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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383】 전 법관의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나의 일상을 풍요롭게 채우는 건 어떤 의미인가, 다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사람과 사회는 바뀔 수 있는가. 자작나무에서 지리산으로, 도스토옙스키에서 몽테스키외로, 일상에서 재판까지. 호의는 사람을,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받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주라던 김장하 선생과의 추억, 법을 몰라 손해 보는 이들을 헤아리는 마음, ‘자살’을 시도했던 재소자가 ‘살자’는 다짐을 하게 만든 선물,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속절없이 흘리는 눈물, 그리고 건강한 법원과 사회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교보문고 계엄을 도모했던 윤석열을 단죄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쓴 책으로 가볍게 읽을만하다. 착한 사람을 위한 법 2001. 4. 22. 법 없이 살 사람 착한 사람을 일컬어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들 한다. 법의 강제 없이도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사람이란 뜻이리라. 과연 착한 사람에게 법은 필요 없는 것일까?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 나는 법이 어떠하다고 정의할 만큼 경력도 풍부하지도 않고 타고난 재주도 없지만, 1983년 법학을 전공한 이래 지금까지 18년을 법과 함께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그런 점에서 나는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착한 사람일수록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p. 19). 종종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가곤 하는데, 거기서 늘 하는 말이 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나에게 힘써달라고 전화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 나에게 법을 물어보라." 도대체, 전 재산과 다름없는 300만 원을 전세금으로 걸면서 그 집이 경매 중인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계약하는 사람을 누가 구제해줄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은 대개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야, 집주인을 사기죄로 고소했으니 수사 기관에 힘 좀 써서 집주인을 즉시 구속시켜 달라고 법조인에게 전화를 한다. 법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보장적 기능이다.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고 거기에 저촉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측면이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이 빛을 발한다. 다른 하나는 보호적 기능이다. 그러나 법의 이러한 보호적 기능도 경매 절차에서 배당 요구를 하는 임차인이나 노동자에게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유의하여야 한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은 초라하기만 하다. 착한 사람부터 법을 알자 판사로서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착한 사람은 법을 모르(p. 20)고, 법을 아는 사람은 착하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 사건일수록 해결이 어렵고, 착한 사람을 보호하고자 궁리를 해보나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착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고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법을 아는 사람에게 착하기를 요구할 것 인가? 불가능은 아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남는 방법은 착한 사람이 법을 아는 것이다. 그 길만이 법이 나쁜 사람을 지켜주는 도구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지름길이다(p. 21). 형사 재판 잘 받는 방법들 중 2006. 12. 19. 진술 거부권 행사 자기에게 불이익한 사실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 및 형사 소송법에서 보장된 피고인 및 피의자의 권리입니다. 따라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불이익한 사항에 대하여 질문을 받을 때 진술을 거부하면 되겠습니다. 괘씸죄가 걱정된다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되겠습니다. 이것이 모순되거나 불합리한 답변을 하는 것보다 유리합니다. 답변 방식 법정에서 판사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할 때는 결론을(p. 45) 먼저 말하고 이유를 나중에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판사는 질문을 통하여 사건의 윤곽을 파악 하려고 하므로, 판사에게 결론을 먼저 말함으로써 판사가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인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판사는 여러 각도에서 사건을 살피기 위하여 다양한 질문을 하는 것이므로, 설령 질문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 일지라도, 판사가 상대방의 편을 든다고 섣불리 생각하지 말고 정중하게 답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판사는 피고인의 진심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p. 46). 민사 재판 잘 받는 법 2007. 5. 17. 오늘 재판을 하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민사 재판 잘 받는 방법을 적어보았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소송을 하려면 어려운 일이 많으므로 형편이 허락한다면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였다고 해서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맡길 것이 아니라 수시로 소송 진행 정도를 확인하고 대응 방안을 함께 의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p. 61). 준비 서면을 간단명료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할 경우 법무사의 도움을 받거나 본인이 직접 준비 서면을 작성해야 할 터인데, 이때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준비 서면이라는 것은 당사자의 주장에 불과하므로 아무리 유리한 내용을 적어놓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인정받기가 어려운 반면, 불리한 내용은 별도의 증거가 없더라도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따라서 준비 서면은 간단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증거가 뒷받침되는 내용일 경우 명료하게 주장을 펼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준비 서면에 상대방을 비난하는 내용을 적을 경우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해롭다는 것입니다. 재판이라는 것이 당사자의 도덕성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고, 뚜렷한 증거 없이 상대 방을 비난할 때 판사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준비 서면에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하여 적어내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재판부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노고를 덜어주는 것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p. 62). 소송의 승패는 증거에 달려 있습니다 민사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흥분할 필요 없이 차분하게 증거를 수집하여 제출하는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증거로는 애초 사건이 있었을 때 작성된 서류, 특히 상대방이 서명 또는 날인한 서류가 가장 효력이 강하고, 그 다음으로 제3자가 작성한 서류가 효력이 강합니다. 증인의 증언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법정에서는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도 법정에서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실정이므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는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에 그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정 또는 화해를 권유받았을 때는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재판을 하다 보면 어느 당사자의 주장이, 설득력은 있으나 증거로 뒷받침 되지 않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법적 관점으로만 해결할 경우 어느 당사자에게 더 가혹하기도(p. 63)합니다. 이길 승산이 있어 보이나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법원은 당사자에게 조정 또는 화해를 권고하는 데,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조정 또는 화해 절차에서는 집행에 관한 내용을 반영할 수도 있으므로 이러한 점에서도 조정 또는 화해의 효용은 높습니다. 증인 신문을 할 때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정에 출석한 증인을 상대로 질문을 할 경우 "거짓말쟁이다" "양심도 없느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차분하게 증언의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상대방이 질문하는 내용을 (미리 받을 수 있습니다) 검토하여 허점을 정리했다가 법정에서 질문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람 턱없이 부족한 내용일 것입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소송을 잘해서 이길 사람이 이기는 재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p. 64). 문제가 터지고 나서 소송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은 문제가 터지기 전 검토를 충분히 하는 것입니다. 몇 천 만 원이 오고가는 계약을 체결할 때 변호사나 법을 잘 아는 사람에게 비용을 들여서라도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길게 볼 때 비용이 더 적게 듭니다(p. 65). 책을 읽는 이유 세 가지 2010. 2. 16. 책을 많이 읽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고전을 읽은 적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 보니 문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투리는 말을 안 하는 것으로 감출 수 있었지만 무지는 감출 방법이 없었다. '장 발장'이 《레미제라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읽었다(p. 108). 무경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판사가 되고 보니 사건을 이해하기엔 내 경험이 너무 좁고 얕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도대체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거액의 거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잡히면 처벌받을 게 뻔한 일을 왜 되풀이하는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경험을 늘리려고 해보니 이 또한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장 법관 윤리가 문제였다. 그래서 생각해본 것이 두 가지다. 지금은 언론사 사장이 된 어떤 분이 사법연수생이었던 나에게, 법조인이 되면 초등학교 동창생과 꾸준히 만나라고 당부했던 기억이 떠올라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1년에 몇 회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때로는 부부 동반으로) 만났으니 어느 정도는 실천한 셈이다. 두 번째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장르를 구분하지 말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어보자 하였던 결심이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다. 무소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었다. 남녀 공학 중학교 시절 소풍(p. 109)을 가서 선생님의 권유에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를 까먹어 끝을 맺지 못할 정도로. 그때 불렀던 노래가 남진의 〈님과 함께〉였다. 고등학교 때는 교복이 중고라서 반장을 하지 못했다. 대학교 가서는 사투리 때문에 남 앞에 나서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무슨 결정을 하려면 무척 어려웠다. 결정을 하고 나면 곧 후회를 하게 되고. 어느 날, 내성적인 이유가 소신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군대에서 정훈장교를 하게 되었고 정훈장교 하는 일이 장병 교육이다 보니 남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해소된 뒤라서 그런 결론을 더욱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앞서간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서로 맞추어보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 단단해져 소신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포함해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사족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이 누구와 만나고 무슨 책을 읽는지 말해달라."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p. 110). 혼돈의 시기에 그나마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친구와 책 덕분이라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 감회가 남다르다. 모든 분들에게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p. 111). 책을 고르는 기준 2010.6.26. 책을 어떻게 고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저자를 보고 고른다 어떤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면 그 저자가 쓴 책은 눈에 띄는 대로 사서 읽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면 고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 단 한 번》을 읽고 《축복》 《살아온 기적 살아 갈 기적》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는 식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저자는 다음과 같다. 신영복 교수, 정 민 교수, 유시민 전 장관, 소설가 김 훈, 오지 탐험가 한비야,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열하일기》 전문가 고미숙 박사(p. 124). 주제어를 보고 고른다 제목이나 문장을 검색하여 관심 있는 주제어가 들어간 책을 고른다. 요즘 즐겨 찾는 주제어는 다음과 같다. 정의, 소통, 성찰, 역사, 철학, 인생, 여행, 행복. 이런 기준으로 고른 책은 다음과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 《서양철학사》 《인도 여행》 《행복의 정복》 《무지개 원리》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등. 책 선택에 실패한 적은? 이런 기준으로 책을 골라 읽으면서 후회할 때가 제법 있다. 그러나 산 책은 다 읽는다. 재미가 없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책에 대하여는 독후감을 쓰지 않음으로써 복수를 한다. 블로그에 올린 책은 이중으로 검증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 지금껏 읽은 책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천 권 정도 될 것 같다. 책을 고르는 장소는?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여 고르는 경우가 많고 가끔 서점에 가서 고른다. 베스트셀러 항목과 새로 나온 책 항목을 많이 참조한다(p. 125). 블로그에 독후감을 쓰는 이유는? 독후감을 쓰다 보면 책 내용을 정리하는 효과가 있고, 글쓰기 훈련이 되며, 블로그에 저장해놓으면 다른 글을 쓸 때 인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은 있어도 나쁜 책은 없다. 어떤 책에서도 스승 또는 반면교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께 독서를 권한다. 책이 여러분을 끌어올려줄 것이다(p. 126). 왕후박나무 2011.4.1 남해군법원 다녀오는 길에 경남 남해군 창선면 왕후박 나무를 만났습니다. 500년 이상 되었다고 합니다. 둘레에는 동백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합니다. 주로 방풍용으로 많이 심는다고 합니다. 남해군 창선면에 있는 왕후박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9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왕후박나무는 높이 솟구치지 않고 옆으로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도 500년을 버틴 게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자신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p. 140). 조영남의 노래가 있죠. 〈겸손은 힘들어〉. 그렇죠. 겸손은 힘듭니다. 공자 이래 2천 년 동안 성현들은 겸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겸손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습니다(p. 141). 조정에 임하는 자세 2013.4.28. 조정이란 조정은 법률 분쟁이 생겼을 때 판사의 판결이 아니라 당사자 간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를 말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법원에 접수된 사건 중 판결까지 가는 사건은 10퍼센트가 되지 않고 대개는 조정을 포함한 여러 가지 간이한 방법을 통하여 사건을 처리한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조정은 이길 사람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길 사람이라는 건 미리 정해진 것은 아니고 재판 절차를 통하여 증거를 대고 법리를 세워야 하고 그것으로 판사를 설득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대법원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다(p. 188). 그리고 1천만 원을 받기 위하여 소송 비용으로 500만 원을 들여야 한다면, 700만 원을 받고 소송 비용을 100만 원 선에서 지출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사건에 관하여 가장 절실한 이해관계자는 판사도 아니 고, 변호사도 아니며, 결국 당사자다.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람도 당사자일 수밖에 없으므로, 당사자의 주도권이 가장 잘 보장되는 조정 절차가 불합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정에 임하는 자세 양보해야 한다. 조정은 당사자 간의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고 대체로 당사자는 서로 이해관계가 상반되므로 양보를 해야 조정이 성공한다. 본인이 참석해야 한다.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한 경우라도 조정 절차에는 본인이 참석하는 것이 좋다. 판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상대방의 입장을 직접 들을 수 있으며,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상생하는 방법도 있다. 본인에게 크게 불리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크게 배려하는 방법도 있다. 상대방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쟁점에 관하여 양보하더라도 본인에(p. 189)게 크게 불리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므로,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집행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소송을 하는 종국적 목적은 대체로 승소 판결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돈을 받아내기 위함이다.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더라도 집행 절차에서 돈을 받아내는 비율은 생각보다 낮다. 조정 절차에서는 돈을 받아내는 방법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으므로 유리하다. 원고는 5천만 원을 고수하고 피고는 3천만 원을 고집할 경우 4천만 원 선에서 타협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때로는 5천만 원으로 정하되 3개월 내에 3천만 원을 가져오면 나머지 2천만 원을 포기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싸우는 것은 금물. 간혹 조정실에서 상대방과 말이나 몸으로 싸우는 사람이 있다. 사연이 있겠지만 판사 입장에서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자신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자리를 어렵게 마련했는데 불만을 터트리는 자리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다. 그 사건이 해결 되지 않을 경우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은 판사도 아니요 변호사도 아니요 바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판사의 설명에 귀 기울인다. 법원이 조정 절차를 주도하(p. 190)는 경우 판사로부터 사건 전반에 관한 설명을 듣게 된다. 판사는 내가 불리한 점, 내가 유리한 점을 나누어 설명할 것이다. 잘 들으면 판사가 생각하는 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2심이라면 사건 처리 방향이 대부분 결정되었다고 보면 된다. 민사 사건의 경우 대법원에 상고를 해서 2심 판결이 깨지는 비율이 10퍼센트가 안 된다는 점, 사실 인정은 원칙적으로 2심에서 하게 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2심 재판부의 결론은 존중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내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좋다. 마무리(롯데자이언츠의 마무리는?) 집안에 송사가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적당한 선에서 털고 나오는 것도 마음의 평화를 찾는 좋은 방법이다. '조금 손해 본 것은 다른 일을 해서 보충하면 된다.' 이런 생각으로 조정에 임할 수는 없을까요?(p. 191). 재판 속의 문학 내가 현실에서 맡은 재판은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다(p. 304).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문학이 재판에서 많은 것을 차용하지만 재판은 문학에서 차용하지 않고 순수함을 고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판사는 많은 경험을 해야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제한적인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문학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문학은 보편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고, 재판은 구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며, 양자는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판사들이 다 가난했던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훈의 《흑산》을 읽고 나면 가난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배고픔을 면하자면 오직 먹어야 하는데 많은 끼니 중에서도 지금 당장 먹는 밥만이 배를 채운다는 내용이 그렇다. "아침에 먹은 밥이 저녁의 허기를 달래줄 수 없으며, 오늘 먹는 밥이 내일의 요기가 될 수 없음은 사농공상과 금수축생이 다 마찬가지다." 내가 10년 전 처리한 사건 중 20대 청년이 공무집행 방해죄로 구속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생모라고 밝힌 사람이 탄원서를 보냈다. 오래전에 헤어진 아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자신이 책임지고 선도를 할 테니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p. 305). 재판을 하며 방청객을 둘러보니 유난히 눈에 띄는 분이 있었다. 피고인석 옆에 앉아 대화를 하게 하였더니 피고인을 껴안으면서 "이제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라고 말했다. 피고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생모와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였다. 생모를 만났으니 이제 마음을 잡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집행 유예 판결을 선고했고, 피고인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그 책 한 쪽을 읽어주었다.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다. 내가 10년 전에 처리한 사건 중에 피고인이 자살을 하려고 여관에 불을 질러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불은 크게 번지지는 않았고 다친 사람도 없었다. 선고하는 당일 피고인에게 자살을 열 번 외치게 하였다. "자살자살자살자살.... 이렇게 열 번 하면 본인은 '자살' 이라고 말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살자'로 들립니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실패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살에 실패해서 살았지 않았습니까?" 그러고서 피고인에게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49가지》란 책을 선물했다. 나는 이런 재판을 하게 된 배경 중 8할이 문학 덕분이라고 생각한다(p. 306).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어쩌면 좋은 문학과 좋은 재판은 그 모습이 모두 비슷할지 모른다.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질문할 때, 주제와 이야기가 딱 들어맞을 때 독자들은 감동한다. 판사들이여!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가 영국의 대법관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작가들이여! 긴장하시라. 대한민국의 판사도 또 다른 '유토피아'를 쓸지 누가 알겠는가?(p.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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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6-04-16
  • 【북토크382】 죽음을 늘 준비하며 살자
    KBS 《아침마당》, 《강연100℃》 등에 출연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공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의 에세이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 극심한 암성 통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임종 선언을 했던 저자 김여환.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꼼꼼히 기록한 이 책은, 삶이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을 위해 더없이 소중한 오늘을 ‘있는 힘껏’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교보문고. 이 책은 호스피스 의사가 수많은 죽음을 보고 삶과 죽음에 대해 느낀 것을 쓴 것이다. 많이 유익했는데 현재 절판됐다. 사람의 일생 중 가장 힘든 시기는 보증을 잘못서서 거액의 부도를 냈을 때나 남편이 바람을 펴서 이혼할까 말까 망설일 때가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인생의 반전 같은 일말의 빛조차 기대할 수 없는 시간들, 즉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의 '짧은 삶'이다. 그 시기를 잘 보내야만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온전한 나의 인생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야만 남겨진 사람들의 인생도 편안해질 수 있다(p. 8). 그렇다. 나는 이 세상에 남들보다 조금 먼저 작별 인사를 건넨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토록 자명한 삶의 진리를 힘겹게 깨달았다. 만약 우리에게 내일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면, 오늘 우리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내일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면, 한 번 더 사랑한다 말하고, 한 번 더 안아주어야 하며, 오늘 깃든 행복을 있는 힘을 다해 누려야 한다. 이렇게 수많은 '오늘의 삶'이 모일 때 삶의 아름다운 결과물은 비로소 완성 된다. 그러므로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라는 말에 숨어 있는 참된 의미는 오지도 않은 내일에 대한 불안과 분노, 두려움과 슬픔에 오늘의 행복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더 사랑하고, 오늘 더 행복해야만 한다(p. 10). "2012년 8월 21일 12시 42분, 신복연 할머니는 사망하셨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더 이상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통증 없이 편안히 좋은 곳으로 떠나셨다는 위로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짤막한 사망 선언 뒤에는 언제나 그 마지막 순간을 지키고 있던 가족의 대성통곡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오늘은 조용했다(p. 22). 할머니의 둘째 딸이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우리 엄마가 평소에 유언을 했어요. 내가 떠나면, 울지 말라고. 자식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뒤 돌아보느라 떠나는 것이 힘드니, 울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아...하여간 대단하세요. 입원 내내 웃지 않으신 날이 없었는데, 그런 아름다운 유언까지 하신 줄은 몰랐어요. 제가 들어본 유언 중에 가장 훌륭한 유언인 것 같아요." "과장님, 그렇죠! 우리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이제 꽃 한 송이가 지는구나, 했다니까요." 곱게 아껴두었던 꽃분홍색 한복으로 갈아입고, 흰 양말까지 정갈하게 신은 신복연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살아 있는 그 누구보다도 따뜻해 보였다(p. 23). 짧은 글 한 편을 쓸 때에도 마지막에 무슨 말을 쓸까를 생각하면서 쓰면 글의 흐름이 매끄러워지듯이, 인생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고 살다 보면 들쭉날쭉한 인생이 일관성 있게 변한다. 타인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자기 자신과 먼저 소통해야 한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과 소통하면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p. 25). 자신과 만나려면 가장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임종실은 부끄럽지만 가장 볼품없고 꾸밈없는 자신의 민낯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은 바로 '나의 마지막'이라고(p. 26). "호호호, 난 아직 여기 입원할 단계는 아닌 걸요." "아직은 마약성 진통제를 쓸 만큼 아프지는 않아요." "며칠 전에도 산에 다녀올 만큼 괜찮았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멀쩡하게 걸어 들어오는 말기 암 환자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해 보이는 말기 암 환자들이 한두 달 뒤에는 누런 황달이 오거나 폐렴이 와서 황망히 떠나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남겨진 시간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그 짧은 시간에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칠순 잔치를 하든지, 마지막 콘서트를 하든지, 이혼한 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들을 찾아주는 일들 말이다. 그래도 나도 한 번쯤은 환자를 살려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죽는다고 포기했던 말기 암 환자가 완치되는 일이 우리 병동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환자들은 입원해서 퇴원(p. 45) 할 때까지 평균 27일을 살았다. 호스피스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역시 기적이란 부질없는 비현실적인 희망이라는 것을 확신 하게 됐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슴 저리게 갈구하기도 하고 신에게 떼를 쓰며 의지하기도 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겠지만,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 훤히 보이는 나로서는 그렇게만 하다가 환자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런 애절한 생각을 할 시간이 있으면 조금밖에 남지 않은 삶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오랜 경험을 통해 내린 슬픈 결론이었다. 사람이 좀 민민하고 삭막하게는 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옳았다(p. 46).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다. 푸시시한 구차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낼 때쯤이면 원치 않았던 현재 시간이 살다 남은 찌꺼기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약한 정신 때문이 아니라 몸이 약해지기 때문에 마음까지 통째로 흔들린다. 심지어 어떤 환자는 "잠자듯이 가는 그런 약 있잖아."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말기 암 환자가 안락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p. 56). 비참한 마지막은 말기 암에 걸린 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다 남은 삶이라고 쓰러져버리는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떠날 사람은 남아 있을 이를 위해 조금 남은 삶을 성실히 살아가고, 남아 있을 사람은 떠날 이가 세상에서 사랑받다가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노력하면 서로 덜 힘들다. 처음과 마지막까지, 모두가 촘촘히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p. 58). 세상은 가벼움과 무거움이 서로 경계를 불분명하게 가른 채 섞여 있다.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가볍고,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무겁다. 그렇게 어우러져서 세상은 좀 더 좋게 변한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오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선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고함을 지르고 입원실 바닥에 소변을 보는 한 할아버지 때문에 사흘 밤낮 동안 시달린 환자들이 하소연을 했다. 할아버지를 간병하던 할머니는 "환자가 병원에 자러 왔나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진정제도 못쓰게 하고 1인실로 가지도 않았다. 그런가 하면 뇌종양에 걸린 12살짜리 소녀는 과자를 들고 병실을 누비며 "아저씨, 빨리 나으세요."라고 하면서 환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한 신문 기자가 말기 폐암 환자에게 물었다(p. 67). "인생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해주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후덕하게 생긴 환자는 가지고 있던 옷가지며 살림살이를 싹 정리할 정도로 죽음을 잘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쓸쓸하게 대답했다. "저는....그런 것은 선배가 되고 싶진 않은데요." 그렇다. 죽음이란 일평생을 별 탈 없이 살다가 90살이 되어 마음 독하게 먹고 미리 준비해도 어려운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닥뜨리는 죽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많이 돌본 의사로서 한 가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이 먼저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남은 사람들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나 때문에 끼니를 거를까 봐, 나를 잃은 슬픔으로 행여 병이라도 생길까 봐, 경제적으로 힘들까 봐 등등.... 그들은 사소한 걱정을 몰래 했다. 남은 사람들은 그 마음을 알까? 임종실은 섞일 수 없는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고, 살아남은 이들이 비통함에 눈물을 흘리는 작은 방이다. 그러나 그곳을 거(p. 68)쳐 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존재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사랑하는 이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라고(p. 69). 예전에 나는 보기조차 딱할 만큼 남을 부러워했다. 뚱뚱할 때는 날씬한 사람을, 늦게 시작한 의사 생활이 비참하다고 느껴질 때는 처음부터 순탄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동료를 얄밉도록 부러워했다. 누군가는 잘된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인생의 꿈도 생기고 삶을 개척할 의지도 생긴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 부러움이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계기는 되었을지라도 그 과정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이제 내가 진실로 부러워하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했거나, 예쁘고 날씬하고 건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어떤 삶이 자신에게 다(p. 92)가오더라도 묵묵히 잘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그 자체로 당당하게 살아내는 사람이다. 우리는 저마다 지닌 인생의 향기가 따로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말자. 인생의 마지막에는 행복했던 자신의 과거조차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 시간에는 그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나만의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이 온 것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아쉬운데, 여러 가지 잣대로 부러워하면 병들어 있는 자신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부러워하지 말자, 그대여! 인생이 아파도 마지막까지 이 세상을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내야 한다(p. 93). 불행히도 호스피스에는 죽음을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는 묘약 따위는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들어주면 조금은 가벼워졌고, 끝까지 끈을 놓지 않고 가는(p. 108)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평범한 사실에 평안을 찾아갔다. 대식 씨의 어머니처럼 때로는 버리는 것보다 안고 가는 것이 더 홀가분한 인생도 있다. 그러니까 결국 안고 가는 사람, 버리고 가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p. 109). 잘 죽어가기 위해 우리가 정말 배웠어야 할 것은 죽음의 5단계를 외우거나 혼자서 관 속에 들어가 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p. 112) 아니다. "저는요, 이미 죽음을 다 받아들였어요."라고 말하면서 의젓하게 지내다가 진짜 마지막이 다가오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기보다는 결과물이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신산스럽고, 일상은 상처와 갈등의 연속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얼마만큼 잘 녹여내느냐에 따라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을 마지막 날은 달라진다(p. 113). 어쩌면 인생은 쓰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저절로 쓰이는 소설책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내야 한다. 죽을 만큼 괴로워도 직접 해봐야 삶에 대한 사랑이 깊어진다. 사람들은 인생이 힘들어지면 앞으로 남은 여정이 얼마나 끔찍해질지 더 두려워한다. 남은 인생이 지금보다 더 불편해지더라도 초조해하거나 원통해하지 말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대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살이라는 '고의로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를 생각할 만큼 견딜 수 없이 힘들다면 적극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아무 상관도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조차 알려야 한다. 마음의 피눈물은 말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 애써 고통을 삼키지 말자. 누구라도 도와줄 사(p. 120)람을 찾아다녀라. 자존심 따위 내세울 때가 아니다(p. 121). 치통이 아무리 심해도 한꺼번에 진통제를 다섯 알씩 먹지는 않는다. 통증을 잡으려다 사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타이레놀도 하루에 여섯 알을 초과하면 진통의 효과는 증가하지 않고 간에 부담만 준다. 이렇게 일반 진통제는 일반적으로 정해져 있는 용량을 초과하면 통증에 대한 효과보다는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해지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용량의 한계가 있다. 이것을 약의 천장 효과(ceiling effect)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천장 효과가 없는 약이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많이 쓰이는 마약성 진통제이다. 그것은 일반 진통제와 달리 많이 쓰면 쓸수록 통증이 잘 조절된다. 더군다나 날록손 (naloxone)이라는 해독제까지 있으니 '모르핀'이야말로 신이 세상을 떠날 때만은 아프지 말라고 인간에게 특별히 내려준 '마지막 선물'이다. 사망 원인 1위인 암은 사람이 떠날 무렵에 부쩍 커진다. 암(p. 129)덩어리가 커지면 정상 조직을 파괴하는 묵직한 암성 통증도 당연히 심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일찍부터 진통제를 쓰기 시작하면 통증이 가장 극심한 마지막 순간에는 정작 쓸 수 있는 약이 없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모르핀을 최후의 약으로 넘겨 두었으면 하고 부탁까지 한다. 그러나 통증에 관한 한 모르핀은 쓰면 쓸수록 효과가 있는 약이다. 이러한 마약성 진통제의 비밀을 알려주면 누구나 "진짜 그런 약이 있나요?" 하고 물으며 신기해한다. 환자나 보호자는 어차피 살릴 수 없다면 고통 없이 떠날 수 있다는 확신만으로 가느다란 희망을 갖는다. 모르핀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보다 더 끔찍한 암성 통증에서 해방시켜주는 이로운 약제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좀 더 정확하게 모르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아직도 말기 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모르핀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거부하면서 의미 없는 통증에 시달리다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의 마지막 의사로서 당부한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때가 오면 신이 내린 선물, 모르핀을 거절(p. 130)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통증이 없으면 죽음의 맨 얼굴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고, 고통 없는 죽음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을 것이다(p. 131). 내일 도사리고 있는 재앙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살아감 속에 죽어감의 흔적을 묻히는 것이다. 내일이라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오늘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심코 거칠게 한 말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지도 않을 비겁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너무 많이는 양보하지 말자(p. 163).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가족 간의 갈등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 갈등은 확대된다. 문제의 중심은 늘 '사랑과 돈'이다. 거기에 종교적인 문제가 곁들여지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p. 174). 살다 보면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만 해도 짧은 인생인데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 큰 손해를 볼 것만 같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매 순간 저마다 해야 할 일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훤히 보이고 그때 용기 내어 그 일을 하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것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기도, 또 속절없이 짧기도 하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실수 없이 하려면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하면서 견뎌보는 것쯤은 각오해야 한다(p. 187). 웰다잉(well dying)은 삶의 완성이 아니라 삶의 결과물이다. 누구나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은 더군다나 아니다. 저마다 주어진 힘든 삶을 잘 살아내야만 누릴 수 있는 삶의 마지막 축 복인 것이다(p. 203). 죽음을 깊숙하게 연구하고 싶어서라든지 내 성격이 원래 우울해서 호스피스 의사가 된 건 아니다. 나는 호스피스 일을 해오는 동안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도 죽음에 이르기 직 전까지는 살아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누구도 아프지 않게 하루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거창한 죽음의 여의사가 아니라 그저 생명의 에너지가 다 할 때까지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의사로서 당연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름이 주는 거부감 때문에 국내 암 환자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국내 사용량은 모르핀으로 환산했을 때 환자 1인당 연간 45mg에 불과하다. 미국 693.44mg, 영국 334.52mg은 물론 세계 평균 58.00mg보다도 낮다. 통증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안 쓰는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아프면서 죽어간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죽음이 삶의 종착역인지 따위는 일단 환자의 통증을 덜어준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암 환자의 통증은 당사자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출산의 고통이 10점 만점에 7~8점이라면 암 환자의 통증은 10점 이상도 간다.암성 통증은 암이 진행되는 생명의 마지막에는 더 심해지고, 그(p. 215)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환자와 가족을 더더욱 애타게 한다(p. 216). 인생을 산다는 것은 세상에 놓인 하나의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하지만 그저 다리를 건너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세상의 아름다움은커녕 다리를 뒤흔들 고통과 혼돈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뜨거운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자기 삶의 아웃사이더가 되어보기를. 삶이 끝난 뒤에 죽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죽음이 있음을 알아차리기를,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게 되기를 바란다(p.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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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6-04-13
  • 【북토크381】 삶의 찌질함과 누추함에 대하여
    산문집 《연중무휴의 사랑》과 《헤아림의 조각들》(2023년 문학나눔 선정도서)로 2030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임지은이 신작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전작에서 냉철하고, 때론 따뜻한 연민과 너른 헤아림을 보여줬다면 이번 산문집에서는 작가 자신의 깊은 내면에 숨겨진 질투와 열등감, 욕망과 좌절, 위선 등의 감정을 진솔하게 마주해본다. 누구나 한번쯤 특별한 이유 없이 무언가를 미워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싫음’이라는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숨기고만 싶은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들여다볼수록 작가는 거기에 어떤 선망이나 외로움,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편으론 자기가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을 돋보이게 하려는, 서툰 사랑의 마음이기도 했다. 작가는 슬픔과 기쁨과 외로움이 버무려진 이 “혼탕과 같은 삶”에 깊게 몸 담그며, 미움과 사랑 사이의 낙차를 발견한다. 엄마를 통해 흉보는 마음과 사랑이 때론 붙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온 세상과 자기 자신을 고루고루 아낌없이 사랑한다는 사람들 옆에서 홀로 투덜거리며 자신의 ‘싫음’을 통해 타인의 ‘싫음’ 또한 이해하게 되는 세계를 경험한다. 좋은 것은 당연하게 제 것이라 누리는 동거인에게 꼬인 마음이 드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 수긍하기까지의 내면의 갈등과 고통을 인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지만,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을 톺다 보면 이 책을 추천한 오은 시인의 말처럼, “곡절 없이 좋아하는 것들을 몇 곱절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곧 있으면 닥쳐올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직진하는 용기가 느껴지는 책이다.-교보문고 자신의 찌질함(?)을 드러내는 글을 보며 저자의 용기를 본다. 만족스럽지 않은 환경 가운데서도 살아볼려고 하는 저자의 몸부림(?)에 박수를 보낸다. 이토록 많은 말이 오가는 세상에 말 한마디가 그토록 크게 사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고야 만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버티고 또 흔들릴 만큼 나는 취약 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흔드는 게 무작정 나쁘다거나, 사주는 믿을 만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나를 흔들던 말 또한 나를 이쪽으로 데려왔음을, 내가 무언가를 그 안에서 발견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밤 안도 속에서 깨달은 건 나를 격려해주는 이가 없어도, 심지어 누가 나를 흔들어놓고 수면 아래로 밀어 넣는다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생겨난 불안과 슬픔과 무력감, 또 그에 따른 오기와 반발심을 동력 삼으며, 나는 내 안에서 끝내 살아남은 무언가를 마주했다. 어쩌면 그(p. 25)것이 그리도 중요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나 흔들렸다는 사실 또한. 그러므로 물음에 대한 답은 추가되고 갱신된다. 어쩌다 작가가 되었을까? 나는 끝내 작가가 되고 싶었다(p. 26). 오늘날에는 자신을 돌보는 법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그런 정보의 과잉은 때론 상처도 불행도 없어야 한다는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건 꼭 완두콩 한 알 만큼의 불편도 용인하지 않기 위해 고안된 듯 보이니까. 혹시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은 것만 주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걸까? 그렇게 해야만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건 좀.. 부자연스럽지 않나? 그래도 그런 정보들을 일찌감치 알았다면, 그래서 내 부모가 조금 더 자신을 돌보았다면 그들에게도 내게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내 부모도 조금은 덜 힘들었을 텐데. 나도, 조금 덜 우는 사람이었거나 조금 더 마음 놓고 우는 사람으로 자랐을 텐데. 어쩌다 한 번 하는 우리의 외식도 지금보다는 더 편안할 텐데(p. 103). 뒤늦게나마 나는 내게 좋은 것을 주는 법을 배우고 또 연습한다. 가능한 선에서 질 좋은 걸 산다. 누가 뭘 해주면 사양하지 않고 받는다. 목돈을 모아 요가를 등록하고 되도록 병원을 제때 간다. 때론 근사한 데서 밥을 먹기도 한다. 부모로선 잘 모를 좋은 걸 누려도, 스스로를 이기적이라 느끼지 않으려 이를 악문다. 동거인이 놀리는 걸 보면 갈 길이 먼 것 같지만, 나는 나를 보살피는 훈련을 거듭한다. 그래야 부모를 포함해 그 누구라도, 나를 챙기느라 그 자신을 뒷전으로 두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나에게 최선을 다해준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이해할 수 있다. 동거인의 캠핑을 따라가는 건 훈련의 일환이다. 캠핑을 가면 동거인이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해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뻔뻔하게 앉아서 쉰다. 겨울에는 가끔 엄마의 개도 캠핑에 데리고 간다. 텐트 안에서 개는 한 뼘의 볕이 있는 자리에 자기 몸을 두기도 하고, 난로 앞 조금 더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고 웅크리기도 한다. 주어진 데서 기어이 제 몸만큼의 좋음을 찾아내는 것이다. '너는 바로 아는구나'(p. 104). 내가 오래 걸려 배운 걸 개는 그냥 해낸다. 기특하고 근사한 개 같으니. 몇 년 전가지만 해도 그런 광경, 자신이 괜찮아지는 위치를 미리 알아두고 스스로를 거기 놓는 존재 앞에서는 마음이 볼썽 사납게 흐트러지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웅크린 개를 빤히 바라본다. 걷는 법을 모르고도 걸었고 숨 쉬는 법을 모르고도 숨 쉬었다. 사랑 하는 법을 모르고도 사랑했고 사는 법을 모르고도 살았다. 나를 키워낸 내 부모처럼, 언제나 모르면 모르는 대로 해내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배우면 배우는 대로 더 해내게 된다. 그걸 안 뒤로 나는 배우고 싶은 모든 걸 조금 더 오래 본다. 그럼 볕을 받아 털끝 하나하나가 빛나는 작은 개의 부드러운 몸이 조금씩 솟았다 가라앉길 반복하듯 감탄과 슬픔이 내 몸을 고요히 오르내린다. 어떤 자연스러움은 누군가에게 훈련의 영역에 있지. 그런 게 언제나 조금씩 나를 상하게 만든다고, 개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아무 불편도 모르는 얼굴,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멸균된 얼굴은 역시 내 것이 아니다. 훈련 해봤자 조금 상한 얼굴을 더 자연스럽게 여기는 내 관점은 아무래도 끝내 바뀌지 않을 모양이다. 그래선지 어떨 땐 사람들의 얼굴이 다 조금씩 상한 것처럼 보이곤 한다(p. 105). 대중교통을 오가며 힐끗힐끗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이 상처 입거나 불행하지 않길 바라면서.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들 각자의 상처나 불행이 없어지길 곧장 바라지는 않는다. 거기서 오는 고통과 모순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을 감싸는 오래된 맥락이므로. 나로선 그 안에 새겨진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그들의 완두콩들을 헤아려 보고 싶다. 그런 건 사람이 상처와 불행 속에서도 그럭저 럭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다만 그 사실을 증명하겠다고 나를 몰아세우는 건 그만두었다. 스스로를 보살피는 게 죄가 아니라는 걸 개조차 그냥 안다. 나는 개처럼 살아서 숨쉰다. 개에게 배운 바, 그건 머무르는 자리에서 언제나 한 뼘의 볕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뜻이다(p.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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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3
  • 【북토크380】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 죽음
    대한민국이 OECD 자살률 1위라는 아픈 현실을 몇 년째 마주하고 있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날 거야”라는 절망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젊은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대답을 들려주어야 할까? 이 무거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평생을 의학계에 몸담았고 ‘죽음학 전도사’라 불리는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와 그의 아내가 함께 펜을 들었다. 바로 신간 『죽음, 삶의 끝에서 만나는 질문 』의 저자 정현채, 이현숙 부부의 이야기다-교보문고. 의사가 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1) 근사체험 (2) 사후통신 (3) 삶의 종말체험 (4) 사망 시 물리적 현상 (4) 영매 (5) 어린아이들과 관련된 환생 연구이다. 나는 근사체험만 인정한다. 죽음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이기에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책을 찾아 읽게 된다. 읽은 책들이 죽어갈 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정현채 서울대학교 의대 명예교수 198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 내과학(소화기학)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로 있다. 지금까지 240여 편의 의과학 논문을 SCI 국제학술지에 발표했으며 위염이나 위궤양 등을 유발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연구의 권위자로 대한소화기학회 이사장, 대한헬리코박터및상부위장관 연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명한 의학 저널 『랜싯』을 포함해 전문 학술지에 게재된 죽음에 관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공부하면서 2007년부터 대중을 상대로 죽음학 강의를 시작했다. 중학생부터 80대까지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800여 회 넘게 강의를 해 '죽음학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국죽음학회 이사로서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 제정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수록 비관적이 되거나 자살 충동이 커지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정반대예요. 제가 산증인이죠. 인간의 죽음 전후로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에 대 해 알면 알수록, 왜 자살하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깨달아 더욱 밀도 있고 충만 하게 살아가게 되거든요. '내 목숨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웬 참견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그런 말을 하기가 어려워져요. 우리는 모두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고, 모르고 지나치는 존재들조차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요. 가족과 친구는 더 말할 나위 없죠. 우리는 모두 이번 생에서 다뤄야 할 저마다의 과제를 갖고 태어나는데, 자살을 한다는 건 그 과제를 너무 빨리 내팽개쳐버리는 거예요. 도망친다고 그 과제에서 벗어나게 될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 과제를 잘 다루게 될 때까지 형태만 바뀐 채 계속 마주 치게 돼요.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살면서도 그런 걸 경험하지 않나요? 해결하지 못 한 채 외면하거나 회피했던 문제가 사라지지 않고 어느 순간 눈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경험을요(p. 19). 자살은 남겨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고, 이 상처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잘 아물지 않아요. 한 사람이 자살하면 주위 사람 다섯 명 내지 열 명이 자살 충동을 갖게 된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마흔 명 가까이 자살한다고 하니, 매일 200명 내지 400명 넘는 사람들이 지인의 자살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거죠.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와요. 서둘러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고로, 질병으로, 노화로 언젠가 다 죽어요. 그러니 그 전까지는, 자신의 삶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까지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선택만은 하지 않아야 해요. 저는 4년 전 침윤성 방광암 진단을 받고, 방광 전체와 그 옆에 인접해 있는 전립선까지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았어요. 소장 60센티미터를 잘라내고 만들어 넣은 인공방광에는 괄약근이 없어서 자율적인 배뇨 조절이 안 돼요. 일정한 간격으로 화장실에 가야 해서 밤잠도 세 시간씩 끊어서 자요. 그러나 이것 때문에 비관하지는 않아요. 30년 전만 해도 방광 절제 수술을 받고 나면 비닐 소변주머니를 밖에서 연결해 부착하고 지내야 했는데, 수술법이 향상되면서 삶의 질이 높아졌어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 감사할 일이 참 많아요(p. 23). 자살하는 순간 후회하지만 자살을 시도했는데 살아난 사람들은 이후 신체적인 고통을 겪더라도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격스러워하며 살아간다고 해요.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이 더 이상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해요. 2013년 EBS 「다큐프라임」 '33분마다 떠나는 사람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에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교(금문교)에서 투신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2퍼센트의 사람들을 다뤘어요. 미국 플로리다대학의 토머스 조이너 교수가 그 사람들과 면담한 결과, 투신해서 수면에 떨어지기까지 4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했다고 해요. "뛰어내린 순간 나는 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 만 빼고"(p. 38). "뛰어내리고 처음 떠오른 생각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였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떨어진 곳이 강이였으니 그나마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고, 고층 빌딩이었다면 떨어지는 순간 후회한다고 해도 돌이키기 힘들죠. 경북 영주에 사는 한 중학생의 경우가 바로 그랬어요. 같은 반 학생들의 괴롭힘을 이기지 못해, 아파트 20층 계단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창문틀을 붙잡고 도와달라고 요청했어요. 때마침 20층에 사는 주민이 이 소리를 듣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지만, 이 학생은 팔에 힘이 빠져 결국 추락했다고해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에요. 이처럼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는 살고 싶은 의지가 강하게 있는 것 같아요. 다음에 소개하는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우울증을 앓고 있던 한 여성이 오피스텔에서 자살하려고 목을 맸는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어요. 잠긴 문을 따고 들어가보니 이 여성은 이미 사망한 것처럼 보였어요. 호흡도 없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해 있었죠. 그런데 출동한 경찰관 중 한 명이 혹시 모르니 응급조치를 해보자며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얼마 뒤 이 여성은 "컥!? 하는 소리와 함께 숨을 쉬며 살아났어요. 그리(p. 39)고 살아나서 한 말이, 경찰이 들어왔을 때 자신은 여전히 의식이 있었는데 다른 경찰관이 "시신에 손대지 말고 현장을 보존하자"고 했을 때 속상했다는 거였어요(p. 40). 죽는 것 외에는 거기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상황에 있다면, 가족이나 상담사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찾으세요. 익숙한 곳을 벗어나는 걸 겁내지 마세요. 죽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지금 그곳보다 더 나쁜 곳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려요. 70년을 살아보니 정말 그렇더라구요(p. 42). 케네스 링과 친절 바이러스 근사체험 연구에서 케네스 링 교수를 빼놓을 수 없죠. 미국 코네티컷대학 심리학과 교수로서 30년 넘게 학생들에게 근사체험에 대해 가르쳤어요.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직접 체험하지 않았는데도 근사 체험자에게 일어나는 삶의 변화를 마찬가지로 겪었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한 거예요. 케네스 링 교수는 근사체험을 '친절 바이러스Benign Virus'라고 불러요. 왜냐하면, 이를 알게 된 사람은 근사체험을 직접 하지 않았어도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체험자와 비슷한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에요. 그런 변화를 저나 주변 사람들한테서도 발견해요. 한 중견기업의 대표는 평소 까칠한 편이었다는데, 죽음학 강의를 들으며 펑펑 울고 난 뒤로는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자상해졌다고 했어요(p.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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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8
  • 【북토크379】 만화가 주는 즐거움과 편안함
    “<을지로 순환선>의 만화가 최호철과 만화평론가 박인하가 함께한 여행기『펜 끝 기행』. 같은 학교 교수로 만나 떠난 제주도 교직원 연수에서 결성된 두 만화쟁이 '펜 끝 듀오'의 여행은 이후 일본, 이탈리아, 스위스, 중국을 거쳐 다시 우리 땅 울릉도와 독도에서 마무리된다. 화가였다가 만화를 선택한 최호철과 글쟁이였다가 만화를 선택한 박인하. 만화에 붙들린 두 사람은 세계를 바라볼 때 만화적으로 본다. 최호철은 여행지마다 그림을 그렸고, 박인하는 최호철의 크로키 북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이 책은 그들이 그렇게 함께한 여행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만화를 좋아했다. 초등학교때부터 대학때까지 만화를 봤다. 지금은 잘 안 보지만 그래도 만화가 좋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이런 책들을 찾아 읽을려고 한다. 일본다운, 너무나 일본다운 규슈 한 일 두 나라는 모두 벚꽃을 좋아하고, 벚꽃 구경 하기를 즐긴다. 그래서 봄이면 어김없이 벚꽃 축제가 벌어지는데, 가만 보면 두 나라 사람들은 각각 다른 벚꽃을 즐긴다. 우리나라에서 즐기는 벚꽃은 봉오리가 오르기 시작해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상태이다. 그래서 벚꽃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일기 예보에 민감하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와 꽃잎이 떨어지면 꽝이 되어버리기 때문. 반면, 일본 사람들은 화려하게 만개한 뒤 흩날리는 벚꽃을 즐긴다. 만개한 벚꽃이 바람에 떨어지는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이웃. 결국 이런 미세한 차이가 모여 문화의 차이가 되고, 문화의 차이는 풍경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일본 미학'이라는 말이 있다. 다양한 논의가 있고, 학자마다 여러 설명을 더하지만 이방인인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일본의 모습 자체가 그대로 일본 미학이다. 가을이 서서히 겨울로 넘어가던 날, 두 만화쟁이는 학생들과 함께 후쿠오카를 찾았다. 후쿠오카를 여행지로 결정한 것은 순전히 우리나라에서 가까웠기 때문. 특별히 우리를 끌어당기는 매력이나 꼭 가야 할 곳을 생 각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기대 없이 찾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활화산 아소 산. 그 웅장한 모습은 대단했다. 아소 산은 해발 1000미터가 넘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를 통틀어 부르는 이름으로 정식 명칭은 아소고다케인데, 다섯 개의 분화구마다 사실 다른 이름, 다카다케(1592미터), 나카다케(1506미터), 에보시 다케(1337미터), 기지마다케(1326미터), 네코다케(1433미터)로 부른다. 버스로 전망대 인근까지 올라가 케이블카를 타면 쉴 새 없이 하얀 연기를 내뿜는 분화구를 볼 수 있다. 은근하게 풍겨나는 유황 냄새, 곳곳에 자리 잡은 대피소, 은근히 겁을 주는 가이드의 말이 어우러지(p. 243)면 현재 진행형 활화산의 다이내믹함을 느낄 수 있다. 멀리 피어오르는 활화산의 기운을 바라보니,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무라이, 흩날리는 벚꽃처럼 배를 가르는 영화의 장면이 떠올랐다. 아소 산을 뒤로하고 찾은 곳은 구마모토 성. 구마모토 성은 약 400년 전, 전국 시대의 무장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를 통치하기 위해 축성한 성이다. 가토 기요마사라고 하면 낯설지만, 한자음 그대로 '가등청정'이라고 읽으면 익숙하다. 바로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했다가 깨진 바로 그 장군. 적의 공격에 대비한 120개의 우물과 조선 성의 장점을 차용한 축조술이 인상적이었지만, 그보다는 거대함 속에 정교하게 쌓아 올린 구마모토 성의 모습 그 자체가 일본, 사무라이를 느낄 수 있는 너무나 일본적인 풍경이었다. 그러나 사실 가장 일본적인 풍경은 활활 불타오르는 아소 산과 전국 시대 의 칼바람이 담겨 있는 구마모토 성이 아니라 그 살벌함과 함께 일상을 살았을 일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지금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소 산 자락 아래에서 평화롭게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바로 그들의 모습이 가장 일본다운, 너무나 일본다운 모습이었다(p. 244). 이 책을 쓰고 그리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자면(p. 276) 최호철 선생과 나는 같은 직장(청강문화산업대학)에 다닌다. 둘 다 만화창작과 선생이다. 사람들을 만나 "학교에서 만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꽤나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마치 황제펭귄처럼. 낯설지는 않으나 내 주변에서 마주칠 때 경험하는 신기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어쨌든 우리는 5월마다 찾아오는 불량 만화 화형식의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지 않은 만화인들이다. 최호철 선생은 화가였다가 만화를 붙들었고, 나는 글쟁이였다가 만화를 붙들었다. 더 정확히 우리 둘은 모두 만화에 붙들린 사람들이다. 만화에 붙들린 사람들은 세계를 바라볼 때 만화적으로 본다. 일단 빈 종이가 있으면 무조건 그리고, 조금이라도 분위기가 추락하면 농담을 날리고 싶다. 전자가 최호철 선생. 후자가 나다. 하지만 둘 다 천성이 숫기가 많은 사람들은 아니다. 은근 부끄럼쟁이들. 그래서 낯선 이들하고 떠들고 노는 것보다, 친한 이들과 수다 떠는 것이 좋다. 그래서인지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선생들은 보통 직장인들과 달리 사우나 아줌마 분위기를 풍긴다. 그 때문에 여행에 대한 기억이 꽤 많다. 최호철 선생은 여행지마다 그림을 그렸고, 난 최호철 선생의 화집을 뒤적이며 농담을 던진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월간 무가지 〈백도씨〉를 기획할 때였다. "우리 여행 간 거 내가 글 쓰고, 선생님이 그림 그려보세요." "만화? 나 마감 잘 못하는 거 알잖아?" 일단, 방어막을 친다. 역시, 공력이 대단하다. "그냥 한 쪽짜리 그림을 그리자고요. 한 쪽짜리 만화, 그게 최호철 스타일이 잖아!" 나도 다시 공격한다. 왠지 느낌이 낚은 것 같다(p. 277).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담는 게 최호철 스타일 아닌가?" 낚았다. 파닥파닥! 그렇게 해서 〈백도씨〉에 '두 만화쟁이의 여행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내가 낚은 죄로 글을 썼고, 최호철 선생의 애간장 다 태우는 마감에 동참했다. 몇 번 빼먹은 적도 있지만, 한 스무 번쯤 마감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우리가 한때 사슴굴이라고 불렀던 최호철 선생의 개성 넘치는 연구실 소파에 앉아 뒹굴면서 이야기를 하다 한번 책으로 묶어보자는 생각이 번득였다. 최호철 선생은 낙서라고 하지만, 그냥 묵히기 아까운 그림이 많은 그의 크로키 북이 생각났다. "〈백도씨〉에 연재한 만화하고, 그와 연관된 크로키를 모아서 책으로 묶어봅 시다." "재미있을까?" "재미없으면 사람들이 만날 선생님 크로키 북 달라고 해서 보겠어요." "너무 성의 없게 그렸잖아." "성의 있게 그리면 마감 못하잖아요." "..." "또 그냥 그 시간에, 여행지에서 그린 그림이 난 좋던데." "그럽시다." 그렇게 시작된 작업이다. 그림을 모으고, 글을 고쳐 썼다. 최대한 여행지의 느낌을 사람들이 느껴주길 원했다. 여행에는 휴식과 수다가 공존한다. 혼자 가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난 함께 수다 떨 수 있는 사람과 가는 여행이 좋다. 서로 말도 안 되는 지식을 공유하고, 느낌을 나누는 여(p. 278)행이 좋다. 이 만화는 그런 여행의 기록이다. 글과 함께 그림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최호철의 그림은 읽히는 그림이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크로키 북에 그린 사람이 아주 구체적인 당신의 모습이기도 하고, 당신이 바라본 그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림을 읽으며 우리의 여행에 동행하면 어떨까? 같이 수다 떨고, 맛있는 것도 먹고, 바보 같은 개그도 하면서 말이다. 남자들이라면 더더욱, 수다가 주는 세계 평화를 함께 누려보자(p.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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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8
  • 【북토크378】 짐승보다 못한 인간의 잔혹함
    〈무시무시한 처형대 세계사〉는 야욕과 애증, 배반과 음모로 뒤엉킨 잔혹한 처형의 역사를 들려주는 책이다.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를 통해 그림 동화 신드롬을 일으킨 작가 기류 미사오가 이번에는 무시무시한 역사 속 처형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근대 유럽까지 '인간'이라는 존재에 의해 자행된 처참하고 잔혹한 처형의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하였다. 이 책은 역사 속 처형장을 통해 인간 내면세계에 깃들어 있는 광기의 역사를 살펴본다. 저자는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물음을 던지면서, 다양한 이유 때문에 엄청난 피를 흘려 왔던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있다. 그리고 황제들을 비롯한 수많은 권력자들과 신의 이름을 내건 종교인들이 역사 속에서 저지른 처형의 만행과 광기의 현장을 낱낱이 고발한다-교보문고. 흥미롭게 읽었는데 품절됐다. 이 저자의 책들이 재미있어 열심히 읽고 있는데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도 대출했다. 이처럼 맹수를 이용한 처형 방법은 그리스도교가 보급되기 훨씬 전에 시작되어 5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죄수의 팔다리를 묶어 자유를 구속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죄수의 몸을 묶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간단한 무기도 사용하게 함으로써 관중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안겨 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목숨을 잃기 전에 맹수를 한두 마리쯤 해치우는 강한 죄수도 나타났다. 어쨌든 죄수와 맹수의 싸움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으로 관중들에게 꽤 인기를 끌었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서 죄수의 처형은 일종의 연극으로 연출되었다. 예를 들면, 죄수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로 분장시켜 쇠사슬로 바위에 묶은 다음 대머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게 한다거나, 헤라클레스로 분장한 죄수가 곤봉을 들고 나와 황소와 싸우다가 클라이맥스에서 황소가 죄수를 허공으로 던져 버리는 식이었다. 그리고 여자 죄수가 생겨나면서 연극 마지막 부분에 음탕함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곰이나 당나귀의 습격을 받는다는 설정도 선보였다고 한다(p. 23). 콜로세움에서 펼쳐진 다양한 잔혹극 역대 황제들의 입장에서 볼 때, 검투사 경기는 범죄자나 반역자의 잔혹한 죽음을 선보이는 것으로써 황제의 권력을 뒤흔들려 하는 자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민들에게 확실히 보여 주는 기회이기도 했다. 로마 콜로세움 안에는 지금도 십자가가 서 있다. 일찍이 이곳에서 수많은 잔혹한 방법으로 목숨을 잃은 그리스도교도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타르에 적신 셔츠를 입은 채 콜로세움으로 끌려가 화형에 처해졌다. 또는, 팔다리가 묶인 채 커다란 솥 안에서 끓는 기름에 튀겨지거나 끓는 물에 삶아지기도 했다. 성 로렌스(Sento Rorense)는 석쇠 위에서 불에 구워졌고, 성 포류카르프는 화형대 기둥에 묶인 채 불에 타 죽었다. 성 폰시아노(Sento Pontianus)는 쓰러질 때까지 벌겋게 달구어진 석쇠 위를 걸어야 했고, 성 아르테 미오(Artemius)는 맷돌에 몸이 으깨져 죽었다. 손발이 잘려 나가거나 내 장이 몸 밖으로 드러난 채 매달린 자들도 있었다. 또, 살가죽이 벗겨진 채 유리 조각 위에서 끌려 다닌 자도 있었다. 콜로세움에서 남녀 수십 명이 한꺼번에 기둥에 묶여 처형된 적도 있는데, 그 광경이 마치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숲처럼 보였다고도 한다. 관중들은 그 중에서 누가 가장 먼저 숨이 끊어질지를 놓고 내기를 하기도 했다(p. 24). 당연히, 역대 황제들도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잔혹한 피의 향연을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으로 여겼다. 예를 들어 카이사르(Caesar)는 기원 전 65년 안찰관이었을 때 검투사들을 320쌍이나 동원해 성대한 검투사 경기를 개최했으며, 아우구스투스(Augusus) 황제도 검투사를 1 만 명 정도 동원해 검투사 경기를 여덟 차례, 맹수 3,500마리를 이용해 맹수 사냥을 스물여섯 차례나 개최했다. 클라우디우스 1세(Claudius I) 황제 시대에는 한 경기장에서 검투사 500쌍이 동시에 겨루는 일도 흔했다. 잔혹한 취미가 있었던 클라우디우스 1세는 목이 잘린 검투사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일부러 죽은 자의 투구를 벗기게 했다고 한다. 칼리굴라 황제 시대의 검투사 경기는 잔혹한 취미를 끝없이 만족시키기 위한 절호의 수단이었다. 맹수 사냥에서는 범죄자를 짐승의 먹이로 던져 주었고, 검투사 경기에 출전해야 한다는 선고를 받은 죄수가 필사적으로 자비를 호소하면 그 혀를 잡아 빼라고 명령한 다음에 온몸의 상처가 곪아 악취를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채찍으로 때리게 했다. 그리스도교도 박해로 유명한 폭군 네로도 30일에 걸쳐 잇따라 경기를 열었다. 그는 맹수를 풀어놓아 어린이를 포함한 5,000명을 물어 죽이게 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한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황제는 로마 제국 안에 존재하는 난쟁이들을 모조리 모아 검투사 집단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미녀들로 이루어진 검투사 집단도 만들게 해서 경기장에서 난쟁이와 미녀를 싸우게 한 뒤 그것을 최고의 유흥으로 삼았다고 한다. 코모두스(p. 25)(Comedits) 황제에 이르러서는 아예 정치를 총애하는 신하에게 맡겨 버리고 검투사 경기에만 열중, 자기 자신도 검투사로 자주 경기에 출전했다. 그런 그가 음모를 품은 검투사 한 명에게 침실에서 암살당한 것은 운명의 장난이었을까?(p. 26). 사실은 이랬다. 불길이 번지는 상황에서 수상쩍은 남자 몇 명이 술에 취한 척 비틀거리면서 '어떤 자는 이쪽, 어떤 자는 저쪽' 하는 식으로 햇불을 이용해 불을 붙이는 모습이 목격되었던 것이다. 로마 시대의 전기 작가인 수에토니우스(Gaius Suetonius Tranquillus)에 따르면, 이 수상쩍은 무리가 네로의 노예들이었기 때문에 집정관도 제지할 수 없었다고 한다. 폭력의 피해자 어쨌든, '네로가 방화를 명령했다'라는 소문이 흘러나오면서 민중들 사이에서는 당장에라도 폭동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자 네로는 소문을 불식시키려고 방화범을 만들어 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제물이 된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도들이었다. 당시 그리스도교도들은 이단시되어 마법을 부리고 유아를 살해하고 인육을 먹는다는 식으로 중상모략을 당하고 있었다. 아무리 엄격한 금지 정책을 펴도 계속 증가하는 그리스도교도 때문에 고민하고 있던 터라 네로는 이번 화재를 구실로 그들을 철저하게 탄압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먼저 신앙을 고백한 자들이 심문을 당했고, 이어서 그들의 고백을 토(p. 67)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방화죄 혐의를 받았다. 순교자들 중에는 사도 바울로와 12사도인 베드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놀림감이 되었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당했다. 어떤 이는 짐승의 가죽을 덮어쓴 채 개 떼에게 내던져져 물려 죽었고, 어떤 이는 원형 경기장에 맹수의 먹이로 던져지기도 했다. 또 어떤 이는 온몸에 타르가 발라진 상태에서 기둥에 묶여 날이 어두워진 뒤 등불 대신 불을 밝히게끔 했다. 네로는 처형 장면을 구경하라며 바티카누스 (vaticanus) 왕실 정원을 제공해 전차 경기까지 개최하면서 흥을 돋우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이단자들을 처형한다는 명분도 네로의 인기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특히 귀족들이 불만을 품은 것은 노예에서 해방된 자들이 점차 제국의 요직을 독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었다. 화재 뒤처리 등으로 인해 그 해의 국고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되었고 그 결과 재산 몰수라는 극단적 상황에 의지할 수밖 에 없었다. 때문에 다시 막을 연 반역죄 재판의 판결은 모두 유형이나 사형이었다(p. 68). 14~17세기 유럽에서는 마녀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체포해 가혹한 고문을 한 뒤 화형에 처했다. 이러한 마녀 재판의 폭풍은 약 300년 동안 이어지면서 유럽 전역에서 맹위를 떨쳤다. 그 기간 동안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수십만에 이른다는 설도 있고, 수백만이라는 설도 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마녀로 지목되어 화형을 당한 희생자에 대한 기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프랑스 로렌(Lorraine)에서 1576~1606년 동안 2000~3000명. 보르도에서 1577년에만 400명. • 독일 트리에르(Trier)에서 1587~1593년 동안 368명. 뷔르츠부르(p. 121)크에서 1623~1631년 사이에 900명. 밤베르크에서 1623~1633 년 사이에 600명. 이것만 보아도 마녀 재판의 희생자가 엄청난 숫자라는 사실을 짐작 할 수 있다. 유럽 전체에서는 15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약 30만 명(900만 명이라는 설도 있다)이 화형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p. 122). 마녀를 불태우는 검은 연기가 유럽 하늘을 끊임없이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야기다. 당시, 불안감을 해소하는 돌파구로 선택된 것이 '마녀'였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불행과 해악을 마녀 탓으로 돌려 잔혹하게 처형했다. 마녀 사냥이 무서운 것은 증거 없이 소문과 풍문만으로도 마녀로 몰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마녀 재판이 성행했던 원인으로는 첫째, 당시의 사회 불안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유럽인들은 예전에는 겪지 못했던 혹독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유럽 인구의 30퍼센트 정도를 앗아간 페스트의 유행, 극단적인 인플레이션, 종교 개혁 운동 등, 격동의 상황에서 민중들의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었다. 답답하기만 한 그런 현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창구로 선택된 것이 바로 '마녀'였다. 마녀는 마력을 써서 날씨를 나쁘게 만들고, 밭농사의 수학물을 줄이고, 태아를 유산시키고, 남자를 성불구로 만들고, 갓난아기를 잡아먹고, 악마에게 살아 있는 제물을 바친다..... 이런 식으로 세상의 모든 불행과 해악을 마녀 탓으로 돌렸다. 유럽에 휘몰아친 종교 개혁 운동에 대해 로마 교황은 수도회를 결성해 이단 탄압에 나섰다. 마녀 재판의 전신은 13세기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가 탄생시켰다. 이른바 '이단 심문' 제도다. 이단 심문관은 교황의 보호 아래 사교나 관헌을 능가하는 권한을 가지고 오로지 그리스도교 국가 전역에서 이단을 박멸하는 사명을 맡았다(p. 123). 그리고 잔혹하기로 유명했던 요한 22세가 내린 1318년 2월 27일 교서에서 '마녀'의 비참한 운명이 결정되었다. 프랑스 고위 성직자 앞으로 보낸 이 교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마녀 재판을 시작하고 지속하여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완전한 권한을 부여한다.' 이 마녀 재판 해금 명령에 박차를 가하듯, 교황 요한 22세는 1323년, 1326년, 1327년, 1330년, 1331년에 계속 마녀 재판 강화 명령을 발표 했다. 이 강화 명령에 따라 이단 심문관의 마녀 사냥이 급격하게 기세를 떨치기 시작했다(p. 124). 마녀 재판 그 자체도, 심문, 자백의 공술(고문을 통한 자백도 포함해서), 단죄 선고, 그리고 처형(대부분이 화형)이라는 식으로 공식화되어 있었다. 중요한 것은 피고를 한시라도 빨리 죽여 그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었다. 마녀에게서 몰수한 재산은 모두 교회 소유가 되었고, 마녀 재판에 들어가는 비용 전부를 여기에서 조달했다. 간수의 식대, 처형 담당자의 술값, 교살을 할 때 들어가는 밧줄 대금, 화형을 할 때 쓰는 장작과 기름값 등, 모든 비용을 여기에서 인출해 썼던 것이다(p. 165). 기요틴에 광란하는 사람들 로베스피에르를 처형하는 것으로 공포 정치가 막을 내리자, 국내의 무거운 공기는 사라지고 단번에 향락적인 분위기가 퍼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장소에 모여 오직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피비린내 나는 과거를 잊고 희망 없는 미래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 거리 도처에서 무도회가 열렸는데, 특히 인기를 모았던 것은 회원이 한정되어 있는 '희생자들의 무도회'였다. 가까운 친척이 기요틴에 처형을 당한 사람들만 이 모임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 무도회에 참가하려고 일부러 큰돈을 주고 근친자가 기요틴에 처형되었다는 증명서를 위조하는 사람들도 속출했다고 한다. 모임에서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고 훤히 드러난 목 주위에 칼자국을 모방한 빨간 리본을 묶었다. 남자들도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마찬가지로 빨간 리본을 목에 둘렀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들 입장에서 보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현실을 받아들여 슬픔을 이겨내고 살아가려면 이런 식으로 불행을 패러디하는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p. 298). 마지막 공개 처형 프랑스에서 기요틴을 이용한 처형은 오랜 세월 동안 일반에게 공개 되었다. 그때마다 형장에는 프랑스 각지의 수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입장에서 볼 때 처형은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다. 1889년의 파리 만국 박람회 때에는 기요틴에 처형을 당한 사람이, 당시에 신축된 에펠탑보다 더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피와 잔혹함에 대한 인간의 열광은 그 뿌리가 무척 강한 듯싶다.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기요틴 공개 처형은 1939년 와이트만이라는 살 인범의 처형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축제 소동이 벌어지자 정부는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다고 한다. 처형 전날 밤, 형장이 될 베르사유 감옥 앞 광장에는 엄청난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기요틴 처형을 한 번이라도 직접 구경하려고 나무와 가로등에 매달린 사람들, 건물 창문에 바짝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사람... 사람들은 마치 축제라도 즐기는 듯한 기분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면서 소란스럽게 전야제를 보냈다. 가끔씩 말 잘하는 사람이 농담을 던지면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 소리가 감방 안에 있는 사형수의 귀에도 들렸다니 정말 잔혹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자 정부도 더 이상은 간과할 수 없어 그 뒤로는 기요틴 공개 처형을 금지했다. 이후의 처형은 각각의 감옥이 위치한 안마당에서 이루어(p. 300)졌으며, 처형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관료 아홉 명뿐이었다. 잔혹함의 상징인 기요틴 처형대는 감옥의 담장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두 번 다시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다(p.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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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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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295】 흥미로운 역사 이면의 인간 군상
    요즘 조형근 작가의 책을 열심히 찾아 읽고 있다. 유익하고 재미있다. 이 책은 역사 이면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흥미로웠다. 2014년 9월 7일, 한때 리샹란이었던 야마구치 요시코가 죽었다. 그해 일본 정부는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인하며 외무성 홈페이지에서 이 호소문마저 삭제했다. '리샹란을 지키는 모임' 중 한 명이던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주 아베 총리가 벌인 일이다. 일본의 우경화를 이끈 아베는 2022년, 연설 중 암살됐다. 아베를 향해 사죄를 촉구하던 사카모토 류이치는 2023년 3월에 세상을 떠났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2024년 6월 14일 현재, 한국 정부에 등록된 240명 중 232명이 세상을 떠나고 여덟 명만이 남았다. 2023년 4월, 한국의 대통령 윤석열은 《워싱턴 포스트》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p. 30)일 수 없습니다." 역사적 책임에 관한 오랜 고민들이 깃털처럼 가벼운 그 말들 속에서 증발했다. 리샹란, 아니 야마구치 요시코와 그의 동료 들은 "아무리 사과해도 아물 수 없는 상처"라며 죄를 고백했다. 그러고서도 국가의 책임을 명시하지 않는 편법을 추진했다고 비판받았다. 지금은 한국 대통령이 나서서 일본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다며 손을 젓고 있다. 역사의 전진이나 후퇴와 같은 거칠고 자의적인 표현은 가급적 삼가려고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써야만 한다. 역사가 후퇴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p.31). 두 편의 〈너의 이름은〉이 똑같다는 말은 아니다.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지고 혜성이 떨어지는 공통점이 있다고 해도 둘의 의미가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2016년의 〈너의 이름은〉은 침략 을 은폐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점에서 두 편의 〈너의 이름은〉은 여전히 닮았다. 분명한 원인과 책임이 있는 인간의 비극을 천재지변으로 묘사하는 것, 직면해야 할 정치사회적 문제를 개인들 간의 연결이라는 방식으로 우회하는 건 동형적이다. 한국 사회는 과연 얼마나 다를까?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생명과 안전을 경시하는 파렴치한 세상을 변혁하기 위한 고통을 우리는 얼마나 감내해왔을까? 착한 마음을 넘어 구조의(p. 44) 문제들을 얼마나 직시했을까?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어느 조사관이 쓴 표현처럼 "그날 지켜본 것은 배 한 척의 침몰이 아니라, 사회의 참담한 실패였다". 그렇다면 사회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했다. 거기에 연루된 우리 자신의 고통스러운 변화도 필요했다. 초기에는 이런 문제의식이 선명하게 공유됐다. 2014년 특별법 제정 운동 당시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한 나라'라 는 대표 슬로건이 바로 그런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진행 과정은 달랐다. 처벌은 선원과 출동한 해경, 해운 회사, 해운업계 등 직접 관련자와 하급자들에게 집중됐다. 구조 책임을 진 해경 지휘부와 정부 당국자들에 대한 조사와 책임 규명은 회피됐다. 그렇게 되자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와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 사회적사특별조사위원회를 거 치면서 논의는 책임을 회피한 나쁜 개인을 찾아내는 데 집중됐다. 사과를 보관한 방식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썩은 사과' 한 알만 골라내면 된다는 '썩은 사과' 프레임이 논의를 지배했다. 안전 사회를 위한 구조적 개혁, 우리 자신을 포함한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이라는 과제는 계속 미뤄졌다. 슬픔에 공감한다는 선한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도, 희생자들과 연결되는 방식은 비극이 남긴 과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는 데 있다. 3•11과 4•16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질문이다(p. 45). 조선인 포로감시원은 일제의 전쟁 수행에 협력한 가해자였다. 이런 사례들을 근거로 한국도 일본과 같은 전범국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현실적 함의는 일본에 동조한 같은 전범국이니 일본에 대해 전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쟁 책임 부인에 동조하는 논리 중 하나일 뿐이다. 다른 한편에는 그들은 강제로 끌려간 것이니 그저 순전한 피해자일 뿐이 라는 생각이 있다. 구조적 악이 있다면 그에 동조한 개인의 윤리적 책임은 간단히 면제될 수 있을까? 이학래가 수기에서 고백(p. 62)하듯 결코 그렇지 않다. 일본과 동일시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져야 할 몫의 역사적 책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때에만 윤리적 주체가 될 수 있다(p. 63). 윤치호(1865~1945)도 미국 유학 중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였다. 인종차별을 겪고 오히려 '힘이 곧 정의'라는 사회진화론의 주장을 수용하게 된다. 물론 윤치호는 유길준보다는 내면이 복잡한 인물이었다. 특히 기독교 신앙과 사회진화론 사이의 부조화로 고민했다. 1892년 어느 날의 일기에서 그는 이렇게 고뇌한다. "나의 신앙이나 믿음의 가장 큰 방해물은 인종 간의 불평등 과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여러 해악들이다. 왜 하나님께서 코카 시안과 몽골리안, 아프리카인 등에게 평등한 기회와 동등한 심신의 능력을 부여하시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고 자 하심에도 못 하셨을까? 그렇다면 그의 지혜는 어떤 것인가?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심에도 일부러 하지 않으셨는가? 그렇다면 그의 사랑은 어떤 것인가? 오호, 수수께끼로다!"(p. 95). 약육강식의 질서를 승인하게 되면 약자가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벌이는 투쟁이 무의미해진다. 강자는 지배할만해서 지배하고, 약자는 지배당할만해서 지배당한다.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말라"는 윤치호의 말은 유명하다. 1919년 3월 2일의 일기에서 그는 3•1운동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 어리석은 소요는 무단통치를 연장시킬 뿐이다. 만약에 거리를 누비며 만세를 외쳐서 독립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남에게 종속된 국가나 민족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물리적 진압이라는 당장의 결과만 보면 이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3•1운동이 조 선인들의 마음속에 얼마나 깊은 염원을 남겨놓았는지, 일제가 3•1운동으로 얼마나 궁지에 몰렸는지, 한국인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성찰하지 못하는 단견이다. 피 지배자가 이런 자학적인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다면 지배자로서는 최상이었다(p. 96). 베트남전쟁은 20세기의 가장 부도덕한 전쟁 중 하나였다. 크리스처럼 잠시 베트남에 온 미군의 시각으로는 이 전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베트남전쟁은 30여 년에 걸친 두 차례의 인도차이나전쟁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볼 때만 그 모습이 온전히 드러난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인도차이나 (오늘날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에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일본군이 진주한다. 나치의 괴뢰 비시프랑스 정부의 지시를 받은 프랑스군은 전투도 없이 일본군의 온순한 포로가 됐다. 종전 후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베트남 남부에는 영국군이, 북부에는 중국군이 진주한다. 영국군은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한 다음 프랑스군에게 다시 무기를 쥐여준다. 프랑스는 베트남을 다시 식민지로 지배하겠다고 선언한다. 일본군과 싸우면서 베트남 북부 상당 지역을 스스로 해방하고 베트남민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던 호찌민(1890~1969) 등 독립 운동 세력과 베트남인들의 반발은 당연했다. 호찌민은 그래도 프랑스와의 전쟁만은 피하고 싶었다. 파리 해방 전투의 영웅이자 베트남 주둔 프랑스군 사령관이던 르클레르 장군과 협상하여 당분간 독립 대신 자치에 만족한다는 합의에 이른다. 피를 피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정식 협정을 맺기 위해 파리로 향하지만, 본국 정부의 대답은 자치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피를 뿌리기로 결심한 쪽은 프랑스였다. 협상 결렬 후 프랑스가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이 이렇게 시작됐다. 당시 북베트남은 공산당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독(p. 141)립 운동 세력의 연합정권하에 있었다. 이 전쟁의 본질이 제국주의 식민 지배를 연장하려는 더러운 전쟁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유다. 이 전쟁에서 북베트남은 1954년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던 프랑스에게 승리를 거뒀다. 기적 같은 승리였다. 중립국 등 관련 9개국이 참가한 제네바협정에서 2년 내 자유 총선거거 실시와 단일 정부 수립이 합의됐다. 막상 당사자인 미국과 남베트남 정부는 합의 이행을 거부했다. 질게 뻔한 선거를 치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미국은 자신들이 내세웠던 꼭두각시 황제 바오다이를 내쫓고 좀 더 유능해 보이던 응오딘 지엠의 독재 정권을 수립했다. 지엠 정권은 비판자들에 대해 강경 탄압으로 일관했다. 정권은 극도로 부패했고, 지배층은 나라를 사익을 위한 사기업으로 여겼다. 나라를 지킬 마음 따위는 전혀 없었다.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때 프랑스를 앞세우며 전비의 80퍼센트를 댔던 미국은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에는 아예 직접 나섰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쓴 전비만큼을 퍼부었다. 그러고도 결국 포기하고 철수하기에 이른다. 사실상 패배였다. 이 쉬운 전쟁에서 미국은 왜 졌을까? 그들이 지켜주겠다던 남베트남인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베트남 국민 절대다수가 전쟁의 명분에 수긍하지 않았다. 남베트남 정권이 정통성도 없고 부패한 것도 중요한 이유였지만, 그보다 더 근본 적인 이유가 있었다. 남베트남은 농민이 인구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농업 사회였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기득권이던 소수 대지주가 토지를 장악하고, 절대다수 농민은 고율의 소작료(p. 142)로 고통받고 있었다. 농지개혁이 지상 과제였지만 바오다이 정권도, 지엠 정권도 계속 거부했다. 1956년, 지엠 정권은 농지 소 유 불평등이 가장 극심하던 곡창 메콩강 삼각주 지역에서 마지 못해 농지개혁을 시도했다. 농촌 인구의 0.025퍼센트에 불과한 대지주 2500명이 쌀 생산 농지의 40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는 곳이었다. 개혁안은 농지 소유 상한선을 100헥타르(30만 2500 평)로 정했다. 남베트남 농지개혁 몇 년 전에 실행된 남한, 일본, 대만 농지개혁에서의 상한선인 3정보(9000평)의 33배가 넘는 크기였다. 지주도 소작농도 사라지고 자기 땅 가진 소농들의 평등한 나라가 된 이 동아시아 3국은 이후 수십 년 동안 경제 기적을 이뤘다. 반면 응오 딘 지엠 정권의 농지개혁안은 대지주 체제를 온존하겠다는 방안이니 개혁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극소수 대지주의 이익만 옹호하는 부패한 정부를 농민이 지지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의 이익을 보위하자는 전쟁을 지지할 이유도 없었다(p. 143). 워싱턴 D.C.의 베트남 참전용사 추모비 '검은 벽'에는 전몰자 5만 800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베트남전쟁에 종군한 영(p. 144)국 사진작가 필립 존스 그리피스는 통계 수치를 계산해본다. "미국 전물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워싱턴 D.C의 주모비는 약 137미터다. 같은 간격으로 베트남 전몰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추모비를 만든다면 아마 15킬로미터에 이를 것이다." 베트남 사람 300만 명이 그 전쟁에서 죽었다. 〈미스 사이공〉도, 《지옥의 묵시록》도, 그리고 오바마도 침묵하는 사실이다. 베트남전쟁으로 상처 입은 것은 미국만이 아니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연인원 32만 5000명의 한국군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그중 5000여 명이 전사하고, 1만 2000여 명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받았다. 미국 다음으로 전쟁에 깊이 개입한 나라가 한국이다. 왜 제국주의 침략 전쟁에 한국이 연루되어야 했는지 그때도, 지금도 제대로 묻기 어렵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베트남전쟁 참전 군인에게 경의를 표하자 베트남 외교부가 항의를 했다. 전몰자를 추념하는 것은 국민국가의 당연한 권리라며 한국 여론이 들끓었다.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를 하거나 공물을 바치면 한국 정부와 여론은 단호하게 비판한다. 그에 대한 일본의 대응 논리와 똑같은 논리를 한국 정부와 사람들이 내세웠다. 일본에게 이런 것까지 배웠다. 그 전쟁이 어떤 전쟁이었는지는 한사코 외면하면서. 참전으로 고통받은 이들을 연민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힘들고 가난하던 시절, 먹고 살려고, 가족을 도우려고 많은 젊은이들이 그 전쟁에 나섰고 피를 흘렸다. 침략 전쟁이라는 걸 알고 간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사정을 몰랐다는 말이 변명이 될 수 있을까? 그들에 대한 연민으로 침략 전쟁을 정당화해도 좋을까? 그 무렵 한국의 인터넷 여론은 한술 더 떴다. "키워줬더(p. 145)니 베트남 따위가 건방지다"는 식의 혐오 댓글이 난무했다. 진보적이라는 커뮤니티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타자에게 입힌 상처를 기억할 때만, 우리가 입은 상처도 보듬을 수 있다. 그 균형을 잡기 전까지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p. 146). 과학은 세상을 구원했지만, 막상 세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제국들의 팽창 욕망은 비료 따위로 채워지지 않았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왕국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청년에게 암살당한다. 그리고 사건은 마치 나비의 날갯짓처럼 역사상 최대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하버는 이 전쟁에 열광했다. 이후 염소가스 제조법 발명으로 화학전의 길을 열었다. 1915년 벨기에 전선에서 치러진 제2차 이프르 전투에서 최초의 독가스 공격이 실행됐고, 6만 7000명 이 상이 사망했다(p. 156). 하버의 부인 클라라 임머바르는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독일 최초의 여성 화학박사였다. 여권운동에도 참가할 정도로 여성 인권에도 열정적이었다. 화학자 동료인 하버와의 결혼으로 화학자로서의 경력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하버는 마리 퀴리를 전폭 지원한 피에르 퀴리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결코 앞치마를 벗을 틈이 없었다" 하버와 연구서 《기체반응의 열역학》을 공동 집필했지만, 사람들은 하버가 혼자 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버의 독가스 개발에 대해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는 규율을 타락시키는 야만성"의 상징이라며 반대했다. 제2차 이프르전투의 참상이 전해지고, 하버가 다시 독가스 공격을 위해 전선으로 떠나려던 날, 클라라 임머바르는 그의 권총으로 자살했다. 하버는 어린 아들에게 장례를 맡기고 전선으로 떠났다. 1991년 국제핵전 쟁예방의사연맹 독일지부는 과학의 악용에 죽음으로 항거한 그녀를 기리기 위해 '클라라 임머바르상'을 제정했다. 독가스 개발로 비난받게 되자 하버는 항변했다. "평화의 시기에 과학자는 세계에 속하지만, 전쟁의 시기에 그는 조국에 속한다." 가정 파괴를 무릅쓸 정도로 독일에 대한 애국심이 넘쳤지만,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망명을 떠나야 했다.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이듬해 스위스에서 죽었다. 하버가 개발진으로 참여해서 만든 살충제 치클론 B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에 널리 쓰였다. 즉사시키지 않고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게 만드는 참혹한 독가스였다. 그가 이 참극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의 장남 헤르만은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1946년에 미국에서 자살했다. 헤(p. 157)르만의 딸 클레어는 미국에서 화학자로 성장했다. 할아버지가 만든 염소가스의 해독제를 개발하는 데 전념하던 중 연구 예산이 핵폭탄 개발에 우선 투입된다는 소식을 듣고 목숨을 끊었다. 1949년이었다. 과학이 세상을 구원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세상을 구원하겠다던 어떤 과학자를 구원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p. 158). 나치 친위대였던 '전후 독일의 양심' 그리고 이제 귄터 그라스Gunter Grass(1927~2015)의 양파 껍질을 벗길 차례가 왔다. 2006년 8월 12일, 유소년 시절을 담은 회고록 《양파껍질을 벗기며》의 출간을 앞두고 《슈피겔》과 인터뷰를 하던 중 그라스는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이 정규군인 방공부대에서 복무했다고 수십 년간 거짓말을 해왔으며, 실은 친위대로 복무한 자발적 나치였다는 것이다. 그라스의 고백을 들어보자. 그는 열다섯 살 때 자발적으로(p. 261) 잠수함부대에 입대하려 했지만 어리다며 거절당했고, 이듬해에는 제국노동대에 징집됐다. 노동대가 너무 싫어서 열일곱 살이 되던 해인 1944년에 다시 입대를 자원했지만 그곳이 친위대인 줄은 배치받은 다음에야 알았다고 한다. 무장친위대 제10기갑 사단에 입대하여 종전까지 무장친위대원으로 복무했다. 약칭 SS로 불리는 친위대는 정규군과는 달리 징병이 아니라 자원으로 들어가는 특권 집단이었다. 히틀러 광신자들의 집합체였고, 인종 청소 등 반인륜 범죄의 대명사였다. 물론 나치가 붕괴하던 전쟁 말기에는 그런 구별도 희미해져서 친위대 입대가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기도 했다. 친위대인 줄 모르고 자원했다는 그라스의 해명이 거짓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다. 게다가 당시 그는 기껏 열일곱 살이었고, 이른바 '히틀러 청소년단 세대'이기도 했다. 문제는 고백이 너무 늦었다는 것(p. 262)이었다. 오랫동안 다른 이의 고백과 반성을 촉구해온 그가 아니었던가? 위선을 비난하는 여론이 형성되고, 노벨상을 반납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는 복무하는 동안 총알 한 발 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치친위대 복무 당시에는 전혀 거리낌도 죄책감도 없었 다". 문제는 오히려 전쟁이 끝난 다음이었다. . “어떤 범죄행위에도 가담하지 않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시간이 지날수록 죄책감과 수치심에 괴로워했다." 그라스의 뒤늦은 고백은 독일 과거사 극복의 전형적인 패턴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진실에 대한 뒤늦은 자각과 죄책감의 뒤늦은 증폭. 그리고 이어지는 비난과 논란. 한국에서는 과거사에 대해 매우 무책임한 일본과 대비하여 독일의 과거사 처리가 곧잘 칭송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일본과 비교할 때 독일이 낫다고 해도, 독일의 사정이 그리 명쾌했던 것은 아니다. 독일인들이 패배하자마자 곧장 과거와 단절하고 반성했을까? 천만에, 사람들은 어제까지의 그 독일인이었고, 사회 곳곳에는 예전의 나치가 가득했다(p. 263). 적과의 싸움에 목숨 건 혁명가들이 동지가 밀정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의혹과 믿음 사이에서 흔들렸다.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한 독립혁명의 길에서 증오가 자랐다. 미움이 서로를, 스스로를 파괴하기 일쑤였다. 사방이 캄캄한데 어쨌든 나아가야 했다. 싸우고 사랑하고 실패하고 반성하는 수밖에 없었다. 별 없이 걷는 법을 배워야 했다. 상처 입은 채 서로 연루될 수밖에 없었다. 그 걸음을 생각하다 보면 가슴이 서늘해진다(p.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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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5-10-25
  • 【북토크294】 인간의 모든 행위는 통제 되어야 한다
    의사들은 인간의 질병을 고친다는 미명하에 인간을 실험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에는 이것을 문제삼지 않았으나 지금은 불가능하다.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소위 전문가에 대한 무한 신뢰는 그들의 방종을 불러 올 수 있다. 천연두 백신의 숨은 진실 가엾은 꼬마 캐서린이 투베르쿨린 주사를 맞기 100여 년 전,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에 관한 실험을 했다. 제너의 실험 대상은 당시 8 세였던 정원사의 아들 제임스 핍스였다. 에드워드 제너는 제임스의 팔에 낙농장 여인 손에 돋아난 우두 종기에서 뺀 고름을 집어넣었다. 제임스는 천연두를 가볍게 앓았다. 1개월 후, 제너는 이번엔 소년의 팔에 치명적인 천연두 종기 딱지에서 뽑은 고름을 집어넣었다. 천연두 고름이 여러 번 몸에 들어갔지만 소년은 결코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제너는 우두(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 소에서 뽑은 면역 물질-옮긴이)가 천연두에 대한 면역을 생기게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실험 대상자가 된 제임스 핍스가 제너의 실험에 동의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제임스는 아직 어렸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제너를 위해 일했기 때문에 실험을 거부하기가 힘들었으리라 짐작된다. 게다가 1800년대와 1900년대에는 아이나 성인에게 치료를 할 때 오늘날처럼 꼭 동의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치료를 하기 전에 환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의료법은 현대에 만들어졌다. 그때는 실험을 할 때 지켜야 할 지침을 정한 그 어떤 법도 없었다. 의(p. 23)사에게는 치료와 직접 관련이 없어도 질병 치료와 예방을 위한다는 이유로 새로운 치료법을 시도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1865년 프랑스의 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는 의사가 새로운 치료법을 적용하거나 시험할 때 도덕적 의무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또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 말한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 것"을 항상 명심하라고도 했다. 과학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중대한 실험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 베르나르도 죽음을 앞에 둔 여성에게 하는 실험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병이나 죄로 인해 죽을 운명에 놓인 사람들은 따로 분류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 여성 사형수는 베르나르가 시키는 대로 억지로 애벌레를 삼켜야 했다. 이 사형수는 죽은 후 애벌레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해부되었다. 베르나르는 이 여성은 환자가 아니라 실험 대상 일 뿐이라고 해명했다(p. 25). 앨라배마에서는 외과 의사 제임스 매리언 심스가 노예들에게 소름끼치는 실험을 한 것으로 유명했다. 심스는 흑인 유아의 머리뼈를 열어서, 농장 아이들에게 심각한 근육 경련을 일으키던 칼슘 경직(혈액 속 칼슘 농도가 낮아져서 생기는 질병-옮긴이) 치료법을 찾아내려 했다. 심스는 구두 수선 도구로 아이의 머리뼈를 으스러뜨렸고, 출산 도중 뼈의 변형 때문에 칼슘 경직이 일어난다는 잘못된 이론을 주장했다. 심스는 여성 노예들에게 한층 더 소름끼치는 수술을 실시했다. 출산 도중 문제가 생긴 노예들은 소변과 대변을 조절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질과 방광 사이에 구멍이 생겨서 질 안으로 오줌이 새어 들어오는 '방광질샛길'이라는 병 때문이었다. 1840년대에 심스는 이 병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 여성 노예들에게 여러 가지 수술을 실험했다. 아나차라는 노예는 30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심스는 수술을 할 때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는 마취제인 에테르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심스는 마침내 '방광질샛길'의 치료법을 찾았고 연습을 통해 수술법을 완벽하게 익혔다. 이러한 성과를 발판으로 심스는 '미국 산부인과계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었다. 심스는 수많은 훈장을 받았고, 세계 곳곳에 그의 이름을 단 동상이 세워졌다. 대부분의 내과 의사들은 '치료'라는 명목으로 흑인 노예들에게 저지르는 실험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예가 아닌 다른 부류의 사람에게 하는 실험은 옳고 그름에 대해 논쟁했다. 1874년, 30세의 지적 장애인 매리 래퍼티에게 행한 실험은 엄청난 비(p. 29)난을 받았다. 오하이오 주의 의사들은 래퍼티의 두피에 생긴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로버츠 바솔로라는 의사는 래퍼티가 곧 죽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 기회를 이용해 그녀의 뇌에 고통스러운 전극 실험을 하기로 했다. 열려 있던 뇌에 전류가 흐르자 래퍼티는 극심한 고통으로 온몸을 비틀었고 비명을 질렀다. 래퍼티가 죽은 후 부검을 통해 그녀의 뇌가 손상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바솔로는 미국 의사 협회로부터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윤리적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질책을 당했다. 과학 실험으로 환자에게 상처를 입힐 정당한 이유는 없다며 말이다. 바솔로는 래퍼티의 동의를 구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지적 장애인의 동의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p. 30). 수많은 독일인 의사들이 인종 위생학(독일의 우생학-옮긴이)에 끌렸다. 위생학 정책이 독일의 미래 세대를 특정 질병으로부터 막아줄 거라고 기대했다. 범죄 행동 같은 사회적 질병도 예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지휘 아래, 의사들은 독일 사회에 만연한 '전염병'을 '치료'하라는 격려를 받았다. 나치 정부는 인종 위생학을 실행하기 위한 법률과 정책을 만들었다. 그중에는 실명이나 난청, 신체 기형 같은 유전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 아이를 가질 수 없도록 불임 수술을 강요하는 단종법도 있었(p. 50)다. 이 법률에 따라 35만여 명 이상의 독일인이 강제 불임 수술을 받았다. 1939년, 독일 의사들은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정신 질환자와 장애인, 그리고 계속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유대인 또한 열등하다고 생각됐고 '게토'라는 비좁고 더러운 빈민가에 강제로 몰려 살았다. 1941년에 나치는 거리에서 체포한 유대인들을 가스실 안에 몰아넣고 가스를 살포하거나 총으로 쏴서 죽였다. 유대인 수백 만 명이 쌍둥이 자매 에바와 미리암처럼 강제 수용소에 갇혔다. 독일 의사들은 인종 위생학을 실행하기 위한 법률과 정책이 마련되자 강제 수용소에 감금된 사람들에게 온갖 잔혹한 실험을 했다. 유대인을 비롯해 집시, 동성애자, 기형과 장애가 있는 사람들, 러시아인과 폴란드인 같은 슬라브인들도 실험에 동원되었다. 나치 정부에 반대하거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처럼 다른 정치 이념을 가진 사람들 또한 강제 수용소에 갇혔다. 나치가 볼 때, 이 열등한 사람들은 실험 대상으로 아주 적합했다(p. 51). 미국의 우생학 독일 정부는 인종 위생학을 국가 정책으로 정해서 잔인하고 극단적인 수단을 총동원하여 이를 실행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런 생각이 오래전부터 널리 퍼져 있었고, 1883년 영국의 과학자 프랜시스 골턴은 사촌 형인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받아 이런 생각을 가리키는 '우생학'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골턴과 다른 우생학자들은 인간 종족을 개선하기 위해 최고의 자질을 지닌 사람들끼리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800년대와 1900년 초에 유대인,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같은 유럽 대륙의 다른 민족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오자 우생학자들은 미국인의 정체성이 사라질까 봐 두려워했다. 그들은 또한 가난한 사람들과 범죄자들, 지적 장애인들이 정부의 재정에 부담을 주어 세금이 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워했다. 1910년 뉴욕의 콜드 스프링 하버에서 우생학 기록 사무소가 문을 열었다. 사무소는 인종과 유전, 그리고 이와 비슷한 문제에 대한 자료를 보관했다. 수많은 사회 저명인사들이 우생학을 지지했는데, 그중에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과 찰스 윌리엄 엘리엇 하버드대학 총장도 있었다. 나치들은 미국의 우생학 운동을 부러워했다. 히틀러는 미국의 우생학자들에게 우생학에 관한 책을 써준 것에 대해 편지로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이 한 발 앞서 완벽한 인종 개량을 이룰까 봐 걱정했다.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우생학을 이유로 전 세계 32개 나라에서 불임 수술이 실시되었다. 미국에서만 6만여 명이 강제 불임 수술을 받았다. 강제 불임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정신 질환자나 가난한 10대, 강간당한 어린 소녀들, 뇌전증(간질)을 앓는 사람들과 정신 지체자들이었다(p. 56). 연구의 윤리성은 결국 연구를 시행하는 사람들 손에 달려 있다. 규칙의 개정은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만 효력이 있다. 그리고 사회는 연구자에게 적절한 배려의 수준을 결정해야 한다. 언제까지 조작하기 쉽고 속이기 쉬운 가난한 사람들과 약자들을 상대로 임상시험을 계속할 것인가? 누군가에게 우리를 대신해서 위험의 부담을 짊어지워도 되는 것일까? 의학 임상 연구 윤리는 우리 사회의 도덕 수준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우리의 도덕 수준은 약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 과학 발전은 중요하다. 사회는 엄청난 의학적 발견과 치료법 덕에 많은 혜택을 입고 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 피해를 입는 것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의학 연구는 어떤 경우라도 생명 존중과 혜택과 정의라는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사회의 요구와 개인의 권리가 대립할 때 우리는 공정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이러한 결정이 우리를 사람다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p. 149). 믿을 수 없는 실험들 731부대에서는 31가지 정도의 다양한 인체 실험이 이루어졌다. 일본 의사들은 우선 나치 의사들이 자행했던 동상 실험과 감압 실험을 하며 인간에게 일어나는 신체적 변화와 그들이 어떻게 죽어 가는지를 자세히 관찰했다. 또 인간이 음식과 물을 먹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실험,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죽음에 이르는지를 확인하는 실험, 사람을 죽게 하는 방사능의 양은 얼마인지 알아보는 실험, 독가스 실험, 체액 대용으로 쓰일 생리 식염수를 찾기 위해 사람 몸에 바닷물을 주입하는 실험, 사람의 몸에 말의 피를 주입하고 동물의 장기를 이식하는 실험, 살아 있는 사람을 대형 원심분리기에 매달아 죽을 때까지 고속으로 회전시키는 실험, 피부 표본을 얻기 위해 실험 대상의 피부를 살아 있는 상태에서 벗겨 내는 실험,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를 절단하여 각각 상(p. 160)대방에게 이식하는 성전환 수술 실험, 성병 실험, 세균을 배양하여 인간의 몸에 주입시킨 후 경과를 살펴보는 실험 등 온갖 잔혹한 실험을 실시했다. 그리고 이 같은 실험을 진행한 후에는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실험 대상을 모두 살아 있는 상태에서 해부했다. 또 해부된 몸에서 꺼낸 장기는 포르말린 액이 든 병에 담아 진열실에 보관했다고 한다. 731부대가 자행한 일들을 살펴보다 보면 이들이 과학을 발전시키고자 실험을 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실험을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세균전을 위해 세균 무기와 독가스탄을 만들어 민간에 살포했는데, 총 1600차례에 걸쳐 중국 일대에 살포된 독가스탄으로 인해 무려 57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또 다른 731부대 더욱 놀라운 것은 이처럼 비윤리적인 실험들이 자행된 생체 실험 부대가 731부대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00부대(창춘), 8604부대(광저우), 1855부대(베이징), 1644부대(난징), 516부대(치치하얼), 543부대(하이라얼), 200부대(만주), 9420부대(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각지에 세워진 부대들 역시 731부대와 비슷하거나 731부대의 생체 실험을 뒷받침 하는 역할을 했다(p. 162). 묻지 않은 범죄의 대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들의 만행은 1945년 8월,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의 계속된 패배와 8월 8일 구 소련의 선전포고로 인해 전쟁의 패망을 예견함으로써 끝이 나게 된다. 731부대는 비밀리에 철수를 준비했다. 이시이 시로는 중요한 실험 자료만 일본으로 가져가고 나머지는 증거 인멸을 위해 모두 소각했다. 세균 연구실과 특별 감옥 등 731부대의 모든 건축물도 함께 폭파했다. 그리고 특수 감옥에 감금되어 있던 실험 대상자들은 독가스를 살포하여 모두 살해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의 세균 무기 연구와 생체 실험 문제로 재판이 열렸다. 모두가 이시이 시로를 비롯한 731부대는 악랄한 행위에 대한 대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판 결과 이들은 대부분 죄를 묻지 않고 석방되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것은 바로 731부대의 연구 자료들 때문이었다. 731부대는 오랜 시간 다양한 생체 실험을 한 끝에 수많은 연구 자료와 실험 노하우를 축적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미국은 이 자료들을 손에 넣고 싶어 했다. 731부대의 연구 자료만 얻게 된다면 세계 의학계를 좌지우지하고 눈부신 의학 발전과 수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은 731부대의 생체 실험 기록과 일본의 세균전 실험 자료 등을 넘겨받는 대가로 731부대 책임자들을 석방하게 된다. 2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나치 의사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비윤리적인 행위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뉘른베르크 재판을 통해 부족하(p. 163)게나마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심판을 받았고, 그들의 행위를 함께 지켜본 사람들은 이 사건을 본보기 삼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진행할 때 지켜야 할 기본적인 약속인 뉘른베르크 강령을 제정했다. 하지만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들의 죄는 철저히 가려지고 숨겨졌다. 731부대의 주요 책임자들은 전후 일본의 고위 관직에 올랐고, 일본 정계 및 의료계의 핵심 세력이 되었다. 그들은 731부대에서 얻은 생체 실험의 결과를 활용하며 호위호식했다. 반성하지 못한 역사는 또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특히 731부대의 책임자 중 하나였던 기타노 마사지와 나이토 료이치는 731부대 공개 재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한국전쟁 때, 전쟁으로 혈액이 부족해지자 일본에서 싼값에 거둬들인 혈액을 비싸게 되팔아 엄청난 이익을 얻게 된다. 이를 통해 경제적 부를 얻게 된 두 사람은 일본 최대 제약사인 녹십자를 세우고 이후 에이즈 약해 사건(혈우병 환자들이 오염 된 혈액으로 만든 치료제 주사를 맞고 에이즈에 감염된 사건. 이 약으로 일본에서 1800여 명이 에이즈에 감염되었고, 그중 400여 명이 숨졌다)의 주범이 된다. 이처럼 제대로 반성하지 못한 역사는 언제든 다시 그 무시무시한 얼굴을 들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불편한 역사를 똑똑히 지켜보고 성찰해야 한다. 인간들이 저지른 부끄러운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과학자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해 줬다. 하지만 우리는 과(p. 164)학자들의 업적을 인정하는 한편 그들에게 물어야 한다. 인류를 위해 만들어진 과학이 인간을 희생시키며 나아가도 되는 거냐고,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 개인의 인권보다 더 중요하냐고 말이다. 이러한 성찰과 고민들은 우리가 자칫하면 잊기 쉬운, 진정으로 인류를 위한 과학의 길을 알려 줄 것이다(p.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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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5
  • 【북토크293】 삶의 들러리인 기독교의 어색한 행태
    모처럼 760여 페이지의 장편 소설을 읽었다. 파친코라는 책은 드라마가 된 후에 관심을 갖고 읽게 됐다.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다. 일제 말과 이후의 세월 속에 선자라는 한 여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재일교포는 일본에서 제대로 된 직업을 얻을 수 없어 파친코 사업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자식들은 이와 연관된 일을 하게 된다. 유부남 고한수의 아이를 임신한 선자는 목사 백이삭의 제안으로 결혼한다. 그리고 낳은 아들에게 모세라는 이름을, 차남에게는 모자수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런데 이들이 믿는 기독교는 그들의 삶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런데 왜 작가는 이 소설에 기독교적인 요소를 가미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알듯말듯했다. "물어볼 게 있어요." 이삭이 말했다. 선자는 계속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이삭이 숨을 들이마셨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예요. 무리한 부탁이란 건 압니다. 지금은 이해가 잘 안 되겠죠. 시간이 걸릴 거예요. 다 이해합니다." 오늘 아침, 목사가 이런 질문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서 선자는 목사가 믿는 하나님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세상에는 영혼이 존재했다. 아버지는 이런 생각을 믿지 않았지만 선자는 믿었다. 선자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곁에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와 제사를 지내러 아버지 무덤에 가면 아버지의 존재가 더 잘 느껴졌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세상에 신들과 죽은 영혼들이 존재한다면, 백이삭의 하나님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백이삭의 하나님이 그를 그토록 친절하고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이 되게 했다면 더욱 그랬다. "예. 선자가 말했다."그럴 수 있어예!." 나룻배가 부두에 닿자 이삭이 선자가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부산은 아주 추웠고, 선자는 외투 소매 속으로 시린 손을 쏙 넣었다. 살을 에는 바람이 휘몰아쳤다. 선자는 매서운 날씨가 목사의 몸에 좋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됐다(p. 128). 두 사람 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기에 선자가 나루터에서 별로 멀지 않은 번화한 상점가를 가리켰다. 선자가 부모님과 부산에 와서 가본 유일한 곳이었다. 선자가 그쪽을 향해 걸었다. 선자는 앞장서서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삭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이삭이 선자의 뒤를 따라갔다.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해보겠다니까 참 기뻐요. 제게 아주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에요. 우리 두 사람이 같은 신앙을 가진다면 결혼 생활을 잘해나갈 수 있을 거예요." 선자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는 못 했지만 이삭이 이유가 있어서 그런 부탁을 했다고 믿었다.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겠지만, 하나님께 축복을 내려달라고 기도할 거예요. 우리와 아이에게요." 선자는 이삭의 기도가 두꺼운 외투처럼 그들을 감싸 보호해주는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보았다(p. 129). 선자는 아들이 사무실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서 한수의 자동차 문을 두드렸다. 운전사가 나와 뒷좌석 문을 열어 주었다. 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자가 가벼워진 마음으로 희망에 차서 웃음을 지었다. 한수가 선자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노아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다 잘됐십니더. 다음 주에 요코하마로 온다갑니더. 모자수가 억수로 기뻐할 기라예." 한수가 운전사에게 출발하라고 지시하고 선자가 두 사람의 만남이 어땠는지 이야기하는 것에 귀를 기울였다. 그날 저녁, 노아에게 전화가 오지 않자 선자는 노아에게 요코하마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p. 599)날 아침, 한수에게 전화가 왔다. 선자가 사무실에서 나가고 몇 분 후, 노아가 총으로 자살했다(p. 600). 고한수는 지팡이를 짚고 걷고 있었다. 장례식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걸어가는 선자를 발견하자 큰 소리로 불렀다. 선자가 고한수의 목소리를 들었다. 도를 넘어선 짓이었다. "네 어머니는 강한 여자였어. 난 항상 네 어머니가 너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했어." 선자가 고한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죽기 직전에 이 남자가 선자의 삶을 망쳤다고 했지만 정말 그랬을까? 고한수(p. 654) 덕분에 노아가 생겼다. 임신하지 않았다면 이삭과 혼인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삭이 없었다면 모자수와 손자 솔로몬도 없었을 터였다. 선자는 더 이상 한수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성경에서 요셉이 자신을 노예로 팔아넘긴 형들을 다시 만났을 때 뭐라고 말 했던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선자가 이 세상의 악에 대해 물었을 때 이삭이 이 구절을 가르쳐주었다(p. 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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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5
  • 【북토크292】 뇌에 대해 더 알고 싶다
    뇌에 대해 잘 모른다. 관심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뇌에 대해, 신체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는 호기심이 생긴다. 앞으로 뇌에 대한 책을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겪었던 일입니다. 알고 지내던 판사 한 분이 자신이 다뤘던 사건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예전에 뉴욕에서 있었던 일이래요. 평생 죄 안 짓고 대형 은행에서 근무하던 어느 임원이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아내를 죽였습니다. 이 사람이 왜 이런 짓을 했을까, 하고 세상이 떠들썩해졌어요. 그런데 그 임원의 전두엽에 본인도 모르게 암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변호사가 알게 됐어요. 변호사는 게이지의 사례를 들어 변론을 했습니다. 임원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살인한 게 아니고 그 모든 것이 병적인 행동이었다고 말이죠. 전두엽 손상을 근거로 들었는데, 당시 판사는 그 걸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유인즉, 영미법은 계몽주의 시대에 만 들어진 건데, 계몽주의에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하거든요. 자유의지가 있는 사람은 자기 행동에 스스로 책임져야 하(p. 52)는데 신경세포가 책임질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하는 시각이었던 거죠. 이런 식으로 자신의 책임을 신경세포에 전가하기 시작했다간 큰일 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교통신호를 어겨 경찰한테 잡혔는데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는 거죠. "아, 죄송합니다. 오늘 제 전두엽 신경세포 254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우리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에는 우리나라 법원이 처음으로 살인 사건 피의자의 뇌 영상 자료를 재판에 활용했습니다. 피의자의 뇌를 MRI와 fMRI로 촬영한 거죠(p. 53). 인간의 행복지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연봉이 같은데도 자기 주변 사람들이 부자이면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낄 테고, 주변 사람들이 가난하면 자신이 부자라고 느낄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한 달에 10만 원 더 많이 받는 경우와 주변 사람이 한 달에 20만 원 덜 받게 하는 경우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후자를 선호합니다. 상대적으로 그게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사회적 부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오히려 현대인들 대다수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깁니다. 파이 자체는 100년 전보다 훨씬 커져서 자기가 먹을 것도 많아졌지만 퍼센트로 따지면 자기 몫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으니까요. 정치인들이 허구한 날 국민 행복 시대니 뭐니 하며 떠들어대는데, 이는 사실 불가능합니다. 모든 사람이 잘사는 건 어찌어찌해서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행복 자체가 상대적인 개념이라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비교 대상을 바꿔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더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을까요? 즉 비교 대상을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행복의 척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p. 98) 쥐는 시력이 안 좋아 세상을 초음파로 파악합니다. 우리 인간은 어떨까요? 인간은 뇌 안에 10¹⁵개 되는 연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연결성을 부모한테 100퍼센트 물려받는 건 아닙니다. 대략 3분의 1 정도가 유전적으로 타고난다고 알려져 있고, 또 3분의 1 정도는 태어난 뒤 10~12년까지의 아주 중요한 발달 기간 동안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결정적 시기라고 하는 이 기간 동안 자주 사용하는 연결성은 살아남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연결성은 다 사라져버립니다. 뇌에서 다 지워져요. 지금 살고 있는 환경에 최적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한국 사람 얼굴을 보고, 한국 음식을 먹고...., 그런 것과 관련한 신경세포들은 다 살아남습니다. 그러나 스웨덴 사람을 알아보고, 아프리카 음식 냄새 구별하는 방법은 사용하지 않으니까 그런 기능을 하던 신경세포는 다 없어져버립니다. 고향이라는 게 뭘까요? 고향이란, 뇌가 최적화된 환경입니다. 그래서 고향이 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정적 시기에 뇌가 그 환경에 익숙해졌으니까요. 그 밖에 나머지 3분의 1은 랜덤으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일란성 쌍둥이도 100퍼센트 똑같은 뇌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유전적으로는 똑같아도 환경이 100퍼센트 똑같을 수는 없거든요. 말하자면 사람들이 모두 조금씩 다른 뇌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조금씩 다른 뇌를 갖고 있으면 조금씩 다른 계산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해석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 눈에(p. 103)는 세상이 매번 다르게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항상 다르게 보이는데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신기한 일입니다(p. 104). 1929년부터 쓰나미처럼 밀어닥친 대공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식·금융·산업 등의 경제 기반이 한꺼번에 붕괴됐습니다. 대공황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고도 하죠.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인간이 합리적인 행동을 한다고 하면서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요? 명색이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체면이 있지, 사실(p. 114)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잖아요? 이런 현상이 자꾸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요? 시장이 붕괴되고, 사람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기는......이런 현상을 두고 존 케인스는 음과 같은 주장을 펼칩니다. 인간은 당연히 합리적으로 행동하지만 가끔씩 동물같은 본능에 지배당하기도 한다고 말이죠. 케인스는 이렇게 인간에게 내재된 동물적인 본능을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이라고 했습니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만 어떤 특정 상황에서는 야수 같은 본능이 튀어나와서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치닫기 때문에 시장 붕괴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뇌과학자는 경제학자와 완전히 반대로 생각합니다. 경제학자들은 아주 오랫동안 인간의 합리성을 믿어왔고 간혹가다 예외가 발생한다고 여겼습니다. 즉 경제학자들은 특수한 조건이나 아주 예외적인 상황에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뇌과학자들은 정반대로 주장합니다. 즉 인간은 대부분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아주 가끔 예외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말이죠(p. 115). 어쩌면 우리는 선택을 먼저 하고 나서 그걸 보고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는지도 모릅니다. 스페리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뇌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기계가 아니고 자기 행동을 정당화 하는 기계라고.... 결론은, 사람들이 대부분 선택을 해놓고 그것을 합리화한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뇌의 기능, 아니면 뇌의 여러 가지 기능 중 하나입니다. 몇 년 전에 맥도널드에서 커피를 팔기 시작할 때 실시했던 실험을 알아보겠습니다. 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분할 뇌 환자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한테 커피를 마시게 했습니다. 똑같은 커피를 두 잔에 나눠놓고, 하나는 2,000원, 다른 하나는 4,000원이라고 써 붙였습니다. 똑같은 커피입니다. 마셔보고 어느 커피가 더 맛있는지 선택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시죠. 참가자 A: 4,000원짜리가 더 마음에 들어요. 2,000원짜리는 신맛이 좀 더 강한 거 같은데요. 4,000원짜리는 커피 향 자체에서 연기(p. 125)향이 좀 더 깊게 난다고 해야 되나요? 참가자 B: 4,000원짜리 커피가 더 맛있는 거 같은데요. 향이 좀 더 진하고요. 음.... 제가 좀 좋아하는 스타일인 거 같고요. 자꾸 그 쪽으로 손이 가게 되네요. 참가자 C: 4,000원짜리가 제가 먹기에 좀 더 편하고 좋거든요. 부드럽고 향도 오래가고. 제가 맛에 좀 민감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요. 쓴맛이 조금 덜해서 시럽이나 설탕을 안 넣어도 될 만큼.. 도대체 이분들은 왜 그럴까요? 지금 좌뇌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똑같은 커피예요. 지난번에 착시 현상 알아볼 때, 사각형 A와 B의 밝기가 똑같은데 그중 하나가 그림자 안에 있다는 사실을 가지고 뇌가 밝기를 재해석하는 현상 기억나시죠? 똑같은 현상입니다. 여기서도 2,000원짜리 커피와 4,000원짜리 커피는 똑같아요. 혀는 맛이 똑같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뇌는 우리 오감을 절대로 믿지 않거든요. 눈•코•입•귀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고 재해석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재해석 과정에 자기 경험에서 비롯된 지식을 투영시킨다는 것입니다. 실험 참가자들이 생각하는 진실은 비싼 게 좋다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문제가 생깁니다. 분명히 혀는 똑같다고 신호를 보내요. 그런데 자기 경험에서 나오는 지식으로는 4,000원짜리가 더 좋아야 됩니다. 과학에서는 데이터와 모델이 일치하지 않으(p. 126)면 모델을 바꿉니다. 그런데 뇌는 절대로 그러지 않아요. 뇌는 모델과 데이터가 일치하지 않으면 데이터를 버려요. 이 사람들의 모델, 즉 비싼 게 좋다는 지식은 20년 내지 30년 정도 걸려 만들어진 것입니다. 커피는 약 5초 동안 마셨을 뿐이에요. 20~30년 걸려서 형성된 모델을 단 5초의 경험으로 바꾸는 건 적절하지 않죠. 조현병 환자처럼 자아가 불안정한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모델을 쉽사리 바꾸지 않습니다. 결국 자아라는 것은, 젖은 찰흙 같은 상태가 세월이 흐르며 점점 굳어지는 것처럼, 오랜 기간 동안의 경험과 해석들이 축적되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간접 경험과 직접 경험, 나에 대한 기억,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판단, 타인이 나에 대해 내린 판단을 나는 어떻게 생각 하는지 등 이런저런 사고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자아가 완성돼 갑니다. 이 실험을 보면 모델이 데이터를 이겨버리는 것입니다. 손길이 자꾸만 4,000원짜리 커피로 간다고 하잖아요. 데이터가 지고 모델이 이겼습니다. 자, 이미 선택은 해버렸어요. 그런데 뭔가 찜찜합니다. 혀는 계속 맛이 똑같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거든요. 찜찜한 기분에 대한 반작용일까요? 이제 좌뇌가 4,000원짜리가 왜 맛있는지 스토리텔링을 하기 시작합니다. 향이 진하고 어쩌고, 맛에 민감하고 어쩌고저쩌고.... 얼핏 들으면 상당히 논리적인 설명으로 들립니다. 상황을 모르고 들었다면 충분히 믿어도 될 만한 얘기들이죠(p. 127). 뇌과학에서는 거짓말을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합니다. 우선, 그냥 흔히 이야기하는 거짓말입니다. 자신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걸 알고 하는 거짓말이에요. 또 하나는 '작화 confabulation'라는 게 있습니다. 작화를 병적으로 구사하는 증상을 작화증이라고 합니다. 작화는 내적인 일관성이 있고 나름대로 논리적인 발언입니다. 듣는 사람이 전체 상황을 모르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얘기죠. 일정한 맥락 아래 그럴 듯한 얘기를 술술 지어냅니다. 이처럼 아주 논리적이면서도 그럴듯한 거짓말을 작화라고 합니다. 스페리의 주장처럼, 뇌의 핵심 기능 중의 하나가 자신의 행동과 선택을 정당화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일상생활에서 뭔가 선택을 해놓고 구구절절 말이 긴 사람은 한 번쯤 의심해보는 게 좋습니다. 그 사람의 내면에서 뭔가 일치하지 않는 게 있다는 반증일 수 도 있거든요. 선택했는데 아무 이유 없이 좋으면 그게 제일 좋은 것입니다. 선택하고 나서 이게 왜 좋았는지 주변 사람들한테 자꾸 이야기하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한테 '좋아요' 버튼을 누르라고 강요하는 건 스스로도 내면에서 뭔가 찜찜한 게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진 찍어 SNS에 올리고, '좋아요' 횟수로 자기 선택의 정당성을 확인받으려 하고... 덕분에 소셜 미디어 업체만 돈을 벌죠. 자기 정당화는 왜 할까요? 우리는 다양한 선택을 하면서 살아 갑니다. 로저 스페리 이론의 핵심은 이런 결정들이 서로 연결되지(p. 128)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택하는 행위 하나하나는 그 주변에 있는 수백 가지 요소들이 얽히고설켜서 이뤄지지만, 개별 선택 사이에는 아무 인과관계가 없어요. 즉 제가 파스타를 먹은 것과 5년 전에 카이스트를 직장으로 선택한 것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선택을 하고, 그다음에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함으로써 자기 인생에서 벌어진 선택들을 서로 연결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그것을 했다, 이래서 이것을 했다, 그것을 한 것은 무엇무엇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이 마구잡이가 아니라 서로 연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고, 그 선이 자기 자아가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자아라는 건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억에 남아 있는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합리화해서 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 오직 하나만 존재하는 것인양 선을 그어 연결할 뿐이라는 얘기죠. 자기 자신이란 존재하지 않거나 여러 명입니다. 현재의 자신과 20년 전의 자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이 선을 계속 그어 점과 점을 연결 함으로써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일종의 착시 현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p. 129). 그래서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은 이미 존재하는 정보에 새 정보를 연결시켜주는 것입니다. 시냅스를 강화시켜주면 되죠. 우리나라처럼 주입식 교육을 계속 반복하면 그 지식은 외딴섬 신세가(p. 171)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연결이 안 돼 있으면 해당 정보가 어딘가에 존재는 하지만 다시 찾기가 힘듭니다. 학습에서 중요한 요소는 뇌에 입력된 정보를 얼마나 잘 끄집어내느냐입니다. 잘 꺼내야 배운 내용을 활용할 수 있죠. 그런 경우 많이 겪었을 겁니다. 어떤 배우 이름이 기억 날 듯 말 듯 한데 누군가 그 배우가 나왔던 영화 제목을 얘기하니까 불현듯 이름이 떠오르는.... 주변에 있는 정보가 지나가면서 시냅스가 활성화되니까 그게 생각나는 겁니다. 학습의 정석은 존재하는 정보들 간의 연결성을 많이 만들어놓는 겁니다. 그래서 시너지니 융합이니 학제 간 연구니 그런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A라는 사실을 'A, A, A,....' 하고 100번 공부하면 나중에 찾지 못합니다. 그런데 'A라는 사실은 B하고 이렇게 연결이 되고, B는 알고 보니까 C고, C를 역사적으로 보면 이러저러한데 종교적으로 보면 이렇고, 물리적으로는 저렇고 진화적으론 요렇다' 하는 식으로 다양하게 생각하면서 그 범위를 점점 넓혀가면 모두 다 연결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관련 정보와 지식이 조합돼서 훨씬 더 고차원적인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p. 173). 기계와 뇌의 가장 큰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기계는 설계하고 만들면 그걸로 끝입니다. 그 자체로는 더 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뇌는 삶의 일정한 시기까지 계속 발달합니다. 약 10¹¹개 정도 되는 뇌 속의 신경세포들은 수천, 수만 개의 다른 세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연결성은 총 10¹⁵개나 됩니다. 우리는 연결성이 100퍼센트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납니다. 이 연결성을 대한민국 지도에 빗대어 생각해보죠. 태어날 때는 굵직한 고속도로 정도만 가지고 세상에 나옵니다. 예컨대 경부고속도로라면, 톨게이트 지나서 구체적인 장소까지 이어지는 자잘한 길은 아직 랜덤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굵직한 고속도로에 정보가 입력되는데, 그 랜덤 상태의 길 중에는 맞는 길도 있고 틀린 길도 있을 겁니다. 살아가며 경험을 통해서 채워 넣는 겁니다. 모든 동물한테는 결정적 시기라는 게 있습니다. 동물마다 조금씩 다르죠. 오리는 태어나서 두세 시간, 고양이는 태어나서 4주에서 8주, 원숭이는 태어나서 1년, 사람은 태어나서 10년에서 12년 정도 됩니다. 결정적 시기에는 뇌의 시냅스가 거의 젖은 찰흙 같아서 말랑말랑합니다. 유연성이 있다는 얘기죠. 이 시기에 계속 사용하는 길은 살아남고, 사용하지 않는 길들은 싹 없어집니다. 뇌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됩니다(p. 177). 교육 분야에서는 창의력 얘기가 많이 거론됩니다. 창의력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뇌과학 입장에서는 간단하게 답할 수 있습니다. 가능한 한 많이 연결성을 유지하는 게 창의력의 기반입니다. 어렸을 때 한정된 경험밖에 못한다면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 길이 막히면 아무 데도 가지 못해요. 그렇지만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서 어렸을 때 연결성을 많이 확보해놓는다면 다양한 생각을 펼칠 수 있을 겁니다. 주요 도로가 막힌다 해도 다른 길을 찾아낼 잠재력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아이들을 조기 교육시키라는 소리로 알아듣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어렸을 때의 뇌는 흡수력이 어마어마합니다. 예를 들어 세 살에서 다섯 살 무렵의 아이는 TV만 보고 있어도 하루에 단어를(p. 181) 수백 개씩 배웁니다. 거의 지식의 스펀지입니다. 어렸을 때 비싼 돈 들여 1년 동안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보내는 것과 주말에 이태원에 가서 인도 음식 먹는 것의 효과는 거의 비슷하답니다. 저 같으면 이태원으로 가겠습니다. 다양성도 좋지만 '비용 편익 cost benefit'을 따져봐도 더 낫습니다. 어린 시절의 뇌 흡수력을 감안하면 그냥 국내에서도 충분히 경험하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주말에 애들 데리고 평소 경험하지 않았던 걸 보여주고, 영화 등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게 해도 아이들은 스스로 상상을 펼쳐나가거든요. 더욱이 인간은 눈에 안 보이는 것도 상상할 수 있는 정신병을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교육의 우선순위를 조금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결정적 시기에 경험하는 것들은 우리 뇌에 들어와 탁탁 박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뇌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시기이거든요. 따라서 결정적 시기에는 누구나 동의하는 객관적인 내용만 가르쳐주는 게 좋다고 봅니다. 예컨대 수학· 논리·인권 같은 과목 위주로 공부시키는 게 좋습니다. 역사나 이념은 나중에 가르쳐줘도 됩니다. 주관이 개입되기 마련인 역사나 이념을 결정적 시기에 배워 뇌에 고착돼버리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특정 관점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어렸을 때 배운 게 현재의 신경 회로망을 다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늦었지만,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미래 세대에게 물려줘야(p. 182)합니다. 그러려면 아이들에게 그런 뇌를 만들 환경을 조성해줘야 할 겁니다. 또 하나, 제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 중학교 선생님이 교수보다 월급을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선 생님이 가르쳐준 것이 학생들의 뇌를 만들거든요. 이건 다시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어찌 보면 이 시기의 선생님은 대학 교수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더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하죠. 뇌의 발달 단계에 비춰보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격 요건을 강화해야 하겠죠(p. 183). 인간이 두려워하는 건 약한 인공지능이 강한 인공지능으로 진화하는 것입니다. 기계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자율성을 획득하는 순간, 인간이 설정해놓은 통제 조건 따위를 무시해 버리면 끝입니다. 결국 강한 인공지능이 인간을 인정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인간이 없는 세상보다 그래도 인간이 이 세(p. 254)상에 존재하는 게 더 낫다는 인식을 기계와 공유해야 합니다. 인간 역시 역지사지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자기가 기계라면, 인간이 어떻게 처신해야 공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여길 것인가? '인간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이 왜 필요할까?' 이런 질문에 답을 얻으려면 인간이 없는 세상을 한번 가정해 보는 게 가장 논리적인 접근 방식일 것입니다(p. 255). 에르빈 슈뢰딩거는 세상의 진짜 본질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라고 주장합니다. 정신이 물질을 만들어낸다는 것 입니다. 일종의 범신론이죠. 이게 타당하다면 우주에 정신이 있다는 뜻입니다. 우주의 모든 물질에 정신이 있다는 게 아니고, 정보를 어느 정도 융합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정신이 있다는 것이죠. 바꿔 말하면, 생명체는 다 자아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조건만 충족되면 기계에도 자아가 있지 않을까요? 강한 인공 지능은 자아가 있어야 하잖아요? 기계가 지능과 의식을 갖게 되는 순간, 기계는 지각하고 기억(p. 266)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고 싶을 것입니다. 인간은 기회가 된다면 기계한테서 지능과 의식을 빼앗고 싶겠죠. 기계가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면 기계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기계에게 인간은 유의미한 존재일까요? 어쩌면 기계에게 인간은 우리 발밑의 벌레들처럼 무의미한 존재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줘야 할까요? 그것은 아마도 기계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즉 인간 고유의 능력일 것입니다(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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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4
  • 【북토크291】 흥미로운 독의 세계
    독은 결국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독이라는 것도 인간을 기준으로 판단한 것인데 이 독도 잘 쓰면 약이 되니 참으로 희한하다. 자세히 알아보고 연구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 주어졌고 그 용도를 발견하면 모두 유익할 것이다. 흥미롭게 읽었는데 현재 이 책은 절판됐다. 독을 진화하기 위해 독이 있는 생물들은 많은 것을 감내해야만 했다. 독에는 수많은 화합물들과 단백질들이 들어가는데, 이를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를 희생해야 한다. 자신을 보호하거나 먹잇감을 얻기는 쉬울지 몰라도, 독을 만들기 위해 번식이나 활동에 들어가는 에너지의 일부 는 희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나 전갈에서 독이 차지하는 무게는 몸무게의 0.5% 이내에 불과하다. 하지만 독을 다 쓰고 나서 재충전 시 뱀의 기초대사량은 평소의 11% 이상 상승한다. 독이 재충전되는 시간은 뱀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5주 이상 까지 걸린다. 이 기간 내내 대사량이 10% 이상 증가한다면 상당한 희생인 셈이다. 경우에 따라 뱀이나 전갈은 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사냥에 독을 사용하지 않기도 한다. 독 없이도 제압할 수 있는 만만한 상대라면 몸으로 휘감아 으스러뜨려 죽이거나 집게발로 동강내 사냥을 한다. 또한 화석기록이나 유전정보를 살펴보면 독이 필요 없는 환경이 되면 독니와 독주머니는 금세 퇴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독과 관련된 기관들은 생존에 있어 굉장히 비싼 기회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p. 33). 우리들은 독을 가진 생물들을 '독하다', '나쁘다' '위험하다' 정도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독을 가지게 된 생물들은 대체로 '불쌍한' 생물들이다. 독을 만드는 데는 적지 않은 노력과 비용이 소모된다. 게다가 경우에 따라서는 독 자체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독을 가지게 된 생물들은 도대체 얼마나 기구한 사연이 있었기에 독을 가지게 되었을까 하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독한 생명들도 사뭇 다르게 보일 수 있다(p. 49).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는 페니실린과 알렉산더 플레밍에 대한 신화가 사실은 만들어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1928년 곰팡이로부터 항생물질을 분리하여 페니실린으로 이름 붙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14년 후 페니실린이 상용화 될 때까지의 과정에서 플레밍이 기여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심지어 항생제 약품으로 개발한 학자들과 직접 접촉한 적도 없었다. 본인도 페니실린이 이렇게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하고, 한동안 페니실린이라는 물질 자체에 관심을 가(p. 203)진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개발했다'는 신화는 2 차대전 중 영국의 국민들을 감동시키고 격려하기 위한 영웅담으로 재발굴되었다. 페니실린이 상용화된 것은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으로, 이전까지는 전투 자체보다도 상처에 일어난 2차감염으로 사망하는 병사가 더 많았다. 페니실린은 말 그대로 기적의 신약이었고, 언론은 탄생의 배경을 추적하게 되었다. 14년 전 플레밍의 발견 이야기를 들은 영국의 유명 일간지 타임스지는 "하나님의 섭리로, 전쟁의 피로 얼룩진 우리에게 최강의 약물이 허락되었다"며 1944년 6월 12일자 신문에 대서특필했다. 이런 과학적 신화는 반복해서 재생산되는데, 결과적으로는 과학의 발전에 있어서나 대중에게나 이익이 되지 않는다. 이는 과학자들이 과학적 발견을 이루기까지 들어가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 데이터의 중요성을 과소평가 하게 만들고, 어떤 위대한 영웅에 의해서만 가능한 업적으로 포장해버린다. 또한 정확한 사실에 기반해 계속해서 검증해야 하는 과학적 가치와도 정반대에 있는 현상이다(p. 204). 뱀에 물렸을 때는? 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뱀에 물렸을 때의 처치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실 뱀에 물렸을 때의 처치만큼 '민간요법'들이 난무하는 의학 분야도 드물지 않을까. 우리가 흔히 만화나 영화에서 보는 뱀에 물렸을 때의 처치법들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물린 곳을 불 로 지지는 소작법이나 뱀독을 빼내겠다고 물린 부위를 째는 행위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독을 빼내겠다고 물린 상처 부위를 입으로 빨아내는 것은 물린 사람에게도 괴로운 일이지만, 빨아내는 사람도 중독될 수 있기 때문에 역시 절대 피해야 할 행동이다. 이렇게 째고 빨고 지지는(p. 227) 행위는 이미 세포독소의 영향으로 괴사되고 있는 조직 손상을 키울 뿐 만 아니라 2차감염의 위험도 높이게 된다. 또 앞서 언급했다시피 뱀독에는 항응고제가 포함된 경우가 있어 괜히 상처 부위를 더 벌렸다가는 엉뚱하게 출혈 과다로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그리고 '독이 몸 에 퍼지면 안된다!'며 지혈대를 이용해 물린 부위주변을 압박하는 행동 역시 절대 피해야 할 일이다. 오히려 물린 곳의 혈액 공급을 차단해 조직 괴사를 촉진시켜 예후를 나쁘게 만드는 주범이다(p. 228). 레저용 독 에탄올과 니코틴은 사람들이 가장 널리 쓰는 독 중 하나다. 많은 국가들에서 합법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독인 동시에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독 중 하나다. 담배는 해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신경독인 니코틴을 만들었는데, 인간이 이렇게 좋아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전 세계에서 담배를 재배하게 되어 담배종의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번식방법이 되었다. 니코틴은 담배를 통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독성 물질 중 하나다. 니코틴은 담배의 뿌리에서 합성되어 잎에 축적되는데, 매우 강력한 신경독소 중 하나다. 곤충에서는 낮은 농도에서도 강한 신경독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살충제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즉 본래 담배가 니코틴을 생산하는 것은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로 추측하고 있다. 또한 도시에 사는 일부 새들 중에는 담배꽁초를 주워 둥지에 집어 넣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던 사례들처럼 독(p. 233)이 있는 물질을 둥지에 넣어 체외기생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행동일 가능성이 있다. 인간에게 있어 니코틴은 낮은 농도에서 높은 각성 효과를 나타내지만, 농도가 올라가면 독성을 나타낼 수 있다. 중독효과도 커서 니코틴 중독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심각한 중독 중 하나이며, 끊기도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p. 234). 에탄올은 신경계에 작용하는 독이다. 중추신경계를 억제해 낮은 농도에서는 행복감과 이완 작용을 하지만, 농도가 올라가면 운동능력이 저하되고 인지능력이 떨어진다. 혈중알코올농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중추신경계가 억제되면서 뇌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고,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 이 상태를 지나가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에탄올을 마셔 나타나는 숙취와 두통은 에탄올 자체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에탄올이 산화되어 아세트알데하이드라는 대사산물이 생기기 때문이다(p.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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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4
  • 【북토크290】 출판업자들의 수고에 늘 감사하다
    출판계는 많은 경우 불황이다. 요즘 들어 사람들은 더 책을 읽지 않는다. 유튜브 등에 시간을 잠식당하고 있다. 나도 늘 유튜브와 싸움을 벌인다. 동영상은 직접적이고 재미있다. 그러나 독서는 그렇지 않다. 60인 나도 그런데 나면서부터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 세대는 더 심할 것이다. 그래도 책은 계속해서 나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아직은 책이 재미있으니 다행이다. 적극적인 스카우트나 과감한 이직의 경우 대개 과장급, 팀장급에서 이뤄지는 것 같다. "10년차가 씨가 말랐네" 하는 한탄을 들을 때마다 경제적인 보상도 성장의 기회도 더 나은 쪽으로 인력 유출이 있었겠거니 짐작하게 된다. 조직 내부에 속한 이들뿐 아니라 계약을 맺고 함께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3년에는 14년차에 이르렀는데, 경력이 쌓일수록 안심하고 일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점점 더 이상하고 나쁜 계약서를 받는 일이나 인세 입금이 지연 누락되는 일 등이 잦아지고 있다. 벽에 부딪힌 느낌이 들 때 이동의 욕구를 느낄 수밖에 없다. 출판계가 어려워서 사람대우를 제대로 못해준다는 이야기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출판계가 여유 없이 어려운 것은 맞으나 열의를 가진 사람들을 너무 예사로이 여기고 홀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을 필요가 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계속 출판계의 문을 두드리겠지만, 이대로라면 떠나는 속도 또한 빨라질지(p. 58)도 모른다. 마땅한 존중을 이야기할 때가 왔다(p. 59). 책을 책일 수 있도록 하는 곳, 책등 책을 보면 가끔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여러 장의 종이를 엮었을 뿐인 이 단순한 물건의 생산과 소비에 이토록 오랫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열성적으로 가담해왔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책의 형태, 종이 여러 장을 겹쳐서 한 쪽 변을 묶고 표지로 감싸는 코덱스(codex) 형식은 역사상 책이 취했던 여러 형태 가운데 한 가지이지만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책의 대명사가 되었다. 오랜 세월 사람 가까이에 자리했기 때문일까. 책의 세부를 일컫는 명칭을 살펴보면 신체 부위를 뜻하는 말에서 가져온 것이 많다. 책머리, 머리띠, 책배, 책발.... 앞표지는 자주 '책의 얼굴'로 비유되며, 표지 종이를 판형 폭보다 길게 내어 안쪽으로 접어 넣은 부분은 '날개'라고 부른다. 디자인 저술가 엘런 럽튼(Ellen Lupton)은 「책의 몸」이라는 글에서 책과 타이포그래피 관련 용어에 몸과 관련된 것이 많은 것은 글쓰기가 신체의 확장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눈이 볼 수 없는 영역을 카메라를 통해 보고 발로 갈 수 없는 거(p. 110)리를 자동차로 쉽게 도달하듯이 글은 생각을 그 소유자로 부터 시간적•공간적으로 분리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해준다. 글이 생각의 몸이라면 책은 글의 몸이다. 신체와 관련된 책의 세부 명칭 가운데 가장 절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책등이다. 등에는 인체를 지탱하는 기둥인 척추가 있기 때문이다. 코덱스의 구조적 정수가 종이를 엮었다는 점인 만큼 엮인 부분들이 모여 만들어진 면을 등이라고 일컫는 것이 퍽 적절하게 들린다. 영어권에서는 직접적으로 spine이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노출 바인딩으로 제작한 책에서 표지를 입히지 않은 책등을 보면 종이 묶음을 실로 엮은 모습이 뼈마디와 닮아 보이기도 한다(p. 111). 출판계에서 경력이 쌓이고, 일을 거듭 할수록 '다 알 것 같아서 지루해지는 순간'은 언제까지나 오지 않을 것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그게 좋다. 책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작디작은 나의 세계를 무려 노동을 하면서도 넓힐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알면 사랑한다'는 말을 늘 좋아하는데 나로 말하자면 책이 가져다준 다양한 세계 덕분에 사랑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 책과 저자에게서 알게 된 새로운 세계를 '잘' 알고자 하면 그 세계를 이내 사랑하게 되었고, 그 사랑 덕분에 세상에 대한 환멸이 닥쳐올 때도 그(p. 249)것을 물리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나에게 그런 용기를 준 책이 몇 권쯤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언제나 가장 큰 용기이고. 그래서 출판계 노동자이자 독자인 나는 이 덕업일치의 삶을 행운으로 여기며 산다. 일을 위해서 읽던 책을 다 끝내면 휴식을 위해 다시 또 책을 꺼내면서 말이다. 천수를 누리다 죽은 행복한 돼지의 이야기, 장애인 운동가의 이야기,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이야기, 인도의 작은 출판사 이야기, 프리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야간의 인공조명으로 죽어가는 새들의 이야기, 사랑의 정의를 넓혀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두 책에 있다. 다큐멘터리나 뉴스 기사로는 미처 다 알 수 없던 깊이 있는 세계가 책 속에서 꼼꼼하게 펼쳐진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이 귀한 사람들을 나의 거실에서 단 둘이 만나는 일이다. 그 내밀한 이야기를 내 두 귀에 직접 전해 듣는 일이다. 나의 바깥으로 간신히 한 발짝 나가보는 일이다. 그 불가능한 일이 일어날 때의 충격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는 일이다(p.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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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3
  • 【북토크289】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한다
    좋아하는 작가다. 기회가 되는대로 책을 찾아 읽고 있다. 읽을만한 책들을 써 줘서 고마운 작가다. 많은 유익을 얻었다. 삶을 진지하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날 교수님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저는 제 이혼에 대해서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저의 짧은 얘기를 들으신 교수님은 일말의 주저함 없이 저에게 이렇게 조언해주셨습니다. "《탈무드》에서도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 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 법무관의 아이들 세대에서는 이혼이 별 의미가 없게 될 거예요." 이혼이라는 패배감에 억눌려 있던 저에게 교수님의 이 말씀은 충격 자체였습니다. 제가 결혼을 할 때도, 결혼 생활로 고통을 받을 때도, 이혼을 할 때도 이런 이야기를 해준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마지막 남은 허물을 남김없이 벗어버릴 수 있었던 것은요. 그리고 저는 다시 제 삶을 살기로 했습니다. 변호사로서 수천 건의 이혼 상담을 하면서 알게 된 공통점은 대다수의 사람이 '내 인생에 이혼은 없어!'라는 근거도 없는 확언으로 이혼을 선택지에서 없애버린다는 것입니다. 사실 결혼과 이혼은 내 인생의 본질이 될 수 없습니다. '나의 삶'이라는 시간 속에서 취업, 결혼, 출산, 이혼 등의 이벤트가 발생(p. 18)하는 것입니다. 결혼한다고 해서, 이혼한다고 해서, 어떤 직업을 갖는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의 본질이 바뀔 수는 없습니다. 공자가 상정한 인간상 역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 입니다. 삶에서 의도치 않게 맞닥뜨리는 상황에 굴하지 않고 나답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자는 두 가지 삶의 태도를 제시합니다. 군자가 세상에 나아갈 때는 반드시 그래야 된다고 고집하는 것도 없고, 반드시 그러지 말아야 된다고 고집하는 것도 없으며, 오로지 마땅함을 척도로 할 뿐이다(p. 19). 우리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앎이란, '삶은 인과율이 지배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결과는 내가 한 선택이 가져온 것입니다. 그것을 안다면 우리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마땅합니다. 공자가 번지로부터 '앎이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역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에 힘쓰고, 귀신에 대해서는 삼가되 가까이하지 않는다면가히 안다고 할 수 있다. 당신의 삶은 사주팔자가 지배하고 있나요, 아니면 인과율이 지배하고 있나요? 당신은 지금 어떤 일에 힘을 쏟고 있나요?(p. 33). 누군가의 본질은 특정한 직업이나 재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이립, 불혹, 지천명으로 덕을 성장시켜가는 것이 바로 군자의 삶입니다. 자리가 주어지는 것은 하늘에 달린 것일 뿐입니다.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인가? 나답지 않게 살 것인가? 공자의 답은 '아니요'입니다. 세속적으로 '실패한' 공자와 안회는 죽는 순간 행복했을까요? 저는 매우 그렇다고 생각합니다(p. 38). 전전긍긍 삶에 임하는 태도를 '내가 좋아하는 바를 한다'로 정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못 할 바가 없는 무소불위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발현 되어야 할까요? 삶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병이 깊게 들어 죽음을 앞둔 증자가 문하의 제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제자들아, 이불을 걷어내고 내 발과 내 손을 보아라. 《시경》에 이르기를 삶을 살면서 절절하게 애를 쓰는 것(전전긍긍) 이 마치 깊은 연못가에 있는 듯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라고 하였는데, 지금이 되어 서야 비로소 내가 이것을 면하게 된 것을 알겠구나? 깊은 연못 근처에 있거나,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면 혹시라도 빠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조심할까요? 이와 같이 전전긍긍이란 항상 두려워하고 삼가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세로 삶의 매 순간을 대했고, 이는 생을 마칠 때까지 이어지는(p. 39) 것이기 때문에 증자는 죽음에 임박해서야 겨우 이것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되 매사에 전전긍긍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제가 《논어》에서 찾은 나의 이립입니다(p. 40). 아홉 가지 생각의 기술, 구사 공자는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린 우리를 위해 아홉 가지 생각의 기술을 알려줍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할 때의 본질, 즉 반드시 생각해야 할 아홉 가지를 구사라고 합니다. 공자가 강조하는 구사는 다음과 같습니다(p. 61). ① 시사명: 볼 때는 눈밝음을 생각해라. ② 청사총: 들을 때는 귀밝음을 생각해라. ③ 색사온: 낯빛을 지을 때는 온화함을 생각해라. ④ 모사공: 몸가짐을 행할 때는 공손함을 생각해라. ⑤ 언사충: 말을 할 때는 스스로에게 거짓 없음을 생각해라. ⑥ 사사경: 일을 할 때는 주도면밀함을 생각해라. ⑦ 의사문: 의문이 날 때는 질문을 생각해라. ⑧ 분사난: 화가 나면 그것을 그대로 표출했을 때 일어날 분란을 생각해라. ⑨ 견득사의: 이익을 얻을 때는 내가 그것을 취해도 마땅한지를 생각해라. 이 아홉 가지 생각의 기술은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상황별로 생각해야 되는 기준을 제시해줍니다(p. 62). 고는 고다울 때 가장 행복합니다. 주의할 것은, 생각을 당하는 순간은 주변에서 나를 부러워할 때라는 점입니다. 폭력이 수반된 억압적인 상황이 아닌 이상 가스라이팅으로 인해서 내가 향유하는 이익이 반드시 있습니다. 보통 그 이익이란 것은 '안정과 그로 인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안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안타깝게도 그것은 곧 '성장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내가 세속적인 기준에 부합하고 작은 성과에 도취되어 있을 때를 가장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에게 질문하십시오. '혹시 지금 생각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것조차 당신의 선택입니다(p. 68). 삶은 크고 작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나다운 선택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선택을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결정이 어려운 당신을 위해 효과적인 선택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죽음을 떠올리십시오. 그런 상태에서 자신에게 질문하십시오. '나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몇 날 며칠을 고민했던 문제가 사실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죽음 직전까지 가지 않고 단지 죽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다운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평생을 두고 집중하고 노력해야 하는 문제는 단편적(p. 104)으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림 없도록 나를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참고 참으면서 죽을 만큼 괴로울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매번의 선택을 할 때마다 자기 자신을 돌보시기 바랍니다(p. 105). 관계는 조화를 위해 서로 맞춰갈 수 있지만 반드시 물러설 수 없는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절지입니다. 안타깝게도 절지하지 못한 영희님의 인생은 결혼으로 치달았고, 삶의 중기 목표가 해외에서 근무하며 커리어를 쌓아가는 여성에서 '오늘도 아이와 무사하기를 바라는 우울증에 걸린 경력이 단절된 엄마'로 바뀌었습니다. 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배(p. 185)우자'라는 관계를 맺을 때는 우선 스스로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충분한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런 것들을 상대방과 함께할 수 있는지 검토해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나를 맞추어서는 곤란합니다(p. 186). 스스로 분발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으로서 최악입니다. 삶이 궁한 상황에 처했는데도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공자 같은 성인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공자보다 못한 우리가 그런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이런 사람은 제대로 미워하며 멀리해야 할 대상이지, 관계를 맺고 변화시키기 위해 내 값진 노력을 쏟아부을 대상이 전혀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막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저 오만함에 불과합니다. 자발성이란 스스로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공자는 스스로 찾아와 육포 한 짝 이상을 내며 배움을 청하는 사람이(p. 220) 있으면 일찍이 가르쳐주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자발성이 있습니다. 첫째 스스로 찾아올 것, 둘째 수업료를 낼 것입니다. 공자는 마지못해서 하는 사람을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마지못해서 하는 사람은 삶이 구차한 것이고, 이런 사람에게 무언가를 하도록 억지로 시키는 사람 역시 구차스럽기 때문입니다(p. 221). 결혼은 누가해야 하는가? 어렸을 때부터 제 인생의 화두는 '내 두 발로 서는 것stand on your feet' 이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의지이자 삶의 원동력이었습니다. 특히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최고의 효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결혼이란 독립의 완성이었습니다. 하지만 7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으로 이혼을 하고 삶의 밑바닥을 헤매면서 제가 깨달은 사실은 결혼이 독립이 아니라, 독립 된 사람이 선택한 것 중의 하나가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객이 전도된 생각에 사로잡혔던 저는 결혼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삶의 모든 문제는 독립된 인간이 되지 못(p. 224)함에 있습니다. 저는 이혼 상담을 하면서 매우 많은 사람이 결혼을 독립적으로 선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p. 225). 생각의 힘은 나이나 경험과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생각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결국 사리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사리를 세우기 위해서는 배움이 필수적입니다. 배우는 것이 먼저인 공자는 "온종일 먹지도 않고 밤새도록 자지도 않으며 생각만 해보았지만 얻는 것이 없었다. 배우는 것이 낫다"라고 하였습니다. 생각을 마름질할 도구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생각만 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망상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데카르트나 공자가 말하는 '생각' 이 아닙니다(p. 235). 배움과 생각의 조화 공자는 배움과 생각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최고로 여깁니다. 배우지 않고 생각만 하는 사람은 조직을 위태롭게 합니다. 시대별로 보면 혜성처럼 '짠' 하고 나타나 혹세무민하는 사이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이비 종교단체의 교주들입니다. 이들은 사리에 맞는 배움이 없지만 생각을 통해 나름대로 논리적인 철학을 만들어냅니다. 공자의 표현에 따르면 양극단을 파고드는 사람들입니다. 양극단을 파고드는 이유는 아무도 하지 않으니 조금만 노력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외로움이나 고통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거짓 위안을 주며 승승장구합니다. 결국 이들은 사회를 위태롭게 합니다. 반대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사기를 당할 뿐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가방끈도 길고 지적인 수준이 필요 이상으로 높습니다. 그런데 사리가 세워져 있지 않습니다. 헛똑똑이입니다. 배움-생각-배움- 생각은 우리의 인생을 통해서 면면히 흘러야 합니다. 배우지 않고서는 생각의 힘을 기를 수 없고,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헛똑똑이가 될 뿐입니다(p. 236). 재혼 금지령 이혼은 상실이자 실패입니다. 이제는 찬찬히 실패의 원인을 분석해봐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거대한 외로움은 당신이 스스로를 탐험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어떤 유형의 사람들은 이혼을 함과 동시에 미친 듯이 이성을 찾아 나섭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조급증에 빠진 사람들은 쉽게 이성을 만나기 위해 몸무게가 적게 나가려고 발버둥 칩니다. 그렇게 싼값에 자기 자신을 팔아 치우고는 안심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X보다 못한 사람을 만날 확률이 99.999퍼센트입니다(p. 286). 사리 분별이 없이 그저 착한 사람은 누군가가 우물에 빠졌다고 하면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우물 안으로 따라 들어가 결국 함께 죽습니다. 그야말로(p. 306) 비명횡사입니다. 하지만 사리 분별이 있는 사람은 우물까지 가게 할 수 있어도 우물에 빠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착한 사람은 사리 분별이 없는 것일 뿐이기에 결코 좋은 사람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p. 307). 시간은 유한하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50은 인생의 원숙기로 가장 나답게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40에는 최소한 삶의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50이 될 때까지 이렇다 할 성장이 없다면 그 사람은 그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여기서 성장이란 나를 알고 나답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p.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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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5-10-23
  • 【북토크288】 공부에는 방법이 있다
    현직 변호사가 쓴 공부 방법에 대한 책인데 재미있게 읽었다. 이 변호사가 쓴 책은 열심히 찾아 읽고 있다. 이 책을 공부할 때 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유익하니 관심있으시면 읽어보시기를.. 그런데 여러분 공부를 꼭 하셔야 합니까? 능력이나 재능이 많다면 공부는 꼭 안 하셔도 된다고 조언해 드리고 싶습니다. 공부가 정답이 아닙니다. 저는 가방끈이 긴 것을 후회합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기회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만일 공부를 하지 않고 그 에너지를 다른 것에 쏟아부었다면 아마 지금보다 더 윤택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여러분들(p. 46)도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공부 안 해도 됩니다. 공부는 다른 거 할 것 없는 사람들이 하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p. 47). 이기적으로 선택하라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이 책을 읽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고민에 빠져 있을 수 있습니다. 결정적인 조언을 하나 하겠습니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여러분 자신이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항상 이기적으로 생각하십시오. 인정하기 싫을 수도 있지만, 여러분은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본능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갑자기 이타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기만하지 말고 나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는 것, 나한테(p. 48)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십시오. 그렇게 선택해야 선택한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선택하는 순간 갑자기 이타적인 성인군자가 되고,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듣는 등 자기 자신을 보지 않고 외부적인 요인에 흔들린다면 여러분은 그 선택이 부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고 주저앉게 될 수도 있습니다(p. 49). 시험공부는 오래 하는 것이 아니다 시험을 위한 공부는 오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가짐도 '이 시험에 최단 시간에 붙는다'여야 합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 시험에 붙으면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고시공부를 오래하는 것이 이 학생의 법조인으로 갖출 경력이나 자질에 좋은 영향을 줄까요? 서면을 더 잘 쓸까요? 법리를 더 잘 알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법시험은 법조인의 자질이나 전문 지식을 배양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그런 실전 지식은 사법연수원에서 배웁니다. 시험의 보는 이유는 바로 필요한 사람보다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즉 시험이란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상황에서, 보다 공정하게 필요한 수요를 공급받기 위한 장치에 불과합니다. 이(p. 75)를 선착순으로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사법시험이란 그저 법조인으로 진짜 공부를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모든 시험의 목적은 똑같습니다. 다만 사법시험은 공급이 수요보다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시험의 기술적인 부분들이 점점 더 난해해지는 것입니다. 공부 기간이 늘어나면 법률지식은 배양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합격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 지식과 시험 합격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저는 신림동에서 수많은 장수생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거의 모든 학설과 판례에 통달했고, 어떤 문제도 막힘없이 풀어냅니다. 그룹스터디의 장으로서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한 고시생에게 신과 같은 존재 입니다. 멘탈이 굉장히 강하고 여유도 있습니다. 장수생이지만 공부 하는 절대시간도 상당합니다. '저 정도인데도 아직 시험에 못 붙었다니? 도대체 얼마나 더 공부를 해야 하지?' 웬만한 법대 교수님보다 뛰어난 지식을 갖춘 그분들을 보면서 자괴감에 빠진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분들은 정작 시험에 붙지 못합니다. 저렇게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 도대체 왜 못 붙을까? 저는 그분들이 시험을 기술적인 문제로 보지 않고 학문으로 접근했기 때문이 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특히 사법시험에서 그런 우를 범하기 쉽습니다(p. 76). 여러분은 힘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실행할 힘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없는 것은 의지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 항상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의지가 있습니까? 역부족이라고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의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왜 의지가 없을까요? 내가 이것을 정말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자기기만에 빠져 힘들다고 하소연하지 말고 내가 뜻이 있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으십시오(p. 215). 새로운 질서를 부여받다 성공한 사람을 부자라고 표현하겠습니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것 만이 성공한 것이냐고 힐난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군가가 성공했는지 안 했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기준은 돈입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돈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부자들 중에는 괴짜가 많습니다. 엄청난 부자인데 경차를 타고 다닌다거나, 검소해서 와이셔츠 손목이 해지도록 입고 다니는 사람들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부자들이 그런 모습을 하고 다녀도 더 이상 가난이 아니고, 고독도 고독이 아닌 것이 됩니다. 그 사람에게는(p. 218) 세속의 질서가 아닌 자신이 스스로 만든 질서가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묵은 법칙이 확대되고 보다 더욱 자유로운 의미에서 그에게는 유리하게 해석됩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일을 해도 성공한 사람이 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는 수많은 찬사와 다른 평가가 따라옵니다. 즉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하면 사회가 부여한 기준에 따라 비난을 받을 일이, 성공한 사람이 하게 되면 찬사를 받게 됩니다. 서로 다른 질서와 기준 속에 살기 때문입니다(p. 219). 시험 일주일 전의 멘탈 관리 이 세상에는 다양한 시험이 있습니다. 시험을 보는 날도 다 다릅니다. 당장 시험을 며칠 앞둔 사람도 있고, 시험이 10개월 남은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면 1년 넘게 남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시험이건 간에 여러분이 시험장에 가기 전에 반드시 들어야 되는 말이 있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시험 보기 딱 일주일 전에 들으면 가장 효과적입니다. 꼭 들으셔야 합니다. 이것은 저의 남동생이 저에게 직접 해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선 여러분 중에 나는 '심약하다', '흥분을 잘 한다', 아니면 '남의 말에 쉽게 멘탈이 나간다'라는 분은 듣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남의 말에 신경을 많이 쓰는 분, 노약자분들은(p. 227) 더 이상 읽지 마십시오. 읽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더 좋습니다. 사법시험 1차를 보기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저에게 단기전이 시작 되었습니다. 장기전에서 단기전 모드로 전환해서 주말에도 집에 가지 않고 신림동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공부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시험을 앞두고 불안하기도 하고, 주말인데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저를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음 주가 시험이니 당연히 해야 하지만 여러 가지 중압감으로 인해 기분이 가라앉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가족들의 위안을 받기 위해 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이럴 때 친구에게 전화를 하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험을 앞두고는 컨디션 조절이 제일 중요한데 친구가 어떤 말을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말에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시기라서 친구는 별 생각 없 이 한 말인데도 나는 크게 동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에 방해되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저는 독서실 앞 슈퍼 공중전화로 갔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린 뒤 집에 전화를 했습니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내심 반갑게 전화를 받아줄 엄마를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이때 전화를 받은 것은 집에 혼자 있던 남동생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부모님은 모두 외출을 하시고 동생만 집에 있었던 것입니다. 저에게는 굉장히 안 좋은 일이었습니다. 실망한 채 일상적인 안부를 나누고 동생에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누나 다음 주가 시험인데 공부가 잘 안된다." 그때 동생은 한창 게임을 하고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누나의 일(p. 228)에는 큰 관심 없다는 듯 시큰둥한 목소리로 제 동생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거 알지." 저는 이 말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동생의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아, 끊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급히 전화를 끊고 독서실로 돌아갔습니다. 매정한 동생이 미우면서, 한편으로 곰곰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맞습니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합니다. 시험공부 는 어떤 시험에 합격하려고 하는 공부입니다. 내가 그 과정에서 열심히 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정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과가 불합격이면 떨어진 겁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떨어진 사람이나 놀면서 떨어진 사람이나 떨어졌다는 결과는 똑같습니다. 여러분, 일단 합격을 하셔야 합니다. 왜냐면 시험은 결과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면서 그 시험에 뛰어들었으니까 합격을 해야 합니다(p. 229). 장수생이 탄생하는 이유 시험공부를 하는 사람과 학자가 되려는 사람의 공부하는 방법은 엄연히 다릅니다. 같을 수가 없습니다. 시험공부의 목적은 합격입니다. 그렇다면 그 목적에 맞게 공부를 해야 합니다(p. 232). 고대 고시반과 신림동에서 공부할 때 정말 많은 장수생 선배들을 보았습니다. 그 선배들의 법률 지식은 그야말로 차고 넘쳤습니다. 머리도 똑똑하고 법률적 소양이 풍부하며 인성조차 고매하여 당장 사법연수원에 간다 해도 모든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을 수 있습니 다. 훌륭한 법조인이 될 자격이 넘치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오랫동안 시험에 붙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제가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그들은 해당 시험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간과한 것입니다. 사법시험은 연수원 정원에 들 수 있냐 없냐만을 테스트하는 시험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은 수요와 공급 원칙이 결정합니다. 사법연수원 정원은 1천 명입니다. 그런데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3만 명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잘라내야 합니다. 사법시험은 잘라내기 위한 시험입니다. 그래서 딱 그만큼만 하면 됩니다. 사법시험을 통해 나의 법률적 소양을 높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합격과는 멀어지게 됩니다. 어떤 장수생들은 실력이 매우 뛰어나서 물어보면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웬만한 교수님의 뺨을 칠 정도이고 독자적인 학설까지 만드는 수준입니다. 이미 공부를 오래 해서 기출문제도 다 알고 모범 답안도 다 압니다. 하지만 실전 시험에서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이제 막 시험을 시작한 고시생이 간혹 동차로 시험에 붙기도 합니다. 사법고시는 1차와 2차를 모두 붙어야 최종 합격이 됩니다. 3차 면접이 있기는 하지만 형식적인 부분이니 논외로 하겠습니다. 사법고시는 그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1차와 2차를 같은 해에 붙는 것은 쉬운 일(p. 233)이 아닙니다. 그래서 1차를 붙으면 2차를 두 번 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러니까 1차를 한 번 유예해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15년에 1차를 붙으면 그해에 2차를 보고, 2016년 2차도 볼 수 있습니다. 1차 를 다시 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2015년 한 해에 1차와 2차를 동시에 붙는 것을 '생동차'라고 하고, 1차가 유예된 다음 해 2차 시험에 합격하는 것을 '동차' 라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가끔 생동차를 해내는 고시생들이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장수생이 불합격하고 초짜들이 합격하는 일이 가능한 이유는 시험은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장기전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과정입니다. 시험공부에서의 기술이란 밑 빠진 독에 물을 빠르게 채울 수 있는 크고 새지 않는 튼튼한 바가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장기전은 나만의 바가지를 만들어서 막판에 이것을 이용해서 물을 들이붓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시험장에 들어갈 때는 그 독이 찰랑찰랑하게 차 있어야 합니다. 장수생이 그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매번 시험에 붙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입니 다. 장수생이 그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매번 독에 물을 채우지 못하는 이유는 유효한 바가지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것은 새지 않는 1개의 튼튼한 바가지인데 장수생은 여러 개의 작은 바가지만을 만든 것입니다. 이런 바가지로는 때가 되었을 때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p. 234). 합격에 필요한 공부를 하라 여러분의 시험공부 목표가 '합격'이라면 합격에 필요한 공부를 하십시오. 절대 학자가 되려는 사람처럼 공부를 하면 안 됩니다. 학자의 공부법은 호기심과 탐구가 중요한 요소로,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시험공부법에서 이런 요소는 해악입니다. 호기심과 탐구와 창의는 여러분을 장수생의 길로 이끌 것입니다. 시험공부법은 비판 없는 이해와 암기가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답안지에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스킬만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단기간에 해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왜 그렇지?' 라는 물음을 가지는 순간 주화입마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 입니다. 학문적 호기심과 탐구에 열의가 가득한 분들은 학자가 되셔야 합니다. 시험은 기능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준비하는 시험이 어느 정도의 수준을 요구하는지 먼저 판단하세요. 그리고 딱 그만큼만 하면 됩니다. 시험은 최대한 빨리 붙는 것이다 만일 그 이상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그 이상을 해도 시험에 붙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붙는 것은 인생의 많은 자원을 낭비한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굳이(p. 235) 어렵게 공부를 해서 합격까지 시간과 에너지를 더 소비하였다면 나는 그만큼의 기회비용을 잃은 것입니다.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투입했으면 또 다른 성과를 낼 수도 있었는데, 기회를 날려버린 것입니다. 시험의 유일한 보상은 합격이고, 시험은 최대한 빨리 붙는 것입니다. 그리고 합격과 불합격의 차이는 천양지차입니다.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느냐의 문제입니다. 특히나 시험공부는 목숨을 걸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저기 정신을 팔면서 여유를 부리면 안 됩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지십시오. 시험은 뭐라고요? 몇 년이라는 기간을 잡고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대한 빨리 붙으십시오(p. 236). 외로운 이유를 사람에게서 찾지 마라 공부하는 사람은 하버드 대학의 북적북적한 교실에 앉아있어도 사막의 수도승처럼 혼자입니다. 혼자라는 것은 외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수도승은 혼자 있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수도승이 외롭다면 수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수도승은 혼자인데, 그것도 사막이라는 고립무원의 환경에서도 왜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가 그 순간에 몰입해 있기 때문입니다. 몰입해 있는 사람은 혼자 있더라도 외롭지 않습니다. 공부는 혼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단순히 혼자 있으니까 외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내가 외로운 것은 몰입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 있어서가 아닙니다. 공부는 외로움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결국 몰입을 하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입니다. 몰입하지 않는 순간 권태와 우울증이 찾아옵니다. 혼자 공부할 때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려면 몰입해야 합니다. 외로운 이유를 사람에게서 찾지 마십시오(p. 293). 큰 것을 원하면 큰 것을 걸어라 고유한 삶을 찾아가는 과정은 어려운 일입니다. 온갖 비난과 적대적인 감정을 견뎌내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각오를 단단히 하십시오. 모든 것을 걸고 죽음을 무릅쓰고 '이거 하다가 죽어도 좋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금방 좌절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차라리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p 321) 더 못한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각오를 가지고 일단 시작하잖아요? 그러면 이루십시오.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사회에 철저히 순응하는 사람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회는 규칙에서 벗어난 사람을 본보기로 응징하여 사람들이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한 제재를 나는 견딜 수 있더라도 내 가족은 견뎌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걸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큰 것을 원하면 큰 것을 걸어야 합니다(p. 322).
    • 오피니언
    • 책소개
    2025-10-21
  • 【북토크287】 잡초는 없다!
    이곳저곳에서 흔하게 보이는 잡초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이 책을 읽은 후 잡초에 대해 친근한 마음이 들었다. 책 한권이 이렇게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책은 절판됐다. 기회 되면 동네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으시기를 바란다. '잡초'라는 식물은 없다 '잡초라는 이름의 식물은 없다.' 이 말은 쇼와 일왕이 한 말이다. 사실 식물 하나하나마다 이름이 있을 텐데,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로 묶어 '잡초'라 부른다. 예전에 농가의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는데 논두렁에 나 있는 잡초의 종류를 너무나 자세하게 알고 있어서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방언이어서 표준 도감 이름과 일치하지 않는 것도 많았지만, 할머니 머릿속에서는 하나하나 확실하게 분류가 되어있었다. 할머니는 결코 식물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히 산야초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나에게 '이건 먹을 수 있다' '이건 약이 된다' '이건 방충제로 사용한다' '이건 이렇게 해서 가지고 논다' 이런 식으로 풀의 사용법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셨다. 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하나의 식물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방충제로 사용하는 잡초'와 '식용 잡초'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한통속으로 묶어서는 안 된다. 이렇듯 어떤 것을 이용한다는 것은, 그것을 그만큼 잘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고기 '방어'는 학명으로는 Seriola quinqueradiata라는 하나의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는 성장 단계에 따라 '방어' '마래미' 등으로 세분화해서 부른다. 생물학적으로는 똑같아도 맛이 다르니까 같은(p. 19) 것으로 취급할 수 없는 것이다. '벼'는 영어로 'rice' 하나다. 하지만 벼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수학하면 '쌀', 도정을 하면 '현미', 완전히 다 도정 하면 '백미', 그것을 조리하면 '밥', 밥솥에 눌어붙은 건 '누룽지' 이런 식으로 용도에 따라 세밀하게 분화시켜 부른다. 놀랍게도 일본의 어느 지역의 아이들은 민들레를 세분화해서 구별 해 부르기도 한다. 그 지역의 아이들은 민들레의 줄기를 이용해 씨름을 한다고 한다. 그 때문에 씨름에 강한 민들레의 특징을 파악해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자라는 야생풀을 뭉뚱그려 '잡초'라 부르게 되었다. 그것은 이제 우리가 식물을 이용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면서 가까이 있던 식물의 가치도 잊어버렸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p. 20). 도시를 구하는 잡초의 힘 그렇다면 잡초가 도움이 되었던 건, 다 옛날이야기인가? 모든 현대 문명이 집약된 도시가 발달한 오늘날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가? 아니다. 자연과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 도시에서도, 아직 잡초는 남몰래 활약하고 있다. 도시에서는 열섬현상이 문제가 된다. 열섬현상이란 도시 부분의 기온이 주위 지역에 비해 높아져, 기온 분포를 살펴보면 섬이 우뚝 솟아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시에는 흙이 적다. 흙이 있으면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는 물의 증발에 의해 방출된다. 태양에너지는 흡수되고 식물의 성장에 이용되지만,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는 태양광에 의한 열을 축적하고 그대로 공기를 데워버린다. 그런 이유로 기온이 상승하는 것이다(p. 25). 때문에 요즘에는 옥상에서 식물을 기르는 옥상녹화가 많이 시행되고 있다. 옥상녹화에는 고온 건조한 기후에 강한 '세담'이라 불리는 종류의 식물이 많이 이용되는데, 세담 중에서 멕시코돌나물이나, 돌나물, 땅채송화 등, 길가나 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 종류도 자주 사용된다. 작열하는 태양이 내리쬐는 옥상에서 가혹한 환경에도 잘 견디는 잡초가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도시에서는 냉방을 피하고 절전하기 위해, 창밖이나 건물 벽을 '덩굴'로 덮어 직사광선을 피하는 '초록커튼'이라는 방식도 시행하고 있다. 일본에서 초록커튼에 자주 이용되는 나팔꽃은 '야생나팔꽃' 인데, '야생나팔꽃'은 그 이름대로 야생에서 자란 나팔꽃이다. 열대 원산지인 야생나팔꽃은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잡초화 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따뜻한 오키나와현 등에서는 잡초화 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녹지가 없는 도시에서는 학교 교정을 잔디밭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교정에서 관리하기 쉬운 생육이 왕성한 잔디나 우산잔디 (버뮤다그래스)가 자주 이용되고 있다. 들잔디나 우산잔디는 길가나 황무지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잡초다. 도시에서 유출되는 물의 오염이 문제가 될 때에는 식물을 이용한 수질정화가 시행되기도 한다. 수질정화를 위해서는 오염된 물에서 자랄 수 있는 잡초가 자주 이용된다. 갈대나 부들, 등심초, 물냉이 등(p. 26) 물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잡초가 바로 물을 깨끗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정화 잡초들이다. 이런 식으로 자연이 파괴된 도시의 환경을 개선시키기 위해, 가혹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잡초의 능력이 활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아예 도시에서 잡초가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될까? 도시의 풍경은 전보다 굉장히 살풍경하게 변해버릴 게 분명하다. 잡초들은 길가나 가로수 화분, 선로 사이, 공터, 주차장 한구석, 교정, 콘크리트나 수로 등, 인간이 야산을 파괴하고 만든 콘크리트 정글을 필사적으로 초록으로 덮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도시의 입장에서 보면, 잡초는 한계를 지닌 친근한 자연일지도 모르겠다(p. 27). 잡초가 지닌 생명력의 비밀 뿌리 우리들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말할 때, '뿌리가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렇다면 잡초는 어느 정도나 그 중요한 뿌리를 뻗고 있을까? 봄에 싹을 틔우는 쇠뜨기는 필두채의 포자줄기다. 쇠뜨기와 필두채는 지면 밑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필두채는 땅속줄기를 지면 밑으로 내려, 이 땅속줄기로부터 뿌리를 뻗는다. 계속해서 잡초를 뽑아도 필두채가 줄기차게 자라는 것은 필두채가 지면 밑으로 땅속줄기를 뻗어 퍼져 있기 때문이다. 땅 위로 보이는 필두채는 고작해야 몇 십 센티미터 정도다. 그렇다면 이 필두채는 어느 정도 깊이까지 땅속줄기를 뻗치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파내도 필두채의 땅속줄기를 몽땅 다 파내는 건 불가능하다. 옛날사람들은 필두채 뿌리는 지옥 끝까지 뻗쳐있어서 결국 염라대왕의 부뚜막 위의 냄비걸이가 되었다고 믿었다. 그 정도로 깊다는 이야기다. 설마 지옥까지 뻗쳐있지는 않겠지만, 아무리 작은 필(p. 52)두채라도 보통 지하 1미터 정도 깊이까지는 땅속줄기를 뻗고 있다. 예전에 원자폭탄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히로시마 지역을 가장 먼저 초록으로 우거지게 만든 것이 바로 이 필두채였다. 땅속 깊이 뻗어있던 뿌리줄기가 마치 방공호에 들어간 것처럼 열선을 뻗쳐 자라 있었던 덕분이다. 녹지가 생기려면 족히 50년은 걸릴 거라고 예상했던 이 죽음의 땅에 얼마 지나지 않아 살포시 피어난 필두채. 이 작은 잡초가 당시 사람들의 마음에 얼마나 큰 용기를 불어넣었을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이 잡초가 지닌 생명력의 비밀은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깊은 뿌리에 있었던 것이다. 또한 길가에서 흔히 자라는 잡초 중에 '메귀리'라는 게 있다. 메귀리는 초장(풀의 길이)이 1미터까지 길게 자라는 잡초다. 이 메귀리는 '수염뿌리'라는, 수염같이 가는 뿌리를 지면 밑으로 뻗는다. 이 세밀한 뿌리를 모두 모아 몽땅 연결하면 대체 어느 정도의 길이가 될까? 10m일까? 100m일까? 어느 연구자가 실제로 그걸 측정해보았다고 한다. 그 결과 한 그루의 메귀리의 뿌리를 모두 연결해보니 무려 550km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길이는 무려 도쿄에서 오사카까지의 거리에 필적하는 길이다. 놀라울 따름이다. 메귀리도 대단하지만, 나는 솔직히 수염뿌리를 일일이 떼고 이어서 측정한 사람이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게 바로 '잡초정신' 이 아닐까? 사실 뿌리는 흙속에 있어서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길가(p. 53)의 작은 잡초조차도 이만큼의 뿌리를 뻗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잡초의 '근성이며, '마음이며, 기질인 것이다. 뿌리는 수분이 부족할 때 뻗는 것 그렇다면 뿌리는 어떤 때에 뻗는 걸까? 물을 풍부하게 제공받는 수경재배 식물은 의외로 뿌리가 길지 않다. 뿌리를 뻗지 않아도 충분히 물을 빨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무리해서 뿌리를 뻗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이 없을 때에는 물을 찾느라 뿌리가 길어진다. 아이다 미쓰오의 시 중 생명의 뿌리라는 작품이 있다. 눈물을 참고 슬픔을 견뎠을 때 입으로 말하지 않고 고통을 견뎠을 때 변명을 하지 않고 잠자코 비판을 견뎠을 때 분노를 삭이고 지그시 굴욕을 견뎠을 때 당신의 눈빛은 깊어지고 생명의 뿌리는 깊어진다(p. 54). 뿌리가 길어지는 건 성장에 적합한 좋은 환경 속에 놓여있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뿌리는 힘들 때 비로소 더 깊어지는 법이다. 따라서 수분이 모자랄 때야말로 바로 식물이 쑥쑥 성장할 수 있는 포인트 시점이 된다. 에도시대에 기록된 책 중 《논밭식물의 비유》에 이런 기록이 있다. "논밭의 식물은 가뭄 속에서는 마르고, 비가 오면 자란다. (중략) 하지만 노지에 있는 봄풀은····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물이나 비료를 주면서 돌봐 주는 작물은 가뭄에 마르는데, 누구도 물을 주지 않는 잡초는 어째서 가뭄에도 생생한 걸까? 사람들은 그 생명력에 경탄한다. 사람의 뿌리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혹독한 환경에 놓이게 되는 순간, 그 뿌리가 서로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게 된다. 누구도 물을 주지 않는 잡초는 뿌리를 매우 깊게 내리고 있다. 충분히 물을 제공 받는 작물과는 뿌리를 뻗는 방식 자체가 다른 것이다. 뿌리가 중요하다는 말은, 말하자면 제대로 뿌리가 내려지도록 기회를 주는 역경도 또한 성장을 위해서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p. 55). 잡초를 없애는 유일한 방법 '마당에서 잡초를 완전히 없애는 방법은 없습니까?'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계속해서 생긴다. 제초제를 뿌리면 이미 자라있는 잡초는 죽지만, 바로 다음 타자 잡초가 싹을 틔우기 때문에 대단한 효과는 없다. 따라서 유감스럽지만 최첨단을 달리는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마당의 잡초를 근절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잡초를 없애는 궁극의 방법이 딱 하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건 대체 어떤 방법일까? 의외로 그건 '잡초를 뽑지 않는 것'이다. 마치 무슨 선문답 같다. 잡초를 없애려면 잡초를 뽑지 말라니, 대체 무슨 말인지(p. 81). 이미 소개했듯이 잡초는 약한 식물이다. 풀 뽑기를 하는 환경에서는 강한 식물이 자랄 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잡초에게는 오히려 살기 편한 환경이 되고 만다. 반대로 풀 뽑기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잡초가 만연 하겠지만 결국 대형 식물이 점점 더 자라게 되어 잡초를 압도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관목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긴 세월에 걸쳐 그곳은 울창한 숲이 되어갈 것이다. 잡초는 강한 식물이 널리 퍼져있는 깊은 숲에서는 살 수가 없다. 그 결과, 결국 잡초는 축출되고 만다. 하지만 사실 이런 과학적인 과정을 통해 '잡초'라 불리는 식물이 없어진다 한들, 그렇게 되었을 때는 이미 그곳은 대형 나무가 자라는 숲이 된다는 뜻이니, 밭이나 정원 관리법으로는 전혀 현실성이 없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유감스럽게도 잡초가 자라면 우리는 잡초 뽑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얄궂게도, 잡초 뽑기를 계속 하는 한 잡초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p. 82). 아스팔트를 뚫고 나오는 대표적인 잡초로는 쇠뜨기와 향부자가 있다. 쇠뜨기와 향부자는 지면 밑에 땅속줄기를 뻗는다. 때문에 지면 밑에서 아스팔트에 도전하면서 싹을 틔우기 위한 에너지를 충분히 축적하고 있다. 보통 잡초 싹 끝의 세포가 가진 압력은 107압 이상 이라고 알려져 있다. 자동차 타이어의 공기압이 11기압이라는 것을(p. 113) 생각해보면 상당한 압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놀라운 압력이다. 이 압력으로 계속 힘을 주면 결국은 아스팔트를 들어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물론 아스팔트를 파괴하는 일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단단한 아스팔트 때문에 오히려 세포가 파괴되어버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싹 끝의 안쪽에서는 쉼 없이 세포분열이 일어나서 계속해서 새로운 세포가 보강된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압력을 가한다. 그런 끈질긴 작업 끝에 결국 아스팔트도 부서지는 것이다. 사실 아스팔트가 비교적 얇게 덮여있는 부분이라야 한다거나, 더위로 아스팔트가 녹아 좀 부드러워진 상태여야 한다는 등의 조건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몇 번이고 도전하다보면 잡초의 씨가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잡초가 지닌 생명력의 핵심을 '다이렉트'하게 본 느낌이다. 아스팔트 밑에서 자라는 잡초는 어쩐지 의양양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다(p. 114). 잡초의 건강 파워 건강식품 매장에서는 더욱 많은 잡초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건강차로 팔리고 있는 '쇠뜨기차'는 쇠뜨기를 이용해 만든 차다. '뱀 밥은 누구의 아이? 쇠뜨기의 아이'라는 노래 가사에도 나오듯이 쇠뜨기는 봄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풍물시에도 자주 등장하는 풀이지만, 밭에서는 굉장히 성가신 잡초 중 하나다. '삼백초차'는 집 주변이나 길가의 그늘에서 볼 수 있는 삼백초라는 풀로 만든 차다. 쇠뜨기나 삼백초 외에도 쑥, 냉이, 민들레, 살갈퀴, 질경이 등, 다양한 잡초가 차로 가공되어 팔리고 있다. 그런데 길가의 잡초 따위에 어째서 약효 같은 게 있는 걸까. 식물은 병원균이나 해충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p. 124) 성분을 몸에 지니고 있다. 그런데 식물이 가지고 있는 병원균이나 해충을 퇴치하기 위한 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우리의 몸은 그것을 약한 독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이 물질을 해독하고 제거하기 위해 우리의 몸은 방어시스템을 가동시키기 시작한다. 그것을 소화하고 배출하기 위해 위장이 활발해지고, 해독대사를 하기 위해 혈액순환이 좋아지며, 이뇨작용 등도 활발해진다. 이처럼 잡초의 물질에 자극을 받아서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생생한 에너지가 활성화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잡초가 가지는 성분의 움직임에 의해, 우리 몸은 건강을 회복하게 된다(p. 125). 논두렁길, 길바닥, 하천부지, 공터, 마을 공원 등, 어떤 장소라도 잡초를 조사 하다보면 반드시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있으니, 바로 토끼풀이다. 토끼풀은 에도 시대에 네덜란드에서 유리제품을 들여올 때 완충재로 같이 채워져 있었던 식물이다. 그 때문에 일본어로는 '쓰메쿠사(채우는 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19 세기 중반 목초로 사용하기 시작한 토끼풀은 잡초화되어 온 일본으로 퍼졌다. 토끼풀은 '클로버'라고도 불린다. 토끼풀은 본래 잎이 세 개지만 가끔가다 잎이 네 개짜리가 발견될 때가 있다. 그게 바로 우리가 행운의 상징으로 알고 있는, 그 유명한 '네잎클로버'다. 네잎클로버의 기원은 성패트릭이 클로버의 세 잎을 사랑' '희망' '신앙'의 삼위일체로 비유하면서, 네 번째 잎을 '행복'이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게다가 네잎클로버는 십자가와 그 형태가 닮았기 때문에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네잎클로버를 찾기 위해서는 약간의 요령이 필요하다. 네잎클로버가 생기는 원인은 몇 가지 있지만 그 원인 중 하나는 성장점이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잎이 만들어질 때에 상처를 입으면 기형이 되어 네잎클로버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네잎클로버는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길가나 운동장 등 사람에게 밟히기 쉬운 장소에서 자주 발견된다. 진짜 행복은 어쩌면 그렇게 밟히면서도 살아남는 과정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네잎클로버가 가르쳐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p.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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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5-10-21
  • 【북토크286】 사람은 왜 자살하는가?
    자살은 내가 관심 있는 주제 중 하나이다. 그래서 종종 자살에 대한 책을 읽는다. 왜 사람은 100년도 안 되는 유한한 인생을 살면서 그것도 다 살지 않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가? 저자는 소속감과 효능감이 없을 때 자살한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자살률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어떻게해야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진다. 성별 남성은 여성에 비해 자살로 사망할 확률이 약 4배 높다. 그런가 하면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자살을 기도할 확률이 약 3배 높다. 남성 자살 시도자들의 치사율이 이처럼 높은 것은 폭력 성향이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더 흔히 나타난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즉, 여성의 자살기도는 더 빈번하지만 폭력 정도는 더 낮다. 미국의 남성 자살사망자의 3분의 2가 총기를 사용하는 반면 여성의 경우 총기 사용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여성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자살 방법은 약물 과다복용이나 독극물 중독이다. 단 하나의 예외를 빼고 세계 모든 나라에서 남성이 여성 보다 자살로 사망할 확률이 높다. 그 예외는 바로 중국이다. 이 나라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자살사망률이 엇비슷하다. 자살사망에 관한 설득력 있는 이론이라면 남성 치사율의 전반적인 패턴과 중국이라는 흥미로운 예외를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p. 51). 대다수 인간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이 공포가 침식될 때 행동 및 심리상의 변화가 일어난다. 행동 측면에서 죽음의 두려움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극단적인 형태의 자해 능력을 얻게 되고, 심리적 측면에서 죽음을 매혹적일 뿐만 아니라 생명을 북돋워 주는 존재로 바라보게 된다. 이런 현상은 죽음에 극도로 익숙해져서 더는 혐오감을 느끼지 않고, 나아가 죽음을 고통과 괴로움이 사라지도록 해주는 존재이자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그 무엇으로 간주하며 매혹될 때만 발생한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우리 대부분이 이 같은 관념을 이해하기 힘들어한다는 사실은 심각한 자살행동 능력을 개발할 때까지 행동과 심리 양면에서 얼마나 먼 길을 걸어야 하는가를 반증한다(p. 126). 이 책이 제시하는 이론모델은 치명적 자해를 가할 수 있는 습득된 능력은 심각한 자살경향성, 그중에서도 완성된 자살에 꼭 필요한 선결 요건임을 예증한다. 이 습득된 능력은 고통과 부상,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 없는 대담성을 포함하고, 반복적인 자해에 내포된 강화적 속성도 포함될 수 있다. '자연 최강의 본능을 뛰어넘는' 이 능력은 어떻게 습득되는 것일까? 이 책의 이론모델에 따르면 고통스럽거나 도발적인 자극, 그중에서도 특히 (그뿐인 것은 아니지만) 고의적이고 반복적인 자해 경험을 통해서라는 것이 답이다. 이런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은 심한 부상을 초래하는 행동에 기꺼이 노출되며 죽음 및 죽음과 관련된 것들을 각별한 시각으로 보게 된다(p. 127). 슈나이드먼은 자살에 관해 쓴 글에서 "실질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자살은 각기 다른 심리적 고통을 수반하는 다섯 가지의 좌절된 심리(p. 132)적 욕구 중 하나에 기인한다."라고 말했다. 좌절된 사랑, 단절된 관계, 공격받은 자아상, 손상 입은 통제력, 그리고 좌절된 지배욕과 관련 된 과도한 분노가 그것들이다. 이에 대한 나의 해결책은 다른 대부분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좌절된 욕구들까지 보상할 두 개의 기층욕구를 가정하는 것이다. 이 두 개의 기층 욕구가 모두 좌절될 때 죽음에의 욕망이 싹튼다.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의 좌절된 욕구는 모두 중요하지만, 좌절된 소속감 (좌절된 사랑, 단절된 관계), 그리고 짐이 된다는 느낌(공격받은 자아상, 손상 입은 통제력, 좌절된 지배욕과 관련된 과도한 분노)이라는 두 가지 주요 범주로 뭉뚱그릴 수 있다. 첫 번째 기층욕구는 소속감이다. 소속에 대한 이 욕구는 '빈번한 상호작용과 지속적인 보살핌의 결합'을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해서 소속욕구의 완전한 충족은 타인과의 교류 및 보살핌을 받는 느낌 등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소속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상호작용이 빈번하고 긍정적이어야 한다. 안정된 관계 내의 상호작용은 대상이 자꾸 바뀌는 관계보다 훨씬 온전하게 소속욕구를 충족시켜준다(즉, 높은 수준의 안정성). 보살핌을 받는 느낌은 있으되, 대상과 대면 교류가 없다면 소속욕구는 일부만 충족된다(즉, 더 가까운 거리). 이 책이 제시하는 자살행동 이론모델에 따르면 충족되지 않은 소속욕구는 자살욕망을 유발한다. 자살경향성이 높은 사람들은 그들의 소속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상호작용을 경험하거나(예를 들어 불쾌하거나 불안정 하거나 뜸하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 타인들과 유대를 맺고 보살핌을 받는 느낌을 갖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p. 133). 두 번째 기층욕구는 효능감이다. 유능하다는 느낌에 대한 이 욕구가 좌절되면서 스스로를 무용한 존재로 느끼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스스로가 쓸모없는 나머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위협과 짐이 된다는 느낌은 더욱 고통스럽고, 따라서 죽음에의 욕망이 고개를 들 수 있다. 이 책이 제시하는 이론모델의 시각은 쓸모없다는 느낌이 자살욕망을 부추기고, 타인들에게 짐이 될 만큼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은 모든 자살욕망의 가장 강력한 원천 중 하나라는 것이다. 스스로를 타인들에 대한 짐으로 보는 사람은 부정적인 자아상을 지니고 삶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느낌을 갖게 된다. 나아가 자신의 무능함이 타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유발하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 시달린다(p. 134). 자살이라는 비극이 내포하는 특별한 성질 한 가지를 들면 바로 이 점이다. 이 느낌들은 치명적이지만 적절한 치료로 교정될 수 있는 것 들이었다(바로 앞 장에서 설명했다). 나는 자살로 인한 죽음이 다른 사유로 인한 죽음과 달리 이해될 수 없거나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고통 스럽고 충격적인 특성을 가진 비극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암은 종류에 따라 현재의 의술로는 죽음으로의 경로를 되돌리기가 불가능한 데 반해 자살의 경우 그 경로를 충분히 되돌릴 수 있음에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야말로 더할 수 없이 끔찍한 비극이다(p. 285). 에필로그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쓰던 어느 날 나는 아버지를 꿈에서 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거의 14년이 되던 시점이었고, 공교롭게도 편집자에게 원고를 넘기기로 한 2004년 8월 1일이 정확히 14주기 기일이었다. 14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꿈에서 아버지를 만나곤 한다. 가장 최근 꿈에서 아버지와 나는 내가 태어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애틀랜타에 있었다. 우리는 아직 완공되지 않은 건물을 함께 바라보면서 지금도 이미 멋진 이 건물이 완공되고 나면 더욱 멋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 이 꿈은 나의 개인적•직업적 삶이 구축되어가는 모습을 아버지가 보고 나누고 즐겨주실 수 있다면 하는 동경을 의미한다. 내 신념에 따르면 그것은 어떤 식으로도 현실화될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현세는 물론 내세에서도 아버지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그 상실이 자살이었다면 이 책에서 제시(p. 293)한 이유들로 인해 더욱 처절할 수 있다. 아버지가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들을 어느 주차장에 세워놓은 자동차의 뒷좌석에 앉은 채 혼자 보내셨다는 것이 슬프다. 아버지가 자신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세상 모두로부터 버려졌다는 (잘못된) 생각을 안고 돌아가셨다는 것이 슬프다. 어머니와 여동생들과 내가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어 괴로워하다 진실을 발견하고 더욱 괴로웠던 것이 슬프다. 한 가닥 의식이 남아 있던 마지막 순간, 아버지가 뒤늦게 그 결정을 뉘우치셨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그리고 아버지가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셨다는 것이 회한이 된다. 이 모든 고통을 잘 알기에, 내세에 대한 온갖 입장들이 왜 그리 많으며 또 그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위로가 되는지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나야 그런 의견들 그리고 그로 인한 위로가 환상일 뿐이라고 믿지만, (제대로 된 과학자라면 그래야 하듯)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만일 내 생각이 틀린 것이라면, 내세에서는 아버지가 조지아주 레이니어 호수의 보트 위에서 할아버지랑 짐 삼촌이랑 함께 농어 낚시를 하셨으면 좋겠다. 물이 잔잔하고 농어들이 미끼를 연신 물어대면 좋겠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세월이 좀 흐르고 나면 나도 맥주와 미끼를 더 들고 와 합류할 것임을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짐 삼촌이 알고 계셨으면 좋겠다(p.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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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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