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14(금)
 
  • 김성은 목사(안양 샘병원 원목, 총신 목회상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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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l Dying(good life, good death) 15 - 죽음에 대한 다양한 관점 연구(5)

1. 죽음에 대한 다학제적 관점

1.5. 과학적 관점, 신(新)기계론적 인간관

- 셸리 케이건의 책, 를 중심으로

과학이 죽음을 정의하는 것에 근거를 둔 죽음에 대한 이해에 대해서 최윤배는 철학이나 종교와는 달리 과학이나 의학적 관점에서 죽음에 대한 정의는 아주 단순하며, ‘세속적 죽음 이해’ 혹은 ‘비종교인의 죽음 이해’라고 정의한다. 곧 과학에 있어서 죽음이란 유기체적 생명의 끝, 곧 삶의 끝이다. 그러므로 세속적 죽음 이해에서 죽음이란, 인간은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인격과 개체성의 소멸이다. 이러한 과학적 죽음의 이해, 곧 세속적 죽음의 이해는 자연주의적이며 유물론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리고 그 철학적 배경에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따르는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의 사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김영규는 자신의 책 <철학판타지, 알도와 떠도는 사원>에서 자세히 기술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해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17세기부터 서양 사람들은 ‘모든 실체는 정신과 물질, 몸과 마음으로 양분 된다’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의 이성을 신과 같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이성이 신의 창조의 법칙을 찾아냈기 때문에 신이 하던 일도 대신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곧 중세 천 년 동안 서양 사람들은 신중심주의 속에서 살았는데 과학혁명과 함께 합리주의가 등장하면서 신이 했던 모든 일을 인간 이성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중심주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생산주의 혹은 구성주의라고 하며, 세계는 전체가 나라의 기계와 같다는 기계론적 세계관과 따라서 인간이 그것들을 분해하고 조립할 수 도 있다는 환원주의, 그리고 같은 이유에서 인간이 세계의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생산주의 또는 구성주위가 근대라고 불리는 지난 300여 년 동안 서양을 지배해온 사상이었다. 아울러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이 사회도 이제 이성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인간이 신과 같은 이성을 가졌기 때문에 땅 위에 천국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으로 이것이 바로 계몽주의 시작인 것이다. 곧 계몽주의는 이성이라는 빛으로 중세 천 년 동안 신도 만들어주지 못했던 자유, 평등, 박애가 넘치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은 매우 성공적으로 나타났다. 1688년에 일어난 영국의 명예혁명과 1776년에 선포된 미국 버지니아 인권선언과 독립선언,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가 이미 주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와 같은 서구의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영향을 따라서 과학적 죽음관은 유물론적이며 자연주의적인 세계관에 기초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과학적 죽음관은 신이나 영혼을 인정하지 않으며, 오직 육체적으로 지금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인간(육체)만 중요하게 다룬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이러한 유물론적이며 자연주의적인 지식의 기초 위에서 인간의 과학적 죽음관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현재 예일대의 교수로 있으며 (2013)를 쓴 셸리 케이건이다. 죽음에 대한 접근법에서부터 그 동안의 방법과 다르게 논리와 이성으로 접근하여 설명을 하는 케이건의 죽음 이해는 이원론과 일원론으로 나누고 있는 것 같으나 결국에는 일원론을 주장한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신(新)기계론적 인간관 및 세계관에 입각한 죽음 이해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신기계론에 영향을 받은 철학적 사고를 통해 인간을 철두철미하게 기계로 간주하고 있다. 곧 이 책은 인간은 우주의 한 부분에 불과한 존재이며, 우주에는 물질이라는 하나의 실재만 있기 때문에 인간도 하나의 물질에 불과할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최윤배는 “그는 일원론을 다시 물리주의(physicalism)와 유심론(idealism)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일원론은 영혼 없는 육체나 또는 육체 없는 영혼을 가졌다고 주장하지만 결국에는 신기계론적 사상을 따라서 인간은 영혼이 없는 육체만의 존재라는 것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학주의에서 주장하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이해에 대해서 김균진은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 곧 인간관에 의존하는 것이다.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죽음에 대한 이해가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케이건은 인간에 대해 영어 단어에 기계를 의미하는 ‘machine’을 사용하는데, 정확하게는 “인간은 자유의지를 지닌, 곧 단지 로봇보다는 좀 더 나은 기계에 불과한 존재로 설명한다. 본래 기계와 자유의지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지만, 인간은 어떤 계기를 통해 자유의지라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게 된 기계”라는 것이다. 이러한 케이건이 이해하는 죽음의 본질과 철학적 배경의 핵심 내용에 대해서 곽혜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을 기계로 바라보는 케이건은 죽음을 점점 낡아져 부품을 교체하다가 결국 고장이 나서 아무 쓸모가 없어진 상태, 모든 기능이 마비되어 버린 상태, 그의 적나라한 표현대로 하자면 결국 컴퓨터가 고장이 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현상으로 인식한다.” 곧 케이건은 이렇게 주장한다. “인간의 육체는 살아서 움직이다가 파괴된다. 결국 이것이 죽음에 관한 전부다.” 그러므로 과학적 죽음 이해는 결국 인간의 인격과 개체성의 소멸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죽음을 신비로 보지 않고 과학으로 보는 것이 과학적 죽음 이해의 가장 큰 특징이다. 결국 이런 사상은 신의 존재마저도 부정하는 결과를 초해하는 것이다. 곧 케이건의 과학주의적인 죽음관에 의하면 신이란 결국 인간의 투사물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아울러 케이건은 인류 최대의 미스터리이자 심오한 철학적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질문, 곧 ‘사후의 삶은 존재하는가?’는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자기 모순적인 질문이며 착각에 불과한 질문이라고 강조하면서 대답은 ‘아니오’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죽음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가? 죽고 나서 여전히 생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도 역시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곧 죽은 다음에 살아간다는 것은 철저히 자기모순이므로 삶이 끝난 상태에서 삶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육체적 죽음 이후에 계속해서 남아 있는 영혼이라는 또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와 함께 악령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처럼 영혼과 사후의 삶, 부활을 부정하는 유물론적 죽음 이해를 일관되게 강조하면서 케이건은 죽음이 모든 것이 끝이라고 다음에 인용하는 여러 말을 통해서 확실하게 결론짓는다. "나는 죽음이 나의 진정한 종말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은 나의 끝이자 내 인격의 끝이다. 이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이다. 죽음은 그야말로 모든 것의 끝이다”(케이건. p 245). “인간의 육체는 살아서 움직이다가 파괴된다. 결국 이것이 죽음에 관한 전부다”(케이건, 266). “내가 알고 있는 한 내 육체가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케이건, 294). “내가 죽으면 더 이상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케이건, 295).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케이건과 그의 저서가 지닌 치명적인 문제는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부정하면서 인간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가치 추구를 배격한다는 점이다. 특히 신계론적 생명 이해의 패러다임 속에서 여러 형태의 유전자 조작이 시도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기계로 바라보는 신기계론적 인간 이해가 일반인들의 의식 세계에 영향을 미치면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어버려 영혼과 정신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고, 결국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영성을 상실함으로써 더욱더 물질적인 가치만 지향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오늘날 배아 복제 및 줄기세포연구, 유전자 조작이 지지를 받는 배경은 신기계죽의적 인간관의 세력 확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과학에 기반을 둔 세속적 죽음 이해의 관점에서 본다면 영혼이 없는 인간에게 구원의 길이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기계와 같은 물리적인 육체만 갖고 있는 인간이 죽음 이후에는 기계가 폐기되듯이 모든 것이 다 폐기되고 남은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에는 남는 것이 전혀 없는 상태, 곧 죽음은 존재의 소멸이기 때문에 구원이나 영생 그리고 부활과 같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과학적 죽음관을 따른다면 모든 인간들은 오직 이 땅에서만 과학과 물질의 혜택을 누리면서 각자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과학주의적 인간 이해와 죽음 이해는 인간의 가치가 오직 물질적인 것에만 부여됨으로 인해서 인간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가치 추구는 배격되고 결국에는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마저 파괴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케이건이 영혼의 존재와 사후의 삶, 부활 신앙을 부정함으로써 많은 그리스도인을 혼란스럽게 할 우려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죽음에 대한 올바른 생각과 태도는 삶에 대해서도 올바른 생각과 태도를 형성하게 한다. 이처럼 죽음에 대한 생각과 태도는 삶에 대한 생각과 태도와 직결되므로 죽음에 대해 바른 이해가 형성되도록 교회와 목회자들이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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