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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3】 전 법관의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나의 일상을 풍요롭게 채우는 건 어떤 의미인가, 다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사람과 사회는 바뀔 수 있는가. 자작나무에서 지리산으로, 도스토옙스키에서 몽테스키외로, 일상에서 재판까지. 호의는 사람을,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받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주라던 김장하 선생과의 추억, 법을 몰라 손해 보는 이들을 헤아리는 마음, ‘자살’을 시도했던 재소자가 ‘살자’는 다짐을 하게 만든 선물,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속절없이 흘리는 눈물, 그리고 건강한 법원과 사회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교보문고 계엄을 도모했던 윤석열을 단죄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쓴 책으로 가볍게 읽을만하다. 착한 사람을 위한 법 2001. 4. 22. 법 없이 살 사람 착한 사람을 일컬어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들 한다. 법의 강제 없이도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사람이란 뜻이리라. 과연 착한 사람에게 법은 필요 없는 것일까?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 나는 법이 어떠하다고 정의할 만큼 경력도 풍부하지도 않고 타고난 재주도 없지만, 1983년 법학을 전공한 이래 지금까지 18년을 법과 함께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그런 점에서 나는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착한 사람일수록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p. 19). 종종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가곤 하는데, 거기서 늘 하는 말이 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나에게 힘써달라고 전화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 나에게 법을 물어보라." 도대체, 전 재산과 다름없는 300만 원을 전세금으로 걸면서 그 집이 경매 중인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계약하는 사람을 누가 구제해줄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은 대개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야, 집주인을 사기죄로 고소했으니 수사 기관에 힘 좀 써서 집주인을 즉시 구속시켜 달라고 법조인에게 전화를 한다. 법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보장적 기능이다.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고 거기에 저촉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측면이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이 빛을 발한다. 다른 하나는 보호적 기능이다. 그러나 법의 이러한 보호적 기능도 경매 절차에서 배당 요구를 하는 임차인이나 노동자에게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유의하여야 한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은 초라하기만 하다. 착한 사람부터 법을 알자 판사로서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착한 사람은 법을 모르(p. 20)고, 법을 아는 사람은 착하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 사건일수록 해결이 어렵고, 착한 사람을 보호하고자 궁리를 해보나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착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고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법을 아는 사람에게 착하기를 요구할 것 인가? 불가능은 아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남는 방법은 착한 사람이 법을 아는 것이다. 그 길만이 법이 나쁜 사람을 지켜주는 도구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지름길이다(p. 21). 형사 재판 잘 받는 방법들 중 2006. 12. 19. 진술 거부권 행사 자기에게 불이익한 사실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 및 형사 소송법에서 보장된 피고인 및 피의자의 권리입니다. 따라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불이익한 사항에 대하여 질문을 받을 때 진술을 거부하면 되겠습니다. 괘씸죄가 걱정된다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되겠습니다. 이것이 모순되거나 불합리한 답변을 하는 것보다 유리합니다. 답변 방식 법정에서 판사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할 때는 결론을(p. 45) 먼저 말하고 이유를 나중에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판사는 질문을 통하여 사건의 윤곽을 파악 하려고 하므로, 판사에게 결론을 먼저 말함으로써 판사가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인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판사는 여러 각도에서 사건을 살피기 위하여 다양한 질문을 하는 것이므로, 설령 질문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 일지라도, 판사가 상대방의 편을 든다고 섣불리 생각하지 말고 정중하게 답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판사는 피고인의 진심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p. 46). 민사 재판 잘 받는 법 2007. 5. 17. 오늘 재판을 하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민사 재판 잘 받는 방법을 적어보았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소송을 하려면 어려운 일이 많으므로 형편이 허락한다면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였다고 해서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맡길 것이 아니라 수시로 소송 진행 정도를 확인하고 대응 방안을 함께 의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p. 61). 준비 서면을 간단명료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할 경우 법무사의 도움을 받거나 본인이 직접 준비 서면을 작성해야 할 터인데, 이때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준비 서면이라는 것은 당사자의 주장에 불과하므로 아무리 유리한 내용을 적어놓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인정받기가 어려운 반면, 불리한 내용은 별도의 증거가 없더라도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따라서 준비 서면은 간단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증거가 뒷받침되는 내용일 경우 명료하게 주장을 펼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준비 서면에 상대방을 비난하는 내용을 적을 경우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해롭다는 것입니다. 재판이라는 것이 당사자의 도덕성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고, 뚜렷한 증거 없이 상대 방을 비난할 때 판사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준비 서면에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하여 적어내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재판부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노고를 덜어주는 것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p. 62). 소송의 승패는 증거에 달려 있습니다 민사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흥분할 필요 없이 차분하게 증거를 수집하여 제출하는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증거로는 애초 사건이 있었을 때 작성된 서류, 특히 상대방이 서명 또는 날인한 서류가 가장 효력이 강하고, 그 다음으로 제3자가 작성한 서류가 효력이 강합니다. 증인의 증언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법정에서는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도 법정에서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실정이므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는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에 그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정 또는 화해를 권유받았을 때는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재판을 하다 보면 어느 당사자의 주장이, 설득력은 있으나 증거로 뒷받침 되지 않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법적 관점으로만 해결할 경우 어느 당사자에게 더 가혹하기도(p. 63)합니다. 이길 승산이 있어 보이나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법원은 당사자에게 조정 또는 화해를 권고하는 데,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조정 또는 화해 절차에서는 집행에 관한 내용을 반영할 수도 있으므로 이러한 점에서도 조정 또는 화해의 효용은 높습니다. 증인 신문을 할 때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정에 출석한 증인을 상대로 질문을 할 경우 "거짓말쟁이다" "양심도 없느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차분하게 증언의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상대방이 질문하는 내용을 (미리 받을 수 있습니다) 검토하여 허점을 정리했다가 법정에서 질문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람 턱없이 부족한 내용일 것입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소송을 잘해서 이길 사람이 이기는 재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p. 64). 문제가 터지고 나서 소송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은 문제가 터지기 전 검토를 충분히 하는 것입니다. 몇 천 만 원이 오고가는 계약을 체결할 때 변호사나 법을 잘 아는 사람에게 비용을 들여서라도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길게 볼 때 비용이 더 적게 듭니다(p. 65). 책을 읽는 이유 세 가지 2010. 2. 16. 책을 많이 읽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고전을 읽은 적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 보니 문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투리는 말을 안 하는 것으로 감출 수 있었지만 무지는 감출 방법이 없었다. '장 발장'이 《레미제라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읽었다(p. 108). 무경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판사가 되고 보니 사건을 이해하기엔 내 경험이 너무 좁고 얕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도대체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거액의 거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잡히면 처벌받을 게 뻔한 일을 왜 되풀이하는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경험을 늘리려고 해보니 이 또한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장 법관 윤리가 문제였다. 그래서 생각해본 것이 두 가지다. 지금은 언론사 사장이 된 어떤 분이 사법연수생이었던 나에게, 법조인이 되면 초등학교 동창생과 꾸준히 만나라고 당부했던 기억이 떠올라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1년에 몇 회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때로는 부부 동반으로) 만났으니 어느 정도는 실천한 셈이다. 두 번째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장르를 구분하지 말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어보자 하였던 결심이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다. 무소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었다. 남녀 공학 중학교 시절 소풍(p. 109)을 가서 선생님의 권유에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를 까먹어 끝을 맺지 못할 정도로. 그때 불렀던 노래가 남진의 〈님과 함께〉였다. 고등학교 때는 교복이 중고라서 반장을 하지 못했다. 대학교 가서는 사투리 때문에 남 앞에 나서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무슨 결정을 하려면 무척 어려웠다. 결정을 하고 나면 곧 후회를 하게 되고. 어느 날, 내성적인 이유가 소신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군대에서 정훈장교를 하게 되었고 정훈장교 하는 일이 장병 교육이다 보니 남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해소된 뒤라서 그런 결론을 더욱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앞서간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서로 맞추어보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 단단해져 소신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포함해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사족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이 누구와 만나고 무슨 책을 읽는지 말해달라."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p. 110). 혼돈의 시기에 그나마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친구와 책 덕분이라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 감회가 남다르다. 모든 분들에게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p. 111). 책을 고르는 기준 2010.6.26. 책을 어떻게 고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저자를 보고 고른다 어떤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면 그 저자가 쓴 책은 눈에 띄는 대로 사서 읽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면 고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 단 한 번》을 읽고 《축복》 《살아온 기적 살아 갈 기적》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는 식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저자는 다음과 같다. 신영복 교수, 정 민 교수, 유시민 전 장관, 소설가 김 훈, 오지 탐험가 한비야,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열하일기》 전문가 고미숙 박사(p. 124). 주제어를 보고 고른다 제목이나 문장을 검색하여 관심 있는 주제어가 들어간 책을 고른다. 요즘 즐겨 찾는 주제어는 다음과 같다. 정의, 소통, 성찰, 역사, 철학, 인생, 여행, 행복. 이런 기준으로 고른 책은 다음과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 《서양철학사》 《인도 여행》 《행복의 정복》 《무지개 원리》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등. 책 선택에 실패한 적은? 이런 기준으로 책을 골라 읽으면서 후회할 때가 제법 있다. 그러나 산 책은 다 읽는다. 재미가 없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책에 대하여는 독후감을 쓰지 않음으로써 복수를 한다. 블로그에 올린 책은 이중으로 검증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 지금껏 읽은 책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천 권 정도 될 것 같다. 책을 고르는 장소는?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여 고르는 경우가 많고 가끔 서점에 가서 고른다. 베스트셀러 항목과 새로 나온 책 항목을 많이 참조한다(p. 125). 블로그에 독후감을 쓰는 이유는? 독후감을 쓰다 보면 책 내용을 정리하는 효과가 있고, 글쓰기 훈련이 되며, 블로그에 저장해놓으면 다른 글을 쓸 때 인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은 있어도 나쁜 책은 없다. 어떤 책에서도 스승 또는 반면교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께 독서를 권한다. 책이 여러분을 끌어올려줄 것이다(p. 126). 왕후박나무 2011.4.1 남해군법원 다녀오는 길에 경남 남해군 창선면 왕후박 나무를 만났습니다. 500년 이상 되었다고 합니다. 둘레에는 동백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합니다. 주로 방풍용으로 많이 심는다고 합니다. 남해군 창선면에 있는 왕후박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9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왕후박나무는 높이 솟구치지 않고 옆으로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도 500년을 버틴 게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자신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p. 140). 조영남의 노래가 있죠. 〈겸손은 힘들어〉. 그렇죠. 겸손은 힘듭니다. 공자 이래 2천 년 동안 성현들은 겸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겸손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습니다(p. 141). 조정에 임하는 자세 2013.4.28. 조정이란 조정은 법률 분쟁이 생겼을 때 판사의 판결이 아니라 당사자 간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를 말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법원에 접수된 사건 중 판결까지 가는 사건은 10퍼센트가 되지 않고 대개는 조정을 포함한 여러 가지 간이한 방법을 통하여 사건을 처리한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조정은 이길 사람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길 사람이라는 건 미리 정해진 것은 아니고 재판 절차를 통하여 증거를 대고 법리를 세워야 하고 그것으로 판사를 설득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대법원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다(p. 188). 그리고 1천만 원을 받기 위하여 소송 비용으로 500만 원을 들여야 한다면, 700만 원을 받고 소송 비용을 100만 원 선에서 지출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사건에 관하여 가장 절실한 이해관계자는 판사도 아니 고, 변호사도 아니며, 결국 당사자다.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람도 당사자일 수밖에 없으므로, 당사자의 주도권이 가장 잘 보장되는 조정 절차가 불합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정에 임하는 자세 양보해야 한다. 조정은 당사자 간의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고 대체로 당사자는 서로 이해관계가 상반되므로 양보를 해야 조정이 성공한다. 본인이 참석해야 한다.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한 경우라도 조정 절차에는 본인이 참석하는 것이 좋다. 판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상대방의 입장을 직접 들을 수 있으며,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상생하는 방법도 있다. 본인에게 크게 불리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크게 배려하는 방법도 있다. 상대방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쟁점에 관하여 양보하더라도 본인에(p. 189)게 크게 불리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므로,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집행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소송을 하는 종국적 목적은 대체로 승소 판결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돈을 받아내기 위함이다.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더라도 집행 절차에서 돈을 받아내는 비율은 생각보다 낮다. 조정 절차에서는 돈을 받아내는 방법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으므로 유리하다. 원고는 5천만 원을 고수하고 피고는 3천만 원을 고집할 경우 4천만 원 선에서 타협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때로는 5천만 원으로 정하되 3개월 내에 3천만 원을 가져오면 나머지 2천만 원을 포기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싸우는 것은 금물. 간혹 조정실에서 상대방과 말이나 몸으로 싸우는 사람이 있다. 사연이 있겠지만 판사 입장에서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자신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자리를 어렵게 마련했는데 불만을 터트리는 자리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다. 그 사건이 해결 되지 않을 경우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은 판사도 아니요 변호사도 아니요 바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판사의 설명에 귀 기울인다. 법원이 조정 절차를 주도하(p. 190)는 경우 판사로부터 사건 전반에 관한 설명을 듣게 된다. 판사는 내가 불리한 점, 내가 유리한 점을 나누어 설명할 것이다. 잘 들으면 판사가 생각하는 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2심이라면 사건 처리 방향이 대부분 결정되었다고 보면 된다. 민사 사건의 경우 대법원에 상고를 해서 2심 판결이 깨지는 비율이 10퍼센트가 안 된다는 점, 사실 인정은 원칙적으로 2심에서 하게 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2심 재판부의 결론은 존중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내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좋다. 마무리(롯데자이언츠의 마무리는?) 집안에 송사가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적당한 선에서 털고 나오는 것도 마음의 평화를 찾는 좋은 방법이다. '조금 손해 본 것은 다른 일을 해서 보충하면 된다.' 이런 생각으로 조정에 임할 수는 없을까요?(p. 191). 재판 속의 문학 내가 현실에서 맡은 재판은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다(p. 304).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문학이 재판에서 많은 것을 차용하지만 재판은 문학에서 차용하지 않고 순수함을 고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판사는 많은 경험을 해야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제한적인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문학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문학은 보편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고, 재판은 구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며, 양자는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판사들이 다 가난했던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훈의 《흑산》을 읽고 나면 가난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배고픔을 면하자면 오직 먹어야 하는데 많은 끼니 중에서도 지금 당장 먹는 밥만이 배를 채운다는 내용이 그렇다. "아침에 먹은 밥이 저녁의 허기를 달래줄 수 없으며, 오늘 먹는 밥이 내일의 요기가 될 수 없음은 사농공상과 금수축생이 다 마찬가지다." 내가 10년 전 처리한 사건 중 20대 청년이 공무집행 방해죄로 구속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생모라고 밝힌 사람이 탄원서를 보냈다. 오래전에 헤어진 아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자신이 책임지고 선도를 할 테니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p. 305). 재판을 하며 방청객을 둘러보니 유난히 눈에 띄는 분이 있었다. 피고인석 옆에 앉아 대화를 하게 하였더니 피고인을 껴안으면서 "이제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라고 말했다. 피고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생모와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였다. 생모를 만났으니 이제 마음을 잡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집행 유예 판결을 선고했고, 피고인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그 책 한 쪽을 읽어주었다.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다. 내가 10년 전에 처리한 사건 중에 피고인이 자살을 하려고 여관에 불을 질러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불은 크게 번지지는 않았고 다친 사람도 없었다. 선고하는 당일 피고인에게 자살을 열 번 외치게 하였다. "자살자살자살자살.... 이렇게 열 번 하면 본인은 '자살' 이라고 말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살자'로 들립니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실패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살에 실패해서 살았지 않았습니까?" 그러고서 피고인에게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49가지》란 책을 선물했다. 나는 이런 재판을 하게 된 배경 중 8할이 문학 덕분이라고 생각한다(p. 306).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어쩌면 좋은 문학과 좋은 재판은 그 모습이 모두 비슷할지 모른다.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질문할 때, 주제와 이야기가 딱 들어맞을 때 독자들은 감동한다. 판사들이여!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가 영국의 대법관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작가들이여! 긴장하시라. 대한민국의 판사도 또 다른 '유토피아'를 쓸지 누가 알겠는가?(p.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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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2】 죽음을 늘 준비하며 살자
KBS 《아침마당》, 《강연100℃》 등에 출연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공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의 에세이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 극심한 암성 통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임종 선언을 했던 저자 김여환.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꼼꼼히 기록한 이 책은, 삶이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을 위해 더없이 소중한 오늘을 ‘있는 힘껏’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교보문고. 이 책은 호스피스 의사가 수많은 죽음을 보고 삶과 죽음에 대해 느낀 것을 쓴 것이다. 많이 유익했는데 현재 절판됐다. 사람의 일생 중 가장 힘든 시기는 보증을 잘못서서 거액의 부도를 냈을 때나 남편이 바람을 펴서 이혼할까 말까 망설일 때가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인생의 반전 같은 일말의 빛조차 기대할 수 없는 시간들, 즉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의 '짧은 삶'이다. 그 시기를 잘 보내야만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온전한 나의 인생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야만 남겨진 사람들의 인생도 편안해질 수 있다(p. 8). 그렇다. 나는 이 세상에 남들보다 조금 먼저 작별 인사를 건넨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토록 자명한 삶의 진리를 힘겹게 깨달았다. 만약 우리에게 내일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면, 오늘 우리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내일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면, 한 번 더 사랑한다 말하고, 한 번 더 안아주어야 하며, 오늘 깃든 행복을 있는 힘을 다해 누려야 한다. 이렇게 수많은 '오늘의 삶'이 모일 때 삶의 아름다운 결과물은 비로소 완성 된다. 그러므로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라는 말에 숨어 있는 참된 의미는 오지도 않은 내일에 대한 불안과 분노, 두려움과 슬픔에 오늘의 행복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더 사랑하고, 오늘 더 행복해야만 한다(p. 10). "2012년 8월 21일 12시 42분, 신복연 할머니는 사망하셨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더 이상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통증 없이 편안히 좋은 곳으로 떠나셨다는 위로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짤막한 사망 선언 뒤에는 언제나 그 마지막 순간을 지키고 있던 가족의 대성통곡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오늘은 조용했다(p. 22). 할머니의 둘째 딸이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우리 엄마가 평소에 유언을 했어요. 내가 떠나면, 울지 말라고. 자식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뒤 돌아보느라 떠나는 것이 힘드니, 울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아...하여간 대단하세요. 입원 내내 웃지 않으신 날이 없었는데, 그런 아름다운 유언까지 하신 줄은 몰랐어요. 제가 들어본 유언 중에 가장 훌륭한 유언인 것 같아요." "과장님, 그렇죠! 우리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이제 꽃 한 송이가 지는구나, 했다니까요." 곱게 아껴두었던 꽃분홍색 한복으로 갈아입고, 흰 양말까지 정갈하게 신은 신복연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살아 있는 그 누구보다도 따뜻해 보였다(p. 23). 짧은 글 한 편을 쓸 때에도 마지막에 무슨 말을 쓸까를 생각하면서 쓰면 글의 흐름이 매끄러워지듯이, 인생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고 살다 보면 들쭉날쭉한 인생이 일관성 있게 변한다. 타인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자기 자신과 먼저 소통해야 한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과 소통하면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p. 25). 자신과 만나려면 가장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임종실은 부끄럽지만 가장 볼품없고 꾸밈없는 자신의 민낯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은 바로 '나의 마지막'이라고(p. 26). "호호호, 난 아직 여기 입원할 단계는 아닌 걸요." "아직은 마약성 진통제를 쓸 만큼 아프지는 않아요." "며칠 전에도 산에 다녀올 만큼 괜찮았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멀쩡하게 걸어 들어오는 말기 암 환자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해 보이는 말기 암 환자들이 한두 달 뒤에는 누런 황달이 오거나 폐렴이 와서 황망히 떠나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남겨진 시간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그 짧은 시간에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칠순 잔치를 하든지, 마지막 콘서트를 하든지, 이혼한 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들을 찾아주는 일들 말이다. 그래도 나도 한 번쯤은 환자를 살려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죽는다고 포기했던 말기 암 환자가 완치되는 일이 우리 병동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환자들은 입원해서 퇴원(p. 45) 할 때까지 평균 27일을 살았다. 호스피스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역시 기적이란 부질없는 비현실적인 희망이라는 것을 확신 하게 됐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슴 저리게 갈구하기도 하고 신에게 떼를 쓰며 의지하기도 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겠지만,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 훤히 보이는 나로서는 그렇게만 하다가 환자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런 애절한 생각을 할 시간이 있으면 조금밖에 남지 않은 삶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오랜 경험을 통해 내린 슬픈 결론이었다. 사람이 좀 민민하고 삭막하게는 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옳았다(p. 46).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다. 푸시시한 구차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낼 때쯤이면 원치 않았던 현재 시간이 살다 남은 찌꺼기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약한 정신 때문이 아니라 몸이 약해지기 때문에 마음까지 통째로 흔들린다. 심지어 어떤 환자는 "잠자듯이 가는 그런 약 있잖아."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말기 암 환자가 안락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p. 56). 비참한 마지막은 말기 암에 걸린 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다 남은 삶이라고 쓰러져버리는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떠날 사람은 남아 있을 이를 위해 조금 남은 삶을 성실히 살아가고, 남아 있을 사람은 떠날 이가 세상에서 사랑받다가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노력하면 서로 덜 힘들다. 처음과 마지막까지, 모두가 촘촘히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p. 58). 세상은 가벼움과 무거움이 서로 경계를 불분명하게 가른 채 섞여 있다.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가볍고,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무겁다. 그렇게 어우러져서 세상은 좀 더 좋게 변한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오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선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고함을 지르고 입원실 바닥에 소변을 보는 한 할아버지 때문에 사흘 밤낮 동안 시달린 환자들이 하소연을 했다. 할아버지를 간병하던 할머니는 "환자가 병원에 자러 왔나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진정제도 못쓰게 하고 1인실로 가지도 않았다. 그런가 하면 뇌종양에 걸린 12살짜리 소녀는 과자를 들고 병실을 누비며 "아저씨, 빨리 나으세요."라고 하면서 환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한 신문 기자가 말기 폐암 환자에게 물었다(p. 67). "인생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해주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후덕하게 생긴 환자는 가지고 있던 옷가지며 살림살이를 싹 정리할 정도로 죽음을 잘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쓸쓸하게 대답했다. "저는....그런 것은 선배가 되고 싶진 않은데요." 그렇다. 죽음이란 일평생을 별 탈 없이 살다가 90살이 되어 마음 독하게 먹고 미리 준비해도 어려운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닥뜨리는 죽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많이 돌본 의사로서 한 가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이 먼저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남은 사람들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나 때문에 끼니를 거를까 봐, 나를 잃은 슬픔으로 행여 병이라도 생길까 봐, 경제적으로 힘들까 봐 등등.... 그들은 사소한 걱정을 몰래 했다. 남은 사람들은 그 마음을 알까? 임종실은 섞일 수 없는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고, 살아남은 이들이 비통함에 눈물을 흘리는 작은 방이다. 그러나 그곳을 거(p. 68)쳐 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존재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사랑하는 이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라고(p. 69). 예전에 나는 보기조차 딱할 만큼 남을 부러워했다. 뚱뚱할 때는 날씬한 사람을, 늦게 시작한 의사 생활이 비참하다고 느껴질 때는 처음부터 순탄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동료를 얄밉도록 부러워했다. 누군가는 잘된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인생의 꿈도 생기고 삶을 개척할 의지도 생긴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 부러움이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계기는 되었을지라도 그 과정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이제 내가 진실로 부러워하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했거나, 예쁘고 날씬하고 건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어떤 삶이 자신에게 다(p. 92)가오더라도 묵묵히 잘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그 자체로 당당하게 살아내는 사람이다. 우리는 저마다 지닌 인생의 향기가 따로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말자. 인생의 마지막에는 행복했던 자신의 과거조차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 시간에는 그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나만의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이 온 것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아쉬운데, 여러 가지 잣대로 부러워하면 병들어 있는 자신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부러워하지 말자, 그대여! 인생이 아파도 마지막까지 이 세상을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내야 한다(p. 93). 불행히도 호스피스에는 죽음을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는 묘약 따위는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들어주면 조금은 가벼워졌고, 끝까지 끈을 놓지 않고 가는(p. 108)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평범한 사실에 평안을 찾아갔다. 대식 씨의 어머니처럼 때로는 버리는 것보다 안고 가는 것이 더 홀가분한 인생도 있다. 그러니까 결국 안고 가는 사람, 버리고 가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p. 109). 잘 죽어가기 위해 우리가 정말 배웠어야 할 것은 죽음의 5단계를 외우거나 혼자서 관 속에 들어가 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p. 112) 아니다. "저는요, 이미 죽음을 다 받아들였어요."라고 말하면서 의젓하게 지내다가 진짜 마지막이 다가오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기보다는 결과물이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신산스럽고, 일상은 상처와 갈등의 연속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얼마만큼 잘 녹여내느냐에 따라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을 마지막 날은 달라진다(p. 113). 어쩌면 인생은 쓰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저절로 쓰이는 소설책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내야 한다. 죽을 만큼 괴로워도 직접 해봐야 삶에 대한 사랑이 깊어진다. 사람들은 인생이 힘들어지면 앞으로 남은 여정이 얼마나 끔찍해질지 더 두려워한다. 남은 인생이 지금보다 더 불편해지더라도 초조해하거나 원통해하지 말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대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살이라는 '고의로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를 생각할 만큼 견딜 수 없이 힘들다면 적극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아무 상관도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조차 알려야 한다. 마음의 피눈물은 말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 애써 고통을 삼키지 말자. 누구라도 도와줄 사(p. 120)람을 찾아다녀라. 자존심 따위 내세울 때가 아니다(p. 121). 치통이 아무리 심해도 한꺼번에 진통제를 다섯 알씩 먹지는 않는다. 통증을 잡으려다 사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타이레놀도 하루에 여섯 알을 초과하면 진통의 효과는 증가하지 않고 간에 부담만 준다. 이렇게 일반 진통제는 일반적으로 정해져 있는 용량을 초과하면 통증에 대한 효과보다는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해지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용량의 한계가 있다. 이것을 약의 천장 효과(ceiling effect)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천장 효과가 없는 약이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많이 쓰이는 마약성 진통제이다. 그것은 일반 진통제와 달리 많이 쓰면 쓸수록 통증이 잘 조절된다. 더군다나 날록손 (naloxone)이라는 해독제까지 있으니 '모르핀'이야말로 신이 세상을 떠날 때만은 아프지 말라고 인간에게 특별히 내려준 '마지막 선물'이다. 사망 원인 1위인 암은 사람이 떠날 무렵에 부쩍 커진다. 암(p. 129)덩어리가 커지면 정상 조직을 파괴하는 묵직한 암성 통증도 당연히 심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일찍부터 진통제를 쓰기 시작하면 통증이 가장 극심한 마지막 순간에는 정작 쓸 수 있는 약이 없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모르핀을 최후의 약으로 넘겨 두었으면 하고 부탁까지 한다. 그러나 통증에 관한 한 모르핀은 쓰면 쓸수록 효과가 있는 약이다. 이러한 마약성 진통제의 비밀을 알려주면 누구나 "진짜 그런 약이 있나요?" 하고 물으며 신기해한다. 환자나 보호자는 어차피 살릴 수 없다면 고통 없이 떠날 수 있다는 확신만으로 가느다란 희망을 갖는다. 모르핀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보다 더 끔찍한 암성 통증에서 해방시켜주는 이로운 약제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좀 더 정확하게 모르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아직도 말기 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모르핀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거부하면서 의미 없는 통증에 시달리다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의 마지막 의사로서 당부한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때가 오면 신이 내린 선물, 모르핀을 거절(p. 130)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통증이 없으면 죽음의 맨 얼굴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고, 고통 없는 죽음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을 것이다(p. 131). 내일 도사리고 있는 재앙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살아감 속에 죽어감의 흔적을 묻히는 것이다. 내일이라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오늘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심코 거칠게 한 말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지도 않을 비겁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너무 많이는 양보하지 말자(p. 163).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가족 간의 갈등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 갈등은 확대된다. 문제의 중심은 늘 '사랑과 돈'이다. 거기에 종교적인 문제가 곁들여지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p. 174). 살다 보면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만 해도 짧은 인생인데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 큰 손해를 볼 것만 같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매 순간 저마다 해야 할 일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훤히 보이고 그때 용기 내어 그 일을 하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것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기도, 또 속절없이 짧기도 하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실수 없이 하려면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하면서 견뎌보는 것쯤은 각오해야 한다(p. 187). 웰다잉(well dying)은 삶의 완성이 아니라 삶의 결과물이다. 누구나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은 더군다나 아니다. 저마다 주어진 힘든 삶을 잘 살아내야만 누릴 수 있는 삶의 마지막 축 복인 것이다(p. 203). 죽음을 깊숙하게 연구하고 싶어서라든지 내 성격이 원래 우울해서 호스피스 의사가 된 건 아니다. 나는 호스피스 일을 해오는 동안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도 죽음에 이르기 직 전까지는 살아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누구도 아프지 않게 하루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거창한 죽음의 여의사가 아니라 그저 생명의 에너지가 다 할 때까지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의사로서 당연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름이 주는 거부감 때문에 국내 암 환자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국내 사용량은 모르핀으로 환산했을 때 환자 1인당 연간 45mg에 불과하다. 미국 693.44mg, 영국 334.52mg은 물론 세계 평균 58.00mg보다도 낮다. 통증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안 쓰는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아프면서 죽어간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죽음이 삶의 종착역인지 따위는 일단 환자의 통증을 덜어준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암 환자의 통증은 당사자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출산의 고통이 10점 만점에 7~8점이라면 암 환자의 통증은 10점 이상도 간다.암성 통증은 암이 진행되는 생명의 마지막에는 더 심해지고, 그(p. 215)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환자와 가족을 더더욱 애타게 한다(p. 216). 인생을 산다는 것은 세상에 놓인 하나의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하지만 그저 다리를 건너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세상의 아름다움은커녕 다리를 뒤흔들 고통과 혼돈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뜨거운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자기 삶의 아웃사이더가 되어보기를. 삶이 끝난 뒤에 죽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죽음이 있음을 알아차리기를,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게 되기를 바란다(p.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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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1】 삶의 찌질함과 누추함에 대하여
산문집 《연중무휴의 사랑》과 《헤아림의 조각들》(2023년 문학나눔 선정도서)로 2030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임지은이 신작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전작에서 냉철하고, 때론 따뜻한 연민과 너른 헤아림을 보여줬다면 이번 산문집에서는 작가 자신의 깊은 내면에 숨겨진 질투와 열등감, 욕망과 좌절, 위선 등의 감정을 진솔하게 마주해본다. 누구나 한번쯤 특별한 이유 없이 무언가를 미워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싫음’이라는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숨기고만 싶은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들여다볼수록 작가는 거기에 어떤 선망이나 외로움,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편으론 자기가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을 돋보이게 하려는, 서툰 사랑의 마음이기도 했다. 작가는 슬픔과 기쁨과 외로움이 버무려진 이 “혼탕과 같은 삶”에 깊게 몸 담그며, 미움과 사랑 사이의 낙차를 발견한다. 엄마를 통해 흉보는 마음과 사랑이 때론 붙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온 세상과 자기 자신을 고루고루 아낌없이 사랑한다는 사람들 옆에서 홀로 투덜거리며 자신의 ‘싫음’을 통해 타인의 ‘싫음’ 또한 이해하게 되는 세계를 경험한다. 좋은 것은 당연하게 제 것이라 누리는 동거인에게 꼬인 마음이 드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 수긍하기까지의 내면의 갈등과 고통을 인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지만,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을 톺다 보면 이 책을 추천한 오은 시인의 말처럼, “곡절 없이 좋아하는 것들을 몇 곱절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곧 있으면 닥쳐올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직진하는 용기가 느껴지는 책이다.-교보문고 자신의 찌질함(?)을 드러내는 글을 보며 저자의 용기를 본다. 만족스럽지 않은 환경 가운데서도 살아볼려고 하는 저자의 몸부림(?)에 박수를 보낸다. 이토록 많은 말이 오가는 세상에 말 한마디가 그토록 크게 사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고야 만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버티고 또 흔들릴 만큼 나는 취약 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흔드는 게 무작정 나쁘다거나, 사주는 믿을 만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나를 흔들던 말 또한 나를 이쪽으로 데려왔음을, 내가 무언가를 그 안에서 발견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밤 안도 속에서 깨달은 건 나를 격려해주는 이가 없어도, 심지어 누가 나를 흔들어놓고 수면 아래로 밀어 넣는다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생겨난 불안과 슬픔과 무력감, 또 그에 따른 오기와 반발심을 동력 삼으며, 나는 내 안에서 끝내 살아남은 무언가를 마주했다. 어쩌면 그(p. 25)것이 그리도 중요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나 흔들렸다는 사실 또한. 그러므로 물음에 대한 답은 추가되고 갱신된다. 어쩌다 작가가 되었을까? 나는 끝내 작가가 되고 싶었다(p. 26). 오늘날에는 자신을 돌보는 법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그런 정보의 과잉은 때론 상처도 불행도 없어야 한다는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건 꼭 완두콩 한 알 만큼의 불편도 용인하지 않기 위해 고안된 듯 보이니까. 혹시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은 것만 주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걸까? 그렇게 해야만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건 좀.. 부자연스럽지 않나? 그래도 그런 정보들을 일찌감치 알았다면, 그래서 내 부모가 조금 더 자신을 돌보았다면 그들에게도 내게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내 부모도 조금은 덜 힘들었을 텐데. 나도, 조금 덜 우는 사람이었거나 조금 더 마음 놓고 우는 사람으로 자랐을 텐데. 어쩌다 한 번 하는 우리의 외식도 지금보다는 더 편안할 텐데(p. 103). 뒤늦게나마 나는 내게 좋은 것을 주는 법을 배우고 또 연습한다. 가능한 선에서 질 좋은 걸 산다. 누가 뭘 해주면 사양하지 않고 받는다. 목돈을 모아 요가를 등록하고 되도록 병원을 제때 간다. 때론 근사한 데서 밥을 먹기도 한다. 부모로선 잘 모를 좋은 걸 누려도, 스스로를 이기적이라 느끼지 않으려 이를 악문다. 동거인이 놀리는 걸 보면 갈 길이 먼 것 같지만, 나는 나를 보살피는 훈련을 거듭한다. 그래야 부모를 포함해 그 누구라도, 나를 챙기느라 그 자신을 뒷전으로 두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나에게 최선을 다해준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이해할 수 있다. 동거인의 캠핑을 따라가는 건 훈련의 일환이다. 캠핑을 가면 동거인이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해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뻔뻔하게 앉아서 쉰다. 겨울에는 가끔 엄마의 개도 캠핑에 데리고 간다. 텐트 안에서 개는 한 뼘의 볕이 있는 자리에 자기 몸을 두기도 하고, 난로 앞 조금 더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고 웅크리기도 한다. 주어진 데서 기어이 제 몸만큼의 좋음을 찾아내는 것이다. '너는 바로 아는구나'(p. 104). 내가 오래 걸려 배운 걸 개는 그냥 해낸다. 기특하고 근사한 개 같으니. 몇 년 전가지만 해도 그런 광경, 자신이 괜찮아지는 위치를 미리 알아두고 스스로를 거기 놓는 존재 앞에서는 마음이 볼썽 사납게 흐트러지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웅크린 개를 빤히 바라본다. 걷는 법을 모르고도 걸었고 숨 쉬는 법을 모르고도 숨 쉬었다. 사랑 하는 법을 모르고도 사랑했고 사는 법을 모르고도 살았다. 나를 키워낸 내 부모처럼, 언제나 모르면 모르는 대로 해내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배우면 배우는 대로 더 해내게 된다. 그걸 안 뒤로 나는 배우고 싶은 모든 걸 조금 더 오래 본다. 그럼 볕을 받아 털끝 하나하나가 빛나는 작은 개의 부드러운 몸이 조금씩 솟았다 가라앉길 반복하듯 감탄과 슬픔이 내 몸을 고요히 오르내린다. 어떤 자연스러움은 누군가에게 훈련의 영역에 있지. 그런 게 언제나 조금씩 나를 상하게 만든다고, 개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아무 불편도 모르는 얼굴,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멸균된 얼굴은 역시 내 것이 아니다. 훈련 해봤자 조금 상한 얼굴을 더 자연스럽게 여기는 내 관점은 아무래도 끝내 바뀌지 않을 모양이다. 그래선지 어떨 땐 사람들의 얼굴이 다 조금씩 상한 것처럼 보이곤 한다(p. 105). 대중교통을 오가며 힐끗힐끗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이 상처 입거나 불행하지 않길 바라면서.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들 각자의 상처나 불행이 없어지길 곧장 바라지는 않는다. 거기서 오는 고통과 모순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을 감싸는 오래된 맥락이므로. 나로선 그 안에 새겨진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그들의 완두콩들을 헤아려 보고 싶다. 그런 건 사람이 상처와 불행 속에서도 그럭저 럭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다만 그 사실을 증명하겠다고 나를 몰아세우는 건 그만두었다. 스스로를 보살피는 게 죄가 아니라는 걸 개조차 그냥 안다. 나는 개처럼 살아서 숨쉰다. 개에게 배운 바, 그건 머무르는 자리에서 언제나 한 뼘의 볕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뜻이다(p.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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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0】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 죽음
대한민국이 OECD 자살률 1위라는 아픈 현실을 몇 년째 마주하고 있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날 거야”라는 절망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젊은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대답을 들려주어야 할까? 이 무거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평생을 의학계에 몸담았고 ‘죽음학 전도사’라 불리는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와 그의 아내가 함께 펜을 들었다. 바로 신간 『죽음, 삶의 끝에서 만나는 질문 』의 저자 정현채, 이현숙 부부의 이야기다-교보문고. 의사가 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1) 근사체험 (2) 사후통신 (3) 삶의 종말체험 (4) 사망 시 물리적 현상 (4) 영매 (5) 어린아이들과 관련된 환생 연구이다. 나는 근사체험만 인정한다. 죽음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이기에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책을 찾아 읽게 된다. 읽은 책들이 죽어갈 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정현채 서울대학교 의대 명예교수 198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 내과학(소화기학)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로 있다. 지금까지 240여 편의 의과학 논문을 SCI 국제학술지에 발표했으며 위염이나 위궤양 등을 유발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연구의 권위자로 대한소화기학회 이사장, 대한헬리코박터및상부위장관 연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명한 의학 저널 『랜싯』을 포함해 전문 학술지에 게재된 죽음에 관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공부하면서 2007년부터 대중을 상대로 죽음학 강의를 시작했다. 중학생부터 80대까지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800여 회 넘게 강의를 해 '죽음학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국죽음학회 이사로서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 제정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수록 비관적이 되거나 자살 충동이 커지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정반대예요. 제가 산증인이죠. 인간의 죽음 전후로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에 대 해 알면 알수록, 왜 자살하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깨달아 더욱 밀도 있고 충만 하게 살아가게 되거든요. '내 목숨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웬 참견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그런 말을 하기가 어려워져요. 우리는 모두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고, 모르고 지나치는 존재들조차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요. 가족과 친구는 더 말할 나위 없죠. 우리는 모두 이번 생에서 다뤄야 할 저마다의 과제를 갖고 태어나는데, 자살을 한다는 건 그 과제를 너무 빨리 내팽개쳐버리는 거예요. 도망친다고 그 과제에서 벗어나게 될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 과제를 잘 다루게 될 때까지 형태만 바뀐 채 계속 마주 치게 돼요.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살면서도 그런 걸 경험하지 않나요? 해결하지 못 한 채 외면하거나 회피했던 문제가 사라지지 않고 어느 순간 눈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경험을요(p. 19). 자살은 남겨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고, 이 상처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잘 아물지 않아요. 한 사람이 자살하면 주위 사람 다섯 명 내지 열 명이 자살 충동을 갖게 된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마흔 명 가까이 자살한다고 하니, 매일 200명 내지 400명 넘는 사람들이 지인의 자살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거죠.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와요. 서둘러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고로, 질병으로, 노화로 언젠가 다 죽어요. 그러니 그 전까지는, 자신의 삶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까지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선택만은 하지 않아야 해요. 저는 4년 전 침윤성 방광암 진단을 받고, 방광 전체와 그 옆에 인접해 있는 전립선까지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았어요. 소장 60센티미터를 잘라내고 만들어 넣은 인공방광에는 괄약근이 없어서 자율적인 배뇨 조절이 안 돼요. 일정한 간격으로 화장실에 가야 해서 밤잠도 세 시간씩 끊어서 자요. 그러나 이것 때문에 비관하지는 않아요. 30년 전만 해도 방광 절제 수술을 받고 나면 비닐 소변주머니를 밖에서 연결해 부착하고 지내야 했는데, 수술법이 향상되면서 삶의 질이 높아졌어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 감사할 일이 참 많아요(p. 23). 자살하는 순간 후회하지만 자살을 시도했는데 살아난 사람들은 이후 신체적인 고통을 겪더라도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격스러워하며 살아간다고 해요.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이 더 이상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해요. 2013년 EBS 「다큐프라임」 '33분마다 떠나는 사람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에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교(금문교)에서 투신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2퍼센트의 사람들을 다뤘어요. 미국 플로리다대학의 토머스 조이너 교수가 그 사람들과 면담한 결과, 투신해서 수면에 떨어지기까지 4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했다고 해요. "뛰어내린 순간 나는 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 만 빼고"(p. 38). "뛰어내리고 처음 떠오른 생각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였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떨어진 곳이 강이였으니 그나마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고, 고층 빌딩이었다면 떨어지는 순간 후회한다고 해도 돌이키기 힘들죠. 경북 영주에 사는 한 중학생의 경우가 바로 그랬어요. 같은 반 학생들의 괴롭힘을 이기지 못해, 아파트 20층 계단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창문틀을 붙잡고 도와달라고 요청했어요. 때마침 20층에 사는 주민이 이 소리를 듣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지만, 이 학생은 팔에 힘이 빠져 결국 추락했다고해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에요. 이처럼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는 살고 싶은 의지가 강하게 있는 것 같아요. 다음에 소개하는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우울증을 앓고 있던 한 여성이 오피스텔에서 자살하려고 목을 맸는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어요. 잠긴 문을 따고 들어가보니 이 여성은 이미 사망한 것처럼 보였어요. 호흡도 없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해 있었죠. 그런데 출동한 경찰관 중 한 명이 혹시 모르니 응급조치를 해보자며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얼마 뒤 이 여성은 "컥!? 하는 소리와 함께 숨을 쉬며 살아났어요. 그리(p. 39)고 살아나서 한 말이, 경찰이 들어왔을 때 자신은 여전히 의식이 있었는데 다른 경찰관이 "시신에 손대지 말고 현장을 보존하자"고 했을 때 속상했다는 거였어요(p. 40). 죽는 것 외에는 거기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상황에 있다면, 가족이나 상담사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찾으세요. 익숙한 곳을 벗어나는 걸 겁내지 마세요. 죽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지금 그곳보다 더 나쁜 곳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려요. 70년을 살아보니 정말 그렇더라구요(p. 42). 케네스 링과 친절 바이러스 근사체험 연구에서 케네스 링 교수를 빼놓을 수 없죠. 미국 코네티컷대학 심리학과 교수로서 30년 넘게 학생들에게 근사체험에 대해 가르쳤어요.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직접 체험하지 않았는데도 근사 체험자에게 일어나는 삶의 변화를 마찬가지로 겪었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한 거예요. 케네스 링 교수는 근사체험을 '친절 바이러스Benign Virus'라고 불러요. 왜냐하면, 이를 알게 된 사람은 근사체험을 직접 하지 않았어도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체험자와 비슷한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에요. 그런 변화를 저나 주변 사람들한테서도 발견해요. 한 중견기업의 대표는 평소 까칠한 편이었다는데, 죽음학 강의를 들으며 펑펑 울고 난 뒤로는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자상해졌다고 했어요(p.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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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9】 만화가 주는 즐거움과 편안함
“<을지로 순환선>의 만화가 최호철과 만화평론가 박인하가 함께한 여행기『펜 끝 기행』. 같은 학교 교수로 만나 떠난 제주도 교직원 연수에서 결성된 두 만화쟁이 '펜 끝 듀오'의 여행은 이후 일본, 이탈리아, 스위스, 중국을 거쳐 다시 우리 땅 울릉도와 독도에서 마무리된다. 화가였다가 만화를 선택한 최호철과 글쟁이였다가 만화를 선택한 박인하. 만화에 붙들린 두 사람은 세계를 바라볼 때 만화적으로 본다. 최호철은 여행지마다 그림을 그렸고, 박인하는 최호철의 크로키 북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이 책은 그들이 그렇게 함께한 여행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만화를 좋아했다. 초등학교때부터 대학때까지 만화를 봤다. 지금은 잘 안 보지만 그래도 만화가 좋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이런 책들을 찾아 읽을려고 한다. 일본다운, 너무나 일본다운 규슈 한 일 두 나라는 모두 벚꽃을 좋아하고, 벚꽃 구경 하기를 즐긴다. 그래서 봄이면 어김없이 벚꽃 축제가 벌어지는데, 가만 보면 두 나라 사람들은 각각 다른 벚꽃을 즐긴다. 우리나라에서 즐기는 벚꽃은 봉오리가 오르기 시작해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상태이다. 그래서 벚꽃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일기 예보에 민감하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와 꽃잎이 떨어지면 꽝이 되어버리기 때문. 반면, 일본 사람들은 화려하게 만개한 뒤 흩날리는 벚꽃을 즐긴다. 만개한 벚꽃이 바람에 떨어지는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이웃. 결국 이런 미세한 차이가 모여 문화의 차이가 되고, 문화의 차이는 풍경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일본 미학'이라는 말이 있다. 다양한 논의가 있고, 학자마다 여러 설명을 더하지만 이방인인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일본의 모습 자체가 그대로 일본 미학이다. 가을이 서서히 겨울로 넘어가던 날, 두 만화쟁이는 학생들과 함께 후쿠오카를 찾았다. 후쿠오카를 여행지로 결정한 것은 순전히 우리나라에서 가까웠기 때문. 특별히 우리를 끌어당기는 매력이나 꼭 가야 할 곳을 생 각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기대 없이 찾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활화산 아소 산. 그 웅장한 모습은 대단했다. 아소 산은 해발 1000미터가 넘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를 통틀어 부르는 이름으로 정식 명칭은 아소고다케인데, 다섯 개의 분화구마다 사실 다른 이름, 다카다케(1592미터), 나카다케(1506미터), 에보시 다케(1337미터), 기지마다케(1326미터), 네코다케(1433미터)로 부른다. 버스로 전망대 인근까지 올라가 케이블카를 타면 쉴 새 없이 하얀 연기를 내뿜는 분화구를 볼 수 있다. 은근하게 풍겨나는 유황 냄새, 곳곳에 자리 잡은 대피소, 은근히 겁을 주는 가이드의 말이 어우러지(p. 243)면 현재 진행형 활화산의 다이내믹함을 느낄 수 있다. 멀리 피어오르는 활화산의 기운을 바라보니,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무라이, 흩날리는 벚꽃처럼 배를 가르는 영화의 장면이 떠올랐다. 아소 산을 뒤로하고 찾은 곳은 구마모토 성. 구마모토 성은 약 400년 전, 전국 시대의 무장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를 통치하기 위해 축성한 성이다. 가토 기요마사라고 하면 낯설지만, 한자음 그대로 '가등청정'이라고 읽으면 익숙하다. 바로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했다가 깨진 바로 그 장군. 적의 공격에 대비한 120개의 우물과 조선 성의 장점을 차용한 축조술이 인상적이었지만, 그보다는 거대함 속에 정교하게 쌓아 올린 구마모토 성의 모습 그 자체가 일본, 사무라이를 느낄 수 있는 너무나 일본적인 풍경이었다. 그러나 사실 가장 일본적인 풍경은 활활 불타오르는 아소 산과 전국 시대 의 칼바람이 담겨 있는 구마모토 성이 아니라 그 살벌함과 함께 일상을 살았을 일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지금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소 산 자락 아래에서 평화롭게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바로 그들의 모습이 가장 일본다운, 너무나 일본다운 모습이었다(p. 244). 이 책을 쓰고 그리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자면(p. 276) 최호철 선생과 나는 같은 직장(청강문화산업대학)에 다닌다. 둘 다 만화창작과 선생이다. 사람들을 만나 "학교에서 만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꽤나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마치 황제펭귄처럼. 낯설지는 않으나 내 주변에서 마주칠 때 경험하는 신기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어쨌든 우리는 5월마다 찾아오는 불량 만화 화형식의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지 않은 만화인들이다. 최호철 선생은 화가였다가 만화를 붙들었고, 나는 글쟁이였다가 만화를 붙들었다. 더 정확히 우리 둘은 모두 만화에 붙들린 사람들이다. 만화에 붙들린 사람들은 세계를 바라볼 때 만화적으로 본다. 일단 빈 종이가 있으면 무조건 그리고, 조금이라도 분위기가 추락하면 농담을 날리고 싶다. 전자가 최호철 선생. 후자가 나다. 하지만 둘 다 천성이 숫기가 많은 사람들은 아니다. 은근 부끄럼쟁이들. 그래서 낯선 이들하고 떠들고 노는 것보다, 친한 이들과 수다 떠는 것이 좋다. 그래서인지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선생들은 보통 직장인들과 달리 사우나 아줌마 분위기를 풍긴다. 그 때문에 여행에 대한 기억이 꽤 많다. 최호철 선생은 여행지마다 그림을 그렸고, 난 최호철 선생의 화집을 뒤적이며 농담을 던진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월간 무가지 〈백도씨〉를 기획할 때였다. "우리 여행 간 거 내가 글 쓰고, 선생님이 그림 그려보세요." "만화? 나 마감 잘 못하는 거 알잖아?" 일단, 방어막을 친다. 역시, 공력이 대단하다. "그냥 한 쪽짜리 그림을 그리자고요. 한 쪽짜리 만화, 그게 최호철 스타일이 잖아!" 나도 다시 공격한다. 왠지 느낌이 낚은 것 같다(p. 277).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담는 게 최호철 스타일 아닌가?" 낚았다. 파닥파닥! 그렇게 해서 〈백도씨〉에 '두 만화쟁이의 여행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내가 낚은 죄로 글을 썼고, 최호철 선생의 애간장 다 태우는 마감에 동참했다. 몇 번 빼먹은 적도 있지만, 한 스무 번쯤 마감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우리가 한때 사슴굴이라고 불렀던 최호철 선생의 개성 넘치는 연구실 소파에 앉아 뒹굴면서 이야기를 하다 한번 책으로 묶어보자는 생각이 번득였다. 최호철 선생은 낙서라고 하지만, 그냥 묵히기 아까운 그림이 많은 그의 크로키 북이 생각났다. "〈백도씨〉에 연재한 만화하고, 그와 연관된 크로키를 모아서 책으로 묶어봅 시다." "재미있을까?" "재미없으면 사람들이 만날 선생님 크로키 북 달라고 해서 보겠어요." "너무 성의 없게 그렸잖아." "성의 있게 그리면 마감 못하잖아요." "..." "또 그냥 그 시간에, 여행지에서 그린 그림이 난 좋던데." "그럽시다." 그렇게 시작된 작업이다. 그림을 모으고, 글을 고쳐 썼다. 최대한 여행지의 느낌을 사람들이 느껴주길 원했다. 여행에는 휴식과 수다가 공존한다. 혼자 가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난 함께 수다 떨 수 있는 사람과 가는 여행이 좋다. 서로 말도 안 되는 지식을 공유하고, 느낌을 나누는 여(p. 278)행이 좋다. 이 만화는 그런 여행의 기록이다. 글과 함께 그림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최호철의 그림은 읽히는 그림이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크로키 북에 그린 사람이 아주 구체적인 당신의 모습이기도 하고, 당신이 바라본 그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림을 읽으며 우리의 여행에 동행하면 어떨까? 같이 수다 떨고, 맛있는 것도 먹고, 바보 같은 개그도 하면서 말이다. 남자들이라면 더더욱, 수다가 주는 세계 평화를 함께 누려보자(p.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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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8】 짐승보다 못한 인간의 잔혹함
〈무시무시한 처형대 세계사〉는 야욕과 애증, 배반과 음모로 뒤엉킨 잔혹한 처형의 역사를 들려주는 책이다.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를 통해 그림 동화 신드롬을 일으킨 작가 기류 미사오가 이번에는 무시무시한 역사 속 처형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근대 유럽까지 '인간'이라는 존재에 의해 자행된 처참하고 잔혹한 처형의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하였다. 이 책은 역사 속 처형장을 통해 인간 내면세계에 깃들어 있는 광기의 역사를 살펴본다. 저자는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물음을 던지면서, 다양한 이유 때문에 엄청난 피를 흘려 왔던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있다. 그리고 황제들을 비롯한 수많은 권력자들과 신의 이름을 내건 종교인들이 역사 속에서 저지른 처형의 만행과 광기의 현장을 낱낱이 고발한다-교보문고. 흥미롭게 읽었는데 품절됐다. 이 저자의 책들이 재미있어 열심히 읽고 있는데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도 대출했다. 이처럼 맹수를 이용한 처형 방법은 그리스도교가 보급되기 훨씬 전에 시작되어 5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죄수의 팔다리를 묶어 자유를 구속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죄수의 몸을 묶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간단한 무기도 사용하게 함으로써 관중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안겨 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목숨을 잃기 전에 맹수를 한두 마리쯤 해치우는 강한 죄수도 나타났다. 어쨌든 죄수와 맹수의 싸움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으로 관중들에게 꽤 인기를 끌었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서 죄수의 처형은 일종의 연극으로 연출되었다. 예를 들면, 죄수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로 분장시켜 쇠사슬로 바위에 묶은 다음 대머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게 한다거나, 헤라클레스로 분장한 죄수가 곤봉을 들고 나와 황소와 싸우다가 클라이맥스에서 황소가 죄수를 허공으로 던져 버리는 식이었다. 그리고 여자 죄수가 생겨나면서 연극 마지막 부분에 음탕함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곰이나 당나귀의 습격을 받는다는 설정도 선보였다고 한다(p. 23). 콜로세움에서 펼쳐진 다양한 잔혹극 역대 황제들의 입장에서 볼 때, 검투사 경기는 범죄자나 반역자의 잔혹한 죽음을 선보이는 것으로써 황제의 권력을 뒤흔들려 하는 자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민들에게 확실히 보여 주는 기회이기도 했다. 로마 콜로세움 안에는 지금도 십자가가 서 있다. 일찍이 이곳에서 수많은 잔혹한 방법으로 목숨을 잃은 그리스도교도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타르에 적신 셔츠를 입은 채 콜로세움으로 끌려가 화형에 처해졌다. 또는, 팔다리가 묶인 채 커다란 솥 안에서 끓는 기름에 튀겨지거나 끓는 물에 삶아지기도 했다. 성 로렌스(Sento Rorense)는 석쇠 위에서 불에 구워졌고, 성 포류카르프는 화형대 기둥에 묶인 채 불에 타 죽었다. 성 폰시아노(Sento Pontianus)는 쓰러질 때까지 벌겋게 달구어진 석쇠 위를 걸어야 했고, 성 아르테 미오(Artemius)는 맷돌에 몸이 으깨져 죽었다. 손발이 잘려 나가거나 내 장이 몸 밖으로 드러난 채 매달린 자들도 있었다. 또, 살가죽이 벗겨진 채 유리 조각 위에서 끌려 다닌 자도 있었다. 콜로세움에서 남녀 수십 명이 한꺼번에 기둥에 묶여 처형된 적도 있는데, 그 광경이 마치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숲처럼 보였다고도 한다. 관중들은 그 중에서 누가 가장 먼저 숨이 끊어질지를 놓고 내기를 하기도 했다(p. 24). 당연히, 역대 황제들도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잔혹한 피의 향연을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으로 여겼다. 예를 들어 카이사르(Caesar)는 기원 전 65년 안찰관이었을 때 검투사들을 320쌍이나 동원해 성대한 검투사 경기를 개최했으며, 아우구스투스(Augusus) 황제도 검투사를 1 만 명 정도 동원해 검투사 경기를 여덟 차례, 맹수 3,500마리를 이용해 맹수 사냥을 스물여섯 차례나 개최했다. 클라우디우스 1세(Claudius I) 황제 시대에는 한 경기장에서 검투사 500쌍이 동시에 겨루는 일도 흔했다. 잔혹한 취미가 있었던 클라우디우스 1세는 목이 잘린 검투사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일부러 죽은 자의 투구를 벗기게 했다고 한다. 칼리굴라 황제 시대의 검투사 경기는 잔혹한 취미를 끝없이 만족시키기 위한 절호의 수단이었다. 맹수 사냥에서는 범죄자를 짐승의 먹이로 던져 주었고, 검투사 경기에 출전해야 한다는 선고를 받은 죄수가 필사적으로 자비를 호소하면 그 혀를 잡아 빼라고 명령한 다음에 온몸의 상처가 곪아 악취를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채찍으로 때리게 했다. 그리스도교도 박해로 유명한 폭군 네로도 30일에 걸쳐 잇따라 경기를 열었다. 그는 맹수를 풀어놓아 어린이를 포함한 5,000명을 물어 죽이게 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한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황제는 로마 제국 안에 존재하는 난쟁이들을 모조리 모아 검투사 집단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미녀들로 이루어진 검투사 집단도 만들게 해서 경기장에서 난쟁이와 미녀를 싸우게 한 뒤 그것을 최고의 유흥으로 삼았다고 한다. 코모두스(p. 25)(Comedits) 황제에 이르러서는 아예 정치를 총애하는 신하에게 맡겨 버리고 검투사 경기에만 열중, 자기 자신도 검투사로 자주 경기에 출전했다. 그런 그가 음모를 품은 검투사 한 명에게 침실에서 암살당한 것은 운명의 장난이었을까?(p. 26). 사실은 이랬다. 불길이 번지는 상황에서 수상쩍은 남자 몇 명이 술에 취한 척 비틀거리면서 '어떤 자는 이쪽, 어떤 자는 저쪽' 하는 식으로 햇불을 이용해 불을 붙이는 모습이 목격되었던 것이다. 로마 시대의 전기 작가인 수에토니우스(Gaius Suetonius Tranquillus)에 따르면, 이 수상쩍은 무리가 네로의 노예들이었기 때문에 집정관도 제지할 수 없었다고 한다. 폭력의 피해자 어쨌든, '네로가 방화를 명령했다'라는 소문이 흘러나오면서 민중들 사이에서는 당장에라도 폭동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자 네로는 소문을 불식시키려고 방화범을 만들어 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제물이 된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도들이었다. 당시 그리스도교도들은 이단시되어 마법을 부리고 유아를 살해하고 인육을 먹는다는 식으로 중상모략을 당하고 있었다. 아무리 엄격한 금지 정책을 펴도 계속 증가하는 그리스도교도 때문에 고민하고 있던 터라 네로는 이번 화재를 구실로 그들을 철저하게 탄압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먼저 신앙을 고백한 자들이 심문을 당했고, 이어서 그들의 고백을 토(p. 67)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방화죄 혐의를 받았다. 순교자들 중에는 사도 바울로와 12사도인 베드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놀림감이 되었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당했다. 어떤 이는 짐승의 가죽을 덮어쓴 채 개 떼에게 내던져져 물려 죽었고, 어떤 이는 원형 경기장에 맹수의 먹이로 던져지기도 했다. 또 어떤 이는 온몸에 타르가 발라진 상태에서 기둥에 묶여 날이 어두워진 뒤 등불 대신 불을 밝히게끔 했다. 네로는 처형 장면을 구경하라며 바티카누스 (vaticanus) 왕실 정원을 제공해 전차 경기까지 개최하면서 흥을 돋우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이단자들을 처형한다는 명분도 네로의 인기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특히 귀족들이 불만을 품은 것은 노예에서 해방된 자들이 점차 제국의 요직을 독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었다. 화재 뒤처리 등으로 인해 그 해의 국고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되었고 그 결과 재산 몰수라는 극단적 상황에 의지할 수밖 에 없었다. 때문에 다시 막을 연 반역죄 재판의 판결은 모두 유형이나 사형이었다(p. 68). 14~17세기 유럽에서는 마녀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체포해 가혹한 고문을 한 뒤 화형에 처했다. 이러한 마녀 재판의 폭풍은 약 300년 동안 이어지면서 유럽 전역에서 맹위를 떨쳤다. 그 기간 동안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수십만에 이른다는 설도 있고, 수백만이라는 설도 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마녀로 지목되어 화형을 당한 희생자에 대한 기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프랑스 로렌(Lorraine)에서 1576~1606년 동안 2000~3000명. 보르도에서 1577년에만 400명. • 독일 트리에르(Trier)에서 1587~1593년 동안 368명. 뷔르츠부르(p. 121)크에서 1623~1631년 사이에 900명. 밤베르크에서 1623~1633 년 사이에 600명. 이것만 보아도 마녀 재판의 희생자가 엄청난 숫자라는 사실을 짐작 할 수 있다. 유럽 전체에서는 15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약 30만 명(900만 명이라는 설도 있다)이 화형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p. 122). 마녀를 불태우는 검은 연기가 유럽 하늘을 끊임없이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야기다. 당시, 불안감을 해소하는 돌파구로 선택된 것이 '마녀'였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불행과 해악을 마녀 탓으로 돌려 잔혹하게 처형했다. 마녀 사냥이 무서운 것은 증거 없이 소문과 풍문만으로도 마녀로 몰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마녀 재판이 성행했던 원인으로는 첫째, 당시의 사회 불안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유럽인들은 예전에는 겪지 못했던 혹독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유럽 인구의 30퍼센트 정도를 앗아간 페스트의 유행, 극단적인 인플레이션, 종교 개혁 운동 등, 격동의 상황에서 민중들의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었다. 답답하기만 한 그런 현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창구로 선택된 것이 바로 '마녀'였다. 마녀는 마력을 써서 날씨를 나쁘게 만들고, 밭농사의 수학물을 줄이고, 태아를 유산시키고, 남자를 성불구로 만들고, 갓난아기를 잡아먹고, 악마에게 살아 있는 제물을 바친다..... 이런 식으로 세상의 모든 불행과 해악을 마녀 탓으로 돌렸다. 유럽에 휘몰아친 종교 개혁 운동에 대해 로마 교황은 수도회를 결성해 이단 탄압에 나섰다. 마녀 재판의 전신은 13세기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가 탄생시켰다. 이른바 '이단 심문' 제도다. 이단 심문관은 교황의 보호 아래 사교나 관헌을 능가하는 권한을 가지고 오로지 그리스도교 국가 전역에서 이단을 박멸하는 사명을 맡았다(p. 123). 그리고 잔혹하기로 유명했던 요한 22세가 내린 1318년 2월 27일 교서에서 '마녀'의 비참한 운명이 결정되었다. 프랑스 고위 성직자 앞으로 보낸 이 교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마녀 재판을 시작하고 지속하여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완전한 권한을 부여한다.' 이 마녀 재판 해금 명령에 박차를 가하듯, 교황 요한 22세는 1323년, 1326년, 1327년, 1330년, 1331년에 계속 마녀 재판 강화 명령을 발표 했다. 이 강화 명령에 따라 이단 심문관의 마녀 사냥이 급격하게 기세를 떨치기 시작했다(p. 124). 마녀 재판 그 자체도, 심문, 자백의 공술(고문을 통한 자백도 포함해서), 단죄 선고, 그리고 처형(대부분이 화형)이라는 식으로 공식화되어 있었다. 중요한 것은 피고를 한시라도 빨리 죽여 그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었다. 마녀에게서 몰수한 재산은 모두 교회 소유가 되었고, 마녀 재판에 들어가는 비용 전부를 여기에서 조달했다. 간수의 식대, 처형 담당자의 술값, 교살을 할 때 들어가는 밧줄 대금, 화형을 할 때 쓰는 장작과 기름값 등, 모든 비용을 여기에서 인출해 썼던 것이다(p. 165). 기요틴에 광란하는 사람들 로베스피에르를 처형하는 것으로 공포 정치가 막을 내리자, 국내의 무거운 공기는 사라지고 단번에 향락적인 분위기가 퍼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장소에 모여 오직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피비린내 나는 과거를 잊고 희망 없는 미래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 거리 도처에서 무도회가 열렸는데, 특히 인기를 모았던 것은 회원이 한정되어 있는 '희생자들의 무도회'였다. 가까운 친척이 기요틴에 처형을 당한 사람들만 이 모임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 무도회에 참가하려고 일부러 큰돈을 주고 근친자가 기요틴에 처형되었다는 증명서를 위조하는 사람들도 속출했다고 한다. 모임에서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고 훤히 드러난 목 주위에 칼자국을 모방한 빨간 리본을 묶었다. 남자들도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마찬가지로 빨간 리본을 목에 둘렀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들 입장에서 보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현실을 받아들여 슬픔을 이겨내고 살아가려면 이런 식으로 불행을 패러디하는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p. 298). 마지막 공개 처형 프랑스에서 기요틴을 이용한 처형은 오랜 세월 동안 일반에게 공개 되었다. 그때마다 형장에는 프랑스 각지의 수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입장에서 볼 때 처형은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다. 1889년의 파리 만국 박람회 때에는 기요틴에 처형을 당한 사람이, 당시에 신축된 에펠탑보다 더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피와 잔혹함에 대한 인간의 열광은 그 뿌리가 무척 강한 듯싶다.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기요틴 공개 처형은 1939년 와이트만이라는 살 인범의 처형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축제 소동이 벌어지자 정부는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다고 한다. 처형 전날 밤, 형장이 될 베르사유 감옥 앞 광장에는 엄청난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기요틴 처형을 한 번이라도 직접 구경하려고 나무와 가로등에 매달린 사람들, 건물 창문에 바짝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사람... 사람들은 마치 축제라도 즐기는 듯한 기분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면서 소란스럽게 전야제를 보냈다. 가끔씩 말 잘하는 사람이 농담을 던지면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 소리가 감방 안에 있는 사형수의 귀에도 들렸다니 정말 잔혹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자 정부도 더 이상은 간과할 수 없어 그 뒤로는 기요틴 공개 처형을 금지했다. 이후의 처형은 각각의 감옥이 위치한 안마당에서 이루어(p. 300)졌으며, 처형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관료 아홉 명뿐이었다. 잔혹함의 상징인 기요틴 처형대는 감옥의 담장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두 번 다시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다(p.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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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3】 전 법관의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 나의 일상을 풍요롭게 채우는 건 어떤 의미인가, 다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사람과 사회는 바뀔 수 있는가. 자작나무에서 지리산으로, 도스토옙스키에서 몽테스키외로, 일상에서 재판까지. 호의는 사람을,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받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주라던 김장하 선생과의 추억, 법을 몰라 손해 보는 이들을 헤아리는 마음, ‘자살’을 시도했던 재소자가 ‘살자’는 다짐을 하게 만든 선물,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속절없이 흘리는 눈물, 그리고 건강한 법원과 사회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교보문고 계엄을 도모했던 윤석열을 단죄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쓴 책으로 가볍게 읽을만하다. 착한 사람을 위한 법 2001. 4. 22. 법 없이 살 사람 착한 사람을 일컬어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들 한다. 법의 강제 없이도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사람이란 뜻이리라. 과연 착한 사람에게 법은 필요 없는 것일까?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 나는 법이 어떠하다고 정의할 만큼 경력도 풍부하지도 않고 타고난 재주도 없지만, 1983년 법학을 전공한 이래 지금까지 18년을 법과 함께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그런 점에서 나는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착한 사람일수록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p. 19). 종종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가곤 하는데, 거기서 늘 하는 말이 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나에게 힘써달라고 전화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 나에게 법을 물어보라." 도대체, 전 재산과 다름없는 300만 원을 전세금으로 걸면서 그 집이 경매 중인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계약하는 사람을 누가 구제해줄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은 대개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야, 집주인을 사기죄로 고소했으니 수사 기관에 힘 좀 써서 집주인을 즉시 구속시켜 달라고 법조인에게 전화를 한다. 법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보장적 기능이다.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고 거기에 저촉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측면이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이 빛을 발한다. 다른 하나는 보호적 기능이다. 그러나 법의 이러한 보호적 기능도 경매 절차에서 배당 요구를 하는 임차인이나 노동자에게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유의하여야 한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은 초라하기만 하다. 착한 사람부터 법을 알자 판사로서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착한 사람은 법을 모르(p. 20)고, 법을 아는 사람은 착하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 사건일수록 해결이 어렵고, 착한 사람을 보호하고자 궁리를 해보나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착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고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법을 아는 사람에게 착하기를 요구할 것 인가? 불가능은 아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남는 방법은 착한 사람이 법을 아는 것이다. 그 길만이 법이 나쁜 사람을 지켜주는 도구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지름길이다(p. 21). 형사 재판 잘 받는 방법들 중 2006. 12. 19. 진술 거부권 행사 자기에게 불이익한 사실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 및 형사 소송법에서 보장된 피고인 및 피의자의 권리입니다. 따라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불이익한 사항에 대하여 질문을 받을 때 진술을 거부하면 되겠습니다. 괘씸죄가 걱정된다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되겠습니다. 이것이 모순되거나 불합리한 답변을 하는 것보다 유리합니다. 답변 방식 법정에서 판사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할 때는 결론을(p. 45) 먼저 말하고 이유를 나중에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판사는 질문을 통하여 사건의 윤곽을 파악 하려고 하므로, 판사에게 결론을 먼저 말함으로써 판사가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인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판사는 여러 각도에서 사건을 살피기 위하여 다양한 질문을 하는 것이므로, 설령 질문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 일지라도, 판사가 상대방의 편을 든다고 섣불리 생각하지 말고 정중하게 답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판사는 피고인의 진심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p. 46). 민사 재판 잘 받는 법 2007. 5. 17. 오늘 재판을 하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민사 재판 잘 받는 방법을 적어보았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소송을 하려면 어려운 일이 많으므로 형편이 허락한다면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였다고 해서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맡길 것이 아니라 수시로 소송 진행 정도를 확인하고 대응 방안을 함께 의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p. 61). 준비 서면을 간단명료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할 경우 법무사의 도움을 받거나 본인이 직접 준비 서면을 작성해야 할 터인데, 이때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준비 서면이라는 것은 당사자의 주장에 불과하므로 아무리 유리한 내용을 적어놓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인정받기가 어려운 반면, 불리한 내용은 별도의 증거가 없더라도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따라서 준비 서면은 간단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증거가 뒷받침되는 내용일 경우 명료하게 주장을 펼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준비 서면에 상대방을 비난하는 내용을 적을 경우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해롭다는 것입니다. 재판이라는 것이 당사자의 도덕성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고, 뚜렷한 증거 없이 상대 방을 비난할 때 판사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준비 서면에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하여 적어내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재판부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노고를 덜어주는 것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p. 62). 소송의 승패는 증거에 달려 있습니다 민사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흥분할 필요 없이 차분하게 증거를 수집하여 제출하는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증거로는 애초 사건이 있었을 때 작성된 서류, 특히 상대방이 서명 또는 날인한 서류가 가장 효력이 강하고, 그 다음으로 제3자가 작성한 서류가 효력이 강합니다. 증인의 증언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법정에서는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도 법정에서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실정이므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는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에 그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정 또는 화해를 권유받았을 때는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재판을 하다 보면 어느 당사자의 주장이, 설득력은 있으나 증거로 뒷받침 되지 않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법적 관점으로만 해결할 경우 어느 당사자에게 더 가혹하기도(p. 63)합니다. 이길 승산이 있어 보이나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법원은 당사자에게 조정 또는 화해를 권고하는 데,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조정 또는 화해 절차에서는 집행에 관한 내용을 반영할 수도 있으므로 이러한 점에서도 조정 또는 화해의 효용은 높습니다. 증인 신문을 할 때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정에 출석한 증인을 상대로 질문을 할 경우 "거짓말쟁이다" "양심도 없느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차분하게 증언의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상대방이 질문하는 내용을 (미리 받을 수 있습니다) 검토하여 허점을 정리했다가 법정에서 질문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람 턱없이 부족한 내용일 것입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소송을 잘해서 이길 사람이 이기는 재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p. 64). 문제가 터지고 나서 소송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은 문제가 터지기 전 검토를 충분히 하는 것입니다. 몇 천 만 원이 오고가는 계약을 체결할 때 변호사나 법을 잘 아는 사람에게 비용을 들여서라도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길게 볼 때 비용이 더 적게 듭니다(p. 65). 책을 읽는 이유 세 가지 2010. 2. 16. 책을 많이 읽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고전을 읽은 적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 보니 문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투리는 말을 안 하는 것으로 감출 수 있었지만 무지는 감출 방법이 없었다. '장 발장'이 《레미제라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읽었다(p. 108). 무경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판사가 되고 보니 사건을 이해하기엔 내 경험이 너무 좁고 얕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도대체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거액의 거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잡히면 처벌받을 게 뻔한 일을 왜 되풀이하는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경험을 늘리려고 해보니 이 또한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장 법관 윤리가 문제였다. 그래서 생각해본 것이 두 가지다. 지금은 언론사 사장이 된 어떤 분이 사법연수생이었던 나에게, 법조인이 되면 초등학교 동창생과 꾸준히 만나라고 당부했던 기억이 떠올라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1년에 몇 회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때로는 부부 동반으로) 만났으니 어느 정도는 실천한 셈이다. 두 번째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장르를 구분하지 말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어보자 하였던 결심이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다. 무소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었다. 남녀 공학 중학교 시절 소풍(p. 109)을 가서 선생님의 권유에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를 까먹어 끝을 맺지 못할 정도로. 그때 불렀던 노래가 남진의 〈님과 함께〉였다. 고등학교 때는 교복이 중고라서 반장을 하지 못했다. 대학교 가서는 사투리 때문에 남 앞에 나서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무슨 결정을 하려면 무척 어려웠다. 결정을 하고 나면 곧 후회를 하게 되고. 어느 날, 내성적인 이유가 소신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군대에서 정훈장교를 하게 되었고 정훈장교 하는 일이 장병 교육이다 보니 남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해소된 뒤라서 그런 결론을 더욱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앞서간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서로 맞추어보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 단단해져 소신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포함해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사족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이 누구와 만나고 무슨 책을 읽는지 말해달라."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p. 110). 혼돈의 시기에 그나마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친구와 책 덕분이라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 감회가 남다르다. 모든 분들에게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p. 111). 책을 고르는 기준 2010.6.26. 책을 어떻게 고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저자를 보고 고른다 어떤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면 그 저자가 쓴 책은 눈에 띄는 대로 사서 읽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면 고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 단 한 번》을 읽고 《축복》 《살아온 기적 살아 갈 기적》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는 식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저자는 다음과 같다. 신영복 교수, 정 민 교수, 유시민 전 장관, 소설가 김 훈, 오지 탐험가 한비야,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열하일기》 전문가 고미숙 박사(p. 124). 주제어를 보고 고른다 제목이나 문장을 검색하여 관심 있는 주제어가 들어간 책을 고른다. 요즘 즐겨 찾는 주제어는 다음과 같다. 정의, 소통, 성찰, 역사, 철학, 인생, 여행, 행복. 이런 기준으로 고른 책은 다음과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 《서양철학사》 《인도 여행》 《행복의 정복》 《무지개 원리》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등. 책 선택에 실패한 적은? 이런 기준으로 책을 골라 읽으면서 후회할 때가 제법 있다. 그러나 산 책은 다 읽는다. 재미가 없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책에 대하여는 독후감을 쓰지 않음으로써 복수를 한다. 블로그에 올린 책은 이중으로 검증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 지금껏 읽은 책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천 권 정도 될 것 같다. 책을 고르는 장소는?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여 고르는 경우가 많고 가끔 서점에 가서 고른다. 베스트셀러 항목과 새로 나온 책 항목을 많이 참조한다(p. 125). 블로그에 독후감을 쓰는 이유는? 독후감을 쓰다 보면 책 내용을 정리하는 효과가 있고, 글쓰기 훈련이 되며, 블로그에 저장해놓으면 다른 글을 쓸 때 인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은 있어도 나쁜 책은 없다. 어떤 책에서도 스승 또는 반면교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께 독서를 권한다. 책이 여러분을 끌어올려줄 것이다(p. 126). 왕후박나무 2011.4.1 남해군법원 다녀오는 길에 경남 남해군 창선면 왕후박 나무를 만났습니다. 500년 이상 되었다고 합니다. 둘레에는 동백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합니다. 주로 방풍용으로 많이 심는다고 합니다. 남해군 창선면에 있는 왕후박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9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왕후박나무는 높이 솟구치지 않고 옆으로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도 500년을 버틴 게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자신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p. 140). 조영남의 노래가 있죠. 〈겸손은 힘들어〉. 그렇죠. 겸손은 힘듭니다. 공자 이래 2천 년 동안 성현들은 겸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겸손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습니다(p. 141). 조정에 임하는 자세 2013.4.28. 조정이란 조정은 법률 분쟁이 생겼을 때 판사의 판결이 아니라 당사자 간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를 말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법원에 접수된 사건 중 판결까지 가는 사건은 10퍼센트가 되지 않고 대개는 조정을 포함한 여러 가지 간이한 방법을 통하여 사건을 처리한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조정은 이길 사람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길 사람이라는 건 미리 정해진 것은 아니고 재판 절차를 통하여 증거를 대고 법리를 세워야 하고 그것으로 판사를 설득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대법원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다(p. 188). 그리고 1천만 원을 받기 위하여 소송 비용으로 500만 원을 들여야 한다면, 700만 원을 받고 소송 비용을 100만 원 선에서 지출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사건에 관하여 가장 절실한 이해관계자는 판사도 아니 고, 변호사도 아니며, 결국 당사자다.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람도 당사자일 수밖에 없으므로, 당사자의 주도권이 가장 잘 보장되는 조정 절차가 불합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정에 임하는 자세 양보해야 한다. 조정은 당사자 간의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고 대체로 당사자는 서로 이해관계가 상반되므로 양보를 해야 조정이 성공한다. 본인이 참석해야 한다.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한 경우라도 조정 절차에는 본인이 참석하는 것이 좋다. 판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상대방의 입장을 직접 들을 수 있으며,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상생하는 방법도 있다. 본인에게 크게 불리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크게 배려하는 방법도 있다. 상대방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쟁점에 관하여 양보하더라도 본인에(p. 189)게 크게 불리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므로,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집행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소송을 하는 종국적 목적은 대체로 승소 판결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돈을 받아내기 위함이다.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더라도 집행 절차에서 돈을 받아내는 비율은 생각보다 낮다. 조정 절차에서는 돈을 받아내는 방법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으므로 유리하다. 원고는 5천만 원을 고수하고 피고는 3천만 원을 고집할 경우 4천만 원 선에서 타협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때로는 5천만 원으로 정하되 3개월 내에 3천만 원을 가져오면 나머지 2천만 원을 포기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싸우는 것은 금물. 간혹 조정실에서 상대방과 말이나 몸으로 싸우는 사람이 있다. 사연이 있겠지만 판사 입장에서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자신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자리를 어렵게 마련했는데 불만을 터트리는 자리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다. 그 사건이 해결 되지 않을 경우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은 판사도 아니요 변호사도 아니요 바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판사의 설명에 귀 기울인다. 법원이 조정 절차를 주도하(p. 190)는 경우 판사로부터 사건 전반에 관한 설명을 듣게 된다. 판사는 내가 불리한 점, 내가 유리한 점을 나누어 설명할 것이다. 잘 들으면 판사가 생각하는 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2심이라면 사건 처리 방향이 대부분 결정되었다고 보면 된다. 민사 사건의 경우 대법원에 상고를 해서 2심 판결이 깨지는 비율이 10퍼센트가 안 된다는 점, 사실 인정은 원칙적으로 2심에서 하게 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2심 재판부의 결론은 존중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내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좋다. 마무리(롯데자이언츠의 마무리는?) 집안에 송사가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적당한 선에서 털고 나오는 것도 마음의 평화를 찾는 좋은 방법이다. '조금 손해 본 것은 다른 일을 해서 보충하면 된다.' 이런 생각으로 조정에 임할 수는 없을까요?(p. 191). 재판 속의 문학 내가 현실에서 맡은 재판은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다(p. 304).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문학이 재판에서 많은 것을 차용하지만 재판은 문학에서 차용하지 않고 순수함을 고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판사는 많은 경험을 해야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제한적인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문학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문학은 보편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고, 재판은 구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며, 양자는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판사들이 다 가난했던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훈의 《흑산》을 읽고 나면 가난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배고픔을 면하자면 오직 먹어야 하는데 많은 끼니 중에서도 지금 당장 먹는 밥만이 배를 채운다는 내용이 그렇다. "아침에 먹은 밥이 저녁의 허기를 달래줄 수 없으며, 오늘 먹는 밥이 내일의 요기가 될 수 없음은 사농공상과 금수축생이 다 마찬가지다." 내가 10년 전 처리한 사건 중 20대 청년이 공무집행 방해죄로 구속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생모라고 밝힌 사람이 탄원서를 보냈다. 오래전에 헤어진 아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자신이 책임지고 선도를 할 테니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p. 305). 재판을 하며 방청객을 둘러보니 유난히 눈에 띄는 분이 있었다. 피고인석 옆에 앉아 대화를 하게 하였더니 피고인을 껴안으면서 "이제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라고 말했다. 피고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생모와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였다. 생모를 만났으니 이제 마음을 잡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집행 유예 판결을 선고했고, 피고인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그 책 한 쪽을 읽어주었다.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다. 내가 10년 전에 처리한 사건 중에 피고인이 자살을 하려고 여관에 불을 질러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불은 크게 번지지는 않았고 다친 사람도 없었다. 선고하는 당일 피고인에게 자살을 열 번 외치게 하였다. "자살자살자살자살.... 이렇게 열 번 하면 본인은 '자살' 이라고 말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살자'로 들립니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실패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살에 실패해서 살았지 않았습니까?" 그러고서 피고인에게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49가지》란 책을 선물했다. 나는 이런 재판을 하게 된 배경 중 8할이 문학 덕분이라고 생각한다(p. 306).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어쩌면 좋은 문학과 좋은 재판은 그 모습이 모두 비슷할지 모른다.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질문할 때, 주제와 이야기가 딱 들어맞을 때 독자들은 감동한다. 판사들이여!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가 영국의 대법관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작가들이여! 긴장하시라. 대한민국의 판사도 또 다른 '유토피아'를 쓸지 누가 알겠는가?(p.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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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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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3】 전 법관의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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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2】 죽음을 늘 준비하며 살자
- KBS 《아침마당》, 《강연100℃》 등에 출연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공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의 에세이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 극심한 암성 통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임종 선언을 했던 저자 김여환.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꼼꼼히 기록한 이 책은, 삶이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을 위해 더없이 소중한 오늘을 ‘있는 힘껏’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교보문고. 이 책은 호스피스 의사가 수많은 죽음을 보고 삶과 죽음에 대해 느낀 것을 쓴 것이다. 많이 유익했는데 현재 절판됐다. 사람의 일생 중 가장 힘든 시기는 보증을 잘못서서 거액의 부도를 냈을 때나 남편이 바람을 펴서 이혼할까 말까 망설일 때가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인생의 반전 같은 일말의 빛조차 기대할 수 없는 시간들, 즉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의 '짧은 삶'이다. 그 시기를 잘 보내야만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온전한 나의 인생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야만 남겨진 사람들의 인생도 편안해질 수 있다(p. 8). 그렇다. 나는 이 세상에 남들보다 조금 먼저 작별 인사를 건넨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토록 자명한 삶의 진리를 힘겹게 깨달았다. 만약 우리에게 내일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면, 오늘 우리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내일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면, 한 번 더 사랑한다 말하고, 한 번 더 안아주어야 하며, 오늘 깃든 행복을 있는 힘을 다해 누려야 한다. 이렇게 수많은 '오늘의 삶'이 모일 때 삶의 아름다운 결과물은 비로소 완성 된다. 그러므로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라는 말에 숨어 있는 참된 의미는 오지도 않은 내일에 대한 불안과 분노, 두려움과 슬픔에 오늘의 행복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더 사랑하고, 오늘 더 행복해야만 한다(p. 10). "2012년 8월 21일 12시 42분, 신복연 할머니는 사망하셨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더 이상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통증 없이 편안히 좋은 곳으로 떠나셨다는 위로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짤막한 사망 선언 뒤에는 언제나 그 마지막 순간을 지키고 있던 가족의 대성통곡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오늘은 조용했다(p. 22). 할머니의 둘째 딸이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우리 엄마가 평소에 유언을 했어요. 내가 떠나면, 울지 말라고. 자식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뒤 돌아보느라 떠나는 것이 힘드니, 울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아...하여간 대단하세요. 입원 내내 웃지 않으신 날이 없었는데, 그런 아름다운 유언까지 하신 줄은 몰랐어요. 제가 들어본 유언 중에 가장 훌륭한 유언인 것 같아요." "과장님, 그렇죠! 우리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이제 꽃 한 송이가 지는구나, 했다니까요." 곱게 아껴두었던 꽃분홍색 한복으로 갈아입고, 흰 양말까지 정갈하게 신은 신복연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살아 있는 그 누구보다도 따뜻해 보였다(p. 23). 짧은 글 한 편을 쓸 때에도 마지막에 무슨 말을 쓸까를 생각하면서 쓰면 글의 흐름이 매끄러워지듯이, 인생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고 살다 보면 들쭉날쭉한 인생이 일관성 있게 변한다. 타인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자기 자신과 먼저 소통해야 한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과 소통하면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p. 25). 자신과 만나려면 가장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임종실은 부끄럽지만 가장 볼품없고 꾸밈없는 자신의 민낯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은 바로 '나의 마지막'이라고(p. 26). "호호호, 난 아직 여기 입원할 단계는 아닌 걸요." "아직은 마약성 진통제를 쓸 만큼 아프지는 않아요." "며칠 전에도 산에 다녀올 만큼 괜찮았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멀쩡하게 걸어 들어오는 말기 암 환자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해 보이는 말기 암 환자들이 한두 달 뒤에는 누런 황달이 오거나 폐렴이 와서 황망히 떠나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남겨진 시간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그 짧은 시간에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칠순 잔치를 하든지, 마지막 콘서트를 하든지, 이혼한 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들을 찾아주는 일들 말이다. 그래도 나도 한 번쯤은 환자를 살려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죽는다고 포기했던 말기 암 환자가 완치되는 일이 우리 병동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환자들은 입원해서 퇴원(p. 45) 할 때까지 평균 27일을 살았다. 호스피스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역시 기적이란 부질없는 비현실적인 희망이라는 것을 확신 하게 됐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슴 저리게 갈구하기도 하고 신에게 떼를 쓰며 의지하기도 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겠지만,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 훤히 보이는 나로서는 그렇게만 하다가 환자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런 애절한 생각을 할 시간이 있으면 조금밖에 남지 않은 삶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오랜 경험을 통해 내린 슬픈 결론이었다. 사람이 좀 민민하고 삭막하게는 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옳았다(p. 46).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다. 푸시시한 구차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낼 때쯤이면 원치 않았던 현재 시간이 살다 남은 찌꺼기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약한 정신 때문이 아니라 몸이 약해지기 때문에 마음까지 통째로 흔들린다. 심지어 어떤 환자는 "잠자듯이 가는 그런 약 있잖아."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말기 암 환자가 안락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p. 56). 비참한 마지막은 말기 암에 걸린 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다 남은 삶이라고 쓰러져버리는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떠날 사람은 남아 있을 이를 위해 조금 남은 삶을 성실히 살아가고, 남아 있을 사람은 떠날 이가 세상에서 사랑받다가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노력하면 서로 덜 힘들다. 처음과 마지막까지, 모두가 촘촘히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p. 58). 세상은 가벼움과 무거움이 서로 경계를 불분명하게 가른 채 섞여 있다.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가볍고,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무겁다. 그렇게 어우러져서 세상은 좀 더 좋게 변한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오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선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고함을 지르고 입원실 바닥에 소변을 보는 한 할아버지 때문에 사흘 밤낮 동안 시달린 환자들이 하소연을 했다. 할아버지를 간병하던 할머니는 "환자가 병원에 자러 왔나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진정제도 못쓰게 하고 1인실로 가지도 않았다. 그런가 하면 뇌종양에 걸린 12살짜리 소녀는 과자를 들고 병실을 누비며 "아저씨, 빨리 나으세요."라고 하면서 환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한 신문 기자가 말기 폐암 환자에게 물었다(p. 67). "인생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해주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후덕하게 생긴 환자는 가지고 있던 옷가지며 살림살이를 싹 정리할 정도로 죽음을 잘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쓸쓸하게 대답했다. "저는....그런 것은 선배가 되고 싶진 않은데요." 그렇다. 죽음이란 일평생을 별 탈 없이 살다가 90살이 되어 마음 독하게 먹고 미리 준비해도 어려운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닥뜨리는 죽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많이 돌본 의사로서 한 가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이 먼저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남은 사람들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나 때문에 끼니를 거를까 봐, 나를 잃은 슬픔으로 행여 병이라도 생길까 봐, 경제적으로 힘들까 봐 등등.... 그들은 사소한 걱정을 몰래 했다. 남은 사람들은 그 마음을 알까? 임종실은 섞일 수 없는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고, 살아남은 이들이 비통함에 눈물을 흘리는 작은 방이다. 그러나 그곳을 거(p. 68)쳐 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존재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사랑하는 이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라고(p. 69). 예전에 나는 보기조차 딱할 만큼 남을 부러워했다. 뚱뚱할 때는 날씬한 사람을, 늦게 시작한 의사 생활이 비참하다고 느껴질 때는 처음부터 순탄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동료를 얄밉도록 부러워했다. 누군가는 잘된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인생의 꿈도 생기고 삶을 개척할 의지도 생긴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 부러움이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계기는 되었을지라도 그 과정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이제 내가 진실로 부러워하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했거나, 예쁘고 날씬하고 건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어떤 삶이 자신에게 다(p. 92)가오더라도 묵묵히 잘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그 자체로 당당하게 살아내는 사람이다. 우리는 저마다 지닌 인생의 향기가 따로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말자. 인생의 마지막에는 행복했던 자신의 과거조차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 시간에는 그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나만의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이 온 것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아쉬운데, 여러 가지 잣대로 부러워하면 병들어 있는 자신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부러워하지 말자, 그대여! 인생이 아파도 마지막까지 이 세상을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내야 한다(p. 93). 불행히도 호스피스에는 죽음을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는 묘약 따위는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들어주면 조금은 가벼워졌고, 끝까지 끈을 놓지 않고 가는(p. 108)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평범한 사실에 평안을 찾아갔다. 대식 씨의 어머니처럼 때로는 버리는 것보다 안고 가는 것이 더 홀가분한 인생도 있다. 그러니까 결국 안고 가는 사람, 버리고 가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p. 109). 잘 죽어가기 위해 우리가 정말 배웠어야 할 것은 죽음의 5단계를 외우거나 혼자서 관 속에 들어가 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p. 112) 아니다. "저는요, 이미 죽음을 다 받아들였어요."라고 말하면서 의젓하게 지내다가 진짜 마지막이 다가오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기보다는 결과물이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신산스럽고, 일상은 상처와 갈등의 연속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얼마만큼 잘 녹여내느냐에 따라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을 마지막 날은 달라진다(p. 113). 어쩌면 인생은 쓰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저절로 쓰이는 소설책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내야 한다. 죽을 만큼 괴로워도 직접 해봐야 삶에 대한 사랑이 깊어진다. 사람들은 인생이 힘들어지면 앞으로 남은 여정이 얼마나 끔찍해질지 더 두려워한다. 남은 인생이 지금보다 더 불편해지더라도 초조해하거나 원통해하지 말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대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살이라는 '고의로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를 생각할 만큼 견딜 수 없이 힘들다면 적극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아무 상관도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조차 알려야 한다. 마음의 피눈물은 말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 애써 고통을 삼키지 말자. 누구라도 도와줄 사(p. 120)람을 찾아다녀라. 자존심 따위 내세울 때가 아니다(p. 121). 치통이 아무리 심해도 한꺼번에 진통제를 다섯 알씩 먹지는 않는다. 통증을 잡으려다 사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타이레놀도 하루에 여섯 알을 초과하면 진통의 효과는 증가하지 않고 간에 부담만 준다. 이렇게 일반 진통제는 일반적으로 정해져 있는 용량을 초과하면 통증에 대한 효과보다는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해지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용량의 한계가 있다. 이것을 약의 천장 효과(ceiling effect)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천장 효과가 없는 약이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많이 쓰이는 마약성 진통제이다. 그것은 일반 진통제와 달리 많이 쓰면 쓸수록 통증이 잘 조절된다. 더군다나 날록손 (naloxone)이라는 해독제까지 있으니 '모르핀'이야말로 신이 세상을 떠날 때만은 아프지 말라고 인간에게 특별히 내려준 '마지막 선물'이다. 사망 원인 1위인 암은 사람이 떠날 무렵에 부쩍 커진다. 암(p. 129)덩어리가 커지면 정상 조직을 파괴하는 묵직한 암성 통증도 당연히 심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일찍부터 진통제를 쓰기 시작하면 통증이 가장 극심한 마지막 순간에는 정작 쓸 수 있는 약이 없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모르핀을 최후의 약으로 넘겨 두었으면 하고 부탁까지 한다. 그러나 통증에 관한 한 모르핀은 쓰면 쓸수록 효과가 있는 약이다. 이러한 마약성 진통제의 비밀을 알려주면 누구나 "진짜 그런 약이 있나요?" 하고 물으며 신기해한다. 환자나 보호자는 어차피 살릴 수 없다면 고통 없이 떠날 수 있다는 확신만으로 가느다란 희망을 갖는다. 모르핀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보다 더 끔찍한 암성 통증에서 해방시켜주는 이로운 약제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좀 더 정확하게 모르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아직도 말기 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모르핀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거부하면서 의미 없는 통증에 시달리다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의 마지막 의사로서 당부한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때가 오면 신이 내린 선물, 모르핀을 거절(p. 130)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통증이 없으면 죽음의 맨 얼굴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고, 고통 없는 죽음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을 것이다(p. 131). 내일 도사리고 있는 재앙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살아감 속에 죽어감의 흔적을 묻히는 것이다. 내일이라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오늘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심코 거칠게 한 말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지도 않을 비겁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너무 많이는 양보하지 말자(p. 163).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가족 간의 갈등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 갈등은 확대된다. 문제의 중심은 늘 '사랑과 돈'이다. 거기에 종교적인 문제가 곁들여지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p. 174). 살다 보면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만 해도 짧은 인생인데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 큰 손해를 볼 것만 같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매 순간 저마다 해야 할 일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훤히 보이고 그때 용기 내어 그 일을 하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것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기도, 또 속절없이 짧기도 하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실수 없이 하려면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하면서 견뎌보는 것쯤은 각오해야 한다(p. 187). 웰다잉(well dying)은 삶의 완성이 아니라 삶의 결과물이다. 누구나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은 더군다나 아니다. 저마다 주어진 힘든 삶을 잘 살아내야만 누릴 수 있는 삶의 마지막 축 복인 것이다(p. 203). 죽음을 깊숙하게 연구하고 싶어서라든지 내 성격이 원래 우울해서 호스피스 의사가 된 건 아니다. 나는 호스피스 일을 해오는 동안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도 죽음에 이르기 직 전까지는 살아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누구도 아프지 않게 하루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거창한 죽음의 여의사가 아니라 그저 생명의 에너지가 다 할 때까지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의사로서 당연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름이 주는 거부감 때문에 국내 암 환자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국내 사용량은 모르핀으로 환산했을 때 환자 1인당 연간 45mg에 불과하다. 미국 693.44mg, 영국 334.52mg은 물론 세계 평균 58.00mg보다도 낮다. 통증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안 쓰는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아프면서 죽어간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죽음이 삶의 종착역인지 따위는 일단 환자의 통증을 덜어준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암 환자의 통증은 당사자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출산의 고통이 10점 만점에 7~8점이라면 암 환자의 통증은 10점 이상도 간다.암성 통증은 암이 진행되는 생명의 마지막에는 더 심해지고, 그(p. 215)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환자와 가족을 더더욱 애타게 한다(p. 216). 인생을 산다는 것은 세상에 놓인 하나의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하지만 그저 다리를 건너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세상의 아름다움은커녕 다리를 뒤흔들 고통과 혼돈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뜨거운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자기 삶의 아웃사이더가 되어보기를. 삶이 끝난 뒤에 죽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죽음이 있음을 알아차리기를,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게 되기를 바란다(p.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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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2】 죽음을 늘 준비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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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1】 삶의 찌질함과 누추함에 대하여
- 산문집 《연중무휴의 사랑》과 《헤아림의 조각들》(2023년 문학나눔 선정도서)로 2030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임지은이 신작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전작에서 냉철하고, 때론 따뜻한 연민과 너른 헤아림을 보여줬다면 이번 산문집에서는 작가 자신의 깊은 내면에 숨겨진 질투와 열등감, 욕망과 좌절, 위선 등의 감정을 진솔하게 마주해본다. 누구나 한번쯤 특별한 이유 없이 무언가를 미워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싫음’이라는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숨기고만 싶은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들여다볼수록 작가는 거기에 어떤 선망이나 외로움,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편으론 자기가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을 돋보이게 하려는, 서툰 사랑의 마음이기도 했다. 작가는 슬픔과 기쁨과 외로움이 버무려진 이 “혼탕과 같은 삶”에 깊게 몸 담그며, 미움과 사랑 사이의 낙차를 발견한다. 엄마를 통해 흉보는 마음과 사랑이 때론 붙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온 세상과 자기 자신을 고루고루 아낌없이 사랑한다는 사람들 옆에서 홀로 투덜거리며 자신의 ‘싫음’을 통해 타인의 ‘싫음’ 또한 이해하게 되는 세계를 경험한다. 좋은 것은 당연하게 제 것이라 누리는 동거인에게 꼬인 마음이 드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 수긍하기까지의 내면의 갈등과 고통을 인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지만,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을 톺다 보면 이 책을 추천한 오은 시인의 말처럼, “곡절 없이 좋아하는 것들을 몇 곱절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곧 있으면 닥쳐올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직진하는 용기가 느껴지는 책이다.-교보문고 자신의 찌질함(?)을 드러내는 글을 보며 저자의 용기를 본다. 만족스럽지 않은 환경 가운데서도 살아볼려고 하는 저자의 몸부림(?)에 박수를 보낸다. 이토록 많은 말이 오가는 세상에 말 한마디가 그토록 크게 사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고야 만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버티고 또 흔들릴 만큼 나는 취약 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흔드는 게 무작정 나쁘다거나, 사주는 믿을 만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나를 흔들던 말 또한 나를 이쪽으로 데려왔음을, 내가 무언가를 그 안에서 발견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밤 안도 속에서 깨달은 건 나를 격려해주는 이가 없어도, 심지어 누가 나를 흔들어놓고 수면 아래로 밀어 넣는다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생겨난 불안과 슬픔과 무력감, 또 그에 따른 오기와 반발심을 동력 삼으며, 나는 내 안에서 끝내 살아남은 무언가를 마주했다. 어쩌면 그(p. 25)것이 그리도 중요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나 흔들렸다는 사실 또한. 그러므로 물음에 대한 답은 추가되고 갱신된다. 어쩌다 작가가 되었을까? 나는 끝내 작가가 되고 싶었다(p. 26). 오늘날에는 자신을 돌보는 법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그런 정보의 과잉은 때론 상처도 불행도 없어야 한다는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건 꼭 완두콩 한 알 만큼의 불편도 용인하지 않기 위해 고안된 듯 보이니까. 혹시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은 것만 주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걸까? 그렇게 해야만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건 좀.. 부자연스럽지 않나? 그래도 그런 정보들을 일찌감치 알았다면, 그래서 내 부모가 조금 더 자신을 돌보았다면 그들에게도 내게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내 부모도 조금은 덜 힘들었을 텐데. 나도, 조금 덜 우는 사람이었거나 조금 더 마음 놓고 우는 사람으로 자랐을 텐데. 어쩌다 한 번 하는 우리의 외식도 지금보다는 더 편안할 텐데(p. 103). 뒤늦게나마 나는 내게 좋은 것을 주는 법을 배우고 또 연습한다. 가능한 선에서 질 좋은 걸 산다. 누가 뭘 해주면 사양하지 않고 받는다. 목돈을 모아 요가를 등록하고 되도록 병원을 제때 간다. 때론 근사한 데서 밥을 먹기도 한다. 부모로선 잘 모를 좋은 걸 누려도, 스스로를 이기적이라 느끼지 않으려 이를 악문다. 동거인이 놀리는 걸 보면 갈 길이 먼 것 같지만, 나는 나를 보살피는 훈련을 거듭한다. 그래야 부모를 포함해 그 누구라도, 나를 챙기느라 그 자신을 뒷전으로 두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나에게 최선을 다해준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이해할 수 있다. 동거인의 캠핑을 따라가는 건 훈련의 일환이다. 캠핑을 가면 동거인이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해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뻔뻔하게 앉아서 쉰다. 겨울에는 가끔 엄마의 개도 캠핑에 데리고 간다. 텐트 안에서 개는 한 뼘의 볕이 있는 자리에 자기 몸을 두기도 하고, 난로 앞 조금 더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고 웅크리기도 한다. 주어진 데서 기어이 제 몸만큼의 좋음을 찾아내는 것이다. '너는 바로 아는구나'(p. 104). 내가 오래 걸려 배운 걸 개는 그냥 해낸다. 기특하고 근사한 개 같으니. 몇 년 전가지만 해도 그런 광경, 자신이 괜찮아지는 위치를 미리 알아두고 스스로를 거기 놓는 존재 앞에서는 마음이 볼썽 사납게 흐트러지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웅크린 개를 빤히 바라본다. 걷는 법을 모르고도 걸었고 숨 쉬는 법을 모르고도 숨 쉬었다. 사랑 하는 법을 모르고도 사랑했고 사는 법을 모르고도 살았다. 나를 키워낸 내 부모처럼, 언제나 모르면 모르는 대로 해내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배우면 배우는 대로 더 해내게 된다. 그걸 안 뒤로 나는 배우고 싶은 모든 걸 조금 더 오래 본다. 그럼 볕을 받아 털끝 하나하나가 빛나는 작은 개의 부드러운 몸이 조금씩 솟았다 가라앉길 반복하듯 감탄과 슬픔이 내 몸을 고요히 오르내린다. 어떤 자연스러움은 누군가에게 훈련의 영역에 있지. 그런 게 언제나 조금씩 나를 상하게 만든다고, 개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아무 불편도 모르는 얼굴,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멸균된 얼굴은 역시 내 것이 아니다. 훈련 해봤자 조금 상한 얼굴을 더 자연스럽게 여기는 내 관점은 아무래도 끝내 바뀌지 않을 모양이다. 그래선지 어떨 땐 사람들의 얼굴이 다 조금씩 상한 것처럼 보이곤 한다(p. 105). 대중교통을 오가며 힐끗힐끗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이 상처 입거나 불행하지 않길 바라면서.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들 각자의 상처나 불행이 없어지길 곧장 바라지는 않는다. 거기서 오는 고통과 모순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을 감싸는 오래된 맥락이므로. 나로선 그 안에 새겨진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그들의 완두콩들을 헤아려 보고 싶다. 그런 건 사람이 상처와 불행 속에서도 그럭저 럭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다만 그 사실을 증명하겠다고 나를 몰아세우는 건 그만두었다. 스스로를 보살피는 게 죄가 아니라는 걸 개조차 그냥 안다. 나는 개처럼 살아서 숨쉰다. 개에게 배운 바, 그건 머무르는 자리에서 언제나 한 뼘의 볕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뜻이다(p.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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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1】 삶의 찌질함과 누추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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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0】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 죽음
- 대한민국이 OECD 자살률 1위라는 아픈 현실을 몇 년째 마주하고 있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날 거야”라는 절망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젊은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대답을 들려주어야 할까? 이 무거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평생을 의학계에 몸담았고 ‘죽음학 전도사’라 불리는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와 그의 아내가 함께 펜을 들었다. 바로 신간 『죽음, 삶의 끝에서 만나는 질문 』의 저자 정현채, 이현숙 부부의 이야기다-교보문고. 의사가 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1) 근사체험 (2) 사후통신 (3) 삶의 종말체험 (4) 사망 시 물리적 현상 (4) 영매 (5) 어린아이들과 관련된 환생 연구이다. 나는 근사체험만 인정한다. 죽음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이기에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책을 찾아 읽게 된다. 읽은 책들이 죽어갈 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정현채 서울대학교 의대 명예교수 198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 내과학(소화기학)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로 있다. 지금까지 240여 편의 의과학 논문을 SCI 국제학술지에 발표했으며 위염이나 위궤양 등을 유발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연구의 권위자로 대한소화기학회 이사장, 대한헬리코박터및상부위장관 연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명한 의학 저널 『랜싯』을 포함해 전문 학술지에 게재된 죽음에 관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공부하면서 2007년부터 대중을 상대로 죽음학 강의를 시작했다. 중학생부터 80대까지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800여 회 넘게 강의를 해 '죽음학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국죽음학회 이사로서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 제정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수록 비관적이 되거나 자살 충동이 커지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정반대예요. 제가 산증인이죠. 인간의 죽음 전후로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에 대 해 알면 알수록, 왜 자살하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깨달아 더욱 밀도 있고 충만 하게 살아가게 되거든요. '내 목숨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웬 참견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그런 말을 하기가 어려워져요. 우리는 모두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고, 모르고 지나치는 존재들조차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요. 가족과 친구는 더 말할 나위 없죠. 우리는 모두 이번 생에서 다뤄야 할 저마다의 과제를 갖고 태어나는데, 자살을 한다는 건 그 과제를 너무 빨리 내팽개쳐버리는 거예요. 도망친다고 그 과제에서 벗어나게 될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 과제를 잘 다루게 될 때까지 형태만 바뀐 채 계속 마주 치게 돼요.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살면서도 그런 걸 경험하지 않나요? 해결하지 못 한 채 외면하거나 회피했던 문제가 사라지지 않고 어느 순간 눈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경험을요(p. 19). 자살은 남겨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고, 이 상처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잘 아물지 않아요. 한 사람이 자살하면 주위 사람 다섯 명 내지 열 명이 자살 충동을 갖게 된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마흔 명 가까이 자살한다고 하니, 매일 200명 내지 400명 넘는 사람들이 지인의 자살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거죠.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와요. 서둘러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고로, 질병으로, 노화로 언젠가 다 죽어요. 그러니 그 전까지는, 자신의 삶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까지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선택만은 하지 않아야 해요. 저는 4년 전 침윤성 방광암 진단을 받고, 방광 전체와 그 옆에 인접해 있는 전립선까지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았어요. 소장 60센티미터를 잘라내고 만들어 넣은 인공방광에는 괄약근이 없어서 자율적인 배뇨 조절이 안 돼요. 일정한 간격으로 화장실에 가야 해서 밤잠도 세 시간씩 끊어서 자요. 그러나 이것 때문에 비관하지는 않아요. 30년 전만 해도 방광 절제 수술을 받고 나면 비닐 소변주머니를 밖에서 연결해 부착하고 지내야 했는데, 수술법이 향상되면서 삶의 질이 높아졌어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 감사할 일이 참 많아요(p. 23). 자살하는 순간 후회하지만 자살을 시도했는데 살아난 사람들은 이후 신체적인 고통을 겪더라도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격스러워하며 살아간다고 해요.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이 더 이상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해요. 2013년 EBS 「다큐프라임」 '33분마다 떠나는 사람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에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교(금문교)에서 투신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2퍼센트의 사람들을 다뤘어요. 미국 플로리다대학의 토머스 조이너 교수가 그 사람들과 면담한 결과, 투신해서 수면에 떨어지기까지 4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했다고 해요. "뛰어내린 순간 나는 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 만 빼고"(p. 38). "뛰어내리고 처음 떠오른 생각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였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떨어진 곳이 강이였으니 그나마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고, 고층 빌딩이었다면 떨어지는 순간 후회한다고 해도 돌이키기 힘들죠. 경북 영주에 사는 한 중학생의 경우가 바로 그랬어요. 같은 반 학생들의 괴롭힘을 이기지 못해, 아파트 20층 계단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창문틀을 붙잡고 도와달라고 요청했어요. 때마침 20층에 사는 주민이 이 소리를 듣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지만, 이 학생은 팔에 힘이 빠져 결국 추락했다고해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에요. 이처럼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는 살고 싶은 의지가 강하게 있는 것 같아요. 다음에 소개하는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우울증을 앓고 있던 한 여성이 오피스텔에서 자살하려고 목을 맸는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어요. 잠긴 문을 따고 들어가보니 이 여성은 이미 사망한 것처럼 보였어요. 호흡도 없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해 있었죠. 그런데 출동한 경찰관 중 한 명이 혹시 모르니 응급조치를 해보자며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얼마 뒤 이 여성은 "컥!? 하는 소리와 함께 숨을 쉬며 살아났어요. 그리(p. 39)고 살아나서 한 말이, 경찰이 들어왔을 때 자신은 여전히 의식이 있었는데 다른 경찰관이 "시신에 손대지 말고 현장을 보존하자"고 했을 때 속상했다는 거였어요(p. 40). 죽는 것 외에는 거기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상황에 있다면, 가족이나 상담사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찾으세요. 익숙한 곳을 벗어나는 걸 겁내지 마세요. 죽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지금 그곳보다 더 나쁜 곳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려요. 70년을 살아보니 정말 그렇더라구요(p. 42). 케네스 링과 친절 바이러스 근사체험 연구에서 케네스 링 교수를 빼놓을 수 없죠. 미국 코네티컷대학 심리학과 교수로서 30년 넘게 학생들에게 근사체험에 대해 가르쳤어요.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직접 체험하지 않았는데도 근사 체험자에게 일어나는 삶의 변화를 마찬가지로 겪었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한 거예요. 케네스 링 교수는 근사체험을 '친절 바이러스Benign Virus'라고 불러요. 왜냐하면, 이를 알게 된 사람은 근사체험을 직접 하지 않았어도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체험자와 비슷한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에요. 그런 변화를 저나 주변 사람들한테서도 발견해요. 한 중견기업의 대표는 평소 까칠한 편이었다는데, 죽음학 강의를 들으며 펑펑 울고 난 뒤로는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자상해졌다고 했어요(p.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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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0】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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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9】 만화가 주는 즐거움과 편안함
- “<을지로 순환선>의 만화가 최호철과 만화평론가 박인하가 함께한 여행기『펜 끝 기행』. 같은 학교 교수로 만나 떠난 제주도 교직원 연수에서 결성된 두 만화쟁이 '펜 끝 듀오'의 여행은 이후 일본, 이탈리아, 스위스, 중국을 거쳐 다시 우리 땅 울릉도와 독도에서 마무리된다. 화가였다가 만화를 선택한 최호철과 글쟁이였다가 만화를 선택한 박인하. 만화에 붙들린 두 사람은 세계를 바라볼 때 만화적으로 본다. 최호철은 여행지마다 그림을 그렸고, 박인하는 최호철의 크로키 북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이 책은 그들이 그렇게 함께한 여행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만화를 좋아했다. 초등학교때부터 대학때까지 만화를 봤다. 지금은 잘 안 보지만 그래도 만화가 좋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이런 책들을 찾아 읽을려고 한다. 일본다운, 너무나 일본다운 규슈 한 일 두 나라는 모두 벚꽃을 좋아하고, 벚꽃 구경 하기를 즐긴다. 그래서 봄이면 어김없이 벚꽃 축제가 벌어지는데, 가만 보면 두 나라 사람들은 각각 다른 벚꽃을 즐긴다. 우리나라에서 즐기는 벚꽃은 봉오리가 오르기 시작해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상태이다. 그래서 벚꽃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일기 예보에 민감하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와 꽃잎이 떨어지면 꽝이 되어버리기 때문. 반면, 일본 사람들은 화려하게 만개한 뒤 흩날리는 벚꽃을 즐긴다. 만개한 벚꽃이 바람에 떨어지는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이웃. 결국 이런 미세한 차이가 모여 문화의 차이가 되고, 문화의 차이는 풍경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일본 미학'이라는 말이 있다. 다양한 논의가 있고, 학자마다 여러 설명을 더하지만 이방인인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일본의 모습 자체가 그대로 일본 미학이다. 가을이 서서히 겨울로 넘어가던 날, 두 만화쟁이는 학생들과 함께 후쿠오카를 찾았다. 후쿠오카를 여행지로 결정한 것은 순전히 우리나라에서 가까웠기 때문. 특별히 우리를 끌어당기는 매력이나 꼭 가야 할 곳을 생 각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기대 없이 찾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활화산 아소 산. 그 웅장한 모습은 대단했다. 아소 산은 해발 1000미터가 넘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를 통틀어 부르는 이름으로 정식 명칭은 아소고다케인데, 다섯 개의 분화구마다 사실 다른 이름, 다카다케(1592미터), 나카다케(1506미터), 에보시 다케(1337미터), 기지마다케(1326미터), 네코다케(1433미터)로 부른다. 버스로 전망대 인근까지 올라가 케이블카를 타면 쉴 새 없이 하얀 연기를 내뿜는 분화구를 볼 수 있다. 은근하게 풍겨나는 유황 냄새, 곳곳에 자리 잡은 대피소, 은근히 겁을 주는 가이드의 말이 어우러지(p. 243)면 현재 진행형 활화산의 다이내믹함을 느낄 수 있다. 멀리 피어오르는 활화산의 기운을 바라보니,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무라이, 흩날리는 벚꽃처럼 배를 가르는 영화의 장면이 떠올랐다. 아소 산을 뒤로하고 찾은 곳은 구마모토 성. 구마모토 성은 약 400년 전, 전국 시대의 무장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를 통치하기 위해 축성한 성이다. 가토 기요마사라고 하면 낯설지만, 한자음 그대로 '가등청정'이라고 읽으면 익숙하다. 바로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했다가 깨진 바로 그 장군. 적의 공격에 대비한 120개의 우물과 조선 성의 장점을 차용한 축조술이 인상적이었지만, 그보다는 거대함 속에 정교하게 쌓아 올린 구마모토 성의 모습 그 자체가 일본, 사무라이를 느낄 수 있는 너무나 일본적인 풍경이었다. 그러나 사실 가장 일본적인 풍경은 활활 불타오르는 아소 산과 전국 시대 의 칼바람이 담겨 있는 구마모토 성이 아니라 그 살벌함과 함께 일상을 살았을 일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지금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소 산 자락 아래에서 평화롭게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바로 그들의 모습이 가장 일본다운, 너무나 일본다운 모습이었다(p. 244). 이 책을 쓰고 그리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자면(p. 276) 최호철 선생과 나는 같은 직장(청강문화산업대학)에 다닌다. 둘 다 만화창작과 선생이다. 사람들을 만나 "학교에서 만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꽤나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마치 황제펭귄처럼. 낯설지는 않으나 내 주변에서 마주칠 때 경험하는 신기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어쨌든 우리는 5월마다 찾아오는 불량 만화 화형식의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지 않은 만화인들이다. 최호철 선생은 화가였다가 만화를 붙들었고, 나는 글쟁이였다가 만화를 붙들었다. 더 정확히 우리 둘은 모두 만화에 붙들린 사람들이다. 만화에 붙들린 사람들은 세계를 바라볼 때 만화적으로 본다. 일단 빈 종이가 있으면 무조건 그리고, 조금이라도 분위기가 추락하면 농담을 날리고 싶다. 전자가 최호철 선생. 후자가 나다. 하지만 둘 다 천성이 숫기가 많은 사람들은 아니다. 은근 부끄럼쟁이들. 그래서 낯선 이들하고 떠들고 노는 것보다, 친한 이들과 수다 떠는 것이 좋다. 그래서인지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선생들은 보통 직장인들과 달리 사우나 아줌마 분위기를 풍긴다. 그 때문에 여행에 대한 기억이 꽤 많다. 최호철 선생은 여행지마다 그림을 그렸고, 난 최호철 선생의 화집을 뒤적이며 농담을 던진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월간 무가지 〈백도씨〉를 기획할 때였다. "우리 여행 간 거 내가 글 쓰고, 선생님이 그림 그려보세요." "만화? 나 마감 잘 못하는 거 알잖아?" 일단, 방어막을 친다. 역시, 공력이 대단하다. "그냥 한 쪽짜리 그림을 그리자고요. 한 쪽짜리 만화, 그게 최호철 스타일이 잖아!" 나도 다시 공격한다. 왠지 느낌이 낚은 것 같다(p. 277).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담는 게 최호철 스타일 아닌가?" 낚았다. 파닥파닥! 그렇게 해서 〈백도씨〉에 '두 만화쟁이의 여행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내가 낚은 죄로 글을 썼고, 최호철 선생의 애간장 다 태우는 마감에 동참했다. 몇 번 빼먹은 적도 있지만, 한 스무 번쯤 마감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우리가 한때 사슴굴이라고 불렀던 최호철 선생의 개성 넘치는 연구실 소파에 앉아 뒹굴면서 이야기를 하다 한번 책으로 묶어보자는 생각이 번득였다. 최호철 선생은 낙서라고 하지만, 그냥 묵히기 아까운 그림이 많은 그의 크로키 북이 생각났다. "〈백도씨〉에 연재한 만화하고, 그와 연관된 크로키를 모아서 책으로 묶어봅 시다." "재미있을까?" "재미없으면 사람들이 만날 선생님 크로키 북 달라고 해서 보겠어요." "너무 성의 없게 그렸잖아." "성의 있게 그리면 마감 못하잖아요." "..." "또 그냥 그 시간에, 여행지에서 그린 그림이 난 좋던데." "그럽시다." 그렇게 시작된 작업이다. 그림을 모으고, 글을 고쳐 썼다. 최대한 여행지의 느낌을 사람들이 느껴주길 원했다. 여행에는 휴식과 수다가 공존한다. 혼자 가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난 함께 수다 떨 수 있는 사람과 가는 여행이 좋다. 서로 말도 안 되는 지식을 공유하고, 느낌을 나누는 여(p. 278)행이 좋다. 이 만화는 그런 여행의 기록이다. 글과 함께 그림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최호철의 그림은 읽히는 그림이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크로키 북에 그린 사람이 아주 구체적인 당신의 모습이기도 하고, 당신이 바라본 그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림을 읽으며 우리의 여행에 동행하면 어떨까? 같이 수다 떨고, 맛있는 것도 먹고, 바보 같은 개그도 하면서 말이다. 남자들이라면 더더욱, 수다가 주는 세계 평화를 함께 누려보자(p.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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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9】 만화가 주는 즐거움과 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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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8】 짐승보다 못한 인간의 잔혹함
- 〈무시무시한 처형대 세계사〉는 야욕과 애증, 배반과 음모로 뒤엉킨 잔혹한 처형의 역사를 들려주는 책이다.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를 통해 그림 동화 신드롬을 일으킨 작가 기류 미사오가 이번에는 무시무시한 역사 속 처형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근대 유럽까지 '인간'이라는 존재에 의해 자행된 처참하고 잔혹한 처형의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하였다. 이 책은 역사 속 처형장을 통해 인간 내면세계에 깃들어 있는 광기의 역사를 살펴본다. 저자는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물음을 던지면서, 다양한 이유 때문에 엄청난 피를 흘려 왔던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있다. 그리고 황제들을 비롯한 수많은 권력자들과 신의 이름을 내건 종교인들이 역사 속에서 저지른 처형의 만행과 광기의 현장을 낱낱이 고발한다-교보문고. 흥미롭게 읽었는데 품절됐다. 이 저자의 책들이 재미있어 열심히 읽고 있는데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도 대출했다. 이처럼 맹수를 이용한 처형 방법은 그리스도교가 보급되기 훨씬 전에 시작되어 5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죄수의 팔다리를 묶어 자유를 구속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죄수의 몸을 묶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간단한 무기도 사용하게 함으로써 관중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안겨 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목숨을 잃기 전에 맹수를 한두 마리쯤 해치우는 강한 죄수도 나타났다. 어쨌든 죄수와 맹수의 싸움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으로 관중들에게 꽤 인기를 끌었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서 죄수의 처형은 일종의 연극으로 연출되었다. 예를 들면, 죄수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로 분장시켜 쇠사슬로 바위에 묶은 다음 대머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게 한다거나, 헤라클레스로 분장한 죄수가 곤봉을 들고 나와 황소와 싸우다가 클라이맥스에서 황소가 죄수를 허공으로 던져 버리는 식이었다. 그리고 여자 죄수가 생겨나면서 연극 마지막 부분에 음탕함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곰이나 당나귀의 습격을 받는다는 설정도 선보였다고 한다(p. 23). 콜로세움에서 펼쳐진 다양한 잔혹극 역대 황제들의 입장에서 볼 때, 검투사 경기는 범죄자나 반역자의 잔혹한 죽음을 선보이는 것으로써 황제의 권력을 뒤흔들려 하는 자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민들에게 확실히 보여 주는 기회이기도 했다. 로마 콜로세움 안에는 지금도 십자가가 서 있다. 일찍이 이곳에서 수많은 잔혹한 방법으로 목숨을 잃은 그리스도교도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타르에 적신 셔츠를 입은 채 콜로세움으로 끌려가 화형에 처해졌다. 또는, 팔다리가 묶인 채 커다란 솥 안에서 끓는 기름에 튀겨지거나 끓는 물에 삶아지기도 했다. 성 로렌스(Sento Rorense)는 석쇠 위에서 불에 구워졌고, 성 포류카르프는 화형대 기둥에 묶인 채 불에 타 죽었다. 성 폰시아노(Sento Pontianus)는 쓰러질 때까지 벌겋게 달구어진 석쇠 위를 걸어야 했고, 성 아르테 미오(Artemius)는 맷돌에 몸이 으깨져 죽었다. 손발이 잘려 나가거나 내 장이 몸 밖으로 드러난 채 매달린 자들도 있었다. 또, 살가죽이 벗겨진 채 유리 조각 위에서 끌려 다닌 자도 있었다. 콜로세움에서 남녀 수십 명이 한꺼번에 기둥에 묶여 처형된 적도 있는데, 그 광경이 마치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숲처럼 보였다고도 한다. 관중들은 그 중에서 누가 가장 먼저 숨이 끊어질지를 놓고 내기를 하기도 했다(p. 24). 당연히, 역대 황제들도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잔혹한 피의 향연을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으로 여겼다. 예를 들어 카이사르(Caesar)는 기원 전 65년 안찰관이었을 때 검투사들을 320쌍이나 동원해 성대한 검투사 경기를 개최했으며, 아우구스투스(Augusus) 황제도 검투사를 1 만 명 정도 동원해 검투사 경기를 여덟 차례, 맹수 3,500마리를 이용해 맹수 사냥을 스물여섯 차례나 개최했다. 클라우디우스 1세(Claudius I) 황제 시대에는 한 경기장에서 검투사 500쌍이 동시에 겨루는 일도 흔했다. 잔혹한 취미가 있었던 클라우디우스 1세는 목이 잘린 검투사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일부러 죽은 자의 투구를 벗기게 했다고 한다. 칼리굴라 황제 시대의 검투사 경기는 잔혹한 취미를 끝없이 만족시키기 위한 절호의 수단이었다. 맹수 사냥에서는 범죄자를 짐승의 먹이로 던져 주었고, 검투사 경기에 출전해야 한다는 선고를 받은 죄수가 필사적으로 자비를 호소하면 그 혀를 잡아 빼라고 명령한 다음에 온몸의 상처가 곪아 악취를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채찍으로 때리게 했다. 그리스도교도 박해로 유명한 폭군 네로도 30일에 걸쳐 잇따라 경기를 열었다. 그는 맹수를 풀어놓아 어린이를 포함한 5,000명을 물어 죽이게 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한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황제는 로마 제국 안에 존재하는 난쟁이들을 모조리 모아 검투사 집단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미녀들로 이루어진 검투사 집단도 만들게 해서 경기장에서 난쟁이와 미녀를 싸우게 한 뒤 그것을 최고의 유흥으로 삼았다고 한다. 코모두스(p. 25)(Comedits) 황제에 이르러서는 아예 정치를 총애하는 신하에게 맡겨 버리고 검투사 경기에만 열중, 자기 자신도 검투사로 자주 경기에 출전했다. 그런 그가 음모를 품은 검투사 한 명에게 침실에서 암살당한 것은 운명의 장난이었을까?(p. 26). 사실은 이랬다. 불길이 번지는 상황에서 수상쩍은 남자 몇 명이 술에 취한 척 비틀거리면서 '어떤 자는 이쪽, 어떤 자는 저쪽' 하는 식으로 햇불을 이용해 불을 붙이는 모습이 목격되었던 것이다. 로마 시대의 전기 작가인 수에토니우스(Gaius Suetonius Tranquillus)에 따르면, 이 수상쩍은 무리가 네로의 노예들이었기 때문에 집정관도 제지할 수 없었다고 한다. 폭력의 피해자 어쨌든, '네로가 방화를 명령했다'라는 소문이 흘러나오면서 민중들 사이에서는 당장에라도 폭동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자 네로는 소문을 불식시키려고 방화범을 만들어 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제물이 된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도들이었다. 당시 그리스도교도들은 이단시되어 마법을 부리고 유아를 살해하고 인육을 먹는다는 식으로 중상모략을 당하고 있었다. 아무리 엄격한 금지 정책을 펴도 계속 증가하는 그리스도교도 때문에 고민하고 있던 터라 네로는 이번 화재를 구실로 그들을 철저하게 탄압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먼저 신앙을 고백한 자들이 심문을 당했고, 이어서 그들의 고백을 토(p. 67)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방화죄 혐의를 받았다. 순교자들 중에는 사도 바울로와 12사도인 베드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놀림감이 되었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당했다. 어떤 이는 짐승의 가죽을 덮어쓴 채 개 떼에게 내던져져 물려 죽었고, 어떤 이는 원형 경기장에 맹수의 먹이로 던져지기도 했다. 또 어떤 이는 온몸에 타르가 발라진 상태에서 기둥에 묶여 날이 어두워진 뒤 등불 대신 불을 밝히게끔 했다. 네로는 처형 장면을 구경하라며 바티카누스 (vaticanus) 왕실 정원을 제공해 전차 경기까지 개최하면서 흥을 돋우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이단자들을 처형한다는 명분도 네로의 인기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특히 귀족들이 불만을 품은 것은 노예에서 해방된 자들이 점차 제국의 요직을 독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었다. 화재 뒤처리 등으로 인해 그 해의 국고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되었고 그 결과 재산 몰수라는 극단적 상황에 의지할 수밖 에 없었다. 때문에 다시 막을 연 반역죄 재판의 판결은 모두 유형이나 사형이었다(p. 68). 14~17세기 유럽에서는 마녀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체포해 가혹한 고문을 한 뒤 화형에 처했다. 이러한 마녀 재판의 폭풍은 약 300년 동안 이어지면서 유럽 전역에서 맹위를 떨쳤다. 그 기간 동안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수십만에 이른다는 설도 있고, 수백만이라는 설도 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마녀로 지목되어 화형을 당한 희생자에 대한 기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프랑스 로렌(Lorraine)에서 1576~1606년 동안 2000~3000명. 보르도에서 1577년에만 400명. • 독일 트리에르(Trier)에서 1587~1593년 동안 368명. 뷔르츠부르(p. 121)크에서 1623~1631년 사이에 900명. 밤베르크에서 1623~1633 년 사이에 600명. 이것만 보아도 마녀 재판의 희생자가 엄청난 숫자라는 사실을 짐작 할 수 있다. 유럽 전체에서는 15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약 30만 명(900만 명이라는 설도 있다)이 화형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p. 122). 마녀를 불태우는 검은 연기가 유럽 하늘을 끊임없이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야기다. 당시, 불안감을 해소하는 돌파구로 선택된 것이 '마녀'였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불행과 해악을 마녀 탓으로 돌려 잔혹하게 처형했다. 마녀 사냥이 무서운 것은 증거 없이 소문과 풍문만으로도 마녀로 몰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마녀 재판이 성행했던 원인으로는 첫째, 당시의 사회 불안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유럽인들은 예전에는 겪지 못했던 혹독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유럽 인구의 30퍼센트 정도를 앗아간 페스트의 유행, 극단적인 인플레이션, 종교 개혁 운동 등, 격동의 상황에서 민중들의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었다. 답답하기만 한 그런 현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창구로 선택된 것이 바로 '마녀'였다. 마녀는 마력을 써서 날씨를 나쁘게 만들고, 밭농사의 수학물을 줄이고, 태아를 유산시키고, 남자를 성불구로 만들고, 갓난아기를 잡아먹고, 악마에게 살아 있는 제물을 바친다..... 이런 식으로 세상의 모든 불행과 해악을 마녀 탓으로 돌렸다. 유럽에 휘몰아친 종교 개혁 운동에 대해 로마 교황은 수도회를 결성해 이단 탄압에 나섰다. 마녀 재판의 전신은 13세기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가 탄생시켰다. 이른바 '이단 심문' 제도다. 이단 심문관은 교황의 보호 아래 사교나 관헌을 능가하는 권한을 가지고 오로지 그리스도교 국가 전역에서 이단을 박멸하는 사명을 맡았다(p. 123). 그리고 잔혹하기로 유명했던 요한 22세가 내린 1318년 2월 27일 교서에서 '마녀'의 비참한 운명이 결정되었다. 프랑스 고위 성직자 앞으로 보낸 이 교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마녀 재판을 시작하고 지속하여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완전한 권한을 부여한다.' 이 마녀 재판 해금 명령에 박차를 가하듯, 교황 요한 22세는 1323년, 1326년, 1327년, 1330년, 1331년에 계속 마녀 재판 강화 명령을 발표 했다. 이 강화 명령에 따라 이단 심문관의 마녀 사냥이 급격하게 기세를 떨치기 시작했다(p. 124). 마녀 재판 그 자체도, 심문, 자백의 공술(고문을 통한 자백도 포함해서), 단죄 선고, 그리고 처형(대부분이 화형)이라는 식으로 공식화되어 있었다. 중요한 것은 피고를 한시라도 빨리 죽여 그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었다. 마녀에게서 몰수한 재산은 모두 교회 소유가 되었고, 마녀 재판에 들어가는 비용 전부를 여기에서 조달했다. 간수의 식대, 처형 담당자의 술값, 교살을 할 때 들어가는 밧줄 대금, 화형을 할 때 쓰는 장작과 기름값 등, 모든 비용을 여기에서 인출해 썼던 것이다(p. 165). 기요틴에 광란하는 사람들 로베스피에르를 처형하는 것으로 공포 정치가 막을 내리자, 국내의 무거운 공기는 사라지고 단번에 향락적인 분위기가 퍼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장소에 모여 오직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피비린내 나는 과거를 잊고 희망 없는 미래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 거리 도처에서 무도회가 열렸는데, 특히 인기를 모았던 것은 회원이 한정되어 있는 '희생자들의 무도회'였다. 가까운 친척이 기요틴에 처형을 당한 사람들만 이 모임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 무도회에 참가하려고 일부러 큰돈을 주고 근친자가 기요틴에 처형되었다는 증명서를 위조하는 사람들도 속출했다고 한다. 모임에서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고 훤히 드러난 목 주위에 칼자국을 모방한 빨간 리본을 묶었다. 남자들도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마찬가지로 빨간 리본을 목에 둘렀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들 입장에서 보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현실을 받아들여 슬픔을 이겨내고 살아가려면 이런 식으로 불행을 패러디하는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p. 298). 마지막 공개 처형 프랑스에서 기요틴을 이용한 처형은 오랜 세월 동안 일반에게 공개 되었다. 그때마다 형장에는 프랑스 각지의 수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입장에서 볼 때 처형은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다. 1889년의 파리 만국 박람회 때에는 기요틴에 처형을 당한 사람이, 당시에 신축된 에펠탑보다 더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피와 잔혹함에 대한 인간의 열광은 그 뿌리가 무척 강한 듯싶다.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기요틴 공개 처형은 1939년 와이트만이라는 살 인범의 처형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축제 소동이 벌어지자 정부는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다고 한다. 처형 전날 밤, 형장이 될 베르사유 감옥 앞 광장에는 엄청난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기요틴 처형을 한 번이라도 직접 구경하려고 나무와 가로등에 매달린 사람들, 건물 창문에 바짝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사람... 사람들은 마치 축제라도 즐기는 듯한 기분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면서 소란스럽게 전야제를 보냈다. 가끔씩 말 잘하는 사람이 농담을 던지면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 소리가 감방 안에 있는 사형수의 귀에도 들렸다니 정말 잔혹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자 정부도 더 이상은 간과할 수 없어 그 뒤로는 기요틴 공개 처형을 금지했다. 이후의 처형은 각각의 감옥이 위치한 안마당에서 이루어(p. 300)졌으며, 처형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관료 아홉 명뿐이었다. 잔혹함의 상징인 기요틴 처형대는 감옥의 담장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두 번 다시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다(p.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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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책】권력과 신앙-히틀러 정권과 기독교
- 권력과 신앙-히틀러 정권과 기독교 추태화 지음 | CKoBooks | 2012년 04월 16일 출간 책소개 나치 시대의 기독교를 연구한 책 『권력과 신앙』. 나치는 기독교를 정치에 어떻게 이용했는지, 교회는 나치의 사이비 기독교 정책을 어떻게 오해했는지, 민족 신앙의 토착화는 기독교를 어떻게 왜곡했는지, 독일 기독교인들은 어떤 이유로 또 다른 독일 기독교인들을 탄압했는지 등을 살펴본다. ▶ 이 책은 2010년에 출간된 <국가사회주의와 기독교 신앙>의 개정판입니다. 저자 소개 저자 추태화 박사는 단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독일 문예학, 기독교문학, 철학, 사회학(M.A.)을, 그리고 아우그스부르크 대학교에서 독일 문예학과 신학을 공부했다(Dr.phil.). 현재는 안양대학교 신학대학 기독교문화학과 교수로 섬기고 있으며, 그동안 뮌헨에 있는 <현대역사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역사와 문화 분야를 연구하였다. 문학과 문화 비평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일생의 사명으로 삼고 있는 그는, 우리 사회가 건강한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맑고 풍요로워지기를 꿈꾸는 기독교 문화운동가이다. 탄탄한 이론과 현장성을 갖춘 저자는 여러 기독교 미디어에 필진으로 활동하면서 기독문화 칼럼을 연재하여 왔고, 또한 기독교문화 분야의 동지들과 함께 <세계기독교문화연구원>을 통해 기독교문화 확산에 헌신하고 있다. 저서로는 『광장에서 문화를 읽다』, 『기독교 영성에 비추어 문학 새롭게 읽기』, 『영화, 그 의미에 길을 묻다』, 『영화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상상력의 유혹』, 『대중문화 시대와 기독교 문화학』, 『21세기 기독교 인문학의 전망』, 『101가지 이야기 신학』, 『문화의 미로에서 길을 찾다』, 『태초에 문화가 있었느니라』, 『국가사회주의와 기독교 신앙』등이 있다. 주요 연구분야로는 기독교 문예학, 문학과 신학 통합연구, 기독교 문화학과 문화비평, 문화연구 방법론, 독일 나치시대 등이다. 목차 제1부 I. 서언: 교회의 미스테리 / 16 II. 나치 민족 공동체와 독일 기독교 1. 히틀러와 기독교 / 22 2. 나치의 기독교 정책 방향 / 28 3. 고백교회와 교회 투쟁의 태동 / 33 4. 바르멘 신학선언 / 41 제2부 III. 민족 신앙 토착화와 독일적 신앙 1. 민족 신앙 토착화 / 48 1.1 나치의 신앙: 민족과 신화 1.2 “독일신앙운동”(DGB) 1.2.1 현상 1.2.2 하우어(J.W.Hauer)의 주장 2. 독일신앙운동(DGB)의 기독교 비판 / 56 3. 국가교회(Nationalkirche)의 이상 / 59 3.1 베르크만(E.Bergmann)의 주장 3.2 이단에서 신흥 종교로 IV. 민족주의와 기독교 1. 1933년도 이전 국가프로테스탄트 / 71 2. 제국기독교인(Deutsche Christen) / 74 2.1 루터의 영향과 튀링겐 2.2 호쎈펠더(J.Hossenfelder)의 주장 2.3 비네케(F.Wieneke)의 주장 2.4 “실용적 기독교”(Positives Christentum) 3. 기독교-독일신앙운동(Christlich-deutsche GB) / 94 3.1 현상 3.2 신학의 우경(右傾)화 3.2.1 고가르텐(F.Gogarten) 3.2.2 알트하우스(P.Althaus) 3.2.3 키텔(G.Kittel) 3.2.4 히르쉬(E.Hirsch) 제3부 V. 나치의 기독교 탄압 1. 기독교 탄압 조직 / 108 2. 기독교 정책기관 / 116 2.1 나치 정부 내 교계부 2.2 나치당 내 교계 담당부서 2.3 아이제나흐 연구소 2.4 나치신학자 그룬트만(W.Grundmann) 3. 제국기독교의 교단 장악 / 135 3.1 뮐러(L.Mueller) 주교의 선임 3.2 뮐러의 실용적 기독교론 3.3 제국기독교 정책 VI. 기독교 박해 4. 탄압의 구체적 사례 / 146 4.1 교계 지도부 위협 4.2 친나치 교수 및 학생단체 설립 4.3 신학 교육기관 축소 및 폐쇄 4.4 예배당 무단출입 및 사용 4.5 교회 헌금 규제 4.6 충성 헌장 강요 4.7 기독 청소년 강제동원 제4부 VII. 신학의 나치화 1. 성경론 / 159 1.1 구약 폐기론 1.2 신약의 게르만적 수용 2. 신론과 민족 신화 / 167 3. 기독론과 히틀러 우상화 / 169 4. 인간론의 대결_성경과 나치즘 사이에서 / 173 VIII. 신앙의 정치화 1. 하나님 나라에서 민족 집단주의로 / 176 2. 체제 복종으로서의 신앙 / 179 3. 성령론과 나치 세계관 운동 / 181 4. 종말론과 운명적 결단 / 182 IX. 기독교 문화의 왜곡화 1. 민족에 봉사하는 윤리 / 187 2. 교회 절기의 정치적 오용 / 190 3. 신앙 인물 편집 / 193 3.1 바울 사도 3.2 마이스터 에카르트(Eckart) 3.3 루터(M.Luther) 제5부 X. 개신교의 양심과 저항 1. 프로테스탄트 저항과 순교 1: 교계 / 201 1.1 니묄러(M.Niemoeller) 1.2 디벨리우스(O.Dibelius) 1.3 쉬나이더(P.Schneider) 2. 프로테스탄트 저항과 순교 2: 신학계 / 236 2.1 바르트(K.Barth) 2.2 틸리히(P.Tillich) 2.3 본회퍼(D.Bonhoeffer) 2.4 틸리케(H.Thielicke) 2.5 골비처(H.Gollwitzer) 3. 그 외 신앙지도자들 / 264 XI. 가톨릭의 양심과 저항 1. 바티칸의 대응 / 269 1.1 바티칸과 나치 2. 사제들: 저항과 순교 / 283 2.1 마이어(R.Mayer) 2.2 콜베(M.Kolbe) 2.3 델프(A.Delp) 2.4 메츠거(M.Metzger) 3. 교계 / 310 3.1 교계 지도자들 3.2 신앙인들 제6부 XII. 전후의 교회 재건 1. 연합군의 대 교회 정책 / 321 2. 교계의 탈나치화 운동 / 326 3. 슈투트가르트 참회 선언 / 334 4. 다름슈타트 고백 / 339 5. 독일복음주의교회 교단(EKD) 결성 / 345 XIII. 맺는 말 / 348 참고문헌 / 352 부록 / 362 * 나치시대 교회사 책 속으로 - 나치 시대 풍경 “나치 시대는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을 탄압한 시대였다. 나치로 가장한 기독교와 나치에 부역한 기독교인들이 나치를 반대하고 저항한 기독교인들을 탄압한 시대였다. 나치에 부역한 기독교인들도 기독교인이었고, 나치에 저항한 기독교인들도 기독교인이었다.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나치당원이 된 기독교인들, 제국기독교인들이 고백교회의 목사와 교인들을 핍박한 것이다. 나치의 등장으로 독일 교계는 크게 억압과 저항이라는 구도로 나뉘었다. 교회 또한 분리되었다.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교권을 누리려는 교계와 불의에 항거하며 핍박을 감내하는 교계로 나뉘었다. 성경과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고 교인들을 잘못된 나치 교리에서 보호해야할 사명감으로 <고백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인들도 나치에 의해 분리되었다. 과연 누가 진정한 기독교인이었는가. 결과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상이 과연 어떠했는가. 그리고 그런 역사가 어떻게 존재했었는지, 그 역사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 나치 시대에 대한 기독교계의 반성 “만약 독일의 종교개혁 사상, 복음주의 신앙이 그 능력을 잃지 않았더라면 신앙의 회의와 신학적 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었으리라 본다. 나아가 나치주의자들이 주동하였던 민족신화적 종교운동을 충분히 설득하고 회심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추정해본다.” - 기독교에 대한 히틀러의 속셈 “우리는 신앙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교회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힘을 우리 고유의 운동에 유익하게 활용해야 하기에 (교회를 이용해야) 한다... 부활절은 더 이상 부활과 관계가 없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개혁을 의미한다. 성탄절은 구세주의 탄생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영웅적 모습과 자유의 정신이 탄생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모든 종교적 고백이 우리 국가에서 독일 혈통의 종족이 윤리와 도덕의 감정에 저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한다. 정당은 신앙고백이 어느 특정한 신앙고백에 묶여있지 않는 한 실용적 기독교의 입장을 대변한다. 정당은 우리 안과 밖에 존재하는 유대적이고 물질적인 정신과 싸운다. 또한 우리 민족의 지속적인 보완이 이루어지도록 해야한다. 개인의 유용성보다는 공공의 유익성이 앞선다.” - 나치성향의 실용적 기독교론 “우리는 실용적 기독교의 토대 위에 서있다. 우리는 긍정적이며 인종에 맞는 그리스도-신앙을 고백한다. 그것은 독일적 루터-정신과 영웅적 경건성에 꼭 들어맞는다.” “... 우리는 인종, 민족, 국가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고 맡겨진 삶의 질서를 보았다. 이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계명이다. 그러므로 인종의 혼합은 거부되어야 한다. 독일 해외 선교는 오래전부터 그 경험을 통하여 독일 민족에게 강조하고 있다. “독일 인종을 순수히 지켜라!”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신앙은 인종을 파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종을 심화하고 성화한다.” - 나치에 저항한 신앙고백: 고백교회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에서 증거된 바와같이 하나님의 바로 그 말씀이며, 우리가 들어야하며, 우리가 삶과 죽음에서 신뢰하며 순종해야할 그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잘못된 교리를 거부한다. 마치 교회가 하나님의 바로 이 말씀 외에도, 그 유사한 경우에도 말씀 선포의 근원이 되거나, 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리고 다른 어떤 사건이나 능력, 형상이나 사실을 하나님의 섭리처럼 인정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출판사 서평 교회와 성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길! 격동의 시기 1930년대, 한국은 일제 식민지 탄압에 신음하는 가운데 기독교는 애국, 구국, 민족주의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같은 시기 독일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히틀러를 정점으로 하는 나치 정권, 기독교를 왜곡, 파괴하여 권력을 굳히려는 치밀하고 교활한 꼼수를 펼친다. 이에 온 몸과 마음으로 저항, 순교하기까지 믿음과 교회를 지킨 독일 신앙인들이 일어난다. 나치 정권 아래서 오판(誤判)으로 그늘진 독일 교회 ! 악마적 히틀러 통치 아래서 정권과 악수하여 야합, 왜곡, 어용에 춤추다 결국 조국을 전쟁으로 내몰고, 분단의 비극(1945)을 막지 못했다. 오판이 자초한 심판과 비극의 결과, 그러나 그 가운데서 믿음과 교회를 지킨 신앙인들이 있었기에 독일 기독교의 전통은 면면히 계승되어 통일(1990)이라는 영광을 다시 회복하는 은혜를 입는다. 이 책을 만든 이유| 저자는 현대 교회가 처한 ‘위기 상황’이 어떠한 경로에서 기인했는지 고뇌한다. 그의 관심은 1930년대 독일로 향한다. 당시 한국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신음하는 가운데 기독교는 애국, 애족, 구국 등 민족주의 운동에 헌신하며 백성들을 감싸안았다. 독일은 어땠을까? 독일도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대에 있었다. 극우파 나치주의가 득세를 하면서 히틀러를 권력의 최상부에 앉히려고 했다. 1933년 1월 히틀러가 수상에 오르고 정권을 장악하면서 독일 기독교계를 관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쪽에서는 친화정책이요 다른 한쪽에서는 탄압정책을 썼다. 일부 선지자적 시야를 갖고 있던 목회자, 성도들은 나치주의가 반기독교적인 것을 간파하여 저항 전선을 펴나갔다. 하지만 또 다른 일부 기독교인들은 나치주의가 교회를 공산주의로부터 보호하고, 국민을 위한 정권이라고 여기게 되어 옹호, 야합하기에 이른다. 나치와 나치 성향의 제국기독교인들은 “실용적 기독교”의 관점에서 국가에 봉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오판(誤判)이었다. 이 오판을 기반으로 히틀러는 막강한 권력을 쥐고, 탄압정책을 펼쳤고, 결국 교회는 그의 무력 앞에 굴복하는 상황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교인들이 저항하다 핍박받고 순교에까지 이르는 역사가 펼쳐지게 된다. 이 모습은 현대 교회가 어떻게 오판으로 인해 본질을 상실했으며, 반면 고백교회를 통해 증거된 신앙 고백에서 교회와 성도의 본질이 어떠해야 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1930년대 역사적 실증 자료 속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려 했으며, 우리 시대의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지 교훈으로 기록하고자 했다. 책속으로 추가 - 저항운동을 이끈 니묄러 목사 “교회는 교회로 남아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선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있는 의회적 제도와 싸워야 하며, 과거와 현재에 등장한 교회정당과 관계해서는 안됩니다. 다만 선거가 공시되었기 때문에 우리 복음주의 교인들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우리는 고백교회를 위해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간섭받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교회는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 증언된대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에게 다시 고백해야 하는 사실을 새로 배워야 합니다. 지금 제국기독교인의 지도자들이 매일 주장하고 있듯이 교회는 교회 안의 잘못된 교리와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새롭고 젊은 교회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교회 안에 정치적이거나 교회정치적인 행동이 발붙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로부터 나오는 속죄와 믿음과 형제적 사랑의 능력이 언제나 살아있는 새로운 교회를 원합니다. 우리는 이 능력이 관료주의에게 짓밟히지 않으며 대중운동에 시달리지 않는 교회의 모습을 원합니다. 우리는 새롭고 자유로운 교회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이 교회는 모든 정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단지 교회가 완전한 자유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에만 교회는 독일 민족을 위해 봉사할 수 있습니다.” - 디벨리우스 목사 “사람들이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기독교는 교회를 세우게 되어있다. 그런데 아리안족의 게르만화된 기독교는 ‘민족’을 세웠을 뿐이다. 신앙을 위한 투쟁에서 기독교는 민족에 뿌리를 두는 한 교회로 살아있는 기독교 앞에서 붕괴할 수 밖에 없다..” - 전후 독일 신앙인들의 공적 속죄(슈투트가르트 참회 선언) “..... 우리는 이 모임을 통하여 우리 민족이 고난의 크나큰 공동체 안에 있을 뿐 아니라, 실수의 연대성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아픔으로 우리는 말해야합니다. 우리를 인하여 수많은 민족과 나라들이 끝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우리들이 자신들의 교회에서 종종 고백하는 것처럼 오늘은 전 교회의 이름으로 고백합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하에서 국가사회주의라는 폭력체제 속에서 그 가공할 얼굴을 내민 정신에 대항하여 투쟁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더 용감하게 싸우지 못했으며, 더 신실하게 기도하지 못했으며, 더 기쁘게 믿음생활하지 못했으며, 더 뜨겁게 사랑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고발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새로운 시작이 그 발을 내디뎌야합니다. 거룩한 성경 말씀에 기초하고, 교회의 오직 한 주님을 진정한 믿음을 다해 바라보며 나갈 때에 그동안 신앙과 관계없던 영향들을 정화하고 질서를 잡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그의 도구로 사용하시며, 교회에게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권세를 주시며, 우리와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해주시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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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책】권력과 신앙-히틀러 정권과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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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아들아, 이렇게 살아라
- 70 평생 4개 대륙을 넘나들며 복음을 전한 배안호 선교사가 케임브리지대학교를 졸업한 두 아들과 며느리에게 보낸 편지를 4가지 주제 '가정, 신앙, 일터, 인생'으로 다시 묶은 책입니다. 한국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섬기는 삶을 살다보니 두 아들이 전액 장학금으로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는 저자의 간증은 우리가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야 하며, 그런 삶을 살 때 경험하게 되는 놀라운 축복이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이 땅의 청년들과 한국교회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귀한 조언을 해주는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게 됩니다. 저자 배안호 선교사는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거쳐, 영국 스코틀랜드 애버딘대학교(University of Aberdeen)에서 선교이론(M.th)과 선교역사(Ph.D)를 전공,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총신대 일반대학원(Th.M)에서 수학하는 동안, 총신대학교 부설 선교연구소에서 계간지 「세계선교」를 발행한 바 있다. GMS(총회세계선교회) 파송으로 탄자니아의 칼빈신학교(Calvin Theological College)에서 교수와 학장으로 섬겼다. 파라과이 장로교신학교의 이사로 섬기며, 아순시온 최대 빈민 지역에 위치한 현지인 교회인 갈보리교회를 섬겼다. 유럽 재복음화와 부흥을 위해 영국에서의 새로운 사역을 준비 중이다. 파라과이 현지 교민신문인 「남미동아일보」에 ‘성경정경사’, ‘정통과 이단’에 관한 글을 2년간 연재했다. 저서로는 『한국교회와 자립선교(한국학술정보, 2008)』, 『성경, 나의 사랑 나의 생명(국민북스, 2010)』과 스페인어 번역서 『Lectura Rap´ ida del Canon Biblico(2022)』 등이 있다. 목차 프롤로그 가정 ...다른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키워라 온실에서는 거목(巨木)이 자랄 수 없다 다른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를 키워라 매일 새로 시작하는 설레임을 잊지 마라 모든 일을 감사로 시작해라 배우자를 인생의 동역자로 바라봐라 사랑은 인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을 만드는 비결이다 좋은 코치가 되어라 어려서부터 좋은 습관을 훈련해라 자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질문하는 아이로 키워라 비울 줄 알아야 건강하다 작은 습관의 힘을 통해 건강을 지켜라 약속은 꼭 지켜라 변명하지 말아라 세상을 더 넓게 경험해라 신앙 ...예수님 대학(Jesus College)에서 졸업은 없다 매일 찬양하며 살아라 인내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배워라 너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예수님 대학(Jesus College)에서 졸업은 없다 감사하는 삶을 살아라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겨라 몸 안에 있는 의사의 경고에 귀 기울여라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선을 행해라 일평생 새벽의 사람이 되어라 평생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라 혼돈의 시대, 나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라 너만의 피난처를 마련해라 십일조 금식의 유익을 누려라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라 일터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봐라 멀리 보며 인생을 살아라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살아라 명품인생을 살아라 시작해라, 그리고 꾸준한 반복의 힘을 믿어라 바보라는 소리 듣기를 두려워 마라 가치있는 일에 시간을 투자해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관리해라 진실성과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 되어라 책임지는 자세로 인생을 개혁해라 일에서 의미를 찾아라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봐라 좋은 관계를 위한 비결은 험담이 아닌 칭찬이다 논쟁이 아니라 공감의 말을 해라 인생 ...영원한 것에 인생을 투자해라 인생은 마라톤이다. 결코 멈추지 마라 좋은 습관을 통해 인생의 핵심 근육을 단련해라 마음의 성벽을 단단히 지켜라 꾸준함과 헌신으로 인생을 개척해라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라 정리정돈하는 삶을 살아라 성경 묵상을 통해 인생의 파도를 넘어서라 나만의 건강 온도를 유지해라 고통을 통해 배워라 말하는 대로, 글 쓰는 대로 인생을 살아라 친절한 말과 행동으로 세상을 채워라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라 삶을 즐기는 사람이 되라 영원한 것에 인생을 투자해라 습관적인 반응을 멈춰라 자녀 교육, 나는 이렇게 했다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국민북스는 2022년 7월 17일 『아들아, 이렇게 살아라』를 출간했다. 이 책의 저자는 70 평생 4개 대륙을 넘나들며 복음을 전한 배안호 선교사다. 가난한 농부의 가정에서 태어나 20세에 예수를 만난 저자는 아직도 청청한 열매를 맺는 청년의 삶을 살고 있다. 이렇게 풍성한 삶을 살게 된 비결에 대해 저자는 허구를 밝히기 위해 읽던 성경에서 찾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그 진리를 일터와 가정, 교육에 적용했을 때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지 자신과 두 아들 가정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선교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아들과 며느리들에게 정기적으로 써 보냈던 인생 조언들을 담은 편지를 독자를 위해 ‘가정, 신앙, 일터, 인생’이라는 주제로 다시 담아냈다. 누구나 자기 인생을 증언할 책임이 있다. 70 평생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한 선교사 배안호 목사가 삶으로 증언하는 인생의 조언들은 이 땅 모든 청년들, 아니 세대를 초월한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할 소중한 교훈들이다. ‘배안호 선교사가 이 땅의 청년들에게 전하는 삶의 잠언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가정, 다른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키워라》 “아버지는 인생에서 본질과 비본질적인 것들을 분명히 구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아들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하는 것’은 비본질적인 것으로 아버지의 관심사 밖이었습니다. 매일 6시 가정 새벽기도와 7시 아침 조깅 운동, 저녁 7시 가정예배에 충실하다보니 공부는 거짓말처럼 그냥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이제 아버지가 된 지금, 우리 가정에서도 이런 선한 습관들을 하나둘씩 아이들과 실천하려 애쓰고 있습니다.”(큰아들 배홍철의 말) 두 아들은 아버지의 한결같은 원칙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자신들의 삶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저자의 조언을 통해 우리 가정에 필요한 원칙은 무엇인지 점검해보자. 《신앙, 예수님 대학(Jesus College)에서 졸업은 없다》 저자가 큰아들의 케임브리지대학교 지저스 칼리지(Jesus College) 졸업식에 참석했던 날 성령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아들아, ‘예수님 대학(Jesus College)’에 졸업식이 있느냐?” 저자는 이 질문을 한국교회와 청년들에게 다시 던진다. 지금은 멈출 때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때다. 평생 예수 안에서 청년과 같이 살아가는 저자의 삶의 비결을 배워보자. 《일터,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봐라》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던 저자는 공기업과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누가 보든지 말든지 한결같은 모습으로 일터와 동료들을 섬겼던 경험을 통해, 저자는 일의 가치와 자세에 대해 ‘주께 하듯’ 할 것을 주문한다. 그러면서도 일터에서 만날 수 있는 문제 상황을 외면하지 않는다. 저자의 조언과 격려를 기억하며 일터의 크리스천과 함께 기도하자. 《인생, 영원한 것에 인생을 투자해라》 저자는 부모가 자녀를 향한 확고한 교육관, 인생관, 세계관을 가지고 하나님께 분명한 삶의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오로지 한국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세계를 품은 기도를 한 것이 전부였고, 그 과정에서 두 쌍둥이 아들이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으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보너스로 베푸신 상급이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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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아들아, 이렇게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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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박정선의 밥 이야기’ 출간
- CTS기독교방송 라디오 JOY 사연 토크쇼! ‘박정선의 밥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됐다. ‘박정선의 밥 이야기’(도서출판 북 갤러리)는 지난 2020년 1월부터 방송을 시작했다. 2년 7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 아침 8시 30분 청취자들과 만난 ‘밥 이야기’에는 수많은 사연 가운데 1,000여 건 이상의 청취자 사연이 방송을 탔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CTS기독교방송 라디오 JOY 인기 순위 상위에 올라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청취자들의 사연을 책으로 출간한 계기에 대해 박정선씨는 “지난 시간 동안 수많은 청취자들의 사연을 꾸밈없이 날 것 그대로 방송을 통해 사연이 알려지다 보니 사연을 듣고 공감하고 함께 울고, 웃기도 했다는 소감이 방송국 게시판을 통해서 혹은 개인 SNS를 통해 받았다” 면서 “밥 이야기는 우리 삶 가운데 말 못할 고민을 옆집 친구, 혹은 나 자신에게 주저리주저리 하는 그런 편안한 방송”이라고 강조했다. 방송을 전혀 모르던 평범한 사람이 진행을 맡아 라디오 JOY 인기 순위 상위에 랭크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인 만큼 방송 2년 7개월 만에 출간된 ‘박정선의 밥 이야기’ 는 청취자들이 세상을 살면서 울고, 웃고, 사랑했던 사람들의 오늘을 사는 얘기와 더불어 현장감 있는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책을 엮은 첫 번째 사연 모음집이다. 특히 이 책은 정해진 형식 없이 삶의 길목에서 만나는 청취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누구나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정선씨는 “라디오 진행자로서 청취자들이 직접 보내온 사연을 통해 남녀노소 누구든 만나서 편안하게 식사하듯 장르에 구애 받지 않는 다양한 이야기가 소개 되므로 ‘박정선의 밥 이야기’ 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떠나 신앙인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고 말했다. 책의 구성을 보면 모두 5개 파트 60편의 이야기로 구성됐다. 아픈 부모에 대한 후회와 상심, 자신을 키워준 새어머니에 대한 감사함, 어린 시절 자신을 희생하고 동생만을 위해주었던 형이 이제 병이 들어 이별해야 할 상황에서 병든 형을 위해 마지막 버들피리를 불러주러 가는 동생의 이야기 등 ‘박정선의 밥 이야기’는 평소 고민하던 것에 대한 질문부터 세상을 살면서 벌어지는 일상, 혹은 자신의 삶에 대한 넋두리까지 특정 소재에 연연하지 않고 애청자들이 공감하는 키워드가 사연 곳곳에 드러나는 감동과 웃음을 짓게 하는 우리네 삶의 ‘희로애락’이 들어간 사연들로 구성됐다. 저자 박정선은 ‘박정선의 밥 이야기’는 우리네 삶의 ‘소통’ 이라고 생각을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는 “우리네 식탁문화는 밥을 먹으면서 소통을 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듯 청취자들의 사연을 통해 꾸밈없이 울고 웃으면 나의 답답함을 애기하고 또 그 애기를 듣고 맞장구 쳐 주는 상대가 있기 때문에 비록 라디오라는 공간에 한정 되어 있지만 날 것을 꾸밈없이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장소” 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아직도 할 애기가 많고 청취자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라디오 부스에 않아서 하기에는 사연의 너무 많다” 면서 “기회가 된다면 현장으로 찾아가 직접 사연을 듣는 시간을 가져 지난 3년여 시간 코로나로 인해 어려웠던 우리네 속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청량제 역할을 감당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편 CTS 라디오 JOY 에서는 박정선의 ‘밥 이야기’ 출간 기념으로 넘치는 사랑에 보답 차원에서 청취자의 사연을 남기면 추첨을 해 ‘밥 이야기’ 책 5권을 선물로 증정한다. 참여는 CTS 라디오 JOY에 들어가 ‘박정선의 밥 이야기’ 찾아서 사연을 올리면 된다. 응모기간은 9월 5일까지며 9월 6일 추첨을 통해 총 40여명에서 책이 증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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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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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박정선의 밥 이야기’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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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책〕 『약한 나로 강하게』, 김동문 지음
- “숨 쉬는 한, 희망은 있다!(Dum Spiro, Spero!)” “송충이요, 공돌이요, 전과자였던 한 목사의 가슴으로 써내려간 희망메시지!” 이 책 『약한 나로 강하게』는 어려운 환경에서 출생(송충이)하여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 노동자(공돌이)로, 교도소 수감자(빵잽이)로 고입 대입검정고시 합격, 총신대학교 신학과/신학대학원, 신약신학 전공, 숭실대학교 평생교육원 사회복지학 전공, 한세대학교 일반대학원 음악치료학 전공(MA, Ph.D. Cand)하여 현재 25주년을 맞은 개척교회 해빌리지 살렘교회 담임목사, 북부노인주간보호센터 대표, 해빌리지 융합치유연구소 소장으로 교회와 사회의 경계를 넘나들며 신학과 사회복지학과 음악치료학의 지식과 전문성을 융합하여 국내외를 넘나들며 목회적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김동문 목사의 자전적 신앙에세이집이다. 김동문 목사가 이 책을 쓴 한 가지 이유는 50세에 목회적 안정기에 들자 이 모든 것이 자수성가가 아니라 도움 받아서 된 것이며 자신이 허당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드러내고 도와주신 분들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쓰게 됐다. 김동문 목사의 해빌리지살렘교회의 특징은 동네교회로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엄마 품 같은 교회, 세상과 통하는 교회, 축복의 통로가 되는 교회. 교회를 통해 자원이 동네로 흐르게 하는 교회이다. 해빌리지살렘교회는 이 곳의 지역아동센터, 주간보호센터 첫 출발지로서 교회가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는 지역을 넘어 아프리카 우간다에 주간보호센터 운영 방법 전수하고 있다. 김동문 목사가 이번 2022년 6월 1일(수)에 실시되는 지방선거에 경기도의회의원선거 무소속 예비 후보로 출마했다. 그가 목사임에도 출마한 이유는 효과적인 사역을 위해 정치를 하고자 함이다. 정치가로 좋은 조례를 만들어 다양한 복지를 실현하고, 다양한 연령의 필요를 채우며교회가 세상 문제 해결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목사이지만 지역 사회를 위한 다양한 경험을 해왔다. 남양주시 지역사회복지협의체 실무위원장, 남양주시 사회복지협의회 회장, 경기도 사회복지협의회 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북부노인주간보호센터 대표이며 오남읍 축제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동안 지역사회 봉사에 대한 공로로 경기도지사 표창(2006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2회(2007년, 2014년), 남양주시 시민대상(문화예술 2017년)을 수상했다. 김동문 목사는 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오늘날 자기 자신을 무수저 혹은 흙수저라고 하는 많은 젊은 청년들이 낙심과 좌절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데, 나야말로 무수저 중의 무수저 출신이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하였고, 빛이 있을 동안 빛 가운데로 걸어가려고 노력하였을 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내 자신을 옭아매었던 불행의 끈을 끊을 수 있게 하셨다. 송충이요 공돌이요 전과자였던 나같이 천박하고 무능한 인간도 하나님이 도우시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었다.” 목차 나의 삶의 이야기 「약한 나로 강하게」를 다시 엮어 내면서… 4 프롤로그 6 1. 내 이름은 송충이, 송충이라 불러다오! 내 이름은 송충이, 송충이라 불러다오! 16 2. 내 이름은 공돌이, 공돌이라 불러다오! 내 이름은 공돌이, 공돌이라 불러다오! 21 3. 내 이름은 빵잽이, 빵잽이라 불러다오! 아, 그 소녀! 28 개털 빵잽이의 발칙한 도전 31 내 이름은 간 큰 빵잽이 승부사 34 내 이름은 공부벌레 36 아, 선생님… 38 아,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의 여동생 41 아, 이재훈 재판장님! 그리고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빵잽이의 승부수 44 4. 내 이름은 고독한 올빼미, 올빼미라 불러다오!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을 경험하다 48 본격적인 개털 빵잽이 인생이 시작되다 51 교도관과 샅바싸움을 하다 53 일 년 만에 고입,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하다! 55 입시생이 된 올빼미, 그리고 대학생이 되다 58 아, 교도관이 건네 준 뜨거운 사발면 하나! 64 5. 내 이름은 어리버리 신학생, 그러나 베스트 드레서! 생각대로 팅~! 67 나의 아킬레스건 69 어리버리 신학생, 그러나 베스트 드레서! 74 상처입은 영혼, 김동문의 천사들 78 6. 내 이름은 필립스 김, 그러나 콤플렉스의 화신! 승부욕의 화신 김동문? 87 모범생인 척했던 비겁한 신학생 89 내 이름은 필립스 김, 필립스 김이라 불러다오! 92 내 이름은 클라리넷 김, 클라리넷 김이라 불러다오! 94 내 이름은 작가, 작가라 불러다오! 96 내 이름은 콤플렉스 김, 콤플렉스 김이라 불러다오! 98 7. 그 여자의 남자, 그 남자의 여자 1 어느 날 다가온 끌림 101 교수님 가라사대… 1 104 교수님 가라사대… 2 106 동병상련의 두 남자, 장가를 가기 위해 금식기도를 했으나… 108 아, 그녀를 만나다! 111 촌티 끝판 왕 김동문, 시인이 되다 113 슬픔의 사람 김동문, 장가를 가다! 118 8. 그 여자의 남자, 그 남자의 여자 2 됐나? 됐다! 121 국수? 국시? 123 결혼 후, 5년의 세월… 126 아 아 잊으랴, 우리 어찌 그날을… 130 아들딸 태어나다, 만세! 132 9. 그 여자의 남자, 그 남자의 여자 3 무식하면 담대해진다? 136 나쁜 남자? 나쁜 남자! 139 결혼 10주년 리마인드 웨딩 촬영 142 10. 내 이름은 팔불출, 팔불출이라 불러다오! 사실로서의 역사(historie)를 넘어 의미 있는 역사(geschichte)를 위해 148 결혼 10주년에서 20주년, 김동문 유명(famous or notorious)해지다 150 남편과 아빠: 좋거나 나쁘거나 이상하거나 152 “아빠, 제발 우리 가족끼리만 여행 가자!” 154 나의 한(恨)이면서 소망, 스위트 홈! 156 나에 대한 어쭙잖은 심리학적 분석 160 11. 내 이름은 건축가, 건축가라 불러다오! 교회 건축에 대한 열망이 생기다 166 아내의 편지 171 삽질의 미학 174 12. 내 이름은 아둘람 굴의 두령, 두령이라 불러다오! 신앙? 신념? 182 이상화의 덫과 평가절하의 덫에 빠져 허우적댔던 나 185 빗나간 기대 188 멘붕에 빠지다 191 엘리야 콤플렉스는 나의 콤플렉스 193 흔들리며 피는 꽃, 그리고 대추 한 알 196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198 아둘람 굴의 두령 200 딴짓하는 목사 203 국가를 움직인 살렘교회 205 13. 내 이름은 상잽이, 상잽이라 불러다오! 상의 추억 212 경기도지사 표창을 받다 215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두 번씩이나 받다 217 남양주시 시민대상을 받다! 221 대한민국 육군 제75사단 사단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다 224 14. 내 이름은 음악치료사, 음악치료사라 불러다오! 음악, 그 애증 228 음악치료사가 되다 230 더 이상 기타에 대한 트라우마는 없다 232 15. 달려라, 흰머리 소년 많이 지치고 아팠다 236 걷고 달리기를 시작하다 238 나는 왜 걷고 달리는가? 240 16. 내 이름은 허당, 허당이라 불러다오! 기특한 깨달음을 얻다 247 내 이름은 허당, 허당이라 불러다오! 250 하나님은 허당을 축복하시다! 254 17. 내 이름은 인플루언서, 인플루언서라 불러다오! 주의산만한, 그러나 감성적 소년 258 나는 내 딴엔 인플루언서가 맞다 261 18. 내 이름은 시니어 모델, 모델이라 불러다오! 어쩌다 시니어 모델 265 나의 모델은 나 자신이다! 267 난 그녀의 모델이자 아들딸의 모델이고 싶다 271 한국 교회의 목회 모델이 되고 싶다 276 19. 허당 부부, 결혼 50주년을 향해 달려라! 결혼 25주년을 맞이하다 281 허당 부부, 결혼 50주년을 향해 달려라! 284 에필로그 295 허당(虛堂) 김동문 300 저자 소개 김동문 해빌리지 살렘교회 담임목사, 북부노인주간보호센터 대표, 해빌리지 융합치유연구소 소장 학력 중/고입검정고시 합격, 총신대학교 신학과/신학대학원, 신약신학 전공, 숭실대학교 평생교육원 사회복지학 전공, 한세대학교 일반대학원 음악치료학 전공(MA, Ph.D. Cand) 경력 역서 / 성경의 영감(1995, 솔로몬)(I. H. Marshall, Biblical Inspiration), 저서 / 비눗방울 터트리기(1995, 솔로몬) 등이 있으며, 슈퍼모델(1995, 솔로몬), 경기도지사 표창(2006), 보건복지부장관 표창(2007), 보건복지부장관 표창(2014), 남양주시 시민대상(2017), 전)남양주시지역사회복지협의체 실무위원장, 전)남양주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전)경기도사회복지협의회 이사, 사)한국강사협회 강사, 아시아선교회 이사, 아시아선교신학교 교수 책 속으로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오늘날 자기 자신을 무수저 혹은 흙수저라고 하는 많은 젊은 청년들이 낙심과 좌절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데, 나야말로 무수저 중의 무수저 출신이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하였고, 빛이 있을 동안 빛 가운데로 걸어가려고 노력하였을 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내 자신을 옭아매었던 불행의 끈을 끊을 수 있게 하셨다. 송충이요 공돌이요 전과자였던 나같이 천박하고 무능한 인간도 하나님이 도우시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었다. --- 「에필로그」 중에서 우리 부부는 결혼 25주년을 맞이했고, 교회 개척 25주년을 맞게 된다. 그렇게 25년의 세월을 일관되게 달려오다가 이제는 부부가 함께 바다를 달리고 들을 달리고 산을 달리되 일관성 있게 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처음에는 나를 때리려고 했던 아내도 이제는 적응을 넘어 스스로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아내와 함께 일관성 있게 달리면서 바라는 소망은 25년 동안 삶과 사역의 일관성을 지켰듯이 50주년을 향해 달려가는 그 여정에도 일관성을 지키자는 것이다. --- 「허당 부부, 결혼 50주년을 향해 달려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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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책〕 『약한 나로 강하게』, 김동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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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신간』 내일 맑음
- < 책 소개 > * 발행 : 씽크스마트 * 제목 : 내일 맑음 * 부제: 좋아해 감사해 행복해 * 발행일 :2022년 5월 8일 * 지은이 : 김민홍 * 시리즈 : 스토리 인 시리즈 ⑫ * 판형 : 130*210 / 쪽수 :300쪽 * 가격 :13,000원 * ISBN :978-89-6529-318-7 03810 '한계 상황 속에서 겪은 고통을 극복한 어느 치유자의 이야기' <30년이 넘는 투병 생활> 한창 젊음을 꽃피울 대학생 시절, 저자는 당뇨의 합병증으로 왼쪽 눈을 실명했다. 또한 만성 신부전증으로 10년 동안 혈액 투석을 받고 아내의 신장을 기증받았다.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것도 익숙하다. 아직도 건강이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한 저자는 자신이 겪은 질병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목표는 애인 백 명 만들기?> 아내에게 신장을 기증받아 이식 수술을 받고 지방의 어느 치유 센터에서 요양하던 저자는 암과 싸우는 여성을 만났다. 그 여성과 같이 투병 생활을 하면서 허락을 받아 ‘애인’이라고 불렀다. 저자가 말하는 ‘애인’은 서로 사랑하는 애인이 아닌,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저자는 치유 센터에서 우연히 만난 첫 번째 애인을 시작으로 백 명의 애인들 만나 돌보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오늘도 애인들을 만나러 간다. <상처받은 사람이 치유하는 사람으로> 저자는 오랜 투병 생활로 깨달은 것을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눴다. 투병 생활로 인해 암울한 삶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의 메시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되었다. 저자는 <내일 맑음>을 통해 어두웠던 과거와 투병 생활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닥쳐오는 한계 상황을 극복하며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사람으로 변한 저자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보자. < 출판사 서평 > '상처받은 치유자' 어두웠던 학창시절, 젊은 나이에 찾아온 실명, 혈액 투석과 신장 이식 수술까지. 파란만장한 삶이 주는 고통에 넘어지면서도 언제나 다시 일어나는 저자의 모습은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내일 맑음>은 상처와 시련에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저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자신의 상처를 가감없이 드러내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해 힘쓴다. 이 책이 몸과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주길 바란다. < 책 속으로 > p24. ‘프롤로그 – 상처가 사명이다’ 중에서 요즘 나는 수많은 암 환자들과 당뇨, 고혈압, 만성 신부전증 같은 만성 질환자들, 그리고 우울증과 공황장애와 같은 마음이 아픈 분들을 계속해서 애인으로 만나고 있다. 세상에는 환자들과 미래의 환자, 이렇게 두 부류만 살고 있는 것 같다. 환자는 갈수록 많아지고 질병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상상할 수 없는 희귀질환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런 질병의 원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원인을 찾아가다보면 한 가지 이유를 만나게 된다. 다름 아닌 마음이다. 마음이 상하고 아프면서 이것이 질병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p39. ‘이제 진짜 시작이다’ 중에서 치료가 이렇게 드러난 증상만을 제거하는 일이라면, 치유는 그 증상이 일어나게 된 그 원인을 찾아 제거하는 일이다. 그래야 암이나 질병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방구석에 곰팡이가 생기면 락스로 닦아 곰팡이를 제거하는 것은 치료이다. 겉으로 나타난 증상만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치유는 방에 곰팡이가 생긴 원인을 찾아 환기도 시키고, 구들장에 뜨거운 불을 피워 곰팡이 생길 환경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다시는 방에 곰팡이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락스로 백날 열심히 닦아봤자 시간이 지나면 곰팡이는 다시 생길 것이다. p115. ‘웃어야 산다’ 중에서 지금 돌이켜봐도 우리 아들이 손주를 낳아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까지 살지 못했으리라고 100% 확신한다. 앞을 보지 못하고 장님으로 살았던 2년, 그리고 이틀에 한 번씩 해야 하는 혈액 투석은 고통 그 자체였다. 살고 싶지 않았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자연히 웃을 일이 없어졌고 삶 속에서 기쁨이 없었다. 그런데 손주가 태어나니 이 세상이 환히 밝아졌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이 생긴 것이다. 자연스럽게 웃을 날도 많아지고, 기쁨이 회복되니까 내 건강에도 청신호가 켜지는 것 같았다. p207.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다’ 중에서 이렇게 대학교 2학년 때 당뇨병에 걸리고 심한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한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7살 먹은 막내의 죽음, 그리고 유일한 목격자로서 동생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이로 인해 부모님께 너무나 죄송해서 모범생으로 살겠다고 결심하면서 나도 모르게 걸린 모범생 콤플렉스, 그리고 어머니의 자살 시도와 대학 시절 친구 집에서 약 5년 동안 빈대 아닌 빈대생활을 하면서 절실하게 느꼈던 가난의 상처들, 마지막으로 학비를벌려고 시작한 장사 때문에 어머니께서 폭력을 당하고 내 마음속에 용솟음쳤던 죽이고 싶을 만큼의 미움과 분노. 이 모든 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와서 내 몸을 집어삼켰다. p250. ‘삶의 목표를 찾아야 한다’ 중에서 당뇨병으로 고생한 지 벌써 35년이 지났고, 장님처럼 2년을 살았으며, 10년 동안 혈액 투석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신장 이식 수술까지 받았다. 이런 세월을 지내면서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아프셨던 아버지였지만 그래도 치열하게 투병생활을 하셨다. 물론 마지막에 가서는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몇 번이고 자살을 시도하셨고 그때마다 내가 발견해서 아버지를 살릴 수 있었다. 비록 이렇게 삶의 마지막에 가서는 마음이 약해지셨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투병생활은 대단하셨다. 삶의 의지가 대단하셨다. 질병에서 일어나려는 아버지의 노력은 지금도 내 눈에 선하다. 그러므로 나 또한 그 어떤 질병에서도 쓰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 목 차 > 추천의글 애인들의 응원 메시지 프롤로그 : 상처가 사명이다 1. 염증과의 싸움 2. 이제 진짜 시작이다 3. 마음이 먼저다 4. 가장 무서운 것 5. 환자의 주권 찾기 6. 기다려야 한다 7. 눈물이 치료제이다 8. 눈물은 영혼의 해독제이다 9. 울어야 산다 10.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 11. 웃음의 힘 12. 웃어야 산다 13. 애인 만들기 프로젝트 14. 반드시 길이 있다 15. 치유의 핵심은 동역자이다 16. 사랑받는 세포가 치유된다 17. 스트레스에는 원인이 있다 18. 착하게 살지 말자 19.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다 20. 자존심을 버리자 21. 이왕 할 거라면 즐겁게 하자 22.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23. 삶의 목표를 찾아야 한다 24. 삶의 목표가 있는 자는 쓰러지지 않는다 25. 상처가 사명이다 에필로그 : 덕분입니다 < 저자 > 김민홍 상처 입은 치유자 한창 대학교에 다닐 때 당뇨병에 걸려 합병증으로 왼쪽 눈을 실명하고 만성 신부전증으로 10년 동안 혈액투석을 받았다. 결국 아내의 신장을 기증받아 신장이식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고혈압, 심근 경색 등 다양한 성인병 경험을 통해 전인 치유에 관심이 생겼다. 백 명의 애인 신장 이식 수술을 받고 지방에 있는 치유 센터에서 요양하였다. 여기서 암으로 투병 중인 한 자매를 만났는데 그 자매의 허락을 받아 애인이라고 부르면서 함께 투병생활을 하였다. 이때의 경험으로 환자들을 ‘애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목표는 몸과 마음이 아픈 환자들, 즉 애인 백 명을 돌보고 섬기며 그들과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멘토링 현재 하는 사역은 멘토링을 통한 치유 사역이다. 환자가 되면 외롭다. 건강과 치유에 대한 정보도 필요하다. 애인들과의 교제와 상담을 통해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다. 인간은 영·혼·육으로 이루어진 전인적인 존재이므로 몸과 마음과 영성까지도 돌보는 치유 사역을 하고 싶다. 정체성 총신대학교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천안에서 새백성교회를 개척하여 현재까지 목회하고 있다. 치유 사역을 위해 건양대학교 보건복지대학원 치유선교학과의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동양의학을 접목하고 싶어 이혈(耳穴) 전문 대학원에서 이혈치유 상담학을 공부하여 이혈 지도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목사로 목회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치유 사역자로 활동하며 치유 세미나, 치유 캠프, 강의, 상담 등의 사역을 통해 열심히 애인들을 만나며 교제하고, 섬기고 있다. < 추천사> <누구나 일독해야 할 책> 추천사를 부탁받고 원고를 몇 편 읽으며 글 속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저자는 신장병으로 10년 간 투석을 하고 결국 신장이식 수술을 받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겪은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길어 올린 주옥같은 깨달음의 글들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체험을 치료와 치유라는 단어를 설명하면서 잘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치료란 증상을 완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반면에 치유는 병의 원인을 밝혀내서 그 원인을 제거함으로 깨끗이 완치시키는 것을 말한다.’ 누구나 환자는 치유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현대의료는 치유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저자도 책에서 고백했듯이 목사님으로 일생을 살아오며 체험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래서 글을 읽으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줍니다. 저자는 ‘상처가 사명이다’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사명은 저절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깨닫는다는 말이겠지요. 사명적 존재란 내가 누구인가, 그리고 내게 사명을 부여한 분은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인생을 바르게 산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은 누구나 꼭 일독해야 할 책입니다. 건강한 분들에게는 건강을 위하여, 환우들에게는 실제적인 도움을 위하여, 그리고 의학적인 지식도 쉽게 전해 주고 있기 때문에 추천을 드립니다. 끝으로 목사님의 소중한 글의 출판을 축하드리며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때 성령께서 함께 하시어 귀한 깨달음과 실제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건양대학원 치유선교학과 학과장 김찬기 교수 <다큐멘터리이자 육필원고> 이 책은 ‘치유일지’입니다. 의사가 자신이 치유한 환자들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환자 자신이 자신의 질병을 어떻게 치유 받아 왔는가를 기록한, ‘병상일지’ 같은 기록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글을 대할 때, ‘어, 뭐지? 드라마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글은 다큐멘터리이며, 온몸으로 쓴 ‘육필원고’입니다. 저자의 글을 한 편씩 읽어 갈 때면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견디고 살아남을 수가 있었을까?’ 또 다른 한 권의 ‘욥기’를 보는 것 같아 독자로 하여금 가슴이 먹먹해 짐을 느낍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 있는 이 글의 주인공은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게도 합니다. 이 글은 의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너무나도 특이한 내용입니다만, 신앙의 눈으로 볼 때 비로소 이해하고 납득 할수 있을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 ‘치유일지’를 읽어 나갈 때면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을 느끼게 되며, 나도 이런 하나님을 만나고 싶고 또 이런 사랑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글들이 정말 귀하면서도 감사한 것은 저자 자신이 온갖 고난과 질병 가운데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도리어 어렵고 힘든 역경과 질병 가운데 있는 다른 이들을 가슴에 품고, 위로하며, 격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며 어떤 절망의 상황 가운데서도 소망이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의 병들고 상처받은 몸과 영·혼이 온전히 치유 받을 수 있음을 고백하게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이 귀한 책을 온 정성을 다해 발간하게 되신 김민홍 목사님께 큰 박수를 보내며, 온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 소망 이비인후과 손영규 원장 <환우들에 대한 깊은 공감과 사랑> 질병으로 김민홍 목사님만큼 오랫동안 극단적인 고생의 체험을 한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 과정들을 자세히 관찰해 두었다가 정확히 기억해서 기록한 용기와 냉철함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다양한 병증과 치료 이력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 동료 인간으로서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간결하고 읽기 쉬운 문체로 재미있게 쓰여 있다. 장황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잘 읽힌다. 한번 손에 잡으면 놓기가 싫을 정도이다. 솔직담백한 글이다. 자신의 체험과 상태를 보통 사람들은 부끄럽게 여길 수 있는 것까지 환우들을 위해 진솔하게 기록했기에 생생하고 실감이 난다. 그 체험들이 예사롭지 않고, 놀랍고, 충격적이기도 하다. 단순히 이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마음에 와 닿는다. 내가 최근에 읽은 것들 중 가장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인 책이다. 목사님 자신이 30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병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환우들에 대한 깊은 공감과 사랑이 진하게 느껴진다. 질병, 특히 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이다. 암의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이처럼 해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놀랍다. 단지 풍부할 뿐만 아니라 그 통찰들이 건전하고 우리의 이성과 상식, 그리고 신앙적 원리에 부합되는 것들이라 느껴진다. 그러므로 만성병을 가진 사람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 고려신학대학원 양낙흥 교수 <민홍이의 감사의 노래> 김민홍 목사님은 지난 2년간 함께 공부했던 우리 학회 지도사 과정생들에게 치유일지라는 제목으로 글을 공유하여 충격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 후 학회밴드에서 파장이 휘몰아치더니 이어 라는 작은 잡지에 몇 편의 글이 실렸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구입하여 텃밭에서 여름내 땀흘려 수확한 것들과 함께 과정생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들깨의 기름을 기쁨의 눈물로, 볶은 참깨는 행복의 미소로 칭하며 잡지에 실린 목사님의 글을 <민홍이의 감사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표현했다. 목사님의 어린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비마다 숱한 역경과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은 우리가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그 이상의 것이었다. 이 글은 애간장이 끊어지듯 땅을 치고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지난 삶을 표현한 것이었지만 목사님에게 그 삶은 역경과 고난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낸 삶이 아니라 먼저는 자신의 아픔을 이겨내고, 세상의 모든 아픈 이들의 위로와 회복과 치유를 위한 감사의 노래인 것이다. 이제 그 노래를 아픈 이들과 함께 부르고 얼싸안고 보듬어 춤을 추며 노래하고 싶은 그 간절한 마음이 책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왔음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기뻐한다. 김민홍 목사님은 죽는 그 순간까지, 아니 죽음 이후에도 이 노래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에게 주어진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명이기 때문이다. - 한중 이혈 건강 요법 학회 이현중 학회장 영혼육의 상처와 아픔을 지닌 이 땅 순례자들의 고백과 회복의 대언, 가족들과 걸어온 인생의 숲길에서 정직한 참회의 소리만큼 우리를 울리는 파동이 있을까? 김민홍 목사님을 통해 전달되는 삶의 시간과 여정을 묻는 절대자의 물음에 숲속 그루터기에서 상처 입은 발을 감싸는 우리의 정직한 고백이 쏟아지고 회복의 길로 인도함을 받는 축복과 은혜가 가득하시길. Where are you? - 경주 숲속유향의원 임부돌 원장 <상대방을 위한 배려나 이해, 사랑으로 느낀다는 것> 치유는 우리 자신의 존재를 전체로 들어가도록 인도한다. 그것은 잃어버렸던 자신의 목소리. 거부하고 감추어 두었던 것들을 다시 발견하고 포용하며 초대한다. 치유는 자신의 내면의 견고함을 발견하게 하는 신뢰의 여정이다. 자신의 삶이 부분이 아닌 전체적 삶으로 초대될 때 잃어버렸던 우리의 목소리는 비로소 즐거운 노래로 발견되고, 잊어버렸던 자신의 존재는 춤과 웃음으로 변하게 된다.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껴안고 상처받은 마음을 부드럽게 감쌀 때 우리는 또 다른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것은 내 자신의 정직한 본성의 발견이며 만남이고 구원이며 자유이다. 치유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healing’은 그리스어 홀론(holon)에서 나왔는데 이는 healing, health, wholeness, holiness, holy 등으로 파생되었다. 따라서 치유는 건강과 전체, 신성, 그리고 구원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질병은 부분으로 나누어지고 분리된 것을 의미한다. 질병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disease’에서 ‘dis-’의 의미는 ‘떨어져 나감’, ‘분리 됨’을 말한다. 그리고 ‘ease’는 ‘편하다’, ‘쉽다’, ‘일상적 삶’을 말한다. 따라서 질병은 삶에서 분리되고 파괴된 것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반면 구속을 뜻하는 ‘salvation’은 ‘완전함’과 ‘전체’를 말하는데 이는 신과 떨어져 있다가 다시 결합된 것을 의미한다. 이는 치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금까지 의학은 질병 치료에 중점을 둔 나머지 환자의 남아 있는 생명과 삶의 문제와 인간관계 회복의 문제, 감정 치유의 문제 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등한시한 경향이 있었다. 이제 현대의학이 이런 요소까지 의료범주에 넣어 치료를 고려한다면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더 성숙한 ‘인간다움’으로 진화할 것이다. 고통과 상실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회복할 기회를 얻는다. 고통과 상실은 우리가 인간임을, 그리고 우리의 존재가 진정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통과 상실은 치유와 깊은 관련이 있다. 치유는 질병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과 생활의 기술, 삶의 존재방식의 문제에 더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고통과 상실의 순간에 그동안 밀봉되었던 마음의 본성을 드러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신마저 소외될 때 자신의 실존만이 깃발처럼 바람에 펄럭인다. 습관화되고 마음이 만들어 낸 거짓된 자아와 집착이 고통과 상실의 바람에 산산이 흩어지는 순간, 자신의 정직한 본성과 만나게 된다. 이제 고통과 상실은 영적 성장의 기회가 된다. 슬픔은 슬픔으로, 아픔은 아픔으로, 눈물은 눈물로 해결할 때 비로소 치유가 안착된다. 슬픔과 아픔, 눈물과 온전히 대면하지 않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거나 회피한다면 증환은 다시 왜곡되고 인간의 실존마저 박탈된다. 치유는 공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공감은 타자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타자의 이해는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한다. 자신의 반성으로부터 여과되지 않은 것은 공감이 아니다. 공감의 보편성과 실천적 태도는 자신의 주체적 반성을 거쳐 시작한다. 반성은 타자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자율적 제한의 절제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공감의 출발은 객관적인 대상이나 사건이 아니라 바로 주체의 반성에 의한 것이다. 이런 자기점검의 성찰은 공감의 기초가 되고 사적 감정이 비로소 보편적 감정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다. 사랑의 감정은 사적 감정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고 할 때 자기 자신만을 내세우고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상대방의 관계 속에서 제한해야 한다. 무제한적 사랑은 결코 사랑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자기제한’을 부자유나 제한, 억압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한 배려나 이해, 사랑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을 배려와 이해, 사랑의 대상인 타자로 인정할 때 공감이 일어난다. 이 때 상대방은 나의 중심적 계교에 포섭되거나 수단화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인 타자로 존재한다. 이제 타자는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을 때 쌍방 간의 관계가 치유 회복되기 시작한다. 김민홍 목사님이 쓴 이 책은 한계 상황 속에서 겪은 환자의 고통을 치유자와 함께 일구어 낸 우리들 삶의 진솔한 내러티브이다. 그래서 울림이 크다. 이 이야기는 환자와 치유사 간에 이루어지는 증환의 이야기이지만, 오늘 이 순간 우리가 맞이하게 될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에 등장한 분들이 앞서 행한 일과 이야기는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경험에 어떻게 대면하고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나침반과 따뜻한 위로가 된다. - 고려대학교 임병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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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신간』 내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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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신천지 어떤 곳인가”
- 신천지에 대한 자료를 통합한 ‘비판 반증서’가 출판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신학대학과 교회에서 십자가 복음만을 전하는 이흥선 목사가 이단연구를 했던 전문가로서 <신천지 어떤 곳인가?>를 출판했다. 신천지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일시적으로 소강상태에 머물겠지만, 전도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조건 때문에 앞으로 더 치밀한 전략으로 포교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이에 대해 철저히 대처해야 한다. 이흥선 목사는 이번 책을 통해 신천지가 잘못 해석한 구절들에 대해 성경적으로 바른 해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저자는 한국교회 주변에 이단과 사이비들이 생겨나고 성장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교회가 성도들에게 바른 진리로 인도하지 못하고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저자는 책을 통해 요한계시록이 종말의 전유물이 아닌 십자가 사건으로 재해석하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이를통해 신천지의 요한계시록 해석을 십자가 복음 중심으로 반증한다. 기존의 반증 서적들이 계시록 해석을 종말 때만의 사건으로 대환난이나 징조 등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저자가 해석하는 방향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신천지 어떤 곳인가?>는 서두에서 신천지 이만희 교주의 도덕적 문제들이 드러난 사진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왜 십자가 중심으로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배경 설명과 성경 해석법을 제시한다. 이어 신천지의 잘못된 교리를 소개하고 십자가 중심으로 한 해석과 비교 분석하여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이 외에도 신천지의 현황을 비롯하여 신천지에 빠졌을 때의 대처 방법과 이단 분별법 그리고 대표적 이단들의 현황까지 기술하여, 정통교단과 이단들을 비교·분석했다. 또한 이 책은 신천지 교리 비교 반증에 앞서 성도들의 이해를 위해 ‘십자가’를 강조하며 성경의 기본적인 내용을 안내하고, 계시록 해석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이흥선 목사는 “원래부터 신천지 비판에 관한 책을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의 신천지가 극성이라 걱정하는 중국교포 제자를 위해 쓰기 시작했다”며 “신천지 교리를 비판 반증한 자료를 정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코로나19가 발생하고, 신천지가 대구지역 코로나 확산의 주요 원인이 되면서 신천지 비판 자료를 정리해 출판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신천지 어떤 곳인가?>는 최고의 조직신학자 서철원 박사 등이 감수하여 추천했으며, 한국교회 원로 지도자 및 이단연구가 등의 자문도 거쳤다. ※구입처: 출판사 성서북스 ☎032)864-0474, 010-5525-8182 충남 태안 출생으로 중학교 때 예수를 영접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뜨거운 소명감을 받아 신학교에 들어갔고 목회자로 세움을 받았다. 한때 종합일간지 사회부, 정치부 기자를 거쳐 종합일간 신문 발행인을 역임했고, 기독교계 언론 및 종교평론가로도 활동해 왔다. 현재는 목회에 전념하면서 신학대학에서 목회자 및 후학들에게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데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크리스챤종합핸드북> 등을 펴냈다. 저자는 총신대학교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한국개혁주의성경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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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신천지 어떤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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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관하여』, 김남준 목사 신간
- 누구에게나 시험은 찾아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다윗과 세례 요한 그리고 사도 바울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시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늠할 수 없는 시험의 깊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구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험의 때는 위험하지만, 시험을 이길 은혜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당신을 낳으신 하나님 사랑을 의지하여 승리하십시오. 하나님의 품을 파고드는 사람이 이깁니다. “시험의 본질”을 보여 주다 인생에서 시험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세상은 불완전하며 인간 또한 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이기는 첫 걸음은 바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시험이란 과연 무엇이며, 언제 시험에 빠지게 되는지, 시험에 담긴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지, 성경이 말하는 시험의 본질을 알려줍니다. 시험으로 인해 혼란스럽고 낙심한 신자들에게 자신의 상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제시하여, 막연한 두려움을 버리고 굳건한 힘과 용기를 얻도록 도울 것입니다. “시험을 이기는 길”을 보여 주다 시험의 본질을 알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자에게 주어진 전부는 아닙니다. 신자에게는 현실을 변화시킬 소망이 있습니다. 이 소망은 우리를 낳으신 하나님을 알고 신뢰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 책은 시험에 빠진 인간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만드는 질문, ‘하나님은 과연 사람을 시험하시는가?’에 답하며, 신자에게 왜 소망이 있는지, 시험 가운데 특히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 시험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제적인 지혜를 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주어진 승리를 기억하고 끝까지 인내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읽기 쉽게 감동을 담아서” 보여 주다 이 책은 시험에 관한 깊은 통찰과 지혜를 담았을 뿐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짧은 문장, 그림 같은 묘사, 박진감 넘치는 필체로 쓰였습니다. 진리를 선명하게 알려주고 그 진리에 감동하게 하는 이 책은 시험을 피할 수 없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귀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 추천합니다! 지속되는 시험 가운데 낙심하고 지친 그리스도인 인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그리스도인 든 주변 신자들을 위로하고 돕기 원하는 그리스도인 시기를 온 구성원이 함께 헤쳐 나가기 원하는 교회 및 단체, 소그룹 리더 본문 중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그의 친구를 보라.” 친구는 서로 닮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지속된 교제 속에서 서로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완전하신 그분과의 교제 안에서 지속적으로 감화를 받음으로써 온전한 사람이 되어갑니다(빌 2:5-8). 시험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좋은 방편입니다. 그때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다면 말입니다. 시험과 시련 자체에 사람을 온전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들은 수단일 뿐입니다. 시험 속에서 받는 은혜(恩惠)가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은혜 없이는 주님의 형상을 본받을 수 없습니다. 말씀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고, 기도 없이는 예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없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것을 어떻게 본받겠으며, 느끼지도 못하는 것을 어떻게 사모하겠습니까? 최고의 행복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시험을 사용하십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 변화받게 하십니다. 시험을 당할 때 오래 참아야 합니다. 이 일은 고요한 산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일어납니다. 자신이 누구냐고 묻지 마십시오. 사람들 속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이 당신입니다. _제2장 인내의 꽃을 피우라 중에서 시험의 때에는 은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탄이 활동할 기회를 얻는 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험의 때는 위험합니다. 그때 죄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합니다. 사탄의 목표는 우리를 영적으로 무장해제시키는 것입니다. 죄와 유혹에 맞서 싸울 힘을 빼앗는 것입니다. 죄와 사탄의 전략은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첫째로, 지성(知性)의 혼란입니다. 이는 생각의 혼란으로 나타납니다. 시험의 때에 제일 먼저 겪는 일입니다. 전에는 명료하고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었는데, 시험에 들면 혼란을 겪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험에 든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습니다. “휴우, 나도 잘 모르겠어.” 둘째로, 정서(情緖)의 변화입니다. 침투한 죄는 즉시 정서에 영향을 미칩니다. 생각이 죄에 굴복하면, 거룩한 정서가 사라집니다. 대신 세속적 정서가 일어나 육욕이 번성합니다. 고독과 상처, 미움과 원망 같은 감정들이 생깁니다. 마음은 죄에 친화적이 되고, 죄는 지배력을 갖게 됩니다. 셋째로, 의지(意志)의 변화입니다. 넉넉히 감당하던 섬김도 시험에 들면 힘들게 느껴집니다. 선한 의지의 힘이 약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섬김은커녕 예배 출석조차 힘겨워집니다. _제3장 지혜를 구하라 중에서 “무신론자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그래…….” 회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믿음으로 살기가 힘들다고 불평하는 교인들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혼잣말을 하고는 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15세가 되던 해에 무신론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무신론을 주장하는 문학가들과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그들의 거짓 가르침에 회의를 느끼기 전까지는 신 없이 자유롭게 사는 것이 그렇게 힘든지 몰랐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은 종교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 선택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자신에 대해 배우십시오. 시험에 대해 알고자 하십시오. 십자가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생각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은 은혜를 아는 데서 옵니다.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아는 데서 옵니다. 십자가를 아는 만큼 자신의 존귀함을 깨닫습니다. _제6장 나뉜 마음의 원인을 알라 중에서 시험을 참는 원동력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은혜를 통해 주어집니다. 사랑 없이 시험을 참을 수 없고, 은혜 없이 고통을 이길 수 없습니다. 시험을 당할 때 은혜를 간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시험으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이 무엇입니까? 단지 힘든 상황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의 때에는 한 가지에만 집중하십시오. 바로 하나님 사랑입니다. 그 사랑에서 미끄러지지 않기를 갈망하십시오. 시험과 시련 속에서 고통보다 더 큰 사랑에 감격하며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시험 중에 경건한 두려움을 가지십시오(시 77:7-9). 그것은 하나님의 품으로 파고드는 거룩한 갈망의 증거입니다(시 144:2). 인생의 바다에서 풍랑이 일어날 때, 시험의 물결을 보지 마십시오. 우리를 붙들고 계신 그리스도를 신뢰하십시오. 경건한 두려움과 사랑으로 주님과 화목하십시오. 그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힘쓰십시오. 시험을 이길 모든 힘이 오직 거기로부터 나옵니다(시 46:1). 제7장 시험을 참는 자의 행복 중에서 저자 소개 김남준 1993년 열린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으며, 총신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가르치고 있다. 청소년 시절, 실존적 고민으로 혹독한 방황을 했다. 스물한 살 때 톨스토이를 읽고 기독교에 귀의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조나단 에드워즈, 칼뱅과 존 오웬을 오랜 세월 사숙했다. 인생길에서 방황하는 이들이 기독교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사랑함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소원이다. 1997년 이래 기독교 출판문화상을 4회 수상했다(1997, 2003, 2005, 2015). 저서 중 약 40만 부가 판매된 『게으름』은 미국에서 Busy for Self, Lazy for God으로, 중국에서 『懒惰』로 번역 출간되었다. 그 외에도 『죄와 은혜의 지배』,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해왔다』, 『염려에 관하여』, 『다시, 게으름』(이상 생명의말씀사),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김영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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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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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관하여』, 김남준 목사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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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게 그림책이 들려준 말』 출간
- "저의 이야기와 제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응원이 되기를 바라며..." 그림책활동가인 최정은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 중년을 지나며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던 그림책들을 자기의 이야기와 엮어 소개하고 있다. 작가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와 함께 소개된 그림책을 당장 구해 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큰 공감을 일으키는 신간이다. 작가 최정은에 대해 하고 있는 일: 그림책활동가 일을 합니다. 어린이와는 토론 프로그램인 ‘그림책 띵톡’을 진행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책’이라는 강의로 학교, 도서관, 문화센타 등에서 어른 그림책 친구들을 만나는 일을 합니다. 그림책과 함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림책을 읽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일을 합니다. 그림책활동가로 그림책을 함께 읽고, 그림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해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 시간의 진행자와 낭독자로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감정과 모습을 알아차림 하는 참여자들의 모습을 목도하는 증인과 같은 역할을 하며 그림책이 주는 위로와 응원을 전달하는 통로의 역할에 보람을 느낍니다. 책을 쓴 동기: 긴 터널이라 시간이라 생각했던 마흔을 지나며 만난 그림책을 통해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고, 그림책 활동가의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저의 이야기와 제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응원이 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내용: 이 책은 흔들렸던 마흔의 시절에 그림책을 통해 오늘의 나를 바라볼 수 있던 이야기와 애써 모른 척 했던 어제의 나의 모습 그리고 다시 내일을 꿈꾸며 나아가는 제 이야기와 그 꿈의 길에서 만나 저와 같은 듯 다른 우리의 이야기가 쓰여 있습니다. 그림책의 주인공처럼 묵묵히 오늘을 살아가려 애쓰던 마흔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출판사 책 소개 어려워 보이는 그림책도, 사소해 보이는 그림책도, 그녀가 읽어 주면 특별한 이야기로 다가와 마음을 어루만진다. 좋은 그림책이 주는 공감과 위로의 힘을 전하며 아이와 어른들 모두에게 사랑받는 최정은 그림책 활동가의 '흔들리는 마흔'을 위한 그림책 수업. 그림책의 마음은 낡지 않는다. 어린 시절 동심의 세계부터 바쁜 일상 속에서 잊힌 우리 존재의 그림자까지, 진보하는 가치와 미래적인 상상까지, 새로운 주제를 탐색하며 경계 없이 발전하고 있는 동시대의 그림책은 성인 독자층 사이에서 조용한 인기몰이 중이다. 함께 그림책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은 부드럽게 열리고 낯설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 어린 눈을 갖게 된다. 이 책은 인생의 중간기를 통과하는 어른에게 권하는 30여 권의 그림책을 중심으로, 어두운 후회를 딛고 새롭게 시작하는 법,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보고 이해하며 성숙하게 자기를 인식하는 과정, 편안하게 주변의 관계를 가꾸어 가는 일, 새로운 꿈을 꾸고 키워가는 법 등의 주제를 담았다. 세계적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은 그림책, 심리 치료 텍스트로 검증된 고전, 신진 작가들의 새로운 시선을 담은 작품까지 고루 선정한 걸작 그림책들이 인생의 중간 터널을 잘 통과하기 위한 깊은 질문과 위로의 시간을 선물한다. 목차 머리말 1부 마흔, 다시 시작하기 2부 어린 나를 안아 주러 가는 길 3부 정원을 가꾸듯 관계도 그렇게 4부 꿈과 함께 걷는 법 5부 통로가 되다 맺는 말 그림책 목록 부록: 그림책 활동가에 대해 궁금해요 추천사 김슬기(《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 저자) 등불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주위가 너무 깜깜해 앞이 보이지 않을 때,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아 주저앉고 싶을 때, 눈부시게 화려한 빛의 잔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최정은 선생님은 그런 우리에게 빛을 건넨다. 그림책이라는 빛을 품고 묵묵히 걸어온 이 이야기는 우리 앞을 비춰 주는 따스하고 은은한 등불이다. 이봄(《영화, 여자를 말하다》 저자, 건국대 영상영화학과 겸임교수) 마흔이란 얼마나 기만적인가. 모든 것이 안정되리라 믿었던 나이, 그런데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하는 카오스 같은 질문이 찾아오는 나이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그 어둠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발견하고 만들어 간 한 사람의 개척기다. 그림책을 나침반 삼아 마흔이라는 황무지에 길을 낸 진솔한 경험담이 가슴에 뜨거운 희망의 불을 지핀다. 당신도 당신만의 길을 낼 수 있다고 두 손을 힘 있게 꼭 잡아 준다. 정해심(카모메 그림책방 대표, 《이 나이에 그림책이라니》 저자) 그림책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림책은 누군가의 삶을 만나 더 깊고 진한 향기를 지니게 된다. 저자의 삶에 아름답게 녹아든 30여 권의 그림책은 ‘흔들리는 중년’을 위로하고, 저자의 넉넉한 마음으로 자꾸만 달려가게 한다. 비를 맞아도 어깨를 펴고, 찬바람에도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갖기 위해 이 책을 권한다. 조민영(《마음이 하찮니》 저자) 한 장章이 끝날 때마다, “당신에게 ~을 읽어드리고 싶어요”라는 말에 저자의 진심이 가장 잘 녹아 있는 듯하다. 최정은 작가의 운명 같은 그림책 사랑은 자기 자신에게서 그치지 않고 그 따뜻한 마음과 음성을 통해 줄곧 타인에게로 향한다. 차고 넘쳐서 흐르는 사랑, 그것이야말로 저자가 지닌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황유진(《어른의 그림책》 저자) 최정은 선생님의 그림책 강의를 듣고, 부디 녹취해서라도 책으로 내 달라고 부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흔들려서 더 꼿꼿해지고 눈물 젖어 더 깊어진 작가의 마흔이, 그림책에 얹혀 우리를 위무한다. 무너지지만 않으면 저 너머 반드시 걸어갈 길이 있다고, 너른 품으로 도닥여 주는 책이다. 책 속으로 나는 마흔에 비를 만났다. 그것도 거대한 빗줄기가 쏟아졌다. 그저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 버티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주위 사람들의 걱정 어린 물음에 늘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나 괜찮지 않았다. 한참을 주저앉아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준호처럼 내리는 비를 맞아도 괜찮다고 알려 준 친구가 있다. 함께 비를 맞아 보자고, 함께 달려 보자고 나를 이끈 친구가 있다. 흔들리는 마흔의 나에게, 괜찮다며 이 빗속을 달려 보자고 손을 내민 친구는 바로 그림책이다. 일본의 작가 야나기다 구니오는 “인생에 세 번 그림책을 읽어야 한다. 자신이 어릴 때, 자신의 아이를 기를 때,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었을 때”라고 말했다. 아쉽게도 어릴 적에 그림책을 읽어 주시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은 기억은 없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 그림책이 거의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대학을 다니며 그림책을 처음 만났다. 주제와 연령에 맞는 우수한 교재와 교육 자료로서 그림책을 접했다. 두 번째는 아이를 양육하며 만났다. 앤서니 브라운을 좋아했던 큰아이가 즐겨 보던 책 중 한 권이 《돼지책》(웅진주니어)이다. 그 이야기 속 피곳 부인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곤 했다. 눈, 코, 입도 그려지지 않은 얼굴에, 집안일의 홍수 속에서 항상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다. 둘째가 잠자리 그림책으로 들고 온 유타 바우어의 《고함쟁이 엄마》(비룡소)를 매일 밤 읽어 주던 날들도 떠오른다. 깔깔 웃는 아이와 달리, 그림책 속 엄마 펭귄처럼 있는 힘을 다해 아이에게 고함치던 내 모습이 떠올라 가슴 한편이 아렸다. 엄마가 되어 만난 그림책은 나에게도 감정의 파도를 일으켰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며 그림책은 책장에서 밀려났고, 내 마음에서도 점점 멀어졌다. 그러다 마흔에 아이들이 아닌 나를 위한 그림책, 오롯이 내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을 만났다. (중략)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나의 마흔에게 그림책이 건네준 다정한 말들이다. 그림책을 내밀하게 만나 온 나의 기록이다. 그림책 배를 타고 마흔의 강을 건너온 여정이다.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마주하고 품고 오늘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다. 투박한 이 고백이 독자들에게 동네 언니의 이야기로 다가가면 좋겠다. 이제 막 마흔을 지나온, 당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친구가 수다 떨듯 나누는 이야기로 들어 주길 바란다. 내가 그림책으로 마흔을 지나왔듯이 마흔을 앞둔, 마흔의 길을 걷고 있는, 그리고 마흔을 훌쩍 지나온 그들에게도 작은 토닥임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머리말 중에서 출판사 서평 낡지 않는 마음을 가꾸어 가는 마흔을 위한 그림책의 시간 어려워 보이는 그림책도, 사소해 보이는 그림책도, 그녀가 읽어 주면 특별한 이야기로 다가와 마음을 어루만진다. 좋은 그림책이 주는 공감과 위로의 힘을 전하며 아이와 어른들 모두에게 사랑받는 최정은 그림책 활동가의 ‘흔들리는 마흔’을 위한 그림책 수업. 그림책의 마음은 낡지 않는다. 어린 시절 동심의 세계부터 바쁜 일상 속에서 잊힌 우리 존재의 그림자까지, 진보하는 가치와 미래적인 상상까지, 새로운 주제를 탐색하며 경계 없이 발전하고 있는 동시대의 그림책은 성인 독자층 사이에서 조용한 인기몰이 중이다. 함께 그림책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은 부드럽게 열리고 낯설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 어린 눈을 갖게 된다. 이 책은 인생의 중간기를 통과하는 어른에게 권하는 30여 권의 그림책을 중심으로, 어두운 후회를 딛고 새롭게 시작하는 법,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보고 이해하며 성숙하게 자기를 인식하는 과정, 편안하게 주변의 관계를 가꾸어 가는 일, 새로운 꿈을 꾸고 키워가는 법 등의 주제를 담았다. 세계적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은 그림책, 심리 치료 텍스트로 검증된 고전, 신진 작가들의 새로운 시선을 담은 작품까지 고루 선정한 걸작 그림책들이 인생의 중간 터널을 잘 통과하기 위한 깊은 질문과 위로의 시간을 선물한다. 대학에서 기독교교육학을 전공했고, 마흔에 다시 만난 그림책에 빠져 10년째 그림책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도서관, 학교, 복지관 등에서 어린이 토론 프로그램 ‘그림책 띵톡(Think and Talk)’을 진행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책’이라는 강의로는 어른 그림책 친구들을 만난다. 또한 그림책 활동가 코칭을 통해 예비·초보 활동가들을 돕고 있다. 그림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를 꿈꾸며 하루하루 걷는다. 공저로 《비주얼 씽킹, 스토리로 말하라》(이비락)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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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게 그림책이 들려준 말』 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