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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 ‘절판’ 앞에서....책이란 무엇인가?
    과거 취미란에 ‘독서’를 쓰는 것이 유행이었다. ‘클래식 음악 듣기, 영화 감상’등도.. 독서가 취미인 나로서는 책이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책을 쓰는 작가, 출판하는 출판사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산다. 책이 없는 세상은 매우 심심할 것이다. 다행히 어려서부터 책 사는 것을 좋아했고 지금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이 책은 책에 대한 책이다. 어떤 책을 읽다 소개 되어 읽었는데 2006년에 발간된 책이라 소개된 책 중에는 ‘절판’된 책들이 많았다. 책에도 수명이 있고 유행이 있다. 무수한 책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죽을 때까지 다 볼 수 없는 책을 읽는 것이 취미인 것이 감사하다! (기사 화면에 이 책 '빠삐용의 책읽기' 사진을 실을려고 교보문고를 검색해 보니 이 책도 절판됐다. 다행히 도서관에 있어 빌려보게 된 것이다). 칼날 위에 서 있는 사랑 어떤 사람들에게 사랑이 가장 고결한 단어라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금기어입니다. 믿을 수 없으시다고요? 유희처럼, 하룻밤 욕망 해소처럼 가볍게 사랑을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매 순간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장편소설 『카불의 책장수』를 읽다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에는 참 다양한 삶들이 부대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프가니스탄 여인들에게 '사랑'은 금기어입니다. 그들이 지하에서 펴내는 시집에 사랑을 표현하려면 피어린 절규가 담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손을 주세요, 사랑하는 이여, 그리고 우리 함께 초원에 숨어요. 사랑하거나 칼 아래 쓰러지거나 둘 중 하나.' 이곳에 사는 여인들은 묻는 말에 대답하거나 요리를 칭찬하는 말에 답례를 표하기는 하지만, 외방인 앞에서 절대로 먼저 대화를 시작하는 법이 없습니다. 부모 몰래 금지된 사랑을 나누다 들키면 죽음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칼날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나라에서 적용되던 이슬람 율법은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동시에 비정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율법을 비켜가기 위해 그녀들은 란다이(landay)라고 불리는 시를 읊습니다. 란다이는 "비명이나 칼로 찌르는 것처럼" 짧고 율동적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한반도에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동시에 지구의 다른 쪽을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춘 인간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균형이 교양이고, 그것이 문화적 경쟁력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노르웨이 출신 여성 종군기자입니다. 2001년에 9·11 테러가 있었고, 그해 10월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테러 비호세력으로 지목하면서 대대적인 공습을 때립니다. 2002년 봄 사이에르스타드는 카불에서 책장수로 살아가는 술탄 칸의 집에 3개월 동안 머무릅니다. 이 책은 그때 목격한 것을 소설로 쓴 것입니다. 이 소설은 정치적 격변과 국가재건, 그리고 근본주의 이슬람 문화 밑에서 학대받는 여성 문제, 빈곤 문제를 소설 형식으 로 묘사합니다. 폐허가 된 카불의 방 네 칸짜리 아파트에서 술탄 칸은 홀어머니와 아내 둘, 그리고 아이 다섯과 동생, 사촌 두어 명을 데리고 삽니다. 가혹한 시련은 언제나 곁에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일을 하고, 돈을 모으고, 저잣거리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혼례를 준비하고, 혼례를 치르고, 경찰서와 감옥을 왕래하며 갈등하고 기뻐하고 슬퍼합니다. 국민의 4분의 3이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나라에서 책장수의 가족이란 원래가 드문 경우지만, 주인공 술탄 칸은 30여 년 간 서적 판매업에 종사했습니다. 무엇보다 문학과 책을 사랑했습니다. 공산주의자, 무자헤딘, 탈레반 같은 여러 정권의 하수인들은 차례로 쳐들어와서 책을 불태웁니다. 자신도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곤 했습니다. 그러나 책에 대한 열정을 굽히지 않습니다. 책을 숨기고, 감옥에서 살아나오고, 서점을 다시 세웁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교과서를 출판하려고 하고, 부르카를 감옥이라 규정하며 여성의 권리를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술탄 칸은 집안에서는 누구보다 억압적인 또 다른 가부장일 뿐입니다. 전통의 고수와 근대화 사이에 끊임없이 혼란을 겪어온 그들의 역사는 멀지 않은 과거에 있었던 한국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마치 증기탕에서 부르카를 뒤집어 쓴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부르카가 얼마나 머리를 죄고 두통을 일으키는지, 얼마나 밀폐된 공간인지, 얼마나 공기가 부족한지, 얼마나 금방 땀이 삐질삐질 나게 하는지에 대한 얘기입니다. 책을 덮고서 우리는 비로소 시원한 공기에 감사하고, 그것을 공유해야 한 다는 사명감을 느낍니다. 이 소설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인 청년이 탈레반 치하에서 친구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아프간을 찾는다는 내용의 『연을 쫓는 아이』란 베스트셀러에 필적합니다.(※1996년 9월 탈레반은 연날리기를 금지했었습니다.)(pp. 9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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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5-06
  • 【북토크】 글을 잘 쓰는 구체적인 방법
    글쓰는 것은 나의 오래된 관심사항이다. 기회 되는대로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는다. 이 책도 그러한 관심에서 봤다. 유익하다. 특별히 이문재 교수는 글쓰기에 대해 매우 잘 설명하고 있어 전문을 게재한다. 잘 읽어보면 많은 유익을 얻을 것이다. 이문재 (시인,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정확해야 아름다울 수 있다 왜 저널리즘적 글쓰기인가? 글쓰기의 장르는 매우 다양합니다. 사적인 글쓰기/공적인 글쓰기, 사적인 글쓰기: 일기, (자서전) 편지, 이메일, 공적인 글쓰기: 시와 소설, 희곡, 에세이, 기행문 등 문학적 글쓰기, 기사, 칼럼 등 저널리즘적 글쓰기, 광고 문안, 연설문, 안내문, 보고서, 기획서, 청원서 등등. 글쓰기는 더 이상 문인, 저널리스트 등 몇몇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미디어 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것과 아울러, '문자시대는 가고 영상 시대가 도래했다고들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봅시다. 영상 이미지 역시 최종적으로는 문자 언어로 번역되어야 이해와 소통이 가능합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와 같은 뉴 미디어 역시 문자 언어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언어를 버리지 않는 한 인간이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문자 문화는 영원할 것입니다. 언어는 대중의 합의에 의해 정착되고, 또 동시에 대중에 의해 변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어에 일정한 규범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언어가 대중(언중)에 의해 생성소멸하고 유통되고 기록(저장)되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말하기와 쓰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문자 시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문자는 영상 혹은 구술 문화에 의해 위축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문자 시대를 능동적으로, 그리고 당당하게 영위하는 교양인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교양인이라면, 적어도 대학교를 졸업한 교양인이라면 전공을 불문하고 정확한 글쓰기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의 개별적 삶은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행위의 연속입니다. 이 중에서 쓰는 행위가 가장 논리적이고 또 정확해야 합니다. 글쓰기의 일차적 목표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한 것을 그대로 쓰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무의식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생각 자체가 정돈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정돈하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은, 설계도도 없이 집을 짓는 경우와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이 잘 정돈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정확히 표현(건축으로 치면 시공 능력)할 수 없다면 글쓰기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갖고 있는 몇 가지 미덕 우리가 저널리즘적 글쓰기(기사 쓰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정확한 사실에 바탕해, 정확하게 표현하는 글쓰기의 모범이기 때문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자기 주장이 강하게 드러나는 칼럼(사설)이든, 쓰는 이의 관점이 가능한 한 배제되는(이른바 '객관적'이라는 스트레이트 기사에 이르기까지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무엇보다도 정확성이 강조됩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가장 적합한 글쓰기 방법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에서 아름다움은 미덕이 아닙니다. 미사여구는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데 있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수사는 사실(fact)을 표현하는 데 있어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를 주목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다른 글쓰기와 달리 취재와 구성이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설이나 드라마 시나리오를 쓸 때에도 취재 과정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널리즘에서처럼 구체적인 현장(인물)과 정확한 사실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저널리즘에서 활용하는 다양한 취재기법은 우리가 다른 장르의 글쓰기를 할 때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습니다. 기획서나 평가 보고서를 작성할 때에도,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꾸밀 때에도 저널리즘의 취재기법을 동원하면 글이 훨씬 입체적이고 풍성해집니다. 셋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사건이나 사고, 사태나 현상 등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고 심층적인 보도 못지않게, 남과 다른 시각에서 분석하려는 태도 역시 저널리즘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넷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독자 대중의 알 권리를 기본으로 하지만, 인물이나 사건 사고, 사태 등에 대한 독자의 기본적 궁금증을 풀어주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여론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사회 변화와 그 변화의 방향성을 파악하는 데 시야를 넓히고 시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다섯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표현뿐 아니라 전달에 큰 비중을 둡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새로운 지식과 정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독자(수용자)에게 전달되고 소통(커뮤니케이션)되지 않는다면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존재 이유가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의 일상적 삶은 우리가 저널리스트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정보를 송신하고 수신하는 환경 속에서 진행됩니다. 송신자이면서 수신자인 우리가 소통 능력을 키우지 못한다면, 그 삶은 심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소통 능력이 있는 시민들로 구성된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마지막으로,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우리는 저마다 '1인 미디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블로그에 이어, 사용자 제작 컨텐츠(UCC, User-created content)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듯이, 우리는 저마다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의견과 주장이 분명하다면, 그 사람은 어디에 있든, 그 의견과 주장을 어떤 미디어를 통해 전달하든 이미 저널리스트인것입니다. 지식정보사회를 살아가면서 단순한 지식 정보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지식과 정보를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동시에 지식과 정보, 의견을 개성적으로 생산하고 소통하기 위해 우리는 저널리즘적 글쓰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를 체득하면, 보고서뿐 아니라 한 권의 책을 집필할 때에도 시간과 노력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한 편의 기사와 한 권의 논픽션의 구조와 글쓰기 방법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기사, 노력한 만큼 잘 쓸 수 있다. 1. 저널리즘적 글쓰기의 유형: 스트레이트 기사, 인터뷰 기사, 스케치 • 분석 및 해설 기사(feature story), 르포르타쥬, 칼럼, 논설 등 2. 기사를 잘 쓰기 위한 몇 가지 방법: 1) 주제를 분명하게 설정합니다. 주제를 한 문장으로 만들 수 있다면, 절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가령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고 하면 각 분야에서한국을 이끄는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하는 기획일 것입니다. 기사의 주제는 분명한 계기가 있어야 하며, 독자에게 유익한 정보가 되어야 합니다. 정보성이 부족하다면 흥미를 끌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2) 주제를 뒷받침할 자료와 전문가, 현장(사례), 관련 기사를 찾습니다. 주제가 정해졌다면 가장 먼저 관련 기사를 검색해야 합니다. 한창 취재하다가 비슷한 기사가 몇 년 전에 나온 사실을 알고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관련 기사를 검토하다 보면, 주제를 바꾸거나, 취재 영역에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3)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역피라미드형: 전문(요약)중요한 사실-흥미 있는 이야기 순으로 구성합니다. 1900년대 초 미국의 AP통신이 개발한 기사 구조로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흔히 사용합니다. ◎피라미드형: 도입-중요한 사실-서스펜스 형성-클라이맥스 순입니다. 피라미드형은 피처 기사에서 자주씁니다. 독자의 관심을 계속 끌고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문학적이고 연대기적인 서술 방식입니다. ◎혼합형: 클라이맥스(요약)-서론-본론 결론 순. 4) 1), 2), 3)이 충분하게 준비되었다면, 기사 작성에 들어갑니다. • 간결하게 써야 합니다. 국내 신문은 일반적으로 5행 이상(65~75자)을 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단문을 쓰라는 것입니다. • 가능하면 구어체를 씁니다. 이야기하듯이 쓰라는 것입니다. ·주어와 술어를 분명히 합니다. • 매력적인 언어를 찾습니다. ・쉽게 씁니다. 좋은 기사의 첫째 조건은 쉬운 문장입니다. 이상은 언론학 입문서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권장하는 지침입니다. 필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기사를 잘 쓰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를 유념 해야합니다. 먼저, 앞에서 말한 대로 기사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십시오. 이것이 나중에 기사 제목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획과 취재의 매 단계에서 판단 기준이 됩니다. '민물낚시, 환경오염 주범'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한다면, 바다낚시의 오염 문제에 관한 자료는 읽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기획과 취재 단계에서 기사의 첫 문장, 즉 리드를 구상하십시오. 첫 문장이 결정되지 않으면 기사를 쓰기 어렵습니다. 취재를 충분하게 해놓고서도 첫 문장, 즉 도입부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기자들이 제법 많습니다. 어디 기사뿐인가요. 모든 종류의 글쓰기가 첫 문장 에서 좌우됩니다. 오죽하면, 작가들이 "첫 문장은 신의 선물이다" 라고 말하겠습니까. 필자는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기획이 정해지면 그때부터 제목과 첫 문장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시를 쓸 때에도, 산문이나 논문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복잡한 사안을 취재할 경우, 취재한 내용을 주위 동료나 가까운 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흥미로운 인물을 인터뷰했을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취재한 내용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상대방의 반응을 체크할 수 있습니다. 가령 상대방으로부터 더 취재해야 할 부분, 더 강조해야 할 부분 등 의외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넷째, 관련 서적을 찾으십시오. 인터넷 검색은 참고자료일 뿐입니다. 가장 새롭고 신뢰할 만한 정보와 자료는 책에 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필자는 특집 기사를 쓸 경우, 기사 검색을 한 다음 대형 서적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관련 서적 한두 권만 읽으면, 그 분야의 권위자가 누구인지, 그 분야와 관련된 최신 이론은 무엇인지 장악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취재해서 기사를 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떤 책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다섯째, 소설을 많이 읽고 영화, TV 드라마를 자주 보십시오. 소설은 어휘력을 풍부하게 해줄 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시각을 갖게 해줍니다. 문학 분야가 아니더라도 베스트셀러 책은 따라 읽어야 합니다. 관객이 많이 드는 영화와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베스트셀러 책과 영화, 드라마에서 한 줄 인용하면서, 혹은 등장인물을 끌고 들어가면서 기사를 시작하면 독자들의 눈길을 더 많이, 또 오래 붙잡을 수 있습니다. 기사의 궁극 목표는 좀 더 많은 독자들이 읽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늘 기사만 생각하십시오. 기자는 늘 기사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심지어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에도 기사를 생각해야 합니다. 카페 옆자리에서 얻어들은 한 마디가 대형 기사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찬반양론이 팽팽한 기사일 경우, 가족이나 친구들의 의견을 청취해보면, 취재나 기사 작성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사는 혼자 쓰는 것이 아닙니다. 기사가 아니라 다른 장르의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고 읽고 느끼고 생각한 만큼 글은 달라집니다. 개성적 글쓰기를 위한 기초체력 다지기 정확한 문장이 관건입니다. 정확하지 않은 문장은 특히 저널리즘에서 문장이 아닙니다.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에서도 정확성이 우선입니다. 아름다운 문장은 그 다음입니다.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하는 작가는 아름다운 문장, 개성적인 글을 쓰기 어렵습니다. 정확하고 개성적인 쓰기를 위해서는 '기초체력'이 필요합니다. 글쓰기를 위한 기초체력을 다지는 필자의 체험적 방법론을 소개합니다. 1. '나쁜 버릇'부터 찾는다 어떤 글이든 좋습니다. 자기가 쓴 글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자주 나타나는 단어나 표현이 발견됩니다. 사람마다 특유의 말투(말버릇)나 몸짓이 있듯이 글에도 특유의 '버릇'이 나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것이다'라는 종결어미를 자주 씁니다. '~것이다'는 가능하면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글 버릇을 찾아내는 눈을 가지고 있다면 가능성이있습니다. 다음으로, 수식어가 많은 문장, 접속사가 많은 문장, 나열이 많은 문장이 나쁜 문장입니다. 자기 글에서 나쁜 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글을 잘 쓰는 사람입니다. 자기 글에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는 수준까지 빨리 올라가야 합니다. 자기 글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문제점만 제거해도 글쓰기는 순식간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됩니다. 자기 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른다면, 정말 큰 문제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자기 글을 들여다보십시오. 자기가 쓴 글들을 '원수가 보내온 편지'라고 생각하고 여러 차례 읽어보십시오. 버릇이 발견될 때까지 읽으십시오. 2.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찾아라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기자나 작가의 글을 집중적으로 읽으십시오. 글쓰기의 모델을 하나 설정하는 것입니다.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은 반드시 좋아하는 가수가 있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가 지망생은 필사하고 싶은 선배 소설가가 한둘은 꼭 있습니다. 좋은 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그대로 베껴 쓰십시오(필사). 외우면 더 좋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적극 모방해보십시오. 그 과정에서 글쓰기 수준이 몰라보게 향상됩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국내 소설가 대부분이 선배 작가의 소설을 필사하면서 습작기를 거쳤습니다. 추천하고 싶은 필자 '모델'은 문인 이외에, 혹은 문인이면서 매체에 자주 기고하는 분들입니다. 제가 추천하고 싶은 분들은 도정일(문학평론가),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 고종석(소설가 겸 언론인), 김훈(소설가 겸 언론인). 배병삼(정치학 및 동양학), 한형조(동양철학), 송호근(사회학), 고미숙(문학평론가),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등입니다. 이외에도 좋은 필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3. 새롭지 않으면 쓰지 말라 저널리즘의 생명은 새로움입니다. 새롭지 않으면 뉴스가 아닙니다. 저널리즘이 아니라도 그렇습니다. 모든 글쓰기는 새로워야 합니다. 사실이나 의견에서 새로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표현이라도 새로워야 합니다. 새롭지 않다면 신기하거나(의외성) 흥미로워야 합니다. 새로움, 의외성, 흥미, 이 세가지 중 한 가지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글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4. 자세히 관찰하라 관찰은 모든 글쓰기의 스타트 라인입니다. 사물이든 사건이든 인물이든자 세히 관찰하지 않고서는 정확한 글쓰기가 불가능합니다. 관찰이 부정확하면 사실관계가 흔들립니다. 정확히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오감 가운데, 시각이 특히 부정확합니다. 주변 환경에 따라 착시 현상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상기해보십시오. 관찰은 단지 시각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많이, 그리고 정확히 느끼는 것도 관찰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책읽기, 영화 감상, 미술 감상 등도 관찰입니다. 관찰은 대상에 대한 집중입니다.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선입견을 버리고, 현상학적으로 말하자면 판단을 중지하고) 대상에 몰입했다가, 다시 대상으로 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상상력은 이 관찰 단계에서 나옵니다. 관찰 훈련의 첫 단계는 자기가 본 것으로 소리 내어 말해보는 것입니다. 관찰 대상이 인물이라면, 머리 모양과 색깔, 길이에서부터 이목구비를 거쳐 구두까지 관찰하면서 하나하나 말해보십시오. 컴퓨터나 텔레비전, 화분, 식탁, 자동차 실내 등 늘 마주치는 대상을 하나 정해서 소리 내어 하나하나 관찰해보십시오. 그동안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것이 발견입니다. 낯익은 것에서 낯선 것을 찾을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최고의 글쓰기 재료입니다. 5. 메모하고, 메모하고 또 메모하라 기억력이 남다르다고 해도, 메모를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뛰어난 작가는 물론이고 예술가, 심지어 기업의 CEO들도 메모를 자주 합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메모광입니다. 인간이 하루에 접하는 새로운 정보(자극)는 수십만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 하루를 돌이켜보십시오. '오늘 내가 새로 느낀 것, 새로 발견한 것'을 떠올려보십시오. 거의 없을 것입니다. 주머니 혹은 핸드백에 작은 수첩과 필기구를 반드시 챙기십시오. 수첩과 필기구를 챙기는 습관이 들었다면, 글쓰기를 위한 가장 필수적인 요건을 갖춘 것입니다. 저는 화장실에도 연필과 포스트잇을 갖다 놓습니다. 주머니에 메모지와 볼펜이 없으면 산책도 하지 못할 만큼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천 번 새로운 생각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글쓰기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좋은 글은 메모지에서 나옵니다. 메모지가 '상상력 발전소'입니다. 개성적인 글쓰기를 위한 세부 지침 1. 나로부터 시작하라 저널리즘적 글쓰기, 특히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나'는 차가운 전달자입니다. 스트레이트 기사에는 글쓰는 사람의 주관이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활자매체의 기사는 연성화하고 있습니다. 피처 기사, 칼럼 등은 대단히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문체를 구사합니다. 기사작성 연습을 하고 싶다면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서전을 써 보거나, 자기가 자기를 인터뷰하는 것입니다. 가족이나 친구를 소개하는 글도 좋은 훈련이 됩니다. 자기가 사는 마을(아파트)을 취재해 사진과 곁들여 기사를 써보는 것도 훌륭한 저널리즘적 글쓰기입니다. 시나 소설을 쓰기 원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쓰십시오. 문학적 글쓰기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 가운데 하나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서 출발하십시오. 나에 대해, 나의 가족과 친구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잘 알고 있는 소재를 글로 쓸 때,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나'에 대한 글쓰기는 자기 삶을 성찰하는 진지한 계기를 제공합니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이 같은 인문학적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은 글쓰기 말고 거의 없습니다. 2. 반복하지 말라 반복은 강조할 때 말고는 피해야 합니다. 반복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표현의 반복과 내용의 반복이 그것입니다. 같은 단어, 같은 표현을 반복하지 마십시오.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유의어를 쓰십시오. '그녀는 아름다운 숄을 두르고, 아름다운 가방을 들었으며, 아름다운 마을에 산다. 이 문장에서 '아름다운'은 반복될 뿐만 아니라, 정확하지도 않습니다. 글쓰기의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내용의 반복입니다. 중언부언하지 마십시오. 같은 내용(견해, 정보, 지식......)이 반복되면 독자는 냉정하게, 즉각 눈을 돌립니다. 친구와 이야기할 때를 떠올려보십시오. 어제 한 얘기를 오늘 하면 친구는 즉각 이렇게 나옵니다. "그거, 어제 들은 얘기야."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3. 한 문장에는 하나의 정보만 담아라 이것은 문장을 짧게 쓰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한 문장에는 하나의 정보, 한문단에도 하나의 정보군을 담는 것입니다. 한 문장에 두 개 이상의 정보를 담는 순간, 문장은 길어집니다. 한 문단에 두 개 이상의 정보군을 담으면, 복잡해지기 때문에 독자가 이해하기 힘들어집니다.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 또는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한 문장, 하나의 정보' 원칙에 따라 글로 써보십시오. 처음에는 대단히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몇 번 고쳐 쓰다보면, 문장을 짧게 쓰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할수 있을 것입니다. 4. 접속사를 쓰지 말라 통학 또는 통근 과정을 '한 문장, 하나의 정보' 원칙에 따라 쓰다 보면, 수시로 접속사가 끼어들 것입니다. 접속사 없이 쓰려고 애써보십시오. 최근에 읽은 소설 가운데 접속사가 거의 ('전혀' 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없는 소설이 있습니다.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인데, 접속사에 유의하며 읽어보십시오. 매우 흥미로운 글읽기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접속사는 글 쓰는 이의 마음속에 있어야 합니다. 특히 연결형, 나열형 접속사를 피하십시오. 5. 나누고 묶어주어라 기사를 쓸 경우, 다양한 정보를 한꺼번에 제공해야 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럴 때는 유사한 것끼리 묶어줘야 독자가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음식 종류를 소개한다면, 국적별 혹은 재료별, 계절별 등으로 나누어 묶어줍니다. 6. 병치할 때 조심하라 같은 기능을 가진 단어, 구, 절 등이 나란히 놓일 때 자주 오류가 나타납니다. '사과와 큰 배' '철수는 중학생이고 영희는 공부를 잘한다'와 같은 문장이 의외로 많습니다. '사과'라는 단어와 '큰 배'라는 구는 병치하면 안 됩니다. 단어는 단어끼리, 구는 구끼리 병치하십시오. '사과와 배' '작은 사과와 큰 배'가 적확한 표현입니다. 앞의 문장은 '철수는 중학생이고, 영희는 초등학생이다로 써야 합니다. '중학생' (단어)과 '공부를 잘한다' (구)가 나란히 놓이면 대단히 어색합니다. '30-3-30 법칙'을 명심한다 언론인들은 30-3-30 법칙'을 자주 언급합니다. 여기서 30. 3. 30은 각각 30초, 3분, 30분을 일컫습니다. 독자들이 기사를 읽을 때, 처음 30초 동안은 제목이나 부제, 사진, 그래픽 요소, 기사의 도입부 등을 살펴본다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처음 30초 안에 기사를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만일 읽기로 마음먹었다면 다음 3분 동안 기사의 도입부를 읽습니다. 그리고 도입부가 흥미롭다면 30분 동안 기사를 끝까지 읽는다는 것입니다. 기자와 편집자는 처음 30초를 3분으로 늘리고, 다시 3분을 30분으로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기사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든 글이 제목과 도입부에서 결정납니다. 시처럼 짧은 글에서도 제목이나 첫 연이 진부하면 독자들은 눈을 돌려버립니다. 소설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보고서나 논문도 마찬가지입니다. '30-3-30 법칙'은 첫 문장에 목숨을 걸라는 저널리즘적 글쓰기의 핵심을 압축하고 있는 법칙입니다. 이문재. 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경희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시사저널 취재부장, 문학동네 편집주간을 역임했고, 현재 <시사IN> 편집위원, <문학동네〉 편집위원,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 등이 있다(pp.197-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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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 “흥청망청” 108회 선관위... 명분없는 돈 낭비
    본 기사는 교회발전연구소 대표 이능규 목사에게 모 인사가 108회 선관위(위원장 권순웅 목사)에 대해 제보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기사임을 밝힌다. 제보 내용에 따르면 선관위가 불필요한 돈을 낭비하고 있다. 제108회기 선관위는 공정선거감시단 해외 활동에 이미 많은 경비를 집행했다. ▲전국장로회연합회 임역원수련회(일본) : 고정식, 손정호, 김삼주, 신덕수, 한기영(750만원 집행) ▲농어촌교역자부부수양회(다낭) : 권순웅, 신덕수, 지동빈, 임종환, 최병도(613만원 집행) ▲전국교역자하기수양회(필리핀) : 전웅구, 김상원, 유병희, 한기영, 이상돈(599만 5천원 예산). 이때 위원장 권순웅 목사와 서기 한기영 목사가 강사를 맡았다고 한다. 현재 바뀐 선거규정에 따라 후보자는 행사에 참석할 수 없다. 그런데 선관위 공정선거감시단은 누구를 감시하기 위해 해외 행사에 동행하는 것인가? 제보자는 “돈**”이라는 격한 표현을 사용했다. 또한 선관위는 민찬기 목사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비로 5천 5백만원을 지출했다. 선관위원들이 1차 투표해 7대7로 나왔다면 의견이 팽팽하다는 것인데 굳이 다시 투표해 7대8로 만든 것이 화근이다. 증경총회장단이나 실행위원회에 넘겨 자문을 구했다면 굳이 총회 돈을 지출할 소송에 휘말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감사부는 107회기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배광식 목사)에 대해 특별재정감사를 하고 있다. 어제는 서기와 회계를, 오늘은 위원장과 심의분과장을 부른다. 안건은 선관위가 재정을 과잉지출했다는 것이다. 모 선관위원은 자기들은 비용을 아껴서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기에 특별재정감사를 받는 것이다. 앞으로 108회기 선관위도 감사부에 의해 특별재정감사를 받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이 악순환을 끊어야한다. 선관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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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4-05-03
  • 【북토크】 가수 장기하의 깨달음
    가수 장기하를 좋아한다. 노래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의 대중적인 첫 노래 “싸구려 커피”, “달이 떠오른다, 가자” 등은 신선했다. 읽을 책들을 검색하다 보니 그가 몇 년 전에 쓴 것이 있어 대출해서 봤다.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첫 장인 ‘안경과 왼손’은 주어진 환경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돌아본 후 감사하는 내용이다. 읽어볼만해 전문을 소개한다. 안경과 왼손 얼마 전 안경을 잃어버렸다. 매우 아끼는 안경이었다. 아니, 아낀다는 표현으로도 모자란다. 이삼 년 전 그 안경을 산 이후로는 오직 그것만 써왔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있을 만한 곳을 전부 다 여러 번씩 싹싹 뒤져봤지만 찾지 못했다. 결국 예전에 썼던 다른 안경을 쓰고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 이삼 일 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마음을 털어버렸다. 그래, 그 안경이랑은 여기 까지였나보지 뭐. 나는 국소성 이긴장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다. 해괴해 보이는 이름이지만 의미는 간단하다. '국소성'이란 특정 부위에 나타남을, '이'는 이상함을, '긴장'은 말 그대로 긴장을 뜻한다. 한마디로 특정 부위가 이상하게 긴장된다는 얘기다. 이 병명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는 '이'다. '이'자가 들어간 병을 선고받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런 상황이다. 몸이 안 좋다. 병원을 찾아가 묻는다. "선생님, 저 왜 아픈건가요?" 의사가 답한다. "그러게요. 이상하네요." 그렇다. 내 병은 원인도 치료법도 알려지지 않은 희귀병이다. 이 병이 처음 생긴 것은 대략 십오년 전쯤으로, 군악대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눈뜨고코베인'이라는 록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었다.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드럼 하나로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연주를 잘하는 사람, 즉 프로 드러머가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외의 진로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학교 공부는 최소한으로 하고 드럼 연습과 밴드 활동 위주로 생활했다. 그러다보니 군복무를 시작도 하지 않은 채 대학 오 년 차를 맞았고, 더이상은 입대를 미룰 수 없게 되었다. 내 선택은 당연히 군악대였다. 군대에 있는 동안 손발이 녹슬면 큰일 아닌가. 일반 부대는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군악대는 록 연주만 잘한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클래식 타악, 특히 행진곡풍의 연주에 능통해야 했다. 자신은 있었다. 이미 연습이라면 많이 해온 터였기 때문이다. 좀 다른 장르의 연주라고 해서 못 해낼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시험을 대비해 맹연습에 돌입했다. 이삼 개월쯤 지났을 때 복병이 나타났다. 연습만 하려고 하면 내 의지와 관계없이 왼손이 꽉 쥐이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드럼 연주의 기본은 그립이다. 누가 툭 치면 놓쳐버릴 듯 살며시 스틱을 잡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만들어야 빠르고 정확한 연주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꾸 나도 모르게 스틱을 힘껏 잡게 되고 그것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연습하다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스틱을 집어던진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결국 군악대는 포기했다. 치료법도 알 수 없고 상태가 호전될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프로 드러머의 꿈도 함께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리 절망스러운 단념은 아니었다. 내 생각의 흐름은 이랬다. '하긴 군악대의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연주하는 게, 내가 멋있는 음악을 하는 데는 오히려 해가 될지도 몰라. 멋있는 음악이라... 그래, 생각해보면 프로 드러머가 되는 것 자체가 멋있는 음악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겠네. 연주로 먹고살려면 돈 되는 음악을 해야 하는데, 내가 지금 멋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음악 중에 돈 되는 게 하나라도 있나? 그리고 나는 우리 밴드 음악이 제일 멋있는데 그걸로 돈을 벌어본 적도 없잖아? 애초에 음악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였어!'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프로 연주자가 아닌, 돈은 안 돼도 '멋있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일반 부대에 입대했다. 제대한 후 나는 그 '멋있는' 뮤지션이 되는 일을 실행에 옮겼다.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한 상태에서, 내가 싱어송라이터로서 이끄는 새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한 것이다. 최소한의 돈과 최대한의 시간을 확보해 자유롭게 음악활동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곡은 군복무중 짬짬이 만들어뒀었다. 물론 큰 인기를 얻으리라는 기대는 전혀 없이 만든 노래들이었다. 눈앞에 있는 관객들만은 확실히 재밌게 해주겠다는 생각이 다였다. 그런데 터졌다. 소위 '대박'이었다. 활동을 시작하고 일 년이 지나기도 전에 전 국민적 히트곡을 보유한 밴드가 된 것이다.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순조로웠다.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왼손에 힘이 들어가는 증상이 기타를 연주할 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 증상이 신기했던 건 유독 드럼 연주를 할 때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다른 일을 할 때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물론 기타 연주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군복무중에도 생활관에 비치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만들었고, '장기하와 얼굴들' 첫 싱글을 녹음할 때도 기타는 내가 다쳤으며, 밴드 활동 초기에는 공연을 할 때도 절반 정도의 곡에서는 내가 기타를 잡았다. 그런데 급격하게 치솟는 인기를 실감하며 공연을 이어가던 어느 날, 기타를 연주할 때도 왼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기타도 포기했다. 이번 단념은 군악대 때와는 달리 좀 절망스러웠다. 공연에서 기타를 연주하지 않기로 했음은 물론이고, 평소에 혼자 치는 것도 거의 못하게 됐다. 늘 자유자재로 하던 기본적인 플레이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니 짜증이 치밀었다. 자연히 심심풀이로 기타를 잡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중학교 때 이후로 그때까지 줄곧 기타는 나의 가장 좋은 취미 중 하나였다. 집에 있을 때면 침대에 누워 기타를 배에 얹고 아무렇게나 퉁겼다. 그러면서 멜로디를 이리저리 흥얼거리다보면 이따금씩 노래가 만들어지곤 했다. 그런 일상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날아가버렸다. 게다가 이번에는 증상이 연주에만 국한돼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일상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곧 타자를 치는 것도, 단추를 잠그는 것도, 왼손을 써야 하는 어떠한 일도 예전만큼 쉽게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로부터 십 년이 흘렀다. 그런데 그 십 년을 돌이켜보면, 이 병이 내게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사실 병에게 엎드려 절하고 싶을 지경이다. 프로 드러머의 길을 포기함으로써 결국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타 연주를 포기한 것 역시 내게 두 가지 커다란 선물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새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 형을 영입한 것, 둘째는 내가 무대에서 악기 없이 자유롭게 퍼포먼스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장기하와 얼굴들’의 활동이 내게 가져다준 희열은 말도 안 되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증상도 아주 조금씩 좋아져 이제는 거의 다 나았다. 지금도 약간의 느낌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일상에서 그것을 의식하게 되는 일은 드물다. 기타와 드럼도 취미 정도로는 다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 연습을 안 했으니 남들 앞에 뽐낼 만한 연주력은 당연히 아니지만, 사실 이제는 그런 능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좋은 연주자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증상이 가장 심했을 때를 떠 올리면 집에서 혼자 재밌게 연주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지금도 이 병의 원인은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듯하고, 물론 나도 아직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이렇게 추측할 뿐이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과도한 것을 강요했고, 몸이 그만두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충분히 쉬게 해주었으며, 그랬더니 시간을 두고 차츰 회복되었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그리고 형체가 없긴 하지만 능력도 마찬가지다. 어제까지 당연히 할 수 있었던 일을 오늘 갑자기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무척 괴롭긴 했지만, 결국 다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 능력은 여기까지인가보다, 하고.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 맞춰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그러고 나면 그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다른 길이 열리곤 했던 것이다. 안경은 며칠 뒤에 소파 밑에서 찾았다. 전날 술에 취해 소파에서 잠들었고, 안경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는 과정에서 소파 아래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거실에서 잠드는 일이 거의 없다보니 그곳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먼지 구덩이 속에 얌전히 놓인 안경을 발견한 순간, 그야말로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많이 아끼는 안경이라 해도, 물건 하나로 그렇게까지 기쁠 수 있다싶었다. 모르긴 해도, 깨끗이 포기했었기 때문일 거다(pp.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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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5-02
  • 【단상】 부총회장 선거, 축제가 싸움판으로
    지난 4월 25일 오전 11시 참좋은교회(이윤찬 목사 시무)에서 대구교직자협의회 제31회 정기총회가 있었다. 이승희 증경총회장의 개회 예배 설교 후 합심기도 시간에 경북교직자협의회 대표회장 강전우 목사가 ‘총회와 영남지역을 위해서’ 기도할 때 부총회장 자격 문제로 소송이 붙은 총회를 염려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소송 관계자인 부총회장 후보 민찬기 목사나 장봉생 목사의 마음은 어떨지 모르나 총회 회관에서 먼 경상도 지역에서도 현 사태를 매우 안타깝게 여기며 탄식으로 기도하고 있다. 아마 이 사태를 지켜보는 대부분의 총대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한 사람의 부총회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물질이 필요하다. 노회와 협의회, 총회 등에서 오래 봉사하며 자신을 알려야한다. 이에 많은 시간이 든다. 그리고 물질로도 많이 섬겨야한다. 그래서 아무나 부총회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시간과 물질로 섬겨온 부총회장 후보들은 모두 총회의 귀한 자산이다. 바람직한 것은 단독 후보로 추대되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경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친했던 사이도 서먹해지거나 “원수” 사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곽선희 목사는 운동을 할 때 서로 마주보는 것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탁구나 테니스나 서로 마주보고 하다보면 감정 싸움이 될 수 있기에 자기는 각자 실력으로 승부하는 볼링을 한다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오래 세월 총회를 섬겨온 민찬기 목사나 장봉생 목사는 현재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내리 누르고 이겨야할 경쟁 상대로 보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런 면에서 선거란 참으로 잔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민찬기 목사 소속 임원회가 민찬기 목사의 후보 자격에 대해 물었을 때 장봉생 목사 소속 노회도 임시노회를 열어 부총회장 출마 자격에 대해 선관위에 질의했다. 선관위가 이 문제를 다룰 때 투표에 처음에는 7:7 동수가 나왔다. 이어 재투표하여 7:8로 세 번 출마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 지나간 일이지만 의견이 7대 7로 나뉘었다는 것은 선관위원 내에서도 의견이 팽팽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문제를 바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좀더 시간 여유를 두고 처리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증경총회장단의 의견을 듣는다든지, 실행위원회에서 의견을 구했다면 모양세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속전속결로 재투표해 7:8로 세 번 출마 불가로 정했다. 그러자 민찬기 목사측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소송을 했고, 소속 노회에서 부총회장 후보로 추천을 받았다. 세상 법정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두고보면 된다. 그런데 성경은 교회 문제를 세상 법정에 끌고가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고전6:1-7]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새로이 총회를 섬길 일꾼을 뽑는 총회 선거가 축제가 아니라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사법의 판결을 받아야하는 싸움판이 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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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4-04-26
  • 취재 기자를 내쫓는 노회들...무엇이 두려운가?
    봄 정기노회가 열리는 계절이다. 서울에서 먼 지방의 몇몇 노회를 취재갔다. 그 중 2개 노회에서 “내쫓김”을 당했다. 이리노회는 북일교회 문제로 회원 호명 때부터 시끄러웠다. 결국 노회원들간에 고성이 오갔다. 이런 가운데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거칠게" 요구했다. 결국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 충청노회도 전 총신대총장 김영우 목사 피소건에 대해 다루며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험악하게” 요구했다. 결국 본당 중이층으로 쫓겨갈 수 밖에 없었다. 기자는 사실을 취재하고 알리기 위해 그 현장에 가 있는 것이다. 북일교회 문제는 대부분의 총회원들이 알고 있을만큼 큰 이슈이다. 당연히 기자들이 가서 취재할 수 밖에 없는 사항이다. 기자는 총회원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대신해서 그 현장에 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기자들을 내쫓는 것인가? 그것이 과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는가? 기자가 보면 안될만큼 감춰야할 문제가 있는가? 사실을 사실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 없는 노회는 취재간 기자들을 반기며 좋게 기사를 써서 노회를 잘 홍보해 달라고 부탁한다. 기자로서도 기분좋은 일이다. 반면 문제 있는 노회는 기자를 내쫓는다. 마치 잡상인 취급을 한다. 부득이 기자를 내보낼 필요가 있다면 “정중하게” 요청했으면 한다. 같은 합동측 목사한테 그렇게 함부로 해서 되겠는가? 앞으로도 “문제 있는” 이리노회와 충청노회 “사태 추이”에 대해 예의주시할 것이다.
    • 오피니언
    • 칼럼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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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연”인가? “감사“인가?
    저녁 10시경에 ‘띵’하고 문자 하나가 왔다. 알지 못하는 번호로 온 문자였고,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대전 새로남교회에서 곧 열리는 총회를 위해 교회에서 만든 주차 안내를 기사로 만들어 자비로 전 총대들에게 단체 문자 전송했다. 주차 동영상까지 만든 새로남교회의 세심함에 감동 받아 교단 목사 기자로 총대들에게 서비스를 한 것이다. 몇몇 아는 분들이 고맙다고 톡으로 문자로 응답했다. 그런데 이게 왠 뚱딴지 같은 반응인가? 과연 총회를 개최하는 교회가 모든 총대들의 주차비를 부담해야한다는 법이라도 있는 것인가? 이것은 교회적으로 큰 배려이며 섬김이다. 그러면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 된다. 그것을 어찌 “당연”하다고 말하고 그걸 기사로 쓴 기자를 “깝깝”하다고 할 수 있는가? 전 총대 전화번호가 있어 하루가 지난 후 망설이다. 검색해 봤다. 어느 목사의 이름이 검색됐고, 총회 홈페이지에서 경북 지역의 B교회라는 것을 알아냈다. 네이버 지도를 통해 교회 건물까지 볼 수 있었다. 지금이 그런 세상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생각해 보면 모두가 고마운 것이고 감사한 것이다. 목회할 때 한 청년이 교육전도사에게 “전도사님은 사례를 받으니까 교회 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어이가 없었다. 교역자가 받는 돈은 “월급”이라고 하지 않는다. “사례”라고 한다. 사례란 감사해서 드리는 것을 말한다. 그 청년은 자기가 교사를 하면서 월급을 받기에 교육전도사도 교회 일 해서 받으니 월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새로남교회 담임인 오정호 목사가 총회장이 되니 오 목사나 전교인들은 총대들을 정성으로 섬기고자 한다. 건물 전체를 개보수하면서 “환대총회”를 할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주차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고 준비하고 있다. 그러면 이것이 “당연”한 것인가? “감사”한 일이 아닌가? 왜 나는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목사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면식도 없는 내게 그렇게 “문자 지적질”을 하는가? 그 목사는 맥추감사절이든 추수감사절이든 감사절기에 도대체 무엇이라 설교할지 궁금하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설교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은혜도, 주시는 복도 “당연”하다고 설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수고를 당연히 여기는 그 목사가 부끄럽고 안타깝다. 그래도 1600여명의 총대중 한명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목사나 장로가 한 명 더 있었다면 나는 합동 교단에 절망했을 것이다. 마침 지나가는 버스 이름이 “땡큐 버스”인 것이 눈에 띄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옛말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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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3-09-11
  • 【단상】 나는 왜 노회장을 못했나?
    지난 8월 31일 오전 11시 초량교회에서 공천위원회로 모여 정여균 목사를 공천위원장으로 선출했다. 공천위원회는 108회 총회 상비부를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총회 산하 160여개 노회의 노회장만이 모여 투표할 수 있다. 이날 아는 몇몇 목사가 노회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장(長)은 중요하고 명예로운 자리이다. 총장, 학장, 총회장, 노회장, 당회장, 부장 등등.. 장은 한 조직을 책임지는 수장이다. 이날 모인 노회장은 노회를 책임지는 자들이다. 노회임원 경험과 돌발 변수 나는 군목 4년, 부목사 3년, 5년을 마치고 40살에 H노회에 속한 동암교회에 담임으로 부임했다. 증경총회장이신 한석지 목사님께서 원로목사로 살아계신 노회의 중심되는 교회였다. 그러나 전임자가 위임문제로 갈등하다 사임해 나는 처음부터 위임청빙을 받았고 부임 2달 만에 위임식을 했다. 이후 45세부터 노회 임원을 시작했다. 임원직 모두를 다 경험해 보고 싶어 부회의록서기, 회의록서기를 하고 1년 쉬고, 부서기, 서기를 하고 또 1년을 쉬었다. 그것이 규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52세에 부노회장으로 나갈려고 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임원에 나서는 자들은 노회발전금을 내야했는데 그동안 부노회장은 300만원, 노회장은 100만원이었다가 이때 일괄적으로 노회장을 제외한 모든 정, 부 임원들의 분담금이 올랐다. 그래서 부노회장은 400만원을 내야했다. 이미 당회에 300만원이라고 말하고 허락받은 입장에서 다시 말하기도 그렇고 400만원을 낸다는 것도 부당하게 여겼다. 결국 현역에서 부노회장 지원자들이 없어 증경노회장들이 2년간 분담금 100만원을 내고 노회장을 했다. 이후 다시 분담금이 내렸다. 그래서 3년만에 다시 부노회장으로 나갈려고 했는데 내가 서기 때 부서기를 했던 연장자 목사도 부노회장으로 나설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양보했다. 그리고 교회에 문제가 생겨 담임 15년만에 노회장도 못해보고 목회를 중단했다. 400만원이라도 내고 부노회장을 했었다면 노회장을 해봤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양상이 달랐을 것이다.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또 다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규모있는 교회가 임원을 해야 H노회에 있을 때 시골의 한 목사님은 자신의 교회에서 임시노회를 개최한 것을 감격스러워했다. 교회 규모가 작아 은퇴할 때까지 임원을 해볼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그래도 자기 교회 후임자 문제로 임시회를 하는 것이라 개최하면서 기뻐했었다. 그렇다. 노회 임원은 아무나 못한다. 교회가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한다. 더더욱 노회장은 그 노회를 대표하는 것이기에 외형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면에서 나는 충분히 노회장을 할만한 위치였는데 분담금을 100만원 올리는 바람에 의미없다고 생각해 포기한 것이다. 다 부질없고 은혜만 남더라 이제 다 지나간 일이다. 노회장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노회든 총회든 임원이 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직책을 수행하기를 노회장도 못해보고 서기로 끝난 필자가 응원한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유행가 가사가 개사돼 “♬노회장은 아무나 하나♫”라고 머리 속에서 맴돈다. 총회선거를 앞둔 상황에서도 그러하다 “♬총회 임원은 아무나 하나♫” 웃자고 쓴 글이니 그냥 웃으시기를....
    • 오피니언
    • 칼럼
    2023-09-09
  • 【논설】이이복 장로 부총회장 후보 탈락을 돌아보며
    생각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지난 9월 4일 광주에 있는 송정중앙교회를 찾았다. 108회 총회 임원 · 총무 후보 정견발표회가 처음 있는 날이었다. 이 날은 중부, 호남 지역이 대상이었다. 먼 거리라 조금 늦어 계단을 뛰다시피 바쁘게 발표회장인 본당을 향하는데 이이복 장로가 바닥에 앉아 있고 주위에 여러 사람들이 둘러 서 있었다. 이 장로는 “선관위가 사법으로 가게 만드는 것을 규탄한다”는 항의문구를 양손에 들고 있었다. 생각지 않은 일이라 놀라서 그 장면을 찍을 생각을 못했고 추후 이에 대한 기사를 다룰 때 다른 분에게 사진을 얻어서 사용했다. 1시간 넘어 정견발표회가 끝났을 때 이이복 장로 선거대책본부장인 현상민 목사는 이 장로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하고 개인과 노회 차원의 법적 대응을 예고하는 즉석 기자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결국 이이복 장로는 후보 탈락됐다. 그리고 이이복 장로 선거대책본부장인 현상민 목사는 9월 6일 총회준비위원회(위원장 정영교 목사, 이하 총준위)가 마련한 교계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이이복 장로 부총회장 선거대책위원장인 현상민 목사입니다. 제108회 선거에 있어 아쉽게도 장로부흥회장 후보인 성남노회 소속 이이복 장로께서 후보자격이 상실됨에 있어 비통한 마음을 이루 금할 길 없습니다. 지금까지 후보이신 이 장로님을 적극 지지와 응원을 아끼지 않으신 수많은 목사님 장로님들에게 저희 캠프의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 도리인 것 같아서 이렇게 기자회견을 갖게 되었습니다. 첫째, 우리는 지금 이후 어떠한 정치적 분쟁도 원하지 않습니다. 둘째, 총회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법적인 대처도 하지 않겠습니다. 셋째, 총회의 정치적 발전을 위해 미약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총회가 선거법의 대대적인 기틀을 만드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넷째, 비록 후보의 자리에서는 내려가지만 우리 교단의 발전과 부흥을 위해 이이복 장로 캠프의 모두 팀원들이 개혁적인 총회를 위해 협력을 다하겠습니다. 지금 이이복 장로는 기도원에서 우리 총회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같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쁜 시간을 내어 기자회견에 참여해 주신 언론인, 관계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이복 장로나 선거 캠프는 가처분 신청 등 사법 대응을 할려고 했다. 그러면 총회나 노회, 당사자는 큰 후유증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장로나 선거 캠프는 억울한 부분이 있어도 총회를 위해 큰 결단을 한 것이다. 그래서 108회 총회를 준비하는 총준위가 기자간담회에 현상민 대책위원장에게 발표 시간을 준 것으로 보인다. 만약 선거 문제를 사법으로 가져가면 108회 오정호 총회장이 지향하는 “정책총회, 개혁총회, 환대총회, 칭찬총회, 명품총회”는 시작부터 장애물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억울한 부분이 있고 할 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捨小取大하고 大爲小犧한 이이복 장로와 선대위에 감사하다. 아울러 조속한 회복을 기원한다. 오랜 기간 준비했을 터인데 불미스러운 일로 중도탈락했으니 많은 아픔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더 이상의 비난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선관위의 결정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올해는 특이하게도 총회 임원이나 총무나 모두 경선이다. 단독 후보가 된다면 경선에 대한 부담감 없이 얼마나 자유로울까? 우리는 그 모습을 부임원에서 정임원으로 되는 후보들에게서 볼 수 있다. 1년 전 경선 때 모습과 확연히 다르지 않은가? 경선 후보들은 모두 총회를 위하는 마음으로 후보 등록비를 내고 시간을 내며 선거에 임하고 있다. 탈없이 이이복 장로가 경선을 했다면 어땠을까? 낙선자는 총대들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확인하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였을 것이고 당선자는 지지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답하기 위해 더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선거를 코앞에 두고 상대방 후보의 탈락으로 단독후보가 된 김영구 장로에게 이러한 사태는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자신에 대한 지지세력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할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작은 차이로 당선됐다면 겸손하게 장로부총회장의 일을 시작했을 것이며, 큰 차이로 당선됐다면 그에 대한 큰 부담감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이제는 그 기회를 놓쳤다. 경선까지 가지 못하고 탈락한 이이복 장로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 일로 부인 권사는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고 당사자는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하고 병약한 담임목사는 큰 충격을 받았다. 모두에게 후유증이 없기를 기원한다. 생각지 않은 후보 탈락을 보는 기자의 마음은 씁쓸하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총회 선거때까지 모든 경선 후보들의 건승을 빌어본다. 하필이면 “미래 낙선자에게 주는 위로(?)의 글"이라는 기사를 올리고 다음날 이런 일이 생겨 글을 쓴 필자도 당황스럽다. 모든 후보들에게 화이팅! 기사링크: “미래 낙선자에게 주는 위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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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3-09-09
  • CTV(기독TV)개국...우려와 염려
    9월 6일 총회회관 5층에서 CTV(기독TV)개국 감사예배가 있었다. 기독신문사에서 만든 미디어 매체이다. 우선 본질적으로 CTV가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 이미 케이블을 통해 활동하는 여러 기독교 방송 매체가 있다. CTV는 케이블이 아니라 유튜브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유튜브의 속성상 많은 콘텐츠가 올라와야한다. 매번 업데이트가 되지 않으면 외면받는다. 유튜브는 신문기사와 달리 동영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현장에서 취재해야하고 이후 편집 과정을 거쳐 유튜브로 올리는 것이다. 과연 총회와 교회내에 콘텐츠를 만들어 올릴만한 일들이 많이 있는지 의문이다. 콘텐츠가 없으면 CTV는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얼마전 기독신문에서 GTV뉴스(?)인가를 만들면서 방송용 부스까지 만들었는데 결국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또한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인력, 비용이 든다. 현재 미디어국 직원을 보니 모두 쟁쟁하다. 이들이 자원봉사라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영상 제작비와 인건비를 어떻게 충당할지 의문이다. 기독신문도 교단지라 광고를 거의 독점 하면서도 부채에 시달려 매주 교회를 방문해 문서선교예배를 통해 지원을 요청하고 있지 않은가? 잘못하면 미디어국 운영으로 인해 또다시 재정 악화의 늪으로 빠질 수 있다. 결국 그렇게 되면 교회에 또 다시 손을 벌려야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기는 쉽다 그러나 키우기는 어렵다는 것이 상식이다.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쉬우나 잘 유지하고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다. CTV(기독TV)개국은 기자의 사견이지만 매우 우려스럽고 염려스럽다. 기우에 지나지 않기를 바라본다. 개국에 축하가 아니라 찬물을 끼얹어 미안하다. 그러나 현실이 그러니 어찌하랴.
    • 오피니언
    • 논단
    2023-09-06
  • "고영기 목사는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과연 그럴까?
    고영기 총회총무가 휴무 전 있었던 총회전산망 불법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뉴스파워가 고 총무를 대변하는 기사를 8월 13일자에 실었다. 이에 대해 상대측 총무 경선 후보 박용규 목사가 속한 대구중노회는 선관위에 고영기 총무의 언론 인터뷰에 대해 이의신청했다. 곧 선관위는 이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그러자 뉴스파워가 9월 3일자 기사에 “고영기 목사는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았다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한 전화 통화를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한 것은 지나치다”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다음은 그 기사의 전문이다. 예장합동 총회총무로 오는 9월 18일 대전 새로남교회에서 열리는 제108회 총회에 총무 재선거에 나선 고영기 목사가 뉴스파워와 전화통화한 것으로 인해 선거법 위반으로 총회 선관위에 고발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 목사는 선거법 위반을 하지 않았다. 총회 사무국이 휴일이었던 지난해 12월 30일 총회전산망을 열어 부천 혜린교회 이바울 목사의 개인정보를 도촬해 사법부에 제출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중앙노회장 김용제 목사는 8월 11일 오후 2시 기독교연합회관 2층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에 대해 뉴스파워는 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기자간담회가 끝난 후 고영기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에 대해 질의를 했다. 고 목사는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이다. 그리고 이틀 후인 13일 전화통화 내용을 기사화한 것이다. 고 목사가 뉴스파워에 전화를 걸어온 것도 아니고, 선거에서 고 목사가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기사를 쓰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 목사를 선거법 위반으로 총회선관위에 고발한 것은 상대 후보에게 유리한 선거 국면을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총회선관위의 결정을 주시한다. 그러면 대구중노회가 고영기 총무 후보를 선관위에 문제 삼은 근거는 무엇인가? 선거법 제28조(선거운동의 범위와 한계) 3항이다. 3. 선거운동 시 입후보자 본인의 제작 동영상은 사용 가능하나 기자 인터뷰, 기자들에 의해 제작된 방송은 불가하고, 본인 이외의 타인이 유포할 시 해 당사자와 유포자에게 경고장을 발송하기로 하되 재발 시 수사의뢰 하기로 하다. 분명히 기자 인터뷰는 불가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인터뷰는 공개기자회견이나 단독기자회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후보나 기자가 누가 먼저 전화했든지 나눈 대화를 기사화하는 것이 바로 인터뷰이다. 그런면에서 뉴스파워 기자는 고영기 총무와 전화통화를 했고 그 대화를 기사에 직접 인용하지 않았던가? 뉴스파워 8월 13일자 기사를 직접 인용해 보겠다. 이와 관련 고영기 총무는 11일 오후 뉴스파워와 전화통화에서 오는 9월 새로남교회에서 열리는 제108회 총회에서 총무 재선에 나선 상황이라면서 “지난 6월말로 휴직 상태라서 총회 회관을 나가지 않고 있다.”면서 “만일 총무선거에서 재선하게 되면 반드시 진상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고영기 목사는 “이바울 목사 개인정보 유출 건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며 “그래서 조사를 해보려고 CCTV를 확인했는데 두세 달 지나면 (녹화된 내용이) 없어지기 때문에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지난해 말 총회사무국은 고영기 총무가 사무국을 관장하기 전이었다. 노재경 교육국장이 사무총장 대행을 하고 있을 때라고 했다. 고 목사는 “총회 직원 10여 명을 한 명씩 불러서 신앙 양심을 걸고 말을 해보라고 했으나 다들 본인은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며 “강제로 수사할 수 없고, 물증도 없어 더 이상 진상을 조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전산보안전문업 관계자에게도 문의를 했더니 시간이 많이 경과해 로그인을 해서 컴퓨터를 열어 본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며 총회 행정의 책임자로서 나름대로 진상을 조사를 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고 목사는 총회총무선거에 나선 상태에서 개인정보유출사건이 자칫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면서도“중앙노회장 김용제 목사의 연락을 받았다. 만약에 내가 휴직이 안 되고 그냥 있었으면 이것을 확실히 밝혔을 건데 (총무 선거로)휴직을 하는 되는 바람에 더 이상 총회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못 했다고 아쉬움을 전했다.”고 말했다. 이것이 인터뷰가 아니면 무엇이 인터뷰인가?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모든 언론은 이런식으로 후보와 인터뷰해서 마음껏 기사를 실어도 되는 것인가? 뉴스파워는 기사에서 “고 목사가 뉴스파워에 전화를 걸어온 것도 아니고”라고 말했다. 고 목사가 먼저 전화하면 인터뷰고, 기자가 먼저 전화하면 인터뷰가 아닌가? 이 얼마나 해괴한 논리인가? 선거법을 아는 후보라면 기자와의 통화를 거절했어야한다. 답답하고 억울해도 기자와 저런식으로 대화를 하고 그것이 기사화 되도록 내버려 두면 안된다. 그것은 선거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는 후보와 대화하거나 통화해도 절대로 기사를 만들어 내보내지 않는다. 이것은 기자의 상식이다. 또한 뉴스파워는 기사에서 “선거에서 고 목사가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기사를 쓰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뉴스파워는 고 총무의 입장에서 그의 변명을 기사로 싣지 않았는가? 그 기사에는 고 총무의 거짓주장도 들어있다. 중앙노회에서 5월에 서류를 접수했는데 7월에야 임원회에 전달됐다. 그 2달 동안 고영기 총무는 왜 서류를 뭉개고 있었는가? 뉴스파워는 분명 고 총무에게 유리하도록 기사를 쓰지 않았는가? 또한 뉴스파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 목사를 선거법 위반으로 총회선관위에 고발한 것은 상대 후보에게 유리한 선거 국면을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억지 주장했다. 중앙노회가 지난 8월 11일 기자회견에서 밝히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총회전산망 불법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몰랐을 것이다. 이 사안은 그당시 총회업무를 책임지고 있던 고 총무에게 큰 책임이 있다. 그의 무사안일과 무책임함이 드러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 총무는 뉴스파워와의 통화에서 자기를 변명하고 발뺌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뉴스파워가 전화 인터뷰 기사를 싣지 않았다면 대구중노회가 선관위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뉴스파워 기사가 문제를 키운 것이다. 도울려는(?) 마음으로 기사를 실었는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고 총무에게 독이 됐다. 뉴스파워는 기사 마지막 부분에서 “총회선관위의 결정을 주시한다”고 적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번 사태가 아무 처벌없이 넘어가면 이것이 기준이 되고 판례가 되어 모든 언론들이 후보와 인터뷰 기사를 마음껏 실을 것이다. 그래서 본 기자는 또 다른 의미에서 “총회선관위의 결정을 주시한다” 선관위가 기자들에게 후보 인터뷰 기사를 마음껏 쓸 수 있는 날개를 달아줄 것인가? 이 일을 선관위가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면 선거법 제28조 3항이 폐기된 것으로 알고 그 즉시 본 기자도 뉴스파워와 같은 형식의 후보자 인터뷰 기사를 당장 시행할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 오피니언
    • 논단
    2023-09-03
  • 【칼럼】 미래 낙선자에게 주는 위로(?)의 글
    작년 107회 총회 임원 선거는 치열했다. 그리고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 당선을 자신한 낙선자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모 교계신문은 그를 향해 '자살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무시무시한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올해 108회 총회 임원 선거도 나름 치열하다. 이번 모든 임원 선거는 경선이다. 결국 한 사람은 당선되고 또 한 사람은 낙선되야한다. 선거에는 공동우승이 없다. 그러니 모두 당선되기를 꿈꾸지만 후보 절반은 낙선의 악몽을 꿔야한다. 선거가 2주 남은 시점에서 예비 낙선자들에게 주는 위로의 글을 쓰고 싶다. 기자로서 후보자들을 볼 때 애잔하다. 경선에서 이기기 위해 원근각처 행사장을 찾아다니며 표를 부탁하느라 취재 현장에서 자주 후보들을 본다. 그러는 동안 피로는 누적되고 구두 뒤축은 닳아 없어진다. 그러면서 심령도 상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스트레스는 얼마나 클지 상상도 안 된다. 낙선자들은 많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첫째,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심감에 치를 떨 것이다. 자기를 지지하는 척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느낄 배신감은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겉다르고 속다른 사람들이 많다. 말로는 적극 지지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낙선자들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것이다. 둘째, 허탈감과 멘붕에 빠질 것이다. 후보 중에 안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은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다 자신이 적격자고, 자신이 되야한다고 생각하기에 후보가 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총대들의 투표에 결과가 달라진다. 그때 비로소 현실을 깨닫고 현타에 빠질 것이다. 자기를 과신했다는 허탈감, 주제파악을 못했다는 생각에 멘탈이 깨져 괴로워 할 것이다. 셋째, 목사, 장로이지만 하나님께 대한 원망도 생길 수 있다. 목회할 때 한 모태신앙 학생은 대학에서 떨어진 후 '하나님은 없다'고 했다. 자기 실력을 받아들여야지 왜 가만히 계신 하나님을 '있다', '없다' 하는가? 시편의 저자들이 때로 하나님을 원망했듯이 낙선자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 수 있다. 그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기를... 경선이기에 한 사람은 떨어져야 하는데 그 한 사람이 자기가 됐다는 것을 담담이 받아들여야한다. 당선시켜주지 않았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퇴행이 없기를 바란다. 상대방 당선자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이기 때문이다. 넷째, 목회와 사역에 상처를 입을 것이다. 온 교인들이 자기네 교회 목사와 장로가 당선 되기를 얼마나 기도했겠는가? 그런데 낙선됐으니 교회가 한동안 초상집이 되어 우울할 것이다. 이때 낙선자는 교인들이 뒤에서 "떨어질 줄 알았어"하며 험담하는 듯한 환청이 들릴지도 모른다. 원래 사람은 남 안되는 것을 즐거워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떨어진 담임목사를 패배자, 혹은 하나님께 버림 받은 자라는 불경스러운 생각을 할 수도 있어 목회 리더십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래저래 낙선자는 떨어져 힘이 드는데 이후 많은 후유증을 겪어야 한다. 그 낙선 후유증이 평생 갈 수 있고, 혹은 다시 잘 준비해 도전함으로 당선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해도 재도전은 첫 도전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 것이다. 재도전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개그맨은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한 코너에서 말했다. 그렇다. 당선자는 기억되고 낙선자는 잊혀진다. 또한 ABBA는 1980년에 “승자만 모든 것을 다 갖게 된다”(The Winner Takes It All)는 제목의 노래를 했다. 이 말도 맞다. 비록 낙선의 고통과 슬픔이 있더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옛말로 이겨내기를 바래본다. 모든 후보의 건승을 기원한다!
    • 오피니언
    • 칼럼
    2023-09-03
  • 【논평】 고영기 총회총무 3년 復棋①, 연합사업
    고영기 총회총무는 지난 4월 10일 개최된 평양노회에서 총회총무 후보로 추천되어 연임에 도전했다. 그리고 장문의 출마 소감을 밝혔다. 이제 그에 근거해 고 총무의 지난 3년간을 몇 차례 복기하는 기회를 갖고자한다. 참고로 復棋는 “바둑에서 한 번 두고 난 바둑의 판국을 비평하기 위하여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부터 놓아 보는 것”을 말한다. 먼저, 고 총무는 연임에 도전할 마음이 없었는데 주변의 권고를 듣고 출마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할렐루야! 먼저 지난 2년 6개월여 동안 에벤에셀로 함께 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감사드립니다. 현 총무는 총회 규정에 따라서 다시 총무로 출마할 수 있기에 그간 총무 연임에 대하여 많은 생각과 기도를 하는 가운데 총무 연임을 하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대외 맡겨진 사역들이 많아 연속성을 위해 한 번 더 우리 교단과 한국교계 연합과 위상을 세우고, 나아가 교단총회의 지속적 안정을 위해 총무에 다시 나와 달라는 진심 어린 권고를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랜 기도 끝에 다음과 같이 마음을 정리하고, 마침내 총회 총무 연임에 출마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총회총무는 지역 순환제를 따르기에 이번에는 영남지역이다. 그래서 영남지역 박용규 목사(가창교회)가 대구중노회에서 추천을 받았다. 단독후보 추천이기 때문에 무투표로 당선될 수 있는 상황에서 변수가 생겼다. 현 총무가 연임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고영기 목사가 연임에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한 불만이 영남지역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고 총무가 자의반타의반으로 연임에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말에 따르면 첫째, 대외 맡겨진 사역들이 많아 연속성을 위해 한 번 더 우리 교단과 한국교계 연합과 위상을 세우기 위함이다. 첫째, 교단의 화목과 위상을 더 높이고 공고히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저는 3년 전 총회 총무로 출사표를 던질 때에 세 가지의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밑바닥에 떨어진 총회화목과 위상을 바로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비상근 총무자리였지만 한국교계에 우리 합동측 장로교단이 제 자리를 차지하고, 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하고자 했습니다. 지난 2년 6개월 동안 부족했지만 우리 교단의 화목과 위상은 한국 교계에 상당한 자리에 올라갔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한 번 더 총무에 연임하게 된다면 우리 교단의 화목과 위상을 한 층 더 높이고 공고히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공허한 말로 들린다. 과연 합동교단이 고 총무로 인해 교계에서 위상이 높아졌는가? 그렇다면 작년 12월 8일 모인 한교총 6회 정기총회에서 왜 권순웅 총회장이 대표회장이 되지 못했는가? 이영훈 목사가 대표회장이 되고 권 총회장은 공동대표회장에 머물렀다. 당연히 권 총회장이 대표회장이 되었어야했다. 그런데 대외업무를 담당하는 고 총무는 판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는지 몰랐는지 그 자리를 놓치게 만들었다. 알았다면 직무유기며 몰랐다면 무능이다. 그러면서 한국교계 연합과 위상을 세우기 위해 연임에 도전하겠다는 것인가? 참으로 어이가 없다. 오랫동안 교계기자 생활을 하고 지금도 종로 5가 기독교연합회관에서 활동하는 한 선배에게 “종로에서 합동교단의 위상이 어떠한가?”하고 개인적으로 물었더니 “형편없다”고 답했다. 물론 한 개인의 私見이기는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과연 대외업무를 전담해야할 고 총무는 지난 3년간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고 총무의 활동 결과가 한교총 대표회장 자리를 눈뜨고 뺐긴 것이라는 것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가? 그러면서도 고 총무는 자신이 “지난 2년 6개월 동안 부족했지만 우리 교단의 화목과 위상은 한국 교계에 상당한 자리에 올라갔다고 봅니다”하는 자평을 하고, “그래서 제가 한 번 더 총무에 연임하게 된다면 우리 교단의 화목과 위상을 한 층 더 높이고 공고히 세우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3년간 하지 못한 일을 다시 기회를 주면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 인가? 둘째, 고 총무가 자의반타의반으로 연임에 나선 이유는, 그의 말에 따르면 “한국 교회 연합사역에 가시적 열매를 보기 위해서”이다. 둘째, 한국 교회 연합사역에 가시적 열매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지난 3년 전 총회 총무로 나올 때 가졌던 비전 중 하나가 한국 교회 연합 사업에 한 몸을 던지기 위함이었습니다. 대내외적으로 존재론적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자기 성찰의 시간을 보내며, 하나 됨, 연합의 정신이 시대적 요구이자, 현재와 미래 한국 교회에 꼭 필요한 가치임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가 오나 눈이오나 불철주야,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허리가 아파서 고통을 받고, 심지어 오른쪽 눈의 실핏줄이 수없이 터지면서까지 연합운동에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연합사역에 가시적 열매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의 성취적 근접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래서 제가 한 번 더 총무직에 연임할 수 있다면, 한국교회 연합사역에 책임감을 가지고 가시적인 열매를 맺게 하고 한국교회 연합에 한몫을 감당하여, 임기 동안 기필코 분열된 한국교회를 하나로 묶는데 온 힘을 써 열매를 맺도록 하겠습니다. 한국교회 연합기관은 현재 한기총, 한교총, 한교연으로 3개이다. 한기총의 새로운 대표회장이 된 정서영 목사는 취임사에서 “한기총을 정성화해 다른 연합기관과의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은 꿈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본다. 이미 이전 기사에서 밝혔듯이(기독교연합단체의 "연합"에 대한 꿈과 현실) 우선 한기총을 정상화하겠다고 하는데 과연 한기총이 정상화될 수 있을까? 합동을 비롯해 대교단들이 한기총을 떠났다. 그런데 이 교단들이 다시 돌아올 기미는 없다고 본다. 한기총의 주축을 이뤘던 교단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상 한기총은 정상화되기 어렵다고 본다. 그리고 떠났던 교단들이 돌아올 이유가 없는데 돌아오겠는가? 대교단이 떠나간 사이 반사이익을 누렸던 작은 교단들이 그 자리를 돌려줄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기총 정상화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다른 연합 단체와의 통합은 어떠한가? 한기총에서 한교연으로 그리고 한교총으로 분리됐다. 그리고 각자 자생하고 있다. 이들이 과연 이미 누리고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하나로 통합될 수 있는가? 깨지기는 쉬워도 붙이기는 어려우며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교단들이 난립되어 각자의 왕국을 세우고 있는데 자기가 누리고 있는 왕의 자리에서 내려올려고 하겠는가? 결국 극심한 지분싸움을 하다가 결렬될 것이라고 본다. 역사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한기총 정상화와 그로인한 다른 연합단체와의 통합은 좋은 꿈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3개 연합기관의 연합이 합동교단의 목표인가? 모든 총대가 바라고 일반 목사, 장로들의 “꿈에도 소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어느 특정인의 꿈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총회총무가 교단의 목표가 아닌 특정 개인의 목표 성취를 위해 몸 상해가며 수고하는가? 그러니 이에 대해 과연 누가 공감하겠는가? 지난 3년간 고영기 총회총무는 연합사역에 진력했다고 했으나 결과는 없고 오히려 우리 교단 몫의 한교총 대표회장 자리만 놓쳤다. 그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했는가? 책임을 졌는가? 또한 지난 5월에 있었던 총회 행정문서 유출 건에 대해서도 안이하게 대응하며 남탓만 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켰을 뿐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그래서 復棋가 필요하다. 고영기 총회총무의 지난 과거가 그에게 다시 새롭게 교단의 대외 업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보장할지 생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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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3-09-02
  • 【단상】 겸손은 힘들어
    대중가수 조영남이 1991년에 발표한 곡 중에 “겸손은 힘들어”가 있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듣게 됐는데 가사가 기가 막히다. 1절)세상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세상에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중엔 내가 최고지 2절)나보다도 잘난 사람 또 있을까 나보다도 멋진 사람 또 있을까 겸손하나 모자란 것 빼고는 내가 당대 제일이지 3절)돌아가신 울아버지 울어머니 날더러 겸손하라 하셨지만 지금까지 안되는 건 딱 한가지 그건 겸손이라네 후렴)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 1절 가사를 보면 “자신이 최고”라고 한다. 2절 가사에서는 한술 더 떠 “자신이 당대 제일”이라고 한다. 3절 가사에 보면 보다 못한 부모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겸손하라고 했지만 “여전히” 겸손하지 못하다. 그래서 후렴으로 무엇이라고 반복하는가? “겸손은 힘들어” 그렇다. 겸손은 힘들다. 쉽다면 겸손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겸손하지 않으면 인생이 힘들어진다. 하나님께서도 겸손하지 않은 자는 손을 보시고, 사람들도 비록 자기는 겸손하지 못해도 다른 사람이 겸손하지 못한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교계 기자를 하면서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목사, 장로들을 보게 되는데 “교만”이 충만한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지금부터 32년 전에 나온 조영남의 이 노래 “겸손은 힘들어”이다. 유행가이지만 들어보기를 권한다. 특히 자신이 교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꼭!
    • 오피니언
    • 칼럼
    2023-09-01
  • 【논단】 원로목사 제도, 교회에 부담이 되지 말자②
    작년 말 서울 중심에 있는 모 교회 목사가 26년 목회를 끝으로 원로목사가 됐다. 교회에서는 월 350만원의 사례를 지불하며 송도에 있는 48평 아파트를 사주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어느 목사는 “20여년 봉직하고 이 정도 예우받으며 떠나기가 쉽지 않아 교회는 칭찬을 받고 목사는 감사했으며 노회목사들은 부러워했을 것이다. 하산길에 이정도면 케이블카로 모시는게다”라고 썼다. 우선 교회가 원로목사를 이 정도로 예우할 재정이 있다는 것을 많은 목사들은 부러워 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은퇴할 때 어느 정도 예우를 받을지 예상하고 안심하거나 우울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원로목사가 되어 저 정도 예우를 받을 정도면 현직에 있을 때는 더 많은 예우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저금을 하든, 재태크를 하든, 청약을 하든해서 미리 은퇴 후 살 집을 준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마도 원로가 되면 교회에서 집을 줄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집 준비를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덕스러운가를 생각해야한다. 목회 현직에 있을 때도 큰 교회 담임으로서 많은 것들을 누리고(?)-많은 사례, 좋은 차, 넓은 사택, 풍족한 판공비 등등-은퇴해서도 집을 제공 받고 생활비를 지원받는 것을 교인들이 기꺼워할지 생각해 봐야한다. 원로목사가 되어 예우를 받는 것은 누려야할 권리가 아니다. 교회와 교인들이 베푸는 은혜이다. 그런데 상식을 넘어서면 불편해질 수 있다. 최근 통합측 어느 목사가 원로가 됐다. 교회에서 넉넉하게 예우를 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젊은 층에서는 반발했다고 본인 입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취직도 어렵고 미래가 불투명하다. 그런 입장에서 목사가 현직에 있을 때도 많은 것들을 누리고 은퇴해서도 여전히 그러한 혜택을 누리는 것이 당연히 좋게 보일 리가 없다. 필자가 담임으로 부임했을 때 여전도사를 통해 전임목사가 여름에 에어컨을 많이 사용해 전기료가 수십만원 나온 것에 대해 교인들의 말이 많았다는 것을 들었다. 어린 아이들이 아토피가 있어 에어컨을 많이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내 아내는 더운 여름에도 에어컨 사용하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이제 목회를 중단하자 눈치 보지 않고 에어컨을 마음껏 사용하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전기료를 자부담하기 때문이다. 담임목회할 때 제직회 때 나에 대한 항목이 드러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교인들의 반응이 다양했기 때문이다. 어떤 교인은 목양실에서 쓰기 위해 산 커피 원두에 대해서도 시험이 들었다. 자기는 돈이 없어 어려운데 목사님이 어떻게 커피 원두를 사서 드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1-2만원하는 커피 원두에도 교인들은 시험이 들 수 있다. 이런 말을 듣느니 내 돈으로 원두를 사고 싶었다. 한 평생 목회를 하고 은퇴를 할 때 예우 문제로 잡음이 들린다면 그 얼마나 민망하겠는가? 결국 많은 양보와 포기를 통해서 마지막을 잘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 때로 교회가 제시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해 분란이 되기도 한다. 혹은 울며 겨자먹기로 해 주더라도 뒤에서 얼마나 많은 욕을 하겠는가? 원로가 되는 “축복”과 “행운”을 누릴 것이라고 예상되더라도 현직에 있을 때 미리 은퇴 준비를 해야한다. 그래야 교회에 덜 손을 벌리게 되고 덜 민망해진다. 은퇴 이후 교회에서 아무런 지원도 받지 않는다면 참 깔끔할 것이다. 그러나 지원을 받는다면 결국 이후 제직회 때나 공동의회 때 원로에 대한 지원금이 명시될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교인들의 평가가 좋을리는 없을 것이다. 담임목회할 때 매월 원로목사에게 사례비가 지급되었다. 원로 이후 10여년 동안 담임목사 4명을 내쫓는 동안 교세가 많이 줄었다. 교역자 한 명을 더 둘 수 있는 액수를 매월 지급하며 교인들이 버거워하는 모습을 봤다. 원로는 30년 목회하고 25년 후 95세에 소천했다. 그러자 조금 재정적인 여유가 생겼다. 그 돈을 다른 곳으로 융통할 수 있었다. 이것이 현실이다. 목회자는 현직에 있을 때나 은퇴 후에도 교회에 짐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나마 현직에 있을 때 다가올 은퇴를 준비해야한다. 그것이 교인들의 수군거림을 듣지 않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서글플 수도 있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목사들이 현실감각이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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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3-08-28
  • 【논단】 원로목사 제도, 이대로 좋은가?①
    교회를 목회하던 목사가 70세 정년이 되면 원로목사가 되거나 은퇴목사가 된다. 합동교단 헌법은 원로목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동일(同一)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한 목사가 연로(年老)하여 노회에 시무 사면을 제출하려 할 때에 본 교회에서 명예적 관계를 보존하고자 하면 공동 의회를 소집하고 생활비를 작정하여 원로 목사로 투표하여 과반수로 결정한 후 노회에 청원하면 노회의 결정으로 원로 목사의 명예직을 준다. 단, 정년이 지나면 노회의 언권만 있다.” 원로목사가 되는 조건이 있고 부연 설명이 길다. 무엇보다 생활비가 지출되기 때문이다. 반면 은퇴목사에 대해서는 “목사가 연로하여 시무를 사면한 목사로 한다.” 한 줄로 설명이 끝난다. 은퇴목사에게는 이후 예우가 없기 때문이다. 원로목사 제도는 결국 두 가지 이유로 생겼다. 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목회하고 은퇴하는 목사에게 명예를 주고, 은퇴 이후 생활비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로 인한 부작용도 있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원로목사를 두지 않기 위해 65세 정년을 내규로 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65세 정년에 원로가 되지 않을 연령의 목사를 담임으로 내정한다. 혹은 65세 정년 내규 없이 70세 정년이 되도 원로가 되지 못할 50대에서 담임을 내정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첫째, 원로목사의 교회 간섭을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원로목사로 인해 어려움을 당한 교회들 중에는 두 번 다시 원로목사를 둘 생각을 하지 않는다. 둘째, 은퇴 이후의 생활비 부담을 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합동 교단의 70% 교회가 미자립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로목사를 모신다는 것은 재정적으로 큰 부담이다. 그래서 요즘 50대 이상의 목사를 담임으로 청빙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반면 원로목사를 모시는 것에 부담이 없는 교회는 후임 목사를 청빙하거나 새로운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 통상 40대를 선호한다. 그러므로 기독신문의 청빙광고에서 연령제한을 보면 교회가 어떤 형편인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원로(元老)는 무슨 뜻인가? “元 으뜸 원, 老 늙을 로”로서 “오래 그 일에 종사하여 공로가 있는 연로자”이다. 그래서 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목회한 목사에게 원로목사라는 칭호를 주어 “명예적 관계를 보존하고자”하는 것이다. 결국 원로목사는 명예이다. 그런데 은퇴목사와 달리 원로목사가 교회 일에 관여하는 경우가 왕왕있다. 은퇴목사는 20년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은퇴와 더불어 주보에서 사라지고 교회에서도 사라진다. 그러나 원로는 원로라는 이유로 죽을 때까지 주보에 이름이 기재되며 본 교회를 계속해서 출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면 후임 목사의 목회를 보고 듣게 되며 결국 간섭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이로인해 후임목사가 소신껏 목회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도하다. 원로목사가 시어머니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담임으로 나가기를 준비하는 목사들 중에는 원로목사가 없는 교회로 가고 싶다고 하는 경우도 왕왕있다. 원로목사는 교회의 시어머니인가? 그래서는 안된다. 원로목사는 목회에서 은퇴한 자이다. 은퇴했으면 더 이상 교회 일에 관여해서는 안된다. 원로목사는 자신이 목회에서 은퇴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후 목회는 후임목사가 알아서 하는 것이다. 거기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보기에 좋지 못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고 옥한흠 목사는 65세에 사랑의교회를 조기은퇴하면서 오정현 목사를 후임으로 “독단” 결정했다. 그리고 옥 목사는 자신이 원로목사 신분이지만 뒷방 늙은이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도 전교역자 수련회에서 발언했다. 이것을 듣고 참으로 경악했다. 결국 자신이 수렴청정(垂簾聽政) 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러려면 왜 조기은퇴를 했는가? 70세 정년까지 본인이 원하는 목회를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원로목사는 은퇴자이다. 그러므로 이제 목회 일선에서 물러나야한다. 후임목사가 조언을 구하면 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목회나 교회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다. 원로목사가 교회 일에 말하기 시작하면 후임목사의 리더십이 세워질 수 있겠는가? 원로목사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는 교회들이 있다. 오죽하면 교회들이 원로목사를 두지 않을려고 하겠는가? 내규로, 50대 목회자 청빙으로, 또는 원로목사 추대 공동의회 부결로, 심지어는 원로목사 예우 철회 등등으로. 원로목사의 취지는 한 교회를 20년 이상 목회한 것에 대한 명예, 그리고 은퇴 이후 생활비 지원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은퇴자로서 더 이상 교회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보고 안듣기 위해 시무하던 교회를 떠나 타교회를 다니든지, 은퇴자들이 모여 예배하는 은목교회를 다니든지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원로목사가 됐든 은퇴목사가 됐든 자신의 목회가 끝났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여야한다. 아울러 이제 교회와 교인들이 원로목사 제도에 대해 부담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교인들의 마음도 달라지고 있다.
    • 오피니언
    • 논단
    2023-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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