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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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는 불효자

선교사가 되었을 때 마음에 가장 걸렸던 것은 홀어머니를 두고 선교지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셨고목사가 되었을 때 너무 기뻐하셨지만선교사가 되어 중국에 간다고 했을 때 굳이 네가 가야 하니?” 말씀하시며 안타까워하셨다.

자식을 다들 위험하다고 하는 중국에 보내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인간적인 모습이 이해가 된다.

몇 년이 지난 후부터는 매번 한국 방문 때마다 물으신다.

이제 충분하지 않니?”

믿음직한(?) 장남이 먼 타지에서 고생하는 것이 마음이 쓰이시는 것 같다.

어머니의 평생 소원은 아들이 목회하는 교회에서 매일 철야기도 하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소원을 들어드릴 수가 없었다.

스스로 이렇게 위로했다.

어머니도 저렇게 말씀하시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해하시고 응원하실 거야.”

 

내 기억에 어머니는 여전도사 사역에서 은퇴하신 이후 집에서 주무신 적이 거의 없었다.

매일 교회 지하 1층에 마련된 방에서 권사님들 몇 분과 철야 기도를 하셨다.

물론 밤새 기도하진 못하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초저녁 잠이 많으시고어디서든 잘 주무신다. ^^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 치는 모습을 하나님은 기뻐하셨을 것이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자라왔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려고 애써왔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지금까지는 그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

어머니가 위독하시다고 하는데 빨리 돌아갈 수가 없다.

일단 내 손에 여권이 없다.

목회자 비자 발급이 늦어지며기존의 단기비자 연장 신청을 위해 이민국에 들어가 있다.

여권을 돌려받고 나서도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코로나로 비자를 못 받아 1년 남짓 선교지를 떠나 있다 겨우 다시 들어왔고드디어 사역지가 결정되고이사를 준비하며 목회자 비자 발급을 위한 프로세스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는 지난 몇 달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시며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셨기에...

망설이다 파송 교회에 상황을 알렸고담임 목사님의 다른 것 생각하지 말고 속히 귀국하라는 말씀에 용기를 내어 들어왔다.

허락하신다면 임종을 지키고최소한의 아들 역할을 할 수 있겠구나 기대하며.

격리 이틀째하나님께서 어머니를 부르셨다.

이어지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

인도네시아는 8월부터 방역 강화 국가로 지정되어 격리 중 장례 참석을 위한 외출도 금지되었다고 한다.

지역 보건소질병관리청행정안전부에 여러 번 문의를 해봐도 예외가 없다고 한다.

장남이 어머니 빈소를 지키지 못한다니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 내게 벌어졌다.

최소한 이건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장례식장도 해외입국자에 대한 방역 수칙이 까다로운 대학병원이 아니라 일반 장례식장으로 정했는데...

어머니... 죄송해요.

 

온라인 장례

감사하게도 온라인으로 모든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다.

예배와 장례 중요 절차마다 페이스톡으로 연결해 준 아들 덕에 온라인으로라도 함께할 수 있었다.

 

하늘의 위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끝내시고 하나님 품에 안기셨다는 것,

잠시 헤어지지만 우리 모두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품고 있다는 것.

그래더 무엇이 필요한가?

다른 것들이 뭐 그리 중요한가?

잠깐의 이별일 뿐인데.

 

(연락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코로나 시국이라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했습니다.

기도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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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이야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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