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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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정호 목사, 대전 시장에게 코로나19 감사패 받다
    대전광역시는 지난 11월 16일 서구 둔산동에 위치한 새로남교회 오정호 담임 목사(미래목회포럼 대표)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허태전 대전시장은 새로남교회가 코로나19 등으로 어려운 시기에도 꾸준한 기부 활동과 지원을 통해 지역사회 공헌에 앞장서 온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옛 충남도청사에 마련된 시장 집무실에서 오 목사에게 패를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 허 시장은 "새로남교회 오정호 목사님께 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이번에 패를 드리게 됐다"며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지역 사회를 위해 헌신한 점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오정호 목사는 "교회가 지역 사회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앞으로도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특별히 새로남교회는 2007년부터 카페의 수익금 전액을 어려운 대전과 이웃을 위해 사회에 기부해 오고 있으며 작년 2020년에는 누적 기부 20억을 돌파했다. 카페 수익금으로 기부했던 단체들은 태안반도 봉사 경비, 한국 해비타트, 북한 결핵 환자 돕기, 북한 동포 수재 피해 돕기, 월드비전, 고등·대학생 장학금, 지역 노숙자 무료급식, 한밭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사랑의 열매), 대전경찰청 경찰가족 환우돕기, 6.25 참전용사 격려행사, 대전CBS 불우이웃돕기 송년음악회, 서구관내 저소득층, 복지시설, 사회복지관 및 경로당 연말 후원, 보라매공원 성탄거리 조성(서구청)등이다. 특히 작년 4월에는 한밭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해 대전 서구지역 내 위기 가정을 돕기 위한 지원사업으로 1500만원, 올해 1월에는 2000만원을 후원했다. 5월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대전 시민들을 위해 부활절에 드려진 헌금 2억을 전달했다. 작년 8월에는 수해 피해 극복을 위한 긴급재난 구호 성금 1억원을 대한적십자사 대전 세종지사를 통해 전달했다. 12월에는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에 2천만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새로남교회 담임 오정호 목사와 교우들의 대전시를 위한 사랑과 헌신은 더욱 커지고 있으며 이는 대전시 뿐만 아니라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이로인해 새로남교회 뿐만 아니라 전국 교회에 매우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기에 큰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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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2022-03-18
  • 감사의 능력
    음식을 만들거나 먹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무엇인가? 소금의 중요성이다. 음식을 만들 때 먼저 메뉴를 정한 다음 여기에 들어갈 재료들을 신선하고 좋은 것으로 준비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맛이 없다든지 무엇인가 2% 부족하다고 느낄 때 적당하게 소금으로 간을 하게 되면 갑자기 음식 맛이 살아난다. 결국 음식 맛은 소금이 결정하는 것이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주는 최고의 조미료이자 해결책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거나 풀리지 않을 때 그것을 해결해 주는 키가 무엇이냐? 감사다. 감사는 막힌 것을 뚫어주고, 안 되는 것을 되게 만들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다음은 심리학자이며 크리스챤 작가인 단 베이커(Don Baker)가 쓴 ‘탱큐 테라피’라는 글이다. ‘탱큐 테라피’는 우리 말로 번역을 하면 ‘감사요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감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나는 최근 나의 사무실 스태프들의 월급을 지불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내 아내는 최근 오른쪽 팔꿈치에 혹이 만져져서 MRI 사진을 찍었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내 아내 캐롤은 또한 호르몬 불균형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아직 효율적인 치료책을 찾지 못하고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최근 집안 정리나 청소할 시간이 없어서 언제 시간을 내서 산만한 집안 살림을 정리할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최근 미국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너무 맘에 들지 않아서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물론 이런 모든 문제에 대하여 ‘너희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말씀을 생각할 때 마다 염려를 떨쳐 버리지 못하는 제 자신이 더욱 염려가 됩니다. 저는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제 자신을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증세가 어떻게 내 관절을 아프게 하는지, 어떻게 내 침을 마르게 하는지, 어떻게 내 손바닥에 땀을 나게 하는지, 어떻게 호흡곤란을 일으키는지, 어떻게 소화불량과 위경련을 일으키는지, 어떻게 우울증을 유발시키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와 내 아내는 우리들의 문제에 대한 너무나 완벽하고 강력한 치료책을 찾아냈습니다. 이 치료제의 효율성은 거의 기적적인 것입니다. 저와 저의 아내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치료제의 효율성을 임상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이 치료제는 식전이나 식후에 복용하시면 됩니다. 호흡곤란을 느낄 때, 가슴에 통증이 느껴질 때, 수시로 복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과 함께 드실 수도 있고, 물 없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처방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 치료제는 절대로 부작용이 없고 안전합니다. 더욱이 이 치료제는 무료입니다. 저는 이 치료책을 일컬어 ‘탱큐 테라피’(thank-you therapy)라고 부릅니다.” 내일은 추수감사절이다. 기독교에서 감사가 얼마나 중요하면 절기를 만들어서 지키도록 했을까? 행사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고 여기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을 준비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감사가 있는 감사절을 지키자. 감사함으로 지나간 시간들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은혜다. 모든 것이 축복이다. 감사는 모든 것을 복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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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2022-03-18
  • 감사부, 105회 선관위 감사 난관 봉착
    제106회 총회정기(중간)감사가 3월 14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17일(목) 오전 9시 30분에 감사부 모임을 시작했다. 이날 감사부 모임에 고영기 총무가 참석해 감사부 회의를 위해 기도한 후 "감사부의 노력에 적극 동의하며성역없는 감사가 되야 총회가 발전한다. 오 위원장의뜻이 잘 이루어지기 바란다"고 감사부를 격려했다. 오광춘 장로(위원장)는 "105회기 선관위에 대한 감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가운데 선관위 감사가 불법이라며 이를 강행할 때 감사기관에 대해 법적조치를 하겠다는 것은 협박으로 보인다"며 "총회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 파헤치다 문제가 생기면 감사부장인제가 책임지겠다"면서 "배 총회장과 최종 면담을 하고 선관위에 대한 감사를 하고자한다"고 발언했다. 오위원장과 배 총회장의 면담 결과에 선관위가 어떻게대응할지 추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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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관
    2022-03-17
  • 평안교회, 창립 기념 및 임직 감사예배 드려
    평안교회당 평안교회 창립 70주년 기념 및 임직 추대 은퇴 감사예배가 11월 20일 오후2시 서소문로에 소재한 평안교회(담임 황석형 목사)에서 있었다. 황석형 담임목사 1부 감사예배는 황 목사의 인도로 한혜관 목사(부노회장, 애일교회)가 기도한 후 요한복음6장 11절부터 15절까지를 본문으로 길자연 원로목사(증경총회장, 왕성교회)가 '산으로 떠나시다'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길 목사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백성들은 예수님을 세상적인 왕으로 생각했다. 이때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 산으로 가 기도하셨다"며 "예수님은 기도의 생애를 사셨다. 우리 신자들도 예수님처럼 기도해야한다. 기도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면서 "기도하는 것도 훈련이다. 깊은 지경의 기도를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예수님처럼 늘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호철 장로가 70년사를 황 목사에게 증정했다. 백영우 원로장로는 "평안교회 70년사를 발간함에 감사드린다. 지나간 역사를 돌아보며 앞으로 더 크게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감사의 말을 했다. 2부 추대 및 은퇴식은 황 목사의 인도로 황병락, 윤달균씨를 원로장로로 추대하고 조광현, 김진형씨를 은퇴장로로 박청옥, 염정순, 조은희씨를 은퇴권사로 공포했다. 황석산 목사(증경노회장, 큰숲교회)가 원로장로에게 "한 교회를 평생 섬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제2의 사역을 감당하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굳건히 믿기를 바란다"고 축사하고, 장필봉 목사(증경노회장, 보린교회)가 은퇴장로 및 은퇴권사에게 "은퇴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박사가 스스로 연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처럼 은퇴하시는 분들은 신앙의 박사이다. 하나님께 큰 상 받는 복을 누리시기 바란다"고 축사했다. 3부 임직식은 황 목사의 인도로 구명준, 안찬영, 나원우, 김윤락씨가 장로로, 정진영, 주진석씨가 집사로 , 박진희, 고혜전, 이선애, 이영희씨가 권사로 임직했다. 임직자 단체 사진 4부 축하 및 감사는 황 목사의 인도로 강재식 목사(노회장, 광현교회)가 임직자에게 "교회 일꾼으로 충성하여 하나님과 교인들에게 칭찬 받으시기를 바란다"고 권면했다. 김진하 목사(증경노회장, 예수사랑교회)는 교우들에게 "역사적 인물 히틀러와 아이젠 하워는 같은 해에 태어났고 2차 대전에 격돌했다. 사람은 교육과 격려로 만들어진다. 성도들의 격려와 후원으로 훌륭한 임직자를 만들기 바란다"고 권면했다. 고영기 목사(총회 총무, 상암월드교회)는 "163개 노회 중 은혜가 넘치는 평양노회 평안교회의 창립 70주년과 임직, 추대, 은퇴를 축하한다"고 축사하고, 박광원 목사(증경노회장, 가산교회)는 "교회의 직분은 무엇보다 귀하다. 잘 감당하시고 은퇴하시는 분들을 축하하고, 임직하시는 분들도 잘 감당하시기 바란다"고 축사했다. 구명준 장로가 "임직자들은 목사님과 교회를 잘 섬기겠다. 하나님과 교회와 교우를 사랑하는 임직자가 되겠다"고 답사하고, 조은칠 원로목사(증경노회장, 예광교회)의 축도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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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2022-03-16
  • “애국목회자들”이라... 답답하네요
    김동일 목사 1. “교파를 초월한 애국목회자들이 부산 세계로 교회로부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약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회개대성회를 개최하였다.” 이 따옴표는 친구목사님께서 답답해하면서 올려주신 한 기독교언론사의 기사 내용입니다. 지난 11월 11일 세계로 교회라는 곳에서 “국가 비상 긴급 기도대성회”라는 집회가 열린 모양입니다. 한국교회가 어디로 가는지 걱정스럽고 한숨만 나옵니다. 2. 우선 기자양반에게 묻지 않을 수 없네요. 기사 첫머리부터 비문(非文)인건 알고 계시려나... “부산 세계로 교회로부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가 무슨 뜻입니까? 그건 그렇다 치고, ‘애국목회자’와 ‘국민회개대성회’에 대해서 한마디 하려합니다. ‘애국’ 목회자님들 회개할 일이 있으면 당신들 회개하시면 되지 왜 ‘국민’을 회개시키려고 하나요? 우리나라가 기독교국가입니까? 우리나라가 비상사태라고 말하면 세계가 웃어요... 3. 포스터를 보니, “무릎 꿇지 않은 7000인의 용사들이여, 영적 전쟁 낙동강 전선 세계로 교회로 모입시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 포스터대로 하면 서울, 경기, 강원, 충청, 전라 그리고 경상도 일부는 무슨 영적전쟁에서 이미 패한 듯합니다. 도대체 무슨 영적 전쟁에서 이렇게 나라를 다 빼앗기고 자기들만 남았다는 것인지 알아듣게 설명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무릎 꿇지 않은 7,000명이라면 나머지는 다 무릎을 꿇었다는 것인데... 저는 제가 왜 ‘무릎 꿇은’ 목사가 되었는지 이유라도 알고 싶어요. 4. 많은 목회자들이 자신들의 본분을 깨닫지 못하고 정치판에 뛰어들어 정치를 하면서 자신들의 극우적 입장을 ‘애국’으로 포장하는 현실에 답답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할 목사들이, 성경을 연구하고 삶을 통해 예수를 드러내야할 목사들이 철지난 ‘공산주의’ 타령하면서 결국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한 가지 가르쳐드릴까요? ‘목사’라는 타이틀에는 ‘애국’이라는 수식어가 필요 없어요. 그냥 담백하게 ‘목사’면 됩니다. 5. 한국교회가 희망을 회복하려면 우선적으로 태극기 기독교가 망해야 합니다. 신학도, 기독교 역사도 모른채... (어쩌면 부분적이고 일방적인 해석과 편협한 지식에 경도되어)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이 없어져야 합니다. 마치 자신들에게 우리나라의 운명이 걸려있는 듯이 행동하는 ‘애국’목사들에게 회개의 영이 부어지길 기도합니다. 당신들은 종교개혁과 그 이후로도 수 백 년 동안 수많은 피를 흘린 끝에 정립된 ‘정교분리’의 역사적 배경과 내용을 먼저 공부해야 합니다. 6. ‘애국목사’가 아닌 그냥 ‘목사’로서 부끄럽습니다. 사과드립니다. 교회가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와 화평을 주도해야 할 텐데, 오히려 분열과 갈등과 혐오와 배제에 주력하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주장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강화시키는 주동적인 정치목사들, 이념으로 장사하는 목사들에게 마태복음 23:13-36으로 ‘권면’드립니다. ‘Woe to you, 화있을진저’... 『예수로 성경읽기』의 독특성은 저자가 자신의 장점을 살려 성경의 각 시대에 대한 풍부한 역사적 배경을 제공함으로 어려운 성경이 구체적이고 친근하게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한 점이다. 성경을 통전적으로 읽고 성경 속에 일관되게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드러내준다. 이런 성경 이해를 바탕으로 이 시대 교회로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사명을 분명히 하면서도 통찰력 있게 제시하는 그런 책이다. 쉽게 읽히면서도 성경 전체에 흐르는 메타내러티브를 집어냄으로 우리에게 성경이 과연 어떤 책인가를 잘 짚어준다. 책 속으로 [저자 서문]『예수로 성경읽기』는 성경공부다. 먼저, 역사와 함께 읽는 성경공부다. 아브라함을 수메르-아카드 문명과 함께, 출애굽기를 이집트 문명과 함께, 신약을 그리스-로마 문명과 함께 읽음으로써 각 시대의 삶의 자리(Sitz im Lseben) 속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려고 한다. 두 번째로 신학과 함께 읽는 성경공부다. 초대 교회 이래로 사도적 전통 하에서 성경을 연구해온 수많은 신학자들의 진지한 노력과 수고가 오늘날 우리의 바른 성경 읽기와 건강한 신앙의 초석이 될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 통전적으로 읽는 성경공부다. 성경을 부분이 아닌 통(전체)로 읽으며, 신구약 전체에 걸친 하나님의 구원계시를 촘촘하게 탐구하고 연결하고자 한다.『예수로 성경읽기』는 인본주의(Anthropocentric) 성경읽기가 아닌 신본주의(Theocentric) 성경읽기다. 인본주의 성경읽기란 인간중심(man-centred) 또는 내 중심(me-centred)으로 성경을 읽는 것으로 자유주의와 번영 신학을 예로 들 수 있다. 자유주의는 성경의 신적 저작권을 부인하고 인간의 기록으로만 치부했다. 그 결과 그들은 성경을 무의미한 조각들의 모음으로 해체하는 우를 범했다. 번영 신학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함의 목적을 땅에서 형통한 복, 자녀들이 잘되고 번성하는 복과 같은 인간의 본성적 욕구들에 둔다. 샤머니즘의 기독교적 버전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유주의와 번영 신학은 다른 출발선에도 불구하고 인간중심의 성경읽기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에 비해 신본주의 성경읽기란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읽는 것이다. 성경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올바른 성경읽기란 성경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웅장한 계획을 깨닫는 것이다.『예수로 성경읽기』는 통전적 성경읽기다. 성경전체의 목적, 성경 전체에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 경륜의 통일성을 읽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서는 구약과 신약을 부분적(partial), 분석적(analytic)이 아닌 통전적(holistic)으로 읽어냄으로써 나무가 아닌 숲을 보고자 한다. 메타내러티브(metanarrative)는 “거대담론, 전체적 그림, 전체를 포괄하는 이야기, 전체의 주제”를 의미하는데 통전적 성경읽기의 최종적 목표는 바로 성경의 메타내러티브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성경을 관통하는 주제 곧 메타내러티브가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큰 이야기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임을 밝힌다. 목차 추천사·5프롤로그·9제1부 통전적 성경읽기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19제1장 통전적 성경읽기를 위한 두 개의 핵심용어·37제2장 예수 그리스도와 새창조의 시작·65제2부 언약을 주시는 하나님제3장 첫 번째 아브라함 언약과 구원·87제4장 세 번째 아브라함 언약과 십자가·119제5장 다섯 번째 아브라함 언약과 부활·151제6장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낸 하나님·181제7장 절기의 종말론적 성취와 예수·213제3부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제8장 다윗 언약의 성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247제9장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275제10장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303제11장 예수의 육체로 일으킨 참 성전·337제12장 종말과 요한계시록·369제4부 믿음의 결국제13장 세상의 한복판에 세워진 예수의 교회·411제14장 교회의 이중적 지위·451제15장 구원의 확신·485제16장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511에필로그·540참고문헌·542미주·545 추천사 심창섭(역사신학 교수) 30년 전, 신학교에서 만난 김동일 전도사님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의 원우회장으로 좋은 리더십을 가진 실천적인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곧 도미한 김동일 목사님과는 미국에서 호주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만남을 가지며 교제를 나누었습니다.내가 아는 김동일 목사님은 학위나 여타 스펙을 쌓는데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를 만나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신학교 시절의 순수함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오늘의 교회와 목회 현장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진단하는 날카로움과 예리함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김동일 목사님의 목회 여정과 닮은 책입니다. 올바로 말씀을 가르치고 자신의 삶을 그 가르침에 일치시키고자 하는 그의 인생관과 목회관이 이 책에서도 그대로 묻어납니다.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김동일 목사님은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성경을 보는 특별한 안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개혁주의의 신학적, 성경해석학적 안목을 바탕으로 성경을 읽어냅니다. 또한 성경을 통해 시대를 읽어갈 수 있는 역사적 지식과 안목도 겸비했습니다. 역사 연구가로서 역사적 관점에서 성경을 객관적으로 접근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책은 그 결정체입니다.이 책의 독특성은 자신의 장점을 살려 성경의 각 시대에 대한 풍부한 역사적 배경을 제공함으로 어려운 성경이 구체적이고 친근하게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한 점입니다. 성경을 통전적으로 읽고 성경 속에 일관되게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드러내 줍니다. 이런 성경 이해를 바탕으로 이 시대에 교회로써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사명을 분명히 하면서도 통찰력 있게 제시하는 그런 책입니다. 쉽게 읽히면서도 성경 전체에 흐르는 메타내러티브를 집어냄으로 우리에게 성경이 과연 어떤 책인가를 잘 짚어주고 있습니다.성경과 교회와 삶의 현장이 괴리되지 않고 통합되어 전달되는 그의 책이 무디어진 우리의 가슴과 지성을 더욱 빛나게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모든 목회자들과 선교사들과 평신도들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합니다.[전 총신대신학대학원 원장 및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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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2-03-16
  • 총회 세계교회교류협력위원회, 1차 회의 모여
    세계교회교류협력위원회 1차 회의가 11월 18일 오후 2시 총회회관에서 있었다. 1부 예배는 배광식 총회장의 인도로 김정훈 목사가 기도한 후 총회장이 데살로니가전서1장 3절을 본문으로 설교하고 배재군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김상윤 위원장은 "교단 발전과 신학 발전을 위해 힘쓰자 함께 노력하자"며 “세계 교회와의 교류를 통해 한국교회의 위상이 높아지고, 해외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들의 사역에 도움이 되며 재산권 유지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위원회 구성 위 원 장: 김상윤 목사(황동노회) 부위원장: 김한욱 목사(소래노회) 서 기: 이억희 목사(중경기노회) 총 무: 양병국 목사(김제노회) 회 계: 성경선 목사(경남동노회) 전문위원: 배재군 목사(서중노회), 김정훈 목사(남부산노회), 김철중 목사(함동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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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회
    2022-03-16
  • 기성 부흥사회, 영적대각성기도회 모여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부흥사회 영적대각성기도회가 11월 18일 오전 11시 독산동에 소재한 예수비전교회당(담임 안희환 목사)에서 있었다. 1부 예배는 안희환 목사의 인도로 정석우 목사(부회장, 생명샘교회)가 기도 후 오세현 목사(사무총장, 대명교회)가 고린도전서 11장 1절을 본문으로 '나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인가?'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오 목사는 "예수님을 통해 무엇을 본받아야 하는가? 겸손이다. 요13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본을 보였다고 말씀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겸손하게 낮아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며 "뱀은 하와의 교만을 부추겨 범죄하게 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낮아지셨다고 했다. 130년 전에 우리나라를 찾았던 선교사들도 자기를 낮추고 온 것이었다. 우리도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한다"면서 "코로나로 인해 한국교회가 어려운 이 때 우리 부흥사는 교회와 성도를 세우는 큰 사명을 감당해야한다. 부흥사로 더더욱 겸손과 낮아짐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가야한다"고 했다. 김낙문 목사(부총재, 충일교회)의 인도로 다함께 '한국교회 영적대각성을 위하여', '성결교회의 부흥성장을 위하여',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하여', '대한민국의 회복을 위하여', '코로나19의 빠른 종식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한 후 오세현 목사(사무총장, 대명교회)가 광고 후 신일수 목사(부총재, 양문교회)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2부 월례회는 김영건 목사(대표회장, 새생명우리교회)의 사회로 오세현 목사(사무총장)의 사업보고, 신학철 목사(회계)의 재정보고 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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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관
    2022-03-16
  • 옥인교회, 목회본질 추구하며 선교사명 감당
    1949년에 세워져 2021년인 올해 72년의 역사를 갖는 옥인교회는 현재 8대 담임으로 이은호목사가 목회하고 있다. 7대 담임이었던 김영철 목사는 하나님 경외의 신앙과 인격목회 실현을 평생의 목회 원칙으로 삼았다. 그는 은퇴를 앞두고 세 가지 원칙으로 후임자를 세웠다. 첫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둘째는 ‘우리 교회의 신앙 전통과 성도들을 아는 사람인가’, 셋째는 ‘영혼 사랑의 열정과 인격목회철학이 있는가’였다. 그래서 결정된 후임이 이 목사였다. 이 목사는 1993년에 전임전도사로 옥인교회에 부임했다. 그리고 10년을 섬기고 2003년 부산에 있는 수영로교회 부목사로 가게 되었다. 3년 후 2006년 옥인교회는 이 목사를 8대 담임목사로 결정해 그해 7월부터 시무하게 되었다. 10년간 부교역자로 있다가 같은 교회 담임으로 부임하게 된 것은 특이한 경우인데, 이렇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이 목사가 전임 김 목사가 생각한 후임자의 3가지 조건에 부합했고 또한 10년간 부교역자로 있는 동안 교인들의 전적인 지지와 인정을 받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옥인교회가 위치한 서촌은 도심에 있어 거주하는 사람도 적은데다, 점차 관광지로 변모하는 가운데 있지만 침체를 겪지 않고 변화와 성장을 지속적으로 일궈가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목사는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이기에 목회자가 크게 역행하지 않는 이상 하나님이 교회를 후원하신다”며, “지나치게 자기 목회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순종을 미루거나, 외부 환경을 탓해 주저하지 않기를 기도해 왔고 교회와 지역과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복음의 길을 여는 목회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옥인교회는 1,000여명이 출석하며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공동체로 성장했다. 이 목사는 그동안 옥인교회가 해온 많은 일들 중에 세 가지를 특별히 언급했다. 첫 번째는, 장애인 사역이다. 옥인동 교회 근처에 국립농학교와 국립 서울 맹학교가 있다. 그러다보니 다른 지역보다 장애아동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교회가 학교 가는 인근에 있어 주일학교 부서마다 소수라도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신앙 교육을 받고 있었다. 시각장애아들은 언어 소통하는데에는 문제가 없어 그나마 성경 교육에 큰 무리가 없었지만, 청각장애인들은 수화가 아니면 교육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그래서 1996년 김영철 목사의 제안으로 언어 및 청각장애아들을 위한 에바다농아부가 설립하게 되어 활성화 되었다. 그러나 농아인 숫자가 급감하여 부서를 폐지하게 되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 목사는 부임 후 사역지를 옮긴 문 혁 전도사를 다시 불러 농아부 사역을 재개했고 지금까지 농아부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2010년 장애인사역팀이 구성되어 현재는 120여명의 장애인들이 출석하는 교회가 되었다. 장애인 사역을 위해 시각장애가 있지만 복되게 성장한 하선이의 아버지 김수연 집사의 열정과 농아인 자녀 지선이와 경덕이를 믿음으로 양육해 온 김덕희 권사의 기도와 헌신, 팀장이 되어 묵묵히 사역해 온 신선문 집사의 보이지 않는 섬김이 있었다. 이후 교회를 리모델링하면서 엘리베이터를 기부 받아 설치하게 되었는데 이로인해 다양한 장애를 가진 분들이 옥인교회를 출석하게 되었다. 장애인사역위원회는 휠체어 장애인들의 원할한 수송을 위해 리프트가 있는 작은 승합차를 위해 기도했는데, 2011년 성탄절에 드려진 헌금과 특별헌금을 모아 전동휠체어 4대를 탑재할 수 있는 25인승 버스를 구입 후 리프트를 넣어 운행하고 있다. 20명이 넘는 휠체어 장애인들이 등록했고 이들을 위해 활동도우미들이 함께 오면서 장애인 사역이 크게 확장되었다. 교회 어르신들은 엘리베이터를 장애인들에게 기꺼이 양보하며 본인들은 자원하여 계단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양한 장애인들을 보며 자신들은 보고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그러지 못한 장애인들을 위해 기도하며 사랑하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다. 그리고 지역사회도 이러한 모습을 보며 옥인교회를 훈훈하고 따뜻한 교회로 생각하고 있다. 두 번째 특별한 일은 손양원 목사의 장손 손마가 선교사를 캄보디아로 파송한 것이다. 손 선교사는 중국에서 사역하다 캄보디아로 사역지를 옮기게 되었다. 손 선교사는 수화 교본을 제작한 바 있는 수화의 달인이다. 손 선교사는 할아버지인 손양원 목사에 대해 아버지에게 직접 듣지 못했다. 두 형이 순교했기에 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손 선교사의 아버지는 할아버지 손양원 목사에 대해 아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손 선교사는 원래 컴퓨터 제어 전문가로 버섯 재배를 자동화하는 사업을 하다가 장성해서 할아버지의 행적을 조사하며 그 길을 따르기로 하고 하던 사업을 아내에게 맡기고 혈혈단신으로 A국으로 건너가 장애인 선교를 위해 농아인 신학교를 설립했다. 할아버지가 애양원에서 한센병자들을 돌보며 목회를 했는데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이어받아 수화를 배워 농인을 위한 신학교를 운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손 선교사는 아무런 후원교회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옥인교회 농아부와 연락이 닿았고 이를 계기로 옥인교회에서 파송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중국에서 선교사를 추방하는 가운데 캄보디아로 사역지를 옮겨 거기서도 농아인을 대상으로 사역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농아인을 위한 사역자는 손 선교사가 유일하다. 세 번째로 특별한 일은 교회 개척이다. 이 목사 부임 후 옥인교회는 총 3개의 교회를 개척했다. 2009년 2월 교회설립 60주년을 기념해 경기도 호평에 하나교회를 개척하여 부목사로 일했던 정현철 목사를 파송했다. 2013년 3월에는 김포에 강준석 목사를 통해 한강성가휼교회를 개척 설립했다. 2020년 1월에는 고양시 삼송에 행정 목사로 일하던 하정웅 목사를 통해 복음의숲교회를 개척 설립했다. 이렇게 계속해서 교회를 개척하는 일은 “한 교회만 커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를 개척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힘있게 확장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이 목사의 목회철학에 교인들이 전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교인들도 이러한 개척 사역을 자랑스러워하며 적극적으로 개척된 교회를 돕고 있다. 이 목사는 두 가지 사역에 주력하고 있다. 한 가지는 선교적 교회를 이루는 일이다. 현재 파송 선교사는 2명이며, 37명을 지원하고 있다.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 매해 단기선교에 많은 교인들을 보내 선교에 대한 열정을 품도록 이끌어 왔다. 또 한 가지는 연약한 자를 위한 나눔이다. 교인들 가운데 어려운 시니어들과 장애인들에게 매달 교통비를 지원하며 교인들 중 독거노인을 돌보며, 반찬을 나누며, 지역사회 주민자치 센터 복지부서와 연결해 김치와 쌀을 나누는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이 목사는 전임 김 목사처럼 인격적인 목회자가 되기 원한다. 또한 좋은 성품을 가지고 교인들을 사랑하며 교회의 본질을 계속 추구하길 바라고 있다. 또한 겸손하게 목회에 전념하려 한다. 전임자가 교회를 사임할 때 좋은 후임자를 세워주는 것은 한평생 목회한 교회에 대한 마지막 책임이다. 그래서 김 목사는 후임자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생각했고 10년간의 부교역자 사역을 통해 검증된 이 목사를 전교인들의 동의하에 후임으로 세웠다. 옥인교회는 앞으로 1000(풍성한) 선교를 감당하며, 500 사랑방을 이루며, 10개의 교회를 개척하여 물댄 동산 같은 교회를 이루기 원하며 기도하고 있다. 이 비전을 위해 옥인교회 성도들은 이목사와 함께 오늘도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사명의 길을 힘차게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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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6
  • 『고난 중의 신자에 대한 설교자의 청중 이해』
    ㅣ. 들어가는 말 청중은 하나님과 영생의 언약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또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존재이다.1) 청중이 언약 백성으로서의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실을 말해주는 설교자의 설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청중은 종종 자신이 하나님과의 사랑의 언약 관계를 맺은 언약 백성이라는 설교자의 설명에 따라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기가 곤란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이 경험하는 사건이 자신이 들은 말씀과 모순되게 느끼는 현실 때문인데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까닭을 알 수 없고 감당 하기 어려운 고난을 경험할 때이다. 고난의 정체는 무엇인가? 팀 켈러는 고난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고 하면서도 많은 이들이 고통과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떠나게 되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께 다가가게 된다고 한다.2) 그렇다면 여러 가지 까닭 모를 고난을 경험할 때 언약 백성인 청중은 그 고난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고난을 겪고 있는 청중이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려면 설교자는 고난을 어떻게 이해하며 설명할 것인가? 고난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는 것 만이 아니라 고난을 겪는 청중에게 다가가는 설교자의 태도 역시 중요한데 설교자는 고난을 겪는 청중이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를 발견하도록 돕기 위해서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할 것인가?때로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마치 사람들의 고통에 관심이 없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설교자는 이런 상황에 관하여 어떻게 설교하여 신자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섭리 안에 있음을 설명할 것인가? 이 문제점에 대하여 연구자는 먼저 로고테라피 개념으로 고통의 의미를 생각해 본 다음, 대재앙과 고난에 접근하는 각각의 모델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1) 이승진, “청중에 대한 설교학적 이해,” 「복음과 실천신학」 6 (2003), 63.2) 팀 켈러/ 최종훈 옮김,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서울: 두란노서원, 2018), 25, 16. 이어 리스본 대지진으로 말미암아 라이프니츠의 신정론이 부닥친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타인의 얼굴’과 ‘대속의 고통’ 개념을 제안 하고자 한다. II. 하나님의 침묵과 로고테라피 1. 고통의 문제와 하나님의 침묵 20세기 최고의 문호(文豪) 가운데 한 사람인 C. S. 루이스(1898~1963)는 남달리 많은 고통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가 10살 되던 해에는 어머니가 암으로 별세하였고 그 후 그의 형은 술을 위안으로 삼다가 알콜 중독자가 되어 버렸다. 그런 상황을 겪은 루이스 자신도 대학에 진학한 후 신앙을 잃어버렸지만, 다행스럽게도 오랜 방랑 후에는 다시 회심하게 되었다. 그는 59세의 늦은 나이에 한 불행한 여인과 결혼하여 크나큰 행복을 느꼈으나 그 행복이 오래가지 못했으니 그의 부인은 3년 반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3)이런 많은 고통을 경험한 루이스는 자신만이 아니라 인류가 겪는 고난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게 되었다. 루이스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고민을 표출하였다.만일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그는 자신의 피조물이 완전히 행복해지기를 소원하실 것이며,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그가 원하시는 무슨 일이나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피조물들은 행복 하지 않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선이 부족하든지, 능력이 부족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두 가 지 다 부족한 것이다.4)이렇게 의문을 던진 루이스는 하나님의 선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인간의 고통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조화하는 문제는 인간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사랑이라는 글자에 통속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한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사람 때문에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라.”5)하지만 루이스는 “고난들은 기본적으로 인간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에서 온 것을 인정하면서도 어째서 하나님은 악한 인간들이 그 형제들을 그렇게 괴롭히도록 허락하셨는지 의문을 제기한다.”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고통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였다.6) 사람이란 타인의 고통보다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크게 느끼는 존재이다. 이런 사실에 대하여, 큰 고통을 겪은 적이 있는 강정훈 목사는 이렇게 표현한다. “사람은 남의 배에 커다랗게 남은 수술 흔적보다 내 손톱에 낀 가시 자국이 더 아프다고 한다.”7) 이처럼 청중은 각자가 누구보다 쓰라린 고통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고통에 대하여 루이스와 같이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사람들의 이런 질문에 대해 아무런 답을 주지 않고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캔 가이어(Ken Gire)는 인간의 고통의 문제를 다루는 그의 책에 The North Face of God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이는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의 얼굴은 자비로운 아버지가 아니라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는 등반가가 가장 오르기 힘든 북쪽 능선(the north face)처럼 냉혹하게 느껴진다는 의미이다. 캔 가이어에 의하면, 에베레스트산은 여러 개의 능선이 있는데 그 가운데 북쪽 능선이 등반하기 가장 어렵다. 그런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마치 에베레스트 산의 북쪽 능선을 타고 등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8) 3) 홍치모, “C.S. 루이스의 생애와 사상 – 루이스의 작품과 신념 세계,” 「신학지남」 65/3 (1998/09), 206-10.4) C.S. 루이스/ 김남식 옮김, 『고통의 문제』 (서울: 크리스천서적, 2001), 33.5) Ibid., 63.6) Ibid., 129.7) 강정훈, 『내게 왜 이러세요?』 (서울: 두란노, 2021), 77. 성경 인물 가운데도 고통을 겪은 인물들이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요셉이나 다윗은 긴 기간 동안 까닭도 모르고 그 끝도 모르는 고난을 겪어야 했다. 다윗은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 까”라고 부르짖은 후에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탄식하였다. 모세는 요셉이나 다윗보다 더 긴 기간 동안 ‘버림받음’을 경험했다. 그 결과 모세는 자신의 꿈을 완전히 버리게 되었으며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찾아 왔을 때 환영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소명을 거절할 정도였다. 캔 가이어의 말처럼, 성경 인물들은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보다 그들이 당한 ‘하나님의 침묵’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9) 2. 언어의 기능과 설교자의 사명 하나님은 이처럼 청중이 당하는 고난의 상황에서 침묵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셔도 설교자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 아니,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기에 설교자는 고난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말로 밝히고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사람에게 언어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이며 설교 자가 부여받은 사명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언어의 기능에 대하여는 발터 벤야민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발터 벤야민에 의하면 하나님은 엿새 동안 지으신 모든 것은 말씀으로 창조하셨지만, 사람은 말씀으로 만드는 대신 손수 만드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만드신 사람에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용하신 그 말씀을 방출하심으로 사람에게 자신의 창조성을 위임하셨다.10)하나님으로부터 말의 권세를 부여받은 사람의 사명은 이 언어를 통해 ‘사물 언어’(language of things)를 ‘구술언어’(oral language)로 드러내는 것이다.11) 설교자의 사명은 우선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사를 청중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청중이 경험하는 사건들과 고통 속에 하나님이 숨겨 놓으신 의도를 구속사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것 역시 설교자의 중요한 사명이다. 이런 면에서 이승진 교수는 목회 사역의 핵심을 “구술언어와 사물 언어를 신자들 앞에서 서로 연결 하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표현한다.12) 그렇다면 청중이 겪는 고통의 문제에 대해 설교자는 어떻게 해답을 줄 수 있을까? 내세에 천국의 영광을 누릴 성도가 현실에서는 이렇게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청중에게 설교자는 무엇이라고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하는 청중의 질문에 설교자는 어디에서 해답을 확보하여 청중에게 제공할 수 있을까? 사람이 고통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해답을 성경에 담아 놓으셨기에 매번 새로운 말씀을 주지 않으시는 것뿐이다. 하지만 사람은 두 가지 이유로 그 해답에 접근하지 못한다. 우선, 고통이 없는 사람은 고통의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기에 고통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도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팀 켈러의 말처럼 인간은 “고난이 닥치면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제 삶을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해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13)그러다가 막상 고통을 당하게 되면 그 순간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하나님이 제공하시는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리처드 아스머는 자신이 목사요 실천신학 교수이면서도 모친이 교통사고로 갑작 8) 캔 가이어/ 마영례 옮김, 『하나님의 침묵』 (서울: 디모데, 2006), 20-21.9) Ibid., 18.10) 발터 벤야민/ 최성만 옮김, 『언어 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번역자의 과제』 (서울: 길, 2008), 84.11) Ibid., 78.12) 이승진, “해석학적 실재론에 근거한 성경 해석과 설교 메시지의 전달 과정에 관한 연구,” 「복음과 실천신학」 54권 (2020), 223.13) 팀 켈러,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16. 스럽게 사망했을 때 몹시 당황하였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아스머는 고향 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안정을 찾을 수 있었노라고 회고하고 있다.14) 아스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청중이 고통스런 상황에 부닥쳤을 때 스스로 고통의 의미를 깨달을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럴 때 성경적 관점 에서 고통을 설명해 주어 고통으로부터 다시 일어서도록 하는 것이 설교자의 역할이다. 3. 고통의 의미와 로고테라피 까닭 모를 고통 속에는 무슨 의미가 있으며, 성도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가? 성도의 삶에 찾아오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설교자는 어떻게 해석해 줄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연구자는 우선 고통에도 값진 뜻이 있다고 한 옥한흠 목사로부터 해답의 실마리를 확보하고자 한다. 옥한흠 목사는 고난을 겪을 때 우리를 괴롭히는 고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고난을 가지고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보아야 한다고 한다. 덧붙여 고통은 거룩한 것이며 대단히 신비스러운 것이라고 한다.15) 그렇다면 우리는 고통 가운데서 어떻게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 빅터 E. 프랭클의 설명을 들어보자. 빅터 E. 프랭클은 유대인 신경정신과 의사로서 악명 높은 나치(Nazi)의 아우슈비츠(Auschwitz) 수용소의 생존자이다. 그는 가진 모든 소유물을 빼앗기고 알몸 상태로 발가벗기는 경험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말살되는 경험을 했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아무리 무서운 악몽일지 라도 그 수용소의 현실보다 더 나쁠 수 없었다고 회상한다.16)이런 일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빅터 E. 프랭클은 “산다는 것은 고통스럽기 마련”이라면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해야 하는 것이라.”라고 한다.17) 빅터 E. 프랭클이 창안한 로고테라피(Logo theraphy) 개념에 따르면,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이런 노력은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 그래서 빅터 E. 프랭클은 고통이란 그 의미를 찾아내는 순간 절대 고통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했을 때, 바꿀 수 없는 운명을 만나게 되었을 때조차도 삶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고통은 희생의 의미와 같은 어떤 의미를 찾는 순간부터 절대 고통이 아니며 인간은 자신의 고통에 의미가 있다고 확신하면 기꺼이 그 고통을 받아들이기까지 하는 존재이다.18) 그렇다면 언약의 말씀을 가진 존재인 청중은 고통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옥 한흠 목사는 고난을 ‘변장하고 찾아오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정의하면서 신자는 고난 배후에서 일 하시는 하나님과 만나라고 충고한다.19) 또한, 하나님께서 고난을 성도의 유익을 위해 선용하신다고 주장한다. 그 선용이란 첫째로 우리를 깨닫게 하시는데 선용하시며, 둘째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인격을 형성하는 데 고난이 절대적인 요소가 된다.20) 옥한흠 목사와 빅터 E. 프랭클의 설명을 종합해 볼 때 고통에는 고통보다 더 큰 의미가 있고 성숙한 성도가 되어 가는 데 유익하다. 그러나 신자가 막상 고난을 겪을 때는 그 상황을 성경적 관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난을 경험할 때 청중은 고난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자신의 삶에서는 왜 실현되지 않는지 회의(懷疑)하게 된다. 그러므로 청중이 고난을 겪을 때 그 상황을 성경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는 것이 설교자의 역할이다. 14) 리처드 아스머/ 김현애 옮김, 『실천신학의 네 가지 중심 과제』 (서울: 예배와설교아카데미, 2012), 40-41.15) 옥한흠, 고통에는 뜻이 있다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10), 234, 15-16.16) 빅터 E. 프랭클/ 정순희 옮김, 『죽음의 수용소에서』 (서울: 제일출판사, 2000), 51.17) Ibid., 10.18)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147-48.19) 옥한흠, 『고통에는 뜻이 있다』, 11, 16.20) Ibid., 18-19. 그렇다면 설교자는 청중이 당하는 고통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해 줄 것인가? III. 대재앙과 고난에 접근하는 모델들 1. 재난을 바라보는 설교자의 관점 신자가 당하는 고난 가운데는 개인적으로 당하는 고난도 있지만 때로는 온 국가적으로 함께 당하는 대재앙도 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으로 여러 가지 정상(正常)이 비정상(非 正常)이 되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비정상(Ab-normal)이었던 것 가운데 어떤 것이 새로운 정상(New-normal)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또 장기간의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하여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경제가 무너지며 코로나 우울증(Corona Blue)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를 해결하기 위한 백신(vaccine)에서조차 부작용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21) 이런 때에 신자들은 왜 이런 일이 왔으며,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묻고 싶어 한다. 코로나 팬 데믹 외에도 세상에는 종종 대재앙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러한 문제에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며 설교할 것인가? 역사적으로 볼 때, 대재앙의 의미를 해석하여 설명하는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리스본 대지진 사건 부터였다. 1755년, 전 유럽을 깜짝 놀라게 한 리스본 대지진으로 말미암아 대재앙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지 많은 논의와 패러다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특히 당시 대지진이 의인 욥이 당한 고난처럼 다른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건하게 살았던 도시 리스본을 중심으로 발생한 사건이기에 성경적 설명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었다. 그러면 대재앙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설교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먼저 2004년 인도네시아 지진 사건과 2011년 동일본에 지진 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설교 사례를 살펴보자.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슈마트라 북부에서 모멘트 규모 9.1의 해저 지진과 15미터 높이의 쓰나미 재앙이 발생하여 28만 명 이상의 사망 및 실종자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 발생 직후 한국 교회의 한 설교자는 성탄절과 주일이 연속되는 거룩한 날에 쾌락을 즐기러 간 사람들 위에 하나님의 징벌이 임했다는 관점으로 설교를 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관점의 설교는 공감대를 형성하기는커녕 교계 안팎에서 많은 질타를 받게 되었다.22) 한편, 2011년 3월 11일에 일본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에서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와 강남교회 김성광 목사가 지진의 원인이 일본 국민의 우상숭배와 무신론, 물질주의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라고 설교해서 역시 파문이 일기도 했다.23)이 두 사례를 통해 발견하는 것은 결국 대재앙을 섣불리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해석하여 설교하는 것은 바람직한 접근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2. 고난을 설명하는 여섯 가지 모델들 그러면 대재앙에는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바른 관점인가? 이승진 교수는 재앙과 고난에 접근하는 모델로서 징벌적인 고난의 모델,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모델, 교육적인 고난의 모델, 대속적인 고난 모델, 신비적인 합일 모델, 종말론적 전망 모델 등의 여섯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신자의 고난에 접근하는 여섯 가지 모델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24) 21) 곽성순,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 ‘1건’ 추가,” 「청년의사」 인터넷신문(2021.07.26.) 접속 2021.08.05.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1293622) 이승진, “대재앙에 대한 신정론 관점의 설교,” 「복음과실천신학」 29 (2013), 37.23) 허호익, “리스본 대지진과 자연재해에 대한 신학적 쟁점,” 「신학과문화」 21 (2012), 119.24) 이승진, “고난과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설교,” 「복음과실천신학」 35 (2015), 267-76. 1) 우선 ‘징벌적인 고난의 모델’의 관점은 고난의 중요한 원인을 당사자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보는 것이다. 욥의 친구들도 이런 인과응보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집요하게 욥에게 회개를 요구했다. 물론 고통에 대한 이런 관점도 필요하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고집스럽게 죄를 범하는 백성에게 진노하시고 징벌하시는 것이 사실이다. C. S. 루이스는 고통을 죽어 있는 세계를 깨우치는 하나님의 확성기로 본다. 루이스에 의하면 고통은 악인에게 개선의 기회를 제공해 줌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는 영혼의 요새 안에 진리의 깃발을 꽂는 것이다.25) 그런데 오늘날 지성인들 가운데는 보응 사상이나 징벌 관념을 말소해 버리고 범인의 개과천선이나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서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 모든 징벌을 부당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26) 하지만 모든 고난을 징벌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최후 심판이 오기 전에 하나님은 모든 범죄에 대하여 합당하게 징벌하시기보다 심판을 유보하시면서 인간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신다. 예수님은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죽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주민들보다 죄가 많아서가 아니며 그들이 당하는 재난 사건을 교훈 삼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징벌적 고난의 모델은 모든 고난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2) 징벌적 고난 모델이 형평성과 일관성에서 모순점을 보이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대안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모델’이다. 이는 지금 당하는 고난을 반드시 자신의 죄악과 결부시킬 수는 없지만, 고난 저변(底邊)에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 모델은 고난의 의미나 가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막연한 미래의 가치로 무책임하게 희석한다는 약점이 있다. 이런 방식의 설명은 청중의 불평을 막는 효과는 있겠지만 고난 중에 처 한 신자를 만족시키는 설명이라고는 하기는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3) 징벌 모델과 섭리 모델의 한계점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고난의 목적이 교육 혹은 연단을 위해서 라고 설명하는 ‘교육적인 고난의 모델’이 있다.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신자는 고난을 통과함으로 신앙이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런 연단 후에는 죄에 빠질 가능성도 줄어들어 그에 따른 징벌을 미연(未然)에 방지하는 효과까지 생겨난다. C. S. 루이스에 의하면, 만일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평안을 얻고 나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안식을 배울 것이며, 주님께 돌아가는 길을 망각하고 말 것이다.27) 그러므로 고난을 통해 영적인 훈련을 받음으로 천국 백성답게 성숙하여 간다는 이 설명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낼 수 있는 모델이다. 하지만 이 모델 역시 모든 고난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욥처럼 남달리 훌륭한 신자가 오히려 남보다 모진 고난을 받는 경우나, 고난을 통한 연단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 같은 유아들이 당하는 고난 등은 이 모델로는 설명하기 곤란하다. 4) 대속적인 고난 모델은 모든 종류의 고난에 대하여 설명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수고하다가 희생을 당한 경우, 혹은 자발적으로 고난을 자취(自取)한 경우에 대한 설명에 동원된다. 예를 들면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이나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던 사람이 오히려 사고를 당해 희생 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를 위해서, 베냐민을 대신하여 벌을 받겠다고 자청한 유다의 경우처럼(창 44:33) 자발적으로 자신을 희생한 경우는 그리스도의 모형이 된다. 하지만 대속적 고난 모델은 다른 사람의 죄나 실수로 피해를 본 사람이 당하는 고난의 경우 이 모델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다만 이 모델은 특수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적절히 사용하면 좋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5) 신비적인 합일 모델은 고난의 의미를 설명하기보다는 인간이 고난을 겪을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는가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신비적인 합일 모델에 의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랑을 선택하기 위해 전능을 포기하셨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전능을 포기하고 사랑을 택한 하나님이야말로 진정으로 전능하시다는 것이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에 의하면 하나님은 오직 고난과 십자가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관해서만 생각되어야 한다.28) 이러한 십자가 신학을 수용한 학자 가운데는 우선 본회퍼와 한스 요나스(Hans Jonas) 등이 있다. 본회퍼는 하나님을 전능자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무력하게 고난당하는 분으로 설명한다.29) 한스 요나스 역시 하나님을 무능력한 하나님, 무저항의 하나님, 피조물로 인해 고통받는 하나님으로 설명한다.30) 팀 켈러 역시 다음과 같이 십자가 신학을 옹호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고통과 악의 근원을 쳐부술 칼과 권세를 움켜쥐셨다면 인간이라고는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정의를 실현하는 대신 악을 견뎌 내셨다. 예수님이 우리가 받아야 할 징계를 대신 받으셨으므로 언젠가는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인간을 완전히 멸하시지 않고도 악을 심판하실 수 있다.31)팀 켈러에 의하면 “크리스천들이 역경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주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친히 앞장서 고난을 겪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 켈러는 “주님의 고난을 강조하는 데 너무 몰두한 나머지 거룩한 주권이라는 개념을 놓쳐 버리고 하나님을 무능력한 분으로 설명하는 신학자들도 갈수록 늘고 있다.”라면서 십자가 신학에 대한 우려도 표명하고 있다.32)십자가 신학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하나님은 신자가 고난을 겪을 때 거기에서 함께 고난을 겪고 계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지금 당장 고난을 제거하기보다는 인간과 함께 고난을 겪으시면서 새 하늘 과 새 땅의 목적지를 향하여 점진적으로 피조물을 인도하신다.33) 그러므로 인간은 우리와 함께 고난 속에 계시는 하나님과 온전한 합일을 이루는 신비적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비적 합일 모델의 설명이다. 이 모델은 고난 속에서 신음하는 신자에게 위로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전능하 심을 포기하고 무력하고 힘없는 하나님이시라면 고난을 겪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우며 구원할 수 있 느냐 하는 것이 문제로 남는다. 신비적 합일 모델은 고난 속에 동참하시는 하나님의 내재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의 초월성을 배제해버린 약점이 있다. 6) 지금까지 시도한 고난에 대한 신학적인 해명들은 고난의 원인과 의미를 다 설명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고난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신자의 모든 문제와 고난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최후의 날에 일순간에 해결될 것이다. 바로 이런 면에서 독일의 정치 신학자 요한 밥티스트 메츠 (Johann Baptist Metz)는 종말론적 전망 모델을 주장하였다. 이승진 교수는 메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28) 박영식,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한국기독교신학논총」 88/1 (2013/07), 93.29) Ibid., 94.30) 박영범, “신정론과 하나님의 고난: 신정론 문제의 응답으로써 하나님 고난이 주는 의미,” 「한국조직신학논총」 33 (2012), 262.31) 팀 켈러,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196.32) Ibid., 233, 240.33) 이승진, “고난과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설교,” 274. 메츠에 따르면 구원은 단순히 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메츠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신 성금요일로부터 부활절의 아침으로 가볍게 넘어가는 것을 부정한다. 아직 인간의 세계는 십자가의 현실이 끝나지 않았기에 부활로 넘어가는 것을 승리자의 신화에 빠지는 것이라고 지적한다.34)하지만 종말론적 전망 모델로는, 현재의 고난을 통해 미래의 소망을 공고히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유의미한 설명이지만, 고난 자체의 이유를 설명하거나 고난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는 한계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 3. 고통의 불가피성과 고난의 유익 앞에서는 고난을 설명하는 여섯 가지 모델을 살펴보았는데 각각의 모델들은 타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같이 한계점이 있는 설명이다. 고통을 당하는 청중은 개인마다 혹은 그들이 경험하는 사건마다 상황이 다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청중이 당하는 고통의 정황을 살펴서 각각의 경우에 적절한 모델로 고통의 의미를 적용함으로 청중이 지불한 고통이라는 대가보다 더 큰 유익을 누리도록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하여 연구자는 ‘교육적인 고난의 모델’을 중심으로 고난의 유익을 좀 더 자세히 살피고자 한다. 이런 관점은 우선 신약 저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으며 탁월한 설교자 중 한 사람인 팀 켈러로부터도 동의를 받을 수 있다. 환난과 고통의 의미를 설명하는 신약 저자 가운데 우선 야고보를 생각해보자. 야고보는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날 때는 언제나(ὅταν, whenever)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격려한다. 왜냐하면, 믿음의 시련은 신자를 온전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약 1:2-3). 이와 같은 야고보의 설명에 따르면 신자가 온전하게 되는 데 있어 시련은 불가피한 것이 된다. 베드로 역시 신자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을 당한 것처럼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한다. 즉 고난은 신자에게 없어야 하는 것인데 운 나쁘게 고난을 당한 일처럼 여기지 말라는 뜻이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여기고 즐거워하라고 한다(벧전 4:12-13). 한편, 사도 바울은 고난이 신자를 연단하여 온전하게 만들어 주는 유익 만이 아니라 천국의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해 준다고 설명한다. 그 영광을 생각하면 우리가 잠시 받는 고난은 가벼운(혹은 견디기 쉬운 ἐλαφρός) 것이라고 표현했다(고후 4:17). 고난이 천국의 영광을 이룬다면 신자에게 있어 고난은 불가피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기에 종교 개혁자와 설교자들 역시 고난의 유익에 대하여 역설(力說)하기 를 주저하지 않는다. 팀 켈러는, 고난이 이중적인 역할을 한다는 루터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고난에 맞서 이겨 내도록 도와줄 기쁨과 사랑을 얻기에 앞서, 고난은 우선 우리의 교만을 비워내게 해 준다. 무에서 유를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이다. 그러므로 아직 완전히 비어 있지 않다면 주님은 거기서 아무것도 빚어내실 수 없다.”35) 그러므로 악과 고통이 존재함을 근거로 하나님의 존재와 선하심을 부정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고난의 유익을 바라보아야 한다.36) 고난의 유익은 매우 다양하겠지만 팀 켈러가 소개하는 고난의 유익은 다음의 다섯 가지이다.37) 34) 이승진, “대재앙에 대한 신정론 관점의 설교,” 53-54.35) 팀 켈러,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82-83.36) Ibid., 142.37) Ibid., 300-303. 1) 고난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놓는다. 고난을 겪으면서 인간은 겸손하게 자신을 바라 보게 된다. 그 결과 자신의 흠을 적극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2) 고난은 우리 삶의 여러 좋은 것들을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바꾼다. 그 결과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게 해 준다. 3) 고난은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탄탄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C. S. 루이스도 말했듯이 형통할 때 하나님은 속삭이시지만, 고난 속에 있을 때는 확성기로 소리치시기 때문이다. 4) 고난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것 막다른 길로 우리를 몰아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고난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단단히 붙는 경험을 통하여 상상을 뛰어넘는 주님의 사랑과 기 쁨을 맛보게 된다. 5) 마지막으로,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는 고통스러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없다.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으면 고난을 당하는 자의 슬픔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몸소 고난을 경험하면서 고통당 하는 다른 사람에게 깊은 연민을 품게 된다. 이상으로 청중에게 설명할 고난의 의미와 유익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설교자에게는 고통당하는 청중에게 고통의 의미를 해석해 주는 것뿐 아니라 고통을 당하는 청중(신자)에게 접근하는 태도와 방식 또한 매우 중요하다. 청중이 고통당하는 때에 설교자가 어떻게 다가가느냐 하는 것은 결국 그 청중이 그 설교자를 신뢰하고 그의 설교에 경청(傾聽)할 여부(與否)를 결정하게 한다. 그렇다면 설교자는 고통당하는 청중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우선 신정론의 설명의 한계 점을 확인한 후에 그 대안을 마련해보기로 하겠다. IV. 신정론의 한계점과 타인의 얼굴 1. 신정론의 의의(意義)와 평가 앞에서 살펴본 고난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여섯 가지 모델의 공통점은 고난에 대해 신정론(神正論 혹은 변신론 辯神論)의 관점으로 접근한다는 사실이다. 신정론으로 번역되는 theodicy는 헬라어로 하나님을 뜻하는 θεός와 의로움을 뜻하는 δίκη의 합성어로서 하나님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이론이다. 다시 말하면 신정론은 때로 무고한 자의 까닭 모를 고통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다고 설명하려는 논리이다. 신정론의 관점으로 볼 때 고통은 선을 더 두드러지게 하고 더 큰 선에 이바지하므로, 부분으로서의 고통은 전체로서는 선이 된다.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G. W. Leibniz, 1646~1716)은 고통은 하나님의 심판 혹은 하나님의 섭리라는 입장에서 신정론을 주장하였다. 라이프니츠는 어거스틴의 전통적인 입장에 서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세계를 “모든 가능한 세계 가운데 최상의 세계”로 이해하였다. 그러므로 비록 세상에 고통과 불합리한 악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신정론을 피력하려고 노력하였다.38)선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했음에도 이 세상에는 왜 악이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라이 프니츠는 『변신론』에서 “악은 선의 허용된 결핍”이라는 해결책을 내어놓았다.39) 라이프니츠가 변신론에서 표방하는 것은 “고통과 죄악이 존재하는 세계와 최선의 조화와 행복으로 구성된 세계는 양립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의 계산에 따르면 현존하는 악은 최선에 이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40) 38) Gottfried Wilhelm Leibniz/ 이근세 옮김, 『변신론: 신의 선, 인간의 자유, 악의 기원에 관하여』 (서울: 아카넷, 2014), 28-31, 441-50.39) 이상명, “라이프니츠: 변신론과 인간의 자유,” 「철학」 106 (2011/02), 55-56.40) Ibid., 62-63. 그러나 이런 변신론의 설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강영안은 “변신론의 맥락에서는 인간의 고통이 실제로 절실한 현실적 문제로 취급되기보다는 신적 섭리와 계획의 한 부분으로 설명되어 버렸다.”라고 지적하고 있다.41)프랑스의 한 비평가는 라이프니츠의 신정론에 대해 ‘낙관주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평가했다. 그런데 막상 그 ‘낙관주의’에 대해 의심하게 된 계기는 학술적인 토론보다는 오히려 앞에서 언급한 리스본 대지진 때문에 왔다.42) 2. 리스본 대지진과 신정론의 한계 리스본은 대서양에 면한 항구 도시로 포르투갈의 최대 도시이며 수도(首都)이다. 15세기 리스본은 해외 식민지에서 흘러들어오는 재화로 인해 대도시로 급성장하여 서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불렸으며 16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리스본의 시가지와 건축물은 1755년 11월 1일 ‘리스본 대지진’으로 6일간 도시 전체가 불바다로 변하면서 도시의 2/3가 파괴되어 사라지게 되었다.43)리스본 대지진 사건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좋은 신자에게 왜 다른 사람보다 더한 불행이 찾아오느냐 하는 의문과 함께 신정론이 비판에 직면하였다. 그 이유는 리스본이 여타의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건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니콜라스 시라디(Nicholas Shrady)는 당시 리스본의 경건함을 다음과 같이 묘하한다. 12세기에 지어진 주교좌성당 외에도 교구 성당이 40군데가 넘었고, 공소가 121곳, 수도 원이 90곳, 다양한 수도회들이 150곳이나 있었다.... 리스본에서는 한 걸음 뗄 때마다 성당이나 노변의 십자가, 성모마리아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리스본 인구 25만 명 중 10퍼센트가 수도사였다.44)특히나 대지진이 발생한 1755년 11월 1일은 만성절(All Saints' Day)로서 교회력에서 엄격하게 지키는 축일로 이날 하루 모든 경제활동은 중단되었다. 이날 아침 종소리가 울리자 미사를 위해 길을 나선 인파로 리스본 거리가 북적이고 있었다.45)이처럼 경건했던 도시가 오전 9시 30분경에 시작된 첫 지진에 이어 몇 차례의 여진이 발생하자 25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몇 세기에 걸쳐 건립된 리스본이 폐허로 변했다.46) 그리고 오전 11시경, 지진이 발생한 지 90분 뒤에 발생한 해일은 채 5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휩쓸어갔 다.47) 대지진 사건으로 한순간에 사망한 인구는 약 4만 명에서 6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48)리스본이 대지진 사건으로 충격적인 재난을 당한 이후 라이프니츠의 신정론에 상당히 우호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던 볼테르까지도 생각을 완전히 반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49) 이처럼 고난의 문제를 신정론만으로 설명하기 곤란하다면 고난을 어떻게 이해하며 고난을 당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41) 강영안, 『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의 철학』 (서울: 문화과지성사, 2005), 210.42) Nicholas Shrady/ 강경이 옮김, 『운명의 날-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서울: 에코의서재, 2009), 142.43) 이문원, “옛 해양대국의 자취가 남아 있는 리스본,” 「국토」 340 (2010/02), 71.44) Shrady, 『운명의 날』, 18-19.45) Ibid., 21,46) 허호익, “리스본 대지진과 자연재해에 대한 신학적 쟁점,” 122.47) Shrady, 『운명의 날』, 30.48) 민병원, “재난의 정치학: 리스본 대지진과 근대국가에 대한 21세기적 성찰,” 「평화연구」 28/2 (2020.10), 8.49) Ibid., 11-12. 3. 타인의 얼굴과 대속의 고통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 설교자는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레비나스의 철학 “타인의 얼굴”과 “대속의 고통” 개념은 고통당하는 자에게 다가갈 한 돌파구를 열어준다. 우선 한 개인의 경험을 통해 고통당하는 청중에 접근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자. 강정훈 목사는 사랑하는 아내가 골수암으로 시작한 병이 난소암으로 악화되어 5년간 투병하다가 ‘죽기에는 많이 아까운’ 41세에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경험하였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마음을 정리해서 입을 연 강 정훈은 ‘아직도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당시 심정을 이렇게 전한다. 그가 슬픔에 빠졌을 때 믿음 좋은 사람들이 와서 사모님이 좋은 데 갔으니 슬퍼하지 말라고 말해 준 것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너무나 비인간적인 태도였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울고 있는 미망인들에게 울지 말라고 비정하게 요구하는 것을 교회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라고 강정훈은 단호하게 말한다.50) 그러면 고통당하는 청중에게 접근하는 바람직하고 성경적인 태도는 무엇인가? 프랑스의 유대교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년~1995년)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아우슈비 츠 대학살 등 비극적인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한 뜻을 설명하려는 변신론은 그 설득력을 잃었다고 본다. 레비나스가 보기에 고통은 고통 그 자체로는 어떠한 쓸모도 없는 부정적인 경험에 불과하다. 레비 나스는 나의 고통이나 타자의 고통 자체는 쓸모없고 의미 없으며 타자의 고통을 위한 나의 고통만이 의미 있다고 주장한다.51)물론 고통은 아무 쓸모가 없으며 그 속에 하나님의 선한 뜻을 찾을 수 없다는 레비나스의 주장은 다소 과격한 면이 있다. 하지만 레비나스의 주장은 고통을 당하는 청중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해 설교자에게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고통받는 자가 ‘외부의 폭력’에 무력하게 노출된 채 나에게 도덕적 호소력으로 다가오는 윤리적 사건을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이라고 부른다. ‘타인의 얼굴’은 존재 자체를 통해 나에게 호소하고 윤리적 의무를 일깨운다. 이처럼 타인의 얼굴이 자기 스스로 내보이는 방식을 레비나스는 ‘계시’라고 부른다.52) 레비나스가 여기서 ‘계시’라는 종교적 언어를 사용한 까닭은, 얼굴의 현현은 나 자신의 노력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나타나는 절대적 경험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얼굴은 나의 입장과 위치와 상관없이 스스로 자기를 표현하는 가능성이다. 이처럼 타인의 얼굴이 계시로 다가올 때 필요한 것은 대속의 고통을 나눌 의무가 있다는 것이 레비나스의 주장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나의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감성이라는 사실을 레비나스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나에게 질책하고 호소하는 타자의 저항을 대할 때, 나는 누구로부터도 침해받을 수 없는 나의 행복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타자에 대한 나의 책임이며 나의 의무이기 때문 이다.”53)고통받는 자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해 신음하고 울부짖게 되는데, 여기서 타인의 도움에 대한 근원적 요청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청에 응답하여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의 향유를 포기할 때, 비로소 타인에 대한 관계, 즉 인간 상호 간의 윤리적 전망이 열리게 된다. ‘나’는 이러한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를 환대해야 한다. 심지어 레비나스는 ‘나’는 내가 기억할 수도 없는 먼 과거에 벌써 타자를 위한 책임적 존재로 세워졌다고 한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그러했던 것처럼, 내가 타인을 대신해서 타인의 자리에 세워지는 일을 레비 나스는 대속이라고 한다. 대속은 문자 그대로 ‘자리 바꿔 세움 받음’이다. 여기서 나의 위치가 수동 적이라는 것이 중요하다.54) 50) 강정훈, 『내게 왜 이러세요?』, 78-80.51) 강영안, 『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의 철학』, 227.52) Ibid., 148.53) Ibid., 152. 54) Ibid., 186. 이처럼 레비나스는 고통이 담긴 타인의 얼굴의 현현 앞에서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수용함으로써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 합리적인 추론에서 벗어나 인간 상호 간의 책임의 윤리적인 접근을 강조한다. 이런 면에서 레비나스는 고통당하는 청중에게 다가가는 중요한 접근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이상으로 고통당하는 청중을 위한 설교자의 태도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설교자는 고통당하는 청중에게 어떻게 설교해야 하는가? 설교자는 먼저 청중이 당하는 고통이 어떤 모델에 해당하는지 세심하게 분석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고통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고통을 통해서 받을 수 있는 유익을 청중이 놓치지 않도록 고통의 의미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때 설교자는 욥의 친구들과 같이 훈계하는 자의 자리에 아닌 고통당하는 청중과 ‘자리바 꿈’의 과정을 통해 고통 중에 있는 청중을 체휼(體恤)하고 위로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청중이 고통을 통해 신앙 성숙의 자리로 나아가고 그리스도 재림으로 완성될 고통 없는 나라에 대한 소망을 든든히 세우는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V. 나가는 말 이상으로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또 고난을 겪고 있는 청중에게 설교자가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청중이 고난을 겪을 때, 그리고 그 고난이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거나 장기화할 때, 다윗처럼 하나님이 왜 응답하지 않으시는지 궁금해하거나 모세처럼 소망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때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라고 설교자에게 사명을 주신 것이다. 예컨대 아스머 교수가 경험했듯이 설교자가 고난의 의미를 설명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일깨워주면 신자는 잠시 방황하던 자리에서 돌아와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설교자가 이런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고난을 해석하는 여러 모델을 잘 이해하고 있어서 신자가 겪고 있는 개별적인 고난 사건을 설명하는데 어느 유형이 적절할지 잘 분별하여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당장은 고난이 아프고 힘들지만, 신자의 성숙에 고난이 불가피함과 결국에는 고난이 유익임을 받아들여 하나님께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사역을 감당하는 설교자에게 고난을 설명하는 모델들을 잘 이해하는 지식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은 고난을 겪고 있는 청중에게 다가가는 태도이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옳으시다는 신정론의 주장을 강조하느라 자칫 고난을 겪는 신자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체휼(體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타인의 얼굴’이 ‘계시’라고 하는 레비나스의 설명은 설교자가 청중을 향해 체휼하는 마음을 가지는 데 요긴한 조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C.S.Lewis / 김남식 옮김. 『고통의 문제』. 서울: 크리스천서적, 2001. 강영안. 『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의 철학』. 서울: 문화과지성사, 2005. 강정훈. 『내게 왜 이러세요?』. 서울: 두란노, 2021.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이근세 옮김. 『변신론: 신의 선, 인간의 자유, 악의 기원에 관하여』. 서울: 2014.곽성순.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 ‘1건’ 추가.” 「청년의사」 인터넷신문(2021.07.26.) 접속 2021.08.05. 니콜라스 시라디/ 강경이 옮김. 『운명의 날-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서울: 에코의 서재, 2009.리처드 아스머/ 김현애 옮김. 『실천신학의 네 가지 중심 과제』. 서울: 예배와설교아카데미, 2012.민병원. “재난의 정치학: 리스본 대지진과 근대국가에 대한 21세기적 성찰.” 「평화연구」 28/2 (2020.10). 5-38.박영범. “신정론과 하나님의 고난: 신정론 문제의 응답으로써 하나님 고난이 주는 의미.” 「한국조직신학논 총」 33 (2012), 243-279.박영식.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한국기독교신학논총」 88/1 (2013/07). 85-112. 발터 벤야민/ 최성만 옮김. 『언어 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번역자의 과제』. 서울: 길, 2008. 빅터 E. 프랭클/ 정순희 옮김. 『죽음의 수용소에서』. 서울: 제일출판사, 2000.옥한흠. 고통에는 뜻이 있다.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10.이문원. “옛 해양대국의 자취가 남아 있는 리스본.” 「국토」 340 (2010/02), 70-75. 이상명. “라이프니츠: 변신론과 인간의 자유.” 「철학」 106 (2011/02), 이승진. “고난과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설교.” 「복음과실천신학」 35 (2015), 70-75. _____. “대재앙에 대한 신정론 관점의 설교.” 「복음과실천신학」 29 (2013), 70-75. _____. “청중에 대한 설교학적 이해.” 「복음과 실천신학」 6 (2003), 60-86. _____. “해석학적 실재론에 근거한 성경 해석과 설교 메시지의 전달 과정에 관한 연구.” 「복음과 실천신학」 54권 (2020), 198-231.캔 가이어/ 마영례 옮김. 『하나님의 침묵』. 서울: 디모데, 2006.팀 켈러/ 최종훈 옮김.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서울: 두란노서원, 2018.허호익. “리스본 대지진과 자연재해에 대한 신학적 쟁점.” 「신학과문화」 21 (2012), 119-144.홍치모. “C.S. 루이스의 생애와 사상 – 루이스의 작품과 신념 세계.” 「신학지남」 65/3 (1998/09), 203-216.
    • 목회
    • 신학
    2022-03-16
  • 남수원노회, 50년사 출판 감사예배 드려
    남수원노회 50년사 출판 감사예배가 11월 16일 오후 2시에 평택시에 소재한 남부전원교회당(담임 박춘근 목사)에서 있었다. 1부 출판감사예배는 민경식 목사(준비위원장, 직전노회장)의 인도로 배영국 장로(부노회장)의 기도 후 주영기 장로(노회 회계, 편찬위원)가 다니엘6장 10-11절을 봉독 후 이한수 장로, 남재성 장로(남부전원교회)가 색소폰 연주로 특송했다. 배광식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는 '지금은 싸울 때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때로 이런 저런 이유로 분쟁과 어려움 가운데 있는 노회가 있는데 남수원노회는 앞으로도 늘 평안한 노회가 되기를 바란다"며 "싸움은 실존인데 세상에는 수많은 전쟁이 있었고 지금도 영적전쟁이 있다. 우리 합동 교단은 세상의 방법으로 목회를 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개혁주의와 멀어진 교회가 있어 두려운 일이다"면서 "코로나로 인해 한국교회가 대면 예배를 버리고 비대면 예배로 타협하며 본질을 잃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오래 앉아 기도함으로 회복해야하며 이 일에 남수원노회가 앞장서기를 바란다"고 설교했다. 정보영 목사(부노회장, 편찬위원)의 광고 후 이송희 목사(노회장, 편찬위원)가 축도했다. 2부 출판 축하는 강한영 목사(노회서기)의 인도로 안태용 목사(회의록 서기, 편찬위원)의 기도 후 박춘근 목사(증경노회장, 편찬위원장)가 "노회 역사를 돌아볼 때 많은 선배님들이 사라져갔다. 선배들의 좋은 역사를 이어가는 후배들이 되야한다. 새 역사를 기대하며 큰 일을 감당하는 남수원노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감사의 말을 했다. 이송희 노회장은 박춘근 목사(편찬위원장), 민경식 목사(준비위원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박춘근 편찬위원장은 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교수), 윤상문 목사(킹덤북스 대표)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최희용 목사(남수원노회 설립준비위원)는 "교회 개척하는 일에 힘써 노회가 크게 부흥했다. 총회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노회가 됐다. 더 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노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축사하고, 권순웅 목사(부총회장)는 "노회가 50주년이 됐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신대원 원우회장 때 남수원노회 한명수 목사님께서 NSM운동을 격려해 주셨다. 또한 박춘근 목사님께서도 내게 좋은 본을 보여주셨다. 양천봉 목사는 신학교 룸메이트였는데 나를 원우회장 나가게 했었다”며 “큰 일을 이루는 남수원노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축사했다. 허 은 목사(총회 서기)는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다. 과거에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과거를 토대로 현재를 잘 세워 미래를 이끄는 노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축사하고, 고영기 목사(총회 총무)는 "지난 50년을 축하하며 다가올 50년도 미리 축하한다"고 축사한 후 신종철 목사(총회 전 역사 위원장)는 "남수원노회 50년사에 눈물, 열정, 헌신, 격려가 담겨있다. 다음 세대를 대비하는 노회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며 축사하고, 김종화 목사(남수원노회 초대 노회장)는 "남서울 노회가 생길 때 33개 교회였는데 현재 58개 교회가 됐으며,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했음에 감사하고 앞으로 더 크게 힘쓰는 노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격려사한 후 오범열 목사(중부협의회 회장)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성공한다. 중부협의회에 33개 노회가 있는데 50년사를 편찬한 것은 남수원노회가 큰 일을 한 것이다"며 격려사했다. 이어 홍상진 목사(회의록 부서기, 편찬위원)의 광고 후 박장규 목사(증경노회장, 편찬위원)의 기도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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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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