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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 ‘절판’ 앞에서....책이란 무엇인가?
    과거 취미란에 ‘독서’를 쓰는 것이 유행이었다. ‘클래식 음악 듣기, 영화 감상’등도.. 독서가 취미인 나로서는 책이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책을 쓰는 작가, 출판하는 출판사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산다. 책이 없는 세상은 매우 심심할 것이다. 다행히 어려서부터 책 사는 것을 좋아했고 지금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이 책은 책에 대한 책이다. 어떤 책을 읽다 소개 되어 읽었는데 2006년에 발간된 책이라 소개된 책 중에는 ‘절판’된 책들이 많았다. 책에도 수명이 있고 유행이 있다. 무수한 책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죽을 때까지 다 볼 수 없는 책을 읽는 것이 취미인 것이 감사하다! (기사 화면에 이 책 '빠삐용의 책읽기' 사진을 실을려고 교보문고를 검색해 보니 이 책도 절판됐다. 다행히 도서관에 있어 빌려보게 된 것이다). 칼날 위에 서 있는 사랑 어떤 사람들에게 사랑이 가장 고결한 단어라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금기어입니다. 믿을 수 없으시다고요? 유희처럼, 하룻밤 욕망 해소처럼 가볍게 사랑을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매 순간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장편소설 『카불의 책장수』를 읽다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에는 참 다양한 삶들이 부대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프가니스탄 여인들에게 '사랑'은 금기어입니다. 그들이 지하에서 펴내는 시집에 사랑을 표현하려면 피어린 절규가 담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손을 주세요, 사랑하는 이여, 그리고 우리 함께 초원에 숨어요. 사랑하거나 칼 아래 쓰러지거나 둘 중 하나.' 이곳에 사는 여인들은 묻는 말에 대답하거나 요리를 칭찬하는 말에 답례를 표하기는 하지만, 외방인 앞에서 절대로 먼저 대화를 시작하는 법이 없습니다. 부모 몰래 금지된 사랑을 나누다 들키면 죽음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칼날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나라에서 적용되던 이슬람 율법은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동시에 비정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율법을 비켜가기 위해 그녀들은 란다이(landay)라고 불리는 시를 읊습니다. 란다이는 "비명이나 칼로 찌르는 것처럼" 짧고 율동적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한반도에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동시에 지구의 다른 쪽을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춘 인간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균형이 교양이고, 그것이 문화적 경쟁력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노르웨이 출신 여성 종군기자입니다. 2001년에 9·11 테러가 있었고, 그해 10월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테러 비호세력으로 지목하면서 대대적인 공습을 때립니다. 2002년 봄 사이에르스타드는 카불에서 책장수로 살아가는 술탄 칸의 집에 3개월 동안 머무릅니다. 이 책은 그때 목격한 것을 소설로 쓴 것입니다. 이 소설은 정치적 격변과 국가재건, 그리고 근본주의 이슬람 문화 밑에서 학대받는 여성 문제, 빈곤 문제를 소설 형식으 로 묘사합니다. 폐허가 된 카불의 방 네 칸짜리 아파트에서 술탄 칸은 홀어머니와 아내 둘, 그리고 아이 다섯과 동생, 사촌 두어 명을 데리고 삽니다. 가혹한 시련은 언제나 곁에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일을 하고, 돈을 모으고, 저잣거리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혼례를 준비하고, 혼례를 치르고, 경찰서와 감옥을 왕래하며 갈등하고 기뻐하고 슬퍼합니다. 국민의 4분의 3이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나라에서 책장수의 가족이란 원래가 드문 경우지만, 주인공 술탄 칸은 30여 년 간 서적 판매업에 종사했습니다. 무엇보다 문학과 책을 사랑했습니다. 공산주의자, 무자헤딘, 탈레반 같은 여러 정권의 하수인들은 차례로 쳐들어와서 책을 불태웁니다. 자신도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곤 했습니다. 그러나 책에 대한 열정을 굽히지 않습니다. 책을 숨기고, 감옥에서 살아나오고, 서점을 다시 세웁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교과서를 출판하려고 하고, 부르카를 감옥이라 규정하며 여성의 권리를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술탄 칸은 집안에서는 누구보다 억압적인 또 다른 가부장일 뿐입니다. 전통의 고수와 근대화 사이에 끊임없이 혼란을 겪어온 그들의 역사는 멀지 않은 과거에 있었던 한국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마치 증기탕에서 부르카를 뒤집어 쓴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부르카가 얼마나 머리를 죄고 두통을 일으키는지, 얼마나 밀폐된 공간인지, 얼마나 공기가 부족한지, 얼마나 금방 땀이 삐질삐질 나게 하는지에 대한 얘기입니다. 책을 덮고서 우리는 비로소 시원한 공기에 감사하고, 그것을 공유해야 한 다는 사명감을 느낍니다. 이 소설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인 청년이 탈레반 치하에서 친구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아프간을 찾는다는 내용의 『연을 쫓는 아이』란 베스트셀러에 필적합니다.(※1996년 9월 탈레반은 연날리기를 금지했었습니다.)(pp. 9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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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5-06
  • 【북토크】 글을 잘 쓰는 구체적인 방법
    글쓰는 것은 나의 오래된 관심사항이다. 기회 되는대로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는다. 이 책도 그러한 관심에서 봤다. 유익하다. 특별히 이문재 교수는 글쓰기에 대해 매우 잘 설명하고 있어 전문을 게재한다. 잘 읽어보면 많은 유익을 얻을 것이다. 이문재 (시인,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정확해야 아름다울 수 있다 왜 저널리즘적 글쓰기인가? 글쓰기의 장르는 매우 다양합니다. 사적인 글쓰기/공적인 글쓰기, 사적인 글쓰기: 일기, (자서전) 편지, 이메일, 공적인 글쓰기: 시와 소설, 희곡, 에세이, 기행문 등 문학적 글쓰기, 기사, 칼럼 등 저널리즘적 글쓰기, 광고 문안, 연설문, 안내문, 보고서, 기획서, 청원서 등등. 글쓰기는 더 이상 문인, 저널리스트 등 몇몇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미디어 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것과 아울러, '문자시대는 가고 영상 시대가 도래했다고들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봅시다. 영상 이미지 역시 최종적으로는 문자 언어로 번역되어야 이해와 소통이 가능합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와 같은 뉴 미디어 역시 문자 언어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언어를 버리지 않는 한 인간이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문자 문화는 영원할 것입니다. 언어는 대중의 합의에 의해 정착되고, 또 동시에 대중에 의해 변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어에 일정한 규범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언어가 대중(언중)에 의해 생성소멸하고 유통되고 기록(저장)되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말하기와 쓰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문자 시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문자는 영상 혹은 구술 문화에 의해 위축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문자 시대를 능동적으로, 그리고 당당하게 영위하는 교양인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교양인이라면, 적어도 대학교를 졸업한 교양인이라면 전공을 불문하고 정확한 글쓰기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의 개별적 삶은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행위의 연속입니다. 이 중에서 쓰는 행위가 가장 논리적이고 또 정확해야 합니다. 글쓰기의 일차적 목표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한 것을 그대로 쓰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무의식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생각 자체가 정돈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정돈하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은, 설계도도 없이 집을 짓는 경우와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이 잘 정돈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정확히 표현(건축으로 치면 시공 능력)할 수 없다면 글쓰기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갖고 있는 몇 가지 미덕 우리가 저널리즘적 글쓰기(기사 쓰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정확한 사실에 바탕해, 정확하게 표현하는 글쓰기의 모범이기 때문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자기 주장이 강하게 드러나는 칼럼(사설)이든, 쓰는 이의 관점이 가능한 한 배제되는(이른바 '객관적'이라는 스트레이트 기사에 이르기까지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무엇보다도 정확성이 강조됩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가장 적합한 글쓰기 방법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에서 아름다움은 미덕이 아닙니다. 미사여구는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데 있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수사는 사실(fact)을 표현하는 데 있어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를 주목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다른 글쓰기와 달리 취재와 구성이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설이나 드라마 시나리오를 쓸 때에도 취재 과정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널리즘에서처럼 구체적인 현장(인물)과 정확한 사실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저널리즘에서 활용하는 다양한 취재기법은 우리가 다른 장르의 글쓰기를 할 때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습니다. 기획서나 평가 보고서를 작성할 때에도,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꾸밀 때에도 저널리즘의 취재기법을 동원하면 글이 훨씬 입체적이고 풍성해집니다. 셋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사건이나 사고, 사태나 현상 등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고 심층적인 보도 못지않게, 남과 다른 시각에서 분석하려는 태도 역시 저널리즘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넷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독자 대중의 알 권리를 기본으로 하지만, 인물이나 사건 사고, 사태 등에 대한 독자의 기본적 궁금증을 풀어주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여론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사회 변화와 그 변화의 방향성을 파악하는 데 시야를 넓히고 시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다섯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표현뿐 아니라 전달에 큰 비중을 둡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새로운 지식과 정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독자(수용자)에게 전달되고 소통(커뮤니케이션)되지 않는다면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존재 이유가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의 일상적 삶은 우리가 저널리스트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정보를 송신하고 수신하는 환경 속에서 진행됩니다. 송신자이면서 수신자인 우리가 소통 능력을 키우지 못한다면, 그 삶은 심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소통 능력이 있는 시민들로 구성된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마지막으로,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우리는 저마다 '1인 미디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블로그에 이어, 사용자 제작 컨텐츠(UCC, User-created content)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듯이, 우리는 저마다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의견과 주장이 분명하다면, 그 사람은 어디에 있든, 그 의견과 주장을 어떤 미디어를 통해 전달하든 이미 저널리스트인것입니다. 지식정보사회를 살아가면서 단순한 지식 정보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지식과 정보를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동시에 지식과 정보, 의견을 개성적으로 생산하고 소통하기 위해 우리는 저널리즘적 글쓰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를 체득하면, 보고서뿐 아니라 한 권의 책을 집필할 때에도 시간과 노력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한 편의 기사와 한 권의 논픽션의 구조와 글쓰기 방법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기사, 노력한 만큼 잘 쓸 수 있다. 1. 저널리즘적 글쓰기의 유형: 스트레이트 기사, 인터뷰 기사, 스케치 • 분석 및 해설 기사(feature story), 르포르타쥬, 칼럼, 논설 등 2. 기사를 잘 쓰기 위한 몇 가지 방법: 1) 주제를 분명하게 설정합니다. 주제를 한 문장으로 만들 수 있다면, 절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가령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고 하면 각 분야에서한국을 이끄는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하는 기획일 것입니다. 기사의 주제는 분명한 계기가 있어야 하며, 독자에게 유익한 정보가 되어야 합니다. 정보성이 부족하다면 흥미를 끌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2) 주제를 뒷받침할 자료와 전문가, 현장(사례), 관련 기사를 찾습니다. 주제가 정해졌다면 가장 먼저 관련 기사를 검색해야 합니다. 한창 취재하다가 비슷한 기사가 몇 년 전에 나온 사실을 알고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관련 기사를 검토하다 보면, 주제를 바꾸거나, 취재 영역에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3)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역피라미드형: 전문(요약)중요한 사실-흥미 있는 이야기 순으로 구성합니다. 1900년대 초 미국의 AP통신이 개발한 기사 구조로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흔히 사용합니다. ◎피라미드형: 도입-중요한 사실-서스펜스 형성-클라이맥스 순입니다. 피라미드형은 피처 기사에서 자주씁니다. 독자의 관심을 계속 끌고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문학적이고 연대기적인 서술 방식입니다. ◎혼합형: 클라이맥스(요약)-서론-본론 결론 순. 4) 1), 2), 3)이 충분하게 준비되었다면, 기사 작성에 들어갑니다. • 간결하게 써야 합니다. 국내 신문은 일반적으로 5행 이상(65~75자)을 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단문을 쓰라는 것입니다. • 가능하면 구어체를 씁니다. 이야기하듯이 쓰라는 것입니다. ·주어와 술어를 분명히 합니다. • 매력적인 언어를 찾습니다. ・쉽게 씁니다. 좋은 기사의 첫째 조건은 쉬운 문장입니다. 이상은 언론학 입문서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권장하는 지침입니다. 필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기사를 잘 쓰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를 유념 해야합니다. 먼저, 앞에서 말한 대로 기사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십시오. 이것이 나중에 기사 제목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획과 취재의 매 단계에서 판단 기준이 됩니다. '민물낚시, 환경오염 주범'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한다면, 바다낚시의 오염 문제에 관한 자료는 읽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기획과 취재 단계에서 기사의 첫 문장, 즉 리드를 구상하십시오. 첫 문장이 결정되지 않으면 기사를 쓰기 어렵습니다. 취재를 충분하게 해놓고서도 첫 문장, 즉 도입부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기자들이 제법 많습니다. 어디 기사뿐인가요. 모든 종류의 글쓰기가 첫 문장 에서 좌우됩니다. 오죽하면, 작가들이 "첫 문장은 신의 선물이다" 라고 말하겠습니까. 필자는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기획이 정해지면 그때부터 제목과 첫 문장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시를 쓸 때에도, 산문이나 논문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복잡한 사안을 취재할 경우, 취재한 내용을 주위 동료나 가까운 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흥미로운 인물을 인터뷰했을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취재한 내용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상대방의 반응을 체크할 수 있습니다. 가령 상대방으로부터 더 취재해야 할 부분, 더 강조해야 할 부분 등 의외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넷째, 관련 서적을 찾으십시오. 인터넷 검색은 참고자료일 뿐입니다. 가장 새롭고 신뢰할 만한 정보와 자료는 책에 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필자는 특집 기사를 쓸 경우, 기사 검색을 한 다음 대형 서적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관련 서적 한두 권만 읽으면, 그 분야의 권위자가 누구인지, 그 분야와 관련된 최신 이론은 무엇인지 장악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취재해서 기사를 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떤 책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다섯째, 소설을 많이 읽고 영화, TV 드라마를 자주 보십시오. 소설은 어휘력을 풍부하게 해줄 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시각을 갖게 해줍니다. 문학 분야가 아니더라도 베스트셀러 책은 따라 읽어야 합니다. 관객이 많이 드는 영화와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베스트셀러 책과 영화, 드라마에서 한 줄 인용하면서, 혹은 등장인물을 끌고 들어가면서 기사를 시작하면 독자들의 눈길을 더 많이, 또 오래 붙잡을 수 있습니다. 기사의 궁극 목표는 좀 더 많은 독자들이 읽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늘 기사만 생각하십시오. 기자는 늘 기사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심지어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에도 기사를 생각해야 합니다. 카페 옆자리에서 얻어들은 한 마디가 대형 기사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찬반양론이 팽팽한 기사일 경우, 가족이나 친구들의 의견을 청취해보면, 취재나 기사 작성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사는 혼자 쓰는 것이 아닙니다. 기사가 아니라 다른 장르의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고 읽고 느끼고 생각한 만큼 글은 달라집니다. 개성적 글쓰기를 위한 기초체력 다지기 정확한 문장이 관건입니다. 정확하지 않은 문장은 특히 저널리즘에서 문장이 아닙니다.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에서도 정확성이 우선입니다. 아름다운 문장은 그 다음입니다.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하는 작가는 아름다운 문장, 개성적인 글을 쓰기 어렵습니다. 정확하고 개성적인 쓰기를 위해서는 '기초체력'이 필요합니다. 글쓰기를 위한 기초체력을 다지는 필자의 체험적 방법론을 소개합니다. 1. '나쁜 버릇'부터 찾는다 어떤 글이든 좋습니다. 자기가 쓴 글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자주 나타나는 단어나 표현이 발견됩니다. 사람마다 특유의 말투(말버릇)나 몸짓이 있듯이 글에도 특유의 '버릇'이 나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것이다'라는 종결어미를 자주 씁니다. '~것이다'는 가능하면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글 버릇을 찾아내는 눈을 가지고 있다면 가능성이있습니다. 다음으로, 수식어가 많은 문장, 접속사가 많은 문장, 나열이 많은 문장이 나쁜 문장입니다. 자기 글에서 나쁜 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글을 잘 쓰는 사람입니다. 자기 글에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는 수준까지 빨리 올라가야 합니다. 자기 글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문제점만 제거해도 글쓰기는 순식간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됩니다. 자기 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른다면, 정말 큰 문제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자기 글을 들여다보십시오. 자기가 쓴 글들을 '원수가 보내온 편지'라고 생각하고 여러 차례 읽어보십시오. 버릇이 발견될 때까지 읽으십시오. 2.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찾아라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기자나 작가의 글을 집중적으로 읽으십시오. 글쓰기의 모델을 하나 설정하는 것입니다.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은 반드시 좋아하는 가수가 있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가 지망생은 필사하고 싶은 선배 소설가가 한둘은 꼭 있습니다. 좋은 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그대로 베껴 쓰십시오(필사). 외우면 더 좋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적극 모방해보십시오. 그 과정에서 글쓰기 수준이 몰라보게 향상됩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국내 소설가 대부분이 선배 작가의 소설을 필사하면서 습작기를 거쳤습니다. 추천하고 싶은 필자 '모델'은 문인 이외에, 혹은 문인이면서 매체에 자주 기고하는 분들입니다. 제가 추천하고 싶은 분들은 도정일(문학평론가),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 고종석(소설가 겸 언론인), 김훈(소설가 겸 언론인). 배병삼(정치학 및 동양학), 한형조(동양철학), 송호근(사회학), 고미숙(문학평론가),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등입니다. 이외에도 좋은 필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3. 새롭지 않으면 쓰지 말라 저널리즘의 생명은 새로움입니다. 새롭지 않으면 뉴스가 아닙니다. 저널리즘이 아니라도 그렇습니다. 모든 글쓰기는 새로워야 합니다. 사실이나 의견에서 새로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표현이라도 새로워야 합니다. 새롭지 않다면 신기하거나(의외성) 흥미로워야 합니다. 새로움, 의외성, 흥미, 이 세가지 중 한 가지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글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4. 자세히 관찰하라 관찰은 모든 글쓰기의 스타트 라인입니다. 사물이든 사건이든 인물이든자 세히 관찰하지 않고서는 정확한 글쓰기가 불가능합니다. 관찰이 부정확하면 사실관계가 흔들립니다. 정확히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오감 가운데, 시각이 특히 부정확합니다. 주변 환경에 따라 착시 현상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상기해보십시오. 관찰은 단지 시각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많이, 그리고 정확히 느끼는 것도 관찰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책읽기, 영화 감상, 미술 감상 등도 관찰입니다. 관찰은 대상에 대한 집중입니다.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선입견을 버리고, 현상학적으로 말하자면 판단을 중지하고) 대상에 몰입했다가, 다시 대상으로 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상상력은 이 관찰 단계에서 나옵니다. 관찰 훈련의 첫 단계는 자기가 본 것으로 소리 내어 말해보는 것입니다. 관찰 대상이 인물이라면, 머리 모양과 색깔, 길이에서부터 이목구비를 거쳐 구두까지 관찰하면서 하나하나 말해보십시오. 컴퓨터나 텔레비전, 화분, 식탁, 자동차 실내 등 늘 마주치는 대상을 하나 정해서 소리 내어 하나하나 관찰해보십시오. 그동안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것이 발견입니다. 낯익은 것에서 낯선 것을 찾을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최고의 글쓰기 재료입니다. 5. 메모하고, 메모하고 또 메모하라 기억력이 남다르다고 해도, 메모를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뛰어난 작가는 물론이고 예술가, 심지어 기업의 CEO들도 메모를 자주 합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메모광입니다. 인간이 하루에 접하는 새로운 정보(자극)는 수십만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 하루를 돌이켜보십시오. '오늘 내가 새로 느낀 것, 새로 발견한 것'을 떠올려보십시오. 거의 없을 것입니다. 주머니 혹은 핸드백에 작은 수첩과 필기구를 반드시 챙기십시오. 수첩과 필기구를 챙기는 습관이 들었다면, 글쓰기를 위한 가장 필수적인 요건을 갖춘 것입니다. 저는 화장실에도 연필과 포스트잇을 갖다 놓습니다. 주머니에 메모지와 볼펜이 없으면 산책도 하지 못할 만큼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천 번 새로운 생각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글쓰기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좋은 글은 메모지에서 나옵니다. 메모지가 '상상력 발전소'입니다. 개성적인 글쓰기를 위한 세부 지침 1. 나로부터 시작하라 저널리즘적 글쓰기, 특히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나'는 차가운 전달자입니다. 스트레이트 기사에는 글쓰는 사람의 주관이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활자매체의 기사는 연성화하고 있습니다. 피처 기사, 칼럼 등은 대단히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문체를 구사합니다. 기사작성 연습을 하고 싶다면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서전을 써 보거나, 자기가 자기를 인터뷰하는 것입니다. 가족이나 친구를 소개하는 글도 좋은 훈련이 됩니다. 자기가 사는 마을(아파트)을 취재해 사진과 곁들여 기사를 써보는 것도 훌륭한 저널리즘적 글쓰기입니다. 시나 소설을 쓰기 원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쓰십시오. 문학적 글쓰기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 가운데 하나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서 출발하십시오. 나에 대해, 나의 가족과 친구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잘 알고 있는 소재를 글로 쓸 때,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나'에 대한 글쓰기는 자기 삶을 성찰하는 진지한 계기를 제공합니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이 같은 인문학적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은 글쓰기 말고 거의 없습니다. 2. 반복하지 말라 반복은 강조할 때 말고는 피해야 합니다. 반복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표현의 반복과 내용의 반복이 그것입니다. 같은 단어, 같은 표현을 반복하지 마십시오.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유의어를 쓰십시오. '그녀는 아름다운 숄을 두르고, 아름다운 가방을 들었으며, 아름다운 마을에 산다. 이 문장에서 '아름다운'은 반복될 뿐만 아니라, 정확하지도 않습니다. 글쓰기의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내용의 반복입니다. 중언부언하지 마십시오. 같은 내용(견해, 정보, 지식......)이 반복되면 독자는 냉정하게, 즉각 눈을 돌립니다. 친구와 이야기할 때를 떠올려보십시오. 어제 한 얘기를 오늘 하면 친구는 즉각 이렇게 나옵니다. "그거, 어제 들은 얘기야."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3. 한 문장에는 하나의 정보만 담아라 이것은 문장을 짧게 쓰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한 문장에는 하나의 정보, 한문단에도 하나의 정보군을 담는 것입니다. 한 문장에 두 개 이상의 정보를 담는 순간, 문장은 길어집니다. 한 문단에 두 개 이상의 정보군을 담으면, 복잡해지기 때문에 독자가 이해하기 힘들어집니다.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 또는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한 문장, 하나의 정보' 원칙에 따라 글로 써보십시오. 처음에는 대단히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몇 번 고쳐 쓰다보면, 문장을 짧게 쓰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할수 있을 것입니다. 4. 접속사를 쓰지 말라 통학 또는 통근 과정을 '한 문장, 하나의 정보' 원칙에 따라 쓰다 보면, 수시로 접속사가 끼어들 것입니다. 접속사 없이 쓰려고 애써보십시오. 최근에 읽은 소설 가운데 접속사가 거의 ('전혀' 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없는 소설이 있습니다.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인데, 접속사에 유의하며 읽어보십시오. 매우 흥미로운 글읽기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접속사는 글 쓰는 이의 마음속에 있어야 합니다. 특히 연결형, 나열형 접속사를 피하십시오. 5. 나누고 묶어주어라 기사를 쓸 경우, 다양한 정보를 한꺼번에 제공해야 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럴 때는 유사한 것끼리 묶어줘야 독자가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음식 종류를 소개한다면, 국적별 혹은 재료별, 계절별 등으로 나누어 묶어줍니다. 6. 병치할 때 조심하라 같은 기능을 가진 단어, 구, 절 등이 나란히 놓일 때 자주 오류가 나타납니다. '사과와 큰 배' '철수는 중학생이고 영희는 공부를 잘한다'와 같은 문장이 의외로 많습니다. '사과'라는 단어와 '큰 배'라는 구는 병치하면 안 됩니다. 단어는 단어끼리, 구는 구끼리 병치하십시오. '사과와 배' '작은 사과와 큰 배'가 적확한 표현입니다. 앞의 문장은 '철수는 중학생이고, 영희는 초등학생이다로 써야 합니다. '중학생' (단어)과 '공부를 잘한다' (구)가 나란히 놓이면 대단히 어색합니다. '30-3-30 법칙'을 명심한다 언론인들은 30-3-30 법칙'을 자주 언급합니다. 여기서 30. 3. 30은 각각 30초, 3분, 30분을 일컫습니다. 독자들이 기사를 읽을 때, 처음 30초 동안은 제목이나 부제, 사진, 그래픽 요소, 기사의 도입부 등을 살펴본다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처음 30초 안에 기사를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만일 읽기로 마음먹었다면 다음 3분 동안 기사의 도입부를 읽습니다. 그리고 도입부가 흥미롭다면 30분 동안 기사를 끝까지 읽는다는 것입니다. 기자와 편집자는 처음 30초를 3분으로 늘리고, 다시 3분을 30분으로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기사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든 글이 제목과 도입부에서 결정납니다. 시처럼 짧은 글에서도 제목이나 첫 연이 진부하면 독자들은 눈을 돌려버립니다. 소설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보고서나 논문도 마찬가지입니다. '30-3-30 법칙'은 첫 문장에 목숨을 걸라는 저널리즘적 글쓰기의 핵심을 압축하고 있는 법칙입니다. 이문재. 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경희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시사저널 취재부장, 문학동네 편집주간을 역임했고, 현재 <시사IN> 편집위원, <문학동네〉 편집위원,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 등이 있다(pp.197-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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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 “흥청망청” 108회 선관위... 명분없는 돈 낭비
    본 기사는 교회발전연구소 대표 이능규 목사에게 모 인사가 108회 선관위(위원장 권순웅 목사)에 대해 제보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기사임을 밝힌다. 제보 내용에 따르면 선관위가 불필요한 돈을 낭비하고 있다. 제108회기 선관위는 공정선거감시단 해외 활동에 이미 많은 경비를 집행했다. ▲전국장로회연합회 임역원수련회(일본) : 고정식, 손정호, 김삼주, 신덕수, 한기영(750만원 집행) ▲농어촌교역자부부수양회(다낭) : 권순웅, 신덕수, 지동빈, 임종환, 최병도(613만원 집행) ▲전국교역자하기수양회(필리핀) : 전웅구, 김상원, 유병희, 한기영, 이상돈(599만 5천원 예산). 이때 위원장 권순웅 목사와 서기 한기영 목사가 강사를 맡았다고 한다. 현재 바뀐 선거규정에 따라 후보자는 행사에 참석할 수 없다. 그런데 선관위 공정선거감시단은 누구를 감시하기 위해 해외 행사에 동행하는 것인가? 제보자는 “돈**”이라는 격한 표현을 사용했다. 또한 선관위는 민찬기 목사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비로 5천 5백만원을 지출했다. 선관위원들이 1차 투표해 7대7로 나왔다면 의견이 팽팽하다는 것인데 굳이 다시 투표해 7대8로 만든 것이 화근이다. 증경총회장단이나 실행위원회에 넘겨 자문을 구했다면 굳이 총회 돈을 지출할 소송에 휘말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감사부는 107회기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배광식 목사)에 대해 특별재정감사를 하고 있다. 어제는 서기와 회계를, 오늘은 위원장과 심의분과장을 부른다. 안건은 선관위가 재정을 과잉지출했다는 것이다. 모 선관위원은 자기들은 비용을 아껴서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기에 특별재정감사를 받는 것이다. 앞으로 108회기 선관위도 감사부에 의해 특별재정감사를 받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이 악순환을 끊어야한다. 선관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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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4-05-03
  • 【북토크】 가수 장기하의 깨달음
    가수 장기하를 좋아한다. 노래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의 대중적인 첫 노래 “싸구려 커피”, “달이 떠오른다, 가자” 등은 신선했다. 읽을 책들을 검색하다 보니 그가 몇 년 전에 쓴 것이 있어 대출해서 봤다.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첫 장인 ‘안경과 왼손’은 주어진 환경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돌아본 후 감사하는 내용이다. 읽어볼만해 전문을 소개한다. 안경과 왼손 얼마 전 안경을 잃어버렸다. 매우 아끼는 안경이었다. 아니, 아낀다는 표현으로도 모자란다. 이삼 년 전 그 안경을 산 이후로는 오직 그것만 써왔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있을 만한 곳을 전부 다 여러 번씩 싹싹 뒤져봤지만 찾지 못했다. 결국 예전에 썼던 다른 안경을 쓰고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 이삼 일 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마음을 털어버렸다. 그래, 그 안경이랑은 여기 까지였나보지 뭐. 나는 국소성 이긴장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다. 해괴해 보이는 이름이지만 의미는 간단하다. '국소성'이란 특정 부위에 나타남을, '이'는 이상함을, '긴장'은 말 그대로 긴장을 뜻한다. 한마디로 특정 부위가 이상하게 긴장된다는 얘기다. 이 병명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는 '이'다. '이'자가 들어간 병을 선고받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런 상황이다. 몸이 안 좋다. 병원을 찾아가 묻는다. "선생님, 저 왜 아픈건가요?" 의사가 답한다. "그러게요. 이상하네요." 그렇다. 내 병은 원인도 치료법도 알려지지 않은 희귀병이다. 이 병이 처음 생긴 것은 대략 십오년 전쯤으로, 군악대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눈뜨고코베인'이라는 록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었다.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드럼 하나로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연주를 잘하는 사람, 즉 프로 드러머가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외의 진로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학교 공부는 최소한으로 하고 드럼 연습과 밴드 활동 위주로 생활했다. 그러다보니 군복무를 시작도 하지 않은 채 대학 오 년 차를 맞았고, 더이상은 입대를 미룰 수 없게 되었다. 내 선택은 당연히 군악대였다. 군대에 있는 동안 손발이 녹슬면 큰일 아닌가. 일반 부대는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군악대는 록 연주만 잘한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클래식 타악, 특히 행진곡풍의 연주에 능통해야 했다. 자신은 있었다. 이미 연습이라면 많이 해온 터였기 때문이다. 좀 다른 장르의 연주라고 해서 못 해낼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시험을 대비해 맹연습에 돌입했다. 이삼 개월쯤 지났을 때 복병이 나타났다. 연습만 하려고 하면 내 의지와 관계없이 왼손이 꽉 쥐이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드럼 연주의 기본은 그립이다. 누가 툭 치면 놓쳐버릴 듯 살며시 스틱을 잡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만들어야 빠르고 정확한 연주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꾸 나도 모르게 스틱을 힘껏 잡게 되고 그것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연습하다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스틱을 집어던진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결국 군악대는 포기했다. 치료법도 알 수 없고 상태가 호전될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프로 드러머의 꿈도 함께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리 절망스러운 단념은 아니었다. 내 생각의 흐름은 이랬다. '하긴 군악대의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연주하는 게, 내가 멋있는 음악을 하는 데는 오히려 해가 될지도 몰라. 멋있는 음악이라... 그래, 생각해보면 프로 드러머가 되는 것 자체가 멋있는 음악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겠네. 연주로 먹고살려면 돈 되는 음악을 해야 하는데, 내가 지금 멋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음악 중에 돈 되는 게 하나라도 있나? 그리고 나는 우리 밴드 음악이 제일 멋있는데 그걸로 돈을 벌어본 적도 없잖아? 애초에 음악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였어!'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프로 연주자가 아닌, 돈은 안 돼도 '멋있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일반 부대에 입대했다. 제대한 후 나는 그 '멋있는' 뮤지션이 되는 일을 실행에 옮겼다.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한 상태에서, 내가 싱어송라이터로서 이끄는 새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한 것이다. 최소한의 돈과 최대한의 시간을 확보해 자유롭게 음악활동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곡은 군복무중 짬짬이 만들어뒀었다. 물론 큰 인기를 얻으리라는 기대는 전혀 없이 만든 노래들이었다. 눈앞에 있는 관객들만은 확실히 재밌게 해주겠다는 생각이 다였다. 그런데 터졌다. 소위 '대박'이었다. 활동을 시작하고 일 년이 지나기도 전에 전 국민적 히트곡을 보유한 밴드가 된 것이다.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순조로웠다.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왼손에 힘이 들어가는 증상이 기타를 연주할 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 증상이 신기했던 건 유독 드럼 연주를 할 때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다른 일을 할 때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물론 기타 연주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군복무중에도 생활관에 비치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만들었고, '장기하와 얼굴들' 첫 싱글을 녹음할 때도 기타는 내가 다쳤으며, 밴드 활동 초기에는 공연을 할 때도 절반 정도의 곡에서는 내가 기타를 잡았다. 그런데 급격하게 치솟는 인기를 실감하며 공연을 이어가던 어느 날, 기타를 연주할 때도 왼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기타도 포기했다. 이번 단념은 군악대 때와는 달리 좀 절망스러웠다. 공연에서 기타를 연주하지 않기로 했음은 물론이고, 평소에 혼자 치는 것도 거의 못하게 됐다. 늘 자유자재로 하던 기본적인 플레이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니 짜증이 치밀었다. 자연히 심심풀이로 기타를 잡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중학교 때 이후로 그때까지 줄곧 기타는 나의 가장 좋은 취미 중 하나였다. 집에 있을 때면 침대에 누워 기타를 배에 얹고 아무렇게나 퉁겼다. 그러면서 멜로디를 이리저리 흥얼거리다보면 이따금씩 노래가 만들어지곤 했다. 그런 일상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날아가버렸다. 게다가 이번에는 증상이 연주에만 국한돼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일상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곧 타자를 치는 것도, 단추를 잠그는 것도, 왼손을 써야 하는 어떠한 일도 예전만큼 쉽게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로부터 십 년이 흘렀다. 그런데 그 십 년을 돌이켜보면, 이 병이 내게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사실 병에게 엎드려 절하고 싶을 지경이다. 프로 드러머의 길을 포기함으로써 결국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타 연주를 포기한 것 역시 내게 두 가지 커다란 선물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새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 형을 영입한 것, 둘째는 내가 무대에서 악기 없이 자유롭게 퍼포먼스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장기하와 얼굴들’의 활동이 내게 가져다준 희열은 말도 안 되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증상도 아주 조금씩 좋아져 이제는 거의 다 나았다. 지금도 약간의 느낌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일상에서 그것을 의식하게 되는 일은 드물다. 기타와 드럼도 취미 정도로는 다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 연습을 안 했으니 남들 앞에 뽐낼 만한 연주력은 당연히 아니지만, 사실 이제는 그런 능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좋은 연주자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증상이 가장 심했을 때를 떠 올리면 집에서 혼자 재밌게 연주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지금도 이 병의 원인은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듯하고, 물론 나도 아직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이렇게 추측할 뿐이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과도한 것을 강요했고, 몸이 그만두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충분히 쉬게 해주었으며, 그랬더니 시간을 두고 차츰 회복되었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그리고 형체가 없긴 하지만 능력도 마찬가지다. 어제까지 당연히 할 수 있었던 일을 오늘 갑자기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무척 괴롭긴 했지만, 결국 다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 능력은 여기까지인가보다, 하고.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 맞춰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그러고 나면 그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다른 길이 열리곤 했던 것이다. 안경은 며칠 뒤에 소파 밑에서 찾았다. 전날 술에 취해 소파에서 잠들었고, 안경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는 과정에서 소파 아래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거실에서 잠드는 일이 거의 없다보니 그곳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먼지 구덩이 속에 얌전히 놓인 안경을 발견한 순간, 그야말로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많이 아끼는 안경이라 해도, 물건 하나로 그렇게까지 기쁠 수 있다싶었다. 모르긴 해도, 깨끗이 포기했었기 때문일 거다(pp.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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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5-02
  • 【단상】 부총회장 선거, 축제가 싸움판으로
    지난 4월 25일 오전 11시 참좋은교회(이윤찬 목사 시무)에서 대구교직자협의회 제31회 정기총회가 있었다. 이승희 증경총회장의 개회 예배 설교 후 합심기도 시간에 경북교직자협의회 대표회장 강전우 목사가 ‘총회와 영남지역을 위해서’ 기도할 때 부총회장 자격 문제로 소송이 붙은 총회를 염려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소송 관계자인 부총회장 후보 민찬기 목사나 장봉생 목사의 마음은 어떨지 모르나 총회 회관에서 먼 경상도 지역에서도 현 사태를 매우 안타깝게 여기며 탄식으로 기도하고 있다. 아마 이 사태를 지켜보는 대부분의 총대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한 사람의 부총회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물질이 필요하다. 노회와 협의회, 총회 등에서 오래 봉사하며 자신을 알려야한다. 이에 많은 시간이 든다. 그리고 물질로도 많이 섬겨야한다. 그래서 아무나 부총회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시간과 물질로 섬겨온 부총회장 후보들은 모두 총회의 귀한 자산이다. 바람직한 것은 단독 후보로 추대되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경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친했던 사이도 서먹해지거나 “원수” 사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곽선희 목사는 운동을 할 때 서로 마주보는 것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탁구나 테니스나 서로 마주보고 하다보면 감정 싸움이 될 수 있기에 자기는 각자 실력으로 승부하는 볼링을 한다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오래 세월 총회를 섬겨온 민찬기 목사나 장봉생 목사는 현재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내리 누르고 이겨야할 경쟁 상대로 보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런 면에서 선거란 참으로 잔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민찬기 목사 소속 임원회가 민찬기 목사의 후보 자격에 대해 물었을 때 장봉생 목사 소속 노회도 임시노회를 열어 부총회장 출마 자격에 대해 선관위에 질의했다. 선관위가 이 문제를 다룰 때 투표에 처음에는 7:7 동수가 나왔다. 이어 재투표하여 7:8로 세 번 출마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 지나간 일이지만 의견이 7대 7로 나뉘었다는 것은 선관위원 내에서도 의견이 팽팽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문제를 바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좀더 시간 여유를 두고 처리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증경총회장단의 의견을 듣는다든지, 실행위원회에서 의견을 구했다면 모양세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속전속결로 재투표해 7:8로 세 번 출마 불가로 정했다. 그러자 민찬기 목사측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소송을 했고, 소속 노회에서 부총회장 후보로 추천을 받았다. 세상 법정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두고보면 된다. 그런데 성경은 교회 문제를 세상 법정에 끌고가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고전6:1-7]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새로이 총회를 섬길 일꾼을 뽑는 총회 선거가 축제가 아니라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사법의 판결을 받아야하는 싸움판이 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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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4-04-26
  • 취재 기자를 내쫓는 노회들...무엇이 두려운가?
    봄 정기노회가 열리는 계절이다. 서울에서 먼 지방의 몇몇 노회를 취재갔다. 그 중 2개 노회에서 “내쫓김”을 당했다. 이리노회는 북일교회 문제로 회원 호명 때부터 시끄러웠다. 결국 노회원들간에 고성이 오갔다. 이런 가운데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거칠게" 요구했다. 결국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 충청노회도 전 총신대총장 김영우 목사 피소건에 대해 다루며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험악하게” 요구했다. 결국 본당 중이층으로 쫓겨갈 수 밖에 없었다. 기자는 사실을 취재하고 알리기 위해 그 현장에 가 있는 것이다. 북일교회 문제는 대부분의 총회원들이 알고 있을만큼 큰 이슈이다. 당연히 기자들이 가서 취재할 수 밖에 없는 사항이다. 기자는 총회원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대신해서 그 현장에 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기자들을 내쫓는 것인가? 그것이 과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는가? 기자가 보면 안될만큼 감춰야할 문제가 있는가? 사실을 사실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 없는 노회는 취재간 기자들을 반기며 좋게 기사를 써서 노회를 잘 홍보해 달라고 부탁한다. 기자로서도 기분좋은 일이다. 반면 문제 있는 노회는 기자를 내쫓는다. 마치 잡상인 취급을 한다. 부득이 기자를 내보낼 필요가 있다면 “정중하게” 요청했으면 한다. 같은 합동측 목사한테 그렇게 함부로 해서 되겠는가? 앞으로도 “문제 있는” 이리노회와 충청노회 “사태 추이”에 대해 예의주시할 것이다.
    • 오피니언
    • 칼럼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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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관위 해외 세미나, 말거리 될 일은 하지 말아야
    총회 선관위(위원장 배광식 목사)가 6월 27일부터 30일까지 대만에서 선관위 수련회를 진행키로 했다.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위원들은 선관위에서 비용을 내고 동반하는 사모는 자부담이라고 한다. 그래도 이전 선관위보다 1/10 수준으로 비용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선 과거 선관위가 얼마나 비용을 사용했는지 궁금하다. 해외로 갈려면 적잖은 비용이 들텐데 그럼에도 이전보다 많은 비용이 아니라면 과거 선관위는 흥청망청했는가? 또한 순수 수련회라면 왜 사모가 동행하는가? 공무원들이 해외연수라는 명목으로 국민들의 혈세로 관광을 다녀오는 것을 본다. 그리고는 하나같이 베낀 허접한 보고서를 낸다. 국회의원들도 하나같이 외유성 해외시찰을 간다. 다 국민이 낸 피같은 세금으로 말이다. 하지만 욕하는 나도 공무원이라면, 국회의원이라면 공짜 해외여행을 냉큼 갔다올 것이다. 그만큼 공짜로 놀러가는게 얼마나 좋은가? 같은 맥락으로 왜 선관위 수련회를 해외에서 하는가? 국내에서 하면 안되나? 어차피 책정된 예산이 있으니 써 보자는 것인가? 예산이 남으면 반납하면 되는 거 아닌가? 행정서류 발급중지까지 하며 악착같이 받아낸 세례교인헌금으로 분배된 교회의 혈세(?)가 눈먼 돈으로, 먼저 쓰는 사람이 임자인 것처럼 보이는가? 선관위 왜 이러는가? 절제와 분별의 은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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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03
  • 【천안중부교회사태17】 무법과 탈법의 이상규, 총회임원회 결정 대놓고 무시
    총회임원회는 지난 5월 18일 제24차 임원회를 총회회관에서 갖고 충남노회 폐지 후속처리 건에 대해 몇 가지 결정을 했다. ①사회소송시행세칙에 따라 대표권을 부여한 고영국 목사의 노회 소집이 원만하지 못하므로 기존에 부여한 권한을 중지키로 ②충남노회폐지후속처리위원회(위원장:김상현 목사)로 하여금 다시 각 측의 입장을 듣고 협상을 지시하기로 ③충남노회폐지후속처리위원회가 천안중부교회 문제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 ④충남노회 사건과 관련해 총회장과 총회임원, 충남노회폐지후속위원회 위원 교회에서 시위할 경우 사법 대응과 언론 대응을 총회에서 지원하기로. 그러나 이상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동풍의 길을 가고 있다. 지난 3월 총회가 고영국과 이상규에게 소집권을 부여하자마자 곧 자신을 천안중부교회 임시 당회장으로 해 공동의회를 소집하고 김종천 담임목사를 해임결의했다. 공동의회 금지 가처분이 나왔음에도 무시하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후 교회 직원을 해고하고, 50여명 교인들의 교회 출입을 금지했다. 그리고 6월 4일 김종천 목사 재신임 공동의회를 개최한다. 총회 임원회가 권한을 중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귓등으로로 듣지 않고 있다. 오히려 주일에 권순웅 총회장이 시무하는 주다산교회 앞에서 시위를 했고, 6월 4일도 시위할 예정이다. 이처럼 사회법과 총회 임원회의 결의도 무시하는 이상규는 초법적인 인물인가보다. 상명하복이 생명인 군대에도 “개자무적”이라는 말이 있다. “개기는 자에게는 적이 없다”는 말이다. 법이고 결의고 개기면 되는 세상인가? 총회가 무법천지가 됐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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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03
  • 주다산교회, 이번 주일도 시위 예고
    지난 주일에 이어 이번 주일에도 주다산교회 앞에서 시위가 있을 예정이다. 지난 주 비가 오는 가운데 30여명이 우비를 입고 권순웅 총회장을 향한 “과격한 문구”의 현수막을 걸고, 피켓을 들고 시위했었다. 확인 결과 이번 주일에도 집회 신고가 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은 일당을 받고 시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권순웅 총회장은 총회 일로 해외에 출타 중이며 6월 16일 귀국 예정이다. 총회장이 총회 업무 차 긴 기간 출타해 있는 이 때를 이용하는 그 전략이 놀랍다. 개척 30년 된 주다산교회에 큰 시험이 아닐 수 없다. 교인들이 시험에 들까봐 총회장이 안쓰럽다.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속절없이 당해야한다. 총회 임원들도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것 같다. 과연 이러한 주일 시위가 당사자에게 독이 될지 득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만약 이 방법이 통한다면 앞으로 제2, 제3의 “주일 시위”는 합동 교단의 "트레이드 마크"가 될 것이다. 심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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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02
  • 【구 충남노회 사태8】구 충남노회 중도측, 노회 신설 일치단결
    작년 107회 총회 현장에서 총대들의 가결로 폐지된 구 충남노회는 3개파로 나뉘어져있다. 이상규 측의 정기회측, 윤익세 측의 속회측 그리고 윤해근 측의 중도측이다. 총회 임원회는 올해 9월 108회 총회를 앞두고 구 충남노회 문제를 매듭짓고 싶은가 보다. 그동안 손놓고 있던 충남노회폐지후속처리소위원회 위원장 김상현 목사에게 정상화 재지시를 한 것이다. 그래서 조만간 김 목사는 3측과 만나 의견조율을 할 예정이다. 그런가운데 현재 53개 교회가 있는 중도측이 오늘(6월 1일) 모처에서 모임을 갖고 대응책을 모색하고 결의를 다졌다. 올해 노회 신설을 하는 과정에서 기회를 놓친 중도측은 결코 두 측과 함께 하기를 원치 않는다. 반드시 새로운 노회를 신설하는 것이 중도측의 변함없는 뜻이다. 그만큼 함께 있으면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질렸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함께 해보라는 것은 결국 죽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한 일이다. 총회는 이미 구 충남노회의원들의 노회 신설을 허락했다. 다시한번 기회를 주어 53개 교회가 있는 중도측이 노회를 신설하게 하는 것이 이들의 뜻이며 계획이다. 총회 임원회의 현명한 판단과 결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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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01
  • 사조직 『합동포럼』, 권언유착?
    권언유착(權言癒着)이란 말이 있다. “언론이 부당한 권력의 비판에 앞장서야 한다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결합하여 권력의 논리를 추종하거나 옹호하고 이를 통해 특례조치를 향유하려는 현실을 꼬집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 견제해야한다. 그런데 언론이 비판해야할 대상과 함께 한다면 언론의 사명을 제대로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합동포럼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개연성이 있다. 합동포럼은 크리스천포커스의 송삼용 목사가 주도적으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조직도에 보면 송삼용 목사가 공동회장과 중앙위원을 겸하고 있다. 그러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 조직에 속한 언론이 멤버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비판할 수 있겠는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본 기자가 합동포럼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이유는 총회의 핫 이슈인 구 충남노회 부활과 천안중부교회 문제에 합동포럼 인사가 다수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잘못에 대해 과연 두 언론은 비판하고 견제할 수 있는가? 법리의 옳고 그름이 논쟁 가운데 있는 “사회소송대응시행세칙”이 있다. 구 충남노회 부활과 천안중부교회 사태를 야기시킨 이것에 대해서 리폼드뉴스 소재열 목사는 “잘못됐다”고 말하고, 송삼용 목사는 “옳다고” 말했다. 이럴 때 아무리 송삼용 목사의 주장이 옳다해도 전적으로 수긍하기가 어렵다. 의견의 진실성에 의심이 가기 때문이다. 아전인수의 해석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언론의 고유기능인 감시와 견제, 비판을 위해서는 권력과 불가근불가원(不可近 不可遠) 해야한다. 언론은 권력과 너무 가까워서도 안 되고 너무 멀어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합동포럼은 이 원칙을 무시하고 두 언론이 함께하고 있으며 요직을 맡고 있다. 그래서 본 기자가 멤버 안에 물의를 끼치는 인물이 있을 때 어떻게 조치할 것인가를 아무리 물어도 모르쇠로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다고 문제가 없어지는가? 합동포럼의 성실한 답변을 촉구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합동포럼이 해체되어야 한다. 언론인과 정치행정의 동일 단체활동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세상 정치에도 없는 일이다. 언론인 단체로 전환하든지 해야한다. 총회에 음성적으로 또는 양성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교계 언론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한 언론인이 왜 합동포럼에 같이하자는 송 목사의 제안을 거절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것이 언론인의 가야할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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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01
  • 사조직 『합동포럼』의 정체성?
    본 기자는 합동포럼에 대해 “사조직 『합동포럼』, 또 하나의 총회인가? 총회임원 등용문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그리고 두 가지를 요구했다. “사조직 합동포럼에게 요구한다. 구성원 중에 현재 총회적으로 물의를 끼치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 합당하게 제재하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제 식구 감싸기’나 하는 그렇고 그런 사조직이라고 평가될 것이다. 또한 총회임원 등용문의 역할을 하지 말기 바란다. 무슨 의도로 합동포럼을 만들었는지는 모르나 보여지는 모습은 총회임원 등용문처럼 보인다” 이에 대한 답을 합동포럼 기획실장 송삼용 목사가 5월 31일 12시에 기사로 썼다. 이 기사는 본 기자가 있는 단톡엔 없는데 한 언론인이 어느 밴드에 올려 보게 됐다. 아마도 본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이처럼 한다리 건너 합동포럼의 정체성에 대해 말을 주고 받아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것이 애석하다. 과거 본 기자도 송 목사가 만든 단톡에 초대되어 기사를 자주 올렸었다. 그러다가 작년 송 목사가 지지하는 총회 임원 후보를 근거없이(?) 비난한다는 찌라시 언론 취급을 받으며 단칼에 “강퇴”당했었다. 그때의 황당함을 「갑질이 판치는 세상」이라는 기사로 만들어 올렸다. 그 기사 중 일부다. “갑질이 판친다. 사람 사는 모든 곳에는 갑과 을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이를 이용해 갑질하는 족속들은 차고도 넘친다. 카톡과 밴드 세상에서도 그렇다. 필자는 여러 단톡에 강제 가입되어 있는데 과거 3군데서 내쫓겼다. 그것도 같은 교계 기자가 방장으로 있는 곳에서. 한 곳에서는 자기가 미는 특정 총회 임원 후보에게 불리한 기사를 싣는다는 죄목(?)으로 즉결 처분되어 출교, '출카톡'됐다. 어이가 없었다. 같은 논조의 글을 실었던 다른 언론사주도 같은 죄목으로 쫓겨났다. 그런데 필자보다 100배는 강하게 그 후보의 잘못을 기사로 밝힌 한 언론사 사주는 내쫓지 못했다. 언론 선배였기 때문이다.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한 그 기자의 모습은 참 거시기하지 않는가? 교계 기자를 시작하며 한 때 본 받을려고 했었는데 아쉽다” 이후 지난 4월 어느 목사의 원로추대식에서 우연히 송 목사를 보게 됐는데 “단톡방에서 내보내 미안했다”는 말을 했다. 어이없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나? 송 목사는 기사에서 “개인·교회 관련 사조직 최소한 200여개 이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총회의 사조직들이 총회를 바로 섬기는데 기여하고, 그로 인하여 총회가 발전하며, 성숙하게 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도록 기대하는 것 외에 사조직에 대해서 사사로이 관여하고, 간섭하고 왈부왈가할 단계는 지나”라고 말했다. 그리고 합동포럼에 대해 자신했다. “합동포럼 역시 전국에 흩어진 멤버들이 <바른총회, 좋은총회, 품격총회>를 세우기 위해 잘 갖춰진 멤버들이 총회를 섬기도록 협력하고, 더 나아가 칼빈주의 정치를 실현하여 우리 총회의 개혁신학적 정체성을 후대에 전수하자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합동포럼의 확고한 정체성이다” 그러면 또 다시 묻겠다. “그 안에 있는 멤버는 잘 갖춰진 멤버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지난 기사에서 “구성원 중에 현재 총회적으로 물의를 끼치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 합당하게 제재하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제 식구 감싸기’나 하는 그렇고 그런 사조직이라고 평가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잘 갖춰지지 않은” 멤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제재하거나 내보내는 규정이라도 있는가? 꼴두기 같이, 미꾸라지 같이 합동포럼을 망신시키는 멤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왜 하지 않는가? 왜 애써 외면하는 것인가? 그런 멤버들이 보이지 않는가? 또 하나 묻겠다. “잘 갖춰진 멤버들이 총회를 섬기도록 협력하고”라고 밝혔다. 적어도 합동포럼에 있는 멤버들은 총회 정치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다. 직접 나서거나 참모 역할을 할 사람들이다. 그러면 합동포럼에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지지할 것인가? 합동포럼에 있는 멤버가 합동포럼에 들어 있지 않은 상대 후보보다 현격히 떨어지는 후보라도 같은 멤버이기에 지지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결국 害총회 행위가 되는 것이다. 합동포럼은 2년 전 12명으로 시작된 후 현재 130여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괄목할만한 성장이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합동포럼이 올해 목사 부총회장 선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곧 그 모임의 성격을 규정할 것이다. 본 기자는 예의 주시할 것이다. 기사에서 “사조직에 대해서 사사로이 관여하고, 간섭하고 왈부왈가할 단계는 지났다”고 했는데 “사사로이 관여하고, 간섭하고, 왈가왈부(이것이 옳은 표현이다)”해서 미안하다. 그것이 기자의 숙명이다. 사조직ㆍ사설단체가 총회 공적기관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는 교회에서 사조직이 당회를 좌지우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목회 현장이 절대 그렇게 되면 안된다. 왜? 성경 말씀이 그리고 헌법이 아니기에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권순웅 총회장이 "사조직의 선거 개입은 단절 되어야 하고, 총회 정치 개입을 차단해야 한다"고 외친 것이다. 그 외침은 대답할 이 없는 공허한 소리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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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31
  • 【구 충남노회 사태7】언론사를 겁박하는, 충남노회 고영국·이상규
    본 빛과소금뉴스는 그동안 충남노회와 천안중부교회 문제에 대해 많은 기사를 연재했다. 특히 지난 9월 107회 총회현장에서 폐지된 충남노회가 지난 3월 총회 공문에 의해 다시 나타났을 때부터 그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에 노회장 고영국과 서기 이상규는 지난 3월 본지 발행인 기자에게 같은 내용의 『경고장 및 법적착수예고서』를 각각 보내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경고장 및 법적착수예고서 수신 : 빛과소금뉴스(Insnews.com)(등록번호: 서울 아54012) 발행인: 김병중 귀하 발 신 : 충남노회 노회장 고영국 충남 천안시 서북구 부성2길 14 천안새순교회 내 충남노회 1. 귀사의 2023.3.6.자 기사 포함 총 9편 기사에 의하면 충남노회 및 천안중부교회의 관련 현안에 관하여 일방당사자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인용하여 마치 이것이 사실인 것처럼 게재하였습니다. 이에 관하여 귀사는 충남노회 또는 충남노회가 파송한 천안중부교회 당회장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았고 반론의 기회도 주지 아니한 위법이 있습니다. 2. 위 기사의 작성 경위 및 상대방의 반론권을 보장하지 아니한 이유에 대하여 이번 주 목요일(3월 23일) 오후 6시까지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밝히기 바랍니다. 3. 위 요청을 이행하지 아니하거나 불성실하게 응하는 경우에는 관련 법령에 따라 민형사상의 법적조치를 취할 것임을 예고합니다. 2023. 3. 21. 대한예수교장로회 충남노회장 고영국 내일 즉 2023.3.25.12:00까지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본 신문의 발행인 기자는 이상규와의 전화 통화 중 “반론문을 보내오면 게재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반론문을 왜 내가 쓰느냐?”는 황당한 답변을 했다. 그러면 반론문을 기자인 내가 써줘야하나? 언론사는 언제나 반론문을 기재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한번도 반론문을 보내온 적이 없었다. 노회장 고영국과 서기 이상규는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신문사를 상대로 『경고장 및 법적착수예고서』를 보내왔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그동안 계속해서 노회장 고영국과 서기 이상규가 연관된 충남노회 정상화 문제와 천안중부교회 문제를 다뤄왔다. 앞으로도 본지 빛과소금뉴스는 어떤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사실 보도를 통해 총회와 교회를 바로 세우는 언론의 사명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지치지 않고 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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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31
  • 한국기독실업인협회(CBMC), 숭실대 학생들 멘토 역할 큰 성과
    한국기독실업인협회(CBMC)가 지난 2월 17일 제56차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이때 "지난 1월 16일에 숭실대학교와 산학협력 창업 및 선교를 바탕으로 기독교 정신을 함양한 인재 양성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하였습니다. 복음을 잃어가는 대학 캠퍼스에 복음의 씨앗을 심고 학생들의 미래인 일터 현장에서 복음 안에서 당당하게 이겨 나갈 수 있도록 함께 협력합시다. CBMC가 일터의 선배로서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앞장서고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 학생들은 우리 CBMC의 미래입니다”라고 밝혔다. 이후 실제로 숭실대에서 진행되는 소그룹채플 수업에 관여하고 있다. 숭실대는 2021년부터 ‘소그룹채플’을 실시하고 있다. 그룹당 학생 8명으로 구성한 후 그룹별 멘토를 배정해 기독교 관련 주제를 청취하고 멘토와 학생이 토론하는 참여형 방식이다. 멘토들은 기독교 신앙을 토대로 주차별로 제공되는 강연 주제에 관해 토론하고 소통을 이끌며 기독교 정신을 가르친다. 현재 소그룹채플은 수강인원 1358명, 184개 그룹, 178명의 소그룹멘토로 운영되고 있다. 소그룹채플 멘토는 목회자, 선교단체 간사, 선교사, 평신도, 장로회신학대학원 대학원생, 숭실대 교수들도 참여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한국기독실업인협회(CBMC)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CBMC 회원 65명이 멘토로 활동하며 신앙 지도는 물론 일터의 선배로서 진로 상담도 지원하고 있다. 숭실대 교목실은 소그룹채플을 통한 자연스러운 기독교와의 접촉점 마련으로 학생들의 채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개선됐으며, 학우들과 멘토와의 자연스러운 대화와 소통을 통해 학생들의 소속감과 안정감도 증진됐다고 평가했다. 앞으로 한국기독실업인협회(CBMC)는 더 많은 대학과의 업무협약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믿음과 꿈과 직업의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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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30
  • 사조직 『합동포럼』, 총회를 경악케한 회원을 감싸고 공멸할 것인가?
    그동안 구 충남노회 문제와 그 노회에 속한 천안중부교회 문제를 여러 차례 기사화한 본지의 기자는 지난 토요일 오후 4시, “사조직 『합동포럼』, 또 하나의 총회인가? 총회임원 등용문인가?”란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사조직 『합동포럼』안에 총회적으로 큰 물의를 끼치는 회원이 있는데 방치할 것인가? 제재할 것인가를 묻고, 합당한 조치를 촉구했다. 그러자 엉뚱하게 관계자 한 사람은 “합동포럼 비전 선언문”을 올리고 다른 두 언론사에서도 같은 비전 선언문을 올렸다. 사조직 『합동포럼』이 창립 2주년이 됐을 때 다음과 같은 내용의 비전 선언문을 발표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총회 헌법이 유린되고, 총회 규칙을 위반했으며, 총회 결의를 외면해 왔다. 교권 남용의 정도 역시 도를 넘어섰고, 재판의 공평함도 무너졌다.(중략) 2. 우리는 성역없이 헌법과 규칙 및 결의를 준수한다. 4. 우리는 총회의 거룩성을 회복하여 세상의 빛이 된다. 5. 우리는 총회의 개혁과 정화를 위해 상호 연대한다” 선언문을 보면 그럴싸하다. 그러나 선언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타나는 모습이 중요한 것이다.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안다고 하지 않는가? 사조직 『합동포럼』의 한 회원이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일로 인해 총회가 난리다. 지난 주일 낮 예배 시간에 권순웅 총회장이 시무하는 주다산교회 맞은편에서 시위가 있었다. 온통 총회장을 비난하는 내용의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비오는 가운데 오전 9시 30분부터 12시 정도까지 30여명이 시위했다. 이 소식을 접한 총회원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주일성수’를 생명처럼 중요시하는 합동교단에서 주일에 총회장 교회 앞에서 시위를 했기 때문이다. 총회 임원회나 권순웅 총회장이 속한 평서노회 임원회는 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기의 욕망을 위해서 이처럼 물불 안가리고 일을 저지른 사람으로 지목되는 인물이 바로 사조직 『합동포럼』의 한 회원이다. 그는 구 충남노회 복원 문제와 천안중부교회 문제에도 깊이 관여된 인물이다. 과연 이러한 인물을 그대로 두고 선언문 내용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박찬욱 감독이 만든 「친절한 금자씨」의 주인공 이영애가 한 “너나 잘 하세요!” 대사가 떠 오른다. 이제라도 사조직 『합동포럼』은 당사자를 불러 사실 여부를 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조직 『합동포럼』은 총회를 경악케한 회원을 감싸고 같이 망하는 길을 갈 것이다. 사조직 『합동포럼』에 회원에 대한 규정이나 정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차제에 회원에 대한 규정 등을 만들어야할 것이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 놓는다”는 말이 있다. 사조직 『합동포럼』이 꼴뚜기와 미꾸라지를 처리하지 않고 미적거릴수록 공멸(共滅)의 길을 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처리할 시간이 많지 않다. 계속해서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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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30
  • 기자가 사진사인가?
    취재가면 대놓고 자기 사진 찍어 달라는 사람들이 있다. 어이가 없을 때가 있다. 친분이 있거나 필요시에는 기꺼이 찍어 줄 수 있으나 별 친분도 없는데 당연한 듯 부탁(?)한다. 행사장에 본인 인증샷 찍으러 왔나? 기자는 취재하러 간 것이며 사진은 기사에 필요하기 때문에 찍는 것이다. 그리고 행사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한다. 설교자는 초기에만 사진 찍어 주고 자리에 앉아 설교에 집중해 기록한다. 설교하는 설교자와 설교듣는 청중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목사 기자로서 설교할 때 누군가 돌아 다니면 설교에 방해가 된다는것을 알기 때문이다. 집중해 설교를 듣다보면 은혜를 받든지, 구설수 거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면에서 설교자는 기자가 불편할지도 모른다. 기자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는 것은 무례할 수 있음을 알고 조심하는 예의가 필요하다. 예의범절은 지나쳐도 지나치지 않다.
    •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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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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