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6(월)
 
  • 국가를 위해 희생한 개인의 가족도 희생을 강요당해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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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훈 작가가 쓴 『하얼빈』을 읽었다. 몇 권 읽은 김 작가의 소설과 수필은 늘 담백하다. 그런데 이 책은 더욱 담백했다. 일체 간을 하지 않은 음식을 먹는 느낌을 내내 지울 수 없었다. 우리가 민족의 영웅으로 대하는 안중근에 대해 이렇게 담백하게 쓸 수 있는 것 또한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안중근의 세 자녀의 삶에 대해 알게 됐다. 그에게는 세 자녀가 있었다. 첫째 아들 분도는 안중근이 천주교 신부로 키워 달라고 유언했으나 일곱 살에 누군가 건네준 독이든 과자를 먹고 죽었다. 둘째이자 딸인 현생은 이후 남동생 준생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 사후 그를 위해 마련된 사찰 박문사를 찾아 “아버지의 죄를 사죄한다”고 말했다. 친일 변절자로 살다 대구 효성여대(대구가톨릭대 전신)에서 불문학 교수를 지냈으며 57세 때 서울의 단칸방에서 고혈압으로 죽었다. 남편 황일청 또한 친일배신자로 낙인찍혀 1945년 12월에 광복군에게 암살된다. 귀국행 배를 타려고 가족들과 함께 충칭에서 상하이로 내려오던 중 여관에서 총을 맞고 숨진다. 셋째 준생은 둘째 아들로 30세까지 일제의 감시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냈다. 일제는 그를 회유해 이토의 차남 이토 분키치에게 아버지 안중근의 죄를 사죄하고 함께 박문사를 참배하고 분향하게했다. 이에 김구는 광복 직후 중경에서 장개석을 만났을 때 안준생을 교수형에 처해달라고 요구했다. 일본은 상하이의 안준생에게 유럽계 세관장이 살던 관사를 내줬다. 그들에게 영혼을 내준 댓가로 난데없는 호강을 누렸지만 오래 가진 못했다. 1945년 일제 패망 이후 상하이까지 들어온 중국 공산당을 피해 홍콩으로 이주한다. 그는 아내 정옥녀와 아들 안웅호와 안연호를 미국으로 보낸 뒤 1951년 한국전쟁 와중의 국내로 들어온다. 그가 왜 가족 없이 혼자 귀국했는지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자신이 한 친일행위가 해방된 국가에서 단죄되는 상황을 아내와 자식에게 부담지우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안준생은 부산 피난지에서 폐결핵을 앓다가 1952년 숨진다. 그의 아들 안웅호는 미국에서 의박사가 됐다. 안준생은 아들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 아들은 의사예요. 미국에서 제법 성공했고 주위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잘 살고 있어요. 내가 사람들의 경멸을 받으며 모은 돈으로 가족을 부양한 덕분에 사람답게 살게 된 거죠. 우습지 않나요. 영웅의 아들은 개같은 삶을 살고 변절자의 자식은 다시 성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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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줄 왼쪽 안준생, 오른쪽 이토 분키치

안중근은 국가의 영웅이지만 가정에게는 재앙이 됐다. 일제의 감시로 가족은 비참하게 살았고 자식들은 아버지를 부정하고 변절의 길을 걷게 됐다. 이에 대해 쉽게 비판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가, 독립투쟁 단체가, 아니면 개인이 안중근의 가족을 돌봤더라면 자식들이 변절의 길을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훈 작가는 안중근이 사후에 철저하게 버려졌다는 것을 책 말미에 무심하게 기록하고 있다.

 

안정근, 안공근이 감옥 문 앞에 와서 시신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구리하라가 옥리를 보내서 ‘불가하다’라고 통보했다. 안정근, 안공근은 땅을 치며 울었다. 옥리들이 안중근의 몸을 마차에 싣고 가서 감옥 공동묘지에 묻었다. 하관 때 가는 비가 내렸고, 문상객은 없었다(책 277p).

 

3월 25일에 대한제국 황제 순종은 서른일곱 살의 생일을 맞았다. 아침에 황제는 덕수궁으로 가서 태황제 고종에게 인사를 드렸다. 오후에는 창덕궁으로 돌아와서 인정전에서 생일 하례를 받았다. 소네 통감과 통감부 고위 관리, 내각 대신들, 각국 영사들이 입궐해서 황제의 만수무강과 대한제국의 번영을 기원했다. 황제는 귀빈들에게 음식을 베풀어서 답례했고 시종무관들과 근위대 장교들에게는 따로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산수유와 매화가 잇달아 피어서 창덕궁의 봄은 화사했다. 후원 숲에서 뻐꾸기가 울었다(책 278p).

 

3월 27일은 부활절이었다. 조선 대목구장 뮈텔 주교는 서울명동대성당에서 부활 대축일 미사를 드렸다. 여러 나라의 외교관들과 통감부 관리들과 서양인 기술자들과 신자들이 참례했다. 봄의 햇살이 비쳐서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이 영롱했다. 팔십여명이 영성체했고 예비 신자들이 영세 받고 입교했다(책 278p).

 

3월 29일에 관동도독부는 안중근 사건의 수사와 재판과 사형집행에 이르는 과정에서 애쓴 관리들에게 직급에 따라서 상여금을 내렸다(책 279p).

 

3월 26일 저녁에 빌렘은 안중근의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27일 아침에 빌렘이 신자들을 소집했다. 안중근의 문중 사람들과 마을의 신자들이 청계동성당에 모였다. 빌렘은 여순감옥에서 안중근을 만나 고해성사를 베푼 일을 마을 신자들에게 말했다(책 280p).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한 목숨을 내놓고 가정을 포기했는데 세상은 이에 대해 무심하다. 현재도 우리는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고, 독립군의 후손들은 비참하게 살고 친일세력은 여전히 호의호식하는 것을 보면 이 나라가 유지되는 것이 기적이다. 그래서 내 두 아들에게 “다시 일제가 우리를 지배하는 일이 벌어지면 괜히 독립운동하지 말고 친일해라”고 말해야하는 이 현실이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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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국가란 무엇인가? 안중근 가족의 비극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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