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1(토)
 
  •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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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사고 처음으로 마후라를 교체한다 

목사들의 자가용이 점점 비싸지고 있다. 자동차 업체들이 더 비싼 고급 승용차들을 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랜져가 최상위였다. 이제는 제네시스가 최상위이다. 이에따라 목사들 중에 제네시스를 타는 경우가 많이 늘었다.

 

몇 년전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어느 모임에 취재를 갔는데 아는 목사가 제네시스를 끌고 왔다. 그가 경기 북부 지역에 개척한 교회는 아직도 은행 융자를 갚고 있는 형편이며 교세도 약했다. 그런데 제네시스라니! 내가 시험에 들었다. 과거 목회할 때 한 여집사가 시험에 들었다. 목양실에 커피 원두를 산 것이 이유였다. 목양실을 찾는 사람들에게 원두 커피를 대접하고 싶어 2-3만원에 구입한 것이다. 실제로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늦은 시간에 먹으면 잠을 설치기도 한다. 그런데 거기에 시험이 들었다. 그 당시 남편은 돈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여집사가 벌어 먹고 살았다. 그래서 그게 시험거리가 된 것이다. 알겠는가? 교인들은 상상을 초월한 것에 시험이 든다. 이후 원두 커피 기계와 커피 원두를 교회 식당으로 옮겨 버렸다.

 

통상 교인수가 늘면 그에 비례해 목사 사례비와 판공비가 늘고 자가용이 좋아진다. 우리는 이것을 당연시한다. 교회도 자본주의 논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했다. “한국에는 대형교회와 대형교회를 갈망하는 두 종류의 교회가 있다”고. 교회 규모에 따라 목회자 대접이 달라지니 그럴 수 밖에 없나보다. 세상 기업과 교회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다. 소위 ‘부흥’한 교회는 자신에 대한 대접이 달라지기를 원하고 심지어 요구한다. 그 안에는 사례비나 판공비 그리고 자동차가 포함되어 있다. 대령에서 장군이 되면 30가지가 달라진다고 한다. 작은 교회에서 큰 교회가 되면 몇 가지나 달라지는지는 내가 큰 교회를 이루지 못해 모르겠다.

 

담임으로 부임했을 때 차량구입을 했다. 교회에 차량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용차로 구하지 않고 트라제 디젤 9인승으로 구입했다. 내 자가용 용도이기에 승합차를 구하는 것이 거시기해서 다인승차를 구입한 것이다. 그리고 주일에는 교회 공용으로 차를 사용했다. 15년 담임목회를 정리하고 나올 때 15년된 차를 받아 왔다. 어차피 폐차할 것인데 임시당회장이 교회에 요구한 내 퇴직 후 사례 3개월치에서 1개월치를 제하는 것으로 퉁쳐 내게 넘겨줬다. 그 액수는 240만원이었는데 15년된 디젤차를 참 잘도 팔아넘긴 셈이다. 교회에 분쟁이 나면 교인들이 이렇게 치사해질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아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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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에 15만키로, 아직도 잘 나간다 

나는 지금도 3년간 그 차를 이용하고 있다. 잘 해야 일주일에 한번 이용한다. 그래서 18년된 차가 15만키로정도 밖에 안된다. 오늘 마후라를 교체하러 장안평에 들려 거금 12만원을 지출했다. 앞으로 70세까지는 운행하고 싶은데 모르겠다. 아내는 차가 낡아 바꾸자고 하는데 굳이 잘 굴러가는 차를 바꾸는데 돈을 지출하고 싶지는 않다.

 

내 선배는 서울 시내 중심의 유서 깊은 교회를 담임하는데 담임목사용으로 매번 소나타를 사주고 있다. 교회 규모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것이 장로들의 “소신”이라면 받아들여야지 어떻게 하겠는가? 자기들은 외제차를 타도 담임목사는 소처럼 일하라고 소나타만 사주니 그 교회도 참 알만하다. 그러나 그 선배는 “미국에 있을 때 좋은 차 많이 타봐서 차에 대해 별 미련이 없다”고 하고 잘 끌고 다닌다.

 

교회 분수에 맞게 차를 골라야한다. 작은 교회라면 그 수준에 맞는 차를 타야 손가락질 안 받는다. 그리고 큰 교회라고해도 한 단계 아래 등급의 차를 타면 겸손하다고 “존경”받는다. 분수에 맞지 않는 차를 타서 입에 오르내리고, 교인들을 시험들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야 본인의 자유이지만 왜 바울이 2천년 전에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 8:13)”고 했는지 잠시 묵상해 보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만일 내 차가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급 승용차를 타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이렇게 바꾸어 묵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목사는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는 브레이크가 좋아야한다. 덜 가지고 덜 누릴수록 교인들이 존경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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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목사와 자가용...탐욕에 브레이크를 밟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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