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6(월)
 
  • 좋은 이름으로 기억되는 삶을 살고 싶다

KakaoTalk_20231014_124422523.jpg

  

몇 년 전 내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같은 시찰회 목사님 중 한 분이 군선교에 열심이신데 인천지역 모 부대 신병세례식에 와 달라고 해서 갔다. 세례를 줄 목사들 앞으로 여러 신병들이 줄 맞춰 왔다. 내 줄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세례를 주는 가운데 내 평생 내 이름을 가진 사람을 처음 봤다. 내 이름과 같은 신병을 예비역 군목 신분으로 세례를 베풀며 묘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병중은 한자로 ‘잡을 秉’, ‘무거울 重’이다. 딸만 둘 낳고 셋째로 아들을 낳았기에 그 당시 비싼 돈 주고 작명소에서 지은 이름이다. 어차피 병자는 돌림이니 글 한자만 정해주면 되니 작명소는 돈 벌기가 쉬울 것 같다. ‘무거운 것을 잡는다’는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나 요즘들어 체중이 늘어 무거워지기는 했다.

 

어렸을 때는 전화번호부가 있었다. 그래서 내 이름을 검색해보니 있기는 했는데 많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초등 학교를 다닐 때는 “병원”, “병균”이라는 이름도 있었다. 그래서 “병균”에 걸려 “병중”이 되면 “병원”에 가야한다면서 서로 웃던 기억도 있다. 개역한글성경에는 내 이름이 있었다. 시 41:3 “여호와께서 쇠약한 병상에서 저를 붙드시고 저의 병중 그 자리를 다 고쳐 펴시나이다” 그런데 개역개정에서는 시 41:3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로 바뀌어 내 이름이 사라졌다. 아쉽다.

 

나는 그 신병에게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한 김병중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면서 세례를 줬다. 그리고 앞으로 더 열심히 살라고 신신당부했었다. 왜 그랬을까? 이름이 나와 같았기 때문이다. 많지도 않은 특이한 이름인데 그 신병이나(지금은 진작에 제대했을 만큼 시간이 지났다) 나나 그 만남은 도플갱어의 경험이었다. 아마 그 청년은 이후에도 자기를 세례준 내 이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자기 이름이니 말이다.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그 사람이 잘 살기를 바란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虎死留皮)”고 했다. 우리 모두는 자기의 이름을 소중히 여긴다. 만약 누군가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면 얼마나 기분이 상하겠는가? 나도 내 이름에 먹칠하지 않도록 오늘도 열심히 성실하게 살고 있다. 

 

 

KakaoTalk_20230906_184652271.jpg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단상】 또 다른 나에게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