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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383】 전 법관의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나의 일상을 풍요롭게 채우는 건 어떤 의미인가, 다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사람과 사회는 바뀔 수 있는가. 자작나무에서 지리산으로, 도스토옙스키에서 몽테스키외로, 일상에서 재판까지. 호의는 사람을,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받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주라던 김장하 선생과의 추억, 법을 몰라 손해 보는 이들을 헤아리는 마음, ‘자살’을 시도했던 재소자가 ‘살자’는 다짐을 하게 만든 선물,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속절없이 흘리는 눈물, 그리고 건강한 법원과 사회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교보문고 계엄을 도모했던 윤석열을 단죄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쓴 책으로 가볍게 읽을만하다. 착한 사람을 위한 법 2001. 4. 22. 법 없이 살 사람 착한 사람을 일컬어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들 한다. 법의 강제 없이도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사람이란 뜻이리라. 과연 착한 사람에게 법은 필요 없는 것일까?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 나는 법이 어떠하다고 정의할 만큼 경력도 풍부하지도 않고 타고난 재주도 없지만, 1983년 법학을 전공한 이래 지금까지 18년을 법과 함께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그런 점에서 나는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착한 사람일수록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p. 19). 종종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가곤 하는데, 거기서 늘 하는 말이 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나에게 힘써달라고 전화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 나에게 법을 물어보라." 도대체, 전 재산과 다름없는 300만 원을 전세금으로 걸면서 그 집이 경매 중인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계약하는 사람을 누가 구제해줄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은 대개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야, 집주인을 사기죄로 고소했으니 수사 기관에 힘 좀 써서 집주인을 즉시 구속시켜 달라고 법조인에게 전화를 한다. 법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보장적 기능이다.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고 거기에 저촉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측면이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이 빛을 발한다. 다른 하나는 보호적 기능이다. 그러나 법의 이러한 보호적 기능도 경매 절차에서 배당 요구를 하는 임차인이나 노동자에게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유의하여야 한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은 초라하기만 하다. 착한 사람부터 법을 알자 판사로서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착한 사람은 법을 모르(p. 20)고, 법을 아는 사람은 착하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 사건일수록 해결이 어렵고, 착한 사람을 보호하고자 궁리를 해보나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착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고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법을 아는 사람에게 착하기를 요구할 것 인가? 불가능은 아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남는 방법은 착한 사람이 법을 아는 것이다. 그 길만이 법이 나쁜 사람을 지켜주는 도구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지름길이다(p. 21). 형사 재판 잘 받는 방법들 중 2006. 12. 19. 진술 거부권 행사 자기에게 불이익한 사실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 및 형사 소송법에서 보장된 피고인 및 피의자의 권리입니다. 따라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불이익한 사항에 대하여 질문을 받을 때 진술을 거부하면 되겠습니다. 괘씸죄가 걱정된다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되겠습니다. 이것이 모순되거나 불합리한 답변을 하는 것보다 유리합니다. 답변 방식 법정에서 판사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할 때는 결론을(p. 45) 먼저 말하고 이유를 나중에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판사는 질문을 통하여 사건의 윤곽을 파악 하려고 하므로, 판사에게 결론을 먼저 말함으로써 판사가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인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판사는 여러 각도에서 사건을 살피기 위하여 다양한 질문을 하는 것이므로, 설령 질문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 일지라도, 판사가 상대방의 편을 든다고 섣불리 생각하지 말고 정중하게 답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판사는 피고인의 진심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p. 46). 민사 재판 잘 받는 법 2007. 5. 17. 오늘 재판을 하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민사 재판 잘 받는 방법을 적어보았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소송을 하려면 어려운 일이 많으므로 형편이 허락한다면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였다고 해서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맡길 것이 아니라 수시로 소송 진행 정도를 확인하고 대응 방안을 함께 의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p. 61). 준비 서면을 간단명료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할 경우 법무사의 도움을 받거나 본인이 직접 준비 서면을 작성해야 할 터인데, 이때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준비 서면이라는 것은 당사자의 주장에 불과하므로 아무리 유리한 내용을 적어놓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인정받기가 어려운 반면, 불리한 내용은 별도의 증거가 없더라도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따라서 준비 서면은 간단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증거가 뒷받침되는 내용일 경우 명료하게 주장을 펼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준비 서면에 상대방을 비난하는 내용을 적을 경우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해롭다는 것입니다. 재판이라는 것이 당사자의 도덕성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고, 뚜렷한 증거 없이 상대 방을 비난할 때 판사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준비 서면에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하여 적어내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재판부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노고를 덜어주는 것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p. 62). 소송의 승패는 증거에 달려 있습니다 민사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흥분할 필요 없이 차분하게 증거를 수집하여 제출하는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증거로는 애초 사건이 있었을 때 작성된 서류, 특히 상대방이 서명 또는 날인한 서류가 가장 효력이 강하고, 그 다음으로 제3자가 작성한 서류가 효력이 강합니다. 증인의 증언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법정에서는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도 법정에서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실정이므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는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에 그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정 또는 화해를 권유받았을 때는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재판을 하다 보면 어느 당사자의 주장이, 설득력은 있으나 증거로 뒷받침 되지 않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법적 관점으로만 해결할 경우 어느 당사자에게 더 가혹하기도(p. 63)합니다. 이길 승산이 있어 보이나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법원은 당사자에게 조정 또는 화해를 권고하는 데,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조정 또는 화해 절차에서는 집행에 관한 내용을 반영할 수도 있으므로 이러한 점에서도 조정 또는 화해의 효용은 높습니다. 증인 신문을 할 때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정에 출석한 증인을 상대로 질문을 할 경우 "거짓말쟁이다" "양심도 없느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차분하게 증언의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상대방이 질문하는 내용을 (미리 받을 수 있습니다) 검토하여 허점을 정리했다가 법정에서 질문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람 턱없이 부족한 내용일 것입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소송을 잘해서 이길 사람이 이기는 재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p. 64). 문제가 터지고 나서 소송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은 문제가 터지기 전 검토를 충분히 하는 것입니다. 몇 천 만 원이 오고가는 계약을 체결할 때 변호사나 법을 잘 아는 사람에게 비용을 들여서라도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길게 볼 때 비용이 더 적게 듭니다(p. 65). 책을 읽는 이유 세 가지 2010. 2. 16. 책을 많이 읽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고전을 읽은 적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 보니 문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투리는 말을 안 하는 것으로 감출 수 있었지만 무지는 감출 방법이 없었다. '장 발장'이 《레미제라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읽었다(p. 108). 무경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판사가 되고 보니 사건을 이해하기엔 내 경험이 너무 좁고 얕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도대체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거액의 거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잡히면 처벌받을 게 뻔한 일을 왜 되풀이하는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경험을 늘리려고 해보니 이 또한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장 법관 윤리가 문제였다. 그래서 생각해본 것이 두 가지다. 지금은 언론사 사장이 된 어떤 분이 사법연수생이었던 나에게, 법조인이 되면 초등학교 동창생과 꾸준히 만나라고 당부했던 기억이 떠올라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1년에 몇 회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때로는 부부 동반으로) 만났으니 어느 정도는 실천한 셈이다. 두 번째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장르를 구분하지 말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어보자 하였던 결심이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다. 무소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었다. 남녀 공학 중학교 시절 소풍(p. 109)을 가서 선생님의 권유에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를 까먹어 끝을 맺지 못할 정도로. 그때 불렀던 노래가 남진의 〈님과 함께〉였다. 고등학교 때는 교복이 중고라서 반장을 하지 못했다. 대학교 가서는 사투리 때문에 남 앞에 나서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무슨 결정을 하려면 무척 어려웠다. 결정을 하고 나면 곧 후회를 하게 되고. 어느 날, 내성적인 이유가 소신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군대에서 정훈장교를 하게 되었고 정훈장교 하는 일이 장병 교육이다 보니 남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해소된 뒤라서 그런 결론을 더욱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앞서간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서로 맞추어보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 단단해져 소신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포함해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사족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이 누구와 만나고 무슨 책을 읽는지 말해달라."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p. 110). 혼돈의 시기에 그나마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친구와 책 덕분이라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 감회가 남다르다. 모든 분들에게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p. 111). 책을 고르는 기준 2010.6.26. 책을 어떻게 고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저자를 보고 고른다 어떤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면 그 저자가 쓴 책은 눈에 띄는 대로 사서 읽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면 고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 단 한 번》을 읽고 《축복》 《살아온 기적 살아 갈 기적》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는 식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저자는 다음과 같다. 신영복 교수, 정 민 교수, 유시민 전 장관, 소설가 김 훈, 오지 탐험가 한비야,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열하일기》 전문가 고미숙 박사(p. 124). 주제어를 보고 고른다 제목이나 문장을 검색하여 관심 있는 주제어가 들어간 책을 고른다. 요즘 즐겨 찾는 주제어는 다음과 같다. 정의, 소통, 성찰, 역사, 철학, 인생, 여행, 행복. 이런 기준으로 고른 책은 다음과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 《서양철학사》 《인도 여행》 《행복의 정복》 《무지개 원리》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등. 책 선택에 실패한 적은? 이런 기준으로 책을 골라 읽으면서 후회할 때가 제법 있다. 그러나 산 책은 다 읽는다. 재미가 없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책에 대하여는 독후감을 쓰지 않음으로써 복수를 한다. 블로그에 올린 책은 이중으로 검증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 지금껏 읽은 책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천 권 정도 될 것 같다. 책을 고르는 장소는?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여 고르는 경우가 많고 가끔 서점에 가서 고른다. 베스트셀러 항목과 새로 나온 책 항목을 많이 참조한다(p. 125). 블로그에 독후감을 쓰는 이유는? 독후감을 쓰다 보면 책 내용을 정리하는 효과가 있고, 글쓰기 훈련이 되며, 블로그에 저장해놓으면 다른 글을 쓸 때 인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은 있어도 나쁜 책은 없다. 어떤 책에서도 스승 또는 반면교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께 독서를 권한다. 책이 여러분을 끌어올려줄 것이다(p. 126). 왕후박나무 2011.4.1 남해군법원 다녀오는 길에 경남 남해군 창선면 왕후박 나무를 만났습니다. 500년 이상 되었다고 합니다. 둘레에는 동백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합니다. 주로 방풍용으로 많이 심는다고 합니다. 남해군 창선면에 있는 왕후박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9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왕후박나무는 높이 솟구치지 않고 옆으로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도 500년을 버틴 게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자신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p. 140). 조영남의 노래가 있죠. 〈겸손은 힘들어〉. 그렇죠. 겸손은 힘듭니다. 공자 이래 2천 년 동안 성현들은 겸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겸손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습니다(p. 141). 조정에 임하는 자세 2013.4.28. 조정이란 조정은 법률 분쟁이 생겼을 때 판사의 판결이 아니라 당사자 간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를 말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법원에 접수된 사건 중 판결까지 가는 사건은 10퍼센트가 되지 않고 대개는 조정을 포함한 여러 가지 간이한 방법을 통하여 사건을 처리한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조정은 이길 사람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길 사람이라는 건 미리 정해진 것은 아니고 재판 절차를 통하여 증거를 대고 법리를 세워야 하고 그것으로 판사를 설득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대법원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다(p. 188). 그리고 1천만 원을 받기 위하여 소송 비용으로 500만 원을 들여야 한다면, 700만 원을 받고 소송 비용을 100만 원 선에서 지출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사건에 관하여 가장 절실한 이해관계자는 판사도 아니 고, 변호사도 아니며, 결국 당사자다.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람도 당사자일 수밖에 없으므로, 당사자의 주도권이 가장 잘 보장되는 조정 절차가 불합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정에 임하는 자세 양보해야 한다. 조정은 당사자 간의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고 대체로 당사자는 서로 이해관계가 상반되므로 양보를 해야 조정이 성공한다. 본인이 참석해야 한다.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한 경우라도 조정 절차에는 본인이 참석하는 것이 좋다. 판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상대방의 입장을 직접 들을 수 있으며,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상생하는 방법도 있다. 본인에게 크게 불리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크게 배려하는 방법도 있다. 상대방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쟁점에 관하여 양보하더라도 본인에(p. 189)게 크게 불리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므로,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집행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소송을 하는 종국적 목적은 대체로 승소 판결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돈을 받아내기 위함이다.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더라도 집행 절차에서 돈을 받아내는 비율은 생각보다 낮다. 조정 절차에서는 돈을 받아내는 방법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으므로 유리하다. 원고는 5천만 원을 고수하고 피고는 3천만 원을 고집할 경우 4천만 원 선에서 타협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때로는 5천만 원으로 정하되 3개월 내에 3천만 원을 가져오면 나머지 2천만 원을 포기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싸우는 것은 금물. 간혹 조정실에서 상대방과 말이나 몸으로 싸우는 사람이 있다. 사연이 있겠지만 판사 입장에서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자신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자리를 어렵게 마련했는데 불만을 터트리는 자리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다. 그 사건이 해결 되지 않을 경우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은 판사도 아니요 변호사도 아니요 바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판사의 설명에 귀 기울인다. 법원이 조정 절차를 주도하(p. 190)는 경우 판사로부터 사건 전반에 관한 설명을 듣게 된다. 판사는 내가 불리한 점, 내가 유리한 점을 나누어 설명할 것이다. 잘 들으면 판사가 생각하는 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2심이라면 사건 처리 방향이 대부분 결정되었다고 보면 된다. 민사 사건의 경우 대법원에 상고를 해서 2심 판결이 깨지는 비율이 10퍼센트가 안 된다는 점, 사실 인정은 원칙적으로 2심에서 하게 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2심 재판부의 결론은 존중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내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좋다. 마무리(롯데자이언츠의 마무리는?) 집안에 송사가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적당한 선에서 털고 나오는 것도 마음의 평화를 찾는 좋은 방법이다. '조금 손해 본 것은 다른 일을 해서 보충하면 된다.' 이런 생각으로 조정에 임할 수는 없을까요?(p. 191). 재판 속의 문학 내가 현실에서 맡은 재판은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다(p. 304).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문학이 재판에서 많은 것을 차용하지만 재판은 문학에서 차용하지 않고 순수함을 고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판사는 많은 경험을 해야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제한적인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문학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문학은 보편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고, 재판은 구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며, 양자는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판사들이 다 가난했던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훈의 《흑산》을 읽고 나면 가난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배고픔을 면하자면 오직 먹어야 하는데 많은 끼니 중에서도 지금 당장 먹는 밥만이 배를 채운다는 내용이 그렇다. "아침에 먹은 밥이 저녁의 허기를 달래줄 수 없으며, 오늘 먹는 밥이 내일의 요기가 될 수 없음은 사농공상과 금수축생이 다 마찬가지다." 내가 10년 전 처리한 사건 중 20대 청년이 공무집행 방해죄로 구속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생모라고 밝힌 사람이 탄원서를 보냈다. 오래전에 헤어진 아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자신이 책임지고 선도를 할 테니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p. 305). 재판을 하며 방청객을 둘러보니 유난히 눈에 띄는 분이 있었다. 피고인석 옆에 앉아 대화를 하게 하였더니 피고인을 껴안으면서 "이제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라고 말했다. 피고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생모와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였다. 생모를 만났으니 이제 마음을 잡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집행 유예 판결을 선고했고, 피고인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그 책 한 쪽을 읽어주었다.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다. 내가 10년 전에 처리한 사건 중에 피고인이 자살을 하려고 여관에 불을 질러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불은 크게 번지지는 않았고 다친 사람도 없었다. 선고하는 당일 피고인에게 자살을 열 번 외치게 하였다. "자살자살자살자살.... 이렇게 열 번 하면 본인은 '자살' 이라고 말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살자'로 들립니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실패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살에 실패해서 살았지 않았습니까?" 그러고서 피고인에게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49가지》란 책을 선물했다. 나는 이런 재판을 하게 된 배경 중 8할이 문학 덕분이라고 생각한다(p. 306).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어쩌면 좋은 문학과 좋은 재판은 그 모습이 모두 비슷할지 모른다.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질문할 때, 주제와 이야기가 딱 들어맞을 때 독자들은 감동한다. 판사들이여!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가 영국의 대법관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작가들이여! 긴장하시라. 대한민국의 판사도 또 다른 '유토피아'를 쓸지 누가 알겠는가?(p.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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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6-04-16
  • 【북토크382】 죽음을 늘 준비하며 살자
    KBS 《아침마당》, 《강연100℃》 등에 출연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공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의 에세이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 극심한 암성 통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임종 선언을 했던 저자 김여환.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꼼꼼히 기록한 이 책은, 삶이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을 위해 더없이 소중한 오늘을 ‘있는 힘껏’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교보문고. 이 책은 호스피스 의사가 수많은 죽음을 보고 삶과 죽음에 대해 느낀 것을 쓴 것이다. 많이 유익했는데 현재 절판됐다. 사람의 일생 중 가장 힘든 시기는 보증을 잘못서서 거액의 부도를 냈을 때나 남편이 바람을 펴서 이혼할까 말까 망설일 때가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인생의 반전 같은 일말의 빛조차 기대할 수 없는 시간들, 즉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의 '짧은 삶'이다. 그 시기를 잘 보내야만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온전한 나의 인생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야만 남겨진 사람들의 인생도 편안해질 수 있다(p. 8). 그렇다. 나는 이 세상에 남들보다 조금 먼저 작별 인사를 건넨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토록 자명한 삶의 진리를 힘겹게 깨달았다. 만약 우리에게 내일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면, 오늘 우리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내일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면, 한 번 더 사랑한다 말하고, 한 번 더 안아주어야 하며, 오늘 깃든 행복을 있는 힘을 다해 누려야 한다. 이렇게 수많은 '오늘의 삶'이 모일 때 삶의 아름다운 결과물은 비로소 완성 된다. 그러므로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라는 말에 숨어 있는 참된 의미는 오지도 않은 내일에 대한 불안과 분노, 두려움과 슬픔에 오늘의 행복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더 사랑하고, 오늘 더 행복해야만 한다(p. 10). "2012년 8월 21일 12시 42분, 신복연 할머니는 사망하셨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더 이상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통증 없이 편안히 좋은 곳으로 떠나셨다는 위로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짤막한 사망 선언 뒤에는 언제나 그 마지막 순간을 지키고 있던 가족의 대성통곡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오늘은 조용했다(p. 22). 할머니의 둘째 딸이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우리 엄마가 평소에 유언을 했어요. 내가 떠나면, 울지 말라고. 자식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뒤 돌아보느라 떠나는 것이 힘드니, 울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아...하여간 대단하세요. 입원 내내 웃지 않으신 날이 없었는데, 그런 아름다운 유언까지 하신 줄은 몰랐어요. 제가 들어본 유언 중에 가장 훌륭한 유언인 것 같아요." "과장님, 그렇죠! 우리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이제 꽃 한 송이가 지는구나, 했다니까요." 곱게 아껴두었던 꽃분홍색 한복으로 갈아입고, 흰 양말까지 정갈하게 신은 신복연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살아 있는 그 누구보다도 따뜻해 보였다(p. 23). 짧은 글 한 편을 쓸 때에도 마지막에 무슨 말을 쓸까를 생각하면서 쓰면 글의 흐름이 매끄러워지듯이, 인생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고 살다 보면 들쭉날쭉한 인생이 일관성 있게 변한다. 타인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자기 자신과 먼저 소통해야 한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과 소통하면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p. 25). 자신과 만나려면 가장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임종실은 부끄럽지만 가장 볼품없고 꾸밈없는 자신의 민낯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은 바로 '나의 마지막'이라고(p. 26). "호호호, 난 아직 여기 입원할 단계는 아닌 걸요." "아직은 마약성 진통제를 쓸 만큼 아프지는 않아요." "며칠 전에도 산에 다녀올 만큼 괜찮았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멀쩡하게 걸어 들어오는 말기 암 환자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해 보이는 말기 암 환자들이 한두 달 뒤에는 누런 황달이 오거나 폐렴이 와서 황망히 떠나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남겨진 시간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그 짧은 시간에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칠순 잔치를 하든지, 마지막 콘서트를 하든지, 이혼한 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들을 찾아주는 일들 말이다. 그래도 나도 한 번쯤은 환자를 살려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죽는다고 포기했던 말기 암 환자가 완치되는 일이 우리 병동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환자들은 입원해서 퇴원(p. 45) 할 때까지 평균 27일을 살았다. 호스피스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역시 기적이란 부질없는 비현실적인 희망이라는 것을 확신 하게 됐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슴 저리게 갈구하기도 하고 신에게 떼를 쓰며 의지하기도 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겠지만,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 훤히 보이는 나로서는 그렇게만 하다가 환자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런 애절한 생각을 할 시간이 있으면 조금밖에 남지 않은 삶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오랜 경험을 통해 내린 슬픈 결론이었다. 사람이 좀 민민하고 삭막하게는 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옳았다(p. 46).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다. 푸시시한 구차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낼 때쯤이면 원치 않았던 현재 시간이 살다 남은 찌꺼기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약한 정신 때문이 아니라 몸이 약해지기 때문에 마음까지 통째로 흔들린다. 심지어 어떤 환자는 "잠자듯이 가는 그런 약 있잖아."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말기 암 환자가 안락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p. 56). 비참한 마지막은 말기 암에 걸린 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다 남은 삶이라고 쓰러져버리는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떠날 사람은 남아 있을 이를 위해 조금 남은 삶을 성실히 살아가고, 남아 있을 사람은 떠날 이가 세상에서 사랑받다가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노력하면 서로 덜 힘들다. 처음과 마지막까지, 모두가 촘촘히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p. 58). 세상은 가벼움과 무거움이 서로 경계를 불분명하게 가른 채 섞여 있다.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가볍고,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무겁다. 그렇게 어우러져서 세상은 좀 더 좋게 변한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오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선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고함을 지르고 입원실 바닥에 소변을 보는 한 할아버지 때문에 사흘 밤낮 동안 시달린 환자들이 하소연을 했다. 할아버지를 간병하던 할머니는 "환자가 병원에 자러 왔나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진정제도 못쓰게 하고 1인실로 가지도 않았다. 그런가 하면 뇌종양에 걸린 12살짜리 소녀는 과자를 들고 병실을 누비며 "아저씨, 빨리 나으세요."라고 하면서 환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한 신문 기자가 말기 폐암 환자에게 물었다(p. 67). "인생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해주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후덕하게 생긴 환자는 가지고 있던 옷가지며 살림살이를 싹 정리할 정도로 죽음을 잘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쓸쓸하게 대답했다. "저는....그런 것은 선배가 되고 싶진 않은데요." 그렇다. 죽음이란 일평생을 별 탈 없이 살다가 90살이 되어 마음 독하게 먹고 미리 준비해도 어려운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닥뜨리는 죽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많이 돌본 의사로서 한 가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이 먼저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남은 사람들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나 때문에 끼니를 거를까 봐, 나를 잃은 슬픔으로 행여 병이라도 생길까 봐, 경제적으로 힘들까 봐 등등.... 그들은 사소한 걱정을 몰래 했다. 남은 사람들은 그 마음을 알까? 임종실은 섞일 수 없는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고, 살아남은 이들이 비통함에 눈물을 흘리는 작은 방이다. 그러나 그곳을 거(p. 68)쳐 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존재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사랑하는 이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라고(p. 69). 예전에 나는 보기조차 딱할 만큼 남을 부러워했다. 뚱뚱할 때는 날씬한 사람을, 늦게 시작한 의사 생활이 비참하다고 느껴질 때는 처음부터 순탄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동료를 얄밉도록 부러워했다. 누군가는 잘된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인생의 꿈도 생기고 삶을 개척할 의지도 생긴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 부러움이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계기는 되었을지라도 그 과정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이제 내가 진실로 부러워하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했거나, 예쁘고 날씬하고 건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어떤 삶이 자신에게 다(p. 92)가오더라도 묵묵히 잘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그 자체로 당당하게 살아내는 사람이다. 우리는 저마다 지닌 인생의 향기가 따로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말자. 인생의 마지막에는 행복했던 자신의 과거조차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 시간에는 그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나만의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이 온 것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아쉬운데, 여러 가지 잣대로 부러워하면 병들어 있는 자신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부러워하지 말자, 그대여! 인생이 아파도 마지막까지 이 세상을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내야 한다(p. 93). 불행히도 호스피스에는 죽음을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는 묘약 따위는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들어주면 조금은 가벼워졌고, 끝까지 끈을 놓지 않고 가는(p. 108)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평범한 사실에 평안을 찾아갔다. 대식 씨의 어머니처럼 때로는 버리는 것보다 안고 가는 것이 더 홀가분한 인생도 있다. 그러니까 결국 안고 가는 사람, 버리고 가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p. 109). 잘 죽어가기 위해 우리가 정말 배웠어야 할 것은 죽음의 5단계를 외우거나 혼자서 관 속에 들어가 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p. 112) 아니다. "저는요, 이미 죽음을 다 받아들였어요."라고 말하면서 의젓하게 지내다가 진짜 마지막이 다가오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기보다는 결과물이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신산스럽고, 일상은 상처와 갈등의 연속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얼마만큼 잘 녹여내느냐에 따라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을 마지막 날은 달라진다(p. 113). 어쩌면 인생은 쓰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저절로 쓰이는 소설책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내야 한다. 죽을 만큼 괴로워도 직접 해봐야 삶에 대한 사랑이 깊어진다. 사람들은 인생이 힘들어지면 앞으로 남은 여정이 얼마나 끔찍해질지 더 두려워한다. 남은 인생이 지금보다 더 불편해지더라도 초조해하거나 원통해하지 말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대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살이라는 '고의로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를 생각할 만큼 견딜 수 없이 힘들다면 적극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아무 상관도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조차 알려야 한다. 마음의 피눈물은 말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 애써 고통을 삼키지 말자. 누구라도 도와줄 사(p. 120)람을 찾아다녀라. 자존심 따위 내세울 때가 아니다(p. 121). 치통이 아무리 심해도 한꺼번에 진통제를 다섯 알씩 먹지는 않는다. 통증을 잡으려다 사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타이레놀도 하루에 여섯 알을 초과하면 진통의 효과는 증가하지 않고 간에 부담만 준다. 이렇게 일반 진통제는 일반적으로 정해져 있는 용량을 초과하면 통증에 대한 효과보다는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해지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용량의 한계가 있다. 이것을 약의 천장 효과(ceiling effect)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천장 효과가 없는 약이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많이 쓰이는 마약성 진통제이다. 그것은 일반 진통제와 달리 많이 쓰면 쓸수록 통증이 잘 조절된다. 더군다나 날록손 (naloxone)이라는 해독제까지 있으니 '모르핀'이야말로 신이 세상을 떠날 때만은 아프지 말라고 인간에게 특별히 내려준 '마지막 선물'이다. 사망 원인 1위인 암은 사람이 떠날 무렵에 부쩍 커진다. 암(p. 129)덩어리가 커지면 정상 조직을 파괴하는 묵직한 암성 통증도 당연히 심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일찍부터 진통제를 쓰기 시작하면 통증이 가장 극심한 마지막 순간에는 정작 쓸 수 있는 약이 없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모르핀을 최후의 약으로 넘겨 두었으면 하고 부탁까지 한다. 그러나 통증에 관한 한 모르핀은 쓰면 쓸수록 효과가 있는 약이다. 이러한 마약성 진통제의 비밀을 알려주면 누구나 "진짜 그런 약이 있나요?" 하고 물으며 신기해한다. 환자나 보호자는 어차피 살릴 수 없다면 고통 없이 떠날 수 있다는 확신만으로 가느다란 희망을 갖는다. 모르핀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보다 더 끔찍한 암성 통증에서 해방시켜주는 이로운 약제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좀 더 정확하게 모르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아직도 말기 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모르핀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거부하면서 의미 없는 통증에 시달리다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의 마지막 의사로서 당부한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때가 오면 신이 내린 선물, 모르핀을 거절(p. 130)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통증이 없으면 죽음의 맨 얼굴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고, 고통 없는 죽음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을 것이다(p. 131). 내일 도사리고 있는 재앙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살아감 속에 죽어감의 흔적을 묻히는 것이다. 내일이라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오늘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심코 거칠게 한 말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지도 않을 비겁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너무 많이는 양보하지 말자(p. 163).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가족 간의 갈등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 갈등은 확대된다. 문제의 중심은 늘 '사랑과 돈'이다. 거기에 종교적인 문제가 곁들여지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p. 174). 살다 보면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만 해도 짧은 인생인데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 큰 손해를 볼 것만 같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매 순간 저마다 해야 할 일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훤히 보이고 그때 용기 내어 그 일을 하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것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기도, 또 속절없이 짧기도 하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실수 없이 하려면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하면서 견뎌보는 것쯤은 각오해야 한다(p. 187). 웰다잉(well dying)은 삶의 완성이 아니라 삶의 결과물이다. 누구나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은 더군다나 아니다. 저마다 주어진 힘든 삶을 잘 살아내야만 누릴 수 있는 삶의 마지막 축 복인 것이다(p. 203). 죽음을 깊숙하게 연구하고 싶어서라든지 내 성격이 원래 우울해서 호스피스 의사가 된 건 아니다. 나는 호스피스 일을 해오는 동안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도 죽음에 이르기 직 전까지는 살아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누구도 아프지 않게 하루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거창한 죽음의 여의사가 아니라 그저 생명의 에너지가 다 할 때까지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의사로서 당연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름이 주는 거부감 때문에 국내 암 환자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국내 사용량은 모르핀으로 환산했을 때 환자 1인당 연간 45mg에 불과하다. 미국 693.44mg, 영국 334.52mg은 물론 세계 평균 58.00mg보다도 낮다. 통증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안 쓰는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아프면서 죽어간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죽음이 삶의 종착역인지 따위는 일단 환자의 통증을 덜어준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암 환자의 통증은 당사자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출산의 고통이 10점 만점에 7~8점이라면 암 환자의 통증은 10점 이상도 간다.암성 통증은 암이 진행되는 생명의 마지막에는 더 심해지고, 그(p. 215)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환자와 가족을 더더욱 애타게 한다(p. 216). 인생을 산다는 것은 세상에 놓인 하나의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하지만 그저 다리를 건너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세상의 아름다움은커녕 다리를 뒤흔들 고통과 혼돈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뜨거운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자기 삶의 아웃사이더가 되어보기를. 삶이 끝난 뒤에 죽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죽음이 있음을 알아차리기를,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게 되기를 바란다(p.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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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6-04-13
  • 【북토크381】 삶의 찌질함과 누추함에 대하여
    산문집 《연중무휴의 사랑》과 《헤아림의 조각들》(2023년 문학나눔 선정도서)로 2030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임지은이 신작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전작에서 냉철하고, 때론 따뜻한 연민과 너른 헤아림을 보여줬다면 이번 산문집에서는 작가 자신의 깊은 내면에 숨겨진 질투와 열등감, 욕망과 좌절, 위선 등의 감정을 진솔하게 마주해본다. 누구나 한번쯤 특별한 이유 없이 무언가를 미워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싫음’이라는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숨기고만 싶은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들여다볼수록 작가는 거기에 어떤 선망이나 외로움,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편으론 자기가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을 돋보이게 하려는, 서툰 사랑의 마음이기도 했다. 작가는 슬픔과 기쁨과 외로움이 버무려진 이 “혼탕과 같은 삶”에 깊게 몸 담그며, 미움과 사랑 사이의 낙차를 발견한다. 엄마를 통해 흉보는 마음과 사랑이 때론 붙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온 세상과 자기 자신을 고루고루 아낌없이 사랑한다는 사람들 옆에서 홀로 투덜거리며 자신의 ‘싫음’을 통해 타인의 ‘싫음’ 또한 이해하게 되는 세계를 경험한다. 좋은 것은 당연하게 제 것이라 누리는 동거인에게 꼬인 마음이 드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 수긍하기까지의 내면의 갈등과 고통을 인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지만,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을 톺다 보면 이 책을 추천한 오은 시인의 말처럼, “곡절 없이 좋아하는 것들을 몇 곱절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곧 있으면 닥쳐올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직진하는 용기가 느껴지는 책이다.-교보문고 자신의 찌질함(?)을 드러내는 글을 보며 저자의 용기를 본다. 만족스럽지 않은 환경 가운데서도 살아볼려고 하는 저자의 몸부림(?)에 박수를 보낸다. 이토록 많은 말이 오가는 세상에 말 한마디가 그토록 크게 사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고야 만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버티고 또 흔들릴 만큼 나는 취약 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흔드는 게 무작정 나쁘다거나, 사주는 믿을 만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나를 흔들던 말 또한 나를 이쪽으로 데려왔음을, 내가 무언가를 그 안에서 발견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밤 안도 속에서 깨달은 건 나를 격려해주는 이가 없어도, 심지어 누가 나를 흔들어놓고 수면 아래로 밀어 넣는다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생겨난 불안과 슬픔과 무력감, 또 그에 따른 오기와 반발심을 동력 삼으며, 나는 내 안에서 끝내 살아남은 무언가를 마주했다. 어쩌면 그(p. 25)것이 그리도 중요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나 흔들렸다는 사실 또한. 그러므로 물음에 대한 답은 추가되고 갱신된다. 어쩌다 작가가 되었을까? 나는 끝내 작가가 되고 싶었다(p. 26). 오늘날에는 자신을 돌보는 법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그런 정보의 과잉은 때론 상처도 불행도 없어야 한다는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건 꼭 완두콩 한 알 만큼의 불편도 용인하지 않기 위해 고안된 듯 보이니까. 혹시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은 것만 주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걸까? 그렇게 해야만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건 좀.. 부자연스럽지 않나? 그래도 그런 정보들을 일찌감치 알았다면, 그래서 내 부모가 조금 더 자신을 돌보았다면 그들에게도 내게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내 부모도 조금은 덜 힘들었을 텐데. 나도, 조금 덜 우는 사람이었거나 조금 더 마음 놓고 우는 사람으로 자랐을 텐데. 어쩌다 한 번 하는 우리의 외식도 지금보다는 더 편안할 텐데(p. 103). 뒤늦게나마 나는 내게 좋은 것을 주는 법을 배우고 또 연습한다. 가능한 선에서 질 좋은 걸 산다. 누가 뭘 해주면 사양하지 않고 받는다. 목돈을 모아 요가를 등록하고 되도록 병원을 제때 간다. 때론 근사한 데서 밥을 먹기도 한다. 부모로선 잘 모를 좋은 걸 누려도, 스스로를 이기적이라 느끼지 않으려 이를 악문다. 동거인이 놀리는 걸 보면 갈 길이 먼 것 같지만, 나는 나를 보살피는 훈련을 거듭한다. 그래야 부모를 포함해 그 누구라도, 나를 챙기느라 그 자신을 뒷전으로 두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나에게 최선을 다해준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이해할 수 있다. 동거인의 캠핑을 따라가는 건 훈련의 일환이다. 캠핑을 가면 동거인이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해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뻔뻔하게 앉아서 쉰다. 겨울에는 가끔 엄마의 개도 캠핑에 데리고 간다. 텐트 안에서 개는 한 뼘의 볕이 있는 자리에 자기 몸을 두기도 하고, 난로 앞 조금 더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고 웅크리기도 한다. 주어진 데서 기어이 제 몸만큼의 좋음을 찾아내는 것이다. '너는 바로 아는구나'(p. 104). 내가 오래 걸려 배운 걸 개는 그냥 해낸다. 기특하고 근사한 개 같으니. 몇 년 전가지만 해도 그런 광경, 자신이 괜찮아지는 위치를 미리 알아두고 스스로를 거기 놓는 존재 앞에서는 마음이 볼썽 사납게 흐트러지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웅크린 개를 빤히 바라본다. 걷는 법을 모르고도 걸었고 숨 쉬는 법을 모르고도 숨 쉬었다. 사랑 하는 법을 모르고도 사랑했고 사는 법을 모르고도 살았다. 나를 키워낸 내 부모처럼, 언제나 모르면 모르는 대로 해내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배우면 배우는 대로 더 해내게 된다. 그걸 안 뒤로 나는 배우고 싶은 모든 걸 조금 더 오래 본다. 그럼 볕을 받아 털끝 하나하나가 빛나는 작은 개의 부드러운 몸이 조금씩 솟았다 가라앉길 반복하듯 감탄과 슬픔이 내 몸을 고요히 오르내린다. 어떤 자연스러움은 누군가에게 훈련의 영역에 있지. 그런 게 언제나 조금씩 나를 상하게 만든다고, 개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아무 불편도 모르는 얼굴,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멸균된 얼굴은 역시 내 것이 아니다. 훈련 해봤자 조금 상한 얼굴을 더 자연스럽게 여기는 내 관점은 아무래도 끝내 바뀌지 않을 모양이다. 그래선지 어떨 땐 사람들의 얼굴이 다 조금씩 상한 것처럼 보이곤 한다(p. 105). 대중교통을 오가며 힐끗힐끗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이 상처 입거나 불행하지 않길 바라면서.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들 각자의 상처나 불행이 없어지길 곧장 바라지는 않는다. 거기서 오는 고통과 모순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을 감싸는 오래된 맥락이므로. 나로선 그 안에 새겨진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그들의 완두콩들을 헤아려 보고 싶다. 그런 건 사람이 상처와 불행 속에서도 그럭저 럭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다만 그 사실을 증명하겠다고 나를 몰아세우는 건 그만두었다. 스스로를 보살피는 게 죄가 아니라는 걸 개조차 그냥 안다. 나는 개처럼 살아서 숨쉰다. 개에게 배운 바, 그건 머무르는 자리에서 언제나 한 뼘의 볕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뜻이다(p.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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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3
  • 【북토크380】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 죽음
    대한민국이 OECD 자살률 1위라는 아픈 현실을 몇 년째 마주하고 있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날 거야”라는 절망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젊은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대답을 들려주어야 할까? 이 무거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평생을 의학계에 몸담았고 ‘죽음학 전도사’라 불리는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와 그의 아내가 함께 펜을 들었다. 바로 신간 『죽음, 삶의 끝에서 만나는 질문 』의 저자 정현채, 이현숙 부부의 이야기다-교보문고. 의사가 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1) 근사체험 (2) 사후통신 (3) 삶의 종말체험 (4) 사망 시 물리적 현상 (4) 영매 (5) 어린아이들과 관련된 환생 연구이다. 나는 근사체험만 인정한다. 죽음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이기에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책을 찾아 읽게 된다. 읽은 책들이 죽어갈 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정현채 서울대학교 의대 명예교수 198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 내과학(소화기학)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로 있다. 지금까지 240여 편의 의과학 논문을 SCI 국제학술지에 발표했으며 위염이나 위궤양 등을 유발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연구의 권위자로 대한소화기학회 이사장, 대한헬리코박터및상부위장관 연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명한 의학 저널 『랜싯』을 포함해 전문 학술지에 게재된 죽음에 관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공부하면서 2007년부터 대중을 상대로 죽음학 강의를 시작했다. 중학생부터 80대까지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800여 회 넘게 강의를 해 '죽음학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국죽음학회 이사로서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 제정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수록 비관적이 되거나 자살 충동이 커지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정반대예요. 제가 산증인이죠. 인간의 죽음 전후로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에 대 해 알면 알수록, 왜 자살하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깨달아 더욱 밀도 있고 충만 하게 살아가게 되거든요. '내 목숨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웬 참견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그런 말을 하기가 어려워져요. 우리는 모두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고, 모르고 지나치는 존재들조차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요. 가족과 친구는 더 말할 나위 없죠. 우리는 모두 이번 생에서 다뤄야 할 저마다의 과제를 갖고 태어나는데, 자살을 한다는 건 그 과제를 너무 빨리 내팽개쳐버리는 거예요. 도망친다고 그 과제에서 벗어나게 될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 과제를 잘 다루게 될 때까지 형태만 바뀐 채 계속 마주 치게 돼요.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살면서도 그런 걸 경험하지 않나요? 해결하지 못 한 채 외면하거나 회피했던 문제가 사라지지 않고 어느 순간 눈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경험을요(p. 19). 자살은 남겨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고, 이 상처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잘 아물지 않아요. 한 사람이 자살하면 주위 사람 다섯 명 내지 열 명이 자살 충동을 갖게 된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마흔 명 가까이 자살한다고 하니, 매일 200명 내지 400명 넘는 사람들이 지인의 자살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거죠.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와요. 서둘러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고로, 질병으로, 노화로 언젠가 다 죽어요. 그러니 그 전까지는, 자신의 삶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까지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선택만은 하지 않아야 해요. 저는 4년 전 침윤성 방광암 진단을 받고, 방광 전체와 그 옆에 인접해 있는 전립선까지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았어요. 소장 60센티미터를 잘라내고 만들어 넣은 인공방광에는 괄약근이 없어서 자율적인 배뇨 조절이 안 돼요. 일정한 간격으로 화장실에 가야 해서 밤잠도 세 시간씩 끊어서 자요. 그러나 이것 때문에 비관하지는 않아요. 30년 전만 해도 방광 절제 수술을 받고 나면 비닐 소변주머니를 밖에서 연결해 부착하고 지내야 했는데, 수술법이 향상되면서 삶의 질이 높아졌어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 감사할 일이 참 많아요(p. 23). 자살하는 순간 후회하지만 자살을 시도했는데 살아난 사람들은 이후 신체적인 고통을 겪더라도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격스러워하며 살아간다고 해요.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이 더 이상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해요. 2013년 EBS 「다큐프라임」 '33분마다 떠나는 사람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에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교(금문교)에서 투신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2퍼센트의 사람들을 다뤘어요. 미국 플로리다대학의 토머스 조이너 교수가 그 사람들과 면담한 결과, 투신해서 수면에 떨어지기까지 4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했다고 해요. "뛰어내린 순간 나는 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 만 빼고"(p. 38). "뛰어내리고 처음 떠오른 생각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였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떨어진 곳이 강이였으니 그나마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고, 고층 빌딩이었다면 떨어지는 순간 후회한다고 해도 돌이키기 힘들죠. 경북 영주에 사는 한 중학생의 경우가 바로 그랬어요. 같은 반 학생들의 괴롭힘을 이기지 못해, 아파트 20층 계단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창문틀을 붙잡고 도와달라고 요청했어요. 때마침 20층에 사는 주민이 이 소리를 듣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지만, 이 학생은 팔에 힘이 빠져 결국 추락했다고해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에요. 이처럼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는 살고 싶은 의지가 강하게 있는 것 같아요. 다음에 소개하는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우울증을 앓고 있던 한 여성이 오피스텔에서 자살하려고 목을 맸는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어요. 잠긴 문을 따고 들어가보니 이 여성은 이미 사망한 것처럼 보였어요. 호흡도 없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해 있었죠. 그런데 출동한 경찰관 중 한 명이 혹시 모르니 응급조치를 해보자며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얼마 뒤 이 여성은 "컥!? 하는 소리와 함께 숨을 쉬며 살아났어요. 그리(p. 39)고 살아나서 한 말이, 경찰이 들어왔을 때 자신은 여전히 의식이 있었는데 다른 경찰관이 "시신에 손대지 말고 현장을 보존하자"고 했을 때 속상했다는 거였어요(p. 40). 죽는 것 외에는 거기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상황에 있다면, 가족이나 상담사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찾으세요. 익숙한 곳을 벗어나는 걸 겁내지 마세요. 죽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지금 그곳보다 더 나쁜 곳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려요. 70년을 살아보니 정말 그렇더라구요(p. 42). 케네스 링과 친절 바이러스 근사체험 연구에서 케네스 링 교수를 빼놓을 수 없죠. 미국 코네티컷대학 심리학과 교수로서 30년 넘게 학생들에게 근사체험에 대해 가르쳤어요.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직접 체험하지 않았는데도 근사 체험자에게 일어나는 삶의 변화를 마찬가지로 겪었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한 거예요. 케네스 링 교수는 근사체험을 '친절 바이러스Benign Virus'라고 불러요. 왜냐하면, 이를 알게 된 사람은 근사체험을 직접 하지 않았어도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체험자와 비슷한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에요. 그런 변화를 저나 주변 사람들한테서도 발견해요. 한 중견기업의 대표는 평소 까칠한 편이었다는데, 죽음학 강의를 들으며 펑펑 울고 난 뒤로는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자상해졌다고 했어요(p.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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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8
  • 【북토크379】 만화가 주는 즐거움과 편안함
    “<을지로 순환선>의 만화가 최호철과 만화평론가 박인하가 함께한 여행기『펜 끝 기행』. 같은 학교 교수로 만나 떠난 제주도 교직원 연수에서 결성된 두 만화쟁이 '펜 끝 듀오'의 여행은 이후 일본, 이탈리아, 스위스, 중국을 거쳐 다시 우리 땅 울릉도와 독도에서 마무리된다. 화가였다가 만화를 선택한 최호철과 글쟁이였다가 만화를 선택한 박인하. 만화에 붙들린 두 사람은 세계를 바라볼 때 만화적으로 본다. 최호철은 여행지마다 그림을 그렸고, 박인하는 최호철의 크로키 북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이 책은 그들이 그렇게 함께한 여행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만화를 좋아했다. 초등학교때부터 대학때까지 만화를 봤다. 지금은 잘 안 보지만 그래도 만화가 좋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이런 책들을 찾아 읽을려고 한다. 일본다운, 너무나 일본다운 규슈 한 일 두 나라는 모두 벚꽃을 좋아하고, 벚꽃 구경 하기를 즐긴다. 그래서 봄이면 어김없이 벚꽃 축제가 벌어지는데, 가만 보면 두 나라 사람들은 각각 다른 벚꽃을 즐긴다. 우리나라에서 즐기는 벚꽃은 봉오리가 오르기 시작해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상태이다. 그래서 벚꽃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일기 예보에 민감하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와 꽃잎이 떨어지면 꽝이 되어버리기 때문. 반면, 일본 사람들은 화려하게 만개한 뒤 흩날리는 벚꽃을 즐긴다. 만개한 벚꽃이 바람에 떨어지는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이웃. 결국 이런 미세한 차이가 모여 문화의 차이가 되고, 문화의 차이는 풍경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일본 미학'이라는 말이 있다. 다양한 논의가 있고, 학자마다 여러 설명을 더하지만 이방인인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일본의 모습 자체가 그대로 일본 미학이다. 가을이 서서히 겨울로 넘어가던 날, 두 만화쟁이는 학생들과 함께 후쿠오카를 찾았다. 후쿠오카를 여행지로 결정한 것은 순전히 우리나라에서 가까웠기 때문. 특별히 우리를 끌어당기는 매력이나 꼭 가야 할 곳을 생 각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기대 없이 찾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활화산 아소 산. 그 웅장한 모습은 대단했다. 아소 산은 해발 1000미터가 넘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를 통틀어 부르는 이름으로 정식 명칭은 아소고다케인데, 다섯 개의 분화구마다 사실 다른 이름, 다카다케(1592미터), 나카다케(1506미터), 에보시 다케(1337미터), 기지마다케(1326미터), 네코다케(1433미터)로 부른다. 버스로 전망대 인근까지 올라가 케이블카를 타면 쉴 새 없이 하얀 연기를 내뿜는 분화구를 볼 수 있다. 은근하게 풍겨나는 유황 냄새, 곳곳에 자리 잡은 대피소, 은근히 겁을 주는 가이드의 말이 어우러지(p. 243)면 현재 진행형 활화산의 다이내믹함을 느낄 수 있다. 멀리 피어오르는 활화산의 기운을 바라보니,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무라이, 흩날리는 벚꽃처럼 배를 가르는 영화의 장면이 떠올랐다. 아소 산을 뒤로하고 찾은 곳은 구마모토 성. 구마모토 성은 약 400년 전, 전국 시대의 무장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를 통치하기 위해 축성한 성이다. 가토 기요마사라고 하면 낯설지만, 한자음 그대로 '가등청정'이라고 읽으면 익숙하다. 바로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했다가 깨진 바로 그 장군. 적의 공격에 대비한 120개의 우물과 조선 성의 장점을 차용한 축조술이 인상적이었지만, 그보다는 거대함 속에 정교하게 쌓아 올린 구마모토 성의 모습 그 자체가 일본, 사무라이를 느낄 수 있는 너무나 일본적인 풍경이었다. 그러나 사실 가장 일본적인 풍경은 활활 불타오르는 아소 산과 전국 시대 의 칼바람이 담겨 있는 구마모토 성이 아니라 그 살벌함과 함께 일상을 살았을 일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지금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소 산 자락 아래에서 평화롭게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바로 그들의 모습이 가장 일본다운, 너무나 일본다운 모습이었다(p. 244). 이 책을 쓰고 그리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자면(p. 276) 최호철 선생과 나는 같은 직장(청강문화산업대학)에 다닌다. 둘 다 만화창작과 선생이다. 사람들을 만나 "학교에서 만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꽤나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마치 황제펭귄처럼. 낯설지는 않으나 내 주변에서 마주칠 때 경험하는 신기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어쨌든 우리는 5월마다 찾아오는 불량 만화 화형식의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지 않은 만화인들이다. 최호철 선생은 화가였다가 만화를 붙들었고, 나는 글쟁이였다가 만화를 붙들었다. 더 정확히 우리 둘은 모두 만화에 붙들린 사람들이다. 만화에 붙들린 사람들은 세계를 바라볼 때 만화적으로 본다. 일단 빈 종이가 있으면 무조건 그리고, 조금이라도 분위기가 추락하면 농담을 날리고 싶다. 전자가 최호철 선생. 후자가 나다. 하지만 둘 다 천성이 숫기가 많은 사람들은 아니다. 은근 부끄럼쟁이들. 그래서 낯선 이들하고 떠들고 노는 것보다, 친한 이들과 수다 떠는 것이 좋다. 그래서인지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선생들은 보통 직장인들과 달리 사우나 아줌마 분위기를 풍긴다. 그 때문에 여행에 대한 기억이 꽤 많다. 최호철 선생은 여행지마다 그림을 그렸고, 난 최호철 선생의 화집을 뒤적이며 농담을 던진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월간 무가지 〈백도씨〉를 기획할 때였다. "우리 여행 간 거 내가 글 쓰고, 선생님이 그림 그려보세요." "만화? 나 마감 잘 못하는 거 알잖아?" 일단, 방어막을 친다. 역시, 공력이 대단하다. "그냥 한 쪽짜리 그림을 그리자고요. 한 쪽짜리 만화, 그게 최호철 스타일이 잖아!" 나도 다시 공격한다. 왠지 느낌이 낚은 것 같다(p. 277).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담는 게 최호철 스타일 아닌가?" 낚았다. 파닥파닥! 그렇게 해서 〈백도씨〉에 '두 만화쟁이의 여행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내가 낚은 죄로 글을 썼고, 최호철 선생의 애간장 다 태우는 마감에 동참했다. 몇 번 빼먹은 적도 있지만, 한 스무 번쯤 마감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우리가 한때 사슴굴이라고 불렀던 최호철 선생의 개성 넘치는 연구실 소파에 앉아 뒹굴면서 이야기를 하다 한번 책으로 묶어보자는 생각이 번득였다. 최호철 선생은 낙서라고 하지만, 그냥 묵히기 아까운 그림이 많은 그의 크로키 북이 생각났다. "〈백도씨〉에 연재한 만화하고, 그와 연관된 크로키를 모아서 책으로 묶어봅 시다." "재미있을까?" "재미없으면 사람들이 만날 선생님 크로키 북 달라고 해서 보겠어요." "너무 성의 없게 그렸잖아." "성의 있게 그리면 마감 못하잖아요." "..." "또 그냥 그 시간에, 여행지에서 그린 그림이 난 좋던데." "그럽시다." 그렇게 시작된 작업이다. 그림을 모으고, 글을 고쳐 썼다. 최대한 여행지의 느낌을 사람들이 느껴주길 원했다. 여행에는 휴식과 수다가 공존한다. 혼자 가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난 함께 수다 떨 수 있는 사람과 가는 여행이 좋다. 서로 말도 안 되는 지식을 공유하고, 느낌을 나누는 여(p. 278)행이 좋다. 이 만화는 그런 여행의 기록이다. 글과 함께 그림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최호철의 그림은 읽히는 그림이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크로키 북에 그린 사람이 아주 구체적인 당신의 모습이기도 하고, 당신이 바라본 그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림을 읽으며 우리의 여행에 동행하면 어떨까? 같이 수다 떨고, 맛있는 것도 먹고, 바보 같은 개그도 하면서 말이다. 남자들이라면 더더욱, 수다가 주는 세계 평화를 함께 누려보자(p.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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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8
  • 【북토크378】 짐승보다 못한 인간의 잔혹함
    〈무시무시한 처형대 세계사〉는 야욕과 애증, 배반과 음모로 뒤엉킨 잔혹한 처형의 역사를 들려주는 책이다.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를 통해 그림 동화 신드롬을 일으킨 작가 기류 미사오가 이번에는 무시무시한 역사 속 처형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근대 유럽까지 '인간'이라는 존재에 의해 자행된 처참하고 잔혹한 처형의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하였다. 이 책은 역사 속 처형장을 통해 인간 내면세계에 깃들어 있는 광기의 역사를 살펴본다. 저자는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물음을 던지면서, 다양한 이유 때문에 엄청난 피를 흘려 왔던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있다. 그리고 황제들을 비롯한 수많은 권력자들과 신의 이름을 내건 종교인들이 역사 속에서 저지른 처형의 만행과 광기의 현장을 낱낱이 고발한다-교보문고. 흥미롭게 읽었는데 품절됐다. 이 저자의 책들이 재미있어 열심히 읽고 있는데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도 대출했다. 이처럼 맹수를 이용한 처형 방법은 그리스도교가 보급되기 훨씬 전에 시작되어 5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죄수의 팔다리를 묶어 자유를 구속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죄수의 몸을 묶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간단한 무기도 사용하게 함으로써 관중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안겨 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목숨을 잃기 전에 맹수를 한두 마리쯤 해치우는 강한 죄수도 나타났다. 어쨌든 죄수와 맹수의 싸움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으로 관중들에게 꽤 인기를 끌었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서 죄수의 처형은 일종의 연극으로 연출되었다. 예를 들면, 죄수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로 분장시켜 쇠사슬로 바위에 묶은 다음 대머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게 한다거나, 헤라클레스로 분장한 죄수가 곤봉을 들고 나와 황소와 싸우다가 클라이맥스에서 황소가 죄수를 허공으로 던져 버리는 식이었다. 그리고 여자 죄수가 생겨나면서 연극 마지막 부분에 음탕함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곰이나 당나귀의 습격을 받는다는 설정도 선보였다고 한다(p. 23). 콜로세움에서 펼쳐진 다양한 잔혹극 역대 황제들의 입장에서 볼 때, 검투사 경기는 범죄자나 반역자의 잔혹한 죽음을 선보이는 것으로써 황제의 권력을 뒤흔들려 하는 자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민들에게 확실히 보여 주는 기회이기도 했다. 로마 콜로세움 안에는 지금도 십자가가 서 있다. 일찍이 이곳에서 수많은 잔혹한 방법으로 목숨을 잃은 그리스도교도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타르에 적신 셔츠를 입은 채 콜로세움으로 끌려가 화형에 처해졌다. 또는, 팔다리가 묶인 채 커다란 솥 안에서 끓는 기름에 튀겨지거나 끓는 물에 삶아지기도 했다. 성 로렌스(Sento Rorense)는 석쇠 위에서 불에 구워졌고, 성 포류카르프는 화형대 기둥에 묶인 채 불에 타 죽었다. 성 폰시아노(Sento Pontianus)는 쓰러질 때까지 벌겋게 달구어진 석쇠 위를 걸어야 했고, 성 아르테 미오(Artemius)는 맷돌에 몸이 으깨져 죽었다. 손발이 잘려 나가거나 내 장이 몸 밖으로 드러난 채 매달린 자들도 있었다. 또, 살가죽이 벗겨진 채 유리 조각 위에서 끌려 다닌 자도 있었다. 콜로세움에서 남녀 수십 명이 한꺼번에 기둥에 묶여 처형된 적도 있는데, 그 광경이 마치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숲처럼 보였다고도 한다. 관중들은 그 중에서 누가 가장 먼저 숨이 끊어질지를 놓고 내기를 하기도 했다(p. 24). 당연히, 역대 황제들도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잔혹한 피의 향연을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으로 여겼다. 예를 들어 카이사르(Caesar)는 기원 전 65년 안찰관이었을 때 검투사들을 320쌍이나 동원해 성대한 검투사 경기를 개최했으며, 아우구스투스(Augusus) 황제도 검투사를 1 만 명 정도 동원해 검투사 경기를 여덟 차례, 맹수 3,500마리를 이용해 맹수 사냥을 스물여섯 차례나 개최했다. 클라우디우스 1세(Claudius I) 황제 시대에는 한 경기장에서 검투사 500쌍이 동시에 겨루는 일도 흔했다. 잔혹한 취미가 있었던 클라우디우스 1세는 목이 잘린 검투사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일부러 죽은 자의 투구를 벗기게 했다고 한다. 칼리굴라 황제 시대의 검투사 경기는 잔혹한 취미를 끝없이 만족시키기 위한 절호의 수단이었다. 맹수 사냥에서는 범죄자를 짐승의 먹이로 던져 주었고, 검투사 경기에 출전해야 한다는 선고를 받은 죄수가 필사적으로 자비를 호소하면 그 혀를 잡아 빼라고 명령한 다음에 온몸의 상처가 곪아 악취를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채찍으로 때리게 했다. 그리스도교도 박해로 유명한 폭군 네로도 30일에 걸쳐 잇따라 경기를 열었다. 그는 맹수를 풀어놓아 어린이를 포함한 5,000명을 물어 죽이게 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한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황제는 로마 제국 안에 존재하는 난쟁이들을 모조리 모아 검투사 집단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미녀들로 이루어진 검투사 집단도 만들게 해서 경기장에서 난쟁이와 미녀를 싸우게 한 뒤 그것을 최고의 유흥으로 삼았다고 한다. 코모두스(p. 25)(Comedits) 황제에 이르러서는 아예 정치를 총애하는 신하에게 맡겨 버리고 검투사 경기에만 열중, 자기 자신도 검투사로 자주 경기에 출전했다. 그런 그가 음모를 품은 검투사 한 명에게 침실에서 암살당한 것은 운명의 장난이었을까?(p. 26). 사실은 이랬다. 불길이 번지는 상황에서 수상쩍은 남자 몇 명이 술에 취한 척 비틀거리면서 '어떤 자는 이쪽, 어떤 자는 저쪽' 하는 식으로 햇불을 이용해 불을 붙이는 모습이 목격되었던 것이다. 로마 시대의 전기 작가인 수에토니우스(Gaius Suetonius Tranquillus)에 따르면, 이 수상쩍은 무리가 네로의 노예들이었기 때문에 집정관도 제지할 수 없었다고 한다. 폭력의 피해자 어쨌든, '네로가 방화를 명령했다'라는 소문이 흘러나오면서 민중들 사이에서는 당장에라도 폭동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자 네로는 소문을 불식시키려고 방화범을 만들어 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제물이 된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도들이었다. 당시 그리스도교도들은 이단시되어 마법을 부리고 유아를 살해하고 인육을 먹는다는 식으로 중상모략을 당하고 있었다. 아무리 엄격한 금지 정책을 펴도 계속 증가하는 그리스도교도 때문에 고민하고 있던 터라 네로는 이번 화재를 구실로 그들을 철저하게 탄압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먼저 신앙을 고백한 자들이 심문을 당했고, 이어서 그들의 고백을 토(p. 67)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방화죄 혐의를 받았다. 순교자들 중에는 사도 바울로와 12사도인 베드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놀림감이 되었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당했다. 어떤 이는 짐승의 가죽을 덮어쓴 채 개 떼에게 내던져져 물려 죽었고, 어떤 이는 원형 경기장에 맹수의 먹이로 던져지기도 했다. 또 어떤 이는 온몸에 타르가 발라진 상태에서 기둥에 묶여 날이 어두워진 뒤 등불 대신 불을 밝히게끔 했다. 네로는 처형 장면을 구경하라며 바티카누스 (vaticanus) 왕실 정원을 제공해 전차 경기까지 개최하면서 흥을 돋우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이단자들을 처형한다는 명분도 네로의 인기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특히 귀족들이 불만을 품은 것은 노예에서 해방된 자들이 점차 제국의 요직을 독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었다. 화재 뒤처리 등으로 인해 그 해의 국고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되었고 그 결과 재산 몰수라는 극단적 상황에 의지할 수밖 에 없었다. 때문에 다시 막을 연 반역죄 재판의 판결은 모두 유형이나 사형이었다(p. 68). 14~17세기 유럽에서는 마녀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체포해 가혹한 고문을 한 뒤 화형에 처했다. 이러한 마녀 재판의 폭풍은 약 300년 동안 이어지면서 유럽 전역에서 맹위를 떨쳤다. 그 기간 동안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수십만에 이른다는 설도 있고, 수백만이라는 설도 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마녀로 지목되어 화형을 당한 희생자에 대한 기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프랑스 로렌(Lorraine)에서 1576~1606년 동안 2000~3000명. 보르도에서 1577년에만 400명. • 독일 트리에르(Trier)에서 1587~1593년 동안 368명. 뷔르츠부르(p. 121)크에서 1623~1631년 사이에 900명. 밤베르크에서 1623~1633 년 사이에 600명. 이것만 보아도 마녀 재판의 희생자가 엄청난 숫자라는 사실을 짐작 할 수 있다. 유럽 전체에서는 15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약 30만 명(900만 명이라는 설도 있다)이 화형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p. 122). 마녀를 불태우는 검은 연기가 유럽 하늘을 끊임없이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야기다. 당시, 불안감을 해소하는 돌파구로 선택된 것이 '마녀'였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불행과 해악을 마녀 탓으로 돌려 잔혹하게 처형했다. 마녀 사냥이 무서운 것은 증거 없이 소문과 풍문만으로도 마녀로 몰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마녀 재판이 성행했던 원인으로는 첫째, 당시의 사회 불안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유럽인들은 예전에는 겪지 못했던 혹독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유럽 인구의 30퍼센트 정도를 앗아간 페스트의 유행, 극단적인 인플레이션, 종교 개혁 운동 등, 격동의 상황에서 민중들의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었다. 답답하기만 한 그런 현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창구로 선택된 것이 바로 '마녀'였다. 마녀는 마력을 써서 날씨를 나쁘게 만들고, 밭농사의 수학물을 줄이고, 태아를 유산시키고, 남자를 성불구로 만들고, 갓난아기를 잡아먹고, 악마에게 살아 있는 제물을 바친다..... 이런 식으로 세상의 모든 불행과 해악을 마녀 탓으로 돌렸다. 유럽에 휘몰아친 종교 개혁 운동에 대해 로마 교황은 수도회를 결성해 이단 탄압에 나섰다. 마녀 재판의 전신은 13세기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가 탄생시켰다. 이른바 '이단 심문' 제도다. 이단 심문관은 교황의 보호 아래 사교나 관헌을 능가하는 권한을 가지고 오로지 그리스도교 국가 전역에서 이단을 박멸하는 사명을 맡았다(p. 123). 그리고 잔혹하기로 유명했던 요한 22세가 내린 1318년 2월 27일 교서에서 '마녀'의 비참한 운명이 결정되었다. 프랑스 고위 성직자 앞으로 보낸 이 교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마녀 재판을 시작하고 지속하여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완전한 권한을 부여한다.' 이 마녀 재판 해금 명령에 박차를 가하듯, 교황 요한 22세는 1323년, 1326년, 1327년, 1330년, 1331년에 계속 마녀 재판 강화 명령을 발표 했다. 이 강화 명령에 따라 이단 심문관의 마녀 사냥이 급격하게 기세를 떨치기 시작했다(p. 124). 마녀 재판 그 자체도, 심문, 자백의 공술(고문을 통한 자백도 포함해서), 단죄 선고, 그리고 처형(대부분이 화형)이라는 식으로 공식화되어 있었다. 중요한 것은 피고를 한시라도 빨리 죽여 그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었다. 마녀에게서 몰수한 재산은 모두 교회 소유가 되었고, 마녀 재판에 들어가는 비용 전부를 여기에서 조달했다. 간수의 식대, 처형 담당자의 술값, 교살을 할 때 들어가는 밧줄 대금, 화형을 할 때 쓰는 장작과 기름값 등, 모든 비용을 여기에서 인출해 썼던 것이다(p. 165). 기요틴에 광란하는 사람들 로베스피에르를 처형하는 것으로 공포 정치가 막을 내리자, 국내의 무거운 공기는 사라지고 단번에 향락적인 분위기가 퍼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장소에 모여 오직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피비린내 나는 과거를 잊고 희망 없는 미래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 거리 도처에서 무도회가 열렸는데, 특히 인기를 모았던 것은 회원이 한정되어 있는 '희생자들의 무도회'였다. 가까운 친척이 기요틴에 처형을 당한 사람들만 이 모임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 무도회에 참가하려고 일부러 큰돈을 주고 근친자가 기요틴에 처형되었다는 증명서를 위조하는 사람들도 속출했다고 한다. 모임에서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고 훤히 드러난 목 주위에 칼자국을 모방한 빨간 리본을 묶었다. 남자들도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마찬가지로 빨간 리본을 목에 둘렀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들 입장에서 보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현실을 받아들여 슬픔을 이겨내고 살아가려면 이런 식으로 불행을 패러디하는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p. 298). 마지막 공개 처형 프랑스에서 기요틴을 이용한 처형은 오랜 세월 동안 일반에게 공개 되었다. 그때마다 형장에는 프랑스 각지의 수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입장에서 볼 때 처형은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다. 1889년의 파리 만국 박람회 때에는 기요틴에 처형을 당한 사람이, 당시에 신축된 에펠탑보다 더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피와 잔혹함에 대한 인간의 열광은 그 뿌리가 무척 강한 듯싶다.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기요틴 공개 처형은 1939년 와이트만이라는 살 인범의 처형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축제 소동이 벌어지자 정부는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다고 한다. 처형 전날 밤, 형장이 될 베르사유 감옥 앞 광장에는 엄청난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기요틴 처형을 한 번이라도 직접 구경하려고 나무와 가로등에 매달린 사람들, 건물 창문에 바짝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사람... 사람들은 마치 축제라도 즐기는 듯한 기분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면서 소란스럽게 전야제를 보냈다. 가끔씩 말 잘하는 사람이 농담을 던지면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 소리가 감방 안에 있는 사형수의 귀에도 들렸다니 정말 잔혹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자 정부도 더 이상은 간과할 수 없어 그 뒤로는 기요틴 공개 처형을 금지했다. 이후의 처형은 각각의 감옥이 위치한 안마당에서 이루어(p. 300)졌으며, 처형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관료 아홉 명뿐이었다. 잔혹함의 상징인 기요틴 처형대는 감옥의 담장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두 번 다시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다(p.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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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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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314】 우연히 생긴 일에 대한 한 사람의 집념 이야기
    미국 하버드대학에 법의학을 설립하기 위해 애썼던 한 여인의 삶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400페이지의 두꺼운 책이지만 한 사람의 집념과 이후의 소멸 등 사람 사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재미있게 읽었다. 현장에서 발견한 증거가 반드시 진실을 드러내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도 뉴욕에서 검시관 수련을 받으면서였다. 현장에서 얻은 정보는 사건과 아무 상관이 없고 오히려 오해를 불러오기도 했다. 현장에서는 사망자가 손에 쥐고 있던 총이나 그가 우울증을 앓았다는 증언이 자살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부검실에서 자세히 살펴보니, 사망자의 맨살에 화약으로 인한 화상 흔적이나 점무늬가 없었기에 총이 최소 75센티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발사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망자는 살해되었고, 현장은 자살처럼 보이도록 연출된 것이었다. 자신의 아파트에서 사망한 여성은 자는 도중 평화롭게 죽음을 맞은 것처럼 보였다. 이튿날 부검실에서 보니, 벌거벗은 채 해부된 시신의 목 부분에서는 멀쩡해 보이는 피부 아래 진한 멍이 발견되었다. 이에 더해, 사망자의 흰자위에서 나타난 점상 출혈은 목 졸림에 의한 살인이 일어났음을 알려주는 증거였다. 나는 현장에서 본 것이 부검실에서 본 것을 해석하는 데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님을 깨달았다(p. 14). 매그래스가 말했다. "나는 새롭고 현대적인 최초의 실험실을 만들고 싶습니다. 창립자인 나의 책과 노트, 교육용으로 사용할 랜턴 슬라이드 파일 전체, 영상 필름이 갖추어진 도서관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의사, 법률가, 치과 의사, 보험 종사자, 코로너, 검시관, 장의사, 경찰에게 법의 의학적 측면을 강연해줄 유능한 강사진도 필요합니다." 프랜시스는 매그래스의 말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받아썼다. 매그래스는 말을 마치더니 생각에 잠겨 파이프를 뻐끔거렸다. "그냥 꿈입니다. 몇 년 동안 생각해왔지만, 이런 일이 이루어질 방법은 없습니다." 필립스 하우스에 머무는 동안 매그래스는 프랜시스의 인생 경로를 바꾸어놓은 말을 했다. 매그래스는 악의 없이, 별다른 의도 없이 한마디를 던졌지만 이 사소한 발언이 프랜시스에게는 기대에 없었고 예상할 수도 없었던 울림을 주었다. "나는 늘 인체의 장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고 주장해왔어요. 의대나 의사 협회 벽을 장식하면 대단히 효과적일 거예요.” 매그래스가 말했다. 인간 장기의 아름다움이라니? 프랜시스는 나중에 "나는 즉시 그 생 각이 마음에 들었다"라고 적었다. 프랜시스의 머리가 윙윙 돌아가기 시작했다. 꼭 머릿속 스위치가 켜진 것만 같았다. 매그래스가 즉석에서 꺼내놓은 그 생각은 하나의 씨앗이 되어 뿌리를 내리고 자체의 생명력을 얻었다. 매그래스의 말(p. 166)로 프랜시스는 매그래스가 옳다는 것을, 인간의 장기가 정말로 아름답다는 것을 증명하는 오랜 세월의 여정을 시작했다. 벽난로나 문 위에 걸어놓을 수 있는, '뼈와 분비샘과 장기가 뒤섞여 엉킨 모양'을 나타낸 패널화한 세트를 만들 수도 있었다. 아니면 뭔가... 다른 것이 될 수도 있었다.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자리 잡기 시작하자 프랜시스는 매그래스에게 말했다. "직접 한번 보고 싶네요. 여기서 나가면, 인간 장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셨으면 해요."(p. 167). 전국 검시관 협회에 따르면, 미국에서 검시관으로 활동하는 법의병리학자는 400~500명이다. 인구 전체를 넉넉히 관리하려면 그 두 세 배에 달하는 검시관이 필요하지만, 의대에서는 법의학자를 다수 배출하지 않고 있다. 매년 의대를 졸업하는 1만 8000명의 젊은 의사 중 약 3퍼센트에 해당하는 550명만이 병리학을 전공한다. 3년의 전공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이 병리학자들 대부분이 병원이나 임상 연구실에서 일한다. 1년의 전공의 과정을 더 거쳐 법의병리학자가 되는 사람은 10퍼센트 미만이다. 검시관은 보통 정부 기관에서 일하며, 민간 영역에서 임상병리학자에게 제시하는 것보다 대체로 낮은 봉급을 받는다. 소득이 더 적을 것이 불 보듯 뻔한데 거기다가 추가적인 훈련까지 받도록 후보생을 끌어들이는 것은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p. 362). 모든 시작에는 평생을 바칠 만큼 열렬한 누군가의 헌신이 있다. 우리나라 법의학의 태두 문국진 교수와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에게서 그 공통점을 본다. 이 책 《아주 작은 죽음들》은 독립적이고 현명한 한 여성 법의학자의 삶을 다룬다. 독학으로 법의학을 공부하고, 고집스러우면서도 현실에 대응할 수 있는 명민함으로 법의학의 발전에 기여한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 이를 보고 있자니, 한 사람이 흘린 땀과 나아가려는 힘이 사회를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가 세상을 어떤 방향으로 변화 시켰는지 책 속으로 모험을 떠나기를 바란다. 유성호, 법의학자(서울대학교 법의학교실)(책 뒷 표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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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1
  • 【북토크313】 단절 사회에서 다시 연결하는 삶으로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단절과 고립의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을 경험한 저자가 어떻게하면 그것을 벗어나 다시 연결할 수 있는지를 다룬 책이다. 평이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낄낄거리며 웃는 A를 보며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이렇게 쿨하고 넉살이 좋은 사람이었다니. A는 어떤 계기로 이렇게나 달라진 걸까요? "너 진짜 달라졌다." "음, 아니. 달라졌다기보다는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아." "이게 너야?" "응, 나는 그렇다고 생각해." "그럼 나랑 만나던 때의 너는?" "음.... 그것도 나긴 하지. 그리고 그때는 그 모습만이 나인 줄 알았지. 그런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 동굴에 들어가는 때가 오잖아. 그럴 땐 누구나 무기력하고 어둡고 그게 내 성격인 것만 같지. 왠지 평생 그렇게 살 것만 같고. 근데 '그럴 것 같은 거'랑 '진짜 그런 거'랑은 다른 거 알지? 그게 영원한 것도 아니고 내 본성도 아니더라고. 그때의 '상태'였던 것뿐이지."(p. 57). 가스라이팅이 진짜 무서운 이유가 뭔지 아세요? 사람의 판단력을 상실하게 만들어 안 하던 짓을 하게 만드는 것도 무섭지만, 진짜 무서운 건 가스라이팅 피해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역시 곱지 않다는 거예요. '너도 이상하니까 그런 걸 시키는 대로 하는 것 아니야?'라고 쉽사리 생각해버리는 거죠(p. 152). 부탁받지 않은 조언은 폭력이다 적극적 경청에 가장 필요한 것이 '질문'이라면, 가장 자제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바로 '조언'인데요. 특히 상대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전하는 조언이에요. "제가 부탁한 적 없는데 일방적으로 던져지는 조언은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고립 당사자인 인아 씨가 제게 이 말을 했을 때, 저는 지나간 수많은 상담 사례자들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얼마나 많은 부탁한 적도 없는 '조언' 속에서 살아왔을까요. '다 너 잘되라는 호의'로 하는 말이기 때문에 '폭력적이라고 느끼는'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구조. 지금 내 상황에서 실행할 여력이 없는 조언이기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 내 의지 부족이 되 고, 내 생각과 다른 조언이라서 거부하면 '똥고집'이 되어버리는 상황(p. 262). 이상하지 않나요? 특히 동아시아 유교 문화에서 이런 '호의를 가장한 폭력'은 더 빈번히 발견됩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바른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어쩌면 통제 욕구와도 맞닿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애정의 척도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미국의 심리학자 다이애나 바움린드 Drana Baummod는 부모와 자녀 관계의 오랜 연구를 통해 애정과 통제는 분명히 다른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애정과 통제를 기준으로 각각의 정도에 따라 부모의 양육 유형을 네 가지로 분류하였는데요. 바로 애정과 통제가 모두 낮은 '무시적 양육 형태', 애정은 높지만 통제는 낮은 '허용적 양육 형태', 애정과 통제가 모두 높은 '권위 있는 양육 형태', 애정은 낮지만 통제는 높은 '독재적 양육 형태'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형태는 바로 마지막 '독재적 양육 형태'예요. 이름이 주는 인상이 너무 강한 듯하지만,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형태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수직적인 위계가 분명하고, 자녀에게 많은 기대와 요구를 하지만 그 이유는 확실하게 설명하지 못하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녀의 심리적 반응이나 요청에는 둔감한 편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아존중감이 낮은 건 물론 강한 죄책감을 형성시킨다고 하지요. 부모의 기대와 요구가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명확히 알지는(p. 263) 못하기에 의무감 또는 부모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애쓰게 되고, 삶에서 크고 작은 실패가 있을 때마다 '누군가를 실망시켰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되는 겁니다. 그런 환경의 영향일까요? 사회적 고립에 대해서 OECD 국가 간의 비교를 한 연구 결과가 있는데요. 통계청에서 2019년 발행한 〈사회적 고립의 현황과 결과〉 보고서를 살펴보면,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 할 시사점이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사회적 고립을 겪는 사람에게 설문을 해 봤어요. 독일, 미국, 일본에서 '나는 어려울 때 도움받을 사람이 없다'고 말한 비율은 5~12퍼센트 정도인데 비해 한국은 20퍼센트를 훌쩍 넘깁니다. 적게는 두 배에서, 많게는 네 배까지 차이 나는 거예요. 사회적 고립 상황에서 도움을 청하는 것을 주저하는 이유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상담 현장에서 많은 사례자들이 이렇게 말하지요. 가족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이유는 응원이나 지지를 기대할 수 없을 뿐더러 도리어 실망감을 표현하거나 '원 치 않는 조언'을 건네는 것이 두려워서라고요. 하지만 조언을 건네온 당신을 탓하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 모두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왔고, 그것이 최선의 선택지라 생각해서 행동해온 것뿐이니까요. 그래도 이 책을 중반 이상 읽어온 우리에겐 이제 '조언'이라는(p. 264) 선택지 외에도 '질문', '적극적 경청', '곁에 있어 주기' 같은 많은 선택지가 생겼습니다. 그러니 조언이 문득 목까지 차올랐을 때, 잠깐만 멈추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를 사랑하고, 응원하 고, 도울 수 있는 또 다른 선택지는 무엇일지요(p.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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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5-12-11
  • 【북토크312】 남성과 다른 여성의 삶
    이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다. 남성으로서 여성의 삶과 생각에 대한 글을 가끔 읽는다. 여성이기에 당하는 어려움도 있고, 부당함도 있다. 그럼에도 묵묵히 자기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을 응원한다. Q 부당한 공격, 혹은 다수의 공격을 받았을 때 누구나 위축될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것을 이겨내고 돌파하는 비법이 있을까요. A 이렇게 말해도 되나요? 저는 남이 헛소리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쓰는 편이에요.(웃음) '좀 헛소리인데?' 싶으면 내가 왜 이렇게 공격을 받는지 고민하지 않아요.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건 내 손해니까요(p. 26). Q 이공계 여성 연구자들은 '랩실' 이라고 불리는 실험실에 소속되어 연구를 하죠. 주로 남성 동료들과 함께하는데, 최근엔 페미니즘에 대해 격렬한 저항이 일기도 해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A 랩이라는 공간 자체가 폐쇄적이고 위계적이에요. 교수도 대부분 남성이고 연차별로 위계 질서가 짜여요. 예전에는 여성 연구자에게 '여자라서'라는 딱지를 붙여서 알게 모르게 배제했어(p. 82)요. 지금은 그에 더해 '페미(페미니스트)냐"라고 묻는다는 거예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이공계 여학생들에게는 더 숨 막히는 상황이 되는 거죠. Q 진로와 생계가 달린 일인데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잖아요. A 차별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 똑똑한 이공계 여성이 흔히 취하는 선택 중 하나가 '내가 더 잘하면 되겠지'라고 마음먹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그걸로 많이 돌파해 왔을 테니까요. 그런데 저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동료를 찾아 뭉치는 것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봐요. 목소리가 덩어리지면 권력이 생겨요. 하지만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되겠지'는 개인을 고립시켜요.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이 해결해야 될 문제로 만들어 버리고요(p. 83). Q 한동안 소식을 거의 못 듣다가 2021년 8월에 김 코치의 기사를 마주치게 됐어요.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민사소송 확정 판결이 났죠. A 2018년 6월에 민사소송 고소장을 접수했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는 형사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2018년 8월)이 나기 전이었고요. 민사 접수 때도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주위에서 많이 말렸어요. 이 어려운 싸움을 또 해야 되나 싶었어요. Q 그렇기에 많은 소송이 합의로 끝나죠. A 합의라는 게 너무 자존심 상하는 거예요. '내가 피해자인데 왜 합의를 해야 되지? 난 용서할 마음이 없는데.' 합의라고 하면 형식적인 용서를 표면에 깔고 가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것조차 표현하기 싫었어요. 나를 성폭행한 사람을 어떻게 용서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피해자들을 그렇게 합의로 자꾸 내모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니 민사 판결(p. 101)이 없다는 게 컸어요. Q 하! 선례가 없어서였군요. A 어떤 배상도 충분할 순 없겠지만, 성범죄 피해자들은 '이 정도의 손해배상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하는 판례가 없어요. 왜 없느냐? 다 합의로 끝나기 때문이에요. 민사소송 또한 이기기 쉽지 않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시간과 비용, 인내하고 감당해야 되는 것 등을 따졌을 때 합의를 하는 것이 피해자를 위한 것이 되는 게 현실이죠. Q 원치 않는 합의가 피해자를 위한 것이라니... A 그러면 '도대체 이건 왜 안 바뀌는 거지?'를 차근 차근 들여다보면, 결국에는 소송을 아무도 안 해서 판례가 없기 때문이에요. 다들 주위에서 힘들다고 소송을 만류해서 판결문이 없으니까요. '이것도 또 내가 해야 되나. 이 힘든 싸움을 또 해야 되나' 엄청 고민했어요. 게다가 민사소송으로 대법원까지 갔을 때 제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천 만 원이 넘는 거예요. 손해배상을 받아도 부족한 판에(p. 102). Q 그럼에도 고민 끝에 소송에 돌입한 거네요. A 판례가 있으면 다른 피해자들이 같은 일을 겪을 때 소송 기간이 줄어들 거잖아요. 비용도 줄일 수 있고. 모든 걸 손해 보고 잃는 한이 있더라도 그냥 내가 하는 게 맞다는 각오를 하고서 시작하게 됐던 거죠. Q '내가'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냈군요. A 형사소송을 할 때 누가 이렇게 말했어요. "그걸 꼭 네가 해야 돼?" 그때 제가 한 생각은요. 예전에 다른 누군가가 했으면 나도 안 해도 됐을 일이란 거예요. 그런데 그러지 않아서 결국 제가 하게 됐죠. 그러면 내가 하지 않으면요? 또 다른 누군가가 하고 있겠죠. 내가 나서지도 않으면서 다른 누군가에게 용기 내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은 없잖아요. Q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나요? A 사건만 떠올리면 심장이 벌렁벌렁하고 손발에 힘이 다 빠져요. 일상생활을 잘 하다가도 사건과 관련한 연락을 받으면 몸에서 막 반응을 하는 거예(p. 103)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소송을 포기할까도 고민했는데, 형사소송부터 지금까지 저를 도와준 분들이 있잖아요. 그분들도 어렵고 힘든 삶 을 살면서 나를 도와줬는데, 내가 지금 여기서 힘들다고 그만두면 그 사람들의 노력이나 고생이 다 소용없이 끝나는 건가 싶더라고요. 내가 하는 결정은 나 혼자, 나만 고려해서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론은 보자. 그래야 다른 누군가가 나를 발판 삼아 앞으로 나갈 수 있다'라고 결정을 내렸죠(p. 104). Q 마지막으로 성폭력 피해자 혹은 상처를 극복하고 세상에 목소리를 내려는 여성들을 향해 한마디 해 주세요. A 지금 용기를 낼까 말까 망설이거나, 희망을 가지(p. 110)고 싶은데 차마 두려워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내 행복과 내 미래를 위해서'라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용기와 희망을 내는 것이 결코 두렵지만은 않을 겁니다. 심지어 즐겁고 설레는 일이 될 수도 있어요.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p. 111). Q 환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칸트는 "이방인이 타지 사람의 땅에 도착했다는 이유로 적대적으로 취급받지 않아야 한다" 라는 세계시민적 태도를 '환대'라고 했대요. 낯선 이들을 환대하는 것, 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덕목일까요? A 코넬리우스 플랜팅가라는 미국의 신학자는 '환대'를 "타인에게 우리 안에 머물 공간을 마련해 주고, 그 공간에서 그 사람이 꽃 피우도록 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렸어요. 꽃 피우게 한다는 건 그 사람의 잠재되어 있던 정체성이 드러나고 발현되면서, 더 안전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도록 공간을 마련하는 거라고 봐요. 우리는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잖아요(p. 189). Q 그런 대표님도 조직 내에서 보이지 않는 촘촘한 차별을 당한 적이 있나요? A 호주에서 일할 때 제가 담당한 브랜드의 포장이 잘못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동료 중 누군가가 "한승희 쟤가 잘못했어"라고 말해서 덤터기를 썼어요. 물론 나중에 제 잘못이 아닌 것이 밝혀졌지만요. 덤터기를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제가 묵묵히 일만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동료 간 네트워크가 많았다면 그 상황에서 누군가는 '승희 잘못인지 한번 가려 보자'고 하지 않았을까요. 억울한 것도 차별이라면 차별이죠(p. 238). 셀프 프로모션은 본인의 몫이에요 Q 직장에서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는 여성을 많이 봐요. 그런데도 자신의 기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요. A 공부하는 걸로 예를 들면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열심히'만으로는 안 되죠. 시험을 잘 봐서 성적이 잘 나와야 되잖아요. Q 공감되는 비유예요. A 일도 마찬가지예요. 열심히 하는데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느냐 아니면 헛된 일을 하고 있느냐를 먼저 봐야 되고요. 내가 잘한 것을 성과로 보여 줄 수 있어야 해요. 보통은 '이거 얘기해서 뭐 하나' '결과 나오면 윗사람이 다 알아주겠지' 하는(p. 242) 경우가 굉장히 많거든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사람 수가 적은 조직이라면 일 잘하고 성과 나오는 사람이 눈에 확 띄지만, 경쟁이 치열하고 큰 조직에서는 모두가 똑같이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해요. 내가 한 일이 회사에 어떻게 기여했느냐를 알리는 것은 본인의 몫이에요. Q 하지만 그런 것을 배운 적이 없는 걸요. 다들 부담스러워하죠. '자기만 일하나, 다들 똑같이 일하는데 왜 저래?' '너무 튄다' '이기적이다' 이렇게 보는 시선이 분명 있거든요. 그런데 셀프 프로모션은 '나! 나! 나! 이거 한승희가 했어'를 알리기 위함이 아니에요. '내가 한 일이 이런 결과를 냈고, 회사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라는 것을 조리 있게 어필하는 일이에요. 개인적 측면에서는 내가 한 일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고, 나아가 팀원도 제대로 인정을 받도록 돕는 일이죠. 그리고 좋은 성과가 난 일이 다른 부서에도 도움이 될 수 있잖아요. Q 셀프 프로모션이 나를 알리는 이기적 수단이 아니라 회사의 경험을 축적하는 '공적인 프로세스'라는 거군요. A 셀프 프로모션은 중요한 리더십 스킬 중 하나예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팀과 조직이 공정한 평가를 받게 하는 일이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중요한 게 '청중'이에요. 알릴 콘텐츠만 준비하는 게 아니라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때 중요한 게 네트워킹이에요. Q 쌓아 온 네트워크가 여기서 위력을 발휘하네요. A "내가 하면 네트워크, 남이 하면 사내 정치"라고 얘기를 많이 해요. 어떤 사람이 네트워킹 하는 것을 보면 '저 사람 너무 정치적이야'라는 편견을 갖게 되는 거죠. 현실에서 네트워크는 흔히 나쁘고 부정적인 모습이에요. 남을 험담해서 부정한 방법으로 내 이익을 찾는 것으로 바라보게 되잖아요. 하지만 좋은 정치도 분명 존재합니다. 회사에서 나 혼자, 내 부서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최대한 다른 부서와 협업하고 도움을 받아야죠. 다른 부서도 바빠 죽겠는데 "내거 빨리 껴서 많이 해 주세요"라며 도움을 받으려면 네트워킹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일을 하기 위한 자원을 끌어오는 것 역시 정치인 거죠(p. 244). 일과 커리어, 직장은 나의 도구일 뿐이에요 Q '커리어 만렙' 으로서 여성들이 경력 개발을 할 때 꼭 신경 써야 할 부분을 조언하자면요? A 일에 대해 얘기할 때 역량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요. '하드 스킬'과 '소프트 스킬'이요. 하드 스킬은 업무와 관련한 기능적 역량을 의미하는데요. 이건 어떤 업무를 맡은 지 1년만 되면 어느 정도 체득해요. 인력을 관리하고 조직을 구성하고 네트(p. 250)워킹을 하고 셀프 프로모션을 하는 것은 모두 소프트 스킬에 포함돼요. 그런데 소프트 스킬은 계발하는 데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려요. 교과서에 나온 대로 되지 않거든요. 하지만 어떤 조직을 가더라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더욱 신경 썼으면 좋겠어요. Q '커리어' 라는 분야를 커리어로 둔 삶은 어떤 걸까요. 한 대표님께 커리어와 일은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합니다. A 처음엔 회사에서 일하고 성장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욕심이 났어요. 커리어가 내 모든 것이었죠. 그런데 10년 차쯤 됐을까. 일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사건이 있었어요. 제 친구가 난소암에 걸렸어요. 친구는 평소 일로 인한 스트레스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어린 나이에 깨달았죠. 일, 일, 일만 해서는 안 되겠다고요. 그 이후로 저는 일, 커리어, 직장은 내게 도구라고 생각했어요.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지, 일이 더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또 미국에서 일할 때 구조조정을 정말 많이 봤는데요. 한눈팔지 않고 20~25년 동안 회사만 바라보던 사람이 박스를 싸서 사무실을 나가는 모습을 본 거예요. 회사에 모든 걸 바치면 인생이 같이(p. 251)무너져요. 나 자신이 아니라 어느 회사의 누구로 존재한 것이니까요. 일 잘하는 것 중요하고, 성과 내는 것도 중요한데요. 목숨 걸지 않아야 자신감이 나옵니다. 본 모습을 잃지 마세요. Q 마지막으로 직장에서 분투하는 여성들 혹은 지금 커리어를 막 시작하는 여성들을 위해 한마디 해 주세요. A 제 멘토가 해 준 말인데요. "희생자가 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돼라"라는 거예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피해자의 상황에 놓일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상황을 바꾸기 위한 첫 스타트를 끊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에요. '나는 피해자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악순환 속에서 에너지가 계속 떨어져요. 악순환에서 벗어나서 다른 시각으로 지금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지,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건 무엇일지 적극적으로 찾으세요. 해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Q 힘을 주어 '일 잘하는 법'에 대해 말하던 한승희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린 순간이 있었다. 커리어를 업으로 둔 이에게 '일'은 어떤 의미냐고 물은 질문에서였다. 명쾌한 커리어 해법을 말하던 그에게서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목숨 걸지 말아라." 무엇을 잘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나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는 어디서든 통용된다. 그것이 일이든, 사랑이든, 관계든, 스스로 욕망하는 그 무엇이라면(p.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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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0
  • 【북토크311】 대다수는 앞으로 더 가난해 질 것이다...남의 일이 아니다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가난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다. 일부의 부자와 다수의 가난한 자 구도는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다. 새로운 형태로 없는 자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세상이 됐다. 사회 구조로 인한 가난을 자신의 능력 부재 탓으로 돌리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사회는 결국 불행해 진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이제 자본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세계 경제에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했어요. 1970년대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이런 배경에서 등장한 거예요. 신자유주의는 경제 영역에서 국가 간 장벽의 높이를 낮추어 자본이 활동한 수 있는 '시장'이란 무대를 전 지구적 차원으로 넓혀야 한다는 발상을 담고 있어요. 아담 스미스도 『국부론』에서 '시장은 크면 클수록 좋다.' 라고 말했어요. 교환할 수 있는 대상과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시장이 힘을 발휘한다는 거죠. 아담 스미스가 상상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은 인 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시장', 바로 '지구적 시장 global market' 을 건설하기 시작했던 거예요. 신자유주의가 요구하고 실행한 이런 발상을 우리는 '경제적 지구화'라고 표현해요. 이 지구화를 '세계화' 혹은 원래 용어 그대로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on' 이라 부르기도 하죠.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 두 가지를 잠시 짚어 볼게요. 첫째, '지구화'와 '경제적 지구화'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지구화는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세(p. 87)제가 연결되고 상호 의존하는 현상이에요. 그리고 각각의 영역에는 고유한 작동 원리가 있죠. 각 영역이 온전히 독자적으로 움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같은 원칙 아래 움직이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경제적 지구화는 이 지구화라는 현상의 한 영역 일 뿐이죠, 다만 경제 영역의 힘이 너무 세기 때문에 우리가 자꾸 지구화와 경제적 지구화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두 번째, 우리나라에서 '세계화'는 우리의 것을 밖으로 널리 알린다는 의미로 쓰이는데요, 이건 지구화와 사실상 전혀 다른 의미예요. 예를 들어 우리 입장에서 볼 때 한류는 우리의 것이 밖으로 퍼져 나가는 세계화의 일부이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이 볼 때는 '한류와 자신이 연결되는 현상'으로서 문화적 지구화 현상인 거예요. 1980년대 신자유주의 질서라는 이름 아래 지구화를 주도한 미국과 영국은, 경제 영역에서 모든 개인과 국가가 서로 의존하며 연결되는 지구화를 요구했어요. 그러면서 이런 경제적 지구화가 자신들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죠. 신자유주의가 자본의 부당한 요구를 담은 정치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했던 유럽의 좌파들은 '더 왼쪽' 노선을 주 장하며 맞섰지만 영국을 필두로 모두 실패하고 말았죠. 점점 막강해진 자본은 자신들이 국적을 초월해 점점 더 강해질수록 국가도 같이 강해진다는 논리를 내세웠고, 이제 개인들도 국가의 보호라는 우산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어요. 복지국가가 확장되며 국가가 져야 하는 재정적(p. 88) 부담이 늘어나고 있던 상황에서 이런 주장은 정말 강력한 것이었죠. 그리고 자본은 개인들을 향해서도, 국가에게 사회보장을 요구하는 대신 시장에서 판매하는 보험에 가입하라고, 그러면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보다 훨씬 더 양질의 서비스를 받게 될 거라고 설득했죠. 뒤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게 되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는 현상이 벌어져요. 그러니 유럽의 좌파들이 주장했던, '더 왼쪽' 노선 전략이 먹힐 수가 없었던 거죠. 이렇게 영국 총리 대처와 미국 대통령 레이건이 앞장서 초석을 놓은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경제 질서는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라 불리며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 버렸어요. 이런 흐름 앞에 좌파들조차 '제3의 길', '신노동당, '신 중도노선' 등 중도 개혁 노선을 내걸었죠(p. 89). 이렇게 시작해 볼까요? 앞에서 공유 플랫폼은 노동자들을 부업으로 일하는 독립 사업자로 여긴다고 했어요. 새로운 플랫폼 자본에게 부업과 '독립 사업자'는 마법의 단어예요. 이를 통해 '4대 보험'으로 상징되는, 기업이 고용자들에게 제공해야 할 보호의 의무에서 간편하게 벗어날 수 있거든요. 플랫폼 분야의 종사자들은 일터에서 노동자로 일하지만 법적으로는 '독립 사업자' 즉, 사장님이에요. 반면 자신들은 중간에서 단순히 수수료(최대 20~30%)만 챙기는, 노동을 중개하는 업체에 불과하다는 게 이 공유 플랫폼 업체들의 주장이죠. 그런데, ‘유휴자산’, '부업', '독립 사업자'라는 이 마법의 단어들은 단지 노동자들을 보호하던 전통적인 사회보장 혜택을 빼앗는 것에 그치지 않아요. 플랫폼에서 일하는 이들이 마땅히 누려(p. 121)야 할 '노동자'라는 지위를 '사업자'라는 말 뒤에 교묘히 숨겨서, 이들이 노동조합 등을 만들어 행사할 수 있는 '노동 3권'까지 박탈해 버려요. 각자 모두 사장님들인데 무슨 노동 3권의 보호가 필 요하냐는 거죠. 이처럼 공유 경제가 채택한 용어들은 종사자들이 노동자로서 연대의 감성과 행동을 공유할 수 없도록 사전에 차단해 버리죠. 공유 경제의 플랫폼에서 실제로 공유되고 있는 건 '건당', '분당', '시간당'처럼 짧은 시간만 사용할 노동력이 필요한 이들과 '별점의 감시 아래 경쟁하며 상시 대기하고 있는 노동력'이라는, 수요와 공급의 만남뿐이에요. 간단히 말해 보호가 필요한 곳에선 독립 사업자로, 작업이 필요한 곳에선 노동자로 남게 되는 거죠. 켄 로치 Ken Loach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 Sorry We Missed You」 (2019)는 이런 상황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어요(p. 122). 그럼 디지털 기술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 우리 나라의 소득 불평등을 볼까요? 우리나라의 소득 불평등과 관련(p. 135)해서는 연구마다 다른 결과들을 내놓고 있어요. 어떤 연구는 불평등이 감소했다, 어떤 연구는 심해지고 있다고 말하죠. 그렇다면 이런 엇갈린 결과와 상관없이 지금 이뤄지고 있는 소득 분배가 받아들일 만한 수준인지 살펴보도록 하죠. 2019년 국세청은 '2017 귀속연도 통합소득(근로소득과 종합소득) 천분위 자료'를 국회에 제출했어요. 천분위 단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0.1%까지 파악할 수 있는 자료였죠. 이 자료에 따르면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금융•임대 소득 등을 합친 통합소득 기준으로 상위 0.1%에 속하 는 2만 2,000여 명이 하위 27%에 속하는 629만 5,000명의 소득을 모두 합친 것만큼 버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이들의 소득을 중간 계층과 비교하면, 상위 0.1%의 1인당 평균 소득은 14억 7,400만 원이었던 반면 중위 소득은 2,301만 원으로, 상위 0.1%가 중위 소득의 64배를 벌었어요. 소득이 가장 적은 계층이 아니라, 소득 수준에서 딱 가운데 즉, 50%에 해당하는 이보다 64배를 더 벌었다는 거예요. 어떤가요?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만한 수치 인가요? 이런 소득 불평등은 또 다른 의미에서 매우 중요해요. 소득 불평등이 자산 불평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소득에서 쓰고 남는 돈이 있어야 투자를 해서 자산을 마련할 수 있지 않겠어요? 쉽(p. 136)게 말해 저축할 수 있는 돈이 있어야 하는 거죠. 1년에 15억 원 가까이 버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10억 원 정도는 투자할 여유가 있을 거예요. 근데 앞서 본 중위 소득, 한 해에 2,301만 원 정도 버는 걸로는 평생 투자라는 결 할 수 없겠죠. 소득은 크게 '일해서 버는 소득'과 '투자해서 버는 소득' 즉 노동 소득과 자본 소득으로 나뉘는데 이 중 자본 소득이 커지면 자산 불평등이 심화돼요. 노동 소득이 일정 규모의 자산을 만들어 내면, 이 자산이 각종 투자의 형태로 불로소득을 만들어 내니까 부의 불평등이 점점 더 심화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물론 노동 소득 대신 유산을 물려 받아 일정 규모의 자산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죠.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론」에서 자본 소득이 자식에게 세습되는 현상이 당대 불평등의 원인이라고 말하죠. 제2 기계 시대에 나타나고 있는 전형적인 불평등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어요. 기술의 발전이 만들어 낸 '울트라리치'들 우리나라에서 연봉을 제일 많이 받는 월급쟁이는 누구일까요? 정답은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의 권오현 회장이에요. '초격차',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기술의 차이를 벌린다는 개념으로 삼성의 기술혁신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죠. 2017년 그가 받은 연봉은 243억 8,100만 원이었다는군요. 월급으로 계산하면 20(p. 137)억 3,175만 원, 하루에 6,680만 원을 번 셈이에요. 상상이 잘 가지 않네요. 연봉만으로 이런 돈을 벌었다는 게 말이죠. 2014년에서 2016년까지 상장 기업 동기 임원의 보수를 분석해 보니 여기서도 권오현 회장이 1등이었다고 하는데, 5년간 연평균 124억 9,100만 원을 받았다고 해요. 그런데 지구상엔 이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어요. 243억 원쯤이야 소위 껌 값에 불과한 사람들이죠. 우리 돈으로 치면 '조' 단위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 이른바 '슈퍼리치super rich'라 불리는 이들이에요. 20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부자들을 '리치rich'라고 불렀어요. '백만장자'라고도 하는데 요즘 환율로 우리 돈 12억 원 정도가 그 기준이었죠. 그 뒤를 이어 '천만장자'들이 나타났고요. 근데 21세기에 들어서며 이 천만장자도 대적할 수 없는 사람들, 이른바 '억만장자'들이 나오기 시작한 거예요. 이들을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용어가 필요했죠. 그렇게 탄생한 단어가 바로 슈퍼리치예요. 지금은 사전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20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문서 프로그램들은 이를 '없는 용어', '잘못된 용어'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제 어느 정도 이름 있는 경제지라면 모두 슈퍼리치 섹션을 따로 두고 이들과 관련된 보도를 하고 있어요. 근데 슈퍼리치라(p.138)고 하면 이 말만으로는 감이 잘 안 오죠? 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슈퍼맨'을 떠올려 보는 거예요. 인간man 앞에 슈퍼super라는 접두어를 붙여 보세요. 영화에서 슈퍼맨은 외계에서 온 존재죠. 원래 이 지구에는 없던, 그런 존재예요. 음속보다 빨리 하늘을 날아다니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 내죠. 짝사랑하는 여인 '로이스'를 구하기 위해 지구의 회전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어요. 슈퍼리치들이 바로 그런 존재예요. 이전에는 지구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 인류가 탄생한 이래 가장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 이 세계가 움직이는 방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들.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트럼프 역시 이 슈퍼리치 중 한 명이죠. 그럼 이들이 얼마나 부자냐고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세계 최고 부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예요. 2019년에 이혼을 하며 그는 자신이 가진 아마존 지분의 25%를 전 부인에게 넘겼어요. 이 액수가 얼마쯤 될까요? 대략 375억 달러, 우리 돈으로 40조 6,000억 원 정도예요. 이게 얼마나 큰 규모냐고요? 뭐랑 비교해 볼까요? 이해하기 쉽게 서울 시 예산과 비교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2019년 서울시가 서울시의회에 제출한 예산 규모는 39조 5,282억 원이었어요. 예산 안보다 더 많이 책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1년 동안 최대 이(p. 139)정도 쓰겠다는 거죠. 1,00만 명이 사는 도시의 한 해 예산이 40조 원이 채 안 되는데, 한 명의 슈퍼리치가 이혼하며 위자료로 넘긴 돈이 이보다 더 큰 거예요. 근데 이 돈이 베이조스가 가진 자산의 25%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돼요. 결국 계산해 보면 베이조스는 160조 원이 넘는 자산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슈퍼리치라는 존재, 이제 조금 감이 오나요? 그래서일까요, 최근에는 이들을 부르는 용어가 또 생겼어요. '울트라리치 ultrarich' 이 정도면 이들은 이제 우리의 이해를 완전히 벗어난 느낌이 드네요(p. 140). 디지털 기술이 이렇게 독점적 경향을 띠는 건 정보가 만드는 네트워크 효과 즉, 더 많은 사람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더 큰 효용을 가지기 때문이에요. 네이버와 카카오톡을 떠올리면 금세 이해가 될 거에요. 네이버는 2018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이뤄지는 전체 검색량의 75.2%를 차지하고 있어요. 사실상 독점 체제나 다름없죠. 2018년 기준으로 카카오톡은 한국 메신저 시장의 95% 이상을 장악하고 있어요. 이런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디지털 분야는 전형적인 '승자독식' 시장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모아 주는 정보는 '독점'을 만들어 내고 소비자의 기호를 더 잘 파악 할 수 있도록 해 계속해서 독점을 유지해 나가죠. 이런 까닭에 디지털 업계에서는 후발 주자들이 앞서가는 업체를 따라잡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어요. 이런 경향을 고려하면, 또 다른 혁신적인 기술이 나오기 전까지 기존의 강자들이 선두 자리를 한동안 굳건하게 지킬 거라고 예상할 수 있죠(p. 143). 국가는 부유해졌는데 정부는 왜 가난해진 것일까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공공 부문의 부가 민간 부문으로 대거 이전되는 현상 때문이에요. 다른 말로는 '민영화'라 부르죠. 많은 국가에서 전기, 교통, 의료, 교육 등과 같은 대규모 산업이 민간 부문으로 넘어간 거예요. 이런 국가 기간산업을 민간이 차지하며 많은 이익을 창출해 낸 거죠. 2000년대 들어 민영화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일종의 트렌드였어요(p. 145).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철도, 의료, 공항, 수도 분야의 민영화가 추진된 적도 있지만 시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했죠. 정말 다행이었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산업들이 민영화되었어요. 한국담배인삼공사가 KT&G로, 한국전기통신공사가 KT로, 한국중공업이 두산중공업으로, 포항제철이 포스코로, 대한송유관공사와 고속도로관리공단도 같은 이름으로 민영화되었어요. 최근 우리나라에서 민영화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늘어난 건 민영화된 기업들이 그 효율성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이죠.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한 사례 하나를 들어 볼까요? 여러분 모두 KT라는 통신 기업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KT는 2002년에 민영화한 이후 2014년까지 9조 원에 이르는 엄청난 당기순이익을 냈어요. 그런데 그 이익을 어떻게 낸 줄 아세요? 세 차례에 걸친 사상 최대의 인적 구조 조정을 통해서였어요. 직원들을 잘랐다는 거죠. 그리곤 이렇게 벌어들인 돈(수익의 평균 50%)을 주로 외국인들이 주축인 주주들에게 배당했어요. 실제 금액을 보면 총(p. 146)배당금 4조 9,000억 원 중 외국인 주주가 가져간 돈은 2조 9,000 억 원에 달해요.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자리를 줄여 챙긴 이익을 외국인들이 가져간 거예요. 이 기간 동안 KT 이사회의 의장은 모두 3차례에 걸쳐 미국인, 미국 국적의 한국계가 맡았어요. KT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결국 민영화를 통해 기업의 공공성은 사라지고 오로지 이윤이 지배하는 결과만 남는 거죠. 이건 하나의 사례에 불과해요. 많은 전문가들이 우리나라에 서는 '민영화=실패'라는 공식이 만들어졌다고 할 정도니까요. 이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해요. 민영화된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익을 얻는 방식 이란게, 지속적인 투자는 기피하면서 이용 요금만 올리는 식이에요. 민영화를 추진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주장은 공공이 운영할 때보다 서비스의 질이 향상될 거라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기업이 비용을 절감하는 제일 쉬운 방법은 고용 인원을 줄이는 것과 시설 투자를 최소화하는 거예요. 근데 생각해 보세요. 직원 수가 줄고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데 그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겠어요? 국가가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공항이나 철도 같은 기간산업을 운영했던 이유는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해야만 서비스의 질이 계속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만일 철도가 민영화된다면, 기업은 이(p. 147)윤이 되는 노선만 남기고 그렇지 않은 노선은 당연히 없애 버릴 거예요. 그렇게 되면 결국 소외된 지역에 사는 이들은 더욱더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나겠죠. 여기서 '왜 민영화된 기업이 시설 투자를 소홀히 하죠?'라고 물을 수도 있겠네요. 그건 단기적 이익을 노리는 민간 주주를 때문이에요. 순이익이 발생할 때마다 민간 주주들에게 배당을 많이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미래를 위한 시설 투자의 몫은 줄어들 수 밖에 없어요. 민간 주주들은 한 기업의 장기적 미래보다는 단기적으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수익에 집중하죠. 만약 자신이 투자하고 있는 기업에서 이익을 다 취했다고 생각하면 자금을 빼서 다른 곳에 투자하면 그만이니까요. 특히 이런 민간 주주들이 앞서 KT의 사례에서 보듯이 해외 투자자라고 생각해 보세요. 호주에 사는 민간 투자자가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한국의 기간 시설이 제공하는 서비스 질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러니 시설 투자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p. 148). 그렇다면 포퓰리즘이란 무엇일까요? 전통적으로 포퓰리즘이 작동하는 기본 원리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권력을 빼앗아 갔다. 그 권력을 다시 찾아 돌려주겠다.'는 거예요. 이 시대의 좌파 포퓰리즘은 이 원칙 에 따라 충실히 움직여 왔어요. 이들은 권력에서 배제되어 있는 자라면 누구나 연대해야 하는 존재로 여기죠. 반면 우파 포퓰리즘은 '소수의 엘리트'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제3의 집단을 설정해요. 여기엔 이민자, 외국인 노동자, 난민, 여성 등이 포함되죠. 우파 포퓰리즘은 소수의 엘리트들이 자국 내 다수인 '우리, 평범한 사람들' 대신 이 '제3의 집단'에 관심을 더 많이 쏟는다고 주장해요. 이들이 '평범한 우리'보다 더 많은 권리를 누리는 것은 부당 하다는 여론을 조장해 지지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거예요(p. 161). 쉽게 말해 사회의 최약층인 '더 배제된 자'를 이용해 평범한 이들로 구성된 '덜 배제된 자'들을 결집하는 방식이죠. 트럼프와 브렉시트가 바로 이런 우파 포퓰리즘의 작동 방식에 기댄 대표적 사례예요(p. 162). 능력주의, 2020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말 중 하나예요. 영어로는 '메리토크라시 meritcracy'라 부르는데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Michael Young이 만든 용어죠. 라틴어의 meritum에서 온 meri(훌륭함)라는 말과, 그리스어의 kratia에서 유래한 cracy(통치) 라는 말을 조합해 만든 단어로, 글자 그대로 옮기면 '훌륭함이 통치하는 정치체제' 정도로 옮길 수 있겠네요. 1958년에 발간된 마이클 영의 『능력주의의 부상The Rise of Meritocray』에서 이 표현이 처음 쓰였죠. 영에 따르면, 능력을 중시하는 발상은 신분 사회였던 산업혁명 이전에도 존재했다고 해요. 생각해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p. 264) 신분을 넘어 능력 있는 사람을 등용하려는 노력은 항상 있었죠. 세종 때 장영실 같은 인물이 바로 이 능력주의 때문에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대표적인 예죠. 그런데 왜 민주주의 시대에서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진 걸까요? 신분 말고 대체할 만한 다른 것이 없기 때문에?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능력주의의 부상』에서 영이 도전적으로 던지고 있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민주적 사회에서 '하층계급과 상층계급을 가르는 심연이 더욱 넓어지는 데도 왜 사회는 이토록 안정을 유지하는가?' 영의 대답은 명쾌해요. 지금의 이 불평등은 '능력에 따라 계층이 갈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공유된 가치 아래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회가 안정을 유지 한다는 거예요.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실패는 온전히 개인의 능력이 모자란 탓이라 여겨지죠. 그래서 개인의 실패를 두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탓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아요. 사회를 탓하려 목소리를 크게 내는 일은, 오히려 '능력 없는 자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광고하는 것과 같아요.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불만을 터뜨리지 않고 침묵하게 되죠. 죽음을 택할 만큼 가난해도 사회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착한 빈민들' 이야기는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 만들어지는 거예요. 이런 상황 앞에 영은 다시 질문을 던져요. 만약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면 '우리 사회의 구성원 중 누군가의 능력이(p. 265) 모자란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입증된다 하더라도, 왜 그것이 재화와 권력을 적게 할당받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가?' 영의 문제 제기는 일리가 있어요. 역사를 돌이켜 보면, '평범한 사람들'이 엘리트들보다 능력이 뛰어나서 민주주의가 정당성을 획득한 것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평범한 이들을 주권자로 내세우는 민주주의는 플라톤 시대부터 엘리트들이 경멸해 마지않던 체제였어요. 그런데 왜 민주적인 사회에 살고 있는 평범한 우리들조차, 능력에 따라 자원과 권력을 할당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영은 이렇게 답해요. '능력주의란 평등을 받아들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노골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불평등이란 모순을 비켜 가기 위해 작동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다.' 평등을 추구하는 사 회에서 '능력에 따른 불평등은 정당하다. 혹은 제한되지 않는다.' 고 공개적으로 말함으로써 권력을 행사하는 자에게 마땅한 자격을, 권력 행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겐 저항 없이 그들의 지배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여기에 더해, 영은 이런 능력주의가 새로운 계층을 만들어 내고, 새롭게 등장한 계층 사이에 높은 벽을 만들어 결국 계층 이동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하죠. 여기에 이르면 우리는 깜짝 놀라게 돼요. '아니 능력주의가 사회적 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로막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능력주의를 불평등의 해결책처럼 말하고 있는데, 오히려 그게 불평등을 만(p. 266)들어 내고 있다니 놀라울 수밖에요. 여기에 이르면 이런 의심도 들 것 같아요. '이런 주장은 마이클 영만이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럼 또 다른 예를 볼까요?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대니얼 마코 비츠Daniel Makovits 역시 『능력주의의 함정 The Meriocracy Trap』 (2019)에서, 당대의 불평등은 능력주의가 강력하게 작동하면서 만들어진다고 주장해요. 그 또한 능력주의가 불평등의 해결책이 아니라 원인이 라는 마이클 영의 주장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마코비츠는 1950~60년대 서구 사회에서 능력주의 혁명이 일어난 시기에 주목하며, 이때 일어난 가장 큰 변화 하나를 지적해요. 바로 엘리트 계급이 자식에게 신분과 재산 대신 '능력을 만들어서' 물려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죠.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건 능력을 '만들어서' 물려준다는 거예요. 우리가 엘리트라고 부르는 이들은 오랜 기간 교육을 받으며 능력을 갖춰 나가요. 일례로, 마코비츠는 미국을 건설할 당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이를 35세로 규정했음을 상기시키죠. 그런데 요즘엔 35세에도 학교 교육을 받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그는 지적해요. 자신이 예일대에서 경험한 일을 그대로 옮겨 놓은 건데, 저도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똑같은 현상을 목격하고 있어요. 수많은 학생들이 대학 교육을 넘어 대학원으로 진학하고 있는 실정이죠. 앞으로 엘리트가 되려면 박사 학위가 적어도 2개 정도는 필요하다는 농담이 현실이 되고 있어요. 당장 우리나라 만 봐도 3~4세에 조기교육을 시작하고 한글도 모르는 5~6살 아이들에게 영어로 글 쓰는 법을 가르치죠. 엘리트 부모들은 아이(p. 267)들의 교육에 많은 돈을 쏟아붓는 걸 주저하지 않아요.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자녀에게 능력을 '만들어서' 물려주려 하죠. 크리스티아 프릴랜드Chrystia Freeland는 『플루토크라트Plutocrats』(2013), 번역하자면 '부로 지배하는 자들'이라는 책에서, 소수의 엘리트 부모들뿐만 아니라 중산층 부모들까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자녀들의 교육에 쏟아붓고 있다고 이야기해요. 왜 그럴까요? "대도시에서 상위 0.1%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중산층 부모들이 엘리트 교육이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세계의 모든 대도시에서 유치원 때부터 엘리트 교육을 향한 적자생존 투쟁이 시작되는 건 바로 이 때문이죠. 많은 연구, 통계 자료들도 교육이 주도하는 승자독식 체제에서는 18세에 해당하는 인구의 1%만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1% 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어요. 부모들이 이런 현실을 체감하며 살고 있기에 교육비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자녀들에게 돈을 쏟아붓는다는 거예요. 결국 이런 현실 속에서 '능력'이란 것 또한 엘리트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세습되며 계층 이동을 가로막 게 되는 거죠. 이런 식으로 능력주의가 퍼져 나갈 때 민주주의 사회는 두 가지 문제를 마주하게 돼요(p. 268). 첫째, 중산층이 무너진다. 둘째, 혐오와 차별이 퍼지며 구성원들 간의 연대가 가로막힌다. 우선 계층 이동을 가로막는 문제부터 살펴볼까요? 여러분은 이미 디지털 기술 시대가 양극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을 저와 함께 살펴보았어요. 소수가 부와 소득, 명예를 독점하는 양극화 시대에 능력주의가 최상의 가치가 된다면, 소수의 능력 있는 자들에게 더 많은 부와 소득, 명예가 몰리게 되는 건 자명한 이치겠죠. 이건 결국 소득 수준이 20~80%에 속하는 중산층에게 부와 소득, 명예가 제대로 분배되지 않는다는 것과 같아요. 앞에서 보았지만 우리나라의 하위 50%가 전체 부의 1.7%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50~80%에 속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중산층일 수가 없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민주주의의 기반은 중산층이잖아요. 상위계층에게 민주주의란 자본주의에서 최대한 성과를 얻고자 하는 자신들을 제약하려 드는 귀찮은 것일 수 있고, 하위계층은 먹고 살기 바빠 자유와 평등 같은 사회적 가치에 관심을 기울일 틈이 상대적으로 적죠. 이런 상황에서 능력주의가 중산층이 받아야 할 혜택을 줄이고 소수가 자원을 독점하는 이데올로기로 정당화된다면 당연히 중산층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도 위험해질 수 밖에 없는 거예요. 더 큰 문제는 노력주의로 변신한 능력주의가 사회의 다수를 능력도 없고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 자들로 만들어,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로 전락시킨다는 점이에요. 마이(p. 269)클 영은 능력주의가 '지능(I.Q)+노력(effort)=능력(merit)'이라는 등식 아래, '개인이 지닌 능력'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개인의 성취를 좌우하는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발상이라고 말해요. 언뜻 공정해 보이는 이 공식에는 결정적인 함정이 있어요. '지능'이란 게 타고난 운에 좌우되는 유전적 요소와 관련 있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공정'을 말하며 능력을 가장 우선시하는 이유는 '금수저' 나 '부모 찬스'같은 것들이 '출생'이라는 운에 좌우되기 때문이잖아요. 그렇다면 절반이 유전이라는 운에 좌우되는 능력주의는 이미 공정하지 못한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능력주의에 대한 주장을 보면 대부분 자신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지능이라는 '유전적 요소'는 은연중에 사라져 버리고 오로지 '노력'만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이렇게 능력주의가 노력주의로 변신할 때, 진입 장벽을 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취급받게 되죠. 결국 능력주의는 사회적 다수를 능력 없는 자들로 만들어 무기력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게으른 자들로 취급하며 도덕적 수치심까지 안기는 거예요. 이를 두고 마이클 영은 이렇게 말해요. "능력을 결정적 요소로 보는 만연한 인식 때문에 아무 능력도 없는 다수가 무기력한 나락에 빠진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회학자로서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셈이다. 이렇게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사회에 제대로 항의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분노를 돌리게 되며, 결국 무기력해지면서(p. 270) 더더욱 확실하게 절망에 빠진다."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을 무기력과 자기혐오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우리가 공정하다고 말하는 능력주의의 실체인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게 있어요. 바우만은 자기혐오를 두고 이렇게 말해요. '누구도 자신에 대한 분노를 끝까지 자기 안에 담아 둘 수는 없다. 그 분노는 바깥으로 분출되게 되어 있다. 문제는 그 분노의 대상이 자신을 절망에 빠뜨린 바로 그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자기혐오가 타자혐오로 이어진다는 거죠. 더 최악인 건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미워하고 혐오하게 되는 거예요. 결국 능력주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연대 대신 능력 없는 자는 차별 받아도 괜찮다는 비뚤어진 의식을 키우고, 평범한 다수를 배제해 버림으로써 그들이 수치심과 혐오를 느끼게 만들고 있는 거죠. 이런 점에서 2001년, 토니 블레어가 '영국을 능력주의 사회로 만들자.'고 역설했을 때 『가디언』에 실린 마이클 영의 반응은 의미심장했어요. "비판의 의미로 만든 이 용어가 찬사의 말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 실망스럽다." 영이 애초에 이 용어를 만들었던 의도가,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등장한 능력주의가 알고 보면 불평등의 또 다른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블레어는 몰랐거나 무시했던 거죠. 우리가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한다면, 불평등의 문제를, 공정성의 문제를 능력주의로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 것 자체가 모(p. 271)순이 아닐까요?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은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연대할 때 열리는 게 아닐까요? 코로나19라는 위기의 시대는 평범한 우리들에게 서로 다가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어요. 이런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더욱 고립될 거예요. 디지털 장비들 을 사용할 돈이 없거나 그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거예요. 이 순간에도 기업은 위기를 핑계 삼아 더 많은 자유를 요구하며 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사회적 안전망 없이 노동 현장에 내몰린 이들은 더욱더 소외되겠죠. 이런 환경이 지속되고 능력주의가 더 심하게 기승을 부린다면, 우리의 연대는 점점 더 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지금 우리는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어요. 질병이 우리가 행동 할 수 없게 발목을 묶는다면 해결책은 제도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모든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망을 세우고 사회적 연대를 강화해 나가는 것이 그 첫걸음이지 않을까요?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통해 우리는 이미 첫 경험을 했어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위기에 처했을 때 누가 내 곁에 있는지 확인하려 하죠. 손 내미는 자와, 그 손길이 필요한 자는 한배를 타고 있는 것과 같아요. 제2 기계 시대가 그어 놓은 모호한 노동의 경계 위에서 각자도생의 윤리로 분열된 사람들에게 그리고 코로나19라는 한 번(p. 272)도 겪어 보지 못한 거대한 위기 앞에, 국가가 동등하게 내미는 보호의 손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모두가 알다시피 위기의 시대엔 배제되는 자들이 더 늘어 날 수밖에 없어요. 비상구를 찾아 나가는 길에 어떤 이유로든 뒤에 남겨진 자들은 더 이상 동료 시민들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 없게 되죠. 우리가 이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불신으로 분열된 사람들 사이에, 동료 시민으로서 갖는 사회적 신뢰가 새롭게 재구성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결국 보호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야말로 경계의 불확실성을 마주하며 대다수가 불안에 떠는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일 아닐까요? 이 일을 과연 능력주의가 해 낼 수 있을까요? 평범한 우리들이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길은, 첫 번째도 연대, 두 번째도 연대, 세 번째도 연대가 아닐까요? 그런 연대가 가능하게 제도적 보호 장치를 만들고, 그 제도가 다시 연대를 강화해 나가는 선순환. 비록 지금은 우리가 서로 거리를 두고 있어야 할지라도, 우리가 내딛을 수 있는 첫걸음은 바로 서로의 손을 맞잡는 '연대'일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들, 이웃들, 아이들을 떠올려 보세요. 사랑하는 이들에게 능력이란 덕목을 요구하는 대신, 보호라는 제도의 우산을 씌워 주세요. 그리고 그 우산 아래서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퍼붓고 있는 이 시대의 위기들을 함께 견뎌 냈으면 해요. 어쩌면 우(p. 273)리의 어깨마저 비에 젖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차별 대신, 혐오 대신, 각자의 가슴속에 서로를 보호하려는 마음을 품는다면, 맞닿은 마음의 온기가 여러분을 지켜 줄 거라 믿어요. 이런 맘으로,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을 씁니다. '위기에 뒤로 남겨지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라.'(p.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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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5
  • 【북토크310】 한국은 강고한 계급사회이다
    세습(世襲)은 “한 집안의 재산이나 신분, 직업 따위를 대대로 물려주고 물려받음”을 말한다. 소위 말하는 상류층 - 단지 돈이 많은 계층이다 - 뿐만 아니라 중산층도 세습한다. 이는 주로 교육에 대한 지원과 투자를 통해 이뤄진다. 그럴수록 하류층 - 단지 돈이 적은 계층이다 - 은 중산층에 진입하기가 어렵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나기는 어렵다. 개천이 복개공사됐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다수의 젊은이들을 절망하게 한다. 어찌할거나? 10퍼센트만이 번듯한 일자리를 갖는다 20대 가운데 노동시장의 '내부자'로 진입하는 데 성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번듯한 또는 '괜찮은 decent' 일자리를 초임 기준 월 300만 원 이상을 주는 일자리라고 한다면, 2017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연 7만 2,000명만이 내부자라고 할 수 있다. 이(p. 38)는 동일 연령에서 고등학교 졸업 이상 학력을 가진 사람의 11.4 퍼센트 정도로 추산된다. 단순 비교가 어렵긴 하지만 전체 취업자(자영업자 포함) 가운데 1차 노동시장의 종사자라고 추정되는 비율인 16.5퍼센트보다 턱없이 낮은 수치다. 지금의 20대들은 이 전보다 훨씬 더 중산층이 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p. 39). 결국 지금의 20대는 '번듯한 일자리'가 줄어드는 가운데 '성 안'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을 이전 세대보다 더 치열하게 벌여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 경쟁 과정에서 성별, 계층별, 학력별, 거주 지역별로 누가 더 '기회'를 많이 잃는지 그리고 누가 '선방'하는 지에서 그들의 운명은 갈린다. 중산층 또는 중상위층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제 '명문대' 졸업장을 요구하는 고급 사무직 또는 전문 기술직 일자리를 얻어야 한다. 90년대생의 세계에서 부모 세대가 대졸 사무직으로 중산층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 자녀 세대인 그들이 명문대 졸업장을 받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수준으로 어려워졌다. 예전처럼 지방 국립대를 졸업해서 지방에 위치한 대기업에 취직해 중산층 대열에 합류하거나 또는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p. 86) 전자 산업 대기업 생산직으로 서울의 대졸 화이트칼라 부럽지 않은 고소득을 얻는 삶의 기회는 오늘날 20대에게는 거의 존재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p. 87). 여러 차례 언론 기사로 알려졌다시피 사교육 산업은 80년대 학번 운동권들의 호구지책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그들이 오늘날의 대치동을 만들었다. 시작은 1992년 서울 시내 중고교 재학 생의 학원 수강 허용과 1993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실시였다. 「신동아」 2018년 10월호의 '사교육 철옹성 대치동' 기사는 수능이 "기존의 암기식 학력고사와 달리 학생의 사고력, 논리력, 비판 능력 등을 평가 대상으로 삼"으면서 "대학 시절 고전과 사회과학 서적을 읽으며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토론과 세미나를 반복한 운동권 출신에게 최적화된 입시 시스템"이 만들어졌다고 서술한다. 대치동이 한국 교육산업의 실리콘밸리 같은 입지를 확고히 한 결정적 계기는 2000년대 초에 이루어진 '쉬운 수능'과 '논술 강화'였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상위권 대학이 그나마 변별력 있는 논술 비중을 늘리면서 전직 운동권 출신들이 대학교 재학 당시 '세미나(사회과학 서적을 같이 읽고 토론하면서 의식화하는 학습 과정)' 하듯 학생들을 가르치는 논술학원이 급격히 세를 불려나갔다. 대학의 수시 전형 확대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치동 논술(p. 128) 학원계의 터줏대감으로 불렸던 장민성 씨의 유레카논술학원처럼 프랜차이즈를 내며 기업화를 시도한 곳이 생겨나던 것도 이 시점이다. 손주은, 이범, 故 조진만 씨 등이 2000년에 세운 메가스터디는 스타 강사와 인터넷 동영상 강의의 확산에 힘입어 2000년대 초중반 급성장한다(p. 129). 흔히 이야기하는 '집안 좋은 애들이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다'는 속설은 정말로 참이다. 양육 환경이 좋은, 즉 부모가 경제력이 있고 학력이나 직업 등 사회적 지위도 뒷받침되는 계층 의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는 인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비인지적 능력도 다른 계층의 자녀들보다 더 뛰어나다. 그리고 비인지적 능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대치동 학원가 등을 통한 교육 투자 는 결실을 맺는다. 노력은 실력이 아니다. 계층이다(p. 144). 정상가족 형성 과정에서 부모의 지원이 절대적이라는 점은, '독립적 20대'라는 개념이 더는 불가능하다는 걸 시사한다. 특히 중산층에게 '가족주의'는 정상가족의 재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존재다. 자신의 정상가족을 구성할 수 없는 취약한 경제적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현재의 가족(주로 부모)이 제공하는 자원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따라서 누군가의 표현대로 오늘날의 20대는 "가족을 만들 수도, 가족을 떠날 수도 없는" 개인이다. 그들은 가족을 만들어야 하는 사회적 압력에 직면해 있으며, 그 과정에서 현재의 가족과 미래의 가족 모두를 의식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가족을 만들려고 시도하든 그 시도를 단념하든 언제건 현재의 가족에 경제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이는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을 전제로 하는 현재 20대 담론의 주된 접근방식 과 달리, 재생산을 위한 보급기지 또는 기본적인 사회적 안전망의 제공처로서 그들에게 가족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중산층에서는 동류혼(같은 계층끼리 결혼하는 행위)이 많아 졌는데, 이는 결혼이 가족 단위의 계급 재생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4인 단위 핵가족을 꾸리는 것 자체가 '울타리' 안에 있는 중산층의 특권적 행위가 되고 있다(p. 154). 자동차 산업에서 고용 증가가 주로 부품을 만드는 하청업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모듈화의 영향이다. 조성재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2년 보고서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완성차 부문의 고용은 외환위기 이전과 거의 동일한 수준이며 부품 부문의 고용 확대에 의해 자동차산업의 성장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또 현대차가 2000년대 중반 해외 생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부품 부문 고용 확대의 원인이다. 국내 생산설비를 늘린 것은 1996년 현대차 아산공장 건설과 2013년 기아차 광주 공장 증설이 마지막이다. 해외에서 생산하는 완성차용 부품 가운데 다수가 국내에서 만들어진다. '귀족 노조'라고 비난받기까지 하는 완성차 조립공장 정규직 일자리가 2000년 이후 뚝 끊긴 건 노조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 모듈화는 품질 개선과 생산 효율 개선을 위해 현대차 경영진이 내린 결정이었다. 또 해외 공장 증설도 현대차의 해외 진출과 현대차의 주력 시장이 한국에서 먼 미국이나 유럽이었기 때문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하지만 50~60년대생이 주력이었던 현대차 생산직 노조의 '전투적 경제주의'가 자동차 공장의 탈숙련화와(p. 210) 그에 반대급부처럼 이루어진 블루칼라 기능공 역할 축소- 화이트칼라 엔지니어 역할 강화를 가속화시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블루칼라에서 '번듯한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길이 끊기게 된 것이다(p. 211). 지금의 문제가 '세습 중산층의 독주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한다면, 세대 간 양보론과 교육의 공정성 확보론만큼 그들의 영향력과 독주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세대와 공정 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여 '세습'이라는 진짜 문제를 숨기면서 적당히 양보하는 척하며 실질적인 손실을 보지 않는 노회한 86식 정치 투쟁의 구호가 한국 사회를 뒤덮는 양상이다. 문제는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그대로 관철되고, 유지되는 2019년 한국 사회의 시스템 그 자체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양보와 공정이 아니라 의무와 공평이 아닐까. 시작 단계에서부터의 공평과 그것을 위한 세습 중산층의 경제적• 사회적 의무 부담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가장 분명하게 요구해야 할 것 중 하나는 기회의 평등 equality of opportunity 이다. 단순히 입시제도의 공정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수준의 교육 기회와 능력 배양의 기회에서 하위 90퍼센트도 상위 10퍼센트 수준의 기회를 갖도록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OECD, IMF, 세계은행 등에서 나오는 관련 보고서에서 으레 등장하는 표현이라 식상해 보이지만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는 근본적인 수준에서 기회의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급진적인 주장이 가능해 보인다. 가령 기회의 평등의 중요한 구성 요소 중 하나인 영유아기에서부터 공공 보육이나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p. 291)은 교육을 통한 계층 재생산이 매우 어린 시기부터 이루어짐을 보일 수 있으며, 교육 과정이나 교육 재정 구조 개편을 촉발시킬 수 있다. 두 번째는 사회에서 보장해야 하는 최소 수준 social minimum에 대한 합의와 그에 따른 적극적인 세원 확보다. 노동시장의 변화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주고,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할 수 있게 부조하자는 것이다. 이는 그들 의 자녀들이 '다음 세대'에서 벌어지는 경쟁에서도 영영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중요하다. 또 재원 마련을 위해 현재 노동시장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수혜를 받고 있는 상위 10퍼센트 중상위층에 대한 과세 강화가 필요하다. 심상정 의원실이 지난 2018년 9월에 공개한 2016년 근로소득 1000분위(0.1 퍼센트 단위)별 급여와 결정세액(실제로 납부한 근로소득세액)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근로소득 상위 10퍼센트에 해당하는 노동자의 급여는 연 7,200만 원이었는데 연말정산 등을 감안한 실효세율은 5.76퍼센트에 불과했다. 실효세율이 10퍼센트를 넘기 위해서는 연 1억 500만 원 이상을 벌어 상위 3.2퍼센트 내에 진입해야 했다. 흔히 이야기되는 상위 1퍼센트에 해당하는 노동자는 연1억 4,700만 원을 버는데, 그중 15.6퍼센트를 세금으로 냈다. 결과의 불평등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상위 1~10퍼센트를 대상으로 걷을 여력이 충분한 셈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불평등이 상위 1퍼센트와 나머지 99퍼센트(p. 292)의 격차뿐만 아니라 상위 10퍼센트와 나머지 90퍼센트의 심각한 격차 문제에 기인한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는 세습 중산층은 그 격차를 '능력의 차이'로 포장하며, 자신의 자녀들에게 적극적으로 계층 지위를 물려주고자 노력한다. 그 불평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생하고, 사회적 계층 이동을 가로막는지 정확히 인식하는 데에 해결의 단초가 있을 것이다(p.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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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5-12-05
  • 【북토크309】 능력주의는 공정한가?
    세상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는 모습이 다르다. 그런데 과연 그 개인의 능력이라는 것이 차별의 근거일 수 있을까?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능력주의의 이면을 다루고 있다. 능력주의의 한 평가 방식이 시험이다. 한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정당한가를 이 책은 묻고 있다. 기존의 생각을 흔드는 관점이라 좋았다. 허구적인 능력주의의 논리 능력주의를 이루고 있는 논리들은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다. • 개인에게 속하는 고유한 능력(지능/재능과 노력 또는 성취)이 존재 한다. • 능력은 시험과 같은 적절한 절차로 정확하게 측정하고 평가할 수(p. 19)있다. • 현대 사회는 (학교교육 등을 통해) 동등한 출발선, 즉 성장과 능력 발휘의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한다. • 각자의 능력은 오직 개인의 책임이다. • 사회의 불평등과 차등은 (대부분) 능력의 차이에 따른 것이다. • 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고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는 것, 즉 능력에 따른 차등 대우는 정당하고 바람직하다. 이러한 명제들은 능력주의에서는 명백한 진실이거나 상식인 것 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하나하나 따져 보면 결코 생각만큼 자명하지 않으며, 현실과 매우 어긋나는 허구적인 명제인 경우도 많다. 능력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들부터가 그러하다. 먼저, 게임 캐릭터의 설정 수치마냥 개인에게 고유한 능력이란 존재할 수 없다. 유전적 요소나 소위 타고난 재능을 인정하더라도, 유전자의 요소가 발현되는 것이나 어떠한 능력이 발달하는 것은 성장 환경을 비롯하여 사회 경제•문화적 배경에 크게 좌우된다. 능력을 발휘하는 것 역시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일상적으로도 같은 사람이 컨디션에 따라, 누구와 같이 호흡을 맞추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성과를 보이는 사례들을 접하지 않던가. 또한 무엇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능력'인지 자체가 사회 상황과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서도, 능력은 본질적으로 사회 제도(p. 20)와 구조의 영향을 크게 받는 개념이다. 능력은 환경적 ·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온전히 개인에게 속한 능력'이란 환상이다. 그러므로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시험이나 절차 또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잘 준비된 평가 도구들은 어떤 상황에서의 한정된 영역의 능력은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그 사람의 능력을 정확하게 평가한 결과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측정 결과가 촘촘하고 '변별력' 있을수록 더 그렇다. 우리는 인지 능력을 평가하는 지필 시험 성적과 실제 작업 성과 사이에 괴리가 나타나는 사례를 자주 겪지 않던가. 평가의 방식이나 기준 자체에 내재된 차별, 편향이 유불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규모가 큰 회사에서 표준화된 성과 평가에 의해 급여를 정한 경우에도, 여성과 소수 인종은 편견 때문에 백인 남성보다 인상 폭이 더 낮게 정해졌다는 사례도 있다. 우리 사회가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있고 능력의 차이도 불평 등도 모두 개인의 책임이라는 믿음은 어떨까? 한국 사회를 비롯해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기회의 평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사교육비의 격차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요소는 물론,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는지, 주거 환경이 어떤지 등에 따라 배움의 기회부터 건강까지 격차가 생긴다. 개인의 노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더 높은 성취를 목표(p. 21)로 노력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차등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현실의 격차와 불평등은 능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인맥이나 상속 등의 요소를 더하면 말할 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능력에 따른 차등 대우는 과연 정당하고 바람직한 것일까?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이 더 많은 보상과 높은 지위를 가지는 것은 정당한가? 비록 우리가 이런 원리에 아주 익숙하긴 하나, 이는 그 자체로 당연한 것은 아니다. 흔히 나오는 것은 '더 많이 노력한 사람에게 더 많이 보상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실제로는 노력의 과정이 아닌 시험의 결과물을 기준으로 차별한다는 점에서 능력주의의 실상과는 다를뿐더러 앞뒤가 바뀐 논리이기도 하다. 개인이 어떤 노력을 했다고 해서 사회가 반드시 보상을 해 줘야 한다는 법은 없다. 교육을 예로 들면 만일 열심히 공부하며 노력했다면, 그 보상이란 성장하고 변화한 자기 자신 자체이다. 노력하니까 보상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시험에서 더 뛰어난 능력을 입증하면 더 많이 보상한다는 시스템이 있기에 사람들이 그에 맞춰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나 기업 등은 원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따르고 역량을 개발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보상을 약속 한다.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을 우대하는 방식은 더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이 직위와 결정권을 가지는 것이 사회 전체에 이득이 되기 때문에 정당화된다. 가령 중국에서 시작된 과거 제도는 인재를 선발 하여 통치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능력주의의 정당성은 바(p. 22)로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것에서 나온다. 기업의 경우라면 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선발하고 승진시킴으로써 기업의 이익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많이 노력한 사람에게 보상함으로써 노력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라는 논리 역시, 다수의 사람들이 경쟁하고 노력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이득이 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능력주의는 공정성과 개인주의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평가하고 선발하는 측, 국가나 기업 등의 이익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능력주의가 우리 사회 전체에,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로 바람직한지를 얼마든지 따져 물을 수 있을 것이다(p. 23). 능력의 측정 또는 입증 과정, 시험 능력주의는 필연적으로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단'을 요구 한다. 앞서 말했듯이 능력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고 개인의 전적으로 고유한 능력이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능력주의는 능력에 따른 차등적 보상을 약속하기 때문에, 개인의 재능이나 잠재적 능력, 최소한 특정 시점의 개인의 능력을 측정하고 가시화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능력주의는 지능 검사 등의 평가 도구와 함께 발달해 왔다. 능력주의의 신뢰성은 객관적이라고 믿어지는 평가 시스템 -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주요한 방식으로는 시험, 특히 인지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지필 시험 -에 의지한다. 개인이 홀로 시험지 앞에 앉아서 답을 적어 내고 채점을 받는 과정은 그 자체가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개인의 능력을 평가한다는 믿음을 주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시험은 "교육할 의무는 묻지 않고 응시자 개인(p. 26)이 학습한 결과만 따지"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개인의 노력과 능력을 묻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부합한다. 이 때문에 능력주의를 강화하려고 할수록 시험이라는 방식도 강조되기 쉽다. 시험은 한국 사회의 불투명성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점수화되는 시험, 특히 지필 고사를 거치지 않은 채용은 그 자체로 특혜나 비리가 있었으리라는 의혹을 받곤 한다.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논거 중 하나는 기간제 교사들 중 일부가 인맥에 의해 채용되었으리라는 의심이었다. 일부 학교에서의 학교생활기록부 기록 과장이나 시험 부정 의혹 사건은 '대입 수능 비중 확대' 주장의 근거가 된다. 의심과 불신 때문에 비리나 주관이 개입할 여지를 최소화한 방법인 시험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시험이야말로 가장 공정하고 확실하며, '흙수저'인 개인도 노력 하여 승리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신화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각종 통계나 연구가 이를 부정하고 시험 역시 가정 환경이나 배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지적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어쨌건 승리하고 성공하는 개인이 존재하고 자신이 그 승리자가 될 가능성이 0%가 아니라면 실패는 자기 책임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결국에는 학교는 물론 노동 영역에서도 '공정한 시험'에 의한 평가와 선발이 가장 정당한 방법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시(p. 27)험의 기회가 평등을, 성적에 따른 보상이 권리를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 사회에서 득세하고 있는 사고방식을 요약하면 이렇지 않을까. '존엄과 권리를 주장하고자 한다면, 너의 자격과 능력을 증명하라. 되도록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험으로' 이를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고 나서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시험을 준비하느라 고통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한국 사회의 능력주의 담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력' 그 과정에서의 고생과 인내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개개인에게 노력과 인내를 강조하기 때문일 터이다. 그래서 '공정한 능력주의'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서사를 들여다보면 보상 심리와 인지 부조화적 태도가 곧잘 발견된다. 자신들이 이렇게 노력하고 고생했으니 마땅히 그러한 고통에 충분한 의미가 있어야 하며, 누군가가 그런 노력과 고생 없이 결실을 얻(으려하)는 것은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것 이다. 그러나 이처럼 노력과 고통에 대한 보상을 이야기하는 경우 역시도 능력주의 논리의 자장 아래 있음은 분명하다. 가령,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하면서 쌓은 경험과 경력은 물론,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감수하고 일한 고통과 인내 또한 합당한 대가로 인정받지 못 한다. 오직 시험이라는 능력을 입증하는 과정에 연결된 노력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을 천시하고 지능•학력을 숭배하던 관습 그리고 뿌리 깊은 '자기계발'의 논리와도 연관되어 있을 터이다(p. 28). 교육 문제의 해결은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와 더불어 가야 한다. 불공정에 항의하는 분노의 목소리가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경성제국대학 입학 시험의 불공정성에 항의 하는 언론 보도가 있었고, 1961년 쿠데타 직후에도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집권 초에도 입학 비리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문제는 불공정에 분노하는 걸 넘어 불평등 해소를 추구하는 것이다. 신경과학자이자 의사인 킴블리 노블은 한 가정의 소득이 아이의 뇌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며 저소득층 가정에 소득을 더 보장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하였다. 경제적 불평등은 삶의 모든 영역에 불평등을 낳는다. 가난 속에서도 능력을 한껏 펼치는 일은 전교 꼴찌가 어느 날 갑자기 서울대 의대에 합격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직장 규모와 학벌, 성별, 지역 등 유무형의 암묵적인 기준으로 층층이 차별화된 임금 제도를 교정해서, 전체 사회에서 노동자의 몫을 높이며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고 평등한 삶을 보장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더불어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여, 혹시 직장을 갖지 않았더라도 인간으로서 죄악은 아니게 해야 한다. 직장을 갖지 않았어도 인간이 할 일은 차고 넘친다. 독립운동가들이 어디 직장을 제대로 가진 적 있었던가. 인간 사회의 변화는 사실상 직장 밖에서 더 많이 만들어져 왔다. 그러려면 우선 단기적으로는 복지의 기반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복지 정책은 개인별 복(p. 61)지보다 소속 직장별 복지에 가까워서 열악한 직장일수록 복지조차 매우 빈곤하다. 낮은 임금을 받는 사람이라고 그들의 휴식과 임신·육아마저 헐값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모든 시민들이 공적 활동의 기회를 갖는 것이다. 누구나 희망한다면 몇 년쯤 공공 기관에 근무하거나 공적 활동에 참여하는 제도를 만들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그러면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되고 삶에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데 참여하게 될 것이다. 사회 전체의 공공성도 높일 수 있다. 세금 내고 4~5년에 한 번씩 하는 선거로 끝나는 '민주 공화국'이 아니라, 공적 활동에 직접 참여할 기회가 한평생 동안 얼마 동안은 있는 사회, 그래서 모두가 공적 시민이 되고, 공적 시민으로서 기본금과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국가를 상상해 본다. 당장 실현 될 리는 없으나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만약 이런 상상이 작동하는 사회라면, 듀이와 파커 파머가 강조했듯이 학교교육은 더욱 중요한 공적 사회 기구가 되어야 한다. 학교교육은 시민교육을 강화하여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비판하거나 수용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시키고 직접 시민으로서 적절한 제도적 제안 과 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교육 기관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p. 62). 결론적으로 아시아의 시험 문화는 빠른 산업화 전략에 따른 엘리트의 양성, 민주주의에 대한 희생 속에서, 근대화가 전근대적 신분의 해체가 아니라 '나도 노력하면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평등'으로 변형되면서 강력해졌다. 따라서 아시아의 시험 문화는 교육 현상이라기보다는 정치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시험 문화는 사회 상황이 왜곡되면서 형성된 지위 상승의 평등주의이고, 사회 진화론적 관점에서 개인적 적응과 지위 상승 전략을 추구하는 연대 없는 평등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다. 특히 이들 나라(p. 78)에서 진행된 불균등한 산업화 과정 속에서 교육을 통한 지위 경쟁의 행위 주체는 개인이 아닌 가족이 되었다. 그래서 물질적 부와 사회적 지위 획득을 둘러싼 격렬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가족 수준의 자원 결속과 지원, 동원 체제를 만들었다. 이러한 현상이 구조화된 한국 등의 나라에서는 특별히 '헬리콥터 맘'과 같은 현상으로 대표되는 온 가족이 동원되는 입시 문화가 나타난다. 문제는 이처럼 가족이 동원되는 평가 집착적 시험 문화가 사회적으로 보다 좋은 삶을 위한 연대를 해치고 우리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비도덕적 가족주의amoral famlism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아시아의 시험 문화를 특징짓는 가족 교육열이며, 지위 상승을 향한 열병이 국가 차원의 종교 의식처럼 치러지는 이유이다. 요컨대, 신분제적인 직업 위계와 불평등, 능력주의적 교육과 시험이 시험 문화를 초래하는데, 이러한 시험 문화는 오히려 개인의 능력이 아닌 가족의 배경과 자원이 동원되는 양상을 띠게 되며 능력주의의 발현을 저해한다(p. 79). 학벌없는사회 운동은 학벌이 전근대적이고 봉건주의적인 문벌 시스템과 유사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학벌과 패거리 문화를 사회적 합리화와 합리적 개인주의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그래서 연고주(p. 107)의, 정실주의, 파벌주의에 대한 대응 논리로 개인주의, 합리주의, 능력주의를 강조했다. 하지만 '동문'으로서의 '학연'이 다 '학벌'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 IMF 사태 이후의 한국 사회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모든 공동체적 관계와 사적 친분과 연결을 통한 사회 안전망이 다 무너지고 각자도생의 개인주의가 새로운 사회 윤리로 구축되고 있던 시기였다. 가족, 친구, 이웃 관계가 다 무너지고, 개인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의 능력밖에 없는 시대가 도래했던 것이다. 그런 시대가 왔음에도 학벌없는사회는 '학벌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말하곤 했다. 우리가 꿈꾼 것은 학벌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건강한 시민사회'였고, 학벌이 아니라 능력으로 대접받는 것이 공평하다 생각했다. 이런 화법은 결과적으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 측면이 분명 있다. 학벌주의는 능력주의에 의해 패퇴될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평등주의에 의해 무너졌어야 했다. 능력주의는 민주교육•평등교육의 이념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었음에도, 능력주의가 학벌주의의 반대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점은 우리의 한계였고 오류였다. 당시에도 '스펙'이라고 불리는 사회 현상은 문제가 되고 있었고, 성적 경쟁이 스펙 경쟁으로 변질된 것을 비판했지만, 그것이 총체적인 사회 통치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위력을 발휘하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 2016년 해산까지 학벌없는사회의 경험은 민주화 이후 한국(p. 108)사회의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재편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투쟁과 패배, 한계와 오류의 경험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p. 109). 현재의 계급 위치를 지키려면 결국 지금과 같은 불평등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사람들에겐 사회의 전면적인 변화가 희망이 되지만 지킬 것이 있는 사람들에겐 급격한 변화는 불안의 요인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시장 질서와 자유 민주주의 체제 위에서 일정한 기득권과 지분을 갖고 있는 '범민주 시민'이라 불리는 계급이 현재의 질서가 유지되기를 가장 강력히 갈망하는 것이며, 그 임무를 수행할 정권을 중심으로 가족주의적으로 결속하여 체제 변화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자신의 지위가 전적으로 자신의 실력 덕분이라고 믿으며, 이 믿음을 다른 계급들에게 주입시킨다. 이 믿음은 기득권을 세습한 보수 기득권층보다 자력(?)으로 취득한 자유주의 진보 기득권층에서 더 강하다. 능력주의는 고소득 전문직의 '강남 좌파'나 능력 있는 '민주 시민'들이 추종하는 자기 신앙이 된다. 이들은 인종 차별과 성차별 등에는 민감성을 보이지만 능력 차별과 계급 차별은 잘 인식하지 못하거나 회피한다. 능력주의 신화가 계급 차별을 가려 주기 때(p. 112)문이다. 능력주의는 상층부의 인종 차별이나 성차별은 완화한다. 하지만 계급의 진입 장벽은 더 높아진다. 지배자들이 평등을 깨트리고 서열화를 추구하는 이유는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데 서열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평등은 인민을 다수로서 단결하게 한다. 서열화는 피지배 계급 서로가 서로를 착 취하도록 만든다. 자기 위의 사람은 복종하고 동경하며, 자기 아래의 사람에 대해서는 군림하고 무시한다. 위계는 지배자로부터 받은 차별과 멸시를 힘을 합쳐 되갚는 대신 아래로 향하도록 만든다. 나는 저 사람보다는 못하지만 너보다는 낫다는 것이 사회적 심리의 기저를 이룰 때 지배자들은 손쉽게 전체를 다스릴 수 있다. 지배자에게 두려운 것은 사다리를 오르려는 상승의 욕망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 평평해지려는 사람들이다. 저들보다 못하지만 이들보다는 낫다는 것은 중간 계급의 심리다. 부르디외는 《구별짓기》에서 중간 계급에 대해 '상류층에 대해서는 도덕적 우월감과 문화적 열등감을 가치고 하층 계급에 대해서는 도덕적 열등감과 문화적 우월감을 갖는 집단'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중간 계급에게 이 쌍방의 열등감으로부터의 출구가 되어 주는 것이 '지적 우월감'이다. 지식 자본은 그 누구보다 중간 계급에게 가장 중요한 자본이다(p. 113). '경쟁력'이라는 시장 논리로 대학을 도태시키고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공공성'의 논리로 대학을 모두의 것으로 탈환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지식과 금융의 결탁을 끊어 내고 학벌의 자본화 과정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벌의 가치를 무가치화하고 반대로 학벌주의/능력주의가 무가치화한 것들의 가치를 다시 복원해야 한다. 노동에 대한 가치와 능력에 대한 가치, 양자의 교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재평가와 재협약이 필요 하다. 학벌이 개인의 자산이 아니게 하려면 대학교육 공공화가 필수적이다. 대학 등록금 무상화는 대학 공공화를 위한 필수 정책이다. 교육에서 수혜자 비용 부담 원칙은 교육을 투자로 보는 관점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막대한 등록금과 교육비를 개인이 부담 하는 제도하에서는 개인들에게 공공의 책무를 다하라고 요구하기 어렵다. '당신들을 교육시키는 데 드는 돈은 국민이 부담했다. 그러(p. 126)니 국민을 위해 일하라'라는 요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에 요구 되는 비용과 노력의 값이 커질수록 가난한 사람들의 진입 장벽도 그 만큼 높아진다. 비싼 교육 비용은 가난한 사람들의 교육 기회를 차단하고 계급 간 불평등을 초래하는 첫 번째 요인이다. 이것은 원한다면 누구나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을 위배하는 것이다. 독일은 전국적 위헌 소송으로 대학 등록금을 무상화했다. 반값 등록금이나 학자금 대출, 소득 분위에 따른 차등적 국가 장학금 제도가 아니라, 대학 무상교육을 도입해야 한다. 대학 등록금 무상화는 빈자를 위한 복지 정책을 넘어서는 계급 간의 정치 협약이다(p. 127). 2020년 '인국공 사태'도 서울교통공사 사례와 유사한데, 하나 차이가 있다면 주로 정규직을 목표 삼은 취업 준비생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공격했다는 점이다. 이들의 주장도 서울교통공사 사태 당시 반발했던 정규직들의 주장과 판박이처럼 똑같다. '깜냥도 안 되는 비정규직이 감히 우리와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 보안 요원은 공사 공채 시험을 통해 선발 하는 직원과 직무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며 기존 정규직의 몫을 빼앗아 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취준생들은 세상이 뒤집힌 것처럼 들고 일어났다. 무엇이 그들의 '역린'을 건드린 것일까. 그 멘탈리티를 투명하게 드러낸 글이 있다(p. 139). 연대숲 #68384번째 외침: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어디에서 인재를 찾는가? - 취업과 엘리트주의의 담론에 대한 견해 이번 인국공 사태와 소위 '지방 인재'의 취업 할당 법안 발의 이후로, 대한민국은 노동의 가치, 경쟁의 가치 등을 놓고 의견 대립을 보이는 듯싶다. 그러나 그 대립의 과정에서 어이없는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는 생각에 다소 긴 제보를 적어 보려 한다. 그 어이없는 담론이란, 기업이 '학벌과 무관한' 실무 능력을 중시해 개인의 고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다소 납득하기 힘든 주장이다. 그러나 개인의 실무 능력 및 자질과 학벌이 정말 무관한가? 바로 그 학벌을 얻어 내기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했으며, 그 이상으로 특출나게 '뛰어나야' 했다. 누가 인재인가? 필자의 주변에는 이 학교에 들어오기 위해 1년을 꼬박, 자는 시간만 빼고 20시간가량을 서서 살았던 누나가 있다. 지방에서 3수를 해 입학했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누구보다 유식한 형도 있다. 가장 힘든 전공 과목과 복수 전공까지 챙기면서도 취미로 작가 수준의 유화를 그리던 누나도 있다. 이들의 노력에 대해 보상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이들의 역량을 보자. 집중력, 끈기, 저변 넓은 배경지식, 다재다능함. 정말 기업이 요구하는 능력과 학벌이 무관한가? 필자의 답은 '아니다'이다. 우리는 누구보다 뛰어난 우리의 역량을 발굴하고 증명했기에 소위 학벌을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입을 위해 경쟁하던 전체 인구의(p. 140) 상위 5% 안에 우리가 있었던 것은, 그저 머리 좀 좋아서가 아니다. 총체적인 역량의 우수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트가 스스로를 엘리트라 칭하는 것에 거리낄 이유가 뭐 있을까. 우리가 뛰어나다는 사실은, 우리와 함께 경쟁했던 이 사회의 그 누구도, 태연히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현 정부는 어디에서 지방 인재를 찾는가. 어디에서 여성 인재를 찾는가. 지방에서 3수 해서 기어코 꿈에 한 발짝 다가간 그 형이 진짜 지방 인재다. 사람 몸에 저 정도 재능이 다 들어가나 싶은 그 누나가 진짜 여성 인재다. 현 정부의 고질적인 병폐인 포퓰리즘과 대중주의는 무슨 듣도 보도 못한 대학, 시민단체 등에서 소위 인재를 발굴하겠다는 모순을 야기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학우들은 인지해야 할 것이다. 그 누구도 우리를 제쳐 놓고 인재를 논할 수 없다. 이는 오만한 말이지만 동시에 사실이다. 아직 직무에서 역량을 발휘해 보지도 못한 일개 취업 준비생이 지닌 자의식치고는 지나치게 비대하다. 그 자의식은 오직 대학 입시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소위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저 글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개인의 실무 능력과 자질과 학벌이 정말 무관한가?"라고 물은 다음 어떤 논증도 없이 '나는 특출(p. 141) 나게 뛰어나다'라는 선언으로 비약하는 부분이다. 근거처럼 제시한 게 "집중력, 끈기, 저변 넓은 배경지식, 다재다능함" 인데, 정작 글쓴 이는 이것이 왜 학벌 좋은 사람만의 자질인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논리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수행적 모순' 또는 '화용론적 모순'이라 부른다. 화자의 주장과 행동이 상충하는 것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저 횡설수설하는 주장은 글쓴이가 사실관계나 추상적 개념을 분석적으로 다룰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말해 본인이 원하는 업무를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을 시사한다(p. 142). 시험은 능력을 제대로 검증해 주는 것이 아니고, 게다가 한 번의 시험이 지속적인 차별을 정당화할 근거가 되지도 못한다. 코레일에서 매표 업무를 하는 자회사 코레일네트웍스 노동자들과 동일한 업무를 하는 정규직 역무원의 차별은 지속된다. 설령 정규직의 노동 조건이 더 나은 것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의 절반밖에 안 되는 것은 정당한가. 게다가 근속이 길어질수록 격차는 더 확대되고 있다. 입직 통로의 차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평생에 걸쳐 격차가 벌어지는 이 현실은 과연 정당한가. 이러한 격차의 확대를 설명할 정당한 근거는 과연 있는가. 이 점에 대해서 능력주의는 답을 할 수 없다. 능력주의의 근거가 되는 시험 자체의 공정성에도 의문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노동자들은 이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생각 한다. 흔히 말하는 '수저론'은 젊은 노동자들이 능력주의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점차로 공개 채용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사회가 더 불안정해질수록 안정적인 노동 조건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시험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안정적으로 시험공부를 할 수 있는 조건에 있는 사람과 그런 조건이 되지 않는(p. 174) 사람들 간의 경쟁이 과연 공정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시험'을 매개로 한 능력주의에 대해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노동에서의 능력주의는 단지 '시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능력주의는 '직무급제'라는 형태로 이어진다. 그 사람이 어떤 직무에서 일을 하는지가 그 사람의 능력을 판단해 주는 지표가 되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능력주의 요소가 있다. 병원을 예로 들면 의사와 간호사, 의료 인력과 비의료 인력 사이에 격차가 있고 이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승진과 승급, 임금 체계를 달리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지금 직무급제는 여기에 더해 직무에 따라 고용 형태를 세분화하고 위계를 만든다. 어떤 직무는 시험을 통해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그보다 하위 위계의 직무는 면접을 통해 무기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등 시험과 직무와 고용 형태를 연계 하면 그러한 능력주의 구조는 사회적으로 쉽게 용인된다.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이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고, 노동 조건에서 차별을 당한다. 이런 경우를 차별이라고 말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면 문제가 되지만, 직무에 따른 차별은 잘 문제가 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여성이 주로 하는 직종인 돌봄 노동은 그 가치를 사회적으로 잘 인정받지 못한다. 이때 돌봄 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가 받는 차별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가 낮은 일을 하니까 받는 대우로 간주된다. 즉 차별이 합리화되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차별이 마치 '차이'인 것처(p. 175)럼 인식되고, 차별의 책임도 개인에게 전가된다. '네가 능력을 키워서 더 좋은 자리에 가면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p.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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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5
  • 【북토크308】 다른 직업의 사람을 통한 통찰
    나는 드라마를 거의 안 본다. 최근에 본 드라마는 ‘오징어 게임’ 정도이다. 드라마를 안 본지 오래됐다.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봐야한다는 것도 싫고, 별 재미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변에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쨌든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기획 피디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잘 만든 작품 하나는 인생을 바꾸기도 하고, 이런저런 의미가 부여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존경과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반면 한순간에 무가치하게 사라지는 작품도 많다. 노력을 덜 해서라기보다는 부족해서다. 닿지 못해서이고, 노련하지 못해서다. 경력자와의 작업이라고 해서 이런 결과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불완전한 제작 환경에 있거나 경험이 부족한 사람 들끼리 모였다고 해서 반드시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모두가 잘 될 거라고 확신한 것들이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하기도 하고, 유치하다고 말도 안 된다고 내팽개쳤던 것들이 때론 생명(p. 6)력을 가지고 대중에게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정답을 찾는 데 능숙해지기는커녕 그저 최선을 다 하는 것만이 유일한 정답이란 것을 배우게 된다(p. 7). 대본 개발 6부작이나 8부작 미니시리즈의 경우, 전체 대본을 완성한 뒤 제작에 들어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보다 긴 장편 시리즈일 경우, 절반 정도의 대본을 기반으로 제작을 시작하되, 현장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탄력성을 확보하는 것이 좋다. 드라마는 대본 그대로 찍어내는 고정된 조각이 아니라, 배우의 컨디션, 날씨, 계절, 장소, 예산, 시간 등 셀 수 없이 많은 변수 위에 떠 있는 유기체에 가깝기 때문이다. 작가가 마지막 화 대본까지 완성했더라도 촬영 현장에서의 수정은 불가피하다. '부분적으로 수정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촬영된 장면들은 편집된 결과물 안에서 감정선이 끊기고 어긋나 보이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드라마(p. 37)는 줄거리보다 감정의 연결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한 장면의 대사와 리액션을 고치면, 앞선 장면의 감정 설정도 따라 바뀌어야 하고, 뒤따르는 행동과 선택도 새롭게 정렬해야 한다. 이 연쇄적인 조정은 결국 캐릭터를 처음부터 끝까지 꿰뚫고 있는 창작자만이 해낼 수 있다. 그러니 대본이 아무리 잘 쓰였다고 해도,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는 쉽게 균열을 일으킨다. 이야기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감각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기획 단계에서 프로듀서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이 지점이다. 작가가 캐릭터의 변화를 끝까지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작품의 중심을 함께 잡고, 연출과도 긴밀하게 호흡하며, 드라마의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조율하는 일. 이 작업 없이 뛰어난 몇몇 장면만으로 완성도 높은 드라마가 탄생하기는 어렵다. 박경수 작가는 〈추적자〉 대본집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행 서사에서 극적 상황이 주어지면, 이야기의 속도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액션과 리액션이 반복되며, 이야기는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p. 38)전개되고.." 드라마는 결국 창작자가 캐릭터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동력에 의해 창작자가 이끌려가는 어떤 경험이라고 느껴졌다. 인물의 선택과 감정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창작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결말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드라마란, '결말'이 아닌 '경로'로 기억되는 이야기다. 시청자는 마지막 장면보다도, 그 장면에 이르기까지 어떤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의 곡선을 따라왔는가를 더 오래 기억한다. 그렇기에 대본 개발은, 기획이 세운 뼈대에 감정의 혈류를 돌게 하고, 인물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그 인물이 현실처럼 숨 쉬고, 움직이고, 스스로 선택하게 되는 순간까지, 작가와 연출, 그리고 프로듀서가 함께 호흡해야 한다(p. 39). 결국, 관찰과 기록은 '양'을 만드는 습관이다. 많은 것을 보고, 남기고, 돌아봐야 비로소 자신만의 기준이 생긴다. 나는 '양이 질을 만든다'는 말을 믿는데, 단순히 콘텐츠를 많이 소비해 봐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감정, 대중이 반응하는 정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테마들에 대한 누적된 감각이 쌓여야 비로소 판단 기준이 생긴다는 말이다. 예전엔 '이게 아니면 안 돼'라는 편협한 확신에 스스로를 가두기도 했다. 하지만 수많은 프로젝트를 거치며, 비슷해 보이는 이야기도 전혀 다르게 풀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어떤 원작이 엉성하게 느껴졌다고 해도, 그 작품 안에서 감정의 동선을 읽어내고, 구조를 잡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기획은 어느새 가능성 있는 설계가 된다(p. 58). 나는 "영감이 올 때만 쓴다"는 말로 책임을 미루는 작가와는 함께하기 어렵다. 책상 앞에 고집스레 앉아 인물의 감정을 묻고 듣고 다시 답하려 애쓰는, 그런 집요한 시간이 쌓일 때만 모호한 이야기 속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갈 수 있다. 기다릴 줄 아는 작가, 그리고 함께 점검하는 프로듀서. 그 두 사람이 함께할 때, 비로소 깊이 있는 이야기가 완성된다(p.111). 원작을 기반으로 작업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작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균형 감각이다. 그러기 위해서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이야기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끝없이 대화해야 한다. 상대방의 시선에서 한 번 더 상상해 보고, 동의할 수 없는 지점에서도 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자세. 그렇게 생각을 보태고 변주하다 보면, 결국은 하(p. 128)나의 세계가 또 다른 세계와 만나며 예기치 못한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바로 협업의 묘미이고, 원작 기반 제작이 단순한 번안 작업이 아닌 '새로운 창작'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p. 129). 나는 어떤 프로젝트든 충분히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이고, 무엇보다 '마음'을 들인다. 그리고 나는 내 부족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몰입하지 않으면 해낼 자신이 없어 더 집중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배움과 깨달음이야말로 결과보다도 더 중요한 자산이라고 믿는다. 합리적인 워라밸을 추구하고, 당당하게 자신이 한 만큼 요구하고 돌려받는 프로듀서들을 볼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일하고 있는 걸까? 턱없이 부족한 보상에도 왜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이는 걸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는다. 곧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과정이 아무리 대단했더라도 '좋은 결과'가 따라주지 않으 면 그 모든 노력은 설득력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노력한다. 내가 함께한 작가와 이야기, 함께한 시간과 관계가 모두 '유의미하게' 남을 수 있도록(p. 161). 결국 좋은 이야기는 '무엇을 말했느냐'보다 '어디서 바라봤느냐'에 달렸다. 이미 다뤄진 이야기라도, 그 인물의 다른 면에서, 다른 자리에서, 다른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그 안에 다시 살아나는 감정이 있다. 누구도 주인공으로 삼지 않았던 주변 인물에게, 진부한 관계 속 숨겨진 결핍에서, 클리셰 너머에 있는 또 다른 감정에서 말이다. 그런 새로운 시선을 찾기 위해 나는 꾸준히 관찰하고, 읽고, 질문한다. 삶을 바라보고, 사람을 이해하려 애쓰고, 감정의 결을 들여다본다. 그런 감정들이 이야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나보다 훨씬 깊은 통찰을 가진 창작자(p. 172)들과 함께 고민한다. 가볍지 않게, 무겁지도 않게, 단단하지만 살아 있는 언어로 오늘의 우리를 말하고 싶다(p. 173). 세계의 책장 앞에서 기획자라는 직업의 특권 중 하나는, 아직 출간되지 않은 원고를 먼저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추천 리스트를 먼저 받아보고, 이 책이 영상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 살펴본다. 사람들이 어떤 감정에 반응할지, 어떤 세계를 궁금해할지, 그 미세한 흐름을 먼저 포착해서 그 이야기를 '지금 만들어야 할 이야기'로 꿰어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해외에서의 출판-기획 협업은 더 긴밀하고 이르게 진행된다. 한번은 출판 에이전시 대표님의 초대로 영국의 주요 출판(p. 180)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세계 최대의 출판 시장 중 하나인 그 곳에서 한 권의 소설이나 논픽션이 어떻게 유럽과 북미의 제작사, 할리우드 에이전시의 책상 위를 오가며 주목받는지를 직접 볼 수 있었다. 매일 밤 수백 권의 출판 리스트를 검토하고,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는 미팅을 소화하며, 단 한 권의 가능성을 발굴하려 애쓰는 에이전트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분야만 다를 뿐, '무엇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라는 고민은 내가 매일 하는 것과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한 나라의 지성 트렌드를 짚어내는, 열정적인 여성 에이전트들과 함께한 경험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원작을 고르는 일은 지금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붙잡아 기획자의 언어로 새롭게 해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내가 찾고 있던 감정의 결이 어떤 원작 속 리듬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온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마치 눈앞에서 전구가 켜지는 듯한 경험이다.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 아직 값이 매겨지지 않은 감정, 아직 시작되지 않은 서사를 누구보다 먼저 만날 수(p. 181)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나의 기획과 시선으로 새롭게 구현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획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특권이자 보람이 아닐까? 세상은 넓고, 아직 기획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끝없이 흩어 져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는 눈은, 결국 기획자가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세계를 바라보는 감각에 비례 한다(p. 182). 오래 기억될 첫 실패 칸 영화제는 영화인의 축제다. 드라마를 만드는 나는 늘 그 풍경의 바깥에 있었다. 개인 배지를 받기 위해 이력서를 내고 심사를 거쳐야 하는 이곳에서, 내 목적은 '칸 마켓'에 참가한 전 세계 제작자들과의 미팅을 통해 하지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칸에 도착하자마자 오전과 오후는 마켓 미팅으로, 저녁엔 미국 회사와의 줌 미팅으로 가득 찼다. 현지에서 만난 스위스 음악가, 프랑스 다큐 감독, 파리에 기반을 둔 애니메이션 연출가 등 다양한 파트너 후보들과의 약속도 출장 전부터 계획 되어 있었다. 잠과 싸우고, 언어와 싸우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작품의 '가능성'으로 설득하는 싸움을 벌이는 시간이었다.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실수 없이 응대해야 한다는 부담감. 칸(p. 187)에서의 5일은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꽉 찬 일정이었다. 파리에 도착해서야 간신히 시차에 적응됐지만, 그 여유도 잠시였다. 몽마르트르 언덕 아래 숙소에 짐을 풀고, 새벽 사크레쾨르 성당에서 도시 전경을 바라보며 새로운 출발을 그려보았던 그날, 호텔 베드버그에게 물린 자국이 목과 팔, 다리에 퍼지기 시작했다. 상처는 붓고, 간지러움은 심해졌다. 전염성이 있을지 모르니 함께하기로 했던 프랑스 에이전시에 미팅 연기를 요청했고, 나는 옷을 세탁하고, 트렁크를 소독하고, 숙소를 살균하는 데 하루를 보냈다. 몸은 지쳐 있었고, 머릿속은 계약서 문제로 복잡했다. 원작 계약은 마무리됐지만, 공동제작을 위한 부속 합의서 작성은 에이전시의 일정 문제로 미뤄진 상태였다. 칸 영화제가 끝난 뒤에야 조건 조율이 다시 시작됐다. 에이전시는 원작이 웹툰 형식이라 매력적이지만 정리하기 어렵다며, 내가 미리 작성해 두었던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 파일들을 요청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내가 공유한 시놉시스의 한 문장을 계기로, 에이전트는 세계관을 새로 정리 하고 주인공 설정까지 각색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러고는(p. 188) 자신이 실질적인 '창작 기여'를 했으니 크레딧을 표기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미국 제작사와 연결된 한 감독이 흥미를 보이자, 에이전시는 "내가 정리한 시놉시스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앞으로 모든 해외 커뮤니케이션과 자료 정리에 대한 권한을 자신이 가져야 한다는 조건을 추가로 제시했다. 처음에는 '첫 시도이니 경험 삼아 겪어보자'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점점 에이전시의 요구는 단순한 협력 범위를 넘어섰다. 사실 우리는 이제 막 부속 합의서를 통해 '함께 해보자'는 첫걸음을 내디딘 단계에 불과했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의 자료에서 영감을 얻어 일부 비틀어 만든 시놉시스를 근거로 크레딧을 주장하는 일은 제작자나 창작자의 입장에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상대가 무엇을 만들었고, 그 과정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알게 되면서 신뢰가 생긴다. 이미 만들어진 결과는 언뜻 단순하고 쉬워 보여도, 그 안에 담긴 선택과 집중은 타인에게도 방향을 제시하는 힘이 있다. 그런 점에서 경력은 단(p. 189)순한 이력이 아니라 신뢰의 근거다. 그 에이전트가 실력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잦은 조건 변경과 말 바꾸기를 보며,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결국 해당 에이전시와의 부속합의는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속상했다. 함께 잘해보자는 순수한 의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나의 아쉬움을 전하자, 에이전트는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아. 내가 정리한 새로운 시놉시스로 다른 영화를 만들면 돼"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함께 할 '일'이 아니라, 함께 할 '사람'을 잘못 선택했다는 것. 모든 관계는 상대적이다. 사람은 좋을 수 있지만, 일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인가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p. 190). 늘 무언가를 채우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나를 위해 요즘 의식적으로 시도해 보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빈둥거리기다. 모순적이게도 나에게 '아무것도 안 하기'는 연습해야 가능한 일이다. 오래도록 머릿속을 가득 채워온 창작의 중독에서 잠시 벗어나, 생각의 틈을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 현재와 미래에 쫓기지 않고, 감정을 비워내는 연습. 생각의 끈을 끊어내고, 흘러가도록 두는 훈련. 그렇게 텅 빈 자리에야 비로소 또 다른 무언가가 들어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기획이란 일이 결코 경력만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력은 때때로 기회가 되지만, 그 기회가 반복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매번 새로 운 마음으로, 새로운 기획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멈추어서 사람을 보고 말하고 듣는다. 그 틈으로 일부러 차단하고 무시해 왔던 생활의 작은 갈등들이 다시 스며든다. 섬세하지 못했던 관계와 일들에 다시금 천천히 눈이 간다. 그동안 '생각'이 나를 얼마나 가로막고 있었(p. 202)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여전히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과 가족이 느끼는 감정들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어떤 감정이 밀려들 때 외면하지 않고, 그 감정을 달래주는 음악을 든고,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영화를 본다. 설령 모든 노력이 어떤 결실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내 편으로 두려고 한다. '빈둥거릴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오랜 창작자의 체력이니까. 빈둥거리며 생각과 마음을 비워낸 내가, 또 다른 문화적 흐름과 변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기를. 생각만은 부디 늘 새롭고 싱싱하기를. 그 기운을 안으로 들이고, 다시 창작의 근육을 움직이길 바란다(p.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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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9
  • 【북토크307】 다른 사람의 인생 서사는 교훈을 준다
    저자가 장애인을 위한 재단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타인들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이기에 그를 통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인생을 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이 자주 있기를 소망해 본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큰 부자나 신문에 자주 나오는 대기업 대표를 어쩌다 만날 때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실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푸르메재단이 세워진 직후 초대이사장에 취임한 김성수 주교님을 모시고 큰 자동차회사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매년 많은 사람이 사고와 질병으로 중도장애인이 되지만, 재활병원이라곤 신촌 세브란스재활병원과 서울재활병원만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푸르메재단은 환자를 내 가족처럼 생각하는 재활병원 건립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고요. 독일 뮌헨에 본사를 둔 BMW는 인근 재활병원과 협약을 맺어, 공장에서 일하다 재해를 입은 직원들뿐 아니라 교통사고로 다친 시민들의 재활치료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하고 있었습니다. BMW처럼 그 회사도 재활병원 건립에 동참해주십사 요청하기 위해 주교님과 함께 방문한 것이었지요. 굴지의 자동차회사가 재활병원 건립에 함께해준다면 화제도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끄리라 기대했습니다. 자동차회(p. 36)사 부회장은 '무엇이든 도와드리겠다'는 태도로 반갑게 주교님을 맞이했습니다. 면담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습니다. 평생 장애인과 살아온 주교님은 "장애인 환자의 재활을 돕는 병원 건립을 도와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셨죠. 하지만 면담 끝에 돌아온 답변은 "한번 검토해보겠다"라는 형식적인 말뿐이었습니다. 총수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대기업의 구조상 부회장 입장에서는 선뜻 확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빈손으로 나오니 화가 났습니다. "매년 수조 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대기업이 정말 이럴 수 있습니까? 빈손으로 돌려보내려면 왜 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울분을 토하는 제게 주교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뭔지 아세요. 앵벌이예요. 사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을 위한 공익적 앵벌이지요." 어리둥절해하는 저에게 주교님은 말씀을 이어갔습니다. "절대로 부자가 앞장서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습니다. 겨우 살 만하거나 조금 부족한 사람이 베푸는 법이에요. 한 번 거절당했다고 낙담하지 마세요. 열 번 전화해야 한 번 만날 수 있고, 열 번 만나야 겨우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오늘 잘 설명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셈이에요." 주교님은 그렇게 저를 위로하셨습니다(p. 37). 2023년 3월, 그녀는 모교인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스물세 살 때 장애를 갖게 됐고 23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 마흔여섯 살에 드디어 모교 교수가 된 것이지요. 그녀는 몹시 행복해했습니다. 이화여대 연구실에 초대를 받은 저는 첫 학기 소감을 물었습니다. 모교라서 느끼는 안정감이나 후배들을 만날 때의 기쁨 같은 얘기를 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삶에 관한 철학적인 깨달음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23년 전 그날의 사건 이후, 늘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해왔습니다. 음주운전을 한 가해자가 낸 사고의 피해자(p. 67)라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더이상 사고의 피해자로 살아가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오랜 시간 동안 사고가 있었던 그 자리와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운명이라고 비관해왔습니다. '이게 다 그놈 때문이야' 하고 원망하며 남은 삶을 마감할지 아니면 새롭게 만날 것들에 감사할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사고를 당하고 헤어지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지만 저는 이제 잘 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답을 듣자 이지선 교수가 큰 깨달음을 얻은 스승처럼 느껴졌습니다. "인생은 동굴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으면 출구가 보이는 터널"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새로운 도전이 계속되길 바랍니다. "사는 게 맛있다"고 말하는 그녀가 있어서 행복합니다(p. 68). 김소월과 정호승,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 시인들 "누구에게나 소설은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다"라는 글귀를 어디선가 읽은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뵈었을 때 선생님에게 혹시 올 해 소설을 쓸 계획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소설이 그렇게 쓰고 싶었습니다.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7년 동안 소설 쓰기에 몰두해봤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인(p. 74) 40대를 허비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문학 장르는 다양하죠. 저에게는 소설이 맞지 않고 그보다 시적 기질이 있음을 깨닫게 됐어 요. 소설에 대한 아쉬움은 산문집이나 우화소설 집필로 대신하고 있습니다."(p. 75). 진정성의 힘 강 변호사님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학연과 지연을 하루빨리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안 그러면 이로 인한 병폐로 한국 사회가 망할 것(p. 94)이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선진적인 기부문화가 확대되려면 전근대적인 상조문화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려면 결국 자식과 핏줄에 대한 애착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명문 경기중,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학교와 동문 이야기가 나오면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끼리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풍토가 우리나라를 망쳤다"고 성토하곤 했습니다. 실제로 변호사님은 부모상과 딸 결혼식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부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님도 부친상을 당하고 해외출장 일정을 모두 소화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는데 그야말로 부창부수라는 생각이 듭니다(p.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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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9
  • 【북토크306】 힘들 때는 멈춰야 할 때다!
    “오프 먼트OFF-MENT란? 오프 먼트란 멈춤을 뜻하는 오프(OFF)와 순간을 의미하는 모먼트(MOMENT)를 합친 말로, 이 책에서는 일과 일상의 균형을 잡으며 나아가서는 적은 에너지로 더 큰 성취를 얻는 전략적 휴식법을 통칭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재충전하고 돌아볼 수 있다. 일중독자들은 이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멈춰야 비로소 힘을 얻고 나아갈 수 있다. 인생에는 이런 역설이 있다. 저는 해도 해도 안 된다고 자책하는 사람들에게 내려놓음을 슬쩍 권하는데요. 제가 말하고 싶은 내려놓음은 다른 의미, 즉 2번째 의미일 때가 많습니다. 목표를 내려놓는 게 아니고요, 앞서 제 3수 때 이야기처럼 목표는 그대로 둔 채 지금 내 과도한 긴장 상태를 살짝 내려놓으라는 거죠. 힘 빼기에 가까운 내려놓음이랄까요? 너무 간(p. 64)절해서 '그것만' 보던 시선을 살짝 돌리거나 힘을 빼면 오히려 문제가 해결되는 묘안이 떠오르기도 한다는 겁니다. 앞에서 예를 든 수험생의 경우는 하루에 16시간씩 공부하던 걸 오히려 10시간 미만으로 공부하는 식으로 하향 조정을 하는 걸 수도 있어요. 제 친구 경훈이의 경우는 그 팍팍한 삶의 방식 자체를 내려놓고 다시 설계하자는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녀석, 간이침대에서 웅크려 자고 매일 배달 음식을 먹으면서 생활에 필요한 시간까지 아껴가며 일했잖아요. 그런데 투자가 잘 안 될 때마다 점점 더 근무 시간을 늘렸거든요. 이거 아니라는 거죠. 목표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갈망을 살짝 내려놓으면 태도와 방식도 자연히 느슨해지는데요. 역설적으로 태도와 방식이 느슨해졌을 때, 오히려 낮췄던 목표를 초과 달성해서 맨 처음 세웠던 목표가 어라? 달성되어 버리는 경우, 저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p. 65). 저는 이번 책의 전작인 《마이크로 리추얼》과 《리커넥트》를 쓸 때, 230여 명의 사례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번아웃이나 고(p. 82)립감에 빠졌는지 정리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요. 번아웃에 빠지거나 사람에게 환멸을 느껴 스스로 모든 관계를 끊어 낸 사례자 중에는 나태하게 살거나 되는 대로 인생을 산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오히려 대부분이 노력하고, 애쓰고, 타인에 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지나치게 과했을 뿐입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왜 지금 이 모양이 됐을까요?" 이런 말을 하면서 울기도 하고, 한탄하기도 하는 그들을 보며 1가지 경향성을 발견했습니다. 1번, 2번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몸이나 마음이 힘들다고 신호를 보내올 때 '잠깐 멈춰서 왜 이런지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는 대신, 더 많이 에너지를 쏟아붓는 방식을 서슴 없이 선택했다는 겁니다. 애쓰는 사람들이 번아웃에 빠지는 과정 애쓴다 → 힘들다 → 힘듦을 무시한 채 계속 애쓴다 → 체력이 바닥난다(p. 83) → 정신적으로도 소진된다 → 예전보다 결과물이 좋지 않다 → 그러자 더 애쓴다 → 몸은 더 병이 든다 → 결과물은 더 나빠진다 → 결국 목표에서 멀어지고 만다 그런 그들과 상담하면서 저는 딱 1가지 변화에만 집중했습니다. 바로 최초에 '힘들다'라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 무시하고 곧바로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는 게 아니라 잠깐 멈춰 '찰나 의 점검'을 해보는 것이었죠. 애쓰다가 힘을 뺐을 때 잘되는 과정 애쓴다 → 힘들다 → 어? 이게 이렇게까지 애쓸 일인가?' 또는 '나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애를 쓰고 있지?' 점검한다 → 살짝 내려놓는다 → 힘이 빠지며 이완된다 → 지속 가능한 정도로 에너지를 넣는다 → 이 상태로 꾸준히 오래 한다 → 목표에 가까워진다 애를 쓰든 힘을 빼든 두 사례 모두 출발점은 똑같이 '애쓴다'였죠. 그런데 처음 '힘들다'라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 즉 최초의 과부하 단계에서 더 애쓰는 단계로 가는 게 아니라 '어? 나 지(p. 84)금 왜 이러지?', '이거 이렇게까지 애쓸 일인가?', '이 에너지 투입이 1년, 2년, 3년 지속 가능한가?' 하고 아주 잠깐만 멈춰 점검하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목표가 애쓰는 게 필요한지, 힘 빼기가 필요한지 판단한 뒤, 만약 힘 빼기가 필요하다고 느낀 내담자에게는 힘을 좀 빼고 내려놓을 수 있는 '이완의 생활 습관'들을 하나씩 알려줬습니다. 지속 가능한 만큼의 에너지를, 오래 쓸 수 있도록 말이죠. 그것이 역설적으로 목표에 더 가깝게, 더 빨리 다가가도록 도와주더라고요. 그런데 이 방식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형도 있었습니다. 바로 아집과 강박이 너무 강하게 자리 잡은 사람들이죠. "이렇게 해야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 다른 방법은 없어!" 이런 극단적 사고에 갇힌 상태에서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내려놓음을 실천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바로 '나의 판단력에 대한 과도한 신뢰'입니다(p. 85). 이뤄내고 싶어요? 그럼 쉬어야 해요(p. 297) 더 잘하고 싶다고요? 쉬어야 한다고요. 사람들에게 당신의 능력을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요? 그럼 쉬는 게 전략이에요 저는 이 책에서 바로 이 말까지도 포함하고 싶었던 거예요. 물론 내가 이완하고 나를 내려놓는 건 이런 기능적 측면만이 아니라 제가 앞서 말했던 영화 〈원더풀 라이프〉의 한 장면처럼 내 삶을 조금 더 풍성하고 내가 나를 데리고 잘 살아가며 충만한 순간들을 더 많이 만들자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런 경험이 계속되다 보면 어느새 나라는 사람이 타인에게도 관대해지고, 나 자신에게도 관대해지고, 느낄 수 있는 삶의 감각들도 조금 더 다양해지면서 '아, 사는 거 참 괜찮은 거네' 그런 마음으로 서서히 변화해 가기 때문이지요. 진정한 의미의 잘 사는 삶이란, 이런 거 아닐까요? '아, 인생은 좀 살 만하네'라고 느끼는 순간이 문득문득 더 많아지는 것, '야, 오늘 너무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장면이 더 많아지는 것. 그것은 어쩌면 나를 데리고 살아가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책무 일지도 모릅니다(p. 298). 지금까지 일 스케줄을 미루지 않고 해야 할 일 열심히 하는 성실한 페르소나로 살아왔다면 이제 쉼 스케줄도 미루지 않는 성실한 자기로도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하루에 단 몇 분 내려놓고 모든 것으로부터 오프 한다고 해서 천재지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정도는 쉬어도 되고, 멍 때려도 되어요. 어떻게든 되더라고요. 그러니 내려놓아 보세요. 오히려 잠깐씩 내려놓고 멈추고 일에서 멀어져 나를 재충전시키고 나면, 내일의 나는 조금 더 똑똑해집니다. 조금 더 창의적으로 됩니다. 그렇게 내일 조금 더 인지 능력이 개선된 내가 닥친 문제를 풀도록 하는 게 오늘 밤새고 울며불며 붙잡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p. 299). 010.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요? 저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책을 쓰면서 제 앞에 독자 한 분 한 분이 있다고 생각하며 쓴답니다. 눈을 마주칠 순 없지만(p. 324), 눈을 마주치고 있다고 생각하며 써요. 그래서 진심으로, 두 손 꼭 맞잡고, 눈을 마주치며, 마음을 담아서 말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애써왔고, 앞으로는 어떻게든 될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조금만 더 나 자신에게 관대해졌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애써온 노력이 토양이 되고, 앞으로 조금 내려놓고 살아가는 태도가 햇빛과 수분이 되어, 당신의 꽃은 분명히 당신의 계절에 피어날 거예요. 위로도 힐링도, 립서비스도 아닌 세상의 이치를 말한 거예요. 봄꽃도, 여름꽃도, 가을꽃도, 겨울꽃도 있잖아요. 겨울에 필 꽃인데 애쓰고 발 동동거리며 더 많은 물을 붓고, 더 강한 햇볕을 쬔다고 여름에 필까요? 아니죠. 오 히려 뿌리가 썩거나 피지 못하고 말라 죽을 뿐이에요. 어쩌면 우리는 가을꽃이나 겨울꽃일 수 있잖아요. 당신의 계절은 분명히 찾아오니까. 딱 오늘 하루치의 물을 주고, 햇볕을 주자고요. 그렇게만 한다면 절대로, 절대로 당신은 땅속에서 사라지듯 피지 못하고 주저앉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성공을 바라든, 가정을 꾸리길 소망하든, 행복한 인간관계를 원하든 조금만 내려놓고, 대신 멈추지만 말고 걸어가면 분명 당신이 만나고픈 그 삶의 장면은 꼭 찾아올 거예요. 반드시(p.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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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9
  • 【북토크305】 이완용은 죽지 않았다...이 시대의 이완용들
    내가 ‘매국노’ 이완용에 대한 일대기를 읽을줄은 몰랐다. 어떤 책을 보다 흥미가 생겨 읽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이완용에 대해 “명분, 대의, 정의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근대 실용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었다”고 평하며 이것이 그로 하여금 매국의 길을 걷게 했다고 했다. 12.3 계엄사태 때 관료들의 행태가 바로 그러했다. 그런면에서 이완용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있다. 이처럼 역사는 반복되기에 이 세상에는 궁극적인 소망이 없는 것이다. 갑신정변으로 청과 일본 사이에 톈진조약이 체결되었고, 임오군란 때 조선으로 왔던 청나라 군대는 철수했다. 대신 청나라는 1885년 위안스카이를 파견하여 조선에 대한 내정간섭을 강화했다. 위안스카이의 위세는 대단했다. 그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버젓이 궁궐 안에서도 가마를 타고 다녔고, 고종을 대면할 때도 거만하고 위압적인 행동거지를 서슴지 않았다. 위안스카이가 조선 내정에까지 간섭하자 고종은 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서양 열강을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1886년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과 러시아 간의 밀약 사건은 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고종의 노력을 보여준다. 한편 조선에 있던 다른 나라 공사들은 위안스카이에게 불만을 갖고 있었다. 푸트(Lucius Harwood Foote)를 대신해 미국대리공사로 임명된 29살의 해군 중위 포크(George Clayion Foulk), 그리고 묄렌도르프(Paul Grorge von Mullendort)의 후임으로 온 외교고문 데니(Owen N. Deny) 등은 위안스카이의 노골적인 조선 간섭에 불만을 표했다. 위안스카이는 포크와 데니의 이러한 행동에 격분하여 1884년 12월 4일(p. 39)에서 7일까지 갑신정변에 대해 보도했던 영자 신문 『노스 차이나 데일리 뉴스 North China Daily News』의 기사를 문제 삼아 포크를 조선에서 축출하려 했다. 포크를 비롯한 미국공사관 측이 갑신정변의 사전 모의에 참여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문제 삼은 것이었다. 갑신정변 처리 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공사관 직원이 갑신정변에 관여했다는 기사는 조선의 정계를 다시 한 번 들끓게 했다. 위안스카이의 입장을 지지했던 리홍장은 미국 정부와 교섭 하여 포크의 소환 약속을 받아냈다. 포크는 미국공사관의 무관직에서 파면되었고, 1886년 6월 30일 조선을 떠났다. 위안스카이의 독주를 막기 위해 데니는 1886년 9월 톈진에 있는 리홍장을 찾아가서 위안스카이를 교체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청은 조미통상조약 체결 당시 미국 대표였던 슈펠트(Robert W. Shufeldt)를 초청하자는 데니의 요청에 반대했다(p. 40). 왕권 회복의 발판을 마련한 고종과 중전은 8월 22일 농민전쟁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유배형에 처해졌던 민영준을 비롯한 민씨 척족들을 사면했다. 그리고 이틀 후 김홍집을 다시 총리대신에 임명한다. 김홍집의 재입각은 7월 23일 서울에 재부임한 이노우에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었다. 이노우에는 일본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고종에게 300만 원의 기부금을 미끼로 던진 후 친일파를 입각시키고자 했다. 이미 내각을 장악할 정도로 권력 기반을 확보했다고 판단한 고종과 중전은 이 제의를 받아들여 김홍집을 다시 총리대신에 임명한다. 그러나 김홍집파는 이미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한 뒤였기 때문에 정동파를 견제할 수 없었다. 1895년 8월 24일 김홍집 내각이 조직되었다. 박정양이 내부대신, 이범진(1852~1910)은 궁내부협판 겸 서리대신이 되었고, 이완용은 학부대신을 유임했다. 사실상 정동파 내각이라고 불릴 만할 정도로 이들의 입지는 크게 강화되었다. 또한 러시아 세력이 확장되면서 친러파인 이범진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러시아 공사 및 미국공사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손탁호텔을 자주 왕래하면서 이완용 등의 친미파와 친분을 쌓은 정동파의 일원이기도 했다. 친러파의 대표격인 이범진과 친미파의 대표격인 이완용은 정동파라는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서 강력한 반일 정책을 표방하면서 김홍집 내각을 압박했다(p. 73). 한편 김홍집 내각의 배후 세력이었던 이노우에 공사가 약속한 300만 원의 기부금 조달은 일본 내각의 반려로 무산되었고, 결국 이노우에는 9월 17일 조선을 떠난다. 이후 군인 출신인 48세의 비교적 젊은 미우라 고로가 신임 공사로 부임한다. 정치 경험이 많고 외교에 능했던 이노우에에 비해 군인 출신인 미우라는 공명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조선 정부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기 시작했고, 고종과 중전의 반일 감정은 더욱 커져만 갔다. 내각을 장악한 정동파 역시 고종과 중전의 의중에 부합하여 더욱 강하게 반일 정책을 추진했다. 이범진은 이완용 등과 함께 일본의 내정간섭 종식과 고종의 재집 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1895년 9월 4일 503회 개국 기원절을 제정했다. 또한 관료의 복식을 구제도로 환원시키는 상징성 있는 조치를 단행하고 일본의 강압에 의해 추진되었던 내정 개혁 중 일부를 무효화시켰다. 그리고 10월 2일에는 남아 있는 친일파를 제거하기 위한 인사이동을 단행했다. 이때 유길준은 내부협판에서 의주부 관찰사로 좌천되었다. 또한 상당수의 친일 세력이 자리 잡고 있었던 훈련대를 해산시키고 시위대만을 존속시켜 일시적으로 궁궐 수비에 공백이 생겼다. 정동파를 비롯하여 고종과 중전이 일본의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강력한 반일 정책을 취하자 미우라 공사의 반감도 크게 고조되었다. 이에 미우라 공사는 일본의 영향력을 만회하기 위해 10월 8일 궁궐 수비의 공백을 틈타 중전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리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대원군을 입궐시킨 후 그가 중전을 살해했다(p. 74)고 사건을 조작했다. 경복궁이 아수라장이 되자 내각을 장악하고 있던 이완용 등의 정동파는 각각 미국공사관과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했다. 이렇게 해서 정동파 내각은 사실상 실각한다. 그리고 그 공백을 다시 김홍집파가 장악하면서 친일 내각이 수립되었다(p. 75). 독립협회는 1898년 2월 27일 회칙을 개정하고 임원진을 개편했다. 부회장이었던 이완용이 회장으로, 서기였던 윤치호가 부회장에, 그리고 남궁억이 서기로 선출되었다. 이완용은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명실상부하게 독립협회의 반러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기 시작 한다. 이날 독립협회는 정교(1856~1925)의 제의로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를 비판하는 공문을 외부대신에게 보낼 것을 결정했고, 다음 날 이상재, 정교, 조한우를 총대위원으로 한 공문이 외부대신서리 민종묵(1835~1916)에게 발송되었다. 이처럼 독립협회의 강력한 반러운동이 시작되자, 내각에서 친러파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던 내부대신 남정철(1840~1916)은 내각회의조차 거치지 않은 채 절영도 조차를 허가한 공문을 보낸 민종묵의 독단을 비판하면서 사직상소를 올렸고, 외부 관리들도 이에 동조하여 공무 처리를 거부했다. 사실 절영도 조차의 배후에는 러시아의 강압을 이기지 못한 고종이 있었다. 그러나 고종이 외교적 갈등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면서 자신의 의중을 관철시키기 위해 늘 그러했듯, 이번에는 외부대신서리 민종묵에게 은밀히 조차 허가를 지시했던 것이었다. 왕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당시의 사회적 통념 속에서 절영도 조차에 대한 모든 책임은 민종묵이 져야 했다. 그는 독립협회에 사과하는 답변서를 보내고 사직상소를 제출한 후 스스로 물러났다(p. 138). 친미 세력의 수장 이완용이 관직을 거절하고 고종의 계획이 답보에 빠진 상황에서, 1901년 3월 민경식이 고종에게 김영준의 모든 음모를 발설했다. 친일 세력을 제거하려 했던 고종은 민경식의 발고를 계기로 김영준을 체포했고, 곧바로 사형에 처했다. 한때 고종의 총애를 받고 정계의 주도권을 쥐었지만, 자신의 입지를 위해 고종의(p. 163)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던 김영준은 결국 죽음을 면치 못했다. 이처럼 대한제국 정계에서는 고종의 총애를 다투는 정치 세력간의 암투가 끊이질 않았다. 그 원인은 왕권 강화를 위해 외세와 정치 세력을 상호 견제시키는 고종의 국정 운영 방식 때문이었다. 미천한 가문 출신으로 오로지 고종의 총애를 얻는 것만이 출세할 수 있는 방법이었던 측근 세력들은 고종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고 있었다. 고 종 역시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으면서 말이 많은 양반 대신들과 달리 황제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 쓰면서 자신의 말 한마디에 생사를 거는 그들을 통해 권력을 강화해가고 있었다. 반면에 이완용은 고종의 총애를 받기 위해 염치도 모른 채 물불 가리지 않고 음모를 꾸미는 그들의 정치판에 끼어들고 싶어하지 않았다. 더구나 언제 바뀔지 모르는 고종의 마음만 보고 나서기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완용은 경험과 연륜을 겸비한 정치인이 되어 있었다(p. 164). 반면에 이제까지 이완용의 후원 세력이었던 미국공사 알렌의 정치적 영향력은 크게 축소되어 있었다. 고종과의 친분으로 조선 정계에 깊게 개입했던 알렌은 이미 미국 국무부로부터 대한제국의 정치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를 여러 차례 받은 적이 있었다. 더구나 미국이 만주의 이권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을 지원하는 쪽으로 노선을 바꾸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공사였던 알렌이 고종의 반일 노선을 지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1904년 1월에 러일전쟁으로 일본군이 서울을 점령할 것이라고 예상한 고종이 미국공사관으로 피(p. 178)신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왔을 때, 알렌은 그 요구를 강력히 거절한 적도 있었다. 대한제국의 정치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정책 기조로 인해 고종과 이완용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알렌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p. 179).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은 1894년에서 1896년 사이의 상황과 매우 흡사해보였다. 표면적으로 유사한 상황의 재현 속에서 이완용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미국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을 짝사랑하던 고종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끌어들이려 했다. 친러파 세력이 크지 않은 대한제국 정계에서 러시아 세력의 확장이 친미 세력의 확장과 연결된다는 점을 이완용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는 아관파천 때와 같은 기회가 다시 찾아올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은 그가 학부대신이 된 이후 빠르게 사라져 갔다. 1905년 9월 5일, 한국에서 일본의 우월권을 승인하는 조항이 들어 있는 포츠머스조약에 러시아가 합의하면서 전쟁이 재발할 가능성은 사라졌다. 또한 9월 27일, 영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용인 한다는 내용의 제2차 영일동맹을 공개했다. 이로써 일본을 견제할 현실적 가능성은 사라졌다. 갑오•을미년의 위기를 아관파천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기대가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순간이었다. 이때 고종은 측근 세력을 동원하여 미국 등에 지원을 호소할 방안(p. 180)을 고심하고 있었지만, 내각원 중 어느 누구도 이러한 고종의 계획 에 함께하지 않았다. 고종 측근들은 내각 대신을 친일 세력으로 몰아가고 있었지만, 내각 대신들은 일본의 영향력을 견제할 가능성이 사라진 이상 고종의 계획에 가담하지 않았다. 이완용 역시 아관파천 때와 같이 고종을 위해 어떠한 계획도 도모하지 않았다. 자신이 보았던 가능성이 불가능성으로 바뀐 이상 국제 정세는 10년 전처럼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본공사가 사실상 내각을 장악한 가운데 1905년 11월 이토 히로부미가 내한한다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고종과 내각 대신들은 한일 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직감했으며, 『황성신문』을 비롯한 언론도 일본이 조만간 한국을 보호국화할 것 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한일 관계의 중대한 변화가 예감되는 가운데 이토 히로부미가 11월 10일 한국에 도착했다. 그는 고종에게 을사조약의 체결을 받아낼 생각이었다(p. 181). 을사조약 체결을 거절할 명분으로 외교 절차의 준수 이외에 고종이 내건 '대신과 인민의 의향을 묻는다'라는 것은 당시 대한제국의 정치체제상 단순한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전제 국가인 대한제국의 운명을 결정할 사람은 황제인 고종 한 사람뿐이었다(p. 190). 1897년 대한제국 선포와 1899년 대한제국 국제의 선포 이래로 대한제국은 조선의 통치 체제를 그대로 계승한 전제 왕국이었다. 갑오개혁 이후 입헌군주제 수립을 위해 개화파 등이 정치체제 개혁을 추진하려 했지만, 고종은 이를 철저하게 탄압해왔다. 고종이 개인적으로 아무리 인민의 뜻을 존중한다 하더라도 인민의 의견이 수렴될 제도적 장치는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국가의 존망을 결정하는 순간 고종과 권중현 등의 대신들은 단지 황제의 자문 기구에 지나지 않았던 중추원을 마치 의회인 것처럼 말하면서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고 핑계를 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처럼 국가의 중대한 외교 사안에 대해 국회의 동의를 받는 절차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독립국가의 결정 과정을 존중해야 할 외교 상대국 일본이 고종이 주장했던 절차 중 '인민의 의향 을 묻는 과정'은 인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이토와 하야시는 대한제국 정치체제를 분명하게 지적하여 고종과 대신들의 말이 어불성설임을 비난했다. 이토는 고종과 대신들이 말하는 외교적 절차, 즉 일본이 외부에 조약안을 보내고 외부가 의정부에 보고하면 의정부에서 논의하고 고종이 협상에 임할지 말지를 결정하며, 만약 임한다면 전권공사를 임명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절차를 거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외부에 을사조약 초안을 보낸 후 의정부 회의가 열리기 전에 내각 대신들에게 동의를 끌어내어 책임을 회피하려는 고종을 압박하려 했던 것이다. 물론 그 절차도 일본의 강압에 의해 고종이 전권공사를 임명하지(p. 191) 않음으로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절차상 하자가 있는 조약, 그리고 최종 결정권자인 고종이 조약문을 검토하고 가부를 결정했는지 여부가 분명치 않은 조악이었기 때문에 국제법상 허용되지 않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 조약을 막아낼 수 있는 절차상의 강력한 힘, 가령 의회제 같은 것을 갖고 있지 못했던 대한제국 정치체제의 문제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이 황제 개인에게 주어져 있었다는 점은 독립 주권의 허약함 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고종이었다는 점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일본의 강압으로 궁지에 몰린 고종이 스스로 목숨을 내놓고 거부하지 않는 이상 조약을 회피할 다른 수단이 없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었다(p. 192). 신중한 개혁 노선의 표방, 그리고 제국의 분열 이완용이 내각 총리대신으로 확정된 후 이토는 1907년 5월 30일 대신들을 모아놓고 "한국의 존립에 있어서 가장 적절하고 긴요한 방침은 성실히 일본과 친목하여 일본과 존망을 함께하는 데 있다"라고 이야기했고, 이에 대해 이완용은 국가로서 독립할 실력이 없이 독립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본과 제휴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화답했다. 그는 대한제국이 문명국으로 나아가는 데 일본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일본이 힘으로 대한제국을 병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친일을 통한 실력 양성을 주장했다. 이완용의 이러한 인식은 당시의 대한제국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공유된 것이었다. 1905년 11월 20일 「시일야방성대곡」을 실어 이토의 동양 평화 주장이 허구였다고 비판해 정간당했던 『황성신문』은 1906년 2월 12일에 복간된 후 일본의 보호국 체제를 인정하고 일본의 보호 아래에서 정부를 개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계몽운동 단체였던 대한자강회 등도 기관지를 통해 서양 국가들의 국가 연합 형태를 설명하면서 보호국이 식민지와는 다르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리고 을사조약 전문에 명시되어 있는 "한국이 부강을 인할 시"에 보호를 철회하겠다는 내용을 들어, 일본의 보호 아래 정부를 개혁하고 실력을 양성하면 대한제국이 독립국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을사조약 체결 당시 '국망'을 외쳤던 언론 매체들은 점차 일(p. 220)본의 보호 아래 대한제국이 부강을 이루어야 한다는 실력 양성론으로 급격히 경도되어갔다. 물론 이들은 을사조약 체결 이후 일본의 대한 정책이 양국 관계를 더욱 갈라놓는다고 비판했지만, 동양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대한제국이 발전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일 본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진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농업•상업•공업 등의 경제 발전 방안, 교육•출판의 확대 방안, 정부 개혁론 등을 제시하면서 무력 투쟁보다는 성실하고 근면한 생활 태도로 실력을 기르는 데 온 힘을 바쳐야 한다고 대한제국민들을 독려했다. 실력 양성과 계몽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표출된 것도 바로 이때였다(p. 221). 다른 한편 이완용이 매국 행위의 정점에 자리하게 된 배후에는 철저한 현실주의와 실용주의적인 인생철학이 있었다. 그는 유교 교육을 통해 의리와 명분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현실과 개인의 관계에 있어서는 매우 실용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처음 관료가 되어 고종과의 경연에서 조괄을 등용한 조나라 왕의 선택에 대해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음을 피력했던 점, 그리고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조약 체결 때 대세를 어찌할 수 없다는 발언을 했던 점 등을 미루어볼 때 그는 역시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러면서 그는 그 현실 가운데서 모든 것을 포기하기보다는 최대한 또는 최소한 얻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실용주의적 면모를 갖고 있었다. 을사조약을 맺을 것이라(p. 258)면 수정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해야 하고,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할 것 이라면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한일병합조약에 조인하면서 데라우치에게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첫째로 민심이 불복하지 않도록 인민의 생활 방도에 힘쓸 것, 둘째로 황실에 대한 대우가 민심을 움직이는 변수가 되므로 이들을 후하게 대우할 것, 셋째로 조선인이 일본인에 비해 열등한 지위에 떨어지지 않도록 교육에 관한 행정기관을 설치하여 일본인과 동일한 교육을 실시할 것 등이었다. 병합 조건으로 내건 세 가지는 평소 그가 나라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교육과 경제 문제였다. 그는 주권이 없더라도 황실과 대한제국민이 편안하다면 그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보았다. 명분, 대의, 정의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근대 실용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었다(p. 259). 격렬한 저항 운동의 발발, 내선용화의 논리가 강고해지다 1905년 을사조약과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을 주도하면서 이완용은 독립협회 시절 문명화된 독립국을 만들자는 꿈을 포기한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성장과 대비해볼 때 대한제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문명국이 되기 위한 개혁을 성공시킬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완용은 대한제국의 주권을 포기하는 대신 조선 인민이 문명화된 사회에 살게 된다면 그것이 실리를 얻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일병합 이후 그가 농업 개량과 개간 사업을 진작하기 위해 노력한 것을 보면, 이러한 생각은 단지 자신이 누리는 영화를 합리화하기 위한 논리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의 상황은 그의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는 총독부가 시행한 농업 개량, 도로 정비, 교육 시설 확대 등의 정책에 대해서는 조선인의 실력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보았고, 그래서 이들 시책을 선전하는 데 적극 앞장섰다. 그러나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조선인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언행을 일삼는 것은 몹시 싫어했다. 한 예로 3•1운동 기간에 부임한 3대 총독 사이토에게 이완용은 "조선인이 비록 문명인은 아니지만, 미국인은 그런 조선인을 마음속으로 개나 돼지처럼 생각하더라도 겉으로는 친절하게 대하는 데 일본인은 조선인을 직접적으로 멸시한다. 조선인이 일본인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이 조선인을 무시하는데 어떻게 진정한 내선융화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주미공사로 재임했(p. 275)을 때의 경험을 들어 일본인보다 문명인인 미국인도 겉으로는 조선인을 무시하지 않는데 하물며 일본인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한 것이다(p. 276). '매국노'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07년 고종의 양위 무렵으로 보인다. 고종의 선위를 주장하는 통감부와 친일파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대한매일신보』는 "일본 관리와 제 몸을 일본에 파는 매국적 수중의 계심이라"라고 하며 그들을 비판했다. 이후 매국적은 그 명명만으로도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수치심 가득한 말로 그려졌다. 한일병합 이후에도 '매국'이라는 명명이 붙으면 조선인에게 인간 취급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매국의 표상이었던 이완용의 죽음은 숙연해지는 인간의 죽음이 될 수 없었다. 그의 죽음과 함께 저주와 조롱이 난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매국노'란 개념에 내포된 인간성의 상실 때문이었다. 이러한 저주는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이 현실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식민지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출구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완용이 매국노라는 오명을 쓴 것은 인간성을 상실한 그의 탐욕 때문이 아니라 현실을 인정한 가운데서 나름대로 '합리적인(p. 298)실리'를 추구했던 그의 사고 때문이었다. 무모하게 분개하거나 실리 없는 의리만을 고집하는 태도를 버리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최 대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더 중시했던 그는 100년 전 다른 양반 관료들과 달리 선진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사고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망국의 현장을 떠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3·1운동으로 민족의 분노가 표출되었을 때도 그는 일본의 식민 지배에 분노하는 군중의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차별, 불평등, 억압에 분노하기보다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실리를 추구했던 그의 태도 가운데서 우리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믿는 현대인의 태도를 발견하게 된다(p.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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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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