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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3】 전 법관의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나의 일상을 풍요롭게 채우는 건 어떤 의미인가, 다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사람과 사회는 바뀔 수 있는가. 자작나무에서 지리산으로, 도스토옙스키에서 몽테스키외로, 일상에서 재판까지. 호의는 사람을,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받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주라던 김장하 선생과의 추억, 법을 몰라 손해 보는 이들을 헤아리는 마음, ‘자살’을 시도했던 재소자가 ‘살자’는 다짐을 하게 만든 선물,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속절없이 흘리는 눈물, 그리고 건강한 법원과 사회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교보문고 계엄을 도모했던 윤석열을 단죄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쓴 책으로 가볍게 읽을만하다. 착한 사람을 위한 법 2001. 4. 22. 법 없이 살 사람 착한 사람을 일컬어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들 한다. 법의 강제 없이도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사람이란 뜻이리라. 과연 착한 사람에게 법은 필요 없는 것일까?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 나는 법이 어떠하다고 정의할 만큼 경력도 풍부하지도 않고 타고난 재주도 없지만, 1983년 법학을 전공한 이래 지금까지 18년을 법과 함께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그런 점에서 나는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착한 사람일수록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p. 19). 종종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가곤 하는데, 거기서 늘 하는 말이 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나에게 힘써달라고 전화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 나에게 법을 물어보라." 도대체, 전 재산과 다름없는 300만 원을 전세금으로 걸면서 그 집이 경매 중인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계약하는 사람을 누가 구제해줄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은 대개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야, 집주인을 사기죄로 고소했으니 수사 기관에 힘 좀 써서 집주인을 즉시 구속시켜 달라고 법조인에게 전화를 한다. 법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보장적 기능이다.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고 거기에 저촉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측면이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이 빛을 발한다. 다른 하나는 보호적 기능이다. 그러나 법의 이러한 보호적 기능도 경매 절차에서 배당 요구를 하는 임차인이나 노동자에게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유의하여야 한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은 초라하기만 하다. 착한 사람부터 법을 알자 판사로서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착한 사람은 법을 모르(p. 20)고, 법을 아는 사람은 착하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 사건일수록 해결이 어렵고, 착한 사람을 보호하고자 궁리를 해보나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착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고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법을 아는 사람에게 착하기를 요구할 것 인가? 불가능은 아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남는 방법은 착한 사람이 법을 아는 것이다. 그 길만이 법이 나쁜 사람을 지켜주는 도구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지름길이다(p. 21). 형사 재판 잘 받는 방법들 중 2006. 12. 19. 진술 거부권 행사 자기에게 불이익한 사실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 및 형사 소송법에서 보장된 피고인 및 피의자의 권리입니다. 따라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불이익한 사항에 대하여 질문을 받을 때 진술을 거부하면 되겠습니다. 괘씸죄가 걱정된다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되겠습니다. 이것이 모순되거나 불합리한 답변을 하는 것보다 유리합니다. 답변 방식 법정에서 판사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할 때는 결론을(p. 45) 먼저 말하고 이유를 나중에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판사는 질문을 통하여 사건의 윤곽을 파악 하려고 하므로, 판사에게 결론을 먼저 말함으로써 판사가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인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판사는 여러 각도에서 사건을 살피기 위하여 다양한 질문을 하는 것이므로, 설령 질문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 일지라도, 판사가 상대방의 편을 든다고 섣불리 생각하지 말고 정중하게 답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판사는 피고인의 진심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p. 46). 민사 재판 잘 받는 법 2007. 5. 17. 오늘 재판을 하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민사 재판 잘 받는 방법을 적어보았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소송을 하려면 어려운 일이 많으므로 형편이 허락한다면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였다고 해서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맡길 것이 아니라 수시로 소송 진행 정도를 확인하고 대응 방안을 함께 의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p. 61). 준비 서면을 간단명료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할 경우 법무사의 도움을 받거나 본인이 직접 준비 서면을 작성해야 할 터인데, 이때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준비 서면이라는 것은 당사자의 주장에 불과하므로 아무리 유리한 내용을 적어놓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인정받기가 어려운 반면, 불리한 내용은 별도의 증거가 없더라도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따라서 준비 서면은 간단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증거가 뒷받침되는 내용일 경우 명료하게 주장을 펼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준비 서면에 상대방을 비난하는 내용을 적을 경우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해롭다는 것입니다. 재판이라는 것이 당사자의 도덕성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고, 뚜렷한 증거 없이 상대 방을 비난할 때 판사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준비 서면에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하여 적어내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재판부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노고를 덜어주는 것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p. 62). 소송의 승패는 증거에 달려 있습니다 민사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흥분할 필요 없이 차분하게 증거를 수집하여 제출하는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증거로는 애초 사건이 있었을 때 작성된 서류, 특히 상대방이 서명 또는 날인한 서류가 가장 효력이 강하고, 그 다음으로 제3자가 작성한 서류가 효력이 강합니다. 증인의 증언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법정에서는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도 법정에서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실정이므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는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에 그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정 또는 화해를 권유받았을 때는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재판을 하다 보면 어느 당사자의 주장이, 설득력은 있으나 증거로 뒷받침 되지 않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법적 관점으로만 해결할 경우 어느 당사자에게 더 가혹하기도(p. 63)합니다. 이길 승산이 있어 보이나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법원은 당사자에게 조정 또는 화해를 권고하는 데,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조정 또는 화해 절차에서는 집행에 관한 내용을 반영할 수도 있으므로 이러한 점에서도 조정 또는 화해의 효용은 높습니다. 증인 신문을 할 때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정에 출석한 증인을 상대로 질문을 할 경우 "거짓말쟁이다" "양심도 없느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차분하게 증언의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상대방이 질문하는 내용을 (미리 받을 수 있습니다) 검토하여 허점을 정리했다가 법정에서 질문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람 턱없이 부족한 내용일 것입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소송을 잘해서 이길 사람이 이기는 재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p. 64). 문제가 터지고 나서 소송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은 문제가 터지기 전 검토를 충분히 하는 것입니다. 몇 천 만 원이 오고가는 계약을 체결할 때 변호사나 법을 잘 아는 사람에게 비용을 들여서라도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길게 볼 때 비용이 더 적게 듭니다(p. 65). 책을 읽는 이유 세 가지 2010. 2. 16. 책을 많이 읽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고전을 읽은 적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 보니 문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투리는 말을 안 하는 것으로 감출 수 있었지만 무지는 감출 방법이 없었다. '장 발장'이 《레미제라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읽었다(p. 108). 무경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판사가 되고 보니 사건을 이해하기엔 내 경험이 너무 좁고 얕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도대체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거액의 거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잡히면 처벌받을 게 뻔한 일을 왜 되풀이하는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경험을 늘리려고 해보니 이 또한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장 법관 윤리가 문제였다. 그래서 생각해본 것이 두 가지다. 지금은 언론사 사장이 된 어떤 분이 사법연수생이었던 나에게, 법조인이 되면 초등학교 동창생과 꾸준히 만나라고 당부했던 기억이 떠올라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1년에 몇 회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때로는 부부 동반으로) 만났으니 어느 정도는 실천한 셈이다. 두 번째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장르를 구분하지 말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어보자 하였던 결심이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다. 무소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었다. 남녀 공학 중학교 시절 소풍(p. 109)을 가서 선생님의 권유에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를 까먹어 끝을 맺지 못할 정도로. 그때 불렀던 노래가 남진의 〈님과 함께〉였다. 고등학교 때는 교복이 중고라서 반장을 하지 못했다. 대학교 가서는 사투리 때문에 남 앞에 나서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무슨 결정을 하려면 무척 어려웠다. 결정을 하고 나면 곧 후회를 하게 되고. 어느 날, 내성적인 이유가 소신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군대에서 정훈장교를 하게 되었고 정훈장교 하는 일이 장병 교육이다 보니 남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해소된 뒤라서 그런 결론을 더욱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앞서간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서로 맞추어보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 단단해져 소신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포함해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사족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이 누구와 만나고 무슨 책을 읽는지 말해달라."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p. 110). 혼돈의 시기에 그나마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친구와 책 덕분이라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 감회가 남다르다. 모든 분들에게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p. 111). 책을 고르는 기준 2010.6.26. 책을 어떻게 고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저자를 보고 고른다 어떤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면 그 저자가 쓴 책은 눈에 띄는 대로 사서 읽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면 고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 단 한 번》을 읽고 《축복》 《살아온 기적 살아 갈 기적》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는 식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저자는 다음과 같다. 신영복 교수, 정 민 교수, 유시민 전 장관, 소설가 김 훈, 오지 탐험가 한비야,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열하일기》 전문가 고미숙 박사(p. 124). 주제어를 보고 고른다 제목이나 문장을 검색하여 관심 있는 주제어가 들어간 책을 고른다. 요즘 즐겨 찾는 주제어는 다음과 같다. 정의, 소통, 성찰, 역사, 철학, 인생, 여행, 행복. 이런 기준으로 고른 책은 다음과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 《서양철학사》 《인도 여행》 《행복의 정복》 《무지개 원리》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등. 책 선택에 실패한 적은? 이런 기준으로 책을 골라 읽으면서 후회할 때가 제법 있다. 그러나 산 책은 다 읽는다. 재미가 없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책에 대하여는 독후감을 쓰지 않음으로써 복수를 한다. 블로그에 올린 책은 이중으로 검증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 지금껏 읽은 책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천 권 정도 될 것 같다. 책을 고르는 장소는?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여 고르는 경우가 많고 가끔 서점에 가서 고른다. 베스트셀러 항목과 새로 나온 책 항목을 많이 참조한다(p. 125). 블로그에 독후감을 쓰는 이유는? 독후감을 쓰다 보면 책 내용을 정리하는 효과가 있고, 글쓰기 훈련이 되며, 블로그에 저장해놓으면 다른 글을 쓸 때 인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은 있어도 나쁜 책은 없다. 어떤 책에서도 스승 또는 반면교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께 독서를 권한다. 책이 여러분을 끌어올려줄 것이다(p. 126). 왕후박나무 2011.4.1 남해군법원 다녀오는 길에 경남 남해군 창선면 왕후박 나무를 만났습니다. 500년 이상 되었다고 합니다. 둘레에는 동백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합니다. 주로 방풍용으로 많이 심는다고 합니다. 남해군 창선면에 있는 왕후박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9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왕후박나무는 높이 솟구치지 않고 옆으로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도 500년을 버틴 게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자신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p. 140). 조영남의 노래가 있죠. 〈겸손은 힘들어〉. 그렇죠. 겸손은 힘듭니다. 공자 이래 2천 년 동안 성현들은 겸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겸손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습니다(p. 141). 조정에 임하는 자세 2013.4.28. 조정이란 조정은 법률 분쟁이 생겼을 때 판사의 판결이 아니라 당사자 간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를 말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법원에 접수된 사건 중 판결까지 가는 사건은 10퍼센트가 되지 않고 대개는 조정을 포함한 여러 가지 간이한 방법을 통하여 사건을 처리한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조정은 이길 사람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길 사람이라는 건 미리 정해진 것은 아니고 재판 절차를 통하여 증거를 대고 법리를 세워야 하고 그것으로 판사를 설득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대법원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다(p. 188). 그리고 1천만 원을 받기 위하여 소송 비용으로 500만 원을 들여야 한다면, 700만 원을 받고 소송 비용을 100만 원 선에서 지출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사건에 관하여 가장 절실한 이해관계자는 판사도 아니 고, 변호사도 아니며, 결국 당사자다.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람도 당사자일 수밖에 없으므로, 당사자의 주도권이 가장 잘 보장되는 조정 절차가 불합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정에 임하는 자세 양보해야 한다. 조정은 당사자 간의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고 대체로 당사자는 서로 이해관계가 상반되므로 양보를 해야 조정이 성공한다. 본인이 참석해야 한다.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한 경우라도 조정 절차에는 본인이 참석하는 것이 좋다. 판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상대방의 입장을 직접 들을 수 있으며,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상생하는 방법도 있다. 본인에게 크게 불리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크게 배려하는 방법도 있다. 상대방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쟁점에 관하여 양보하더라도 본인에(p. 189)게 크게 불리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므로,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집행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소송을 하는 종국적 목적은 대체로 승소 판결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돈을 받아내기 위함이다.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더라도 집행 절차에서 돈을 받아내는 비율은 생각보다 낮다. 조정 절차에서는 돈을 받아내는 방법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으므로 유리하다. 원고는 5천만 원을 고수하고 피고는 3천만 원을 고집할 경우 4천만 원 선에서 타협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때로는 5천만 원으로 정하되 3개월 내에 3천만 원을 가져오면 나머지 2천만 원을 포기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싸우는 것은 금물. 간혹 조정실에서 상대방과 말이나 몸으로 싸우는 사람이 있다. 사연이 있겠지만 판사 입장에서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자신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자리를 어렵게 마련했는데 불만을 터트리는 자리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다. 그 사건이 해결 되지 않을 경우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은 판사도 아니요 변호사도 아니요 바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판사의 설명에 귀 기울인다. 법원이 조정 절차를 주도하(p. 190)는 경우 판사로부터 사건 전반에 관한 설명을 듣게 된다. 판사는 내가 불리한 점, 내가 유리한 점을 나누어 설명할 것이다. 잘 들으면 판사가 생각하는 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2심이라면 사건 처리 방향이 대부분 결정되었다고 보면 된다. 민사 사건의 경우 대법원에 상고를 해서 2심 판결이 깨지는 비율이 10퍼센트가 안 된다는 점, 사실 인정은 원칙적으로 2심에서 하게 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2심 재판부의 결론은 존중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내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좋다. 마무리(롯데자이언츠의 마무리는?) 집안에 송사가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적당한 선에서 털고 나오는 것도 마음의 평화를 찾는 좋은 방법이다. '조금 손해 본 것은 다른 일을 해서 보충하면 된다.' 이런 생각으로 조정에 임할 수는 없을까요?(p. 191). 재판 속의 문학 내가 현실에서 맡은 재판은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다(p. 304).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문학이 재판에서 많은 것을 차용하지만 재판은 문학에서 차용하지 않고 순수함을 고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판사는 많은 경험을 해야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제한적인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문학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문학은 보편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고, 재판은 구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며, 양자는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판사들이 다 가난했던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훈의 《흑산》을 읽고 나면 가난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배고픔을 면하자면 오직 먹어야 하는데 많은 끼니 중에서도 지금 당장 먹는 밥만이 배를 채운다는 내용이 그렇다. "아침에 먹은 밥이 저녁의 허기를 달래줄 수 없으며, 오늘 먹는 밥이 내일의 요기가 될 수 없음은 사농공상과 금수축생이 다 마찬가지다." 내가 10년 전 처리한 사건 중 20대 청년이 공무집행 방해죄로 구속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생모라고 밝힌 사람이 탄원서를 보냈다. 오래전에 헤어진 아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자신이 책임지고 선도를 할 테니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p. 305). 재판을 하며 방청객을 둘러보니 유난히 눈에 띄는 분이 있었다. 피고인석 옆에 앉아 대화를 하게 하였더니 피고인을 껴안으면서 "이제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라고 말했다. 피고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생모와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였다. 생모를 만났으니 이제 마음을 잡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집행 유예 판결을 선고했고, 피고인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그 책 한 쪽을 읽어주었다.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다. 내가 10년 전에 처리한 사건 중에 피고인이 자살을 하려고 여관에 불을 질러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불은 크게 번지지는 않았고 다친 사람도 없었다. 선고하는 당일 피고인에게 자살을 열 번 외치게 하였다. "자살자살자살자살.... 이렇게 열 번 하면 본인은 '자살' 이라고 말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살자'로 들립니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실패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살에 실패해서 살았지 않았습니까?" 그러고서 피고인에게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49가지》란 책을 선물했다. 나는 이런 재판을 하게 된 배경 중 8할이 문학 덕분이라고 생각한다(p. 306).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어쩌면 좋은 문학과 좋은 재판은 그 모습이 모두 비슷할지 모른다.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질문할 때, 주제와 이야기가 딱 들어맞을 때 독자들은 감동한다. 판사들이여!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가 영국의 대법관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작가들이여! 긴장하시라. 대한민국의 판사도 또 다른 '유토피아'를 쓸지 누가 알겠는가?(p.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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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2】 죽음을 늘 준비하며 살자
KBS 《아침마당》, 《강연100℃》 등에 출연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공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의 에세이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 극심한 암성 통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임종 선언을 했던 저자 김여환.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꼼꼼히 기록한 이 책은, 삶이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을 위해 더없이 소중한 오늘을 ‘있는 힘껏’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교보문고. 이 책은 호스피스 의사가 수많은 죽음을 보고 삶과 죽음에 대해 느낀 것을 쓴 것이다. 많이 유익했는데 현재 절판됐다. 사람의 일생 중 가장 힘든 시기는 보증을 잘못서서 거액의 부도를 냈을 때나 남편이 바람을 펴서 이혼할까 말까 망설일 때가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인생의 반전 같은 일말의 빛조차 기대할 수 없는 시간들, 즉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의 '짧은 삶'이다. 그 시기를 잘 보내야만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온전한 나의 인생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야만 남겨진 사람들의 인생도 편안해질 수 있다(p. 8). 그렇다. 나는 이 세상에 남들보다 조금 먼저 작별 인사를 건넨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토록 자명한 삶의 진리를 힘겹게 깨달았다. 만약 우리에게 내일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면, 오늘 우리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내일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면, 한 번 더 사랑한다 말하고, 한 번 더 안아주어야 하며, 오늘 깃든 행복을 있는 힘을 다해 누려야 한다. 이렇게 수많은 '오늘의 삶'이 모일 때 삶의 아름다운 결과물은 비로소 완성 된다. 그러므로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라는 말에 숨어 있는 참된 의미는 오지도 않은 내일에 대한 불안과 분노, 두려움과 슬픔에 오늘의 행복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더 사랑하고, 오늘 더 행복해야만 한다(p. 10). "2012년 8월 21일 12시 42분, 신복연 할머니는 사망하셨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더 이상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통증 없이 편안히 좋은 곳으로 떠나셨다는 위로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짤막한 사망 선언 뒤에는 언제나 그 마지막 순간을 지키고 있던 가족의 대성통곡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오늘은 조용했다(p. 22). 할머니의 둘째 딸이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우리 엄마가 평소에 유언을 했어요. 내가 떠나면, 울지 말라고. 자식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뒤 돌아보느라 떠나는 것이 힘드니, 울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아...하여간 대단하세요. 입원 내내 웃지 않으신 날이 없었는데, 그런 아름다운 유언까지 하신 줄은 몰랐어요. 제가 들어본 유언 중에 가장 훌륭한 유언인 것 같아요." "과장님, 그렇죠! 우리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이제 꽃 한 송이가 지는구나, 했다니까요." 곱게 아껴두었던 꽃분홍색 한복으로 갈아입고, 흰 양말까지 정갈하게 신은 신복연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살아 있는 그 누구보다도 따뜻해 보였다(p. 23). 짧은 글 한 편을 쓸 때에도 마지막에 무슨 말을 쓸까를 생각하면서 쓰면 글의 흐름이 매끄러워지듯이, 인생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고 살다 보면 들쭉날쭉한 인생이 일관성 있게 변한다. 타인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자기 자신과 먼저 소통해야 한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과 소통하면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p. 25). 자신과 만나려면 가장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임종실은 부끄럽지만 가장 볼품없고 꾸밈없는 자신의 민낯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은 바로 '나의 마지막'이라고(p. 26). "호호호, 난 아직 여기 입원할 단계는 아닌 걸요." "아직은 마약성 진통제를 쓸 만큼 아프지는 않아요." "며칠 전에도 산에 다녀올 만큼 괜찮았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멀쩡하게 걸어 들어오는 말기 암 환자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해 보이는 말기 암 환자들이 한두 달 뒤에는 누런 황달이 오거나 폐렴이 와서 황망히 떠나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남겨진 시간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그 짧은 시간에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칠순 잔치를 하든지, 마지막 콘서트를 하든지, 이혼한 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들을 찾아주는 일들 말이다. 그래도 나도 한 번쯤은 환자를 살려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죽는다고 포기했던 말기 암 환자가 완치되는 일이 우리 병동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환자들은 입원해서 퇴원(p. 45) 할 때까지 평균 27일을 살았다. 호스피스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역시 기적이란 부질없는 비현실적인 희망이라는 것을 확신 하게 됐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슴 저리게 갈구하기도 하고 신에게 떼를 쓰며 의지하기도 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겠지만,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 훤히 보이는 나로서는 그렇게만 하다가 환자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런 애절한 생각을 할 시간이 있으면 조금밖에 남지 않은 삶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오랜 경험을 통해 내린 슬픈 결론이었다. 사람이 좀 민민하고 삭막하게는 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옳았다(p. 46).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다. 푸시시한 구차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낼 때쯤이면 원치 않았던 현재 시간이 살다 남은 찌꺼기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약한 정신 때문이 아니라 몸이 약해지기 때문에 마음까지 통째로 흔들린다. 심지어 어떤 환자는 "잠자듯이 가는 그런 약 있잖아."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말기 암 환자가 안락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p. 56). 비참한 마지막은 말기 암에 걸린 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다 남은 삶이라고 쓰러져버리는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떠날 사람은 남아 있을 이를 위해 조금 남은 삶을 성실히 살아가고, 남아 있을 사람은 떠날 이가 세상에서 사랑받다가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노력하면 서로 덜 힘들다. 처음과 마지막까지, 모두가 촘촘히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p. 58). 세상은 가벼움과 무거움이 서로 경계를 불분명하게 가른 채 섞여 있다.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가볍고,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무겁다. 그렇게 어우러져서 세상은 좀 더 좋게 변한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오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선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고함을 지르고 입원실 바닥에 소변을 보는 한 할아버지 때문에 사흘 밤낮 동안 시달린 환자들이 하소연을 했다. 할아버지를 간병하던 할머니는 "환자가 병원에 자러 왔나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진정제도 못쓰게 하고 1인실로 가지도 않았다. 그런가 하면 뇌종양에 걸린 12살짜리 소녀는 과자를 들고 병실을 누비며 "아저씨, 빨리 나으세요."라고 하면서 환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한 신문 기자가 말기 폐암 환자에게 물었다(p. 67). "인생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해주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후덕하게 생긴 환자는 가지고 있던 옷가지며 살림살이를 싹 정리할 정도로 죽음을 잘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쓸쓸하게 대답했다. "저는....그런 것은 선배가 되고 싶진 않은데요." 그렇다. 죽음이란 일평생을 별 탈 없이 살다가 90살이 되어 마음 독하게 먹고 미리 준비해도 어려운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닥뜨리는 죽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많이 돌본 의사로서 한 가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이 먼저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남은 사람들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나 때문에 끼니를 거를까 봐, 나를 잃은 슬픔으로 행여 병이라도 생길까 봐, 경제적으로 힘들까 봐 등등.... 그들은 사소한 걱정을 몰래 했다. 남은 사람들은 그 마음을 알까? 임종실은 섞일 수 없는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고, 살아남은 이들이 비통함에 눈물을 흘리는 작은 방이다. 그러나 그곳을 거(p. 68)쳐 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존재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사랑하는 이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라고(p. 69). 예전에 나는 보기조차 딱할 만큼 남을 부러워했다. 뚱뚱할 때는 날씬한 사람을, 늦게 시작한 의사 생활이 비참하다고 느껴질 때는 처음부터 순탄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동료를 얄밉도록 부러워했다. 누군가는 잘된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인생의 꿈도 생기고 삶을 개척할 의지도 생긴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 부러움이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계기는 되었을지라도 그 과정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이제 내가 진실로 부러워하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했거나, 예쁘고 날씬하고 건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어떤 삶이 자신에게 다(p. 92)가오더라도 묵묵히 잘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그 자체로 당당하게 살아내는 사람이다. 우리는 저마다 지닌 인생의 향기가 따로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말자. 인생의 마지막에는 행복했던 자신의 과거조차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 시간에는 그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나만의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이 온 것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아쉬운데, 여러 가지 잣대로 부러워하면 병들어 있는 자신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부러워하지 말자, 그대여! 인생이 아파도 마지막까지 이 세상을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내야 한다(p. 93). 불행히도 호스피스에는 죽음을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는 묘약 따위는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들어주면 조금은 가벼워졌고, 끝까지 끈을 놓지 않고 가는(p. 108)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평범한 사실에 평안을 찾아갔다. 대식 씨의 어머니처럼 때로는 버리는 것보다 안고 가는 것이 더 홀가분한 인생도 있다. 그러니까 결국 안고 가는 사람, 버리고 가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p. 109). 잘 죽어가기 위해 우리가 정말 배웠어야 할 것은 죽음의 5단계를 외우거나 혼자서 관 속에 들어가 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p. 112) 아니다. "저는요, 이미 죽음을 다 받아들였어요."라고 말하면서 의젓하게 지내다가 진짜 마지막이 다가오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기보다는 결과물이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신산스럽고, 일상은 상처와 갈등의 연속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얼마만큼 잘 녹여내느냐에 따라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을 마지막 날은 달라진다(p. 113). 어쩌면 인생은 쓰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저절로 쓰이는 소설책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내야 한다. 죽을 만큼 괴로워도 직접 해봐야 삶에 대한 사랑이 깊어진다. 사람들은 인생이 힘들어지면 앞으로 남은 여정이 얼마나 끔찍해질지 더 두려워한다. 남은 인생이 지금보다 더 불편해지더라도 초조해하거나 원통해하지 말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대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살이라는 '고의로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를 생각할 만큼 견딜 수 없이 힘들다면 적극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아무 상관도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조차 알려야 한다. 마음의 피눈물은 말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 애써 고통을 삼키지 말자. 누구라도 도와줄 사(p. 120)람을 찾아다녀라. 자존심 따위 내세울 때가 아니다(p. 121). 치통이 아무리 심해도 한꺼번에 진통제를 다섯 알씩 먹지는 않는다. 통증을 잡으려다 사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타이레놀도 하루에 여섯 알을 초과하면 진통의 효과는 증가하지 않고 간에 부담만 준다. 이렇게 일반 진통제는 일반적으로 정해져 있는 용량을 초과하면 통증에 대한 효과보다는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해지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용량의 한계가 있다. 이것을 약의 천장 효과(ceiling effect)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천장 효과가 없는 약이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많이 쓰이는 마약성 진통제이다. 그것은 일반 진통제와 달리 많이 쓰면 쓸수록 통증이 잘 조절된다. 더군다나 날록손 (naloxone)이라는 해독제까지 있으니 '모르핀'이야말로 신이 세상을 떠날 때만은 아프지 말라고 인간에게 특별히 내려준 '마지막 선물'이다. 사망 원인 1위인 암은 사람이 떠날 무렵에 부쩍 커진다. 암(p. 129)덩어리가 커지면 정상 조직을 파괴하는 묵직한 암성 통증도 당연히 심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일찍부터 진통제를 쓰기 시작하면 통증이 가장 극심한 마지막 순간에는 정작 쓸 수 있는 약이 없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모르핀을 최후의 약으로 넘겨 두었으면 하고 부탁까지 한다. 그러나 통증에 관한 한 모르핀은 쓰면 쓸수록 효과가 있는 약이다. 이러한 마약성 진통제의 비밀을 알려주면 누구나 "진짜 그런 약이 있나요?" 하고 물으며 신기해한다. 환자나 보호자는 어차피 살릴 수 없다면 고통 없이 떠날 수 있다는 확신만으로 가느다란 희망을 갖는다. 모르핀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보다 더 끔찍한 암성 통증에서 해방시켜주는 이로운 약제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좀 더 정확하게 모르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아직도 말기 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모르핀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거부하면서 의미 없는 통증에 시달리다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의 마지막 의사로서 당부한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때가 오면 신이 내린 선물, 모르핀을 거절(p. 130)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통증이 없으면 죽음의 맨 얼굴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고, 고통 없는 죽음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을 것이다(p. 131). 내일 도사리고 있는 재앙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살아감 속에 죽어감의 흔적을 묻히는 것이다. 내일이라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오늘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심코 거칠게 한 말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지도 않을 비겁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너무 많이는 양보하지 말자(p. 163).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가족 간의 갈등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 갈등은 확대된다. 문제의 중심은 늘 '사랑과 돈'이다. 거기에 종교적인 문제가 곁들여지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p. 174). 살다 보면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만 해도 짧은 인생인데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 큰 손해를 볼 것만 같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매 순간 저마다 해야 할 일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훤히 보이고 그때 용기 내어 그 일을 하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것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기도, 또 속절없이 짧기도 하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실수 없이 하려면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하면서 견뎌보는 것쯤은 각오해야 한다(p. 187). 웰다잉(well dying)은 삶의 완성이 아니라 삶의 결과물이다. 누구나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은 더군다나 아니다. 저마다 주어진 힘든 삶을 잘 살아내야만 누릴 수 있는 삶의 마지막 축 복인 것이다(p. 203). 죽음을 깊숙하게 연구하고 싶어서라든지 내 성격이 원래 우울해서 호스피스 의사가 된 건 아니다. 나는 호스피스 일을 해오는 동안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도 죽음에 이르기 직 전까지는 살아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누구도 아프지 않게 하루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거창한 죽음의 여의사가 아니라 그저 생명의 에너지가 다 할 때까지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의사로서 당연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름이 주는 거부감 때문에 국내 암 환자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국내 사용량은 모르핀으로 환산했을 때 환자 1인당 연간 45mg에 불과하다. 미국 693.44mg, 영국 334.52mg은 물론 세계 평균 58.00mg보다도 낮다. 통증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안 쓰는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아프면서 죽어간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죽음이 삶의 종착역인지 따위는 일단 환자의 통증을 덜어준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암 환자의 통증은 당사자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출산의 고통이 10점 만점에 7~8점이라면 암 환자의 통증은 10점 이상도 간다.암성 통증은 암이 진행되는 생명의 마지막에는 더 심해지고, 그(p. 215)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환자와 가족을 더더욱 애타게 한다(p. 216). 인생을 산다는 것은 세상에 놓인 하나의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하지만 그저 다리를 건너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세상의 아름다움은커녕 다리를 뒤흔들 고통과 혼돈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뜨거운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자기 삶의 아웃사이더가 되어보기를. 삶이 끝난 뒤에 죽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죽음이 있음을 알아차리기를,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게 되기를 바란다(p.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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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1】 삶의 찌질함과 누추함에 대하여
산문집 《연중무휴의 사랑》과 《헤아림의 조각들》(2023년 문학나눔 선정도서)로 2030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임지은이 신작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전작에서 냉철하고, 때론 따뜻한 연민과 너른 헤아림을 보여줬다면 이번 산문집에서는 작가 자신의 깊은 내면에 숨겨진 질투와 열등감, 욕망과 좌절, 위선 등의 감정을 진솔하게 마주해본다. 누구나 한번쯤 특별한 이유 없이 무언가를 미워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싫음’이라는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숨기고만 싶은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들여다볼수록 작가는 거기에 어떤 선망이나 외로움,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편으론 자기가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을 돋보이게 하려는, 서툰 사랑의 마음이기도 했다. 작가는 슬픔과 기쁨과 외로움이 버무려진 이 “혼탕과 같은 삶”에 깊게 몸 담그며, 미움과 사랑 사이의 낙차를 발견한다. 엄마를 통해 흉보는 마음과 사랑이 때론 붙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온 세상과 자기 자신을 고루고루 아낌없이 사랑한다는 사람들 옆에서 홀로 투덜거리며 자신의 ‘싫음’을 통해 타인의 ‘싫음’ 또한 이해하게 되는 세계를 경험한다. 좋은 것은 당연하게 제 것이라 누리는 동거인에게 꼬인 마음이 드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 수긍하기까지의 내면의 갈등과 고통을 인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지만,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을 톺다 보면 이 책을 추천한 오은 시인의 말처럼, “곡절 없이 좋아하는 것들을 몇 곱절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곧 있으면 닥쳐올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직진하는 용기가 느껴지는 책이다.-교보문고 자신의 찌질함(?)을 드러내는 글을 보며 저자의 용기를 본다. 만족스럽지 않은 환경 가운데서도 살아볼려고 하는 저자의 몸부림(?)에 박수를 보낸다. 이토록 많은 말이 오가는 세상에 말 한마디가 그토록 크게 사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고야 만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버티고 또 흔들릴 만큼 나는 취약 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흔드는 게 무작정 나쁘다거나, 사주는 믿을 만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나를 흔들던 말 또한 나를 이쪽으로 데려왔음을, 내가 무언가를 그 안에서 발견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밤 안도 속에서 깨달은 건 나를 격려해주는 이가 없어도, 심지어 누가 나를 흔들어놓고 수면 아래로 밀어 넣는다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생겨난 불안과 슬픔과 무력감, 또 그에 따른 오기와 반발심을 동력 삼으며, 나는 내 안에서 끝내 살아남은 무언가를 마주했다. 어쩌면 그(p. 25)것이 그리도 중요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나 흔들렸다는 사실 또한. 그러므로 물음에 대한 답은 추가되고 갱신된다. 어쩌다 작가가 되었을까? 나는 끝내 작가가 되고 싶었다(p. 26). 오늘날에는 자신을 돌보는 법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그런 정보의 과잉은 때론 상처도 불행도 없어야 한다는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건 꼭 완두콩 한 알 만큼의 불편도 용인하지 않기 위해 고안된 듯 보이니까. 혹시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은 것만 주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걸까? 그렇게 해야만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건 좀.. 부자연스럽지 않나? 그래도 그런 정보들을 일찌감치 알았다면, 그래서 내 부모가 조금 더 자신을 돌보았다면 그들에게도 내게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내 부모도 조금은 덜 힘들었을 텐데. 나도, 조금 덜 우는 사람이었거나 조금 더 마음 놓고 우는 사람으로 자랐을 텐데. 어쩌다 한 번 하는 우리의 외식도 지금보다는 더 편안할 텐데(p. 103). 뒤늦게나마 나는 내게 좋은 것을 주는 법을 배우고 또 연습한다. 가능한 선에서 질 좋은 걸 산다. 누가 뭘 해주면 사양하지 않고 받는다. 목돈을 모아 요가를 등록하고 되도록 병원을 제때 간다. 때론 근사한 데서 밥을 먹기도 한다. 부모로선 잘 모를 좋은 걸 누려도, 스스로를 이기적이라 느끼지 않으려 이를 악문다. 동거인이 놀리는 걸 보면 갈 길이 먼 것 같지만, 나는 나를 보살피는 훈련을 거듭한다. 그래야 부모를 포함해 그 누구라도, 나를 챙기느라 그 자신을 뒷전으로 두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나에게 최선을 다해준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이해할 수 있다. 동거인의 캠핑을 따라가는 건 훈련의 일환이다. 캠핑을 가면 동거인이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해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뻔뻔하게 앉아서 쉰다. 겨울에는 가끔 엄마의 개도 캠핑에 데리고 간다. 텐트 안에서 개는 한 뼘의 볕이 있는 자리에 자기 몸을 두기도 하고, 난로 앞 조금 더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고 웅크리기도 한다. 주어진 데서 기어이 제 몸만큼의 좋음을 찾아내는 것이다. '너는 바로 아는구나'(p. 104). 내가 오래 걸려 배운 걸 개는 그냥 해낸다. 기특하고 근사한 개 같으니. 몇 년 전가지만 해도 그런 광경, 자신이 괜찮아지는 위치를 미리 알아두고 스스로를 거기 놓는 존재 앞에서는 마음이 볼썽 사납게 흐트러지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웅크린 개를 빤히 바라본다. 걷는 법을 모르고도 걸었고 숨 쉬는 법을 모르고도 숨 쉬었다. 사랑 하는 법을 모르고도 사랑했고 사는 법을 모르고도 살았다. 나를 키워낸 내 부모처럼, 언제나 모르면 모르는 대로 해내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배우면 배우는 대로 더 해내게 된다. 그걸 안 뒤로 나는 배우고 싶은 모든 걸 조금 더 오래 본다. 그럼 볕을 받아 털끝 하나하나가 빛나는 작은 개의 부드러운 몸이 조금씩 솟았다 가라앉길 반복하듯 감탄과 슬픔이 내 몸을 고요히 오르내린다. 어떤 자연스러움은 누군가에게 훈련의 영역에 있지. 그런 게 언제나 조금씩 나를 상하게 만든다고, 개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아무 불편도 모르는 얼굴,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멸균된 얼굴은 역시 내 것이 아니다. 훈련 해봤자 조금 상한 얼굴을 더 자연스럽게 여기는 내 관점은 아무래도 끝내 바뀌지 않을 모양이다. 그래선지 어떨 땐 사람들의 얼굴이 다 조금씩 상한 것처럼 보이곤 한다(p. 105). 대중교통을 오가며 힐끗힐끗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이 상처 입거나 불행하지 않길 바라면서.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들 각자의 상처나 불행이 없어지길 곧장 바라지는 않는다. 거기서 오는 고통과 모순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을 감싸는 오래된 맥락이므로. 나로선 그 안에 새겨진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그들의 완두콩들을 헤아려 보고 싶다. 그런 건 사람이 상처와 불행 속에서도 그럭저 럭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다만 그 사실을 증명하겠다고 나를 몰아세우는 건 그만두었다. 스스로를 보살피는 게 죄가 아니라는 걸 개조차 그냥 안다. 나는 개처럼 살아서 숨쉰다. 개에게 배운 바, 그건 머무르는 자리에서 언제나 한 뼘의 볕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뜻이다(p.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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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0】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 죽음
대한민국이 OECD 자살률 1위라는 아픈 현실을 몇 년째 마주하고 있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날 거야”라는 절망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젊은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대답을 들려주어야 할까? 이 무거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평생을 의학계에 몸담았고 ‘죽음학 전도사’라 불리는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와 그의 아내가 함께 펜을 들었다. 바로 신간 『죽음, 삶의 끝에서 만나는 질문 』의 저자 정현채, 이현숙 부부의 이야기다-교보문고. 의사가 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1) 근사체험 (2) 사후통신 (3) 삶의 종말체험 (4) 사망 시 물리적 현상 (4) 영매 (5) 어린아이들과 관련된 환생 연구이다. 나는 근사체험만 인정한다. 죽음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이기에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책을 찾아 읽게 된다. 읽은 책들이 죽어갈 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정현채 서울대학교 의대 명예교수 198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 내과학(소화기학)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로 있다. 지금까지 240여 편의 의과학 논문을 SCI 국제학술지에 발표했으며 위염이나 위궤양 등을 유발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연구의 권위자로 대한소화기학회 이사장, 대한헬리코박터및상부위장관 연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명한 의학 저널 『랜싯』을 포함해 전문 학술지에 게재된 죽음에 관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공부하면서 2007년부터 대중을 상대로 죽음학 강의를 시작했다. 중학생부터 80대까지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800여 회 넘게 강의를 해 '죽음학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국죽음학회 이사로서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 제정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수록 비관적이 되거나 자살 충동이 커지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정반대예요. 제가 산증인이죠. 인간의 죽음 전후로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에 대 해 알면 알수록, 왜 자살하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깨달아 더욱 밀도 있고 충만 하게 살아가게 되거든요. '내 목숨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웬 참견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그런 말을 하기가 어려워져요. 우리는 모두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고, 모르고 지나치는 존재들조차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요. 가족과 친구는 더 말할 나위 없죠. 우리는 모두 이번 생에서 다뤄야 할 저마다의 과제를 갖고 태어나는데, 자살을 한다는 건 그 과제를 너무 빨리 내팽개쳐버리는 거예요. 도망친다고 그 과제에서 벗어나게 될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 과제를 잘 다루게 될 때까지 형태만 바뀐 채 계속 마주 치게 돼요.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살면서도 그런 걸 경험하지 않나요? 해결하지 못 한 채 외면하거나 회피했던 문제가 사라지지 않고 어느 순간 눈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경험을요(p. 19). 자살은 남겨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고, 이 상처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잘 아물지 않아요. 한 사람이 자살하면 주위 사람 다섯 명 내지 열 명이 자살 충동을 갖게 된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마흔 명 가까이 자살한다고 하니, 매일 200명 내지 400명 넘는 사람들이 지인의 자살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거죠.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와요. 서둘러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고로, 질병으로, 노화로 언젠가 다 죽어요. 그러니 그 전까지는, 자신의 삶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까지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선택만은 하지 않아야 해요. 저는 4년 전 침윤성 방광암 진단을 받고, 방광 전체와 그 옆에 인접해 있는 전립선까지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았어요. 소장 60센티미터를 잘라내고 만들어 넣은 인공방광에는 괄약근이 없어서 자율적인 배뇨 조절이 안 돼요. 일정한 간격으로 화장실에 가야 해서 밤잠도 세 시간씩 끊어서 자요. 그러나 이것 때문에 비관하지는 않아요. 30년 전만 해도 방광 절제 수술을 받고 나면 비닐 소변주머니를 밖에서 연결해 부착하고 지내야 했는데, 수술법이 향상되면서 삶의 질이 높아졌어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 감사할 일이 참 많아요(p. 23). 자살하는 순간 후회하지만 자살을 시도했는데 살아난 사람들은 이후 신체적인 고통을 겪더라도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격스러워하며 살아간다고 해요.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이 더 이상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해요. 2013년 EBS 「다큐프라임」 '33분마다 떠나는 사람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에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교(금문교)에서 투신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2퍼센트의 사람들을 다뤘어요. 미국 플로리다대학의 토머스 조이너 교수가 그 사람들과 면담한 결과, 투신해서 수면에 떨어지기까지 4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했다고 해요. "뛰어내린 순간 나는 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 만 빼고"(p. 38). "뛰어내리고 처음 떠오른 생각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였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떨어진 곳이 강이였으니 그나마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고, 고층 빌딩이었다면 떨어지는 순간 후회한다고 해도 돌이키기 힘들죠. 경북 영주에 사는 한 중학생의 경우가 바로 그랬어요. 같은 반 학생들의 괴롭힘을 이기지 못해, 아파트 20층 계단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창문틀을 붙잡고 도와달라고 요청했어요. 때마침 20층에 사는 주민이 이 소리를 듣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지만, 이 학생은 팔에 힘이 빠져 결국 추락했다고해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에요. 이처럼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는 살고 싶은 의지가 강하게 있는 것 같아요. 다음에 소개하는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우울증을 앓고 있던 한 여성이 오피스텔에서 자살하려고 목을 맸는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어요. 잠긴 문을 따고 들어가보니 이 여성은 이미 사망한 것처럼 보였어요. 호흡도 없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해 있었죠. 그런데 출동한 경찰관 중 한 명이 혹시 모르니 응급조치를 해보자며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얼마 뒤 이 여성은 "컥!? 하는 소리와 함께 숨을 쉬며 살아났어요. 그리(p. 39)고 살아나서 한 말이, 경찰이 들어왔을 때 자신은 여전히 의식이 있었는데 다른 경찰관이 "시신에 손대지 말고 현장을 보존하자"고 했을 때 속상했다는 거였어요(p. 40). 죽는 것 외에는 거기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상황에 있다면, 가족이나 상담사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찾으세요. 익숙한 곳을 벗어나는 걸 겁내지 마세요. 죽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지금 그곳보다 더 나쁜 곳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려요. 70년을 살아보니 정말 그렇더라구요(p. 42). 케네스 링과 친절 바이러스 근사체험 연구에서 케네스 링 교수를 빼놓을 수 없죠. 미국 코네티컷대학 심리학과 교수로서 30년 넘게 학생들에게 근사체험에 대해 가르쳤어요.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직접 체험하지 않았는데도 근사 체험자에게 일어나는 삶의 변화를 마찬가지로 겪었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한 거예요. 케네스 링 교수는 근사체험을 '친절 바이러스Benign Virus'라고 불러요. 왜냐하면, 이를 알게 된 사람은 근사체험을 직접 하지 않았어도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체험자와 비슷한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에요. 그런 변화를 저나 주변 사람들한테서도 발견해요. 한 중견기업의 대표는 평소 까칠한 편이었다는데, 죽음학 강의를 들으며 펑펑 울고 난 뒤로는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자상해졌다고 했어요(p.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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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9】 만화가 주는 즐거움과 편안함
“<을지로 순환선>의 만화가 최호철과 만화평론가 박인하가 함께한 여행기『펜 끝 기행』. 같은 학교 교수로 만나 떠난 제주도 교직원 연수에서 결성된 두 만화쟁이 '펜 끝 듀오'의 여행은 이후 일본, 이탈리아, 스위스, 중국을 거쳐 다시 우리 땅 울릉도와 독도에서 마무리된다. 화가였다가 만화를 선택한 최호철과 글쟁이였다가 만화를 선택한 박인하. 만화에 붙들린 두 사람은 세계를 바라볼 때 만화적으로 본다. 최호철은 여행지마다 그림을 그렸고, 박인하는 최호철의 크로키 북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이 책은 그들이 그렇게 함께한 여행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만화를 좋아했다. 초등학교때부터 대학때까지 만화를 봤다. 지금은 잘 안 보지만 그래도 만화가 좋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이런 책들을 찾아 읽을려고 한다. 일본다운, 너무나 일본다운 규슈 한 일 두 나라는 모두 벚꽃을 좋아하고, 벚꽃 구경 하기를 즐긴다. 그래서 봄이면 어김없이 벚꽃 축제가 벌어지는데, 가만 보면 두 나라 사람들은 각각 다른 벚꽃을 즐긴다. 우리나라에서 즐기는 벚꽃은 봉오리가 오르기 시작해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상태이다. 그래서 벚꽃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일기 예보에 민감하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와 꽃잎이 떨어지면 꽝이 되어버리기 때문. 반면, 일본 사람들은 화려하게 만개한 뒤 흩날리는 벚꽃을 즐긴다. 만개한 벚꽃이 바람에 떨어지는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이웃. 결국 이런 미세한 차이가 모여 문화의 차이가 되고, 문화의 차이는 풍경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일본 미학'이라는 말이 있다. 다양한 논의가 있고, 학자마다 여러 설명을 더하지만 이방인인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일본의 모습 자체가 그대로 일본 미학이다. 가을이 서서히 겨울로 넘어가던 날, 두 만화쟁이는 학생들과 함께 후쿠오카를 찾았다. 후쿠오카를 여행지로 결정한 것은 순전히 우리나라에서 가까웠기 때문. 특별히 우리를 끌어당기는 매력이나 꼭 가야 할 곳을 생 각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기대 없이 찾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활화산 아소 산. 그 웅장한 모습은 대단했다. 아소 산은 해발 1000미터가 넘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를 통틀어 부르는 이름으로 정식 명칭은 아소고다케인데, 다섯 개의 분화구마다 사실 다른 이름, 다카다케(1592미터), 나카다케(1506미터), 에보시 다케(1337미터), 기지마다케(1326미터), 네코다케(1433미터)로 부른다. 버스로 전망대 인근까지 올라가 케이블카를 타면 쉴 새 없이 하얀 연기를 내뿜는 분화구를 볼 수 있다. 은근하게 풍겨나는 유황 냄새, 곳곳에 자리 잡은 대피소, 은근히 겁을 주는 가이드의 말이 어우러지(p. 243)면 현재 진행형 활화산의 다이내믹함을 느낄 수 있다. 멀리 피어오르는 활화산의 기운을 바라보니,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무라이, 흩날리는 벚꽃처럼 배를 가르는 영화의 장면이 떠올랐다. 아소 산을 뒤로하고 찾은 곳은 구마모토 성. 구마모토 성은 약 400년 전, 전국 시대의 무장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를 통치하기 위해 축성한 성이다. 가토 기요마사라고 하면 낯설지만, 한자음 그대로 '가등청정'이라고 읽으면 익숙하다. 바로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했다가 깨진 바로 그 장군. 적의 공격에 대비한 120개의 우물과 조선 성의 장점을 차용한 축조술이 인상적이었지만, 그보다는 거대함 속에 정교하게 쌓아 올린 구마모토 성의 모습 그 자체가 일본, 사무라이를 느낄 수 있는 너무나 일본적인 풍경이었다. 그러나 사실 가장 일본적인 풍경은 활활 불타오르는 아소 산과 전국 시대 의 칼바람이 담겨 있는 구마모토 성이 아니라 그 살벌함과 함께 일상을 살았을 일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지금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소 산 자락 아래에서 평화롭게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바로 그들의 모습이 가장 일본다운, 너무나 일본다운 모습이었다(p. 244). 이 책을 쓰고 그리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자면(p. 276) 최호철 선생과 나는 같은 직장(청강문화산업대학)에 다닌다. 둘 다 만화창작과 선생이다. 사람들을 만나 "학교에서 만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꽤나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마치 황제펭귄처럼. 낯설지는 않으나 내 주변에서 마주칠 때 경험하는 신기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어쨌든 우리는 5월마다 찾아오는 불량 만화 화형식의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지 않은 만화인들이다. 최호철 선생은 화가였다가 만화를 붙들었고, 나는 글쟁이였다가 만화를 붙들었다. 더 정확히 우리 둘은 모두 만화에 붙들린 사람들이다. 만화에 붙들린 사람들은 세계를 바라볼 때 만화적으로 본다. 일단 빈 종이가 있으면 무조건 그리고, 조금이라도 분위기가 추락하면 농담을 날리고 싶다. 전자가 최호철 선생. 후자가 나다. 하지만 둘 다 천성이 숫기가 많은 사람들은 아니다. 은근 부끄럼쟁이들. 그래서 낯선 이들하고 떠들고 노는 것보다, 친한 이들과 수다 떠는 것이 좋다. 그래서인지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선생들은 보통 직장인들과 달리 사우나 아줌마 분위기를 풍긴다. 그 때문에 여행에 대한 기억이 꽤 많다. 최호철 선생은 여행지마다 그림을 그렸고, 난 최호철 선생의 화집을 뒤적이며 농담을 던진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월간 무가지 〈백도씨〉를 기획할 때였다. "우리 여행 간 거 내가 글 쓰고, 선생님이 그림 그려보세요." "만화? 나 마감 잘 못하는 거 알잖아?" 일단, 방어막을 친다. 역시, 공력이 대단하다. "그냥 한 쪽짜리 그림을 그리자고요. 한 쪽짜리 만화, 그게 최호철 스타일이 잖아!" 나도 다시 공격한다. 왠지 느낌이 낚은 것 같다(p. 277).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담는 게 최호철 스타일 아닌가?" 낚았다. 파닥파닥! 그렇게 해서 〈백도씨〉에 '두 만화쟁이의 여행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내가 낚은 죄로 글을 썼고, 최호철 선생의 애간장 다 태우는 마감에 동참했다. 몇 번 빼먹은 적도 있지만, 한 스무 번쯤 마감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우리가 한때 사슴굴이라고 불렀던 최호철 선생의 개성 넘치는 연구실 소파에 앉아 뒹굴면서 이야기를 하다 한번 책으로 묶어보자는 생각이 번득였다. 최호철 선생은 낙서라고 하지만, 그냥 묵히기 아까운 그림이 많은 그의 크로키 북이 생각났다. "〈백도씨〉에 연재한 만화하고, 그와 연관된 크로키를 모아서 책으로 묶어봅 시다." "재미있을까?" "재미없으면 사람들이 만날 선생님 크로키 북 달라고 해서 보겠어요." "너무 성의 없게 그렸잖아." "성의 있게 그리면 마감 못하잖아요." "..." "또 그냥 그 시간에, 여행지에서 그린 그림이 난 좋던데." "그럽시다." 그렇게 시작된 작업이다. 그림을 모으고, 글을 고쳐 썼다. 최대한 여행지의 느낌을 사람들이 느껴주길 원했다. 여행에는 휴식과 수다가 공존한다. 혼자 가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난 함께 수다 떨 수 있는 사람과 가는 여행이 좋다. 서로 말도 안 되는 지식을 공유하고, 느낌을 나누는 여(p. 278)행이 좋다. 이 만화는 그런 여행의 기록이다. 글과 함께 그림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최호철의 그림은 읽히는 그림이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크로키 북에 그린 사람이 아주 구체적인 당신의 모습이기도 하고, 당신이 바라본 그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림을 읽으며 우리의 여행에 동행하면 어떨까? 같이 수다 떨고, 맛있는 것도 먹고, 바보 같은 개그도 하면서 말이다. 남자들이라면 더더욱, 수다가 주는 세계 평화를 함께 누려보자(p.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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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8】 짐승보다 못한 인간의 잔혹함
〈무시무시한 처형대 세계사〉는 야욕과 애증, 배반과 음모로 뒤엉킨 잔혹한 처형의 역사를 들려주는 책이다.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를 통해 그림 동화 신드롬을 일으킨 작가 기류 미사오가 이번에는 무시무시한 역사 속 처형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근대 유럽까지 '인간'이라는 존재에 의해 자행된 처참하고 잔혹한 처형의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하였다. 이 책은 역사 속 처형장을 통해 인간 내면세계에 깃들어 있는 광기의 역사를 살펴본다. 저자는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물음을 던지면서, 다양한 이유 때문에 엄청난 피를 흘려 왔던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있다. 그리고 황제들을 비롯한 수많은 권력자들과 신의 이름을 내건 종교인들이 역사 속에서 저지른 처형의 만행과 광기의 현장을 낱낱이 고발한다-교보문고. 흥미롭게 읽었는데 품절됐다. 이 저자의 책들이 재미있어 열심히 읽고 있는데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도 대출했다. 이처럼 맹수를 이용한 처형 방법은 그리스도교가 보급되기 훨씬 전에 시작되어 5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죄수의 팔다리를 묶어 자유를 구속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죄수의 몸을 묶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간단한 무기도 사용하게 함으로써 관중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안겨 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목숨을 잃기 전에 맹수를 한두 마리쯤 해치우는 강한 죄수도 나타났다. 어쨌든 죄수와 맹수의 싸움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으로 관중들에게 꽤 인기를 끌었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서 죄수의 처형은 일종의 연극으로 연출되었다. 예를 들면, 죄수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로 분장시켜 쇠사슬로 바위에 묶은 다음 대머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게 한다거나, 헤라클레스로 분장한 죄수가 곤봉을 들고 나와 황소와 싸우다가 클라이맥스에서 황소가 죄수를 허공으로 던져 버리는 식이었다. 그리고 여자 죄수가 생겨나면서 연극 마지막 부분에 음탕함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곰이나 당나귀의 습격을 받는다는 설정도 선보였다고 한다(p. 23). 콜로세움에서 펼쳐진 다양한 잔혹극 역대 황제들의 입장에서 볼 때, 검투사 경기는 범죄자나 반역자의 잔혹한 죽음을 선보이는 것으로써 황제의 권력을 뒤흔들려 하는 자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민들에게 확실히 보여 주는 기회이기도 했다. 로마 콜로세움 안에는 지금도 십자가가 서 있다. 일찍이 이곳에서 수많은 잔혹한 방법으로 목숨을 잃은 그리스도교도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타르에 적신 셔츠를 입은 채 콜로세움으로 끌려가 화형에 처해졌다. 또는, 팔다리가 묶인 채 커다란 솥 안에서 끓는 기름에 튀겨지거나 끓는 물에 삶아지기도 했다. 성 로렌스(Sento Rorense)는 석쇠 위에서 불에 구워졌고, 성 포류카르프는 화형대 기둥에 묶인 채 불에 타 죽었다. 성 폰시아노(Sento Pontianus)는 쓰러질 때까지 벌겋게 달구어진 석쇠 위를 걸어야 했고, 성 아르테 미오(Artemius)는 맷돌에 몸이 으깨져 죽었다. 손발이 잘려 나가거나 내 장이 몸 밖으로 드러난 채 매달린 자들도 있었다. 또, 살가죽이 벗겨진 채 유리 조각 위에서 끌려 다닌 자도 있었다. 콜로세움에서 남녀 수십 명이 한꺼번에 기둥에 묶여 처형된 적도 있는데, 그 광경이 마치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숲처럼 보였다고도 한다. 관중들은 그 중에서 누가 가장 먼저 숨이 끊어질지를 놓고 내기를 하기도 했다(p. 24). 당연히, 역대 황제들도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잔혹한 피의 향연을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으로 여겼다. 예를 들어 카이사르(Caesar)는 기원 전 65년 안찰관이었을 때 검투사들을 320쌍이나 동원해 성대한 검투사 경기를 개최했으며, 아우구스투스(Augusus) 황제도 검투사를 1 만 명 정도 동원해 검투사 경기를 여덟 차례, 맹수 3,500마리를 이용해 맹수 사냥을 스물여섯 차례나 개최했다. 클라우디우스 1세(Claudius I) 황제 시대에는 한 경기장에서 검투사 500쌍이 동시에 겨루는 일도 흔했다. 잔혹한 취미가 있었던 클라우디우스 1세는 목이 잘린 검투사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일부러 죽은 자의 투구를 벗기게 했다고 한다. 칼리굴라 황제 시대의 검투사 경기는 잔혹한 취미를 끝없이 만족시키기 위한 절호의 수단이었다. 맹수 사냥에서는 범죄자를 짐승의 먹이로 던져 주었고, 검투사 경기에 출전해야 한다는 선고를 받은 죄수가 필사적으로 자비를 호소하면 그 혀를 잡아 빼라고 명령한 다음에 온몸의 상처가 곪아 악취를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채찍으로 때리게 했다. 그리스도교도 박해로 유명한 폭군 네로도 30일에 걸쳐 잇따라 경기를 열었다. 그는 맹수를 풀어놓아 어린이를 포함한 5,000명을 물어 죽이게 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한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황제는 로마 제국 안에 존재하는 난쟁이들을 모조리 모아 검투사 집단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미녀들로 이루어진 검투사 집단도 만들게 해서 경기장에서 난쟁이와 미녀를 싸우게 한 뒤 그것을 최고의 유흥으로 삼았다고 한다. 코모두스(p. 25)(Comedits) 황제에 이르러서는 아예 정치를 총애하는 신하에게 맡겨 버리고 검투사 경기에만 열중, 자기 자신도 검투사로 자주 경기에 출전했다. 그런 그가 음모를 품은 검투사 한 명에게 침실에서 암살당한 것은 운명의 장난이었을까?(p. 26). 사실은 이랬다. 불길이 번지는 상황에서 수상쩍은 남자 몇 명이 술에 취한 척 비틀거리면서 '어떤 자는 이쪽, 어떤 자는 저쪽' 하는 식으로 햇불을 이용해 불을 붙이는 모습이 목격되었던 것이다. 로마 시대의 전기 작가인 수에토니우스(Gaius Suetonius Tranquillus)에 따르면, 이 수상쩍은 무리가 네로의 노예들이었기 때문에 집정관도 제지할 수 없었다고 한다. 폭력의 피해자 어쨌든, '네로가 방화를 명령했다'라는 소문이 흘러나오면서 민중들 사이에서는 당장에라도 폭동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자 네로는 소문을 불식시키려고 방화범을 만들어 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제물이 된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도들이었다. 당시 그리스도교도들은 이단시되어 마법을 부리고 유아를 살해하고 인육을 먹는다는 식으로 중상모략을 당하고 있었다. 아무리 엄격한 금지 정책을 펴도 계속 증가하는 그리스도교도 때문에 고민하고 있던 터라 네로는 이번 화재를 구실로 그들을 철저하게 탄압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먼저 신앙을 고백한 자들이 심문을 당했고, 이어서 그들의 고백을 토(p. 67)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방화죄 혐의를 받았다. 순교자들 중에는 사도 바울로와 12사도인 베드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놀림감이 되었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당했다. 어떤 이는 짐승의 가죽을 덮어쓴 채 개 떼에게 내던져져 물려 죽었고, 어떤 이는 원형 경기장에 맹수의 먹이로 던져지기도 했다. 또 어떤 이는 온몸에 타르가 발라진 상태에서 기둥에 묶여 날이 어두워진 뒤 등불 대신 불을 밝히게끔 했다. 네로는 처형 장면을 구경하라며 바티카누스 (vaticanus) 왕실 정원을 제공해 전차 경기까지 개최하면서 흥을 돋우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이단자들을 처형한다는 명분도 네로의 인기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특히 귀족들이 불만을 품은 것은 노예에서 해방된 자들이 점차 제국의 요직을 독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었다. 화재 뒤처리 등으로 인해 그 해의 국고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되었고 그 결과 재산 몰수라는 극단적 상황에 의지할 수밖 에 없었다. 때문에 다시 막을 연 반역죄 재판의 판결은 모두 유형이나 사형이었다(p. 68). 14~17세기 유럽에서는 마녀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체포해 가혹한 고문을 한 뒤 화형에 처했다. 이러한 마녀 재판의 폭풍은 약 300년 동안 이어지면서 유럽 전역에서 맹위를 떨쳤다. 그 기간 동안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수십만에 이른다는 설도 있고, 수백만이라는 설도 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마녀로 지목되어 화형을 당한 희생자에 대한 기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프랑스 로렌(Lorraine)에서 1576~1606년 동안 2000~3000명. 보르도에서 1577년에만 400명. • 독일 트리에르(Trier)에서 1587~1593년 동안 368명. 뷔르츠부르(p. 121)크에서 1623~1631년 사이에 900명. 밤베르크에서 1623~1633 년 사이에 600명. 이것만 보아도 마녀 재판의 희생자가 엄청난 숫자라는 사실을 짐작 할 수 있다. 유럽 전체에서는 15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약 30만 명(900만 명이라는 설도 있다)이 화형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p. 122). 마녀를 불태우는 검은 연기가 유럽 하늘을 끊임없이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야기다. 당시, 불안감을 해소하는 돌파구로 선택된 것이 '마녀'였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불행과 해악을 마녀 탓으로 돌려 잔혹하게 처형했다. 마녀 사냥이 무서운 것은 증거 없이 소문과 풍문만으로도 마녀로 몰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마녀 재판이 성행했던 원인으로는 첫째, 당시의 사회 불안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유럽인들은 예전에는 겪지 못했던 혹독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유럽 인구의 30퍼센트 정도를 앗아간 페스트의 유행, 극단적인 인플레이션, 종교 개혁 운동 등, 격동의 상황에서 민중들의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었다. 답답하기만 한 그런 현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창구로 선택된 것이 바로 '마녀'였다. 마녀는 마력을 써서 날씨를 나쁘게 만들고, 밭농사의 수학물을 줄이고, 태아를 유산시키고, 남자를 성불구로 만들고, 갓난아기를 잡아먹고, 악마에게 살아 있는 제물을 바친다..... 이런 식으로 세상의 모든 불행과 해악을 마녀 탓으로 돌렸다. 유럽에 휘몰아친 종교 개혁 운동에 대해 로마 교황은 수도회를 결성해 이단 탄압에 나섰다. 마녀 재판의 전신은 13세기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가 탄생시켰다. 이른바 '이단 심문' 제도다. 이단 심문관은 교황의 보호 아래 사교나 관헌을 능가하는 권한을 가지고 오로지 그리스도교 국가 전역에서 이단을 박멸하는 사명을 맡았다(p. 123). 그리고 잔혹하기로 유명했던 요한 22세가 내린 1318년 2월 27일 교서에서 '마녀'의 비참한 운명이 결정되었다. 프랑스 고위 성직자 앞으로 보낸 이 교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마녀 재판을 시작하고 지속하여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완전한 권한을 부여한다.' 이 마녀 재판 해금 명령에 박차를 가하듯, 교황 요한 22세는 1323년, 1326년, 1327년, 1330년, 1331년에 계속 마녀 재판 강화 명령을 발표 했다. 이 강화 명령에 따라 이단 심문관의 마녀 사냥이 급격하게 기세를 떨치기 시작했다(p. 124). 마녀 재판 그 자체도, 심문, 자백의 공술(고문을 통한 자백도 포함해서), 단죄 선고, 그리고 처형(대부분이 화형)이라는 식으로 공식화되어 있었다. 중요한 것은 피고를 한시라도 빨리 죽여 그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었다. 마녀에게서 몰수한 재산은 모두 교회 소유가 되었고, 마녀 재판에 들어가는 비용 전부를 여기에서 조달했다. 간수의 식대, 처형 담당자의 술값, 교살을 할 때 들어가는 밧줄 대금, 화형을 할 때 쓰는 장작과 기름값 등, 모든 비용을 여기에서 인출해 썼던 것이다(p. 165). 기요틴에 광란하는 사람들 로베스피에르를 처형하는 것으로 공포 정치가 막을 내리자, 국내의 무거운 공기는 사라지고 단번에 향락적인 분위기가 퍼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장소에 모여 오직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피비린내 나는 과거를 잊고 희망 없는 미래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 거리 도처에서 무도회가 열렸는데, 특히 인기를 모았던 것은 회원이 한정되어 있는 '희생자들의 무도회'였다. 가까운 친척이 기요틴에 처형을 당한 사람들만 이 모임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 무도회에 참가하려고 일부러 큰돈을 주고 근친자가 기요틴에 처형되었다는 증명서를 위조하는 사람들도 속출했다고 한다. 모임에서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고 훤히 드러난 목 주위에 칼자국을 모방한 빨간 리본을 묶었다. 남자들도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마찬가지로 빨간 리본을 목에 둘렀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들 입장에서 보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현실을 받아들여 슬픔을 이겨내고 살아가려면 이런 식으로 불행을 패러디하는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p. 298). 마지막 공개 처형 프랑스에서 기요틴을 이용한 처형은 오랜 세월 동안 일반에게 공개 되었다. 그때마다 형장에는 프랑스 각지의 수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입장에서 볼 때 처형은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다. 1889년의 파리 만국 박람회 때에는 기요틴에 처형을 당한 사람이, 당시에 신축된 에펠탑보다 더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피와 잔혹함에 대한 인간의 열광은 그 뿌리가 무척 강한 듯싶다.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기요틴 공개 처형은 1939년 와이트만이라는 살 인범의 처형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축제 소동이 벌어지자 정부는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다고 한다. 처형 전날 밤, 형장이 될 베르사유 감옥 앞 광장에는 엄청난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기요틴 처형을 한 번이라도 직접 구경하려고 나무와 가로등에 매달린 사람들, 건물 창문에 바짝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사람... 사람들은 마치 축제라도 즐기는 듯한 기분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면서 소란스럽게 전야제를 보냈다. 가끔씩 말 잘하는 사람이 농담을 던지면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 소리가 감방 안에 있는 사형수의 귀에도 들렸다니 정말 잔혹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자 정부도 더 이상은 간과할 수 없어 그 뒤로는 기요틴 공개 처형을 금지했다. 이후의 처형은 각각의 감옥이 위치한 안마당에서 이루어(p. 300)졌으며, 처형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관료 아홉 명뿐이었다. 잔혹함의 상징인 기요틴 처형대는 감옥의 담장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두 번 다시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다(p.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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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3】 전 법관의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 나의 일상을 풍요롭게 채우는 건 어떤 의미인가, 다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사람과 사회는 바뀔 수 있는가. 자작나무에서 지리산으로, 도스토옙스키에서 몽테스키외로, 일상에서 재판까지. 호의는 사람을,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받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주라던 김장하 선생과의 추억, 법을 몰라 손해 보는 이들을 헤아리는 마음, ‘자살’을 시도했던 재소자가 ‘살자’는 다짐을 하게 만든 선물,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속절없이 흘리는 눈물, 그리고 건강한 법원과 사회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교보문고 계엄을 도모했던 윤석열을 단죄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쓴 책으로 가볍게 읽을만하다. 착한 사람을 위한 법 2001. 4. 22. 법 없이 살 사람 착한 사람을 일컬어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들 한다. 법의 강제 없이도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사람이란 뜻이리라. 과연 착한 사람에게 법은 필요 없는 것일까?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 나는 법이 어떠하다고 정의할 만큼 경력도 풍부하지도 않고 타고난 재주도 없지만, 1983년 법학을 전공한 이래 지금까지 18년을 법과 함께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그런 점에서 나는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착한 사람일수록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p. 19). 종종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가곤 하는데, 거기서 늘 하는 말이 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나에게 힘써달라고 전화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 나에게 법을 물어보라." 도대체, 전 재산과 다름없는 300만 원을 전세금으로 걸면서 그 집이 경매 중인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계약하는 사람을 누가 구제해줄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은 대개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야, 집주인을 사기죄로 고소했으니 수사 기관에 힘 좀 써서 집주인을 즉시 구속시켜 달라고 법조인에게 전화를 한다. 법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보장적 기능이다.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고 거기에 저촉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측면이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이 빛을 발한다. 다른 하나는 보호적 기능이다. 그러나 법의 이러한 보호적 기능도 경매 절차에서 배당 요구를 하는 임차인이나 노동자에게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유의하여야 한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은 초라하기만 하다. 착한 사람부터 법을 알자 판사로서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착한 사람은 법을 모르(p. 20)고, 법을 아는 사람은 착하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 사건일수록 해결이 어렵고, 착한 사람을 보호하고자 궁리를 해보나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착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고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법을 아는 사람에게 착하기를 요구할 것 인가? 불가능은 아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남는 방법은 착한 사람이 법을 아는 것이다. 그 길만이 법이 나쁜 사람을 지켜주는 도구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지름길이다(p. 21). 형사 재판 잘 받는 방법들 중 2006. 12. 19. 진술 거부권 행사 자기에게 불이익한 사실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 및 형사 소송법에서 보장된 피고인 및 피의자의 권리입니다. 따라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불이익한 사항에 대하여 질문을 받을 때 진술을 거부하면 되겠습니다. 괘씸죄가 걱정된다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되겠습니다. 이것이 모순되거나 불합리한 답변을 하는 것보다 유리합니다. 답변 방식 법정에서 판사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할 때는 결론을(p. 45) 먼저 말하고 이유를 나중에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판사는 질문을 통하여 사건의 윤곽을 파악 하려고 하므로, 판사에게 결론을 먼저 말함으로써 판사가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인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판사는 여러 각도에서 사건을 살피기 위하여 다양한 질문을 하는 것이므로, 설령 질문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 일지라도, 판사가 상대방의 편을 든다고 섣불리 생각하지 말고 정중하게 답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판사는 피고인의 진심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p. 46). 민사 재판 잘 받는 법 2007. 5. 17. 오늘 재판을 하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민사 재판 잘 받는 방법을 적어보았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소송을 하려면 어려운 일이 많으므로 형편이 허락한다면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였다고 해서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맡길 것이 아니라 수시로 소송 진행 정도를 확인하고 대응 방안을 함께 의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p. 61). 준비 서면을 간단명료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할 경우 법무사의 도움을 받거나 본인이 직접 준비 서면을 작성해야 할 터인데, 이때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준비 서면이라는 것은 당사자의 주장에 불과하므로 아무리 유리한 내용을 적어놓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인정받기가 어려운 반면, 불리한 내용은 별도의 증거가 없더라도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따라서 준비 서면은 간단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증거가 뒷받침되는 내용일 경우 명료하게 주장을 펼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준비 서면에 상대방을 비난하는 내용을 적을 경우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해롭다는 것입니다. 재판이라는 것이 당사자의 도덕성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고, 뚜렷한 증거 없이 상대 방을 비난할 때 판사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준비 서면에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하여 적어내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재판부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노고를 덜어주는 것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p. 62). 소송의 승패는 증거에 달려 있습니다 민사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흥분할 필요 없이 차분하게 증거를 수집하여 제출하는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증거로는 애초 사건이 있었을 때 작성된 서류, 특히 상대방이 서명 또는 날인한 서류가 가장 효력이 강하고, 그 다음으로 제3자가 작성한 서류가 효력이 강합니다. 증인의 증언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법정에서는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도 법정에서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실정이므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는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에 그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정 또는 화해를 권유받았을 때는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재판을 하다 보면 어느 당사자의 주장이, 설득력은 있으나 증거로 뒷받침 되지 않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법적 관점으로만 해결할 경우 어느 당사자에게 더 가혹하기도(p. 63)합니다. 이길 승산이 있어 보이나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법원은 당사자에게 조정 또는 화해를 권고하는 데,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조정 또는 화해 절차에서는 집행에 관한 내용을 반영할 수도 있으므로 이러한 점에서도 조정 또는 화해의 효용은 높습니다. 증인 신문을 할 때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정에 출석한 증인을 상대로 질문을 할 경우 "거짓말쟁이다" "양심도 없느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차분하게 증언의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상대방이 질문하는 내용을 (미리 받을 수 있습니다) 검토하여 허점을 정리했다가 법정에서 질문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람 턱없이 부족한 내용일 것입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소송을 잘해서 이길 사람이 이기는 재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p. 64). 문제가 터지고 나서 소송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은 문제가 터지기 전 검토를 충분히 하는 것입니다. 몇 천 만 원이 오고가는 계약을 체결할 때 변호사나 법을 잘 아는 사람에게 비용을 들여서라도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길게 볼 때 비용이 더 적게 듭니다(p. 65). 책을 읽는 이유 세 가지 2010. 2. 16. 책을 많이 읽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고전을 읽은 적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 보니 문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투리는 말을 안 하는 것으로 감출 수 있었지만 무지는 감출 방법이 없었다. '장 발장'이 《레미제라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읽었다(p. 108). 무경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판사가 되고 보니 사건을 이해하기엔 내 경험이 너무 좁고 얕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도대체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거액의 거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잡히면 처벌받을 게 뻔한 일을 왜 되풀이하는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경험을 늘리려고 해보니 이 또한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장 법관 윤리가 문제였다. 그래서 생각해본 것이 두 가지다. 지금은 언론사 사장이 된 어떤 분이 사법연수생이었던 나에게, 법조인이 되면 초등학교 동창생과 꾸준히 만나라고 당부했던 기억이 떠올라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1년에 몇 회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때로는 부부 동반으로) 만났으니 어느 정도는 실천한 셈이다. 두 번째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장르를 구분하지 말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어보자 하였던 결심이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다. 무소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었다. 남녀 공학 중학교 시절 소풍(p. 109)을 가서 선생님의 권유에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를 까먹어 끝을 맺지 못할 정도로. 그때 불렀던 노래가 남진의 〈님과 함께〉였다. 고등학교 때는 교복이 중고라서 반장을 하지 못했다. 대학교 가서는 사투리 때문에 남 앞에 나서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무슨 결정을 하려면 무척 어려웠다. 결정을 하고 나면 곧 후회를 하게 되고. 어느 날, 내성적인 이유가 소신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군대에서 정훈장교를 하게 되었고 정훈장교 하는 일이 장병 교육이다 보니 남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해소된 뒤라서 그런 결론을 더욱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앞서간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서로 맞추어보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 단단해져 소신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포함해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사족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이 누구와 만나고 무슨 책을 읽는지 말해달라."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p. 110). 혼돈의 시기에 그나마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친구와 책 덕분이라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 감회가 남다르다. 모든 분들에게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p. 111). 책을 고르는 기준 2010.6.26. 책을 어떻게 고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저자를 보고 고른다 어떤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면 그 저자가 쓴 책은 눈에 띄는 대로 사서 읽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면 고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 단 한 번》을 읽고 《축복》 《살아온 기적 살아 갈 기적》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는 식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저자는 다음과 같다. 신영복 교수, 정 민 교수, 유시민 전 장관, 소설가 김 훈, 오지 탐험가 한비야,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열하일기》 전문가 고미숙 박사(p. 124). 주제어를 보고 고른다 제목이나 문장을 검색하여 관심 있는 주제어가 들어간 책을 고른다. 요즘 즐겨 찾는 주제어는 다음과 같다. 정의, 소통, 성찰, 역사, 철학, 인생, 여행, 행복. 이런 기준으로 고른 책은 다음과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 《서양철학사》 《인도 여행》 《행복의 정복》 《무지개 원리》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등. 책 선택에 실패한 적은? 이런 기준으로 책을 골라 읽으면서 후회할 때가 제법 있다. 그러나 산 책은 다 읽는다. 재미가 없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책에 대하여는 독후감을 쓰지 않음으로써 복수를 한다. 블로그에 올린 책은 이중으로 검증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 지금껏 읽은 책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천 권 정도 될 것 같다. 책을 고르는 장소는?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여 고르는 경우가 많고 가끔 서점에 가서 고른다. 베스트셀러 항목과 새로 나온 책 항목을 많이 참조한다(p. 125). 블로그에 독후감을 쓰는 이유는? 독후감을 쓰다 보면 책 내용을 정리하는 효과가 있고, 글쓰기 훈련이 되며, 블로그에 저장해놓으면 다른 글을 쓸 때 인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은 있어도 나쁜 책은 없다. 어떤 책에서도 스승 또는 반면교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께 독서를 권한다. 책이 여러분을 끌어올려줄 것이다(p. 126). 왕후박나무 2011.4.1 남해군법원 다녀오는 길에 경남 남해군 창선면 왕후박 나무를 만났습니다. 500년 이상 되었다고 합니다. 둘레에는 동백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합니다. 주로 방풍용으로 많이 심는다고 합니다. 남해군 창선면에 있는 왕후박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9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왕후박나무는 높이 솟구치지 않고 옆으로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도 500년을 버틴 게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자신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p. 140). 조영남의 노래가 있죠. 〈겸손은 힘들어〉. 그렇죠. 겸손은 힘듭니다. 공자 이래 2천 년 동안 성현들은 겸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겸손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습니다(p. 141). 조정에 임하는 자세 2013.4.28. 조정이란 조정은 법률 분쟁이 생겼을 때 판사의 판결이 아니라 당사자 간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를 말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법원에 접수된 사건 중 판결까지 가는 사건은 10퍼센트가 되지 않고 대개는 조정을 포함한 여러 가지 간이한 방법을 통하여 사건을 처리한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조정은 이길 사람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길 사람이라는 건 미리 정해진 것은 아니고 재판 절차를 통하여 증거를 대고 법리를 세워야 하고 그것으로 판사를 설득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대법원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다(p. 188). 그리고 1천만 원을 받기 위하여 소송 비용으로 500만 원을 들여야 한다면, 700만 원을 받고 소송 비용을 100만 원 선에서 지출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사건에 관하여 가장 절실한 이해관계자는 판사도 아니 고, 변호사도 아니며, 결국 당사자다.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람도 당사자일 수밖에 없으므로, 당사자의 주도권이 가장 잘 보장되는 조정 절차가 불합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정에 임하는 자세 양보해야 한다. 조정은 당사자 간의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고 대체로 당사자는 서로 이해관계가 상반되므로 양보를 해야 조정이 성공한다. 본인이 참석해야 한다.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한 경우라도 조정 절차에는 본인이 참석하는 것이 좋다. 판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상대방의 입장을 직접 들을 수 있으며,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상생하는 방법도 있다. 본인에게 크게 불리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크게 배려하는 방법도 있다. 상대방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쟁점에 관하여 양보하더라도 본인에(p. 189)게 크게 불리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므로,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집행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소송을 하는 종국적 목적은 대체로 승소 판결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돈을 받아내기 위함이다.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더라도 집행 절차에서 돈을 받아내는 비율은 생각보다 낮다. 조정 절차에서는 돈을 받아내는 방법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으므로 유리하다. 원고는 5천만 원을 고수하고 피고는 3천만 원을 고집할 경우 4천만 원 선에서 타협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때로는 5천만 원으로 정하되 3개월 내에 3천만 원을 가져오면 나머지 2천만 원을 포기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싸우는 것은 금물. 간혹 조정실에서 상대방과 말이나 몸으로 싸우는 사람이 있다. 사연이 있겠지만 판사 입장에서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자신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자리를 어렵게 마련했는데 불만을 터트리는 자리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다. 그 사건이 해결 되지 않을 경우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은 판사도 아니요 변호사도 아니요 바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판사의 설명에 귀 기울인다. 법원이 조정 절차를 주도하(p. 190)는 경우 판사로부터 사건 전반에 관한 설명을 듣게 된다. 판사는 내가 불리한 점, 내가 유리한 점을 나누어 설명할 것이다. 잘 들으면 판사가 생각하는 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2심이라면 사건 처리 방향이 대부분 결정되었다고 보면 된다. 민사 사건의 경우 대법원에 상고를 해서 2심 판결이 깨지는 비율이 10퍼센트가 안 된다는 점, 사실 인정은 원칙적으로 2심에서 하게 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2심 재판부의 결론은 존중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내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좋다. 마무리(롯데자이언츠의 마무리는?) 집안에 송사가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적당한 선에서 털고 나오는 것도 마음의 평화를 찾는 좋은 방법이다. '조금 손해 본 것은 다른 일을 해서 보충하면 된다.' 이런 생각으로 조정에 임할 수는 없을까요?(p. 191). 재판 속의 문학 내가 현실에서 맡은 재판은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다(p. 304).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문학이 재판에서 많은 것을 차용하지만 재판은 문학에서 차용하지 않고 순수함을 고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판사는 많은 경험을 해야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제한적인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문학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문학은 보편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고, 재판은 구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며, 양자는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판사들이 다 가난했던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훈의 《흑산》을 읽고 나면 가난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배고픔을 면하자면 오직 먹어야 하는데 많은 끼니 중에서도 지금 당장 먹는 밥만이 배를 채운다는 내용이 그렇다. "아침에 먹은 밥이 저녁의 허기를 달래줄 수 없으며, 오늘 먹는 밥이 내일의 요기가 될 수 없음은 사농공상과 금수축생이 다 마찬가지다." 내가 10년 전 처리한 사건 중 20대 청년이 공무집행 방해죄로 구속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생모라고 밝힌 사람이 탄원서를 보냈다. 오래전에 헤어진 아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자신이 책임지고 선도를 할 테니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p. 305). 재판을 하며 방청객을 둘러보니 유난히 눈에 띄는 분이 있었다. 피고인석 옆에 앉아 대화를 하게 하였더니 피고인을 껴안으면서 "이제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라고 말했다. 피고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생모와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였다. 생모를 만났으니 이제 마음을 잡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집행 유예 판결을 선고했고, 피고인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그 책 한 쪽을 읽어주었다.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다. 내가 10년 전에 처리한 사건 중에 피고인이 자살을 하려고 여관에 불을 질러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불은 크게 번지지는 않았고 다친 사람도 없었다. 선고하는 당일 피고인에게 자살을 열 번 외치게 하였다. "자살자살자살자살.... 이렇게 열 번 하면 본인은 '자살' 이라고 말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살자'로 들립니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실패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살에 실패해서 살았지 않았습니까?" 그러고서 피고인에게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49가지》란 책을 선물했다. 나는 이런 재판을 하게 된 배경 중 8할이 문학 덕분이라고 생각한다(p. 306).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어쩌면 좋은 문학과 좋은 재판은 그 모습이 모두 비슷할지 모른다.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질문할 때, 주제와 이야기가 딱 들어맞을 때 독자들은 감동한다. 판사들이여!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가 영국의 대법관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작가들이여! 긴장하시라. 대한민국의 판사도 또 다른 '유토피아'를 쓸지 누가 알겠는가?(p.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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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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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3】 전 법관의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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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2】 죽음을 늘 준비하며 살자
- KBS 《아침마당》, 《강연100℃》 등에 출연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공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의 에세이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 극심한 암성 통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임종 선언을 했던 저자 김여환.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꼼꼼히 기록한 이 책은, 삶이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을 위해 더없이 소중한 오늘을 ‘있는 힘껏’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교보문고. 이 책은 호스피스 의사가 수많은 죽음을 보고 삶과 죽음에 대해 느낀 것을 쓴 것이다. 많이 유익했는데 현재 절판됐다. 사람의 일생 중 가장 힘든 시기는 보증을 잘못서서 거액의 부도를 냈을 때나 남편이 바람을 펴서 이혼할까 말까 망설일 때가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인생의 반전 같은 일말의 빛조차 기대할 수 없는 시간들, 즉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의 '짧은 삶'이다. 그 시기를 잘 보내야만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온전한 나의 인생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야만 남겨진 사람들의 인생도 편안해질 수 있다(p. 8). 그렇다. 나는 이 세상에 남들보다 조금 먼저 작별 인사를 건넨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토록 자명한 삶의 진리를 힘겹게 깨달았다. 만약 우리에게 내일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면, 오늘 우리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내일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면, 한 번 더 사랑한다 말하고, 한 번 더 안아주어야 하며, 오늘 깃든 행복을 있는 힘을 다해 누려야 한다. 이렇게 수많은 '오늘의 삶'이 모일 때 삶의 아름다운 결과물은 비로소 완성 된다. 그러므로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라는 말에 숨어 있는 참된 의미는 오지도 않은 내일에 대한 불안과 분노, 두려움과 슬픔에 오늘의 행복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더 사랑하고, 오늘 더 행복해야만 한다(p. 10). "2012년 8월 21일 12시 42분, 신복연 할머니는 사망하셨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더 이상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통증 없이 편안히 좋은 곳으로 떠나셨다는 위로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짤막한 사망 선언 뒤에는 언제나 그 마지막 순간을 지키고 있던 가족의 대성통곡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오늘은 조용했다(p. 22). 할머니의 둘째 딸이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우리 엄마가 평소에 유언을 했어요. 내가 떠나면, 울지 말라고. 자식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뒤 돌아보느라 떠나는 것이 힘드니, 울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아...하여간 대단하세요. 입원 내내 웃지 않으신 날이 없었는데, 그런 아름다운 유언까지 하신 줄은 몰랐어요. 제가 들어본 유언 중에 가장 훌륭한 유언인 것 같아요." "과장님, 그렇죠! 우리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이제 꽃 한 송이가 지는구나, 했다니까요." 곱게 아껴두었던 꽃분홍색 한복으로 갈아입고, 흰 양말까지 정갈하게 신은 신복연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살아 있는 그 누구보다도 따뜻해 보였다(p. 23). 짧은 글 한 편을 쓸 때에도 마지막에 무슨 말을 쓸까를 생각하면서 쓰면 글의 흐름이 매끄러워지듯이, 인생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고 살다 보면 들쭉날쭉한 인생이 일관성 있게 변한다. 타인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자기 자신과 먼저 소통해야 한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과 소통하면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p. 25). 자신과 만나려면 가장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임종실은 부끄럽지만 가장 볼품없고 꾸밈없는 자신의 민낯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은 바로 '나의 마지막'이라고(p. 26). "호호호, 난 아직 여기 입원할 단계는 아닌 걸요." "아직은 마약성 진통제를 쓸 만큼 아프지는 않아요." "며칠 전에도 산에 다녀올 만큼 괜찮았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멀쩡하게 걸어 들어오는 말기 암 환자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해 보이는 말기 암 환자들이 한두 달 뒤에는 누런 황달이 오거나 폐렴이 와서 황망히 떠나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남겨진 시간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그 짧은 시간에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칠순 잔치를 하든지, 마지막 콘서트를 하든지, 이혼한 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들을 찾아주는 일들 말이다. 그래도 나도 한 번쯤은 환자를 살려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죽는다고 포기했던 말기 암 환자가 완치되는 일이 우리 병동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환자들은 입원해서 퇴원(p. 45) 할 때까지 평균 27일을 살았다. 호스피스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역시 기적이란 부질없는 비현실적인 희망이라는 것을 확신 하게 됐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슴 저리게 갈구하기도 하고 신에게 떼를 쓰며 의지하기도 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겠지만,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 훤히 보이는 나로서는 그렇게만 하다가 환자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런 애절한 생각을 할 시간이 있으면 조금밖에 남지 않은 삶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오랜 경험을 통해 내린 슬픈 결론이었다. 사람이 좀 민민하고 삭막하게는 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옳았다(p. 46).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다. 푸시시한 구차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낼 때쯤이면 원치 않았던 현재 시간이 살다 남은 찌꺼기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약한 정신 때문이 아니라 몸이 약해지기 때문에 마음까지 통째로 흔들린다. 심지어 어떤 환자는 "잠자듯이 가는 그런 약 있잖아."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말기 암 환자가 안락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p. 56). 비참한 마지막은 말기 암에 걸린 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다 남은 삶이라고 쓰러져버리는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떠날 사람은 남아 있을 이를 위해 조금 남은 삶을 성실히 살아가고, 남아 있을 사람은 떠날 이가 세상에서 사랑받다가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노력하면 서로 덜 힘들다. 처음과 마지막까지, 모두가 촘촘히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p. 58). 세상은 가벼움과 무거움이 서로 경계를 불분명하게 가른 채 섞여 있다.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가볍고,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무겁다. 그렇게 어우러져서 세상은 좀 더 좋게 변한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오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선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고함을 지르고 입원실 바닥에 소변을 보는 한 할아버지 때문에 사흘 밤낮 동안 시달린 환자들이 하소연을 했다. 할아버지를 간병하던 할머니는 "환자가 병원에 자러 왔나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진정제도 못쓰게 하고 1인실로 가지도 않았다. 그런가 하면 뇌종양에 걸린 12살짜리 소녀는 과자를 들고 병실을 누비며 "아저씨, 빨리 나으세요."라고 하면서 환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한 신문 기자가 말기 폐암 환자에게 물었다(p. 67). "인생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해주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후덕하게 생긴 환자는 가지고 있던 옷가지며 살림살이를 싹 정리할 정도로 죽음을 잘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쓸쓸하게 대답했다. "저는....그런 것은 선배가 되고 싶진 않은데요." 그렇다. 죽음이란 일평생을 별 탈 없이 살다가 90살이 되어 마음 독하게 먹고 미리 준비해도 어려운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닥뜨리는 죽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많이 돌본 의사로서 한 가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이 먼저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남은 사람들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나 때문에 끼니를 거를까 봐, 나를 잃은 슬픔으로 행여 병이라도 생길까 봐, 경제적으로 힘들까 봐 등등.... 그들은 사소한 걱정을 몰래 했다. 남은 사람들은 그 마음을 알까? 임종실은 섞일 수 없는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고, 살아남은 이들이 비통함에 눈물을 흘리는 작은 방이다. 그러나 그곳을 거(p. 68)쳐 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존재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사랑하는 이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라고(p. 69). 예전에 나는 보기조차 딱할 만큼 남을 부러워했다. 뚱뚱할 때는 날씬한 사람을, 늦게 시작한 의사 생활이 비참하다고 느껴질 때는 처음부터 순탄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동료를 얄밉도록 부러워했다. 누군가는 잘된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인생의 꿈도 생기고 삶을 개척할 의지도 생긴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 부러움이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계기는 되었을지라도 그 과정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이제 내가 진실로 부러워하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했거나, 예쁘고 날씬하고 건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어떤 삶이 자신에게 다(p. 92)가오더라도 묵묵히 잘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그 자체로 당당하게 살아내는 사람이다. 우리는 저마다 지닌 인생의 향기가 따로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말자. 인생의 마지막에는 행복했던 자신의 과거조차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 시간에는 그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나만의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이 온 것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아쉬운데, 여러 가지 잣대로 부러워하면 병들어 있는 자신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부러워하지 말자, 그대여! 인생이 아파도 마지막까지 이 세상을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내야 한다(p. 93). 불행히도 호스피스에는 죽음을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는 묘약 따위는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들어주면 조금은 가벼워졌고, 끝까지 끈을 놓지 않고 가는(p. 108)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평범한 사실에 평안을 찾아갔다. 대식 씨의 어머니처럼 때로는 버리는 것보다 안고 가는 것이 더 홀가분한 인생도 있다. 그러니까 결국 안고 가는 사람, 버리고 가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p. 109). 잘 죽어가기 위해 우리가 정말 배웠어야 할 것은 죽음의 5단계를 외우거나 혼자서 관 속에 들어가 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p. 112) 아니다. "저는요, 이미 죽음을 다 받아들였어요."라고 말하면서 의젓하게 지내다가 진짜 마지막이 다가오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기보다는 결과물이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신산스럽고, 일상은 상처와 갈등의 연속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얼마만큼 잘 녹여내느냐에 따라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을 마지막 날은 달라진다(p. 113). 어쩌면 인생은 쓰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저절로 쓰이는 소설책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내야 한다. 죽을 만큼 괴로워도 직접 해봐야 삶에 대한 사랑이 깊어진다. 사람들은 인생이 힘들어지면 앞으로 남은 여정이 얼마나 끔찍해질지 더 두려워한다. 남은 인생이 지금보다 더 불편해지더라도 초조해하거나 원통해하지 말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대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살이라는 '고의로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를 생각할 만큼 견딜 수 없이 힘들다면 적극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아무 상관도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조차 알려야 한다. 마음의 피눈물은 말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 애써 고통을 삼키지 말자. 누구라도 도와줄 사(p. 120)람을 찾아다녀라. 자존심 따위 내세울 때가 아니다(p. 121). 치통이 아무리 심해도 한꺼번에 진통제를 다섯 알씩 먹지는 않는다. 통증을 잡으려다 사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타이레놀도 하루에 여섯 알을 초과하면 진통의 효과는 증가하지 않고 간에 부담만 준다. 이렇게 일반 진통제는 일반적으로 정해져 있는 용량을 초과하면 통증에 대한 효과보다는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해지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용량의 한계가 있다. 이것을 약의 천장 효과(ceiling effect)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천장 효과가 없는 약이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많이 쓰이는 마약성 진통제이다. 그것은 일반 진통제와 달리 많이 쓰면 쓸수록 통증이 잘 조절된다. 더군다나 날록손 (naloxone)이라는 해독제까지 있으니 '모르핀'이야말로 신이 세상을 떠날 때만은 아프지 말라고 인간에게 특별히 내려준 '마지막 선물'이다. 사망 원인 1위인 암은 사람이 떠날 무렵에 부쩍 커진다. 암(p. 129)덩어리가 커지면 정상 조직을 파괴하는 묵직한 암성 통증도 당연히 심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일찍부터 진통제를 쓰기 시작하면 통증이 가장 극심한 마지막 순간에는 정작 쓸 수 있는 약이 없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모르핀을 최후의 약으로 넘겨 두었으면 하고 부탁까지 한다. 그러나 통증에 관한 한 모르핀은 쓰면 쓸수록 효과가 있는 약이다. 이러한 마약성 진통제의 비밀을 알려주면 누구나 "진짜 그런 약이 있나요?" 하고 물으며 신기해한다. 환자나 보호자는 어차피 살릴 수 없다면 고통 없이 떠날 수 있다는 확신만으로 가느다란 희망을 갖는다. 모르핀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보다 더 끔찍한 암성 통증에서 해방시켜주는 이로운 약제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좀 더 정확하게 모르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아직도 말기 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모르핀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거부하면서 의미 없는 통증에 시달리다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의 마지막 의사로서 당부한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때가 오면 신이 내린 선물, 모르핀을 거절(p. 130)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통증이 없으면 죽음의 맨 얼굴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고, 고통 없는 죽음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을 것이다(p. 131). 내일 도사리고 있는 재앙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살아감 속에 죽어감의 흔적을 묻히는 것이다. 내일이라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오늘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심코 거칠게 한 말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지도 않을 비겁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너무 많이는 양보하지 말자(p. 163).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가족 간의 갈등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 갈등은 확대된다. 문제의 중심은 늘 '사랑과 돈'이다. 거기에 종교적인 문제가 곁들여지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p. 174). 살다 보면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만 해도 짧은 인생인데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 큰 손해를 볼 것만 같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매 순간 저마다 해야 할 일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훤히 보이고 그때 용기 내어 그 일을 하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것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기도, 또 속절없이 짧기도 하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실수 없이 하려면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하면서 견뎌보는 것쯤은 각오해야 한다(p. 187). 웰다잉(well dying)은 삶의 완성이 아니라 삶의 결과물이다. 누구나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은 더군다나 아니다. 저마다 주어진 힘든 삶을 잘 살아내야만 누릴 수 있는 삶의 마지막 축 복인 것이다(p. 203). 죽음을 깊숙하게 연구하고 싶어서라든지 내 성격이 원래 우울해서 호스피스 의사가 된 건 아니다. 나는 호스피스 일을 해오는 동안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도 죽음에 이르기 직 전까지는 살아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누구도 아프지 않게 하루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거창한 죽음의 여의사가 아니라 그저 생명의 에너지가 다 할 때까지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의사로서 당연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름이 주는 거부감 때문에 국내 암 환자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국내 사용량은 모르핀으로 환산했을 때 환자 1인당 연간 45mg에 불과하다. 미국 693.44mg, 영국 334.52mg은 물론 세계 평균 58.00mg보다도 낮다. 통증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안 쓰는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아프면서 죽어간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죽음이 삶의 종착역인지 따위는 일단 환자의 통증을 덜어준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암 환자의 통증은 당사자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출산의 고통이 10점 만점에 7~8점이라면 암 환자의 통증은 10점 이상도 간다.암성 통증은 암이 진행되는 생명의 마지막에는 더 심해지고, 그(p. 215)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환자와 가족을 더더욱 애타게 한다(p. 216). 인생을 산다는 것은 세상에 놓인 하나의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하지만 그저 다리를 건너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세상의 아름다움은커녕 다리를 뒤흔들 고통과 혼돈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뜨거운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자기 삶의 아웃사이더가 되어보기를. 삶이 끝난 뒤에 죽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죽음이 있음을 알아차리기를,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게 되기를 바란다(p.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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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2】 죽음을 늘 준비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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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1】 삶의 찌질함과 누추함에 대하여
- 산문집 《연중무휴의 사랑》과 《헤아림의 조각들》(2023년 문학나눔 선정도서)로 2030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임지은이 신작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전작에서 냉철하고, 때론 따뜻한 연민과 너른 헤아림을 보여줬다면 이번 산문집에서는 작가 자신의 깊은 내면에 숨겨진 질투와 열등감, 욕망과 좌절, 위선 등의 감정을 진솔하게 마주해본다. 누구나 한번쯤 특별한 이유 없이 무언가를 미워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싫음’이라는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숨기고만 싶은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들여다볼수록 작가는 거기에 어떤 선망이나 외로움,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편으론 자기가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을 돋보이게 하려는, 서툰 사랑의 마음이기도 했다. 작가는 슬픔과 기쁨과 외로움이 버무려진 이 “혼탕과 같은 삶”에 깊게 몸 담그며, 미움과 사랑 사이의 낙차를 발견한다. 엄마를 통해 흉보는 마음과 사랑이 때론 붙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온 세상과 자기 자신을 고루고루 아낌없이 사랑한다는 사람들 옆에서 홀로 투덜거리며 자신의 ‘싫음’을 통해 타인의 ‘싫음’ 또한 이해하게 되는 세계를 경험한다. 좋은 것은 당연하게 제 것이라 누리는 동거인에게 꼬인 마음이 드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 수긍하기까지의 내면의 갈등과 고통을 인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지만,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을 톺다 보면 이 책을 추천한 오은 시인의 말처럼, “곡절 없이 좋아하는 것들을 몇 곱절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곧 있으면 닥쳐올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직진하는 용기가 느껴지는 책이다.-교보문고 자신의 찌질함(?)을 드러내는 글을 보며 저자의 용기를 본다. 만족스럽지 않은 환경 가운데서도 살아볼려고 하는 저자의 몸부림(?)에 박수를 보낸다. 이토록 많은 말이 오가는 세상에 말 한마디가 그토록 크게 사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고야 만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버티고 또 흔들릴 만큼 나는 취약 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흔드는 게 무작정 나쁘다거나, 사주는 믿을 만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나를 흔들던 말 또한 나를 이쪽으로 데려왔음을, 내가 무언가를 그 안에서 발견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밤 안도 속에서 깨달은 건 나를 격려해주는 이가 없어도, 심지어 누가 나를 흔들어놓고 수면 아래로 밀어 넣는다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생겨난 불안과 슬픔과 무력감, 또 그에 따른 오기와 반발심을 동력 삼으며, 나는 내 안에서 끝내 살아남은 무언가를 마주했다. 어쩌면 그(p. 25)것이 그리도 중요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나 흔들렸다는 사실 또한. 그러므로 물음에 대한 답은 추가되고 갱신된다. 어쩌다 작가가 되었을까? 나는 끝내 작가가 되고 싶었다(p. 26). 오늘날에는 자신을 돌보는 법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그런 정보의 과잉은 때론 상처도 불행도 없어야 한다는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건 꼭 완두콩 한 알 만큼의 불편도 용인하지 않기 위해 고안된 듯 보이니까. 혹시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은 것만 주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걸까? 그렇게 해야만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건 좀.. 부자연스럽지 않나? 그래도 그런 정보들을 일찌감치 알았다면, 그래서 내 부모가 조금 더 자신을 돌보았다면 그들에게도 내게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내 부모도 조금은 덜 힘들었을 텐데. 나도, 조금 덜 우는 사람이었거나 조금 더 마음 놓고 우는 사람으로 자랐을 텐데. 어쩌다 한 번 하는 우리의 외식도 지금보다는 더 편안할 텐데(p. 103). 뒤늦게나마 나는 내게 좋은 것을 주는 법을 배우고 또 연습한다. 가능한 선에서 질 좋은 걸 산다. 누가 뭘 해주면 사양하지 않고 받는다. 목돈을 모아 요가를 등록하고 되도록 병원을 제때 간다. 때론 근사한 데서 밥을 먹기도 한다. 부모로선 잘 모를 좋은 걸 누려도, 스스로를 이기적이라 느끼지 않으려 이를 악문다. 동거인이 놀리는 걸 보면 갈 길이 먼 것 같지만, 나는 나를 보살피는 훈련을 거듭한다. 그래야 부모를 포함해 그 누구라도, 나를 챙기느라 그 자신을 뒷전으로 두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나에게 최선을 다해준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이해할 수 있다. 동거인의 캠핑을 따라가는 건 훈련의 일환이다. 캠핑을 가면 동거인이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해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뻔뻔하게 앉아서 쉰다. 겨울에는 가끔 엄마의 개도 캠핑에 데리고 간다. 텐트 안에서 개는 한 뼘의 볕이 있는 자리에 자기 몸을 두기도 하고, 난로 앞 조금 더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고 웅크리기도 한다. 주어진 데서 기어이 제 몸만큼의 좋음을 찾아내는 것이다. '너는 바로 아는구나'(p. 104). 내가 오래 걸려 배운 걸 개는 그냥 해낸다. 기특하고 근사한 개 같으니. 몇 년 전가지만 해도 그런 광경, 자신이 괜찮아지는 위치를 미리 알아두고 스스로를 거기 놓는 존재 앞에서는 마음이 볼썽 사납게 흐트러지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웅크린 개를 빤히 바라본다. 걷는 법을 모르고도 걸었고 숨 쉬는 법을 모르고도 숨 쉬었다. 사랑 하는 법을 모르고도 사랑했고 사는 법을 모르고도 살았다. 나를 키워낸 내 부모처럼, 언제나 모르면 모르는 대로 해내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배우면 배우는 대로 더 해내게 된다. 그걸 안 뒤로 나는 배우고 싶은 모든 걸 조금 더 오래 본다. 그럼 볕을 받아 털끝 하나하나가 빛나는 작은 개의 부드러운 몸이 조금씩 솟았다 가라앉길 반복하듯 감탄과 슬픔이 내 몸을 고요히 오르내린다. 어떤 자연스러움은 누군가에게 훈련의 영역에 있지. 그런 게 언제나 조금씩 나를 상하게 만든다고, 개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아무 불편도 모르는 얼굴,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멸균된 얼굴은 역시 내 것이 아니다. 훈련 해봤자 조금 상한 얼굴을 더 자연스럽게 여기는 내 관점은 아무래도 끝내 바뀌지 않을 모양이다. 그래선지 어떨 땐 사람들의 얼굴이 다 조금씩 상한 것처럼 보이곤 한다(p. 105). 대중교통을 오가며 힐끗힐끗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이 상처 입거나 불행하지 않길 바라면서.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들 각자의 상처나 불행이 없어지길 곧장 바라지는 않는다. 거기서 오는 고통과 모순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을 감싸는 오래된 맥락이므로. 나로선 그 안에 새겨진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그들의 완두콩들을 헤아려 보고 싶다. 그런 건 사람이 상처와 불행 속에서도 그럭저 럭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다만 그 사실을 증명하겠다고 나를 몰아세우는 건 그만두었다. 스스로를 보살피는 게 죄가 아니라는 걸 개조차 그냥 안다. 나는 개처럼 살아서 숨쉰다. 개에게 배운 바, 그건 머무르는 자리에서 언제나 한 뼘의 볕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뜻이다(p.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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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1】 삶의 찌질함과 누추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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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0】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 죽음
- 대한민국이 OECD 자살률 1위라는 아픈 현실을 몇 년째 마주하고 있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날 거야”라는 절망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젊은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대답을 들려주어야 할까? 이 무거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평생을 의학계에 몸담았고 ‘죽음학 전도사’라 불리는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와 그의 아내가 함께 펜을 들었다. 바로 신간 『죽음, 삶의 끝에서 만나는 질문 』의 저자 정현채, 이현숙 부부의 이야기다-교보문고. 의사가 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1) 근사체험 (2) 사후통신 (3) 삶의 종말체험 (4) 사망 시 물리적 현상 (4) 영매 (5) 어린아이들과 관련된 환생 연구이다. 나는 근사체험만 인정한다. 죽음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이기에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책을 찾아 읽게 된다. 읽은 책들이 죽어갈 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정현채 서울대학교 의대 명예교수 198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 내과학(소화기학)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로 있다. 지금까지 240여 편의 의과학 논문을 SCI 국제학술지에 발표했으며 위염이나 위궤양 등을 유발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연구의 권위자로 대한소화기학회 이사장, 대한헬리코박터및상부위장관 연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명한 의학 저널 『랜싯』을 포함해 전문 학술지에 게재된 죽음에 관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공부하면서 2007년부터 대중을 상대로 죽음학 강의를 시작했다. 중학생부터 80대까지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800여 회 넘게 강의를 해 '죽음학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국죽음학회 이사로서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 제정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수록 비관적이 되거나 자살 충동이 커지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정반대예요. 제가 산증인이죠. 인간의 죽음 전후로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에 대 해 알면 알수록, 왜 자살하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깨달아 더욱 밀도 있고 충만 하게 살아가게 되거든요. '내 목숨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웬 참견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그런 말을 하기가 어려워져요. 우리는 모두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고, 모르고 지나치는 존재들조차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요. 가족과 친구는 더 말할 나위 없죠. 우리는 모두 이번 생에서 다뤄야 할 저마다의 과제를 갖고 태어나는데, 자살을 한다는 건 그 과제를 너무 빨리 내팽개쳐버리는 거예요. 도망친다고 그 과제에서 벗어나게 될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 과제를 잘 다루게 될 때까지 형태만 바뀐 채 계속 마주 치게 돼요.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살면서도 그런 걸 경험하지 않나요? 해결하지 못 한 채 외면하거나 회피했던 문제가 사라지지 않고 어느 순간 눈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경험을요(p. 19). 자살은 남겨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고, 이 상처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잘 아물지 않아요. 한 사람이 자살하면 주위 사람 다섯 명 내지 열 명이 자살 충동을 갖게 된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마흔 명 가까이 자살한다고 하니, 매일 200명 내지 400명 넘는 사람들이 지인의 자살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거죠.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와요. 서둘러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고로, 질병으로, 노화로 언젠가 다 죽어요. 그러니 그 전까지는, 자신의 삶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까지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선택만은 하지 않아야 해요. 저는 4년 전 침윤성 방광암 진단을 받고, 방광 전체와 그 옆에 인접해 있는 전립선까지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았어요. 소장 60센티미터를 잘라내고 만들어 넣은 인공방광에는 괄약근이 없어서 자율적인 배뇨 조절이 안 돼요. 일정한 간격으로 화장실에 가야 해서 밤잠도 세 시간씩 끊어서 자요. 그러나 이것 때문에 비관하지는 않아요. 30년 전만 해도 방광 절제 수술을 받고 나면 비닐 소변주머니를 밖에서 연결해 부착하고 지내야 했는데, 수술법이 향상되면서 삶의 질이 높아졌어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 감사할 일이 참 많아요(p. 23). 자살하는 순간 후회하지만 자살을 시도했는데 살아난 사람들은 이후 신체적인 고통을 겪더라도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격스러워하며 살아간다고 해요.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이 더 이상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해요. 2013년 EBS 「다큐프라임」 '33분마다 떠나는 사람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에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교(금문교)에서 투신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2퍼센트의 사람들을 다뤘어요. 미국 플로리다대학의 토머스 조이너 교수가 그 사람들과 면담한 결과, 투신해서 수면에 떨어지기까지 4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했다고 해요. "뛰어내린 순간 나는 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 만 빼고"(p. 38). "뛰어내리고 처음 떠오른 생각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였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떨어진 곳이 강이였으니 그나마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고, 고층 빌딩이었다면 떨어지는 순간 후회한다고 해도 돌이키기 힘들죠. 경북 영주에 사는 한 중학생의 경우가 바로 그랬어요. 같은 반 학생들의 괴롭힘을 이기지 못해, 아파트 20층 계단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창문틀을 붙잡고 도와달라고 요청했어요. 때마침 20층에 사는 주민이 이 소리를 듣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지만, 이 학생은 팔에 힘이 빠져 결국 추락했다고해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에요. 이처럼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는 살고 싶은 의지가 강하게 있는 것 같아요. 다음에 소개하는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우울증을 앓고 있던 한 여성이 오피스텔에서 자살하려고 목을 맸는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어요. 잠긴 문을 따고 들어가보니 이 여성은 이미 사망한 것처럼 보였어요. 호흡도 없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해 있었죠. 그런데 출동한 경찰관 중 한 명이 혹시 모르니 응급조치를 해보자며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얼마 뒤 이 여성은 "컥!? 하는 소리와 함께 숨을 쉬며 살아났어요. 그리(p. 39)고 살아나서 한 말이, 경찰이 들어왔을 때 자신은 여전히 의식이 있었는데 다른 경찰관이 "시신에 손대지 말고 현장을 보존하자"고 했을 때 속상했다는 거였어요(p. 40). 죽는 것 외에는 거기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상황에 있다면, 가족이나 상담사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찾으세요. 익숙한 곳을 벗어나는 걸 겁내지 마세요. 죽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지금 그곳보다 더 나쁜 곳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려요. 70년을 살아보니 정말 그렇더라구요(p. 42). 케네스 링과 친절 바이러스 근사체험 연구에서 케네스 링 교수를 빼놓을 수 없죠. 미국 코네티컷대학 심리학과 교수로서 30년 넘게 학생들에게 근사체험에 대해 가르쳤어요.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직접 체험하지 않았는데도 근사 체험자에게 일어나는 삶의 변화를 마찬가지로 겪었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한 거예요. 케네스 링 교수는 근사체험을 '친절 바이러스Benign Virus'라고 불러요. 왜냐하면, 이를 알게 된 사람은 근사체험을 직접 하지 않았어도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체험자와 비슷한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에요. 그런 변화를 저나 주변 사람들한테서도 발견해요. 한 중견기업의 대표는 평소 까칠한 편이었다는데, 죽음학 강의를 들으며 펑펑 울고 난 뒤로는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자상해졌다고 했어요(p.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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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0】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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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9】 만화가 주는 즐거움과 편안함
- “<을지로 순환선>의 만화가 최호철과 만화평론가 박인하가 함께한 여행기『펜 끝 기행』. 같은 학교 교수로 만나 떠난 제주도 교직원 연수에서 결성된 두 만화쟁이 '펜 끝 듀오'의 여행은 이후 일본, 이탈리아, 스위스, 중국을 거쳐 다시 우리 땅 울릉도와 독도에서 마무리된다. 화가였다가 만화를 선택한 최호철과 글쟁이였다가 만화를 선택한 박인하. 만화에 붙들린 두 사람은 세계를 바라볼 때 만화적으로 본다. 최호철은 여행지마다 그림을 그렸고, 박인하는 최호철의 크로키 북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이 책은 그들이 그렇게 함께한 여행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만화를 좋아했다. 초등학교때부터 대학때까지 만화를 봤다. 지금은 잘 안 보지만 그래도 만화가 좋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이런 책들을 찾아 읽을려고 한다. 일본다운, 너무나 일본다운 규슈 한 일 두 나라는 모두 벚꽃을 좋아하고, 벚꽃 구경 하기를 즐긴다. 그래서 봄이면 어김없이 벚꽃 축제가 벌어지는데, 가만 보면 두 나라 사람들은 각각 다른 벚꽃을 즐긴다. 우리나라에서 즐기는 벚꽃은 봉오리가 오르기 시작해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상태이다. 그래서 벚꽃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일기 예보에 민감하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와 꽃잎이 떨어지면 꽝이 되어버리기 때문. 반면, 일본 사람들은 화려하게 만개한 뒤 흩날리는 벚꽃을 즐긴다. 만개한 벚꽃이 바람에 떨어지는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이웃. 결국 이런 미세한 차이가 모여 문화의 차이가 되고, 문화의 차이는 풍경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일본 미학'이라는 말이 있다. 다양한 논의가 있고, 학자마다 여러 설명을 더하지만 이방인인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일본의 모습 자체가 그대로 일본 미학이다. 가을이 서서히 겨울로 넘어가던 날, 두 만화쟁이는 학생들과 함께 후쿠오카를 찾았다. 후쿠오카를 여행지로 결정한 것은 순전히 우리나라에서 가까웠기 때문. 특별히 우리를 끌어당기는 매력이나 꼭 가야 할 곳을 생 각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기대 없이 찾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활화산 아소 산. 그 웅장한 모습은 대단했다. 아소 산은 해발 1000미터가 넘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를 통틀어 부르는 이름으로 정식 명칭은 아소고다케인데, 다섯 개의 분화구마다 사실 다른 이름, 다카다케(1592미터), 나카다케(1506미터), 에보시 다케(1337미터), 기지마다케(1326미터), 네코다케(1433미터)로 부른다. 버스로 전망대 인근까지 올라가 케이블카를 타면 쉴 새 없이 하얀 연기를 내뿜는 분화구를 볼 수 있다. 은근하게 풍겨나는 유황 냄새, 곳곳에 자리 잡은 대피소, 은근히 겁을 주는 가이드의 말이 어우러지(p. 243)면 현재 진행형 활화산의 다이내믹함을 느낄 수 있다. 멀리 피어오르는 활화산의 기운을 바라보니,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무라이, 흩날리는 벚꽃처럼 배를 가르는 영화의 장면이 떠올랐다. 아소 산을 뒤로하고 찾은 곳은 구마모토 성. 구마모토 성은 약 400년 전, 전국 시대의 무장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를 통치하기 위해 축성한 성이다. 가토 기요마사라고 하면 낯설지만, 한자음 그대로 '가등청정'이라고 읽으면 익숙하다. 바로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했다가 깨진 바로 그 장군. 적의 공격에 대비한 120개의 우물과 조선 성의 장점을 차용한 축조술이 인상적이었지만, 그보다는 거대함 속에 정교하게 쌓아 올린 구마모토 성의 모습 그 자체가 일본, 사무라이를 느낄 수 있는 너무나 일본적인 풍경이었다. 그러나 사실 가장 일본적인 풍경은 활활 불타오르는 아소 산과 전국 시대 의 칼바람이 담겨 있는 구마모토 성이 아니라 그 살벌함과 함께 일상을 살았을 일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지금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소 산 자락 아래에서 평화롭게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바로 그들의 모습이 가장 일본다운, 너무나 일본다운 모습이었다(p. 244). 이 책을 쓰고 그리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자면(p. 276) 최호철 선생과 나는 같은 직장(청강문화산업대학)에 다닌다. 둘 다 만화창작과 선생이다. 사람들을 만나 "학교에서 만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꽤나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마치 황제펭귄처럼. 낯설지는 않으나 내 주변에서 마주칠 때 경험하는 신기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어쨌든 우리는 5월마다 찾아오는 불량 만화 화형식의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지 않은 만화인들이다. 최호철 선생은 화가였다가 만화를 붙들었고, 나는 글쟁이였다가 만화를 붙들었다. 더 정확히 우리 둘은 모두 만화에 붙들린 사람들이다. 만화에 붙들린 사람들은 세계를 바라볼 때 만화적으로 본다. 일단 빈 종이가 있으면 무조건 그리고, 조금이라도 분위기가 추락하면 농담을 날리고 싶다. 전자가 최호철 선생. 후자가 나다. 하지만 둘 다 천성이 숫기가 많은 사람들은 아니다. 은근 부끄럼쟁이들. 그래서 낯선 이들하고 떠들고 노는 것보다, 친한 이들과 수다 떠는 것이 좋다. 그래서인지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선생들은 보통 직장인들과 달리 사우나 아줌마 분위기를 풍긴다. 그 때문에 여행에 대한 기억이 꽤 많다. 최호철 선생은 여행지마다 그림을 그렸고, 난 최호철 선생의 화집을 뒤적이며 농담을 던진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월간 무가지 〈백도씨〉를 기획할 때였다. "우리 여행 간 거 내가 글 쓰고, 선생님이 그림 그려보세요." "만화? 나 마감 잘 못하는 거 알잖아?" 일단, 방어막을 친다. 역시, 공력이 대단하다. "그냥 한 쪽짜리 그림을 그리자고요. 한 쪽짜리 만화, 그게 최호철 스타일이 잖아!" 나도 다시 공격한다. 왠지 느낌이 낚은 것 같다(p. 277).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담는 게 최호철 스타일 아닌가?" 낚았다. 파닥파닥! 그렇게 해서 〈백도씨〉에 '두 만화쟁이의 여행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내가 낚은 죄로 글을 썼고, 최호철 선생의 애간장 다 태우는 마감에 동참했다. 몇 번 빼먹은 적도 있지만, 한 스무 번쯤 마감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우리가 한때 사슴굴이라고 불렀던 최호철 선생의 개성 넘치는 연구실 소파에 앉아 뒹굴면서 이야기를 하다 한번 책으로 묶어보자는 생각이 번득였다. 최호철 선생은 낙서라고 하지만, 그냥 묵히기 아까운 그림이 많은 그의 크로키 북이 생각났다. "〈백도씨〉에 연재한 만화하고, 그와 연관된 크로키를 모아서 책으로 묶어봅 시다." "재미있을까?" "재미없으면 사람들이 만날 선생님 크로키 북 달라고 해서 보겠어요." "너무 성의 없게 그렸잖아." "성의 있게 그리면 마감 못하잖아요." "..." "또 그냥 그 시간에, 여행지에서 그린 그림이 난 좋던데." "그럽시다." 그렇게 시작된 작업이다. 그림을 모으고, 글을 고쳐 썼다. 최대한 여행지의 느낌을 사람들이 느껴주길 원했다. 여행에는 휴식과 수다가 공존한다. 혼자 가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난 함께 수다 떨 수 있는 사람과 가는 여행이 좋다. 서로 말도 안 되는 지식을 공유하고, 느낌을 나누는 여(p. 278)행이 좋다. 이 만화는 그런 여행의 기록이다. 글과 함께 그림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최호철의 그림은 읽히는 그림이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크로키 북에 그린 사람이 아주 구체적인 당신의 모습이기도 하고, 당신이 바라본 그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림을 읽으며 우리의 여행에 동행하면 어떨까? 같이 수다 떨고, 맛있는 것도 먹고, 바보 같은 개그도 하면서 말이다. 남자들이라면 더더욱, 수다가 주는 세계 평화를 함께 누려보자(p.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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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9】 만화가 주는 즐거움과 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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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8】 짐승보다 못한 인간의 잔혹함
- 〈무시무시한 처형대 세계사〉는 야욕과 애증, 배반과 음모로 뒤엉킨 잔혹한 처형의 역사를 들려주는 책이다.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를 통해 그림 동화 신드롬을 일으킨 작가 기류 미사오가 이번에는 무시무시한 역사 속 처형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근대 유럽까지 '인간'이라는 존재에 의해 자행된 처참하고 잔혹한 처형의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하였다. 이 책은 역사 속 처형장을 통해 인간 내면세계에 깃들어 있는 광기의 역사를 살펴본다. 저자는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물음을 던지면서, 다양한 이유 때문에 엄청난 피를 흘려 왔던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있다. 그리고 황제들을 비롯한 수많은 권력자들과 신의 이름을 내건 종교인들이 역사 속에서 저지른 처형의 만행과 광기의 현장을 낱낱이 고발한다-교보문고. 흥미롭게 읽었는데 품절됐다. 이 저자의 책들이 재미있어 열심히 읽고 있는데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도 대출했다. 이처럼 맹수를 이용한 처형 방법은 그리스도교가 보급되기 훨씬 전에 시작되어 5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죄수의 팔다리를 묶어 자유를 구속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죄수의 몸을 묶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간단한 무기도 사용하게 함으로써 관중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안겨 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목숨을 잃기 전에 맹수를 한두 마리쯤 해치우는 강한 죄수도 나타났다. 어쨌든 죄수와 맹수의 싸움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으로 관중들에게 꽤 인기를 끌었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서 죄수의 처형은 일종의 연극으로 연출되었다. 예를 들면, 죄수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로 분장시켜 쇠사슬로 바위에 묶은 다음 대머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게 한다거나, 헤라클레스로 분장한 죄수가 곤봉을 들고 나와 황소와 싸우다가 클라이맥스에서 황소가 죄수를 허공으로 던져 버리는 식이었다. 그리고 여자 죄수가 생겨나면서 연극 마지막 부분에 음탕함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곰이나 당나귀의 습격을 받는다는 설정도 선보였다고 한다(p. 23). 콜로세움에서 펼쳐진 다양한 잔혹극 역대 황제들의 입장에서 볼 때, 검투사 경기는 범죄자나 반역자의 잔혹한 죽음을 선보이는 것으로써 황제의 권력을 뒤흔들려 하는 자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민들에게 확실히 보여 주는 기회이기도 했다. 로마 콜로세움 안에는 지금도 십자가가 서 있다. 일찍이 이곳에서 수많은 잔혹한 방법으로 목숨을 잃은 그리스도교도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타르에 적신 셔츠를 입은 채 콜로세움으로 끌려가 화형에 처해졌다. 또는, 팔다리가 묶인 채 커다란 솥 안에서 끓는 기름에 튀겨지거나 끓는 물에 삶아지기도 했다. 성 로렌스(Sento Rorense)는 석쇠 위에서 불에 구워졌고, 성 포류카르프는 화형대 기둥에 묶인 채 불에 타 죽었다. 성 폰시아노(Sento Pontianus)는 쓰러질 때까지 벌겋게 달구어진 석쇠 위를 걸어야 했고, 성 아르테 미오(Artemius)는 맷돌에 몸이 으깨져 죽었다. 손발이 잘려 나가거나 내 장이 몸 밖으로 드러난 채 매달린 자들도 있었다. 또, 살가죽이 벗겨진 채 유리 조각 위에서 끌려 다닌 자도 있었다. 콜로세움에서 남녀 수십 명이 한꺼번에 기둥에 묶여 처형된 적도 있는데, 그 광경이 마치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숲처럼 보였다고도 한다. 관중들은 그 중에서 누가 가장 먼저 숨이 끊어질지를 놓고 내기를 하기도 했다(p. 24). 당연히, 역대 황제들도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잔혹한 피의 향연을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으로 여겼다. 예를 들어 카이사르(Caesar)는 기원 전 65년 안찰관이었을 때 검투사들을 320쌍이나 동원해 성대한 검투사 경기를 개최했으며, 아우구스투스(Augusus) 황제도 검투사를 1 만 명 정도 동원해 검투사 경기를 여덟 차례, 맹수 3,500마리를 이용해 맹수 사냥을 스물여섯 차례나 개최했다. 클라우디우스 1세(Claudius I) 황제 시대에는 한 경기장에서 검투사 500쌍이 동시에 겨루는 일도 흔했다. 잔혹한 취미가 있었던 클라우디우스 1세는 목이 잘린 검투사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일부러 죽은 자의 투구를 벗기게 했다고 한다. 칼리굴라 황제 시대의 검투사 경기는 잔혹한 취미를 끝없이 만족시키기 위한 절호의 수단이었다. 맹수 사냥에서는 범죄자를 짐승의 먹이로 던져 주었고, 검투사 경기에 출전해야 한다는 선고를 받은 죄수가 필사적으로 자비를 호소하면 그 혀를 잡아 빼라고 명령한 다음에 온몸의 상처가 곪아 악취를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채찍으로 때리게 했다. 그리스도교도 박해로 유명한 폭군 네로도 30일에 걸쳐 잇따라 경기를 열었다. 그는 맹수를 풀어놓아 어린이를 포함한 5,000명을 물어 죽이게 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한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황제는 로마 제국 안에 존재하는 난쟁이들을 모조리 모아 검투사 집단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미녀들로 이루어진 검투사 집단도 만들게 해서 경기장에서 난쟁이와 미녀를 싸우게 한 뒤 그것을 최고의 유흥으로 삼았다고 한다. 코모두스(p. 25)(Comedits) 황제에 이르러서는 아예 정치를 총애하는 신하에게 맡겨 버리고 검투사 경기에만 열중, 자기 자신도 검투사로 자주 경기에 출전했다. 그런 그가 음모를 품은 검투사 한 명에게 침실에서 암살당한 것은 운명의 장난이었을까?(p. 26). 사실은 이랬다. 불길이 번지는 상황에서 수상쩍은 남자 몇 명이 술에 취한 척 비틀거리면서 '어떤 자는 이쪽, 어떤 자는 저쪽' 하는 식으로 햇불을 이용해 불을 붙이는 모습이 목격되었던 것이다. 로마 시대의 전기 작가인 수에토니우스(Gaius Suetonius Tranquillus)에 따르면, 이 수상쩍은 무리가 네로의 노예들이었기 때문에 집정관도 제지할 수 없었다고 한다. 폭력의 피해자 어쨌든, '네로가 방화를 명령했다'라는 소문이 흘러나오면서 민중들 사이에서는 당장에라도 폭동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자 네로는 소문을 불식시키려고 방화범을 만들어 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제물이 된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도들이었다. 당시 그리스도교도들은 이단시되어 마법을 부리고 유아를 살해하고 인육을 먹는다는 식으로 중상모략을 당하고 있었다. 아무리 엄격한 금지 정책을 펴도 계속 증가하는 그리스도교도 때문에 고민하고 있던 터라 네로는 이번 화재를 구실로 그들을 철저하게 탄압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먼저 신앙을 고백한 자들이 심문을 당했고, 이어서 그들의 고백을 토(p. 67)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방화죄 혐의를 받았다. 순교자들 중에는 사도 바울로와 12사도인 베드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놀림감이 되었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당했다. 어떤 이는 짐승의 가죽을 덮어쓴 채 개 떼에게 내던져져 물려 죽었고, 어떤 이는 원형 경기장에 맹수의 먹이로 던져지기도 했다. 또 어떤 이는 온몸에 타르가 발라진 상태에서 기둥에 묶여 날이 어두워진 뒤 등불 대신 불을 밝히게끔 했다. 네로는 처형 장면을 구경하라며 바티카누스 (vaticanus) 왕실 정원을 제공해 전차 경기까지 개최하면서 흥을 돋우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이단자들을 처형한다는 명분도 네로의 인기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특히 귀족들이 불만을 품은 것은 노예에서 해방된 자들이 점차 제국의 요직을 독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었다. 화재 뒤처리 등으로 인해 그 해의 국고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되었고 그 결과 재산 몰수라는 극단적 상황에 의지할 수밖 에 없었다. 때문에 다시 막을 연 반역죄 재판의 판결은 모두 유형이나 사형이었다(p. 68). 14~17세기 유럽에서는 마녀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체포해 가혹한 고문을 한 뒤 화형에 처했다. 이러한 마녀 재판의 폭풍은 약 300년 동안 이어지면서 유럽 전역에서 맹위를 떨쳤다. 그 기간 동안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수십만에 이른다는 설도 있고, 수백만이라는 설도 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마녀로 지목되어 화형을 당한 희생자에 대한 기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프랑스 로렌(Lorraine)에서 1576~1606년 동안 2000~3000명. 보르도에서 1577년에만 400명. • 독일 트리에르(Trier)에서 1587~1593년 동안 368명. 뷔르츠부르(p. 121)크에서 1623~1631년 사이에 900명. 밤베르크에서 1623~1633 년 사이에 600명. 이것만 보아도 마녀 재판의 희생자가 엄청난 숫자라는 사실을 짐작 할 수 있다. 유럽 전체에서는 15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약 30만 명(900만 명이라는 설도 있다)이 화형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p. 122). 마녀를 불태우는 검은 연기가 유럽 하늘을 끊임없이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야기다. 당시, 불안감을 해소하는 돌파구로 선택된 것이 '마녀'였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불행과 해악을 마녀 탓으로 돌려 잔혹하게 처형했다. 마녀 사냥이 무서운 것은 증거 없이 소문과 풍문만으로도 마녀로 몰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마녀 재판이 성행했던 원인으로는 첫째, 당시의 사회 불안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유럽인들은 예전에는 겪지 못했던 혹독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유럽 인구의 30퍼센트 정도를 앗아간 페스트의 유행, 극단적인 인플레이션, 종교 개혁 운동 등, 격동의 상황에서 민중들의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었다. 답답하기만 한 그런 현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창구로 선택된 것이 바로 '마녀'였다. 마녀는 마력을 써서 날씨를 나쁘게 만들고, 밭농사의 수학물을 줄이고, 태아를 유산시키고, 남자를 성불구로 만들고, 갓난아기를 잡아먹고, 악마에게 살아 있는 제물을 바친다..... 이런 식으로 세상의 모든 불행과 해악을 마녀 탓으로 돌렸다. 유럽에 휘몰아친 종교 개혁 운동에 대해 로마 교황은 수도회를 결성해 이단 탄압에 나섰다. 마녀 재판의 전신은 13세기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가 탄생시켰다. 이른바 '이단 심문' 제도다. 이단 심문관은 교황의 보호 아래 사교나 관헌을 능가하는 권한을 가지고 오로지 그리스도교 국가 전역에서 이단을 박멸하는 사명을 맡았다(p. 123). 그리고 잔혹하기로 유명했던 요한 22세가 내린 1318년 2월 27일 교서에서 '마녀'의 비참한 운명이 결정되었다. 프랑스 고위 성직자 앞으로 보낸 이 교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마녀 재판을 시작하고 지속하여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완전한 권한을 부여한다.' 이 마녀 재판 해금 명령에 박차를 가하듯, 교황 요한 22세는 1323년, 1326년, 1327년, 1330년, 1331년에 계속 마녀 재판 강화 명령을 발표 했다. 이 강화 명령에 따라 이단 심문관의 마녀 사냥이 급격하게 기세를 떨치기 시작했다(p. 124). 마녀 재판 그 자체도, 심문, 자백의 공술(고문을 통한 자백도 포함해서), 단죄 선고, 그리고 처형(대부분이 화형)이라는 식으로 공식화되어 있었다. 중요한 것은 피고를 한시라도 빨리 죽여 그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었다. 마녀에게서 몰수한 재산은 모두 교회 소유가 되었고, 마녀 재판에 들어가는 비용 전부를 여기에서 조달했다. 간수의 식대, 처형 담당자의 술값, 교살을 할 때 들어가는 밧줄 대금, 화형을 할 때 쓰는 장작과 기름값 등, 모든 비용을 여기에서 인출해 썼던 것이다(p. 165). 기요틴에 광란하는 사람들 로베스피에르를 처형하는 것으로 공포 정치가 막을 내리자, 국내의 무거운 공기는 사라지고 단번에 향락적인 분위기가 퍼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장소에 모여 오직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피비린내 나는 과거를 잊고 희망 없는 미래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 거리 도처에서 무도회가 열렸는데, 특히 인기를 모았던 것은 회원이 한정되어 있는 '희생자들의 무도회'였다. 가까운 친척이 기요틴에 처형을 당한 사람들만 이 모임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 무도회에 참가하려고 일부러 큰돈을 주고 근친자가 기요틴에 처형되었다는 증명서를 위조하는 사람들도 속출했다고 한다. 모임에서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고 훤히 드러난 목 주위에 칼자국을 모방한 빨간 리본을 묶었다. 남자들도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마찬가지로 빨간 리본을 목에 둘렀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들 입장에서 보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현실을 받아들여 슬픔을 이겨내고 살아가려면 이런 식으로 불행을 패러디하는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p. 298). 마지막 공개 처형 프랑스에서 기요틴을 이용한 처형은 오랜 세월 동안 일반에게 공개 되었다. 그때마다 형장에는 프랑스 각지의 수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입장에서 볼 때 처형은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다. 1889년의 파리 만국 박람회 때에는 기요틴에 처형을 당한 사람이, 당시에 신축된 에펠탑보다 더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피와 잔혹함에 대한 인간의 열광은 그 뿌리가 무척 강한 듯싶다.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기요틴 공개 처형은 1939년 와이트만이라는 살 인범의 처형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축제 소동이 벌어지자 정부는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다고 한다. 처형 전날 밤, 형장이 될 베르사유 감옥 앞 광장에는 엄청난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기요틴 처형을 한 번이라도 직접 구경하려고 나무와 가로등에 매달린 사람들, 건물 창문에 바짝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사람... 사람들은 마치 축제라도 즐기는 듯한 기분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면서 소란스럽게 전야제를 보냈다. 가끔씩 말 잘하는 사람이 농담을 던지면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 소리가 감방 안에 있는 사형수의 귀에도 들렸다니 정말 잔혹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자 정부도 더 이상은 간과할 수 없어 그 뒤로는 기요틴 공개 처형을 금지했다. 이후의 처형은 각각의 감옥이 위치한 안마당에서 이루어(p. 300)졌으며, 처형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관료 아홉 명뿐이었다. 잔혹함의 상징인 기요틴 처형대는 감옥의 담장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두 번 다시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다(p.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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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8】 짐승보다 못한 인간의 잔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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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24】 흥미로운 주제 ‘기본소득’과 ‘기초자산’
- 시민 누구에게나 일정액을 주는 기본소득, 그리고 청소년이 일정한 연령이 되면 주는 기초자산에 대한 아이디어는 참신하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처럼 몰랐던 것을 아는 신선함이 있었다. 경제가 어렵다고 나 몰라라 했는데 관심 갖고 알아야 할 것 같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민주주의란 중산층이 유지하는 체제입니다. 상류층은 자신들을 규제하는 민주주의를 성가셔 하고, 하류층은 먹고살기에 바빠 민주주의 자체에 관심이 없지요. 소득과 부가 불평등하게 분배되면 자연스럽게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집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신자유주의 시대(p. 32)에 세계가 '포퓰리즘'에 빠져버렸다고.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이 야기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죠(p. 33). 2014년에 한 어머니가 두 자녀와 함께 연탄가스에 질식해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생활 고를 비관한 자살이었죠. 그런데 이 어머니,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당시 60세였던 이 아주머니는 식당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았습니다. 큰딸은 병을 앓고 있었지만 치료비가 없었고, 작은딸은 알바를 하고 있었지만 신용불량자였습니다. 그 와중에 아주머니가 몸을 다쳤습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가까스로 유지해오던 생활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 아 주머니가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이처럼 열심히 노동한다는 것과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도 그 연관성이 없을 때도 있을진대,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노동하느냐에 소비능력이 달렸다고요? 그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크고 나쁜 거짓말입니다. 그 거짓말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의 삶을 게으른 자들로 만들고, 때로는 사회적으로 외면해도 좋을(p. 47) 비도덕적 인격체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p. 48). 자동화된 세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지금까지 제가 여러분에게 설명한 내용을 돌이켜보면 이 자동화된 세계가 여러분의 직업을 빼앗아갈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간병인이나 운전 사 같은 직업이 사라질 수도 있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는 자동화된 세계를 직업을 빼앗아가는 약탈자로 여겨야 하는 걸까요? 스위스의 기본소득 주창자들은 이 세계가 오히려 축복이라고 말합니다(p. 79). 자동화가 축복이 될 수 있는 궁극적인 이유는 기계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해버린 인간이 이제 그런 무의미한 노동에서 벗어나서 의미 있는 노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컨베이어벨트 옆에 인간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고 탄식만 하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이룬 기술의 진보를 어떻게 복지로 연결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할 때다. 이들은 말합니다. "자동화된 세계가 우리를 더는 무의미한 노동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노동을 하게 해줄 것이다. 기계 옆에서 원망하는 대신 기술의 진보를 인간의 삶이 더 나아지는 데 어떻게 쓸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다." 그렇다면 기술의 진보를 어떻게 쓰겠다는 것일까요? 조건 없는 기본소득은 자동화에 대한 일종의 이익배당금이나 마찬가지다. 로봇은 소득이 필요 없지만 우리는 소득이 있어야 살 수 있다. 그래서 로봇이 우리 일자리를 가져가고 임금이 필요 없는 로봇 대신 우리가 그 임금을 받는 것이다. 곧 로봇이 일을 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 보상을 모두가 나누어 받는 셈이다(p. 80). "기본소득을 자동화가 만들어내는 이익배당금으로 보자." "일자리는 로봇에게, 임금으로 쓰일 비용은 인간에게." 이를 두고 뭔 공상과학이야? 이렇게 말씀하실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돈 벌고 싶은 사람에게는 '꿈'이나 다름없는 빌 게이츠가 2017년 『쿼츠Quartz』라는 IT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로봇을 사용하는 회사가 로봇세를 내라. 이 로봇세 를 사회복지에 쓰자." 로봇이 일해서 돈을 못 버는 것이 아닌 이상 세금을 내야만 하고, 로봇이 대체할 직업 때문에 일자리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이 세금을 써야 한다는 게 빌 게이츠의 입장인 겁니다. 자동화된 세계에 대한 빌 게이츠의 입장과 스위스 기본소득주의자들의 의견이 사실상 같은 거지요. 빌 게이츠도 자동화가 어쩌면 인간에게 축복이 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p 81).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 것 같네요. '아, 이제 기원이나 역사 말고 대체 기본소득이 뭔지,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를 말해보라고!' 네, 이제 여러분의 요구에 본격적으로 부응 하겠습니다. 우선 기본소득은 자산조사나 근로조건 부과 없이, 다시 말해 여러분이 재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노동할 의사가 있는지 묻지 않고 여러분이 속한 정치공동체가 모든 구성원에게 개인 단위로 지급하는 소득입니다. 조건 없이 기본소득.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라고 했을 때, 이 말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자산과 노동의사를 묻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당부하는데 이걸 노동하지 말라고 왜곡해서 이해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모든 구성원이라고 했을 때, 이 말은 기본적으로 수혜자가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렇다면 '시민이 아닌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모든 사람은 시민만을 의미하는 거냐?' 이렇게 물을 수 있죠. 한데 대다수의 기본소득주의자는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비시민도 최소한의 거주기간, 규정된 거주조건 등을 바탕으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답(p. 119)하고 있어요. 어떤 이들은 세금도 안 내는 사람들에게 이런 혜택을 줄 필요가 있느냐고 묻기도 하죠. 많은 사람이 이주노동자들을 비롯해 외부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이겁니다. 그 어떤 국가도 비시민들이라고 자기 영토 내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이에게 세금을 안 내게 하지는 않으니까요. 자기 영토 내에서는 반드시 과세하게 됩니다(p. 120). 기본소득은 노동유인을 죽이지도, 죽일 수도 없다 자, 이제 기본소득이 뭔지 간략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기본소득은 자산조사나 근로조건 부과 없이, 다시 말해 조건 없이 지급하는 소득이다. 둘째, 기본소득은 모든 개인에게 보편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이다. 다시 말해 부자들에게도 지급되며, 부자들이 받는 것이 빈자들에게도 이롭다. 셋째, 정치공동체가 일종의 배당으로 지급하는 일차적 소득(p. 136)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재분배가 아니다. 넷째, 지급하는 주체는 주로 국가지만, 반드시 국가일 필요는 없다. 다섯째, 기본소득의 재원은 다양하며, 어떤 재원을 확보하느나에 따라 환경도 보호할 수 있다. 여섯째,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이제 기본소득과 관련해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이를 둘러싼 논쟁 중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질문, '기본소득이 노동할 유인을 죽이는가'입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질문에 대한 명백한 답이 있습니다. 이건 마치 '부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물게 되면 일할 의욕을 잃을 것인가'라는 멍청한 질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1억을 버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죠. 세금이 진짜 너무 빡세서 5,000만 원을 세금으로 냅니다. 우리나라의 2017년 중간연봉이 세전 2,225만 원입니 다. 세전 중간연봉으로 쳐도 2,700만 원 이상 더 버는 상황인 거죠. 그런데 세금을 많이 낸다는 이유로 이 차액 2,700만 원을 쉽사리 포기하고 대다수 사람이 2,225만 원만큼만 일할까요? 그게 과연 합리적인 선택일까요? 그런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 혼자 산다고 생각하고 매달 기본소득 50만 원을 받는(p. 137)다고 가정해볼까요? 사실 50만 원으로 생활비 자체가 해결되지도 않겠죠. 당연히 일을 하게 될 겁니다. 일을 해서 벌어들일 소득을 이 50만 원에 더해서 150만 원이 되는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당연히 여러분은 이 상황에서 더 나은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오히려 노동할 유인이 생기는 것 아닐까요? 기본소득의 핵심은 '기본소득 50만 원으로 행복하라'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본소득에 당신의 노력을 얹어보라'는 겁니다. 여기서 기본소득의 혜택은 정말 하고 싶지 않은 노동을 하지 않도록 해주고, 좀더 의미 있는 노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는 겁니다. 그리고 때로 노동을 쉬고 싶을 때는 쉬게 만들어줄 수도 있을 거라는 점입니다. 강의의 서두에서 말씀드렸듯, 현재 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많은 실험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실제 대다수 실험의 핵심적 질문은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들이 계속 노동유인을 유 지할 수 있는가'입니다. 기본소득주의자들은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답하고 싶어하죠. 앞에서 당장 강의하고 있는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질문이 근본적으로는 기본소득에 반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기본소득 자체의 목적은 노동유인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복지 국가의 복지정책과 근본적인 차이점이 없을 겁니다(p. 138). 기본소득이 기본소득다우려면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들이 계속 노동유인을 유지할 수 있는가'는 아주 부차적인 질문이어야 합니다.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는 순간, 또 이 질문에 답하 는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는 순간, 노동이 우리 삶을 다시 지배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우리의 답은 오히려 '노동을 선택하지 않으면 어때, 그래도 괜찮아'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p. 139). 우리나라 부의 분배 상황. 2013년 기준으로 우리 나라 소득 상위 10%는 전체 부의 66%를, 하위 50%는 1.7%를 가지고 있는 이 현실. 그런데 이 통계를 만든 김낙년 교수님이 하나 더 알아낸 사실이 있습니다. "2010년 기준으로 소득 상위 0.01%(3,895명)의 평균소득(27억 3,084만 원)이 전체 국민(20세 이상 성인) 평균소득(1,639만 원)의 167배에 이른다"는 겁니다(『한겨레』, 2015년 1월 13일). 극단적인 빈부의 격차가 훤히 드러나죠. 이 통계가 진짜 '한번 흙수저는 평생 흙수저'라는 젊은이들의 한탄을 한눈에 뒷받침하는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저립니다(p. 166). 상속은 노동이라는 전제를 완전히 벗어나 있는 사회적 제도입니다. 솔직히 상속만큼 철저하게 개인이 타고난 운에 의지하고 있는 제도도 없을 겁니다. 우리는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일을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재능은 있지만 어려운 가정에서, 혹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흔히 부모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있죠. '네가 조금만 더 여유로운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부모님이 이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찢어질 듯한, 그런 때가 종종 있어요. 더 놀라운 건, 아니 좀 부끄러운 건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하면서도, 그랬(p. 172)으면 하고 바라는 나 자신을 볼 때가 있다는 거예요. 갑자기 이야기가 조금 슬퍼지는 것 같네요. 자, 이제 기분을 바꿔볼까요? 세상의 현실이 이런 걸 알고 '부모가 상속할 수 없다면, 국가가 상속해주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나 성년에 이르렀을 때 국가가 그 아이들에게 인생을 출발할 수 있는 종잣돈을 주자! 부모가 상속을 할 때 자식들에게 노동의 조건을 걸지 않듯이, 사회도 상속하면서 노동의 조건을 걸지 말자! 이제 조금 기분이 나아지셨나요? 부모 대신 국가가 성년에 이른 시민들에게 일정 정도의 자본을 목돈의 형태로 제공하는 제도, 바로 기초자본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이 기초자본이 기본소득보다 더 나은 대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간단하게 '난 종잣돈이 좋아요! 큰돈이 좋아요!'라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p. 173). 기초자본의 목표는 '한 정치공동체 혹은 국가에 속한 구성원들이 출발선상의 평등을 최소한이라도 누릴 수 있도록 하자'(p. 174)는 겁니다. 그래서 매달 소비할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정 연령에 이른 구성원들에게 자기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목돈, 소위 종잣돈을 지급하는 거지요. 예를 들어 18세, 21세 등 일정 연령에 이르렀을 때 국가가 성년이 되어 자기 인생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2,000만 원이든 3,000만 원이든 목돈을 한꺼번에 주자는 겁니다. 기초자본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런 목돈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p. 175).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적 정의다 '모든 시민이 일정 연령에 이르면 일정한 자원의 지분을 나누어주자.'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우리 사회가 공산주의 체제냐?'고 반박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시장을(p. 199)믿지 않지만, 기본소득주의자건 기초자본주의자건 아무도 시장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자들도 있어야 하고 투자한 기금이 굴러가기 위해 시장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는 '인간은 반드시 노동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공산주의자입니까?' 공산주의는 노동자가, 노동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주인의 자격을 가진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유주의자입니다. 기초자본을 주장하는 애커먼도, 알스톳도 자유주의자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우리는 단연코 노동가치 이론을 거부한다!" 솔직히 자유주의자로서 저도 노동만이 가치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노동하는 자 만이 자격이 있다는 이 이론을 단연코 거부합니다. 그렇기에 기초자본 이론은 사회민주주의 이론도 아닙니다. 애커먼과 알스톳이 지적하듯이 '사회민주주의는 임금노동을 사회정의의 핵심'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회민주주의는 노동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시스템입니다. 그 자체로는 거부 할 것도, 비판할 만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발상은 '임금노동만이 좋은 삶'이라는 암묵적인 전제를 달고 있습니다.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임금노동이, 노동윤리가 우리 삶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유주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모(p. 200)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실질적인 자유고 정의입니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게으름뱅이들조차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심각하게 자유주의자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만들어낸 남성 중심적인 복지국가의 근본도 의심합니다. 그래서 애커먼과 알스톳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민주의는 너무 많은 인간을 사회생활의 중심에서 밀어낸다.(••). 사민주의는 수천만의 일반인을 2등 시민으로 전락시킨다. 사민주의는 유급노동을 기준으로 존엄성을 판단한다. 고용보조, 근로소득보전세제, 노동연계 복지와 같은 정책들은 빈민에게 노동을 조건으로 사회적 보상을 제공한다. (••••) 그러나 노동조건부 급여는 자유주의적 정의가 아니다.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러한 계약조건을 요구받지 않는다. 이 제도를 공산주의니 사회주의니 비난하고 싶은 분들은 좀 아쉬울 겁니다. 그러나 이 사회적 지분은 '노동하는 삶만이 가치 있다'는 전제를 단연코 거부하는 자유주의적인 분배의 상상력이라는 점을 거듭 말씀드립니다(p. 201). 일자리가 늘어나는 일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단기적 대안이 아니라 장기적 대안을 생각하면서 분배정책을 준비해야 합니다. 인구가 줄어들 테니 괜찮다는 멍청한 소리는 고려하지 않겠습니다. 한편에서는 인구가 줄어든다고 출산장려책을 쓰면서, 미래의 일자리 대비는 인구가 줄어들 테니 괜찮다고 하는 건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라 고려할 필요도 없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가 살고 있고 앞으로도 오래 살아가야 할 21세기에 상응하는, 21세기다운 분배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해온 기본소득과 기초자본이야말로 21세기 분배의 상상력에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p. 222). '무엇이 문제일까?' 몇 번이고 묻고 답하며 저 나름의 결론이 섰습니다. 제게 대한민국은 '소득과 부가 사회적 인정투쟁'의 중심에 있는 곳입니다. 이 결론은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대학생 일 때부터 탐구해오던 주제, '소득과 부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로 관심을 되돌렸지요. 바로 '재산소유 민주주의'에 바탕을(p. 251)둔 '기본소득'과 '기초자본' 논쟁이 떠올랐습니다. "적절한 소득과 부의 소유가 실질적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고 불의를 향해 '아니요'라고 말할 힘을 준다"는 전제에 기반을 둔 분배의 상상력입니다. 돌이켜보면 기본소득과 기초자본이라는 아이디어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낡은 서랍에 넣어둔 반가운 편지처럼 이 발상들을 꺼내들고 다시 하나씩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타자에 대한 혐오가 언제나 자기혐오에서 출발하고 그 혐오가 차별로 이어지기 마련이라면, 제가 대안으로 제시해야 할 핵심적인 내용은 '각 개인이 사회로부터 존중받고 있다고 느낄 만한 제도'여야 했습니다(p.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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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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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24】 흥미로운 주제 ‘기본소득’과 ‘기초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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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23】 깊은 성찰을 담은 에세이 읽기의 즐거움
- 이 책은 깊은 깨달음을 담은 에세이라 좋다. 에세이는 누구나 쓸 수 있다. 각자의 삶을 통해 독자에게 가볍게 때로는 묵직하게 공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세이를 자주 찾아 읽는지도 모른다. 한 시절을 함께 견딘 사람, 스승 지금도 스승의 날만 되면 학교 현장에서 불리곤 하는 강소천 작시의 〈스승의 노래〉는, 듣는 스승들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고 급기야는 모골을 송연하게 한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라는 최고 예우의 비유로 시작하는 이 노래 1절은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을 "마음의 어버이'로 칭송함으로 써 마무리된다. 전인격적 스승의 역할을 양도한 채 얼마간 기능적 전문직에 기울어진 길을 걷고 있는 대학교수들에게, 이 노랫말은 적지 않은 자괴감과 민망함과 당혹감을 던져준다. 물론 어떤 날을 기념하는 노래들이 나름대로 대상에 대한 송가의 속성을 띤다는 걸 모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스승의 노래〉는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같은 구체성 있는 언어로 우리를 감읍케 했던 양주동 작시의 〈어머니날 노래〉(물론p. 34 지금은 '어버이날'이다. 한때 우리는 어머니께만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던 '어머니날'을 기념한 바 있다)에 비해서도 훨씬 추상적 과장과 미화가 심하다. 아닌 게 아니라 하늘같은 은혜는 고사하고, 나는 '참되거라 바르거라' 하고 가르친 적이 도대체 없다. 어떤 인문학자가 그렇게 명료하고도 단선적인 '참됨'과 '바름'을 학생들에게 권면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오히려 '참됨'과 '바름'의 자명함을 의심하면서 그런 윤리적 가치나 지표들이 구성되는 사회적 합의 방식 혹은 체계들을 비판적으로 읽을 것을 주문해오지 않았던가. 지금도 나는, 스승의 언어는 상류에서 하류로 흘러내려가는 순리의 언어가 아니라, 때로는 솟구치기도 하고 소용돌이도 치는 역리의 언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서구 계몽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은 학교 하나를 지으면 감옥 하나를 부수는 것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 사회의 야만 상태를 문명 상태로 끌어올리는 학교의 긍정적 기능에 대한 신뢰를 근거로 한 발언일 것이다. 하지만 근대 사회는 학교 하나를 늘리면 고스란히 감옥 하나가 늘어나는 아이러니를 보이는 방향으로 흘렀다. 학교가 곧 창살 없는 감옥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우리 기억 속에서 학교는 가고 싶었던 곳이 아니라, 제도적 강제로 주어진 타율적 집합소 같은 곳이었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교육사상가 이반 일리치는 『탈학교화 사회Deschooling p. 35 Society』라는 책에서 아예 학교에 대한 급진적 비판에 나서기도 하였다. 이렇듯 학교에 대한 전폭적 신뢰와 급진적 비판이 공존 하는 현상은, 학교가 사회 체제에 의해 견고하게 결속된 기구이면서 동시에 그 견고함을 깨뜨릴 수 있는 창조적 균열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장소임을 알려준다. 학교의 구성원인 스승과 제자는 이러한 결속과 균열을 함께 지고 있는 양대 축인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그야말로 좋은 스승과 제자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는 힘을 지금도 가지고 있는 드문 사례일 것이다. 모교에 새로 부임한 키팅 선생은 자신을 선장 captain 이라고 부르라면서 첫 시간부터 파격적 방식으로 제자들을 대한다. 그의 교육 방법은, 죽어 있는 지식을 전수하기보다는 살아 있는 경험을 제자들과 공유하는 데 집중된다. 어느 날 그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모임 이야기를 전해주었을 때, 제자들 몇몇이 그 모임을 이어가기로 작정하면서 영화는 진경으로 나아간다. 이들은 학교 뒷산에 있는 동굴에서 시를 낭송한다든가 연극을 준비하면서 자신들이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매혹적 자아상 을 구축해간다. 하지만 연극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던 학생 하나가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끝내 권총으로 자살하게 되면서, 학교측에서는 이런 불온사상을 유포한 당사자로 키팅을 지목하 고 그를 파면하려 한다. 학교를 떠나는 스승 앞에서 몇몇 제자들이 책상 위로 올라가 "Captain, my captain!"을 외치는 마지(p. 36)막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자신들의 삶에 새로운 결속과 창조적 균열을 선사해주었던 스승께 파격적이고 전폭적인 헌사를 보내는 이 장면은, 키팅의 교육적 퍼포먼스가 감동적 동의agreement를 이끌어내는 풍경을 담고 있다. 진정성 있는 스승의 가르침이 수용자들의 폭넓은 동의를 얻어내는 과정을 이 영화는 감동 깊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이 영화는 우리의 기억 속에 마치 '대안 교육'의 전범 같은 잔상을 남기고 있는 것일까. 키팅의 교육이 여타의 것들을 압도하는 최량의 것이었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우스 갯소리로, 키팅이 우리나라에서 그리했다면 벌써 인터넷 게시판에 난리가 나고 퇴출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히려 몇몇 제자들이 보여준 마지막 동의의 결단은, 키팅에 의해 전달된 그 무엇 때문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삶과 언어의 매혹을 경험하게 하려 했던 키팅의 의도가 발견된 순간에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일방적으로 전달되지 않고 매혹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가장 멋진 스승임을, 그리고 좋은 스승good leader 만큼 좋은 수용자good follower가 중요함을 이 영화는 새삼 깨우쳐준다. 옛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아니한다'고 했던가. 스승에 대한 배타적 외경을 담은 표현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공자는 "三人行 必有我師"라고 함으로써, 어디든 있는 잠재적 스승들에게 마음을 열라고 주문하였다. 스승이란 성역에 있는 존재가 아니(p. 37)라 새롭게 구성되어가는 존재임을 말한 것일 터이다. 나는 대학에서의 진정한 스승이란, 자신의 그림자도 나누어 가지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언어에 대한 동의를 얻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열정과 능력이, 좋은 수용자들에게 발견되기를 희구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고단한 대학 구성원으로서의 공동 운명을 나누면서 한 시절을 제자들과 함께 견딘 사람일 것이다. 도종환 시인은 "저희가 더더욱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썼지만, 제자들을 사랑하기에는 너무도 분주하고 무력하기만 한 지식인으로서의 교수는, 함께 견딤의 윤리와 열정을 통해 새로운 결속과 균열의 힘으로 '스승' 역할을 힘겹게 해나갈 뿐이다. 그때 비로소 하늘 같은 은혜는 아닐지라도 마음의 어버이 같은 스승의 쓸쓸한 그림자가 비치지 않겠는가. 그리고 제자들은 그 '그림자'를 같이 밟으면서, 스승의 뒷모습을 발견해주지 않겠는가(p. 38). 가을에 읽는 책 - 늦은 나이란 없다 가을은 만물이 소멸하는 계절이다. 나무들은 저마다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던 잎사귀들을 떨구어 뿌리로 돌려보내고, 들녘은 가을걷이 후의 허허로움과 적막감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가 을은 만물이 결실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봄의 희망과 여름의 시련을 거친 후의 가을 풍경은 수확 뒤 기뻐하는 농부의 얼굴을 닮았다. 시인 릴케도 "최후의 단맛을 포도송이에 저며넣"( 「가을날」)고 있는 가을의 풍요를 노래한 바 있지 않은가. 그만큼 가을은 소멸과 결실의 모순된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을은 인생의 중년과 꽤 흡사하다. 모든 것이 안정되어가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청년기의 열정을 잃어버린 허전함이 있는 나이, 생의 여유로 인한 넉넉함과 노년기로 나아가는 두려움이 공존하는 나이, 그것이 바로 인생의 중년이니 가을은 여러모로(p. 74) 중년과 닮아 있다. 이 가을에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을 들라면 많은 이들은 흔쾌히 '독서'를 꼽는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익숙한 표어가 곧바로 연상되는 까닭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진 기온이 책을 읽기에 퍽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가을은 그동안 분주하게 살아왔던 시간들을 성찰하고 사색하는 데 알맞은 계절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책 읽기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다양해진 매체 환경이 우리의 시선을 책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온통 쏠리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정보와 지식이 특정한 사람들에게 집중되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나아가 우리 시대는 다양한 매체가 한꺼번에 공존하면서 서로 경합하는 다매 체적 성격을 띠기도 한다. 이러한 '정보화 사회'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다준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책'보다는 '영상' 쪽으로, 깊은 '생각'보다는 가벼운 '유희' 쪽으로, 지속적인 '지성'보다는 일회적인 '감각' 쪽으로 무게중심을 현저하게 이동하게 된다. 따라서 독서보다는 스포츠나 여행, 영화 관람 등이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점령하게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책'이 가지는 문화적 위상은 지난 시대에 비해 매우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p. 75). 일찍이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는 인간을 변화시키는 세 가지 교제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하나가 동성 간의 우정이요, 둘이 이성 간의 연애요. 셋이 책과의 교제인 독서다. 내일을 위 해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처럼, 독서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활자와 사귀는 일종의 교제다. 따라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함께 만나는 일이다.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목소리를 통해 나 자신의 근원적인 음성을 듣는 일이 아닐까"(「그 여름에 읽은 책」) 이 또한 독서를 통해 우리가 망각했던 자신의 근원적인 모습과 만나야 한다는 목소리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가을에 독서를 통해 얻어야 하는 것은, 현란한 광고로 치장된 처세술이나 효율성으로 무장한 경영 전략이 아니라, 자신의 지난날과 다시 만나는 바로 그 순간일 것이다. 그러려면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도 좋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잊힌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독서의 대상이 활자 자체가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자신임을 알게 된다. 지금 도심 대형 서점은 책으로 넘쳐난다. 넘친다고는 하지만 정작 좋은 책을 고르기란 쉽지 않다. 홍수 때 먹을 물이 귀하다고 하지 않는가. 이 가을엔 좋은 책을 손에 쥐자. 자신을 찾아 나서는 오랜 여행을 떠나자. 그 대상이 두툼한 볼륨에 정장을(p. 76)한 양장본일 수도 있고 얄팍한 두께에 무선제책을 한 문고본일 수도 있다. 눈물 글썽이게 하는 비극적 이야기를 담은 소설도 좋고, 온갖 난관을 뚫고 위대한 성취를 이룬 인간의 의지를 담은 논픽션도 좋다. 1년 가야 한 번 떠들어볼까 말까한 고급 도록이나 화첩이면 어떤가. 가을은 중년의 계절이다. 분주함을 잠시 멈추고 자기 자신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이다. 소멸의 안타까움과 결실의 즐거움이 공존하는 이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계절에 자신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책을 잡자. 늦었다고 생각할수록 더욱 그리하자. 책을 읽는 데 늦은 나이란 없다(p. 77). 선택에 대한 긍정과 사랑 다음 시편은 나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웅크리고 있다. 가끔씩 생의 어떤 분기점에 이를 때마다 불쑥불쑥 솟아나 너그러운 자긍과 겸손의 마음을 환기해주는 작품이다. 한번 읽어보자. 원 문을 소개하기는 어려운 터라 피천득 선생 번역으로 소개한다. 개인적으로는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서 이 번역시편을 처음 접했다. 가지 않은 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p. 156)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몇몇 '길'의 이미지가 있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아름다운 영화 〈길〉, 프랭크 시내트라의 장중한 노래 〈마이 웨이〉 등은 '길'(p. 157)을 상징의 차원으로까지 각인한 명품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로버트 프로스트의 명편 「가지 않은 길」은 가장 선명한 기억의 '길'을 뚜렷한 심상으로 선사한 바 있다. 시의 화자는 어느 가을날 숲에서 두 갈래 길을 만난다. 얼마나 망설일 것인가. 그래서 그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중에서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게 보이는 길을 선택한다. 도전과 개척의 의미를 품은 이 선택은, 다른 한 길에 대해서는 "다음 날을 위하여" 남겨두는 것을 수반하게 된다. 물론 이 갈림길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를 의심하면서 말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노경에 이르러 자신이 선택한 길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회상하게 된다. 흔히 우리 삶의 과정은 '길'에 비유되곤 한다. 그 길은 삶의 과정을 가장 적절하게 은유하면서 순간순간 우리에게 여러 갈래의 선택지로 다가온다. 만약 우리에게 하나의 길만 주어지고 그저 우리는 그 길을 걷기만 하면 된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평화롭고 단조로울 것인가. 하지만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 속에서 특유의 긴장과 활력을 가지는 법이다. 그런데 '선택'이 다른 것들의 '배제'나 '포기'를 뜻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중요한 고비마다 다른 것들을 배제하거나 포기하면서 '길'을 선택해간다. 하지만 그 선택에 자긍과(p. 158) 겸손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해도, 어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없을 것인가. 나는 이 시편에 담긴 시인의 삶의 여정, 곧 망설이고 아쉬워 하면서도 중국에는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의 흐름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불가피한 선택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가지 않은 길을 상상적으로 그리워하면서 자신이 선택한 '길'을 오늘도 걷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끔씩 그 선택에 회한과 아쉬움을 느끼면서, 더없는 감사를 드리면서 말이다(p. 159). 섭리와 운명 사이의 생성적 지혜 30여 년 전에 개봉된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는 천재 음악가를 질투했던 한 궁정음악가의 생애를 다루어 우리에게 깊은 기억을 안겨준 바 있다. 왕실의 궁정음악가 살리에리는 천재 작곡가로 소문이 난 모차르트의 연주를 듣고는 그가 천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하지만 그 천재는 참으로 오만방자했고 여성들을 희롱하거나 비속어를 남발하는 등 한마디로 미성숙한 철부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철부지가 천부적인 음악적 소질을 가졌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본 살리에리는, 정작 자신에게는 그러한 재능을 주지 않은 신에 대한 항의와 절망으로 모차르트에 대한 한없는 적대감을 키워 간다. 그 결과 살리에리가 의도적으로 모차르트를 파멸시켜간다는 것이 영화의 대체적인 줄거리이다. 이때 살리에리가 외친,(p. 225) "신이시여, 주께선 제게 갈망만 주시고 절 벙어리로 만드셨으니. 말씀해주십시오. 만약 제가 음악으로 찬미하길 원하지 않으신 다면 왜 그런 갈망은 심어주셨습니까? 갈망을 심으시곤 왜 재능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하는 마지막 대사는, 자신의 재능에 온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모든 예술가들의 공통적 외침이 되기에 족한 것이었을 게다. 재능에 대한 감별력은 주었지만 정작 그것을 펼칠 능력은 주지 않은 신의 처사에 대한 항변은, 그것이 섭리이든 운명이든 예술가가 견지하는 욕망과 재능 사이의 관계와 함께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천분의 불가항력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해준다. 이와 함께 떠오르는 소설이 최인훈의 단편 「라울전」이다. 최인훈은 「광장」이라는 작품을 통해 본격적인 분단소설의 출발을 알린 우리나라의 대표 작가이다. 「광장」에서 작가는 북쪽 사회가 가지는 폐쇄성과 집단의식의 강제성을 비판하고 동시에 남쪽의 사회적 불균형과 자유방임에 가까운 개인주의를 고발 하였다. 그런 최인훈이 「광장」 한 해 전인 1959년에 발표한 소설이 「라울전」이다. 주인공인 라울과 사울은 석학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하여 랍비가 된 동급생 친구이다. 라울이 학구파이고 신중한 사람이라면, 사울은 성깔 있는 한량에 가까운 편이었다. 라울은 나사렛 예수의 소문을 듣고서 그가 메시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품어보지만, 사울은 바로 예수를 탄압하기 시작(p. 226)한다. 그런데 정작 부활한 예수는 라울이 아니라 사울을 찾아가 그를 회심시킴으로써 사도로 삼는다. 이때 라울은 "신은, 왜 골라서, 사울 같은 불성실한 그리고 전혀 엉뚱한 자에게 나타났느냐? 이 물음을 뒤집어놓으면, 신은 왜 나에게, 주를 스스로의 힘으로 적어도 절반은 인식했던! 나에게, 나타나지를 아니하였는가?"라는 말로 항변한다. 이는 그대로 궁정예술사 살리에리의 외침을 닮았다. 이때 사울은 성경의 비유를 들어 "옹기가 옹기장이더러 나는 왜 이렇게 못나게 빚었느냐고 불평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옹기장이는 자기가 좋아서 못생긴 옹기도 만들고 잘생긴 옹기도 빚는 것이니"라고 일갈함으로써 신의 의지에 따른 섭리의 전권을 다시금 설파하게 된다. 이 두 편의 예술적• 종교적 서사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신의 섭리와 인간의 운명 같은 불가항력적인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살리에리와 라울의 운명과 항의 속에서 인간의 한계와 고뇌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이처럼 섭리와 운명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방식을 상상하는 모든 이들에게 백석 시편 「흰 바람벽이 있어」의 마지막 구절은 매우 융융한 시사를 던져준다. 백석은 이 아름다운 작품에서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라고 노래하였다. 섭리이든 운명이든 가장 귀한(p. 227) 존재에게 주어지는 것이 '사랑=슬픔'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보다 더 큰 재능을 가진 이들에 대한 질투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랑과 슬픔의 생성적 지혜를 발견하면서 섭리나 운명의 속뜻을 헤아려가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살리에리와 라울의 불행을 넘어서는 존재론적 발견이 아닐까, 잠깐, 생각해본다(p.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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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23】 깊은 성찰을 담은 에세이 읽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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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22】 성실한 삶의 본을 보인 부모에 대한 추억
- 재미있게 읽었다. 열심히 사는 젊은이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흙수저를 물려준 부모는 없다'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가졌다. 물질이 아닌 삶의 태도를 자녀에게 물려주어야한다. 흙수저를 물려준 부모는 없다 나는 금수저, 은수저도 아니지만 흙수저도 아니다. 일 억만금 재산보다 더 귀한 것을 물려받았다. 그것은 바로 아빠의 피 끓는 유전자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특징이 있듯이 나도 유별난 점이 하나 있는데, 지치지 않는 체력과 실행력이 그것이다. 친구들이 내 일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살이 날 것 같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무술용품을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으로 손을 안 대어본 분야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제품을 유통하고 제작했고, 내가 손을 댈 수 있는 거의 모든 온라인 마켓에 상품을 홍보했(p. 13)다. 그로 인해 온라인 창업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상품을 판매해 본 사이트가 워낙 많다 보니 도맡아 하는 과목도 여러 가지가 되었다. 취미가 돈 벌기라 할 만큼 20대 중반부터는 일에만 매진했는데 취미로 했던 에어비앤비 운영, 스톡 사진작가, 블로그 운영 등으로 쏠쏠한 수익을 얻었으며 이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 『서른 살, 나에게도 1억이 모였다』를 펴내어 또 다른 수익 구조를 만들었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아빠는 지금의 나보다 더욱 열심히 살았다. 아빠는 재직 중에도 주말이면 늘 새로운 일을 찾아다녔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생생한 기억의 한 장면이 있다. 내가 다섯 살 되던 해 겨울, 졸업 시즌이었다. 아빠는 꽃시장에서 꽃을 도매로 구입해 졸업식이 열리는 어느 학교 앞에 자리를 잡고 꽃다발을 팔기 시작했다. 졸업식장 앞에는 아빠처럼 꽃을 판매 하려는 상인들이 모여 있었다. 아빠와 아빠의 친구 부부가 꽃을 판매하는 틈을 타 내가 고사리손으로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5천 원, 5천 원!"을 부르자 한 아저씨가 그 많은 상인 중에(p. 15) 나에게로 와서 꽃을 사는 것이 아닌가. "꼬마야, 꽃 한 다발 줄래?" 바밤바 하나가 단 돈 백 원에 판매하던 시절이었다. 5천 원이라는 거금을 손에 처음 쥐어본 나는 눈이 휘동그레지고 말았다. 내가 아빠를 도왔다는 기쁨과 내 손으로 무언가를 팔았다는 희열에 5천 원을 부르짖는 내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엄마의 만류로 두 번째 꽃다발을 팔지는 못했지만 그 이후로 나는 친구들 서넛이 모이면 집 안의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놓고 시장놀이를 하는 데 푹 빠졌다. 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아빠는 친구와 동업으로 일본식 꼬치 가게를 운영하게 되었다. 아빠는 격주로 주말에 쉬었는데 그 쉬는 날마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쓰리잡을 뛰었다. 또 하나 의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집에 웬 스티커가 배달되어 있었다. 전봇대에 광고용으로 붙이는 네모반듯한 스티커였다. 그런데 거기에 우리 집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내가 아직 그 옛집의 전화번호를 잊지 못하는 것은 분명 그 스티커의 잔상 때문일 것이다(p. 16) 네모난 칸에 가지런히 우리 집 전화번호가 적힌 스티커 1천 장이 놓여 있었다. 지금도 스티커를 사 모으는 스티커 마니아인 내가 안방 바닥에 늘어져 있던 이 스티커를 보고 여덟 살 인생에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새로운 아파트들이 들어서며 안전 고리, 보조 열쇠가 유행을 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가족은 새로 짓는 아파트 주변의 전봇대를 찾아 광고 스티커를 붙였고, 평일에 엄마가 전화로 예약을 받으면 아빠는 주말을 이용해 드릴을 들고 가 열쇠를 시공했다. 서른 살 중반의 부모님이 일하는 곁에서 아기였던 동생과 나는 매주 만나는 새 아파트의 새 놀이터를 접수하느라 마냥 신이 났다. 그 후로도 아빠는 끊임없이 엄마와 함께 이런저런 사업을 벌였고 그렇게 나와 동생은 부모님의 땀과 노동을 먹고 커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 집은 그 당시 유행하기 시작하던 노래방을 오픈했다. 밤늦게까지 영업을 해야 했던지라 늘 피곤함에 절어 있던 아빠와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얼른 커서 나도 한 몫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시절 아빠(p. 17)는 또 한 번 슈퍼마켓을 운영하여 다들 픽픽 쓰러져가던 IMF를 극복했고, 이미 키가 성인만큼 자랐던 나는 이때 슈퍼마켓 계산대를 꿰차고 앉았다. 그래서 나는 오래도록 동네에서 슈퍼집 아가씨로 불렸다. 동네 슈퍼를 어떻게든 키워 보려고 나는 과자를 묶음으로 할인해서 팔기도 했고, 화이트데이가 아직 어른들에게 생소하던 시절, 사탕을 상자에 포장해놓고 담배를 사 가던 아저씨 고객들을 사로잡았으며 부모님이 시키지도 않은 음료수 가격표를 프린터로 뽑아서 정리하기 등의 일을 도맡아 했다. 슈퍼를 운영하는 일이 그리 힘든 줄 처음 알았다. 모든 동네 사람이 한 번씩 거쳐가며 한 마디씩 거드는 곳이 동네 슈퍼였던 것이다. 나는 때로는 친절하다가도 때로는 손님들과 맞짱 뜨고 싸우면서 장사를 배워갔다. 슈퍼 계산대에 앉아 거의 모든 고객들의 다양한 유형을 경험했기 때문에 내 장사를 할 때는 평정심을 갖고 아무리 고객님이 이상 현상(!)을 보여도 꾹 참고 친절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큰 내가 장사를 안 하면 이상(p. 18)한 일이다. 이 시절 아빠는 아침 7시에 출근하고 저녁 7시에 퇴근해서 슈퍼에서 일을 하다 저녁 11시에 집에 들어가 잠을 자고 다음 날 다시 출근하는 철인의 생활을 해 나갔다. 그러며 딸 둘을 유학에 대학원까지 보내며 아르바이트 한 번 시키지 않고 공부에만 집중하라 할 수 있었고, 그래서 지금은 연금 외에도 월세를 받으며 노후 걱정을 덜었으니 부모님의 인생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아빠의 인생을 모두 봐 온 딸이 어찌 아빠에게 효도하고 싶은 마음이 깊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피곤하다고 축 처져 있거나 티브이나 보며 시간을 보내는 아빠의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원래 사람이란 주말에도 쉬지 않는 것이 정상인 줄 알았다. 또한 지금 마음 편 히 몸 편히 큰 걱정 없이 사는 아빠를 보며 나도 열심히 일을 해 놓은 다음은 편하게 사는 날이 올 줄을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젊은 날 그리 불같이 일하던 아빠의 모습이 멋져 보여서 자꾸만 따라 하고 싶은 것 아닌가!(p. 19) 아빠가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이 열심히 사는 유전자. 몸소 보여준 성실함이다. 아무리 아빠가 스트레스를 받은 날 술 한 잔 마시고 도깨비 흉내를 낸 적 있었다 해도 그 모든 것이 다 이유가 있었음을 딸은 보고 느낀다. 아빠는 긴가민가하며 이루었던 것을, 나는 아빠를 보며 강한 확신을 가지고 노력한다. 아빠가 내 삶의 본보기요, 내 모습의 근본이라는 사실은 어 떤 것과 바꿀 수 없는 금송아지였다. 금수저를 쥐어 주는 대신 내 몸뚱이를 황금알을 낳는 오리로 만들어 주었으니 어찌 귀하지 않겠는가. 맞다. 성공은 운이 붙어야 한다. 번번이 쉬지 않고 아빠는 세상에 부딪혔지만 세상은 아빠에게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아빠의 노력만 보면 준 재벌쯤은 되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엄마는 늘 아빠, 엄마가 배운 게 많이 없어서 항상 힘든 일로 돈을 버니 너희들은 많이 배워서 조금 더 세상을 편히 살라고 했다. 내가 지금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은 학교를 많이 다녀서(p. 20)가 아니다. 순전히 열심히 살았던 부모님의 모습을 보아서 그런 것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일을 왜 그리 많이 하느냐고, 힘들지 않냐고, 쉬었다 하라고 말한다. 늘 말하지만 힘든 걸 꾹 참고 한 것이 아니라 힘든 줄 몰랐기 때문에 그랬다. 어릴 적부터 이렇게 열심히 사는 아빠, 엄마를 보아서, 부모님의 그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힘든 줄을 모르고 일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게 없다고 가끔 친구들과 비교하던 아빠는 여전히 나에게 물려준 게 없다고 말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 도 나야말로 금수저다(p. 21). 우리는 서로 헤어지게 되어 있다. 어떤 만남도 헤어짐을 전제로 하고 만나는 것을 안다. 부모님과 나는 서로 어떤 모습으로 헤어지게 될까. 아마도 엉엉 울겠지. 아주 오랫동안 서러워할 테지. 아직 나는 준비되지 않았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기에 그 헤어짐이 되도록 아주 먼 미래이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고민한다. 나 하나 챙기기에 바쁜 시대에 부모님 챙길(p. 286) 여유가 있을까. 과연 어떻게 효도할 수 있을까. 해답이 없는 이 질문에 시원한 답을 남기지 못하고 결국 물음표로 글을 마무리 한다. 부모님이 곁에 있다는 이 기회의 시간 동안, 나는 과연 효도하며 살 수 있을까?(p.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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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22】 성실한 삶의 본을 보인 부모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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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21】 다른 사람의 일상, 에세이 읽기는 재미있다
- 재미있게 읽었다. 자신의 신변잡기를 쓴 책이지만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자신의 삶을 열어보여준 작가가 고맙다. 그런데 절판됐다. 관심이 있으면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으시기를. 잠깐 멈춤의 기술 2000년에 대기업 계열사인 광고회사에 입사했다. 회사에서 받은 내 인생 첫 명함에는 '카피라이터'라고 적혀 있었다. 그 말이 참 멋있게 느껴졌다. 나는 평생 카피라이터 해야지. 머리가 하얗게 세어서도 카피라이터 김하나라고 나를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직장생활이란 막연히 상상하던 것과는 달랐다. 내가 일을 그다지 잘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한테서 받는 스트레스도 심했다. 많은 사람들과 거리낌없이 어울리지 못하는 나였기에 더더욱 대기업 문화에 적응하기(p. 32)힘들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당시 몇 가지 일을 겪으며 광고라는 것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평생을 바칠 만큼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일한 지 3년 가까이 되었을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곧 그만두겠다는 결심을 굳혔을 때였다. 광고를 만들면 성우와 자주 일을 하게 되는데 그날은 '특A급'으로 분류되는 중년여성 성우를 처음 만난 날이었다. 따뜻하면서도 지적이고 신뢰감을 주는 멋진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명함을 건네며 "안녕하세요, 카피라이터 김하납니다" 했더니 그분이 나를 빤히 보더니 대뜸 이런 말을 했다. "목소리가 참 좋으시네. 성우를 한번 해봐요. 카피라이터도 좋은 직업이지만, 성우도 정말 좋은 직업이에요." 일단 칭찬이니 기분이 좋았고, 유명한 성우시니 만나는 사람도 무척 많을 텐데 아무에게나 이런 말을 건네지는 않으리라 싶어서 한동안 마음에 남았다. 그것도 이미 번듯하게 들리는 직업이 있는 사람에게 해준 말이니 말이다. 그러잖아도 그 무렵 나는 성우라는 직업이 꽤 매력적이라고 느끼던 중이었다. 같은 카피라도 누가 읽느냐에 따라(p. 33) 그 힘은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목소리는 마치 잘 부푼 커피 원두에 천천히 물을 부었을 때 다양하고 매력적인 향기가 뿜어나오듯 문장에 담긴 감성을 풍부하게 끌어올려 표현해주었다. 어떤 목소리는 단 한 문장만 읽어도 냉철하고 정연한 지성을 느끼게 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성우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낀다고 해서 '나도 한번 도전해볼까' 하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성우는 태생적으로 남들과 다른 사람들일 거라고 여겼으니까. 그런데 그분의 말씀이 자꾸만 맴돌았다. 어쩌면 내게도 계발되지 않은 목소리의 자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둔 뒤 나는 '해보기나 하자'는 마음으로 정말 성우 수업을 들었다. 방송사 아카데미에 성우반이 있었다. 발성의 원리를 익히고 발성 연습, 낭독, 연기, 더빙 연 습 등을 했다. 몇 달 과정의 수업이 끝나고 나서는 수강생들 몇몇을 따라 성우 공채를 준비하는 스터디 그룹에 합류 했다. 극단 단원들처럼 소극장 같은 곳에서 아침 일찍 모여 신체 단련으로 시작을 했다. 신체 단련을 하고 나면 발성 연습을 정석대로 했다. 가! 갸! 거! 겨! 고! 교! 규!(p. 34)나! 냐! 너! 녀!…." 등의 루틴을 여럿이서 단전에 힘을 주고 쩌렁쩌렁 울리도록 연습하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의 대본을 가지고 연기하는 걸 녹음해서 들어보고 합 평을 하기도 했다. 나는 특히 내레이션 연습을 좋아했다. 내 목소리가 내레이션에 어울린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고 나 스스로도 내레이션에 매력을 느꼈다. 나는 항상 감정을 잘 표현하는 예쁜 목소리보다 건조하고 지적인 목소리에 끌렸다. 그러면서 성우 공부의 재미에 흠뻑 빠져버렸다. 나도 그럴 줄 몰랐다. 배우고 훈련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었다. 1년 정도를 꽤 몰입해서 했다. 학창시절에 공부에도 그렇게 매진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고3 때도 그랬다. 시험을 잘 봐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바짝 벼락치기를 하는 식이었지, 평소에는 공부에 별로 에너지를 쏟지 않았다. 그런데 성우 공부는 달랐다. 늘 좀더 잘하고 싶고, 몸을 단련하고 기술을 연마해 더 나은 단계로 끌어올리고 싶다는 열망을 느꼈다. 살면서 그렇게까지 열심히 뭔가를 이루려고 노력해본 적이 없었다. 여기서 '이룬다'는 말은 '공채 성우가(p. 35)된다'는 종류를 뜻하지 않았다. 비유를 하자면 전장에 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과녁을 정확히 맞히려고 매일 활쏘기를 하는 사람의 마음과도 비슷했다. 내친김에 방송사 공채 시험도 보았지만 보기 좋게 떨어졌다. 그래도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했고 내가 발전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성우 공부에 매진한 기간을 두고 후회는 하지 않았다. 성우 공부를 하면서 배운 것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포즈pause' 즉 잠깐 멈춤의 중요성이었다. 말의 매력과 집중도를 높이는 것은 이 '잠깐 멈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것은 너무도 중요한 기술이라 이 책을 읽는 여러분도 그에 대해 생각을 해보셨으면 좋겠다. 말을 매력적으로, 힘있게 하는 사람들이 어디서 말을 끊고 다시 이어가는지를 관찰해보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 다. 특히 법정 드라마의 변론 등을 유심히 들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최근에 나는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할 때 샤론 최의 동시통역과 함께 두 언어의 호흡을 어떻게 끊고 이어가는지를 관찰하며(p. 36)또 많이 배웠다. 이 기술을 잘 사용하려면 기본적으로 문장 구조를 잘 이해해야 하고 본능적인 타이밍 감각도 필요 하다. 그렇지만 분명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나아질 수 있는 기술이다. 돈이 다 떨어진 나는 마침 운좋게도 내게 오라고 손짓 해준 두번째 광고회사에 들어갔다. 그곳은 첫번째 회사의 4분의 1 정도 규모였고 단체활동이 적었으며 팀 단위의 게릴라 조직처럼 움직여서 나 같은 성격의 사람이 일하기에 훨씬 나았다. 그리고 광고의 윤리 문제에 대해서도 회사를 떠나 있던 기간 동안 질문하고 숙고한 끝에 나름의 답과 신념을 갖게 되었다. 두번째 회사에서 나는 회의를 할 때나 발표를 할 때 목소리에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거나 말을 잘한다는 얘기를 곧잘 들었다. 이 회사에서 나는 제법 일 잘하는 카피라이터가 되었고, 이후로 오래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살아갈 발판을 마련했다. 세월이 흘러 지금 내겐 명함이 없다.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 명함에 뭐라고 적어야 할지 모르겠어서다. 대충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곤 한다. 내가 하(p. 37)고 있는 여러 일들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팟캐스터'로서의 일이다. 2000년에 내가 처음 '카피라이터'로서 명함을 받았을 때, 세상에 팟캐스트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싶었던 당시의 나는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해갈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직업 인생은 꽤 흥미롭게 흘러가고 있다. 뜬금없이 성우 공부를 했던 1년은 내 직업 인생에서 '잠깐 멈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보기엔 곁길로 샌 것 같았겠지만 내겐 무척 중요한 1년이었다. 처음 만난 내게 대뜸 성우가 되어보라고 권했던 옛날의 그분께 문득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분이 툭 건넨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나는 이제 말하기 책을 쓰는 사람까지 되었으니까. 말의 힘이 이토록 크다(p. 38). 그 무렵 혼자 남미로 여행을 떠났다. 떠나기 전 수첩에 호기롭게 이렇게 썼다.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되자! 여행에서 만날 낯선 사람과 새로운 경험에 열린 적극적인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옛날 중학교 안에서는 활발하지만 학교를 나서면 다시 쭈그러들었던 나처 럼, 지금 나의 태도가 이 좋은 사람들의 모임 안에서만 유지될지 아니면 전혀 다른 상황, 심지어 다른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지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첫 기착지였던 홍콩에서 여섯 시간을 머물러야 했다. 공항 안에서만 머물기엔 어중간한 시간이라 관광안내소에 조언을 구한 뒤 침사추이로 가는 버스를 탔다. 2층 버스의 위층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가는데 중간의 정류장에서 인도인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타더니 내 옆에 앉았다. 다른 자리도 텅텅 비어 있는데 하(p. 52)필 왜 내 옆자리에·•••·•? 처음엔 좀 의아하고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애기를 나눠보니 그 사 람은 인도에서 홍콩을 자주 오가는 비즈니스맨이었다. 그는 2층 버스의 맨 앞자리야말로 홍콩 관광의 백미라고 했다. 과연 거기 앉아서 보니 한자와 영어가 뒤섞인 홍콩의 이국적인 네온사인이 눈높이에서 양쪽으로 흘러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그가 굳이 내 옆자리에 앉은 이유였다. 그는 내게 침사추이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곳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내릴 정류장보다 한 정류장 더 가서 나와 함께 내려 다시 한번 친절하게 곳곳의 위치를 알려준 뒤 뒤돌아 자신의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여행의 시작에서 있었던 이 경험은 나에게 열린 마음의 중요성을 멋지게 일깨워주었다. 내가 말을 걸지 않았다면 나는 이 친절한 아저씨를 불편하고 찜찜하게만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여행 내내 반복된 경험이었다. 내가 먼저 상대에게 마음을 열고 매너를 갖추어 말을 걸면 상대 또한 잠시나마 자신의 세계를 내게 보(p. 53)여주었다. 나는 그로부터 반년 동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볼리비아, 브라질, 모로코, 스페인을 거쳤다. 인도인 비즈니스맨 아저씨를 필두로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이때 언어가 통하느냐 아니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 마음을 열려는 태도다. 미리 재단하려는 마음 없이. 여기서 세계를 파악하는 두 태도의 차이를 읽을 수 있다. 즉 세계를 화분들의 집합으로 파악하느냐, 아니면 하나의 거대한 숲으로 이해하느냐. 좁은 화분을 벗어나 울창한 숲속으로 나아가려면 우선 내 마음이라는 화분부터 깨버려야 할 것이다.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된다는 건 내게 그런 의미였다(p. 56).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 카피라이터가 하는 일의 본질은 칭찬거리 찾기다. 내가 광고할 브랜드나 제품이 다른 브랜드나 제품과 어느 면에서 다르고 더 나은가를 찾아내어 알리는 일이다. 모든 면에서 칭찬거리가 많은 품목도 있겠으나 선뜻 칭찬거리를 찾기 힘들 때도 있다. 그래도 세상 모든 제품은, 하다못해 엇비슷한 생수 한 병이라 하더라도 성분이나 가격, 접근성, 패키지 디자인 등에서 단 하나라도 강점이 있다. 어떤 제품은 품질이 뛰어나고 어떤 제품은 값이 싸다. 어떤 제품은 손쉽게 구할 수 있어 편리하고 어떤 제품은 손쉽게 구(p. 128)할 수 없어 독특하다. 같은 요소라도 카피라이터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칭찬거리가 될 수 있다. 광고 교과서에 실리곤 하는 사례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1959년 독일 자동차 폭스바겐 비틀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의 일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큼지막하고 과시적인 디자인의 자동차가 인기였다. 거기에 조그맣고 실용적인 '딱정벌레차' 비틀이 등장하며 내걸었던 캠페인 슬로건은 Think small(작게 생각하라)이었다. 거리의 빌보드 광고판이나 신문광고에서도 여백을 텅 비운 채 안 그래도 작은 차를 딱정벌레처럼 더 조그마하게 보여주고 작은 차의 칭찬거리를 강조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광고의 고전으로 불리는 이 시리즈는 오랫동안 이어지며 자동차에 대한 미국인들의 생각을 바꿔놓았고 크게 히트했다. 그중에는 웃음이 터지는 이런 헤드라인도 있었다. 'It makes your house look bigger(이 차는 당신의 집을 더 커 보이게 합니다)' 이 조그만 차를 집 앞에 세워놓으면 상대적으로 집이 커 보이는 효과가 있다니, 정말이지 생각도 못한 칭찬거리다. 유명한 카피라이터 데이비드 오길비는 이런 말을 했(p. 129)다. "재미없는 제품은 없다. 재미없는 카피라이터가 있을 뿐이다." 카피라이터로 오래 일한 나는 브랜드나 제품뿐 아니라 책이나 사람에게서도 칭찬거리를 잘 찾아낸다. 아니, 오히려 카피라이터로 오랜 기간 즐겁게 일할 수 있었던 데는 숨은 칭찬거리를 발굴해내기를 좋아하는 천성이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팟캐스트를 통해 작가 인터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책과 작가의 남다른 장점을 찾아내 칭찬을 많이 했는데, 그러다보니 어느새 '칭찬폭격기'라는 별명이 내게 붙어 있었다. 작가가 미처 겸양을 차릴 새도 없이 면전에서 칭찬을 퍼부어 '초토화(?)'해버린다는 의미다. 작가님들은 곧잘 말씀하기를, 자신이 책을 쓸 때 알아봐 주길 바라며 공들였던 부분을 내가 정확하게 끄집어내 칭찬해줘서 놀랐고 고맙다고 한다. 나는 그럴 때가 참 즐겁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 데 에너지를 쓸 때가. 사람들이 지나치기 쉬운 부분에 조명을 비추어 아름다움이 환하게 드러나 보이도록 하는 게 카피라이터 출신인 나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칭찬거리를 구체적으로 찾아내 정확하게 칭찬하는 일. 어떤 청취자들은 이미 읽은 책인데도 팟캐스(p. 130)트를 듣고 나면 그런 포인트가 있었구나 싶어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게 된다고 말한다. 마인드맵 워크숍을 할 때면 '자신의 신체적 단점에서 장점 찾기'를 마인드맵으로 작성해보라고 한다. 생각 못한 답들이 많이 나온다. '시력이 안 좋다'는 단점에는 '지저분한 게 눈에 덜 띄어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안경의 변화로 다양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키가 작다'는 단점에는 '연애할 때 품에 쏙 안긴다' '술 취하면 친구들이 들어서 옮기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하체가 굵다'는 단점에는 '다리가 튼튼해 산행에서 지치지 않는다' '버스가 흔들려도 안정적으로 서 있는다'는 장점이 있다. 이렇듯 세상 모든 것들은 어떤 프레임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무언가를 기존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이 창의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나 남이 지닌 장점에서조차 기어이 단점을 찾아내 미워하곤 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나는 되도록 내가 지닌 창의성을 칭찬거리를 발견해내는 데 쓰고 싶다. 세상사에서 좋은 점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결국(p. 131) 본인의 환경을 더 나은 것으로 여기게끔 한다. 또 주변의 좋은 것을 찾아내 칭찬하는 일을 계속하면 좋은 것이 무럭 무럭 자라날 테니 실제로도 나를 둘러싼 세상이 더 나아 질 것이다. 좋은 환경 속에 나를 놓아두면 나는 거기서 에너지를 얻어 좋은 것을 더 많이 발견하고 칭찬하게 되므로 선순환이 일어난다. 내가 다니는 길가에 꽃씨를 뿌리고 비료를 주는 것과 같다. 그건 결국 나를 위한 일이 아닐까? 칭찬폭격기라는 별명이 썩 마음에 든다. 칭찬폭격은 무얼 파괴하기보다는 좋은 것을 북돋우는 일이니, 세상의 폭격이란 폭격 중에 가장 좋은 축에 들 것이다(p. 132). 설득은 매혹을 이기지 못한다 TV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게 하려면 부모가 먼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같은 얘기가 나오면 엄마는 "저거 다 거짓말이다"라고 한다. 내가 어릴 적부터 나의 부모님은 주구장창 책을 읽어왔다. 아빠는 문학 선생님이었고 아빠보다 더 다독가인 엄마는 아이 둘을 낳고도 깨알 같은 세로쓰기로 된 세계문학전집을 읽어댔다. TV에서 말하는 이론에 따르면 자식들은 자연스레 책에 흥미를 보여야 하나 나와 오빠는 책에 대한 태도가 전혀 달랐다고 한다. 나는 책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오빠는 그렇지가 않(p. 176)았다. 책에 좀 흥미를 붙여주려고 흥미진진한 추리소설 같은 걸 사주면 어린 내가 먼저 열광하며 읽고는 범인을 말하고 싶어 안달인 반면 오빠는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걸 보며 엄마는 책을 좋아하는 취향 같은 것은 누가 본을 보이건 말건 간에 타고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세월이 흐르자 오빠의 취향은 책이 아니라 영화와 여행으로 드러났다. 40대 중반의 직장인이며 아이 둘의 아빠인 오빠는 걸핏하면 온 가족을 싣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여행을 다닌다. 주말이면 조조영화부터 하루에 두 번씩도 극장에 가고 자신만의 DVD 컬렉션을 쌓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오빠를 흥미롭게 관찰하며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는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 그게 꼭 책일 필요는 없지." 내가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하게 된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은 아무도 내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모님은 내가 책을 읽거나 말거나 별로 신경쓰(p. 177)지 않으셨다. 친구네 집에 가면 번듯한 명작 동화 전집들이 꽂혀 있곤 했는데 나는 신이 나서 이것저것 꺼내서 읽었지만 정작 그 친구들은 몇 권 빼고는 손도 안 대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집에는 동화 전집 같은 게 없었고 엄마 아빠가 보는 어른용 책들만 많았다. 나는 읽었던 책을 읽고 또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는 분위기는커녕 책 읽기를 칭찬하는 분위기도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책을 숙제 같은 것이 아닌 친구처럼 여길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적 나는 더더욱 시키면 안 하는 스타일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6년 내내 숙제를 한 번도 안 해가서 선생님한테 혼나곤 했다. 당시엔 체벌이 있어서 손바닥에 멍이 들 정도로 맞기도 했건만 그런데도 왜 숙제를 안 했는지는 지금도 잘 이해가 안 간다.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그런 성향이 있을 것이다. 방 꼴이 엉망이라 더 이상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막 방 청소를 시작하려다 가도 마침 그때 문을 연 엄마나 아빠가 "너 방 꼴이 이게 뭐야! 청소 좀 해라!" 하고 잔소리를 하면 딱 하기 싫어지(p. 178)는 것. 그렇지 않은가? 누구나 시키는 일은 하기 싫어지는 법이다. 광고와 브랜딩을 하면서 얻은 큰 깨달음 중 하나는 '설득은 매혹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옳다고 이성적으로 설득되어서 움직이기보다는 일단 매혹된 것에 이성적인 듯한 이유를 갖다붙이려는 심리가 있다. 이런 심리 작용이 드러난 에피소드가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 중 페인트칠 이야기일 것이다. 화창한 날 친구들이 놀러가는 동안 톰 소여는 벌로 담장에 페인트칠을 해야 했다. 약올리려는 친구 벤 앞에서 톰은 페인트칠이 너무 재미있어서 심취한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나 한 번만 칠해볼게"라는 벤에게 안 된다고 거절하기까지 한다. 점점 '정말인가?' 싶어진 벤은 결국 뇌물로 사과까지 바치면서 페인트칠을 자청해서 하게 된다. 나중에는 친구들이 여럿 와서 뇌물을 줘가며 너도나도 신이 나서 페인트칠을 하는 통에 톰 소여는 담장을 여러 번 덧칠까지 해서 임무를 완수하게 된다. 만약 여기서 톰이 벤에게 "너도 페인트 한 번 칠해봐! 정말 재미있을걸?"이라고 먼저 제안했다면 벤(p. 179)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1. 사람들은 재미있어 보이는 것에는 사례를 지불해 가면서까지 하려고 든다. 2. 누가 시키면 하기 싫지만 같은 일도 자발적으로는 기꺼이 한다. 다독가 중의 다독가이자 평생을 도서관지기로 살았던 아르헨티나의 위대한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해요." 『개인주의자 선언』 『미스 함무라비』의 저자 문유석 작가님이 《책읽아웃>에 나오셨을 때 이야기 나눈 신간의 제목은 『쾌락독서』였다. 문유석 작가님이 평생 즐거움을 위해 읽어온 책들을 다른 책이었다. 엄마는 이 책이 나왔을 때 제목을 보고는 내게 "하나야, 이게 바로 우리가 평생 해 온 얘기 아이가?"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도서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절대 하지 않는 말이 있다. 그건 바로 책 읽으라는 잔소리다. '여러분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베스트셀러 말고 고전을 읽으(p. 180)세요 책을 많이 읽으면 길이 보입니다' 같은 관습적인 말은 오히려 책을 숙제처럼 여기게 하는 잔소리들이다. 나의 오빠가 애호하는 영화와 비교해보자. '여러분 영화를 많이 봐야 합니다' '지금 흥행하는 영화들 말고 고전 영화를 보세요' '영화를 많이 보면 길이 보입니다'.... 영화 전공 학생이 아니고서야 이런 말을 자주 듣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양한 영화들을 자발적으로 즐긴다. 오빠가 주 말 아침 일찍 일어나 조조 영화를 보러 가게 하는 힘은 그런 잔소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나는 책 읽기 자체를 교양의 척도로 삼고 관습적으로 남에게 책 읽기를 권하는 말들이 정작 사람들을 책에서 멀어지게 하는 잔소리라고 생각한다.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같은 말들 말이다. 세상에는 위대한 책도 있고 안 읽는 게 차라리 나은 책도 있다. 고상한 책도, 지적인 책도 있겠으나 책을 읽는 행위 자체는 고상할 것도 지적일 것도 없다. 내게 책 읽기는 어디까지나 즐거운 취미이고 엔터테인먼트다. 어렵고 두꺼운 책을 읽어나가는 것도 암벽등반 같은 재미를 준다. 암벽등반이 누가 시켜서 하는 고행이 아니듯, 책 읽기도 스스로가(p. 181)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다 책 읽으라는 잔소리를 일절 하지 않지만 놀랍게도 〈책 읽아웃〉의 '영업력'은 엄청나다. 박서련 작가님은 어느 날 본인의 저서인 『체공녀 강주룡』의 판매 지수가 솟구친 것을 보고 이게 무슨 일인가 했더니, 전날 '삼천포책방'에서 이 책을 재미있게 소개했기 때문이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책읽아웃: 김하나의 측면돌파〉 85-2 도덕과 노동과 운동 편). '삼천포책방'에서 우리는 그저 각자 재미있게 읽은 책을 가지고 와서 마치 어제 본 드라마 얘기하듯 신나게 책 수다를 떨 뿐이다(아무도 드라마를 많이 보라고 권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드라마를 열심히 본다). 우리의 목표는 책 판매고를 올리는 것도 아니고, 독서를 권장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끼리 책 놓고 떠드는 수다가 이렇게나 재미있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그런데 청취자들은 왠지 모르게 우리의 책 수다를 들으면 나도 얼른 그 책을 읽고 이 수다에 동참해야겠다는 욕구가 들끓는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영업력'의 비밀이다. 잔소리는 할 필요가 없다. 마치 톰 소여의 페인트칠처럼. 설득은 매혹을 이기지 못한다(p.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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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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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21】 다른 사람의 일상, 에세이 읽기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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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20】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에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이 있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즐기라'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것이다. 그 앞에는 한 마디가 더 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항상 기억하라'는 뜻이다.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 두 개념을 연결하면 '사람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니, 그 죽음을 기억하고 현재에 충실하라'는 의미가 된다. 살아가는 동안 이 두 문장을 늘 잊지 말고 기억하자. 그러면 죽음 앞에서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수많은 죽음의 모습이 바뀔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물론 죽음의 슬픔은 한 순간 쉽게 전환될 수 없는 감정이다. 하지만 죽음 을 배우고 또 받아들이며 삶 속에서 가까이 둘 수 있다면, 죽음 이야말로 우리 삶의 방향성을 가늠하고 되새기게 하는 강렬한 계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을 두려워하거나 부정하는 대신, 삶(p. 20)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자신과 타인에게 더 깊은 애정과 책임감을 가질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되돌아보고 싶은 것도 결국 '인생'이다. 누구나 언젠가 반드시 맞이할 '죽음'에 대해서 배우고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총 3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고, 꼭 나누고 싶은 3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나에게 그랬듯이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도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이 깊어지고 넓어질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원고를 써 내려갔다. 첫째, 죽음을 배우는 과정은 삶의 유한함을 깨닫는 과정이다. 유한한 시간을 인식할 때, 우리는 매 순간을 귀하게 여길 수 있고, 선택과 행동에 신중해질 수 있다.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삶의 순간은 고유하고 특별하다. 죽음을 의식하면 삶에 더 겸손해지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게 된다. 유한한 생 앞에서 더 열심히 사랑하고, 더 깊이 이해하며, 더 온전히 살아가려는 의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간과하는 것들, 예컨대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단순한 일상의 기쁨 등을 새롭게 조명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삶에서 중요한 것은(p. 21) 진정 무엇인지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둘째,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은 우리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회피를 극복하게 돕는다. 죽음이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임을 이해하게 된다면, 불안보다는 평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타인의 죽음을 이해함으로써 사랑과 연대의 가치를 발견하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넬 수 있게 한다. 셋째, 삶을 기록하는 과정은 자신이 살았던 삶의 흔적을 남기고, 다음 세대에게 삶과 죽음의 가치를 전하는 행위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타인과 지속적으로 연결되며,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삶의 마지막 준비를 도우며,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는 과정임을 알려준다. 장례, 연명의료, 유산 등 죽음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미리 정리하고 준비한다면, 남겨진 사람들에게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이는 자신의 죽음을 존엄하게 받아들이는 행위이면서 남겨진 이들을 위한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는 1년 6개월 전, 사랑하는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그 이별은 감당하기 어려운 깊은 슬픔을 안겨주었지만, 애도의 시간을 지나며 어머니의 삶이 내게 남긴 크나큰 용기를 배울 수 있었다(p. 22). 무엇보다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사랑과 이해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때 비로소 죽음이 끝이 아니라, 삶이 남긴 흔적을 통해 계속 이어지는 여정임을 깊이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삶과 죽음에 대한 무거운 고민이 짓누를 때,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할 때,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픔 속에서 길을 헤맬 때, 그리고 삶의 목적이 흐려졌다고 느낄 때, 독자 여러분께 따뜻한 위로와 방향을 건네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죽음을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여겼다면, 이 책을 통해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또한, 삶과 죽음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삶의 목표와 방향성을 다시금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배움의 기회로 삼아 현재를 더욱 충만하게 살아갈 동기를 얻었으면 한다. 우리는 죽음을 상상할 수 있기에,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다(p. 23). 사별로 인한 분노와 화는 결국 직접 쓰는 글, 감정의 표현 등 언어로 바꿔 누그러뜨릴 수 있다. 이 역시 친구나 가족, 심리상담가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등 외부 자원의 도움을 받기를 권한다. 가능하다면 분노를 신체적 에너지로 승화해 대화를 통한 표현, 운동, 춤 또는 노래 등으로 해소하는 것이 좋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와의 영원한 이별 후 공포나 불안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생에 의미가 없다고 지속적으로 생각한다면 오히려 자신의 일상에 빨리 복귀하는 것이 좋다. 주변 사람에게 애써 괜찮다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자신이 감정적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려 그들의 수용과 이해를 구할 수 있도록 하자(p. 54).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애도의 과정을 보내야 할까? 먼저 상실 그 자체를 현실로 인정했으면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오랫동안 인간이 경험해온 사건으로, 인류에게 주어진 보편적 인 운명이다. 상실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것은 초기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일이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부정과 회피에 사로잡히게 되면 애도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슬픔의 심연에 빠지게 될 수 있다. 결국 누구나 언젠가 겪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p. 61) 둘째, 상실로 인한 고통을 온전히 겪어내는 것이다. 애도의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과 슬픔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고통을 억누르는 경우, 신체적 통증이나 부적응적인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충분히 애도하지 못할 경우, 새로운 이별 앞에서 더 깊이 절망하게 된다. 꺼이꺼이 울어도 괜찮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슬퍼해도 괜찮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충분히, 그리고 깊게 슬퍼하는 용기가 중요하다. 셋째, 애도의 단계에서 원망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기꺼이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원망의 대상은 사랑하는 이를 마지막에 돌본 의료진일 수도 있고, 주변 가족일 수도 있으며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내면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마음껏 발산해 감정을 정화하는 게 중요하다. 다만 슬픔이 분노로 전이되면서 다듬어지지 않으면, 부정적인 에너지가 누적되어 증오의 마음이 될 수 있다. 증오는 그 자체로 자신의 삶을 파괴하기 때문에, 애도의 단계에서 원망의 감정을 잘 인지하고, 보살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넷째, 사랑하는 이가 없는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그가 없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란 절대 쉽지 않다. 어느 날 떠난 이가 떠오르는 일을 막을 길이 없기에 마음속 깊은 곳의 슬픔을 일 깨우기 일쑤다. 그러한 순간들을 자신이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p. 62)지 보여주는 결과로 받아들이자. 일상생활에 적응하다 보면 떠난 이에 대한 슬픔이 점차 그리움으로, 또 애틋한 기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만일 떠난 이의 생각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면, 새로운 역할을 맡는다거나 상담을 받는 등 다양한 자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애도의 과정에서 마지막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자신의 삶을 이어 나가는 것이다. 고인에 대한 사랑과 기억을 끊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떠난 이를 잊을 방 법'이란 없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사랑하는 이의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게 삶의 유한성을 인지하고, 내 삶을 소중히 다루고 유지하는 것이다(p. 63). 미국의 유명 드라마인 〈CSI : 라스베이거스〉에서 주인공 그리섬 반장은 "마지막에 어떻게 죽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과정으로 암을 선택한다. 신체적 기능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서서히 그 기능을 상실해가며 생을 보낼 수 있다는 측면을 고려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나라는 사망 전 항암 치료를 받는 비율이 미국에 비해 3배 정도 높다고 알려져 있다. 연명의료 직전까지 치료를 고집하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마지막 준비를 할 여력 없이 보내(p. 69)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의 마지막을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서 수많은 튜브가연 결된 자신의 신체를 바라보며 고통 속에 죽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마지막까지 치료를 받는 것이 가족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는 사고가 지배적이 어서 현재도 병원에서 여생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p. 70).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에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이 있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즐기라'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것이다. 그 앞에는 한 마디가 더 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항상 기억하라'는 뜻이다.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 두 개념을 연결하면 '사람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니, 그 죽음을 기억하고 현재에 충실하라'는 의미가 된다. 삶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그 유한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질문을 건네는 구절이다(p. 75). 우리가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 살 수 있다면, 적어도 죽음이 찾아올 때 후회할 일이 적지 않을까? 탄생에서 죽음으로 완결되는 것을 삶이라고 본다면, 죽음이 없는 삶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죽음이 없다면 우리는 지루한 영원성에 갇혀 삶의 모든 행위에 허무와 공허만을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자아를 실현하는 것도 언제까지나 미룰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존재를 인식하기에 현재의 삶을 의미 있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은 현재의 삶에서 그 의미를 찾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좋은 삶'의 끝에는 '좋은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닐까(p. 76). 그렇다면 죽음을 능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특히 죽음이 멀게 느껴지는 젊고 건강할 때, 생의 마지막을 위해 준비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고민해보길 권한다. 먼저, 오늘의 삶을 잘 준비했으면 한다. 오늘의 삶을 잘 준비 하는 것이 곧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사(p. 79)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오늘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보자. 하나는 몸과 마음의 건강이며, 또 다른 하나는 재정적 건전성이다. 몸의 건강은 근력, 유연성, 그리고 지구력에 의해 좌우된다. 이 세 가지를 키우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맞는 다양한 운동을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또한 긍정적 태도를 지니고 스트레스 대처능력이 있다면 마음이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는 필요에 따라 명상, 묵상, 심리치료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재정적 건전성은 욕구 충족의 삶을 살 것인지, 혹은 소욕지족의 삶을 살 것인지와 같이 삶의 태도를 어떤 방식으로 설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현실적으로는 젊고 건강할 때부터 저축과 건전한 투자를 통해 장기적인 재정 계획을 수립하고, 그 계획을 차근차근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내가 하고 싶은 것bucket list과 하고 싶지 않은 것duck-it 1ist을 정리해보자.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두 가지는 하고 싶은 일을 해보지 못한 것과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을 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좋은 죽음을 위한 준비는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과 같다. 죽음이 멀리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시기부터 자신의 삶에서 꼭 해보고 싶은 일들'과 '하(p. 81)면 후회할 일들'의 목록을 정리해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고 하나씩 실천해보자. 셋째,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취미를 발전시켜 새로운 경력이 되도록 하자. 생활인으로서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직업으로 이어지는 일은 드물다. 이럴 때 자신의 직업에 대해 불만을 품고 소홀히 하기보다는 현재의 직업에 충실 하면서 동시에 꼭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자. 그리고 그런 일을 취미로 병행하면서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되 본업 못지않게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보자. 취미를 발전시키다 보면 어느새 그 취미는 제2의 본업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무언가에 몰두하면서 배우는 삶을 살게 될 때 죽음을 향한 여정에 더 큰 의미가 생긴다. 넷째, 식탁 위에서 죽음을 이야기하자. 일상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대화의 주제로 삼는 일을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죽음만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에 무궁무진한 내용을 담고 있는 주제도 없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라고 죽음을 에둘러 표현하며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러면서 현재의 삶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죽음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평소에 마음을 터(p. 82)놓고 지내는 가족, 친구들과 나누는 것이 편한데, 그러한 분위 기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가족 중 연장자가 솔선수범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가 먼저 자녀들에게 자신의 죽음관을 알리고, 가족들이 식사를 하면서도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라면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기초가 단단하다고 본다. 다섯째, 간접적으로 죽음을 경험해보자. 죽음은 일생에 단 한 번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간접적으로 죽음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준비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간접적인 경험이라도 그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력은 크다. 죽음에 관한 책을 읽음으로써 나의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읽는 독서 모임을 통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 다양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이외에도 죽음을 주제로 다루는 영화들이 많기 때문에 토론의 소재로 삼기에 더없이 좋다. 죽음학을 공부하는 모임이나 관련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죽음을 직시할 힘을 키우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스스로 자신의 묘비명이나 부고를 직접 써 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호스피스 기관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을(p. 83) 돕는 봉사활동을 하게 되면 간접적인 죽음 경험을 통해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사람은 물론, 세상에 남게 되는 가족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호스피스 기관의 봉사자들 대부분은 자신이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도움을 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봉사를 통해서 배우고 얻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여섯째, 죽음과 관련된 서류를 미리 작성해두자.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자기(운명)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결정권 행사를 위해서는 법적 효력이 있는 서류 를 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리 준비해두면 도움이 되는 서류로는 유언장,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장기기증 서약서, 법적 대리인 지정서 등이 있다. 유언장 작성은 물질적 유산뿐 아니라 장례식 절차, 자녀들에게 남기는 글 등 정신적 유산까지 모두 유언에 포함하도록 한다. 이런 서류를 작성할 때는 법적 요건을 갖추어 작성해야 하고, 필요에 따라 공증 절차를 밟아야 사후에 법적 효력을 인정 받을 수 있다(p. 84).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의 성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작성할 수 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서 정한 의료기관과 사회단체를 방문하여 정확한 설명을 직접 듣고 작성해야 하고, 작성 후에는 국가기관에 등록된다. 장기기증을 원하는 경우에는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사랑의장기기증 운동본부,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등에 등록할 수 있다. 이같은 서류들은 온전히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토대로 하는 것이므로 언제라도 그 내용을 바꾸거나 철회할 수 있다. 일곱째, 의료 문제를 의논할 주치의를 정하고 의료대리인 제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자. 현재 우리나라에는 장애인 주치의 제도는 있으나 일반 주치의 제도는 없다. 따라서 누구든 진료를 받고자 하면 가장 적절한 전문 진료 의원이나 2차 의료기관인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1,2차 의료기관에서 진료확인서를 받아 3차 의료기관인 대학병원에서 다시 진료를 받을 수도 있다. 이같은 의료전달체계 때문에 환자들이 여러 병의원의 전문 진료과를 방문하는 의료 쇼핑과 소수의 3차 의료기관에 환자가 집중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이와 같지만 가까운 의원이나 병원에 자신의 건강 전반을 상담할 수 있는 주치의를 정해두었으면 한다(p. 85). 평소에는 소소한 건강 문제까지도 모두 의논할 수 있고, 위급한 의료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보다 효율적으로 상급병원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주치의를 통해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의료대리인이란 의료 문제와 관련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자신의 뜻을 정확하게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의료대리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법적으로도 의료 대리인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핵가족화가 가속화되고 1인 가족이 급증하는 실정에서 앞으로 의료대리인의 필요성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의료대리인에 대한 인식 개선과 제도 도입이 사회적으로 논의되었으면 한다. 여덟째, 자신이 원하는 마지막 모습을 그려보고,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자. 죽음을 이야기하기도 어려운데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편안하고 안정된 장소에서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죽음을 맞이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그것만으로도 삶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마지막 시간을 평안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평소에 가족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대인 관계가 원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또 집이든 요양시설이든 의(p. 86)료기관이든 어디에 있든지 가장 적절한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이 가능해야 한다. 따라서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건강하게 해결해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과 경제적 자립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계획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다양한 형태로 생의 마지막 시간을 준비하게 된다면, 언제 어떻게 맞닥뜨릴지 모르는 죽음을 더 의연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삶 속에 녹아 있는 죽음 준비를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p. 87). 행복한 삶의 마무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자신의 삶에 대한 주도적인 태도이다. 삶을 어떻게 살아왔든, 마지막 순간은 우리가 그간의 여정을 정리하고 사람들과 연결되며,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마무리를 지을 기회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준비된 마음과 계획이 필요하다. 죽음을 맞이하기 전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정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를 공유하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장기기증 서약, 자산 정리, 그리고 유 언 작성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해 남겨진 사람들이 상실 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삶을 충실히 사는 자세가 요구된다. 삶을 진심으로 살며 사랑하고, 감사하자. 매 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이 행복한 마무리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이다. 결국, 삶의 마무리는 살(p. 230)아온 방식과 맞닿아 있다. 우리가 죽음을 앞둔 순간에 가장 후회하는 것은 사랑하지 않은 시간, 연결되지 않은 관계, 미루어 둔 감사일 것이다. 행복한 마무리를 위해,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 셋째, 죽음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죽음을 피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는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죽음을 삶의 적으로 여기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 여길 때 우리는 삶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삶의 일부로서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가족이나 친구와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죽음을 배우고 준비한다는 것은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지, 누구와 연결될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죽음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통해 삶의 가치를 재발견한다면, 지금 보다 더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p.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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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20】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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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19】 죄와 벌 그리고 참회의 역설인 세상살이
- 깊은 내용을 잘 읽히게 쓴 소설이다. 어떤 책에서 소개받고 읽었는데 좋았다. 죄의 문제, 살인의 문제, 유족의 고통 등등. 많은 것들을 다루고 있다. 살인자는 회개하지 않고 사형 당할 수 있다. 이것이 "사람을 죽인 사람의 반성은 어차피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한데 말이에요."라는 말로 나온다. 반면 진정으로 반성하는 자는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 이 역설과 아이러니가 잘 버무려진 수작이다. 하지만 그에게 사건은 이미 과거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의 운명밖에는 관심이 없었지요.....사형이 집행된 것은 아시나요?(p. 200) "알고 있습니다. 신문사에서 전화가 왔었지요." 사형 판결이 나고 나서 2년쯤 지났을 때였다. 기자가 전화를 걸어와서, 당시 범인의 사형이 집행됐는데 한마디 해달라고 했다. 그는 물론 거절했다. 그것 말고 재판소 등 공적 기관에서 연락이 온 적은 없었다. 신문사의 전화가 없었으면 아직도 몰랐을지 모른다. "히루카와의 사형이 집행된 이후, 뭔가 달라진 게 있나요?" 나카하라는 즉시 대답했다. "아니요. 아무것도.... 무엇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아, 그래?' 하고 생각했을 뿐이지요." "그렇겠지요. 그리고 히루카와도 결국 진정한 의미의 반성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사형 판결은 그를 바꾸지 못했지요." 히라이는 약간 사시인 눈으로 나카하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형은 무력(無力)합니다."(p. 201). 그녀는 여기에서 분노를 그대로 드러냈다. "딸이 살해된 사건에서도 히루카와는 입만 열면 사죄도 하고 반성도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그 정도로 연기는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히루카와는 교도소에(p. 211)서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교회에도 참석했겠지만, 조금 더 주의 깊게 관찰했다면 어금니를 숨겼을 뿐이라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교도소 밖으로 내보내다니, 지방갱생보호위원회 위원의 눈은 그냥 뚫려 있는 구멍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석방은 결국 교도소가 가득 찼다는 이유만으로 이루어지는 무책임한 행위일 뿐이다. 만약 최초의 사건에서 히루카와를 사형에 처했다면 내 딸은 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히루카와지만, 그를 살려서 다시 사회로 돌려보낸 것은 국가다. 즉, 내 딸은 국가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계획적이든 아니든, 충동적이든 아니든, 또 사람을 죽일 우려가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그런 사람을 사형에 처하지 않고 유기형을 내리는 일이 적지 않다. 대체 누가 '이 살인범은 교도소에 몇 년만 있으면 참사람이 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징역의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은 재범률이 높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갱생했느냐 안 했느냐를 완벽하게 판단할 방법이 없다면, 갱생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형벌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마무리했다(p. 212).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p. 213). 하나에는 죽을힘을 다해 호소했다. 하지만 사요코의 뜻을 바꿀 수는 없었다. 사요코는 담담하게 말했다(p. 404). "이러지 마세요. 난 모른 척할 수 없어요. 아무리 갓 태어난 아이라고 해도 어엿한 인간이에요. 그 생명을 빼앗고도 아무런 벌도 받지 않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게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알기에 사오리 씨는 지금까지 괴로워했어요. 당신 남편도 자신이 저지른 죗값을 치러야 해요." "남편은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알고 있어요. 그 래서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왔어요. 그 사람이 얼마나 성실하게 사는지는 제가 가장 잘 알아요." "성실하게 사는 건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 특별히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죠." 사요코는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덧붙였다. "가령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난 사람을 죽인 사람은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명이란 그만큼 소중한 거니까요. 아무리 반성해도, 아무리 후회해도, 한 번 잃어버린 생명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요." "하지만 이미 20년이 넘었는데....." "그 세월에 어떤 의미가 있죠? 당신도 아이가 있잖아요. 누군가가 그 아이를 죽였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아이를 죽인 사람이 20년간 반성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나요?" 하나에는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사(p. 405)요코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난 당신 남편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게 되진 않겠지요. 지금의 법은 범죄자에게 너무 관대하니까요. 사람을 죽인 사람의 반성은 어차피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한데 말이에요. 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는 십자가라도, 적어도 감옥 안에서 등에 지고 있어야 돼요. 당신 남편을 그냥 봐주면 모든 살인을 봐줘야 할 여지가 생기게 돼요. 그런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돼요." 그리고 "다음에 다시 올게요. 내 마음은 바뀌지 않으니까 남편과 잘 얘기해보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사요코는 그 자리를 떠났다. 하나에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채 현관문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p. 406). 하나에는 혀로 입술에 침을 묻힌 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나서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제 남편은 계속 속죄를 했어요!" 그녀는 선언하듯 단호하게 말했다. 다음 순간,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눈물도 닦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남편은 지금까지, 21년 전 사건에 대해 계속 속죄하면서 살아왔어요. 사요코 씨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저도 처음 알았어요. 그와 동시에 오랫동안 계속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왜 저 같은 한심한 여자와 결혼했을까 하는 의문이 겨우 풀렸지요. 제 아이의 친아빠는 남편이 아니에요. 제가 못된 남자에게 속아서 가진 아이지요. 하지만 남편은 그 아이를 자기 아이로 받아줬어요. 그것이 남편 나름대로 속죄하는 방법이었던 거죠. 아버지를 보살펴준 것도 마찬가지예요. 아마 옆방에서 사요코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그래서 은혜를 갚기 위해 그렇게(p. 412) 끔찍한 짓을 저지른 거죠. 만약에 그때...." 눈물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지, 그녀는 침을 삼킨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에 그때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면 전 틀림없이 죽었을 거예요. 아이도 태어나지 못했을 거고요. 그래요, 남편은 분명히 21년 전에 한 생명을 죽였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 이후에 두 생명을 구했어요. 그리고 의사로서 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어요. 남편 덕분에 얼마나 많은 난치병 아이들이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지 아세요? 남편은 지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작은 생명들을 구하고 있어요. 그래도 남편이 지금까지 속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세요? 교도소에 들어가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런 사람이 등에 지고 있는 십자가는 아무런 무게도 없을지 몰라요. 하지만 남편이 지금 등에 지고 있는 십자가는 그렇지 않아요. 너무나 무거워서 꼼짝도 할 수 없는, 무겁고 무거운 십자가예요. 나카하라 씨, 아이를 살해당한 유족으로서 대답해보세요. 교도소에서 반성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과 제 남편처럼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면서 사는 것, 무엇이 진정한 속죄라고 생각하세요?" 목소리의 톤이 계속 높아지면서 마지막은 날카로운 비명처(p. 413)럼 들렸다(p. 414). "사요코 씨를 왜.." 그녀는 신음하듯 간신히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그 여자는 죽을 수밖에 없었어. 우리 사위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야. 한마디로 말해서 성인군자지. 그 사람 덕분에 우리 딸은 행복해질 수 있었어. 딸만이 아니야. 나 같은 쓰레기까지 돌봐주고 있지. 지금 그 사람이 없어지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불행해지는지 알아? 20여 년 전, 철없을 때 낳은 아이를 죽인 게 뭐가 대단하다고 이 난리야? 그건 중절 수술이나 마찬가지잖아? 그들이 누구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는 거지? 누구를 슬프게 했다는 거지? 아이의 유족은 누구지? 당신들이 가해자이자 곧 유족이잖아. 그 아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당신들이고, 그 아이를 위해 슬퍼한 사람도 당신들뿐이잖아.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감옥에 가야 한다고? 가족 과 헤어져서 징역을 살아야 한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한번 말해봐. 당신이 지금 자수해서 감옥에 가면 뭐가 좋지?(p. 428) 그냥 마음 편하자고 하는 짓이잖아?" 정신없이 쏟아지는 말의 폭풍우에 사오리는 한마디도 대꾸 할 수 없었다. 후미야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생각한 적이 없다. 자수해서 교도소에 가면 뭐가 좋은지도 생각한 적이 없다. 다만 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자수하려고 한 것뿐이다. 죄와 정면으로 마주하려면 자수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뿐이다. 단, 그것이 자신의 의사인지 사요코의 강요에 의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녀는 후회했다. 역시 고백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비밀은 죽을 때까지 가슴속에 묻어두었어야 했다. 그녀는 무릎부터 무너졌다. 그리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안았다. 내가 왜 사요코 씨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되돌릴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는 자책감이 머릿속에서 격렬하게 소용돌이쳤다(p. 429). 옮긴이의 말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쫄깃해지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이번엔 사형 제도다! 평범한 샐러리맨인 나카하라. 그는 강도에게 사랑하는 외동딸을 잃는다. 아내인 사요코가 잠시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간 사이 딸이 강도에게 처참하게 살해된 것이다. 그 이후, 그의 목표는 오직 범인의 사형뿐! 마침내 범인은 사형을 당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허탈감과 깨어진 가정뿐이다. 그들 부부는 결국 아픔만 껴안은 채 이별을 선택한다. 딸을 잃은 지 11년 후, 한 형사가 그를 찾아온다. 사요코가 길거리에서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는 형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때 사요코와 이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이(p. 443)혼하지 않았다면 또 유족이 될 뻔했으니까요." 그런데 사요코의 살인 사건을 접하면서 그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은 지금까지 딸의 사건에서 도망치려고만 했는데, 사요코는 그 사실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책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더구나 사요코의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히가시노 게이고. 그는 항상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어떤 작품이든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이게 만들고, 어떤 작품이든 가슴이 쿵쾅거리게 만든다. 또 어떤 작품이든 심장이 덜컹 내려앉게 만들고, 어떤 작품이든 진한 눈물을 쏟게 만든다. 히가시노 게이고. 그는 항상 내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방황하는 칼날』에서는 미성년자의 범죄에 관해서, 『교통 경찰의 밤』에서는 교통사고법의 문제점에 관해서, 『아내가 사랑한 여자』에서는 인간은 왜 반드시 여자가 아니면 남자여야 하는가, 하는 사회문제에 관해서 고민하게 만든 것이다(p. 444). 이번에도 그는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내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토리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내용에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함과 동시에, 잇달아 쏟아지는 사회문제에 때로는 고민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렸다. 그 때문에 다음 내용을 읽기 위해 페이지를 넘기려는 손과, 잠시 고민하고 생각하기 위해 멈추는 손이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유족. 그것도 살인 사건의 유족.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범인의 사형뿐이다. 그러나 범인이 사형을 당한다고 해서 처참하게 죽은 가족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살인 사건의 유족은 무엇으로 위로를 받아야 할까? 이 작품의 제목인 '공허한 십자가'는 원래 사요코가 쓰고 있던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란 원고에 나오는 대목이다. 흔히 죄를 지은 사람은 평생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산다고 한다. 그런데 평생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사는 사람은 살인자가 아니라, 살인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피해자의 유족이 아닐까?(p. 445). 사형은 무력하다? 사형은 무력하지 않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있을까?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없다면, 사람을 죽인 사람은 무엇으로 심판해야 할까? 속죄는 무엇일까? 꼭 교도소에 들어가야만 속죄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가해자를 사형에 처하면, 가해자는 어떻게 속죄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이렇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에 대한 답을 하지 않는다. 그 답은 독자 여러분의 몫이기 때문이리라(p. 446). 2014년 9월 이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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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19】 죄와 벌 그리고 참회의 역설인 세상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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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18】 목회자 필독서, 소강석목사 신간『영혼을 담은 시 쓰기』
- 이틀만에, 정확히 말하면 총 몇 시간만에 이 책을 모두 읽었다. 그정로도 흡입력이 있고 설득력이 있으며 재미있고 막힘이 없다. 소강석 목사의 신간 『영혼을 담은 시 쓰기』 북 콘서트 ‘크리스마스에 詩가 내리면’을 취재 가서 이 책에 대해 저자 소강석 목사와 김종회 교수, 정호승 시인이 대담하는 것을 보며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취재 후 본당 로비 매대에서 팔고 있는 책을 구입해 저자 싸인도 받고 열심히 읽었다. 이 책은 우선 재미가 있다. 지루할 틈이 없다. 저자 소강석 목사는 어린 시절 이야기와 시를 쓰게 된 배경 등을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고 본인이 오랜 세월 연구해 온 시 작법에 대해 자신만의 이론을 펼치고 있다. 그만큼 이 분야의 대가가 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을 한번 읽는다해서 당장 시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목회자라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뜩 과거 신학생 시절 읽었던 김지찬 교수의 『언어의 직공이 되라』는 책이 떠 올랐다. 목회자는 언어에 능숙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하도 읽은지 오래 되어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검색해 보니 목차가 다음과 같았다. 제1부 서론:루터의 권면 1. 시인과 수사학자가 되라 제2부 소리와 의미 2. 소리에 유의하라 3. 유사 발음 반복에 주의하라 4. 동음 이의어 반복에 유의하라 5. 각운, 두운, 모운에 유의하라 제3부 비유적 언어와 의미 6. 비유적 언어에 유의하라 7. 직유에 유의하라 8. 은유에 유의하라 9. 환유에 유의하라 10. 제유에 유의하라 11. 의인법에 유의하라 12. 상징에 유의하라 13. 알레고리에 유의하라 제4부 수사법과 의미 14. 수사법에 유의하라 15. 아이러니에 주의하라 16. 풍자에 유의하라 17. 과장법에 유의하라 18. 패러디에 유의하라 제5부 결론: 언어는 존재의 집 19. 언어의 직공이 되라 이는 소강석 목사가 『영혼을 담은 시 쓰기』에서 제안하는 시 쓰는 방법과 일맥상통하다. 그런면에서 결국 목회자는 언어의 직공이 되어야 하며 그것은 시인이 되라는 말과도 같다. 물론 소강석 목사와 같은 시인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설교문 작성과 설교에 시의 요소를 가미한다면 설교는 더욱 풍성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모든 목회자가 읽어야 한다. 그것도 여러번 읽어야 하고 그때 이 책의 진가를 알게 될 것이다. 시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그 마음의 시선을 은유, 상징, 함축과 은닉의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운율의 언어로 쓰다 보면 시가 된다. 그래서 시를 쓰다 보면 자연을 가까이하게 되고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p. 9) 내가 시 속으로 들어가 꽃이 되기도 하고 시가 내 안으로 들어와 꽃을 피울 때도 있다. 성경도 당대 최고의 문학적 경지에 오른 예술적 작품성을 지닌 영감의 글이다. 그래서 특히 목회자라면 탁월한 수사학적 웅변가도 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문학적 감성과 독법의 테크닉도 있어야만 한다. 그럴 때 인간을 이해할 수 있고 더 깊 은 지혜와 사유, 감동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혼을 담은 시 쓰기》는 학문적 이론서라기보다는 내가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써 내려간 시의 이력서요, 자소서 같은 책이다. 어떻게 시를 쓰게 되었는지, 시적 환경과 상황, 시의 진보와 심화, 확장의 내력을 살펴볼 수 있다. 특별히 어떻게 시를 쓸 것인가에 대한 실제적인 방법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양한 현대 시인들의 시를 소개하면서 시 이론을 설명하였지만, 저작권 문제로 인하여 부득이하게 제목과 해설만 담게 되었다. 대신 나의 시를 많은 예문으로 소개하였다. 나의 시와 더불어 책에 수록된 시인들의 시를 직접 찾아 읽어 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p. 10). 이처럼 이야기는 사람들을 매혹하는 힘이 있다. 나는 이야기가 끝나면 또 해달라고 졸랐다. 할머니와 어머니, 누나들은 이야기보따리가 떨어지면 거짓말로 이야기를 지어서 해 주곤 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들 덕분에 나에게는 독특한 상상력과 창의성, 문학성이 길러졌다. 즉,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게 하는 창의적 내러티브의 힘이 생겼다. 나는 목회자로서 설교할 때도 이야기 설교를 한다. 어떤 딱딱한 교리나 이론적인 설교를 해도 이야기로 들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이야기 속에 빠진다. 마치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p. 19). 고난의 용광로 속에서 온갖 고생을 다 하며 고학으로 신학을 공부하고, 시골 벽촌에 가서 교회를 개척하고, 다시 서울 가락동에 올라와 맨손, 맨발, 맨땅에서 새에덴교회를 개척했다. 신적 소명의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나는 오히려 문학과 멀어졌다. 그때는 삶이 너무 처절하여 오직 기도, 오직 전도밖에 몰랐다. 젊은 시절, 그 어느 자매와도 손을 잡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거친 사명의 들길을 걸었다. 그 광야에서 오히려 내 가슴에 빛나던 시의 별빛은 흐릿해져 갔다. 그러나 내 삶이 문학이었고, 내 삶이 시였다. 광야를 걷는 삶에 축적되어 있는 문학성이 직접적인 글로 발화가(p. 36) 되고 시로 꽃피지는 않았지만, 푸른 청춘의 나날 자체가 시이고 문학이었다.(p. 37). 원시림 속에 있으면 마치 선악과를 따 먹기 전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죽하면 내가 <원시림>이라는 시에서 선악의 욕망을 버린 상태라면 원시림 안에서는, 시적 표현이긴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죄가 아니라고 노래하였겠는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절규하고 탄식하며 아우성치는 치열한 약육강식의 경쟁과 증오의 시대 속에서도 마음속에 원시 림을 품고 살아야 한다. 자신만의 원시림 속으로 들어가 삶을 돌아보며 신비로운 원형의 세계와 때 묻지 않은 푸른 적막의 언어를 찾아야 한다(p. 45). 시인은 길들여지고 학습되는 부분도 있지만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운명적으로 탄생했는가? 그건 아니다. 우리 모두는 다 시적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시를 쓰건 안 쓰건 인생은 한 폭의 시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태어나 시를 알고 시를 창작하고 경험하며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찬란한 행복인가(p. 48). 히브리서 11장 1절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다. 종교적으로는 바라는 것이지만 문학적으로는 그리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이나 그리는 것이 그리움이며, 그리움은 곧 사랑이다. 그러므로 시는 본성적으로 잃어버린 원형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다(p. 67). 〈쑥 캐는 소녀〉는 나의 마음 깊은 곳 그리움의 순정이 발화하여 쓴 시다. 나는 진리를 전하고 올곧게 살라고 설교하는 목사이다. 누구보다 성스러운 삶을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지켜야 할 윤리나 도덕의 울타리가 있다. 그러나 내 안의(p. 74) 시심의 날개가 사랑과 그리움을 싣고 시간을 역류하고 공간 을 초월할 때가 있다. 비록 빛바랜 추억의 앨범 같은 것일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소중한 추억과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 때 시는 발화하게 된다. 〈쑥 캐 소녀〉는 회색 도시의 경쟁과 분노, 야욕과 망상을 떠나 오직 애틋한 사랑으로만 가득하던 그 눈부셨던 4월의 봄 길을 걷게 한다(p. 75). 내가 생각하는 시의 정의 시는 먼저 깊은 시심을 갖고 이미 사랑을 갖고 있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새롭게 보고, 찾지 못 하는 것을 찾고, 남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며, 감추어진 시적• 창의적 생명 언어를 조합하여 은유적(상징성)이며 함축적이고 아주 낯설게 표현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시심의 바탕에는 하늘과 땅, 자연과 인간, 그리고 신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그 사랑의 눈과 마음이 모든 걸 새롭게 보고 느끼게 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시를 쓸 수 있다. 하나님과 인간, 자연을 향한 사랑이 있을 때 시가 솟아난다. 그러(p. 86)므로 시는 사랑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렇다고 순수한 문학적 감성만으로 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시는 인간과 자연과 하나님에 대한 사상과 감정, 영감을 운율이 있는 언어 로 압축하여 표현하는 문학이다. 그런 측면에서 시는 문학적 귀족성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나도 목회자이기 때문에 시가 고백적이고 설교적인 요소가 이따금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더욱더 시를 연구하고 습작을 지속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들을 써 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전문 출판사의 문턱을 넘어 출간하게 된 책이 바로 샘터에서 출간한 《꽃씨》라는 시집이다. 샘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통이 있는 출판사 중의 하나로 그동안 이해인, 법정 등과 같은 작가들의 책을 출간한 곳이다. 그런데 목회자로서는 최초로 나의 시집이 출간되었다. 샘터 역사상 유일하다는 것이다. 출간 이후에도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서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에서 베스트셀러 시집으로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5~6주 동안 시 분야에서 1위를 기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이후로도 계속 시집을 출간하여 《어느 모자의 초상》으로 천상병귀천문학대상을, 《다시, 별 헤는 밤》으로 윤동주문학상을,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p. 87)하게 되었다. 나도 나만의 시 세계에 안주했다면 오늘날의 시의 발전을 이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단순히 시를 사랑하는 애호가의 단계를 넘어 예술적 시를 창작하는 진정한 시인이 되고자 한다면, 더욱더 치열한 시 연구와 고도의 습작 훈련, 다독과 다상량을 통해서 시 창작을 해야 한다(p. 88). 시를 쓰려면 애절함,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시는 머리로 생각해서 억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시상이 찾아와야 쓸 수 있다. 이렇게 찾아온 시는 나에게, 혹 누군가에게, 아니면 시대를 향해 서정적•이상적• 예언적 메시지를 줄 수 있다. 그건 시인에게 축복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하늘에서 내리고 받는 것이 많다. 물론 시들이 삶의 순간순간마다 우리에게 찾아오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문예적 눈이 닫혀 있고 시심과 상상력이 닫혀 있으니 발견하지 못한다. 지금도 시는 어느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간절함이 필요하다. 그 간절(p. 91)한 마음으로 먼저 시집을 많이 읽어야 한다(p. 92). 나는 두 번의 성대 결절 수술을 받았다. 차가운 수술실에 들어갈 때마다 이대로 내 인생이 끝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 여러 다양한 애상이 떠오른다. 그리고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병상 침대에서 깨어나 바라보는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뭇잎 하나, 새싹 하나, 꽃 한 송이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따스한 햇살과 바람을 느끼고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이처럼 전혀 새로운 눈과 호흡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시선일 것이다(p.95). 시인은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시인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를 쓰고 싶어도 시인의 마음을 갖지 못하면 시를 쓸 수 없다(p. 103). 시의 시작-새롭게 보기 시 창작은 시공간의 제한을 벗어나는 상상력으로부 터 시작한다. 상상력은 시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다. 우리는 상상력을 통하여 시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상상은 우리 말로 '그리다'이다. 다시 말하면 상상력은 '그리는 힘'이다. 마음속으로만 그리는 것은 '그리움'이고, 선과 색채로 그리면 '그림'이 되며, 언어로 그리면 '시적 이미지'가 된다. 그래서 영국의 시인 C. D. 루이스는 “시적 이미지는 말로 그린 정열적 그림”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정열적이란 말은 강렬한 그리움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움은 곧 사랑이다. 그러니까 시인은 강렬한 사랑을(p. 108)하는 사람이다. '시'와 '노래'와 '그림'은 상상력으로 발원하여 도달한 그리움의 꽃이며 사랑의 열매이다. 곧 영혼의 열매인 것이다(p. 109). 시를 쓰려면 시인의 눈을 가져야 한다. 시인의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 사물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p. 112). 시의 기술-낯설게하기 '낯설게하기'는 러시아 문학가 빅토르 시클롭스키가 주장한 문학 기법 중 하나이다. 우리 주위에서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사물이나 관념을 낯설게 하여 전혀 새로운 느낌을 주도록 표현하는 것이다. 낯설게하기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시의 성공과 실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인이 가져야 할 매우 중요한 시 창작 기법이다. 여기서 낯설게하기라는 말을 어색한 표현이나 아마추어적인 표현을 포장하는 의미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시의 새로움을 넘어서 또 다른 고차원의 시적 기교를 말한다(p. 113). 시의 생명-창의성 시는 문득문득 찾아올 때가 있고 길을 가다가 주울 때도 있다. 또 애써 노력하여 쓰는 시도 있다. 그런데 전제 조건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 시가 찾아오고, 어떤 사람이 길을 갈 때 시를 줍고, 또 어떤 사람이 노력해서 시를 쓸 수 있는가. 바로 창의성이 있는 사람이다. 다른 문학 장르도 마찬가지겠지만, 특별히 시는 창의성이 생명이다. 창의적인 소재, 창의적인 언어의 직공이 되지 못하면 죽은 언어가 된다. 시인은 끊임없이 창의적인 이미지와 언어를 찾아 헤매는 고독한 순례자와 같다. 시인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생각하지 못한 것을 사유하는 창의적 존재이기 때문(p. 118)이다. 그런 의미에서 T. S. 엘리엇은 아마추어 시인은 흉내 내지만 진짜 시인은 훔쳐 온다고 했다. 시의 창의성을 강조한 것이다(p. 119). 똑같은 시선, 똑같은 감성, 똑같은 사고를 가지면 누구나 알고 있고 상상할 수 있는 상투적인 시밖에 쓸 수 없다. 그러나 시인이 창의적 눈과 마음, 상상력을 가지게 되면 전혀 새로운 시의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다. 독자는 그런 시인의 눈을 통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깊고 신비로운 세계와 만나게 된다(p. 121). 시의 디자인-이미지화 예술 작품의 창작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형상화하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무엇을'은 작품의 내용이며, '어떻게'는 작품의 형식이다. 그런데 '무엇을'이란 내용은 '인생' 혹은 '인간 존재' 등이 주안점이 되지만, '어떻게'란 형식은 시인의 모든 작품이 다 새로운 형식의 창작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 작품의 가치 평가는 어떻게 형상화되었느냐 하는 형식적 평가가 중요한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시의 창작은 곧 새로운 이미지의 형상화이다. 그래서 현대 시론에서 "시는 이미지이다'라는 정의는 곧 시의 형식적 정의를 의미한다. 시는 이미지 언어다. 설명이나 서사가 아(p. 128)니다. 그래서 은유와 직유, 비유와 상징의 언어로 표현한다. 은유는 시적 비유의 핵심이다(p. 129). 시의 여백-함축과 은닉 시는 함축과 은닉의 여백미가 있어야 한다. 한 편의 시를 통하여 독자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면 안 된다. 오히려 함축과 은닉을 통하여 시적 화자의 마음과 생각을 감추고 독자의 가슴에 또 다른 상상의 문을 열고 감동의 여운을 남겨야 한다. 특히 시를 통하여 설명하고 교훈하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함축과 은닉을 통한 여백미는 시 세계를 광활한 시공간 속으로 확장시킨다(p. 137). 시의 묘미-역설과 반어 시 창작의 기술 중에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역설과 반어적 표현이다. 다른 문학 장르는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그러나 시는 그것을 뛰어넘어 감동의 여진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독자들이 똑같은 시를 읽더라도 매번 새롭게 다가온다(p. 144). 시의 형식-운율과 문체 시는 운율이 생명이다. 현대 시의 경향이 아무리 자유시, 해체시를 표방한다고 해도 시는 본질적으로 운율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의 문체는 운율과 함께 연과 행이라는 기본적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지나치게 시의 형식을 파괴하고 운율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시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결코 좋은 시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시 창작을 하려면 시의 형식인 운율과 문체를 잊지 않아야 한다(p. 154). 시의 진화-모방과 창작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을 모방으로 본다. 따라서 모방 충동이 예술을 창작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이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4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 창작은 사람의 모방성에서 시작한다. 사람의 모방 본능은 어린아이 시절부터 본능적으로 있다. 그리고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사람은 가장 모방적인 동물이며 최초의 지식은 모방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방을 통해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 또한 사람의 본능이다." 시 창작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좋은 시를 모방해서 써 보면 어느새 자기 자신만의 새로운 색깔을 창조할 수 있다(p. 158). 시는 백지상태에서 전혀 새로운 언어로 그 림을 그릴 수도 있으나 기존의 시적 언어와 이미지 속에서 모방을 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창작을 할 수도 있다. 처음부터 훌륭한 시를 쓰는 사람은 없다. 처음에는 좋은 시인의 시를 필사해 보면서 시의 느낌을 익히고 점점 자신만의 색깔을 갖추어 가면 된다. 분명한 것은 모방이 흉내와는 다름을 알아야 한다. 창조적 모방을 하다 보면 훔침의 단계에 오른다(p. 161). 시의 진실-체험과 해석 시는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쓴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시에는 시적 화자의 삶의 체험과 해석을 통한 진실이 담겨 있어야 한다. 아무리 현란한 수사와 기교, 은유가 화려하게 펼쳐져 있어도 그 안에 시인의 체험을 통한 진실이 느껴지지 않으면 독자는 뒤로 물러난다. 시는 머리로 쓰는 단계, 가슴으로 쓰는 단계, 몸(삶)으로 쓰는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시는 삶의 현장 속에서 온몸으로 부딪치며 쓰는 것이다. 그것이 슬픔이든, 행복이든, 사랑과 분노든, 자신이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것을 가슴과 머리로 재해석하여 표현한다(p. 162). 시의 성격-콜라 같은 시, 물 같은 시 사람들은 콜라를 좋아한다. 그러나 콜라는 계속해서 마실 수 없다. 순간적인 미각의 만족은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정한 목마름을 해소해 주지 못한다. 시도 마찬가지다. 콜라와 같은 시가 있고, 물과 같은 시가 있다. 물과 같은 시는 순간적인 충격과 감각은 조금 덜할지 모르지만, 독자들의 가슴에 오랫동안 간직되며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p. 170). 어떤 현란한 수사나 작위적 강요가 없다. 그저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는 시인의 순수한 마음을 담담히 고백한다. 시는 상대방을 압박하거나 부담감을 주는 설득이나 교훈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 주는 낮고 다정한 질문이 되 어야 한다(p. 173). 시는 드러내지 않지만 그 어떤 것보다 선명하게 보이고, 강요하지 않지만 그 어떤 설득보다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마시고 또 마셔도 질리지 않고 힘이 되는 샘물 같은 시가 된다. 내 마음 강물 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멈추라 하여도 흘러야만 합니다 보냄을 아쉬워 않고 돌아옴을 반기지 않고 다시 옴을 그리워하지도 않습니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만이 행복이고 기쁨인 것을 흐르고 또 흐릅니다 미움도 원망도 슬픔도 고통도 고일 길이 없어서 흐르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멈추고 붙잡는 것이 속절없는 것을 흘러야 행복인 줄 알기에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 소강석, <내 마음 강물 되어〉 신학생 시절에 진심으로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셨다. 그래(p. 174)서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분을 자랑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그분에 대해 험담하면 오히려 더 크게 소리를 내며 그 분을 지켜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분이 그분을 찾아가 이렇게 물었다. "소 목사가 어떤 사람인가요?" 내가 개척한 교회가 건축을 앞두고 있을 때였는데, 우리 교회에 큰 헌금을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려고 찾아갔던 것이다. 그때 그분이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나는 소강석이를 잘 모르요. 솔직히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소." 이 말이 나에게 들리는 순간 나의 가슴은 청천벽력처럼 무너져 내렸다. '나는 그분을 얼마나 존경했는데, 나는 그분을 얼마나 신뢰하고 따랐는데···. 왜 그분은 나를 모른다고 하셨을까? 왜 나를 신뢰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을까?' 이 상처가 너무나 오래가고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 왜 그러셨느냐"고 찾아갈까도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 어른에게도 상처가 되고 나에게도 상처가 될까 봐 찾아가지 못했다. 그 상처는 내 마음의 응어리가 되고 가슴에 피가 굳을 정도였다. 시간이 흘러 그분이 천국에 가셨다. 나는 제일 먼저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분의 영정사진 앞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닦고 닦아도(p. 175)눈물이 계속 흘렀다. "목사님, 왜 그러셨어요? 왜 그때 저를 모른다고 하셨어요? 그때, 지금은 볼품없지만 소강석의 장래성은 내가 확실하게 보장한다고 한마디만 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왜 저를 모른다고 하셨어요?" 나는 끝까지 빈소를 지켰고 발인 예배까지 참석하였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강가에 서서 흐르는 강물을 보는데 위의 시구절이 떠올랐다. 정말 그렇다. 아무리 미움과 상처가 있더라도, 내 마음이 강물 되어 흘러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흘려보내지 못하니까 그것이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는 것이다. 미움도 원망도 슬픔도 고통도 그냥 강물처럼 흘려보내면 되는 것이다. 그것들을 붙잡고 있으면 속절없고 덧없을 뿐 이다. 그리고 어느 날 바닷가에 서서 이 시를 생각하니 선율이 떠올라서 〈내 마음 강물 되어〉라는 노래도 작곡하였다. 이 노래를 몇 번 부르고 나니까 가슴에 응어리가 다 녹아 흘러 버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삶의 진솔한 체험과 고백이 내재된 시는 강물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씻어 주고 위로해 준다(p. 176). 시의 혼-시대적 소통과 가교 시인은 하늘의 뜻을 나팔 부는 사명자이다. 시인을 상(商)나라에선 정인 (곧은 사람)이라 했고, 《시경》에서는 축(기도)이라고 했으며, 그리스에서는 시를 신탁이라 했고, 시인은 영매라고 했다. 신의 뜻을 전하는 사자라는 뜻이다. 나는 이것을 시대와 사람, 사람과 역사를 연결하는 고리 라고 표현하고 싶다. 우리나라도 개화기나 일제 강점기의 시를 보면 그 시대의 언어와 혼이 있다. 시인들은 역사의 암흑 속에서 고뇌와 번민의 밤을 보내며 한 줄 한 줄 시대의 혼을 담은 시를 지었다. 그들의 혼이 담긴 시는 시대를 위로하고 상처를 싸매어(p. 177) 주는 문학적 치유 역할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시대를 바라보는 혼이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만 보이는 역사적 직관과 통찰력이 생긴다. 그 역사적 통찰력을 기초로 하여, 개인의 사변적 시를 뛰어넘어 시대와 소통하는 역사적 시를 쓸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인의 시는 대중과의 가교 역할을 하게 된다. 시인은 깊은 혜안으로 미래를 통찰하는 예언자이며 선지자와 같다. 그러므로 시인에게는 시대와 역사를 대변하고 이끌어 가는 예언자적 책무가 있다(p.178). 시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윤동주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가 남긴 단 한 권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 과 시》는 지금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집이다. 특별히 〈서시〉, 〈별 혜는 밤〉, 〈자화상〉과 같은 시들은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와 자연에 대한 서정성을 순결한 영혼으로 노래한 별의 시인으로 빛나고 있다. 물론 일제 암흑기 속에서 정서적 저항을 한 시인 정도로 이해하는 성향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 세계를 심층 심리적으로 연구해 보면 자연을 노래한 서정성 이면에 감춰진 저항적 시대 예언자로서의 시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그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하고 싶었던 말들은 무엇이었을까, 별 해는 밤에 흙바닥 위에 썼다 지웠던 문장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어두운 시대에 태어나서 불운하게 죽었던 민족의 대표자요. 고난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p. 194)다. 그래서 너무 애처롭고 무언가 빚을 지고 있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가 못다 한 말들을 시로 써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일본의 릿교대학, 도시샤대학, 후쿠오카 감옥 등을 두루두루 다니며 그의 체취와 숨결을 느끼려 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다녀갔던 중국 용정의 명동촌을 다시 방문 하였고 윤동주의 무덤을 가 보았다. 그런데 윤동주의 무덤은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채 완전히 벌거숭이가 되어 있었다. 야산에 방치된 윤동주의 무덤을 보고 마음이 너무 측은하고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아, 그는 죽어서까지 이렇게 외롭고 고 독하고 쓸쓸하게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동행한 가이드에게 돈이 얼마나 들어도 좋으니까 당장 뗏장을 구해다가 입혔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용정에는 뗏장이 없다는 것이다. 심양이나 상해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뗏장이 구해지면 연락을 주라고 당부해 놓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가이드에게서 심양에서 뗏장을 구했다는 전화가 왔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의 6촌 동생인 가수 윤형주 선생님과 함께 다시 용정을 방문 하였다. 윤형주 선생님과 동행하면서 책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윤동주 시인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침내 윤동주 시인의 벌거숭이 무덤 위에 하나둘 푸른 뗏장을(p. 195)입히기 시작했다. 하늘의 구름도 잠시 멈추고 바람도 다가와 윤동주 시인의 푸른 무덤을 내려다보는 듯하였다. 그의 무덤 앞에서 짧은 연시를 바쳤다. 님의 무덤을 찾아오지 않고서야 어찌 시인이라 할 수 있으랴 그대처럼 아파하지 않고서야 어찌 시를 쓴다 할 수 있으리오 부끄러움 하나 느끼지 않고 시를 썼던 가짜 시인을 꾸짖어 주십시오 눈물 없이 쓴 껍데기 시를 심판해 주십시오 참회록 없는 이 시대의 시인들을 파면해 주십시오 당신 무덤에 피어오른 동주화를 내 마음의 무덤에 심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 소강석, 〈윤동주 무덤 앞에서 3〉(p. 196). 시인은 시대의 어둠을 깨우는 예언자요, 선지자가 되어야 한다. 시대가 아파하면 함께 울고, 길을 잃으면 옳은 길을 제시하는 등대이자 이를 지키는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시대의 눈물을 닦아 주고 다리를 놓는 희망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럴 때, 그의 시는 시대적 혼을 담은 역사적 길잡이로 승화된다(p. 199). 시의 종착-땅의 사람, 하늘의 시 시는 머릿속으로 만들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와야 하는 면이 더 크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 하늘의 언어가 찾아와 시로 발현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의 종착지는 땅의 사람에게 찾아온 하늘의 언어, 하늘의 시라고 말할 수 있다(p. 200). 시 창작을 위한 제언 T. S. 엘리엇은 "문학의 위대성은 문학적 기준만으로는 결정되지 않는다. 다만 문학인가 아닌가라는 사실만이 문학적 기준에 의해 결정될 따름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문학적 기준은 표현 기법에 대한 문제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위대한 문학 정신과 사상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표현 기법 (이미지, 은유, 함축, 은닉, 낯설게하기 등)이 제대로 적용되어 있지 않으면 성숙한 시로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성숙한 시인의 단계에 오르기 위해서는 표현 기법에 대한 많은 고뇌와 습작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시 창작에서 감각적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산문적 설명을 버리는 것(p. 209)에서부터 출발한다. 산문적 해석과 설명을 버리고 또 버려서 대리석같이 단단한 시, 뼈다귀같이 군살이 없는 시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많은 시집을 읽으며 필사해 보는 것이 좋다. 평소에 좋아하던 시인들 위주로 몇 번을 반복해서 읽고 다시 써 보는 것이다. 그러면 점점 시를 쓰는 방법과 형식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그 필사의 대상이 일류 시인이라 해도 나는 또 새로운 관점에서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그러면 몇십 편을 써 본다. 완성도가 높은 시가 아니어도 좋다. 처음에는 낙서 같은 시여도 좋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고 반복해서 습관처럼 계속해서 시를 써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점점 시의 형식과 단어, 압축된 문장을 익히게 되고 주제의 폭도 넓어진다. 이제는 모방을 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시의 소재가 떠오르고 시를 쓸 수 있는 용기와 마 인드가 생긴다. 같은 시 제목이지만 전혀 다른 시를 창작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 어찌 전혀 새로운 것이 있겠는가.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모든 것은 이미 세상에 다 나왔다. 다만, 이미 기록된 것을 새롭게 모방하여 어떻게 재창조하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모방을 한다고 해서 표절이 되어서는 안 될(p. 210)것이다. 시집을 최하 3백 권 이상 읽고 시를 쓸 수만 있으면 자신의 이름으로 시집을 내는 게 좋다. 시를 써도 다시 읽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끝이 없다. 우리 시대 최고의 시인으로 불리는 정호승 시인도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 1년이 넘도록 원고를 수정하고 또 수정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시집 5백 권을 읽고 시집 대여섯 권을 내고서야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고, 그렇게 깨달으면 자기 시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문학적 거인을 만나 보는 것이다. 나 또한 이어령 교수, 김종회 교수, 정호승 시인 등을 만나 직접 사사를 받으면서 문학적 전환과 지평을 새롭게 열 수 있었다. 물론 다양한 책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오늘 이 자리가 새로운 시 세계의 문을 여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강의를 마무리하며 소개하고 싶은 시가 있다. 내가 평소에 너무나 애송하는 정호승의 《고래를 위하여》라는 시다.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p. 211) 청년이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별을 바라본다 나도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 별들을 바라본다 정호승, 〈고래를 위하여〉 이 시대 최고의 감성 시인이요, 언어의 연금술사인 정호승 시인의 삶을 향한 깊은 통찰력과 서정성이 돋보이는 시다. 고래는 얕은 호수나 시냇물에서 살 수 없다. 아무리 거대한 아마존강이라 할지라도 고래는 강물에서도 살 수 없다. 고래는 푸르고 드넓고 깊은 바다에서만 살 수 있다. 그런데 시인은 그 푸르고 드넓은 바다를 우리 마음으로 비유하고 있다. 따라서 고래가 없으면 바다가 아니듯, 우리 마음의 푸른 바다에 고래 한 마리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슴이 뛰는 청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그 사람은 늙어(p. 212)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래 한 마리가 푸른 바다를 푸르게 할 뿐만 아니라, 푸른 바다 역시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것이다. 이것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모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시 인은 위대한 반전을 한다. 그래서 시인은 하루하루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푸른 바다가 되라고 권면한다. 비록 거센 파도가 몰아치고 해일이 휘몰아치는 거친 바다일지라도, 우리의 마음은 반드시 푸른 바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 마음의 바다에서 거대한 고래를 만 날 수 있다. 그 고래는 우리의 꿈일 수도 있고, 이상일 수도 있고, 사랑과 자유일 수도 있다. 아니, 우리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위대한 생명일 수도 있다. 생명이 있어야 꿈도 있고 이상도 있고 사랑과 자유도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시인은 또 한 번의 시적 이미지의 상승을 시도한다. 그것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별을 바라 본다는 것이다. 여기서 별의 이미지는 꿈 너머의 꿈, 이상 너머의 이상, 사랑과 자유를 넘어선 그 어떤 것들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고래가 바라보는 별은 우리의 꿈이 꿈 되게 하고 생명이 생명 되게 하는 진정한 삶의 초극적 이상이요, 그 꿈과 생명의 빛이다. 그래서 고래가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별을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 모두도 마음속의 고래를 위(p. 213)하여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우리의 가슴이 시리도록 감동을 주는 시인가. 시를 알고 배우고 시인이 된다는 것은 가슴속 푸른 바다에 고래 한 마리 풀고 사는 것과 같다.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일이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이 시를 읽고 쓰면서 자신의 인생과 이 세상을 푸른 바다로 만드는 한 마리의 고래가 되기를 소망한다(p.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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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18】 목회자 필독서, 소강석목사 신간『영혼을 담은 시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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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17】 비평이 필요하다!
- 비평은 비난이 아니다. 작품에 대한 가치 판단이다. 우리는 비평을 비난으로 알고 흥분부터 먼저한다. 비평이 없으면 어떻게 자신의 부족을 알고 발전할 수 있겠는가? 그저 좋은게 좋은거라고 한다면 개선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건전한 비평이 필요하다. 그럼 비평이란 무엇을 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다양하고도 복잡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간략히 정리하면 작품을 한 번 본 것만으로는 단번에 알기 어려운 숨겨진 의미를 끌어내는 것(해석)과 그 작품에 어떤 가치가 있고 어떤 수준인지를 판단하는 것(평가)이 비평이 성취해야 할 가장 큰 역할로 볼 수 있습니다(p. 9). 기본적으로 작품은 세상에 나온 순간 작가의 손을 떠났다고 생각하세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다양한 독자가 작품을 수용하고 다른 해석을 만들어내는 점이 비평의 묘미입니다. 독자가 자유롭게 해석하면 족하며, 뛰어난 비평은 작가가 생각지도 못했을 법한 참신한 해석을 끌어내기도(p. 63)합니다. 여러분의 손에 건네진 순간부터 텍스트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작가의 권한을 깨부숴야 합니다. 이렇게 작가를 죽이는 데 있어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작품의 유형에 따라서 '작가와 '화자를 동일시해도 좋은지 여부가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픽션 철학 연구자인 기요즈카 구니히코는 앞서 해설한 '믿는 체하기 게임'의 개념을 작가에도 응용하여, 픽션을 읽을 때는 작가도 '믿는 체하기 게임'의 무리에 들어와 있고, 독자는 '가공의 이야기에 접하는 가공의 경험'을 하게 되며, '이야기가 작가로부터 이탈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지적합니다(『피션의 철학』). 즉 기본적으로 픽션을 분석할 때는 작가와 이야기를 분리하여 생각하는 편이 좋다는 말입니다. 다만 이것은 일반적인 경우에 한한 이야기로, 한편으로는 완전히 그렇다고 단언할 수 없는 작품도 존재합니다. 문학 작품 중에서도 에세이, 일기, 기행문은 작가가 자신의 생각이나 체험을 쓴 것으로, 작가와 화자는 비교적 동일성이 높으며 화자에게 벌어진 일은 대개 작가에게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여성 화자를 만들어 『도사 일기』를 쓴 기노 쓰라유키처럼 가끔 기교를 부린 자기 연출을 하는 작가도 있으니 방심은 금물이지요), 하지만 이것이 시나 이른바 사소(p. 64)설(작가 자신의 체험이나 심경을 바탕으로 쓴 소설-옮긴이), 또한 뮤지션의 자작곡이라면 작가와 작품의 화자를 어느 정도로 동일시하면 좋을지 미묘해지기도 합니다(p. 65). 대부분 글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몰라 고심합니다. 기본적으로 비평을 쓸 때는 『폴 클리포드』처럼 그저 분위기를 내기 위한 문구로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간혹 무척이나 재치 있는 첫머리를 술술 적는 사람이 있지만, 이는 굉장히 드뭅니다. 보통 사람은 첫 문장을 쓰는 것만으로도 고생하며, 몇 시간이건 새하얀 컴퓨터 화면을 앞에 두고 굳어 있기도 합니다. 제가 추천하는 방법은 일단 작품의 정보를 간단히 적으며 시작하는 방식입니다. 소설이라면 작가가 누구고 언제 출간되었는지, 영화라면 감독이 누구고 몇 년도에 개봉되었는지 같은 기본 정보를 우선 씁니다. 이어서 작품 내용을 설명하는 문구를 한 문장 정도 적어 첫 단락으로 삼습니다(p. 145). 자신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자신이 바깥 세계에 노출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배양해온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일단 의식적으로 벗겨내고, 모르는 것이나 들은 적 없는 것을 접함으로써 세계를 확장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몸에 익힌 편견의 울타리 속에서 제아무리 '자유롭고 편하게' 한다고 해도 울타리에서 나와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는 방법은 배울 수 없습니다. 훈련을 동반하지 않는 '자유롭고 편하게'는 개성을 없애는 적입니다. 자신은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확신을 버려야 즐거운 비평이 시작됩니다. 스포츠든 음악이든 기술 향상을 위해서는 일단 기존의 형태를 배우고 많은 연습을 해야 합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설 수 있을 정도로 훈련을 거치고 나서야 처음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납니다(p. 164). 어느 작품에 무척이나 감동했을 때는 어느 부분에 감동 했는지, 그것은 어째서인지, 애초에 자신이 느낀 '감동'이라는 감정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비평을 씁시다. 재미있었다면 어느 부분이 재미있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세요. 비평은 학술 논문 등과 비교하면 주관적 표현이 허용 되는 분야지만, 그래도 주관적으로 '감동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만으로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어째서 감동했는지, 어째서 재미있었는지를 구체적인 표현을 증거로 제시하면서(p. 172)분석해야 합니다(p. 173). 비평은 인격과는 관계없습니다. 어느 작품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와 비평가의 인격은 관계없으며, 작품을 비판했다고 해서 작가의 인격을 헐뜯는 것도 아닙니다. 작품을 비판하는 것은 작가의 기교를 비판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만, 예술적인 기교는 인격과는 관계가 없으므로 이 작가는 이런 테크닉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거나 무언가 결여된 스킬이 있다는 식으로 지적하는 것은 인신공격이 아닙니다. 하지만 인신공격이 아니더라도 작품을 쓰레기라고 말하거나 작가의 기법을 비판하면 그 작가나 작품의 팬들은 싫어할 수 있겠죠. 이때는 현실을 직시하고 모두로부터 사랑받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합시다. 이것은 비평에 한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고 싫음을 확실히 말하는 솔직한 사람이 언제나 사랑받지는 못하죠. 버지니아 울프가 지적한 것처럼 여러분이 여성이라거나 젊다거나 무언가의 순종을 기대받는 처지라면 특히 더 그럴 테고요. 하지만 주변의 기대에 응해서 순종적이고 좋은 사람을 연기하며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않고 살다(p. 186)보면, 스트레스가 가득 차고 해나갈 마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비평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을 억눌러서 우울해지기보다는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세요. 그것이 작품을 즐기는 길입니다(p.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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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17】 비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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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16】 타인은 누구인가?
- 사람(人)은 서로 기대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타자를 배척하고 자기애에 빠져 산다. 그것은 결국 자신과 사회를 불행하게 만든다. 타자에 대한 혐오가 확산되는 이 세상에 이 책은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런데 철학책이라 읽기 쉽지 않다. 세계적인 것의 폭력은 실제의 세계 전쟁처럼 사망자들과 난민들을 만들어낸다. 상업정신이 강요하는 평화는 한시적일 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제한되어 있다. 반옵티콘으로서의 복지 지역 혹은 복지의 섬은 경계를 표시하는 울타리들과 난민수용소와 전쟁터로 둘러싸여 있다. 칸트는 분명 상업정신의 악마성을, 나아가 그 무이성성을 몰랐다. 그의 판단은 관대했다. 그는 상업정신이 "긴" 평화를 낳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이 평화는 그저 가상일 뿐이다. 상업정신은 오로지 계산하는 오성만을 부여받(p. 30)았다. 거기에는 아무런 이성도 없다. 그러므로 오로지 상업정신에 의해, 돈의 권력에 의해 지배되는 시스템 자체에도 이성은 없다. 오늘날의 난민 위기는 유럽연합이 이기적 목적을 좇는 경제적 상업연합에 지나지 않음을 폭로한다. 유럽의 자유 상업지역, 개별 국가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부들 사이의 계약 공동체로서의 유럽연합을 칸트는 이성적 구성물로, 이성에 의해 인도되는 "국가연맹"으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인권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헌법공동체만이 이성에 의해 인도되는 공동체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성에 의해 세워진 영구 평화에 대한 칸트의 관념은 무조건적인 "환대"에 대한 요구에서 정점에 도달한다. 이에 따르면 모든 이방인은 다른 나라에서 체류할 권리를 지닌 다.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평화로운 태도를 유지하는 한" 적대적으로 취급받지 않고 머무를 수 있다. 칸트에 따르면 어느 누구도 "지구상의 어떤 장소에 있을 권리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갖고 있지 않다." 환대는 유토피아적 표상이 아니라 이성이 강요하는 관념이다. "앞선 조항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우리는 인간애가 아니라 권리에 대해(p. 31) 말하고 있다. 그리고 환대(손님으로 머무를 권리)는 이방인이 타지 사람의 땅에 도착했다는 이유로 타지 사람에 의해 적대적으로 취급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환대는 "법에 대한 공상적이거나 과장된 표상 방식이 아니라, 공적인 인권 자체를 위해, 따라서 영구 평화를 위해 국내법과 국제법의 성문화되지 않은 법전을 보충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킬 때만 우리는 영구 평화를 향해 지속적으로 접근해가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환대는 자기 자신에 도달한 보편적 이성의 가장 높은 표현이다. 이성은 동질화하는 힘을 행사하지 않는다. 이성은 친절함을 통해 타자를 그 타자성 안에서 인정하고 환영할 수 있게 된다. 친절함은 자유를 의미한다. 환대의 관념은 이성을 넘어서서 보편적인 무언가를 제시한다. 니체는 환대가 너무나 풍요로운 영혼의 표현이라고 했다. 이런 영혼은 모든 단독적인 것들을 자신 안에 머물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생성 중인 것, 떠도는 것, 추구하는 것, 덧없는 것을 나는 여기서 환 영한다! 이제 환대는 나의 유일한 친교관계다. 환대는 화해를 약속한다. 미적으로 그것은 아름다움으로 나타난(p. 32)다. "결국 우리는 언제나 낯선 것에 대한 우리의 선의와 인내심과 공평함과 온유함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된다. 이 보상은 낯선 것이 천천히 자신의 베일을 벗고, 새롭고 형언 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이루어진다 이것이 우리의 환대에 대한 그의 감사다." 아름다움의 정치는 환대의 정치다. 이방인에 대한 적대성은 증오이며 추하다. 이 적대성은 보편적 이성의 결여를, 사회가 여전히 화해되지 않은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한 사회의 문명화 정도를 보여주는 척도는 바로 이 사회의 환대. 나아가 친절함이다. 화해는 친절함을 뜻한다(p. 33). 셀카 중독도 자기애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 셀카 중독은 고립된 나르시시즘적 자아의 공회전일 뿐이다. 내면의 공허에 직면하여 사람들은 자신을 생산하려고 헛되이 노력한다. 그러나 공허만 재생산된다. 셀카는 공허한 형태의 자아다. 셀카 중독은 공허감을 강화한다. 자기애가 아니라 나르시시즘적인 자기관계가 셀카 중독을 낳는다. 셀카는 텅 빈, 불안한 자아의 매끄러운 표면이다. 고통스런 공허(p. 42)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오늘날 면도날을 들거나 스마트폰을 쥔다. 셀카는 공허한 자아를 잠시 동안 은폐하는 매끄러운 표면이다. 그러나 셀카를 뒤집으면 피가 흐르는 상처들로 가득한 뒷면을 보게 된다. 셀카의 뒷면은 상처들이다(p. 43). 삶으로부터 모든 부정성을 추방하고자 애쓰는 오늘날에는 죽음 또한 침묵한다. 죽음은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죽음은 모든 언어를 잃는다. 죽음은 더 이상 "존재하기의 한 가지 방식"이 아니라,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뒤로 미루어야 할, 삶의 종말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은 그저 탈생산,(p. 48) 즉 생산의 끝을 의미할 뿐이다. 오늘날 생산은 유일한 삶의 형태로 전체화되었다. 건강 히스테리는 궁극적으로 생산의 히스테리다. 그러나 건강 히스테리는 진정한 활력을 파괴한다. 건강한 것의 창궐은 비만한 몸의 창궐처럼 외설적이다. 그것은 병이다. 그것에는 병적인 것이 내재한다. 삶을 위해 죽음을 부정하면, 삶 자체가 파괴적인 것으로 바뀐다. 삶은 자기파괴적으로 된다. 여기서도 폭력의 변증법이 확인된다. 활력을 부여해주는 것은 바로 부정성이다. 부정성은 정신의 삶에 영양을 공급해준다. 정신은 절대적인 분열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때 비로소 자신의 진실을 획득한다. 균열과 고통의 부정성만이 정신을 생생하게 유지해준다. 정신은 "부정적인 것을 외면하는 긍정적인 것"으로서의 "힘" 이 아니다. 정신은 "부정적인 것을 똑바로 쳐다보고, 부정적인 것의 곁에 머무를 때만 이 힘"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부정적인 것 곁에 머무르는 대신 그것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긍정적인 것을 고수하면 같은 것만 재생산된다. 부정성의 지옥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성의 지옥도 있다. 부정적인 것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것도(p. 49) 테러를 낳는다. 익숙한 세계의 붕괴가 일으키는 두려움은 깊은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깊은 권태와 비슷하다. 얕은 권태는 불안하게 "바깥을 향해 안달한다. 깊은 권태에 빠질 때는 현 존재가 모조리 우리로부터 분리된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따르면 이 "불능" 속에는 현존재에게 "여기 이곳에 서 행동할 것"을 결단하라고 호소하는 "통지"와 "호출"이 들어 있다. 깊은 권태는 지금은 나는 권태를 느낀다는 상태 속에 방치되고 있지만 현존재를 움켜잡을 수도 있는 저 행동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깊은 권태는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움켜잡으라고, 다시 말해 행동하라고 현존재에게 요구 한다. 깊은 권태에는 요구하는 성질이 있다. 그것은 말한다. 그것은 목소리가 있다. 과잉활동에 수반되는 오늘날의 권태에는 언어가 없다. 이 권태는 침묵한다. 그리고 이 권태는 이후의 활동을 통해 제거된다. 그러나 활동한다고 해서 이미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후기 하이데거는 두려움이 존재론적 차이. 즉 존재와 존재자 사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아직 미답의(p. 50)공간"에 들어서려면 사유는 헤아릴 수 없는 존재자 없는 존재를 견뎌내야 한다. 일정한 측면에서 존재는 존재자에 선행하고, 각각의 존재자를 특정한 목소리를 지닌 빛 속에서 나타나게 한다. 사유는 "심연"을 "사랑한다." 사유에는 "근본적인 두려움을 향한 명료한 용기"가 내재한다. 이 두려움이 없으면 같은 것이 계속된다. 사유는 "심연의 끔찍함 속에서 소리를 질러대는" "무음의 목소리"에 자신을 노출시킨다. 경악은 사유를 존재자에 사로잡힘으로부터, 나아가 같은 것에 사로잡힘으로부터 해방시킨다. 경악은 "익숙한 것에 대한 존재자의 근본적인 다름을 폭로하는 고통"과 비슷하다(p. 51). 하이데거가 말하는,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성과 고유한 자기존재를 택할 결단을 내린 현존재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지향한다. 이 현존재는 내부에 중심을 지니고 있으며,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강하게 지향하는 자이로컴퍼스와 유사하다. 이 점에서 이 현존재는 바깥을 지향하면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분산된 레이더 인간과 대립한다. 내부 지향은 타인과의 영구적인 비교를 필요 없게 만든다. 이에 반해 외부 지향적인 인간은 이런 비교를 강요받는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실패와 좌절과 배척에 대한 두려움, 실수를 하거나 잘못된 결정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자신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리라는 두려움 등 여러 막연한 두려움에 고통받고 있다. 이 두려움은 타인들과의 지속적인 비교로 인해 강화된다. 이 두려움은 전적인 타자, 섬뜩한 것, 무 앞에서 느끼게 되는 수직적인 두려움과(p. 53) 반대로 수평적인 두려움이다. 오늘날 우리는 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해 시간의 안정적인 구조를 철거하고, 삶의 시간을 파편화하고, 연결과 결속을 허무는 신자유주의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신자유주의적인 시간 정책은 두려움과 불안을 낳는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인간을 홀로 고립된 자기 자신의 경영자들로 개별화한다. 탈연대화와 전면적인 경쟁이 초래하는 개별화는 두려움을 낳는다. 신자유주의의 기만적인 논리는 이렇게 주장한다. 두려움이 생산성을 높인다(p. 54). 새로운 생산 형태로서의 디지털 소통은 자신을 가속화하기 위해 모든 거리를 철저히 제거한다. 이로 인해 우리를 보호해주는 모든 거리가 사라진다. 과잉소통 속에서 모든 것이 모든 것과 뒤섞인다. 내부와 외부 사이의 경계도 갈수록 통과하기 쉬워진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네트워크가 비추는 광선들"에 노출된 "순수한 표면"으로 완전히 외화(p. 56)된다. 투명성의 강제는 모든 시각적 빈틈과 정보의 빈틈을 제거하고, 모든 것을 전면적인 가시성에 내놓는다. 그리고 후퇴와 보호의 공간들을 모조리 제거한다. 그 결과,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위협적일 만큼 가깝게 다가온다. 우리를 차단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는 우리 자신이 세계적인 네트워크 안에 있는 통로에 지나지 않는다. 투명성과 과잉소통은 우리를 보호해주는 모든 내면성을 앗아간다. 실로 우리는 이 내면성을 자발적으로 양도하고 우리 자신을 디지털 네트워크에 내던진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는 우리를 관통하고, 투광하고, 우리에게 구멍을 숭숭 뚫어 놓는다. 디지털 과잉조명과 노출은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도함으로 인한 잠재적인 두려움을 낳는다. 같은 것의 투명한 지옥은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계속 강화되어가는 같은 것의 소음은 두려움을 안겨주기 때문이다(p. 57). 오늘날 우리는 탈마르크스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지배하에서 착취는 더 이상 소외나 자기 탈현실화가 아니라 자유와 자기실현, 자기최적화로 진행된다. 여기에는 나에게 노동을 강요하고,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소(p. 61)외시키는 착취자로서의 타인이 없다. 오히려 나는 나를 실현한다는 믿음 속에서 자발적으로 나 스스로를 착취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비열한 논리다. 소진Burn-out에 대한 열광의 첫번째 단계가 그러하다. 나는 열광적으로 노동 속으로 뛰어들어 결국 쓰러진다. 나는 죽음에 이르도록 나를 실현한다. 나는 죽음에 이르도록 나를 최적화한다. 신자유주의의 지배는 망상적인 자유 뒤에 숨어 있다. 지배는 자유와 일치하는 순간, 완성된다. 이 체감상의 자유는 모든 저항, 모든 혁명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무엇에 맞서서 저항해야 한다는 말인가? 억압을 행사하는 타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라"라는 제니 홀저의 유명한 말이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새로운 형태의 소외가 생기고 있다. 그것은 더 이상 세계나 노동으로부터의 소외가 아니라, 파괴적인 자기소외, 즉 자신으로부터의 소외다. 이 자기소외는 다름 아닌 자기최적화 및 자기실현과 더불어 생겨난다. 성과주체가 자신을, 예컨대 자신의 몸을 최적화해야 할 기능적 객채로 지각하는 순간. 이 주체는 자신으로부터 서서히 소외(p. 62)된다. 부정성이 없기 때문에 이 자기소외는 의식되지도 않은 채 진행된다. 자기착취뿐만 아니라 신체도식의 장애로 나타나는 자기소외도 자기파괴적으로 작용한다. 거식증, 폭식증, 대식증 등은 심각해져가는 자기소외의 증상들이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몸을 더 이상 감지할 수 없게 된다(p. 63). 레비나스에 따르면 한 인간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의 수수께끼에 의해 깨어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수수께끼 혹은 비밀로서의 타자에 대한 경험을 잃어 버렸다. 타자는 이제 유용성의 목적론에, 경제적 계산과 가치평가의 목적론에 완전히 예속되어 있다. 타자는 투명 해진다. 타자는 경제적 객체로 강등된다. 이에 반해 수수께끼로서의 타자는 전혀 가치평가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다름을 전제로 한다. 타자의 다름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다름도 사랑의 전제다. 사람의 이원성은 자신에 대한 사랑에 필수적이다. "다른 한 사람이 우리와 다른, 우리와 대립되는 방식으로 살고 활동하고 느낀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기뻐하는 것 말고 무엇이 사랑이겠는가? 대립하는 것들을 기쁨으로 연결하려면 사랑은 이 대립하는 것들을 제거해서도, 부정해서도 안 된다. 심지어 자기애도 한 사람 속에 있는, 서로 뒤섞을 수 없는 이 원성(혹은 다원성)을 전제로 한다." 모든 이원성이 사라질 때,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서 익사한다. 이원성이 모두 사라진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과 융(p. 106)합되어버릴 것이다. 이 나르시시즘적인 핵융합은 치명적이다. 알랭 바디우도 사랑을 "둘의 무대"라고 부른다. 사랑은 세상을 타자의 시선으로 새롭게 창조하고 익숙한 것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사랑은 전적으로 다른 것이 시작되게 하는 사건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하나의 무대에서 살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생산관계가 의도적으로 사육하여 생산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착취하는 에고는 병적으로 비대해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삶을 다시 타자로부터, 타자에 대한 관계로부터 새롭게 보고, 타자에게 윤리적인 우선권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나아가 타자를 경청하고 타자에게 대답하는 책임의 언어를 다시 배워야 한다. 레비나스는 "말하기"로서의 언어를 다름 아닌 "한 사람의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이라고 보았다. 오늘날에는 타자의 언어로서의 저 "가장 근원적인 언어"가 과잉소통의 소음에 파묻히고 있다(p. 107). 미래에는 경청자라는 직업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는 돈을 받고 타인의 말을 들어준다.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경청자에게 간다. 오늘날 우리는 경청하는 능력을 갈수록 잃어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점점 더 에고에 집중하는 것이, 사회가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것이 경청을 어렵게 한다. 나르시스는 요정 에코의 애정이 담긴 음성에, 실로 타자의 음성이라고 해야 할 이 음성에 대답하지 않는다. 그래서 에코의 음성은 자기 음성의 반복으로 전락한다. 경청은 수동적 행동이 아니다. 특별한 능동성이 경청의(p. 108) 특징이다. 나는 우선 타자를 환영해야 한다. 다시 말해 타자의 다름을 긍정해야 한다. 그러고나서 나는 그를 경청 한다. 경청은 선사하는 것, 주는 것, 선물이다. 경청은 타자가 비로소 말을 시작하도록 돕는다. 경청은 타자의 말을 수동적으로 좇아가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경청은 말하기 에 선행한다. 경청은 타자로 하여금 비로소 말을 하게 한다. 나는 타자가 말을 하기 전에 이미 경청한다. 혹은 나는 타자가 말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경청한다. 경청은 타자를 말하기로 초대하고, 타자가 그의 다름을 드러내도록 풀어 준다. 경청은 타자가 자유롭게 말하는 공명의 공간이다. 그래서 경청은 치유할 수 있다(p. 109). 페이스북에서는 우리 모두와 상관이 있고, 우리 모두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문제들이 거론되지 않는다. 여기서 전송되는 것은 무엇보다 광고들이다. 어떤 토론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오로지 송신자를 알리는 데만 기여할 뿐인 광고들 말이다. 타인에게 걱정과 고통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좋아요의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오로지 우리 자신이나 우리와 같은 사람들만 만난다. 여기서는 어떠한 담론도 가능하지 않다. 정치적 공간이란 그 안에서 내 가 타인들을 만나고, 타인들과 이야기하고, 타인들을 경청하는 공간이다. 경청에는 정치적 차원이 있다. 경청은 타인들의 현존재에 대한, 그들의 고통에 대한 행동이자 적극적인 참여다. 경청은 사람들을 연결하고 매개하여 비로소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것을 듣지만, 타인들을 경청하고 그들의 언어와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능력은 갈수록(p. 115) 잃어버리고 있다. 오늘날에는 각자가 자기 자신. 자신의 고통, 자신의 두려움과 함께 어떤 식으로든 혼자 남아 있다. 고통은 사유화되고 개인화된다. 그래서 고통은 자격도 없이 자아와 자아의 심리를 고치겠다고나서는 치료의 대상이 된다. 누구나 자신의 약점과 부족함을 부끄러워하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책임을 떠넘긴다. 나의 고통과 너의 고통 사이에 어떠한 연결도 생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고통의 사회성이 간과되고 만다. 오늘날의 지배 전략은 고통을 사유화하고, 그럼으로써 고통의 사회성을 은폐하여 고통의 사회화와 정치화를 가로 막는 것에 주력한다. 정치화는 사적인 것을 공적인 것으로 번역하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에는 오히려 공적인 것이 사적인 것으로 해체된다. 공공성은 사적 공간들로 분해된다. 공적 공간과 경청자들의 공동체, 그리고 정치적 경청자 집단을 만들어내려는 정치적 의지는 근본적으로 사라지고 있다. 디지털 네트워크화는 이러한 과정을 촉진시킨다. 인터넷은 오늘날 공동의 소통 행위 공간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인터넷은 오히려 자아의 전시 공간들로 해체되고, 이(p. 116) 공간들 안에서 사람들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광고한다. 오늘날 인터넷은 고립화된 자아의 공명 공간일 뿐이다. 광고는 어떠한 경우에도 경청하지 않는다(p. 117). 옮긴이 후기 '독일 철학의 새로운 스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철학의 팝스타'로 불리는 한병철은 독일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실로 보기 드문 철학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이런 성공은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어둡고 부정적인 평가가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구처럼 짧고 함축적이면서도 명쾌하며, 대구와 은유, 역설과 어원학에 기초한 언어유희로 점철되어 독특한 사운드를 연출하는 문장들 또한 많은 독자들을 획득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 한병철은 기존의 저서들에서 천착해온 주제들을 한층 더 첨예한 문장들로 펼쳐놓는다. 그의 부정적인(p. 128) 시대 진단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평가에 기반하고 있다.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신자유주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생산의 도구로 획일화 한다. 모든 것이 장부상의 숫자로 치환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며, 따라서 하나의 척도에 따라 서로 비교되고 교환 될 수 있는 것들로 획일화된다. 자본의 순환을 방해하는 사물들 사이의 질적 차이는 지워진다. "타자가 존재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그 결과, 돈의 권력만이 지배하는 이 세계는 "같은 것의 지옥"으로 전락한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지만, 현재 세계에서는 같은 것이 지옥이다. 이 지옥은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지배된다. 과거에는 인간을 생산 수단으로 만들어 착취하기 위해 억압과 금지와 부정이 행사되었던 반면, 지금은 자유와 허용과 긍정이 인간을 자기착취로 이끈다. 같은 존재들로 획일화된 인간은 타인과의 영구적인 비교와 경쟁에 내던져지며, 타인 속에서도 언제나 자신과 똑같은 존재만을 확인할 뿐이다. 타인에게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영상을 볼 뿐인 나르시시즘적 인간은 자신 안에 갇힌 채 세계에 대한 진정한 경험도, 인(p. 129)식도 할 수 없고, 그 결과 자신과 세계에 대한 성찰 능력도 상실한다. 의미에 대한 성찰이 사라진 진공 속에서 인간은 같은 존재들 사이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생산에 최적화하려고 애쓸 뿐이다. 뒤처질 위험에 대한 상시적 불안에 지배되는 인간이 자신을 착취할수록, 자본의 이윤은 극대화된다. "두려움이 생산성을 높인다." 저자에 따르면 불안은 혐오를 낳는다. 모든 낯선 것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유발하는 불안은 공격적인 테러리즘과 방어적인 민족주의의 동일한 근원이다.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다양한 혐오 현상들도 불안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의 사회학자 노라 레첼은 '반항적 자기굴복'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사회적 배제와 불 만스런 상태에 대한 저항이 그 상태의 진정한 원인이 아니라 문제와 상관없는 타자인 제3자를 희생양 삼아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반항자가 기존 상태는 그대로 둔채 흔히 사회적 약자 혹은 소수자인 제3자를 배척하는 데 힘을 쏟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대체행동이다. 그 결과 반항자는 실제로는 스스로를 무력화하게 되고, 자신들이 맞서 싸워야 할 상황에 스스로 굴복하고 만다. 우리 사회의 온갖 혐(p. 130)오 현상들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반항적 자기굴복에 해당한 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같은 것의 창궐, 같은 것의 테러 속에서도 인간은 기만적인 자유의식, 허구적인 해방의식에 사로잡힌다.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고 자아실현을 꿈꾸지만, 실은 자본이 제공한 상품들에 갇혀 있고, 자본이 설정해놓은 인간상에 갇혀 있다. 획일화된 인간의 개인성에 대한 욕망은 인간을 개별화, 고립화하여 연대를 막으려는 자본의 전략에 이용될 뿐이다. 같은 것의 감옥으로부터의 구원은 타자로부터 온다는 것이 저자의 인식이다. 타자만이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인식과 성찰을 가능하게 해주고, 의미를 복원하며, 우리로 하여금 고립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이러한 타자를 배척하고 혐오할 것이 아니라, 환대로서 맞아야 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 문명의 발전 정도를 측정하게 해주는 기준이 바로 환대다.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음성을 경청해야 한다. 그럴 때만 우리는 타자를 인식하고,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을 인식하며, 나아가 우리를 구속하는 체제의 틀 자체를 인식하여 같은 것의 지옥을 (p. 131) 벗어날 수 있다. 저자는 타자에 대한 인식의 매체로서 예술과 철학에 희망을 건다. 예술은 세상을 낯선 것, 나와 다른 것으로 인식하고 서술한다. "부정적 긴장은 예술에 본질적이다." 철학 또한 세상을 낯선 것으로 대한다. 이는 예술과 철학이 세상을 인지하는 지배적이고 익숙한 틀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로써 예술과 철학은 세상을 다르게 보고, 그 결과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평가하고 비판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지배하는 우리 시대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담고 있다. 때로 한병철의 당대 분석이 어둡고 부정적인 쪽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저항이 불가능한 존재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조종되는 꼭두각시들'로만 보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실로 신자유주의 체제는 수많은 비판을 낳고 있으며, 대중이 현실 속에서 체감하는 불행은 불안과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도 이어진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저항들이 진정한 저항인가에 대해 깊은 회의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시대를 지(p. 132)배하는 가치들을 내면화한 사람들의 저항은 규칙의 가혹함을 규탄할 수는 있지만, 규칙 자체를 전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인 듯하다. 저자는 핵심을 찌르는 도발적인 문장들을 통해 우리의 성찰을 자극한다. 이 책은 흔히 간과되거나 의식조차 되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결정적인 부정적 단면들을 예리한 관찰과 근원을 파고드는 비타협적인 비판의식으로 조명하는데 성공하고 있으며, 이 책의 가치는 이런 점에 있을 것이다(p.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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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15】 인구감소는 대한민국의 소멸을 가져올 것이다
- 인구가 줄고 있다. 이는 결국 대한민국의 소멸을 불러온다. 전쟁으로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인구 감소로 나라가 망하는 비극의 첫 나라가 대한민국이 될 위기다. 청년들이 현실 앞에 좌절하고 절망하는데 어떻게 결혼하고 자녀를 낳을 수 있는가? 강고한 기성세대의 틀 안에서 다음세대는 질식하고 이는 결국 모두의 파국을 불러 올 것이다. 살아서 대한민국의 종말을 볼 줄이야..... "내 한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굳이 아이를 낳아서 나의 불행을 또 다시 대물림해야 할까요?" 우리가 만나본 절반 세대의 요구는 분명했다.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만 하지 말고, 태어날 아이도, 키우는 어른도 행복한 세상을 먼저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갈수록 쪼그라드는 대한민국 인구 규모에 맞춰 사회 시스템을 하나하나 재구조화하는 작업을 이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껏 기성세대가 누려온 세상의 틀을 바꿔 나가며 미래 세대가 존속할 세계를 함께 준비하는 일이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 희생과 포기만을 강요해서는 결코 풀리지 못하는 문제일 것이다.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우!" 얼마 전 방영했던 인구 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미국의 한 대학교수는 2022년 대한민국 합계출산율 숫자(0.78명)를 전해 듣자마자, 머리를 부여잡으며 경악했다. OECD 평균 합계출산율(1.59명)의(p. 10)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의 암담한 현실이 그에게는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 현실의 악순환을 끊어버리기 위해 기성세대는 절반 세대의 이야기를 나중이 아니라 지금부터 끊어내지 않고 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길이다. 이 책이 우리 모두의 미래와 공존을 위한 작은 경청의 시작이 됐으면 한다(p. 11). 건국 이래 처음 등장한 절반 세대 1970년 이 땅엔 100만 6,64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다(p. 36). 통계 집계 이래 1년 출생아가 100만 명을 넘은 첫 해였다. 이듬해도 100만 명이 넘었다. 그 결과 1970년대 말과 80년대 국민학교는 콩나물 시루였다. 한 반 학생이 70명 넘는 곳이 허다했고, 학교 교실이 부족해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어 학교를 다녔다. 당시 1970년생이 고3때 치른 1989학년도 학력 고사에는 무려 110만 명(재수생 포함)이 응시했다. 그랬던 출생아가 절반으로 꺾인 해가 바로 2002년이다. 이 해 태어난 아이들은 49만 6,911명. 그 2002년생이 고3이었던 2021학년도 수학능력시험 응시자는 49만 3,434명으로, 수능 사상 최초로 50만 명 아래를 기록했다. 그래서 2002년생은 건국 이래 처음 등장한 '절반 세대'다. 2023년 지금 만으로 스무 살이나 스물 한 살이 되었을 이 절반 세대가 주로 활동하는 대학가에선 이미 학생 부족 현상이 시작됐고, 남학생들이 휴학을 하고 가야 할 군대에선 부대 통폐합 작업이 이어지는 중이다. 왜 하필 2002년이었을까. 인구 전문가들은 1980•90년대 등락을 반복하던 출생아 수가 2000년대 초 급감한 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1997년 외환위기로 대량 실직 사태가 발생하며,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현상이 보편화했다는 것이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IMF 사태가 출산에 영향을 준 것(p. 37)이 가시화된 시점이 바로 2002년"이라고 지적한다. 인구 감 소로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해인 것이다. 지금 한국의 인구 상황은 1970년, 2002년에 이은 세 번째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2017년(35만 7,771명) 처음 40만 명 아래로 내려온 출생아 수는 속절없이 수직낙하하며, 2022년 24만 9,000명으로 기어이 25만 명 아래로 무너졌다. 2002년의 절반으로 감소하며, 불과 20년 만에 두 번째 절반 세대가 출현한 것이다. 절반 세대의 충격파는 이들의 생애주기를 따라 쭉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들이 취업하고, 결혼을 고려하고, 가족 계획을 하고, 부동산을 구입하고, 자녀 교육에 돈을 투자하며, 부모를 봉양하고, 은퇴를 결정하게 되는 모든 생애주기에서, 대한민국은 100만이 떠받치던 인프라를 50만에게 부담하도록 해야 하는 '절반 쇼크' 현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쇼크는 이미 현실이 됐다. 2002년생이 대학에 들어간 2021년 지방대에선 대량 미달 사태가 벌어졌다.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이들이 군대에 입대하고 직장인이 되는 3~5년 뒤 병력 부족과 구인난 등 사회적 충격이 본격화할 것"이라며 "현 인구로는 기존 사회를 운영할 수 없는 만큼 사회적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진단했다(p. 39). 두 번째 절반 세대(17-22년생)가 몰고 올 '제2의 물결' 또 한 똑같이 반복될 것이다. 그 물결은 보육→초등교육→사교육→대학→군대→취업→결혼·출산으로 이어지며 우리 사회 인프라에 엄청난 충격파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지금이 절반 쇼크에 대비할 마지막 기회인 만큼 절반 세상에 적응할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80만~100만 명씩 태어난 기성세대가 만든 구조•제도• 정책이 작동하는 상황에서 40만 명이 노동시장에 들어오고 결혼을 하게 된다"며 "후속 세대가 활용할 구조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p. 40). 혈액은 부족하고 수혈 고령자는 들어가고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한국에서 분명히 오고야 말 필연적 미래가 바로 '피 부족' 사태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구변동에 따른 사회변화 전망 및 대응체계 연구' 보고서에서 피를 주는 청년의 숫자가 줄고 피를 받는 고령층이 늘면서, 수혈용 혈액 부족이 만성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연 얼마나 부족할 것이며, 언제부터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시작되는 걸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대한적십자사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입수한 연령별 헌혈•수혈 실적(2010~2022년)(p. 79)과 통계청 인구추계를 기반으로 시뮬레이션을 진행해보았다. 그 결과, 2020년 150만 건 수준이던 헌혈 건수와 수혈 건 수의 격차는 2050년 535만 건까지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처럼 청년층 중심으로 헌혈하는 구조가 이어진다면, 2040년에는 전체 헌혈 건수(162만 건)가 80세 이상의 수혈 건수(171만 건)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디스토피아적 예측은 인구구조 변화 탓에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나리오다. 지금 한국에서 헌혈을 주로 하는 연령대는 16~24세다. 신체가 건강하고, 복용하는 약물이 없(p. 80)어 헌혈 제한이 없으며, 특히 학교와 군대에서 주기적으로 집단 헌혈을 하기 때문이다. 적십자사에 따르면 16~24세 헌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4~2002년 평균 55%에 달했다. 대신 수혈을 많이 받는 연령대는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큰 수술을 받는 65세 이상 고령층(2014~2021년 평균 50%)이다. 헌혈·수혈의 이런 연령적 특성을 고려하면, 고령자 인구가 급증하고 1970년생의 절반 이하인 2002년생 이후 절반 세대가 청년층의 주류로 자리잡으면 피 부족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것이 분명하다. 혈액의 특성상 보관 기간 (적혈구제제 35일, 혈소판제제 5일, 혈장제제 1년)도 지켜야 하고, 세계보건기구의 자급자족 원칙에 의해 수입도 쉽지 않다. 헌혈을 주관하는 적십자사도 헌혈의 연령 편중이 가져 올 비관적 미래를 잘 알고 있다. 적십자사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10대와 20대 헌혈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고령사회(p. 81)에 진입함에 따라 중장년층 헌혈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45~49세 인구의 헌혈 비율은 2010년 1.28%에서 2022년 4.95%로 4배 가까이 늘 기도했다. 그러나 이런 정도로는 인구구조의 변화라는 큰 강물의 흐름을 막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적십자의 헌혈 연령 다변화 정책이 가장 많이 반영된 2022년 실적을 반영해 시뮬레이션을 다시 진행했으나, 헌혈-수혈 최고 격차 시점이 2050년 (최대 3.54배)에서 2053년(최대 3.41배)로 늦춰졌을 뿐, 큰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았다(p. 82). 절반 세대 여성들이 유독 더 결혼과 출산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건 왜일까. 우선은 자신의 직업적 커리어가 망가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자녀를 낳지 않겠다고 밝힌 절반 세대 여성 10명 중 8명은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을 걱정(82.2%) 했는데, 이는 90년대생 여성들의 응답(72.7%)보다 높은 것이다. 반면 절반 세대 남성들의 경우, 자녀 출산과 양육으로 자신의 커리어가 단절될 것에 우려를 표한 응답은 40%에 불과해 대조를 이뤘다(p. 97). 아이를 낳아도 제대로 잘 키울 수 있을지, 한국에서 아이를 낳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일지에 대한 불안감도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이런 우려는 세대• 성별을 막론하고 공유되는 정서였는데, 특히 90년대생 여성들의 민감도가 더 높았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아이가 행복하고 안전하기 힘든 사회여서"(94.8%), "한국의 치열한 경쟁과 교육 제도 아래 키우기 싫어서"(90.9%)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미래 전망이 어두워질수록 출산 의향이 강하게 줄어드는 것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세대•남녀 가릴 것 없이 한국에서 삶의 조건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응답이 과반을 넘었는데, 출산을 가장 적극적으로 거부한 절반 세대 여성이 가장 크게 비관(66.4%)한 것으로 나왔다. 또한 이들은 출산이 '부담'이라면, 결혼은 '손해'로 인식하는 경향이 컸다. 결혼할 의향이 없는 이유에 대해 모든 그룹에서 '자녀 양육 및 가사노동 증가 부담'을 가장 많이 뽑았다. 특히 절반 세대 여성, 90년대생 여성의 응답이 각각 97.8%, 95.7%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신경아 교수는 "가정 학교에서 차별받지 않고 동등하게 자라온 절반 세대 여성들에게 결혼·출산에 따른 양육은 성취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며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은 보편화했는 (p. 98)데, 남성이 동등하게 가사를 부담하고 아이 돌봄에 나서는 변화는 너무 더딘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일 본 사례를 들어 경고했다.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합계출산율이 떨어지자 '조용한 혁명'이란 말이 회자된 적이 있어요. 여성들이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너무 어려운데, 사회가 바꾸지 못하자 변화를 요구하는 대신, 조용히 출산을 보이콧하는 방식으로 대응한 거죠. 한국도 똑같아요. 위기가 심각하다면서, 정부와 기업 모두 제대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어요." 그사이 절반 세대들의 '조용한 혁명'은 이미 시작됐는지 모른다(p. 99). 한국의 2022년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인 0.78을 기록 했다. 이에 국제사회도 한국의 심각한 저출생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프랑스 1.8 대 한국 0.78. 2022년 프랑스와 한국 각각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다. 2022년 출생아 수로 보면, 프랑스에선 72만 3,000명이 태어났고 한국에서는 24만 9,000명이 태어났다. 프랑스 인구(6,800만 명)가 한국(5,163만 명)보다 많다는 점을 감안해도 차이가 크다. 프랑스는 유럽연합(EU) 회원국 27개국 중 합계출산율 1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국의 평균인 1.59명(2020년 기준)보다 높다. 프랑스도 한때 저출생 문제로(p. 141) 고민했었다. 1950년 2.93이었던 합계출산율이 1993년 1.65 까지 꺾이자 적극적으로 출생률 부양책을 폈다. 그중에서도 '혼외 출생을 제도적으로 차별하지 않는 정책'을 펼친 것이 가장 큰 효과를 보았다. 시민연대계약(파스•PACS, Pacte civil de solidarite)'을 맺은 동거 커플에게 결혼한 커플과 똑같은 출산 육아 지원을 하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1999년에 도입된 팍스는 '결혼은 싫은데 아이는 갖고 싶은' 남녀 모두에게 유효한 대안이었다. 이러한 정책을 펼친 후 프랑스는 2010 년대 출생률이 2명대까지 올랐다. 아이를 낳아도 인생이 망가지지 않을 것 프랑스에서 2022년 태어난 아이의 63.8%가 혼외 출생아였다. 비혼 출생의 비중은 2002년 45.2%에서 2012년 56.7%로, 2022년 63.8%까지 계속 늘어왔다. 프랑스의 경우에서 확인했듯 '혼외 출생의 제도권 편입'은 출생률을 높이는 빠른 대안이라고 전 세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나 한국에선 거부감이 상당하다. 저출생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면서도 혼외 출생은 비윤리적인 행위로 보는 경향이 큰 탓이다. 건강가정기본법도 혼인이나 혈연으로 연결돼야 이른바 '정상 범주의 가족'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혼외 출(p. 142)생 비율은 2021년 기준 2.9%에 불과하다. '0.78'이라는 절박한 숫자 앞에서 다양한 해법, 특히 검증된 해법을 연구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p. 143). 개인의 삶이 행복한 것이 우선 전문가들은 남녀 모두가 불행한 이러한 성차별적 가족 문화를 그대로 둔다면 저출생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고 말한다. 성차별적 가족 문화를 혁파하는 첫 단추는 여성이 경력 단절을 우려하지 않고 회사를 다닐 수 있도록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이 경력단절이 되고 복직하더라도 임시직 등의 일자리로 밀려나는 상황에서는 부부가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기가 어렵다"면서 국가가 남녀 모두 육아휴직을 할 수 있도록 기업들에 인건비 등을 강력하게 지원하되 육아휴직자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눈치를 보게 만드는 기업들은 문 닫게 하겠다는 각오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노동시간 단(p. 159)축, 돌봄 서비스 강화, 교육비 절감 등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정책들을 바탕으로 남녀 모두가 일과 육아를 함께하는 성평등한 가족 문화가 형성된다면 합계출산율도 높아질 것이라는 것이 신 교수의 설명이다. 또한 진미정 서울대 아동가정학과 교수는 "현재 맞벌이 비율이 절반 정도인데, 맞벌이를 전제로 정책설계를 해서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을 더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며 가족 친화적 직장환경을 만들어 근로시간의 자율성과 유연성을 확보해야 남녀 모두 일 가정 양립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갈수록 다양해지는 가족 형태를 고려한 지원책도 필요하다.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보건학 박사)는 젊은이들이 좀 더 쉽게 서로를 만나고 그 안에서 아이를 낳도록 하려면 프랑스나 핀란드, 스웨덴처럼 사실혼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게 기혼 가족에게 버금가는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배 교수는 "가족주의란 것은 결국은 가부장제를 말한다"면서 "혼인 지상주의 국가가 되어 가고 있다는 건 곧 다른 삶을 선택한 이들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것이고 이는 결국 결혼 해체, 가족 해체 혹은 국가 소멸로 가게 된다. 아이를 낳든 안 낳든 개인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국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p. 160). 다양한 개인과 가족을 상상하고 받아들이는 사회 홍홍석,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 최슬기,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이진송, 독립잡지 <계간홀로> 발행인 인구학자인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교수가 "인구 감소 위기가 지속된다면, 대한민국은 지구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지 17년이 지났다. 그의 예언대로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위기의식과 절박함이 없는 건 아니었다. 우려와 다양한 논의 속에서 수백조 원을 쏟아 부었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p. 225). 어디부터 잘못됐을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홍석철 상임 위원,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이자 인구학자 최슬기, 한림대 사회학과 신경아 교수, 독립잡지 〈계간홀로〉 발행인 이진송 작가가 머리를 맞댔다. 청년에 희망 못 준 사회의 자업자득일까 -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OECD 국가 중에서 또 꼴찌다. 홍석철 상임위원(홍):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환경이 얼마나 취약해졌는지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다. 저출생 위기에 맞선 정부 대응 역시 낙제점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최슬기 교수(최): 과거 독일의 통일 직후 동독의 합계출산율이 0.7명대로 떨어진 적이 있다. 국가 시스템이 무너지고 실업자가 급격히 증가하던 '체제 붕괴' 상황이었다. 정상적 사회에서 0.7명대 출산율은 상상하기 어려운 숫자다. 대한민국 시스템 전반이 고장 났다는 증거다. 신경아 교수(신): 그동안은 아이는 낳고 싶은데 현실적 여건 탓(p. 226)에 포기한 '비자발적 선택'이 강했다면, 지금은 비출산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당장 내 삶도 버티기 힘들고 앞으로도 나아질 거란 희망이 희박한 상황에선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거다. 이진송 작가(이): 나라에선 인구 감소가 위기라고 하지만, 여성에게 출산은 '내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다. 아이를 낳으라고 다그치는데, 이 사회가 아이에 친화적인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카페에 들를 때마다 노키즈존이 있는지부터 체크한다. 아이 키우기 어려운 사회에서 아이가 적게 태어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자업자득이다. -무수한 원인 중 핵심 몇 가지를 꼽아본다면. 최: 요즘 세대는 불안을 느끼는 정도와 깊이가 이전과 달라졌다는 걸 정부에서 알았으면 좋겠다. 젊은 여성들에겐 미세먼지와 기후위기도 출산을 기피하는 요인이다. 불안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도 과거 세대보다 약해졌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커질수록 아이를 낳지 않게 된다. 1997년 IMF 금융위기 여파가 지속된 2000년 대 초, 그리고 '헬조선 각자도생' 담론이 퍼진 2015년 이후(p. 227)에 출생률이 크게 꺾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청년 세대에게 결혼과 출산은 모든 것이 준비된 완벽한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인식되고 있다. 데이팅 프로그램만 보더라도 외국은 카페 서빙 아르바이트를 직업으로 가진 출연진이 등장하지만, 한국에선 고소득 정규직과 전문직들이 나와 집은 있는지, 돈은 얼마나 모았는지 '스펙'부터 따진다. 결혼과 출산의 계급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아닐까. 체제 붕괴 상황에서나 볼 수 있던 합계출산율 대한민국 시스템 전반의 고장을 의미. 이 사회가 아이에 친화적인지 먼저 고민해볼 필요 홍: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결혼과 출산의 기회비용이 빠른 속도로 높아진 데 반해 양육과 돌봄 부담을 덜어주는 정부 투자는 뒤따르지 못 하고 있다. 사회 전반에 공고히 퍼진 가부장 문화, 가족친화 적이지 못한 기업 문화, 입시부터 취업까지 과열된 무한 경쟁, 그리고 아동과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가치가 경제 논리에 밀려 소홀히 다뤄진 점도 원인이다(p. 228). 신: 고정된 성별 역할을 강요하는 현실이 남성과 여성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육아 돌봄이 여성들 몫으로만 굳어지면, 커리어를 포기할 수 없는 여성은 아이를 낳지 않을 수밖에 없다. 최근엔 경력 단절을 경험한 엄마들이 딸의 '비출산'을 지지해주는 '세대 간 동맹'마저 나타나고 있다. 남성들도 불행하긴 마찬가지다. 안정적 일자리가 풍부하지 않은 상황에서 생계 부담을 더 많이 떠안으며 압박을 받고 있다. 이: 2015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페미니즘 리부트'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강남역 살인사건이후 2030 여성들은 한국 사회가 엄마와 아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을 얼마나 집요하게 착취하고 있는지 각성했다. 거기다 세월호 참사, 노키즈존, 스쿨존 논란 등을 거치면서 아이 안전을 사회가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우려가 커졌다. 출산이 잘하는 일인지 끊임없이 자조하고 검열하게 됐다. 오죽 하면 '아이를 낳지 않는 게 모성'이라는 말까지 나올까. 저출생 정책과 예산은 제대로 집행되고 있을까 -저출생 대응 예산에 수백조 원을 쓰고도 합계출산율은 끌어 올리지 못했다(p. 229). 홍: 16년간 280조 원을 쏟아 부었지만 성과가 없었으니 수치로만 보면 실패가 맞다. 하지만 저출생 예산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를 파악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임 정부 때 만들어 놓은 '4차 기본계획'에 따라 편성된 대응 예산이 51조 원인데, 백화점식 정책이 남발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임신, 출산, 양육, 돌봄, 일-육아 병행 지원 등 실질적인 저출생 예산은 20조 원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최근 5년 동안에는 예산이 크게 늘지 않았다. 그러니 280조 원 전체가 저출생 예산이라고 포장된 것부터가 문제다. 정작 필요한 예산은 오히려 부족했다. 과감한 정 책이 없어서 실패한 게 아니라, 과감한 지원이 없어서 실패 했다. 최: 진짜 필요한 곳을 선별해 제대로 돈을 썼는지 살펴보면 정책에 후한 점수를 주기 힘들다. 육아휴직 지원금과 아동수당이 확대되고 있지만, 점진적으로 개선되다 보니 체감하기 쉽지 않다. 신: 돈을 제대로 쓰려면 성 평등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천명하는 게 우선이다. 육아기 재택•단축근무만 봐도, 대부분 여성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이(p. 230) 여성 채용을 꺼려하지 않겠나. 제도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개별 정책도 효과를 낼 수 있다. 이: '아이 몇 명 낳으면 얼마'라는 일회성 현금 지원은 헛발질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아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발상 자체가 온당치 않을 뿐더러, 돈으로 출산을 강요하는 게 폭력처럼 느껴져 반발만 키울 수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인구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나. 홍: 부처들과 협력해 정책 계획을 수립하고, 평가•보완하는 게 법적 역할이지만, 그동안 위원회가 제대로 역할을 못한 측면이 있다. 정부가 인구 위기를 총력 대응하기 위해, 모든 부처가 참여 하는 범부처협의체인 인구정책기획단을 위원회 내부에 신설했다. 부처별로 산재한 인구 관련 정책 어젠다를 통합하고 새롭게 발굴해 나갈 계획이다. 인구정책평가센터도 설립할 예정이다. 향후 활동을 지켜봐달라(p. 231). 최: 청년들이 느끼는 결혼과 출산의 어려움을 위원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해왔는지, 출산 장려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 가치관을 강요하는 '올드 스타일' 정책은 오히려 출생률을 떨어뜨릴 뿐이다. 여성은 출산 도구가 아니라는 기본적인 인식부터 갖출 것 비혼 출산, 미혼모, 입양 가정 등 다양한 가정을 지원하는 상상력 필요한 시대 신: 여성을 출산 도구로 인식하는 행태부터 바꿔야 한다. 그를 위해서 정부에선 큰 그림을 그려주는 게 중요하다. 여성을 존중하고 아이가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 해줘야 한다. 사회 돌봄 영역의 공공성이 강화되는 것도 중요하다. 양육을 개별 가족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규정하면 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바뀔 수 없다. 돌봄은 국가 책임이며, 부모가 원하는 만큼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출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생길 것이다. 이: 결혼을 전제로 한 출산•양육의 공고한 연결고리를 끊어서 다양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결혼하지 않고도 가정을 꾸릴(p. 232)수 있고, 출산하지 않고도 양육할 가능성에 대해 우리 사회는 굉장히 폐쇄적이지 않나. 비혼 출산을 선택한 방송인 사유리 씨를 두고 정상 가족을 무너뜨린다고 우려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이혼율이 높아서 정상 가족 테두리에서 자라지 않는 사람도 많다. 미혼모나 입양 가정 등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이 차별받지 않고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저출생 극복을 위해 제안하고 싶은 구체적 정책이 있나. 홍: 우리나라는 육아휴직 급여의 소득대체율이 30% 수준에 불과하다 보니, 남성들이 가계 소득 감소를 우려해 육아휴직 사용을 주저하게 된다. 과감하게 지원을 늘려야 청년들 인식을 바꿀 수 있다. 한국에선 고용보험 기금에서만 지급되지만, 소득대체율이 70%에 달하는 유럽은 사회보험기금 등을 신설해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다양한 재원 확보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최: 한국에서 육아휴직은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같은 '좋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다. 사각지대를 없애고, 짧게라도 육아휴직을 경험할 수 있도록 '아빠 출산 휴가'를 한 달이라도 쓰는 방식을 제안한다(p. 233).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빠에게 양육의 공동책임자로서 역할을 하도록 하면, 복직 후에도 자연스럽게 남성들의 육아 참여로 연결될 수 있다. 특히 아빠 출산 휴가 때는 100% 통상임금이 지급돼야 한다. 저출생이 국가적 과제라는 데 공감 한다면 국가 재정으로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북유럽의 '라테 파파'도 남성들의 육아 휴직이 보편화하면서 자리 잡았다 신: 노동시장에서 성별 불평등 격차를 해소하는 데 정부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최근 통계를 보면 외벌이보다 맞벌이 가정에서 둘째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이 임금과 고용 형태에서 차별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실패해도 괜찮아", 다르게 사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회 - 청년들이 아이 낳고 살 만한 사회가 되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홍: 한국은 급격한 산업화 속에 생애 초기부터 치열하게 경쟁 하면서 가족, 아동, 공동체 가치를 소홀히 해왔다. 그런 희생(p. 234)을 딛고 경제 선진국이 되었으니, 이제는 잃어버린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공정하고 유연하며 지속가능한 사회경제 구조가 필요한 이유다. 대전환을 위해선 가족, 기업, 정부 등 구성원 전체의 인식 전환과 동참이 필수적이다. 최: 다가올 미래는 아이 한 명 한 명이 모두 소중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개개인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존중하고 이를 키워가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신: 성별•계층 간 불평등이 크고 수직적인 사회일수록 합계출산율이 낮은 편이다. 한국이 대표 사례 아닐까. 성별•계층 격차를 줄이고 구성원들 관계를 수평적으로 바꾸려면 민주적이고 탈권위적인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어떤 부모에게 태어나든 아이의 돌봄과 성장을 지원하는 일 차적 책임은 국가가 감당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제도와 문화 속에서 구현될 때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보장될 것이다. 이: 청년 세대의 최우선 가치는 생존이다. 생사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구성원에게서 배제당하지 않고 살(p. 235)아갈 수 있는 의미까지 포함한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정상성'에 대한 압박이 매우 커서 실패나 지연, 다른 선택을 용인하는데 인색하다는 거다. 그렇다 보니 '이성 간 연애-결혼-출산-육아'로 이어지는 하나의 루트만 표준으로 제시된다. 아이를 낳아도 괜찮고, 아이를 낳지 않아도 괜찮은, 어떤 선택을 하든 자신의 삶이 위협받거나 침해당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p.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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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15】 인구감소는 대한민국의 소멸을 가져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