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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 가수 장기하의 깨달음
    가수 장기하를 좋아한다. 노래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의 대중적인 첫 노래 “싸구려 커피”, “달이 떠오른다, 가자” 등은 신선했다. 읽을 책들을 검색하다 보니 그가 몇 년 전에 쓴 것이 있어 대출해서 봤다.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첫 장인 ‘안경과 왼손’은 주어진 환경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돌아본 후 감사하는 내용이다. 읽어볼만해 전문을 소개한다. 안경과 왼손 얼마 전 안경을 잃어버렸다. 매우 아끼는 안경이었다. 아니, 아낀다는 표현으로도 모자란다. 이삼 년 전 그 안경을 산 이후로는 오직 그것만 써왔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있을 만한 곳을 전부 다 여러 번씩 싹싹 뒤져봤지만 찾지 못했다. 결국 예전에 썼던 다른 안경을 쓰고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 이삼 일 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마음을 털어버렸다. 그래, 그 안경이랑은 여기 까지였나보지 뭐. 나는 국소성 이긴장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다. 해괴해 보이는 이름이지만 의미는 간단하다. '국소성'이란 특정 부위에 나타남을, '이'는 이상함을, '긴장'은 말 그대로 긴장을 뜻한다. 한마디로 특정 부위가 이상하게 긴장된다는 얘기다. 이 병명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는 '이'다. '이'자가 들어간 병을 선고받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런 상황이다. 몸이 안 좋다. 병원을 찾아가 묻는다. "선생님, 저 왜 아픈건가요?" 의사가 답한다. "그러게요. 이상하네요." 그렇다. 내 병은 원인도 치료법도 알려지지 않은 희귀병이다. 이 병이 처음 생긴 것은 대략 십오년 전쯤으로, 군악대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눈뜨고코베인'이라는 록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었다.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드럼 하나로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연주를 잘하는 사람, 즉 프로 드러머가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외의 진로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학교 공부는 최소한으로 하고 드럼 연습과 밴드 활동 위주로 생활했다. 그러다보니 군복무를 시작도 하지 않은 채 대학 오 년 차를 맞았고, 더이상은 입대를 미룰 수 없게 되었다. 내 선택은 당연히 군악대였다. 군대에 있는 동안 손발이 녹슬면 큰일 아닌가. 일반 부대는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군악대는 록 연주만 잘한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클래식 타악, 특히 행진곡풍의 연주에 능통해야 했다. 자신은 있었다. 이미 연습이라면 많이 해온 터였기 때문이다. 좀 다른 장르의 연주라고 해서 못 해낼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시험을 대비해 맹연습에 돌입했다. 이삼 개월쯤 지났을 때 복병이 나타났다. 연습만 하려고 하면 내 의지와 관계없이 왼손이 꽉 쥐이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드럼 연주의 기본은 그립이다. 누가 툭 치면 놓쳐버릴 듯 살며시 스틱을 잡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만들어야 빠르고 정확한 연주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꾸 나도 모르게 스틱을 힘껏 잡게 되고 그것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연습하다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스틱을 집어던진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결국 군악대는 포기했다. 치료법도 알 수 없고 상태가 호전될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프로 드러머의 꿈도 함께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리 절망스러운 단념은 아니었다. 내 생각의 흐름은 이랬다. '하긴 군악대의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연주하는 게, 내가 멋있는 음악을 하는 데는 오히려 해가 될지도 몰라. 멋있는 음악이라... 그래, 생각해보면 프로 드러머가 되는 것 자체가 멋있는 음악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겠네. 연주로 먹고살려면 돈 되는 음악을 해야 하는데, 내가 지금 멋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음악 중에 돈 되는 게 하나라도 있나? 그리고 나는 우리 밴드 음악이 제일 멋있는데 그걸로 돈을 벌어본 적도 없잖아? 애초에 음악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였어!'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프로 연주자가 아닌, 돈은 안 돼도 '멋있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일반 부대에 입대했다. 제대한 후 나는 그 '멋있는' 뮤지션이 되는 일을 실행에 옮겼다.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한 상태에서, 내가 싱어송라이터로서 이끄는 새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한 것이다. 최소한의 돈과 최대한의 시간을 확보해 자유롭게 음악활동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곡은 군복무중 짬짬이 만들어뒀었다. 물론 큰 인기를 얻으리라는 기대는 전혀 없이 만든 노래들이었다. 눈앞에 있는 관객들만은 확실히 재밌게 해주겠다는 생각이 다였다. 그런데 터졌다. 소위 '대박'이었다. 활동을 시작하고 일 년이 지나기도 전에 전 국민적 히트곡을 보유한 밴드가 된 것이다.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순조로웠다.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왼손에 힘이 들어가는 증상이 기타를 연주할 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 증상이 신기했던 건 유독 드럼 연주를 할 때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다른 일을 할 때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물론 기타 연주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군복무중에도 생활관에 비치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만들었고, '장기하와 얼굴들' 첫 싱글을 녹음할 때도 기타는 내가 다쳤으며, 밴드 활동 초기에는 공연을 할 때도 절반 정도의 곡에서는 내가 기타를 잡았다. 그런데 급격하게 치솟는 인기를 실감하며 공연을 이어가던 어느 날, 기타를 연주할 때도 왼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기타도 포기했다. 이번 단념은 군악대 때와는 달리 좀 절망스러웠다. 공연에서 기타를 연주하지 않기로 했음은 물론이고, 평소에 혼자 치는 것도 거의 못하게 됐다. 늘 자유자재로 하던 기본적인 플레이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니 짜증이 치밀었다. 자연히 심심풀이로 기타를 잡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중학교 때 이후로 그때까지 줄곧 기타는 나의 가장 좋은 취미 중 하나였다. 집에 있을 때면 침대에 누워 기타를 배에 얹고 아무렇게나 퉁겼다. 그러면서 멜로디를 이리저리 흥얼거리다보면 이따금씩 노래가 만들어지곤 했다. 그런 일상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날아가버렸다. 게다가 이번에는 증상이 연주에만 국한돼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일상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곧 타자를 치는 것도, 단추를 잠그는 것도, 왼손을 써야 하는 어떠한 일도 예전만큼 쉽게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로부터 십 년이 흘렀다. 그런데 그 십 년을 돌이켜보면, 이 병이 내게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사실 병에게 엎드려 절하고 싶을 지경이다. 프로 드러머의 길을 포기함으로써 결국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타 연주를 포기한 것 역시 내게 두 가지 커다란 선물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새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 형을 영입한 것, 둘째는 내가 무대에서 악기 없이 자유롭게 퍼포먼스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장기하와 얼굴들’의 활동이 내게 가져다준 희열은 말도 안 되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증상도 아주 조금씩 좋아져 이제는 거의 다 나았다. 지금도 약간의 느낌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일상에서 그것을 의식하게 되는 일은 드물다. 기타와 드럼도 취미 정도로는 다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 연습을 안 했으니 남들 앞에 뽐낼 만한 연주력은 당연히 아니지만, 사실 이제는 그런 능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좋은 연주자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증상이 가장 심했을 때를 떠 올리면 집에서 혼자 재밌게 연주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지금도 이 병의 원인은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듯하고, 물론 나도 아직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이렇게 추측할 뿐이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과도한 것을 강요했고, 몸이 그만두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충분히 쉬게 해주었으며, 그랬더니 시간을 두고 차츰 회복되었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그리고 형체가 없긴 하지만 능력도 마찬가지다. 어제까지 당연히 할 수 있었던 일을 오늘 갑자기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무척 괴롭긴 했지만, 결국 다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 능력은 여기까지인가보다, 하고.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 맞춰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그러고 나면 그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다른 길이 열리곤 했던 것이다. 안경은 며칠 뒤에 소파 밑에서 찾았다. 전날 술에 취해 소파에서 잠들었고, 안경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는 과정에서 소파 아래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거실에서 잠드는 일이 거의 없다보니 그곳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먼지 구덩이 속에 얌전히 놓인 안경을 발견한 순간, 그야말로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많이 아끼는 안경이라 해도, 물건 하나로 그렇게까지 기쁠 수 있다싶었다. 모르긴 해도, 깨끗이 포기했었기 때문일 거다(pp.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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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5-02
  • 【단상】 부총회장 선거, 축제가 싸움판으로
    지난 4월 25일 오전 11시 참좋은교회(이윤찬 목사 시무)에서 대구교직자협의회 제31회 정기총회가 있었다. 이승희 증경총회장의 개회 예배 설교 후 합심기도 시간에 경북교직자협의회 대표회장 강전우 목사가 ‘총회와 영남지역을 위해서’ 기도할 때 부총회장 자격 문제로 소송이 붙은 총회를 염려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소송 관계자인 부총회장 후보 민찬기 목사나 장봉생 목사의 마음은 어떨지 모르나 총회 회관에서 먼 경상도 지역에서도 현 사태를 매우 안타깝게 여기며 탄식으로 기도하고 있다. 아마 이 사태를 지켜보는 대부분의 총대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한 사람의 부총회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물질이 필요하다. 노회와 협의회, 총회 등에서 오래 봉사하며 자신을 알려야한다. 이에 많은 시간이 든다. 그리고 물질로도 많이 섬겨야한다. 그래서 아무나 부총회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시간과 물질로 섬겨온 부총회장 후보들은 모두 총회의 귀한 자산이다. 바람직한 것은 단독 후보로 추대되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경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친했던 사이도 서먹해지거나 “원수” 사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곽선희 목사는 운동을 할 때 서로 마주보는 것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탁구나 테니스나 서로 마주보고 하다보면 감정 싸움이 될 수 있기에 자기는 각자 실력으로 승부하는 볼링을 한다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오래 세월 총회를 섬겨온 민찬기 목사나 장봉생 목사는 현재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내리 누르고 이겨야할 경쟁 상대로 보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런 면에서 선거란 참으로 잔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민찬기 목사 소속 임원회가 민찬기 목사의 후보 자격에 대해 물었을 때 장봉생 목사 소속 노회도 임시노회를 열어 부총회장 출마 자격에 대해 선관위에 질의했다. 선관위가 이 문제를 다룰 때 투표에 처음에는 7:7 동수가 나왔다. 이어 재투표하여 7:8로 세 번 출마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 지나간 일이지만 의견이 7대 7로 나뉘었다는 것은 선관위원 내에서도 의견이 팽팽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문제를 바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좀더 시간 여유를 두고 처리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증경총회장단의 의견을 듣는다든지, 실행위원회에서 의견을 구했다면 모양세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속전속결로 재투표해 7:8로 세 번 출마 불가로 정했다. 그러자 민찬기 목사측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소송을 했고, 소속 노회에서 부총회장 후보로 추천을 받았다. 세상 법정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두고보면 된다. 그런데 성경은 교회 문제를 세상 법정에 끌고가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고전6:1-7]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새로이 총회를 섬길 일꾼을 뽑는 총회 선거가 축제가 아니라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사법의 판결을 받아야하는 싸움판이 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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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4-04-26
  • 취재 기자를 내쫓는 노회들...무엇이 두려운가?
    봄 정기노회가 열리는 계절이다. 서울에서 먼 지방의 몇몇 노회를 취재갔다. 그 중 2개 노회에서 “내쫓김”을 당했다. 이리노회는 북일교회 문제로 회원 호명 때부터 시끄러웠다. 결국 노회원들간에 고성이 오갔다. 이런 가운데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거칠게" 요구했다. 결국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 충청노회도 전 총신대총장 김영우 목사 피소건에 대해 다루며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험악하게” 요구했다. 결국 본당 중이층으로 쫓겨갈 수 밖에 없었다. 기자는 사실을 취재하고 알리기 위해 그 현장에 가 있는 것이다. 북일교회 문제는 대부분의 총회원들이 알고 있을만큼 큰 이슈이다. 당연히 기자들이 가서 취재할 수 밖에 없는 사항이다. 기자는 총회원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대신해서 그 현장에 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기자들을 내쫓는 것인가? 그것이 과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는가? 기자가 보면 안될만큼 감춰야할 문제가 있는가? 사실을 사실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 없는 노회는 취재간 기자들을 반기며 좋게 기사를 써서 노회를 잘 홍보해 달라고 부탁한다. 기자로서도 기분좋은 일이다. 반면 문제 있는 노회는 기자를 내쫓는다. 마치 잡상인 취급을 한다. 부득이 기자를 내보낼 필요가 있다면 “정중하게” 요청했으면 한다. 같은 합동측 목사한테 그렇게 함부로 해서 되겠는가? 앞으로도 “문제 있는” 이리노회와 충청노회 “사태 추이”에 대해 예의주시할 것이다.
    • 오피니언
    • 칼럼
    2024-04-03
  • 【북토크】 편협한 꼰대가 되지는 말아야 할텐데....
    자기 생각에 갇혀 사는 사람은 편협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하고는 대화도 되지 않는다.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남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개방해야한다. 죽고 사는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럴수도 있구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편협함 공부를 하면서 문득 깨달은 건, 법률 외에 삶의 모든 기준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 기준들은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니어서 주변사람에게 영향을 받아 생성되기도 하고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워지기도 한다. 또 삶의 경험이 켜켜이 쌓이면서 조금씩 견고해지고 구체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여러 기준들을 만들어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일은 어쨌거나 사람이 하는 것이란 점에서 언제나 주관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너무 쉽게 각자가 세운 판단 기준이 ‘정답’이라고 착각한다. 사람은 쉽게 타성에 젖으니 자신의 판단 기준과 결론이 절대적인 단 하나의 정답이라 믿으며 자기 우물 안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기준에 정답이란 없기에 자신이 바르고 타당한 기준을 세워가며 나이 먹고 있다는 생각도 사실 편협한 ‘착각’에 가깝다. 나이를 먹는 일이 무서운 건 나도 모르는 새 나의 판단이 바르고 타당한 정답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조직에 잘 적응한다는 것은 곧 그 곳의 기준을 잘 습득해 체화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공동체에서 튀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공동체의 평가 기준을 답습하기도 하고, 나는 다르다 여기며 살아도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그 밥에 그 나물처럼 사고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쉼 없이 자신의 옳고 그름을 고집하기도 하고 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숨기기 위해 고집스러운 기준으로 타인을 깎아 내리기도 한다. 입만 열면 세상 곳곳에 대한 불만을 쏟아 내는 투덜이 스머프 같은 사람이 있었다(입만 열면 남의 흉을 보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결이랑은 또 다르다). ‘이건 이래서 구리고, 저건 저래서 구리고’, ‘그런 사고방식이 말이 되느냐. 말은 그렇지만 속내는 이런 것 아니겠느냐’하는 식으로 언제나 자신 밖의 사람과 상황에 대해 평가만 늘어놓는 사람이었다. 초반에는 그가 솔직하고 유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어떤 것. 누군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 지 밝히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그 취향과 기준을 고백하는 것이 자신의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데 저렇게 쿨하게 늘어놓다니!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화의 주된 발언이 자기 자신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평가이다 보니 들을수록 의아한 지점이 생겼다. 당신에게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 타인이 당신에게 평가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 평가할 자유가 있다고 해도 당신의 평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는지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의 평가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에 대한 인상 또한 '예리하고 유쾌한 사람이다' 라기 보다 ‘어딘가 모르게 편협하다’, ‘편협함을 자랑하는 태도가 참 멍청하다’까지 이어졌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 몇몇 단정적인 말들에서 그가 타인에 대한 평가를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었던 까닭을 눈치 첼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자신의 말이 정답이라고 여겨서 가능했던 것 이었다. 자기 말이 정답인 사람 곁에 다른 의견들은 오답처리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이 오답이 되 는 대화를 좋아라할 사람은 없다. 그렇게 그는 자기주장이 뚜렷한 사람에서 편협한 사람으로 점차 다르게 기억 됐다. 중학생 때 유독 적이 없었던 한 친구가 떠오른다. 말수가 적어서,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아서, 호불호가 없어서가 아니라 ‘편견’이 없어서 두루두루 모두와 잘 지내는 친구였다. 그는 어떤 친구들에게도 늘 같은 태도로 화답했다. 편견, 그러니까 그 편협함은 끊임없이 나를 위해 타인을 배척하는 수단이 된다. 진정한 세월의 지혜는 오히려 '편견 없음'에 가까울 거라 생각한다. 타인을 판단하는 가장 괜찮은 기준은 포용이 아닐까? 타인과 자신에 대해 사람은 언제나 ‘알 수 없음’ 한 줌은 가지고 사니까. 견고한 기준은 편협한 생각의 방증일지도 모른다(pp. 178-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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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1
  • 【북토크】 自害가 생존전략이라니....
    나는 상담, 심리 관련 책도 좋아한다. 대학때부터 지금까지 기회 되는대로 읽고 있다. 우연히 보게 된 이 책에서 “자해도 생존방법”이라는 것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오죽하면 살기 위해 자기 몸에 해를 주는 것인가? 길지 않은 인생을 사는데도 참 힘들다. 세상에 불쌍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들과도 더불어 살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고민하게 된다. 자해하는 게 문제라고 말하며 부모님 권유로 상담실에 온 고등학생 내담자를 만났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사소한 일로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졌고 왕따를 당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학교 가는 게 힘들어서 지각과 결석을 반복하며 적응이 더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친구들이 자신에 대해 안 좋게 말할까 봐 계속 예민한 상태로 있다 보니 피곤하고,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워서 거의 책상에 엎드려 있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온라인에서 만난 학교 밖 친구들과는 관계를 잘 맺고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웃으면서 인기가 많다고 얘기 하다가 이내 걱정하는 얼굴로, 사실 인기가 많은 이유는 친구들을 잃을까 봐 엄청나게 신경을 쓰면서 친구들 비위를 다 맞춰주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왕따니까 밖에서 힘들게 만든 친구들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 친구들이 부르면 거절하지 못하고 모든 모임에 나가고 친구들 말을 들어주고 웃어주느라 에너지가 다 빠진다고 했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도 즐거운 것처럼 친구들과 놀고, 막상 집에 오면 허무하고 외로운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혹시나 말실수해서 친구들이 자신을 싫어하게 될까 봐 매번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자신이 잘못한 게 없는지 확인 한다고 합니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한 상태로 가득 차 있다가 가족들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화를 냅니다. 우울한 기분, 친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공허한 느낌, 불안감이 뒤섞이면서 마음이 터질 것 같은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그럴 때 자해를 하게 된다고,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고, 나지막이 말 합니다. 물속에 오래 있을 때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안 쉬어지다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 숨이 크게 내쉬어지는 것처럼, 자해하고 나면 숨이 쉬어지고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많은 내담자가 말합니다. 자해는 화가 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자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수단입니다. 아무런 감각이나 감정을 느끼지 못할 때 무언가를 느끼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방법입니다. ‘자해는 나쁘다, 절대 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올 수도 있지만, 자해는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생존전략이 됩니다(pp. 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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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3-31
  • 【북토크】 문학을 통해 배운 것들
    이 책의 저자는 문학을 통해 배운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세상을 바라볼 때 시선의 위치와 방향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시야가 달라진다는 것,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일,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는 일,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내 안의 무언가가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일 또한 가능하다는 것, 인간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쓰면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을 꿈꾸면서도 끝내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이 모든 것을 나는 문학을 통해 배웠으며 이 경험이 나를 바꿨다는, 어쩌면 너무나도 문학도 같은 이야기다” 나는 이 글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래서 지금도 이 “재미”에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은 직접 문학 작품을 다루지는 않는다. 저자는 넥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 여러 OTT에 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소재로 이 책 한권을 썼다. 물론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도 많다.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느낌을 갖는다. 나는 이런 글을 쓸 실력이 없어 감탄하면서 봤다. 유홍준 교수는 그의 역작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했다. 모르면 보이지 않는다. 기회가 되면 이 책의 저자처럼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글도 써보고 싶다. 그럴려면 아들이 가입해 놨지만 안 보고 있는 넥플릭스를 열심히 이용해야 할 것 같다. 할 일이 또 하나 늘었다. 이 또한 새로운 도전이니 기대가 된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서른 줄에 접어든 이후로는 이야기할 일이 거의 없긴 하지만, 피치 못할 이유로 전공을 언급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괜히 머쓱해진다. 직업이 작가이기 때문이다. 작가인데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고 하면 "전공을 살리셨구나!" 같은 말을 듣게 되고 만다. 전공을 살린 것일까? 괜히 골똘해졌다가는 국어학과 국문학의 차이라든가, '과연 어디까지가 문학인가'라는 질문이라든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해서 작가가 되면 전공을 살린 것인가 아닌가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되기 때문에, "그런가요?" 하고 대답한 뒤 얼른 소재를 바꾸는 것이 좋다. 그러지 않으면 "국문과가 굶는 과라던데... " 하는 식의 무례한 농담을 듣게 되어버리고 만다. 이 농담을 들을 때면 미소 비슷한 것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재빠른 소재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봐도 국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작가가 된 것 같지는 않다. 인과관계가 없는 일로 보인다. 학과 공부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거나 쓸모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문학이 정말 재미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고, 그래서 상당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 문학 작품을 읽고, 문학을 배우고, 듣고, 공부하며 보낸 20대 초반의 몇 년간, 내가 세상을 보는 법은 달라졌다. 이 시절의 경험이 내 삶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또 나의 어떤 부분을 바꿨는지를 전부 말하자면 너무 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줄여서 말해보자면, 나는 문학을 통해 이런 것들을 배웠다. 세상을 바라볼 때 시선의 위치와 방향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시야가 달라진다는 것,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일,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는 일,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내 안의 무언가가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일 또한 가능하다는 것, 인간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쓰면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을 꿈꾸면서도 끝내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이 모든 것을 나는 문학을 통해 배웠으며 이 경험이 나를 바꿨다는, 어쩌면 너무나도 문학도 같은 이야기다(pp. 139-141).
    • 오피니언
    • 책소개
    2024-03-28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북토크】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내가 사는 동네 가까운 수유역 근처에 교보문고가 있다. 한번도 가보지는 않았는데 어느 날 지나가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슬로건을 사진으로 찍었다. 맞는 말이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책은 중요하다. 스스로를 “지식 소매상”이라고 하는 유시민이 쓴 『청춘의 독서』를 읽었다. 그가 20대에 읽고 영향 받았었던 책들을 50대에 다시 읽으면서 그때와 지금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시도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책은 가만히 있지만 책을 읽던 사람은 연륜과 지식이 더해지면서 새로운 각도로 과거의 책을 보게 된다. 그러면 전혀 다른 느낌을 주기도한다. 나도 그런 경험을 했다. 군대에 가기 전 20대에 박영한 작가의 『머나먼 쏭바강』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후 50대 중반에 문뜩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어 구입했는데 보다가 관뒀다. 군대생활을 경험하기 전에는 그 소설이 그럴듯했는데 군대 생활을 4년이나 경험한 입장에서 볼 때 너무나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다시 읽기를 원치 않았다면 좋은 추억으로 남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고원정의 1999년 작 군대 소설 『빙벽』도 마찬가지이다. 너무 흥미진진하게 읽었는데 지금은 크게 감흥이 없다. 소설이 너무나 “소설”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뜬금없이 고원정 작가 생각이 나서 검색해 보니 2003년에 쓴 『불타는 빙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도서관에서 빌려 봤다. 9권의 『빙벽』 이후의 이야기였는데 젊었을 때 봤으면 큰 감동이 있을지는 모르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책은 변함이 없는데 책을 읽는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이러한 책은 고전이 될 수 없다. 고전은 그때나 지금이나 포인트는 달라도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이 있다. 유시민 작가는 자신이 젊었을 때 읽었던 14권의 책에 대해 쓰고 있다. 이 중에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기도 하다. 기회가 되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유시민 작가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름 흥미로운 일이다. 다음은 인용글이다.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는 E. H. 카 선생께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50년을 살면서 읽은 책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 하나 만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바로 이 책 『역사란 무엇인가』를 집어 들것 이다. 그는 내게서 역사와 사회에 대한 개안의 기적을 일으켰고, 어느 정도 내 삶을 바꾸어놓았다. 다른 삶을 살았더라도 가치 있는 삶일 수 있었겠지만, 그의 영향을 받았던 실제의 내 삶에 나는 불만이 없다. 이번에 다시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그에게 감사 하게 되었다. 나는 지쳤다. 존경했던 이들은 먼 곳으로 떠났고, 사랑하는 동료들은 시대의 삭풍에 떨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겠으나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야 할지 몰라 번민한다. 내가 받들고자 하는 사 람들은 나를 외면하고, 같은 방향을 보고 걷는 사람들과도 손을 잡기가 어렵다. 가끔 나는 내 자신이 물 밖으로 팽개쳐진 물고기 같다고 느낀다. 다른 생각 없이 그저 잘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하면서 나에게 친숙한 작은 공동체 안에서만 머무르고 싶다. 그런 나를 선생은 따뜻하 게 격려해준다. “역사와 사회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어떤 자동적인 또는 불가피한 진행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 발전에 대한 믿음”이라고, 이 믿음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그의 격려를 받아들여야 할까?(p. 319). 좋은 책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 『사기』를 읽을 때 나는 2000년을 단숨에 건너뛰어 사마천의 숨결을 느낀다. 『광장』을 읽는 동안 내 정신과 감각은 60년 전 해방 공간으로 시간 여행을 하고 4• 19혁명 직후 새 공화국을 보면서 최인훈 선생이 느꼈던 환희를 함께 맛본다. 『대위의 딸』 을 읽으면서는 시인 푸시킨의 자유를 향한 목마름을 나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 기적일 수 있을까. 이런 기적을 일으키는 책보다 위대한 인류의 유산이 달리 또 있을까. 이 책이 독자들의 마음에 그러한 기적을 직접 체험하고 싶은 갈증을 불러일으키고, 위대한 지성이 인류에게 남겨준 유산을 함께 나누는데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p. 325).
    • 오피니언
    • 책소개
    2023-12-03
  • 【북토크】 무관심 속에 세월만 흐르는 남북통일
    역사는 내가 싫어하는 분야다. 연도나 인물을 외우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사나 세계사 얘기가 나오면 주눅이 든다. 억지로라도 교양인 수준의 역사 지식은 가져야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명한 역사학자 강만길 교수가 그의 책에서 남북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글이다. 질문) 남북분단이 오래 지속되어 사람들 사이에 통일에 대한 열망이 많이 사그라든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분단시대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요? 답변) 민족분단시대가 반세기를 훨씬 넘기다보니 분단 타성 같은 것에 빠져서 분단 고통에 대한 인식과 통일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심지어 어느 강연장에서는 같은 민족이 두개 이상의 나라를 이루어 사는 경우도 없지 않으니 되지도 않을 통일, 통일 하지 말고 남북이 싸우지만 말고 이대로 나뉘어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는 질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 땅의 지정학적 위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근대사 이후 우리 민족이 겪은 역사적 고통을 누누이 말했지만, 그런 문제를 떠나서도 특히 통일문제에 대한 우리 젊은이들의 열망이 사그라드는 데는 그저 아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도 늙은 세대의 고질이다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젊은이들, 특히 대학생들이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1학년 마치고 입대할지 2학년 마치고 입대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부터 육십년 전에 나도 꼭 같은 고민을 하다 결국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입대했었는데, 지금 내 손자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예사로운 일일까요? 세계에 이런 민족사회가 또 있을까요? 이십대 초엽의 꽃다운 나이에 어제까지의 일을 백지인지 '백치'인지로 돌릴 것을 강요당하는 군대 생활을 반드시 몇년씩 해야 합니다. 동포인 북녘 젊은이들은 복무기간이 더 길다고 알고 있지요. 대부분의 세계 청년들이 가고 싶은 사람만 받을 만큼의 월급을 받고 군대에 가는데 말입니다. 이게 모두 분단 때문이 아닌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 부자 나라 일본도, 그리고 통일한 독일도 상비군이 30만명 미만이라고 들었는데 우리는 남북을 합치면 백만명이 훨씬 넘습니다. 그 군사비용이 또 얼마입니까? 동족끼리 반세기가 넘도록 다투고 있는 우리 땅을 두고 세계인들이 '극동의 화약고'요 세계에서 전쟁 위험이 제일 높은 곳의 하나라고 한심해하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남쪽은 옛 소련과도 또 중국과도 벌써 국교를 열었는데 북쪽은 아직도 미국과도 일본과도 국교가 없고 따라서 우리 땅 전체가 저 무서운 핵전쟁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모두 분단 때문인데 통일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든다고요? 도대체 생각이 있는 젊은이들일까요? 더 할 말을 잃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지난 20세기보다는 세계 평화가 정착되어가고 우리 젊은이들의 세계무대에서의 활동도 활발해지리라는 전망입니다. 그런데 제 민족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서 언제까지나 '극동의 화약고'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세계무대에서의 활동은 아마 다른 나라 젊은이들의 조롱거리가 되고도 남을 겁니다. 민족의 평화적 통일 문제는 시일이 지난다고 해서 결코 사그라들 문제가 아닙니다(pp. 142-144).
    • 오피니언
    • 책소개
    2023-11-28
  • 【북토크】 책 중독자, 김영란 전 대법관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고시에 붙어 판사의 길을 한평생 간 법조인의 삶은 행복했을까? 그당시 문과에 점수 높은 학생들은 법대로, 이과는 의대로 진학했다. 아마도 김영란 전 대법관도 높은 점수에 따라 법대로 진학했을 가능성이 많다. 이후 수많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에 보람을 느꼈을까? 그녀는 어려서부터 독서광이었고 법조인의 길을 가면서도 그러했다. 글 속에 소개한 책들은 나는 읽기는커녕 들어도 보지 못한 것들이다. 그만큼 그녀는 독서에 있어 고수이다. 나도 한때 소설을 많이 보다가 일부러 끊었던 적이 있다. 한줄로 요약할 수 있는 내용으로 한권, 다섯권, 때로 열권을 썼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설은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래서 마사 누스바움 로스쿨 교수는 법학도들에게 소설을 읽으라고 했는지 모른다. 판사는 남의 인생사를 판단해 주는 사람이기에 차가운 법률이 아닌 공감 능력으로 타인의 인생을 봐야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분야의 일을 성실히 감당한 독서 고수를 보며 도전을 받고 더 열심히 책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문학적 재판관 『시적 정의』 저는 제 삶을 가지고 스스로 이분법 놀이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랫동안 판사 생활을 하면서도 내 삶과 세상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해왔으니까요. 법원에 가면 남의 사건을 열심히 연구하는 법률가로 일하지만, 집에 오면 전공이나 생활과는 전혀 상관없는 책만 읽었습니다. 저는 책 읽기와 직업을 늘 분리해서 생각했습니다. 직업적인 이유로 꼭 읽어야 하는 법률서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댓가가 돌아오지 않는 책들만 읽어왔으니까요. 그러다가 어느날 만난 책이 『시적 정의』입니다. 이 책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책을 읽어온 것이 완전히 쓸모가 없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쓴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은 시카고 로스쿨의 교수입니다. 로스쿨에서 '법과 문학'이라는 수업을 맡아 로스쿨 학생들과 함께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인간적이고 다양한 가치를 지닌 공적 합리성 개념'이 ‘공적 추론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고, 그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정의가 어떻게 시적일 수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누스바움은 책의 앞머리에서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시 「나 자신의 노래」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한 아이가 물었다. 풀잎이 뭐예요? 손안 가득 그것을 가져와 내밀면서. 내가 그애에게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그것이 무엇인지 그애가 알지 못하듯 나도 알지 못하는데.(『시적 정의』, 궁리 2013, 7면)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에서 "문학적 재판관은, 휘트먼의 시인과 같이, 풀잎사귀들 속에서 모든 시민들의 평등한 존엄 - 또한 성적 갈망과 개인적 자유의 보다 신비로운 이미지들까지도 - 을 본다" (252면)라고 말합니다. 서로를 온전한 인간으로 보는 것이 곧 시적 정의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시적 정의의 개념은 재판관에게 문학적이기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문학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누스바움은 그것을 과학적 사고와 대비해서 설명합니다. 누스바움은 과학이라는 이름하에 행해지는 경제학적 사유는 "인식 가능한 세계의 질적인 풍성함, 인간 존재의 개별성과 그들의 내면적 깊이, 그리고 희망, 사랑, 두려움 따위는 보지 못한다. 또한 인간으로서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의미있는 삶은 어떤 것인지 등을 알지 못한다. 무엇보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신비하고도 지극히 복잡한 어떤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 복잡함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언어들과 사유의 능력을 통해 접근해야만 한다는 점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73면)라고 지적합니다. 반면 문학은 세상을 환원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질적인 차이들에 주목한다고 합니다. 누스바움은 소설의 특징으로 “인간의 개별성에 대한 존중과 질적인 것으로부터 양적인 것으로의 환원 불가능성에 대한 인정, 세계에서 개인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 그리고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마치 개미나 기계 부품의 움직임이나 동작같이 객관적인 외부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자신의 삶에 다층적인 의미를 부여하듯 삶 속에서 우러나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묘사"(83)를 꼽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학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공평한 관찰자가 되는 훈련을 받는다고 합니다. '공평한 관찰자'란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도덕감정론』에 나오는 개념입니다.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행위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또다른 자신, 즉 공평한 관찰자를 내면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과 행위에 대해 공평한 관찰자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는것이지요. 누스바움은 이 개념을 끌어와, 공평한 관찰자는 "자신이 목격하는 사건에 개인적으로 연루되지는 않지만, 그들을 염려하는 친구로서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160면)고 설명합니다. 관찰자로서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안전과 행복을 고려하지 않으므로 편향적이지 않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들의 처지를 자신의 것처럼 상상한다는 것이지요. 애덤 스미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만일 자신이 그와 같은 불행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동시에 아마도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 불행한 상황을 현재의 이성과 판단력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다면, 자신은 무엇을 느끼게 될지를 함께 생각" (161~62면)한다는 것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이를 '공감'이라고 말합니다. 애덤 스미스 당시에는 공감, 즉 엠퍼시(empathy)라는 단어가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동감'의 뜻에 가까운 씸퍼시(sympathy)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가 말하는 공감이 단순히 당사자들과 일치되는 감정이 아니라 공평한 관찰자로서의 감정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누스바움은 재판관이 갖추어야 할 공적 합리성은 바로 이 공평한 관찰자의 감정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문학 작품은 불완전한 길잡이가 될 수도 있고 여전히 기존의 법령과 판례 등에 관한 지식이나 재판의 제도적 역할에 대한 인식 등이 전제되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문학적 상상력은 재판관이 자신 앞에 놓인 사건의 사회적 현실로부터 고상하게 거리를 두지 않고 풍부한 상상력을 겸비한 구체성과 정서적 응대를 바탕으로 현실을 철저하게 검토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지요. 쉽게 말하자면, 문학적 재판관이란 문학작품을 읽는 독자와 비슷한 관찰자의 능력을 지닌 재판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연극이나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요즘 식으로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오이디푸스 왕』과 같은 그리스 비극에서 우리는 오이디푸스의 행동을 보면서 '저러면 안되는데' 하고 안타까워합니다. 그 사람과 행동을 같이하지는 않고 비판적인 거리를 두면서도 그 사람의 처지와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지요. 이는 굳이 애덤 스미스를 빌려오지 않더라도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저는 그동안 제가 소설을 많이 읽어온 것이 전혀 쓸모없는 일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변에서 왜 소설을 그렇게 많이 읽느냐, 시간이 아깝지 않으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거든요. 스스로도 소설이 나에게 주는 효용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했고, 한편으로는 내가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지 않으려고 소설 속으로 도망가는 것은 아닐까 자문하기도 하고 또 어느 정도 자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누스바움은 내가 읽어온 책들이 내게 '공감'이라는 훈련을 시켜주어서 내가 현실에서 사건을 보고 판결을 하는 자세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직업적으로도 꽤나 쓸모가 있었던 셈입니다. 제게 큰 위로가 되어준 것이지요.(pp. 71-80)
    • 오피니언
    • 책소개
    2023-11-27
  • 【북토크】독서의 필요성과 희열
    목회할 때나 교계 기자를 하는 지금이나 나는 책을 열심히 읽는다. 독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지금은 돈을 벌어가면서 책을 읽느라 목회할 때보다 책 읽는 시간이 줄었다는 것이다. 목회할 때는 목양실에서 하루 종일 책을 본 날이 많았다. 목회를 중단하며 넓은 목양실의 책을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많은 책들을 버리고, 친구들에게 주고 일부만 가지고 이사를 했다. 지금은 도서관에서 빌려 본다. 책을 둘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전업 작가인 유시민은 탁월한 달변가이며 많은 책을 낸 저술가이다. 그는 생각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어휘를 늘려야하고 그러기 위해서 독서를 해야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또한 책 읽기의 희열을 느껴보라고 한다. 그렇다. 책을 읽다가 기막힌 내용이 나오면 전율한다. 그래서 그 희열을 느끼기 위해 계속해서 책을 읽는지도 모른다. 목사는 책을 읽어야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도서비도 책정되어 있지 않은가? 목사에게 독서는 의무이자 특권이다. 뻔한 설교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어야한다. 책 읽기를 멈춘다면 목회도 멈춰야하지 않을까? 그의 글을 인용해 본다. 자기의 생각과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해야 글로 그것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먼저 그 생각과 감정을 나타내는 어휘를 알아야 합니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문장 공부를 하는 분들이 흔히 있는데, 구사할 수 있는 어휘가 빈약하면 아무리 문장 공부를 해도 글이 늘지 않습니다. 사용할 수 있는 어휘의 양을 늘리는 것이 글쓰기의 기본이에요. 아무리 멋진 조감도와 설계도가 있어도 건축자재가 없으면 집을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어휘가 부족하면 생각과 감정을 글로 쓸 수 없어요. 그래서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먼저 어휘를 늘리라고 권하는 겁니다. 구사할 수 있는 어휘의 양이 생각의 폭과 감정의 깊이를 결정합니다. 자기 자신과 인간과 사회와 역사와 생명과 자연과 우주에 대한 이해의 수준을 좌우합니다. 어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괴상한 편견이 있더군요. 풍부한 어휘를 구사해 논리적이고 실감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아요. 말을 잘하는 사람은 믿기 어렵다는 겁니다. 반면 지극히 단순한 어휘를 반복 사용하면서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어렵도록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말하면 '간결어법'이라고 칭찬합니다. 생각이 얕고 감정이 메말라서 할 말도 적고 표현하는 능력도 없는 사람을 두고 ‘말이 적고 진중하다’고 하죠. 저는 이것이 일종의 '반지성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말 많으면 공산당'이라는 '말같잖은 말'이 통용되기까지 합니다. 어휘 부족과 문장의 단조로움은 지적 수준이 낮고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제대로 된 문명국가의 정치 지도자들 중에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 보셨나요? 진보든 보수든 다들 말을 잘합니다. 2016년 미국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사람들을 보면,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과 버니 샌더스(BernicSanders)는 물론이요 막말로 악명 높았던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도 말을 얼마나 찰지게 했습니까. 십육년 동안 집권하면서 통일을 이룬 독일 보수 기민당의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도 할 줄 아는 언어가 독일말 하나뿐이었고 눌변으로 유명했지만 연방의회에서 토론할 때는 정책 쟁점에 대해서 오해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곤 했습니다. 일국의 대통령이 임기 내내 단 한번도 토론다운 토론이나 기자회견을 하지 않은 것은 단순히 말을 잘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사전에 짜놓은 각본 없이 누군가와 토론하는 데 기본으로 필요한 내용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무 야박한 평가인가요? 어휘를 늘리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 독서입니다. 글쓰기를 주제로 한 모든 강연에서 저는 이것을 강조합니다. 『토지』 『자유론』 『코스모스』 『사피엔스』 『시민의 불복종』처럼 풍부하고 정확한 어휘와 명확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한 책을 다섯번 열번 반복해서 즐기며 읽는 거예요. 읽고 잊고, 다시 읽고 잊고, 또 읽고 잊어버리고, 그렇게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끝없이 집을 지을 수 있는 건축자재를 끌어 모으게 됩니다. 그렇지만 고등학생이 대학입시 공부하듯이 책을 읽지는 마십시오. 흥미가 없는데도 입시를 위해 수학 공부를 하면 행복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 행복합니다. 행복해지는 책 읽기! 그게 중요합니다. 자기한테 맞는 책을 읽어야 해요. 교양인의 필독도서 목록, 뭐 그런 것에 주눅 들어 끌려다니지 마시고요. 여러분은 혹시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책 읽다 말고, 도저히 계속 읽을 수가 없어서 읽던 책을 가슴에 댄채 '아' 하고 한숨을 내쉬는 경험 말입니다. 여자분들이 보통 그렇게 하지요. 이런 순간을 자주 경험하셔야 합니다. 감정이 너무 강하게 일어나서, 그걸 가라앉히기 전까지는 텍스트를 더 읽어갈 수 없는 그런 순간을 누리자는 겁니다. 저는 이것이 공부와 독서의 '결정적 순간'이라 믿습니다. 남자들은 조금 다르게 행동하더군요. 책을 가슴에 붙이는 게 아니라 읽던 페이지가 아래로 향하게 엎어둡니다. 위를 보면서 한숨을 '후' 내쉰 다음, 창문을 열거나 마당에 나가서 담배를 물어요. ‘끊어야 할 텐데…………….’ 이러면서요. 그렇게 감정을 추스르고서는, '대박이야' '이러면서 또 책을 봅니다. 바로 이거예요. '결정적 순간'! 이런 순간을 체험하지 못하는 인생은 불행한 겁니다. 우리 국민 셋 가운데 한 사람은 일년에 책을 한권도 안 읽는다는 건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청소년과 어린이는 뺀 통계라서 조금 다행이긴 합니다만, 정말 안타까워요. 읽던 책을 가슴에 대고 한숨을 푹 내쉴 때 우리의 내면을 채우는 그 벅찬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이니까요. 여러분은 그 기쁨을 절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pp. 81-85)
    • 오피니언
    • 책소개
    2023-11-27
  • 【북토크】 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
    이 책은 여자에게 이혼을 강요하는 책이 아니다. 남성 의존적인 여성들에게 독립적인 주체가 될 것을 요구하는 책이다. 아내와 결혼한지 30년이 되가는데 여자를 알기는 쉽지 않다. 단지 남자인 나와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목회를 중단하고 나는 교계기자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아내도 이제는 사모로 불리지 않는다. 아마 아줌마로 불릴 것이다. 그것이 아내를 많이 힘들게 하는 것 같다. 그동안 목사의 아내인 사모로 “곁들이” 인생으로 살다가 이제는 독립적인 인생을 살아야하는 과제를 직면하고 있다. 나는 아내의 제2의 인생을 격려하고 있다. 이제는 나의 “시다” 인생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내는 씩씩하게 그 길을 가고 있다. 물론 때로 힘들어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격려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좋으리라고 기대한다. 내게 묻어가는 인생이 아닌 자기만의 인생을 개척하며 나아가는 아내를 나는 리스펙한다. 이 책은 모든 여자들에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것을, 남자에게서 독립할 것을 촉구하는 전직 수녀의 심리 상담 책이다. 이 작가의 다음 책을 기대하고 있다. ▲ 스스로 대상이 되어 발현하는 사랑 많은 여성이 사랑에 있어서 최선은 그에게 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느낍니다. 여성이 결혼을 해야 한다고 당위적으로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적령기가 되어서, 혹은 주변의 압력 때문이라는 단서를 달기도 하지만 여성에게 있어 결혼은 분명 '소속'과 '속함'입니다. 우리가 현모양처라고 이야기하는 전형적 여성들의 모습이 '헌신'처럼 보이나 실은 자신을 일부 포기하고 '그'에게 ‘소속’됨으로 인해 궁극적으로는 어떤 것을 가지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사랑을 구현하고자 하는 여성의 궁극적인 욕망입니다. 가지기 위해서는 또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지요. 여성 신경중 현상 중 하나는 스스로를 실현하거나 직접적이기보다 타인을 경유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누군가에 속하든, 누군가를 채우는 방식이든 그것은 모두 반드시 타인을 필요로 합니다. 내가 타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게 필요한 사람으로 타인이 아니라 주체인 나 스스로를 믿는 사람으로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고민해야 합니다. 타인을 경유하지 않고 나 스스로를 실현하고 만족시키는 데서 사랑이 시작합니다. 타인을 향한 돌봄과 헌신은 돌려받아야 할 무엇이기보다 그 자체로 온전히 타인을 위한 것일 때,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타인, 타인에게 필요한 나’라는 시선에서 조금 떨어져 나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겠습니다.(pp 219-220) ▲ 절대적 신뢰 그 요원한 소망 가족이나 연인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과 분석을 진행하면서 종종 느끼는 감정이 있습니다. 제가 보았을 때는 그저 말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참 사랑스러운데, 왜 그토록 상대와 지리멸렬하게 싸우며 살아야 할까 싶습니다. 어느 정도 떨어져서 보면 사랑스러움이 제대로 보이는데, 우리는 상대와 친밀함과 애정으로 밀착될수록 요구와 욕망에 매몰되어 상대를 제대로 바라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들이 연인이나 친구로부터 바라는 것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어떤 모습이어도 나를 저버리지 않는' 절대적인 신뢰입니다. 아이가 부모로부터 안전함과 절대적 자아를 보호받기를 원하는 것처럼요. 아이와의 관계는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성인이된 관계 안에서의 신뢰는 서로의 나약함을 허용하는 태도입니다. 상대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 달라고 조르는 것은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싶다는 또 다른 소망의 표현이기도 하니까요. 모든 것을 공유하고 내 맘이 네 맘이고 네 맘이 내 맘인 것은 건강한 친밀함이 아닙니다. 서로에게 느끼는 실망과 좌절에도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려는 충실성, 서로에 대한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으려는 발버둥, 이기적이고 나약한 인간임을 인정하고 어느 만큼 거리를 두어도 서로에게 느끼는 서운함으로 인해 서로를 할퀴지 않겠다는 의지 등이겠지요. 결코 서로에게 온전히 채울 수 없는 구멍을 안은 채로 함께 가는 것이 진짜 신뢰가 아닐까요? 우리는 참으로 구멍투성이의 나약한 인간들이니까요.(pp. 239-240)
    • 오피니언
    • 책소개
    2023-11-26
  • 【단상】 한 달 무상지원 432만원(?)
    내가 사는 동네는 강북구 수유역 쪽이다. 강남처럼 비싼 동네가 아니다. 그런데 주차비가 10분에 1000원이라니... 놀랄 일이다! 돈을 취급하는 은행이라 주차비도 얄짤 없이 비싸게 받는 것 같다. 한 시간이면 6000원, 하루면 14만 4천원, 한 달이면 432만원이다. 한 달에 그 정도 벌기가 쉽지 않은데 이것을 생각하니 ‘시간이 돈’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돈을 허투루 쓰거나 잃어버리면 얼마나 아까워하는가? 반면 시간에 대해서는 느슨하다. 하지만 돈 보다 소중한 것이 시간 아니겠는가? 시간은 곧 생명이니 말이다. 벌써 2023년 연말이다. 곧 송구영신을 하며 한 살 더 먹게 된다. 그만큼 주어진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허튼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알차게 사용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정신을 더 바짝 차려야겠다.
    • 오피니언
    • 칼럼
    2023-11-21
  • 【북토크】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다. 내 자신이 나이들어 가고 있고, 부모님께서 연세가 많으시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책을 여러권 읽고 있다. 그러자 페이스북에 아는 장로님이 “힘네세요”라고 썼다. 삶이 힘들어서 죽음에 대한 책을 보는 것이 아닌데, 그래도 관심가져 주셔서 고맙다. 살아 있기에 죽음에 대한 책을 보는 것이다. 의사로서 죽음에 대해 많은 강연을 하고 있는 정현채 교수가 쓴 책을 읽었다. 중간에 윤회나 전생 등은 우리 기독교와 상관 없는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의사가 이러한 책을 썼다는 것이 신기하기는 하다. 원래 죽음과 내세는 기독교의 전문 분야 아닌가? 책 말미에 있는 저자의 죽음 준비에 대한 내용이다. 참고해 볼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지난 11년 간 죽음학 강의를 해 왔다. 강의가 끝난 뒤 종종 이런 질문을 받곤 했다. "교수님께서는 죽음 준비를 어떻게 하고 계세요?" 필자 역시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 장에서는 필자가 어떻게 죽음 준비를 하고 있는지 말씀드리려고 한다. 필자의 부모님은 두 분 다 공교롭게도 심장병 증상을 보인지 사흘 만에 돌아가셨다. 미처 주변 정리를 전혀 하지 못한 상태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필자는 평소에 미리미리 죽음 준비를 해 둬야겠다는 생각을 해 왔다. 우선 필자가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하나씩 정리해서 병원에 있는 의학역사문화원에 기증해 오고 있다. 40여 년 전 의과대학생 때 필기했던 노트, 30년 전 전임 강사였을 때의 월급명세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록 등등 이런저런 자료들을 목록과 함께 보내고 있다. 현재 서울대 병원 9층에 위치한 필자의 연구실에는 책이나 물건이 거의 없다. 언제라도 훌훌 털고 떠날 수 있도록 계속 정리 작업 중이다. 또 정년퇴임을 하는 선배 교수들이 버린 물건들 가운데 사료가 될만한 것들을 찾아 박물관에 보내기도 한다. 이 자료들도 100년 뒤에는 우리 대학의 귀중한 기록이요. 발자취가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국의 유명 의과대학 박물관에는 작고한 교수의 사적인 메모까지 모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10여 년째 해 오고 있는 죽음학 강의도 언제까지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3년 가을, 광주 조선대학교에서 <영화를 통한 현대인의 죽음 이해> 강의를 마쳤을 때 한 1학년 학생이 내게 부탁을 했다. 할머니와 아버지 두 분이 뇌경색으로 재활치료를 받고 계시다며 강의 내용을 두 분에게 들려 드리고 싶으니 강의에 사용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복사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흔쾌히 복사해 줬음은 물론이다. 그 이후로 필자는 강의 자료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저작권 문제가 있는 자료를 제외하곤 가능하면 모두 제공하고 있다. 강의를 들은 사람들이 강의 내용을 자기 주변에 전하게 되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2006년부터 1년에 다섯 차례 정도 헌혈을 해 오고 있었다. "이제 너무 늙어서 헌혈을 할 수 없다."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계속하려고 하였으나, 2018년 1월 필자가 암 진단을 받게 되면서 헌혈을 더 이상은 할 수 없게 되어 아쉽게 생각한다. 헌혈로 모은 혈액은 대체로 응급이나 위기 상황에서 사용되는데, 그동안 해 왔던 헌혈이 얼굴 모르는 누군가에게 유용하게 활용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뿌듯한 마음이 들곤 한다. 장기기증서약서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 유언장 등은 이미 작성해 놓았다. 유언장은 가끔 내용을 보완하기도 하고 고쳐 쓰기도 한다. 유언장에는 남길 물건에 대해서도 정리해서 썼지만, 그보다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두 딸에게 말해 주는 형식으로 작성했다. 영정 사진은 10년 전인 2008년 9월 갑작스럽게 폐렴을 앓고 나서 집 소파에 와인잔을 들고 앉아 웃고 있는 모습을 찍은 것이다. 그런 데 2013년 한 잡지사와 인터뷰를 할 때 사진 기자가 찍은 사진을 잡지사에서 영정사진으로 쓰기 딱 좋게 사진틀에 넣어 보내와서 그걸로 할까도 생각중이다. 미국의 완화의료 전문의 아이라 바이오크는 임종 환자를 많이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을 펴냈다. 필자는 이 책에 나오는 네 가지를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즉 '사랑해요. 고마워요.'라고 말하고, '용서를 하고 용서를 구하고', '작별인사를 하고',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고맙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미처 말하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그분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또 잘못했던 일에 대해 서도 미안했다고 용서를 구하려고 노력한다. 만약 만나서 용서를 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에는 마음속에서라도 용서를 구하고, 또 용서를 할 일에 대해서는 되도록 빨리 용서하려고 노력한다. 가지고 있던 물건들도 정리하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 나비넥타이를 하면서 긴 넥타이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는데 그들 가운데 낡은 넥타이는 버리고 쓸 만한 것들은 바자회에 갖다 줬더니 인기리에 팔렸다고 한다. 죽은 사람의 물건은 갖기 싫어하기 때문에 살아 있을 때 기부하거나 선물하는 게 좋다. 30여 년 전부터 와인을 좋아해서 이와 관련된 책자나 자료는 물론이고 디캔터 · 코르크스크루 같은 도구도 꽤 많이 모았다. 얼마 전부터는 이것들을 의과대학 와인 동아리에 기증하고 있다. 언젠가 사별한 날에 대해 아내와도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 본인의 희망대로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남겨진 자식들을 생각하면 남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게 훨씬 좋다는 얘기를 한다. 필자의 가장 큰 소망은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이승을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최소한 한두 달만이라도 마지막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면 좋을지에 대해 사전장례의향서도 준비 중이다. 수의는 삼베 같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상복을 입으려고 했지만, 화학제품은 다이옥신 같은 공해 물질이 많이 나온다고해서 면으로 된 옷을 입으려고 한다. 수의 중에 무명으로 된 것도 있다고 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관도 나무로 된 것은 태울 때 화석연료를 많이 소모하게 될 테니 종이로 만든 관을 사용하려고 한다. 집안에서 경기도 고양시에 200~300기가 들어갈 수 있는 규모의 납골당을 오래전에 마련했다. 별일이 없으면 필자의 유골도 이곳으로 들어가게 돼 있었는데 몇 년 전에 생각을 바꿨다. 납골당이 산 중턱에 위치해 있어 두 딸이 찾아오려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다가 우연히 해양장(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재 정식 인가를 받은 해양장 업체가 전국에 서너 곳이 있다. 서울의 경우 인천부두에서 배를 타고 1킬로미터 떨어진 부표까지 가서 유골을 뿌린다고 한다. 해양장은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전문 연구기관도 환경 문제를 유발하지 않는다고 발표하였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장례인 셈이다. 그밖에도 죽음 준비에 필요한 사항들이 몇 가지 더 있다. 죽음을 알릴 사람들의 범위를 명시해 두는 일, 제단이나 조화 구성,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어떻게 할지 등에 대해서도 사전장례의향서에 포함해야 할 내용들이다. 또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을 위해 틀 음악을 선정하고 이를 USB에 담아 놓는 일은 이미 4년 전에 시작하였는데 수록된 음악이 현재 200곡이 넘었다. 빈소에 놓을 사진이나 동영상과 함께 틈틈이 추려서 미리 편집해 놓으려고 한다. 우리의 육체는 죽으면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다른 차원으로 건너간다. 따라서 기일에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형식을 벗어나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와인 한잔 나누면서 같이 살던 때를 추억하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본다. 이런 생각을 두 딸에게 얘기해 놓았다. 그래도 마음이 쓸쓸하면 평소 내가 좋아했던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거닐어도 좋고, 작은 꽃다발 하나씩 준비해서 서로 건네줘도 좋다고 했다. 이처럼 자신의 장례식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가족 구성원들에게 수시로 얘기해 놓아야 본인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죽음의 실체가 소멸이 아니고 옮겨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장례 준비가 부담스러울 것이 없다. 또 지구별에 잠시 소풍 왔다가 가는 것이니 주변을 깨끗이 한 후에 떠나야 한다. 다음에 놀러 올 후손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은 먼저 왔다 가는 사람들의 신성한 임무라고 생각한다(pp. 354-362). 380페이지이나 어렵지 않아 몇 시간 만에 다 읽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일독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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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3-11-20
  • 【북토크】학술지에 실린 근사체험 특징들
    의학과 과학은 사후 세계를 잘 인정할려고 하지 않는다. 사후세계는 종교의 영역이라고 치부한다. 그런데 네덜란드의 심장전문의 핌 반 롬멜 박사는 근사체험을 의학적으로 연구해 인정받은 전문가다. 그는 논문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세계적인 의학전문 학술지 <란셋>에 근사체험을 과학적으로 접근한 논문을 최초로 실은 사람이기도 하다. <란셋>에 발표하면,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고, 전 세계에 통용되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내게 된다. 2001년 《란셋>에 핌 반 롬멜 박사의 근사체험 논문 『심장정지 후 다시 살아난 근사체험자』가 실리면서, 근사체험은 학계에서 과학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의 연구는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약 4년 동안 10개 병원에서, 심장이 멈춘 후 기적적으로 소생한 환자 344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즉, 의학적으로 '죽었다고 판정되었다가 되살아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 결과 18퍼센트에 해당하는 62명의 환자들이 당시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했고, 이들 중 41명은 근사체험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경험을 했다고 증언했다. 다음은 근사체험 사례들의 특징이다. 1. 유체이탈 경험 많은 근사체험자들이 심장이 정지된 후 육체를 이탈해 외부에서 사건을 인식하는 경험을 했다. 이런 근사체험자들은 오래된 옷을 벗듯 육체를 빠져나오고도 그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인지 능력, 감정, 그리고 매우 명료한 의식까지 그대로였다. 롬멜 박사의 논문에는 44세의 어느 청색증 환자 사례가 실려 있다. 그는 풀밭에서 뇌사상태가 된 지 30분 만에 발견되었다. 그의 입안에는 의치가 있었고, 간호사는 의치를 뽑아내어 카트 위에 놓았다. 한 시간 반 후에 환자의 심장 박동과 혈압이 되돌아왔지만 여전히 그는 뇌사상태였다. 1주일이 지나자 그는 의식이 돌아와 있었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간호사가 자신의 의치를 꺼내 카트 위에 둔 장면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뇌사상태에서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었던 그는 침대 위에 누워 있던 자신을 보았고, 간호사와 의사들이 심폐소생술로 분주하던 장면을 위에서 내려다본 것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심폐소생술을 받던 작은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체적으로 묘사했고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외양도 상세히 설명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2. 삶의 회고 경험 근사체험자들 중에는 과거에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으며 어떻게 생각했는지까지 한 번에 볼 수 있는 경험을 한 체험자들도 있다. 그런 환자들은 한눈에 자신의 인생 전체를 살펴볼 수 있다. 그러한 경험 가운데는 시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식이 회복될 때까지 몇 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그 짧은 시간 가운데 그들은 자신의 삶 전부를 3차원의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다. 다음은 한 사례자의 증언이다. "각각의 사건들은 선한 것인가, 악한 것인가, 인과관계는 어떠한가에 대한 통찰과 함께 이어졌죠. 나 자신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인지할 뿐만 아니라 그 사건에 관련된 다른 모든 사람들의 생각도 알 수 있었어요. 마치 그들의 생각이 내 안에 있는 것처럼요. 내가 한 행동과 생각뿐 아니라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깨닫게 되었어요. 마치 제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것처럼 사물들을 바라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것이 재연되는 동안 내내 사람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어요. 모든 주제들이 떠오를 만큼 긴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눈 깜짝할 새 같기도 했죠. 시간과 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나는 모든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어요.“ 3. 죽은 이들과의 만남 어떤 근사체험자들은 이미 사망한 지인이나 친지들과 만난 경험을 했다. 그들은 외양으로 그들을 알아볼 수 있었으며, 의사소통도 할 수 있었다. 근사체험을 통해 죽은 자들의 의식과 연결되는 것 또한 가능하다. 어떤 경우는 자신이 전혀 알지 못했던 죽은 자를 만나기도 한다. 한 사례자는 근사체험 동안,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생부를 만난 경험을 고백한다. “심장이 정지된 동안 나는 돌아가신 할머니 외에도,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내가 알지 못하는 한 남자를 보았어요. 그 체험이 있은 지 10년 뒤에, 나의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순간에 내게 고백하셨죠. 나는 혼외 정사로 태어난 자식이라고요. 내 아버지는 강제추방당하고 2차 세계대전 때 죽은 유대인이라는 것도 알려 주셨어요. 어머니가 그의 사진을 보여 주었을 때, 나는 그가 10년 전 근사체험 때 보았던 그 남자라는 것을 즉시 알아차렸지요.” 4. 몸으로 되돌아오는 경험 어떤 근사체험자들은 그들이 체험에서 만난 빛이나 죽은 친지와의 말 없는 의사소통을 이해하게 된 후에 머리 정수리를 통해 몸으로 되돌아온다고 증언했다. 친지들의 말 없는 대화 내용은 대개 "아직은 때가 아니다" 또는 "너는 아직 이루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들에게, 의식이 신체로 되돌아오는 경험은 매우 끔찍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들은 의식을 회복하면서 자신의 신체에 다시 갇힌다는 느낌을 받는다. 질병의 고통과 한계에 다시 머물게 된다는 의미다. 그들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수용에 대한 느낌뿐 아니라 깊은 지식과 앎에 대한 의식의 일부를 다시금 빼앗겼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다시 의식을 회복하게 된 순간은 너무나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근사체험은 무척 아름다웠기 때문에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죠. 그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고 싶었어요. 하지만 결국 돌아왔습니다. 그때부터 내 육체의 한계를 짊어지고 삶을 살아간다는 게 매우 어려운 경험이 되어 버렸습니다." 5. 사라진 죽음의 공포 근사체험을 경험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더 이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된다. 주변사람들이나 의사로부터 사망선고를 받았을 때조차 의식이 지속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생명이 없는 육체로부터 분리되지만 인지 능력은 그대로 간직한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죽음으로만 증명될 수 있는 그 무엇을 논의하는 것은 내 역량 밖입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 경험이, 죽음 너머에도 의식이 지속된다는 것을 확신케 해주는 결정적인 경험이었죠.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삶입니다. 이 경험은 내게는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몸과 정신이 분리된다는 것을 확신하고, 사후세계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근사체험자들은 모든 생각과 과거의 사건에 대한 인식과 함께 의식이 지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육체 이상의 존재라는 통찰을 얻게 된 것이다(pp. 105-109). 물론 이 근사체험(임사체험)에 대해 부정적인 전문가들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적으로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설명해야할지 관심 갖고 더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더 관심이 있는 분들은 다음의 책을 읽어 보기 바란다. 그런데 왜 책 제목을 이렇게 지었는지는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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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9
  • 【북토크】엔도르핀...죽을 때 부어지는 은혜
    제대로 아는 것이 위로가 될 수 있다. 알지 못하면 막연히 두렵고 답답하나 제대로 알면 마음이 편하다. 죽을 때의 고통도 그렇다. 죽을 때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불안이 있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책을 보다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 의사가 그의 책에서 이렇게 썼다(pp 55-57).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것이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감정적으로는 가족, 친지, 친구들과 영원히 헤어지게 된다는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고 신체적으로는 죽음의 순간이 고통스럽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일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감정적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과의 많은 대화와 자기 성찰을 통해 이별을 준비하는 정리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조금씩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고통스럽지 않을까 하는 신체적인 두려움은 막연한 상상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염려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 투병 기간 내내 감정을 어둡게 짓누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죽음의 순간은 전혀 고통스럽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한다면 막연히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음이 다가오면 뇌의 기능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의식을 잃어가게 됩니다. 통증이라는 감각을 느끼는 것은 뇌의 기능이 정상일 때 가능한 것이어서 죽음이 가까워져 점차 의식이 사라지는 상태에서 고통스럽다는 감각 자체는 극도로 무뎌지거나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죽음에 이르면서 뇌에는 산소 결핍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것이 신호가 되어 뇌에서는 일종의 방어 기전으로 통증 완화 효과가 있는 아편성 단백질인 엔도르핀을 포함한 각종 신경 전달 물질을 다량으로 분비하여 고통을 억제하고 극도의 안도감을 줍니다. 일부 신경학자에 따르면 죽음의 순간에는 고통은 커녕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최고의 행복감과 쾌감을 느낄 것이라고도 합니다. 죽는 순간에 뇌의 기능이 사라지면서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몸에서는 아편성 물질인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고통을 억제하게 된다고 한다. 몸을 만드신 하나님의 놀라운 배려이다. 죽음에 대한 평이한 책이라 읽기가 어렵지 않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읽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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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6
  • 교역자....사례비를 넘어서는 헌신이 필요하다
    오래전 부교역자 시절 어느 교회에 갔다. 사례를 받아보니 이전 사역지에 비해 너무 적었다. 그래서 정확히 한달이 안되 조금 줄여서 줬나하고 그 교회를 추천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렇게 적을리 없을 거라고 했다. 본인도 교육전도사만해서 부목사 사례가 어느 정도인지는 몰랐던 것이다. 늘 기독신문 광고를 보고 지원해 임지를 정했던 나는 교회에서 얼마의 사례를 주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도 기독신문 교역자 초빙 광고를 보니 예전과 달라진게 없다. “사례는 교회 내규에 따라 지급합니다-면접시 안내”, “사례는 내규에 따릅니다”라고 언급하거나 아예 사례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나는 담임목회할 때 교역자와 반주자, 지휘자 초빙이 필요한 경우 근무조건과 사례비를 밝혔다. 그래야 상대방도 생각해 보고 지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면접시 내 부교역자 시절처럼 아예 사례비 언급이 없어 한달이 지나서야 알게 된다든지, 혹은 면접 말미에 밝힌 사례비가 본인이 생각하거나 필요한 것보다 적으면 서로 입장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교역자를 초빙하면서 교회에 대한 정보를 차단하는 교회들이 있다. 전화문의도 거절한다. 왜 그런가? 교역자 입장에서 어떤 교회에서 사역하는 가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교회에 대한 정보를 오픈해야한다. 기독신문에 그러한 사항을 다 기재할 수 없으면 교회 홈페이지에라도 지원자가 보고 참고할 수 있도록 교회에 대한 안내, 사례비 등등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교역자가 사례비를 밝히면 삯군이라는 논리를 주장하는 분도 있다. 그러나 교역자도 생활을 해야하기에 자기가 받을 사례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돈 이야기만 나오면 무조건 삯군이라고 하지 말았으면 한다. 반면, 요즘 담임목회자들은 부교역자로 인해 고민이 많다고 한다. 부교역자를 뽑을려고 하면 대뜸 사례비를 물어보거나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참석 여부를 물어본다고 한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나는 신대원 1학년이던 1989년 화곡동에 있는 람원교회에 교육전도사로 갔다. 그당시 교회는 강화도 산쪽에 땅을 가지고 있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그곳을 집회 장소로 사용했기에 교역자들이 일주일간 가서 대형 텐트 설치하는 작업을 했다. 힘들었지만 재밌고 추억에 남는 일이었다.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했다. 그러나 지금 그랬다가는 난리가 날지도 모르겠다. 교역자는 교회를 섬기기 위해 있는 자들이다.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을 생각하며 교회를 섬겨야한다. 그렇다고 교회가 이것을 이용해서는 안된다. 교회도 형편에 맞게 교역자에게 최선의 예우를 할려고 하고, 교역자도 교회를 위해 희생하는 마음으로 섬길 때 주님이 보실 때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역자는 교회에 지원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정보를 공개한다. 그렇다면 교회도 그에 상응하게 필요한 사례비와 사역 내용 등의 정보를 제공해 서로 조율하는 과정이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깜깜이 지원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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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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