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 누군가를 위해 방관하지 않고 목소리를 대신 내줘야 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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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직장생활 중 부당하게 어려움을 당할 때 누군가 막아 준 감동적인 글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곤란한 상황 가운데 있는 사람을 대신해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 줄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도움을 경험한 사람은 언젠가 누군가를 돕는 일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함께 더불어 살아야하는 곳이다.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건 대신 목소리를 내준 한 선배 덕분이었다"

내 갈 길 잘 가고 있는데 옆에서 자꾸 발을 걸고 소금을 뿌리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본인 인생에 충실할 것이지 왜 애꿎은 사람에게 꼬인 마음을 푸는 건지. 그런데 그 사람이 직장상사라면 '똥 밟았네' 하고 쉽게 털고 지나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게 된다. 나도 직장에서 최악의 인간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출근 전날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고, 사무실에서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거나 내 이름을 부르면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긴장되고, 퇴근 후나 주말을 가리지 않고 울리는 카톡 소리에 놀라 이런 메신저를 만든 회사를 원망하기까지 했다. 그땐 너무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쁜 기억은 증발되고 그러한 인간 유형에 대한 이해가 남았다. 당시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비슷한 상황에서 선뜻 도움을 구하기 어렵거나 해결책을 찾기 힘들어하고 있을 누군가가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이야기이다.

 

그 사람의 괴롭힘은 다방면으로 이어졌었다. 본인 기분에 따라 매일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는데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핑곗거리를 찾아서라도 회의실로 불러 호통을 쳤다. 트집 잡히는 게 싫어 요구한 대로 일을 빨리 처리했는데도 '본인을 무시하느냐'며 억지를 부리는 게 황당했다. 하지만 당시엔 그런 행동을 멈추게 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선배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선배들에게는 아주 친절하고, 필요한 사람에게는 절대 선을 넘지 않는 강약약강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최고 관리자에게는 끔뻑 죽는 시늉이라도 할 만큼 충성을 다 했기에 윗선에선 이런 사실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어렵게 빙빙 돌려 힘들다는 사실을 털어놓아 봤지만 둘의 사이는 여전히 공고했고 나는 무력함을 느꼈다. 그러다 또 어느 날은 한없이 친절하게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부탁하지도 않은 모니터링을 해주며 '네가 정말 잘되었으면 좋겠다' 응원하거나 본인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결정적으로는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는지 혹은 계속 일을 부려먹기 위한 수작이었는지, 다그치고 달래는 전형적인 괴롭힘의 유형이었다. 신입사원인 나에게 그 사람은 직장이란 원래 이런 곳이라는 주입을 끊임없이 했다.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니 네가 고쳐야 한다고. 그 사람은 회사를 참 좋아했다. 퇴근도 하지 않고 이런저런 일들을 벌였다. 본인이 기획한 일을 스스로 열심히 한다면 얼마나 보기 좋았을까. 세세한 일을 수행하는 건 늘 후배들의 몫이었다. 물론 공적은 본인의 차지였다. 아, 허무하다. 그때의 그 개고생이 이렇게 몇 줄로 끝나다니. 그때 내가 알게 된 것은, 벌어지는 일을 알고도 방관하는 것은 소극적인 형태로나마 가해에 동참하는 의미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입사 후부터 그 사람과 내 자리는 늘 가까웠는데 처음엔 우연의 일치인가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새롭게 자리를 옮기는 이삿날, 본래 자리배치엔 분명 나와 그 사람이 멀찍이 떨어져 있었는데 다시 보니 자리가 그 사람 앞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음대로 자리를 바꾸어버리는 월권을 부장이 내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승인해준 것이다. 나는 이 또한 가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내가 왜 그 사람의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오랫동안 이유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했었다. 내가 더 친절하게 다가가야 하나? 못한다고 단호하게 말해야 하나? 집에 안 좋은 일이 있나? 오늘 기분은 왜 저런거지? 왜 이해를 하려는 마음까지도 내 몫이어야 했을까. 나를 아는 지인들은 내가 그렇게 당하고만 있을 사람이 아닌데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 말라고 항의하거나, 왜 힘들다고 호소하지 않았는지 의아해했다. 나 또한 그러한 일을 직접 겪지 않았다면 다른 이에게 쉽게 말했을 것이다. 대체 왜 그 상황을 그냥 참고만 있었느냐고. 성희롱이나 성추행 사건의 경우 그러한 질문은 더욱 집요해진다. 왜 그때는 말하지 않았고 이제 와서 그러느냐는 의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힘들었던 시간을 어렵게 토로하는 당사자에게 다른 목적이나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묻는 2차 가해를 하기도 한다. ‘싫으면 더 강하게 말했어야지. 더 적극적으로 항의했어야지. 문자도 친절하게 답했던데?' 잘 지내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고, 상황을 바꾸어보기 위해 하는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상을 잃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다분히 노력해서 입사한 소중한 직장이고 이곳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니까. 문제를 제기했을 때 역으로 입지가 좁아지거나 낙인이 찍히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상대의 권위와 권력이 강할수록 상황이 더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선뜻 이겨내기 쉽지 않다.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건 나와 같은 후배 입장인데도 대신 목소리를 내준 한 선배 덕분이었다. 나를 괴롭히는 그 사람이, 이미 승인이 난 내 휴가를 본인 마음대로 취소하는 것을 본 선배가 대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느냐'고 대신 묻는 선배의 모습에 나도 놀랐고, 후배들도 놀랐고, 그 사람도 놀랐다. 침묵을 깬 선배의 용기에 혼자 끙끙 앓던 후배들이 조금씩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각자 겪었던 일들을 조금씩 공유하기 시작했고 그 사람은 점점 놀란 달팽이처럼 움츠러들었다. 나는 지금도 그 선배에게 무척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회사의 시스템으로 보호받지 못할 때, 리더가 방관할 때 대신 나서서 목소리를 모으는 시작이자 용기가 되어 주었으니까. 결국 그 사람은 그동안의 만행이 알려지며 동료들에게 신뢰와 평판을 잃었다. 당연히 후배들에게 하던 갑질과 괴롭힘도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얼마 후엔 몇 년 만에 나에게 처음으로 사과를 했다. 사람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니 그다지 진심이라고 믿진 않았지만(pp. 10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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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어려운 사람을 돕는 작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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