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4(토)
 
  • 미국이 선진국인 이유 중 하나는 장애인에 대해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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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마비 장애인으로 한평생을 목발에 의지하며 살다가 세상을 떠난 장연희 교수의 에세이를 또 읽었다. 그녀는 1952년 9월 14일 태어나 2009년 5월 9일 57세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에세이에는 장애인으로 사는 삶의 고단함이 묻어있다. 

 

한번은 대학교수 시절 여동생과 명동에 갔다가 의류 가게 앞에서 옷을 구경하다 거지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갈 때는 많은 대학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이 거부되었다. 그나마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서강대에 입학이 가능해 그곳에서 영문학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박사과정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원하는 대학에서 거부당하자 결국 미국으로 유학해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 서강대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장애인에 대해 이처럼 가혹한가? 장애인으로 태어났거나 혹은 중도에 장애인이 되었거나 이 세상에는 장애인이 많다. 그런 데 장애를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조롱하고 배척하는 그 심보가 참으로 고약하다. 그나마 장영희 교수는 미국으로 유학했기에 박사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교수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장애인으로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국에 가야만 한다. 그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아직도, 여전히 후진국이다.

 

킹콩의 눈

나는 영화에 문외한이고 또 영화를 볼 기회도 별로 없지만, 누군가 내게 이제껏 본 영화 중 가장 인상 깊은 영화를 꼽으라면 아마 주저 없이 <킹콩>이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줄거리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으므로 '인상 깊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킹콩>은 내가 일부러 극장까지 찾아가서 본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이고, 그 영화를 본 날짜와 장소까지 정확히 기억한다. 1978년 1월 12일, 나는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하고 난 후, 명보극장에서 그 영화를 보았다. 그날은 Y 대학에서 박사 과정 시험을 친 날이었다. 석사 졸업반이었던 나는 딱히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고, 당시 나의 모교에는 박사 과정이 개설되기 전이라 내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것밖에 없었다. 응시자들은 오전에 필답고사를 보고 오후에 면접을 하게 되어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실에 들어서니 네 명의 교수들이 반원으로 앉아 동시에 나와 내 목발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내가 엉거주춤 자리에 앉기도 전에 그중 한 사람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우리는 학부 학생도 장애인은 받지 않아요. 박사 과정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한 사람의 운명을 그렇게 단도직입적이고 명료하게 선언하는 그 교수 앞에서 나는 차라리 완벽한 좌절, 완벽한 거절은 슬프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마음이 하얗게 정화되는 느낌이었고, 미소까지 띠며 차분하게 "그런 규정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인사까지 하고 면접실을 나올 수 있었다. 

 

그날 집에서 기다리시는 부모님께 낙방 소식을 전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지연하기 위해 동생과 함께 본 영화가 <킹콩>이다. 그 영화에서 내가 기억하는 것은 단지 단편적 이미지의 연속뿐이다. 거대한 고릴라가 사냥꾼들에게 잡혀 뉴욕으로 옮겨지는 도중에 우리를 탈출하고, 도시 전체가 공포에 휩싸인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옆에 앉아 있는 킹콩은 건물만큼이나 크고 거대하다. 어떤 이유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킹콩은 한 여자를 손에 쥐고 있고, 그녀는 온몸을 떨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킹콩은 그녀를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 그러나 킹콩은 자신의 운명을 잘 알고 있었다. 마침내 포획되기 전, 킹콩은 그녀를 자신의 눈높이로 들고 자세히 쳐다본다. 그 눈, 그 슬픈 눈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에게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가 인간이 아닌 커다랗고 흉측한 고릴라였기 때문에…. 그때 나는 전율처럼 깨달았다. 이 사회에서는 내가 바로 그 킹콩이라는 걸. 사람들은 단지 내가 그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미워하고 짓밟고 죽이려고 한다. 기괴하고 흉측한 킹콩이 어떻게 박사 과정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나 역시 내 운명을 잘 알고 있었다. 사회로부터 추방당하여 아무런 할 일 없이 남은 생을 보내야 하는 삶, 그것은 사형 선고와 다름없었다. 킹콩이 고통스럽게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쯤 나는 결정을 내렸다. 

 

나는 살고 싶었다. 그래서 편견과 차별에 의해 죽어야 하는 괴물이 아닌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곳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영화관을 나와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토플책을 샀고, 다음 해 8월 내게 전액 장학금을 준 뉴욕 주립 대학으로 가는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이제 나는 돌아왔고, 나를 면접하기조차 거부하고 '운명적'인 선언으로 내 삶의 방향을 재조정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 그 위원회에 진정으로 감사하고 있다(pp. 289-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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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장애인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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