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는 게 정답이 있으려나? - 출판사 포르체
학창 시절이나 지금이나 좋아하는 그룹사운드 송골매의 배철수에 관련한 글을 책에서 우연히 봤다. 책을 읽고 알아보니 그는 현재 종교가 없지만 어렸을 때 교회를 다녔었다. 배고픈 시절 빵을 얻어 먹기 위해서였다. 그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이 때 일을 잊지 않고 있다. 이런 사람은 비록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교회에 대해 적대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교회가 나누고 베풀어야 하는 이유이다. 책을 읽다보면 교회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종종 나온다. 한때 그 사람이 경험한 교회의 모습이 평생 기억에 남는다. 교회가 좋은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가세는 점점 더 기울기만 해서 나중에는 아버지의 지인 집에 방도 아닌 베란다 같은 공간을 빌려 거기에서 네 식구가 살았을 정도였다. 당시엔 급식이 없으니까 도시락을 싸가야 하는데 부엌조차 없어 10원짜리 크림빵을 아침으로 먹고 점심은 굶는게 일상이었다. 친구들이 점심을 먹으면 슬그머니 수돗가로 나와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계단에 앉아 있었다. 지금은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지만, 그때 그렇게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봄이라 아지랑이가 올라가는 건지 눈에 물기가 어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당연히 따로 음악 교육 같은 것은 받기도 어려웠던 어린 시절, 간혹 옆집에서 듣는 라디오에나 귀를 기울이며 음악을 접하던 그가 본격적으로 노래 부르는 데 흥미를 갖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빵'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겨울, 같은 쪽방촌에 살던 친구의 아버지가 동네 교회 목사님이었는데 친구가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 남았으니 같이 교회에 가자고 했다. "난 교회 안 다니는데." 하고 거절하려 했지만 "오늘 교회 가면 빵 줄지도 몰라." 하는 데에는 대번 혹하고 말았다. 그래서 교회에 갔는데 정말 빵을 한 개씩 나눠줬다. 그러면서 다들 노래를 한 번씩 해보라고 하기에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목사님이 배철수를 콕 지목하면서 빵 하나를 더 주더니, 크리스마스 이브에 어른들이 예배 보는 데 와서 노래를 한 곡 해달라고 했다. 먹을 것도 많이 주겠다기에 얼른 알았다고 대답하고 4절까지 있는 찬송가를 열심히 익혀 성탄 예배에 가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어른들이 열화와 같은 박수로 답해주었고, 목사님은 약속대로 빵도 많이 나눠줬다. 따져 보면 노래를 부르고 일종의 개런티를 받았으니 그게 최초의 데뷔 무대였던 셈이랄까.
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더 좋아했던 것은 바로 기타였다. 고등학생 때 동생이 어느 날 집에서 기타를 치고 있길래, 기타가 어디서 났느냐고 물으니 친구 것을 빌려 왔단다. 나도 한번 쳐보자, 하고 코드 몇 개를 배워서 더듬더듬 잡아보고 어설픈 리듬에 얹어 노래도 불러보는데, 그게 참 재미있었다. 그때부터는 기타를 아주 밤낮으로 쳤다. 밤에는 시끄러우니까 이불을 뒤집어쓰고 칠 정도였다. 처음에는 코드도 정확히 안 눌리고, 제대로 잡으려다 보니 손이 까지고, 그러다가 굳은살이 배겼지만 기타를 내 몸의 일부처럼 다루게 되는 그 모든 단계와 과정이 마냥 좋았다. 다만 꿈을 꾸지는 않았다. 꿈이라는 걸 갖기에는 현실의 벽이 애초부터 너 무나 견고해 보였기에, 뮤지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감히 가져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pp. 168-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