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4(토)
 
  • 장차남 증경총회장, “구원과 천국, 영생과 복락, 오직 주님을 인생 최고 소망으로 삼자”
  • 오정현 목사, “부친은 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강조하셨다. 아버님 남기신 반지를 후손들에게 잘 전달하겠다”
  • 오정호 목사, “부친의 발자취를 따라 주님 사랑, 교회 사랑, 양떼 사랑, 총회 사랑으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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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자들, 조문객들과 함께    

故 오상진 목사 유족위로예배가 제107회 총회임원회 주관으로 8월 5일 오전 11시 서울 성모병원 장례식장 3층 31호실에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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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인도하는 고광석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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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임영식 장로부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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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봉독하는 김한욱 부서기 

예배는 총회 서기 고광석 목사의 인도로 부총회장 임영식 장로가 기도 후 부서기 김한욱 목사가 요 14:1-6을 봉독한 후 증경총회장 장차남 목사가 ‘인생 최고 소망’이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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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하는 장차남  증경총회장 

장 목사는 “고 오상진 목사는 신앙의 본이 되는 분이시다. 초등학교 시절 8.15해방 후 그 당시 학교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으셨다. 또한 주일에 등교하라고 해도 거부하셨었다.그래서 지인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았다. 이처럼 오 목사님은 신앙이 올곧은 분이셨다. 그리고 신학생 시절 부산에 가야제일교회를 개척 후 한 교회만 목회하셨다. 오 목사님은 누구와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으셨다. 연세가 들어가시면서 중부산노회장, 부산기독교총연합회 회장 등등 많은 일을 하셨는데 경쟁하지 않고 추대 받으셨다. 이런 면에서 모범이 되신 분이셨다. 사람은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데 인생 최고 소망은 무엇인가? 첫째, 구원과 천국이다. 오 목사님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고 천국에 들어가셨다. 예수님께서 속죄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이것을 믿는 우리는 의롭다 칭함받고 구원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 소망으로 걱정 근심할 필요가 없다. 둘째, 영생과 복락이다. 오 목사님은 2년 전 사모와 사별하는 슬픔을 당했다. 그리고 이제 오 목사님은 영원한 천국으로 가셨다. 그리고 영생하신다. 셋째, 인생의 최고 소망은 오직 주님이시다. 신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한다. 위의 것을 찾으며 살아야한다”고 말했다.

 

위로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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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권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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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규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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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규 총신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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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호 기독신문 사장 

위로의 말씀 시간에 증경총회장 김동권 목사가 “고인을 평소에 자주 뵙지는 못했으나 모임에서 만나면 외식이 없는 순수한 분이시라고 생각했다. 목회일념으로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사셨다. 고인은 자녀를 믿음으로 잘 양육하셨다. 선친의 노고를 통해 오정현, 오정호 목사가 큰 사역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인의 길을 잘 따르는 유가족들이 되기를 바란다”고, 증경총회장 김선규 목사가 “겨자씨는 작지만 자라면 큰 나무가 큰 돼 새들이 깃들고 사람에게 그들이 돼준다. 고인은 척박한 시대 상황 가운데 목회하셨고 이제 자녀들이 크게 목회사역하고 있음에 감사드린다”고, 총신대학교 박성규 총장이 “첫째, 故 오 목사님은 참 목회자셨다. 어려운 지역에서 목회하셨고 교회 건축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묵묵히 감당하셨고 교목으로 수고하며 화종부 목사를 키워냈다. 둘째, 개혁주의 칼빈주의자셨다. 아들 오정호 목사 결혼식 때 ‘아들이 내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며 이 가정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혼주 인사했다. 셋째, 성경을 믿는 개혁주의자였다. ‘매삼주오’로 자녀를 가르쳤다. 오정현 목사가 서울로 갈 때 성경이 기록된 편지지를 전달해줬다. 넷째,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돌리는 개혁주의자였다. 가훈 첫 번째가 하나님께 영광이었다. 다섯째, 목사들의 목사셨다. 중부산노회장을 2번 역임하며 다음 세대 목회자들을 도우며 목회자들의 사역지를 연결해 줬다. 여섯째, 자녀 교육에 성공하셨다. 4형제를 모두 신앙으로 잘 키웠고 두 아들이 크게 주님의 목회를 감당하고 있다. 오상진 목사는 승리한 목회자였고, 아버님이었다. 일곱 번째, 인생의 모델이 되신다. 후손들은 행복자들이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우기 바란다. 고인이 사랑했던 행 20:24을 마지막으로 말씀드린다”고, 기독신문 태준호 사장이 “이 시간은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사시다 천국으로 가신 오 목사님을 사별한 가족들을 위로하는 시간이다. 오 목사님의 삶은 너무도 귀하고 귀한 삶을 사셨다. 아버님의 귀한 업적을 기억하고 장례 일정을 잘 감당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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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하는 한기영 총무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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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하는 김정설 기독신문 이사장 

총무서리 한기영 목사의 광고 후 기도신문이사장 김정설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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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약력소개하는 오정현 목사 

이어 장남 오정현 목사(사랑의교회 시무)가 고인의 약력을 소개했다. "오상진 목사는 주후 1934년 6월 1일 경북 의성에서(부 오계선 영수, 모 백일순 권사) 출생하여 다인초등, 안계중학, 경안고등, 총신대 신학원(57회)졸업했으며 부산노회에서 안수받으셨습니다. 이후 LA 국제성서대학에서 목회학 박사를 받으셨습니다. 1960년 부산 가야제일교회를 개척하셔서 44년을 섬기시고 2004년 원로목사로 추대되셨습니다. 목회기간중 부산 혜광고 교목실장으로 7년을 섬기셨고 그 이후 중부산노회장 2회 역임, 부산 성경전문학교 교장, 부산 기독교 총연합회 회장, 부산 기독교 시민운동 대표회장, 영남 가나안농군학교 이사장을 역임 하셨습니다. 젊어서는 산 기도 등으로 구국기도를 하셨고 은퇴 이후에는 고 최명순 사모와 함께 애끓는 애국애족의 기도 자리를 지키셨습니다. 가정예배를 통하여 자녀들에게 옳바른 신앙관과 국가관의 뿌리를 내리게 하셨고 항상 '너희들은 내 자식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말씀으로 양육하셨습니다. 그 결과 3부자 목사, 3대째 목회계승의 은혜로운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평생의 약속의 말씀은 로마서 11장 36절, 14장 7~8절, 사도행전 20장 24절이었고 가정 찬송가인 '내 진정 사모하는',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등 수많은 찬송을 늘 애송하셨고, 고인의 삶은 1963년에 제정한 가훈에서도 나타납니다.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2.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 3. 이웃을 사랑하여 덕을 세우는 삶 4. 범사에 감사하는 삶 5. 오직 성령 충만하여 범사에 승리하는 삶. 아버님은 주후 2023년 8월 3일(목) 고 최명순 사모와 해로하던 사택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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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인사말하는 오정호 목사 

차남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 시무, 부총회장)가 “아버님은 평생 우리 교단과 총회를 사랑하셨다. 유족들은 아버님을 따라 주님 사랑, 교회 사랑, 양떼 사랑, 총회 사랑을 실천하며 살겠다. 이 자리에 오셔서 위로하신 모든 조문객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유족대표인사를 하는 것으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빈소: 서울 성모병원 장례식장 3층 31호실(강남고속버스터미널 맞은편 02-2258-5940)

천국환송예배 : 주후 2023년 8월 6일(주일) 오후 5시

발인예배: 주후 2023년 8월 7일(월) 오전 7시

장지 : 사랑의동산(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망미리 833-3, 전화 031-775-0096)

 

유족

아들:

오정현 목사(사랑의교회 담임, 숭실대학교 이사장)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 담임, 예장합동 부총회장)

오정일 집사 (사랑의교회 처장)

오정혁 집사 (Aron Global 대표)

 

며느리: 윤난영, 조성희, 이정화

손주: 오기원 목사(뉴서울교회 담임), 오기선 박사, 오기환 목사, 기은, 기석, 하은, 예은, 성은, 주은

손부: 오희주, 김자영, 이브가

손서: 송형진, 장우석

 

증손주: 에덴, 에일라, 로라, 세라

 

총신대학교 총장 박성규 목사 弔辭 전문

제가 오상진 목사님을 처음 뵌 것은, 대학 2학년 때인 1981년, 지금으로부터 42년 전이다. 제가 아들 같은 목사로서 지난 42년 지켜봐 온 목사님의 생애는 승리의 생애였다. 목사님은 바울 사도처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셨다. 다음 몇 가지 점에서 그러셨다. 

1. 고 오상진 목사님은 참 목회자이셨다.

가야제일교회를 개척하시고 44년 목회를 해오시면서 달동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해온 목사님은 艱難辛苦의 목회를 해오셨다. 그중에서도 목사님을 힘들게 했던 일은, 교회 건축을 할 때 재정을 맡은 분이 돈을 가지고 도주한 사건이 있었다. 목사님은 묵묵히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사례비를 교회에 다 헌금하시고, 부산 혜광고등학교 교목이 되어 섬기시면서 받는 사례로 가족들의 생계를 이끄셨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목사님의 교목생활을 통해 수많은 청소년의 가슴 속에 예수님을 심으셨다. 그중에 한 사람이 남서울교회 화종부 목사. 혜광고등학교를 다닌 화 목사, 오상진 목사님의 영적 제자였다. 

2. 고 오상진 목사님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개혁주의자, 곧 칼빈주의자였다.

1982년 3월 1일, 정동 CCC 회관에서 오정현 목사님 결혼, 1983년 3월 1일 같은 장소에서 오정호 목사님 결혼, 그때 대학생으로 참석했던 저는, 그 결혼식의 주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혼주 측 인사는 기억난다. 바로 오상진 목사님의 인사 말씀이었다. “저는 한 번도 이 아들이 내 아들이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그래서 이 아들이 잘될 때 하나님보다 먼저 기뻐하지 않았고, 이 아들이 잘되지 않을 때 하나님보다 먼저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오늘도 이 아들이 이루는 가정을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실 것을 믿는다.” 지난 42년 동안 이런 혼주 인사는 들어본 적 없었다. 오직 하나님 절대주권의 신앙의 표현이었다. 오정호 목사님께 들은 말씀입니다 “주말마다 반성문을 썼어요. 그때마다 아버님은 ‘신앙의 기본이 무엇이냐?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오정현 목사님, 오정호 목사님을 이렇게 귀하게 쓰신 것이다. 

3. 고 오상진 목사님은 오직 성경을 믿는 개혁주의자였다.

오정현 목사님 말씀을 통해 들은 것은 매삼주오(每三週五) 없으면 밥도 주지 않으셨다. 이렇게 성경을 사랑하게 하신 것이, 오늘의 두 분 오 목사님을 낳았다. 그 유명한 에피소드를 다 아실 것이다. 오정현 목사님이 서울로 공부하러 올라올 때 부산역에서 봉투를 하나 주셨다. 오 목사님은 아버님께서 용돈을 주신 줄 알고 기대감을 갖고 열어보니 그곳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쓰여 있었다. 청년 오정현은 실망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 말씀이 청년 오정현을 붙잡아 주었고, 오늘의 오정현 목사님을 만들었다. 오상진 목사님은 서울에서 공부하는 세 아드님을 위해 가장 저렴한 아파트를 어렵게 전세로 마련해주셨다. 그곳은 내수동교회 대학부의 부흥의 산실이었다. 지방 출신 대학생 중 대학부를 이끌 사람들을 오정현 전도사님은 그곳에 모아 살면서 대학부의 부흥을 위해 함께 꿈을 꾸고 함께 기도했다. 오 전도사님은 그곳을 Francis A. Schaeffer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무너진 유럽의 젊은이들을 살리기 위해 스위스에 만들었던 L’abri 이름을 따서 L’abri라고 불렀다. 고 오상진 목사님께서는 한 번씩 그곳에 오시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경 말씀을 선물로 주셨던 목사님, 그곳에서 황원선 목사, 화종부 목사, 정규선 박사, 이상진 박사 등이 배출되었고, 미말에 처한 저도 그곳에서 자라났다. 

4. 고 오상진 목사님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개혁주의자였다.

1963년 1월 1일 세운 가훈의 첫 번째가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었다. 60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 가훈은 오상진 목사님의 삶이 되었다. 오 목사님은 자신이 하신 일, 두 분 아드님의 영향력 있는 목회에 대해 사람들이 칭송할 때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개혁주의자였다. 

5. 목사들의 목사이셨다.

중부산노회 노회장을 두 번 역임하시면서, 부산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을 역임하시면서 목사님은 항상 다음 세대 목사들을 돕는 일을 하셨다. 저의 가장 가까운 후배 목사님이 목회에 가장 큰 위기를 만났을 때, 앞장서서 그 목사님을 살려주어서, 벌써 20년이 넘는 목회, 그리고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 수많은 목회자가 갈 곳이 없을 때 다리를 놓아 그들의 길을 열어주셨다. 제가 부전교회 갈 때도 최고의 추천을 해주신 분이셨다. 

6. 자녀교육에 성공하신 목사님이셨다.

리더십 이론에 “계승자가 없는 성공은 성공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오정현 목사님, 오정호목사님, 오기원 목사, 오기환 목사 3대의 목사가 배출된 것은 오상진 목사님은 성공한 목회자임을 보여준다. 또 오상진 목사님은 규모는 작아도 많은 인물을 배출하셨다. 김제돈 목사, 정명기 장로 등이다. 더욱이 오늘의 한국교회를 이끄는 두 아드님을 배출하신 것은, 목사님의 기도와 눈물, 삶의 모범이 교과서가 되어 오늘의 오정현 목사님, 오정호 목사님이 선 것이다. 지금 드린 말씀 외에도 고 오상진 목사님의 믿음의 선한 싸움에 나누어야 할 일들이 많지만, 오상진 목사님은 승리한 목회자요, 승리한 아버님이시다. 이렇게 귀한 89년의 생애를 살게 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린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의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이다. 

7. 우리 인생의 모델이 되시는 목사님이셨다. 

이렇게 훌륭하신 아버님, 할아버님, 증조할아버님을 모신 유족들은 행복한 후손들이다. 이제는 이 신앙을 이어받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시길 축복한다. 이제 고 오상진 목사님께서 사랑하셨던 말씀 중에 하나를 소개함으로 오늘 말씀을 마치고자 한다. 사도행전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제가 목사 안수 받은 후 제게 말씀하시기를, 박 목사, 사명은 힘들어도, 굶어도, 심지어 죽어도 감당해야 해! 이 말씀이 아직도 제 가슴에 남아 있다. 사랑하는 목사님, 언젠가 천국에서 기쁘게 만날 목사님을 추모하며 말씀하신 대로 주님 주신 사명에 목숨 걸고 살다가 기쁘게 뵙겠습니다. 

 

조문객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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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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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전도사 때 개척한 교회 주일학교 발표회를 마치고, 앞줄 왼쪽 오정현 목사, 옆 오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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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부자가 함께 손을 맞잡은 행복한 한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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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 오정호 목사 부친 故 오상진 목사 유족위로예배...총회주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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