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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여성 안수 문제,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1. 안타까운 108회 총회의 갈지(之)자 행보 이번 108회 총회에서 여성 사역자 위원회는 여성들에게도 강도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제안하였고, 이를 이의 없이 총회는 받아들였다. 이러한 결정은 우리 총회가 획기적인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는 놀라운 진전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총회 마지막 날 번복되었다. 없던 일이 되었고, 더 나아가 아예 여성들이 안수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못하도록 다른 이름의 직책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교육사”, “신학사”라는 이름으로 설교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인데, 이는 목사 안수는 아예 가능하지 않도록 못박아 버리는 일로 보여진다. 이러한 갈지자 행보는 더더욱 여성들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들고, 교단을 떠나는 일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이러한 결정이 아쉬운 것은 여성이 교회에서 잠잠해야 하기 때문에 목사 안수를 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교육사”, “신학사”라는 이름으로 설교할 수 있게 하겠다는 자기모순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2. 교단은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우리 교단의 현행 헌법에서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 안수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종종 여성안수를 주장하려거든 그런 교단으로 떠나가라고 겁박하는 분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칼빈주의자라고 하는데, 칼빈주의의 요체는 무엇보다도 성경이 최고의 기준이며, 그 어느 것도(교단헌법과 교리교과서 등등)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갖지 못하기에, 모든 것이 성경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칼빈주의자라면 성경의 가르침을 들어서 반박해야지, 교단 헌법으로 겁박한다면 너무 궁색해 보일 뿐이다.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최고의 기준이며, 다른 모든 것은 성경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 교단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성경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무오(無誤)한 것은 없으며, 실제로 우리 교단의 헌법은 여러 번 수정을 해왔다. 그리고 심지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안에 있는 행위언약이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는지 질문이 들어왔을 때, 왜 신앙고백서를 따르지 않느냐고 정죄하지 않고 성경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고 입장을 정리했다. 여성 안수의 문제는 과연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여성에게 안수를 해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시대의 조류를 따르는 것이라고 폄하해 버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시대의 조류를 따라서는 안 되고, 성경이 최고의 기준이라고 하는 원칙은 아주 소중하다. 우리는 시대의 조류를 따를 것이 아니라, 성경이 가라고 하는 데까지 가야 하고, 성경이 금한다면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문제는 과연 여성에게 안수하는 문제가 시대 조류에 편승한 것인가이다. 여성에게 안수하자는 주장이 시대의 조류에 편승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과거에는 과거라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 여성에게 안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성경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성경은 분명하게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고 되어 있다. 그렇게 성경이 금하고 있는데, 여성 안수가 어떻게 가능하다는 말인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즉 만일 여성이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분명하게 믿는다면, 지금 당장 여성들이 하고 있는 대부분의 모든 사역들을 교회에서 금지해야 할 것이다. 구역장도 안 되고, 세미나 강사로 세워서도 안되고, 교사도 할 수 없다. 만일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진정으로 믿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여성으로 하여금 교회 내에서 성직자로 세워질 수 없는 근거 구절로 사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 전체로”(tota scriptura)의 원칙 때문이다. 성경 구절 한두 구절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 전체로의 원칙이 무너지고 성경의 한두 구절에 의존하면, 하나님의 뜻과 위배되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만을 선택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모압과 암몬 민족은 하나님의 회중에 “영원히” 들어올 수 없다고 되어 있고, 더 나아가 예수님은 오직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만 보냄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말씀들만 보면 이방인들에게 선교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완전 위배되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서 보면 선교가 하나님의 뜻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모압 여인인 룻도 하나님의 회중 속으로 들어와 메시야의 조상이 되었다. 그러니까 성경 한두 구절만 보면 안 되는 것이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구해야 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구속사역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한 관점 때문에 초대교회 예루살렘 총회는 할례를 이방인들에게 요구할 필요가 없다는 가장 진취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미 하나님은 여성인 드보라와 훌다를 지도자와 선지자로 세웠고, 고린도전서 11장에서는 여성들이 교회내에서 예언(하나님의 뜻을 풀어 가르치는 것)하는 것 자체를 금하지 않고 머리에 두건만 쓴다면 예언할 수 있다고 하였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은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결국 성취시켰다. 즉 그때가 되면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오순절 때 이미 성취되었다. 이제는 여성들도 하나님의 뜻을 풀어 가르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종종 예언과 가르침은 다르다고 반론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4:31에서는 예언의 목적이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못박고 있다.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12제자 중에 여성을 한 명도 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 반론의 근거일 수 없다. 물론 예수님께서 여성도 12 제자 가운데 포함시키셨더라면 논란 자체가 정리되었겠지만, 예수님께서 남자들만 제자로 세우셨다는 것이 여성은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12제자 중에는 사마리아 출신이 한 명도 없고, 더 나아가 이방인도 한 명도 없었다. 그러면 오로지 유대인만 사역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일까? 한국 사람이 성직자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 되는 것일까? 개혁주의의 원조격인 칼뱅도 오로지 남자들만이 사역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는 것도 반론의 근거일 수 없다. 칼뱅은 아주 뛰어난 신학자이지만,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칼뱅의 입장이 모두 다 100% 맞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칼뱅은 성경의 가르침이 비추어보아서 자신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면 자신의 주장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우리가 칼뱅을 우상화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항상 성경만이 최종적인 권위가 되어야 한다. 여성 안수를 받아들이면 결국 자유주의를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우려가 많다. 자유주의를 받아들인 교단들이 주로 여성 안수를 시행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안수를 받아들인 교단이 모두가 다 자유주의화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CRC교단, 고신교단의 모교회 격이라고 할 수 있는 화란개혁교회(31조파)도 여성 안수를 수용했다. 또한 한국 내에서도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보수교단인 백석 교단과 여러 개혁 장로교단들도 여성 안수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철저하게 자유주의를 배격하고 있다. 그 동안 이런 식의 반론은 참 많이 있었다. 주5일제 시행하면, CCM 복음송을 받아들이면, 외국과 무역을 하게 되면, 조상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부모님이 주신 머리카락을 자르면, 세상이 망할 것이라는 식의 주장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찰싹거리는 작은 파도를 보면서, 두려움과 무서움 때문에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면 결국 도태될 뿐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뜻인가일 것이다. 물론 우리와 깊은 관계가 있는 미국의 PCA, OPC 교단과 같은 곳에서도 여성 안수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PCA, OPC 교단도 머지않은 장래에 여성 안수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왜냐하면 모두가 성경의 가르침에 순복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교단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연구하고 또 연구해보면, 여성들에게 잠잠하라고 했던 것이 당시에 있었던 일시적인 명령이었을 뿐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결국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여성들이 사역하는 것이 막혀 있었다는 사실도 반론의 근거일 수 없다. 안타깝게도 사람은 객관적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자신의 환경과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성경을 해석하다 보니, 그 해석이 잘못될 수 있다. 사실 종교개혁자들은 천년이 넘도록 지속되었던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라고 외칠 수 있었다. 아니 그 이전에 이미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중심의 종교가 순 엉터리일 뿐이며 잘못된 것이라고 외치셨다. 역사가 오래 되었다고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불변의 원칙은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 secundum verbum dei)이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비추어보아서 그동안의 전통이 잘못된 것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전통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안 된다(마 15:3). 사실 초대교회에서도 브리스길라와 같은 여성 사역자가 있었고, 유니아라는 여성(롬 16:7)도 12 사도는 아니었지만 바나바와 같은 또는 비슷한 역할을 했던 사도였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황금의 입이라고 알려진 요한 크리소스톰(350-407)은 유니아에 대해서 “사도가 되는 것은 위대한 일인데, 그 가운데 뛰어난 자였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영예의 노래인가!”라고 했다. 장로나 집사로 세우려면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말은 여성은 안 된다는 뜻으로 보아야 할 필요가 없다. 장로의 자격에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한다(딛 1:6)는 구절이 있지만, 결혼하지 않았거나 아직 자녀가 없다고 해서 목사나 장로 임직의 결격 사유로 보지 않는다. 이 표현은 “자녀를 두었을 경우에는”이라는 말이 생략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말은 “만일 그가 결혼한 남자라면”이라는 전제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말을 여성은 안 된다는 뜻으로 확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구절은 결혼 생활에 있어서 성결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직 교단 내에 여성 안수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초대 교회 할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그냥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서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해야 한다. 3. 현행 법으로도 강도사를 줄 수는 있다 부흥하고 성장하는 공동체는 모든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든 더 잘 일할 수 있게 하는 공동체이다. 망할 수밖에 없는 공동체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사역을 막고 소수가 가진 그 힘을 행사하는 공동체이다. 광야에서 모세는 이드로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판권을 천부장, 백부장에게 나누어 주었다. 우리 교단도 여성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사역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우선 총회는 여성 사역자들이 강도사 인허를 받을 수 있도록 도우면 좋겠다. 현행 헌법도 여성이 강도사가 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편 제14장에 의하면, 총회가 신학 졸업생을 고시하여 노회가 강도사로 인허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총회가 결의하고 받아주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사실 108회 총회 전에 이에 대한 합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었다. 108회 총회의 결정이 뒤로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상당히 우려스럽다. 목사 안수의 문제는 총회가 좀 더 심도 있게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토론해야 한다. 그 옛날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 할례를 시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성경에는 반드시 할례를 시행해야만 한다고 되어 있지만,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가져온 관점으로 성경을 이해하면서 할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총회의 역할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토론을 통해 구해야 한다. 현재 우리 교단 내에는 다양한 해석과 의견이 존재한다. 세미나, 토론회, 전문 연구 등을 병행하는 것을 통해, 서로 경청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이웃 교단인 백석은 발 빠르게 여성 안수를 허용했고, 엄청난 교단적 발전과 신학교의 발전이 있었다. 사실 많은 여성 사역자들을 이웃 교단에 빼앗긴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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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03
  • 동네작은학교 봄학기를 마치고
    2023년도 다문화 아이들과 함께 하는 동네작은학교 봄학기를 마쳤습니다. 초등부4-6학년 아이들이 한학기 동안 노래 교실에서 배운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길 가려 하네 아름다운 꿈꾸며 살아가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 가네 배운다는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배운다는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린 알고 있네 우린 알고 있네 배운다는건 가르친다는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아이들이 꿈을 꾸고 교사인 우리들은 희망을 노래하는 것…그런 학교를 꿈꾸며 한학기를 달려 왔습니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옆에서 지켜보며 가슴이 벅찼습니다. 먼 타국에서 한국 땅을 향해 온 어머니들이 낳은, 다문화 자녀라 불리우는 이 아이들이 꿈을 노래하는 모습에서 룻도 생각나고 나오미도 생각 났습니다. 바울이 키운 영적 아들 디모데도 떠올랐습니다. 그도 이방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 출신이었죠. 이류 취급 받고, 제국에서는 주변인 처럼 살아간 저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한 학기 동안 꿈을 꾸듯 달려 왔습니다. 살아 있음을 느끼며, 없는 길을 만들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달의 방학을 보내고 여름학기를 또 시작 합니다. 기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함께 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이들이 주님의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을 아이들 입니다. 이 아이들을 위해 계속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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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5
  • 아버지 자리
    "어버이날 선물" 어버이날인 오늘 막내딸은 늦었다고 아침에 학교태워달라고 눈치 줘서 엄마가 태워줬고 집으로 올쯤 냉면 먹고 싶다해서 아빠가 삶아 먹게했더니 깜짝 이벤트 해 주었습니다. 역삼동까지 가서 사온 어버이날 맞춤케익이라 하면서요. 노래를 듣는데 저는 자꾸 천국가신 어무이 생각나서 울컥했습니다 “아버지 자리” 1. 나는 가난한 농부의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날 때 아버지는 45세였다. 줄줄이 딸만 낳다가 느지막하게 형과 나를 3년 터울로 낳았던 아버지는 그제야 어깨에 힘을 줄 수 있었다. 늦게 낳은 막내아들이 결혼 할 때 아버지는 이미 70대 중반이셨다. 워낙 나이차가 많다보니 내게 아버지는 아버지보다 할아버지 같았다. 그 시대 아버지상은 무뚝뚝하고 엄한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밥상 한번쯤은 마당으로 던졌던 것을 자랑삼아 말하던 시대였다. 우리 아버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난 아버지에게서 단 한 번도 따뜻함, 다정함을 느끼지 못했다. 도리어 아버지는 가까이 하기에는 늘 먼데 계신 분이셨다. 배운 게 없고, 가진 것이 없던 아버지는 고단한 삶 속에서 종종 인상 쓰셨고, 걱정과 염려를 입에 달고 사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1년 전, 오래된 옛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지었다. 물론 농협 대출 받았다. 대출 상품은 20년 동안 원금과 이자를 나눠 갚으면 되는 농민들에게 좋은 거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새 집에 사는 기쁨보다 빚으로 인한 염려가 더 크셨다. 일찍부터 철이 든 나는 아버지를 보면서 부인할 수 없는 진리 하나를 깨달았다. 아버지는 염려가 많으시고, 돈이 없는 분이시다. 그래서 아버지의 속을 꽤나 썩인 형과는 달리 나는 착한 아이 코스프레 길을 선택해 속 썩인 일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어릴 때가 가장 많이 들은 소리가 ‘착하다’였다. 그때 형성된 착한 아이 이미지는 보름 전, 40년 만에 만난 중학교 동창들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2. 세월이 흘러 나도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 커리어도 어느 듯 30년이 가까워진다. 어느 날, 대학 다니는 막내딸이 용돈을 좀 달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선뜩 지갑에서 돈을 꺼내 주는데, 속 깊은 곳에서 울컥거리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냐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아버지 상이 내 모습 속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공납금이나 학용품 사기 위해서 아버지에게 용돈을 요구하면 언제나 엄마가 대신하여 옆집으로 달려가 돈을 꿔와 주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가난했고, 고단한 인생길을 사셨다. 하지만 언제나 정직하셨고 진실하셨다. 경우를 벗어난 행동과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셨다. 더군다나 인생 후반에는 믿음에도 큰 진전을 가지면서 새벽을 깨우며 항상 기도하셨다. 지금도 새벽예배 후에 소죽을 쇠면서 콧노래로 흥얼거렸던 찬송의 소리가 들린다. ♪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없이 살아 온지도 벌써 21년째다. 누나들은 내가 나이가 먹어갈수록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한다. 내가 나를 봐도 얼굴이 길어지면서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 같다. 요즘 아내가 나를 보면서 ‘미’라고 소리 내라고 한다. ‘미’라고 소리 내면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 웃는 상이 되기 때문이다. 인상 쓰신 아버지상보다 웃는 아버지상이 보기 좋다. 3. 언제부턴가 엄혹한 사회의 톱니바퀴에 끼인 채 제자리를 맴돌며 점점 주변을 서성이는 아버지들의 늘어나고 있다. 자식을 끔찍하게 생각하면서도 표현할 줄 몰라 함께 있으면 서먹해지는 아버지, 가족들의 대화에 당최 끼지 못해 가정에서조차도 왕따 되어가는 아버지, 아내 없인 금방 폐인이 되어가는 아버지. 그래서일까? 자식들 입장에서 어머니보다 멀리 계신 분이 아버지다. 5월만 되면 평소보다 더 아버지가 그립다. 나 역시 아버지에게 다정다감하지 못한 못난 아들이었다. 또한 딸들에게도 친근하지 못한 아버지였다. 어제 딸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친구 목사를 보면서 아버지의 자리를 생각했다. 멋진 아버지로, 친근하면서 웃는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남은 삶을 살기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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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5
  • 밀린 숙제를 하다
    오늘은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한 지 꼭 12,000일 되는 날이었다. 주일 예배를 마친 후 그동안 바쁜 관계로 한동안 보지 못했던, 먼저 간 친구들을 만나러 가려고 길을 나섰다. 먼저 2012년 7월 13일 금요일, 신경직 목사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지 벌써 올해로 만 11년 하고도 10개월째, 그리고 2017년 3월 17일 금요일, 김선호 목사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 보낸 지 만 6년하고도 2개월째, 두 친구를 보고 싶어서 각각 오산리에 있는 크리스천 메모리얼 파크와 일산동구 설문동에 있는 청아공원을 찾았다.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신경직 목사를 보면서 잠시 옛 추억에 잠겨 묵상하고 아내와 사진 한장을 찍고, 나온 후 영산수련원에 새로 생긴 "아리아1968"이라고 하는 베이커리 카페에서 점심겸 커피한 잔과 빵으로 점심을 먹은 후 많이 변한 영산수련원과 오산리 최자실 기념 금식 기도원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트레킹 길로 한 바퀴 도는데 약 30분 정도 걸리더라). 그 옛날 오산리 최자실 기념 금식기도원에서 내가 먼저 40일 금식기도를 끝낸 후 이듬해 사랑하는 아내가 이곳 최자실 기념금식기도원에서 40일 금식기도를 끝낸 적이 있었다. 아내와 나는 그때의 추억을 생각하며, 많이 변한 최자실 기념 금식기도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청아공원으로 향했다. 청아공원에 도착하여 예전대로 기독교관 1층(내 느낌엔 지하 2층 같은 느낌이지만, 그곳에서는 1층이라고 부르더라)에 위치한 <은혜홀 파> 방으로 들어갔더니 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김선호 목사가 보이질 않았다. 결국 사무처로 문의 후 3층의 <믿음홀 다>방으로 아들 예찬 군이 작년에(5주기 때) 옮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믿음홀 다 A1-02 > 김선호 목사가 새롭게 자리잡고 위치한 방이다. 김선호 목사의 사진을 바라보며, 잠시 옛 추억을 생각하다가 묵상기도를 한 후 아내와 간단하게 사진 한 장을 찍고 청아공원 주변을 잠시 걸었다. 누가 가보라고 해서 온 것도 아니요, 꼭 와야만 했던 것도 아니었으나, 마음속에 이 두 친구를 보고 싶은 마음이 얼마 전부터 자리잡고 있었다. 사람의 인연이란 건, 참으로 무섭다. 끊을래야 쉽게 끊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 사람의 인연인 것 같다. 특히 "친구"라는 관계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차를 몰고 집으로 오면서 아내에게 이 두 친구와 지냈던 학창 시절의 추억을 잠시 이야기 해 주었다. 언젠간 나도 먼저 간 두 친구처럼 저렇게 추모공원에 들어가 자리잡고 앉아 있겠지...그때 잊지 않고 날 찾아줄 친구가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본다. 아무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 악착같이 친구들을 다 떠나보내고 오래 살아 남아야겠지...먼저 간 두 친구는 참 배짱도 좋다. 그렇게 먼저 가 놓고 남아 있는 우리들에게 숙제를 주는 것인가... 오늘 나는 두 친구가 내게 준 숙제를 처리하고 새로운 한 주간을 준비하러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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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5
  • 『생활동반자법』, 무엇이 문제인가?
    2023년 4월 26일에 기본소득당 용혜인 국회의원이 새로운 법안을 발의했다. 국회의원이란 그 사람 자체가 곧 입법기관이며 법을 잘 만들라고 국회의원 본인과 보좌관에게 연간 약 8억 원의 세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세비 지원과 함께 엄청난 특권을 누리는 국회의원은 나라를 위한 좋은 법을 만드는 것이 마땅한 책무이다. 그런데 이번에 용혜인이 발의한 법안을 들여다보면 나라를 위한 법이 아니라 나라를 해치고 가정을 파괴하며 우리의 미래 세대를 망치는 악하기가 이를 데 없는 나쁜 법이다. 용혜인이 발의한 『생활동반자법』이란 도대체 내용이 무엇이며 그 속에 어떤 문제점이 들어있길래 그렇게 심각하단 말인가? 그리고 용혜인은 국회의원으로서 도대체 왜 그런 악법을 발의했단 말인가? “여기 새로운 가족이 있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용혜인이 발의한 『생활동반자법』의 정식 명칭은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인데 해당 법안은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권인숙, 김두관, 김한규, 유정주, 이수진 의원, 정의당 류호정, 장혜영 의원, 진보당 강성희 의원,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이 공동발의자들 가운데 정의당 장혜영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2020년과 2021년에 각각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사람이며 그 법안은 지금도 국회에 계류중이다. 이처럼 그들은 가정을 파괴하는 일에 있어서 다 한통속이다. 『생활동반자법』의 골자는 결혼하지 않아도 성인 2명이 합의해서 동반자 관계가 되면 이들에게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것인데 이것은 전통적 의미의 가족을 해체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정춘숙 의원 두 사람이 2021년에 각각 대표 발의했던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과 큰 틀에서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역시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족 개념을 삭제하고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인정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은 다수 국민의 반대에 막혀 현재 추진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용혜인이 주장하는 가족의 권리를 누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누구든지 가족이 되고 싶은 사람은 결혼하면 된다. 결혼식까지도 필요 없고 단순히 혼인신고만 해도 된다. 만일 결혼과 혼인신고 하는 것이 싫으면 혼자 살든지 마음 맞는 사람끼리 같이 살면 된다. 그런데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겠다는 것은 혼인으로 이루어지는 가족의 개념을 파괴하는 것이며 동성애를 합법화하려는 저의가 엿보인다. 이것은 전통적이고 정상적인 가족 개념과 하나님께서 명하신 결혼제도를 파괴하려는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용혜인은 왜 그런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또 여기에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진보당, 그리고 무소속 의원들까지 합세해서 공동 발의했을까? 용혜인이라는 사람을 따로 연구해보지 않았지만 이런 법안을 발의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그녀는 젠더 이데올로기, 성 혁명 세력의 일원이거나 혹은 그들의 지지와 사주를 받는 자임을 알 수 있다. 성 혁명 세력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신마르크스주의의 뿌리에서 나온 해체주의자들로서 국가와 교회와 가정이라는 기본 질서를 허무는 자들이다. 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가정을 허무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데 성 혁명 세력이 사용하는 개념 가운데 “정상 가족 신화”라는 표현이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 전통적이고 정상적인 가족 개념은 타파해야 할 “신화” 혹은 “미신”이다. 그래서 가정을 생명처럼 지키는 교회와 성경은 그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지금 성 혁명 세력은 집요하고도 다양한 방법으로 가정 해체를 추진하고 있는데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저들은 우리나라에 이미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23개나 존재함에도 동성애 합법화를 포함한 『포괄적차별금지법』 제정을 시도하고 있다. 저들은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통해서 결혼제도를 부정하고 가정을 허물려는 자들이다. 저들은 학생인권조례를 통해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조기 성애화하고 유년기부터 성적으로 문란하게 만듦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망치려는 자들이다. 그래서 5년마다 새로 만드는 교과과정에 성 혁명 사상을 집어넣으려고 하다가 우리에게 발각되었고 우리가 사생결단 투쟁해서 바로잡아놓은 상태이다. 금번에 용혜인이 개인적 소신으로 발의했는지 혹은 성 혁명 세력의 지침에 따라 누군가 만들어준 법안에 이름만 올렸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사실이 어떠하든지 『생활동반자법』은 절대로 제정되어서는 안 되는 악법이다. 하나님은 대한민국에 이런 법이 제정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실 것이며 우리 하나님의 종들은 모두 하나님 편에 서서 이를 막아낼 것이다. (※ 해당 법안은 용혜인 의원이 국회 소통관에서 발의한다고 발표했고 KBS와 여러 매체에서 기사화했으나 막상 의안현황에는 검색되지 않는 것을 보면 적절한 발의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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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2023-05-07
  • 가짜목사 전성시대
    가짜목사 전성시대 한때 도둑질을 일삼던 사람이 감옥에서 변화를 받아 예수님을 믿었고, 목사까지 되었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센세이셔널하다. 어쩌면 복음의 능력이 지금도 살아있는 것이라는 생생한 증거일 수도 있다. 한때 유명한 연예인이었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며, 세상의 영화를 다 버리고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한때 불교의 스님이었던 분이 개종하여 목사가 되었다는 소식도 아주 흥미롭다. 그런 사람들은 당장 인기리에 초청되기도 한다. 늘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은 교계에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기도 하고 목사가 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회심이 진실한 것인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믿음은 시간의 검증이 필요하기에, 디모데전서 3:6에서는 직분자를 세울 때 “새로 입교한 자”를 함부로 세우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성급하게 목사가 되는 길이 열려 있다. 그렇게 양산된 목사들이 사실은 복음의 장애물이 되는 경우를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다. 목사가 되었다던 그 사람은 여전히 도둑질을 멈추지 않는 경우가 있고, 목사가 되었다는 그 연예인은 불륜에 폭력에 온갖 추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목사가 되었다고 하고, 설교를 하기도 하고, 선교 사역을 하기도 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도 하는데, 그런데 그 신앙이 제대로 된 신앙일까? 바리새인이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며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것 같았지만 주님께서는 가짜 신앙이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 주변에도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가짜 성도 가짜 목사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양의 털을 입은 이리인지 분별하라고 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올 것이니까 조심하여야 한다고 경고하셨다. 사실 목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돈과 탐욕의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하나님이란 그저 이 땅에서 탐욕을 추구하고 돈을 더 많이 버는 데 유용한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기도를 열심히 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신앙생활을 철저히 하면 복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오병이어 기적의 현장에서 빵을 먹고 배불렀던 무리들과 다르지 않다.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은 사탄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 가짜 목사들도 그렇게 믿을 수는 있다. 그래서 분별해야 한다. 가짜 목사의 비리와 행태를 종종 옹호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같은 영적인 식구니까 감싸고 돌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도 똑같은 부류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교회는 거룩성을 추구해야 한다(고전 5:11-13). 종교개혁자들은 참된 교회의 표지 중의 하나로 권징을 들었는데, 이는 거룩성을 추구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시대는 가짜 목사 전성시대이다.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이미 주님께서 그럴 것이라고 예언해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참된 믿음을 지켜나가야 한다. 영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분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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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실시간 기고 기사

  •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79개의 다중인격 장애(Multiple personality disorder 지금은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고 칭함)를 가진 한 여성이 나왔다. 그 여성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16세까지 받았다고 하는데 그 고통으로 생긴 장애로 인해 아주 오래 동안 치료를 받게 되었고 지금은 그녀의 많은 인격들이 상당히 많이 통합 되어서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런 자신의 삶을 글로 써서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고 한다. 쉽게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의 너무나도 끔찍한 경험으로 인해 그것을 기억한 채로는 정상적으로 살아가기가 어려워 그 기억과 단절된 또 다른 인격을 만들어서 삶에 자신을 적응시켜 나가는 모습이 생긴 것이다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한 모습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처한 삶의 위기를 극복하게 도와줄 수 있으나 너무나 다르고 다양한 인격들이 자아 속에 존재하면서 그 존재간의 단절과 갈등으로 인해 서로를 기억하지 못해 삶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최근 내면 가족체계 이론(IFS : Internal Family System) 이라고 하는 것이 한국에도 알려져서 관련된 책들이 많이 번역되었는데 이 이론을 연구한 David C. Schwartz박사는 비단, 다중 인격 장애 즉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가진 사람만 다양한 인격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다양한 인격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의 ‘부분(Part)’이라고 지칭한다. 그 다양한 인격은 조화를 이루어서 하나의 체계를 이루며 한 사람의 내면 안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는데, 다중 인격 장애는 그 인격체들 사이에 극심한 단절이 있다는 차이점이 있고 그래서 인격끼리 서로 소통하지 않고 서로의 존재에 대해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박사님의 말이 어쩌면 맞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왜냐면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사람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덜 병리적이고, 덜 판단하게 되기 때문이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 (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를 가진 사람도 아주 특별하게 이상하게 보기 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 있는 다양한 인격의 모습이 그 사람에게는 더 도드라지고 더 단절되고 더 고통을 준다고 할 때 그러한 정신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은 더 열리게 된다. 또한 이런 개념은 오랫동안 많은 학자들과 임상 심리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된 적도 있었다. 그들은 자아 속에 있는 다양한 다른 자아의 모습을 다른 개념으로 이미 언급한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참 자아와 거짓 자아라는 말을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참 자아(있는 모습 그대로의 진짜인 내 모습)로 살아야 하는데 사회에서 용납될 수 있는 모습으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우리의 많은 모습이 거짓 자아의 모습일 때가 있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자아가 한 가지 인격이 아니고 여러 인격이 어우러져서 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을 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심리학의 선구자인 프로이트는 자아를 원초아, 자아, 초자아로 구분해서 설명했다. 원초아(id)는 욕망과 충동에 의해서 조정되는 자아의 부분, 초자아(superego)는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살아가려는 자아의 부분이고 자아(ego)는 그 중간에서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이 뿐 아니라 교류 분석에서는 한 사람의 자아 속에는 부모자아, 성인 자아, 아동 자아가 있는데 부모의 자아에는 비판적인 부모자아와 양육적인 부모자아가 있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성인 자아가 있다면 자유로운 아동 자아와 적응된 아동 자아도 있다고 본다. 이렇게 볼 때 벌써 자아 안에 다섯가지 다른 모습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가 사람을 이해할 때 착한 사람, 나쁜 사람, 또는 이기적인 사람과, 이타적인 사람과 같은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지고 단편적으로 이해하면 때로 그 사람의 모습이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평소에 너무나도 자상하고 좋았던 남편이 화를 낼 때 우리는 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좋은 사람이라고만 늘 생각을 했을 때 그에게 ‘화’ 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화를 낸 남편은 남편의 참 자아의 모습이 아니라 거절감과 부당함에 속상함을 나타내는 남편 안에 있는 작은 부분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훨씬 더 잘 이해 하게 된다. 언젠가 자존감이 낮고 대인관계에서 힘들어하는 한 내담자에게 종이에 한 사람의 형태를 그린 다음 그 사람 안에 있는 아주 많은 다양한 장점들과 좋은 인격적 모습들을 그려 놓은 다음에 “당신은 소극적이고 사람들과 관계하기를 어려워하는데 실제로 그런 당신의 모습은 당신의 전부가 아니라 많은 다른 좋은 점과 함께 당신에게 존재하는 한 부분일 뿐이네요”라고 말해주었다. 내담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은 것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분은 지금까지 자신이 사회적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 때문에 그 부분이 확대되어 자신의 다른 긍적적인 자아의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내면 안에 여러 부분의 자아가 있다’는 개념은 인간 내면의 복잡함과 다양성을 수용하게 해주며, 한 사람에게 어떤 특정한 프레임을 씌워서 그 사람을 바라보게 하는 것을 하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다. 내면 가족 체계 이론에서는 크게 자아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한 자아는 ‘참 자아’의 모습이다. 이 자아는 다른 모든 부분의 자아를 통합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리더십을 가지고 소통하며 체계를 이루어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 순기능을 하는 자아다. 내면아이치료로 잘 알려진 존 브레드 쇼는 어린 아이들은 이런 순기능을 하는 자아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성장하면서 상처를 받음으로 그 자아의 모습이 손상된다고 보아서 성장하지 못하고 상처로 인해 머물러 있는 내면의 아이를 잘 돌봐 줌으로 다시 성장하고 성숙한 어른으로 발달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참 자아의 모습 외에 내면 가족 체계 이론에서는 ‘보호자의 역할을 하는 자아’의 모습이 있다고 한다. 사회에서 잘 기능하고 사람으로부터 손가락질 당하지 않도록 여러가지 모양으로 채찍질하며 이끌어 주는 역할이다. 그리고 ‘소방관의 역할을 하는 자아’가 있다. 이 자아는 자아가 정서적으로 힘들어서 불이 난 것처럼 많이 힘들 때 빨리 그 불을 끄는 역할을 해주는 자아의 모습이다. 그것은 중독과 같은 일시적인 만족을 주는 방법 등을 사용하게 한다. 그리고 ‘유배자의 역할’이 있다. 유배자의 모습을 띤 자아의 부분은 상처받고 유약한 자아의 부분이라 보호자나 소방관에 의해서 조정되고 겉으로는 잘 나타내 보이지 않게 하는 자아의 모습이다. 이런 자아의 부분들이 한 사람이 생존해가는데 어떤 역할을 하고 서로에 대해서 어떻게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어 살아갈 수 있는 지를 탐색하고 알아가는 일을 통해 참 자아가 모두를 통합하여 스스로가 자신에게 바람직한 삶의 선택과 방법들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 안에 있는 다양한 부분들이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은 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이는 보호자의 파트만 과도하게 역할을 하여 늘 자신을 쉬지 못하고 엄격하게 다루고 완벽주의로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자아의 부분은 내면 깊은 곳에 숨겨놓은 채 말이다. 우리는 건강해지기 위해서 내 안에 있는 모든 부분들을 수용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그 안에서 참자아가 연약한 나의 부분을 돌볼 수 있는 힘과 에너지가 생겨날 수 있게 된다. 남들이 보기에 좋은 부분만 나의 부분인 것처럼 살지 말고 나의 모든 부분을 건강하게 수용하고 받아들일 때 삶의 지혜와 방법을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을 잊지 말자. 호주기독교대학 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 (CEO of One and One Psychological Counselling Clinic) 호주가정상담협회 회장 (President of Australian Family Counselling Association) 한국인 생명의 전화 이사장 (Chair of Board in Australia Korean Life Line) ACA Registered Supervisor (ACA등록 수퍼바이저), ACA Member Level 3 (ACA정회원) 기독교 상담학 박사 (Doctor of Christian Counselling) 목회상담학 박사 (Doctor of Pastoral Counselling) 고려대학교 국제경영 석사 (MBA of International Business at Korea University)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MdiV at Chongshin Theological Seminary)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BA of Mass Communication at Korea University) 총신대학교 신학과 졸업(BA of Theology at Chongshin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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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6
  • 갈멜산의 전쟁을 선포한다!
    이데올로기를 우상으로, 원수로 여기는 세상에서 우상과 미신, 접신이 본격적으로 정치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 교회의 영적 능력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쓸데 없는 진영논리 펴지말고 당당히 나서자. 난 기꺼이 선지자들의 반열에 서겠다. 저쪽이 아합과 이세벨을 자처 한다면 난 엘리야의 심정으로 나서겠다. 지금부터 한달은 갈멜산의 전쟁이다. 애초 이 세상의 모든 영역은 결국 영적 대결이다. 공중 권세 잡은 자들과의 한판 승부이다. 비겁하게 예배당 속으로, 성도들 상처 운운하면서, 이도 저도 아닌 회색의 자리에서 성경을 말한다고 지껄이지 마라. 귀신의 힘을 의지하는 자들이 엄연히 드러난 이상, 맞짱 뜨는 거다. 내가 죽고 하나님이 사시는 길로 가는게 맞다. 아시아에서 정치의 민주화, 경제성장, 문화적 강국으로 이 정도 올라온 나라 몇 없다. 독재의 길로 들어간 시진핑에 머리 숙인 중국, 수구꼴통 일당 자민당에 일방적으로 거세당한 일본... 우리는 만군의 여호와를 의지해서 이루어야 할 공평과 정의의 나라를 꿈꾸는 자들이다. 여기가 어디라고 더럽고 음습하고 사악한 귀신을 붙잡고 있는 무리들이 설치게 놔둘 수 있는가? 구약과 신약은 시대마다 지역마다 사로잡은 악한 영과의 전쟁의 역사이다. 이제 우리시대에 내가 감당해야 할 상황이 벌어졌을 뿐... 정면으로 가 보자. 총신대학교 졸업 총신대학신학대학원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졸업 University of Birmingham, England에서 Interreligious Relations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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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6
  • 부부의 갈등은 정상, 조기에 처리하라
    그토록 눈부신 하얀 드레스를 입고 아름다운 인생을 꿈꾸며 평생을 함께 하자고 서약한 부부가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가 나빠지고 갈등이 가득한 부부가 되는 것을 보는 것은 마음이 아픈 일이다. 어릴 때부터 완전히 다른 두 가정에서 자란 부부가 갈등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나 그 갈등이 해결되지 못하고 계속 이어져서 이제는 절망하고 나중에는 포기하기까지 하는 부부들을 바라보면서 무엇이 이렇게 큰 어려움을 가져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부모님의 순탄하지 못한 결혼 생활을 경험한 젊은이들 중에는 결혼을 시작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허다한 것을 보게 된다. 한 남자는 너무나 인물이 훤칠하고 전문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부드러운 성품도 가지고 있지만 결혼 생활을 부모님처럼 실패하지 않기 위해 너무 너무 조심스럽게 사람을 만나고, 만나면 이것저것을 재느라 결국 결혼을 하지 못하고 반복해서 헤어지는 것을 선택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알코올 중독자의 아버지를 닮아 자신이 결혼을 해서 자신도 비슷한 삶의 경로를 겪을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하고 의미 없는 만남만 반복해서 하는 경우도 있고, 젊은 시절 첫 사랑에 실패한 아픔이 커서 그 이후에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이제는 결혼을 했더라면 자녀가 대학에 갔을 나이가 되도록 혼자서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분도 있다. 결혼을 했지만 갈등을 지속적으로 겪고 있는 부부나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결혼에 대해서 어려움을 느끼며 힘들어하는 청년이나 비슷한 한 가지 이슈가 있다면 그것은 어린 시절의 상처와 역기능 가정에서 형성된 삶의 패턴과 사고방식이 현재의 삶에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 경험한 두려움이나 아픔이 새로운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거나 그 때 경험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대인 관계의 형태가 굳어져서 성인의 새로운 관계를 건강하게 만들어 가는데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것을 볼 때 어린 시절의 ‘애착’ 이라고 하는 이슈가 한 사람의 삶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다시 한번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자신을 키워준 주 양육자로부터 안정된 애착을 형성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자신을 믿지 못하거나 타인을 믿지 못함으로 안전하고 편안한 관계를 맺는 것을 잘 하지 못하게 되는데 용기를 내어 한 번 시도한 관계가 실패로 돌아갈 때 자신의 믿음은 더 확고해져서 더 관계를 시도하는 것이 어렵게 되는 경우가 있다. 관계 안에서 불안감을 많이 경험하며 때로는 그것이 힘들어서 더 장기적인 관계의 헌신으로 나가기 전에 관계를 끊어버리거나 또는 관계안에서 거리를 두고 외롭게 만들거나 아니면 관계안에서 늘 쫓아가는 역할을 하면서 거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감정적 조절을 하지 못해 애증의 관계를 반복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에 불안감을 많이 경험하며 남자에 대한 신뢰가 없이 살아온 한 여자분이 결혼 후에 남편이 자신이 기대한 사랑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고 할 때 남편에게 잔소리와 분노를 쏟아내면서 남편이 자신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기를 바라나 남편은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아내로부터 더 도망을 가게 된다. 사랑의 관계를 원하지만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다. 모든 관계들은 발전되어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발전 과정에서 꼭 폭풍우를 경험하게 된다. 처음에는 서로의 매력에 끌려서 서로에게 다가가고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 조금씩 친해지면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조금씩 더 보여주게 되고 그러다 보면 다른 점으로 인해 갈등을 경험하게 되고 싸우게 되는 것이 커플 또는 친한 관계들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당연히 겪게 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건강한 부부들은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직면하며 건강한 방식으로 갈등을 잘 해결해 나가는 반면에 건강하지 못한 부부들은 갈등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닫게 되고 한 쪽이 도망을 가게 되거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겨서 회복이 어렵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앞에 나오는 청년들은 갈등으로 상처를 받은 경험이 어린 시절에 있었기에 그 갈등을 만나기 전에 피해버리는 선택을 한 사람들이다. 20년간 사람들을 만나서 상담을 해 온 필자는 갈등이 있는 부부들은 아직 가능성이 많이 있다고 본다. 관계가 발전되기 위해 갈등이 있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갈등을 잘 다루지 않으면 그것이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줄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갈등을 장기화시켜서 계속 반복하는 것은 부부에게 또는 커플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장기화된 갈등은 반복된 상처를 서로에게 주게 되고 두 사람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고 급기야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로 끌고 가기 때문이다. 관계에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가 될 때 부부는 회복의 여정을 더 이상 시도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때는 정서적 이혼 상태로 들어가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갈등의 해소가 반복적으로 안되는 부부들은 그 갈등을 그대로 방치해 두지 않고 초기에 적극적인 자세로 갈등을 풀어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부 사이에 해결이 안되면 상담사를 만나고 부부 솔루션 캠프 같은 곳에도 참석하고 노력을 통해 갈등을 빨리 해소하는 시도가 중요하다. 암도 조기 발견을 하면 완치가 가능한 것처럼 부부 관계도 마찬가지다. 초기에 갈등이 있을 때 이 갈등을 잘 극복하면 평생 좋은 커플로 살아갈 수 있고 이 갈등을 계속 방치하고 반복해서 하다 보면 결혼 관계가 점점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일찍 손을 쓰는 노력이 중요하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부분의 강한 갈등은 어린 시절의 상처나 어린 시절에 형성된 관계 패턴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상담자의 도움을 통해 부부 갈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이해하는 것이 서로의 갈등을 풀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젊은 사람일 수록 배우는 것이 그리고 삶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더 쉬울 수 있기에 조기 개입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갈등 있는 부부들은 조기에 도움을 받음으로 갈등이 잘 해소되어 친밀하고 행복한 커플 관계를 맺어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다. Rev Dr. HUN KIM (김 훈)호주기독교대학 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 (CEO of One and One Psychological Counselling Clinic)호주가정상담협회 회장 (President of Australian Family Counselling Association)한국인 생명의 전화 이사장 (Chair of Board in Australia Korean Life Line)ACA Registered Supervisor (ACA등록 수퍼바이저),ACA Member Level 3 (ACA정회원)기독교 상담학 박사 (Doctor of Christian Counselling)목회상담학 박사 (Doctor of Pastoral Counselling)고려대학교 국제경영 석사 (MBA of International Business at Korea University)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MdiV at Chongshin Theological Seminary)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BA of Mass Communication at Korea University)총신대학교 신학과 졸업(BA of Theology at Chongshin University)호주기독교대학RTO Provider: 40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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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5
  • 냉담한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팁
    한국의 부모들이 자주 보는 프로그램 중에 하나가 “금쪽같은 내 새끼”다. 부모들이 자녀양육과 관련해서 어려움을 호소하면 오은영 박사님이 나오셔서 아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팁을 주는 한국형 “super nanny”와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문제를 진단하기 위해 집에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일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데 가끔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거나 떼를 쓰고 또 엄마에게 열심히 매달리는 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그것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냉담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카메라에 포착될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엄마가 어떻게 저럴 수 있냐” 라고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 동안 엄마가 아이의 그런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는 것이고 그래서 더 이상 그것에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지치고 힘들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치다 못해 이제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자녀와의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관계가 어려워질 때 부부는 처음에는 어떡하든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고 애를 쓰고 싸우지만 그것이 계속되면 그 고통을 경험하는 것이 싫고 지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서로에게 담을 쌓게 되고 남남처럼 반응하게 되는 냉담함이 시작되게 된다. 부부 관계 연구의 대가인 존 가트만 박사님은 이런 상태에 있는 부부는 감정적으로 결혼 상태를 부정하는 상태에 있다고 말하며 결혼 생활을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화가 무익해서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별거 생활을 시작하고 외로움에 시달린다고 언급한다. 그래서 가끔 이런 부부들은 싸운 일을 남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차분하게 이야기한다고 말한다. 냉담함이 오래 지속되어 남남처럼 지내는 부부가 상담소에 손을 내밀어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 상담을 통해서 관계가 회복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이미 상대에 대해서 기대감이 전혀 없고 미워하는 마음조차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상담소는 변화를 위한 곳이라기 보다 자신의 결정을 확인하기 위한 장소다. 또한 상담소에서 약간의 변화를 시도하지만 그 동안에 형성된 부정적인 틀을 깨뜨리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회복을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용기 내어 상담소를 찾았지만 자신은 변하지 않으려고 하고 상대방만 바꾸려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변화를 위해 정말 노력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상적인 결과가 나오겠지만 그 중에서 부부 중 한 사람이라도 회복을 위해 정말 노력하고 포기를 하지 않는 경우에 부부 관계가 회복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정말로 절실한 변화를 원하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통해 영향을 받은 배우자가 함께 변화한다는 이야기다. 성경에 재미있는 예화가 나온다. 아람(시리아) 제국의 제2인자인 나아만 장군은 많은 재산과 권세가 있었지만 그만 나병에 걸리고 만다. 그는 나병에서 나음을 얻고자 많은 재물을 가지고 이스라엘에 용한 치료사라고 알려진 엘리야를 찾아가게 되는 데 엘리야는 나아만 장군을 만나 보지도 않고 아주 평범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라고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에 모욕감을 느낀 나아만 장군은 그냥 돌아가려고 하는데 종이 다가와 “훨씬 더 어려운 일도 하라고 하면 할 텐데, 쉬운 일인데 한 번 해 보지요” 라고 말을 하여서 나아만 장군은 다시 돌아와 목욕을 하게 되고 그의 나병이 낫게 된다는 이야기다. 많은 부부들이 나아만 장군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상담자가 부부 관계를 위해 변화해야 하는 부분들을 권면함에도 불구하고 나아만 장군처럼 “내가 자존심이 있지! 내가 왜 바꿔? 상대방이 바뀌어야 내가 바뀌지! 상대방이 용서를 구하기 전에는 나는 마음을 받아줄 수 없어!” 라는 태도들을 완고하게 가지고 있으신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은 부부 관계의 오래된 병으로부터 치유를 받기가 어렵다. 그런 분들은 자신이 처한 부부 관계의 어려움으로부터 변화는 원함에도 불구하고 나아만 장군처럼 시도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깊은 내면에서는 ‘나병’과 같은 상태와 비슷하게 부부 관계가 병들어 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을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헤어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오류 속에 빠져있어서 상담사의 말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상담사가 “배우자에게 용서를 구하시면 좋겠어요!” 또는 “배우자와 함께 쇼핑을 가시는 것은 어떤 가요?, 배우자와 함께 밥을 먹어보세요! 손을 잡아 보세요” 라고 하는 것은 불편한 것일 수 있지만 나아만 장군이 물에 목욕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 모든 일은 어려운 일이기 보다 자존심을 굽히고 나의 스타일을 버리고 해야 하는 일일 뿐이다. 그리고 몸이 움직여야 하는 일일 수 있다. 성경에는 나아만 장군이 하기 싫었지만 자존심을 굽히고 목욕을 했을 때 깨끗하게 나병에서 나음을 얻었음을 보여준다. 부부 관계도 이런 부분을 할 수만 있다면 나아만 장군처럼 부부 관계의 어려움에서 완전히 회복될 수 있다. 부부 관계에서는 자존심을 앞세우기 보다 관계의 회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상대방이 말하는 것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하기 싫어도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늘 아내가 남편이 집안일을 전혀 안 도와준다고 불평을 한다면 조금 피곤하지만 남자 일, 여자 일을 따질 게 아니라 집에 돌아오면 아내를 위해서 설거지를 해 줄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 만일 배우자가 픽업해주는 것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내가 조금 내 시간을 사용하더라도 그 시간을 배우자를 위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변화를 시도하는 내가 바보같고 손해를 보는 것 같을 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보면 손해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행복한 부부 생활, 행복한 노후 생활을 위한 보험 투자금이다. 관계의 어려움으로 인해 외롭고 슬픈 노후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부부 관계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라고 권하고 싶다. 나병에서 회복되기를 원하는 환자와 같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이다. 관련기사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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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3
  • 코로나 블루와 가족의 건강성
    얼마 전에 락다운이 풀리면서 지인 중 한 분이 친한 분들을 초청해서 집에서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모두 어떻게 갈지 어떤 음식을 가지고 갈 지까지 계획을 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 코로나 오미크론이 등장하자 약속을 몇 일 앞두도 지인분은 약속을 전면 취소하게 되었습니다. 오미크론의 뉴스가 나오던 날 전 세계 증시도 내림새로 급 변동을 보이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한 가지 뉴스가 가져다준 불안감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일시적으로 다가온 외부적 사건으로 인해 일어난 불안감은 누구나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내부적인 불안감과도 연결되어 더 증폭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불안감이 다가올 때 신속하게 대처함으로 위험으로 부터 자신을 지키고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불안감은 모두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적절한 불안감은 미래를 준비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예를 들면, 내일 시험인데 공부를 하나도 안하고도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됩니다.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도 편안함을 느끼면 공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어 결국 시험을 준비하고자 하는 동기 부여가 일어나지 않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잠시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떠날 줄 알았던 코로나가 2년이상 우리를 괴롭히게 되어서 예민해진 가슴이 쉬지않고 지속적으로 뛰게 되고 불안감이 지속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지속되는 불안감에 영향을 받게 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코로나 불루’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에게 미친 불안감, 분노를 동반한 우울한 기분을 일컫습니다. 장기화된 불안감은 정신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코로나 이전에 비해서 정신 건강의 이슈 즉 불안과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20%가 늘었는데 특히, 여성분들과 젊은이들이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들은 남성보다 사회적으로 불안한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정서적으로 더 발달이 되어 있어서 그럴 수 있습니다. 또한 젊은이들은 한참 꿈을 향해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나아가야 하고 적극적인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좌절됨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직접 캠퍼스에 나가서 공부를 하는 것에 비해 온라인으로 공부를 하는 것의 능률을 낮게 평가합니다. 그래서 코로나 이전보다 성적을 더 잘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주위에 있는 가족과 이웃과 공동체가 함께 건강해지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정신 건강은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주게 되기 때문에 삶의 질과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울해 지면 사람을 만나기도 싫고 직장에 나가기도 싫고 아무일도 하기 싫어져서 결국은 삶에서 경험해야 하는 가치있는 것들을 회피하게 됨으로 부적응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한 청년이 처음에는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접촉을 줄이게 되었는데 그것이 지속 되다 보니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게 되고 그 고립감을 해소하기 위해 인터넷 게임과 컴퓨터 사용량이 한 없이 늘어나게 되고 또는 TV를 과도하게 시청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밤 늦게 잠자리에 들게 되고 늦게 잠을 자다 보니 해가 중천에 뜬 오후에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루를 늦게 시작하다 보니 햇빛을 많이 보지 않게 되고 활동적이지 않게 됩니다. 하루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자신을 보며 자신을 게으르다고 비난하게 되고 주위에서도 잔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것이 속상한 청년은 다시 컴퓨터를 하게 되고 그런 자신을 비난하다 보니 무기력해지고 사회에서 도태되는 자신으로 인해 불안해 집니다. 결국 이 청년은 인터넷 중독과 우울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어떤 부부는 배우자가 자택 근무를 하게 되면서 갈등이 심해지기도 합니다. 집에 있는 배우자에 대한 역할 분담에 대한 기대치가 커지는 것도 원인이 되기도 하고 그 동안 의사소통이 많지 않았던 부부가 좁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을 하면서 서로에 대한 오해가 많이 생기기도 하고 그 동안 해결하지 않았던 다름으로 인한 이슈들을 이제는 다룰 수 있는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것으로 인해서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갈등, 분노, 심지어 가정폭력까지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코로나라고 하는 외부적인 요인이 개인의 삶에 영향을 많이 주어 우울과 불안과 분노를 경험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코로나로 인해서 너무 더 잘 지낸다고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코로나로 인해서 바빴던 삶을 살짝 내려 놓고 가족들에게 초점을 맞추며 가족들과 함께 의미있는 시간들을 보내서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이분들은 코로나로 인해서 가족들이 대화도 더 많이 하게 되고 음식도 더 많이 같이 먹게 되고 가족과 활동도 더 많이 하게 되면서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친밀감을 더 느끼게 되어 가족관계가 강화된 분들입니다. 결국은 코로나로 인해서 건강하지 못했던 가족은 극심한 어려움과 갈등을 경험하는 반면 건강한 가족은 그 안에서 삶의 의미와 기쁨을 누리며 잘 지내게 되고 일부 가족은 더 성장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라고 한다면 가족의 건강성이 코로나 블루와 같은 외부적인 스트레스 요인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데 평소에 어떻게 가족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족의 건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는 가족이 의사소통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소통을 잘 하는 가족들은 서로를 잘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 지 어떤 부분이 취약한 지를 알고 또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게 됩니다. 그런 가족은 외부적인 스트레스가 왔을 때 서로가 서로를 지지해 주는 역할을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아이들은 부모님의 정서를 그대로 물려받는 경우가 많은데 부모가 불안감을 잘 느끼고 우울감을 잘 느끼면 아이들도 그렇게 되기가 쉽습니다. 부모가 코로나로 인한 불안감을 크게 느끼고 그것으로 안절 부절하며 극도하게 예민하게 된다면 아이들도 과도한 두려움과 공포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소통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그럴 수 있는 것을 알고 아이들이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 때 그것을 감지하고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고 공감해 주며 잘못되고 과장된 정보로 아이가 두려움을 느끼거나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어떤 분들은 소통이 중요한 지 알지만 소통을 하는 것이 너무 어렵고 상처와 스트레스를 경험함으로 소통하는 것을 포기한 분들이 있습니다. 성격이 너무 달라서 소통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절감의 공포로 인해 소통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분도 계십니다. 또 어떤 분은 잘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소통에 장애를 경험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더 나은 소통을 위해 우리는 자신을 한 번 돌아보면서 점검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사람들과 소통을 할 때 자꾸 오해를 산다거나 잦은 갈등을 외부적으로 또는 내면적으로 경험한다거나 ‘불통이야’ 또는 ‘말이 안통해’ 라는 말을 종종 듣는 사람은 먼저 상담사와 같은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서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면 그것이 가족의 건강성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좋은 기반이 될 것입니다. 가족과 소통함으로 가족의 건강성을 회복하여 코로나가 주는 정신적 고통을 모두가 잘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 (CEO of One and One Psychological Counselling Clinic) 호주가정상담협회 회장 (President of Australian Family Counselling Association) 한국인 생명의 전화 이사장 (Chair of Board in Australia Korean Life Line) ACA Registered Supervisor (ACA등록 수퍼바이저), ACA Member Level 3 (ACA정회원) 기독교 상담학 박사 (Doctor of Christian Counselling) 목회상담학 박사 (Doctor of Pastoral Counselling) 고려대학교 국제경영 석사 (MBA of International Business at Korea University)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MdiV at Chongshin Theological Seminary)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BA of Mass Communication at Korea University) 총신대학교 신학과 졸업(BA of Theology at Chongshin University) 호주기독교대학 RTO Provider: 40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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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3
  • 문화적으로 안전하게 살아가기
    최근 호주 한인 생명의 전화에서 다문화 부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어와 영어로 섞어서 진행이 되었다. 그래서 인도하는 사람들이나 참여하는 사람들이 때로는 불편하고 편치 않을 수 있었는데 그것 자체가 다문화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일상의 어려움이기에 그런 경험들을 느끼며 프로그램을 진행해 나갔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타 문화의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이 가족을 이루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이해함들과 경험들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왔다. 참여하신 분들에게는 엄청난 축복이었다. 진행하는 스탭들과 참여하는 커플들 모두에게 여러가지 도전들이 있었고, 또한 성장이 있었다. 이러한 좋은 기회들을 최대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지혜라고 생각한다. 호주의 대학에서 필자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문화적 유산에 대해서 나누어 보라고 이야기를 하자 아시아에서 온 학생들은 자신들 만이 가지고 있는 국가의 문화적 유산이나 전통을 이야기하려고 애를 쓰는 반면 호주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오랬 동안 자란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적 유산이 특별한 것이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자신들의 문화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것을 보면서 선생님께서는 인식을 잘 하지 못해서 그렇지 문화가 없는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타 문화에서 호주라고 하는 곳에 왔을 때 그 사람들은 문화적 충격이라고 하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문화적 차이라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실감나게 느껴지는 반면 호주에 지속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호주가 다민족 국가이기에 타문화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라고 교육을 받지만 그들이 가지는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인식이 정말 피상적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1980년도에 뉴질랜드에서 마오리 족에게 보다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문화적 안전 (Cultural safety)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이 개념이 많이 확대가 되어서 타 문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들을 할 때 어떻게 하면 문화적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 지를 많이 고민하게 되었고 호주의 경우 호주의 원주민들을 위한 서비스를 할 때 이 개념을 많이 다루고 있다. 또한 호주의 대부분의 학과 과정에 필수로 공부하는 과목으로 구성하고 있다. 문화적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먼저는 문화적 차이를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더불어 문화적 차이에 예민하게 볼 수 있고 그러한 것을 배려한 정책들과 환경들이 필요하다. 그것을 사회 안에서 경험하게 되고 사람들이 느끼게 될 때 사회는 문화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곳이 되는 것이다. 호주에만 자라서 타 문화에 대한 인식을 많이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안전한 환경을 촉진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들이 있다면 먼저 자신을 점검하는 것이다. 타 문화권의 사람들을 대하는 내 자신의 문화, 태도 및 신념이 어떠한 지를 살피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이 국수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의 민족만을 생각하는 태도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 적인 마음은 좋으나 맹목적으로 내 나라 내 국민만 더 옳고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은 국가 간의 분쟁이나 민족 간의 또는 지역 간, 또한 가정의 다툼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인종 차별, 빈부 차별, 사회적 지위 차별 이 모든 것이 그런 태도로부터 나오는 것일 수 있다. 다문화 부부가 결혼을 해서 사는 경우에 한쪽 배우자가 자신의 나라와 그 나라의 사람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할 때 배우자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 문화적 유산을 지켜 나가는 것을 장려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다. 예를 들어, 호주의 문화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할 때 배우자의 열등한 문화들은 자연스럽게 인정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나는 타문화에 대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고 내 안에 있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타 문화를 이해하고 타 문화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장애물의 역할을 하지는 않는 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겸손한 태도다. 겸손이라는 말은 흙을 의미하는 humus라는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땅처럼 자신을 낮추고 사물을 포용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비교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대부분이 하는 말은 타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태도가 겸손이라고 말한다. 겸손할 때 우리는 내가 이해되지 않고 잘 모르는 사람들을 대할 때 진정성 있게 대할 수 있으며 그들의 문화를 접할 때 존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학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문화 부부로 살아가는 부부 생활의 실제 삶에서 적용되어져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겸손하지 못할 때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 또는 타 문화에 대해서 쉽게 판단하게 되고 이해하지 못한 부분에 있어서 물어보기 보다는 내 식으로 해석해 버리고 부정적 감정을 갖게 된다. 문화적 안전이라고 하는 것은 타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들의 필요, 기대 및 권리를 안전하게 충족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위해서 또 한가지 필요한 것은 열린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타문화권 사람을 만날 때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질문을 통해서 또는 관찰한 것을 표현해서 확인하는 것을 통해 상대방의 문화를 확인하고 확인된 것은 존중하고 지켜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럴 때 그들의 필요와 기대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배려가 가능해진다. 예를 들면, 한국적인 문화에서는 타인의 집, 병원 등을 예고 없이 방문하는 일들이 예전에 많이 있었고 또 ‘이웃 사촌’이라는 개념이 있다 보니 서로 경계선을 침범하는 것이 많은 문제가 되지 않는 반면, 호주에 와서는 개인의 삶의 사생활이 중요함으로 방문할 때 반드시 미리 의사소통을 하고 물어보는 과정들이 필요하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언젠가 ‘금쪽 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에서 호주 엄마가 한국에서 사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엄마와 소통이 안되는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그 엄마를 위한 해결책이 바로 그 엄마의 문화적, 유산적인 부분을 잘 지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낯선 호주라는 곳에 와서 사는 이주민들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 수 있다. 그 문화충격의 부분은 언어가 통하지 않고 얼마나 다른 환경에서 왔느냐 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문화 충격의 영향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호주에 살면서 주위에 한국을 너무 그리워하는 엄마들이나 호주의 문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을 종종 경험할 때가 있다. 그런 분들을 대할 때 왜 새로운 곳에 적응을 못하고 한국만 그렇게 그리워하냐 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겪고 있는 문화 충격은 적지 않은 것이고 그렇기에 그들의 고충을 많이 이해해 주는 것이 그들에게는 문화적으로 안전함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렇듯 다문화 사회인 호주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소외를 경험하지 않고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 나가면서도 여전히 안전하게 잘 살아갈 수 있겠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다문화를 지향하는 호주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함께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 (CEO of One and One Psychological Counselling Clinic) 호주가정상담협회 회장 (President of Australian Family Counselling Association) 한국인 생명의 전화 이사장 (Chair of Board in Australia Korean Life Line) ACA Registered Supervisor (ACA등록 수퍼바이저), ACA Member Level 3 (ACA정회원) 기독교 상담학 박사 (Doctor of Christian Counselling) 목회상담학 박사 (Doctor of Pastoral Counselling) 고려대학교 국제경영 석사 (MBA of International Business at Korea University)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MdiV at Chongshin Theological Seminary)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BA of Mass Communication at Korea University) 총신대학교 신학과 졸업(BA of Theology at Chongshin University) 호주기독교대학 RTO Provider: 40892
    • 오피니언
    • 기고
    2022-03-18
  • 기억치료
    한 대학생 남자가 상담사를 찾아와서 하는 말이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너무나 바보 같아서 “이제는 절대로 과거처럼 살아가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완전히 바꾸어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무엇이 그 학생으로 하여금 지난 날의 삶을 전부 부정하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최근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물어보게 되었다. 그 학생에게는 일년 동안 사귀던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학교 공부도 내팽개칠 정도로 끔찍이 잘 해주었건 만 군대를 다녀온 직후 그녀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무척이나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의 버림을 당하는 경험은 그 학생에게 자신이 무가치하고 지금까지 잘못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그 충격이 너무나 커서 그 이전에 살았던 삶에서는 약간의 가치도 찾을 수가 없고 100%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연애를 하면서 허비하던 과거와는 반대로 1분 일초도 낭비하지 않고 계획하고 무엇인가를 배우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완벽주의를 추구하게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데 그 경험 중에 때로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해야 하는 많은 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지만 대부분 어려움들을 잘 이겨낸다. 그것은 우리 인간에게 있는 기억을 처리하는 기능 때문이다. 하루에 있었던 경험을 필요한 것은 저장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처리하면서 적절하게 정보들을 처리하는 놀라운 기능을 인간의 뇌는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어떤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할 때 그 사건이 뇌의 일반적인 기능을 압도해 버리면 뇌는 그 경험을 적절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그 때 경험한 감정, 믿음, 행동을 생생하고 강하게 기억함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위에 설명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그렇게 반응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자 친구와의 헤어짐이 아픈 경험이지만 뇌에서 적절하게 기억을 잘 처리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픈 경험을 교훈 삼아 앞으로의 삶에서 더 건강한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소화시키기가 어려웠고 그 사건이 있기 이전의 모든 삶은 무가치하고 의미 없는 삶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큰 트라우마로 인해서 자신의 과거 삶에 대한 부정적인 인지가 생겨난 것이다. 그런 부정적인 인지는 그의 삶에서 ‘완벽주의’라고 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아마존의 심리학 분야 베스트 셀러 중에 하나였던 『트라우마, 내가 나를 더 아프게 할 때』 라는 책은 뇌의 정리가 되지 않은 부정적 기억 즉, 과거의 트라우마를 EMDR (Eye Movement Desentization Reprocessing) 기법으로 치유할 때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이 책의 제일 첫 장은 처리되지 않은 무의식적 기억이 나를 지배한다는 제목으로 세 사람의 사례를 설명하는 데 이들 모두 성인으로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일 것 같은데 처리되지 않은 과거의 무의식적 기억으로 인해 삶에서 부정적인 행동 패턴을 가지게 된 것을 설명한다. 현재의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과거의 부정적 경험이나 그 경험에 대한 기억을 다루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현재의 삶에서 그다지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으며 평온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과거를 다루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건, 사고는 누구나에게 일어날 수 있고 관계의 어려움은 내가 원치 않아도 일어날 때가 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은 행복하게 특별한 문제없이 살았다가 성인이 된 이후에 시댁과의 관계에서 큰 트라우마를 겪는 분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 트라우마의 경험이 적절히 내면 안에서 처리가 되지 않는다면 성인기의 트라우마도 위의 예처럼 충분히 부정적인 인지와 부정적인 삶의 행동방식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처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처리되지 않았다는 것은 쉽게 생각하면 과거의 아픈 경험이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현재의 삶의 감정, 사고, 행동에 강한 부정적인 영향으로 반응되어진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시댁식구와의 갈등을 겪은 사람이 시댁이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갑자기 차가워지고 가슴이 많이 답답해진다면 그것은 처리가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처리가 되었다는 것은 과거의 나쁜 경험이 내 안에서 충분한 처리 과정을 거쳐서 이해되어지고 통합되어져서 감정적으로, 생각으로, 행동으로 적절한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마음에 떠올리기만 해도 극도 한 분노가 올라왔는데 이제는 약간의 불편함은 있지만 담담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긴다면 적절한 처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위에 소개한 책에서는 적절한 처리가 된 것을 ‘적응적 해결 (adaptive resolution)’이라고 말한다. 어떤 정서적 혼란을 경험했을 때 뇌에 있는 치유를 위한 메커니즘인 적응적 정보 처리 시스템이 잘 작동해서 삶에 잘 적응하도록 부정적 경험을 소화해서 성장하는 학습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만약 내 안에 처리되지 않은 기억이 있다고 여겨진다면 또는 기억은 특별히 나지 않지만 가끔 이성적이지 않은 부정적 생각, 감정, 행동에 무의식적으로 강하게 반응하는 나의 모습을 본다면 내 안에는 어쩌면 처리가 필요한 기억들이 뇌에 저장되어 나를 괴롭히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런 분들은 EMDR 치료사를 통해 기억 치료를 받거나 아니면 가까운 지역의 상담사를 통해 충분한 트라우마 치유를 통해 자신의 기억을 적절히 다루어 더 이상 과거가 현재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비해서 좋은 치료사 선생님들이 많이 배출되어 있어서 지역마다 상당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계신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내면의 건강을 위해 그리고 건강한 기억과 적응적 해결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여 현재와 미래의 삶이 모두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은 락 다운 기간에 해볼 만한 인생을 위한 좋은 투자가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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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8
  • 월요병을 극복하는 방법
    2020년부터 COVID19이 세상을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많은 생활에 제한을 받으며 온라인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온라인으로 공부도 하고 외식에도 제한이 되고 모임들도 제한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월요병의 증상이 많이 적어졌을 수도 있고,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더 심하게 느끼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오랜 락다운 뒤에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말에 쉬다가 다시 일을 하게 되면 편안하고 좋아야 하는데, 왜 사람들은 ‘월요병’의 증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일까요? 사실 월요병은 월요병이 아닙니다. 월요일에는 일을 하느라 월요병을 겪을 여유가 없습니다. 저의 경우는 사실 일요일 저녁 병입니다. 돌이켜 보면 이것의 시작은 학창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필자가 학창 시절에는 주초고사라고 하는 것이 있었는데 매주 마다 중요 과목 중 한 과목을 월요일 아침에 시험을 치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주말에 실컷 놀고 주일 낮에 교회를 갔다 오면 그 후부터 갑자기 걱정, 염려가 밀려오며 우울한 모드로 들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필자에게는 학장 시절부터 있었던 ‘일요일 저녁 병’입니다. 이런 것은 왜 오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평소에 염려, 걱정이 많은 사람들, 다른 말로 하면 불안감의 지수가 높은 사람의 경우에 이런 월요병의 증상을 좀 더 심하게 겪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위험에 대해서 더 빨리 감지하고 인식하기 때문에 더 빨리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사실 불안감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예측함으로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무작정 걱정하기 보다는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지를 이미 정확히 알고 있다면 불안감은 훨씬 더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월요병을 극복하기 위해 불안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요? 먼저, 불안은 예측이 불가능할 때 더 많이 느끼는 감정임으로 월요일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예측해 본다면 불안감을 줄일 수 있게 됩니다. 인지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월요병을 예방하기 위해 미리 생각해 보고 작은 노트에 월요일에 처리해야 할 일들을 기록해 놓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분류를 하고 정리를 하면 좀 더 예측 가능해지기 때문에 덜 불안해질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필자는 그 분의 조언을 따라 월요일에 처리할 일을 미리 기록을 해 보았는데 필자의 경우는 불안감을 오히려 높이는 결과를 경험했습니다. 월요일에 처리해야 할 일을 적다 보니 생각보다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그 일의 무게에 오히려 압도가 되어서 더 큰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저명한 학자의 조언이라 할 지라도 때로는 모든 사람에게 적절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불안감을 상쇄하는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필자의 경우는 미리 월요일에 해야 할 일을 너무 구체적으로 오랫 동안 생각하는 것보다 잊어버리지 말았으면 하는 일만 작은 쪽지에 기록을 해서 남겨 놓으면 왠지 내가 준비된 느낌이 들어 불안감이 줄어드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또 한가지는 일요일 저녁에는 마지막 휴일이니까 늦게까지 놀고 잠을 자지 않으면 더 월요병의 증상이 심해지는 것으로 여겨지기에 필자의 경우에는 일요일에는 가능한 스케줄을 많이 만들지 않고, 충분히 쉬고 책을 읽어서 쉬고는 있지만 뭔가 힘들지 않으면서도 창조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훨씬 더 불안감이 줄어드는 것을 경험합니다. 또 한가지 도움이 되는 것은 영적인 경험입니다. 정말로 불안해하고 염려하는 것이 무엇인 지를 정확히 생각을 해 본 후 그 부분을 기도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 맡기고 좋은 설교 말씀을 들으면 걱정 사고가 전능한 하나님의 사고로 바뀌면서 불안감이 확 줄어드는 것을 경험합니다. 우리집 네 째는 잠이 없어서 늦게 자는 편인데 가끔은 그것 때문에 피곤이 누적되면 머리가 아플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함께 침대에 잠깐 누웠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잠이 드는 지를 모르겠다고 말하며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잠을 자게 도와주는 기법들을 잠시 설명해 주었는데 그 아이는 자신은 코고는 상상을 하면 어느새 자신이 잠이 들어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들을 기억하고 그것을 잘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또한 불안 상쇄 방법 중 또 한 가지는 불안감이 있을 때 그것과 관련된 감정과 생각들을 신뢰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과 나누는 것입니다. 배우자와 같은 가까운 가족 구성원에게 또는 친구에게라도 월요병 불안감의 증상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누다 보면 그 안에서 공감을 느끼게 되고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함께 경험하는 것임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그것을 통해서 카타르 시스가 생겨서 그 다음날을 씩씩하게 맞이할 수 있는 준비된 마음이 일찍부터 생기게 되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복식호흡을 하는 것, 햇빛을 받으며 산책을 하는 것, 가장 불안한 순간으로 예상되는 상황들에 대해 대처법을 세우는 것과 스스로에게 공감 표현과 격려를 해주는 것 등도 불안감으로부터 마음을 지켜 나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월요병’이라고 하는 것을 대할 때 “나는 왜 소심해서 이런 것을 경험하지?” 라고 하기 보다 그런 나의 신체적이고 심리적인 증상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공감해 주고 나만의 불안 극복 방법들을 나름대로 적용해 가다 보면 월요병은 병이라고 보다는 월요일을 더 잘 준비하게 하는 ‘전날 준비’가 되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일요일에 우리는 일시적인 ‘월요병’의 증상이 있을 수 있지만 기억하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씩은 다 가지고 있는 것이기에, 나는 월요병이 있는 병자가 아니라 월요일을 잘 준비하는, 준비성 있는 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 곧 대부분의 사람들이 락다운을 끝내고 제 자리로 돌아가 2021년 말과 2022년을 또 열심히 살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잘 돌봄으로 용기 있게 새로운 월요일을 맞이하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해피 뉴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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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8
  • 가정의 시스템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결혼을 했던 한 부부가 호주에 이사를 온 후에 이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남편은 인도에서처럼 아내가 자신에게 복종하고 가정만을 지키며 남편이 어떤 일을 해도 허용해 주어야 한다고 가부장적인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는 반면 여성인 아내는 호주에 온 이후로 자신의 권리를 되찾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을 보면서 자신의 역할이 부당하며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찾아가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혼한 후 남성은 다시 인도로 돌아가서 얌전하고 순종적인 아내를 구해 왔는데 그 아내 역시 호주에 와서는 전처가 하던 모든 과정을 밟게 되어 다시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한 아이는 한국에 있는 동안 착한 아이로 엄마의 교육열에 맞추어서 공부를 잘 하고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착하게 지내왔는데 호주에 와서 막상 보니 자신의 주위에 있는 아이들은 부모님이 하라고 하는 공부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개척해 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지 못한 자신의 삶을 보며 무기력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한 여성은 최근에 큰 병에 걸리게 되었는데 그 병이 생기기 전까지는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고 얼마나 지쳐 있었으며 어렵고 힘들게 살았는지 알 지 못했다. 자신은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고 주위에 돌봐야 하는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서 돌봐 주며 기쁨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했지만 실제로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고 힘들다고 말 못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 분에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은 마치 자신의 운명인 것처럼 여겼기에 바꾸려고 하기 보다는 순응하며 살았던 것이다. 위의 이야기들은 한 사람이 자신이 속한 환경이나 시스템 안에서는 자신의 삶이 어떻게 잘못되어 있는지 모르다가 새로운 환경 속에 들어가서야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한 사람이 시스템 속에 오래 들어가 있을 때 그 시스템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시스템이 나의 삶의 일부분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가족’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온 가족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살면서 ‘눈이 멀어 버린다 ‘ 최근, 인기 많은 TV 드라마인 ‘갯마을, 차차차’ 프로그램에 보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딸을 둔 아버지가 자신의 딸이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살아왔는데 치과의사가 된 것을 너무나 자랑스러워하는데 부모를 일찍 보낸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은 아주 싫어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 자녀가 아픈 것은 가엾게 보이지만 타인의 자녀가 아픈 것은 결함으로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가족으로 인해서 힘들어 한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끌려 다니고 때로 그 가족으로 인해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게 된다. 상담을 하면서 제일 안타까운 것 중의 하나는 부모들이 자신이 만들어 놓은 가정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자녀들의 자율성을 빼앗고 그 자녀들을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으로만 살도록 요구하면서도 그것이 잘못되었는 지 모른다는 것이다. ‘자녀들의 행복’이라고 하는 좋은 명분 속에 자녀들은 점점 무기력해지고 의존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고 부모가 그렇게 원하는 성공적인 삶에서는 조금씩 멀어지게 되는데도 아랑 곳 않는다. 인형 치료학회의 학회장인 최광현 교수는 “아들이 성공적으로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아버지를 이겨내야 한다”는 말을 한다. 무슨 이야기일까? 자녀에게 있어서 부모는 하늘이고 전 세상이라고 볼 때 그 부모가 세워 놓은 가정이라고 하는 시스템은 자녀에게는 극복하기 어려운 시스템이요 너무나 강력한 세상이다. 그 안에서 순응하기만 하고 자란 자녀는 강한 부모님의 통제로 인해 이 세상에 나갈 준비를 못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성장하고 성인이 된다는 것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더 이상은 부모님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의 구성원이 아니라 나만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자라난 아이가 부모님의 대를 잇지 못한다 거나 부모님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해서 열등감과 무기력감 가운데 삶을 활기차게 살아가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주위에서 종종 경험하게 된다. 부모들이 자녀를 자유롭게 내어 주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불안감 때문이다. 알랑드 보통이 말한 ‘사회적 불안’을 많이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를 개인의 가치로 여기는 속물근성의 특성을 가지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사회에서 가져야 하는 또는 유지해야 하는 지위로 인해 생기는 불안감을 자녀에게 투사함으로 자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삶의 기준과 가치를 아이들에게 요구함으로 똑같은 불안감을 자녀에게 주고 자녀도 그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세대 전수를 하는 것이다. 이제는 나의 가정의 시스템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때라 생각된다. ‘내가 잘하고 만 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한 번쯤은 내가 속해 있는 시스템을 무조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나의 가정은 건강한 지,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없는 지, 나는 나의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며 자녀들에게 나의 가치와 신념을 주입시키고 있진 않은 지, 무엇 보다도 내가 가진 불안감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강요하고 있진 않은 지’를 살펴보고 부모의 생각이나 관점이 아닌 아이의 재능과 아이의 관심을 찾아가도록 도움으로 자녀가 부모를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모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익숙하게 살아오던 시스템을 고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떠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익숙한 것에 더 집착하게 되는 모습들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건강하지 못한 가정의 시스템은 결국, 나를 외롭게 만들고 관계의 어려움을 가져오게 만든다는 것을 기억하고 시스템의 리더인 부모들은 자녀를 바꾸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힘들어서 시스템을 멀리 떠나가도록 만들지 말고 자신들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새가 새 둥지를 떠나고 나서 우는 부모가 아니라 안전하고 건강한 둥지를 지금이라도 자녀를 위해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는 부모, 자녀가 아니라 나를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부모들이 되기를 바란다. Rev Dr. HUN KIM (김 훈) 호주기독교대학 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 (CEO of One and One Psychological Counselling Clinic)호주가정상담협회 회장 (President of Australian Family Counselling Association)한국인 생명의 전화 이사장 (Chair of Board in Australia Korean Life Line)ACA Registered Supervisor (ACA등록 수퍼바이저),ACA Member Level 3 (ACA정회원)기독교 상담학 박사 (Doctor of Christian Counselling)목회상담학 박사 (Doctor of Pastoral Counselling)고려대학교 국제경영 석사 (MBA of International Business at Korea University)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MdiV at Chongshin Theological Seminary)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BA of Mass Communication at Korea University)총신대학교 신학과 졸업(BA of Theology at Chongshin University)호주기독교대학RTO Provider: 40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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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8
  • 교육 선교사역, 은혜대학
    호주기독교대학은 2021년부터 본격적인 은혜대학 사역을 시작합니다. 은혜대학 사역은 선교지에 선교지의 언어로 전액 장학금으로 호주 학위를 주어서 전문 기독교 사역자로 양성하는 과정입니다. 중국, 필리핀, 미얀마, 몽골, 베트남, 태국 등의 선교지를 방문하면서 상담사역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많은 가정들이 깨어지고, 관계가 깨어지고, 청소년들의 문제와 자녀 양육의 문제, 우울증과 도박과 중독의 문제 등 너무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해결과 돌봄을 제공해줄 수 있는 전문기관의 절대적인 부족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2009년 중국 북경에서 GMS 소속의 중국 지역 선교사님들을 모아 함께 가정사역세미나를 개최하면서 필자가 주강사로 초대되어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선교사님들이 상담사역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제는 복음 전파만이 아니라 회복의 사역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모두들 동의했습니다. 복음으로 무장해도 이전의 가정으로 돌아가면 이전의 문제 상태로 돌아가기에 가정의 회복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님들 본인들이 먼저 교육을 받고 중국 현지인들에게도 교육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으나 호주의 대학에 소속되어서 사역하고 있는 저의 권한에서는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없어서 많이 안타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중국인들을 위한 지하 신학교에서도 강의하면서 관심을 많이 가지던 신학생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또한 우즈백키스탄에서 사역하면서 중독센터 건립을 하면서 호주를 방문했던 한 선교사님이 기독교상담사역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러시아로 상담 교육시스템을 만들면 아주 큰 영역인 동유럽 전체를 섬기는, 상담을 통한 회복 선교 사역을 할 수 있다고 역설한 선교사님도 있었습니다. 몽골에 DTS 강의를 가서 가정사역에 대한 주제로 낮에는 DTS 강의로 학생들에게 그리고 저녁에는 현지인 목회자들을 모아 놓고 가정사역 강의를 했었고, 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담사역의 필요성을 아주 절실히 느꼈습니다. 잠시 강의 중에 쉬는 시간에도 상담 요청이 줄을 이었고, 잠깐의 상담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감사하는 많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처음 시작은 호주기독교대학의 가장 오랜 전통과 셋업이 잘되어 호평을 받고 있는 상담학 과정으로 먼저 시작합니다. 나아가 신학, 경영, 영상 미디어, 유아교육, 음악 그리고 스포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선교지에 필요한 교육이라면 호주기독교대학은 은혜대학 사역을 통해서 지원할 예정입니다. 이 사역을 통해 대한민국이 선교기관과 선교사들의 헌신을 통해서 우리 나라가 전쟁들로 인해 무너졌던 모든 사회적 기반들을 새롭게 회복하고 발전시켜 현재의 대한민국으로 성장 발전하는 원동력을 제공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기독교적인 교육을 가지고 선교사들을 전액 장학금으로 도움으로 우리가 받았던 은혜와 그 축복을 열방을 향해 나누어 주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이 사역은 전 세계 각 선교지역의 상담교육에 헌신하고자 하는 선교사님들과 함께 협력해서 호주 정부가 인정하는 학위를 수여해야 하고 또한 호주 정부의 교육기관이 요구하는 모든 요건을 만족시키는 질 높은 교육이 필요하기에 각 선교지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포함해서 많은 노력과 헌신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적어도 3-4년 정도의 준비하는 시간이 소요되어야 한 선교지역에 상담교육이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사역에 동참하는 선교사님들에게 먼저 무료로 교육을 하고 호주 ASQA에서 인정하는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도록 하고 각 선교지의 언어로 무료로 교육해서 먼저는 기독교 상담자들을 양성해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회복시켜주고 복음이 함께 전파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 사역을 위해서 기도로 섬겨 주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이 사역에 동참하고 헌신하는 분들이 더해지기를 기도합니다. 호주기독교대학(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은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우리의 능력과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들로는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선교지에서 만들어주시리라 믿고 믿음의 발걸음을 시작합니다 2021년 첫 학기부터 일본과 몽골 그리고 탈북민들을 위한 선교사님들 교육이 전액 장학금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은 가장 선교가 어려운 나라 중에 하나로 많은 선교사님들이 고전을 하고 있는 나라로 유명한 곳입니다. 비록 일본인 선조들이 우리나라에 행한 만행은 너무도 밉지만 그들을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엔 너무도 많은 신들이 있어서 절대적인 진리인 복음이 일본인들에게 전파되는 것이 너무도 어렵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제일 큰 신학대학교조차 신입생들이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일본인 목회자들이 너무도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겸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 현지 목회자들의 정신 건강이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고 현지의 목회자님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일본 현지인 목회자들을 위한 과정을 구축할 예정에 있습니다. 교육 팀과 번역 팀 그리고 미디어 팀들이 일본 캠퍼스 준비를 위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몽골은 YWAM 현지 몽골선교사님들로 구성하여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미 열방대학의 상담 과정들을 통해서 많이 준비가 된 선교사님들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한국 상담관련 책들을 번역 출판 했던 선교사님들로 준비가 잘 된 출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몽골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잘 전달되어지고, 몽골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은혜대학 교육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회복되어지는 일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탈북민들은 공통적으로 극심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탈북의 경험 자체가 목숨을 건 사투의 경험입니다. 몇 번의 죽음의 문턱에 닿았다가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경험이며 두고 온 가족들의 생사를 알 수 없고,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운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너무도 다른 사회와 문화를 경험하며 적응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돌봄과 케어가 그 누구보다도 필요한 대상이기에 선교지로 구분하여 섬기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상담으로 섬기고 계셨던 전문 상담자님이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1년 후반부엔 태국 그리고 말레이시아 선교사님들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태국은 불교가 매우 강한 나라로 기독교를 아주 낮은 천민들의 종교로 낙인 찍고, 기독교인들을 무시하는 나라입니다. 선교사님들은 영국 선교사님들을 통해 몇몇 개종이 이미 된 부족들을 섬기는 사역을 주로 하고 있고, 주요 종족에 대해서는 별로 큰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는 선교하기 어려운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전액 장학금으로 교육시키는 은혜대학 사역을 통해 태국의 주종족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는 은혜가 태국 땅에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국왕이 다스리고, 왕이 신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 복음이 활발히 전파되지 못하고 있는 태국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선교사역에 일조하는 은혜대학 사역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말레이시아는 영어도 사용하는 나라이고 많은 발전이 이미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힌두교가 아주 강한 나라입니다. 오랫동안 중동 선교지에서 사역을 하셨던 분들이 말레이시아에서 은혜대학 사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액 장학금으로 지원하는 호주 학위 교육을 통해 복음이 전파될 수 있는 길이 말레이시아에도 열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기독교 상담 교육과 사역을 통해 가정을 세우고, 사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과정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인도는 2022년 신학기부터 시작이 됩니다. 오랜 선교경력을 갖춘 분들이 여러 사역자들과 함께 협력해서 구축해 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러시아가 다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좀 더 다양한 나라에서 이 은혜대학 교육사역들이 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열방에 기독교 전문 지도자들을 양성하여 열방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회복하는 선교사역에 미력하나마 은혜대학 사역을 통해서 호주기독교대학이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함께 이 귀한 사역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동참하는 분들이 많아져서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accu.edu.au, info@accu.edu.au, 02 6255 4597, 0402 140 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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