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0(금)
 
  • 목회하면서 목사와 사모 그리고 자녀들이 병들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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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떤 일로 교외에 나와 아내와 아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차를 타고 오는 길에 아내가 “이제 내 마음이 조금 편안하다”고 했다. 이 말에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3년전 갑자기 목회에 갈등이 생기고 사임할 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아내였다. 아내는 2005년 34살에 그 교회에 부임하면서 “하나님, 이 교회에서 쫓겨나지 않게 해주세요”하고 그동안 기도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만 쫓겨난 것이다. 그 교회는 원로목사 이후 12년간 4명의 담임목사를 내쫓았다. 그런 교회에 남편이 부임할 때 반대하지 않고 동의했는데 속으로는 그런 기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나는 15년간 한번도 그런 기도를 한 적이 없었고 당연히 30년 정년을 그 교회에서 채우고 원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만 담임목사 중반에 문제가 생겼고 7개월간 갈등이 있었다.

 

2020년 코로나가 한창 기승일 때 나는 부목사와 함께 직접 300평이 넘는 땅에 지어진 교회 옥상 방수를 재시공하고, 교회 안과 밖을 페인트칠하며 관리집사 사택과 교회 뒷마당 정리 작업을 했다. 코로나로 정상적인 목회가 어려웠기에 남는 시간을 그렇게 보냈던 것이다. 부목사와 둘이 그 공사를 다 끝낸 후 나는 교회를 사임했다. 7월말 반대자들과 만나 10월 정기노회 때 시무사면 처리하고 12월까지 사택을 비우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그런데 그들은 앞으로 목양실을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내 모든 짐이 있는데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하니 기가막혔지만 동의하고 저녁 때 필요한 경우만 교회 출입을 하기로 했다.

 

8월부터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갈곳이 없었다. 그동안은 눈만 뜨면 교회로 갔고 휴일에도 교회에 갔는데 이제는 교회에 갈 수 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교회 근처 놀이터로 가서 내부를 빙빙돌며 시간을 보냈다. 밥을 먹으면 운동 겸 해서 아침, 점심, 저녁,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여러 시간 놀이터 운동장을 돌았다. 그러면서 기도하고 찬양하며 울고, 웃으며 8월과 9월을 보냈다. 그해에는 여름 장마가 길어 비가 많이 왔다. 어려서부터 비를 좋아한 나는 놀이터 인조 잔디를 맨발로 여러 시간 걸으며 남들이 보면 미친 사람처럼 수많은 시간을 돌고 도는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그러면서 나는 담임목회사임의 충격을 이겨나가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9월 이후 친구의 신문사 기자로 제2의 사역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나 아내는 그런 시간을 갖지 못했다. 무엇보다 왜 15년간 그렇게 기도했는데 우리가 나가게 됐는지 받아들이지 못했다. 15년 목회한 나와 사모로 내조한 자신의 의미는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가 변한 것에 대해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그동안은 사람들을 만나고, 학교 동창 친구들을 만나도 “사모”라는 이유로 다 받아들여졌다. 사모가 무슨 돈이 있냐는 동의하에 내 아내는 친구들보다 여유가 없어도 어울릴 수 있었고 당당했다. 그러나 교회를 나오기로 결정한 이후 그 친구들을 만났을 때 “너도 이제 돈 벌어야지?”하는 친구들의 말에 아내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많이 아파했다. 사실 아내는 담임목회로 나오면서 많이 힘들어 했다. 자주 소화불량에 걸렸고 원형탈모로 시달렸다. 문제 많은 교회의 문제 많은 교인들의 텃세로 인해 고통이 심했던 것이다. 담임으로 부임했을 때 내 나인 만 39세, 아내는 34세였다. 첫 담임이고, 첫 담임 사모이니 얼마나 어리고 미숙했을까? 반면 그들은 수많은 목회자와 사모를 다룬 “선수”들 아니던가? 나는 담임목사라 함부로 하지 않았지만 여자 성도들은 달랐다. 아내를 따돌리기도하고 괴롭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내는 많은 어려움을 당했다. 나는 아내의 잦은 소화불량과 원형탈모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나놓고 보니 중간에 사임하지 않았다면 아내는 스트레스성 암에 걸려 죽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아내는 가슴에 멍울이 생겨 순천향병원에서 유방암이 의심된다고해 조직검사를 하기도 했다. 다행히 암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와서는 사임한 것이 오히려 감사하다.

 

교회를 사임 후 내가 가장 신경 쓴 것이 아내였다. 우선 아내는 시댁으로 들어가야했다. 갈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며느리 입장에서 시부모님과 한 건물에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결혼 후 한번도 같이 산 적이 없는 시부모님과 한 건물에 살아야하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어떻게 해서든 집 문제를 해결해 볼려고 했지만 받은 퇴직금으로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부모님댁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동의하고 따라준 아내가 지금도 고맙다.

 

아내는 사임 후 돈을 벌어야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산다. 그동안은 나를 만나 군목으로, 부목사로, 담임으로 내가 받는 사례를 가지고 부족하지만 안정적으로 살았는데 졸지에 내가 “실업자”가 됐으니 아내의 고민이 너무나 컸다. 55세에 담임으로 다시 청빙받아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무슨 이유가 됐든 “교회에서 쫓겨난 목사”라는 꼬리표가 붙은 목사를 어느 교회가 청빙하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나는 교회 개척을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래서 기존교회에 부임을 했던 것이다. 이후 기자생활을 하면서 수입은 형편 없었다. 그동안은 퇴직금을 까먹으며 살아야했다. 나는 모든 돈 관리를 처음부터 아내에게 맡겼기에 얼마나 지출이 되는지 모른다. 그러나 4인 가족이 서울에서 살려면 숨만 셔도 돈이 든다. 그러면서 아내는 재정에 대해 불안해했고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평소 관심이 있고 해보기도했던 한복 만드는 일을 배우게 됐다. 국가에서 무료로 가르쳐주는 곳에 등록해 2년 넘게 다니며 지금은 간간히 용돈벌이를 하고 있다. 그런 아내에게 나는 “돈은 내가 벌테니 마음 편히 지내고, 당신은 당신 하고 싶은 것만 해”라고 말한다. 아내는 예민한 편인데 만약 돈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아 병이 나면 큰일이다. 가뜩이나 시댁에 얹혀사는 것도 힘든데 돈 문제로 힘들어져 병이라도 나면 큰일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아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29년을 함께 산 아내는 너무나 귀한 여자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는 아내와 결혼한 것이다. 아내를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같이 살고 싶다. 그런데 그런 아내가 목회할 때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소화불량에 걸리고 원형탈모에 시달렸다. 그리고 사임 후에도 이 상황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시댁에 얹혀 사는 것으로 인해 그리고 돈을 벌어야한다는 압박감으로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런 아내를 보며 늘 위로하고 격려했다. 그런데 사임 3년이 되가는 오늘 아내가 “이제 내 마음이 조금 편안하다”고 하니 너무나 고마웠다.

 

해고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돈을 버는 가장이 해고되면 그 가정은 어떻게 되는가? 실제로 과거 IMF때 실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살로 내몰렸는가? 담임목사 강제 사임은 “살인”이다. 나의 사임으로 인해 내 가족, 부모님, 친구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나와 내 아내는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나의 사임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내 마음에 남겨진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마치 노인들이 살아온 힘겨운 날들을 되네이고, 남자들이 군생활을 이야기하며, 여자들이 출산한 이야기를 되풀이 하듯이 말이다.

 

담임목회할 때 내 아내는 아팠다. 그리고 사임 후에도 아팠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오늘 이제는 조금 편안하다고 말했다. 언제 또 교회에서 받았던 상처가 불현듯 불쑥 떠올라 속이 뒤집어 질지는 모르나 이제는 편안하다고 말해주니 고맙고 고맙다. 아내도 회복과 극복의 과정을 밟고 있는 것 같다. 나를 내쫓은 이후 교회가 더 나락으로 떨어져간다는 소식을 접할 때 도대체 그들은 뭔 정신으로 그 일을 저질렀는지 묻고 싶다. 그들은 담임목사를 5명이나 내쫓으면서 그것이 “살인”이라는 것을 깨닫기는 했을까? 깨닫지 못한 것 같아 두렵다. 5명을 이미 내쫓았으니 기회가 되면 앞으로도 내쫓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좋지 않은 버릇에 물든 교인들이 불쌍하다. 어쨌든 그거야 그 교인들이 책임져야할 문제고, 내 아내를 병들게했던 교회에서 벗어나게 되어 감사하고 감사하다. 

 

담임목회와 아내 중 선택하라면 나는 아내를 선택할 것이다. 담임목회야 나 아니어도 할 사람들이 즐비하지만 세상에 내 아내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려운 가운데 묵묵히 목회를 감당하는 모든 목사와 사모 그리고 자녀들의 강건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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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야기】 내 아내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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