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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3】 전 법관의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나의 일상을 풍요롭게 채우는 건 어떤 의미인가, 다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사람과 사회는 바뀔 수 있는가. 자작나무에서 지리산으로, 도스토옙스키에서 몽테스키외로, 일상에서 재판까지. 호의는 사람을,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받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주라던 김장하 선생과의 추억, 법을 몰라 손해 보는 이들을 헤아리는 마음, ‘자살’을 시도했던 재소자가 ‘살자’는 다짐을 하게 만든 선물,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속절없이 흘리는 눈물, 그리고 건강한 법원과 사회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교보문고 계엄을 도모했던 윤석열을 단죄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쓴 책으로 가볍게 읽을만하다. 착한 사람을 위한 법 2001. 4. 22. 법 없이 살 사람 착한 사람을 일컬어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들 한다. 법의 강제 없이도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사람이란 뜻이리라. 과연 착한 사람에게 법은 필요 없는 것일까?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 나는 법이 어떠하다고 정의할 만큼 경력도 풍부하지도 않고 타고난 재주도 없지만, 1983년 법학을 전공한 이래 지금까지 18년을 법과 함께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그런 점에서 나는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착한 사람일수록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p. 19). 종종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가곤 하는데, 거기서 늘 하는 말이 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나에게 힘써달라고 전화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 나에게 법을 물어보라." 도대체, 전 재산과 다름없는 300만 원을 전세금으로 걸면서 그 집이 경매 중인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계약하는 사람을 누가 구제해줄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은 대개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야, 집주인을 사기죄로 고소했으니 수사 기관에 힘 좀 써서 집주인을 즉시 구속시켜 달라고 법조인에게 전화를 한다. 법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보장적 기능이다.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고 거기에 저촉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측면이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이 빛을 발한다. 다른 하나는 보호적 기능이다. 그러나 법의 이러한 보호적 기능도 경매 절차에서 배당 요구를 하는 임차인이나 노동자에게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유의하여야 한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은 초라하기만 하다. 착한 사람부터 법을 알자 판사로서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착한 사람은 법을 모르(p. 20)고, 법을 아는 사람은 착하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 사건일수록 해결이 어렵고, 착한 사람을 보호하고자 궁리를 해보나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착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고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법을 아는 사람에게 착하기를 요구할 것 인가? 불가능은 아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남는 방법은 착한 사람이 법을 아는 것이다. 그 길만이 법이 나쁜 사람을 지켜주는 도구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지름길이다(p. 21). 형사 재판 잘 받는 방법들 중 2006. 12. 19. 진술 거부권 행사 자기에게 불이익한 사실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 및 형사 소송법에서 보장된 피고인 및 피의자의 권리입니다. 따라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불이익한 사항에 대하여 질문을 받을 때 진술을 거부하면 되겠습니다. 괘씸죄가 걱정된다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되겠습니다. 이것이 모순되거나 불합리한 답변을 하는 것보다 유리합니다. 답변 방식 법정에서 판사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할 때는 결론을(p. 45) 먼저 말하고 이유를 나중에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판사는 질문을 통하여 사건의 윤곽을 파악 하려고 하므로, 판사에게 결론을 먼저 말함으로써 판사가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인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판사는 여러 각도에서 사건을 살피기 위하여 다양한 질문을 하는 것이므로, 설령 질문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 일지라도, 판사가 상대방의 편을 든다고 섣불리 생각하지 말고 정중하게 답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판사는 피고인의 진심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p. 46). 민사 재판 잘 받는 법 2007. 5. 17. 오늘 재판을 하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민사 재판 잘 받는 방법을 적어보았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소송을 하려면 어려운 일이 많으므로 형편이 허락한다면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였다고 해서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맡길 것이 아니라 수시로 소송 진행 정도를 확인하고 대응 방안을 함께 의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p. 61). 준비 서면을 간단명료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할 경우 법무사의 도움을 받거나 본인이 직접 준비 서면을 작성해야 할 터인데, 이때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준비 서면이라는 것은 당사자의 주장에 불과하므로 아무리 유리한 내용을 적어놓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인정받기가 어려운 반면, 불리한 내용은 별도의 증거가 없더라도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따라서 준비 서면은 간단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증거가 뒷받침되는 내용일 경우 명료하게 주장을 펼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준비 서면에 상대방을 비난하는 내용을 적을 경우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해롭다는 것입니다. 재판이라는 것이 당사자의 도덕성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고, 뚜렷한 증거 없이 상대 방을 비난할 때 판사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준비 서면에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하여 적어내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재판부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노고를 덜어주는 것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p. 62). 소송의 승패는 증거에 달려 있습니다 민사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흥분할 필요 없이 차분하게 증거를 수집하여 제출하는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증거로는 애초 사건이 있었을 때 작성된 서류, 특히 상대방이 서명 또는 날인한 서류가 가장 효력이 강하고, 그 다음으로 제3자가 작성한 서류가 효력이 강합니다. 증인의 증언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법정에서는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도 법정에서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실정이므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는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에 그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정 또는 화해를 권유받았을 때는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재판을 하다 보면 어느 당사자의 주장이, 설득력은 있으나 증거로 뒷받침 되지 않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법적 관점으로만 해결할 경우 어느 당사자에게 더 가혹하기도(p. 63)합니다. 이길 승산이 있어 보이나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법원은 당사자에게 조정 또는 화해를 권고하는 데,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조정 또는 화해 절차에서는 집행에 관한 내용을 반영할 수도 있으므로 이러한 점에서도 조정 또는 화해의 효용은 높습니다. 증인 신문을 할 때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정에 출석한 증인을 상대로 질문을 할 경우 "거짓말쟁이다" "양심도 없느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차분하게 증언의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상대방이 질문하는 내용을 (미리 받을 수 있습니다) 검토하여 허점을 정리했다가 법정에서 질문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람 턱없이 부족한 내용일 것입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소송을 잘해서 이길 사람이 이기는 재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p. 64). 문제가 터지고 나서 소송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은 문제가 터지기 전 검토를 충분히 하는 것입니다. 몇 천 만 원이 오고가는 계약을 체결할 때 변호사나 법을 잘 아는 사람에게 비용을 들여서라도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길게 볼 때 비용이 더 적게 듭니다(p. 65). 책을 읽는 이유 세 가지 2010. 2. 16. 책을 많이 읽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고전을 읽은 적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 보니 문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투리는 말을 안 하는 것으로 감출 수 있었지만 무지는 감출 방법이 없었다. '장 발장'이 《레미제라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읽었다(p. 108). 무경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판사가 되고 보니 사건을 이해하기엔 내 경험이 너무 좁고 얕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도대체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거액의 거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잡히면 처벌받을 게 뻔한 일을 왜 되풀이하는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경험을 늘리려고 해보니 이 또한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장 법관 윤리가 문제였다. 그래서 생각해본 것이 두 가지다. 지금은 언론사 사장이 된 어떤 분이 사법연수생이었던 나에게, 법조인이 되면 초등학교 동창생과 꾸준히 만나라고 당부했던 기억이 떠올라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1년에 몇 회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때로는 부부 동반으로) 만났으니 어느 정도는 실천한 셈이다. 두 번째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장르를 구분하지 말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어보자 하였던 결심이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다. 무소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었다. 남녀 공학 중학교 시절 소풍(p. 109)을 가서 선생님의 권유에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를 까먹어 끝을 맺지 못할 정도로. 그때 불렀던 노래가 남진의 〈님과 함께〉였다. 고등학교 때는 교복이 중고라서 반장을 하지 못했다. 대학교 가서는 사투리 때문에 남 앞에 나서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무슨 결정을 하려면 무척 어려웠다. 결정을 하고 나면 곧 후회를 하게 되고. 어느 날, 내성적인 이유가 소신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군대에서 정훈장교를 하게 되었고 정훈장교 하는 일이 장병 교육이다 보니 남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해소된 뒤라서 그런 결론을 더욱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앞서간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서로 맞추어보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 단단해져 소신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포함해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사족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이 누구와 만나고 무슨 책을 읽는지 말해달라."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p. 110). 혼돈의 시기에 그나마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친구와 책 덕분이라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 감회가 남다르다. 모든 분들에게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p. 111). 책을 고르는 기준 2010.6.26. 책을 어떻게 고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저자를 보고 고른다 어떤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면 그 저자가 쓴 책은 눈에 띄는 대로 사서 읽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면 고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 단 한 번》을 읽고 《축복》 《살아온 기적 살아 갈 기적》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는 식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저자는 다음과 같다. 신영복 교수, 정 민 교수, 유시민 전 장관, 소설가 김 훈, 오지 탐험가 한비야,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열하일기》 전문가 고미숙 박사(p. 124). 주제어를 보고 고른다 제목이나 문장을 검색하여 관심 있는 주제어가 들어간 책을 고른다. 요즘 즐겨 찾는 주제어는 다음과 같다. 정의, 소통, 성찰, 역사, 철학, 인생, 여행, 행복. 이런 기준으로 고른 책은 다음과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 《서양철학사》 《인도 여행》 《행복의 정복》 《무지개 원리》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등. 책 선택에 실패한 적은? 이런 기준으로 책을 골라 읽으면서 후회할 때가 제법 있다. 그러나 산 책은 다 읽는다. 재미가 없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책에 대하여는 독후감을 쓰지 않음으로써 복수를 한다. 블로그에 올린 책은 이중으로 검증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 지금껏 읽은 책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천 권 정도 될 것 같다. 책을 고르는 장소는?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여 고르는 경우가 많고 가끔 서점에 가서 고른다. 베스트셀러 항목과 새로 나온 책 항목을 많이 참조한다(p. 125). 블로그에 독후감을 쓰는 이유는? 독후감을 쓰다 보면 책 내용을 정리하는 효과가 있고, 글쓰기 훈련이 되며, 블로그에 저장해놓으면 다른 글을 쓸 때 인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은 있어도 나쁜 책은 없다. 어떤 책에서도 스승 또는 반면교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께 독서를 권한다. 책이 여러분을 끌어올려줄 것이다(p. 126). 왕후박나무 2011.4.1 남해군법원 다녀오는 길에 경남 남해군 창선면 왕후박 나무를 만났습니다. 500년 이상 되었다고 합니다. 둘레에는 동백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합니다. 주로 방풍용으로 많이 심는다고 합니다. 남해군 창선면에 있는 왕후박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9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왕후박나무는 높이 솟구치지 않고 옆으로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도 500년을 버틴 게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자신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p. 140). 조영남의 노래가 있죠. 〈겸손은 힘들어〉. 그렇죠. 겸손은 힘듭니다. 공자 이래 2천 년 동안 성현들은 겸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겸손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습니다(p. 141). 조정에 임하는 자세 2013.4.28. 조정이란 조정은 법률 분쟁이 생겼을 때 판사의 판결이 아니라 당사자 간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를 말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법원에 접수된 사건 중 판결까지 가는 사건은 10퍼센트가 되지 않고 대개는 조정을 포함한 여러 가지 간이한 방법을 통하여 사건을 처리한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조정은 이길 사람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길 사람이라는 건 미리 정해진 것은 아니고 재판 절차를 통하여 증거를 대고 법리를 세워야 하고 그것으로 판사를 설득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대법원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다(p. 188). 그리고 1천만 원을 받기 위하여 소송 비용으로 500만 원을 들여야 한다면, 700만 원을 받고 소송 비용을 100만 원 선에서 지출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사건에 관하여 가장 절실한 이해관계자는 판사도 아니 고, 변호사도 아니며, 결국 당사자다.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람도 당사자일 수밖에 없으므로, 당사자의 주도권이 가장 잘 보장되는 조정 절차가 불합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정에 임하는 자세 양보해야 한다. 조정은 당사자 간의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고 대체로 당사자는 서로 이해관계가 상반되므로 양보를 해야 조정이 성공한다. 본인이 참석해야 한다.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한 경우라도 조정 절차에는 본인이 참석하는 것이 좋다. 판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상대방의 입장을 직접 들을 수 있으며,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상생하는 방법도 있다. 본인에게 크게 불리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크게 배려하는 방법도 있다. 상대방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쟁점에 관하여 양보하더라도 본인에(p. 189)게 크게 불리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므로,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집행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소송을 하는 종국적 목적은 대체로 승소 판결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돈을 받아내기 위함이다.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더라도 집행 절차에서 돈을 받아내는 비율은 생각보다 낮다. 조정 절차에서는 돈을 받아내는 방법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으므로 유리하다. 원고는 5천만 원을 고수하고 피고는 3천만 원을 고집할 경우 4천만 원 선에서 타협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때로는 5천만 원으로 정하되 3개월 내에 3천만 원을 가져오면 나머지 2천만 원을 포기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싸우는 것은 금물. 간혹 조정실에서 상대방과 말이나 몸으로 싸우는 사람이 있다. 사연이 있겠지만 판사 입장에서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자신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자리를 어렵게 마련했는데 불만을 터트리는 자리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다. 그 사건이 해결 되지 않을 경우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은 판사도 아니요 변호사도 아니요 바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판사의 설명에 귀 기울인다. 법원이 조정 절차를 주도하(p. 190)는 경우 판사로부터 사건 전반에 관한 설명을 듣게 된다. 판사는 내가 불리한 점, 내가 유리한 점을 나누어 설명할 것이다. 잘 들으면 판사가 생각하는 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2심이라면 사건 처리 방향이 대부분 결정되었다고 보면 된다. 민사 사건의 경우 대법원에 상고를 해서 2심 판결이 깨지는 비율이 10퍼센트가 안 된다는 점, 사실 인정은 원칙적으로 2심에서 하게 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2심 재판부의 결론은 존중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내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좋다. 마무리(롯데자이언츠의 마무리는?) 집안에 송사가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적당한 선에서 털고 나오는 것도 마음의 평화를 찾는 좋은 방법이다. '조금 손해 본 것은 다른 일을 해서 보충하면 된다.' 이런 생각으로 조정에 임할 수는 없을까요?(p. 191). 재판 속의 문학 내가 현실에서 맡은 재판은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다(p. 304).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문학이 재판에서 많은 것을 차용하지만 재판은 문학에서 차용하지 않고 순수함을 고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판사는 많은 경험을 해야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제한적인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문학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문학은 보편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고, 재판은 구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며, 양자는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판사들이 다 가난했던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훈의 《흑산》을 읽고 나면 가난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배고픔을 면하자면 오직 먹어야 하는데 많은 끼니 중에서도 지금 당장 먹는 밥만이 배를 채운다는 내용이 그렇다. "아침에 먹은 밥이 저녁의 허기를 달래줄 수 없으며, 오늘 먹는 밥이 내일의 요기가 될 수 없음은 사농공상과 금수축생이 다 마찬가지다." 내가 10년 전 처리한 사건 중 20대 청년이 공무집행 방해죄로 구속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생모라고 밝힌 사람이 탄원서를 보냈다. 오래전에 헤어진 아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자신이 책임지고 선도를 할 테니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p. 305). 재판을 하며 방청객을 둘러보니 유난히 눈에 띄는 분이 있었다. 피고인석 옆에 앉아 대화를 하게 하였더니 피고인을 껴안으면서 "이제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라고 말했다. 피고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생모와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였다. 생모를 만났으니 이제 마음을 잡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집행 유예 판결을 선고했고, 피고인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그 책 한 쪽을 읽어주었다.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다. 내가 10년 전에 처리한 사건 중에 피고인이 자살을 하려고 여관에 불을 질러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불은 크게 번지지는 않았고 다친 사람도 없었다. 선고하는 당일 피고인에게 자살을 열 번 외치게 하였다. "자살자살자살자살.... 이렇게 열 번 하면 본인은 '자살' 이라고 말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살자'로 들립니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실패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살에 실패해서 살았지 않았습니까?" 그러고서 피고인에게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49가지》란 책을 선물했다. 나는 이런 재판을 하게 된 배경 중 8할이 문학 덕분이라고 생각한다(p. 306).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어쩌면 좋은 문학과 좋은 재판은 그 모습이 모두 비슷할지 모른다.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질문할 때, 주제와 이야기가 딱 들어맞을 때 독자들은 감동한다. 판사들이여!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가 영국의 대법관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작가들이여! 긴장하시라. 대한민국의 판사도 또 다른 '유토피아'를 쓸지 누가 알겠는가?(p.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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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2】 죽음을 늘 준비하며 살자
KBS 《아침마당》, 《강연100℃》 등에 출연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공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의 에세이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 극심한 암성 통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임종 선언을 했던 저자 김여환.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꼼꼼히 기록한 이 책은, 삶이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을 위해 더없이 소중한 오늘을 ‘있는 힘껏’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교보문고. 이 책은 호스피스 의사가 수많은 죽음을 보고 삶과 죽음에 대해 느낀 것을 쓴 것이다. 많이 유익했는데 현재 절판됐다. 사람의 일생 중 가장 힘든 시기는 보증을 잘못서서 거액의 부도를 냈을 때나 남편이 바람을 펴서 이혼할까 말까 망설일 때가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인생의 반전 같은 일말의 빛조차 기대할 수 없는 시간들, 즉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의 '짧은 삶'이다. 그 시기를 잘 보내야만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온전한 나의 인생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야만 남겨진 사람들의 인생도 편안해질 수 있다(p. 8). 그렇다. 나는 이 세상에 남들보다 조금 먼저 작별 인사를 건넨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토록 자명한 삶의 진리를 힘겹게 깨달았다. 만약 우리에게 내일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면, 오늘 우리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내일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면, 한 번 더 사랑한다 말하고, 한 번 더 안아주어야 하며, 오늘 깃든 행복을 있는 힘을 다해 누려야 한다. 이렇게 수많은 '오늘의 삶'이 모일 때 삶의 아름다운 결과물은 비로소 완성 된다. 그러므로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라는 말에 숨어 있는 참된 의미는 오지도 않은 내일에 대한 불안과 분노, 두려움과 슬픔에 오늘의 행복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더 사랑하고, 오늘 더 행복해야만 한다(p. 10). "2012년 8월 21일 12시 42분, 신복연 할머니는 사망하셨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더 이상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통증 없이 편안히 좋은 곳으로 떠나셨다는 위로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짤막한 사망 선언 뒤에는 언제나 그 마지막 순간을 지키고 있던 가족의 대성통곡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오늘은 조용했다(p. 22). 할머니의 둘째 딸이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우리 엄마가 평소에 유언을 했어요. 내가 떠나면, 울지 말라고. 자식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뒤 돌아보느라 떠나는 것이 힘드니, 울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아...하여간 대단하세요. 입원 내내 웃지 않으신 날이 없었는데, 그런 아름다운 유언까지 하신 줄은 몰랐어요. 제가 들어본 유언 중에 가장 훌륭한 유언인 것 같아요." "과장님, 그렇죠! 우리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이제 꽃 한 송이가 지는구나, 했다니까요." 곱게 아껴두었던 꽃분홍색 한복으로 갈아입고, 흰 양말까지 정갈하게 신은 신복연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살아 있는 그 누구보다도 따뜻해 보였다(p. 23). 짧은 글 한 편을 쓸 때에도 마지막에 무슨 말을 쓸까를 생각하면서 쓰면 글의 흐름이 매끄러워지듯이, 인생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고 살다 보면 들쭉날쭉한 인생이 일관성 있게 변한다. 타인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자기 자신과 먼저 소통해야 한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과 소통하면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p. 25). 자신과 만나려면 가장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임종실은 부끄럽지만 가장 볼품없고 꾸밈없는 자신의 민낯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은 바로 '나의 마지막'이라고(p. 26). "호호호, 난 아직 여기 입원할 단계는 아닌 걸요." "아직은 마약성 진통제를 쓸 만큼 아프지는 않아요." "며칠 전에도 산에 다녀올 만큼 괜찮았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멀쩡하게 걸어 들어오는 말기 암 환자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해 보이는 말기 암 환자들이 한두 달 뒤에는 누런 황달이 오거나 폐렴이 와서 황망히 떠나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남겨진 시간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그 짧은 시간에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칠순 잔치를 하든지, 마지막 콘서트를 하든지, 이혼한 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들을 찾아주는 일들 말이다. 그래도 나도 한 번쯤은 환자를 살려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죽는다고 포기했던 말기 암 환자가 완치되는 일이 우리 병동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환자들은 입원해서 퇴원(p. 45) 할 때까지 평균 27일을 살았다. 호스피스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역시 기적이란 부질없는 비현실적인 희망이라는 것을 확신 하게 됐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슴 저리게 갈구하기도 하고 신에게 떼를 쓰며 의지하기도 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겠지만,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 훤히 보이는 나로서는 그렇게만 하다가 환자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런 애절한 생각을 할 시간이 있으면 조금밖에 남지 않은 삶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오랜 경험을 통해 내린 슬픈 결론이었다. 사람이 좀 민민하고 삭막하게는 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옳았다(p. 46).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다. 푸시시한 구차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낼 때쯤이면 원치 않았던 현재 시간이 살다 남은 찌꺼기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약한 정신 때문이 아니라 몸이 약해지기 때문에 마음까지 통째로 흔들린다. 심지어 어떤 환자는 "잠자듯이 가는 그런 약 있잖아."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말기 암 환자가 안락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p. 56). 비참한 마지막은 말기 암에 걸린 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다 남은 삶이라고 쓰러져버리는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떠날 사람은 남아 있을 이를 위해 조금 남은 삶을 성실히 살아가고, 남아 있을 사람은 떠날 이가 세상에서 사랑받다가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노력하면 서로 덜 힘들다. 처음과 마지막까지, 모두가 촘촘히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p. 58). 세상은 가벼움과 무거움이 서로 경계를 불분명하게 가른 채 섞여 있다.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가볍고,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무겁다. 그렇게 어우러져서 세상은 좀 더 좋게 변한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오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선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고함을 지르고 입원실 바닥에 소변을 보는 한 할아버지 때문에 사흘 밤낮 동안 시달린 환자들이 하소연을 했다. 할아버지를 간병하던 할머니는 "환자가 병원에 자러 왔나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진정제도 못쓰게 하고 1인실로 가지도 않았다. 그런가 하면 뇌종양에 걸린 12살짜리 소녀는 과자를 들고 병실을 누비며 "아저씨, 빨리 나으세요."라고 하면서 환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한 신문 기자가 말기 폐암 환자에게 물었다(p. 67). "인생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해주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후덕하게 생긴 환자는 가지고 있던 옷가지며 살림살이를 싹 정리할 정도로 죽음을 잘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쓸쓸하게 대답했다. "저는....그런 것은 선배가 되고 싶진 않은데요." 그렇다. 죽음이란 일평생을 별 탈 없이 살다가 90살이 되어 마음 독하게 먹고 미리 준비해도 어려운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닥뜨리는 죽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많이 돌본 의사로서 한 가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이 먼저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남은 사람들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나 때문에 끼니를 거를까 봐, 나를 잃은 슬픔으로 행여 병이라도 생길까 봐, 경제적으로 힘들까 봐 등등.... 그들은 사소한 걱정을 몰래 했다. 남은 사람들은 그 마음을 알까? 임종실은 섞일 수 없는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고, 살아남은 이들이 비통함에 눈물을 흘리는 작은 방이다. 그러나 그곳을 거(p. 68)쳐 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존재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사랑하는 이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라고(p. 69). 예전에 나는 보기조차 딱할 만큼 남을 부러워했다. 뚱뚱할 때는 날씬한 사람을, 늦게 시작한 의사 생활이 비참하다고 느껴질 때는 처음부터 순탄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동료를 얄밉도록 부러워했다. 누군가는 잘된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인생의 꿈도 생기고 삶을 개척할 의지도 생긴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 부러움이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계기는 되었을지라도 그 과정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이제 내가 진실로 부러워하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했거나, 예쁘고 날씬하고 건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어떤 삶이 자신에게 다(p. 92)가오더라도 묵묵히 잘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그 자체로 당당하게 살아내는 사람이다. 우리는 저마다 지닌 인생의 향기가 따로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말자. 인생의 마지막에는 행복했던 자신의 과거조차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 시간에는 그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나만의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이 온 것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아쉬운데, 여러 가지 잣대로 부러워하면 병들어 있는 자신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부러워하지 말자, 그대여! 인생이 아파도 마지막까지 이 세상을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내야 한다(p. 93). 불행히도 호스피스에는 죽음을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는 묘약 따위는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들어주면 조금은 가벼워졌고, 끝까지 끈을 놓지 않고 가는(p. 108)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평범한 사실에 평안을 찾아갔다. 대식 씨의 어머니처럼 때로는 버리는 것보다 안고 가는 것이 더 홀가분한 인생도 있다. 그러니까 결국 안고 가는 사람, 버리고 가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p. 109). 잘 죽어가기 위해 우리가 정말 배웠어야 할 것은 죽음의 5단계를 외우거나 혼자서 관 속에 들어가 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p. 112) 아니다. "저는요, 이미 죽음을 다 받아들였어요."라고 말하면서 의젓하게 지내다가 진짜 마지막이 다가오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기보다는 결과물이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신산스럽고, 일상은 상처와 갈등의 연속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얼마만큼 잘 녹여내느냐에 따라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을 마지막 날은 달라진다(p. 113). 어쩌면 인생은 쓰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저절로 쓰이는 소설책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내야 한다. 죽을 만큼 괴로워도 직접 해봐야 삶에 대한 사랑이 깊어진다. 사람들은 인생이 힘들어지면 앞으로 남은 여정이 얼마나 끔찍해질지 더 두려워한다. 남은 인생이 지금보다 더 불편해지더라도 초조해하거나 원통해하지 말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대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살이라는 '고의로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를 생각할 만큼 견딜 수 없이 힘들다면 적극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아무 상관도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조차 알려야 한다. 마음의 피눈물은 말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 애써 고통을 삼키지 말자. 누구라도 도와줄 사(p. 120)람을 찾아다녀라. 자존심 따위 내세울 때가 아니다(p. 121). 치통이 아무리 심해도 한꺼번에 진통제를 다섯 알씩 먹지는 않는다. 통증을 잡으려다 사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타이레놀도 하루에 여섯 알을 초과하면 진통의 효과는 증가하지 않고 간에 부담만 준다. 이렇게 일반 진통제는 일반적으로 정해져 있는 용량을 초과하면 통증에 대한 효과보다는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해지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용량의 한계가 있다. 이것을 약의 천장 효과(ceiling effect)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천장 효과가 없는 약이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많이 쓰이는 마약성 진통제이다. 그것은 일반 진통제와 달리 많이 쓰면 쓸수록 통증이 잘 조절된다. 더군다나 날록손 (naloxone)이라는 해독제까지 있으니 '모르핀'이야말로 신이 세상을 떠날 때만은 아프지 말라고 인간에게 특별히 내려준 '마지막 선물'이다. 사망 원인 1위인 암은 사람이 떠날 무렵에 부쩍 커진다. 암(p. 129)덩어리가 커지면 정상 조직을 파괴하는 묵직한 암성 통증도 당연히 심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일찍부터 진통제를 쓰기 시작하면 통증이 가장 극심한 마지막 순간에는 정작 쓸 수 있는 약이 없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모르핀을 최후의 약으로 넘겨 두었으면 하고 부탁까지 한다. 그러나 통증에 관한 한 모르핀은 쓰면 쓸수록 효과가 있는 약이다. 이러한 마약성 진통제의 비밀을 알려주면 누구나 "진짜 그런 약이 있나요?" 하고 물으며 신기해한다. 환자나 보호자는 어차피 살릴 수 없다면 고통 없이 떠날 수 있다는 확신만으로 가느다란 희망을 갖는다. 모르핀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보다 더 끔찍한 암성 통증에서 해방시켜주는 이로운 약제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좀 더 정확하게 모르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아직도 말기 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모르핀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거부하면서 의미 없는 통증에 시달리다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의 마지막 의사로서 당부한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때가 오면 신이 내린 선물, 모르핀을 거절(p. 130)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통증이 없으면 죽음의 맨 얼굴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고, 고통 없는 죽음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을 것이다(p. 131). 내일 도사리고 있는 재앙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살아감 속에 죽어감의 흔적을 묻히는 것이다. 내일이라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오늘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심코 거칠게 한 말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지도 않을 비겁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너무 많이는 양보하지 말자(p. 163).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가족 간의 갈등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 갈등은 확대된다. 문제의 중심은 늘 '사랑과 돈'이다. 거기에 종교적인 문제가 곁들여지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p. 174). 살다 보면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만 해도 짧은 인생인데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 큰 손해를 볼 것만 같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매 순간 저마다 해야 할 일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훤히 보이고 그때 용기 내어 그 일을 하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것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기도, 또 속절없이 짧기도 하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실수 없이 하려면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하면서 견뎌보는 것쯤은 각오해야 한다(p. 187). 웰다잉(well dying)은 삶의 완성이 아니라 삶의 결과물이다. 누구나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은 더군다나 아니다. 저마다 주어진 힘든 삶을 잘 살아내야만 누릴 수 있는 삶의 마지막 축 복인 것이다(p. 203). 죽음을 깊숙하게 연구하고 싶어서라든지 내 성격이 원래 우울해서 호스피스 의사가 된 건 아니다. 나는 호스피스 일을 해오는 동안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도 죽음에 이르기 직 전까지는 살아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누구도 아프지 않게 하루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거창한 죽음의 여의사가 아니라 그저 생명의 에너지가 다 할 때까지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의사로서 당연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름이 주는 거부감 때문에 국내 암 환자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국내 사용량은 모르핀으로 환산했을 때 환자 1인당 연간 45mg에 불과하다. 미국 693.44mg, 영국 334.52mg은 물론 세계 평균 58.00mg보다도 낮다. 통증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안 쓰는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아프면서 죽어간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죽음이 삶의 종착역인지 따위는 일단 환자의 통증을 덜어준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암 환자의 통증은 당사자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출산의 고통이 10점 만점에 7~8점이라면 암 환자의 통증은 10점 이상도 간다.암성 통증은 암이 진행되는 생명의 마지막에는 더 심해지고, 그(p. 215)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환자와 가족을 더더욱 애타게 한다(p. 216). 인생을 산다는 것은 세상에 놓인 하나의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하지만 그저 다리를 건너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세상의 아름다움은커녕 다리를 뒤흔들 고통과 혼돈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뜨거운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자기 삶의 아웃사이더가 되어보기를. 삶이 끝난 뒤에 죽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죽음이 있음을 알아차리기를,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게 되기를 바란다(p.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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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1】 삶의 찌질함과 누추함에 대하여
산문집 《연중무휴의 사랑》과 《헤아림의 조각들》(2023년 문학나눔 선정도서)로 2030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임지은이 신작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전작에서 냉철하고, 때론 따뜻한 연민과 너른 헤아림을 보여줬다면 이번 산문집에서는 작가 자신의 깊은 내면에 숨겨진 질투와 열등감, 욕망과 좌절, 위선 등의 감정을 진솔하게 마주해본다. 누구나 한번쯤 특별한 이유 없이 무언가를 미워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싫음’이라는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숨기고만 싶은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들여다볼수록 작가는 거기에 어떤 선망이나 외로움,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편으론 자기가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을 돋보이게 하려는, 서툰 사랑의 마음이기도 했다. 작가는 슬픔과 기쁨과 외로움이 버무려진 이 “혼탕과 같은 삶”에 깊게 몸 담그며, 미움과 사랑 사이의 낙차를 발견한다. 엄마를 통해 흉보는 마음과 사랑이 때론 붙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온 세상과 자기 자신을 고루고루 아낌없이 사랑한다는 사람들 옆에서 홀로 투덜거리며 자신의 ‘싫음’을 통해 타인의 ‘싫음’ 또한 이해하게 되는 세계를 경험한다. 좋은 것은 당연하게 제 것이라 누리는 동거인에게 꼬인 마음이 드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 수긍하기까지의 내면의 갈등과 고통을 인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지만,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을 톺다 보면 이 책을 추천한 오은 시인의 말처럼, “곡절 없이 좋아하는 것들을 몇 곱절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곧 있으면 닥쳐올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직진하는 용기가 느껴지는 책이다.-교보문고 자신의 찌질함(?)을 드러내는 글을 보며 저자의 용기를 본다. 만족스럽지 않은 환경 가운데서도 살아볼려고 하는 저자의 몸부림(?)에 박수를 보낸다. 이토록 많은 말이 오가는 세상에 말 한마디가 그토록 크게 사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고야 만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버티고 또 흔들릴 만큼 나는 취약 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흔드는 게 무작정 나쁘다거나, 사주는 믿을 만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나를 흔들던 말 또한 나를 이쪽으로 데려왔음을, 내가 무언가를 그 안에서 발견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밤 안도 속에서 깨달은 건 나를 격려해주는 이가 없어도, 심지어 누가 나를 흔들어놓고 수면 아래로 밀어 넣는다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생겨난 불안과 슬픔과 무력감, 또 그에 따른 오기와 반발심을 동력 삼으며, 나는 내 안에서 끝내 살아남은 무언가를 마주했다. 어쩌면 그(p. 25)것이 그리도 중요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나 흔들렸다는 사실 또한. 그러므로 물음에 대한 답은 추가되고 갱신된다. 어쩌다 작가가 되었을까? 나는 끝내 작가가 되고 싶었다(p. 26). 오늘날에는 자신을 돌보는 법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그런 정보의 과잉은 때론 상처도 불행도 없어야 한다는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건 꼭 완두콩 한 알 만큼의 불편도 용인하지 않기 위해 고안된 듯 보이니까. 혹시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은 것만 주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걸까? 그렇게 해야만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건 좀.. 부자연스럽지 않나? 그래도 그런 정보들을 일찌감치 알았다면, 그래서 내 부모가 조금 더 자신을 돌보았다면 그들에게도 내게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내 부모도 조금은 덜 힘들었을 텐데. 나도, 조금 덜 우는 사람이었거나 조금 더 마음 놓고 우는 사람으로 자랐을 텐데. 어쩌다 한 번 하는 우리의 외식도 지금보다는 더 편안할 텐데(p. 103). 뒤늦게나마 나는 내게 좋은 것을 주는 법을 배우고 또 연습한다. 가능한 선에서 질 좋은 걸 산다. 누가 뭘 해주면 사양하지 않고 받는다. 목돈을 모아 요가를 등록하고 되도록 병원을 제때 간다. 때론 근사한 데서 밥을 먹기도 한다. 부모로선 잘 모를 좋은 걸 누려도, 스스로를 이기적이라 느끼지 않으려 이를 악문다. 동거인이 놀리는 걸 보면 갈 길이 먼 것 같지만, 나는 나를 보살피는 훈련을 거듭한다. 그래야 부모를 포함해 그 누구라도, 나를 챙기느라 그 자신을 뒷전으로 두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나에게 최선을 다해준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이해할 수 있다. 동거인의 캠핑을 따라가는 건 훈련의 일환이다. 캠핑을 가면 동거인이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해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뻔뻔하게 앉아서 쉰다. 겨울에는 가끔 엄마의 개도 캠핑에 데리고 간다. 텐트 안에서 개는 한 뼘의 볕이 있는 자리에 자기 몸을 두기도 하고, 난로 앞 조금 더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고 웅크리기도 한다. 주어진 데서 기어이 제 몸만큼의 좋음을 찾아내는 것이다. '너는 바로 아는구나'(p. 104). 내가 오래 걸려 배운 걸 개는 그냥 해낸다. 기특하고 근사한 개 같으니. 몇 년 전가지만 해도 그런 광경, 자신이 괜찮아지는 위치를 미리 알아두고 스스로를 거기 놓는 존재 앞에서는 마음이 볼썽 사납게 흐트러지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웅크린 개를 빤히 바라본다. 걷는 법을 모르고도 걸었고 숨 쉬는 법을 모르고도 숨 쉬었다. 사랑 하는 법을 모르고도 사랑했고 사는 법을 모르고도 살았다. 나를 키워낸 내 부모처럼, 언제나 모르면 모르는 대로 해내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배우면 배우는 대로 더 해내게 된다. 그걸 안 뒤로 나는 배우고 싶은 모든 걸 조금 더 오래 본다. 그럼 볕을 받아 털끝 하나하나가 빛나는 작은 개의 부드러운 몸이 조금씩 솟았다 가라앉길 반복하듯 감탄과 슬픔이 내 몸을 고요히 오르내린다. 어떤 자연스러움은 누군가에게 훈련의 영역에 있지. 그런 게 언제나 조금씩 나를 상하게 만든다고, 개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아무 불편도 모르는 얼굴,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멸균된 얼굴은 역시 내 것이 아니다. 훈련 해봤자 조금 상한 얼굴을 더 자연스럽게 여기는 내 관점은 아무래도 끝내 바뀌지 않을 모양이다. 그래선지 어떨 땐 사람들의 얼굴이 다 조금씩 상한 것처럼 보이곤 한다(p. 105). 대중교통을 오가며 힐끗힐끗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이 상처 입거나 불행하지 않길 바라면서.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들 각자의 상처나 불행이 없어지길 곧장 바라지는 않는다. 거기서 오는 고통과 모순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을 감싸는 오래된 맥락이므로. 나로선 그 안에 새겨진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그들의 완두콩들을 헤아려 보고 싶다. 그런 건 사람이 상처와 불행 속에서도 그럭저 럭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다만 그 사실을 증명하겠다고 나를 몰아세우는 건 그만두었다. 스스로를 보살피는 게 죄가 아니라는 걸 개조차 그냥 안다. 나는 개처럼 살아서 숨쉰다. 개에게 배운 바, 그건 머무르는 자리에서 언제나 한 뼘의 볕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뜻이다(p.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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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0】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 죽음
대한민국이 OECD 자살률 1위라는 아픈 현실을 몇 년째 마주하고 있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날 거야”라는 절망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젊은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대답을 들려주어야 할까? 이 무거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평생을 의학계에 몸담았고 ‘죽음학 전도사’라 불리는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와 그의 아내가 함께 펜을 들었다. 바로 신간 『죽음, 삶의 끝에서 만나는 질문 』의 저자 정현채, 이현숙 부부의 이야기다-교보문고. 의사가 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1) 근사체험 (2) 사후통신 (3) 삶의 종말체험 (4) 사망 시 물리적 현상 (4) 영매 (5) 어린아이들과 관련된 환생 연구이다. 나는 근사체험만 인정한다. 죽음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이기에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책을 찾아 읽게 된다. 읽은 책들이 죽어갈 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정현채 서울대학교 의대 명예교수 198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 내과학(소화기학)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로 있다. 지금까지 240여 편의 의과학 논문을 SCI 국제학술지에 발표했으며 위염이나 위궤양 등을 유발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연구의 권위자로 대한소화기학회 이사장, 대한헬리코박터및상부위장관 연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명한 의학 저널 『랜싯』을 포함해 전문 학술지에 게재된 죽음에 관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공부하면서 2007년부터 대중을 상대로 죽음학 강의를 시작했다. 중학생부터 80대까지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800여 회 넘게 강의를 해 '죽음학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국죽음학회 이사로서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 제정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수록 비관적이 되거나 자살 충동이 커지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정반대예요. 제가 산증인이죠. 인간의 죽음 전후로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에 대 해 알면 알수록, 왜 자살하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깨달아 더욱 밀도 있고 충만 하게 살아가게 되거든요. '내 목숨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웬 참견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그런 말을 하기가 어려워져요. 우리는 모두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고, 모르고 지나치는 존재들조차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요. 가족과 친구는 더 말할 나위 없죠. 우리는 모두 이번 생에서 다뤄야 할 저마다의 과제를 갖고 태어나는데, 자살을 한다는 건 그 과제를 너무 빨리 내팽개쳐버리는 거예요. 도망친다고 그 과제에서 벗어나게 될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 과제를 잘 다루게 될 때까지 형태만 바뀐 채 계속 마주 치게 돼요.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살면서도 그런 걸 경험하지 않나요? 해결하지 못 한 채 외면하거나 회피했던 문제가 사라지지 않고 어느 순간 눈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경험을요(p. 19). 자살은 남겨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고, 이 상처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잘 아물지 않아요. 한 사람이 자살하면 주위 사람 다섯 명 내지 열 명이 자살 충동을 갖게 된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마흔 명 가까이 자살한다고 하니, 매일 200명 내지 400명 넘는 사람들이 지인의 자살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거죠.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와요. 서둘러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고로, 질병으로, 노화로 언젠가 다 죽어요. 그러니 그 전까지는, 자신의 삶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까지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선택만은 하지 않아야 해요. 저는 4년 전 침윤성 방광암 진단을 받고, 방광 전체와 그 옆에 인접해 있는 전립선까지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았어요. 소장 60센티미터를 잘라내고 만들어 넣은 인공방광에는 괄약근이 없어서 자율적인 배뇨 조절이 안 돼요. 일정한 간격으로 화장실에 가야 해서 밤잠도 세 시간씩 끊어서 자요. 그러나 이것 때문에 비관하지는 않아요. 30년 전만 해도 방광 절제 수술을 받고 나면 비닐 소변주머니를 밖에서 연결해 부착하고 지내야 했는데, 수술법이 향상되면서 삶의 질이 높아졌어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 감사할 일이 참 많아요(p. 23). 자살하는 순간 후회하지만 자살을 시도했는데 살아난 사람들은 이후 신체적인 고통을 겪더라도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격스러워하며 살아간다고 해요.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이 더 이상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해요. 2013년 EBS 「다큐프라임」 '33분마다 떠나는 사람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에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교(금문교)에서 투신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2퍼센트의 사람들을 다뤘어요. 미국 플로리다대학의 토머스 조이너 교수가 그 사람들과 면담한 결과, 투신해서 수면에 떨어지기까지 4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했다고 해요. "뛰어내린 순간 나는 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 만 빼고"(p. 38). "뛰어내리고 처음 떠오른 생각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였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떨어진 곳이 강이였으니 그나마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고, 고층 빌딩이었다면 떨어지는 순간 후회한다고 해도 돌이키기 힘들죠. 경북 영주에 사는 한 중학생의 경우가 바로 그랬어요. 같은 반 학생들의 괴롭힘을 이기지 못해, 아파트 20층 계단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창문틀을 붙잡고 도와달라고 요청했어요. 때마침 20층에 사는 주민이 이 소리를 듣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지만, 이 학생은 팔에 힘이 빠져 결국 추락했다고해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에요. 이처럼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는 살고 싶은 의지가 강하게 있는 것 같아요. 다음에 소개하는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우울증을 앓고 있던 한 여성이 오피스텔에서 자살하려고 목을 맸는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어요. 잠긴 문을 따고 들어가보니 이 여성은 이미 사망한 것처럼 보였어요. 호흡도 없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해 있었죠. 그런데 출동한 경찰관 중 한 명이 혹시 모르니 응급조치를 해보자며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얼마 뒤 이 여성은 "컥!? 하는 소리와 함께 숨을 쉬며 살아났어요. 그리(p. 39)고 살아나서 한 말이, 경찰이 들어왔을 때 자신은 여전히 의식이 있었는데 다른 경찰관이 "시신에 손대지 말고 현장을 보존하자"고 했을 때 속상했다는 거였어요(p. 40). 죽는 것 외에는 거기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상황에 있다면, 가족이나 상담사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찾으세요. 익숙한 곳을 벗어나는 걸 겁내지 마세요. 죽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지금 그곳보다 더 나쁜 곳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려요. 70년을 살아보니 정말 그렇더라구요(p. 42). 케네스 링과 친절 바이러스 근사체험 연구에서 케네스 링 교수를 빼놓을 수 없죠. 미국 코네티컷대학 심리학과 교수로서 30년 넘게 학생들에게 근사체험에 대해 가르쳤어요.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직접 체험하지 않았는데도 근사 체험자에게 일어나는 삶의 변화를 마찬가지로 겪었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한 거예요. 케네스 링 교수는 근사체험을 '친절 바이러스Benign Virus'라고 불러요. 왜냐하면, 이를 알게 된 사람은 근사체험을 직접 하지 않았어도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체험자와 비슷한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에요. 그런 변화를 저나 주변 사람들한테서도 발견해요. 한 중견기업의 대표는 평소 까칠한 편이었다는데, 죽음학 강의를 들으며 펑펑 울고 난 뒤로는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자상해졌다고 했어요(p.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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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9】 만화가 주는 즐거움과 편안함
“<을지로 순환선>의 만화가 최호철과 만화평론가 박인하가 함께한 여행기『펜 끝 기행』. 같은 학교 교수로 만나 떠난 제주도 교직원 연수에서 결성된 두 만화쟁이 '펜 끝 듀오'의 여행은 이후 일본, 이탈리아, 스위스, 중국을 거쳐 다시 우리 땅 울릉도와 독도에서 마무리된다. 화가였다가 만화를 선택한 최호철과 글쟁이였다가 만화를 선택한 박인하. 만화에 붙들린 두 사람은 세계를 바라볼 때 만화적으로 본다. 최호철은 여행지마다 그림을 그렸고, 박인하는 최호철의 크로키 북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이 책은 그들이 그렇게 함께한 여행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만화를 좋아했다. 초등학교때부터 대학때까지 만화를 봤다. 지금은 잘 안 보지만 그래도 만화가 좋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이런 책들을 찾아 읽을려고 한다. 일본다운, 너무나 일본다운 규슈 한 일 두 나라는 모두 벚꽃을 좋아하고, 벚꽃 구경 하기를 즐긴다. 그래서 봄이면 어김없이 벚꽃 축제가 벌어지는데, 가만 보면 두 나라 사람들은 각각 다른 벚꽃을 즐긴다. 우리나라에서 즐기는 벚꽃은 봉오리가 오르기 시작해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상태이다. 그래서 벚꽃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일기 예보에 민감하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와 꽃잎이 떨어지면 꽝이 되어버리기 때문. 반면, 일본 사람들은 화려하게 만개한 뒤 흩날리는 벚꽃을 즐긴다. 만개한 벚꽃이 바람에 떨어지는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이웃. 결국 이런 미세한 차이가 모여 문화의 차이가 되고, 문화의 차이는 풍경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일본 미학'이라는 말이 있다. 다양한 논의가 있고, 학자마다 여러 설명을 더하지만 이방인인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일본의 모습 자체가 그대로 일본 미학이다. 가을이 서서히 겨울로 넘어가던 날, 두 만화쟁이는 학생들과 함께 후쿠오카를 찾았다. 후쿠오카를 여행지로 결정한 것은 순전히 우리나라에서 가까웠기 때문. 특별히 우리를 끌어당기는 매력이나 꼭 가야 할 곳을 생 각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기대 없이 찾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활화산 아소 산. 그 웅장한 모습은 대단했다. 아소 산은 해발 1000미터가 넘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를 통틀어 부르는 이름으로 정식 명칭은 아소고다케인데, 다섯 개의 분화구마다 사실 다른 이름, 다카다케(1592미터), 나카다케(1506미터), 에보시 다케(1337미터), 기지마다케(1326미터), 네코다케(1433미터)로 부른다. 버스로 전망대 인근까지 올라가 케이블카를 타면 쉴 새 없이 하얀 연기를 내뿜는 분화구를 볼 수 있다. 은근하게 풍겨나는 유황 냄새, 곳곳에 자리 잡은 대피소, 은근히 겁을 주는 가이드의 말이 어우러지(p. 243)면 현재 진행형 활화산의 다이내믹함을 느낄 수 있다. 멀리 피어오르는 활화산의 기운을 바라보니,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무라이, 흩날리는 벚꽃처럼 배를 가르는 영화의 장면이 떠올랐다. 아소 산을 뒤로하고 찾은 곳은 구마모토 성. 구마모토 성은 약 400년 전, 전국 시대의 무장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를 통치하기 위해 축성한 성이다. 가토 기요마사라고 하면 낯설지만, 한자음 그대로 '가등청정'이라고 읽으면 익숙하다. 바로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했다가 깨진 바로 그 장군. 적의 공격에 대비한 120개의 우물과 조선 성의 장점을 차용한 축조술이 인상적이었지만, 그보다는 거대함 속에 정교하게 쌓아 올린 구마모토 성의 모습 그 자체가 일본, 사무라이를 느낄 수 있는 너무나 일본적인 풍경이었다. 그러나 사실 가장 일본적인 풍경은 활활 불타오르는 아소 산과 전국 시대 의 칼바람이 담겨 있는 구마모토 성이 아니라 그 살벌함과 함께 일상을 살았을 일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지금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소 산 자락 아래에서 평화롭게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바로 그들의 모습이 가장 일본다운, 너무나 일본다운 모습이었다(p. 244). 이 책을 쓰고 그리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자면(p. 276) 최호철 선생과 나는 같은 직장(청강문화산업대학)에 다닌다. 둘 다 만화창작과 선생이다. 사람들을 만나 "학교에서 만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꽤나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마치 황제펭귄처럼. 낯설지는 않으나 내 주변에서 마주칠 때 경험하는 신기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어쨌든 우리는 5월마다 찾아오는 불량 만화 화형식의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지 않은 만화인들이다. 최호철 선생은 화가였다가 만화를 붙들었고, 나는 글쟁이였다가 만화를 붙들었다. 더 정확히 우리 둘은 모두 만화에 붙들린 사람들이다. 만화에 붙들린 사람들은 세계를 바라볼 때 만화적으로 본다. 일단 빈 종이가 있으면 무조건 그리고, 조금이라도 분위기가 추락하면 농담을 날리고 싶다. 전자가 최호철 선생. 후자가 나다. 하지만 둘 다 천성이 숫기가 많은 사람들은 아니다. 은근 부끄럼쟁이들. 그래서 낯선 이들하고 떠들고 노는 것보다, 친한 이들과 수다 떠는 것이 좋다. 그래서인지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선생들은 보통 직장인들과 달리 사우나 아줌마 분위기를 풍긴다. 그 때문에 여행에 대한 기억이 꽤 많다. 최호철 선생은 여행지마다 그림을 그렸고, 난 최호철 선생의 화집을 뒤적이며 농담을 던진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월간 무가지 〈백도씨〉를 기획할 때였다. "우리 여행 간 거 내가 글 쓰고, 선생님이 그림 그려보세요." "만화? 나 마감 잘 못하는 거 알잖아?" 일단, 방어막을 친다. 역시, 공력이 대단하다. "그냥 한 쪽짜리 그림을 그리자고요. 한 쪽짜리 만화, 그게 최호철 스타일이 잖아!" 나도 다시 공격한다. 왠지 느낌이 낚은 것 같다(p. 277).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담는 게 최호철 스타일 아닌가?" 낚았다. 파닥파닥! 그렇게 해서 〈백도씨〉에 '두 만화쟁이의 여행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내가 낚은 죄로 글을 썼고, 최호철 선생의 애간장 다 태우는 마감에 동참했다. 몇 번 빼먹은 적도 있지만, 한 스무 번쯤 마감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우리가 한때 사슴굴이라고 불렀던 최호철 선생의 개성 넘치는 연구실 소파에 앉아 뒹굴면서 이야기를 하다 한번 책으로 묶어보자는 생각이 번득였다. 최호철 선생은 낙서라고 하지만, 그냥 묵히기 아까운 그림이 많은 그의 크로키 북이 생각났다. "〈백도씨〉에 연재한 만화하고, 그와 연관된 크로키를 모아서 책으로 묶어봅 시다." "재미있을까?" "재미없으면 사람들이 만날 선생님 크로키 북 달라고 해서 보겠어요." "너무 성의 없게 그렸잖아." "성의 있게 그리면 마감 못하잖아요." "..." "또 그냥 그 시간에, 여행지에서 그린 그림이 난 좋던데." "그럽시다." 그렇게 시작된 작업이다. 그림을 모으고, 글을 고쳐 썼다. 최대한 여행지의 느낌을 사람들이 느껴주길 원했다. 여행에는 휴식과 수다가 공존한다. 혼자 가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난 함께 수다 떨 수 있는 사람과 가는 여행이 좋다. 서로 말도 안 되는 지식을 공유하고, 느낌을 나누는 여(p. 278)행이 좋다. 이 만화는 그런 여행의 기록이다. 글과 함께 그림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최호철의 그림은 읽히는 그림이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크로키 북에 그린 사람이 아주 구체적인 당신의 모습이기도 하고, 당신이 바라본 그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림을 읽으며 우리의 여행에 동행하면 어떨까? 같이 수다 떨고, 맛있는 것도 먹고, 바보 같은 개그도 하면서 말이다. 남자들이라면 더더욱, 수다가 주는 세계 평화를 함께 누려보자(p.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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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8】 짐승보다 못한 인간의 잔혹함
〈무시무시한 처형대 세계사〉는 야욕과 애증, 배반과 음모로 뒤엉킨 잔혹한 처형의 역사를 들려주는 책이다.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를 통해 그림 동화 신드롬을 일으킨 작가 기류 미사오가 이번에는 무시무시한 역사 속 처형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근대 유럽까지 '인간'이라는 존재에 의해 자행된 처참하고 잔혹한 처형의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하였다. 이 책은 역사 속 처형장을 통해 인간 내면세계에 깃들어 있는 광기의 역사를 살펴본다. 저자는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물음을 던지면서, 다양한 이유 때문에 엄청난 피를 흘려 왔던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있다. 그리고 황제들을 비롯한 수많은 권력자들과 신의 이름을 내건 종교인들이 역사 속에서 저지른 처형의 만행과 광기의 현장을 낱낱이 고발한다-교보문고. 흥미롭게 읽었는데 품절됐다. 이 저자의 책들이 재미있어 열심히 읽고 있는데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도 대출했다. 이처럼 맹수를 이용한 처형 방법은 그리스도교가 보급되기 훨씬 전에 시작되어 5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죄수의 팔다리를 묶어 자유를 구속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죄수의 몸을 묶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간단한 무기도 사용하게 함으로써 관중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안겨 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목숨을 잃기 전에 맹수를 한두 마리쯤 해치우는 강한 죄수도 나타났다. 어쨌든 죄수와 맹수의 싸움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으로 관중들에게 꽤 인기를 끌었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서 죄수의 처형은 일종의 연극으로 연출되었다. 예를 들면, 죄수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로 분장시켜 쇠사슬로 바위에 묶은 다음 대머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게 한다거나, 헤라클레스로 분장한 죄수가 곤봉을 들고 나와 황소와 싸우다가 클라이맥스에서 황소가 죄수를 허공으로 던져 버리는 식이었다. 그리고 여자 죄수가 생겨나면서 연극 마지막 부분에 음탕함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곰이나 당나귀의 습격을 받는다는 설정도 선보였다고 한다(p. 23). 콜로세움에서 펼쳐진 다양한 잔혹극 역대 황제들의 입장에서 볼 때, 검투사 경기는 범죄자나 반역자의 잔혹한 죽음을 선보이는 것으로써 황제의 권력을 뒤흔들려 하는 자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민들에게 확실히 보여 주는 기회이기도 했다. 로마 콜로세움 안에는 지금도 십자가가 서 있다. 일찍이 이곳에서 수많은 잔혹한 방법으로 목숨을 잃은 그리스도교도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타르에 적신 셔츠를 입은 채 콜로세움으로 끌려가 화형에 처해졌다. 또는, 팔다리가 묶인 채 커다란 솥 안에서 끓는 기름에 튀겨지거나 끓는 물에 삶아지기도 했다. 성 로렌스(Sento Rorense)는 석쇠 위에서 불에 구워졌고, 성 포류카르프는 화형대 기둥에 묶인 채 불에 타 죽었다. 성 폰시아노(Sento Pontianus)는 쓰러질 때까지 벌겋게 달구어진 석쇠 위를 걸어야 했고, 성 아르테 미오(Artemius)는 맷돌에 몸이 으깨져 죽었다. 손발이 잘려 나가거나 내 장이 몸 밖으로 드러난 채 매달린 자들도 있었다. 또, 살가죽이 벗겨진 채 유리 조각 위에서 끌려 다닌 자도 있었다. 콜로세움에서 남녀 수십 명이 한꺼번에 기둥에 묶여 처형된 적도 있는데, 그 광경이 마치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숲처럼 보였다고도 한다. 관중들은 그 중에서 누가 가장 먼저 숨이 끊어질지를 놓고 내기를 하기도 했다(p. 24). 당연히, 역대 황제들도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잔혹한 피의 향연을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으로 여겼다. 예를 들어 카이사르(Caesar)는 기원 전 65년 안찰관이었을 때 검투사들을 320쌍이나 동원해 성대한 검투사 경기를 개최했으며, 아우구스투스(Augusus) 황제도 검투사를 1 만 명 정도 동원해 검투사 경기를 여덟 차례, 맹수 3,500마리를 이용해 맹수 사냥을 스물여섯 차례나 개최했다. 클라우디우스 1세(Claudius I) 황제 시대에는 한 경기장에서 검투사 500쌍이 동시에 겨루는 일도 흔했다. 잔혹한 취미가 있었던 클라우디우스 1세는 목이 잘린 검투사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일부러 죽은 자의 투구를 벗기게 했다고 한다. 칼리굴라 황제 시대의 검투사 경기는 잔혹한 취미를 끝없이 만족시키기 위한 절호의 수단이었다. 맹수 사냥에서는 범죄자를 짐승의 먹이로 던져 주었고, 검투사 경기에 출전해야 한다는 선고를 받은 죄수가 필사적으로 자비를 호소하면 그 혀를 잡아 빼라고 명령한 다음에 온몸의 상처가 곪아 악취를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채찍으로 때리게 했다. 그리스도교도 박해로 유명한 폭군 네로도 30일에 걸쳐 잇따라 경기를 열었다. 그는 맹수를 풀어놓아 어린이를 포함한 5,000명을 물어 죽이게 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한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황제는 로마 제국 안에 존재하는 난쟁이들을 모조리 모아 검투사 집단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미녀들로 이루어진 검투사 집단도 만들게 해서 경기장에서 난쟁이와 미녀를 싸우게 한 뒤 그것을 최고의 유흥으로 삼았다고 한다. 코모두스(p. 25)(Comedits) 황제에 이르러서는 아예 정치를 총애하는 신하에게 맡겨 버리고 검투사 경기에만 열중, 자기 자신도 검투사로 자주 경기에 출전했다. 그런 그가 음모를 품은 검투사 한 명에게 침실에서 암살당한 것은 운명의 장난이었을까?(p. 26). 사실은 이랬다. 불길이 번지는 상황에서 수상쩍은 남자 몇 명이 술에 취한 척 비틀거리면서 '어떤 자는 이쪽, 어떤 자는 저쪽' 하는 식으로 햇불을 이용해 불을 붙이는 모습이 목격되었던 것이다. 로마 시대의 전기 작가인 수에토니우스(Gaius Suetonius Tranquillus)에 따르면, 이 수상쩍은 무리가 네로의 노예들이었기 때문에 집정관도 제지할 수 없었다고 한다. 폭력의 피해자 어쨌든, '네로가 방화를 명령했다'라는 소문이 흘러나오면서 민중들 사이에서는 당장에라도 폭동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자 네로는 소문을 불식시키려고 방화범을 만들어 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제물이 된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도들이었다. 당시 그리스도교도들은 이단시되어 마법을 부리고 유아를 살해하고 인육을 먹는다는 식으로 중상모략을 당하고 있었다. 아무리 엄격한 금지 정책을 펴도 계속 증가하는 그리스도교도 때문에 고민하고 있던 터라 네로는 이번 화재를 구실로 그들을 철저하게 탄압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먼저 신앙을 고백한 자들이 심문을 당했고, 이어서 그들의 고백을 토(p. 67)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방화죄 혐의를 받았다. 순교자들 중에는 사도 바울로와 12사도인 베드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놀림감이 되었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당했다. 어떤 이는 짐승의 가죽을 덮어쓴 채 개 떼에게 내던져져 물려 죽었고, 어떤 이는 원형 경기장에 맹수의 먹이로 던져지기도 했다. 또 어떤 이는 온몸에 타르가 발라진 상태에서 기둥에 묶여 날이 어두워진 뒤 등불 대신 불을 밝히게끔 했다. 네로는 처형 장면을 구경하라며 바티카누스 (vaticanus) 왕실 정원을 제공해 전차 경기까지 개최하면서 흥을 돋우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이단자들을 처형한다는 명분도 네로의 인기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특히 귀족들이 불만을 품은 것은 노예에서 해방된 자들이 점차 제국의 요직을 독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었다. 화재 뒤처리 등으로 인해 그 해의 국고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되었고 그 결과 재산 몰수라는 극단적 상황에 의지할 수밖 에 없었다. 때문에 다시 막을 연 반역죄 재판의 판결은 모두 유형이나 사형이었다(p. 68). 14~17세기 유럽에서는 마녀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체포해 가혹한 고문을 한 뒤 화형에 처했다. 이러한 마녀 재판의 폭풍은 약 300년 동안 이어지면서 유럽 전역에서 맹위를 떨쳤다. 그 기간 동안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수십만에 이른다는 설도 있고, 수백만이라는 설도 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마녀로 지목되어 화형을 당한 희생자에 대한 기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프랑스 로렌(Lorraine)에서 1576~1606년 동안 2000~3000명. 보르도에서 1577년에만 400명. • 독일 트리에르(Trier)에서 1587~1593년 동안 368명. 뷔르츠부르(p. 121)크에서 1623~1631년 사이에 900명. 밤베르크에서 1623~1633 년 사이에 600명. 이것만 보아도 마녀 재판의 희생자가 엄청난 숫자라는 사실을 짐작 할 수 있다. 유럽 전체에서는 15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약 30만 명(900만 명이라는 설도 있다)이 화형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p. 122). 마녀를 불태우는 검은 연기가 유럽 하늘을 끊임없이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야기다. 당시, 불안감을 해소하는 돌파구로 선택된 것이 '마녀'였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불행과 해악을 마녀 탓으로 돌려 잔혹하게 처형했다. 마녀 사냥이 무서운 것은 증거 없이 소문과 풍문만으로도 마녀로 몰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마녀 재판이 성행했던 원인으로는 첫째, 당시의 사회 불안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유럽인들은 예전에는 겪지 못했던 혹독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유럽 인구의 30퍼센트 정도를 앗아간 페스트의 유행, 극단적인 인플레이션, 종교 개혁 운동 등, 격동의 상황에서 민중들의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었다. 답답하기만 한 그런 현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창구로 선택된 것이 바로 '마녀'였다. 마녀는 마력을 써서 날씨를 나쁘게 만들고, 밭농사의 수학물을 줄이고, 태아를 유산시키고, 남자를 성불구로 만들고, 갓난아기를 잡아먹고, 악마에게 살아 있는 제물을 바친다..... 이런 식으로 세상의 모든 불행과 해악을 마녀 탓으로 돌렸다. 유럽에 휘몰아친 종교 개혁 운동에 대해 로마 교황은 수도회를 결성해 이단 탄압에 나섰다. 마녀 재판의 전신은 13세기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가 탄생시켰다. 이른바 '이단 심문' 제도다. 이단 심문관은 교황의 보호 아래 사교나 관헌을 능가하는 권한을 가지고 오로지 그리스도교 국가 전역에서 이단을 박멸하는 사명을 맡았다(p. 123). 그리고 잔혹하기로 유명했던 요한 22세가 내린 1318년 2월 27일 교서에서 '마녀'의 비참한 운명이 결정되었다. 프랑스 고위 성직자 앞으로 보낸 이 교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마녀 재판을 시작하고 지속하여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완전한 권한을 부여한다.' 이 마녀 재판 해금 명령에 박차를 가하듯, 교황 요한 22세는 1323년, 1326년, 1327년, 1330년, 1331년에 계속 마녀 재판 강화 명령을 발표 했다. 이 강화 명령에 따라 이단 심문관의 마녀 사냥이 급격하게 기세를 떨치기 시작했다(p. 124). 마녀 재판 그 자체도, 심문, 자백의 공술(고문을 통한 자백도 포함해서), 단죄 선고, 그리고 처형(대부분이 화형)이라는 식으로 공식화되어 있었다. 중요한 것은 피고를 한시라도 빨리 죽여 그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었다. 마녀에게서 몰수한 재산은 모두 교회 소유가 되었고, 마녀 재판에 들어가는 비용 전부를 여기에서 조달했다. 간수의 식대, 처형 담당자의 술값, 교살을 할 때 들어가는 밧줄 대금, 화형을 할 때 쓰는 장작과 기름값 등, 모든 비용을 여기에서 인출해 썼던 것이다(p. 165). 기요틴에 광란하는 사람들 로베스피에르를 처형하는 것으로 공포 정치가 막을 내리자, 국내의 무거운 공기는 사라지고 단번에 향락적인 분위기가 퍼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장소에 모여 오직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피비린내 나는 과거를 잊고 희망 없는 미래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 거리 도처에서 무도회가 열렸는데, 특히 인기를 모았던 것은 회원이 한정되어 있는 '희생자들의 무도회'였다. 가까운 친척이 기요틴에 처형을 당한 사람들만 이 모임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 무도회에 참가하려고 일부러 큰돈을 주고 근친자가 기요틴에 처형되었다는 증명서를 위조하는 사람들도 속출했다고 한다. 모임에서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고 훤히 드러난 목 주위에 칼자국을 모방한 빨간 리본을 묶었다. 남자들도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마찬가지로 빨간 리본을 목에 둘렀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들 입장에서 보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현실을 받아들여 슬픔을 이겨내고 살아가려면 이런 식으로 불행을 패러디하는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p. 298). 마지막 공개 처형 프랑스에서 기요틴을 이용한 처형은 오랜 세월 동안 일반에게 공개 되었다. 그때마다 형장에는 프랑스 각지의 수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입장에서 볼 때 처형은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다. 1889년의 파리 만국 박람회 때에는 기요틴에 처형을 당한 사람이, 당시에 신축된 에펠탑보다 더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피와 잔혹함에 대한 인간의 열광은 그 뿌리가 무척 강한 듯싶다.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기요틴 공개 처형은 1939년 와이트만이라는 살 인범의 처형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축제 소동이 벌어지자 정부는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다고 한다. 처형 전날 밤, 형장이 될 베르사유 감옥 앞 광장에는 엄청난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기요틴 처형을 한 번이라도 직접 구경하려고 나무와 가로등에 매달린 사람들, 건물 창문에 바짝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사람... 사람들은 마치 축제라도 즐기는 듯한 기분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면서 소란스럽게 전야제를 보냈다. 가끔씩 말 잘하는 사람이 농담을 던지면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 소리가 감방 안에 있는 사형수의 귀에도 들렸다니 정말 잔혹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자 정부도 더 이상은 간과할 수 없어 그 뒤로는 기요틴 공개 처형을 금지했다. 이후의 처형은 각각의 감옥이 위치한 안마당에서 이루어(p. 300)졌으며, 처형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관료 아홉 명뿐이었다. 잔혹함의 상징인 기요틴 처형대는 감옥의 담장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두 번 다시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다(p.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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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3】 전 법관의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 나의 일상을 풍요롭게 채우는 건 어떤 의미인가, 다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사람과 사회는 바뀔 수 있는가. 자작나무에서 지리산으로, 도스토옙스키에서 몽테스키외로, 일상에서 재판까지. 호의는 사람을,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받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주라던 김장하 선생과의 추억, 법을 몰라 손해 보는 이들을 헤아리는 마음, ‘자살’을 시도했던 재소자가 ‘살자’는 다짐을 하게 만든 선물,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속절없이 흘리는 눈물, 그리고 건강한 법원과 사회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교보문고 계엄을 도모했던 윤석열을 단죄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쓴 책으로 가볍게 읽을만하다. 착한 사람을 위한 법 2001. 4. 22. 법 없이 살 사람 착한 사람을 일컬어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들 한다. 법의 강제 없이도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사람이란 뜻이리라. 과연 착한 사람에게 법은 필요 없는 것일까?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 나는 법이 어떠하다고 정의할 만큼 경력도 풍부하지도 않고 타고난 재주도 없지만, 1983년 법학을 전공한 이래 지금까지 18년을 법과 함께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그런 점에서 나는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착한 사람일수록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p. 19). 종종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가곤 하는데, 거기서 늘 하는 말이 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나에게 힘써달라고 전화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 나에게 법을 물어보라." 도대체, 전 재산과 다름없는 300만 원을 전세금으로 걸면서 그 집이 경매 중인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계약하는 사람을 누가 구제해줄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은 대개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야, 집주인을 사기죄로 고소했으니 수사 기관에 힘 좀 써서 집주인을 즉시 구속시켜 달라고 법조인에게 전화를 한다. 법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보장적 기능이다.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고 거기에 저촉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측면이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이 빛을 발한다. 다른 하나는 보호적 기능이다. 그러나 법의 이러한 보호적 기능도 경매 절차에서 배당 요구를 하는 임차인이나 노동자에게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유의하여야 한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은 초라하기만 하다. 착한 사람부터 법을 알자 판사로서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착한 사람은 법을 모르(p. 20)고, 법을 아는 사람은 착하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 사건일수록 해결이 어렵고, 착한 사람을 보호하고자 궁리를 해보나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착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고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법을 아는 사람에게 착하기를 요구할 것 인가? 불가능은 아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남는 방법은 착한 사람이 법을 아는 것이다. 그 길만이 법이 나쁜 사람을 지켜주는 도구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지름길이다(p. 21). 형사 재판 잘 받는 방법들 중 2006. 12. 19. 진술 거부권 행사 자기에게 불이익한 사실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 및 형사 소송법에서 보장된 피고인 및 피의자의 권리입니다. 따라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불이익한 사항에 대하여 질문을 받을 때 진술을 거부하면 되겠습니다. 괘씸죄가 걱정된다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되겠습니다. 이것이 모순되거나 불합리한 답변을 하는 것보다 유리합니다. 답변 방식 법정에서 판사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할 때는 결론을(p. 45) 먼저 말하고 이유를 나중에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판사는 질문을 통하여 사건의 윤곽을 파악 하려고 하므로, 판사에게 결론을 먼저 말함으로써 판사가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인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판사는 여러 각도에서 사건을 살피기 위하여 다양한 질문을 하는 것이므로, 설령 질문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 일지라도, 판사가 상대방의 편을 든다고 섣불리 생각하지 말고 정중하게 답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판사는 피고인의 진심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p. 46). 민사 재판 잘 받는 법 2007. 5. 17. 오늘 재판을 하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민사 재판 잘 받는 방법을 적어보았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소송을 하려면 어려운 일이 많으므로 형편이 허락한다면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였다고 해서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맡길 것이 아니라 수시로 소송 진행 정도를 확인하고 대응 방안을 함께 의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p. 61). 준비 서면을 간단명료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할 경우 법무사의 도움을 받거나 본인이 직접 준비 서면을 작성해야 할 터인데, 이때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준비 서면이라는 것은 당사자의 주장에 불과하므로 아무리 유리한 내용을 적어놓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인정받기가 어려운 반면, 불리한 내용은 별도의 증거가 없더라도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따라서 준비 서면은 간단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증거가 뒷받침되는 내용일 경우 명료하게 주장을 펼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준비 서면에 상대방을 비난하는 내용을 적을 경우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해롭다는 것입니다. 재판이라는 것이 당사자의 도덕성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고, 뚜렷한 증거 없이 상대 방을 비난할 때 판사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준비 서면에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하여 적어내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재판부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노고를 덜어주는 것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p. 62). 소송의 승패는 증거에 달려 있습니다 민사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흥분할 필요 없이 차분하게 증거를 수집하여 제출하는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증거로는 애초 사건이 있었을 때 작성된 서류, 특히 상대방이 서명 또는 날인한 서류가 가장 효력이 강하고, 그 다음으로 제3자가 작성한 서류가 효력이 강합니다. 증인의 증언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법정에서는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도 법정에서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실정이므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는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에 그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정 또는 화해를 권유받았을 때는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재판을 하다 보면 어느 당사자의 주장이, 설득력은 있으나 증거로 뒷받침 되지 않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법적 관점으로만 해결할 경우 어느 당사자에게 더 가혹하기도(p. 63)합니다. 이길 승산이 있어 보이나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법원은 당사자에게 조정 또는 화해를 권고하는 데,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조정 또는 화해 절차에서는 집행에 관한 내용을 반영할 수도 있으므로 이러한 점에서도 조정 또는 화해의 효용은 높습니다. 증인 신문을 할 때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정에 출석한 증인을 상대로 질문을 할 경우 "거짓말쟁이다" "양심도 없느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차분하게 증언의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상대방이 질문하는 내용을 (미리 받을 수 있습니다) 검토하여 허점을 정리했다가 법정에서 질문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람 턱없이 부족한 내용일 것입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소송을 잘해서 이길 사람이 이기는 재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p. 64). 문제가 터지고 나서 소송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은 문제가 터지기 전 검토를 충분히 하는 것입니다. 몇 천 만 원이 오고가는 계약을 체결할 때 변호사나 법을 잘 아는 사람에게 비용을 들여서라도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길게 볼 때 비용이 더 적게 듭니다(p. 65). 책을 읽는 이유 세 가지 2010. 2. 16. 책을 많이 읽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고전을 읽은 적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 보니 문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투리는 말을 안 하는 것으로 감출 수 있었지만 무지는 감출 방법이 없었다. '장 발장'이 《레미제라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읽었다(p. 108). 무경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판사가 되고 보니 사건을 이해하기엔 내 경험이 너무 좁고 얕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도대체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거액의 거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잡히면 처벌받을 게 뻔한 일을 왜 되풀이하는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경험을 늘리려고 해보니 이 또한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장 법관 윤리가 문제였다. 그래서 생각해본 것이 두 가지다. 지금은 언론사 사장이 된 어떤 분이 사법연수생이었던 나에게, 법조인이 되면 초등학교 동창생과 꾸준히 만나라고 당부했던 기억이 떠올라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1년에 몇 회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때로는 부부 동반으로) 만났으니 어느 정도는 실천한 셈이다. 두 번째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장르를 구분하지 말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어보자 하였던 결심이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다. 무소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었다. 남녀 공학 중학교 시절 소풍(p. 109)을 가서 선생님의 권유에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를 까먹어 끝을 맺지 못할 정도로. 그때 불렀던 노래가 남진의 〈님과 함께〉였다. 고등학교 때는 교복이 중고라서 반장을 하지 못했다. 대학교 가서는 사투리 때문에 남 앞에 나서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무슨 결정을 하려면 무척 어려웠다. 결정을 하고 나면 곧 후회를 하게 되고. 어느 날, 내성적인 이유가 소신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군대에서 정훈장교를 하게 되었고 정훈장교 하는 일이 장병 교육이다 보니 남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해소된 뒤라서 그런 결론을 더욱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앞서간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서로 맞추어보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 단단해져 소신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포함해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사족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이 누구와 만나고 무슨 책을 읽는지 말해달라."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p. 110). 혼돈의 시기에 그나마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친구와 책 덕분이라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 감회가 남다르다. 모든 분들에게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p. 111). 책을 고르는 기준 2010.6.26. 책을 어떻게 고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저자를 보고 고른다 어떤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면 그 저자가 쓴 책은 눈에 띄는 대로 사서 읽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면 고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 단 한 번》을 읽고 《축복》 《살아온 기적 살아 갈 기적》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는 식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저자는 다음과 같다. 신영복 교수, 정 민 교수, 유시민 전 장관, 소설가 김 훈, 오지 탐험가 한비야,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열하일기》 전문가 고미숙 박사(p. 124). 주제어를 보고 고른다 제목이나 문장을 검색하여 관심 있는 주제어가 들어간 책을 고른다. 요즘 즐겨 찾는 주제어는 다음과 같다. 정의, 소통, 성찰, 역사, 철학, 인생, 여행, 행복. 이런 기준으로 고른 책은 다음과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 《서양철학사》 《인도 여행》 《행복의 정복》 《무지개 원리》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등. 책 선택에 실패한 적은? 이런 기준으로 책을 골라 읽으면서 후회할 때가 제법 있다. 그러나 산 책은 다 읽는다. 재미가 없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책에 대하여는 독후감을 쓰지 않음으로써 복수를 한다. 블로그에 올린 책은 이중으로 검증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 지금껏 읽은 책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천 권 정도 될 것 같다. 책을 고르는 장소는?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여 고르는 경우가 많고 가끔 서점에 가서 고른다. 베스트셀러 항목과 새로 나온 책 항목을 많이 참조한다(p. 125). 블로그에 독후감을 쓰는 이유는? 독후감을 쓰다 보면 책 내용을 정리하는 효과가 있고, 글쓰기 훈련이 되며, 블로그에 저장해놓으면 다른 글을 쓸 때 인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은 있어도 나쁜 책은 없다. 어떤 책에서도 스승 또는 반면교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께 독서를 권한다. 책이 여러분을 끌어올려줄 것이다(p. 126). 왕후박나무 2011.4.1 남해군법원 다녀오는 길에 경남 남해군 창선면 왕후박 나무를 만났습니다. 500년 이상 되었다고 합니다. 둘레에는 동백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합니다. 주로 방풍용으로 많이 심는다고 합니다. 남해군 창선면에 있는 왕후박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9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왕후박나무는 높이 솟구치지 않고 옆으로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도 500년을 버틴 게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자신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p. 140). 조영남의 노래가 있죠. 〈겸손은 힘들어〉. 그렇죠. 겸손은 힘듭니다. 공자 이래 2천 년 동안 성현들은 겸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겸손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습니다(p. 141). 조정에 임하는 자세 2013.4.28. 조정이란 조정은 법률 분쟁이 생겼을 때 판사의 판결이 아니라 당사자 간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를 말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법원에 접수된 사건 중 판결까지 가는 사건은 10퍼센트가 되지 않고 대개는 조정을 포함한 여러 가지 간이한 방법을 통하여 사건을 처리한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조정은 이길 사람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길 사람이라는 건 미리 정해진 것은 아니고 재판 절차를 통하여 증거를 대고 법리를 세워야 하고 그것으로 판사를 설득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대법원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다(p. 188). 그리고 1천만 원을 받기 위하여 소송 비용으로 500만 원을 들여야 한다면, 700만 원을 받고 소송 비용을 100만 원 선에서 지출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사건에 관하여 가장 절실한 이해관계자는 판사도 아니 고, 변호사도 아니며, 결국 당사자다.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람도 당사자일 수밖에 없으므로, 당사자의 주도권이 가장 잘 보장되는 조정 절차가 불합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정에 임하는 자세 양보해야 한다. 조정은 당사자 간의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고 대체로 당사자는 서로 이해관계가 상반되므로 양보를 해야 조정이 성공한다. 본인이 참석해야 한다.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한 경우라도 조정 절차에는 본인이 참석하는 것이 좋다. 판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상대방의 입장을 직접 들을 수 있으며,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상생하는 방법도 있다. 본인에게 크게 불리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크게 배려하는 방법도 있다. 상대방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쟁점에 관하여 양보하더라도 본인에(p. 189)게 크게 불리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므로,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집행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소송을 하는 종국적 목적은 대체로 승소 판결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돈을 받아내기 위함이다.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더라도 집행 절차에서 돈을 받아내는 비율은 생각보다 낮다. 조정 절차에서는 돈을 받아내는 방법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으므로 유리하다. 원고는 5천만 원을 고수하고 피고는 3천만 원을 고집할 경우 4천만 원 선에서 타협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때로는 5천만 원으로 정하되 3개월 내에 3천만 원을 가져오면 나머지 2천만 원을 포기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싸우는 것은 금물. 간혹 조정실에서 상대방과 말이나 몸으로 싸우는 사람이 있다. 사연이 있겠지만 판사 입장에서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자신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자리를 어렵게 마련했는데 불만을 터트리는 자리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다. 그 사건이 해결 되지 않을 경우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은 판사도 아니요 변호사도 아니요 바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판사의 설명에 귀 기울인다. 법원이 조정 절차를 주도하(p. 190)는 경우 판사로부터 사건 전반에 관한 설명을 듣게 된다. 판사는 내가 불리한 점, 내가 유리한 점을 나누어 설명할 것이다. 잘 들으면 판사가 생각하는 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2심이라면 사건 처리 방향이 대부분 결정되었다고 보면 된다. 민사 사건의 경우 대법원에 상고를 해서 2심 판결이 깨지는 비율이 10퍼센트가 안 된다는 점, 사실 인정은 원칙적으로 2심에서 하게 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2심 재판부의 결론은 존중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내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좋다. 마무리(롯데자이언츠의 마무리는?) 집안에 송사가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적당한 선에서 털고 나오는 것도 마음의 평화를 찾는 좋은 방법이다. '조금 손해 본 것은 다른 일을 해서 보충하면 된다.' 이런 생각으로 조정에 임할 수는 없을까요?(p. 191). 재판 속의 문학 내가 현실에서 맡은 재판은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다(p. 304).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문학이 재판에서 많은 것을 차용하지만 재판은 문학에서 차용하지 않고 순수함을 고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판사는 많은 경험을 해야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제한적인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문학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문학은 보편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고, 재판은 구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며, 양자는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판사들이 다 가난했던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훈의 《흑산》을 읽고 나면 가난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배고픔을 면하자면 오직 먹어야 하는데 많은 끼니 중에서도 지금 당장 먹는 밥만이 배를 채운다는 내용이 그렇다. "아침에 먹은 밥이 저녁의 허기를 달래줄 수 없으며, 오늘 먹는 밥이 내일의 요기가 될 수 없음은 사농공상과 금수축생이 다 마찬가지다." 내가 10년 전 처리한 사건 중 20대 청년이 공무집행 방해죄로 구속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생모라고 밝힌 사람이 탄원서를 보냈다. 오래전에 헤어진 아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자신이 책임지고 선도를 할 테니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p. 305). 재판을 하며 방청객을 둘러보니 유난히 눈에 띄는 분이 있었다. 피고인석 옆에 앉아 대화를 하게 하였더니 피고인을 껴안으면서 "이제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라고 말했다. 피고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생모와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였다. 생모를 만났으니 이제 마음을 잡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집행 유예 판결을 선고했고, 피고인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그 책 한 쪽을 읽어주었다.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다. 내가 10년 전에 처리한 사건 중에 피고인이 자살을 하려고 여관에 불을 질러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불은 크게 번지지는 않았고 다친 사람도 없었다. 선고하는 당일 피고인에게 자살을 열 번 외치게 하였다. "자살자살자살자살.... 이렇게 열 번 하면 본인은 '자살' 이라고 말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살자'로 들립니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실패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살에 실패해서 살았지 않았습니까?" 그러고서 피고인에게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49가지》란 책을 선물했다. 나는 이런 재판을 하게 된 배경 중 8할이 문학 덕분이라고 생각한다(p. 306).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어쩌면 좋은 문학과 좋은 재판은 그 모습이 모두 비슷할지 모른다.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질문할 때, 주제와 이야기가 딱 들어맞을 때 독자들은 감동한다. 판사들이여!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가 영국의 대법관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작가들이여! 긴장하시라. 대한민국의 판사도 또 다른 '유토피아'를 쓸지 누가 알겠는가?(p.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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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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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3】 전 법관의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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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2】 죽음을 늘 준비하며 살자
- KBS 《아침마당》, 《강연100℃》 등에 출연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공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의 에세이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 극심한 암성 통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임종 선언을 했던 저자 김여환.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꼼꼼히 기록한 이 책은, 삶이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을 위해 더없이 소중한 오늘을 ‘있는 힘껏’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교보문고. 이 책은 호스피스 의사가 수많은 죽음을 보고 삶과 죽음에 대해 느낀 것을 쓴 것이다. 많이 유익했는데 현재 절판됐다. 사람의 일생 중 가장 힘든 시기는 보증을 잘못서서 거액의 부도를 냈을 때나 남편이 바람을 펴서 이혼할까 말까 망설일 때가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인생의 반전 같은 일말의 빛조차 기대할 수 없는 시간들, 즉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의 '짧은 삶'이다. 그 시기를 잘 보내야만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온전한 나의 인생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야만 남겨진 사람들의 인생도 편안해질 수 있다(p. 8). 그렇다. 나는 이 세상에 남들보다 조금 먼저 작별 인사를 건넨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토록 자명한 삶의 진리를 힘겹게 깨달았다. 만약 우리에게 내일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면, 오늘 우리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내일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면, 한 번 더 사랑한다 말하고, 한 번 더 안아주어야 하며, 오늘 깃든 행복을 있는 힘을 다해 누려야 한다. 이렇게 수많은 '오늘의 삶'이 모일 때 삶의 아름다운 결과물은 비로소 완성 된다. 그러므로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라는 말에 숨어 있는 참된 의미는 오지도 않은 내일에 대한 불안과 분노, 두려움과 슬픔에 오늘의 행복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더 사랑하고, 오늘 더 행복해야만 한다(p. 10). "2012년 8월 21일 12시 42분, 신복연 할머니는 사망하셨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더 이상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통증 없이 편안히 좋은 곳으로 떠나셨다는 위로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짤막한 사망 선언 뒤에는 언제나 그 마지막 순간을 지키고 있던 가족의 대성통곡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오늘은 조용했다(p. 22). 할머니의 둘째 딸이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우리 엄마가 평소에 유언을 했어요. 내가 떠나면, 울지 말라고. 자식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뒤 돌아보느라 떠나는 것이 힘드니, 울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아...하여간 대단하세요. 입원 내내 웃지 않으신 날이 없었는데, 그런 아름다운 유언까지 하신 줄은 몰랐어요. 제가 들어본 유언 중에 가장 훌륭한 유언인 것 같아요." "과장님, 그렇죠! 우리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이제 꽃 한 송이가 지는구나, 했다니까요." 곱게 아껴두었던 꽃분홍색 한복으로 갈아입고, 흰 양말까지 정갈하게 신은 신복연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살아 있는 그 누구보다도 따뜻해 보였다(p. 23). 짧은 글 한 편을 쓸 때에도 마지막에 무슨 말을 쓸까를 생각하면서 쓰면 글의 흐름이 매끄러워지듯이, 인생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고 살다 보면 들쭉날쭉한 인생이 일관성 있게 변한다. 타인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자기 자신과 먼저 소통해야 한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과 소통하면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p. 25). 자신과 만나려면 가장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임종실은 부끄럽지만 가장 볼품없고 꾸밈없는 자신의 민낯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은 바로 '나의 마지막'이라고(p. 26). "호호호, 난 아직 여기 입원할 단계는 아닌 걸요." "아직은 마약성 진통제를 쓸 만큼 아프지는 않아요." "며칠 전에도 산에 다녀올 만큼 괜찮았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멀쩡하게 걸어 들어오는 말기 암 환자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해 보이는 말기 암 환자들이 한두 달 뒤에는 누런 황달이 오거나 폐렴이 와서 황망히 떠나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남겨진 시간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그 짧은 시간에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칠순 잔치를 하든지, 마지막 콘서트를 하든지, 이혼한 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들을 찾아주는 일들 말이다. 그래도 나도 한 번쯤은 환자를 살려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죽는다고 포기했던 말기 암 환자가 완치되는 일이 우리 병동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환자들은 입원해서 퇴원(p. 45) 할 때까지 평균 27일을 살았다. 호스피스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역시 기적이란 부질없는 비현실적인 희망이라는 것을 확신 하게 됐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슴 저리게 갈구하기도 하고 신에게 떼를 쓰며 의지하기도 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겠지만,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 훤히 보이는 나로서는 그렇게만 하다가 환자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런 애절한 생각을 할 시간이 있으면 조금밖에 남지 않은 삶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오랜 경험을 통해 내린 슬픈 결론이었다. 사람이 좀 민민하고 삭막하게는 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옳았다(p. 46).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다. 푸시시한 구차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낼 때쯤이면 원치 않았던 현재 시간이 살다 남은 찌꺼기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약한 정신 때문이 아니라 몸이 약해지기 때문에 마음까지 통째로 흔들린다. 심지어 어떤 환자는 "잠자듯이 가는 그런 약 있잖아."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말기 암 환자가 안락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p. 56). 비참한 마지막은 말기 암에 걸린 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다 남은 삶이라고 쓰러져버리는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떠날 사람은 남아 있을 이를 위해 조금 남은 삶을 성실히 살아가고, 남아 있을 사람은 떠날 이가 세상에서 사랑받다가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노력하면 서로 덜 힘들다. 처음과 마지막까지, 모두가 촘촘히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p. 58). 세상은 가벼움과 무거움이 서로 경계를 불분명하게 가른 채 섞여 있다.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가볍고,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무겁다. 그렇게 어우러져서 세상은 좀 더 좋게 변한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오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선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고함을 지르고 입원실 바닥에 소변을 보는 한 할아버지 때문에 사흘 밤낮 동안 시달린 환자들이 하소연을 했다. 할아버지를 간병하던 할머니는 "환자가 병원에 자러 왔나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진정제도 못쓰게 하고 1인실로 가지도 않았다. 그런가 하면 뇌종양에 걸린 12살짜리 소녀는 과자를 들고 병실을 누비며 "아저씨, 빨리 나으세요."라고 하면서 환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한 신문 기자가 말기 폐암 환자에게 물었다(p. 67). "인생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해주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후덕하게 생긴 환자는 가지고 있던 옷가지며 살림살이를 싹 정리할 정도로 죽음을 잘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쓸쓸하게 대답했다. "저는....그런 것은 선배가 되고 싶진 않은데요." 그렇다. 죽음이란 일평생을 별 탈 없이 살다가 90살이 되어 마음 독하게 먹고 미리 준비해도 어려운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닥뜨리는 죽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많이 돌본 의사로서 한 가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이 먼저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남은 사람들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나 때문에 끼니를 거를까 봐, 나를 잃은 슬픔으로 행여 병이라도 생길까 봐, 경제적으로 힘들까 봐 등등.... 그들은 사소한 걱정을 몰래 했다. 남은 사람들은 그 마음을 알까? 임종실은 섞일 수 없는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고, 살아남은 이들이 비통함에 눈물을 흘리는 작은 방이다. 그러나 그곳을 거(p. 68)쳐 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존재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사랑하는 이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라고(p. 69). 예전에 나는 보기조차 딱할 만큼 남을 부러워했다. 뚱뚱할 때는 날씬한 사람을, 늦게 시작한 의사 생활이 비참하다고 느껴질 때는 처음부터 순탄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동료를 얄밉도록 부러워했다. 누군가는 잘된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인생의 꿈도 생기고 삶을 개척할 의지도 생긴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 부러움이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계기는 되었을지라도 그 과정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이제 내가 진실로 부러워하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했거나, 예쁘고 날씬하고 건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어떤 삶이 자신에게 다(p. 92)가오더라도 묵묵히 잘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그 자체로 당당하게 살아내는 사람이다. 우리는 저마다 지닌 인생의 향기가 따로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말자. 인생의 마지막에는 행복했던 자신의 과거조차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 시간에는 그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나만의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이 온 것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아쉬운데, 여러 가지 잣대로 부러워하면 병들어 있는 자신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부러워하지 말자, 그대여! 인생이 아파도 마지막까지 이 세상을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내야 한다(p. 93). 불행히도 호스피스에는 죽음을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는 묘약 따위는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들어주면 조금은 가벼워졌고, 끝까지 끈을 놓지 않고 가는(p. 108)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평범한 사실에 평안을 찾아갔다. 대식 씨의 어머니처럼 때로는 버리는 것보다 안고 가는 것이 더 홀가분한 인생도 있다. 그러니까 결국 안고 가는 사람, 버리고 가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p. 109). 잘 죽어가기 위해 우리가 정말 배웠어야 할 것은 죽음의 5단계를 외우거나 혼자서 관 속에 들어가 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p. 112) 아니다. "저는요, 이미 죽음을 다 받아들였어요."라고 말하면서 의젓하게 지내다가 진짜 마지막이 다가오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기보다는 결과물이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신산스럽고, 일상은 상처와 갈등의 연속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얼마만큼 잘 녹여내느냐에 따라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을 마지막 날은 달라진다(p. 113). 어쩌면 인생은 쓰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저절로 쓰이는 소설책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내야 한다. 죽을 만큼 괴로워도 직접 해봐야 삶에 대한 사랑이 깊어진다. 사람들은 인생이 힘들어지면 앞으로 남은 여정이 얼마나 끔찍해질지 더 두려워한다. 남은 인생이 지금보다 더 불편해지더라도 초조해하거나 원통해하지 말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대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살이라는 '고의로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를 생각할 만큼 견딜 수 없이 힘들다면 적극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아무 상관도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조차 알려야 한다. 마음의 피눈물은 말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 애써 고통을 삼키지 말자. 누구라도 도와줄 사(p. 120)람을 찾아다녀라. 자존심 따위 내세울 때가 아니다(p. 121). 치통이 아무리 심해도 한꺼번에 진통제를 다섯 알씩 먹지는 않는다. 통증을 잡으려다 사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타이레놀도 하루에 여섯 알을 초과하면 진통의 효과는 증가하지 않고 간에 부담만 준다. 이렇게 일반 진통제는 일반적으로 정해져 있는 용량을 초과하면 통증에 대한 효과보다는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해지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용량의 한계가 있다. 이것을 약의 천장 효과(ceiling effect)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천장 효과가 없는 약이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많이 쓰이는 마약성 진통제이다. 그것은 일반 진통제와 달리 많이 쓰면 쓸수록 통증이 잘 조절된다. 더군다나 날록손 (naloxone)이라는 해독제까지 있으니 '모르핀'이야말로 신이 세상을 떠날 때만은 아프지 말라고 인간에게 특별히 내려준 '마지막 선물'이다. 사망 원인 1위인 암은 사람이 떠날 무렵에 부쩍 커진다. 암(p. 129)덩어리가 커지면 정상 조직을 파괴하는 묵직한 암성 통증도 당연히 심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일찍부터 진통제를 쓰기 시작하면 통증이 가장 극심한 마지막 순간에는 정작 쓸 수 있는 약이 없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모르핀을 최후의 약으로 넘겨 두었으면 하고 부탁까지 한다. 그러나 통증에 관한 한 모르핀은 쓰면 쓸수록 효과가 있는 약이다. 이러한 마약성 진통제의 비밀을 알려주면 누구나 "진짜 그런 약이 있나요?" 하고 물으며 신기해한다. 환자나 보호자는 어차피 살릴 수 없다면 고통 없이 떠날 수 있다는 확신만으로 가느다란 희망을 갖는다. 모르핀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보다 더 끔찍한 암성 통증에서 해방시켜주는 이로운 약제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좀 더 정확하게 모르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아직도 말기 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모르핀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거부하면서 의미 없는 통증에 시달리다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의 마지막 의사로서 당부한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때가 오면 신이 내린 선물, 모르핀을 거절(p. 130)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통증이 없으면 죽음의 맨 얼굴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고, 고통 없는 죽음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을 것이다(p. 131). 내일 도사리고 있는 재앙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살아감 속에 죽어감의 흔적을 묻히는 것이다. 내일이라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오늘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심코 거칠게 한 말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지도 않을 비겁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너무 많이는 양보하지 말자(p. 163).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가족 간의 갈등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 갈등은 확대된다. 문제의 중심은 늘 '사랑과 돈'이다. 거기에 종교적인 문제가 곁들여지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p. 174). 살다 보면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만 해도 짧은 인생인데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 큰 손해를 볼 것만 같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매 순간 저마다 해야 할 일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훤히 보이고 그때 용기 내어 그 일을 하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것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기도, 또 속절없이 짧기도 하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실수 없이 하려면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하면서 견뎌보는 것쯤은 각오해야 한다(p. 187). 웰다잉(well dying)은 삶의 완성이 아니라 삶의 결과물이다. 누구나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은 더군다나 아니다. 저마다 주어진 힘든 삶을 잘 살아내야만 누릴 수 있는 삶의 마지막 축 복인 것이다(p. 203). 죽음을 깊숙하게 연구하고 싶어서라든지 내 성격이 원래 우울해서 호스피스 의사가 된 건 아니다. 나는 호스피스 일을 해오는 동안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도 죽음에 이르기 직 전까지는 살아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누구도 아프지 않게 하루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거창한 죽음의 여의사가 아니라 그저 생명의 에너지가 다 할 때까지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의사로서 당연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름이 주는 거부감 때문에 국내 암 환자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국내 사용량은 모르핀으로 환산했을 때 환자 1인당 연간 45mg에 불과하다. 미국 693.44mg, 영국 334.52mg은 물론 세계 평균 58.00mg보다도 낮다. 통증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안 쓰는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아프면서 죽어간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죽음이 삶의 종착역인지 따위는 일단 환자의 통증을 덜어준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암 환자의 통증은 당사자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출산의 고통이 10점 만점에 7~8점이라면 암 환자의 통증은 10점 이상도 간다.암성 통증은 암이 진행되는 생명의 마지막에는 더 심해지고, 그(p. 215)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환자와 가족을 더더욱 애타게 한다(p. 216). 인생을 산다는 것은 세상에 놓인 하나의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하지만 그저 다리를 건너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세상의 아름다움은커녕 다리를 뒤흔들 고통과 혼돈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뜨거운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자기 삶의 아웃사이더가 되어보기를. 삶이 끝난 뒤에 죽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죽음이 있음을 알아차리기를,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게 되기를 바란다(p.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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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2】 죽음을 늘 준비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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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1】 삶의 찌질함과 누추함에 대하여
- 산문집 《연중무휴의 사랑》과 《헤아림의 조각들》(2023년 문학나눔 선정도서)로 2030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임지은이 신작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전작에서 냉철하고, 때론 따뜻한 연민과 너른 헤아림을 보여줬다면 이번 산문집에서는 작가 자신의 깊은 내면에 숨겨진 질투와 열등감, 욕망과 좌절, 위선 등의 감정을 진솔하게 마주해본다. 누구나 한번쯤 특별한 이유 없이 무언가를 미워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싫음’이라는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숨기고만 싶은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들여다볼수록 작가는 거기에 어떤 선망이나 외로움,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편으론 자기가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을 돋보이게 하려는, 서툰 사랑의 마음이기도 했다. 작가는 슬픔과 기쁨과 외로움이 버무려진 이 “혼탕과 같은 삶”에 깊게 몸 담그며, 미움과 사랑 사이의 낙차를 발견한다. 엄마를 통해 흉보는 마음과 사랑이 때론 붙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온 세상과 자기 자신을 고루고루 아낌없이 사랑한다는 사람들 옆에서 홀로 투덜거리며 자신의 ‘싫음’을 통해 타인의 ‘싫음’ 또한 이해하게 되는 세계를 경험한다. 좋은 것은 당연하게 제 것이라 누리는 동거인에게 꼬인 마음이 드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 수긍하기까지의 내면의 갈등과 고통을 인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지만,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을 톺다 보면 이 책을 추천한 오은 시인의 말처럼, “곡절 없이 좋아하는 것들을 몇 곱절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곧 있으면 닥쳐올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직진하는 용기가 느껴지는 책이다.-교보문고 자신의 찌질함(?)을 드러내는 글을 보며 저자의 용기를 본다. 만족스럽지 않은 환경 가운데서도 살아볼려고 하는 저자의 몸부림(?)에 박수를 보낸다. 이토록 많은 말이 오가는 세상에 말 한마디가 그토록 크게 사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고야 만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버티고 또 흔들릴 만큼 나는 취약 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흔드는 게 무작정 나쁘다거나, 사주는 믿을 만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나를 흔들던 말 또한 나를 이쪽으로 데려왔음을, 내가 무언가를 그 안에서 발견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밤 안도 속에서 깨달은 건 나를 격려해주는 이가 없어도, 심지어 누가 나를 흔들어놓고 수면 아래로 밀어 넣는다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생겨난 불안과 슬픔과 무력감, 또 그에 따른 오기와 반발심을 동력 삼으며, 나는 내 안에서 끝내 살아남은 무언가를 마주했다. 어쩌면 그(p. 25)것이 그리도 중요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나 흔들렸다는 사실 또한. 그러므로 물음에 대한 답은 추가되고 갱신된다. 어쩌다 작가가 되었을까? 나는 끝내 작가가 되고 싶었다(p. 26). 오늘날에는 자신을 돌보는 법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그런 정보의 과잉은 때론 상처도 불행도 없어야 한다는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건 꼭 완두콩 한 알 만큼의 불편도 용인하지 않기 위해 고안된 듯 보이니까. 혹시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은 것만 주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걸까? 그렇게 해야만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건 좀.. 부자연스럽지 않나? 그래도 그런 정보들을 일찌감치 알았다면, 그래서 내 부모가 조금 더 자신을 돌보았다면 그들에게도 내게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내 부모도 조금은 덜 힘들었을 텐데. 나도, 조금 덜 우는 사람이었거나 조금 더 마음 놓고 우는 사람으로 자랐을 텐데. 어쩌다 한 번 하는 우리의 외식도 지금보다는 더 편안할 텐데(p. 103). 뒤늦게나마 나는 내게 좋은 것을 주는 법을 배우고 또 연습한다. 가능한 선에서 질 좋은 걸 산다. 누가 뭘 해주면 사양하지 않고 받는다. 목돈을 모아 요가를 등록하고 되도록 병원을 제때 간다. 때론 근사한 데서 밥을 먹기도 한다. 부모로선 잘 모를 좋은 걸 누려도, 스스로를 이기적이라 느끼지 않으려 이를 악문다. 동거인이 놀리는 걸 보면 갈 길이 먼 것 같지만, 나는 나를 보살피는 훈련을 거듭한다. 그래야 부모를 포함해 그 누구라도, 나를 챙기느라 그 자신을 뒷전으로 두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나에게 최선을 다해준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이해할 수 있다. 동거인의 캠핑을 따라가는 건 훈련의 일환이다. 캠핑을 가면 동거인이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해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뻔뻔하게 앉아서 쉰다. 겨울에는 가끔 엄마의 개도 캠핑에 데리고 간다. 텐트 안에서 개는 한 뼘의 볕이 있는 자리에 자기 몸을 두기도 하고, 난로 앞 조금 더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고 웅크리기도 한다. 주어진 데서 기어이 제 몸만큼의 좋음을 찾아내는 것이다. '너는 바로 아는구나'(p. 104). 내가 오래 걸려 배운 걸 개는 그냥 해낸다. 기특하고 근사한 개 같으니. 몇 년 전가지만 해도 그런 광경, 자신이 괜찮아지는 위치를 미리 알아두고 스스로를 거기 놓는 존재 앞에서는 마음이 볼썽 사납게 흐트러지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웅크린 개를 빤히 바라본다. 걷는 법을 모르고도 걸었고 숨 쉬는 법을 모르고도 숨 쉬었다. 사랑 하는 법을 모르고도 사랑했고 사는 법을 모르고도 살았다. 나를 키워낸 내 부모처럼, 언제나 모르면 모르는 대로 해내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배우면 배우는 대로 더 해내게 된다. 그걸 안 뒤로 나는 배우고 싶은 모든 걸 조금 더 오래 본다. 그럼 볕을 받아 털끝 하나하나가 빛나는 작은 개의 부드러운 몸이 조금씩 솟았다 가라앉길 반복하듯 감탄과 슬픔이 내 몸을 고요히 오르내린다. 어떤 자연스러움은 누군가에게 훈련의 영역에 있지. 그런 게 언제나 조금씩 나를 상하게 만든다고, 개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아무 불편도 모르는 얼굴,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멸균된 얼굴은 역시 내 것이 아니다. 훈련 해봤자 조금 상한 얼굴을 더 자연스럽게 여기는 내 관점은 아무래도 끝내 바뀌지 않을 모양이다. 그래선지 어떨 땐 사람들의 얼굴이 다 조금씩 상한 것처럼 보이곤 한다(p. 105). 대중교통을 오가며 힐끗힐끗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이 상처 입거나 불행하지 않길 바라면서.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들 각자의 상처나 불행이 없어지길 곧장 바라지는 않는다. 거기서 오는 고통과 모순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을 감싸는 오래된 맥락이므로. 나로선 그 안에 새겨진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그들의 완두콩들을 헤아려 보고 싶다. 그런 건 사람이 상처와 불행 속에서도 그럭저 럭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다만 그 사실을 증명하겠다고 나를 몰아세우는 건 그만두었다. 스스로를 보살피는 게 죄가 아니라는 걸 개조차 그냥 안다. 나는 개처럼 살아서 숨쉰다. 개에게 배운 바, 그건 머무르는 자리에서 언제나 한 뼘의 볕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뜻이다(p.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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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1】 삶의 찌질함과 누추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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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0】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 죽음
- 대한민국이 OECD 자살률 1위라는 아픈 현실을 몇 년째 마주하고 있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날 거야”라는 절망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젊은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대답을 들려주어야 할까? 이 무거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평생을 의학계에 몸담았고 ‘죽음학 전도사’라 불리는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와 그의 아내가 함께 펜을 들었다. 바로 신간 『죽음, 삶의 끝에서 만나는 질문 』의 저자 정현채, 이현숙 부부의 이야기다-교보문고. 의사가 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1) 근사체험 (2) 사후통신 (3) 삶의 종말체험 (4) 사망 시 물리적 현상 (4) 영매 (5) 어린아이들과 관련된 환생 연구이다. 나는 근사체험만 인정한다. 죽음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이기에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책을 찾아 읽게 된다. 읽은 책들이 죽어갈 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정현채 서울대학교 의대 명예교수 198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 내과학(소화기학)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로 있다. 지금까지 240여 편의 의과학 논문을 SCI 국제학술지에 발표했으며 위염이나 위궤양 등을 유발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연구의 권위자로 대한소화기학회 이사장, 대한헬리코박터및상부위장관 연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명한 의학 저널 『랜싯』을 포함해 전문 학술지에 게재된 죽음에 관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공부하면서 2007년부터 대중을 상대로 죽음학 강의를 시작했다. 중학생부터 80대까지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800여 회 넘게 강의를 해 '죽음학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국죽음학회 이사로서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 제정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수록 비관적이 되거나 자살 충동이 커지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정반대예요. 제가 산증인이죠. 인간의 죽음 전후로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에 대 해 알면 알수록, 왜 자살하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깨달아 더욱 밀도 있고 충만 하게 살아가게 되거든요. '내 목숨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웬 참견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그런 말을 하기가 어려워져요. 우리는 모두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고, 모르고 지나치는 존재들조차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요. 가족과 친구는 더 말할 나위 없죠. 우리는 모두 이번 생에서 다뤄야 할 저마다의 과제를 갖고 태어나는데, 자살을 한다는 건 그 과제를 너무 빨리 내팽개쳐버리는 거예요. 도망친다고 그 과제에서 벗어나게 될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 과제를 잘 다루게 될 때까지 형태만 바뀐 채 계속 마주 치게 돼요.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살면서도 그런 걸 경험하지 않나요? 해결하지 못 한 채 외면하거나 회피했던 문제가 사라지지 않고 어느 순간 눈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경험을요(p. 19). 자살은 남겨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고, 이 상처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잘 아물지 않아요. 한 사람이 자살하면 주위 사람 다섯 명 내지 열 명이 자살 충동을 갖게 된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마흔 명 가까이 자살한다고 하니, 매일 200명 내지 400명 넘는 사람들이 지인의 자살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거죠.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와요. 서둘러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고로, 질병으로, 노화로 언젠가 다 죽어요. 그러니 그 전까지는, 자신의 삶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까지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선택만은 하지 않아야 해요. 저는 4년 전 침윤성 방광암 진단을 받고, 방광 전체와 그 옆에 인접해 있는 전립선까지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았어요. 소장 60센티미터를 잘라내고 만들어 넣은 인공방광에는 괄약근이 없어서 자율적인 배뇨 조절이 안 돼요. 일정한 간격으로 화장실에 가야 해서 밤잠도 세 시간씩 끊어서 자요. 그러나 이것 때문에 비관하지는 않아요. 30년 전만 해도 방광 절제 수술을 받고 나면 비닐 소변주머니를 밖에서 연결해 부착하고 지내야 했는데, 수술법이 향상되면서 삶의 질이 높아졌어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 감사할 일이 참 많아요(p. 23). 자살하는 순간 후회하지만 자살을 시도했는데 살아난 사람들은 이후 신체적인 고통을 겪더라도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격스러워하며 살아간다고 해요.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이 더 이상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해요. 2013년 EBS 「다큐프라임」 '33분마다 떠나는 사람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에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교(금문교)에서 투신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2퍼센트의 사람들을 다뤘어요. 미국 플로리다대학의 토머스 조이너 교수가 그 사람들과 면담한 결과, 투신해서 수면에 떨어지기까지 4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했다고 해요. "뛰어내린 순간 나는 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 만 빼고"(p. 38). "뛰어내리고 처음 떠오른 생각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였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떨어진 곳이 강이였으니 그나마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고, 고층 빌딩이었다면 떨어지는 순간 후회한다고 해도 돌이키기 힘들죠. 경북 영주에 사는 한 중학생의 경우가 바로 그랬어요. 같은 반 학생들의 괴롭힘을 이기지 못해, 아파트 20층 계단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창문틀을 붙잡고 도와달라고 요청했어요. 때마침 20층에 사는 주민이 이 소리를 듣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지만, 이 학생은 팔에 힘이 빠져 결국 추락했다고해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에요. 이처럼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는 살고 싶은 의지가 강하게 있는 것 같아요. 다음에 소개하는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우울증을 앓고 있던 한 여성이 오피스텔에서 자살하려고 목을 맸는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어요. 잠긴 문을 따고 들어가보니 이 여성은 이미 사망한 것처럼 보였어요. 호흡도 없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해 있었죠. 그런데 출동한 경찰관 중 한 명이 혹시 모르니 응급조치를 해보자며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얼마 뒤 이 여성은 "컥!? 하는 소리와 함께 숨을 쉬며 살아났어요. 그리(p. 39)고 살아나서 한 말이, 경찰이 들어왔을 때 자신은 여전히 의식이 있었는데 다른 경찰관이 "시신에 손대지 말고 현장을 보존하자"고 했을 때 속상했다는 거였어요(p. 40). 죽는 것 외에는 거기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상황에 있다면, 가족이나 상담사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찾으세요. 익숙한 곳을 벗어나는 걸 겁내지 마세요. 죽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지금 그곳보다 더 나쁜 곳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려요. 70년을 살아보니 정말 그렇더라구요(p. 42). 케네스 링과 친절 바이러스 근사체험 연구에서 케네스 링 교수를 빼놓을 수 없죠. 미국 코네티컷대학 심리학과 교수로서 30년 넘게 학생들에게 근사체험에 대해 가르쳤어요.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직접 체험하지 않았는데도 근사 체험자에게 일어나는 삶의 변화를 마찬가지로 겪었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한 거예요. 케네스 링 교수는 근사체험을 '친절 바이러스Benign Virus'라고 불러요. 왜냐하면, 이를 알게 된 사람은 근사체험을 직접 하지 않았어도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체험자와 비슷한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에요. 그런 변화를 저나 주변 사람들한테서도 발견해요. 한 중견기업의 대표는 평소 까칠한 편이었다는데, 죽음학 강의를 들으며 펑펑 울고 난 뒤로는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자상해졌다고 했어요(p.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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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0】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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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9】 만화가 주는 즐거움과 편안함
- “<을지로 순환선>의 만화가 최호철과 만화평론가 박인하가 함께한 여행기『펜 끝 기행』. 같은 학교 교수로 만나 떠난 제주도 교직원 연수에서 결성된 두 만화쟁이 '펜 끝 듀오'의 여행은 이후 일본, 이탈리아, 스위스, 중국을 거쳐 다시 우리 땅 울릉도와 독도에서 마무리된다. 화가였다가 만화를 선택한 최호철과 글쟁이였다가 만화를 선택한 박인하. 만화에 붙들린 두 사람은 세계를 바라볼 때 만화적으로 본다. 최호철은 여행지마다 그림을 그렸고, 박인하는 최호철의 크로키 북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이 책은 그들이 그렇게 함께한 여행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만화를 좋아했다. 초등학교때부터 대학때까지 만화를 봤다. 지금은 잘 안 보지만 그래도 만화가 좋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이런 책들을 찾아 읽을려고 한다. 일본다운, 너무나 일본다운 규슈 한 일 두 나라는 모두 벚꽃을 좋아하고, 벚꽃 구경 하기를 즐긴다. 그래서 봄이면 어김없이 벚꽃 축제가 벌어지는데, 가만 보면 두 나라 사람들은 각각 다른 벚꽃을 즐긴다. 우리나라에서 즐기는 벚꽃은 봉오리가 오르기 시작해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상태이다. 그래서 벚꽃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일기 예보에 민감하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와 꽃잎이 떨어지면 꽝이 되어버리기 때문. 반면, 일본 사람들은 화려하게 만개한 뒤 흩날리는 벚꽃을 즐긴다. 만개한 벚꽃이 바람에 떨어지는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이웃. 결국 이런 미세한 차이가 모여 문화의 차이가 되고, 문화의 차이는 풍경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일본 미학'이라는 말이 있다. 다양한 논의가 있고, 학자마다 여러 설명을 더하지만 이방인인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일본의 모습 자체가 그대로 일본 미학이다. 가을이 서서히 겨울로 넘어가던 날, 두 만화쟁이는 학생들과 함께 후쿠오카를 찾았다. 후쿠오카를 여행지로 결정한 것은 순전히 우리나라에서 가까웠기 때문. 특별히 우리를 끌어당기는 매력이나 꼭 가야 할 곳을 생 각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기대 없이 찾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활화산 아소 산. 그 웅장한 모습은 대단했다. 아소 산은 해발 1000미터가 넘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를 통틀어 부르는 이름으로 정식 명칭은 아소고다케인데, 다섯 개의 분화구마다 사실 다른 이름, 다카다케(1592미터), 나카다케(1506미터), 에보시 다케(1337미터), 기지마다케(1326미터), 네코다케(1433미터)로 부른다. 버스로 전망대 인근까지 올라가 케이블카를 타면 쉴 새 없이 하얀 연기를 내뿜는 분화구를 볼 수 있다. 은근하게 풍겨나는 유황 냄새, 곳곳에 자리 잡은 대피소, 은근히 겁을 주는 가이드의 말이 어우러지(p. 243)면 현재 진행형 활화산의 다이내믹함을 느낄 수 있다. 멀리 피어오르는 활화산의 기운을 바라보니,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무라이, 흩날리는 벚꽃처럼 배를 가르는 영화의 장면이 떠올랐다. 아소 산을 뒤로하고 찾은 곳은 구마모토 성. 구마모토 성은 약 400년 전, 전국 시대의 무장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를 통치하기 위해 축성한 성이다. 가토 기요마사라고 하면 낯설지만, 한자음 그대로 '가등청정'이라고 읽으면 익숙하다. 바로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했다가 깨진 바로 그 장군. 적의 공격에 대비한 120개의 우물과 조선 성의 장점을 차용한 축조술이 인상적이었지만, 그보다는 거대함 속에 정교하게 쌓아 올린 구마모토 성의 모습 그 자체가 일본, 사무라이를 느낄 수 있는 너무나 일본적인 풍경이었다. 그러나 사실 가장 일본적인 풍경은 활활 불타오르는 아소 산과 전국 시대 의 칼바람이 담겨 있는 구마모토 성이 아니라 그 살벌함과 함께 일상을 살았을 일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지금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소 산 자락 아래에서 평화롭게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바로 그들의 모습이 가장 일본다운, 너무나 일본다운 모습이었다(p. 244). 이 책을 쓰고 그리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자면(p. 276) 최호철 선생과 나는 같은 직장(청강문화산업대학)에 다닌다. 둘 다 만화창작과 선생이다. 사람들을 만나 "학교에서 만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꽤나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마치 황제펭귄처럼. 낯설지는 않으나 내 주변에서 마주칠 때 경험하는 신기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어쨌든 우리는 5월마다 찾아오는 불량 만화 화형식의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지 않은 만화인들이다. 최호철 선생은 화가였다가 만화를 붙들었고, 나는 글쟁이였다가 만화를 붙들었다. 더 정확히 우리 둘은 모두 만화에 붙들린 사람들이다. 만화에 붙들린 사람들은 세계를 바라볼 때 만화적으로 본다. 일단 빈 종이가 있으면 무조건 그리고, 조금이라도 분위기가 추락하면 농담을 날리고 싶다. 전자가 최호철 선생. 후자가 나다. 하지만 둘 다 천성이 숫기가 많은 사람들은 아니다. 은근 부끄럼쟁이들. 그래서 낯선 이들하고 떠들고 노는 것보다, 친한 이들과 수다 떠는 것이 좋다. 그래서인지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선생들은 보통 직장인들과 달리 사우나 아줌마 분위기를 풍긴다. 그 때문에 여행에 대한 기억이 꽤 많다. 최호철 선생은 여행지마다 그림을 그렸고, 난 최호철 선생의 화집을 뒤적이며 농담을 던진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월간 무가지 〈백도씨〉를 기획할 때였다. "우리 여행 간 거 내가 글 쓰고, 선생님이 그림 그려보세요." "만화? 나 마감 잘 못하는 거 알잖아?" 일단, 방어막을 친다. 역시, 공력이 대단하다. "그냥 한 쪽짜리 그림을 그리자고요. 한 쪽짜리 만화, 그게 최호철 스타일이 잖아!" 나도 다시 공격한다. 왠지 느낌이 낚은 것 같다(p. 277).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담는 게 최호철 스타일 아닌가?" 낚았다. 파닥파닥! 그렇게 해서 〈백도씨〉에 '두 만화쟁이의 여행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내가 낚은 죄로 글을 썼고, 최호철 선생의 애간장 다 태우는 마감에 동참했다. 몇 번 빼먹은 적도 있지만, 한 스무 번쯤 마감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우리가 한때 사슴굴이라고 불렀던 최호철 선생의 개성 넘치는 연구실 소파에 앉아 뒹굴면서 이야기를 하다 한번 책으로 묶어보자는 생각이 번득였다. 최호철 선생은 낙서라고 하지만, 그냥 묵히기 아까운 그림이 많은 그의 크로키 북이 생각났다. "〈백도씨〉에 연재한 만화하고, 그와 연관된 크로키를 모아서 책으로 묶어봅 시다." "재미있을까?" "재미없으면 사람들이 만날 선생님 크로키 북 달라고 해서 보겠어요." "너무 성의 없게 그렸잖아." "성의 있게 그리면 마감 못하잖아요." "..." "또 그냥 그 시간에, 여행지에서 그린 그림이 난 좋던데." "그럽시다." 그렇게 시작된 작업이다. 그림을 모으고, 글을 고쳐 썼다. 최대한 여행지의 느낌을 사람들이 느껴주길 원했다. 여행에는 휴식과 수다가 공존한다. 혼자 가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난 함께 수다 떨 수 있는 사람과 가는 여행이 좋다. 서로 말도 안 되는 지식을 공유하고, 느낌을 나누는 여(p. 278)행이 좋다. 이 만화는 그런 여행의 기록이다. 글과 함께 그림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최호철의 그림은 읽히는 그림이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크로키 북에 그린 사람이 아주 구체적인 당신의 모습이기도 하고, 당신이 바라본 그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림을 읽으며 우리의 여행에 동행하면 어떨까? 같이 수다 떨고, 맛있는 것도 먹고, 바보 같은 개그도 하면서 말이다. 남자들이라면 더더욱, 수다가 주는 세계 평화를 함께 누려보자(p.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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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9】 만화가 주는 즐거움과 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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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8】 짐승보다 못한 인간의 잔혹함
- 〈무시무시한 처형대 세계사〉는 야욕과 애증, 배반과 음모로 뒤엉킨 잔혹한 처형의 역사를 들려주는 책이다.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를 통해 그림 동화 신드롬을 일으킨 작가 기류 미사오가 이번에는 무시무시한 역사 속 처형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근대 유럽까지 '인간'이라는 존재에 의해 자행된 처참하고 잔혹한 처형의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하였다. 이 책은 역사 속 처형장을 통해 인간 내면세계에 깃들어 있는 광기의 역사를 살펴본다. 저자는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물음을 던지면서, 다양한 이유 때문에 엄청난 피를 흘려 왔던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있다. 그리고 황제들을 비롯한 수많은 권력자들과 신의 이름을 내건 종교인들이 역사 속에서 저지른 처형의 만행과 광기의 현장을 낱낱이 고발한다-교보문고. 흥미롭게 읽었는데 품절됐다. 이 저자의 책들이 재미있어 열심히 읽고 있는데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도 대출했다. 이처럼 맹수를 이용한 처형 방법은 그리스도교가 보급되기 훨씬 전에 시작되어 5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죄수의 팔다리를 묶어 자유를 구속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죄수의 몸을 묶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간단한 무기도 사용하게 함으로써 관중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안겨 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목숨을 잃기 전에 맹수를 한두 마리쯤 해치우는 강한 죄수도 나타났다. 어쨌든 죄수와 맹수의 싸움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으로 관중들에게 꽤 인기를 끌었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서 죄수의 처형은 일종의 연극으로 연출되었다. 예를 들면, 죄수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로 분장시켜 쇠사슬로 바위에 묶은 다음 대머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게 한다거나, 헤라클레스로 분장한 죄수가 곤봉을 들고 나와 황소와 싸우다가 클라이맥스에서 황소가 죄수를 허공으로 던져 버리는 식이었다. 그리고 여자 죄수가 생겨나면서 연극 마지막 부분에 음탕함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곰이나 당나귀의 습격을 받는다는 설정도 선보였다고 한다(p. 23). 콜로세움에서 펼쳐진 다양한 잔혹극 역대 황제들의 입장에서 볼 때, 검투사 경기는 범죄자나 반역자의 잔혹한 죽음을 선보이는 것으로써 황제의 권력을 뒤흔들려 하는 자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민들에게 확실히 보여 주는 기회이기도 했다. 로마 콜로세움 안에는 지금도 십자가가 서 있다. 일찍이 이곳에서 수많은 잔혹한 방법으로 목숨을 잃은 그리스도교도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타르에 적신 셔츠를 입은 채 콜로세움으로 끌려가 화형에 처해졌다. 또는, 팔다리가 묶인 채 커다란 솥 안에서 끓는 기름에 튀겨지거나 끓는 물에 삶아지기도 했다. 성 로렌스(Sento Rorense)는 석쇠 위에서 불에 구워졌고, 성 포류카르프는 화형대 기둥에 묶인 채 불에 타 죽었다. 성 폰시아노(Sento Pontianus)는 쓰러질 때까지 벌겋게 달구어진 석쇠 위를 걸어야 했고, 성 아르테 미오(Artemius)는 맷돌에 몸이 으깨져 죽었다. 손발이 잘려 나가거나 내 장이 몸 밖으로 드러난 채 매달린 자들도 있었다. 또, 살가죽이 벗겨진 채 유리 조각 위에서 끌려 다닌 자도 있었다. 콜로세움에서 남녀 수십 명이 한꺼번에 기둥에 묶여 처형된 적도 있는데, 그 광경이 마치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숲처럼 보였다고도 한다. 관중들은 그 중에서 누가 가장 먼저 숨이 끊어질지를 놓고 내기를 하기도 했다(p. 24). 당연히, 역대 황제들도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잔혹한 피의 향연을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으로 여겼다. 예를 들어 카이사르(Caesar)는 기원 전 65년 안찰관이었을 때 검투사들을 320쌍이나 동원해 성대한 검투사 경기를 개최했으며, 아우구스투스(Augusus) 황제도 검투사를 1 만 명 정도 동원해 검투사 경기를 여덟 차례, 맹수 3,500마리를 이용해 맹수 사냥을 스물여섯 차례나 개최했다. 클라우디우스 1세(Claudius I) 황제 시대에는 한 경기장에서 검투사 500쌍이 동시에 겨루는 일도 흔했다. 잔혹한 취미가 있었던 클라우디우스 1세는 목이 잘린 검투사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일부러 죽은 자의 투구를 벗기게 했다고 한다. 칼리굴라 황제 시대의 검투사 경기는 잔혹한 취미를 끝없이 만족시키기 위한 절호의 수단이었다. 맹수 사냥에서는 범죄자를 짐승의 먹이로 던져 주었고, 검투사 경기에 출전해야 한다는 선고를 받은 죄수가 필사적으로 자비를 호소하면 그 혀를 잡아 빼라고 명령한 다음에 온몸의 상처가 곪아 악취를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채찍으로 때리게 했다. 그리스도교도 박해로 유명한 폭군 네로도 30일에 걸쳐 잇따라 경기를 열었다. 그는 맹수를 풀어놓아 어린이를 포함한 5,000명을 물어 죽이게 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한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황제는 로마 제국 안에 존재하는 난쟁이들을 모조리 모아 검투사 집단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미녀들로 이루어진 검투사 집단도 만들게 해서 경기장에서 난쟁이와 미녀를 싸우게 한 뒤 그것을 최고의 유흥으로 삼았다고 한다. 코모두스(p. 25)(Comedits) 황제에 이르러서는 아예 정치를 총애하는 신하에게 맡겨 버리고 검투사 경기에만 열중, 자기 자신도 검투사로 자주 경기에 출전했다. 그런 그가 음모를 품은 검투사 한 명에게 침실에서 암살당한 것은 운명의 장난이었을까?(p. 26). 사실은 이랬다. 불길이 번지는 상황에서 수상쩍은 남자 몇 명이 술에 취한 척 비틀거리면서 '어떤 자는 이쪽, 어떤 자는 저쪽' 하는 식으로 햇불을 이용해 불을 붙이는 모습이 목격되었던 것이다. 로마 시대의 전기 작가인 수에토니우스(Gaius Suetonius Tranquillus)에 따르면, 이 수상쩍은 무리가 네로의 노예들이었기 때문에 집정관도 제지할 수 없었다고 한다. 폭력의 피해자 어쨌든, '네로가 방화를 명령했다'라는 소문이 흘러나오면서 민중들 사이에서는 당장에라도 폭동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자 네로는 소문을 불식시키려고 방화범을 만들어 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제물이 된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도들이었다. 당시 그리스도교도들은 이단시되어 마법을 부리고 유아를 살해하고 인육을 먹는다는 식으로 중상모략을 당하고 있었다. 아무리 엄격한 금지 정책을 펴도 계속 증가하는 그리스도교도 때문에 고민하고 있던 터라 네로는 이번 화재를 구실로 그들을 철저하게 탄압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먼저 신앙을 고백한 자들이 심문을 당했고, 이어서 그들의 고백을 토(p. 67)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방화죄 혐의를 받았다. 순교자들 중에는 사도 바울로와 12사도인 베드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놀림감이 되었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당했다. 어떤 이는 짐승의 가죽을 덮어쓴 채 개 떼에게 내던져져 물려 죽었고, 어떤 이는 원형 경기장에 맹수의 먹이로 던져지기도 했다. 또 어떤 이는 온몸에 타르가 발라진 상태에서 기둥에 묶여 날이 어두워진 뒤 등불 대신 불을 밝히게끔 했다. 네로는 처형 장면을 구경하라며 바티카누스 (vaticanus) 왕실 정원을 제공해 전차 경기까지 개최하면서 흥을 돋우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이단자들을 처형한다는 명분도 네로의 인기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특히 귀족들이 불만을 품은 것은 노예에서 해방된 자들이 점차 제국의 요직을 독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었다. 화재 뒤처리 등으로 인해 그 해의 국고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되었고 그 결과 재산 몰수라는 극단적 상황에 의지할 수밖 에 없었다. 때문에 다시 막을 연 반역죄 재판의 판결은 모두 유형이나 사형이었다(p. 68). 14~17세기 유럽에서는 마녀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체포해 가혹한 고문을 한 뒤 화형에 처했다. 이러한 마녀 재판의 폭풍은 약 300년 동안 이어지면서 유럽 전역에서 맹위를 떨쳤다. 그 기간 동안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수십만에 이른다는 설도 있고, 수백만이라는 설도 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마녀로 지목되어 화형을 당한 희생자에 대한 기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프랑스 로렌(Lorraine)에서 1576~1606년 동안 2000~3000명. 보르도에서 1577년에만 400명. • 독일 트리에르(Trier)에서 1587~1593년 동안 368명. 뷔르츠부르(p. 121)크에서 1623~1631년 사이에 900명. 밤베르크에서 1623~1633 년 사이에 600명. 이것만 보아도 마녀 재판의 희생자가 엄청난 숫자라는 사실을 짐작 할 수 있다. 유럽 전체에서는 15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약 30만 명(900만 명이라는 설도 있다)이 화형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p. 122). 마녀를 불태우는 검은 연기가 유럽 하늘을 끊임없이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야기다. 당시, 불안감을 해소하는 돌파구로 선택된 것이 '마녀'였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불행과 해악을 마녀 탓으로 돌려 잔혹하게 처형했다. 마녀 사냥이 무서운 것은 증거 없이 소문과 풍문만으로도 마녀로 몰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마녀 재판이 성행했던 원인으로는 첫째, 당시의 사회 불안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유럽인들은 예전에는 겪지 못했던 혹독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유럽 인구의 30퍼센트 정도를 앗아간 페스트의 유행, 극단적인 인플레이션, 종교 개혁 운동 등, 격동의 상황에서 민중들의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었다. 답답하기만 한 그런 현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창구로 선택된 것이 바로 '마녀'였다. 마녀는 마력을 써서 날씨를 나쁘게 만들고, 밭농사의 수학물을 줄이고, 태아를 유산시키고, 남자를 성불구로 만들고, 갓난아기를 잡아먹고, 악마에게 살아 있는 제물을 바친다..... 이런 식으로 세상의 모든 불행과 해악을 마녀 탓으로 돌렸다. 유럽에 휘몰아친 종교 개혁 운동에 대해 로마 교황은 수도회를 결성해 이단 탄압에 나섰다. 마녀 재판의 전신은 13세기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가 탄생시켰다. 이른바 '이단 심문' 제도다. 이단 심문관은 교황의 보호 아래 사교나 관헌을 능가하는 권한을 가지고 오로지 그리스도교 국가 전역에서 이단을 박멸하는 사명을 맡았다(p. 123). 그리고 잔혹하기로 유명했던 요한 22세가 내린 1318년 2월 27일 교서에서 '마녀'의 비참한 운명이 결정되었다. 프랑스 고위 성직자 앞으로 보낸 이 교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마녀 재판을 시작하고 지속하여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완전한 권한을 부여한다.' 이 마녀 재판 해금 명령에 박차를 가하듯, 교황 요한 22세는 1323년, 1326년, 1327년, 1330년, 1331년에 계속 마녀 재판 강화 명령을 발표 했다. 이 강화 명령에 따라 이단 심문관의 마녀 사냥이 급격하게 기세를 떨치기 시작했다(p. 124). 마녀 재판 그 자체도, 심문, 자백의 공술(고문을 통한 자백도 포함해서), 단죄 선고, 그리고 처형(대부분이 화형)이라는 식으로 공식화되어 있었다. 중요한 것은 피고를 한시라도 빨리 죽여 그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었다. 마녀에게서 몰수한 재산은 모두 교회 소유가 되었고, 마녀 재판에 들어가는 비용 전부를 여기에서 조달했다. 간수의 식대, 처형 담당자의 술값, 교살을 할 때 들어가는 밧줄 대금, 화형을 할 때 쓰는 장작과 기름값 등, 모든 비용을 여기에서 인출해 썼던 것이다(p. 165). 기요틴에 광란하는 사람들 로베스피에르를 처형하는 것으로 공포 정치가 막을 내리자, 국내의 무거운 공기는 사라지고 단번에 향락적인 분위기가 퍼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장소에 모여 오직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피비린내 나는 과거를 잊고 희망 없는 미래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 거리 도처에서 무도회가 열렸는데, 특히 인기를 모았던 것은 회원이 한정되어 있는 '희생자들의 무도회'였다. 가까운 친척이 기요틴에 처형을 당한 사람들만 이 모임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 무도회에 참가하려고 일부러 큰돈을 주고 근친자가 기요틴에 처형되었다는 증명서를 위조하는 사람들도 속출했다고 한다. 모임에서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고 훤히 드러난 목 주위에 칼자국을 모방한 빨간 리본을 묶었다. 남자들도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마찬가지로 빨간 리본을 목에 둘렀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들 입장에서 보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현실을 받아들여 슬픔을 이겨내고 살아가려면 이런 식으로 불행을 패러디하는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p. 298). 마지막 공개 처형 프랑스에서 기요틴을 이용한 처형은 오랜 세월 동안 일반에게 공개 되었다. 그때마다 형장에는 프랑스 각지의 수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입장에서 볼 때 처형은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다. 1889년의 파리 만국 박람회 때에는 기요틴에 처형을 당한 사람이, 당시에 신축된 에펠탑보다 더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피와 잔혹함에 대한 인간의 열광은 그 뿌리가 무척 강한 듯싶다.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기요틴 공개 처형은 1939년 와이트만이라는 살 인범의 처형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축제 소동이 벌어지자 정부는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다고 한다. 처형 전날 밤, 형장이 될 베르사유 감옥 앞 광장에는 엄청난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기요틴 처형을 한 번이라도 직접 구경하려고 나무와 가로등에 매달린 사람들, 건물 창문에 바짝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사람... 사람들은 마치 축제라도 즐기는 듯한 기분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면서 소란스럽게 전야제를 보냈다. 가끔씩 말 잘하는 사람이 농담을 던지면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 소리가 감방 안에 있는 사형수의 귀에도 들렸다니 정말 잔혹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자 정부도 더 이상은 간과할 수 없어 그 뒤로는 기요틴 공개 처형을 금지했다. 이후의 처형은 각각의 감옥이 위치한 안마당에서 이루어(p. 300)졌으며, 처형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관료 아홉 명뿐이었다. 잔혹함의 상징인 기요틴 처형대는 감옥의 담장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두 번 다시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다(p.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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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8】 짐승보다 못한 인간의 잔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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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04】 사회를 분석하는 또 하나의 시각이 신선하다
- 외로움이 우파 포퓰리즘에 빠지게 만든다는 분석은 신선했다. 현재 우리나라 상황이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능력주의는 결국 양극화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분석도 동의한다. 이처럼 정치철학은 기존 철학과 다른 접근 방법과 해결책을 제시한다. 재미있게 읽었다. prologue 21세기 '우리'의 또 다른 이름, '외로움' 그러니까, 2019년 겨울이었다. 내가 외로움으로 세상을 만나기 시작한 때가. 0O정신분석센터를 개원하신 분과 우연히 인연이 닿게 되어 그곳에서 무료 강의를 열었다. 물론 나는 정신분 석을 공부한 적이 없었기에 외로움을 정신 현상의 측면에서 설명할 순 없었다. 그 대신 철학적으로, 사회 정치적 현상으로 바라본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물을 수 있겠다. 왜 하필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느냐고. 표면적으론 그해 1월 영국이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했다는 보도가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차관급 인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기사가 주는 충격이 가벼워지진 않았다. '아니, 정부가 특별히 외로움이라는 현(p. 5)상을 전담하는 관료를 임명했다니!' 결국 이 기사는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정작 우리나라에선 홍미로운 해외 토픽들 중 하나로 취급되긴 했지만 말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원래 외로운 존재 아니냐고. 나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외로움은 인간이 타고나는 감정 중 하나일 뿐이라고. 하지만 정치철학사 상 최초로 외로움을 명백하게 철학적, 정치적 주제의 하나로 다룬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이렇게 말했다. "외로움이 이토록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이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다." 놀랍게도 영어권에서는 16세기까지 외롭다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달리 말해 외로움이란 그 이전까지는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 없거나 혹은 표현할 필요가 없던 것으로, 이후 사회적 변화와 함께 찾아온 새로운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강의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수강생들은 대부분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외로움이 학습되는 감정이라니, 그것도 20세기에 들어서야 제대로 이해하게 된 감정이라니. 더 놀라운 건 수강생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그해 00정신분(p. 6)석센터에서 무료로 강의를 한 후 비슷한 강의를 수십 차례 더 했는데, 그때마다 청중들은 '외롭다'는 말에 반응했다. 많은 이들이 이미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거나, 서서히 혹은 빠르게 외로워지는 중이었다.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빈자부터 부자까지, 초등생부터 대학생까지, 부모부터 자식까지, 평범한 사람부터 시민사회 활동가와 정치 엘리트 들까지, 모두 외롭다는 말에 반응을 보였다. 그들이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진심 어린 감정이 전해졌다(p. 7) 바로 이 '외로움'이 19세기 말 전 세계적으로 제국주의가 부상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한 나라에 자기가 쓸모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넘쳐 나는 상황이라면 분명 사회적 불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19세기 말 제국주의의 핵심은 바로 이런 사회적 불만 세력을 식민지로 내보내 사회 내 불안을 없애는 것이었어요. 물론 유럽과 다른 지역 사이에 산업화의 격차, 다른 말로는 근대화의 격차가 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p. 33). 정리해 보자면, 외로움은 '이 세계에서 타자의 인정을 받으며 살아갈 터전을 잃은 느낌, 더하여 내가 이 세상에 쓸모없어졌다는 느낌, 그래서 결국엔 이 세상에 속할 곳이 없다는 느낌'이에요. 여기서 '느낌'이란 표현을 '상황'으로 대체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느낌이 개인적인 것이라면 상황은 사회적 문제가 일어나는 맥락이란 뜻이니까요. 저는 이걸 한마디로 이렇게 옮기고 싶어요. '어렵고 힘들 때 나를 인정하고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느낌, 그래서 이 세계에서 버려졌다는 느낌'이라고 말이죠. 이렇게 외로움이란 용어의 기원과 용례를 19세기 유럽의 상황에 대한 아렌트의 분석과 연결해 보면, 외로움은 인간 본연의 감정이라기보다는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새로운 경험 속에서 학습된 감정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어요(p. 34). "왜 외로움이 위험한가?"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외로움'이 위험한 이유는 '자아 상실'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에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아렌트는 외로움을 '고독solitude' 과 구분해요. 앞에서 일본이 2021년에 고독부 장관을 임명했다고 했죠? 이 사례를 보면 동아시아에선 외로움과 고독을 사실상 같은 의미로 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서구 사회에서 이 두 용어는 전혀 다른 의미예요. 그(p. 35)래서인지 아렌트도 외로움과 고독을 엄격하게 구분하죠. 고독은 '이 세상에서 버려졌다'는 느낌을 주는 외로움과는 전혀 다른 상태예요. 오히려 고독은 자기반성의 상태라 긍정적인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아렌트에 따르면 고독은 내가 나 자신과 마주 앉아 대화하는 상태에요. 다시 말해 고독은 "자신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상태인데, 그 이유는 인간에게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죠. 아렌트는 이를 "하나 안의 둘two-in-one"이라 표현하면서, 이 고독의 상태야말로 "모든 사유"가 이루어지는 기본 조건이라고 규정해요. 아렌트에게 고독이 더 의미있는 이유는 '고독에서 비롯되는 사유'야말로 한 인간이 이 세상과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에요. 고독이 만드는 사유가 자기반성으로 향한다 면, 이건 결국 사유의 본질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정립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나의 정제성을찾는 과정이죠. 그런데 이 정체성은 나 스스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아렌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내 정체성의 확인은 전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 하기 때문이죠. 이런 이유로 사유하는 인간은 늘 "내 동료 인간들 의 세계 the world of my fellow men"와 접촉하고 있어요. 세계 속(p. 36)에서 나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물을 때 그건 동료들과 내가 함께 짓고 있는 세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묻는 거니까요. 정리하자면, 고독은 한 인간이 자아를 스스로 마주하고, 그 자아를 통해 세계와 접촉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 필수적 조건이라 볼 수 있어요. 이런 이유로 세계와 접촉할 수 있는 통로로서 '교우 관계companionship'를 유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해요. 개별 인간은 교우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한 이중성, 모호함, 의심 등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때 이들이 나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렌트는 이런 교우 관계의 힘을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축복 the redeeming grace" 이라 표현해요(p. 37). 아렌트는 이렇게 자아도, 타자도, 세상도 상실한 인간에게 남겨진 유일한 정신적 능력은 세상의 경험과 분리된 '논리적' 추론이라고 말해요. 경험 속에서 타인과 사회에 대한 신뢰를 상실(p. 40)한 인간에게 믿을 수 있는 것은 자명한 공리뿐이니까요. 아렌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이래요. "2+2=4라는 자명한 공리는 절대적인 외로움의 조건 아래에서조차 뒤집힐 수 없다." 그렇기에 외로운 사람들은 자명한 공리를 제시하며 구원을 약속하는 이데올로기에 쉽사리 빠져들어요. 외로움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이데올로기에만 집착하는 이들에게 현실의 경험은 의미가 없어요. 이들에겐 이데올로기가 현실에 부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이데올로기에 부합해야 하니까요. 이데올로기에 부합하지 않는 경험은 이데올로기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예외이거나 불가피한 희생에 불과하죠. 역사의 단계적 발전을 내세우는 공산주의가 그랬고, 인종의 진화를 내세우는 나치즘이 그랬어요. 이것이 바로 아렌트가 나치나 스탈린 체제와 같은 전체주의가 대중의 지지 속에 유지된다고 주장하는 주요한 이유예요. '전체주의는 외로워진 대중의 지지로 유지된다!' 그래서 아렌트의 '외로움'에 대한 경고는 매우 의미심장해요. 비전체주의 세계에서 인간이 전체주의적 지배를 예측하게 하는 것은, 한때는 우리가 노인과 같이 어떤 소외된 사회적 조건에서 겪는 고통이라 보았던 외로움이 우리의 세기에 그 규모가 계속(p. 41) 커지고 있는 대중들의 일상적 경험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아렌트의 이러한 분석은 21세기 우파 포퓰리즘의 등장과 함께 새롭게 주목받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에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 된 우파 포퓰리즘이 외로움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주장해요. 외로움이야말로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최근 몇 년간 포퓰리스트 지도자, 특히 우파 포퓰리스트에게 표를 주었는지 설명해 주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종종 간과되는 동인"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이죠. 허츠는 '이웃, 공동체, 친구'를 언급하지 않는 유권자들일수록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답한 비율이 높았음을 지적해요. 그럼 허츠가 근거로 제시한 다양한 통계들을 잠시 함께 살펴볼까요? 2016년 '미국 선거와 민주주의 연구 센터'가 미국인 3,000명에게 육아, 금전적 지원, 관계에 대한 조언, 차 얻어 타기 등 다양한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구에게 의지하느냐고 질문했어요. 이에 트럼프에게 투표한 유권자는 힐러리나 샌더스에게 투표한 유권자보다 이웃이나 공동체, 친구 등을 언급하지 않고 그냥 스스로 해결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더 높았어요. 실제 트럼프(p 42)의 지지층은 가까운 친구나 지인이 더 적다고 응답하거나 일주일간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짧다고 답변했어요. 2016년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공공종교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자는 당시 경쟁 후보인 테드 크루즈의 지지자에 비해 운동 팀, 독서회, 학부모회 등과 같은 공동체 활동에 좀처럼 또는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이 2배나 높았어요. 미국뿐만이 아니에요. 유럽에서 15년간 17개 국가의 6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봐도 자원 활동을 자주하거나 마을 조합 등을 통해 모임을 갖는 시민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우 파 포퓰리스트 정당에 투표할 가능성이 낮았다고 해요.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는데, 공동체와 더 광범위한 관계를 맺고 있을수록,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있다고 느낄수록, 우파 포퓰리스트에 덜 현혹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해요. 이런 통계를 기반으로, 허츠는 서로 연관이 있다는 뜻의 '상관관계'가 원인과 결과를 나타내는 '인과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우파 포퓰리즘을 지향하는 정치적 성향과 외로움 사이에 강력한 고리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하죠. 결론적으로 외로움은 한 개인의 삶을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삶 또한 위협하고 있으며, 실제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단계에까지 와 있다고 볼 수 있어요(p. 43). 이런 경이적인 발전 속도는 세계적인 석학 제프리 힌턴 박사의 행보에서도 읽을 수 있어요. 토론토대학교 교수인 힌턴 박사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탁월한 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에요. 이 힌턴 교수가 개발한 '딥러닝deep learing' 기술이 바로 요즘 화제가 되는 그리고 이 장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대화형' 인공지능의 기반이 되었죠. 그런데 이분이 2023년 4월에 10년 동안 일해 오던 구글을 떠나면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관련해 자신이 잘못 예측했다고 고백했어요. 몇몇 사람들이 로봇이 사람보다 똑똑해질 거로 예측했을 때 자신은 그게 앞으로 30년에서 50년 정도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이게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거예요. 지난 5년만 돌아봐도 인공지능은 너무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면서요. 이렇게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 내는 변화를 그 기술을 만든 사람조차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있는 게 지금의 상황이에요. 이처럼 디지털 기술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자 이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2023년 7월 할리우드 배우와 작가들의 파업은 이런 우려가 반영된 단적인 사건이었어(p. 77)요. 할리우드 배우들은 인공지능으로 만든 얼굴이나 음성으로 배우를 대체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요구했고, 작가들은 GPT와 같은 인공지능의 활용이 저작권과 생계를 침해하지 않게 해 달라고 요구했어요. 인공지능이 가장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라 예측되었던 인간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하는 영역이 어떻게 잠식 되고 있는지 명확히 드러낸 파업이었죠. 이처럼 하나의 기술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발전한다는 것은 이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소수가 된다는 걸 의미해요. 그렇게 되면 당연히 이 기술이 가져올 엄청난 이득도 소수에게만 몰릴 수밖에 없어요. 브린욜프슨과 맥아피의 말처럼 소수의 승자 집단에게만 보상이 집중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거죠(p. 78). 이렇게 이용자 수가 많은 플랫폼이 큰 시장가치를 지닌 채 힘을 발휘한다는 건 특정 분야에서 독과점이 형성된다는 뜻이에요. 결국 이용자 수가 많은 몇몇 플랫폼만 이익을 내며 시장에서 버틸 수 있다는 뜻이죠. 이런 독과점은 검색 분야에서 가장 뚜렷이 나타나요. 여러분이 다 아는 구글이 대표적인 예죠. 구글은 우리가 정보를 찾을 때 광고비를 내는 업체의 정보를 가장 먼저 제공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내고 있어요. 2022년 기준으로 세계 검색엔진의 92% 를 구글이 점유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엄청나죠? 그러다 보니 소위 구글한다는 뜻의 '구글링'이 '검색한다'는 말과 동의어로 쓰일 정도예요. 몇몇 다른 검색엔진들도 있지만 구글과 비교하면 상대가 되질 않아요. 마이크로소프트가 투자한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가 등장하면서 한때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검색엔진 '빙'이 2위를 차지하며 잠시 반짝했지만, 구글이 바드를 출시한 이후 다시 잠잠해진 상태예요. 국내 검색엔진으로 네트워크 효과를 누리고 있는 기업은 네이버예요. 한글이라는 독특한 문자 체계 때문에 구글과 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죠. 그러고 보면 네이버는 정말 세종대왕(p. 82)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야 해요. 2023년 기준으로 네이버는 한국 시장의 56%를 점유하고 있어요. 구글이 국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5%이니 네이버가 독과점을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죠. 이같은 독과점은 온라인으로 요청하고 오프라인에서 노동력을 공급받는 컨시어지 경제 (운전, 심부름, 택배 등 각종 서비스를 대신해 주는 사업으로 마치 집사concierge처럼 일을 대신해 준다고 해서 붙은 이름)에서도 이뤄지고 있는데, 택시에선 우버가, 숙박에선 에어 비앤비가 지구적 차원에서 독과점 지위를 누리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에요. 비슷한 예로 '배달의 민족'은 한국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죠. 이렇게 네트워크 효과가 만들어 내는 독과점으로 인해 소수의 플랫폼, 좀 더 정확히는 이런 플랫폼들을 소유하고 있는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요. 이러니 당연히 분배 가 양극화될 수밖에 없는 거죠(p. 83). 디지털 기술에는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는데, 바로 중간 정도의 숙련이 필요한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있다는 거예요. 조귀동이 《세습 중산층 사회》 (2020)에서 설명 하고 있듯, 디지털 기술은 사무자동화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반복 수행 비율이 높은 중숙련 일자리를 대체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런 중숙련 일자리가 사라지면 소수의 전문적인 능력을 지닌 집단과 그렇지 못한 다수의 집단으로 노동의 지형이 갈라지게 되고 이로 인해 임금 또한 양극화돼요(p. 84).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 문제를 다룰 때 숙련도에 크게 주목한 적이 없다는 데 있어요. 고숙련 노동력은 이미 대기업이 독점하고 있고, 중소기업은 고숙련 노동자들을 육성하는 데 드 는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에요. 상황이 이러니 직업을 전환해야 할 상황에 놓인 대다수 노동자들은 숙련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 때문에 산업 전반이 디지털 기술을 중심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중숙련 노동자들은 고숙련 직종으로 넘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게 돼요. 결국 이 문턱을 넘지 못한 많은 이들이 저숙련 노동으로 내몰리면서 임금 또한 점점 더 양극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에요(p. 87). 격차를 더 뚜렷하게 만드는 생성형 인공지능 지금까지 디지털 기술이 어떻게 분배를 양극화하는지 함께 살펴봤어요. 이번에는 새롭게 등장한 생성형 인공지능이 어떻게 이런 격차를 더 심화시킬 수 있는지 살펴보려 해요. 대체 생성형 인공지능은 어떤 방식으로 이 격차를 더 벌려 놓는 걸까요? 우선 챗GPT가 등장한 순간으로 돌아가 볼까요? 2022년 11월 30일은 아마도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 같아요. 인공지능 스타트 업 오픈에이아이에서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GPT를 처음 선보였기 때문이죠. 공개된 지 2개월 만에 챗GPT 사용자 수는 1억 명을 돌파했어요. 더 놀라운 건 당시 공개된 챗GPT가 3.5버전 이었는데. 기능이 더 향상된 챗GPT4가 2023년 3월 곧바로 출시 되었다는 점이에요(p. 88). 챗GPT가 공개되자 몇 가지 논란이 일었어요. 그중 하나로 챗GPT의 답변에 '오류'라고 볼 수도 없는 지어낸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었는데, 사실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예요. 우리 대다수가 인공지능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리 없다고 믿거나, 그 정보가 잘못됐다면 데이터 부족이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챗GPT가 내놓는 답변을 보면 단지 데이터 부족이나 오류 때문이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무엇보다 챗GPT는 여간해선 데이터가 부족해서 모르겠다는 답변을 내놓지 않아요. 그 대신, 인간으로 치자면 아주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이나 다름없는 답변을 지어내죠. 예를 들어, 챗GPT는 이 책을 쓰고 있는 장본인인 정치철학자 김만권에 대해 《미국 정치사상》, 《한국 정치사상의 전개》 등을 썼고,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사무소 자문 위원으로 활동했다고 답해요. 저는 그런 책을 쓴 적도 없고, 그런 일을 해 본 적도 없는데 말이죠. 물론 한국어로 된 데이터가 부족한 탓일 수도 있지만, 이 문제는 데이터 축적만으론 개선될 수 없어요. 그 이유는 GPT의 알고리즘이 정보의 '정답'을 찾는 대신 정보 간의 '관계성'을 분석해 답해 주는 구조이기 때문이에요. 결국 이 알고리즘을 바꾸지 않는 한 생성형 인공지능이 알려 주는 정보에는 상당수 잘못된 내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거죠. 오히려 데이터가 축적돼 챗GPT의 답변이 정교해질수록 챗GPT가 제공하는 정보 중 잘못(p.89)된 부분을 찾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 심각해질 거예요. 우리 대다수가 인간은 거짓말을 해도 인공지능은 그렇지 않다고 믿는 상황에서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잘못된 정보는 생각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죠. 이 점을 인식한 세계보건기구(WHO)는 2023년 5월 16일 생성형 인공지능의 사용과 관련해 성명을 하나 내놓았는데, 오픈 에이아이의 챗GPT와 구글의 바드 등 생성형 인공지능을 의학적으로 사용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하는 내용이었어요. 생성형 인공지능이 형성한 정보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반드시 전문가의 엄격한 검증과 감독을 거쳐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 했죠. 이 성명이 보여 주듯 생성형 인공지능의 시대엔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정보의 정확성을 판별할 수 있는 이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게 될 거예요. 쉽게 말하면, 초고숙련 전문가가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될 것이란 뜻이죠. 이걸 분배의 차원에서 보면, 소수의 전문가에게 더 많은 부가 쏠려 그렇지 못한 이들과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예요. 단편적으로만 보면 생성형 인공지능이 모든 사람들에게 지식의 평준화를 가져다줄 거라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생성형 인공지능이 등장한 이후 현실에선 과거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정보의 정확성을 요구하고 있고, 이는 아주 소수의 전문가에게만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혜택을 주게 될 거예요(p. 90).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오해하지 않도록 당부하고 싶은 게 있어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과 기계가 관계를 맺는 게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다만 인간과 기계가 제대로 된 파트 너십을 맺기 위해선 먼저 인간과 인간의 관계 맺기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죠. 그 이유는 인간이 인간과 관계를 맺을 때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책임'이기 때문이에요. 타자와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선 그 관계가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책임 있게 행동하는 게 무척 중요해요.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이런 책임감을 먼저 배우고, 그 관계를 기계로, 비인간으로, 지구로 확장시켜 나가야 하는 거죠. 하지만 순서가 바뀌어 인간이 기계와 먼저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아마도 그 관계 안에서 책임 있게 행동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요. 인간과 기계의 관계란 인간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지 마음대로 폐기해 버릴 수 있는 것이니까요. 만약 다른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왕성하게 맺고 있다면, AI 친구는 좋은 친구 관계가 하나 더 늘어나는 거에 불과할 거예요. 하지만 주변에 친구가 전혀 혹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찾아온 AI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될 수도 있어요. 이런 이유로 저는 기계, 비인간, 지구 등으로 관계가 확장되는 지금 이 시점이야말로, 인간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 일이 더욱더 중요해졌다고 말하고 싶어요(p. 107). 우리가 사는 세계는 우연성으로 가득 차 있어요. 아무리 논리적인 예측이라도 틀릴 수 있는 게 바로 이 우연성 때문이에요. 《신호와 소음 The Signal and The Noise》 (2021)의 저자 네이트 실버는 삶의 규칙적 패턴이 박탈되면 인간들은 진리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라고 지적해요. 규칙적으로 감지해야 할 신호에 소음이 끼어드는 것이죠. 이렇게 이따금씩 삶에 끼어드는 소음은 컴퓨터로도 쉽사리 제거할 수 없어요. 생각해 보면 플라톤이 너무 확고하여 절대 틀릴 수 없는 데이터인 진리를 모방해서 이상 국가를 만들고 싶어 했던 것도 당시 아테네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던 우연한 사건과 혼란들을 통제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세계라는 건 플라톤이 말하는 이상 세계에나 있는 거예요. 동굴 바닥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변화무쌍하고 우연성으로 가득 차 있기에, 하나의 사건에 대해 내리는 판단 또한 시간이 지나면 달라져요. 그러한 우리의 삶이 담겨 있는 데이터 또한 진리와 수학적 추론 대신 변덕스런 의견과 모순적인 결정들로 가득 차 있죠. 그래서 각기 다른 경험을 쌓아 가는 인간들의 삶을 데이터화할 때, 그 안에서 유효한 패턴을 발견 할 순 있을지 몰라도 모든 걸 수학 공식처럼 짜 맞출 수는 없는 거예요. 결국 우리의 삶 곳곳에 편견이 스며들어 있다면, 우리가 만(p. 159)드는 데이터에도 그런 편견이 고스란히 반영될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데이터에서 편견을 제거하는 작업을 계속한다 해도, 삶이 지속되고 새로운 경험이 쌓고 쌓이는 과정에서 새로운 편견은 끊임없이 생겨날 거예요. 그러니 데이터에서 온전히 편견을 제거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해요. 그래서 저는 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어요. 빅데이터도 편견을 갖는다(p. 160). 결국 능력주의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들은 불평등을 경험하며 좌절에 빠지기 쉬워요. 왜 불평등을 경험하는데 좌절에 빠지냐고요? 보상이 작아서 그러냐고요? 아니, 이건 단지 보상이 충 분한가의 문제가 아니에요. 능력주의 사회에서 보상이 작다는 건 노력하지 않은 자들, 그래서 실패한 자들, 때로는 도움마저 요청할 자격이 없는 게으른 자들로 전락하는 걸 의미하기 때문 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남한테 의존하며 연명하는 기생충 취급을 받죠. 쉽게 말해 실패한 것도 힘겨운데 도덕적으로도 게으른 자가 되고 때로는 사회에 해로운 존재로 낙인찍히고 마는 거예요. 그러니 이런 처지에 있는 대다수(p. 214)의 사람들이 좌절에 빠질 수밖에 없는 거죠. 마이클 영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해요. 이렇게 능력을 결정적 요소로 보는 만연한 인식 때문에 아무 능력도 없는 다수가 무기력한 나락에 빠진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회학자로서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셈이다. 이렇게 절망에 빠지는 사람은 사회에 제대로 항의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분노를 돌리게 되며, 결국 무기력해지면서 더더욱 확실하게 절망에 빠진다(p. 215). 능력주의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 혹은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은 재능이 없고 노력도 게을리했기 때문'에 실패 했다는 좌절감에 빠지기 쉬워요.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p. 261)다고 떠들어 대는 세상에서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능력의 벽을 넘어설 수 없으니 자괴감 혹은 무력감에 빠져드는 거죠. 그렇게 위축된 사람들을 성공한 엘리트들이 오만한 시선으로 내려다 본다면, 수치심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려요. 샌델은 이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굴욕의 정치 politics of humiliation'라고 표현해요. 더하여 트럼프가 이런 굴욕의 정치에 매우 능했다고 말하죠. 그 누구도 밀려난 이들을 모욕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트럼프의 약속은, 실천과 상관없이 오직 약속만으로도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데 충분했다는 분석이에요. 더 큰 문제는 외로움에 시달리는 바람에 선동 정치에 쉽게 넘어가는 대중들일수록 '혐오hatred' 현상과도 쉽게 결합한다는 거예요. 이를 좀 더 잘 이해하려면 일단 포퓰리즘, 특히 우파 포퓰리즘에 대해 알 필요가 있어요. 앞서 간단히 언급했듯이 포퓰리즘의 기본 논리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권력을 빼앗아 갔으니, 그 권력을 다시 찾아 돌려주겠다.'는 것이에요. 21세기 좌파 포퓰리즘은 이 논리를 중심으로 충실히 움직이는데, 권력에서 배제된 자라면 누구나 연대해야 하는 존재로 규정되죠. 반면 우파 포퓰리즘은 소수의 엘리트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제3의 집단을 설정해요. 여기엔 이민자, 외국인 노동자, 난민, 여성 등이 포함되죠. 이런 기본 구도 아래 우파 포퓰리즘은 소수의 엘리트들이 자국 내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 대(p. 262)신 이들 '제3의 집단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고 주장해요. 이들이 평범한 우리 보다 더 많은 권리를 누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여론을 조장하여 지지자들의 분노와 혐오를 불러일으킨 후 이들을 세력화하죠. 쉽게 말해 '더 배제된 자'를 이용해 '덜 배제된 자'를 동원하는 방식이에요. 트럼프와 브렉시트가 바로 이런 우파 포퓰리즘의 작동 방식에 기댄 대표적 사례죠(p. 263). 누군가는 "그래서 능력주의가 공정하지 않다는 거냐, 그렇게 결론을 내고 싶은 거냐?"라고 물을 수도 있어요. 저는 누군가 능력주의가 공정하다고 강조하는 걸 부정할 생각은 없어요. 그 건 가치관의 차이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능력주의가 말하는 공정성은 소수만을 보호할 뿐 평범한 다수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사실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또한 능력주의적 공정성이 디지털 기술과 결합할 때 더 많은 이들이 경쟁에서 밀려날 것 이란 점만은,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이 아무런 사회적 보호 없이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외로움에 시달리게 될 것이란 점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p. 270). 어떤 인간도 자기 인생을 홀로 책임질 수는 없어요.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살아가며 때때로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죠. 이 사회가 분업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자체가 결 국 누구나 다른 이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고요. 따라서 이런 구조에서는 고립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고립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깊어질수록, 사회는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어요. 사실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는 듯 보여요. 제가 여러분에게 '자기 책임의 윤리에서 벗어나자'고 제안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 제안은 자기 인생에 대해 책임을 지지 말자는 뜻이 아니라, 모든 어려움을 나 혼자서 해결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는 의미예요. 때로 사회적 도움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한 어려움들도 있거든요. 또 생계를 잇는 일, 직업을 구하는 일, 더 나아가 인간답게 사는 일에 도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자주 있어요. 우리가 다른 이나 공동체(p. 284)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면, 타인에게 '어떤 어려움이라도 혼자 감당해야만 한다.'는 자기 책임의 윤리를 무턱대고 강요하진 않을 거예요. 이것이 바로 디지털 시대의 외로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가 제안하는 첫 번째 대응책이에요(p. 285). 사람들이 고립되고 파편화될수록 고통은 대체로 사유화돼(p. 290)요. 특히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각자도생의 세계라면 고통은 철저히 개인이 감당할 몫이 되죠.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는 윤리를 뼈에 새겨 넣은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에서 타자를 밀어내요. 그 어느 시대보다 복잡하고 분주한 삶을 사는 우리에겐 타자의 말에 귀 기울일 여유가 없어요. 이런 세계에서 다른 사람이 내게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미덕은 내게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 것뿐이에요. 이렇게 호소할 수 없는 고통이 계속 쌓여 가면 외로움으로 이어지게 마련이에요. 각자의 입안에 갇힌 고통의 언어들은 우리를 병들게 하죠. 그래서인지 이런 세상에서 내 말에 귀 기울이 는 존재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엄청난 행운이나 다름없어요. 내 말을 들어 주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치유받는 경험을 하죠. 경청의 친절함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는 거예요. 이에 대해 한병철은 이렇게 써요. "친근함과 경청이 없으면 공동체도 형성되지 않는다. 공동체는 경청하는 집단이다." 흔히 요즘 시대를 '공동체 없는 공동체의 시대'라고 표현하곤 해요. 이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공동체를 다시 형성할 수 있을까요? 경청을 그 시작점으로 삼자는 게 바로 제가 드리는 두 번째 제안이에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p.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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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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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04】 사회를 분석하는 또 하나의 시각이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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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03】 과거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 일본이 전쟁에서 벌인 비인간적인 범죄의 내면을 파헤친 책이다. 흥미롭게 봤다. 일본인 저자가 밝힌 이 책을 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전쟁과 죄의 연구를 시작했을 때 나의 문제의식은, 왜 일본인은 침략전쟁을 반성하지 못하는가, 반성하지 않고 무엇을 애도(p. 470)하고 있는가, 일본군의 권위주의는 전후 일본 사회에 어떻게 형태를 바꾸어 이어져 왔는가 등이었다. 잔학한 전쟁 행위와 그 전쟁에 찬동한 일을 반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위에서 '시켜서 한 전쟁'에서 내가 '한 전쟁'으로, 주체를 되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가 한 행위를 되돌아보면서 내가 저지른 잔학행위를 상기 해나간다면, 그때 내 감정은 어떠했는지, 왜 이토록 감정이 없어 졌는지, 죽인 사람에 대한 무감정과 자신의 가족, 그에 준하는 집단에 대한 감정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등에 대해 스스로의 정신을 분석할 수밖에 없게 된다.” 500 여 페이지에 육박하지만 읽을만하다! 시대 분위기에 물든 의학 그로부터 패전하기까지 3년간, 유아사는 첫 경험을 포함, 모두 일곱 번 생체 해부에 참여했다. 다섯 번은 사단 군의관 수술 연습, 한 번은 위생 초년병 교육, 또 한 번은 타이위안 군의부에서 실시한 군의관 교육을 위한 생체 해부였다. 이 일곱 번의 생체 해부로 열네 명의 중국인이 학살당했다. 북지나방면군의 기밀명령에 따라 사단마다 실시했던 군의관 교육을 위한 수술 연습은 연 2회로 정해져 있었다. 유아사는 첫 번째 생체 해부를 경험한 그해 가을, 두 번째 생체 해부에 참여 했다. 늘 하던 대로 두 명의 중국인이 수술 연습에 사용되었다. 이때 유아사는 처음으로 기관 절개를 해보았다. 한편에서는 치과의사인 N 중위가 턱뼈 골절을 가정한 아래턱 수술을, 비뇨기과 출신의 젊은 안도 소위는 고환 적출 수술을 했다. 그는 고환을 한 손에 들고 "와, 떼냈어"라며 기뻐했다. 유아사도 그렇지만, 군의관들이 꼭 외과의 출신인 것은 아니다. 또한 외과의라 하더라도 전투에서 입은 다양한 외상 처치를 두루 해낼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때 살아있는 사람의 몸을 사용하는 수술 연습은 가장 짧은 기간에 각종 외과수술 방법을 체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실습 교육이었다(p. 44). 여기에는 스스로 깨닫지 못한 채 집단에 준거해서 사는 인간의 정신세계가 잘 나타난다. 자아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집단으로 있는 한 불안하지 않다. 집단이 혼란에 빠질 때는 자신도 혼란에 빠지지만, 그때뿐이다. 집단은 끊임없이 개개인이 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모호하게 흐리고, 집단이 요구하는 모든 행위에 동의하도록 한다(p. 51). 고지마는 '자백하면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버티려고 마음 속으로 안간힘을 쓰면서도, 동시에 '거의 모두가 탄바이했다. 나만 고립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초조해졌다. '또,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결국 거짓이 드러날 것이다. 어디서든 드러날 것이다' 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는 일본을 점령했던 미군 병사가 저지른 강간 사건이 몇 년 지나서야 드러난 일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피해를 입은 여성은 자신을 강간한 미군 병사를 온 세상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찾아낸다. 나 또한 아무리 모르는 척하고 있어도 반드시 어디서부터든 조사를 당하게 될 것이다.' 고지마의 생각은 이렇게 변해갔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조차도 커다란 변화라 할 수 있(p. 162)다. 중국인 희생자에 대해서는, '그때는 전쟁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데에만 급급해서, 피해자의 처지가 되어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처지가 바뀌어, 고국의 가족이 피점령국 국민이 되어서 미군 병사에게 강간당한 사건을 듣고는, 드디어 상처 입은 자의 원한이란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죄의식과는 거리가 멀었다(p.163). 그날 밤 야간열차로 톈진을 향해 떠났습니다. 기차 안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텐진에 도착한 첫날, 둘째 날, 셋째 날..... 일주일 정도 있었는데 여전히 밤이면 잠들지 못했죠. 일 본에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해서요. 그 정도로 내 마음은 온통 일본에 돌아간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나는 정말이지 '감쪽같이 속였다' 하는 기분이었어요. 평생 죄를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는 등, 그럴듯한 소릴 해댔지만, 귀국했을 때의 내 모습은 중국 쪽이 말하는 제국주의 사상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요?" 재판이 끝나자 이들은 자유의 몸이 되었고, 일단 푸순전범관리소로 돌아갔다. 지도원, 간수, 의사, 간호사, 취사 담당 등 모든 직원이 악수로 맞아주었고, 뜰에서 송별회도 열어주었다. 그 후 소련에서 이송될 때 가지고 있던 개인 물품이 정중하게 각자 에게 되돌려졌고, 새 옷이랑 일용품, 용돈으로 중국 화폐 50원이 나왔다. 당시 중국 노동자의 평균 수입은 한 달에 40원이 었다. 이렇게 해서 일본 선박 고안마루를 타고 17년 만에 귀국한 고지마가 자신의 죄의식을 되돌리는 데는 다시 몇 년이 걸렸다. 그전에 우선, 그는 살기 위해 싸워야만 했다. 사회주의 국가에 억류되었다 돌아온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세뇌당한 사람' '빨갱이'라는 낙인이었다. 취직이 안 되고, 공안 경찰의 정기적인 방문을 받아야 했다. 그를 받아주겠다고(p. 177)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은 증원을 서두르고 있던 자위대뿐이었다. 대학 시절의 교수님과 선배가 애를 써줬지만, 중국 귀환자라는 이유로 아무 데서도 일을 시켜주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론, 자위대에서 제국 군인이 그대로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입대할 것을 권했다. 고지마는 이런 일본의 현실을 마주하고, '과연 중국에서 말한 것이 틀림없구나' 하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건재하셔서 쌀 도매상을 하고 있었으므로 1년간 신 세를 졌다. 그리고는 어렵사리 이토추 관련 회사에 들어가 소련 대상 무역 업무를 맡았다. 전범관리소에서 배운 사상과 일본의 현실을 곰곰이 생각하는 나날이 한동안 계속됐다. 고지마가 개인으로서 전쟁범죄와 맞서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p. 178). 고지마는 1998년 6월 14일에 여든 살이 됐다. 그는 전쟁에서 상처를 입은 중국인과의 접촉을 가능한 한 계속하려고 애써 왔다. 유족의 비애를 통해 죽어간 사람들의 통한을 느끼기 위해서다. 슬픈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야말로 고지마를 감정을 지닌 인간으로 존재하게 해준다. 죽인 자도 슬퍼할 수 있다. 그는 푸순(p. 197) 전범관리소에서 6년의 준비기간을 거쳤고, 자신이 죽인 아이의 얼굴을 고스란히 떠올리는 체험을 했다. 이때, 고지마가 죽인 사람들은 비로소 얼굴과 감정을 갖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지마가 인간다운 감정을 되찾는 일이기도 했다. 전쟁에 직접 관계하지 않은 세대도 고지마 같은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의 진짜 슬픔, 전쟁에서 저지른 죄를 의식하고 사는 의미를 들어봐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들도 경직된 역사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지식과 마찬가지로, 아니 지식 이상으로, 감정을 소중히 키우고 풍요롭게 가꾸어야 한다. 노병의 슬퍼하는 마음에 공감함으로써 전후세대도 감정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p. 198). 도미나가답다. 사건의 세세한 부분까지 경과를 기술하고 냉정히 자기 분석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기 분석이 지하 감방에 들어갔던 시점에서 모두 형성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 후 3년 8 개월에 걸친 전범관리소 생활로 더욱 심화했을 것이다. 그에게 전환점이 된 것은, '죽임을 당한 자의 처지에서 보았을 때 나는 어떤 인간인가'를 생각할 수 있게 된 시점이다. "지하 감방에서의 체험이 그때까지 매여 있던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을 변화시켰습니다. 억울하게 죽어야 했던 사람에게는 '명령이었으니까' 하는 말만으로는 통하지 않지요. 그렇다면 우선 실행자로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실행자는 실행자로서 책임이 있다. 그다음에 명령자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이렇게 실행자로서의 나를 인식하면서 처음으로 자신과 대결할 수 있었습니다." 도미나가의 고백에는 일본 군대라는 하나의 시스템이 어떻게 단순한 청년을 살인 수행의 부품으로 변화시켰는지에 관한 중요한 관점이 제시된다. '전쟁은 인간을 잔혹하게 만든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반화는 사고의 태만에서 비롯된다. 구체적 인 전쟁이 있고, 각각의 군대가 있으며, 그런 구체적인 시스템 속(p. 220)에서 인간은 잔혹해진다. 도미나가는 제국대학을 졸업한 후 징병되자, 다른 고학력자들처럼 당연히 견습 사관을 지원했다. 그리고 야전 소대장(소위)이 되었다. "내 부하인 부사관, 병사들은 모두 역전의 용사들이다. 나만 전투 경험이 없다. 이런 부하를 지휘하려면, 포로 한 명도 못 벤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소대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 나는 '인간이기'보다는 '야전 소대장이기'를 선택했다." 소속 집단에 적응하고자 하는 노력, 그리하여 엘리트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마음, 즉 일본형 상승의식이 그를 잔혹성을 느끼지 못하는 살인 기계로 만들었음을 볼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잔혹한 행위를 거부할 수 있을까?(p. 221).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대로 전쟁에 빨려 들어간' 심리의 깊은 곳에는, 소년 시절에 다섯 명의 가족을 묻어야 했던 체험도 관계가 있을 거라고 여겼다. 혼자만 남은 소년에게, 당시 일본의 문화는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을까? 소중한 사람을 잃었어도, 사람과 사람의 유대는 믿을 만한 것이라고 전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인생은 그대로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p. 248)상은 이상일 뿐, 별것 아니다'라고 느끼게 했을 것이다. 나의 이런 말에, 도미나가는 "나 자신의 상실감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라고 부정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도미나가가 겪은 소년 시절의 무력감, 그 무력감을 돌보려 하지 않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가, '그대로 전쟁에 빨려 들어가는 청년'을 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죄의식을 묻는 것은, 타자의 슬픔을 감싸 안는 문화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평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p. 249). 류 반장 앞에 엎드린 쓰치야의 사죄는, 천황제 이데올로기와 군국주의에서 벗어나는 '탈세뇌' 과정의 정점에서 일어났다. 우선 충분한 식사와 휴양이 주어지자, 전범들의 긴장이 풀렸다. 다음으로 천황제 이데올로기와 군국주의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일본 정부가 왜곡하고 은폐해온 사실을 알기 위한 학습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감정이 되돌아오지 않는다. 학습에 이어,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열거했다고 해도, 그것은 기억의 단순한 재생에 불과하다. 사건으로 정리하고 지적으로 반성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감정을 되돌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때의 행위는 당시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끔(p. 361) 방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 본연의 감정은 아직도 상처 입지 않도록 수많은 변명으로 겹겹이 쌓여있었다. 감정이 통하는 인간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무감각한 채로 체험해 왔던 행위를 돌아보고, 추상 속에서 다시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도입부에서 류 반장과 같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을 향한 신뢰를 쌓고, 그와의 교류를 통해 군국주의 청년이 되기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회로를 통해, 쓰치야에게는 고통받아온 중국인에게 공감하고, 그렇게까지 잔학했던 자신을 자각하고, 무감각해져 있던 자신을 느낄 능력이 생겼다. 범죄를 저질러놓고도 상처 입지 않는 자는, 느끼고 생각하는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는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의 찢어진 틈새로 감정을 토해내고, 마침내 이데올로기의 갑옷을 부쉈다(p. 362). 87세의 쓰치야는 젊은 시절처럼 빡빡 깎은 머리로 젊은 세대에게 말 걸기를 멈추지 않는다. "국가에 맹종해서는 안 돼. 전쟁만큼 큰 죄악은 없어. 이것만큼 쓸데없는 것은 없어. 그러니까 반드시 도망쳐야 해. 전쟁에 이겨서 행복해진 나라는 없다. 이겨도 져도, 수십 년 지나고 나면 세상은 완전히 바뀌어버려." 나는 어눌한 도호쿠 사투리로 말하는 쓰치야를 바라보면서, '불타올랐던 야심도 그 불씨가 다 타서 잦아들게 마련이다. 쓰치야에게도 이렇게 따뜻한 노인이 숨어 있다.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지 않고는,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고는 살기 힘든 사회에서 어떻게 도망치면 좋을지 우리에게 답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p. 368). 나는 강한 인간이기 전에 느끼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은 경직돼버린다.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늘 구체적으로 알려고 할 것. 충분히 알고 나서 당사자에게 감정 이입하여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소중한 것이 아닐까? 아버지 세대가 숨겨왔고 때로는 폭력으로 왜곡시켜온 침략전쟁의 사실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은 음침한 일이다. 그 음침함은 아버지 세대가 보여준 잔학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잔학성을 부인하려 했던 아버지 세대의 자세로부터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이 음침함을 청명하게 벗겨내지 않는 한, 감정의 풍요로움은 되찾을 수 없다. 그리고 감정의 풍요로움이 없는 한, 상처 입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능력은 생기지 않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강제로 연행하여 학대하고 죽인 데 대해서도, '듣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상하느냐 마느냐, 보상액(p. 440)을 얼마로 하느냐만이 문제가 된다. 피해자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묻고 공감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상처 입은 사람은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의해, 자신의 무력한 체험을 정리하고 존엄을 되찾을 수 있다. 그것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보상금이 화제가 된다면, 피해자는 더욱 모욕당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와타나베는 아버지의 전쟁을 알고, 아버지의 굳은 자세가 자신의 감정의 흐름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피해자의 얘기를 들을 힘을 키워갔다. 강함에 연연해하던 그의 마음은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차차 부드러워질 것이다(p. 441). 감정을 되찾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풍부한 감정을 회복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상처 입을 줄 아는 정신을 되찾을 수 있을까? 부드러운 감정은 단번에 회복되지 않는다. 나는 우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 책에서 각 장에 소개한 사람들이 했듯이,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자 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 전후 반세기가 지나 늦은 감도 있지만, 지금이라도 전쟁 시기를 산 사람들은 동시대인이 무엇을 했는지, 전후세대는 부모나 조부모가 무엇을 했는지, 물어봐야 한다. 물어봐서 알아갈 때 우리는 다음 단계에 도달한다.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알아야만 죽어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생생하게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에 의해, 고지마가 10여 년이란 세월이 걸려서야 자신의 정신적 외상을 느낀 것처럼, 굳어 있는 정신에 균열을 만들 수 있다. 살육에 직접 가담한 사람만이 아니라, 전쟁 시기를 산 세대라면 누구나 자신의 감정 마비를 문제로 느끼고 살펴볼 수 있다. 전후세대는 구라하시나 와타나베 등이 지금 시도하고 있듯이, 침략전쟁을 부인했던 전후 사회에서 왜곡될 수밖에 없었던 자아 형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살펴봐야 한다. 알고 서로 이야기 하는, 그리고 느끼는, 이 두 단계를 차례로 거쳐서, 우리는 상처(p. 464) 입을 줄 아는 부드러운 정신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드디어 그 작업이 가능한 시점에 와 있다(p. 465). 문고판 후기 일본인, 특히 남성들은 왜 이다지도 권위적이고 경직되어 있고 감정이 빈곤한가. 감정을 억압하고 짓누른 데서 오는 충동의 힘으로 다른 일을 한다. 공부한다, 시합에 이긴다, 시험에 합격한다, 자격을 딴다, 업적을 올린다, 과장•부장•국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출퇴근하고, 희미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한 '집' '무덤' '불 단 위패'를 향해 죽어간다. 모두 억압이라는 심리적 메커니즘에 의한 폭발의 힘이다. 여성들도 변함없는 인생관 아래에서 경직된 감정에 기대어 살고 있다. 좁고 정돈된 문화이긴 하나, 너무나도 감정이 빈곤하다. 게다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부인 하면서 무사도, 야마토의 혼, 일본의 아름다움을 연호한다. 전쟁과 죄의 연구를 시작했을 때 나의 문제의식은, 왜 일본인은 침략전쟁을 반성하지 못하는가, 반성하지 않고 무엇을 애도(p. 470)하고 있는가, 일본군의 권위주의는 전후 일본 사회에 어떻게 형태를 바꾸어 이어져 왔는가 등이었다. 잔학한 전쟁 행위와 그 전쟁에 찬동한 일을 반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위에서 '시켜서 한 전쟁'에서 내가 '한 전쟁'으로, 주체를 되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가 한 행위를 되돌아보면서 내가 저지른 잔학행위를 상기 해나간다면, 그때 내 감정은 어떠했는지, 왜 이토록 감정이 없어 졌는지, 죽인 사람에 대한 무감정과 자신의 가족, 그에 준하는 집단에 대한 감정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등에 대해 스스로의 정신을 분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전쟁을 반성하고, 주체를 되찾는 노력을 함으로써 비로소 오랜 세월을 요하는 감정 창조의 과정이 시작될 것이다. 그 과정은 자신이 받아온 교육, 천황제 이데올로기, 군국주의, 권위주의를 하나하나 분석하고 벗겨내고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감정을 키워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내가 만난 군인들은 그 과정 중에 세상을 하직했다. 그들이 전후세대에게, 더 젊은 세대에게 남기고 간 것은, 긴장과 이완의 빈곤한 정신으로 살지 말고 풍부한 감정을 키우기를 바란다는 유언일 것이다(p. 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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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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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03】 과거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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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80만 원 vs 118만 원
- 20년밖에 안 된 트라제를 하체 부식으로 폐차해야 할 상황이다. 6년 전 DPF를 설치한 업체에서 폐차와 관련한 톡이 왔기에 연락했더니 80만 원 준다고 했다. 가입한 동호회에 문의하니 헤이딜러라는 곳에 문의해 보라고 해 온라인으로 했더니 폐차비가 118만 원으로 책정됐다. 38만 원이나 차이가 난다. 정말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 한두 푼도 아니고 40여만의 차이라니. 이 정도면 사기꾼과 도둑놈 수준이다. 참 어이가 없다. 폐차 후 쓸 중고차를, 당근을 통해 열심히 알아보고 있다. 경차 스파크에 마음이 간다. 잘 구해져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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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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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80만 원 vs 118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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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02】 설탕이 만들어낸 역사의 여러 모습들
- 요즘은 건강을 위해 설탕을 멀리하고 있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우리는 설탕을 먹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설탕은 귀한 선물이기도 했다. 이 설탕이 불러온 세계의 여러 일들을 보여주는 이 책은 매우 흥미로웠다. 설탕 생산은 본질적으로 사람의 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생산 공정의 상당 부분이 기계화되었지만, 사탕수수 재배와 수확에는 여전히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기계가 없었던 수백 년 전(p. 7)에는 모든 공정을 사람이 직접 했기에 지금보다도 훨씬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설탕 생산과 유통이 본격적으로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대륙 간 대규모 인구 이동이 이루어졌다. 많은 설탕을 얻기 위해 수많은 노예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설탕 산업에 뒤따른 잔혹했던 노예제와 대규모 인구 이동은 오늘날 세계 인구 구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아프리카 노예의 역사와 설탕 산업이 초래한 인구 이동의 흐름을 살펴보는 일은 단지 설탕 산업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사의 큰 흐름과 그 속에서 형성된 현재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도 설탕으로 인한 이주의 역사가 있다. 바로 1900년대 초에 있었던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의 이 주다(p. 8). 포르투갈은 일찍이 마데이라제도와 아소르스제도 같은 식민지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며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부려 본 경험이 있었고, 이를 통해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흑인들이 원주민보다 체력이 좋고 노동 생산성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특히 섬의 원주민들은 유럽인이 퍼뜨린 병원균에 면역이 거의 없어 각종(p. 54) 전염병에 매우 취약했다. 실제로 유럽인이 아메리카에 발을 들인 지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원주민 인구는 거의 전멸에 가까울 정도로 감소할 정도였다. 이렇게 흑인 노예를 동원해 사탕수수를 경작하는 방식은 포르투갈에서 시작되어 점차 영국, 프랑스, 스페인으로 확산되었으며 훗날 미국의 흑인 노예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1519년에서 1867년까지 노예선에 실려 대서양을 건넌 아프리카 흑인은 무려 1250만 명 가량으로 추정된다. 이 중 배에서 약 15퍼센트가 사망했고, 최종적으로 1070만 명의 흑인 노예가 카리브해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인류 역사상 이보다 더 큰 규모의 강제 이주는 없었다(p. 55). 포르투갈이 브라질의 자원과 원주민 노동력을 착취하며 안정적으로 정착에 성공하면서, 브라질의 인구 구성은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대체로 남성 중심이었던 포르투갈 이주민과, 현지 원주민 여성과의 혼혈 인구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는 현대 브라질의 인구 구성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현재 브라질은 백인과 혼혈이 전체 인구 중 각각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둘을 합치면 전체 인구의 90퍼센트에 달한다. 흑인은 10퍼센트가량이며, 원주민은 1퍼센트 미만에 불과하다. 수백 년 전에는 포르투갈 본토 인구와 비슷한 규모의 원주민 인구가 브라질 땅에 거주했지만, 지금은 백인과 혼혈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다인종 국가가 된 것이다. 브라질의 공용어 또한 포르투갈어를 기반으로 한 브라질식 포르투갈어이다. 남북 아메리카 전체를 통틀어 포르투갈어를 쓰는 유일한 국가이자, 세계에서 포르투갈어를 쓰는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이기도 하다. 또한, 과거 포르투갈의 플랜테이션 식민 통치 영향으로 브라질 경제의 핵심은 여전히 농업이다. 그리고 세계 최대의 설탕 생산국이기도 한데, 심지어 설탕을 가공하여 에탄올을 추출해 자동차 연료로 활용하고 있을 정도다. 설탕이 화석 연료마저 대체한, '설탕 왕국' 브라질의 현재 모습이다(p. 124). 설탕이나 커피 생산뿐 아니라 광산업, 식량 농업 및 축산업, 운송업까지 성장해 브라질로 유입되는 인구가 급증하자, 브라질은 더 이상 아프리카 노예 수입만으로 노동력을 충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게다가 노예 운송은 시간이 지날수록 비용이 상승했고,(p. 126) 배 안에서 많은 노예가 질병으로 사망하는 등 조달에도 한계가 있었다. 브라질의 포르투갈인 고용주와 관리인들은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그때, 그들이 눈을 돌린 곳은 다름 아닌 브라질 내륙이었다. 브라질에는 초기 플랜테이션에 동원되었던 해안 지역의 원주민 투피 족 외에도, 과라니 Guarani 족 등 여러 부족이 내륙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문제는 1755년 이후 브라질 내에서 법적으로 원주민 노예화가 금지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현지 관리인들은 내륙 원주민을 '합법적으로' 노예화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했는데, 원주민을 일부러 도발해 분쟁을 일으킨 뒤 그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이었다. 당시 원주민 사회에는 '전투에서 이긴 자가 패배자를 포로로 삼아 부릴 수 있다'는 오랜 전통이 존재했다. 포르투갈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해 원주민들과 의도적으로 전투를 벌이고, 패배한 원주민을 포로로 삼은 뒤 노예화한 것이다. 이 밖에도 원주민을 몰래 납치해 광산이나 농장에 팔아 버리거나, 원주민에게 고리대금을 제공한 뒤 갚지 못 하면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등 비열하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원주민 착취가 이루어졌다(p. 127). 그러던 중 하와이 설탕 산업에 큰 변화를 일으킨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1861년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노예제를 지지한 남부 주들과 노예제 폐지를 원했던 북부 주들 사이에 벌어진 이 전쟁은 남부의 설탕 산업을 마비시켰고, 그 빈자리를 하와이가 채우게 되었다. 이에 가능성을 본 미국 투자자들이 금세 하와이 설탕 농장으로 몰려들었다. 다만 앞서 하와이의 농지를 점유하고 있던 이주민 선교사들은 현지에서 이미 정치적 영향력까지 지니고 있었기에, 외부 투자자들이 그들을 넘어서기란 쉽지 않았다. 1875년, 미국과 하와이 왕국은 '호혜 무역 협정 Reciprocity Treaty'을 체결했다. 이 협정으로 하와이산 설탕을 미국에 관세 없이 수출할 수 있게 되어, 하와이의 설탕 업자들은 큰 이윤을 남길 수 있었다. 이렇게 설탕 산업의 규모가 급속히 커지면서 당시 난립하던 80여 개의 소규모 농장들은 자본력과 경쟁력을 갖춘 대형 농장을 중심으로 통폐합되었다. 공급망 역시 간소화되며 불필요한 경쟁이 제거되 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로 재편되었다. 이 과정에서 '하와이 빅 파이브'로 불리는 다섯 개의 대기업이 등장했다. 이들은 하와이 설탕 산업의 90퍼센트를 장악하며 사실상 하와이 경제를 좌지우지했다. 경제력을 손에 쥔 이들은 곧 정치에(p. 223)도 영향력을 행사했고, 결국 하와이 왕국을 무너뜨려 하와이 공화국을 수립한 뒤 하와이를 미국에 병합하는 과정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하와이가 미국의 50번째 주가 된 배경에도, 이처럼 설탕 산업이 깊숙이 얽혀 있다(p. 224). 한인 이주 역사의 시작 미국의 의사이자 선교사 호러스 알렌 Horace Newton Allen은 1884년 처음 조선에 들어와 의료 선교사로 활동했다. 이후 고종과의 친분을 쌓은 알렌은 대한제국의 정치에도 깊이 관여했고, 미국 정부는 그를 주한 공사로 임명했다. 조선인의 하와이 이주는 이 알렌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조선인의 하와이 이주를 성사시키기 위해 고종을 설득했고, 결국 1902년 하와이 농장 이주를 알리는 광고가 신문에 실렸다. 그러나 당시 조선에는 하와이라는 곳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사람들은 들어보지도 못한 먼 이국으로의 이민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조선인이 주로 이주를 시도하던 곳은 만주나 연해주로, 모두 육로로 이동이 가능한 곳이었고 조선인들에게도 이미 어느 정(p. 230)도 알려진 지역이었다. 반면 하와이는 완전히 생소한 곳인데다 심지어 바다를 건너야 한다고 하니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고, 광고를 낸지 한 달이 지나도록 단 한 명의 지원자도 없었다. 결국 인천 내리교회의 헨리 존스 선교사가 자신의 교회 신도들을 설득하여 약 50명의 남녀를 모집해, 이를 계기로 총 121명의 지원자가 겨우 모이게 되었다. 이들 중에는 개신교 목사, 유학생, 향리 출신 선비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농부, 부두 하역 노동자, 군인 출신, 또는 무직자였다. 1902년 12월 22일, 이들 121명은 일본 선박 겐카이마루호에 탑승해 제물포항을 떠났다. 배는 나가사키에 들러 그곳에서 신체검사가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19명이 탈락했다. 나머지 102명(p. 231)은 나가사키에서 미국행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로 향했다. 남자 56명, 여자 21명, 아이 13명, 유아 12명으로 이루어진 인원이었다. 이들이 바로 최초의 한인 출신 미국 이민자들이다. 나가사키를 떠난 갤릭호는 10일간의 항해 끝에 1903년 1월 13일 호놀룰루항에 도착했고, 102명의 조선인 이민자는 오아후섬 북 서쪽에 있는 모레이아 지역의 와이알루아 농장에 처음 배치되었다. 이후 이민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총 64회에 걸쳐 7415명이 하와이로 이주했다. 조선인은 하와이 전역의 약 40개 설탕 농장에 분산 배치되었으며, 인원은 농장마다 적게는 30여 명, 많게는 200~300명에 달했다. 하루 10시간 노동에 점심시간 30분 정도가 휴식으로 주어졌고, 허리를 펴거나 담배를 피우는 일이 금지되었다. 하와이 원주민 언어로 '루나'라고 불렸던 농장 감독관은 소나 말을 다루듯 채찍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을 통제했으며,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릴 정도로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하와이 이주 이후에는 멕시코로의 이민이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 체결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해 독자적인 외교 활동이 불가능해졌고, 이로 인해 공식적인 해외 이민도 중단되었다. 그러는 동안 하와이 이주민 중 일부가 고된 노동과 낮은 임금으로 인해 약 1000명이 귀국했고, 2000명 이상은 미국 본토로 이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주민 대부분은 하와이에 남아 농장 노동자 또는 자영농, 소상인 등으로 정착했다(p. 232).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몸 바친 조선인 청년들 앞서 말한 대로 하와이 이주민 중 많은 수는 그대로 하와이에 남아 정착했다. 하지만 일부는 열악했던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길을 모색하며 미국 본토나 멕시코, 쿠바 등으로 이주했다. 이들이 바로 오늘날 약 260만 명 규모를 이루고 있는 미주 재외 한인의 출발점이다. 이주민 다수는 비참했던 삶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독립운동 단체에 가입해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적은 수입의 일부를 기꺼이 떼어 독립운동 자금에 보탰다. 강한 민족적 연대를 바탕으로, 조국 독립을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을 결성해 활동했던 이주 조선인의 모습은 디아스포라의 대표적 사례인 유대인이 보여 준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다(p. 233). 한편, 하와이를 떠나 미국 본토로 건너간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해 이미 활동 중이던 안창호와 서재필 등 독립 운동가들과 뜻을 함께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점차 확산되던 미주 한인 독립운동은 한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타오르게 된다. 바로 하와이에서 이주해 온 두 청년, 장인환과 전명운이 일으킨 '스티 븐스 저격 사건'이다. 주일 미국 공사관에서 대한제국 외교 고문으로 일하던 미국 외교관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 Durham White Stevens는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조선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며 일본의 식민 지배가 정당하다는 입장을 반복해 왔다. "조선인은 무지하고 우매하여 독립할 자격이 없으며, 일본 덕분에 문명화되고 있다"라는 식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당연히 그는 많은 미주 한인의 공분을 샀다. 1908년 3월 21일, 스티븐스가 여름 휴가차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또다시 일제를 옹호하고 조선을 비하하는 발언을 쏟아냈고, 이에 안창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한 독립 운동 단체인 공립협회 소속의 최정익, 문양목, 정재관, 이학현 등이 그가 묵고 있던 호텔을 찾아가 발언 철회를 요구했다. 그러나 스티븐스는 이를 거절하며, "한국 황제는 무능하고 관리들은 백성을 학대하며, 백성은 무지하다"라고 발언했다. 스티븐스를 찾아간 공립 협회 회원들은 격분하여, 의자를 들어 그를 구타하기까지 했다. 이후 여러 한인 단체가 회의를 통해 스티븐스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던 중 공립협회의 전명운이 그를 암살하겠다고(p. 234) 자청했다. 다른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보국회의 장인환 역시 "총만 구해 주면 내가 죽이겠다"라며 나섰다. 1908년 3월 23일, 스티븐스가 배를 타고 워싱턴으로 향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장인환과 전명운은 각자 권총을 챙겨 부두로 향했다. 전명운이 먼저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스티븐스를 향해 총을 쏘았지만 격발되지 않아, 권총으로 스티븐스의 얼굴을 가격하며 몸싸움을 벌였다. 그때 도착한 장인환은 전명운의 고함을 듣고 권총을 꺼내 발사했는데, 첫발은 전명운의 팔을 스쳤고 두 번째 총알이 스티븐스를 명중시켰다. 스티븐스는 함께 있던 일본 공사를 향해 쓰러졌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곧장 경찰이 출동해 두 사람을(p. 235) 체포했으며, 스티븐스는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이틀 뒤 사망했다. 이후 전명운은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으나 장인환은 25년 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구명을 위해 대동보국독립협회가 결성되어 변호사와 통역사 고용에 필요한 자금을 모았다. 이러한 노력으로, 장인환은 10년 후인 1919년 가석방되었다. 장인환과 전명운의 스티븐스 저격 사건은 미주 한인들의 독립운동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전역에 산재했던 10여 개의 한인 독립운동 단체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대한인국민회가 창립되었고, 미주 독립운동의 핵심 조직이 되었다. 장인환은 1876년생으로 당시 32세, 전명운은 1884년생으로 겨우 24세였다. 두 사람 모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온 이민 노동자 출신으로 장인환은 1904년, 전명운은 1903년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두 젊은이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철도 노동자와 어부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 가던 중, 조국의 독립을 향한 뜨거운 가슴을 안고 거사를 감행한 것이다. 스티븐스 저격 이후 두 청년의 삶은 어떠했을까? 전명운은 일본의 감시와 압박을 피해 이름을 '맥 필드Mack Fields'로 바꾸고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이어 갔다. 이후 다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건너와 세탁소를 꾸리며 어렵게 살다가, 생활고로 귀국하지 못한 채 1947년 사망했다. 평양 출신이었던 장인환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하와이로 이주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다 미국으로 건너왔다. 스티븐스(p. 236) 저격 이후 10년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1927년 잠시 귀국해 평양에서 결혼하기도 했지만, 일제의 감시와 위협을 피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후 그 또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193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조국을 위해 누구보다 청춘을 불사른 이들의 마지막은, 마치 시대가 일부러 외면이라도 한 듯 지독히도 쓸쓸했다. 이후 장인환과 전명운은 이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 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p. 237). 설탕 재벌의 섬에서 세계인이 사랑하는 섬으로 1959년 하와이가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되면서, 하와이 경제의 근간이었던 설탕 산업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초기 이주민의 노력으로 하와이에서도 설탕 산업이 성공하자 미국과 유럽에서 온 선교사와 고래잡이 어부들이 모두 사탕수수 산업에 매달렸고, 설탕 정제 공장이 곳곳에 들어섰다. 즙을 끓이는 데 필요한 땔감은 산의 나무를 베어 마련했고, 하와이의 울창했던 숲은 차차 민둥산으로 변해 갔다. 또한 미국 본토에서는 하와이산 설탕을 구매해 돈을 벌려는 이들이 건너와 하와이에 직접 회사를 차렸고, 해운사들은 물류망을 구축했으며, 산업 규모가 커지고 정교화되자 금융, 보험, 투자 서비스도 잇따라 들어왔다. 하지만 그럴수록 노동력 부족 문제가 더욱(p. 243) 심각해졌다. 하와이에서 생산된 설탕은 모두 미국 본토에 수출되었기에, 미국이 부과하는 수입 관세는 하와이 설탕의 경쟁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국이 관세를 감면하거나 면제해 준다면 하와이 설탕은 미국 남부나 카리브해에서 생산된 설탕에 비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지만, 초기 하와이는 미국 영토가 아닌 원주민들의 왕국이었기에 이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하와이 왕국이 1875년 미국과 호혜 무역 협정을 맺음으로써 잠시 해결되기는 했다. 그러나 협정으로 인한 무관세 혜택은 조약 갱신에 따라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는 임시적 특권에 불과했기 때문에, 사탕수수 농장주들은 하와이가 아예 미국으로 편입되길 원했다. 이에 하와이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미국 출신 이민자들 중심으로 하와이 왕정을 무너뜨리자는 여론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 과정에는 미국 본토 정치가들의 하와이 병합 야욕 또한 작용해, 하와이 주재 미국 공사였던 존 스티븐스John Stevens는 하와이에서의 쿠데타를 적극 지원 했다. 당시 하와이 왕국의 군주는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으로, 오빠이자 전 왕인 칼라카우아가 샌프란시스코 여행 중 사망하면서 왕위를 이어받게 된 카메하메하 왕조의 마지막 군주였다. 1891년 1월 29일 53세의 릴리우오칼라니 공주가 여왕이 된 후, 그는 미국인 자본가가 왕국의 정치와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하와이 왕국은 영영 독립국의 지위를 가질 수 없다고 판단해 미국인의 왕국(p. 244)내 참정권을 제한하고 설탕 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하려 했다. 당연히 이는 미국 출신 이주민에게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변호사 샌퍼드 돌Santord Balard Dole과 롤린 서스턴 Lorm A Thuston이 1893년 쿠데타를 일으켜 계엄령을 선포한 후, 임시 정부 수립과 동시에 하와이 왕국의 종식을 선언했다. 존 스티븐스는 호놀룰루항에 정박 중이던 미국 전함 보스턴호에 해병대 상륙을 지시 했으며, 무장한 미 해병대 164명은 이올라니궁에 진입해 여왕을 체포하고 유폐시켰다. 여왕은 미국 정부에 특사를 보내 쿠데타가 무효임을 주장했으나 묵살당했다. 이듬해 하와이 공화국 성립이 공식 선포되며 릴리우오칼라니는 여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으며, 쿠데타에 앞장선 샌퍼드 돌은 하와이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이후 하와이 공화국은 1894년부터 1898년까지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만 존속했는데, 하와이 공화국 자체가 미국에의 병합을 위해 임시 성립된 국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와이의 미국인들이 그토록 합병을 원했던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설탕 등 각종 농산품을 미국 본토로 수출할 때 관세 면에서 이득을 보기 위해서였다. 미국 또한 하와이를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여겼는데, 1898년 쿠바의 독립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스페인 간 전쟁이 터지자 하와이는 필리핀과 괌으로 향하는 이상적인 중간 기착지로 하와이를 주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같은 해인 1898년, 하와이는 미국의 준주로 편입되었다. 하와이 공화국의 초대이자 유일한 대통령을 지낸 샌퍼드 돌은(p. 245) 1900년 미국 정부에 의해 하와이 준주의 초대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1903년 총독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임명으로 하와이 연방 법원의 판사로 재직하다가 1915년 은퇴했다. 한편, 그의 사촌인 제임스 돌은 하와이에서 파인애플 농장을 경영하며 파인애플 통조림을 개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돌Ddle' 통조림이다. 이후 돌은 하와이 파인애플 산업의 상징이자 세계 과일 통조림 산업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된다. 그렇다면 하와이를 마음껏 주무르던 설탕 재벌 '빅 파이브'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들은 1875년 하와이 왕국과 미국 간의 호혜 조약 체결 이후, 하와이산 농산물 무관세 혜택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p. 246)두며 독점적 지위를 누려 왔다. 그러나 1959년 하와이가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자, 그들만의 특혜였던 관세 면제는 더 이상 의미를 잃었다. 하와이가 완전히 미국으로 편입되면서 하와이 설탕은 더 이상 '수입품'이 아니게 되어, 관세 면제의 의미가 아예 사라졌기 때문 이다. 게다가 합병 후 하와이 설탕은 미국 내 다른 주에서 생산되는 설탕과 완전히 같은 조건에서 경쟁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미국 남부의 대규모 농장에서 생산되는 설탕에 비하면 하와이 설탕은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으며 본토로의 운송비 부담도 컸다. 이렇게 영원할 것 같았던 하와이의 설탕 재벌과 설탕 산업은, 차츰 경쟁력을 상실하고 쇠락해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이 누리던 특권을 영구히 보장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미국과의 합병이 자신들의 산업 기반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하와이는 이제 소수 재벌의 손아귀에 놓인 섬도, 설탕 산업의 그림자에 머물러 있는 곳도 아니다. 매년 약 9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세계적인 휴양지이자,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다채로운 섬이다. 여전히 섬 곳곳에서 과거 성행했던 설탕 산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지만, 오늘날 하와이의 진면목은 풍부한 자연과 다채로운 문화, 그리고 따뜻한 환대에서 찾을 수 있다(p.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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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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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02】 설탕이 만들어낸 역사의 여러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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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01】 오프라 윈프리를 통해 배우게 되는 것들
- 오프라 윈프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나 그녀가 쓴 이 책은 여러모로 감동을 줬다. 낮은 데서 시작해 정상까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도전을 준다. 현재는 개정 증보판이 나와 있다. 우리는 매일 경이로움을 느낄 기회가 있는데도 그것을 마다하고 감정의 마비상태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퇴근하고 차를 몰아 집에 도착해 문을 연 후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더라, 하고 자문한 경험이 누구나 있으리라.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이 있다면, 나는 결코 보고 느끼는 것에 둔감해져서 문을 닫아거는, 그런 삶은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하루하루가 가능성의 범위를 확장하는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원한다. 모든 단계에서 기쁨을 맛보는, 그러한 시작이 되길 원한다(p. 41). 내가 종일 열심히 일하는 것은 책 읽을 시간을 내기 위해서다. 훌륭한 소설이나 자서전, 차 한 잔, 몸을 푹 파묻고 앉을 수 있는 아늑한 공간만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 속에 사는 것이 정말로 좋다. 종이 위에서 살아나는 사람들과 만나서 느끼는 유대감은 나를 전율케 한다. 그들의 상황이 나와 크게 다르다 한들 대수랴. 나는 마치 내가 그들을 정말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낄 뿐 아니라 그들을 통해 나 자신(p. 42)을 더 잘 파악하게 된다. 통찰력과 유용한 정보. 지식과 영감과 힘. 좋은 책은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덤도 얹어준다. 독서라는 훌륭한 도구가 없었다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을지. 어떤 사람이 되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마도 열여섯 살에 라디오 방송국에 스카우트되는 일은 절대 없었으리라. 어느 날, 내슈빌의 WVOL 라디오 방송국을 견학하던 내게 디제이가 물었다. "네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한번 테이프에 녹음해볼래?" 그러고서 그는 내게 뉴스 대본과 마이크를 건넸다. 잠시 후 녹음되어 나오는 내 목소리를 듣고 그는 상사에게 외쳤다. "이 애 목소리는 꼭 들어봐야 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방송국에 고용되었고 방송에서 뉴스 대본을 읽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일- 큰 소리로 글을 읽는 일 -을 하며 돈을 벌게 되었다. 여러 해 동안 아무나 붙들고 시를 낭송해대고 손에 들어오는 것은 모조리 읽어댄 끝에 일어 난 일이었다. 한때 책은 내게 일종의 탈출구 역할을 했다. 지금의 내게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성스러운 즐거움이며, 내가 원하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갈 기회와 다름없다. 독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 사용법이다. 독서가 우리의 존재를 열어준다는 것(p. 43)을 나는 확실히 안다. 독서는 우리가 자신을 드러내며, 우리의 정신이 흡수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접근할 방법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내가 독서를 가장 사랑하는 이유는, 책 읽기를 통해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는 우리가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 준다(p. 44). 내 삶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목표는 영적인 세계에 계속 머무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문제는 모두 알아서 해결된다. 이 점에 대해 나는 확신한다. 나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늘 현재의 순간에 머무르려고 노력한다. 미래를 앞서 생각하거나 과거의 실수를 떠올리며 후회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의 진정한 힘을 느끼려고 애쓴다. 감히 말하건대, 그것이 바로 기쁨에 찬 삶의 비밀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우리처럼 영혼이 굳어버린 이들이 '순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을 기억하고 그처럼 살아간다면 세상은 아마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재미있게 놀고 깔깔대고 웃으며 기쁨을 맛 보면서 산다면 말이다. 내가 여덟 살 꼬마였을 때부터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인 시편 37편 4절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그리하면 그분이 네 마음의 소망을 이루어주시니." 나는 여러 경험을 거치면서 이 말을 항상 주문처럼 외며 살아왔다. 주 안(p. 45)에서 - 선량함, 친절함, 연민, 사랑 안에서 - 기뻐해보자.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기다려보자. 그러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p. 46). 하지만 나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삶에 존재 하는 가장 거대하고 가치 있는 도전 중의 하나라는 것을 확실히 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내 모습을 가지게 한 씨앗이 언제, 어떻게 뿌려졌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그 씨앗을 바꿔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책임이다. 우리가 사는 이 우주에는 반박 할 수 없는 법칙이 하나 있다. 우리는 각각 자신의 삶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행복이나 불행이 다른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우리는 반드시 용기를 내어 타인에게서 받지(p. 51)못한 사랑을 자신에게 주어야 한다. 내 성장을 위한 새로운 기회가 매일 어떻게 찾아오는지 눈여겨보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어머니와 싸우다가 매듭짓지 못하고 묻어둔 의견 차이가 배우자와의 언쟁에서 어떻게 튀어나오는지,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무의식적인 감정이 내가 하는 (그리고 내가 하지 않는) 모든 일에 어떻게 모습을 드러내는지 살펴보자. 그러한 경험을 통해 삶은 우리에게 과거에서 벗어나 온전한 한 인간이 되라고 촉구한다. 주의를 기울여보자. 나의 선택 하나하나가 나만의 길을 닦을 기회를 준다. 끊임없이 움직이자. 한껏 속도를 내자(p. 52). 어떤 힘든 순간에도 밝은 면은 있는 법. 비밀이 폭로되면서 나를 묶고 있던 속박도 풀렸음을 깨달았다. 그 일이 일어난 후에야, 비로소 나는 어린 소녀의 영혼에 난 상처의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스스로를 질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수치심을 품고 사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무거운 짐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배웠다. 우리가 수치심을 극복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알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지혜 안에 머물게 된다(p. 57). 성공을 좇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어두운 그림자가 실은 우주가 내게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기 위해서 준비한 거라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면서, 나는 내가 배운 가장 위대한 교훈 중 하나를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당신도 삶에서 마주치는 경험을 그런 식으로 바라본다면 하나하나가 기적이 되고 축복이 되며 기회가 된다. 만약 내가 1977년에 볼티모어의 6시 뉴스 앵커 자리에서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오프라 쇼를 시작할 기회는 제때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장애물을 가치판단 없이 그 자체로 바라 볼 수 있다면, 당신은 소망의 장소로 당신을 인도해줄 길에 대해 결코 믿음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확실히 안다. 미래의 당신, 즉 당신이 되어야 할 그 운명적인 존재는 지금 당신이 있는 바로 이곳으로부터 진화한다. 당신이 배워야 했던 교(p. 67)훈과 당신이 저지른 실수, 당신이 맛보았던 좌절 모두를 미래를 향한 디딤돌로 여기고 감사하는 법을 배우자.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은 명백히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p. 68). 여러 해에 걸쳐 수천 명의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나는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소망이 한 가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 자신이 가치 있게 여겨지고 싶다는 소망이다. 소도시 토피카에 사는 주부이든 대도시 필라델피아 시에서 일하는 직장여성이든,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우리를 사랑하고 필요로 하고 이해하고 인정해주기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갈망한다. 깊고 아늑한 관계 안에서 생기 있고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며 살고 싶어 한다. 언젠가 오프라 쇼에서 일곱 명의 남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나이와 배경이 다양한 그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아내를 두고 바람을 피웠다는 점이었다. 그 인터뷰를 통해서 나는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 중에서 가장 흥미롭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고 아주 큰 각성의 순간을 맛보았다. 우리는(p. 75)모두 내 말을 들어주고 나를 필요로 하고 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갖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형태로든 그러한 열망을 확인받기를 원한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 다. 많은 사람이 - 남녀 구분 없이 - 그저 '나는 정말 괜찮다'는 것을 확인받기 위해 바람을 피운다. 자신이 여성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도덕적 가치관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결혼 18년 차의 남성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내연녀에게 특별히 대단한 점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내 말을 들어주고, 내게 흥미를 보였고, 무엇보다 내가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래, 바로 이거야!'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다른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느끼고 싶은 것이다(p. 76).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받을 때 그것은 모두 보너스나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 확실히 알고 있는 이 교훈은 라디오에서 일하던 그 시절에 싹튼 것이었다. 당신도 자신에게 평 생 동안 보너스를 주는 건 어떨까? 우리의 열정을 추구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해내자. 그리고 그 일을 하자!(p. 149). 다음에 벌어진 일에 대해 누군가는 우연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하늘의 뜻이 작용했다고 말하고 싶다.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프리실라 프레슬리의 인터뷰 줄에서 빠져나와 <모크 앤 민디>라는 새 시트콤 드라마에 출연하는 젊은 코미디언을 인터뷰하게 되었다. 내가 인터뷰한 5분 중 가장 유쾌하며 미친 것 같고 정신이 홀라당 나간 듯한 5분이었다. 그날 내가 인터뷰한 젊은 코미디언은 내가 만나본 모든 명사뿐 아니라 인간 전체를 통틀어 가장 고삐 풀린 말 같은, 기발하며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같은 사람이었다. 그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의 입을 다물고 있기는 했다.) 그는 에너지가 분출하는 샘 같았다. '아직은 누군지 잘은 모르겠지만 곧 엄청나게 뜨겠어'라고 생각하던 게 기억난다. 그는 자기가 지닌 여러 가지 다른 모습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날 내가 인터뷰한 젊은 코미디언은 바로 로빈 윌리엄스였다. 그와 어울리는 것은 너무나 재미있었고, 그 순간 나는 인터뷰가 흘러가는 곳으로 그저 따라가는 법을 배웠다. 그는 사방팔방으로 튀고 있었고 나는 그 흐름을 따라야 했다(p. 154).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혼자서 조용히, 나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예순 살이 된다!'고 자꾸 되뇌었다. 그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 그 말이 지닌 의미를 축하할 수 있게 오래 살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다. 내가 예순 살이 된다. 나는 살아 있다. 건강하게. 튼튼하게. 내가 예순 살이 된다. 그리고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쁘라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더는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그 케케묵은 걱정을 다들 알 것이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내가 제대로 말하고 있는 걸까?' '남들이 기대하던 수준의 사람이 되었을까' 등등) 예순 살이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지금의 내가 될 권리'를 정당하게 획득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내가 지금의 나 자신이라는 점에 당당하다. 데렉 월컷Derek Walcon이 아름다운 시 「사랑 뒤의 사랑Love After Love」에서 묘사한 그 순간에 이른 것이다(p. 199). 격한 기쁨으로 당신은 당신의 문 앞에, 당신의 거울 앞에 선 당신 자신을 반길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가 보내는 환대에 미소 지을 겁니다. 내가 이 세상으로 와 거니는 이 여행은 실로 경이롭게 펼쳐지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의 삶은 기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심지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도 그렇다. 나의 탄생이 참나무 그늘에서 남녀가 한 번 놀아난 결과임을 고려한다면.)(p. 200). 나는 그 병이 어디서 옮은 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학대를 겪은 과거가 있는 사람은 적절한 선을 긋지 못하는 과거 역시 갖고 있다. 어린 시절에 사적인 영역을 침해받은 이들의 경우, 그들을 마음대로 이용하려는 사람을 막을 용기를 쉽사리 내지 못한다.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면 거부당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해 동안 나는 내게 부탁을 하는 거의 모든 사 람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다른 이들이 내게 품고 있는 기대,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며 나는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자신을 다그쳤다(p. 206).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만 나눠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한다면 결국 우리는 텅 비게 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과 가족, 일과 관련하여 우리가 이룰 수 있는 성취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러니 자신을 위해서 나라는 우물을 다시 채우자. 그럴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는 나 자신에게 줄 삶도, 나를 위해서 살 삶도 없어요'라고 말하는 셈이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살아갈 삶이 없다면, 우리가 이곳에 있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10여 년 전, 나는 커다란 교훈을 하나 배웠다. 일요일을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으로 따로 떼어놓았음에도 전화벨은 어김없(p. 222)이 울려댔다. 나는 전화를 받았고, 그럴 때마다 기분이 상하고 전화를 한 사람에게 짜증이 났다. 그런 나에게 스테드먼이 물었다. "오프라, 통화하고 싶지 않으면서 왜 자꾸 전화를 받는 거요?" '아하!'의 순간이었다. 전화벨이 울린다고 해서 내가 꼭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 시간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고 통제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설혹 시간과 일정이 나의 통제를 벗어나 엉망진창이 된 것처럼 보인다 해도 그것은 결국 자신의 탓이다. 당신의 시간을 보호하라. 당신의 시간은 곧 당신의 인생이다(p. 223). 후퍼 선생님의 5교시 수학 시간. 내가 곧 치를 시험을 걱정하며 자리에 앉아 있을 때 인터콤을 통해 교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특별한 손님이 강연하러 오셨으니 강당으로 모이라는 것이었다. '살았다! 만세!' 오늘 수학 수업은 이걸로 끝이란 생각에 나는 혼잣말을 했다. 반 친구들과 한 줄로 서서 강당 안에 들어갈 때 내 머릿속에는 수업에서 탈출했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또 다른 지루한 시간에 대비해 졸 채비를 갖췄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제시 잭슨 목사가 강연자로 소개되었고, 킹 목사가 저격당한 날 그와 함께 있던 흑인 인권 운동가가 그날의 강연자임을 알았을 때 나는 몸을 좀 곧추어 세웠다. 그 순간에는 미처 몰랐지만 나는 그날 내 일생일대의 강연을 들을 운명이었다. 1969년이었다. 나는 성적표에서 A와 B를 받는 우수한 학생이었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쯤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잭슨 목사는 내 안에 불을 지피(p. 247)며 내가 삶을 보는 방식을 바꾸어놓았다. 그의 강연은 우리 선조들이 치른 개인적인 희생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이 어떤 경로로 이곳에 와서 머무르게 되었건 그들은 우리 모두를 위해 희생을 치렀다고 강조하면서, 그런 류의 희생에 관해서도 덧붙였다. 또한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에 와서, 우리가 내슈빌의 흑백 통합 고등학교에 앉을 수 있도록 길을 닦아준 사람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지금의 우리는 자신에게 탁월함을 빚지고 있다고 하면서 지금보다 더 탁월해질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탁월함은 인종차별을 막는 가장 강력한 억제책입니다. 그러므로, 탁월해지십시오." 나는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날 저녁 집에 갔을 때 나는 마분지를 찾아내서 그가 말한 문구를 적어서 포스터를 만들었다. 그 포스터는 그때부터 대학 시절까지 내내 거울 위에 머물렀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포스터에 나의 글귀들을 덧 붙여나갔다. "성공하고자 한다면 탁월해져라." "이 세상이 제공하는 가장 최상의 것을 원한다면 너 또한 세상에 최상의 너(p. 248)를 제공하라." 그러한 구절들은 내가 수많은 장애물을 넘는 네 도움을 주었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했을 때조차 그랬다. 지금도 나는 탁월해지려고 한다. 나눔에 탁월할 것. 호의를 베품에 탁월할 것. 노력하는 것에 탁월할 것. 투쟁과 대결에 탁월할 것. 내게 있어 탁월함이란 어떤 경우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을 뜻한다. 돈 미겔 루이스의 책 『네 가지 약속』에 나오는 마 지막 약속이 바로 그것이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라.' 이것이 우리가 자유로 가는 가장 만족스러운 길임을 나는 확실히 안다. 루이스에 의하면, 우리의 최선은 그날의 기분과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모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 한다면 자기 자신을 꾸짖으며 판단하고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낄 일이 없을 것이다. 하루를 마감할 때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어"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살자. 그렇게 우리는 최상의 삶을 산다는 위대한 과업에 탁월해질 수 있다(p.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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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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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01】 오프라 윈프리를 통해 배우게 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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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00】 집 하나 마련하기도 어려운 인생살이
-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나는 서울 출생으로 지금까지 서울에서 살고 있다. 초등학교 때 “서울특별시”라고 주소를 적을 때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돈이 없어서 쪽방으로 몰리거나, 혹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청년들이 쪽방같은 원룸에서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다. 날 때부터 집을 갖고 태어나는 달팽이보다 못한 것이 요즘 대부분의 삶이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쪽방은 개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겨우 한 사람 누울 수 있는 공간은 보일러도 없어 난방이 되지 않았다. 공동수도에서는 냉수만 쏟 아졌다. 타지에 사는 건물주는 안전 관리는커녕 기본적인 수선 의무도 다하지 않아, 행정 당국에서 세금을 들여 땜질식 수리를 해주고 인근 교회나 쪽방상담소에서 뻗는 온정의 손길로 어설프게 사람이 사는 거처의 형상을 갖춰가는 곳. 이런 곳에서 세입자는 노숙을 겨우 면한 대가로 매달 22만 8188원(서울시 평균)을 세로 낸다. 폐가에 가까운 건물의 수리는 당국의 세금으로 하고, 세입자에게 받는 면적 대비 월세는 강남 타워팰리스 월세의 수배에 이르는 쪽방, 그 이면에서는 세를 모은 건물주들이 빌딩을 세우고도 남을 부를 증식하는 이 황당한 상황이 창신동만의 사례는 아닐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p. 48). 쪽방촌 주민 가운데 4명 중 1명(27퍼센트)은 최근 1년 동안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했다. 가난하고 병들어 소비를 하고 노동할 쓸모가 없으면 구조에 부담이 되는 비용으로 바라보는 사회 에서 이들이 건강한 심리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사회안전망이 되어주는 '관계'라도 있으면 절망에 빠졌을 때 누군가 건져내줄 수 있으련만, 쪽방촌 주민 가운데 75.5퍼센트가 '가족 중 연락할 사람이 거의 없는' 상태다. 지난 1년 동안 쪽방촌에 사는 자신을 방문한 가족이나 친지가 전혀 없는 비율도 61.1퍼센트에 달했다(p. 66). 2010년 여름, 캘린더상 계절은 가을이었으나 날씨는 폭염에 가깝게 더워서 냉면 한 그릇이 간절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월세를 내고 나니 통장에 잔고가 300원뿐이었다. 근 10년 전엔, 후불 교통카드가 없어 매번 일정 금액을 충전해야 했다. 마포구 성산동에서 과외 수업을 마치고 버스 정류장에 덩그러니 앉아 묘수를 떠올리고 있었다. 원룸이 있던 서대문구 연희동 북쪽 끄트 머리까지는 마음먹고 걸으면 1시간이면 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몸이 녹아내릴 듯 더웠고, 걷기에는 체력이 뒷받침해주지 않았다. 30분을 가만히 앉아 있었을까. 그때 일을 하고 있었을 고향의 엄마에게 SOS 문자를 보냈다. '엄마, 나 만 원만 보내줘. 잠깐 돈이 부족하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분으로 문자를 보냈을지 짐작할 리 없는 엄마는 1만 원을 '딱' 맞춰 입금해줬다. 통장에 돈이 입금되자마자 근처 김밥천국에서 냉면을 한 그릇 해치웠다. 그거라도 먹지 않으면, 나 자신이 불쌍해 길 한복판에서 눈물이 터질 것 만 같았다. 그리고 버스를 탔다. 통장 잔고가 4000원가량 남았다. 나의 가난과 직면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다(p. 127). 청년 주거는 한국 사회가 앓는 문제를 다면적으로 품고 있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이나 다름없다. 기성세대 건물주가 청년 세대 세입자에게서 폭리를 취하고 그들을 착취한다는 점에서 '세대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또, 대부분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들이 고향에 있는 부모의 돈으로 주거 비용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서울로의 쏠림'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또는 '서울에 사는 것이 스펙'이라는 관용어처럼, 청년 안에서도 서울 출신 중산층 청년과 지방에서 올라온 도전자 청년이 분화(p. 144)할 것이다. 여러 측면이 있지만 결국 본질은 가지지 못한 자는 애면글면하며 계단 하나를 올라서지 못하고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를 '착취'하는 비정한 도시의 면모다. "과거에는 이렇게까지 잔인한 방식으로 착취하진 않았어요. 사회가 이렇다보니 결국 청년들이 못 살겠다며 저출생 등으로 반응하고 있잖아요.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서울 지역 청년 주거빈곤율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상황이 연쇄적으로 이어질 겁니다." (최은영 한국도 시연구소 소장) "'민달팽이 유니온'은 대학생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매년 실태 조사를 벌여요. 그런데 최근 들어 주관식 답변에 '청년 피 빨아 먹는 임대업자' 같은 표현이 출현하는 빈도가 잦아졌어요. 저는 청년 세대의 분노가 어느 임계점에 다다랐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청년들의 주거 환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최지희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p.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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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00】 집 하나 마련하기도 어려운 인생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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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299】 부러운 것 중 하나, 세상을 보는 지식
-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저자가 가진 지식이다. 어려서부터 앎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알고 싶고, 아는 사람이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 알려고 열심히 책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재미있게 읽었다. 독자적인 어휘로서 지식인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세기 초의 폴란드였다. 인텔리겐치아라는 말이 여기서 탄생했다. 19세기 중후반 러시아에서 등장한 인텔리겐치아는 특기할 만하다. 그중 결의 높은 이들이 농노제와 차르 전제를 비판하면서 '인민 속으로!'(브나로드!) 들어가고 있었다. 지식과 실천을 결합하는 비판적 지식인의 또 하나의 원형이라 하겠다. 귀족이나 부르주아 출신이면서 자기 계급에 맞서는 운명을 걷게 된 이들 인텔리겐치아의 삶에는 어떤 슬픔의 정조가 배어 있다. 러시아의 사실주의 화가 일리야 레핀의 1880년대 작품 「아무도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에 그 느낌이 선연하다. 가족이 머무는 단란한 거실에 갑자기 문이 열리고 초췌한, 하지만 형형한 눈빛의 지식인풍 남성이 막 들어서는 중이다. 갑자기 시베리아 유형이 풀리면서 등장한 아들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이 인물을 바라보는 어머니, 부인, 아이들, 하녀들의 반응이 저마다 극적이다. 어느 누구도 지금 이 시점에 그가 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기쁨도 당혹도 아닌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저 찰나의 정지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모른다. 비판적 인텔리겐치아가 걷는 길이 그랬던 것처럼(p. 36). 러시아의 인텔리겐치아에게 추방과 주변화라는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것과는 달리,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프랑스에서 등장한 지식인에게는 가시밭길 뒤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었 다. 현대적 의미의 지식인은 이 시기 프랑스에서 등장했다. 유태인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Alfred Dreyfus가 독일에 기밀정보를 누설한 반역자로 낙인찍힌 사건이 일어났다. 군사재판은 그에게 최종 유죄를 선고했다. 반유태주의에 사로잡힌 군부는 따로 진범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드레퓌스에게 반역자의 누명을 씌웠다. '진실'을 구하기 위해 일군의 사람들이 나섰다. 에밀 졸라 Emile Zola를 비롯한 문필가, 언론인, 교수, 의사 등이 공개적으로 글을 쓰고 서명하고 행동에 나섰다. 지식인이라는 집단이 출현한 시기다. 프랑스 사회가 두쪽으로 갈라졌다. 에밀 졸라는 유죄 선고를 받고 망명에 올라 죽을 때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진실이 승리했다. 진범이 잡혔고 드레퓌스는 명예를 회복했다. 지식인들이 승리했지만 최종적인 승자는 공화국이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대혁명 이래 100년을 넘게 이어온 왕당파, 보수파의 반격을 종식시켰다. 혁명이 완성됐다. 지식인의 손으로. 그들의 펜으로! 이렇게 등장한 지식인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프랑스를 대표하는 실천적 지식인 사르트르의 입을 빌려서 생각해보자. 사(p. 37)르트르에 따르면 "지식인이라는 집단은 지적 능력에 관계되는 일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명성을 획득한 후에, 자신들의 영역을 벗어나, 인간이라는 보편적이고 독단적인 개념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사회와 기존의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자신들의 명성을 남용하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 이다. 친절하게 좋은 사례까지 덧붙여준다. 핵무기 제조를 위해 핵분열을 연구하는 이들은 학자일 뿐이다. 이 학자들이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에 놀란 나머지, 핵폭탄의 사용을 억제하는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회합을 갖고 선언문에 서명할 때 그들은 지식인이 된다. 첫째, 그들은 폭탄을 연구하고 제조한다는 자신들의 임무와 권한을 넘어서 폭탄의 용도에 대해 판단하는 일에 개입하고 있다. 둘째, 그들은 사람들이 인정해준 그들의 명성 또는 권한을 이용해서 여론에 압력을 가한다. 셋째, 그들은 폭탄의 안전에 대한 기술적 우려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최상의 기준으로 취하는 가치체계를 명분으로 폭탄의 사용을 반대한다. 지식을 토대로 하되, 직분이 그어놓은 경계를 넘어 사회에 대해 비판적 발언과 행동을 수행하는 집단이라는 지식인 집단의 특징이 여기서 뚜렷해진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지식인은 기본적으로 고독한 존재다. 그 누구도 지식인에게 무언가를 위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지위고, 스스로 걸머지는 책무다. 지식(p. 38)인은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해방되지 않으면 그 자신도 해방될 수 없는 존재다. 해방을 위한 지식인의 과업은 무엇인가? 민중을 마비시키는 이데올로기가 민중 속에서 계속해서 되살아나는 현상과 맞서 싸우는 일이다. 뿌리까지 내려가서 비판적으로 되는 것, 즉 급진적 지식을 창출하는 것이 지식인의 임무다.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라는 제목으로 사르트르가 강연을 하던 1960년대 중반은 이런 지식인상이 절정에 도달한 때였다. 세계의 여러 곳에서 지식인은 반전과 평화, 노동자와 인민의 권리와 해방을 외치며 지식인적 실천에 앞장섰다. 사르트르가 말하듯 지식인은 자신의 고유한 목표, 그러니까 지식의 보편성과 사유의 자유, 즉 진리를 위해 싸웠다. 그 목표가 노동계급과 인민의 해방이라는 목표와 일치한다고 믿었다. 쓰고 서명하고 토론하고 행진했다. 지식인의 신화시대라 할 만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죽었다(p. 39). 20대 남성의 보수화라는 현상은 단지 청년세대 남성이 정치적으로 보수화되고 있음을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여기에는 적어도 두가지 이상의 사회적 균열이 동반되어 있다. 첫째, 청년 세대에서 젠더 대결의식이 격화되면서 일부 청년 남성이 두드러지게 반여성주의적 성향을 띠게 되었다. 이들은 할당제를 포함한 각종 여성 우대 정책에 의해 자신들이 역차별받고 있다고 믿는다. 둘째, 이들은 좋은 시절에 태어나고 자란 기성세대인 86세대가 성장의 과실을 모두 누린 다음, 청년세대에게 돌아갈 상승의 사다리를 치워버렸다고 믿는다. 여기에 셋째 항목이 추가된다. 기득권이 된 진보 86세대 남성들은 성불평등 시대에 남성으로서의 기득권을 마음껏 누린 다음, 이제는 성평등을 내세우며 현재 청년세대 남성을 희생양 삼아 그 죄의식을 덜어내려고 한다. 기득권도 유지하고, 좋은 남자도 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기성세대 중에서도 특히 진보 586세대, 그러니까 나 같은 부류에 대해 극도로 분노하는 이유다(p. 68). 다른 한편으로 이 현상은 역설적이다. 조사들은 능력주의 신념을 강화하고 젠더갈등을 부추기는 흐름이 주로 경제적 상층에 속하는 청년 남성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들이 보수화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반면 하층의 20대는 상층보다 진보적 의제에 대해 친화적이다. 20대 남성 안에서도 경제적 계층의 차이에 따라 생각이 크게 다르다. 물론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통계적인 추정일 뿐 현실 자체는 아니다. 현실은 훨씬 복잡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한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20대 남성이라는 단일한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20대 남성 보수화라는(p. 78) 현상도 마찬가지다. 기성세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나 자신이 속한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이 현상을 어떻게 보고 대처해야 할지 생각해보고 싶다. 20대 남성이라는 범주가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86세대라는 범주도 남용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1990년대 후반에 386세대라는 말이 처음 출현했을 때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은 매우 좁았다. 이 시기에 30대가 된,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며 민주화운동에 참가한 이들은 동세대 집단 중 어느 정도나 될까? 사회학자 신진욱이 『그런 세대는 없다』 (개마고원 2022)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한줌에 그친다. 1980년대 동안 학령인구 중 4년제 대학 취학자는 겨우 12%다. 386세대라는 말은 그중에서도 소위 '메이저 대학' 출신의 운동권을 주로 가리켰다. 그야말로 한줌이다. 이들은 한국경제 고도성장의 절정기부터 마지막 시기에 걸쳐 대학을 졸업하고, 비교적 쉽게 전문직과 화이트칼라로 노동시장에 진입했다. 벤처기업 전성기에 큰돈을 벌기도 했고, 문화산업 팽창기에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부동산 등 자산시장 상승의 혜택을 입은 이도 꽤 있다. 정치나 사회운동에 뛰어든 이들 중에(p. 79)는 세 차례의 민주당 계열 정부를 거치며 두루 요직을 차지한 이들도 적지 않다. 지방정부까지 따지면 훨씬 많다. 중산층에서도 상위로 분류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 안에서는 한갖 말석에 있을 뿐이지만, 나 또한 그 혜택을 보지 않았다고 말하지 못한다. 기득권이 맞다. 하지만 극소수다. 50대라는 세대 전체로 보면 10명 중 7명은 판매•서비스직, 생산직, 단순노무직 종사자다.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갔던 이들도 일찍이 퇴직해서 치킨집을 몇번쯤 차렸다가 말아먹었을 시간이 지났다. 이 소수의 메이저 대학 운동권 출신이 기득권이 됐다고 비판하는 것이라면 나 자신도 부족하나마 일익을 맡아왔다. 나의 뼈 아픈 자기비판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청년세대 남성들이 겪는 고통의 근본 원인이 86세대에게서 초래된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한국자본주의의 저성장과 노동시장의 양극화 현상을 이들이 만들어낸 건 아니다. 그 추세는 이들이 기득권에 편입되기 훨씬 전부터, 훨씬 높고 강한 데서부터 시작됐다. 이들의 잘못이라면 그 흐름에 맞서기보다는 적당히 타협하면서 어느덧 그 체제의 일부가 되었다는 데 있다.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생애에 걸쳐 단 한번도 기득권이 되어본 적 없이 열심히 살아 온 우리 세대의 절대다수는 기득권이라는 비판을 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20대 남성이 겪는 고통의 원으로 지목되(p. 80)어 황당하기도 하고 분노도 치미는 기득권 86세대는 어떻게 해야 할까? 20대 남성 보수화를 이끄는 것이 중상층 이상의 부유한 20대라는 사실에 고무되어 '20대 남자 개새×론' 같은 데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답이 아니다. 20대 남성이야 어떻든 우리가 기득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20대 남성에게 '찌질하다'고 힐난하기 전에, 우리가 중산층의 안온한 삶을 이어오는 과정에서 약자를 위해 무엇을 양보하고 희생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거기에 답해야 한다(p. 81). 기억도 생생한 일이지만, 유가족 김영오 씨(유민 아빠)가 단식투쟁을 하던 2014년 9월 6일에는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와 자유 청년연합 회원들이 이른바 '폭식투쟁'을 벌였다. 참담한 일이었다. 이어서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라는 단체가 등장, 유가족과 반정부 선동세력의 눈치를 보고 있는 정부를 대신해 추모의 노란리본을 직접 떼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분명히 확인하고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이 모든 공격이 희생자 가족들이 어떠한 정치적 행동도 보이지 않던 사고 직후부터 과감하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2014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민단체와 야당은 오히려 세월호 사건 개입에 극도로 신중하게 대응했다.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역공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반면 보수세력은 세월호를 빌미로 정치적 내전을 벌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p. 110). 레이건과 공화당의 승리는 1932년 뉴딜연합에 기초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승리 이래로 가장 광범위한 정치적 연합에 기초한 승리였다. 루스벨트의 승리를 뒷받침한 것은 자유주의연합이 아니라 뉴딜연합으로 불렸다. 반면 레이건을 당선 시킨 세력은 '보수주의연합'이라고 불렸다. 이 노골적인 보수주의 표방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 연합은 극우파, 복음주의자, 자유 지상주의자, 민중주의자, 호전주의자, 군비 축소를 주장하는 구파 보수주의자 등 심하게 이질적인 신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예컨대 정부가 도덕심판소가 되기를 요구하는 도덕적 다수파 복음주의 운동가들과, 개인 가족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을 혐오하는 자유지상주의자는 상극이었다. 신보수주의는 마치 잡종 키메라처럼 무대에 등장했다. 니스벳은 『보수주의』에서 이 기묘한 혼란을 이렇게 표현했다(p. 128). "동화에 나오는 요술거울이 오늘의 워싱턴에 실제로 등장한다 면, '그 모든 이들 중에서 누가 가장 아름다운 보수주의자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각양각색의 대답을 위해 차라리 일종의 국가적 복권제도를 만드는 것이 가치가 있을 것이다." 니스벳은 이제 보수주의가 더이상 버크적 전통으로 귀속되는 본래의 보수주의가 아니라고 고백한다. 키메라 보수주의는 버크 대신 하이에크를 구루로 섬기고, 절제와 균형에 대한 온건한 설교 대신 '자유'와 '도덕'이라는 슬로건이 새겨진 깃발을 치켜들었다. 자유시장과 그리스도교적 도덕•가치가 보편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실체적 목표가 되었다. 신보수주의의 성립과 키메라적 잡종화의 과정에서 보수주의는 '자유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함으로써 자유시장의 '형이상학'으로 퇴화했다. 원래 보수주의자들에게 자유시장은 오랫동안 골 칫거리였다. 사적 소유권의 정당성이라는 관점에서는 보수주의 자들도 자유시장을 옹호했다. 동시에 이성중심주의에 맞서고, 공동체에 대한 애착과 책임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자들이, 인간이 오직 합리적•이기적 동기에 따라 행동하는 개인, 즉 경제적 인간으로 존재할 뿐이라는 자유시장론자들의 교의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규제되지 않는 시장은 공동체를 파괴하고, 매매되어서는 안 될 가치들을 상품화함으로써 우리의 정서(p. 129)적 애착을 소멸시키는 리바이어던 같은 존재였다. 보수주의자에게 시장은 다루기 힘든 난제였다. 드디어 타협이 이루어졌다. 하이에크를 경유하며 자유시장을 조상과 이웃들의 지혜가 축적된 빛나는 '전통'으로 재해석하게 된 것이다. 전통은 단지 임의적 관습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행동을 타인의 행동에 맞추려고 하다가 생긴 여러 시행착오의 잔여물이 담긴 축적물이다. 자유시장도 무엇을 생산하고 교환할지에 대한 자유로운 정보교환의 과정이자 축적물로 간주된다. 전통이 시간이 흐르면서 생기는 조정 문제를 둘러싼 자생적 해법인 것처럼, 자유시장은 생산과 교환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면서 진화해 온 자생적 질서이자 조상과 우리 지혜의 축적물로 찬미된다. 이 지혜의 교환과 축적을 위해 시장의 자유는 옹호되어야만 한다. 물론 보수주의자들은 시장에 대한 사회적 도덕적 제약의 필요성 자체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장이 전통과 마찬가지로 축적된 자생적 질서라면 그런 제약은 관습, 법, 도덕 등의 형태로, 요컨대 전통의 형태로 이미 존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축적된 지혜를 위협할 별도의 입법, 명령은 불필요하다. 현대 서구의 보수주의는 더이상 자유시장에 대해 양가감정을 갖지 않는다. 자유시장론자의 합리적 개인주의를 여전히 수긍하지 않은 채, 보수주의자들은 시장을 지키고 보전해야 할 '전통'으(p. 130)로, 그에 더해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미래'로 자리매김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서구 보수주의는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와 함께 시장을 새로운 종교로, 보편적 가치로 섬기는 형이상학의 길로 퇴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우파의 혁신 프로젝트와 뉴라이트 운동 한국에는 합리적 보수의 기본 전제가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이 흔히 제기된다. 두가지 이유가 꼽히곤 한다. 첫째, 한국 정치사회를 지배한 우파는 오랫동안 폭력적 배제에 기초해 권력을 독점해왔다. 레이건과 대처 세력이 추진해야 했던 정교한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 전략이 한국의 지배세력에게는 불필요했다. 둘째, 정당성 없는 지배세력의 장기집권 아래, 한국사회에는 보수 할만한 가치 있는 전통 자체가 형성되지 못했다. 보수할 것 없는 보수주의는 형용모순이다. 역으로 한국에서 합리적 보수의 출현 여부는 보수해야 할 참된 전통의 '발견 · 발명'과 '보급 · 확산'에 달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합리적 보수를 둘러싼 담론이 본격화한 것은 2000년을 전후한 시기였다. 1998년 김대중 정권의 등장과 제도적 민주화의 진전, 진보적 시민사회운동의 강화, 특히 대북 화해 정책의 진행 등과 맞물리면서 기존 지배세력은 심대한 위기감을(p. 131) 느끼게 되었고, 보수주의 이념에 대한 고민이 비로소 시작됐다. 바로 이 시점에 시민사회와 학계에서 부상한 뉴라이트의 궤적은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p. 132). 대면 예배를 강행한 일부 개신교에 대한 대중의 분노, 특히 진보 쪽의 비난 역시 비합리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종교시설발 집단감염의 대다수를 개신교가 차지한 것은 맞다. 분노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문제는 분노의 크기다. 개신교계 여론조사기관인 목회데이터연구소가 발표한 '코로나19 정부 방역 조치에 대한 일반국민 평가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코로나19 확진자의 44% 정도가 개신교회발이라고 믿는다.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감염원 통계에 따르면 개신교회발 확진자는 11%였다. 저지른 것 이상의 비난을 옹호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된다면 자신들이 비난하는 이른바 '기레기'와 무엇이 다른가?(p. 166). 행복경제학을 향한 가장 본질적인 의문은 과연 행복이 우리 삶의 궁극 목적인가 하는 것이다. 누구나 행복해지길 바라는 건 사실이다. 나 역시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결론 내리기는 쉽지 않다. 이왕이면 날씨가 좋길 바라지만, 좋은 날씨가 우리 삶의 목적일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삶에는 여러 종류의 날씨가 있고, 때로는 비와 천둥이, 때로는 태풍이 필요하다. 삶은 복잡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행복한 삶보다는 바람직한 삶이나 올바른 삶을 추구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좋은 삶을 추구한다. 각각은 겹치면서도 다르고, 때로는 상충할 수도 있다. 바람직한 삶을 위해서 행복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불편함을 무릅쓰는 내부고발자가 나올 수 있는 이유다. 개인적 행복을 희생하면서 공적 목표에 헌신하는 이들이 있는 까닭이다. 주류의 견해에 반대하고 상식을 불편하게 하는 소크라테 스형 비판가들이 나오는 사정이다. 사람들이 단지 행복한 삶만(p. 230)을 추구하는 건 아니다. 사실은 행복이든 무엇이든 삶에 목적이 있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의문스럽다. 우리는 목적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실존은 본질에 선행하고, 삶은 이유 없는 출발일 뿐이다. 삶을 행복을 위한 '과업'으로 설정하는 것은 근대 자유주의의 특징 중 하나다. 국가나 공동체가 개인의 삶에 모델을 제시하고 강요하던 시대에 비해 이것이 진보임은 맞다. 문제는, 행복을 성취해야 할 개인적 삶의 과업으로 제시하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상태와의 관련성에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지금의 행복경제학이 자유주의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관계적 선'이라는 문제 의식 속에서 행복경제학은 '바람직한 상태'를 향한 지향과 만나려 한다. 거기서 좀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호혜적으로 협력하는 세상에 대한 지향과, 시장이 초래하는 불평등에 대한 비판이 결합될 수 있기를 바란다. 둘은 둘이 아니다. 같이 가야 한다(p.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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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299】 부러운 것 중 하나, 세상을 보는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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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298】 책이 없는 세상은 어떨까?
- 책이 없는 세상에 대한 작가의 소설이다. 대놓고 책을 없애지는 않아도 요즘은 미디어에 밀려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유튜브 등 동영상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결국 사고 기능이 떨어진다. 문해력이 떨어진다. 그것이 바로 재앙이며, 이 책의 저자가 경고하는 것이다. "집을 통째로 태워 버릴 거야." 비티가 소리쳤다. 사나이들은 문 쪽으로 엉거주춤 몰려갔다. 그들은 여자 가까이 서 있는 몬태그를 뒤돌아보았다. "이 여자를 데려가지 않을 거야?" 몬태그가 말했다. "안 가겠다잖아." "그럼 강제로라도 데리고 나가야지!" 비티가 손을 들었다. 손아귀에는 점화기가 쥐어져 있었다. "이런 집은 법적으로 태워 버리도록 되어 있네. 게다가 이런 경우에 저 미치광이들은 대개 자살하려고 하지. 흔히 있는 일이야."(p. 68). 몬태그는 여자의 팔꿈치를 잡았다. "나하고 같이 나갑시다." "됐어요. 아무튼 고맙군요." 여자가 말했다. "자, 열을 세겠다. 하나, 두울." 비티가 소리쳤다. "기다려요, 서장." "계속하라고." 여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세엣, 네엣." "나갑니다." 몬태그는 여자를 잡아 끌었다. 여자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난 여기 그냥 있고 싶어요." "다섯, 여섯." "그만 세어도 좋을걸." 여자가 말했다. 그녀는 한 손의 손가락을 천천히 폈다. 손바닥에 뭔가 가느다란 물체가 있었다. 부엌에서 주로 쓰는 성냥 한 개비였다. 사나이들은 그걸 보자마자 허겁지겁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비티 서장만은 품위를 잃지 않고 천천히 문으로 걸어갔다. 한밤중의 광기와도 같은 일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치러 왔던 그의 그을린 얼굴엔 조금도 동요된 기색이 없었다. 맙소사. 몬태그는 생각했다. 어째서(p. 69) 한밤중에만. 언제나 경보는 밤중에 울려 댔다. 낮에는 결코 울런 적이 없다! 불꽃은 밤에 봐야만 더 아름답기 때문일까? 더 멋지고 더 장관이기 때문일까? 비터의 그을린 얼굴에도 희미하게 광기가 서린 것 같다. 여자가 성냥개비를 들어올렸다. 그녀 주위에선 등유 냄새가 촉촉 할 정도로 피어 오르고 있다. 몬태그는 겨드랑이에 숨겨 가지고 나온 책이 심정처럼 그의 가슴을 쾅쾅 치는 것만 같았다. "나가요." 여자의 말이 떨어지자 몬태그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 문 쪽으로 갔다. 그는 비티의 뒤를 쫓아 계단을 내려가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갔다. 악마의 발자국처럼 그들이 지나간 길에 등유 냄새가 남았다. 발코니에 여자가 나와 있었다. 말없이 시선으로 방화수들을 압도한 채, 침묵으로 그들에게 유죄 선고를 내리고 있었다. 여자는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비티는 손가락을 튕겨 점화기의 불꽃을 켰다. 너무 늦었다. 몬태그는 숨이 막혔다. 여자는 경멸에 찬 눈초리로 손을 들고는 성냥개비를 난간에다 세차게 부볐다. 사람들은 한밤중의 거리를 마구 내달았다(p. 70). 우리는 매클런 일가가 시카고에 살 때부터 경고했지. 책을 찾을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말야. 그 삼촌이란 자는 복잡한 기록을 갖고 있어. 반사회적인 인간이지. 그 소녀? 그 앤 시한폭탄이었다고. 가족들은 그 애의 잠재의식을 부추겨 왔던 게 틀림없어. 학교 기록을 보면 확실하지. 그 앤 '어떻게?'가 아니라 '왜?'를 알고 싶어했어. 정말 골치 아픈 일이지. '왜?'라고 의문을 품고 그걸 고집할수록 불행해지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야. 그 불쌍한 애는 죽는 편이 훨씬 낫다고." 그래요. 그리고 죽었지요(p. 102). 몬태그의 머리 속이 어지럽게 빙빙 돌았다. 눈썹을, 눈을, 코를, 입술을, 볼따구니를, 어깨를, 그리고 팔을 마구 두드려 맞는 것 같았다. 그는 소리치고 싶었다. '아니오, 입 닥쳐요!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아, 그만둬!' 비티의 우아한 손가락이 뻗어 와서 몬태그의 손목을 잡았다. "이런, 이거 왜 이리 맥박이 빨리 뛰나! 내가 이렇게 만들었나, 응, 몬태그? 맙소사, 마치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맥박 소리가 요란스레 울리는구먼. 사이렌하고 종소리만 들리는 것처럼 말이야! 얘기를 계속해 줄까? 자네의 그 혼란스런 표정이 보기 좋구먼. 스와힐리어, 인도어, 영어, 나는 죄다 말할 수 있네. 저 유명한 신비의 이야기꾼, 셰익스피어도!" 몬태그의 귓속이 앵앵거렸다. "몬태그, 정신차려요! 그자는 흙탕물을 마구 휘젓고 있소!" "이런, 의기소침한 모양이군. 자네가 필사적으로 매어 달리는 책들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반박했으니. 책이란 원래 그렇게 이율배반적일세. 자네는 책이 자네를 각성하게 해 주고 지혜를 주었다고 생각하겠지. 남들도 마찬가지로 책을 이용할 수 있는 거야. 자네는 황무지 한 가운데 길을 잃고 명사와 동사와 형용사들의 덩굴 속에 갇혀 버린 걸세. 아까 내 꿈의 마지막 장면은 이랬다네. 방화차에 탄 채로 물어 보았지. '나와 함께 갈 텐가?' 자네는 차에 올라탔고, 우리는 말은 안 했지만 뿌듯한 기쁨이 감도는 침묵 속에서 방화서로 돌아왔네. 모든 골(p. 175)치 아픈 건 잊어버리고 말이야." 비티는 몬태그의 손목을 놓았다. 손은 맥없이 책상 위로 축 처졌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야. (셰익스피어의 희곡 「끝이 좋으면 다 좋아」 _ 옮긴이)”(p. 176). 다들 조용히 웃었다. 몬태그는 어리둥절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그레인저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는 책 방화수이기도 하지. 일단 읽은 책은 태워 버립니다. 발각되면 안 되니까. 축소 필름도 소용없지요. 늘 돌아다녀야 하는 신세라 어딘가에 묻어 두었다가 다시 찾는 일은 하고 싶지 않소. 발각될 위험은 언제나 따라다니지. 늙은 머릿속에다 감춰 두는 게 제일 안전하오. 다른 사람이 보거나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까. 우린 역사와 문학, 그리고 국제법 덩어리들이라오. 바이런, 톰 페인, 마키아벨리, 또 예수가 바로 여기에 있소. 그리고 시간은 없고, 전쟁은 시작되었고, 우리는 지금 이곳에 있고, 도시는 저기에 있소. 수천 가지 색깔로 포장된 채. 몬태그, 뭘 생각하시오?"(p. 232). 몬태그는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뒤처져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깜짝 놀라 그레인저가 지나가게 옆으로 몸을 비켰다. 그러나 그레인저는 그를 쳐다보며 어서 가라고 고개만 끄덕였다. 몬태그는 앞장서서 걸었다. 강과 하늘과 녹슨 철로를 보았다. 농장이 있고, 건초가 가득 찬 헛간이 있는 곳, 밤을 틈타 도시에서 빠져 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걸었던 곳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철로. 나중에, 한 달이나 여섯 달, 아니 1년 이상이 될 수도 있는 나중에, 이 길을 다시 걸으리라. 다른 사람을 만날 때까지 혼자서 정의를 기억하면서. 하지만 지금은 정오가 될 때까지 긴 여정을 계속해야 한다. 다른 사(p. 248)람들이 조용한 이유는 생각하고 기억할 게 많기 때문이리라. 아마 얼마 뒤 태양이 높이 솟아올라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면 이야기를 시작하거나 자신이 기억하는 것을 외울 것이다. 자신들이 아무 탈 없이 존재해 있고, 자신들 머리 속에 든 것들은 절대 안전하다고 확신하기 위해. 몬태그는 서서히 끓어오르는 말의 소용돌이를 느낀다. 이 여행을 좀 더 쉽게 만들려면,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날 무엇을 제공할 것인가? 여정이 좀 덜 힘들게 느껴지려면.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나니. 그래. 좌절할 때와 다시 일어날 때. 그래. 침묵을 지킬 때와 말할 때. 그래. 모두 다 그렇다. (전도서 3장 1~8절 부분 인용.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 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옮긴이) 하지만 다른 뭔가가. 달리 무엇이? 무언가, 무언가…'그리고 강의 양쪽에는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내고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생하기 위하여 있더라. (요한 계시록 22장 2절-옮긴이) 그래, 바로 이거야, 정오를 위해 간직해 두어야 할게. 정오를 위해...우리가 도시에 도착할 때(p. 249). 이제 성서의 욥기 2장과 같은 마지막 시험이 여기 있다. 나는 한 달 전에 「리바이어던 99」라는 희곡을 어느 대학극단에 보냈다. '모비 딕' 신화에 바탕을 둔 내용으로서 멜빌에게 헌정하는 것이었다. 어떤 눈먼 선장이 이끄는 로켓과 승무원들이 용감하게 거대한 흰색 혜성과 맞닥뜨려서 마침내 그 파괴자를 파괴해 버린다는 이야기이다. 이 드라마는 올 가을에 파리에서 오페라로 초연될 예정이다. 그런데 그 대학에서 공연으로 올리기가 곤란하겠다는 답장이 왔다. 여자가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게다가 만약 공연이 강행될 경우 학교의 평등 위원회 여성들이 공과 방망이를 들고 난입할 것이라고 하면서. 난 부부득 이를 갈면서 그럼 이제부터는 「보이즈 인 더 밴드」나 「여자들」(모두 미국의 유명한 연극이다- 옮긴이)은 더 이상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는 의미냐고, 셰익스피어의 희곡들 중에서 남녀 성비가 맞지 않는 작품들은, 특히 남성들이 좋은 역할을 하는 문단들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거냐고 되물었다(p. 261). 나의 희곡을 공연으로 올리고, 그 다음 주에는 「여자들」을 올리면 될 거라고 나는 답장을 썼다. 그들은 아마 내가 농담을 한다고 여겼겠지만 결단코 그렇지 않았다. 세상은 이렇게 미쳐 돌아가고 있는데다, 우리가 그런 소수자들의 사정을 다 들어주다 보면 더 점입가경이 될 것이다. 난쟁이나 거인, 오랑우탄이나 돌고래, 핵탄두 혹은 수자원 보존주의자, 컴퓨터 옹호 주의자 혹은 네오 러다이트, 바보 혹은 현인 등등 모두가 자기들만의 미학적 잣대로 개입하려 들 것이다. 우리의 현실 세상은 그 모든 그룹들 각각이 나름의 주장을 내세우며 법을 만들기도 하고 폐기시키기도 하는 일종의 운동장이다. 하지만 내 소설은, 희곡은, 시는, 그들의 권리가 끝나고 나의 지배 명령이 시작되어 행사되는 통치령이다. 몰몬교도들이 나의 희곡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면 그들 스스로 쓰라고 하라. 아일랜드인들이 내 더블린 이야기를 싫어한다면 타이프라 이터를 줘 버려라. 교사와 편집자들이 나의 불친절한 문장들 때문에 그 허약해빠진 치아가 부서질 것 같다고 하면 곰팡내 나는 케이크나 그 구미에 맞을 멀건 차에 적셔 먹으라고 해라. 치카노(멕시코계 미국 인 - 옮긴이) 지식인들이 내 단편 '멋진 아이스크림색 양복'을 축약 하기를, 그래서 더 세련되게 나오기를 바란다면, 허리띠가 풀어지고 팬티가 흘러내릴 것이다. 탈선은 위트의 정수이기도 하다. 단테나 밀튼, 햄릿 아버지의 유령 이야기에서 철학적인 방백을 빼 버리면 남는 건 말라붙은 뼈다귀들 뿐이다. 로렌스 스턴이 말했다. 탈선은 논쟁의 여지가 없이 햇살이며 삶이며 독서의 생명이라고! 그것들을 죄다 없애버리면 오로지 끝없(p. 262)이 추운 겨울만이 모든 페이지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것들을 작가에게 다시 돌려주자. 작가는 신랑신부처럼 반갑게 다가갈 것이고, 환호를 아끼지 않을 것이며, 온갖 먹을거리를 차려오고, 우리의 입맛을 잃지 않도록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내 작품을 가지고 머리를 베거나 손가락을 부러뜨리거나 허파를 뚫어 버리는 식으로 나를 모욕하지 말아 달라. 나는 흔들거나 끄덕거릴 머리가 있어야 하고, 내젓거나 주먹을 쥘 손도 있어야 하며, 소리 지르거나 속삭이려면 허파도 있어야 한다. 나는 배알도 없이 내 작품들이 책도 뭣도 아닌 꼴로 책장에 가도록 고분고분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네 심판들이여, 부디 외야석으로 모두 돌아가길. 링 위의 주심들도 가서 샤워를 하시길. 이건 나의 게임이다. 내가 던지고, 내가 치고, 내가 잡는다. 그리고 내가 베이스를 돈다. 해가 질 때쯤이면 내가 지던지 이기던지 할 것이다. 해가 뜨면 나는 다시 나가서 이 오래된 시도를 또 반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는 없다. 당신일지라도(p. 263). 작가와의 대담 문 : 사람들이 『화씨 451』을 읽으면서 간혹 간과하는 것이, 처음에 책을 태우기 시작한 것은 정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바로 책읽기를 싫(p. 268)어하는 보통 사람들이 그랬지요. 책을 읽고 생각하고 되새김으로써 다시 또 책을 들게 하는 습관에서 떨어진 사람들이요. 나중에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정보를 통제하기 시작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지요. 우리와 같은 민주주의가 건강하기 위해서 독서는 얼마나 중요한 겁니까? 답 : 어떤 학술 도시(도시의 기능적 분류의 하나. 대학, 박물관, 연구소 따위가 밀집되어 있어서 학술 연구의 중심이 된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 옥스퍼드, 미국의 프린스턴 버클리, 독일의 라이프치히 • 하이델베르크 등이 이에 속한다. 옮긴이)에 내일 지진이 일어난다고 가정해 봅시 다. 지진이 끝나고 온전하게 남은 건물이 두 채밖에 없다고 할 때, 손실된 것들을 복구하기 위해 그 건물들은 가장 먼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우선 첫 번째 건물은 병원이 되어야겠지요. 부상자들을 속히 치료해서 살려내야 할 테니까요. 다른 하나의 건물은 도서관이 될 겁니다. 다른 모든 건물들이 죄다 그 하나에 담기는 겁니다. 사람들은 도서관에 가서 필요한 것을 뭐든지 얻게 됩니다. 문학에서부터 경제, 정치, 공학 등등 뭐든지 필요한 책을 갖고 나와서 잔디밭에 앉아 읽는 겁니다. 독서란 우리네 삶의 중심이에요. 도서관은 바로 우리의 두뇌 죠. 도서관이 없다면 문명도 없습니다(p. 269). 문 : 당신의 독자들과 당신의 책으로 가르치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받아서 그 중 두 가지만 골라봤습니다. 먼저 교사의 질문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언어에 대한 사랑을 심어 주기 위해서 교사들이, 교육자들이, 그리고 부모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뭘까요? 갈수록 영상이 문자를 압도해가고 있는 문화적 현실에서 글의 힘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해 주려면 말입니다. 답 : (웃음) 책을 건네주세요. 그게 답입니다. SF와 판타지 같은 제 책들은 정말 많은 이들의 삶을 바꿔 놓았어요. 제 책들은 이미지와 은유가 넘쳐나지만, 전부 다 지적인 개념들과 연관되어 있지요. 책읽기를 싫어하는 열두 살짜리 남자애한테 제 책 한 권을 줘 보세요. 그럼 그 애는 사랑에 빠져서 독서를 시작할 겁니다(p.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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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298】 책이 없는 세상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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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297】 내가 사는 세상을 바르게 판단해 보고 싶다
-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히는 책이었다. 흥미롭게 읽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보고 지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귀하다. 눈떠 보니 선진국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어렸을 때 한국은 가난한 개발도상국, 제3세계에 속했다. 선진국은 꿈같은 단어였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1970년대, 교실 뒤편이나 복도에는 '수출 100억 달러 달성' '국민소득 1,000달러 달성' 같은 구호가 요란했다. 그 말들에서 선진국이 보이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그런데 살아서 그 선진국 국민이 됐다. 지금 한국은 부자 나라가 모였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경제력 중상위권에 드는 나라다. 세계적인 대기업도 여럿 있고, 세계인이 열광하는 대중문화도 풍요롭다. 막강 파워를 자랑하는 자국 여권을 든 한국인이 세계로 나가는 동안, 여러 나라 사람들이 꿈(p. 4)과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온다. 그리고 또 다른 한국이 있다. OECD 회원국이 되던 1995년에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8.3%였다. 100명 중 여덟 명쯤이 중위 소득의 절반을 못 버는 빈곤층이었다. 2020년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5.3%, 100명 중 열다섯 명 정도가 빈곤층이다. 선진국이 됐는데 빈곤층 비율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orld Inequality Database에 따르면, 1995년 한국에서는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31.8%를 차지했다. 2021년에는 그 비율이 46.5%로 늘었다. 소득 상위 1%가 차지하는 몫은 7. 2%에서 14.7%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만큼 중하층 몫이 줄었다. 현재의 노동에 비해 과거로부터 쌓여온 자산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피케티 지수는 1995년 5.8배에서 2021년 8.8배로 증가했다. 같은 시기 서구 여러 나라는 지수가 대개 5~6배 전후를 오가는데도, 20세기 초 이후 가장 높은 수치라며 논란이 뜨겁다. 20세기 중반에는 2~3배 사이였다. 불평등이 심각해져서 비상이 걸린 중국이 2021년 기준 7.3배다. 한국의 피케티 지수는 아찔하다. 불평등이 심하다 보니 부자 나라가 됐는데도 사는 게 팍팍하다. 자살률은 줄곧 OECD 1위를 지키고 있고, 산재사망률도 최고 수준이다. 어려운 이웃에게도 모질다. 난민 보호율은, 세계 평균이 40%쯤 되는데 한국은 5% 정도다. 재난을 피해 찾아온 이들 대부분을 쫓아낸다. 코로나 19를 거치며 권위주의 성향도 강화됐다. 인권보호보다는 질서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이들이 많아졌다(p. 5). 어느 쪽이 진짜 한국의 모습일까? 둘 다 맞다. 한국은 불평등이 심한 선진국이 됐다. 어느 한쪽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동안의 성취를 부정해서도 안 되고, 그 성취가 동반한 불의에 눈감아서도 안 된다.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동안의 성취를 바탕으로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뜻과 힘을 모으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는 그럴 여력이 있다. 그래서 정치가 중요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의 주체는 시민, 보통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다. 실제로는 '보통사람'은 선거 때 홍보 문구에만 등장하고, 엘리트가 정치를 주도한다. 정치인, 관료, 기업가, 언론인 등 힘센 사람들이 여론과 정책을 주무르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좌지우지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폐해다. 이 폐해가 심해지면 썩은 세상 모조리 뒤집어엎자는 포퓰리즘의 분노 와 음모론이 창궐하기도 한다. 포퓰리즘은 기득권을 욕하지만 실제 공격하는 대상은 여성, 비정규직, 이주민 같은 사회적 약자다. 그들이 고통의 근원으로 지목되고, 을들끼리의 싸움이 격화 된다. 오늘날 한국과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좋은 정치를 위해서는 고통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이 책은 지금 우리 정치공동체가 겪고 있는 고통, 현안들을 스물일곱 개의 키워드를 통해서 접근한다. 문제의 실상을 파악하 고, 구조적 원인을 진단하며, 가능한 한 해법을 타진하고 향후 전망을 시도해 보았다. 한국사회의 문제는 다양하지만, 그 기초에는 모두 불평등을 확대하는 이윤 논리, 약육강식의 욕망이 (p. 6)있다. 연대와 협력을 통해 넘어서는 수밖에 없다. 두 개의 키워드를 통해 책 내용을 조금 엿보자. 첫째, 최저임금. 최저임금 결정 시즌이 되면 해마다 난리가 난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처지가 어려운데 최저임금을 올리려 한다며 보수언론•경제지 등에서 대서특필한다.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이 OECD 중위권이라서 결코 낮지 않다며 근거도 댄다. 그런가 보다 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OECD 회원국 중 고소득 여덟 개 나라에는 최저임금제도가 아예 없다. 왜 없을까? 노동조합의 힘이 강하고 복지제도가 잘되어 있으니 그렇다. 이 여덟 개 나라를 빼고 난 다음 순위에서 중위권이니, 사실은 중위권이라고 말할 수 없다. 노조도 약하고 복지도 빈약한 한국에서 최저임금은 서민의 삶을 지탱하는 보루다. 둘째, 사회적 가치. 이익이라는 경제적 가치만 절대시하는 경 쟁 자본주의 대신 협력과 연대라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제 활동을 사회적 경제라고 부른다. 협동조합이 대표적이다. 자본주의의 탐욕스런 욕망을 제어하는 중요한 활동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협동조합 설립의 자유를 막아온 사회적 경제의 후진국이다. 2012년부터 비로소 설립이 자유화됐다. 미약한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2014년에 당시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 등 142명의 여야 국회의원이 사회적경제기본법을 발의 했다. 사회적가치기본법도 발의됐다. 재계와 경제지, 보수언론 등이 반시장적 사회주의 법안이라며 대대적인 이념공세를 퍼부(p. 7)었다. 아직도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사회적 경제 부문에 고용된 유급 노동자는 2016년 기준 0.82%에 불과하다. 한 줌도 못 된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유럽연합은 2015년 기준 전체 유급 노동자의 6.3%가 사회적 경제에서 일한다. 서유럽과 북유럽의 경제가 발전한 나라일수록 사회적 경제의 비중이 높다. 보수가 곧잘 자유의 나라로 숭상하는 미국은 어떨까? 유럽과 기준이 달라서 사회적 경제가 아니라 비영리 부문이라고 부르는데, 2019년 기준 미국 전체 사적 영역 노동력의 10.2%를 비영리 부문이 고용하고 있다. 한국 재계와 보수언론의 논법대로라면 유럽과 미국은 빨갱이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p. 8). 한국이 개발도상국이던 시절, 힘센 사람들은 늘 선진국이 될 때 까지만 참으라고 말했다. 아직 형편이 어렵다며 대신 미래의 넉넉한 분배를 약속했다. 선진국이 된 지도 여러 해가 지난 지금, 힘센 사람들의 말이 바뀌었다. 더 이상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이 세상은 정글이라서 불평등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능력있는 사람이 잘사는 게 정의라고 말한다. 가난과 고통은 스스로의 무능력 탓이라고 한다. 평등한 관계를 만들지 못한 탓에 기득권이 이렇게 무도해졌다. 힘센 사람들의 시혜로는 평등한 세상이 오지 않는다. 보통사람들이 뜻과 힘을 모으는 수밖에 없다. 연대와 협력의 길이다. 역사는 연대와 협력이 성장에도 이로웠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성장이 아니더라도 연대와 협력은 소중한 가치다(p. 9).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는 예외가 아니다 2020년 10월 12일, 한진택배 소속 택배 노동자 김동휘 씨(36세)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평소 지병이 없었기에 과로사가 의심됐지만, 사측은 고인의 평소 배달량이 하루 200개 정도로 평균보다 적은 편이었다며 과로사 가능성을 반박했다. 하지만 숨지기 4일 전 고인이 회사 선임자에게 남긴 문자 메시지가 발견되면서 과로사 가능성이 짙어졌다. 문자 메시지를 보면 고인은 당일 420개의 배달 물품을 배정 받았고, 오후 9시까지도 280개가 남아 있었다. 결국 새벽 4시 28분까지도 다 배달하지 못하고 귀가하면서 너무 힘들다며(p. 18) 메시지를 남겼다. 분류 작업을 위해 6시까지 다시 출근해야 하니 사실상 밤샘 격무를 한 것이다. 같은 날 쿠팡의 장덕준 씨(27세)가 사망했고, 그 보다 며칠 전인 8일에는 CJ대한통운의 김원종 씨(48)가 사망했다. 모두 별 다른 지병 없이 건강한 이들이었다. 코로나19 탓에 택배 수요가 폭발하면서 2020년 한 해 동안에만 16명의 택배 노동자가 사망했다. 택배 노동자들은 분류작업만이라도 제외해달라며 작업 거부, 파업에 나서기도 했다. 분류작업이란 택배기사들이 서브 터미널에서 물량을 나눈 뒤 차에 싣는 과정을 가리킨다. 택배 배달 건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택배 노동자들 입장에서 분류작업은 사실상 '공짜 노동'이나 다름없고, 과로의 주범이다. 2021년 1월, 노사정 합의로 분류업무를 제외하기로 결정했지만 사측은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에 같은 해 6월에 택배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서 6월 15일에는 집회도 열었다. 집회는 코로나 19를 이유로 당국에 의해 금지됐다.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30여 명은 감염병예방법 등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결국 파업 뒤에야 2차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후(p. 19)에도 계속 잡음이, 무엇보다 죽음이 끊이지 않는다. 코로나19 시절 택배 노동자의 처지는 현대의 노동자가 마주 하고 있는 위태롭고 불안정한 상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그들이 수행하는 필수노동은 우리가 팬데믹을 견딜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다. 대신 그들의 목숨이 갈려나갔다. 택배노동자의 상황이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보건의료나 청소 같은 필수노동의 영역부터 제조업, 농업, 건설업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비정규직, 불완전 노동이 창궐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50%를 넘어선 지 한참이다. 이들은 정규직 노동자보다 현저히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신분, 위험한 근로조건을 감수하며 차별받는다. 이들에게는 안정적인 정규직 노동자라는 신분이 오히려 특권으로 보인다. 이토록 열악한 상황은 한국만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며,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프레카리아트라는 생소한 단어는 이런 불안정한 노동자의 처지를 가리키는 단어로서 새롭게 부상했다. 그것은 새로운 모순, 새로운 사회운동의 등장을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불안정한 노동자, 프레카리아트 프레카리아트를 한국어로 정확히 옮기기는 어렵다. '불안정한 노동자' 정도로 번역하는 게 그나마 가장 무난할 듯하다. 영어를 기준으로 보면 '불안정하다' '위태롭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p. 20) 프리케어리어스Precarlous에서 앞부분 preca-를 가져오고, 노동자계급을 뜻하는 단어 프롤레타리아트Prolelariat에서 뒷 부분 -riat를 가져와서 조합한 단어다. 《뉴욕 타임스》는 십자말 퀴즈에서 프레카리아트를 "직업 안정성이 거의 또는 전혀 없기 때문에 삶이 불안정한 사람들의 계급"으로 풀이했다. 이 단어는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전환 과정에서 일어난 노동자의 지위 하락을 고발하는 단어다. 임시직, 파트타임, 프리랜서 등 모습은 다양하지만 그 본질은 불안정한 직업 안정성 탓에 고통받는 사람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영세 자영업자, 영세 노인, 청소년, 실업자 등 기존의 상식으로는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는 사람들까지 프레카리아트에 포함하기도 한다. 아직 학술적으로 정립된 개념은 아니며, 여전히 형성 중이면서 논란에 휩싸여 있는 개념이다(p. 21). 상속세가 이중과세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소득을 얻었을 때 이미 소득세를 냈는데 상속시에 또 세금을 내라니 이중과세라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소득세 내고 남은 돈으로 하는 경제 행위에 부과되는 모든 세금이 이중과세가 된다. 물건 살 때마다 내는 제품 가격에는 부가가치세 10%도 포함 돼 있는데 이것도 이중과세다. 자동차를 산다면 부가세, 개별 소비세, 교육세, 취득세도 내야 하니 오중과세라고 할까? 물론 말도 안 되는 어거지다. 이런 주장대로라면 국가는 소득세 말고 걷을 수 있는 세금이 거의 없다. 이중과세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재산을 상속받은 274만 명 중에 상속세를 납부한 사람은 불과 1.9%밖에 안 된다. 과표 기준이 높고 각종 공제가 많기 때문에 사실은 한국에서 상속세 내는 사람 안에 드는 것은 쉽지 않다. 웬 만큼 잘 살아도 걱정 안 해도 될 일이고, 만약 걱정이 되는 사람이라면 꽤 큰 부자라는 말이니까 행복한 고민이기도 하다(p. 36). 부작용이 정말 감수할 만한 것일까? 2021년 8월에 감사원이 발표한 〈인구구조 변화 대응 실태 감사보고서〉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2018년 기준 지방대 졸업생 열 명 중 네 명(39.5%)이 수도권에 일자리를 얻는 반면 수도권 대학 졸업자는 열 명에 한 명 정도(11.7%)가 지방에서 일자리를 얻는다. 수도권 대학 졸업자 중 상당수가 지방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청년 세대의 수도권 집중은 어마어마하다. 수도권에 집중된 젊은이들은 치열한 경쟁, 과도한 주거비용 등으로 출산율도 낮다. 2020년 기준 합계출산율의 전국 평균이 0.84명인데, 서울은 0.64명이다. 광역자치단체 중 꼴찌다. 2021년 기준으로는(p. 50) 0.81명 대 0.63명이다. 생활이 안정된 공무원조차 서울과 지방의 출산율이 다르다. 세종으로 이전한 공무원의 평균 자녀 수는 1.89명인데 서울에 계속 머문 공무원들의 평균 자녀수는 1.36명이다. 차이가 크다. 지금처럼 젊은 인구가 수도권으로 계속 빨려 들어가고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 계속된다면 한국 자체가 소멸의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2022년 9월, 통계청이 발표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 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총인구에서 생산가능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2022년 71.0%에서 2070년 46.1%로 급감 한다. 당연히 OECD 최저다. 대표적인 초고령 국가로 꼽히는 일본과 이탈리아의 생산가능인구 비중도 같은 기간에 각각 8.1%포인트, 11.7%포인트 감소할 뿐이다. 한국의 24.9% 포인트 감소라는 수치가 유독 두드러진다.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돼가고 있다(p. 51). 한국사회에서 공공임대 주택은 중산층이 아니라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복지'의 영역으로만 간주된다. 적어도 내 집은 아니다. 아니면 젊어서 잠깐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한다. 정권을 불문하고 한결같이 지속된 분양 중심, 소유 중심의 주택정책이 낳은 결과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 인상으로 2022년 상반기 이후 부동산 시장이 급냉했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 몇 년간 부동산 시장의 급상승, 특히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좌절했다.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잃은 이들이 허탈감에 빠졌다. 이는 한국에서 부동산 정책이 늘 '자가 소유'를 중심으로 세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 분양가, 매매가, 전세가의 동향이 부동산 정책과 이슈를 결정하는 변수가 돼왔다. 공공임대 주택의 양이 충분하고 질도 좋으면서 차별 없이 살 수 있다면 공공임대 주택은 주택시장의 가격 폭등을 막고 주거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공공임대 주택이 전체 주택 재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9년 기준 7.6%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도 상당수는 분양 전환되는 것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개인 소유 주택으로 바뀐다. 공공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반면 서구 복지 선진 공공임대 주택(p. 81)국들의 경우 공공임대 주택(사회주택이라고 부른다) 재고가 전체 주택 재고의 20~30%를 넘나든다. 사회주택의 양이 많다 보니 수준도 다양해서 중산층, 심지어 상류층도 사회주택에 사는 경우가 있다. 집은 사는(buying) 것이 아니라 사는 (living) 것이라고들 한다. 이 말이 현실성을 얻으려면 지금까지의 주택정책으로는 불가능하다. 주택정책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바 뀌어야 한다(p. 82). 빌 게이츠나 마크 주커버거 같은 IT 업계 거인들이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유도 이 상황을 심각한 위기로 보기 때문이다. 자동화와 로봇 도입으로 일자리가 줄어들면 그만큼 수요도 줄어든다. 따라서 이들은 로봇세를 도입해서 그걸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주자고 주장한다. "노동자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연봉 5만 달러를 받는다면 그에 따른 세금을 낸다." "로봇이 동일한 일을 한다면 마찬가지로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빌 게이츠의 말이다. 서구에서 복지국가가 자리잡게 된 1950~ 1960년대를 돌이켜 보면 직장은 대체로 안정적이었고 실업은 일시적이었다. 실업 때만 실업수당을 받으면 됐다. 지금은 대다수 직장이 불안정해졌고, 실업은 만성적 현상이다. 일시적 실업을 전제로한 복지제도로는 감당이 안 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지금 복지제도 아래서 이뤄지는 소득, 자산 조사의 부작용이다. 받(p. 92)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지급하므로 정확한 조사가 필수다. 행정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완벽한 조사가 불가능해 부정 수급자 문제로 사회적 갈등비용이 늘어난다. 자격 심사를 엄격하게 하면 될 것 같지만, 자격 심사를 강화할수록 다시 행정비용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생긴다. 게다가 수급자는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낙인찍기가 일어나는 건 물론이고 스스로도 심각한 자괴감에 빠지는 일이 적지 않다. 사례 연구들을 보면 정당한 수급 자격이 있어도 이런 심사과정에서 곧잘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입게 되고, 이 자체가 또 사회문제가 된다. 자격이 있어도 이 낙인이 공포스러워서 아예 신청을 회피하기도 한다.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p. 93). 최저임금 제도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고, 복지제도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에서 오히려 의미가 크다. 영국과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앵글로 색슨 중심 국가들에서 최저 임금 제도가 발전한 이유다. 한국과 일본도 여기에 포함된다. 또 미국의 경우 연방제 국가로서 주별로 최저임금이 모두 다르고, 스위스도 전국 단위의 최저임금 제도는 없지만 일부 주에서 최저임금 제도를 실시한다. 최저임금의 산정 범위도 나라별로 조금씩 다르다. 최저임금의 국제 비교가 쉽지 않은 이유다. 특히 나라마다 복지예산의 비중이 다르다는 사실은 최저임금의 효과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나라마다 전(p. 108)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복지예산의 비중이 다르기 때문에, 한 사람이 얻는 전체 소득 중 시장에서 얻는 소득과 복지로 얻는 소득의 비중도 다르게 된다. 복지로 얻는 소득, 즉 사회임금의 비중이 높은 나라는 시장임금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예를 들어 스웨덴, 프랑스 같은 나라는 사회임금이 전체 소득 의 50%에 육박한다. 주거, 의료, 교육, 육아, 노후 대비 등에 지출하는 비용을 개인이 시장에서 직접 임금으로 벌어야 할 필요성이 그만큼 낮은 것이다. 반면 한국은 사회임금의 비중이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복지가 허약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즉 시장임금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고, 90% 가까운 소득을 시장에서의 각자도생으로 해결해야 하는 나라다. 그만큼 최저임금의 역할도 큰 나라인 것이다. 자영업자의 타격이 크다거나, 실업률이 올라간다며 최저임금을 올리지 말자고 하는 사람들이 대신 복지를 그만큼 늘리자고 한다면 진정성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서 최저임금을 올리면 안 된다는 말은 가난한 사람들은 더 어려워지라고 하는 말과 같다. 옳지 않다(p. 109). 케네스 로고프는 2020년 3월 17일 미국 방송 CNBC에 출연해서, 코로나19 비상사태에 맞서 미국 정부가 수조 달러의 경기 부양책을 쓰고 양적완화를 하면서 빚잔치를 벌이는데, 이래도 되는 거냐는 앵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은 전쟁입니다. 재정건전성을 쳐다볼 수 없습니다. 경기부양을 해야만 합니다." 건전재정의 주창자 로고프조차 재정지출의 긴(p. 122)박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미국도, 유럽연합도 감염병 위기 동안 재정준칙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경제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타격을 입고 있는 기업과 서민들에게 막대한 지원을 퍼 부어야 했던 것이다. 반면 세계에서 재정이 가장 건전한 편에 속하는 한국은 이 비상시국에 허리띠를 더 졸라매겠다며 재정 준칙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보수언론은 기껏 몇십 만 원 수준의 재난지원금을 줄 때마다 재정이 파탄 난다고 아우성을 질렀다. 서민은 죽어가더라도 정부는 아무 일 하지 말라는 것 일까?(p. 123). 쿠팡이 뉴욕 증시로 간 이유가 차등의결권 때문? 2021년 3월 11일, 로켓배송으로 유명한 온라인 종합쇼핑몰 쿠팡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쿠팡 주식은 공모가인 35달러에서 40.7%가 오른 49.25달러로 마감됐고, 쿠팡의 시가총액은 종가 기준 한화 100조 원을 넘어섰다. 쿠팡의 기존 주주들은 천문학적인 부를 얻었다. 30억 달러를 투자한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클래스A 주식 기준 37%의 지분을 얻었다. 거기에 더해 대략 일곱 배쯤의 투자수익을 얻었다고 알려졌다. 이 무렵 국내 경제지, 보수언론들은 쿠팡이 국내 증시가 아(p. 158)니라 뉴욕 증시에 상장하는 이유가 차동의결권 때문이라며 여기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기업이 중시에 주식을 상장하면 외부로부터 자본을 투자받는 대신 창업자의 지분은 그만큼 줄어든다. 그러다 보면 경영권을 위협받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데, 미국에는 차등의결권 제도라는 것이 있어 자본투자도 받고 경영권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원래 주식회사의 의결권은 1주 1표 원칙을 따른다. 반면 차등의결권은 창업자 등 특수관계인에게 최대 1,000배까지 많은 의결권을 부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복수의결권이라고도 부른다. 쿠팡의 경우 창업자 김범석 회장의 지분은 상 장 직후 10.2%에 그쳤지만, 1주에 29표의 차등의결권을 행사 할 수 있는 클래스B 보통주를 포함하면 76.7%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경영권 행사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다. 국내 경제지와 보수언론들은 차등의결권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증시를 비판했다. 미국처럼 창업자의 경영권을 보호 해주지 못해서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쿠팡이 미국 증시에 상장한 이유가 차등의결권 때문이라는 주장은 사실 노골적인 선동이라고 봐도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쿠팡은 처음부터 미국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상장 전 쿠팡의 기업 지배구조는 기묘했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주)쿠팡의 지분 100%를 미국 델라웨어의 지주회사 쿠팡LCC가 갖고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뉴욕 증시에 상장한 회사는 한국(p. 159)기업 (주)쿠팡이 아니라 본사인 미국 기업 쿠팡LCC 였다. 게다가 쿠팡의 창업자 김범수 회장은 본명 Bom Kim인 미국 국적자이며, 이사 또한 전원 미국 국적자이다. 경영진 전원이 미국인인 미국 기업이 미국 증시에 상장하지 한국 증시에 상장할 이유 따위는 애당초 없었다. 더욱이 거액의 투자를 한 손정의 회장 등 외국인 투자자들이 규모도 작은 한국 증시에 상장하자고 그 큰돈을 투자했을 리도 없다. 그러니 차등의결권 여부는 애당초 고려대상이었을 리도 없다. 아마 한국증시 상장은 상상한 적도 없었을 것이다. 왜 쿠팡은 한국에서 사업하면서 본사를 미국에 두었을까? 아마도 한국 내의 규제와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사실은 이것도 매우 중요한 논점이지만 지금의 주제는 아니다. 경제지, 보수언론들이 이 정도 사정을 몰랐을 리 없다. 알면서도 그랬다면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참에 재계에서 줄곧 주장해온 차등의결권 도입을 이슈화하려는 의도였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선동이라고 보는 이유다. 그동안 재계는 이른바 오너의 경영권 보장 차원에서 상법을 개정해 차등의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반면 정치권에서는 여론의 비판과 부작용 탓에 도입에 신중한 편이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이 2020년 총선 공약 2호로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창업자에게 10년 기한으로 1주에 10표까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겠다고 공약하면서 논의의 물꼬가 트였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런 내용(p. 160)을 담고 있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2020년 12월에 국회에 제출했다(법안에서는 복수의결권으로 표현).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바로 통과했지만, 2022년 11월 현재까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만약 법안이 통과된다면 논의의 지평이 달라질 것이다. 재벌까지 포함한 일반 기업들이 벤처기업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일 것이고, 결국 차등의결권이 전면 허용될 수도 있다. 과연 어떻게 될까? 차등의결권의 실제 차등의결권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경영권 안정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기업이 성장하려면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투자받는 대가로 창업자나 기존 지배주주의 지분이 줄고 경영 권이 위협받게 된다면, 투자 유치에 소극적이게 된다는 것이다. 구글, 페이스북같은 세계적인 혁신 기업들이 과감하게 투자를 받고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차등의결권을 통해서 경영권을 보장받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 이런 이유로 미국, 캐나다, 영국, 스웨덴 같은 나라들이 차등의결권을 인정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미국도 차등의결권을 인정하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차등의결권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제도적으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p. 161)의견을 내세우며 제도화할 것을 주장한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는 '주주가치 자본주의'의 원칙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창업자나 지배주주라고 해도 대개 전체 지분 중에서는 일부만 갖게 마련이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그 일부 지분으로 기업 전체를 좌지우지하며 지배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창업자와 지배주주의 이해관계는 더 많은 주주들과 충돌할 때도 있고, 나아가 기업 자체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수도 있다. 편법을 동원한 '오너' 경영과 경영권 세습이 지배적인 한국 기업 환경에서는 이런 우려가 매우 현실적이다. 삼성이나 대한항공, 금호 등 수많은 사례에서 보듯 이른바 오너로 인해 벌어지는 오너 리스크는 한국 재벌, 대기업의 고질적 병폐이기도 하다. 지금도 이런데 이들이 차등의결권까지 가지고 아무런 견제 없이 마음대로 기업을 지배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비판은 설득력이 있다(p. 162). 사실을 적시해서 비판한다고해서 모두 유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좀 어려운 표현이지만 '위법성 조각사유', 즉 그 행위의 위법성이 배제되는 특별한 사유가 있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인정받는다면 위법이 아니다. 정부나 기업에 대한 언론의 비판 보도는 대부분 여기에 해당한다. 이것도 문제다. 우리같은 보통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실을 적시하여 누군가를 비판할 때 공익 목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치과 임플란트 피해자의 경우도 법원에서 공익 목적이라고 인정하지 않은 경우다. 즉 지금의 법리대로라면 공익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아무리 사실이라도 비판적 표현의 자유 자체가 부정된다. 표현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되는 상황이다. 국제적으로 살펴보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형사범죄로 처벌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민사소송으로 피해를 배상하게 한다. 그래서 유엔 인권이사회나 인권조약기관인 '자유권규약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등 여러 국제 인권(p. 208)기구들이 우리 정부에 대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사회적 약자가 권력을 가진 공인이나 기업 등을 자유롭게 비관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심지어 명예훼손죄 자체를 형사범죄로 다루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형사가 아닌 민사소송으로 해결할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만약 형사상 명예훼손죄가 아예 없으면 허위 사실을 마구 유포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특히 돈 많은 사람은 민사소송 배상금 따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악의적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명예훼손죄 자체의 폐지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고, 대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서만 그 존폐 여부를 두고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특히 2017년, 헌법재판소에 제기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헌법소원의 결과가 주목을 받았다. 2021년 2월 25일, 마침내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왔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규정하고 있는 “형법 제307조는 위헌”이라며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을 헌재는 합헌 5 대 위헌 4 의견으로 기각했다. 재판관 6인 이상이 찬성해야 위헌판결이 나는데 두 명이 모자랐다. 명예훼손 비범죄화의 길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폐지되고 민사(p. 209)소송을 통해 해결하는 추세임은 분명하다. 이른바 '비범죄화'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가벼운 사안은 결코 아니다. 진실한 사실 또한 얼마든지 개인의 인격권에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커밍아웃 하지 않은 동성애자 A에 대해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알린다면 A의 입장에서는 돈으로는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게 된다. 성폭력 피해를 밝히지 않은 B의 피해 사실을 공공연히 밝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진실한 사실이라고 하더라 도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인 인격적 존엄의 손상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가벼운 사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초래할 수 있는 명백한 피해의 개연성에도 불구하고, 비범죄화가 대세인 이유는 앞에서 본 것처럼 그것이 권력에 대한 비판, 고발을 원천봉쇄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p. 210). 리를 듣기 위해 번영신학이 특히 미국에서 발생하고 성장한 데는 유럽과는 다른 미국 역사의 특수성이 있다. 19세기 후반 남북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산업혁명과 도시화를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고도성 장을 하게 된다. 이 시기에 기존의 정통 개신교단들은 제도적으로 잘 정비된 기성교회로 변신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중산층 중심의 교회로 변화했다. 《성경》을 깊이 있게 공부한 목회자들이 신학적 논리에 기반해서 이성적으로 교회를 이끌어 갔다. 그러나 이성적 신앙은 산업화 와중에 가난해진 빈곤층의 마음에는 별로 위로가 못됐다. 빈곤층은 중산층 중심의 교회 질서 안에서 소외감을 느꼈다. 그에 대한 반발로 신앙에 의한 치유나 방언, 은사를 강조하는 오순절운동 같은 새로운 흐름이 일어나게 됐다. 기존의 중산층 중심, 이성적 논리 중심의 신앙과 달리 뜨거운 가슴과 직접적인 신앙 체험에 호소하는 흐름이 부상한 것이다. 신앙을 가지면 영적 구원은 물론 물질적 부와 건강, 장수를 누릴 수 있다는 새로운 논리가,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성장하게 됐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는 물론 개신교의 본고장이기도 한 유럽에서 번영신학이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p. 218) 역사적 이유가 있겠지만, 미국과 가장 큰 차이는 좌파정당과 노동운동의 영향력이 컸다는 점일 것이다. 유럽에서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을 거치며 공산당, 사회민주당, 노동당 같은 노동계층 중심의 좌파정당이 부상하며 하층계급의 이해와 정서를 대변하게 됐다. 20세기 후반에는 복지국가가 성장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과 열정을 반영하고 흡수하기도 했다. 그래서 유럽은 같은 그리스도교 문화권이라고 해도 미국에 비해서 종교가 정치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약하다. 종교가 세속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라는 면에서 미국은 유럽 보다는 차라리 이슬람사회에 가깝다. 두 사회 모두 무신론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미국에서 번영신학이 크게 성장한 것은 20세기 후반이다. 케네스 코플랜드Kenneth Copeland, 베니 힌 Toufilk Benedictus Hinn, T. D. 제이크스, 로버트 슐러Robert Harold Schuller 등 스타 목회자들이 번영신학의 논리 위에 엄청난 규모의 대형 교회(메가처치), 초대형 교회(기가처치)를 성장시켰다. 특히 자신의 세속적 욕망을 긍정적 언어로 표현하고 자기 계발에 열중하게 만드는 로버트 슐러, 조엘 오스틴Joel Osteen 목사 등의 '긍정의 힘' 설교는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 논리와 맞물리며 번영신학의 부흥에 힘을 보탰다. 과거 가난한 민중에 대한 세속적 위안의 신학으로 출발했던 번영신학은 오늘날 성공한 기득권을 찬미하는 참회 없는 신학이 됐다. 지금 한국 개신교에서 상당한 세력을 이루고 있는 번영신학(p. 220)의 흐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개신교는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성장하면서 번영신학을 수용했다. 가난한 계층이 의지할 좌파정당이 부재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세계 최대 규모를 다투는 한국의 초대형 교회 대부분은 1960~1970년대, 서울로 몰려들던 가난한 민중에게 엄숙한 자기 희생의 신학이 아니라 즉자적인 위안과 세속적 성공의 희망을 제공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하나님 믿으면 부자 되고, 건강해 지고, 영적으로 평안해진다"는 조용기 목사의 삼박자 구원론은 대표적이다. 그는 CBS 방송에서 "헌금 많이 하면 복을 많이 받고, 현금 적게 하면 복을 적게 받습니다"라며 노골적으로 기복신앙을 설교하기도 했다. 가난한 민중의 헌금과 봉사의 바탕 위에 성장한 초대형 교회들은 이제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기보다는 자신들의 세속적 성공을 스스로 축복하고 옹호하는 기득권 질서의 핵심 세력이 돼 있다(p. 221). 능력주의의 확산에 따라 능력 측정의 방법으로서 시험, 학력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은 어느 정도는 세계적인 경향이다. 서구에서도 영미권이 좀 더 심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세계 제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심하다. 대학입시, 공채, 고시, 등단과 같은 '결정적 시험'들을 통과하면 이후에는 실제 성과나 기여와는 무관하게 계속 큰 보상을 받는다. 능력주의의 나라 미국에서는 엘리트들이 시험 통과 후에 지속적으로 높은 성과를 요구받고 검증받는다. 한국의 능력주의가 제대로 된 능력주의도 못되고, 승자독식 시스템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한국에서는 왜 능력 평가의 수단으로 유독 시험이 중시될까? 사회적 신뢰가 부족하다는 점이 곧잘 꼽힌다. '2020 레가툼 번영지수'에서 한국의 종합점수는 167개국 중 28위. 그러나 사회적 신뢰는 139위로 최하위권이다. 공정한 규칙과 심판(p. 230)에 대한 신뢰가 낮다 보니, 그나마 논란의 여지가 적은 시험에 매달리는 경향이 나타난다. 실제 성과나 경력 등 능력을 측정 할 수 있는 더 좋은 수단들이 있지만, 공정하게 측정한다는 신뢰가 없기 때문에 적용할 수가 없다. 결국 믿을 것은 시험밖에 없다는 것이다(p. 232). 하지만 막상 아담 스미스 자신의 생각은 저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는 개인의 이기심을 인정한 만큼이나 타인에 대한 공감도 중시했다. 그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생각한 《도덕감정론》은 '연민, 공감이 인간 본성의 첫 번째'라고 주장한다. 연민과 공감이 없이는 사회라는 공동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p. 252)이다. 〈국부론〉에서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만큼이나 누진세, 의무교육, 노동자 보호 등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 타인의 기쁨에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고, 타인의 슬픔에 순수하게 슬퍼할 수 있는 성향이 인간 본성이라고 보았다. 이 세상이 약육강식의 정글에 불과하다는 말,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를 애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으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아담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을 균형 있게 파악했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기적 개인으로서 행동하지만, 동시에 타인과의 협력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사회적 존재이기도 하다.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지나칠 정도로 이기적 개인을 강조한다. 너무나 치열한 경쟁 풍조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승자조차도 행복하지 않고, 늘 불안에 시달린다.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사회다. 그러다 보니 참사 앞에서 희생자를 모욕하는 풍조까지 나오고 있다. 더 무너지기 전에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p. 254). 사회학자 전상진은 저서 《음모론의 시대》에서 음모론자들이 비합리적이기보다는 오히려 합리주의의 과잉에 시달린다고 보았다. 이 세상에는 어떤 우연도 있을 수 없고, 모든 중요한 사건의 배후에 누군가의 의도와 개입이 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음모론자들은 지나치게 합리적인 사람들이라는 진단이다. 이 세계에는 고통이 존재하고, 우리는 거기에 슬퍼하고 분노한다. 예전이라면 신의 뜻에서 그 고통의 원인을 헤아렸겠지(p. 264)만, 오늘날 종교의 힘은 크게 약화됐다. 대신 음모론이 그 고통의 원인을 설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푸코의 추》는 음모론을 진실로 믿는 이들이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사실을 '창조'해내고 결국 파국에 이르게 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세상에는 늘 음모가 있다. 합리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음모론으로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면 결국 그 음모조차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다(p. 266). 미국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행 이후 아시아계를 향한 혐오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미국 내 증오범죄 신고 사이트인 '스톱AAPI 헤이트(아시아계 혐오를 멈춰라)'에 따르면 2020년 3월 19일부터 2021년 6월 30일까지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범죄가 모두 9,081건 보고됐다. 2020년 4,585건, 2021년 상반기 4,533건으로 1년 사이에 1.5배 이상 증가하는 추세다. 16개 대도시의 경우 네 배 이상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 스, 중국 무술 쿵푸에 빗댄 쿵 플루kung flu 등으로 부르며 노골적으로 중국인에 대한 혐오를 부추겼다. 적지 않은 한국인이 트럼프와 그를 추종하는 극우 백인 못지않게 중국인을 혐 오하지만, 미국 안에서 보기엔 어차피 똑같은 아시아계일 뿐이다.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의 피해자 여섯 명 중 한 명 (16.8%)이 한국인이다. 중국계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중국계 는 43.5%, 필리핀계 9.1%, 일본계 8.6%, 베트남계 8.2% 순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이 중의 약자인 아시아계 여성에게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 중국인 혐오에 앞장서는 한국인은, 본의는 아니겠지만 한국인을 향한 미국 내 증오범죄에 힘을 싣고 있는 셈이다. "나는 중국계가 아니다"라며 범인에게 출신 확인 후 증오범죄를 저질러달라고 호소하는 게 해결책일까? 물론 말도 안 된(p. 314)다. . “너희 때문에 이렇게 됐다"며 중국계를 비난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무슨 책임이 있는가? 사실은 중국의 중국인에게조차 책임을 묻기 어렵다. 정부와 인민을 동일시할 수 없고, 무엇보다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조사도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국 정부의 적반하장격 태도에 대한 분노와는 분리해서 생각할 일이다. 좀 더 나아가 보자. 100여 년 전에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 중 하나로 꼽히는 스페인독감의 발원지로는 미국이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미국이 사과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과를 안 했으니 이제 미국인에 대한 혐오를 시작해야 할까? 아니, 누가 사과를 요구한 적이라도 있는가? 그러니 어느 쪽도 답이 아니다. 증오범죄는 비합 리적이고 치우친 견해, 즉 편견에 기반한다. 문제는 편견이다. 편견으로 핍박받는 사람들이 아니라(p. 315). 혐오의 피라미드를 경계하자 편견과 혐오에 기반한 범죄를 증오범죄라고 분류한다. 증오범죄의 뿌리에 편견이 있다. 공정하지 못하고, 자의적으로 선택된 정보에 근거한 편견이 범죄를 일으키게 된다. 특히 증오범 죄는 성별 출신지역•출신국가•종교•학력•민족•인종 등에(p. 318)대한 편견에 좌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정한 사례에 기초해서 전체 집단의 속성에 대해 결론을 내리고, 합리적인 반 론이나 반증이 나타나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 편견은 그것을 부정하는 모든 증거에 저항적이다. 편견과 다른 사실을 접하면 예외로 치부한다. 편견과 관련된 정신영역의 문이 결코 열리지 않는 이른바 잠금강화 장치라는 현상이다. 우리는 대부분은 크든 작든 편견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편견에서 자유롭다고 믿는다. 증오범죄의 뿌리는 이렇게 우리 내면에 자리잡고 있다. 왜 우리 인간은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할까? 편견, 혹은 무의식적 편향 자체는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생존에 유리했던 형질로서 우리 내면에 정착했을 것이다. 거친 수렵채집 생활에 서는 최대한의 정보를 모아 자세히 처리하기보다는, 조금은 부정확하더라도 위험신호를 빨리 처리하는 쪽이 생존에 유리했다. 원시뇌에 속하는 변연계에 위치한 편도체는 이런 부정적 자극을 삽시간에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편견이 심했던 덕에 살아남은 조상들의 후예인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늑대나 호랑이가, 이웃 부족이 호시탐탐 우리 목숨을 노리는 수렵채집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우리는 낯선 타인과의 협력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복잡한 거대 문명사회에 살고 있다. 과학자들은 편견이 우리의 본성이라고 해도, 문화적 맥락에 따라서는 약화되거나 작동하지 않는다는(p. 320) 것도 발견했다. 미국에서 흑인을 공개적으로 살해하던 백인우 월주의자 KKK단이 난무하던 시대와, 증오범죄가 있어도 그것을 범죄로 간주하고 누구도 공개적으로 옹호하지 못하는 오늘 날의 차이가 바로 그것을 증명한다. 우리는 조금씩이나마 편견을 극복함으로써 문명을 발전시킨 조상의 후예이기도 하다. 증오범죄의 뿌리에는 보통사람의 일상 속에 흔하게 존재하는 사소한 편견의 감정이 있다. 이것이 자라나서 큰 비극을 넣게 된다. 심리학자 고든 윌라드 올포트Gordon Wilard Allport는 '부정적 발언' → 소수자에 대한 '기피' → 고용, 학교 등에서 의 실제 '차별' → 소수자에 대한 '물리적 공격' → '절멸'(제노 사이드) 등 5단계로 강화되는 척도를 통해 이 과정을 설명한다. 1단계는 부정적 발언의 단계다. "외국인은 범죄율이 높다" "여성은 관리자로서 부적합하다" "성소수자는 문란하다" 같은 발언들이다. "말만 하는 건데 어떠냐" "표현의 자유도 없냐" 이렇게 합리화를 한다. 2단계는 기피다. 쉽게 말해 왕따를 시키는 것이다. 상대를 안 해준 것일 뿐 직접 피해준 건 없다며 합리화를 한다. 근래에 미투 폭로가 이어지자 남성들 중에는 펜스룰을 수행한다며 아예 여성과 자리를 같이하지 않겠다는 경우가 있다. 기업에서 여성은 배제하고 남성끼리만 회식하는 상황 같은 것이다. 이런 걸 거치며 혐오가 강화된다. 3단계는 차별이다. 고용, 승진, 교육기회, 정치적 권리 등 여러 영역에서 차별이 일어난다. 4단계는 단순폭행에서 살인에 이르(p. 321)기까지 물리적 공격을 가하는 증오범죄의 단계다. 마지막 5단계는 절멸 단계인데, KKK단의 흑인에 대한 집단적 공개처형이나 나치의 유태인 학살같은 것이 대표 사례일 것이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일상에서의 사소한 혐오 표현이나 왕따 시키기가 점점 자라서 비극적인 증오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증오범죄가 발생하면 범인을 규탄하고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범인이 보통사람과 달리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인간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사회가 그런 혐오 표현을 용인하거나 옹호하는 분위기 속에서, 혐오가 피라미드의 계단을 밟듯 상승하다가 비극적이고 끔찍한 범죄가 일어난다. 우리는 좀 더 섬세해져야 한다(p.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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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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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297】 내가 사는 세상을 바르게 판단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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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296】 전쟁 가해자와 피해자의 공존
- 무척이나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다. 전쟁 포로의 어려움을 이겨낸 피해자와 가해자가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우연한 만남을 통해 어떻게 용서하는지가 잘 그려져 있다. 일독을 권하고 싶은데 아쉽게도 절판됐다. 기회가 되면 도서관에서 대출해서라도 읽기를 추천한다. 기차와 철도를 향한 열정은 치유불가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고문이 남긴 상처를 치유할 방도도 없다. 이 두 가지 불치병이 내 삶의 여정에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행운과 은총의 우연한 조합(p. 10) 덕분에 나는 그 질곡의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상처를 극복하는 데는 장장 5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p. 11). 1942년 2월 15일 일요일. 나는 한 장교로부터 우리가 곧 항복하게 될 거라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날 저녁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우리 요새를 감쌌다. 통신룸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밀려오는 절망과 피곤을 이기지 못한 채 케이블과 전화선 위에 그대로 매트리스를 깔고 쓰러져 누웠다. 몇 주 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준 긴장의 끈이 끊어져버린 것이다. 10시간을 내리 자고 난 다음날 아침. 밖으로 걸어 나와보니 4대의 차 량이 차창 옆에 작은 일장기를 휘날리며 천천히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차 안에 있는 군인들은 양팔을 옆구리에 단단히 붙인 채 정좌자세로 앉은 모습이었다. 정문 앞에 차를 줄줄이 세우자마자 일단의 일본군 장교들이 차례로 내렸다. 암록색 제복에 장도가 든 칼집을 차고 있었다. 난생 처음 본 그 일본군들이 우리 요새 안으로 자신만만하게 걸어 들어왔다. 말라야를 접수한 그들은 인도에서 폴리네시아(태평양 중남부에 널리 산재하는 작은 섬들의 총칭.- 옮긴이)에 이르는 바다까지 장악했다. 아시아에서 최소 3개 유럽국가의 힘을 꺾어놓은 것이다. 나는 이제 전쟁포로가 되었다(p. 91). 그날 아침에도 여느 때처럼 캠프를 나서는데 길가에서 약간 떨어진 곳 장대 위에 잘려진 머리 6구가 꽂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모두 중국인이었는데 멀리서 보면 핼러윈 가면 같았다. 날마다 우리는 그 끔찍한 광경을 지나쳐 행군했다. 그 즈음 일본군이 싱가포르 내 국민당 음 모 혐의자들을 처단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중세시대에나 있을 법한 야만적 행위조차 더 이상 충격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 봐도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미 면역된 상태였기 때문일까? 참수당한 머리들은 저들에겐 태평양전쟁에서 얻은 트로피나 다름없었다. 그때 나는 잔인성이라는 게 한번 분출되기 시작하면 통제불능으로 치닫는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체험했다(p. 98). 그 외의 여정은 별다른 사건 없이 평온하게 지나갔다. 나는 주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1945년 10월 31일. 드디어 사우스햄프턴에 도착했다. 1941년 싱가포르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군악대가 〈영국은 영원하리〉를 연주해주었지만 이번 귀향 분위기는 겨울 초입 으슬으슬한 잿빛 하늘 아래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우편물이 갑판에 전달되고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아버지로부터 온 편지였다. 어머니가 싱가포르 함락 1개 월 후쯤인 3년 반 전에 돌아가셨으며, 64세로 눈을 감는 순간까지 실종자로 보도된 아들이 이미 사망한 줄 알고 몹시 상심하셨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에 얼마 전 재혼하셨다는 고백이 적혀 있었다. 재혼 상대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우리 가족의 오랜 친구, 아니 아버지의 친구였다. 내가 한 번도 친근하게 여긴 적 없는, 진중하지 못하고 집착증이 있는 여자였다. 그 동안 꿈꿔왔던 아늑한 가정의 이미지는 이제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정이 내 가슴을 휘저어놓았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은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으로 바뀌었다(p. 253). 전쟁포로가 겪는 가장 힘겨운 일 중 하나는 상황에 저항할 수 있는 힘, 다시 말해 원치 않는 제안이나 지시에 '싫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을 되찾는 것이다. 완강하게 버틸 힘은 있어도 자신의 견해를 끝까지 고수할 의지를 내보이는 일이 내게는 특히 더 어려웠다. 반면 내 고갈된 에너지(p. 256)만으로는 외부적인 사건들, 특히 자유를 찾은 첫 몇 달간 일어난 사건들에 휩쓸리기가 매우 쉬웠다. 이런 부정적인 힘과 정착하고 싶은 긍정적인 욕구가 한데 뒤섞인 가운데 1944년 내가 창이에서 받은 보살핌과 유사한 감정적 도피처를 한시 바삐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전쟁포로들은 정착하는 걸 몹시 힘겨워한다. 전쟁이 끝난 지 50여 년이 지났어도 마찬가지다. 극동지역 전쟁포로였던 내 또래의 어느 남성은 매일 아침 집을 나와 어두워질 때까지 온종일 걷고 또 걷는다. 편히 앉지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그는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이 증상을 알코올로 달래느라 여러 해 동안 술집을 드나들더니 얼마 안가 알코올중독 증세에 빠져들었다. 한동안 고생하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을 시작했지만 애초부터 일은 그에게 버거운 짐이었다. 그나마 일이 그에게 닻을 매다는 역할을 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알코올중독 치료재단 도움도 받지 못하는 은퇴자 신세가 되어버리자 그는 또다시 물에 띄운 배처럼 자신만 아는 물길을 따라 정처 없이 표류하기 시작했다. 극동지역에서 살아 돌아온 이래 평생토록 그를 짓누른 불안증세를 막아줄 수 있는 건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불안 증세가 오히려 그를 완전히 삼켜버렸다(p. 257). 결혼이 열쇠 없는 감옥 같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그 즈음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게 한 쪽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 대립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냉담한 분노 속에 홀로 침잠해 들어가는 것, 나를 껍질로 둘러싸고 아예 꽉 닫아버리는 행동이 아마 우리 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다. 대치와 갈등은 내 존재 자체를 위협했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상기시켰다.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아내에게조차 말할 수 없는 기억이 자꾸만 떠오른다는 건 말 그대로 비극이었다. 밀실공포증 같은 불안감은 교회로 인해 더 악화되었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사나운 세력다툼, 허세와 거리두기, 빈정섞인 분개가 자리싸움으로 분출되곤 했다. 30년 동안 교회를 다닌 한 여성은 어느 날 나와 내 아내가 자기 자리라 생각하는 곳에 무심코 앉았다며 큰 소리로 화를 냈 다. 그들의 무지와 위선에 진절머리가 났다(p. 267). 반쪽짜리 생각에 불과한 이 욕구조차 실제로 표현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몇몇 사람들은 이제 그만 용서하고 잊으라고 조언했다. 보통 나는 웬만해선 대놓고 논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나도 의견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용서하라고 충고를 건넨 대다수는 내가 치른 종류의 경험을 단 한 번도 한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용서할 의향이 없다. 아직까지는, 아니 아마도 절대로(p. 298). 나가세는 이후 여러 차례 태국을 방문해 생존한 아시아 철도노동자들을 위한 자선활동을 벌였다. 그들 중 대다수는 전후에도 인도나 말라야 같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철도역 인근에서 비참한 삶을 이어갔다. 나가세는 콰이 강의 다리에 평화의 사찰을 건립하고 군국주의에 소리 높여 반대했다. 존경할 만한 일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모든 내용을 놀랍도록 초연하게 읽어내려갔다. 내 속에서 강렬한 감정적 반응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저 방관자로 내 고문 현장을 바라보는 듯 묘한 기분 외에는 모든 게 공허하게 여겨졌다. 게다가 용서받았다고 느끼는 그의 감정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신은 그를 용서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를 용서한 적이 없다. 한낱 인간의 용서와는 다른 문제이니까 말이다. 나는 책을 치워버렸다. 며칠이 지난 어느 오후 패티가 그 책을 집어들더니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칸부리 전쟁묘지에서의 경험을 적은 대목이 나오자 아내는 분노했다. 내가 느낀 감정 그 이상이었다. 그 녀는 나가세가 어떻게 용서받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지 의아해했(p. 311)다. 죄의식이란 게 어떻게 그냥 '사라져' 버릴 수 있는가? 아무도, 더구나 나도 그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분노감을 주체하지 못한 패티는 나가세에게 당장 편지를 쓰겠다며 내 허락을 구했다. 그녀는 결국 편지를 썼고 1991년 10월 말, 나가세에게 그 편지를 보냈다. 내 사진 한 장을 동봉해서. 이제 그와 갑자기 대면하려던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p. 312). 나가세와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우리가 다른 환경에서 만났더라면 서로 잘 지낼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는 공통점이 많았다. 책을 좋아했고 가르치는 일에 종사했으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칸부리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가 점점 가깝게 느껴졌다. 우리는 주말에 일본에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그 와중에도 한시도 떠나지 않은 생각은 용서였다. 나가세를 가장 괴롭힌 문제이기도 했다. 우리가 만난 것 자체가 이미 용서를 구현하고 있지 않느냐, 혹은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는 꺼내기에 새삼스럽진 않느냐는 식의 생각은 너무 단순한 접근이다. 일단 누구든 용서를 문제로 삼는 순간 자칫 판결자의 자리에 서려는 우를 범하기 쉽다. 다만 나는 내 결정의 구속력을 의식하고 있는 나가세에게 어떻게든 응답해주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 주 우연히 만난 한 태국 여성이 불교에서 말하는 용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우리가 한 행동은 이승에서 언젠가 자신에게 되돌아오며 악(p. 331)행을 속죄하지 않으면 다음 생에서까지 반드시 자신에게 되풀이된다는 얘기였다. 나가세는 지옥을 두려워했다. 우리의 첫 만남이 서로의 삶을 이미 지옥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내가 불교신앙을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용서를 거부함으로써 더 이상 그를 괴롭게 만들 이 유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를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고 싶었다. 정작 중요한 건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새롭게 맺은 관계이며 나아가 자신이 한 짓에 대한 명백한 뉘우침 그리고 부질없던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딛고 우리의 만남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상호적인 요구였다. 우리 삶이 겪은 고통과 피해로부터 가능한 한 충분히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진정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자 어떤 절차를 통해 용서의 뜻을 전할까 하는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p. 332). 나는 미리 써둔 짧은 편지를 그에게 찬찬히 읽어주었다. 그가 모든 문장을 이해하고 있는지, 중간중간 멈추고 확인하면서. 나는 그가 이 편지를 정중한 격식을 담은 내용으로 받아들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편지는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전쟁은 이미 50년도 전에 다 끝난 일이라는 단언과 함께 나가세가 겪었을 고통, 화해를 위해 그가 한 노력들, 그리고 군국주의에 대항한 그의 용기 있는 자세를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그런 다음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1943년 칸부리에서 겪은 일을 결코 잊을 수는 없지만 나는 당신을 전적으로 용서합니다."(p.339). 옮긴이의 말 전쟁과 야만, 용서에 관한 어느 전쟁포로의 가슴 저린 이야기 이 책은 철도와 증기기관차로 대변되는 산업혁명의 발상지 영국에서 태어난 한 남자가 바로 그 기차와 철도로 인해 아이러니한 운명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담은 실화다. 타고난 운명 혹은 '팔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평생 철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았다. 《레일웨이 맨》이라는 책 제목마저 절묘하다 못해 기묘하게까지 들린다. 에릭 로맥스는 어려서부터 기차와 철도에 깊이 매료된 철도광railway mania 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통신장교로 군에 입대한 그는 싱가포르 함락과 동시에 일본군 포로가 되어 버마-시암 간 죽음의 철도를 건설하는 현장에 철도노동자로 징용된다. 그러다 라디오를 제작하고 철도 지(p. 342)도를 그려 소지했다는 이유로 스파이 혐의를 받고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심지어 종전 후에 그가 거친 주요 이력 중에도 철도 관련 직무가 포함되어 있다. 훗날 고문 당시 통역자였던 나가세 다카시의 정체를 알게 된 것도 나가세가 철도 희생자들의 유해와 묘지를 찾는 활동에 헌신한 덕분이다. 이후 그의 삶을 바꾸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운명의 여인 패티를 만난 것도 바로 기차역에서였다. 또한 이 책의 첫머리는 자신의 집에 걸린 던컨 맥켈러의 그림 속 기차역 풍경에 대한 감상으로 시작해 나가세 다카시 부부와 기차역에서 헤어지는 장면에 관한 회상으로 마무리된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을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듯 자신의 생각이나 심리 보다는 상황과 주변환경 묘사에 치중해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여러 인물들의 이름과 직책을 포함해 특정 장소는 물론 정확한 날짜와 시각까지 사건이 일어난 순서대로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펼쳐놓았다. 성장 과정과 기차에 관해 길게 서술한 첫 장은 그의 성품과 배경을 엿볼 수 있는 단원이며 2장과 3장에서는 시시각각 전쟁이 다가오는 모습이 실감 나게 그려져 있다. 그러다 4장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저자의 내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4장은 생각지도 못한 전쟁포로가 되어버린 심경이 잘 드러나 있으며, 5장과 6장의 '라디오 사전'과 고문 현장으로 넘어가면 마치 기록영화를 보듯 가슴이 아프도록 생생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가령 수용소 앞마당에서 심한 체벌과 구타를 당하는 과정은 원문의 무려 6페이지, 그리고 물고문의 전 과정은 2페이지에 걸쳐 세밀하게 기록돼(p. 343)있다. 7장과 8장에서는 죽기 일보직전의 극한상황까지 몰린 포로생활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서대문 형무소나 거제도 포로수용소, 워싱턴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를 둘러보며 막연히 떠올리던 전쟁의 참상이 구체적인 실체로 다가오는 대목들이다. 9장과 10장에서는 전쟁이 끝난 직후의 혼란스런 주변상황, 기대와는 다르게 닥친 현실과 심리적인 후유증이 상세히 기술돼 있다. 고문으로 인한 고통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심적 트라우마가 얼마나 힘겨운 것인 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후 성공적인 삶을 영위해온 과정을 보면(포로생활 중 용기를 내 감행한 일들도 마찬가지지만) 그가 지닌 불굴의 인간정신에 대한 감탄이 절로 나온다. 1995년 영국에서 초판이 나온 이래 이 책은 용서의 문제를 다른 작품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작 용서에 관한 내용은 뒷부분에 짤막하게 나온다. 게다가 11장 대부분은 지난하고 고통스런 나가세 추적 과정임을 감안할 때, 용서의 문제를 다룬 대목은 패티의 편지를 매개로 직접 만나 용서를 전하는 12장에 한정돼 있다. 물론 로맥스와 나가세 두 사람의 화해에 결정적 계기가 된 두 개의 편지 전문(패티의 편지와 나가세의 답장)을 비롯해 사건 당사자들이 반세기 동안 겪어온 고통과 화해의 과정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더할 나위없이 감동적이다. 하지만 로맥스가 말한 대로 '뜻하지 않은 행운과 운총이 결합된' 이 특별한 사연을 '이상 적인 용서'의 대표 사례로 미화해 '용서에 관한 책'으로 보는 것은 다소(p. 344) 경계해야 할 시각이라 여겨진다. 그보다는 "일본인들이 철도노동자들에게 전혀 무관심한 걸로 비춰지는 게 두려웠다."라고 말하며 군국주의와 전체주의적 태도에서 탈피해 자신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나가세 다카시와 혹독한 포로생활과 전후 끔찍한 트라우마 속에서도 결코 생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온 에릭 로맥스, 강인하고 올곧은 두 사람이기에 이뤄낸 '특별하고 아름다운 재회 이야기'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 속에서 저자는 이렇게 되묻는다. "물론 우리가 겪은 것보다 훨씬 더 심한 고통을 당한 사람들도 많다. 유럽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들과 유대인 대량학살은 여간해선 못 믿겠다는 사람들 마음속에도 또렷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겪은 경험이 참담한 역사의 한 페이지 끄트머리로 무조건 격하되어야 할까? 영국인 대다수는 극동지역 전쟁범죄 재판에 별 관심이 없다. 게다가 공식 정책마저 일본을 서구사회의 동맹국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그 사건들을 폄하했다. 칸부리 사건이 그저 사소한 범죄에 불과한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재판에 회부된 범죄의 직접적인 피해자에게 그 사건은 결코 사소하거나 부차적일 수 없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치의 만행에 관해서는 《안네의 일기》나 〈쉰들 러리스트〉 〈게르니카〉 등 대표적인 도서와 영화, 미술작품이 넘쳐나는 데 비해 일제의 만행을 다룬 내용은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안타까운(p. 345) 현실을 돌이켜볼 때 최근 영화로도 개봉된 이 책이 우리에게 의미있는 시사점을 제공해주길 기대해본다(p.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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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296】 전쟁 가해자와 피해자의 공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