양성하고, 이들이 다시 현지 신학교를 세워 현지인을 교육하도록 하는 선교 방식은, 현대 선교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서 세계선교학 교수협회 (Association of Professors of Mission)에서도 핵심적인 선교 전략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교회가 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선교 역량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더 중요한 관심은 박해와 환난 가운데서도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현지인들의 믿음과 선교적 열정을 어떻게 세계 선교 네트워크와 연결하여, 예수님의 열두 제자 공동체와 같은 선교 공동체를 세워 가느냐에 있습니다.
본 프로젝트는 무슬림 종주국인 Pakistan과 힌두권 지역 인도뿐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그리고 서구권 교회에도 언약신학에 기초한 개혁과 부흥의 관점에서 긴급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다양한 영적 문제와 사회적 이슈로 침체된 오늘날 세계 선교에 새로운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언약 사상에 뿌리를 둔 선교학은, 다양한 종교권의 사람들을 창조주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누리게 하는 새로운 선교 전략일 뿐 아니라, 복음•교회•평신도 신학과 사역•선교를 유기적으로 통합함으로써 모든 성도가 하나님 나라의 제자로서 지상 명령을 수행하도록 하는 교회 개혁과 부흥 운동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비전 가운데, 글로브언약신학교는 온라인 석·박사 과정에서 강의를 통해 재능기부로 섬겨 주실 교수님들과, 이 교육선교 사역에 함께 동참하실 목회자 여러분을 모시고자 합니다(강의를 담당하시는 교수님께는 소정의 강의 사례비가 지급됩니다.)
모집 안내
1. 지원 자격
• 언약적 개혁주의 신학에 투철하신 분
• Th.D. 또는 Ph.D. 소지자
2. 담당 과정
• 한국어 과정/ 영어 과정
3. 전공 분야
구약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선교학
4. 제출 서류
• 이력서 1부
이력서는 2026년 3월 15일까지 academics@gcseminary.us 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서류 접수 후 개별적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통화를 원하는 분, 카톡ID mylove2500)
또한 교육선교 사역에 관심 있는 목회자 및 사역자께서는 자기소개서를 간략히 작성하여 함께 보내 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점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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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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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교총, 3.1운동 제107주년 한국교회기념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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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 김정석 목사)가 주최한 3.1운동 제107주년 한국교회기념예배가 2월 25일 오전 11시 광림교회에서 있었다.
대표회장,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김정석 감독이 ‘삼일운동과 기독교’란 제목으로 “첫째, 삼일운동은 신앙의 운동이었다. 둘째, 삼일운동은 하나님께 소망을 둔 운동이었다. 셋째, 삼일운동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운동이었다.”라고 설교했다.
또한 한교총은 3. 1운동 107주년 한국교회 성명서를 발표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107년 전,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자주독립을 향한 선열들의 뜨거운 외침은 생명을 갈망하는 함성이었으며, 하나님이 주신 존엄을 되찾으려는 신앙의 선언이었다. 이는 총칼이 아닌 만세로, 폭력이 아닌 평화로 맞선 비폭력 항거였으며, 오늘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한 역사적 결단이었다. 이에 한국교회총연합은 3.1운동 107주년 한국교회 기념예배를 드리며 다음과 같이 성명한다.
1. 한국교회는 진리의 자유를 수호하며 정의(正義) 사회를 세워갈 것이다.
헌법이 보장한 양심과 종교의 자유 위에서 기독 사학의 자율성과 복음의 진리를 굳게 세우고 성경적 가치와 정통 윤리를 훼손하는 입법 시도를 단호히 거부하며, 신앙의 자유를 수호하는 정의 사회를 실현할 것이다.
2. 한국교회는 국민의 생존(生存)을 위한 파수꾼이 될 것이다.
선열들이 피로써 지켜낸 민족의 미래가 저출생과 자살, 중독과 낙태로 위협받는 현실 앞에서, 국민의 생존을 해치는 구조와 문화에 단호히 맞설 것이다.
3. 한국교회는 인도(人道)주의 정신으로 창조 세계를 보전할 것이다.
자연을 인간 중심의 자원으로만 인식해 온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에 대한 인도적 요청에 응답하며,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창조 세계의 회복을 위한 공적 책임을 다할 것이다.
4. 한국교회는 민족의 존영(尊榮)을 위해 힘쓸 것이다.
환대와 화해의 복음으로 남북 간 국토와 문화의 단절을 넘어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민족의 존영과 한반도의 복음적 평화통일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5. 한국교회는 근대문화유산을 미래 가치로 계승(繼承)하여 공적 책임을 다할 것이다.
정의(正義), 생존(生存), 인도(人道), 존영(尊榮)의 가치로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초석을 놓은 신앙 선배들의 유산을 보존하고, 미래 세대의 가치관 속에 살아 숨 쉬는 공공적 자산으로 계승해 나갈 것이다.
앞서 1부 예배는 공동대표회장,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총회장 정정인 목사의 인도로 공동대표회장,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 홍사진 목사가 기념사,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 안성우 목사가 기도,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총회장 이상규 목사가 슥 9:9~12을 봉독, 광림교회 연합성가대가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Giuseppe Verdi)’을 찬양했다. 대표회장,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김정석 감독이 설교 후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총회장 김성규 목사가 축도하고, 본회 총무, 기독교한국침례회 총무 김일엽 목사가 광고 및 내빈소개했다.
2부 기념행사는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장 최인수 목사의 사회로 민족대표33인중 故 연당 이갑성 집사(남대문교회)의 3.1절독립선언문 낭독 영상 시청 후, 대표회장 김정석 감독이 인사말했다.
그리스도의교회교역자협의회 총회장 정기원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보수) 총회장 피용희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보수개혁) 총회장 김명희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동신) 총회장 가성현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한영) 총회장 우상용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합총) 총회장 오표자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고려) 총회장 허호성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예정) 총회장 박광철 목사가 특별기도했다.
이어 대표회장이 민족대표 33인중 기독교인 후손에게 영예패를 전달했다.
김병조 목사 손자 김 혁 님, 양전백 목사 증손 양경오 님, 이명룡 장로 증손 이호준 님, 이승훈 장로 고손 이기대 님, 이갑성 집사 손자 이재현 님
끝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개신) 총회장 신용현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호헌) 총회장 안상운 목사,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 총회감독 최형영 목사가 성명서를 발표 후 다같이 일어나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선목) 총회장 김국경 목사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 삼창 후 애국가를 제창하고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장 정동균 목사의 폐회기도로 모든 순서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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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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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목사 선교1】 88 올림픽과 외국인 노동자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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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올림픽과 외국인 노동자 선교
1988년은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개최함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국민의 응원의 함성과 성공적 개최는 국민의 사기를 높여 주었고 세계도 새롭게 주목하게 되었다. 올림픽이 끝난 이후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Korean dream을 꿈꾸며 몰려 오기 시작했다. 당시의 한국의 경제 상황은 좋은 상황이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근로자가 부족한 상태였다. 우리나라의 경제상황과 경제적인 부를 얻고자 하는 세계인들의 수요가 맞물려서 외국인노동자들이 한국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다수의 외국인들 중에 중국동포들이 많았다. 당시 서울역 근처는 한약을 판매하기 위해서 모여든 중국인들이 가득 메웠다. 그 이후 중국인들만 아니라 동남아의 여러 나라, 남미 등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외국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몰려든 외국인들에게 많은 사회단체에서 관심을 갖고 돕기 시작했다. 이 때에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교회에 도움을 요청하며 몰려들기 시작했다. 교회를 찾은 외국인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교회가 돌보기 시작했다. 의료진료, 한글공부, 상담, 이미용 봉사 등 다양한 사역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많은 외국인노동자들은 관광 비자를 가지고 들어와서 일하는 불법자의 신분이었다. 그래서 일부 비판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불법자들을 보호하면서 돕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도와야 한다는 여러 교회들이 있었고 헌신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레위기 19:33-34 “ 너희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이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이 말씀에 의지해서 많은 교회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섬기기 시작했다.
본인도 선교사로 헌신하고 훈련을 받는 중에 부목사로 부천의 천산중앙교회에서 사역을 했다. 이 때에 교회 근처의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주일에 교회를 찾아옴으로서 이들과 만나게 되어서 외국인노동자 선교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중국동포가 약을 팔기 위해서 찾아와서 만나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필리핀 노동자들. 그 후에는 몽골인 노동자들, 남미의 페루인 노동자들이 찾아와서 만나게 되었다. 당시에 천산중앙교회는 이들을 가족처럼 환영하고 모든 성도들이 이들을 맞이했다. 교회의 중강당을 외국인 노동자의 예배공간으로 만들었다. 언어권별로 칸을 막아서 몽골어 권, 영어권. 스페인어 권으로 구분하고 동시 통역사들을 세우고 11시 예배에 한국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예배 후에는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식사 후에는 언어권별로 모임을 갖게 되었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함께 식사하고 교제하며 성도들이 한 가족처럼 대하니까 교회는 은혜로운 교회, 사랑이 넘치고 부흥하는 교회가 되었다.
“ 일어나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행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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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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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57】 글을 쓰자...그것도 늘 글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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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다. 나는 좋은 글을 좋아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책들 가운데 좋은 글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몸을 글쓰는 몸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매일 조금이라도 쓰자!
프롤로그
머리가 아닌, 몸으로 쓰는 글쓰기
이 책을 기획하면서 처음 떠올린 제목은 '무적의 글쓰기'였습니다. 보통 '무적'은 '매우 강해 겨를 만한 적수가 없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더 이상 대적할 대상이 없는 사람에게 쓰죠. 무시무시한 말입니다. 만나는 적마다 다 무찌르니까요. 요즘 말로 '원톱'이 되는 글쓰기랄까요. 저는 다른 뜻으로 새겨보았습니다. 한자를 가만히 쳐다보면 다르게 읽힙니다. '적이 없다' 적을 만들지 않는 글. 있던 적도 친구로 만드는 글. 어떤가요? 당신에게도 적이 있을 겁니다('척진 사람' 정도로 합시다). 말을 섞는 게 고통스럽고 마주치기만 해도 마음이 불편해지죠. 되도록 한자리에 앉지 않으려 합니다. 살면서 그런 사람이 점점 늘면 힘듭니다. 내색은 안 하지만 글을 쓰는 많은 사람이 독자를 적으로 생각합니다. 설득하거나 굴복시켜야 할 대상으로요. 어리석으면 가르치려 들고, 강하면 논파해서 기어코 이겨먹으려 하죠. 글로(p. 4) 상대를 제압하고 내 주장을 받아들이게끔 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상대를 제압하는 게 아니라 상대와 공존하고 싶다는 메시지입니다. 적도 친구로 만들고 싶기 때문에 치밀어 오르는 말을 눌러 천천히 글로 옮기는 것입니다. 쓰기란 상대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내 쪽으로 당기는 일입니다. '당신이 틀렸어!'라고 말을 할 때도 종국에는 '그러니 제발 나와 함께하자'고 하는 겁니다. 현실의 모순과 갈등에 눈감자는 말이 아닙니다. 친구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거죠.. 성취하기 불가능하지만 추구해야 할 자세입니다.
무적이란 말엔 무적(無籍)이란 한자어도 있습니다. 소속이 없다, 달리 말하면 '고향이 없다' '근거가 없다'입니다. 글 쓰기는 한 편의 글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고체로 굳어버리지 않고 움직임 속에서 생각의 흐름을 잠시 움켜쥐었다가 이내 놓아주는 거죠. 글을 하나 썼다면 잠깐 안도했다가 이내 그 글에서 떠나야 합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글쓰기. 고향이 없으니 계속 떠나는 거죠. 쓰고, 떠나고, 다시 쓰고, 다시 떠나고. 같은 글 감으로 글을 써도 쓸 때마다 달라집니다. 계속 움직여야 합니다.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그 자리에 눌러앉지 않고, 표표히 떠 나야 합니다.
무적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반복을 통해 '쓰는 몸'을 만들어(p. 5)야 합니다. 반복은 자신의 몸속에 이미 들어와 있었지만 무심히 흘려보냈던 세계의 질서와 타인의 흔적을 찾아내고 조심스럽게 끄집어내어 낼 수 있는 감각을 갖춘 몸을 만들어 줍니다. 그 몸은 자신을 '쓰는 몸'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꾸준히 앉아 있어야 만들어집니다.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기 위해 막막함 속을 헤엄치면서 끝내 문장 하나를 써냅니다. 그렇게 자기 삶을 새롭게 해석한 문장을 바느질하듯이 한 땀씩 이어갑니다. 무적의 글쓰기는 자신을 '쓰는 몸'으로 탈바꿈하여 삶을 이어가 보려는 사람의 글쓰기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쓰는 몸으로 살기' 로 바꾸었습니다. 우리 삶이 그러하듯이 쓰는 몸은 끊임없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닌, 몸으로 쓰는 글 쓰기를 추구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살이 보이고 좌충우돌하는 삶이 녹아 있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p. 6).
좋은 글은 어떤 글인가
글쓰기는 내 얘기가 독자에게 가닿기를 간절히 바라는 행위입니다. '당신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으니 잠깐 시간을 내어 주세요.' 글은 독자와 공명하고 싶을 때 하는 작업입니다. 독자(p. 16)의 머리끄덩이를 낚아채거나 멱살을 잡으려는 게 아닙니다. 물론 그 공명의 성격이나 진폭에 따라 공감을 얻기도 하고 마음에 격동을 일으키기도 하며 결정적인 각성의 계기를 선물하기도 합니다. 다만 그건 오롯이 독자의 몫입니다. 글쓴이는 오직 겸손한 자세로 독자와 공명하려고 시도할 뿐입니다.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자세를 낮추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곡진하게, 간절하게 말해야 합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자기 얘기만 퍼붓는 사람은 거북합니다. 끝까지 듣기도 어렵죠.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 글을 읽어줄 사람의 상태를 살피면서 써야 합니다. 좋은 글은 '그 글의 주인이 보고 싶어지는 글'입니다. 백과사전이나 요리법처럼 어떤 정보를 알려주는 글을 보고 글쓴이가 궁금하지는 않잖아요. 촘촘한 논리나 멋진 표현이 아닌, 글 속에 글쓴이의 목소리와 체온이 담긴 글을 만나면 그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지죠. 살아오면서 한 가지 일만 했다면 어떻게 그리 뚝심 있게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며 버텨왔는지, 여러 우여곡 절을 겪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리 다양한 경험 속에서 자신을 지켜왔는지, 뭘 할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이라면 그 방황의 냄새와 깊이가 궁금합니다. 확고한 글보다는 흔들리는 글, 배회하고 찾아 헤매는 글, 삶의 두께가 느껴지는 글을 쓴 사람이 보고 싶더군요. 글의 주인이 보고 싶어지는 글은 그 글이 나에게 와(p. 17) 닿았다는 뜻입니다. 글을 쓰는 이유도 누군가에게 가닿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겠고요(p. 18).
힘을 빼면 생기는 일
글의 주인이 보고 싶어지는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몸에 힘을 빼야 합니다. 젠체하며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핏대를 올리는 사람은 가급적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글에도 그런 게 다 담깁니다. 그런 글은 내용이나 표현이 하나같이 진부하고 자기주(p. 18)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운동에서 코치가 선수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힘 빼'라는 말입니다. 국민타자 이승엽 선수의 타격 자세를 보면 손과 허리에 힘을 빼고 바람을 가르듯이 방망이를 휘두릅니다. 축구공을 정확하게 멀리 차려면 발목에 힘을 빼야 합니다. 농구에서도 손목에 힘을 빼야 슛이 부드럽게 잘 들어갑니다. 힘을 바짝 줘야 할 것 같은 역도나 유도에서도 힘을 빼라고 합니다. 힘을 빼야 상대방의 움직임을 살피는 여유가 생기고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빠르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글도 마찬가지 입니다. 힘을 뺀 글이 좋습니다. 힘을 빼려면 글 쓰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느끼려고 하는 게 좋습니다. 상대를 의식한다고 해도 좋습니다.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내 글이 상대방에게 가닿으려면 상대방의 기운을 느껴야 합니다. 물론 상상입니다. 그걸 어떻게 하냐고요? 글쎄요, 저도 어렵습니다. 눈앞에는 공책이나 모니터밖에 없는데,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상대의 기운을 느낀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그래야 합니다. 글쓰기는 두 사람의 작업입니다. '둘의 경험'이랄까요. 작가와 독자의 대화. 누군가 내 얘기를 듣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쓰는 겁니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마(p. 19)구 내뿜는 게 아니라, 독자의 기운을 느끼면서 그 독자에게 내 얘기를 간절하게 풀어내야 합니다. 그러면 독자는 나의 건너편 자리에 앉아 얘기를 듣습니다. 이런저런 말도 하고요. "좀 더 자세히 말해봐" "그 얘긴 좀 긴걸 그건 말이 좀 안 된다." "다음 얘기가 궁금하군!" 어떤 글쓰기 책에서는 먼저 쓰고 난 다음에, 내 안에 있는 독자를 불러내어 이것저것 검토를 맡기라고 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처음부터 독자가 곁에 있는 게 좋더군요. 상대의 등에 비수를 꽂으려고 몰래 '칼을 갈았다'는 느낌을 주는 글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그런 글쓰기가 아닙니다. 상대를 굴복시킬 것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제대로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는 게 좋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존댓말로 쓰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 것도 그 독자였고요(p. 20).
1945년 연합군은 전쟁 포로와 유대인을 가둬둔 독일의 베르겐 벨젠 강제수용소를 해방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이들에게 어떤 구호품을 보내겠습니까? 먹고 입을 게 절실했을 테니, 빵이나 담요를 보냈겠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구호품이 도착했습니다. 예상과 달리 엄청난 양의 립스틱이었습니다. 어느 영국군 장교는 이 기이한 장면을 보고 일기장에 '천재적인 발상'이었다고 적었습니다. 굶주림에 몸을 못 가누면서도 입술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는 수감자들은 더 이상 팔에 문신을 새긴 숫자에 불과하지 않고 자기 외모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본 거죠. 립스틱이(p. 34) 이들에게 다시 인간성을 되돌려줬다는 겁니다. 인간다움은 당장의 허기를 채우는 것을 넘어서나 봅니다. 이 예상 밖의 사건은 우리가 글을 쓸 때 가져야 할 핵심 목표인 '반전'에 대해 알려줍니다. 우리가 아는 도덕이나 상식은 허위입니다. 반발심이 생기더라도 글을 쓰기로 작정했다면 일단 거기서 출발하는 게 좋습니다. 진실은 도덕이나 상식과 거리가 멀고, 가끔은 도덕과 상식을 배신하기조차 합니다(배고픈 자에게 립스틱이라니!)(p. 35).
반전의 크기에 차이가 있겠지만, 모든 글은 반전을 노려야 합니다. 반전이 없는 글은? 쓰지 않는 게 낫습니다. 반전은 다짜고짜 막무가내로 반대하고 뒤집는 게 아닙니다. 반전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것입니다. 통념을 뒤집고 관습을 혁파합니다. 기존의 가치와 관점을 뒤바꾸는 겁니다. 확신을 연기하는 것입니다. 당연하다는 섣부른 판단을 미루는 겁니다. 움직일 수 없는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p. 38).
강약이 뒤바뀐 말을 위해
반전을 모색하려면 진리(참/거짓)보다는 개연성에 기대는 게 좋습니다. 개연성에 기대는 것은 '그렇게 볼 수도 있지'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 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너그럽게 허용 하는 자세입니다. 예측 가능함을 어길 때 반전이 만들어집니다. 맞는 말, 똑 떨어지는 말, 진리를 담은 말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말, 힘의 강약이 뒤바뀐 말을 하려고 합니다.
기존의 상식에 반하는 발견, 도덕을 거역하는 글이 좋은 글 입니다. '나쁜 시만이 가슴에 남는다'고 한 김수영의 말처럼 '나쁜 글'만이 가슴에 남습니다. 나쁜 글을 쓰려면 글감에 들러붙 어 있는 도덕과 상식이라는 나태한 먼지를 털어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독자의 허를 찌르지?' 반전, 글쓰기의 핵심입니다(p. 41).
글 쓰는 목적을 '순수하게' 가지기 바랍니다. 자랑과 연민, 이 두 가지 감정을 분출하는 걸 글 쓰는 목적으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내 진실에 다가가기. 내 이야기를 진솔하고 담백하게 쓰기. 글을 쓰는 것은 글을 써서 내가 다른 뭔가가 되려는 게 아니라,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려고 쓰는 것입니다(p. 58).
나만의 문체를 찾는 법
이렇듯 번역은 수많은 후보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뜻입니다. '엄마가 죽었다'라는 문장만이 'My mother died'라는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생각과 글 사이에 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받아 적지 '말아야'합니다. 도리어 틈을 더 많이 벌려야 합니다. 특히 머릿속에서 떠오른 생각은 일상의 경험과 직접 연결돼 있습니다. 경험과 직접 연결된 말, 머릿속에 가장 빠르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말, 이게 글쓰기의 독입니다. 경험과 연결된 언어는 생활언어에 속합니다. 절경을 보고 '와, 멋지다', 무례한 사람을 만났을 때 '열 받네', 벽에 머리를 부딪혔을 때 '아, 아파라', 피곤할 때 '아, 졸려' 이런 것들이죠. 그게 경험을 가장 잘 나타내는 현실적 감각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감각은 언어라기보다는 감정에 가깝습니다. 생각과 글은 일대일 관계가 아닙니다. 경험과 글도 일대일 관계가 아닙니다. 'I don't know myself'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해서 곧바로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르겠다'라고 쓰고 만족해(p. 107) 하는 게 아니라, 멈칫하고 이를 어떤 '문장'으로 '번역'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게 나만의 문체를 고민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나는 내가 낯설다' '나는 내가 그립다' '내 속엔 수많은 타인이 앉아 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 따위의 문장을 떠올려야자 기만의 문체가 마련됩니다. 글을 여러 번 썼는데도 나만의 문체를 찾기 어려운 것은 매 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곧바로 썼기 때문 아닐까요. 멈춰서야 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번역하는 마음'으로, 다시 말해 '낯선 언어'로 바꾸려는 자세로 쓰지 않으면 나만의 문체를 찾기 어렵습니다. 문체에 대한 감각은 말에 대한 감각입니다. 말을 외국어처럼 쓰려고 해야 합니다. 술술 나오는 걸 과신하지 말고, 머뭇거리거나 더듬거리며 어렵게 나오는 말을 더 신뢰해야 합니다. 미처 나오지 않은 말을 갈망해야 합니다. 다행히(!) 생각에 비해 글은 느립니다. 되돌릴 수도 있습니다. 지우고 고치고 다시 쓸 수 있죠(p. 108).
간결한 마음이 명확한 문장을 만든다
이런 자세로 문장을 쓰다 보면 결과적으로 문장이 짧아집니다. 묘하게도 문장은 짧을수록 힘이 생깁니다. 그러니 '간결하게 쓰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좋은 습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간결하게 쓰려는 마음을 갖추면, 길어도 생각이 명확히 담기는 문장을 쓸 수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헤어hair가 있어야 헤어스타일도 있습니다. 머리카락이 없는데 머리모양을 갖추기는 어렵습니다. 옷장에 옷이 몇 벌 걸려 있어야 상황에 맞게 멋을 부릴 수 있죠. 어느 정도 글이 쌓여야 자기 문체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떤 문체를 갖고 있는가?'라고 묻기 위해서는 '자기 글'이라는 옷을 여러벌 쌓아놓아야 합니다(p. 111).
저는 학생들과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저자 나탈리 골드버그의 방식을 변형한 '15분 글쓰기'라는 걸 합니다(자유 글쓰기 free writing 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많이들 합니다). 온라인카페에 학생 이름을 하나씩 넣은 게시판을 만듭니다. 학생들은 아무 때나 들어와서 들어온 시간을 먼저 적고 글을 씁니다. 아무거나 아무렇게나 쓰되, 멈추지 말고 고치지 않고 쓰기. 어떤 학기에는 '글 쓰는 몸'을 만들어주겠다며 '100일 15분 글쓰기'를 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학생이 쓴 글의 내용, 형식, 분량 등 어떤 것에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읽어보지도 않을 테니 마음껏 쓰되, 15분 동안 글 한 편을 끝까지 쓰라고 합니다(p. 154).
글쓰기를 가로막는 건 생각
15분 글쓰기는 도움이 될까요?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15분 글쓰기는 우리가 글쓰기에 대해 가진 오해와 편견을 뛰어넘게 해줍니다. 글쓰기를 가로막는 건 다름 아닌 '생각'입니다. 정확 히는 '쓰지 않고 하는 생각'입니다. 저의 글쓰기는 늘 이런 흐름이었습니다. '글감 찾기→ 마구 쓰기→ 고쳐 쓰기. '마구 쓰기'의 핵심은 '끝까지 쓰기'입니다. 중간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어떻게든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글을 쓰면서 '글쓰기'와 '생각하기'를 의식적으로 구분합니다. 앞뒤를 나누어 따로따로 작업합니다. 글을 쓰려고 어떤 글감을 택하겠죠. 그런데 그 글감으로 뭘 써야 할지 '정확히' 모릅니다. 뿌옇습니다. 처음에는 글감이 '뿌옇다'는 걸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글감으로 뭔가 할 말이 있을 것 같아 택했지만, 아직 어떤 말을 할지 모르는 상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뿌연 글감을 선명하게 만드는 건 '생각'이 아니라 마구 써내려간 '글'입니다. 그 속에서 '새로움'이 나옵니다. 생각에서 새로움이 나오는 게 아니라 쓴 글 속에서 새로움이 나옵니다. 늘 그랬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쓰고 나서야, 정확하게는 '쓰면서' 글감에 대해 할 말이 선명해집니다(p. 155).
생각을 먼저 한다고 글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첫 문장을 쓰고 나면 그 문장 때문에 두 번째 문장이 튀어나오고, 두 번째 문장을 쓰고 나면 다음 문장이 이어집니다. 이어지지 않는다고 요? 조금 기다려 보세요. 그래도 안 나온다고요? 조금 더 기다려 보세요. 고요히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글이 스스로 글을 밀고 간다는 것을 믿고 끝까지 가보는 겁니다. 이 장의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고를 어떻게든 끝까지 씁니다. 그러곤 출력해서 큰 소리로 읽습니다. 읽으면서 두 가지를 살핍니다. 첫째, 내 글이 '하나의 결론'을 향해 흐르고 있는 가? 둘째, 읽으면서 '다른'(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가? 그걸 바탕으로 고칩니다. 하나의 결론을 향하지 않는 것들은 잘라냅니다. 무려 절반 가량이 잘려나갔습니다. 새롭게 떠오른 생각을 덧댑니다. 빨리 쓴 초고가 없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때로 쓰면서 선명해진다
글이 할 일과 생각이 할 일을 분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순서를 바꿔보기 바랍니다. 생각이 먼저가 아니라 글이 먼저입니다. 글이야말로 여러분의 삶에 형태를 부여합니다. 생각을 정 리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씀으로써 뿌옇게 뒤(p. 156)엉킨 생각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글이 할 일에 여러분의 생각이 간섭하지 않도록 하세요. 생각은 진부합니다. 그러니 글쓰기 실력을 높이려면 무조건 초고를 빨리 써야 합니다. 저는 뼈에 사무쳐야 글을 쓰는 '형편없는 말'이지만, 글은 저에게 그래도 버티며 자유와 사랑의 길을 가라고 가르쳐줬습니다(p. 157).
좋고 나쁨을 구분하지 말자
물론 수정을 거듭해 완성된 마지막 글이 앞의 글보다 나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맞춤법은 더 많이 들여다볼수록 나아지긴 합니다), 다음에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불안감과 기대 속에서 성큼 발을 내디딘 겁니다. 새로운 글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와 신뢰, 그 모험을 즐기는 겁니다. 한차례 쓰고 다시 쓰는 과정을 거듭하다 보면, 우리는 자신을 긍정하게 됩니다. '와, 내 속에 이런 면이 있구나. 다 버릴 수 있어' 버리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깁니다. 가고 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좋고 나쁨을 구분하지 않게 됩니다. 꽃은 사랑해도 지고, 잡초는 싫어해도 핀다는 삶의 이 치를 글쓰기에서 배웁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여러 답을 할 수 있겠지만, 저는 글쓰기를 통해 삶과 생명을 긍정하기 위해 쓴다고 생각합니다. 내 속에 여러 이야기가 있다는 것에 놀라고 내 삶의 우여곡절도 받아들일 만하다는 것에 다시 놀라기 위해(p. 167).
글의 정서가 느껴지도록
저는 글의 주제보다는 글의 정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이 따뜻한가 차가운가, 긍정적인가 비관적인가, 기쁜가 슬픈가, 경쾌한가 무거운가, 격정적인가 차분한가, 화려한가 담백한가 하는 느낌 말입니다. 그런 정서를 갖게 하려면, 독자를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됩니다. 머릿속에서 뭔가를 상상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식당에 가득 앉은 손님 가운데 눈에 띄는 사람 하나를 찾아 그 사람만 그리듯이 글도 그래야 합니다. 독자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려면 주제와 직접 관련 있는 캐릭터를 장면 속에 등장시켜야 합니다. 저처럼 평면적인 얼굴은 그림의 대상으로 포착되기 어렵습니다.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뜻입니다(p. 184). 군중 속에 있는 사람 중 하나일 뿐입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기억하는 사람과 사건이 다른 사람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죠. 영화의 주인공은 1명(또는 2명)이듯이, 글에서도 하나의 캐릭터가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나머지는 조연입니다. 조연은 주인공이 주제를 향해 달려가도록 돕는 역할을 하죠. 주제를 드러내지 못하는 건 과감히 지우거나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글감을 여러 개 떠올렸다고 그것들이 모두 같은 무게를 차지하면 안 됩니다. 나를 사로잡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보여줄 때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p. 185).
좋은 묘사는 대상을, 세계를, 현재를, 감정을 충실히 감각한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만끽하고 나면 친절하게 묘사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새겨지지 않아서 잘 못하는 겁니다. 마음에 새겨진 걸 풀어내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감각을 총동원해서 대상을 만끽해야 합니다. 어제보다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실체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됩니다(p. 197).
은유, 말의 세계를 짓는 망치
우리가 문학 하는 사람들에게 넘겨버린 게 바로 '은유를 만드는 능력'입니다. 그걸 다시 찾아와야 합니다. 문학 하는 사람의 전유물이라 생각해온 은유를 우리도 능수능란하게 쓸 수 있 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다르게 세상을 볼 수 있음을 알려줘야 합니다. '언어가 세계를 건설한다'는 말이 가장 잘 적용 되는 곳이 은유가 작동하는 공간입니다. 은유는 낡은 세계를 깨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세웁니다. 은유 없는 글쓰기는 맨주먹으로 못을 박는 것과 같습니다. 은유는 새로운 말의 세계를 건설하는 망치입니다(이것도 은유네요)(p.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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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