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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 글을 잘 쓰는 구체적인 방법
    글쓰는 것은 나의 오래된 관심사항이다. 기회 되는대로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는다. 이 책도 그러한 관심에서 봤다. 유익하다. 특별히 이문재 교수는 글쓰기에 대해 매우 잘 설명하고 있어 전문을 게재한다. 잘 읽어보면 많은 유익을 얻을 것이다. 이문재 (시인,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정확해야 아름다울 수 있다 왜 저널리즘적 글쓰기인가? 글쓰기의 장르는 매우 다양합니다. 사적인 글쓰기/공적인 글쓰기, 사적인 글쓰기: 일기, (자서전) 편지, 이메일, 공적인 글쓰기: 시와 소설, 희곡, 에세이, 기행문 등 문학적 글쓰기, 기사, 칼럼 등 저널리즘적 글쓰기, 광고 문안, 연설문, 안내문, 보고서, 기획서, 청원서 등등. 글쓰기는 더 이상 문인, 저널리스트 등 몇몇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미디어 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것과 아울러, '문자시대는 가고 영상 시대가 도래했다고들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봅시다. 영상 이미지 역시 최종적으로는 문자 언어로 번역되어야 이해와 소통이 가능합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와 같은 뉴 미디어 역시 문자 언어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언어를 버리지 않는 한 인간이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문자 문화는 영원할 것입니다. 언어는 대중의 합의에 의해 정착되고, 또 동시에 대중에 의해 변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어에 일정한 규범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언어가 대중(언중)에 의해 생성소멸하고 유통되고 기록(저장)되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말하기와 쓰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문자 시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문자는 영상 혹은 구술 문화에 의해 위축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문자 시대를 능동적으로, 그리고 당당하게 영위하는 교양인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교양인이라면, 적어도 대학교를 졸업한 교양인이라면 전공을 불문하고 정확한 글쓰기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의 개별적 삶은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행위의 연속입니다. 이 중에서 쓰는 행위가 가장 논리적이고 또 정확해야 합니다. 글쓰기의 일차적 목표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한 것을 그대로 쓰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무의식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생각 자체가 정돈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정돈하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은, 설계도도 없이 집을 짓는 경우와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이 잘 정돈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정확히 표현(건축으로 치면 시공 능력)할 수 없다면 글쓰기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갖고 있는 몇 가지 미덕 우리가 저널리즘적 글쓰기(기사 쓰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정확한 사실에 바탕해, 정확하게 표현하는 글쓰기의 모범이기 때문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자기 주장이 강하게 드러나는 칼럼(사설)이든, 쓰는 이의 관점이 가능한 한 배제되는(이른바 '객관적'이라는 스트레이트 기사에 이르기까지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무엇보다도 정확성이 강조됩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가장 적합한 글쓰기 방법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에서 아름다움은 미덕이 아닙니다. 미사여구는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데 있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수사는 사실(fact)을 표현하는 데 있어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를 주목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다른 글쓰기와 달리 취재와 구성이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설이나 드라마 시나리오를 쓸 때에도 취재 과정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널리즘에서처럼 구체적인 현장(인물)과 정확한 사실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저널리즘에서 활용하는 다양한 취재기법은 우리가 다른 장르의 글쓰기를 할 때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습니다. 기획서나 평가 보고서를 작성할 때에도,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꾸밀 때에도 저널리즘의 취재기법을 동원하면 글이 훨씬 입체적이고 풍성해집니다. 셋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사건이나 사고, 사태나 현상 등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고 심층적인 보도 못지않게, 남과 다른 시각에서 분석하려는 태도 역시 저널리즘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넷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독자 대중의 알 권리를 기본으로 하지만, 인물이나 사건 사고, 사태 등에 대한 독자의 기본적 궁금증을 풀어주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여론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사회 변화와 그 변화의 방향성을 파악하는 데 시야를 넓히고 시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다섯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표현뿐 아니라 전달에 큰 비중을 둡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새로운 지식과 정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독자(수용자)에게 전달되고 소통(커뮤니케이션)되지 않는다면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존재 이유가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의 일상적 삶은 우리가 저널리스트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정보를 송신하고 수신하는 환경 속에서 진행됩니다. 송신자이면서 수신자인 우리가 소통 능력을 키우지 못한다면, 그 삶은 심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소통 능력이 있는 시민들로 구성된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마지막으로,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우리는 저마다 '1인 미디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블로그에 이어, 사용자 제작 컨텐츠(UCC, User-created content)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듯이, 우리는 저마다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의견과 주장이 분명하다면, 그 사람은 어디에 있든, 그 의견과 주장을 어떤 미디어를 통해 전달하든 이미 저널리스트인것입니다. 지식정보사회를 살아가면서 단순한 지식 정보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지식과 정보를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동시에 지식과 정보, 의견을 개성적으로 생산하고 소통하기 위해 우리는 저널리즘적 글쓰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를 체득하면, 보고서뿐 아니라 한 권의 책을 집필할 때에도 시간과 노력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한 편의 기사와 한 권의 논픽션의 구조와 글쓰기 방법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기사, 노력한 만큼 잘 쓸 수 있다. 1. 저널리즘적 글쓰기의 유형: 스트레이트 기사, 인터뷰 기사, 스케치 • 분석 및 해설 기사(feature story), 르포르타쥬, 칼럼, 논설 등 2. 기사를 잘 쓰기 위한 몇 가지 방법: 1) 주제를 분명하게 설정합니다. 주제를 한 문장으로 만들 수 있다면, 절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가령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고 하면 각 분야에서한국을 이끄는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하는 기획일 것입니다. 기사의 주제는 분명한 계기가 있어야 하며, 독자에게 유익한 정보가 되어야 합니다. 정보성이 부족하다면 흥미를 끌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2) 주제를 뒷받침할 자료와 전문가, 현장(사례), 관련 기사를 찾습니다. 주제가 정해졌다면 가장 먼저 관련 기사를 검색해야 합니다. 한창 취재하다가 비슷한 기사가 몇 년 전에 나온 사실을 알고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관련 기사를 검토하다 보면, 주제를 바꾸거나, 취재 영역에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3)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역피라미드형: 전문(요약)중요한 사실-흥미 있는 이야기 순으로 구성합니다. 1900년대 초 미국의 AP통신이 개발한 기사 구조로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흔히 사용합니다. ◎피라미드형: 도입-중요한 사실-서스펜스 형성-클라이맥스 순입니다. 피라미드형은 피처 기사에서 자주씁니다. 독자의 관심을 계속 끌고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문학적이고 연대기적인 서술 방식입니다. ◎혼합형: 클라이맥스(요약)-서론-본론 결론 순. 4) 1), 2), 3)이 충분하게 준비되었다면, 기사 작성에 들어갑니다. • 간결하게 써야 합니다. 국내 신문은 일반적으로 5행 이상(65~75자)을 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단문을 쓰라는 것입니다. • 가능하면 구어체를 씁니다. 이야기하듯이 쓰라는 것입니다. ·주어와 술어를 분명히 합니다. • 매력적인 언어를 찾습니다. ・쉽게 씁니다. 좋은 기사의 첫째 조건은 쉬운 문장입니다. 이상은 언론학 입문서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권장하는 지침입니다. 필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기사를 잘 쓰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를 유념 해야합니다. 먼저, 앞에서 말한 대로 기사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십시오. 이것이 나중에 기사 제목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획과 취재의 매 단계에서 판단 기준이 됩니다. '민물낚시, 환경오염 주범'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한다면, 바다낚시의 오염 문제에 관한 자료는 읽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기획과 취재 단계에서 기사의 첫 문장, 즉 리드를 구상하십시오. 첫 문장이 결정되지 않으면 기사를 쓰기 어렵습니다. 취재를 충분하게 해놓고서도 첫 문장, 즉 도입부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기자들이 제법 많습니다. 어디 기사뿐인가요. 모든 종류의 글쓰기가 첫 문장 에서 좌우됩니다. 오죽하면, 작가들이 "첫 문장은 신의 선물이다" 라고 말하겠습니까. 필자는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기획이 정해지면 그때부터 제목과 첫 문장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시를 쓸 때에도, 산문이나 논문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복잡한 사안을 취재할 경우, 취재한 내용을 주위 동료나 가까운 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흥미로운 인물을 인터뷰했을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취재한 내용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상대방의 반응을 체크할 수 있습니다. 가령 상대방으로부터 더 취재해야 할 부분, 더 강조해야 할 부분 등 의외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넷째, 관련 서적을 찾으십시오. 인터넷 검색은 참고자료일 뿐입니다. 가장 새롭고 신뢰할 만한 정보와 자료는 책에 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필자는 특집 기사를 쓸 경우, 기사 검색을 한 다음 대형 서적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관련 서적 한두 권만 읽으면, 그 분야의 권위자가 누구인지, 그 분야와 관련된 최신 이론은 무엇인지 장악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취재해서 기사를 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떤 책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다섯째, 소설을 많이 읽고 영화, TV 드라마를 자주 보십시오. 소설은 어휘력을 풍부하게 해줄 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시각을 갖게 해줍니다. 문학 분야가 아니더라도 베스트셀러 책은 따라 읽어야 합니다. 관객이 많이 드는 영화와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베스트셀러 책과 영화, 드라마에서 한 줄 인용하면서, 혹은 등장인물을 끌고 들어가면서 기사를 시작하면 독자들의 눈길을 더 많이, 또 오래 붙잡을 수 있습니다. 기사의 궁극 목표는 좀 더 많은 독자들이 읽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늘 기사만 생각하십시오. 기자는 늘 기사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심지어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에도 기사를 생각해야 합니다. 카페 옆자리에서 얻어들은 한 마디가 대형 기사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찬반양론이 팽팽한 기사일 경우, 가족이나 친구들의 의견을 청취해보면, 취재나 기사 작성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사는 혼자 쓰는 것이 아닙니다. 기사가 아니라 다른 장르의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고 읽고 느끼고 생각한 만큼 글은 달라집니다. 개성적 글쓰기를 위한 기초체력 다지기 정확한 문장이 관건입니다. 정확하지 않은 문장은 특히 저널리즘에서 문장이 아닙니다.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에서도 정확성이 우선입니다. 아름다운 문장은 그 다음입니다.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하는 작가는 아름다운 문장, 개성적인 글을 쓰기 어렵습니다. 정확하고 개성적인 쓰기를 위해서는 '기초체력'이 필요합니다. 글쓰기를 위한 기초체력을 다지는 필자의 체험적 방법론을 소개합니다. 1. '나쁜 버릇'부터 찾는다 어떤 글이든 좋습니다. 자기가 쓴 글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자주 나타나는 단어나 표현이 발견됩니다. 사람마다 특유의 말투(말버릇)나 몸짓이 있듯이 글에도 특유의 '버릇'이 나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것이다'라는 종결어미를 자주 씁니다. '~것이다'는 가능하면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글 버릇을 찾아내는 눈을 가지고 있다면 가능성이있습니다. 다음으로, 수식어가 많은 문장, 접속사가 많은 문장, 나열이 많은 문장이 나쁜 문장입니다. 자기 글에서 나쁜 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글을 잘 쓰는 사람입니다. 자기 글에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는 수준까지 빨리 올라가야 합니다. 자기 글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문제점만 제거해도 글쓰기는 순식간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됩니다. 자기 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른다면, 정말 큰 문제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자기 글을 들여다보십시오. 자기가 쓴 글들을 '원수가 보내온 편지'라고 생각하고 여러 차례 읽어보십시오. 버릇이 발견될 때까지 읽으십시오. 2.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찾아라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기자나 작가의 글을 집중적으로 읽으십시오. 글쓰기의 모델을 하나 설정하는 것입니다.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은 반드시 좋아하는 가수가 있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가 지망생은 필사하고 싶은 선배 소설가가 한둘은 꼭 있습니다. 좋은 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그대로 베껴 쓰십시오(필사). 외우면 더 좋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적극 모방해보십시오. 그 과정에서 글쓰기 수준이 몰라보게 향상됩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국내 소설가 대부분이 선배 작가의 소설을 필사하면서 습작기를 거쳤습니다. 추천하고 싶은 필자 '모델'은 문인 이외에, 혹은 문인이면서 매체에 자주 기고하는 분들입니다. 제가 추천하고 싶은 분들은 도정일(문학평론가),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 고종석(소설가 겸 언론인), 김훈(소설가 겸 언론인). 배병삼(정치학 및 동양학), 한형조(동양철학), 송호근(사회학), 고미숙(문학평론가),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등입니다. 이외에도 좋은 필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3. 새롭지 않으면 쓰지 말라 저널리즘의 생명은 새로움입니다. 새롭지 않으면 뉴스가 아닙니다. 저널리즘이 아니라도 그렇습니다. 모든 글쓰기는 새로워야 합니다. 사실이나 의견에서 새로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표현이라도 새로워야 합니다. 새롭지 않다면 신기하거나(의외성) 흥미로워야 합니다. 새로움, 의외성, 흥미, 이 세가지 중 한 가지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글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4. 자세히 관찰하라 관찰은 모든 글쓰기의 스타트 라인입니다. 사물이든 사건이든 인물이든자 세히 관찰하지 않고서는 정확한 글쓰기가 불가능합니다. 관찰이 부정확하면 사실관계가 흔들립니다. 정확히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오감 가운데, 시각이 특히 부정확합니다. 주변 환경에 따라 착시 현상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상기해보십시오. 관찰은 단지 시각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많이, 그리고 정확히 느끼는 것도 관찰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책읽기, 영화 감상, 미술 감상 등도 관찰입니다. 관찰은 대상에 대한 집중입니다.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선입견을 버리고, 현상학적으로 말하자면 판단을 중지하고) 대상에 몰입했다가, 다시 대상으로 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상상력은 이 관찰 단계에서 나옵니다. 관찰 훈련의 첫 단계는 자기가 본 것으로 소리 내어 말해보는 것입니다. 관찰 대상이 인물이라면, 머리 모양과 색깔, 길이에서부터 이목구비를 거쳐 구두까지 관찰하면서 하나하나 말해보십시오. 컴퓨터나 텔레비전, 화분, 식탁, 자동차 실내 등 늘 마주치는 대상을 하나 정해서 소리 내어 하나하나 관찰해보십시오. 그동안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것이 발견입니다. 낯익은 것에서 낯선 것을 찾을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최고의 글쓰기 재료입니다. 5. 메모하고, 메모하고 또 메모하라 기억력이 남다르다고 해도, 메모를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뛰어난 작가는 물론이고 예술가, 심지어 기업의 CEO들도 메모를 자주 합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메모광입니다. 인간이 하루에 접하는 새로운 정보(자극)는 수십만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 하루를 돌이켜보십시오. '오늘 내가 새로 느낀 것, 새로 발견한 것'을 떠올려보십시오. 거의 없을 것입니다. 주머니 혹은 핸드백에 작은 수첩과 필기구를 반드시 챙기십시오. 수첩과 필기구를 챙기는 습관이 들었다면, 글쓰기를 위한 가장 필수적인 요건을 갖춘 것입니다. 저는 화장실에도 연필과 포스트잇을 갖다 놓습니다. 주머니에 메모지와 볼펜이 없으면 산책도 하지 못할 만큼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천 번 새로운 생각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글쓰기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좋은 글은 메모지에서 나옵니다. 메모지가 '상상력 발전소'입니다. 개성적인 글쓰기를 위한 세부 지침 1. 나로부터 시작하라 저널리즘적 글쓰기, 특히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나'는 차가운 전달자입니다. 스트레이트 기사에는 글쓰는 사람의 주관이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활자매체의 기사는 연성화하고 있습니다. 피처 기사, 칼럼 등은 대단히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문체를 구사합니다. 기사작성 연습을 하고 싶다면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서전을 써 보거나, 자기가 자기를 인터뷰하는 것입니다. 가족이나 친구를 소개하는 글도 좋은 훈련이 됩니다. 자기가 사는 마을(아파트)을 취재해 사진과 곁들여 기사를 써보는 것도 훌륭한 저널리즘적 글쓰기입니다. 시나 소설을 쓰기 원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쓰십시오. 문학적 글쓰기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 가운데 하나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서 출발하십시오. 나에 대해, 나의 가족과 친구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잘 알고 있는 소재를 글로 쓸 때,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나'에 대한 글쓰기는 자기 삶을 성찰하는 진지한 계기를 제공합니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이 같은 인문학적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은 글쓰기 말고 거의 없습니다. 2. 반복하지 말라 반복은 강조할 때 말고는 피해야 합니다. 반복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표현의 반복과 내용의 반복이 그것입니다. 같은 단어, 같은 표현을 반복하지 마십시오.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유의어를 쓰십시오. '그녀는 아름다운 숄을 두르고, 아름다운 가방을 들었으며, 아름다운 마을에 산다. 이 문장에서 '아름다운'은 반복될 뿐만 아니라, 정확하지도 않습니다. 글쓰기의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내용의 반복입니다. 중언부언하지 마십시오. 같은 내용(견해, 정보, 지식......)이 반복되면 독자는 냉정하게, 즉각 눈을 돌립니다. 친구와 이야기할 때를 떠올려보십시오. 어제 한 얘기를 오늘 하면 친구는 즉각 이렇게 나옵니다. "그거, 어제 들은 얘기야."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3. 한 문장에는 하나의 정보만 담아라 이것은 문장을 짧게 쓰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한 문장에는 하나의 정보, 한문단에도 하나의 정보군을 담는 것입니다. 한 문장에 두 개 이상의 정보를 담는 순간, 문장은 길어집니다. 한 문단에 두 개 이상의 정보군을 담으면, 복잡해지기 때문에 독자가 이해하기 힘들어집니다.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 또는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한 문장, 하나의 정보' 원칙에 따라 글로 써보십시오. 처음에는 대단히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몇 번 고쳐 쓰다보면, 문장을 짧게 쓰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할수 있을 것입니다. 4. 접속사를 쓰지 말라 통학 또는 통근 과정을 '한 문장, 하나의 정보' 원칙에 따라 쓰다 보면, 수시로 접속사가 끼어들 것입니다. 접속사 없이 쓰려고 애써보십시오. 최근에 읽은 소설 가운데 접속사가 거의 ('전혀' 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없는 소설이 있습니다.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인데, 접속사에 유의하며 읽어보십시오. 매우 흥미로운 글읽기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접속사는 글 쓰는 이의 마음속에 있어야 합니다. 특히 연결형, 나열형 접속사를 피하십시오. 5. 나누고 묶어주어라 기사를 쓸 경우, 다양한 정보를 한꺼번에 제공해야 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럴 때는 유사한 것끼리 묶어줘야 독자가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음식 종류를 소개한다면, 국적별 혹은 재료별, 계절별 등으로 나누어 묶어줍니다. 6. 병치할 때 조심하라 같은 기능을 가진 단어, 구, 절 등이 나란히 놓일 때 자주 오류가 나타납니다. '사과와 큰 배' '철수는 중학생이고 영희는 공부를 잘한다'와 같은 문장이 의외로 많습니다. '사과'라는 단어와 '큰 배'라는 구는 병치하면 안 됩니다. 단어는 단어끼리, 구는 구끼리 병치하십시오. '사과와 배' '작은 사과와 큰 배'가 적확한 표현입니다. 앞의 문장은 '철수는 중학생이고, 영희는 초등학생이다로 써야 합니다. '중학생' (단어)과 '공부를 잘한다' (구)가 나란히 놓이면 대단히 어색합니다. '30-3-30 법칙'을 명심한다 언론인들은 30-3-30 법칙'을 자주 언급합니다. 여기서 30. 3. 30은 각각 30초, 3분, 30분을 일컫습니다. 독자들이 기사를 읽을 때, 처음 30초 동안은 제목이나 부제, 사진, 그래픽 요소, 기사의 도입부 등을 살펴본다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처음 30초 안에 기사를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만일 읽기로 마음먹었다면 다음 3분 동안 기사의 도입부를 읽습니다. 그리고 도입부가 흥미롭다면 30분 동안 기사를 끝까지 읽는다는 것입니다. 기자와 편집자는 처음 30초를 3분으로 늘리고, 다시 3분을 30분으로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기사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든 글이 제목과 도입부에서 결정납니다. 시처럼 짧은 글에서도 제목이나 첫 연이 진부하면 독자들은 눈을 돌려버립니다. 소설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보고서나 논문도 마찬가지입니다. '30-3-30 법칙'은 첫 문장에 목숨을 걸라는 저널리즘적 글쓰기의 핵심을 압축하고 있는 법칙입니다. 이문재. 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경희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시사저널 취재부장, 문학동네 편집주간을 역임했고, 현재 <시사IN> 편집위원, <문학동네〉 편집위원,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 등이 있다(pp.197-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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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 “흥청망청” 108회 선관위... 명분없는 돈 낭비
    본 기사는 교회발전연구소 대표 이능규 목사에게 모 인사가 108회 선관위(위원장 권순웅 목사)에 대해 제보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기사임을 밝힌다. 제보 내용에 따르면 선관위가 불필요한 돈을 낭비하고 있다. 제108회기 선관위는 공정선거감시단 해외 활동에 이미 많은 경비를 집행했다. ▲전국장로회연합회 임역원수련회(일본) : 고정식, 손정호, 김삼주, 신덕수, 한기영(750만원 집행) ▲농어촌교역자부부수양회(다낭) : 권순웅, 신덕수, 지동빈, 임종환, 최병도(613만원 집행) ▲전국교역자하기수양회(필리핀) : 전웅구, 김상원, 유병희, 한기영, 이상돈(599만5천원 예산). 이때 위원장 권순웅 목사와 서기 한기영 목사가 강사를 맡았다고 한다. 현재 바뀐 선거규정에 따라 후보자는 행사에 참석할 수 없다. 그런데 선관위 공정선거감시단은 누구를 감시하기 위해 해외 행사에 동행하는 것인가? 제보자는 “돈**”이라는 격한 표현을 사용했다. 또한 선관위는 민찬기 목사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비로 5천 5백만원을 지출했다. 선관위원들이 1차 투표해 7대7로 나왔다면 의견이 팽팽하다는 것인데 굳이 다시 투표해 7대8로 만든 것이 화근이다. 증경총회장단이나 실행위원회에 넘겨 자문을 구했다면 굳이 총회 돈을 지출할 소송에 휘말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감사부는 107회기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배광식 목사)에 대해 특별재정감사를 하고 있다. 어제는 서기와 회계를, 오늘은 위원장과 심의분과장을 부른다. 안건은 선관위가 재정을 과잉지출했다는 것이다. 모 선관위원은 자기들은 비용을 아껴서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기에 특별재정감사를 받는 것이다. 앞으로 108회기 선관위도 감사부에 의해 특별재정감사를 받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이 악순환을 끊어야한다. 선관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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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 【북토크】 가수 장기하의 깨달음
    가수 장기하를 좋아한다. 노래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의 대중적인 첫 노래 “싸구려 커피”, “달이 떠오른다, 가자” 등은 신선했다. 읽을 책들을 검색하다 보니 그가 몇 년 전에 쓴 것이 있어 대출해서 봤다.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첫 장인 ‘안경과 왼손’은 주어진 환경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돌아본 후 감사하는 내용이다. 읽어볼만해 전문을 소개한다. 안경과 왼손 얼마 전 안경을 잃어버렸다. 매우 아끼는 안경이었다. 아니, 아낀다는 표현으로도 모자란다. 이삼 년 전 그 안경을 산 이후로는 오직 그것만 써왔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있을 만한 곳을 전부 다 여러 번씩 싹싹 뒤져봤지만 찾지 못했다. 결국 예전에 썼던 다른 안경을 쓰고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 이삼 일 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마음을 털어버렸다. 그래, 그 안경이랑은 여기 까지였나보지 뭐. 나는 국소성 이긴장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다. 해괴해 보이는 이름이지만 의미는 간단하다. '국소성'이란 특정 부위에 나타남을, '이'는 이상함을, '긴장'은 말 그대로 긴장을 뜻한다. 한마디로 특정 부위가 이상하게 긴장된다는 얘기다. 이 병명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는 '이'다. '이'자가 들어간 병을 선고받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런 상황이다. 몸이 안 좋다. 병원을 찾아가 묻는다. "선생님, 저 왜 아픈건가요?" 의사가 답한다. "그러게요. 이상하네요." 그렇다. 내 병은 원인도 치료법도 알려지지 않은 희귀병이다. 이 병이 처음 생긴 것은 대략 십오년 전쯤으로, 군악대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눈뜨고코베인'이라는 록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었다.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드럼 하나로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연주를 잘하는 사람, 즉 프로 드러머가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외의 진로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학교 공부는 최소한으로 하고 드럼 연습과 밴드 활동 위주로 생활했다. 그러다보니 군복무를 시작도 하지 않은 채 대학 오 년 차를 맞았고, 더이상은 입대를 미룰 수 없게 되었다. 내 선택은 당연히 군악대였다. 군대에 있는 동안 손발이 녹슬면 큰일 아닌가. 일반 부대는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군악대는 록 연주만 잘한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클래식 타악, 특히 행진곡풍의 연주에 능통해야 했다. 자신은 있었다. 이미 연습이라면 많이 해온 터였기 때문이다. 좀 다른 장르의 연주라고 해서 못 해낼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시험을 대비해 맹연습에 돌입했다. 이삼 개월쯤 지났을 때 복병이 나타났다. 연습만 하려고 하면 내 의지와 관계없이 왼손이 꽉 쥐이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드럼 연주의 기본은 그립이다. 누가 툭 치면 놓쳐버릴 듯 살며시 스틱을 잡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만들어야 빠르고 정확한 연주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꾸 나도 모르게 스틱을 힘껏 잡게 되고 그것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연습하다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스틱을 집어던진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결국 군악대는 포기했다. 치료법도 알 수 없고 상태가 호전될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프로 드러머의 꿈도 함께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리 절망스러운 단념은 아니었다. 내 생각의 흐름은 이랬다. '하긴 군악대의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연주하는 게, 내가 멋있는 음악을 하는 데는 오히려 해가 될지도 몰라. 멋있는 음악이라... 그래, 생각해보면 프로 드러머가 되는 것 자체가 멋있는 음악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겠네. 연주로 먹고살려면 돈 되는 음악을 해야 하는데, 내가 지금 멋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음악 중에 돈 되는 게 하나라도 있나? 그리고 나는 우리 밴드 음악이 제일 멋있는데 그걸로 돈을 벌어본 적도 없잖아? 애초에 음악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였어!'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프로 연주자가 아닌, 돈은 안 돼도 '멋있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일반 부대에 입대했다. 제대한 후 나는 그 '멋있는' 뮤지션이 되는 일을 실행에 옮겼다.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한 상태에서, 내가 싱어송라이터로서 이끄는 새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한 것이다. 최소한의 돈과 최대한의 시간을 확보해 자유롭게 음악활동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곡은 군복무중 짬짬이 만들어뒀었다. 물론 큰 인기를 얻으리라는 기대는 전혀 없이 만든 노래들이었다. 눈앞에 있는 관객들만은 확실히 재밌게 해주겠다는 생각이 다였다. 그런데 터졌다. 소위 '대박'이었다. 활동을 시작하고 일 년이 지나기도 전에 전 국민적 히트곡을 보유한 밴드가 된 것이다.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순조로웠다.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왼손에 힘이 들어가는 증상이 기타를 연주할 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 증상이 신기했던 건 유독 드럼 연주를 할 때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다른 일을 할 때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물론 기타 연주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군복무중에도 생활관에 비치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만들었고, '장기하와 얼굴들' 첫 싱글을 녹음할 때도 기타는 내가 다쳤으며, 밴드 활동 초기에는 공연을 할 때도 절반 정도의 곡에서는 내가 기타를 잡았다. 그런데 급격하게 치솟는 인기를 실감하며 공연을 이어가던 어느 날, 기타를 연주할 때도 왼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기타도 포기했다. 이번 단념은 군악대 때와는 달리 좀 절망스러웠다. 공연에서 기타를 연주하지 않기로 했음은 물론이고, 평소에 혼자 치는 것도 거의 못하게 됐다. 늘 자유자재로 하던 기본적인 플레이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니 짜증이 치밀었다. 자연히 심심풀이로 기타를 잡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중학교 때 이후로 그때까지 줄곧 기타는 나의 가장 좋은 취미 중 하나였다. 집에 있을 때면 침대에 누워 기타를 배에 얹고 아무렇게나 퉁겼다. 그러면서 멜로디를 이리저리 흥얼거리다보면 이따금씩 노래가 만들어지곤 했다. 그런 일상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날아가버렸다. 게다가 이번에는 증상이 연주에만 국한돼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일상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곧 타자를 치는 것도, 단추를 잠그는 것도, 왼손을 써야 하는 어떠한 일도 예전만큼 쉽게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로부터 십 년이 흘렀다. 그런데 그 십 년을 돌이켜보면, 이 병이 내게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사실 병에게 엎드려 절하고 싶을 지경이다. 프로 드러머의 길을 포기함으로써 결국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타 연주를 포기한 것 역시 내게 두 가지 커다란 선물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새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 형을 영입한 것, 둘째는 내가 무대에서 악기 없이 자유롭게 퍼포먼스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장기하와 얼굴들’의 활동이 내게 가져다준 희열은 말도 안 되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증상도 아주 조금씩 좋아져 이제는 거의 다 나았다. 지금도 약간의 느낌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일상에서 그것을 의식하게 되는 일은 드물다. 기타와 드럼도 취미 정도로는 다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 연습을 안 했으니 남들 앞에 뽐낼 만한 연주력은 당연히 아니지만, 사실 이제는 그런 능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좋은 연주자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증상이 가장 심했을 때를 떠 올리면 집에서 혼자 재밌게 연주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지금도 이 병의 원인은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듯하고, 물론 나도 아직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이렇게 추측할 뿐이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과도한 것을 강요했고, 몸이 그만두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충분히 쉬게 해주었으며, 그랬더니 시간을 두고 차츰 회복되었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그리고 형체가 없긴 하지만 능력도 마찬가지다. 어제까지 당연히 할 수 있었던 일을 오늘 갑자기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무척 괴롭긴 했지만, 결국 다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 능력은 여기까지인가보다, 하고.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 맞춰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그러고 나면 그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다른 길이 열리곤 했던 것이다. 안경은 며칠 뒤에 소파 밑에서 찾았다. 전날 술에 취해 소파에서 잠들었고, 안경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는 과정에서 소파 아래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거실에서 잠드는 일이 거의 없다보니 그곳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먼지 구덩이 속에 얌전히 놓인 안경을 발견한 순간, 그야말로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많이 아끼는 안경이라 해도, 물건 하나로 그렇게까지 기쁠 수 있다싶었다. 모르긴 해도, 깨끗이 포기했었기 때문일 거다(pp.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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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 【단상】 부총회장 선거, 축제가 싸움판으로
    지난 4월 25일 오전 11시 참좋은교회(이윤찬 목사 시무)에서 대구교직자협의회 제31회 정기총회가 있었다. 이승희 증경총회장의 개회 예배 설교 후 합심기도 시간에 경북교직자협의회 대표회장 강전우 목사가 ‘총회와 영남지역을 위해서’ 기도할 때 부총회장 자격 문제로 소송이 붙은 총회를 염려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소송 관계자인 부총회장 후보 민찬기 목사나 장봉생 목사의 마음은 어떨지 모르나 총회 회관에서 먼 경상도 지역에서도 현 사태를 매우 안타깝게 여기며 탄식으로 기도하고 있다. 아마 이 사태를 지켜보는 대부분의 총대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한 사람의 부총회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물질이 필요하다. 노회와 협의회, 총회 등에서 오래 봉사하며 자신을 알려야한다. 이에 많은 시간이 든다. 그리고 물질로도 많이 섬겨야한다. 그래서 아무나 부총회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시간과 물질로 섬겨온 부총회장 후보들은 모두 총회의 귀한 자산이다. 바람직한 것은 단독 후보로 추대되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경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친했던 사이도 서먹해지거나 “원수” 사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곽선희 목사는 운동을 할 때 서로 마주보는 것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탁구나 테니스나 서로 마주보고 하다보면 감정 싸움이 될 수 있기에 자기는 각자 실력으로 승부하는 볼링을 한다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오래 세월 총회를 섬겨온 민찬기 목사나 장봉생 목사는 현재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내리 누르고 이겨야할 경쟁 상대로 보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런 면에서 선거란 참으로 잔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민찬기 목사 소속 임원회가 민찬기 목사의 후보 자격에 대해 물었을 때 장봉생 목사 소속 노회도 임시노회를 열어 부총회장 출마 자격에 대해 선관위에 질의했다. 선관위가 이 문제를 다룰 때 투표에 처음에는 7:7 동수가 나왔다. 이어 재투표하여 7:8로 세 번 출마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 지나간 일이지만 의견이 7대 7로 나뉘었다는 것은 선관위원 내에서도 의견이 팽팽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문제를 바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좀더 시간 여유를 두고 처리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증경총회장단의 의견을 듣는다든지, 실행위원회에서 의견을 구했다면 모양세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속전속결로 재투표해 7:8로 세 번 출마 불가로 정했다. 그러자 민찬기 목사측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소송을 했고, 소속 노회에서 부총회장 후보로 추천을 받았다. 세상 법정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두고보면 된다. 그런데 성경은 교회 문제를 세상 법정에 끌고가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고전6:1-7]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새로이 총회를 섬길 일꾼을 뽑는 총회 선거가 축제가 아니라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사법의 판결을 받아야하는 싸움판이 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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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4-04-26
  • 취재 기자를 내쫓는 노회들...무엇이 두려운가?
    봄 정기노회가 열리는 계절이다. 서울에서 먼 지방의 몇몇 노회를 취재갔다. 그 중 2개 노회에서 “내쫓김”을 당했다. 이리노회는 북일교회 문제로 회원 호명 때부터 시끄러웠다. 결국 노회원들간에 고성이 오갔다. 이런 가운데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거칠게" 요구했다. 결국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 충청노회도 전 총신대총장 김영우 목사 피소건에 대해 다루며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험악하게” 요구했다. 결국 본당 중이층으로 쫓겨갈 수 밖에 없었다. 기자는 사실을 취재하고 알리기 위해 그 현장에 가 있는 것이다. 북일교회 문제는 대부분의 총회원들이 알고 있을만큼 큰 이슈이다. 당연히 기자들이 가서 취재할 수 밖에 없는 사항이다. 기자는 총회원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대신해서 그 현장에 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기자들을 내쫓는 것인가? 그것이 과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는가? 기자가 보면 안될만큼 감춰야할 문제가 있는가? 사실을 사실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 없는 노회는 취재간 기자들을 반기며 좋게 기사를 써서 노회를 잘 홍보해 달라고 부탁한다. 기자로서도 기분좋은 일이다. 반면 문제 있는 노회는 기자를 내쫓는다. 마치 잡상인 취급을 한다. 부득이 기자를 내보낼 필요가 있다면 “정중하게” 요청했으면 한다. 같은 합동측 목사한테 그렇게 함부로 해서 되겠는가? 앞으로도 “문제 있는” 이리노회와 충청노회 “사태 추이”에 대해 예의주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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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4-04-03
  • 【북토크】 편협한 꼰대가 되지는 말아야 할텐데....
    자기 생각에 갇혀 사는 사람은 편협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하고는 대화도 되지 않는다.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남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개방해야한다. 죽고 사는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럴수도 있구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편협함 공부를 하면서 문득 깨달은 건, 법률 외에 삶의 모든 기준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 기준들은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니어서 주변사람에게 영향을 받아 생성되기도 하고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워지기도 한다. 또 삶의 경험이 켜켜이 쌓이면서 조금씩 견고해지고 구체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여러 기준들을 만들어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일은 어쨌거나 사람이 하는 것이란 점에서 언제나 주관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너무 쉽게 각자가 세운 판단 기준이 ‘정답’이라고 착각한다. 사람은 쉽게 타성에 젖으니 자신의 판단 기준과 결론이 절대적인 단 하나의 정답이라 믿으며 자기 우물 안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기준에 정답이란 없기에 자신이 바르고 타당한 기준을 세워가며 나이 먹고 있다는 생각도 사실 편협한 ‘착각’에 가깝다. 나이를 먹는 일이 무서운 건 나도 모르는 새 나의 판단이 바르고 타당한 정답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조직에 잘 적응한다는 것은 곧 그 곳의 기준을 잘 습득해 체화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공동체에서 튀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공동체의 평가 기준을 답습하기도 하고, 나는 다르다 여기며 살아도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그 밥에 그 나물처럼 사고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쉼 없이 자신의 옳고 그름을 고집하기도 하고 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숨기기 위해 고집스러운 기준으로 타인을 깎아 내리기도 한다. 입만 열면 세상 곳곳에 대한 불만을 쏟아 내는 투덜이 스머프 같은 사람이 있었다(입만 열면 남의 흉을 보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결이랑은 또 다르다). ‘이건 이래서 구리고, 저건 저래서 구리고’, ‘그런 사고방식이 말이 되느냐. 말은 그렇지만 속내는 이런 것 아니겠느냐’하는 식으로 언제나 자신 밖의 사람과 상황에 대해 평가만 늘어놓는 사람이었다. 초반에는 그가 솔직하고 유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어떤 것. 누군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 지 밝히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그 취향과 기준을 고백하는 것이 자신의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데 저렇게 쿨하게 늘어놓다니!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화의 주된 발언이 자기 자신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평가이다 보니 들을수록 의아한 지점이 생겼다. 당신에게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 타인이 당신에게 평가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 평가할 자유가 있다고 해도 당신의 평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는지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의 평가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에 대한 인상 또한 '예리하고 유쾌한 사람이다' 라기 보다 ‘어딘가 모르게 편협하다’, ‘편협함을 자랑하는 태도가 참 멍청하다’까지 이어졌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 몇몇 단정적인 말들에서 그가 타인에 대한 평가를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었던 까닭을 눈치 첼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자신의 말이 정답이라고 여겨서 가능했던 것 이었다. 자기 말이 정답인 사람 곁에 다른 의견들은 오답처리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이 오답이 되 는 대화를 좋아라할 사람은 없다. 그렇게 그는 자기주장이 뚜렷한 사람에서 편협한 사람으로 점차 다르게 기억 됐다. 중학생 때 유독 적이 없었던 한 친구가 떠오른다. 말수가 적어서,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아서, 호불호가 없어서가 아니라 ‘편견’이 없어서 두루두루 모두와 잘 지내는 친구였다. 그는 어떤 친구들에게도 늘 같은 태도로 화답했다. 편견, 그러니까 그 편협함은 끊임없이 나를 위해 타인을 배척하는 수단이 된다. 진정한 세월의 지혜는 오히려 '편견 없음'에 가까울 거라 생각한다. 타인을 판단하는 가장 괜찮은 기준은 포용이 아닐까? 타인과 자신에 대해 사람은 언제나 ‘알 수 없음’ 한 줌은 가지고 사니까. 견고한 기준은 편협한 생각의 방증일지도 모른다(pp. 178-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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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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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엔도르핀...죽을 때 부어지는 은혜
    제대로 아는 것이 위로가 될 수 있다. 알지 못하면 막연히 두렵고 답답하나 제대로 알면 마음이 편하다. 죽을 때의 고통도 그렇다. 죽을 때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불안이 있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책을 보다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 의사가 그의 책에서 이렇게 썼다(pp 55-57).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것이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감정적으로는 가족, 친지, 친구들과 영원히 헤어지게 된다는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고 신체적으로는 죽음의 순간이 고통스럽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일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감정적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과의 많은 대화와 자기 성찰을 통해 이별을 준비하는 정리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조금씩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고통스럽지 않을까 하는 신체적인 두려움은 막연한 상상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염려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 투병 기간 내내 감정을 어둡게 짓누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죽음의 순간은 전혀 고통스럽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한다면 막연히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음이 다가오면 뇌의 기능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의식을 잃어가게 됩니다. 통증이라는 감각을 느끼는 것은 뇌의 기능이 정상일 때 가능한 것이어서 죽음이 가까워져 점차 의식이 사라지는 상태에서 고통스럽다는 감각 자체는 극도로 무뎌지거나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죽음에 이르면서 뇌에는 산소 결핍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것이 신호가 되어 뇌에서는 일종의 방어 기전으로 통증 완화 효과가 있는 아편성 단백질인 엔도르핀을 포함한 각종 신경 전달 물질을 다량으로 분비하여 고통을 억제하고 극도의 안도감을 줍니다. 일부 신경학자에 따르면 죽음의 순간에는 고통은 커녕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최고의 행복감과 쾌감을 느낄 것이라고도 합니다. 죽는 순간에 뇌의 기능이 사라지면서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몸에서는 아편성 물질인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고통을 억제하게 된다고 한다. 몸을 만드신 하나님의 놀라운 배려이다. 죽음에 대한 평이한 책이라 읽기가 어렵지 않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읽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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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3-11-16
  • 교역자....사례비를 넘어서는 헌신이 필요하다
    오래전 부교역자 시절 어느 교회에 갔다. 사례를 받아보니 이전 사역지에 비해 너무 적었다. 그래서 정확히 한달이 안되 조금 줄여서 줬나하고 그 교회를 추천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렇게 적을리 없을 거라고 했다. 본인도 교육전도사만해서 부목사 사례가 어느 정도인지는 몰랐던 것이다. 늘 기독신문 광고를 보고 지원해 임지를 정했던 나는 교회에서 얼마의 사례를 주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도 기독신문 교역자 초빙 광고를 보니 예전과 달라진게 없다. “사례는 교회 내규에 따라 지급합니다-면접시 안내”, “사례는 내규에 따릅니다”라고 언급하거나 아예 사례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나는 담임목회할 때 교역자와 반주자, 지휘자 초빙이 필요한 경우 근무조건과 사례비를 밝혔다. 그래야 상대방도 생각해 보고 지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면접시 내 부교역자 시절처럼 아예 사례비 언급이 없어 한달이 지나서야 알게 된다든지, 혹은 면접 말미에 밝힌 사례비가 본인이 생각하거나 필요한 것보다 적으면 서로 입장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교역자를 초빙하면서 교회에 대한 정보를 차단하는 교회들이 있다. 전화문의도 거절한다. 왜 그런가? 교역자 입장에서 어떤 교회에서 사역하는 가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교회에 대한 정보를 오픈해야한다. 기독신문에 그러한 사항을 다 기재할 수 없으면 교회 홈페이지에라도 지원자가 보고 참고할 수 있도록 교회에 대한 안내, 사례비 등등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교역자가 사례비를 밝히면 삯군이라는 논리를 주장하는 분도 있다. 그러나 교역자도 생활을 해야하기에 자기가 받을 사례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돈 이야기만 나오면 무조건 삯군이라고 하지 말았으면 한다. 반면, 요즘 담임목회자들은 부교역자로 인해 고민이 많다고 한다. 부교역자를 뽑을려고 하면 대뜸 사례비를 물어보거나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참석 여부를 물어본다고 한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나는 신대원 1학년이던 1989년 화곡동에 있는 람원교회에 교육전도사로 갔다. 그당시 교회는 강화도 산쪽에 땅을 가지고 있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그곳을 집회 장소로 사용했기에 교역자들이 일주일간 가서 대형 텐트 설치하는 작업을 했다. 힘들었지만 재밌고 추억에 남는 일이었다.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했다. 그러나 지금 그랬다가는 난리가 날지도 모르겠다. 교역자는 교회를 섬기기 위해 있는 자들이다.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을 생각하며 교회를 섬겨야한다. 그렇다고 교회가 이것을 이용해서는 안된다. 교회도 형편에 맞게 교역자에게 최선의 예우를 할려고 하고, 교역자도 교회를 위해 희생하는 마음으로 섬길 때 주님이 보실 때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역자는 교회에 지원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정보를 공개한다. 그렇다면 교회도 그에 상응하게 필요한 사례비와 사역 내용 등의 정보를 제공해 서로 조율하는 과정이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깜깜이 지원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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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5
  • 【단상】한바탕의 난리부르스, 한장총 상임회장 경선
    날씨가 쌀쌀한데 11월 14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그레이스 홀은 후끈 달아올랐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이하 한장총) 상임회장 경선 때문이었다. 한장총은 한기총, 한교총, 한기연과 함께 교단연합기관이다. 그러나 큰 존재감이 있는 기관은 아니다. 그런데 상임회장 선거가 합동측의 권순웅 목사와 통합측의 김순미 장로의 경선이 되다보니 난리부르스가됐다. 합동측 총대가 20명인데 모두 참석했다. 먼 지방에서도 빠지지 않고 왔다. 이 선거에 자존심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관례에 따라 합동측 직전총회장인 권순웅 목사가 상임회장이 되야하는데 갑자기 통합측의 장로가 출마해 경선이 됐기 때문이다. 직전총회장 출신 합동측 목사와 증경장로부총회장 출신 통합측 장로의 대결이다. 이 배후는 지난번 한교총 회기에 권순웅 목사가 대표회장이 되지 못하도록 한 모 목사라고 알려졌다. 합동교단이나 권순웅 목사와 무슨 원수가 졌는지 사사건건 딴지를 거는 사람이다. 결국 합동측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권순웅 목사의 당선을 위해 오정호 총회장을 비롯한 증경총회장들과 모든 총대들이 출석해 한표를 행사했고 결국 100대 67로 이겼다. 교단 대표 기관의 장이 장로가 돼서는 안된다는 다른 교단 총대들의 의견도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이제 한바탕의 난리부르스가 끝났다. 잠시 복기를 한다면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합동측의 단결력이 돋보였다는 것이다. 교단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온 총대들이 한 마음이 되어 권 목사를 지지함으로써 그 세를 과시하고 당선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모두 교단을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됐다. 이날 참석한 합동측 총대들은 자신의 교단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보여주었기에 다행이고 감사한다. 또한 총회 총무를 비롯해 총회 직원까지 동원해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두 번째는, 통합 교단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일이 다른 교단도 아니고 합동교단에서 갈려나간 통합측에 의해 벌어졌기에 더욱 합동측 총대들은 분개했다. 이들은 앞에서는 악수의 손을 내밀지만 뒤에서는 음모를 꾸미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앞으로 통합측과 어떤 일을 할 때는 그들이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일을 진행해야한다. 지난번 한교총 대표회장 때는 멋모르고 당했지만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도 통합측은 기회만 되면 어떤 일이라도 꾸밀 수 있기에 이슬람을 대할 때 “사랑하되 경계하라”처럼 그들을 대해야한다. 두 번다시 통합측에 놀아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한장총 정기총회는 오전 11시에 시작하여 1시가 넘어 끝났다. 경선 선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된 것이다. 이때 합동측 목사 장로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단결된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 통합측 인사 대부분은 선거에서 지자 바람처럼 사라졌다. 본전도 못찾은 경선이었다. 차기 대표회장이 될 권순웅 목사의 상임회장 당선을 축하하며 합동교단의 위상과 한장총의 영향력을 높이는 연합회 활동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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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3-11-14
  • 교회세습과 유한양행
    책을 읽다가 유한양행의 설립자 유일한 박사에 대한 것을 보게 됐다. 어렸을 때 가정 상비약으로 가지고 있었던 안티프라민을 만든 제약사가 바로 유한양행이다. 유 박사가 널리 알려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회사를 전문경영인 체제로 하기 위해 자식들에게 기업을 물려주지 않은 것이다. 또한 그가 죽었을 때 요즘 가치로 7천억의 재산이 있었는데 이것을 모두 유한재단에 기증했다. 그에게는 1남 1녀의 자식들이 있었는데 아들의 딸 즉 손녀에게는 학자금으로 1만 달러를 주고, 딸에게는 유한공고 주변 땅 5천평을 맡길테니 동산으로 꾸며 달라고 유언하고 아들에게는 한푼도 유산으로 남기지 않았다. 요즘 합동측 어느 교회가 교회 세습으로 인해 쑥대밭이 됐다는 소식을 접한다. 교인들이 그렇게도 세습을 반대하는데 목사는 강행하기 위해 온갖 불법을 저지르며 자신의 목회 말년을 망치고 있는 것 같다. 유 박사는 본인이 은퇴하기 전 자신의 혈연, 친척들을 전원 회사에서 해고했다. 가족들 때문에 회사에 파벌이나 알력 다툼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이유였으며, 본인 선에서 정리해야 유한양행을 전문경영인이 이끌어 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하다못해 기업가도 이렇게 하는데 하나님의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가 왜 이런가? 혹시 아들 목사가 탁월하다면 교인들도 따랐을지 모르지만 기를 쓰고 반대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기업 오너가 자식들에게 경영 세습시키는 것도 문제삼는 이 세상에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줄려고 하는 목사들에게 유 박사의 반이라도 닮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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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3-11-13
  • 【단상】 살아있는 자의 소명
    뜬금없이 이른 아침에 “이안류”, “다낭 미케비치 이안류”등을 검색했다. 고 박상은 안양샘병원 원장의 죽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박 원장은 지난 11월 5일 주일 베트남 다낭 현지 바닷가에서 일행과 물놀이를 하다가 갑작스런 이안류에 의한 불의의 사고로 생명을 잃었다. 이안류(離岸流)는 한두 시간 정도의 짧은 기간에 매우 빠른 속도로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흐르는 좁은 표면 해류로 밀려오는 파도와 바람이 해안에 높은 파도를 이루고, 바다로 되돌아가는 물이 소용돌이치는 현상이다. 역조(逆潮), 거꾸로 파도, 립 커런트(영어: rip current 또는 rip)라고 하며 해안에서 바다 방향으로 흐르는 해류로, 역파도, 역물살이라고도 부른다. 폭이 좁고, 물살이 매우 빠르다. 대체적으로 완만한 경사, 넓은 면적을 가진 해변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모래톱이 해안 주변에 많이 만들어져 있으면 이러한 해류가 자주 발생한다. 이 해류는 파도의 특징과 연관이 있다. 파도는 수심이 깊으면 빠르고, 반대로 수심이 낮으면 느려지는 특성이 있다. 깊은 바다에서 빠르게 온 파도는 수심이 얕은 해안가 부근에서는 이 파도가 깨진다. 이 깨짐현상은 이안류 발생의 원인인 역류 현상을 불러 일으킨다. 대한민국 해운대해수욕장에서는 이안류로 인해서 2009년에는 106명, 2008년에는 150명의 구조가 발생했다. 미국인명구조협회는 이안류 때문에 해마다 100여명이 사망한다고 발표했다. 종종 뉴스에서 해수욕장에서 발생하는 이안류로 인한 사고 소식을 접했다. 그런데 이안류는 바다라면 언제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자연 현상이다. 나는 9월 말 아내와 베트남 다낭에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일정으로 숙소에 구비된 수영장과 그 앞쪽 미케비치 해변에서 놀았다. 이 해변은 백사장에서 대략 50미터 앞까지는 수심이 낮았다. 그래서 많은 외국인들이 그 지점에서 파도를 맞으면서 놀았다. 나는 수영을 못하기에 그들보다 뒤에서 파도를 맞으며 놀았다. 이후 수영장에서 잠시 놀다 혼자 다시 바닷가로 갔는데 그많던 외국인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2-3명만이 해변가에 있었다. 다시 바다에 들어가 파도를 맞으며 노는데 이상하게 무섭다는 느낌이 들어 곧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비록 내가 머문 숙소의 바닷가는 아니지만 박 원장은 그 미케비치 해변 어딘가에서 의료선교하러간 일행들과 잠시 물놀이를 하다가 갑자기 생긴 이안류에 희생이 된 것이다. 이안류에 휘말리면 급속하게 바다쪽으로 200-300미터 끌려가게 되고 이때 당황해서 해변가로 수영을 할려고해도 유속으로 인해 나아갈 수 없어 힘이 빠지고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고 한다. 나도 파도가 그리 높지 않고 수심이 얕은 그 해변에서 더 멀리 나갔더라면 같은 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수영을 할줄 모른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진다. 박 원장은 취재 현장에서 한번 본 사이지만 그의 죽음이 계속 떠오르는 것은 내가 갔던 베트남 다낭 미케비치 해변에서 한달 반 후에 사고를 당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 원장은 65세라 아직 할 일이 많지만 그래도 이미 많은 일을 이루었다. 반면 나는 아직 할 일이 많아 그때 같은 장소에서 그런 사고를 당하지 않고 살아 남았는지 모른다. 살아있는 자에게는 산자로서의 사명과 소명이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을 떠올리며 내게 주어진 사명의 길을 묵묵히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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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2
  • 신문 창간 2주년,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 세상에 “빛과소금뉴스”가 만들어진지 2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감사의 글을 적어 봅니다. 3년전까지는 평범한 목회자였습니다. 만39세에 증경총회장 한석지 목사가 원로로 계신 서울의 중심 용산에 있는 교회에 담임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리고 15년 만에 갈등이 생겨 다섯 번째로 나오게 됐습니다. 이후 어쩌다보니 교계 기자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교계 기자를 하는 학부 때 동기를 졸업 후 그 즈음에 다시 보게 되어 그 친구가 저를 이쪽 길로 인도했습니다. 이후 제 신문사를 만들어 2년간 많은 글을 써왔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지향하는 지는 제가 쓴 기사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과 지지를 통해 여기까지 왔음에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제게 주신 하나님의 새로운 소명을 따라 어둠을 밝히고 긍정적인 것을 드러내는 빛의 역할, 세상을 맛나게 하는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언론이 되고 싶습니다. 읽을 거리와 볼 거리가 있는 언론이 되고 싶습니다. 모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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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2
  • 한장총 상임회장 선거...합동측을 우롱하는 통합측 모인사의 두번째 음모
    이번 11월 14일에 있을 한국장로교총연합회(이하 한장총) 제41회 정기총회가 상임회장 선거 문제로 시끄럽다. 통상 목사가 하던 상임회장에 장로가 경선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상임회장은 차기 회장이 되는데 올해 후보로 주다산교회를 담임하는 권순웅 예장 합동측 증경총회장과 영락교회 장로로 예장 통합측 부총회장을 역임한 김순미 장로가 나서 경선중이다. 한장총은 1981년 2월 1일 설립됐으며 그 목적은 “개혁교회의 신앙과 전통을 계승하여 회원 교단간의 친교를 도모하고 공동 관심사를 협의하면서 한국장로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공동 사업을 추진하는 기구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설립 배경에 대해서는 “분열된 한국장로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위해 필요한 뿌리를 확인하는 작업을 통하여 장로교회는 한 형제요 자매라는 인식의 공통 기반을 갖게 되었다. 한국장로교회들은 비록 교단이 갈라져 있으나 서로의 차이점 보다는 공통점이 훨씬 많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으며, 그 뿌리가 하나라는 사실 확인과 의식이 결속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말한다. 이후 대표회장은 1992년 제10회 총회 때 통합측의 한영제 장로를 제외하고는 모두 목사가 맡았다. 그런데 이번에 31년만에 통합측이 또 다시 장로를 대표회장으로 세우고자 하는 일을 꾸미고 있다. 이것은 관례에 어긋나는 일이며 하필이면 통합측에 의해 또다시 이 일에 재현되고 있어 연합기관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씁쓸하게 하고 있다. 참고로 연합기관인 한교총, 한기총, 한교연 모두 대표는 목사이다. 그것도 소문에 의하면 지난번 한국교회총연합(이하 한교총) 대표회장을 합동측 권순웅 목사가 해야하는데 이영훈 목사가 하도록 주도한 인물이 이 일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 그 일에 대해 강하게 따지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까 이번에도 합동교단 증경총회장 권순웅 목사를 “가마니”로 알고 하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기는 지난번 한교총 대표회장 사태에는 합동측 인사들도 동조했다는 뒷말이 있으니 교단 연합회에서 합동측의 위상은 정말 “합똥”인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만약 통합측이 합동측을 함부로 대한다면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묻고 통합측과는 더 이상의 연합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중단 선언을 해야한다. “보자보자하니 보자기로 보고,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로 본다”는 말이 있다. 지난 108회 총회 선거에서 큰 표차로 낙선한 고영기 총무는 자신이 종로에서 연합활동을 잘 하고 있다고 해서 본 기자는 그렇지 않다는 식의 기사를 쓴적이 있고 이것이 대외업무를 담당하는 고 총무의 책임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결국 분담금은 많이 내면서도 자기 자리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것이 합동측 교단의 대외 업무 현실이다. 권순웅 목사와 맞서는 김순미 장로는 재벌가로 총대들에게 상당한 금품을 살포하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 이로인해 경선 결과를 애측하기가 쉽지 않다. 만약 이번에도 권순웅 목사와 합동측이 통합측에 의해 망신을 당한다면 묵과하지 말고 이 문제를 공론화해서 따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통합측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임을 묻고 연합회 활동 제재를 가해야 하며 그것이 안될시 합동측은 통합측과의 연합활동을 전면 재고하고 중단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늘 음모를 획책하는 통합측에 경고하며, 늘 어리석게 당하는 합동측의 자성을 촉구한다. 경선 투표를 예의주시할 것이며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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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3-11-11
  • 【단상】 짧은 인연, 긴 여운
    일주일만에 訃告를 들었다. 안양샘병원 박상은 원장이 지난 11월 5일 베트남 다낭에서 소천했다. 그 전 주일인 10월 29일, 박상은 원장의 큰형되는 박재천 목사의 저서 출간 감사예배를 취재가서 박 원장을 처음 뵈었다. 온화하고 유머있게 순서를 진행하는 것을 보고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후 일주일만에 소천 소식을 접한 것이다. 고인은 큰형님의 행사 후 샘병원 팀과 베트남 의료선교 일정 중 불의의 사고를 당했으며, 이후 응급의료팀이 CPR 등을 시도했지만 소생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에 의하면, 박상은 원장은 1958년 생으로,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고신대 의대 신장내과 교수, 미국 세인트루이스 의대 생명윤리센터 교환연구원, 미국 미주리주립대 신장내과 교환교수 등을 거쳐 2001년 안양샘병원에 부임했다. 진료부원장, 병원장, 대표원장 등을 거쳐 현재 미션원장에 이르기까지 병원 성장을 이끈 것과 더불어 외국인 근로자 등 소외 이웃을 위한 진료봉사 등 의료적 취약 계층을 돕는 일에도 힘써왔다. 이는 과거 고신대 복음병원 근무 당시 평생을 가난한 환자들을 보살폈던 고 성산 장기려 박사 밑에서 수련을 받으며 영향을 받은 데 따른 것으로, 그는 이후 장 박사의 뜻을 기리는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설립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아직 할 일이 많으신데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나처럼 우연히 한번 본 사이인데도 이렇게 만감이 교차한데 가족들과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요즘은 취재 가서 동영상을 찍어 기사에 덧붙이는데 이때도 다행히 행사 동영상을 찍어뒀다. 이것이 아마도 온 형제자매들이 함께 한 마지막 시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날 그 행사를 취재한 기자는 나밖에 없었다. 단톡 등에 광고를 했지만 초청된 나만 왔기 때문이다.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간 기자로서 기사를 작성하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는데 이것이 그 가족들에게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니 기자의 일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도 어떤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정리하는 기자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날 짧은 시간 만났지만 때이른 사별로 인해 긴 여운이 남을 것 같다. 인생의 덧없음과 이것을 극복케 하는 천국의 소망을 생각하며 순간의 만남과 인연을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라는 다짐을 해본다. 천국에서 평안하소서! 다음의 글은 박상은 원장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샘병원 원목 김성은 목사가 자신의 페북에 올린 애도의 글들이다. 박상은 미션원장님의 갑작스런 죽음을 애도하며...① 어제 오후 2시30분 베트남 다낭에서 온 급한 전갈. 박상은 미션원장의 부고. 이 무슨 일인가?!! 병원 공식 단기 선교사역팀. 주일 예배 후 오후 예배까지 3시간 정도 시간이 있어서 현지 선교사들과 우리 팀 전체가 바다에 갔다가 원장님만 너울성 파도에 휩쓸린 것으로 연락 받음(바다가 얕고 물결이 잔잔했는데, 원장님만 급하게 깊은데로 빨려들어갔다고, 손쓸 경황이 없었다고...). 2005년 선교사 시절. 환자와 의사로 첫 만남. 그후 건강이 더 안 좋아져서 사역의 변경이 필요 할 때 내가 샘병원에서 치료 받으며 사역할 수 있도록 결정적 역할. 그렇게 만난 시간이 어언 19년. 이번 다낭 단기팀에 나도 함께 하기를 원장님이 원하셨으나 나는 사정상 함께 하지 못하고 단기팀 출발할 때에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하며 나눈 악수. 그 악수가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긴급한 샘병원 대책회의를 통해 그 동안 누구보다 선교에 헌신적이셨고 병원의 결의에 따른 공식적 단기 선교사역 중 사고를 당하셨으니 '순교'로, '순교자'로....오늘부터 한 주간 동안 샘병원은 특별 애도의 주간으로. 사모님과 둘째 딸 형제 대표 목사님과 행정부원장님이 06시10분 비행기로 다낭으로 출발. 오늘 12시 30분. 샘누리홀에서 "샘병원공동체, 순교자 박상은미션원장 애도 모임(예배)"을 갖고 다낭 현지와 연락하며, 관계 기관 및 단체와 소통하며 장례식을 진행하기로 함. 어제 2시 30분 비보를 들었을 때 슬픈 마음으로 기도할 때에 이사야 61장 1-6절 말씀을 묵상함. 삼가 조의를 표하며 주님의 위로와 평강을 소망합니다. 박상은 미션원장의 죽음을 애도하며 ② 어제 오후 5시경 베트남 현지에서 입관 및 천국환송(발인) 예배를 드리고 곧바로 화장 시작.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마지막에 주어진 황금색 작은 관 하나. 슬픔에 잠긴 사모님과 둘째 딸 그리고 소수의 조문객. 그렇게 많은 관계 속에서 열정적으로 일하신 생전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참 초라한 모습이지만 그러나 최선을 다해 사신 그 열매는 앞으로 한국과 아프리카와 세계에서 일어나리라 믿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3-25절의 한 알의 밀알에 관한 말씀처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ㅃ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오늘 인민위원회의 사망확인서가 발급되면 유해를 한국으로 ....그 이후 한국에서의 장례식이 진행됩니다. 예상대로 수요일에 도착하면, 곧바로 8일(수)~10일(금)에 안양샘병원 장례식장에서 샘병원장으로 장례 예식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박상은 미션원장을 애도하며 ③ 확정된 장례 일정 지금은 04시 40분. 베트남에서 유해로 돌아오는 원장님과 가족들을 영접하기 위해 병원장님과 G샘병원의 최목사님과 공항으로 가는 길.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현실 속에 무거운 마음이지만 원장님이 생전에 늘 외치시던 "전생의 비전"-전인치유, 생명사랑, 의료선교- 을 마음에 새겨 본다. 우리가 다 이해 할 수 없는 사건과 아픔과 슬픔을 통해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창조주를 바라보며...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박상은 장로께서 소천 하셨기에 아래와 같이 부고를 전해 드립니다.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고 박상은미션원장 애도 ④ 어제 새벽 유해가 한국에 도착하여 어제 오후 3시부터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어제 저녁 출석하시는 교회 주관으로 임종 후 첫 공식 예배가 드려졌고 오늘 12시30분에 샘병원 직원들이 참석하는 문상예배가 드려진다. 내일 점심 같은 시간에 고인의 형제들로 구성된 '영파선교회'가 주관하는 예배 그리고 토요일 아침 6시30분 발인예배까지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사람이, 산 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유가족과 함께 있어 주고 함께 울어 주고 때로는 조용히 기다려 주고 다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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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09
  • 【칼럼】 소환불응 주홍동 장로....숨는 자가 범인이다(?)
    주홍동 장로가 지난 11월 6일 있었던 총회 임원회의 소환에 불응했다. 범죄 수사관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숨는 자가 범인이다” 그러면 1000만원 게이트의 범인은 주홍동 장로인가? 이날 관계자인 이이복 장로와 이종철 목사는 참석해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했다. 결국 임원회는 2차로 주홍동 장로를 다시 출석시켜 조사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때 국가 사법에 의뢰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으로 전해졌다. 1000만원 게이트를 심층 취재한 기독교종합신문 기사에 의하면, 주홍동 장로는 그 돈이 이이복 장로의 돈이라고 했다. 주홍동 장로가 전달한 현금 천만원은 주 장로의 사위가 시무하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 있는 'OOO교회(담임 김OO 목사)의 봉투 2개에 나눠서 담겼다고 전해진다. 기자는 이종철 목사를 통해 주 장로가 천만원을 전달하기 위해 늦은 밤 이종철 목사에게 전화했던 녹음을 들었다. 그 녹음에 의하면, 이 돈의 주인이 '이이복 장로'라고 주홍동 장로가 육성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반환하는 확인서의 내용 가운데 『일천만원은 이이복 장로의 돈이며, 이이복 장로에게 반환한다』라고 명확하게 기록되었고, 주 장로가 서명했다. 이 확인서의 서명에 관하여 제108회 총회가 있었던 지난 9월 19일 새로남 교회 그레이스 홀 입구에서 기자가 주 장로에게 "서명을 했다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라고 물었다. 주 장로는 "이종철 목사가 확인서를 작성하라고 요구했지만, 나는 작성하지 않았고, 이 목사가 하고 싶은대로 작성했으며 나는 그냥 서명만 했다. 그래서 그 확인서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이에 기자가 "확인서에 서명하면 그 내용을 동의한 것이 되지 않느냐?"라고 재차 물었지만, "내가 쓴 것이 아니다"는 등의 말로 흐지부지하며 자리를 옮겼다. 위 기사를 보면 주홍동 장로가 확인서에 서명한 내용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데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서명을 하기 전 내용을 읽어 보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동의하니까 서명하지 않았겠는가? 도대체 주홍동 장로의 말을 신뢰할 수 없는 지경의 행태이다. 오정호 총회장은 108회 총회를 시작하면서 과거 일로 발목 잡히고, 시간과 재정을 소진하고 싶지 않아 선관위원들이 사과로 이 일을 덮기를 원했다. 그러다 결국 이 문제를 다루기로 했기에 결코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칼을 빼든 이상 끝장을 볼 것이라는 것이 모두의 기대이다. 진작에 사실을 밝히고 용서를 구했다면 쉽게 넘어갈 일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지경으로 커져버렸다. 주홍동 장로가 진실에 대한 고백을 미룰수록 본인의 책임이 더 커진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총회를 기망한 죄는 결국 사법처리나 영구총대 제명도 불러올 수 있다. 이 사건은 시간이 藥이 아니라 毒이라는 것을 빨리 깨닫고 총회 임원회와 모든 총대, 합동 교단을 농락하지 말고 진실을 밝힐 것을 촉구한다. 사도행전의 아나니아와 삽비라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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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09
  • 【여자목사논쟁4】 사모없는 교회, 사모의 일탈인가? 반란인가?
    합동교단내 교회 목사 사모들이 목사 안수를 받고 있다. 군소교단이나 독립교단을 통해 안수를 받는다. 과거 은퇴를 앞둔 합동측 목사들이 사모를 권사로 임명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내가 시무했던 동암교회가 그랬고, 고 최훈 목사가 시무했던 동도교회에서도 그랬다. 그래서 동암교회 같은 경우 사모가 권사회 회장도 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단계를 넘어서서 사모들이 목사 안수까지 받고 있다. 결국 사모없는 교회가 되고 마는 것이다. 사모는 누구인가? 목사의 아내로서 교인들에게는 어머니같고, 언니, 누나같은 역할을 해준다. 남성 목사가 하지 못하는 목회 사역의 한 부분을 사모가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전방에서 목회하는 남편 목사를 지원하고 후원하는 후방 사역을 사모들이 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남편과 함께 전방 사역을 하겠다는 것인가? 물론 순복음교회 고 조용기 목사 사모도 목사였고, 침례교의 대중적인 목사 장경동 목사 사모도 목사이다. 이처럼 타교단이야 그렇다쳐도 아직 여성목사안수를 금하고 있는 합동교단내에서도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과거 장로 제도가 없는 교단이 있었다. 그런데 연합사업을 하다보니 자기는 집사나 남자 권사인데 타교단은 장로가 있어 자기가 열등해 보여 교단과 교회를 옮긴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교파 구분없이 대부분 장로 제도가 있다. 아무래도 집사나 권사보다는 계급이 높아 보여서인가 보다. 사모들도 그런가 궁금하다. 왜 사모로 만족하지 못하고 교단법을 어겨가며, 드러나면 남편 목사에게 해가 될지도 모를 목사 안수를 받는가? 물론 이것을 허용해 주는 합동측 목사 남편도 문제긴 문제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교회의 목사 사모가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노회가 문제 삼지 않고 쉬쉬하는 것 같다. 그럴려면 교단을 옮기지 왜 합동교단에 있는지 묻고 싶다. 108회 총회는 여성목사안수는 안된다고 분명히 선을 그엇다. 그러나 선 넘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하려는가? 사모들이여 자중하시라. 합동측 교단에서 사모가 목사가 되는 것은 일탈이요, 반란이며 또한 치리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합동교단은 각자도생교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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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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