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 최정은, 옐로브릭,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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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2000년부터 담임으로 나간 2005년까지 승동교회에서 함께 부목사 생활을 했던 목사님의 사모님이 쓰신 책이다. 그 당시 승동교회에는 4명의 부목사가 있었는데 때가 되어 각자의 길로 떠나갔다. 한분은 미국으로, 한분은 개척교회 후 다른 교회 합병하고 담임목회로, 또 나는 15년 담임 후 인터넷 신문사 발행인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쓴 사모님의 목사님은 하나님의 소명을 따르는 길을 가고 있다. 

이 책을 두 번 읽었다. 사모이기에 생긴 여러 일들을 그림책을 통해 해결해 가는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일반책이든 그림책이든 그 안에는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 일독을 권하고, 담임목회 때 기회가 되면 사모님을 간증 강사나 그림책 강사로 모실려고 했는데 그만 사임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기사를 보고, 책 전체를 읽어 본 후 사모님을 강사로 초청하시기를 강추드린다. 최근 저자의 두 번째 책 『사춘기 엄마의 그림책 수업』이 나왔는데 곧 사볼 계획이다.

 

"다시 가드를 올리고" (p 156-164)

그럼에도 다시 걷다

고정순 글·그림, 《가드를 올리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요, 주님 뜻을 믿기 때문이죠. 어릴 적 거침없이 불렀던 찬양의 한 소절이다. 그때 저 찬양의 의미를 알았다면 웃으며 부를 수 있었을까? 내가 계획하고 바라던 것들이 무너지고 흔들려도 주님의 뜻을 믿으며 감사할 수 있다고 그렇게 목소리 높여 찬양할 수 있었을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할 수 있다는 건 치기 어린 고백이었음을 수원 생활을 시작하며 깨닫게 되었다.

당시 우리의 모습과 겹쳐지는 그림책이 있다. 바로 고정순 작가님의 《가드를 올리고》이다. 이 책은 우리의 삶을 링 위에 선 복서의 모습으로, 산을 오르는 여정으로 보여준다. 이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수원에서 살아낸 우리 가족의 모습이 보인다. 인생이 우리에게 날리는 주먹에 휘청거리고, 넘어지고, 때론 도망가고 싶었던 그때의 내 모습이 보인다.

다시 가드를 올리고.

링 위에 한 사람이 서 있다. 그는 가벼운 몸짓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거침없이 주먹을 휘두른다. 휘두른 주먹을 손쉽게 피한 상대가 사정없이 그에게 주먹을 날린다. 연이어 퍼붓는 주먹 세례에 휘청거리며 주저앉는다. 남편과 결혼하고 나는 하루아침에 사모가 되었다. 모든게 조심스럽고 서툴렀다. 그렇게 사모로 산 지 10년, 나는 완벽하게 그림자로 살고 있었다. 교인 중에 속해 눈에 띄지 않으면서 교인 아닌 교인으로 사는 것이 사모로서 나의 사명인 양 살았다. 남편이 담임 목사가 되면 그때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면 된다고 나를 다독이면서 아이들과 남편의 완벽한 도우미로 살았다. 그러던 중 남편이 대전에 있는 한 교회에 담임 목사로 와 달라는 청을 받았다. 시간을 내어 온 가족이 교회를 보러 갔다. 대학교 앞에 위치한 교회라 청년도 많고, 재미있게 목회를 할 수 있는 교회였다. 나도 아이들도 우리 교회라며 몇 번을 바라보며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나 몇 주 후 청빙 취소 통보를 받았다. 이미 부목사로 있던 교회에서는 사표가 수리되었고 온 교인에게 축하 인사를 받았던 터라 우리는 이 소식을 알리지않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대전의 교회를 원망할 사이도 없이 그야말로 벼랑 끝에 서게 된 것이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교회 개척'이라는, 내가 꼭 피하고 싶었던 상황이었다. 바람이 부는 곳에 오르고 싶다던 그림책 속 그는 이제 더 이상 바람 부는 정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한참을 쓰러져 있던 멍든 얼굴의 사내는 지금 자기가 선 곳의 바람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정상을 바라보며 버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다시 가드를 올린다. 시퍼런 멍이 가득한 그의 얼굴에 어느새 미소가 가득하다.

수원에 온지 10년, 우리는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고 있다. 쉽게 오를 것 같았던 정상의 모습은 잊어버린 지 오래다. 내가 꿈꾸던 무대에서 강한 주먹을 휘두르며 거침없이 나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바라던 강한 주먹 대신 쏟아지는 삶의 주먹에 맞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배웠다. 여전히 비틀거리지만 내가 누구인지, 내가 걷고 싶은 길이 어디인지, 나의 소명이 무엇인지 잊지 않는 것. 그것이 나를 다시 일어나게 한다. 쓰러지고 넘어지며 우리는 여전히 링 위에 서 있다. 소명은 의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듣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소명이란 성취해야 할 어떤 목표가 아니라 이미 주어져 있는 선물이다.(파커 J. 파머,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한문화, p. 26.)

마흔의 시간을 통해, 창조된 모습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내게 선물로 주신 오늘에 감사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는 것을, 내가 오늘을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주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이 목회자로서의 본분이며 소명임을 배웠다. 이런 소명을 따르는 삶조차 내 믿음과 내 힘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로 사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실패한 목회'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우리의 모습이 이제는 우리에게 꼭 맞는 우리만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흔들림의 시간을 통해 나의 반짝이는 재능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내세울 만한 특별함이 없기에 무엇이든 꾸준히 했다. 《빨간 나무》를 처음 만나고 그림책을 더 깊이있게 알고 싶었다. 그때는 내가 살고 있는 수원에 그림책과 관련 있는 강의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교육기관의 강의 계획안을 살펴보며 그림책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된 강의들을 모두 찾아 듣기 시작했다. 또 무작정 도서관에 가서 어린이 서가에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읽어 줄 때와 달리, 오롯이 나의 그림책으로 만났다. 그림책을 찾아볼수록 새로운 그림책은 얼마나 많던지. 정신없이 그림책에 빠져들었다. 그뿐 아니라 어느 한 분야든 책 100권을 읽으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기억하며 그림책 관련 이론서와 활용서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단순하고 효율성 없는 방식이었지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저 좋아서 열정 가득한 마음으로 시작한 그림책 사랑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나는 여전히 그림책 관련 이론서를 챙겨 본다. 매달 신간 그림책을 구입해 읽고, 듣고 싶은 그림책 관련 강의를 찾아 수강한다. 때론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했다. 초보 그림책 활동가 시절, 연말이면 여기저기 교육기관의 강사 채용 공고를 챙겨 보고 원서를 냈다. 나 같은 초보 강사에게 강의와 수업을 맡겨주는 기관은 거의 없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원서를 접수하는 것까지가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며 매해 접수를 했다. 그렇게 작성해 놓은 프로그램은 좋은 강의 자료가 되었다. 비록 당장 결과가 없을지라도 나만의 속도로 꾸준히 움직였다. 더디지만 움직이는 만큼 나는 조금씩 자랐다. 가끔 방향을 잃어버릴지라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의 꾸준함은 특별한 재능이 되었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결국 다시 가드를 올리고 일어났던 그림책 속 주인공처럼, 그저 꾸준히 나도 그렇게 걸어간다. 그림책으로 품었던 처음 마음을 지키며 걸어간다. 깊은 구덩이에 빠져 있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그림책, 그림책이 건네준 위로와 즐거움을 전해 주는 통로이고 싶다던 그 마음을 지키며 걷는다. 이 이야기가 내 마음속에 더 자리 잡은 것은 마지막 장에 나오는 주인공 사내의 모습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결말은 주인공이 다시 일어나 상대를 넘어뜨리고 만세를 부르는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멍이 가득한 얼굴에 다시 가드를 올리고 있다.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자신의 소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 이 여정의 끝에 안락하고 편안한 결승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삶을 시작할 때 10년만 버티면 무엇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우리의 목회도, 그림책 활동도.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때론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 대신, 걱정과 비웃음 을 받으며 걷는다. 시린 바람을 맞으며 아무 변화 없는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그 바람 덕에 우리는, 나는 단단해진다. 이제 나의 길에서 성공과 실패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내가 꿈꾸는 대로 걸어가는 나의 삶이, 우리의 목회가 소중하다. 더 이상 산 위의 삶을 기대하지 않는다. 내가 두 발을 딛고 있는 곳, 그곳이 좁은 길과 골짜기일지라도 감사할 수 있다. 매일 매일 다른 내음과 빛깔로 불어오는 바람 앞에서 미소 지을 수 있다. 화려하고 시선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모습을 부러워했던 내가, 나의 소박한 반짝임에 감사하며 오늘을 산다. 이제는 조금씩 '그리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다고 서툰 삶의 모습으로 고백한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인생의 주먹에 여전히 휘청이고 넘어진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일어나 가드를 올린다.

 

관련링크:마흔에게 그림책이 들려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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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마흔에게 그림책이 들려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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