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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 글을 잘 쓰는 구체적인 방법
    글쓰는 것은 나의 오래된 관심사항이다. 기회 되는대로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는다. 이 책도 그러한 관심에서 봤다. 유익하다. 특별히 이문재 교수는 글쓰기에 대해 매우 잘 설명하고 있어 전문을 게재한다. 잘 읽어보면 많은 유익을 얻을 것이다. 이문재 (시인,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정확해야 아름다울 수 있다 왜 저널리즘적 글쓰기인가? 글쓰기의 장르는 매우 다양합니다. 사적인 글쓰기/공적인 글쓰기, 사적인 글쓰기: 일기, (자서전) 편지, 이메일, 공적인 글쓰기: 시와 소설, 희곡, 에세이, 기행문 등 문학적 글쓰기, 기사, 칼럼 등 저널리즘적 글쓰기, 광고 문안, 연설문, 안내문, 보고서, 기획서, 청원서 등등. 글쓰기는 더 이상 문인, 저널리스트 등 몇몇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미디어 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것과 아울러, '문자시대는 가고 영상 시대가 도래했다고들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봅시다. 영상 이미지 역시 최종적으로는 문자 언어로 번역되어야 이해와 소통이 가능합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와 같은 뉴 미디어 역시 문자 언어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언어를 버리지 않는 한 인간이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문자 문화는 영원할 것입니다. 언어는 대중의 합의에 의해 정착되고, 또 동시에 대중에 의해 변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어에 일정한 규범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언어가 대중(언중)에 의해 생성소멸하고 유통되고 기록(저장)되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말하기와 쓰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문자 시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문자는 영상 혹은 구술 문화에 의해 위축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문자 시대를 능동적으로, 그리고 당당하게 영위하는 교양인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교양인이라면, 적어도 대학교를 졸업한 교양인이라면 전공을 불문하고 정확한 글쓰기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의 개별적 삶은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행위의 연속입니다. 이 중에서 쓰는 행위가 가장 논리적이고 또 정확해야 합니다. 글쓰기의 일차적 목표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한 것을 그대로 쓰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무의식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생각 자체가 정돈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정돈하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은, 설계도도 없이 집을 짓는 경우와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이 잘 정돈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정확히 표현(건축으로 치면 시공 능력)할 수 없다면 글쓰기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갖고 있는 몇 가지 미덕 우리가 저널리즘적 글쓰기(기사 쓰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정확한 사실에 바탕해, 정확하게 표현하는 글쓰기의 모범이기 때문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자기 주장이 강하게 드러나는 칼럼(사설)이든, 쓰는 이의 관점이 가능한 한 배제되는(이른바 '객관적'이라는 스트레이트 기사에 이르기까지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무엇보다도 정확성이 강조됩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가장 적합한 글쓰기 방법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에서 아름다움은 미덕이 아닙니다. 미사여구는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데 있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수사는 사실(fact)을 표현하는 데 있어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를 주목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다른 글쓰기와 달리 취재와 구성이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설이나 드라마 시나리오를 쓸 때에도 취재 과정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널리즘에서처럼 구체적인 현장(인물)과 정확한 사실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저널리즘에서 활용하는 다양한 취재기법은 우리가 다른 장르의 글쓰기를 할 때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습니다. 기획서나 평가 보고서를 작성할 때에도,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꾸밀 때에도 저널리즘의 취재기법을 동원하면 글이 훨씬 입체적이고 풍성해집니다. 셋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사건이나 사고, 사태나 현상 등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고 심층적인 보도 못지않게, 남과 다른 시각에서 분석하려는 태도 역시 저널리즘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넷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독자 대중의 알 권리를 기본으로 하지만, 인물이나 사건 사고, 사태 등에 대한 독자의 기본적 궁금증을 풀어주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여론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사회 변화와 그 변화의 방향성을 파악하는 데 시야를 넓히고 시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다섯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표현뿐 아니라 전달에 큰 비중을 둡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새로운 지식과 정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독자(수용자)에게 전달되고 소통(커뮤니케이션)되지 않는다면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존재 이유가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의 일상적 삶은 우리가 저널리스트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정보를 송신하고 수신하는 환경 속에서 진행됩니다. 송신자이면서 수신자인 우리가 소통 능력을 키우지 못한다면, 그 삶은 심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소통 능력이 있는 시민들로 구성된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마지막으로,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우리는 저마다 '1인 미디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블로그에 이어, 사용자 제작 컨텐츠(UCC, User-created content)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듯이, 우리는 저마다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의견과 주장이 분명하다면, 그 사람은 어디에 있든, 그 의견과 주장을 어떤 미디어를 통해 전달하든 이미 저널리스트인것입니다. 지식정보사회를 살아가면서 단순한 지식 정보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지식과 정보를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동시에 지식과 정보, 의견을 개성적으로 생산하고 소통하기 위해 우리는 저널리즘적 글쓰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를 체득하면, 보고서뿐 아니라 한 권의 책을 집필할 때에도 시간과 노력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한 편의 기사와 한 권의 논픽션의 구조와 글쓰기 방법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기사, 노력한 만큼 잘 쓸 수 있다. 1. 저널리즘적 글쓰기의 유형: 스트레이트 기사, 인터뷰 기사, 스케치 • 분석 및 해설 기사(feature story), 르포르타쥬, 칼럼, 논설 등 2. 기사를 잘 쓰기 위한 몇 가지 방법: 1) 주제를 분명하게 설정합니다. 주제를 한 문장으로 만들 수 있다면, 절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가령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고 하면 각 분야에서한국을 이끄는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하는 기획일 것입니다. 기사의 주제는 분명한 계기가 있어야 하며, 독자에게 유익한 정보가 되어야 합니다. 정보성이 부족하다면 흥미를 끌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2) 주제를 뒷받침할 자료와 전문가, 현장(사례), 관련 기사를 찾습니다. 주제가 정해졌다면 가장 먼저 관련 기사를 검색해야 합니다. 한창 취재하다가 비슷한 기사가 몇 년 전에 나온 사실을 알고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관련 기사를 검토하다 보면, 주제를 바꾸거나, 취재 영역에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3)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역피라미드형: 전문(요약)중요한 사실-흥미 있는 이야기 순으로 구성합니다. 1900년대 초 미국의 AP통신이 개발한 기사 구조로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흔히 사용합니다. ◎피라미드형: 도입-중요한 사실-서스펜스 형성-클라이맥스 순입니다. 피라미드형은 피처 기사에서 자주씁니다. 독자의 관심을 계속 끌고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문학적이고 연대기적인 서술 방식입니다. ◎혼합형: 클라이맥스(요약)-서론-본론 결론 순. 4) 1), 2), 3)이 충분하게 준비되었다면, 기사 작성에 들어갑니다. • 간결하게 써야 합니다. 국내 신문은 일반적으로 5행 이상(65~75자)을 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단문을 쓰라는 것입니다. • 가능하면 구어체를 씁니다. 이야기하듯이 쓰라는 것입니다. ·주어와 술어를 분명히 합니다. • 매력적인 언어를 찾습니다. ・쉽게 씁니다. 좋은 기사의 첫째 조건은 쉬운 문장입니다. 이상은 언론학 입문서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권장하는 지침입니다. 필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기사를 잘 쓰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를 유념 해야합니다. 먼저, 앞에서 말한 대로 기사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십시오. 이것이 나중에 기사 제목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획과 취재의 매 단계에서 판단 기준이 됩니다. '민물낚시, 환경오염 주범'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한다면, 바다낚시의 오염 문제에 관한 자료는 읽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기획과 취재 단계에서 기사의 첫 문장, 즉 리드를 구상하십시오. 첫 문장이 결정되지 않으면 기사를 쓰기 어렵습니다. 취재를 충분하게 해놓고서도 첫 문장, 즉 도입부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기자들이 제법 많습니다. 어디 기사뿐인가요. 모든 종류의 글쓰기가 첫 문장 에서 좌우됩니다. 오죽하면, 작가들이 "첫 문장은 신의 선물이다" 라고 말하겠습니까. 필자는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기획이 정해지면 그때부터 제목과 첫 문장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시를 쓸 때에도, 산문이나 논문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복잡한 사안을 취재할 경우, 취재한 내용을 주위 동료나 가까운 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흥미로운 인물을 인터뷰했을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취재한 내용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상대방의 반응을 체크할 수 있습니다. 가령 상대방으로부터 더 취재해야 할 부분, 더 강조해야 할 부분 등 의외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넷째, 관련 서적을 찾으십시오. 인터넷 검색은 참고자료일 뿐입니다. 가장 새롭고 신뢰할 만한 정보와 자료는 책에 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필자는 특집 기사를 쓸 경우, 기사 검색을 한 다음 대형 서적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관련 서적 한두 권만 읽으면, 그 분야의 권위자가 누구인지, 그 분야와 관련된 최신 이론은 무엇인지 장악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취재해서 기사를 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떤 책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다섯째, 소설을 많이 읽고 영화, TV 드라마를 자주 보십시오. 소설은 어휘력을 풍부하게 해줄 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시각을 갖게 해줍니다. 문학 분야가 아니더라도 베스트셀러 책은 따라 읽어야 합니다. 관객이 많이 드는 영화와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베스트셀러 책과 영화, 드라마에서 한 줄 인용하면서, 혹은 등장인물을 끌고 들어가면서 기사를 시작하면 독자들의 눈길을 더 많이, 또 오래 붙잡을 수 있습니다. 기사의 궁극 목표는 좀 더 많은 독자들이 읽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늘 기사만 생각하십시오. 기자는 늘 기사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심지어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에도 기사를 생각해야 합니다. 카페 옆자리에서 얻어들은 한 마디가 대형 기사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찬반양론이 팽팽한 기사일 경우, 가족이나 친구들의 의견을 청취해보면, 취재나 기사 작성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사는 혼자 쓰는 것이 아닙니다. 기사가 아니라 다른 장르의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고 읽고 느끼고 생각한 만큼 글은 달라집니다. 개성적 글쓰기를 위한 기초체력 다지기 정확한 문장이 관건입니다. 정확하지 않은 문장은 특히 저널리즘에서 문장이 아닙니다.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에서도 정확성이 우선입니다. 아름다운 문장은 그 다음입니다.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하는 작가는 아름다운 문장, 개성적인 글을 쓰기 어렵습니다. 정확하고 개성적인 쓰기를 위해서는 '기초체력'이 필요합니다. 글쓰기를 위한 기초체력을 다지는 필자의 체험적 방법론을 소개합니다. 1. '나쁜 버릇'부터 찾는다 어떤 글이든 좋습니다. 자기가 쓴 글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자주 나타나는 단어나 표현이 발견됩니다. 사람마다 특유의 말투(말버릇)나 몸짓이 있듯이 글에도 특유의 '버릇'이 나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것이다'라는 종결어미를 자주 씁니다. '~것이다'는 가능하면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글 버릇을 찾아내는 눈을 가지고 있다면 가능성이있습니다. 다음으로, 수식어가 많은 문장, 접속사가 많은 문장, 나열이 많은 문장이 나쁜 문장입니다. 자기 글에서 나쁜 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글을 잘 쓰는 사람입니다. 자기 글에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는 수준까지 빨리 올라가야 합니다. 자기 글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문제점만 제거해도 글쓰기는 순식간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됩니다. 자기 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른다면, 정말 큰 문제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자기 글을 들여다보십시오. 자기가 쓴 글들을 '원수가 보내온 편지'라고 생각하고 여러 차례 읽어보십시오. 버릇이 발견될 때까지 읽으십시오. 2.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찾아라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기자나 작가의 글을 집중적으로 읽으십시오. 글쓰기의 모델을 하나 설정하는 것입니다.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은 반드시 좋아하는 가수가 있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가 지망생은 필사하고 싶은 선배 소설가가 한둘은 꼭 있습니다. 좋은 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그대로 베껴 쓰십시오(필사). 외우면 더 좋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적극 모방해보십시오. 그 과정에서 글쓰기 수준이 몰라보게 향상됩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국내 소설가 대부분이 선배 작가의 소설을 필사하면서 습작기를 거쳤습니다. 추천하고 싶은 필자 '모델'은 문인 이외에, 혹은 문인이면서 매체에 자주 기고하는 분들입니다. 제가 추천하고 싶은 분들은 도정일(문학평론가),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 고종석(소설가 겸 언론인), 김훈(소설가 겸 언론인). 배병삼(정치학 및 동양학), 한형조(동양철학), 송호근(사회학), 고미숙(문학평론가),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등입니다. 이외에도 좋은 필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3. 새롭지 않으면 쓰지 말라 저널리즘의 생명은 새로움입니다. 새롭지 않으면 뉴스가 아닙니다. 저널리즘이 아니라도 그렇습니다. 모든 글쓰기는 새로워야 합니다. 사실이나 의견에서 새로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표현이라도 새로워야 합니다. 새롭지 않다면 신기하거나(의외성) 흥미로워야 합니다. 새로움, 의외성, 흥미, 이 세가지 중 한 가지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글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4. 자세히 관찰하라 관찰은 모든 글쓰기의 스타트 라인입니다. 사물이든 사건이든 인물이든자 세히 관찰하지 않고서는 정확한 글쓰기가 불가능합니다. 관찰이 부정확하면 사실관계가 흔들립니다. 정확히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오감 가운데, 시각이 특히 부정확합니다. 주변 환경에 따라 착시 현상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상기해보십시오. 관찰은 단지 시각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많이, 그리고 정확히 느끼는 것도 관찰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책읽기, 영화 감상, 미술 감상 등도 관찰입니다. 관찰은 대상에 대한 집중입니다.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선입견을 버리고, 현상학적으로 말하자면 판단을 중지하고) 대상에 몰입했다가, 다시 대상으로 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상상력은 이 관찰 단계에서 나옵니다. 관찰 훈련의 첫 단계는 자기가 본 것으로 소리 내어 말해보는 것입니다. 관찰 대상이 인물이라면, 머리 모양과 색깔, 길이에서부터 이목구비를 거쳐 구두까지 관찰하면서 하나하나 말해보십시오. 컴퓨터나 텔레비전, 화분, 식탁, 자동차 실내 등 늘 마주치는 대상을 하나 정해서 소리 내어 하나하나 관찰해보십시오. 그동안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것이 발견입니다. 낯익은 것에서 낯선 것을 찾을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최고의 글쓰기 재료입니다. 5. 메모하고, 메모하고 또 메모하라 기억력이 남다르다고 해도, 메모를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뛰어난 작가는 물론이고 예술가, 심지어 기업의 CEO들도 메모를 자주 합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메모광입니다. 인간이 하루에 접하는 새로운 정보(자극)는 수십만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 하루를 돌이켜보십시오. '오늘 내가 새로 느낀 것, 새로 발견한 것'을 떠올려보십시오. 거의 없을 것입니다. 주머니 혹은 핸드백에 작은 수첩과 필기구를 반드시 챙기십시오. 수첩과 필기구를 챙기는 습관이 들었다면, 글쓰기를 위한 가장 필수적인 요건을 갖춘 것입니다. 저는 화장실에도 연필과 포스트잇을 갖다 놓습니다. 주머니에 메모지와 볼펜이 없으면 산책도 하지 못할 만큼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천 번 새로운 생각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글쓰기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좋은 글은 메모지에서 나옵니다. 메모지가 '상상력 발전소'입니다. 개성적인 글쓰기를 위한 세부 지침 1. 나로부터 시작하라 저널리즘적 글쓰기, 특히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나'는 차가운 전달자입니다. 스트레이트 기사에는 글쓰는 사람의 주관이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활자매체의 기사는 연성화하고 있습니다. 피처 기사, 칼럼 등은 대단히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문체를 구사합니다. 기사작성 연습을 하고 싶다면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서전을 써 보거나, 자기가 자기를 인터뷰하는 것입니다. 가족이나 친구를 소개하는 글도 좋은 훈련이 됩니다. 자기가 사는 마을(아파트)을 취재해 사진과 곁들여 기사를 써보는 것도 훌륭한 저널리즘적 글쓰기입니다. 시나 소설을 쓰기 원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쓰십시오. 문학적 글쓰기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 가운데 하나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서 출발하십시오. 나에 대해, 나의 가족과 친구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잘 알고 있는 소재를 글로 쓸 때,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나'에 대한 글쓰기는 자기 삶을 성찰하는 진지한 계기를 제공합니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이 같은 인문학적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은 글쓰기 말고 거의 없습니다. 2. 반복하지 말라 반복은 강조할 때 말고는 피해야 합니다. 반복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표현의 반복과 내용의 반복이 그것입니다. 같은 단어, 같은 표현을 반복하지 마십시오.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유의어를 쓰십시오. '그녀는 아름다운 숄을 두르고, 아름다운 가방을 들었으며, 아름다운 마을에 산다. 이 문장에서 '아름다운'은 반복될 뿐만 아니라, 정확하지도 않습니다. 글쓰기의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내용의 반복입니다. 중언부언하지 마십시오. 같은 내용(견해, 정보, 지식......)이 반복되면 독자는 냉정하게, 즉각 눈을 돌립니다. 친구와 이야기할 때를 떠올려보십시오. 어제 한 얘기를 오늘 하면 친구는 즉각 이렇게 나옵니다. "그거, 어제 들은 얘기야."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3. 한 문장에는 하나의 정보만 담아라 이것은 문장을 짧게 쓰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한 문장에는 하나의 정보, 한문단에도 하나의 정보군을 담는 것입니다. 한 문장에 두 개 이상의 정보를 담는 순간, 문장은 길어집니다. 한 문단에 두 개 이상의 정보군을 담으면, 복잡해지기 때문에 독자가 이해하기 힘들어집니다.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 또는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한 문장, 하나의 정보' 원칙에 따라 글로 써보십시오. 처음에는 대단히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몇 번 고쳐 쓰다보면, 문장을 짧게 쓰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할수 있을 것입니다. 4. 접속사를 쓰지 말라 통학 또는 통근 과정을 '한 문장, 하나의 정보' 원칙에 따라 쓰다 보면, 수시로 접속사가 끼어들 것입니다. 접속사 없이 쓰려고 애써보십시오. 최근에 읽은 소설 가운데 접속사가 거의 ('전혀' 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없는 소설이 있습니다.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인데, 접속사에 유의하며 읽어보십시오. 매우 흥미로운 글읽기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접속사는 글 쓰는 이의 마음속에 있어야 합니다. 특히 연결형, 나열형 접속사를 피하십시오. 5. 나누고 묶어주어라 기사를 쓸 경우, 다양한 정보를 한꺼번에 제공해야 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럴 때는 유사한 것끼리 묶어줘야 독자가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음식 종류를 소개한다면, 국적별 혹은 재료별, 계절별 등으로 나누어 묶어줍니다. 6. 병치할 때 조심하라 같은 기능을 가진 단어, 구, 절 등이 나란히 놓일 때 자주 오류가 나타납니다. '사과와 큰 배' '철수는 중학생이고 영희는 공부를 잘한다'와 같은 문장이 의외로 많습니다. '사과'라는 단어와 '큰 배'라는 구는 병치하면 안 됩니다. 단어는 단어끼리, 구는 구끼리 병치하십시오. '사과와 배' '작은 사과와 큰 배'가 적확한 표현입니다. 앞의 문장은 '철수는 중학생이고, 영희는 초등학생이다로 써야 합니다. '중학생' (단어)과 '공부를 잘한다' (구)가 나란히 놓이면 대단히 어색합니다. '30-3-30 법칙'을 명심한다 언론인들은 30-3-30 법칙'을 자주 언급합니다. 여기서 30. 3. 30은 각각 30초, 3분, 30분을 일컫습니다. 독자들이 기사를 읽을 때, 처음 30초 동안은 제목이나 부제, 사진, 그래픽 요소, 기사의 도입부 등을 살펴본다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처음 30초 안에 기사를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만일 읽기로 마음먹었다면 다음 3분 동안 기사의 도입부를 읽습니다. 그리고 도입부가 흥미롭다면 30분 동안 기사를 끝까지 읽는다는 것입니다. 기자와 편집자는 처음 30초를 3분으로 늘리고, 다시 3분을 30분으로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기사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든 글이 제목과 도입부에서 결정납니다. 시처럼 짧은 글에서도 제목이나 첫 연이 진부하면 독자들은 눈을 돌려버립니다. 소설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보고서나 논문도 마찬가지입니다. '30-3-30 법칙'은 첫 문장에 목숨을 걸라는 저널리즘적 글쓰기의 핵심을 압축하고 있는 법칙입니다. 이문재. 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경희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시사저널 취재부장, 문학동네 편집주간을 역임했고, 현재 <시사IN> 편집위원, <문학동네〉 편집위원,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 등이 있다(pp.197-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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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 “흥청망청” 108회 선관위... 명분없는 돈 낭비
    본 기사는 교회발전연구소 대표 이능규 목사에게 모 인사가 108회 선관위(위원장 권순웅 목사)에 대해 제보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기사임을 밝힌다. 제보 내용에 따르면 선관위가 불필요한 돈을 낭비하고 있다. 제108회기 선관위는 공정선거감시단 해외 활동에 이미 많은 경비를 집행했다. ▲전국장로회연합회 임역원수련회(일본) : 고정식, 손정호, 김삼주, 신덕수, 한기영(750만원 집행) ▲농어촌교역자부부수양회(다낭) : 권순웅, 신덕수, 지동빈, 임종환, 최병도(613만원 집행) ▲전국교역자하기수양회(필리핀) : 전웅구, 김상원, 유병희, 한기영, 이상돈(599만5천원 예산). 이때 위원장 권순웅 목사와 서기 한기영 목사가 강사를 맡았다고 한다. 현재 바뀐 선거규정에 따라 후보자는 행사에 참석할 수 없다. 그런데 선관위 공정선거감시단은 누구를 감시하기 위해 해외 행사에 동행하는 것인가? 제보자는 “돈**”이라는 격한 표현을 사용했다. 또한 선관위는 민찬기 목사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비로 5천 5백만원을 지출했다. 선관위원들이 1차 투표해 7대7로 나왔다면 의견이 팽팽하다는 것인데 굳이 다시 투표해 7대8로 만든 것이 화근이다. 증경총회장단이나 실행위원회에 넘겨 자문을 구했다면 굳이 총회 돈을 지출할 소송에 휘말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감사부는 107회기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배광식 목사)에 대해 특별재정감사를 하고 있다. 어제는 서기와 회계를, 오늘은 위원장과 심의분과장을 부른다. 안건은 선관위가 재정을 과잉지출했다는 것이다. 모 선관위원은 자기들은 비용을 아껴서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기에 특별재정감사를 받는 것이다. 앞으로 108회기 선관위도 감사부에 의해 특별재정감사를 받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이 악순환을 끊어야한다. 선관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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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 【북토크】 가수 장기하의 깨달음
    가수 장기하를 좋아한다. 노래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의 대중적인 첫 노래 “싸구려 커피”, “달이 떠오른다, 가자” 등은 신선했다. 읽을 책들을 검색하다 보니 그가 몇 년 전에 쓴 것이 있어 대출해서 봤다.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첫 장인 ‘안경과 왼손’은 주어진 환경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돌아본 후 감사하는 내용이다. 읽어볼만해 전문을 소개한다. 안경과 왼손 얼마 전 안경을 잃어버렸다. 매우 아끼는 안경이었다. 아니, 아낀다는 표현으로도 모자란다. 이삼 년 전 그 안경을 산 이후로는 오직 그것만 써왔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있을 만한 곳을 전부 다 여러 번씩 싹싹 뒤져봤지만 찾지 못했다. 결국 예전에 썼던 다른 안경을 쓰고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 이삼 일 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마음을 털어버렸다. 그래, 그 안경이랑은 여기 까지였나보지 뭐. 나는 국소성 이긴장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다. 해괴해 보이는 이름이지만 의미는 간단하다. '국소성'이란 특정 부위에 나타남을, '이'는 이상함을, '긴장'은 말 그대로 긴장을 뜻한다. 한마디로 특정 부위가 이상하게 긴장된다는 얘기다. 이 병명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는 '이'다. '이'자가 들어간 병을 선고받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런 상황이다. 몸이 안 좋다. 병원을 찾아가 묻는다. "선생님, 저 왜 아픈건가요?" 의사가 답한다. "그러게요. 이상하네요." 그렇다. 내 병은 원인도 치료법도 알려지지 않은 희귀병이다. 이 병이 처음 생긴 것은 대략 십오년 전쯤으로, 군악대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눈뜨고코베인'이라는 록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었다.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드럼 하나로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연주를 잘하는 사람, 즉 프로 드러머가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외의 진로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학교 공부는 최소한으로 하고 드럼 연습과 밴드 활동 위주로 생활했다. 그러다보니 군복무를 시작도 하지 않은 채 대학 오 년 차를 맞았고, 더이상은 입대를 미룰 수 없게 되었다. 내 선택은 당연히 군악대였다. 군대에 있는 동안 손발이 녹슬면 큰일 아닌가. 일반 부대는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군악대는 록 연주만 잘한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클래식 타악, 특히 행진곡풍의 연주에 능통해야 했다. 자신은 있었다. 이미 연습이라면 많이 해온 터였기 때문이다. 좀 다른 장르의 연주라고 해서 못 해낼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시험을 대비해 맹연습에 돌입했다. 이삼 개월쯤 지났을 때 복병이 나타났다. 연습만 하려고 하면 내 의지와 관계없이 왼손이 꽉 쥐이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드럼 연주의 기본은 그립이다. 누가 툭 치면 놓쳐버릴 듯 살며시 스틱을 잡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만들어야 빠르고 정확한 연주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꾸 나도 모르게 스틱을 힘껏 잡게 되고 그것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연습하다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스틱을 집어던진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결국 군악대는 포기했다. 치료법도 알 수 없고 상태가 호전될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프로 드러머의 꿈도 함께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리 절망스러운 단념은 아니었다. 내 생각의 흐름은 이랬다. '하긴 군악대의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연주하는 게, 내가 멋있는 음악을 하는 데는 오히려 해가 될지도 몰라. 멋있는 음악이라... 그래, 생각해보면 프로 드러머가 되는 것 자체가 멋있는 음악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겠네. 연주로 먹고살려면 돈 되는 음악을 해야 하는데, 내가 지금 멋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음악 중에 돈 되는 게 하나라도 있나? 그리고 나는 우리 밴드 음악이 제일 멋있는데 그걸로 돈을 벌어본 적도 없잖아? 애초에 음악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였어!'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프로 연주자가 아닌, 돈은 안 돼도 '멋있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일반 부대에 입대했다. 제대한 후 나는 그 '멋있는' 뮤지션이 되는 일을 실행에 옮겼다.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한 상태에서, 내가 싱어송라이터로서 이끄는 새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한 것이다. 최소한의 돈과 최대한의 시간을 확보해 자유롭게 음악활동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곡은 군복무중 짬짬이 만들어뒀었다. 물론 큰 인기를 얻으리라는 기대는 전혀 없이 만든 노래들이었다. 눈앞에 있는 관객들만은 확실히 재밌게 해주겠다는 생각이 다였다. 그런데 터졌다. 소위 '대박'이었다. 활동을 시작하고 일 년이 지나기도 전에 전 국민적 히트곡을 보유한 밴드가 된 것이다.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순조로웠다.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왼손에 힘이 들어가는 증상이 기타를 연주할 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 증상이 신기했던 건 유독 드럼 연주를 할 때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다른 일을 할 때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물론 기타 연주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군복무중에도 생활관에 비치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만들었고, '장기하와 얼굴들' 첫 싱글을 녹음할 때도 기타는 내가 다쳤으며, 밴드 활동 초기에는 공연을 할 때도 절반 정도의 곡에서는 내가 기타를 잡았다. 그런데 급격하게 치솟는 인기를 실감하며 공연을 이어가던 어느 날, 기타를 연주할 때도 왼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기타도 포기했다. 이번 단념은 군악대 때와는 달리 좀 절망스러웠다. 공연에서 기타를 연주하지 않기로 했음은 물론이고, 평소에 혼자 치는 것도 거의 못하게 됐다. 늘 자유자재로 하던 기본적인 플레이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니 짜증이 치밀었다. 자연히 심심풀이로 기타를 잡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중학교 때 이후로 그때까지 줄곧 기타는 나의 가장 좋은 취미 중 하나였다. 집에 있을 때면 침대에 누워 기타를 배에 얹고 아무렇게나 퉁겼다. 그러면서 멜로디를 이리저리 흥얼거리다보면 이따금씩 노래가 만들어지곤 했다. 그런 일상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날아가버렸다. 게다가 이번에는 증상이 연주에만 국한돼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일상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곧 타자를 치는 것도, 단추를 잠그는 것도, 왼손을 써야 하는 어떠한 일도 예전만큼 쉽게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로부터 십 년이 흘렀다. 그런데 그 십 년을 돌이켜보면, 이 병이 내게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사실 병에게 엎드려 절하고 싶을 지경이다. 프로 드러머의 길을 포기함으로써 결국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타 연주를 포기한 것 역시 내게 두 가지 커다란 선물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새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 형을 영입한 것, 둘째는 내가 무대에서 악기 없이 자유롭게 퍼포먼스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장기하와 얼굴들’의 활동이 내게 가져다준 희열은 말도 안 되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증상도 아주 조금씩 좋아져 이제는 거의 다 나았다. 지금도 약간의 느낌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일상에서 그것을 의식하게 되는 일은 드물다. 기타와 드럼도 취미 정도로는 다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 연습을 안 했으니 남들 앞에 뽐낼 만한 연주력은 당연히 아니지만, 사실 이제는 그런 능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좋은 연주자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증상이 가장 심했을 때를 떠 올리면 집에서 혼자 재밌게 연주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지금도 이 병의 원인은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듯하고, 물론 나도 아직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이렇게 추측할 뿐이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과도한 것을 강요했고, 몸이 그만두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충분히 쉬게 해주었으며, 그랬더니 시간을 두고 차츰 회복되었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그리고 형체가 없긴 하지만 능력도 마찬가지다. 어제까지 당연히 할 수 있었던 일을 오늘 갑자기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무척 괴롭긴 했지만, 결국 다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 능력은 여기까지인가보다, 하고.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 맞춰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그러고 나면 그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다른 길이 열리곤 했던 것이다. 안경은 며칠 뒤에 소파 밑에서 찾았다. 전날 술에 취해 소파에서 잠들었고, 안경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는 과정에서 소파 아래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거실에서 잠드는 일이 거의 없다보니 그곳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먼지 구덩이 속에 얌전히 놓인 안경을 발견한 순간, 그야말로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많이 아끼는 안경이라 해도, 물건 하나로 그렇게까지 기쁠 수 있다싶었다. 모르긴 해도, 깨끗이 포기했었기 때문일 거다(pp.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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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 【단상】 부총회장 선거, 축제가 싸움판으로
    지난 4월 25일 오전 11시 참좋은교회(이윤찬 목사 시무)에서 대구교직자협의회 제31회 정기총회가 있었다. 이승희 증경총회장의 개회 예배 설교 후 합심기도 시간에 경북교직자협의회 대표회장 강전우 목사가 ‘총회와 영남지역을 위해서’ 기도할 때 부총회장 자격 문제로 소송이 붙은 총회를 염려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소송 관계자인 부총회장 후보 민찬기 목사나 장봉생 목사의 마음은 어떨지 모르나 총회 회관에서 먼 경상도 지역에서도 현 사태를 매우 안타깝게 여기며 탄식으로 기도하고 있다. 아마 이 사태를 지켜보는 대부분의 총대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한 사람의 부총회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물질이 필요하다. 노회와 협의회, 총회 등에서 오래 봉사하며 자신을 알려야한다. 이에 많은 시간이 든다. 그리고 물질로도 많이 섬겨야한다. 그래서 아무나 부총회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시간과 물질로 섬겨온 부총회장 후보들은 모두 총회의 귀한 자산이다. 바람직한 것은 단독 후보로 추대되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경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친했던 사이도 서먹해지거나 “원수” 사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곽선희 목사는 운동을 할 때 서로 마주보는 것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탁구나 테니스나 서로 마주보고 하다보면 감정 싸움이 될 수 있기에 자기는 각자 실력으로 승부하는 볼링을 한다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오래 세월 총회를 섬겨온 민찬기 목사나 장봉생 목사는 현재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내리 누르고 이겨야할 경쟁 상대로 보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런 면에서 선거란 참으로 잔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민찬기 목사 소속 임원회가 민찬기 목사의 후보 자격에 대해 물었을 때 장봉생 목사 소속 노회도 임시노회를 열어 부총회장 출마 자격에 대해 선관위에 질의했다. 선관위가 이 문제를 다룰 때 투표에 처음에는 7:7 동수가 나왔다. 이어 재투표하여 7:8로 세 번 출마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 지나간 일이지만 의견이 7대 7로 나뉘었다는 것은 선관위원 내에서도 의견이 팽팽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문제를 바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좀더 시간 여유를 두고 처리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증경총회장단의 의견을 듣는다든지, 실행위원회에서 의견을 구했다면 모양세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속전속결로 재투표해 7:8로 세 번 출마 불가로 정했다. 그러자 민찬기 목사측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소송을 했고, 소속 노회에서 부총회장 후보로 추천을 받았다. 세상 법정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두고보면 된다. 그런데 성경은 교회 문제를 세상 법정에 끌고가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고전6:1-7]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새로이 총회를 섬길 일꾼을 뽑는 총회 선거가 축제가 아니라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사법의 판결을 받아야하는 싸움판이 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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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4-04-26
  • 취재 기자를 내쫓는 노회들...무엇이 두려운가?
    봄 정기노회가 열리는 계절이다. 서울에서 먼 지방의 몇몇 노회를 취재갔다. 그 중 2개 노회에서 “내쫓김”을 당했다. 이리노회는 북일교회 문제로 회원 호명 때부터 시끄러웠다. 결국 노회원들간에 고성이 오갔다. 이런 가운데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거칠게" 요구했다. 결국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 충청노회도 전 총신대총장 김영우 목사 피소건에 대해 다루며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험악하게” 요구했다. 결국 본당 중이층으로 쫓겨갈 수 밖에 없었다. 기자는 사실을 취재하고 알리기 위해 그 현장에 가 있는 것이다. 북일교회 문제는 대부분의 총회원들이 알고 있을만큼 큰 이슈이다. 당연히 기자들이 가서 취재할 수 밖에 없는 사항이다. 기자는 총회원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대신해서 그 현장에 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기자들을 내쫓는 것인가? 그것이 과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는가? 기자가 보면 안될만큼 감춰야할 문제가 있는가? 사실을 사실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 없는 노회는 취재간 기자들을 반기며 좋게 기사를 써서 노회를 잘 홍보해 달라고 부탁한다. 기자로서도 기분좋은 일이다. 반면 문제 있는 노회는 기자를 내쫓는다. 마치 잡상인 취급을 한다. 부득이 기자를 내보낼 필요가 있다면 “정중하게” 요청했으면 한다. 같은 합동측 목사한테 그렇게 함부로 해서 되겠는가? 앞으로도 “문제 있는” 이리노회와 충청노회 “사태 추이”에 대해 예의주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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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4-04-03
  • 【북토크】 편협한 꼰대가 되지는 말아야 할텐데....
    자기 생각에 갇혀 사는 사람은 편협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하고는 대화도 되지 않는다.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남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개방해야한다. 죽고 사는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럴수도 있구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편협함 공부를 하면서 문득 깨달은 건, 법률 외에 삶의 모든 기준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 기준들은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니어서 주변사람에게 영향을 받아 생성되기도 하고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워지기도 한다. 또 삶의 경험이 켜켜이 쌓이면서 조금씩 견고해지고 구체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여러 기준들을 만들어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일은 어쨌거나 사람이 하는 것이란 점에서 언제나 주관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너무 쉽게 각자가 세운 판단 기준이 ‘정답’이라고 착각한다. 사람은 쉽게 타성에 젖으니 자신의 판단 기준과 결론이 절대적인 단 하나의 정답이라 믿으며 자기 우물 안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기준에 정답이란 없기에 자신이 바르고 타당한 기준을 세워가며 나이 먹고 있다는 생각도 사실 편협한 ‘착각’에 가깝다. 나이를 먹는 일이 무서운 건 나도 모르는 새 나의 판단이 바르고 타당한 정답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조직에 잘 적응한다는 것은 곧 그 곳의 기준을 잘 습득해 체화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공동체에서 튀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공동체의 평가 기준을 답습하기도 하고, 나는 다르다 여기며 살아도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그 밥에 그 나물처럼 사고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쉼 없이 자신의 옳고 그름을 고집하기도 하고 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숨기기 위해 고집스러운 기준으로 타인을 깎아 내리기도 한다. 입만 열면 세상 곳곳에 대한 불만을 쏟아 내는 투덜이 스머프 같은 사람이 있었다(입만 열면 남의 흉을 보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결이랑은 또 다르다). ‘이건 이래서 구리고, 저건 저래서 구리고’, ‘그런 사고방식이 말이 되느냐. 말은 그렇지만 속내는 이런 것 아니겠느냐’하는 식으로 언제나 자신 밖의 사람과 상황에 대해 평가만 늘어놓는 사람이었다. 초반에는 그가 솔직하고 유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어떤 것. 누군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 지 밝히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그 취향과 기준을 고백하는 것이 자신의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데 저렇게 쿨하게 늘어놓다니!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화의 주된 발언이 자기 자신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평가이다 보니 들을수록 의아한 지점이 생겼다. 당신에게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 타인이 당신에게 평가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 평가할 자유가 있다고 해도 당신의 평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는지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의 평가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에 대한 인상 또한 '예리하고 유쾌한 사람이다' 라기 보다 ‘어딘가 모르게 편협하다’, ‘편협함을 자랑하는 태도가 참 멍청하다’까지 이어졌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 몇몇 단정적인 말들에서 그가 타인에 대한 평가를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었던 까닭을 눈치 첼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자신의 말이 정답이라고 여겨서 가능했던 것 이었다. 자기 말이 정답인 사람 곁에 다른 의견들은 오답처리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이 오답이 되 는 대화를 좋아라할 사람은 없다. 그렇게 그는 자기주장이 뚜렷한 사람에서 편협한 사람으로 점차 다르게 기억 됐다. 중학생 때 유독 적이 없었던 한 친구가 떠오른다. 말수가 적어서,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아서, 호불호가 없어서가 아니라 ‘편견’이 없어서 두루두루 모두와 잘 지내는 친구였다. 그는 어떤 친구들에게도 늘 같은 태도로 화답했다. 편견, 그러니까 그 편협함은 끊임없이 나를 위해 타인을 배척하는 수단이 된다. 진정한 세월의 지혜는 오히려 '편견 없음'에 가까울 거라 생각한다. 타인을 판단하는 가장 괜찮은 기준은 포용이 아닐까? 타인과 자신에 대해 사람은 언제나 ‘알 수 없음’ 한 줌은 가지고 사니까. 견고한 기준은 편협한 생각의 방증일지도 모른다(pp. 178-181).
    • 오피니언
    • 책소개
    2024-03-31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내생각】 1천만원 뇌물 사건..천지지지 여지아지
    천지지지 여지아지(天知地知 汝知我知)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는 뜻이다. 선관위 1000만원 뇌물수수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성남노회는 진상을 밝혀달라고 성명서를 내고 총회 임원회에 진정서를 접수시켰다. 오정호 총회장은 총회 석상에서 “이 사건에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다”고 하면서 배광식 선관위원장과 이종철 심의분과장의 공개 사과로 일단락 지을려고 했다. 그러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기독신문은 인터넷판 10월 15일자 사설로 ‘이유 있는 성남노회 성명’이란 사설을 실어 “총회임원회가 성남노회의 이번 성명을 반드시 짚고 가야 할 사안으로 여기고 간과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사건의 진실은 경찰서에 사건을 접수하거나 혹은 임원회가 조사처리위원회를 구성해 관련자를 대면시키면 곧 드러날 수 있다. 그러면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드러난다. 천만원은 지금도 출처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전달자는 그 돈의 출처를 말하지 않고 있다. 주었다고 의심받는 자는 준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천지지지 여지아지” 한데 여전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짓말은 버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진실이 드러나면 감당해야할 후폭풍이 두려워 진실을 밝힐 타이밍을 놓친 것 같은데 여전히 시간이 흘러가고 있고 책임은 가중되고 있다. 누군가의 거짓말로 인해 총회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관계없는 대다수 선관위원들이 도매금으로 비난을 당하고 있다. 관계자의 교회와 노회가 소란스럽다. 이 모두 한 사람의 거짓말로 인한 것이다. 간첩관련 옛 포스터 문구가 생각난다. “자수하여 광명 찾자” 이 문구는 이 사건에도 유효해 보인다. 작년 총회 임원 선거에서 모 낙선자에게 한 교계 신문이 “자살하지 말기를 바란다”는 파격적인 글을 실었다. 나 또한 관련자가 자책감으로 자살하지 않을까하는 불순한 생각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죽는 것 보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해주고 싶다. 일이 커져도 너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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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3-10-23
  • 【내이야기】 Why so serious?
    기자가 되면서 남의 얼굴만 찍는다.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상대방의 표정을 매의 눈으로 쳐다보며 타이밍을 기다리고 이때다 싶으면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카메라의 액정을 통해 결과물을 확인한다. 이때 원하는대로 나오면 한장으로 마무리하지만 그러지 않을 때는 계속해서 찍어야한다. 총회 인물 중에 사진 찍기 곤란한 인물들이 몇 있다. 자세가 비뚤거나, 머리가 비뚤거나 또는 얼굴 표정이 밝지 못하거나, 정면을 안보고 좌우로 시선을 두는 경우 등이다. 그러면 사진 한 장 찍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어느날 나도 모르게 남에 의해 사진에 찍힌 적이 있다. 보내준 사진을 보고 놀랬다. 표정이 밝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취재장에서 오정호 총회장이 갑자기 취재 기자들을 앞으로 불러 참석자들에게 소개했다. 이 장면을 누군가 찍어 보내줬는데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다. 너무 심각하고 어두웠다. 그래서 집에서 식구들과 밥을 먹으며 사진을 보이면서 내 표정이 이상하게 찍혔다고 하니 “늘 표정이 그렇다”고 말한다. 큰 충격을 받았다. 하긴 일상의 내 표정을 내가 볼일이 없으니 그럴 수 밖에. 누군가는 40세가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이제부터라도 그래야겠다. 어느 배트맨 영화에서 죠커가 말했던 대사가 생각난다. “Why so serious?” 난 왜 이리 심각한 얼굴이 됐을까? 웃는 얼굴로 살고 싶다. 이 글을 쓰고 나서 내 표정을 찍어보니 여전히 심각하다. 죠커가 비웃으면서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Why so serious?”
    • 오피니언
    • 논단
    2023-10-22
  • 【내이야기】 밴댕이 소갈딱지
    나는 지금도 종종 38년 전 일이 떠오르면 부끄러워한다. 그때는 총신대학 1학년 시절이었다. 어느날 같은 동아리에 있는 유아교육과 오*영을 학교에서 만났는데 “나 이번 학기 성적 장학금 타게됐다”면서 한껏 흥분해 있었다. 그래도 같은 학번 동아리 친구라고 내게 말했던 것이다. 내 반응은 무엇이었을까? “그래?”라고 말하고 그냥 지나쳤다. “축하한다”는 말도, “받을만 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부러웠기 때문이다. 가끔 뜬금없이 그때 생각이 나면 지금도 부끄럽다. 나에게 축하 받을 기대로 말했을텐데 나는 찬물을 끼얹었다. “나는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데 염장 지르냐?“ 하는 못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마 그때 나도 장학금을 받았다면 서로 축하해 줬을 것이다. 그런데 열심히 안해 장학금을 받지 못했으면서도 친구의 기쁨을 함께하지 못하고 심드렁해했다. 38년 전 일인데 지금도 생생하다. 졸업 후 본적이 없는 그 친구를 우연히 만난다면 미안했다는 말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해야 그 기억에서 놓여날 것 같다. 그런면에서 나는 밴댕이 소갈딱지 인간이다. 그러면 38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나이를 헛먹은 것 같아 부끄럽고 허탈하다. 혹시 밴댕이를 먹으면 “나보다 못한 놈에게 먹혀 억울하다”고 눈을 치켜 뜰 것 같다. ("밴댕이 소갈딱지, 소갈머리"란 밴댕이 내장이 워낙 작아서 속 좁은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 오피니언
    • 칼럼
    2023-10-20
  • 【논설】 박성규 총신대학 총장의 강점
    17년째 부전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박성규 목사가 총신대 총장으로 나선다는 소문이 돌았다. 통상 교수들이 하는 총장을 목회만하던 목사가 했던 경우는 앞서 2번 있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3번째로 목사 총장이 나올 수 있는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교수들의 반발도 있었고, 박성규 목사를 밀고 있다고 의심받는 총회 목사들이 속한 교갱협에 대해 “너희들이 다 해먹느냐?”는 비난도 있었고, 일부 부전교회교인들의 반대도 있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가운데 박성규 목사는 담임목사직을 사임했고, 총장에 도전하는 4명의 현직 교수와 경쟁했다. 이후 3명으로 압축된 가운데 최종 2명의 경쟁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총장에 당선됐다. 이후 총신대학은 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총신신대원 전액 장학금을 목표로 박성규 총장이 뛰고 있는 가운데 총장 취임식 당일 총신신대원 80회 동창들이 동기의 총장 취임을 축하하며 1억 2천만원을 발전기금으로 내놨고, 최근 오정호 총회장은 10억을 전달했다.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학교를 위해 헌신하는 가운데 있다.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가? 바로 박성규 총장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이다. 과거 2명의 목사 총장은 자기 정치를 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래서 총신대학이 희생당했다. 그러나 박성규 총장은 소위 “정치꾼”이 아니다. 오직 모교 총신을 살리고자하는 마음으로 부산의 대표적인 부전교회를 사임했고, 3년만 있으면 원로목사가 될 수 있는 권리도 내려놨다. 그리고 앉으나 서나 어떻게하면 총신대학과 신학대학원을 성장시킬 수 있는가를 생각하며 기도하고 발로 뛰고 있다. 박성규 총장을 만나 대화를 하다보면 그 머리 속에 총신에 대한 꿈과 비전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확한 수치와 근거를 가지고 총신의 현황과 나아갈 방향을 거침없이 말하는 것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면 그의 열정에 감동을 받고 나도 무언가 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받게 된다. 그래서 박성규 총장을 만날 때는 조심해야한다. 그 열정에 전염되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다! 박성규 총장이 최근 『참된 장로』(익투스)라는 책을 발간했다. 그 안에는 그동안의 본인 목회 경험이 자주 등장한다. 내용이 학적이면서도 실제적이다. 오랫동안 목회자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앞으로 안수집사, 권사 등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책을 쓸 계획이다. 총신을 다닐 때 김의원 교수가 “학자가 될 사람과 목회자가 될 사람을 구분해서 가르쳐야한다”고 말씀하셨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여건이 그렇지 못하다. 실제로 신대원생 대부분은 목회를 할 사람이다. 그런데 교수들은 공부만 한 분들이다. 그래서 목회의 실제에 대해 배우는 것이 미흡했다. 이전에 장신은 장례식 염하는 것도 실습한다는 말도 들었다. 목회의 실제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심방에 대해서도, 장례식 집례에 대해서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전도사 생활을 하며 담임목사가 하는 것을 보고 배웠을 뿐이다. 이처럼 총신은 목회 실제에 약하다. 그런면에서 박성규 총장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비록 바쁜 총장일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지는 않는다해도 그동안 배운 것과 목회한 것을 종합해 목회 실제에 관련한 책을 저술해야한다. 그 첫 번째 책이 이번에 발간된 직분자 시리즈 1인 『참된 장로』(익투스)이다. 이후 목회 전반에 대한 책을 써주기를 바란다. 목회 행정, 당회 운영, 교회 건축 등등 그동안 박성규 총장이 목회자로 있으면서 경험했던 많은 것들을 학문적인 것과 잘 섞어서 책을 만들어 준다면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총신은 무엇보다도 목회자를 배출하는 곳이다. 목회를 위해 성경신학, 조직신학 등 많은 것들을 배워야하지만 무엇보다 목회 실제에 대한 것을 가르쳐야한다. 그렇지 않기에 정작 총신을 졸업한 후 이곳저곳 세미나를 기웃거리며 목회에 대한 것을 배우는 웃픈 일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그랬다. 직분자 시리즈 1인 『참된 장로』를 읽으면서 이 책은 목회 경험자만이 쓸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울러 박성규 총장의 그 동안의 학문 여정이 함께 녹아 있는 수준 높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목회학 박사와 담임목사라는 두 가지의 경험이 잘 어우러진 질 높은 이 책의 출간을 이어 앞으로도 현장 목회를 위한 좋은 책을 계속해서 저술해 줄 것을 부탁드리는 바이다. 이것이 목회자 출신인 박성규 총장이 목회자를 배출해야할 총신대학의 총장으로서 가지는 그만의 강점이다.
    • 오피니언
    • 논단
    2023-10-19
  • 【화제의 신간】 참된 장로-저자 박성규 총장...모든 장로의 필독서
    “장로 직분에 대한 이해와 사역의 폭을 넓히라” 오랜 목회현장의 경험과 신학적 깊이를 담은 총신대학교 박성규 총장의 최신작 “한 교회의 장로가 된다는 것은 큰 복이요,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돌보고 지키고 세우는 일을 맡겨주셨기 때문입니다.” - 저자 서문 중에서 장로 직분을 받는다는 것은 영광스러우면서도 장로로 살아내야 할 책임을 생각하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통하여 장로로 피택된 분들과 앞으로 장로가 될 미래의 직분자들이 장로직에 대한 사명감과 영광스러움에 대한 참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총신대 총장 박성규 목사가 개혁주의적 관점과 오랜 목회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장로 직분에 대해 현실적이고 깊이 있게 다룬 최초의 장로 관련 도서가 될 것이다. 장로 피택자 교육에 꼭 필요한 책이며, 시무 장로에게는 자신의 직분을 더 잘 감당하게 하는 동기부여의 책이다. 1부는 장로와 교회로 장로가 사역할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대하여 성경적인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으며, 2부는 장로의 직분으로 장로의 자격과 사명에 관해, 3부는 장로의 사역으로 장로 사역의 본질과 기능을 분명히 알도록 함으로, 교회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이 세우신 장로, 성도에게 본이 되는 장로로 살아가도록 인도해준다. 또한, 부록으로 실제적인 장로의 휴먼스킬과 장로와 목사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저자 박성규 총장 총신대학교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육군 군목, 나성한미교회 담임목사, 부산 부전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했다. 현재는 총신대학교 총장으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믿음은 물러서지 않는다』, 『종교개혁의 핵심 가치』, 『벽 앞에서』, 『사도신경이 알고 싶다』, 『주님이 꿈꾸신 그 교회』 외 다수가 있다. 목차 저자서문 용어설명 제 1 부 | 장로와 교회 1장 성경적 교회 이해 2장 성경적 교인 이해 3장 성경적 교회 현장 이해 제 2 부 | 장로의 직분 1장 장로직 이해 2장 장로의 역할 제 3 부 | 장로의 사역 1장 장로사역의 본질 2장 장로사역의 기능 3장 장로사역의 출발점과 종착점 책을 마치며 부록 1, 교회의 사명은 무인가 2. 장로의 휴먼 스킬 3. 목사와 장로의 관계
    • 오피니언
    • 책소개
    2023-10-19
  • 【논설】 총회와 총신, 비정상의 정상화
    제108회 총회장 오정호 목사는 약속을 지켰다. 총회장 첫 공식 행보로 총신대를 방문하기로 약속했었다. 오 총회장은 지난 10월 10일 오전 총신대를 방문해 학우들을 격려하고 학교발전기금으로 10억을 전달해 큰 박수를 받았다. 연이어 오후에는 총회 임원들과 양지 총신신대원 기숙사 뒤편에 있는 소래교회를 찾아 간절하게 기도한 후 신대원 교수들을 만나 간담회를 가졌다. 그리고 10월 17일 오전에 신대원 80회 동기들과 함께 총신신대원을 방문해 설교하며 교수들에 대한 존경과 원우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줬다. 오정호 총회장이 늘 주장하는 것은 ‘원팀’으로, 총회와 총신은 하나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것은 이미 108회 총회 현장에서 총신대학 화종부 이사장, 박성규 총장의 양손을 치켜들며 외쳤던 것이다. 나는 총회 현장에서, 총신대와 신학대학원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며 남다른 감회를 가졌다. 나는 1985년 총신대학 신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군목후보생이라 휴학하지 않고 1989년 신대원에 입학해 1992년 2월 졸업했다. 내리 7년을 총신에서 공부했다. 그런 가운데 학내 문제로 또는 총회 문제로 자주 수업거부를 하거나 농성하고 총회 현장을 찾아 총대들에게 호소하기도 했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구체적으로 어느 문제로 그렇게 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그때 당시는 신학도로서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학내, 총회 문제로 학생이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개했던 기억이 난다. 공부를 해야하는데 공부를 할 수 없는 여건이었으니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말이다. 졸업 이후에는 군목으로, 부목으로, 담임으로 목회하면서 학교나 총회 일에 관심 둘 여력이 없었다. 그 사이에 김영우 총장으로 인해 학교가 어려웠고 자격 미달의 총회장으로 총회가 시끄러웠지만 총회 정치를 하지 않는 입장에서 그런 일에 크게 관심 갖지 않았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로인해 많은 고통을 당했다. 학교를 지키기 위해 많은 분들이 희생할 때 나는 그 사태를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관심 갖지도 못했다. 이때 가장 많이 희생 당한 것은 결국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한 학생일 것이다. 오정호 총회장은 지난 17일 총신신대원에서 설교를 하면서 서두에 자신과 총신을 다니고 있었던 아들과의 대화를 소개했다. “저는 80회 제 아들은 113회입니다. 어느 날 제 아들이 저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 뭐 하는 겁니까? 아버지가 책임을 지세요. 그래서 내가 아들아 너무 심하지 않냐? 나는 총회장도 아니고 이사도 아닌데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느냐” 그러면서 “우리 학우들의 주님 앞에 대한 애절함과 또 우리 교수님들 가운데 우리 학교의 정상화를 위해서 몸을 던진 분들로 인해 이제 우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시간과 하나님의 방법으로 총신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셨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나 뿐만 아니라 후배들도 학내와 총회 문제로 제대로 수업을 듣지 못할 때가 많았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비정상적인 때는 지나갔다. 총회와 총신이 정상화되고 있다. 오 총회장은 총신이 잘 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수들을 존중하며 학생들을 사랑하고 물질로 구체적으로 헌신하고 있다. 과거처럼 총회가 총신을 어렵게하는 일을 오정호 총회장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총장도 학교를 세워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난 17일 예배 후 총신신대원 80회 동기 모임에서 80회 박성규 총장은 “과거 김인환 총장 때 월 3000원 모금 회원이 10만명이라 30억원의 기금이 모였었는데 학내사태가 벌어지면서 회원이 2만여명으로 준 것”을 언급했다. 학교가 혼란스러워지면 실망하게 되어 기금 후원이 중단된다. 그러나 박성규 총장 취임 이후 기금 운동이 많이 활성화되고 있다. 그것은 박성규 신임 총장을 믿고 신뢰한다는 증거이다. 박 총장은 본인도 이미 1000만원을 발전기금으로 냈고 매월 50만원을 내기로 작정 했다는 것을 밝히고, 앞으로 월 1만원 후원 회원 10만명을 모으는 것이 목표이고 각 교회별로 월 10만원, 노회별로 월 10만원을 후원해 주기를 바라고, 어느 기업가가 100억을 후원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함께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총회와 총신이 과거의 비정상화를 벗어나 이제 정상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총신대, 총신신학대학원 출신인 필자는 너무나 감격스럽다. 과거 학창 시절 학내, 총회 문제로 수업을 듣지 못하던 때가 그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게 총회와 총신을 어지럽혔던 인사들은 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총회와 총신의 정상화를 이룬 오정호 총회장과 박성규 총장에 대해 후배와 동문의 입장에서 감사와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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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3-10-18
  • 【내이야기】 다단계에 빠진 교인
    전에 있었던 교회 모 권사가 다단계에 빠져 교회를 떠났다는 말을 들었다. 목회할 때도 어떤 권사가 두 권사에게 다단계를 권해 한 권사는 같이 하고, 다른 권사는 남편 집사가 난리를 쳐서 그만둔 적이 있었다. 목사로서 교인들이 다단계를 할 때 불러다가 “하지 말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다단계에 빠진 사람들은 이미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설교를 할 때 “일확천금”을 꿈꾸지 말라고 에둘러서 말했었다. 물론 그런다고 다단계에 빠진 교인들이 그것을 그만 두지는 않았었다. 가족들이 난리를 쳐도 그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을 봤다. 근근이 벌어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됐다. 집값이 장난이 아니고 생활비도 만만치 않다. 그러다보니 다단계에 빠지는 것 같다. 그러나 다단계는 결국 사기이며 금전적인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다단계에 빠져 교회를 떠난 권사를 언급하는 이유는 그가 나를 내쫓는데 앞장 선 주동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3년도 안돼 다단계에 빠져 교회를 떠났으니 참 할 말이 없다. 교회를 떠난지 3년이 되가면서 나는 떠난 교회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간간이 풍문으로 들리는 소식을 접할 뿐이다. 나를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교인들이 곱게 보일리 없다. 교회를 떠나며 나는 아비멜렉을 생각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첩 자식으로 자기 고향 사람들과 공모해 자기 이복 형제 70명을 죽이고 “자칭” 왕이 됐다. 그러나 삼년만에 그들의 공조는 깨지고 결국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벌이다 아비멜렉은 비참하게 죽었다. 나를 쫓아내고 그들은 싸움에서 이긴 양 들떠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간에 이견이 생겨 곧 몇 가정이 떠나버렸다. 그리고 이제 교회는 자체 존립이 어려워 다른 교회와 합병하고자한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기득권은 내려놓지 않을려고 하고 있다. 과연 합병이 제대로 될지나 모르겠다. 나는 그들을 미워하지도 않고 축복하지도 않는다. 내 기억 속에서 다 잊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방송국에서 아이돌 지망생들을 모아놓고 경연하는 프로그램을 했다. 아내가 불러 가보니 나를 반대해놓고 서로 이견이 생겨 떠난 한 안수집사 가정의 딸이 출연했다. 어릴 때부터 아이돌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준비하더니 몇 년 새 몰라보게 성장해 출연한 것이다. 나는 “부모는 별로라도 딸이라도 잘 됐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아내는 당한 것이 분했는지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다 경선에서 탈락했다. 나를 내쫓을 때 4명의 장로 중 1명은 이 일에 가담하지 않았다. 부인 집사가 이 일에 관여하면 이혼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장로 부부가 나를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를 내쫓는 일에는 적극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결국 교회를 옮겼다. 나는 이 부부에 대해서도 좋은 감정이 없다. 그러나 가끔 결혼한 큰 딸의 근황이 페이스북에 랜덤으로 올라오면 이 아이는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무슨 책임이 있겠는가 말이다. 다 잊고 살고 있는데 갑자기 이전 교회 소식을 들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위에 계신 분이 다 보고 계시니 알아서 하실 것이다. 내가 부족했다면 나를 책망하실 것이고 그들이 부족했다면 그들을 책망할 것이다. 그런데 들리는 소식이 하나같이 씁쓸한 것이라 마음이 그리 편치 않다. 어쨌든 나는 15년간 그들의 담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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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3-10-16
  • 【단상】 또 다른 나에게
    몇 년 전 내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같은 시찰회 목사님 중 한 분이 군선교에 열심이신데 인천지역 모 부대 신병세례식에 와 달라고 해서 갔다. 세례를 줄 목사들 앞으로 여러 신병들이 줄 맞춰 왔다. 내 줄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세례를 주는 가운데 내 평생 내 이름을 가진 사람을 처음 봤다. 내 이름과 같은 신병을 예비역 군목 신분으로 세례를 베풀며 묘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병중은 한자로 ‘잡을 秉’, ‘무거울 重’이다. 딸만 둘 낳고 셋째로 아들을 낳았기에 그 당시 비싼 돈 주고 작명소에서 지은 이름이다. 어차피 병자는 돌림이니 글 한자만 정해주면 되니 작명소는 돈 벌기가 쉬울 것 같다. ‘무거운 것을 잡는다’는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나 요즘들어 체중이 늘어 무거워지기는 했다. 어렸을 때는 전화번호부가 있었다. 그래서 내 이름을 검색해보니 있기는 했는데 많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초등 학교를 다닐 때는 “병원”, “병균”이라는 이름도 있었다. 그래서 “병균”에 걸려 “병중”이 되면 “병원”에 가야한다면서 서로 웃던 기억도 있다. 개역한글성경에는 내 이름이 있었다. 시 41:3 “여호와께서 쇠약한 병상에서 저를 붙드시고 저의 병중 그 자리를 다 고쳐 펴시나이다” 그런데 개역개정에서는 시 41:3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로 바뀌어 내 이름이 사라졌다. 아쉽다. 나는 그 신병에게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한 김병중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면서 세례를 줬다. 그리고 앞으로 더 열심히 살라고 신신당부했었다. 왜 그랬을까? 이름이 나와 같았기 때문이다. 많지도 않은 특이한 이름인데 그 신병이나(지금은 진작에 제대했을 만큼 시간이 지났다) 나나 그 만남은 도플갱어의 경험이었다. 아마 그 청년은 이후에도 자기를 세례준 내 이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자기 이름이니 말이다.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그 사람이 잘 살기를 바란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虎死留皮)”고 했다. 우리 모두는 자기의 이름을 소중히 여긴다. 만약 누군가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면 얼마나 기분이 상하겠는가? 나도 내 이름에 먹칠하지 않도록 오늘도 열심히 성실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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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3-10-14
  • 【여자목사논쟁2】 여성 선교사에게 목사 안수를
    제26회기 제1회 GMS 선교사 임명식이 있어 취재를 갔다. 6가정 9명이 임명을 받았다. 힘들고 어려운 사명의 길을 가는 선교사들은 늘 존경스럽다. 3가정은 목사와 사모였고, 나머지 3 분은 여성이었는데 아마도 모두 씽글인 것 같았다. 이들은 전도사라는 직분을 갖고 있었다. 여성 3분의 사역 목표를 보니 ‘선교지 국가 내 외국인 사역, 교회 개척, 문화, 여성 사역, 각종학교, 지도자 양성, 어린이, 청소년 한국어 교육 사역 등’이었다. 눈에 띄는 것이 ‘교회 개척’이었다. 교회를 개척하면 예배 후 축도를 하고 세례를 주어야하는데 이들의 신분이 전도사이기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현재 합동 교단 포함 몇몇 교단은 “여성안수불가”를 주장하고 있고 반면 다수의 교단이 여성안수를 허용하고 있다. 나름 신학적인 주장도 있지만 같은 장로교 내에도 이견이 있다. 해마다 있는 "장로교의 날" 행사에 가보면 여성 총회장도 여럿 있다. 같은 칼빈주의를 따르면서도 이렇게 달라서야 되겠는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힘들고 어려운 선교사로 나가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데 여성 전도사이기에 축도도 못하고 세례도 주지 못하는 이 불합리함을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 묻고 싶다. 내가 군목 후보생이었을 때 조기 안수를 주어 대위로 입대하게 해야한다는 말이 많았다. 몇몇 교단이 그렇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총회는 “馬耳東風”이었다. 결국 입대할 때 합동 교단은 중위로, 타 교단은 대위로 임관했다. 계급사회인 군대에서 중위와 대위로 시작하는 것은 출발선이 다른 것이다. 결국 이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몇 년 전부터 합동 교단도 군목 후보생이 학부를 졸업하면 조기 안수를 주고 있다. 晩時之歎이다. 금번 108회 총회 때도 여성 사역자 강도사 고시 허락 건으로 시끄러웠다. 기회를 줬다가 뺏았기 때문이다. 사회는 여성들에게 남성들과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고 있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과거에는 금녀의 구역이었던 곳이 무너지고 있다. 역대 대통령 중에 여성인 박근혜 대통령도 있지 않았는가? 군대에도 여성 인력이 많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미 “여성”군목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여성 목사를 허용하지 않는 합동 교단의 군선교는 이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만약 여성 목사가 진정 비성경적이라면 내년에도 있을 "장로교의 날" 행사에 합동 교단은 불참을 선언하기 바란다. 같은 회원 장로교 여러 교단이 여성 목사를 인정하고, 총회장을 하고 있으니 그들을 “비성경적”이라고 선언하고 그들과 단절하는 “결기”를 보여주기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이제 여성 안수를 허용해야한다. 언제까지 馬耳東風해서 晩時之歎을 되풀이 할 것인가?
    • 오피니언
    • 논단
    2023-10-14
  • 【단상】 또 다시 마주한 총신 도너월
    지난 10월 10일 사당동 총신대학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있었다. 故 명신홍 박사의 도서기증 50주년을 기념해 종합관 3층에 있는 도서관을 “명신홍기념도서관”으로 명명(命名)하는 행사였다. 명신홍 박사는 누구인가? 1904년 4월 14일 평안남도 김제면 원장리 노동에서 태어나 1936년 3월 평양신학교를 졸업 후 1939년 5월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신학석사 학위 취득을 시작으로 칼빈신학교 신학석사, 비블리컬신학교 신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48년부터 1971년까지 총회신학교 교수를 하며 1953년 38대 총회장을 역임하고 1965년부터 1969년까지 총회신학교 교장(현 총장직)을 감당하다 1975년 10월 14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탁월한 실력으로 신학교와 총회를 위해 많은 일을 감당했으며 특히 총신대학 구 본관 신축 모금을 위해 직장암 수술 후 배변주머니를 찬 채 미국을 방문할 때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넜으며 체류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추운 신학교 건물에 머물렀다. 그러면서 원서를 포함 수천권의 장서를 모았다가 모두 총신대학에 기증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50년만에 “명신홍기념도서관”으로 명명한 것이다. “역사를 잊어버린 개인과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다. 나는 총신을 대학, 신대원, 목회전문대학원 등으로 15년간이나 다니고 도서관에도 자주 갔었지만 명신홍 박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 행사 취재를 통해 참으로 대단한 분이시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됐다. 명신홍 박사를 추모하는 글에 그의 사위 이은태 장로는 “총신대가 계속되느냐, 없어지느냐하는 위기의 순간을 수없이 겪으셨으며, 그 힘겨운 고군분투의 나날 인공항문을 다신 채로 총신을 위해 불꽃처럼 사셨다”고 적었다. 차녀 명돈신 권사도 “아버지는 신학교를 위해 낸 몸이니 죽으라면 죽으리라는 비장한 각오로 학교 건축 모금을 위해 미국을 다녀오셨다”고 적었다. 자신의 생명을 다해 총신을 세운 분을 후배들이 알지 못했다는 자책을 하며 이제라도 그분의 고귀한 헌신을 기념하기 위해 그분의 이름으로 도서관을 명명한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라고 본다. 이미 종합관에는 “백남조기념홀”, “주기철목사기념관”등으로 이름이 명명된 장소가 있다. 이제 세 번째로 “명신홍기념도서관”이 명명된 것이다. 이것은 그 개인을 높이고자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들의 헌신과 수고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우리도 그 뒤를 따라야한다는 의도라고 생각한다. "명신홍기념도서관" 현판제막식 후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 시간에 명신홍 박사의 후손들은 총신의 발전을 위해 3천만원의 거금을 박성규 총장에게 전달했다. 참으로 대를 이은 헌신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어 오정호 총회장이 목회하는 새로남교회에서 10억을 전달했을 때 명신홍 박사의 사위 이은태 장로는 “약소하게 전달해서 송구하다”는 말을 했는데 박성규 총장은 “개인과 가정이 하기에 3천만원은 너무나 큰 거금”이라며 거듭 감사했다. 이어 도너월 리뉴얼 제막식이 있었다. 이때 새로남교회가 이날과 이전에 기부한 총 15억의 액수가 도너월에 새롭게 기록되었고, 명신홍 박사 후손이 드린 3천만원도 미리 기록되어 있었다. 행사 후 도너월에 기록된 많은 교회와 개인들의 이름을 찬찬히 보면서 귀한 헌신에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됐다. 최근 총신대학, 신대원, 군목 출신인 이국진 목사가 자신의 유튜브에서 총신 도너월 문제를 다뤘다. 일부 학생들이 도너월에 이름과 액수를 기재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것이 아닌가하는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이 질문을 다루는 가운데 본인이 미국에서 오랜 기간 유학할 때 교회나 신학교의 여러 비품과 건물에 기증자와 헌신자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을 예로 들었다. 미국 교인들은 이에 대해 아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렇게 헌신한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헌신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교회도 이미 발전기금을 전달해 도너월에 이름이 올라 있지만 더 많이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도너월의 목적은 기증자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다. 수고한 분들을 학교가 잊지 않고 기억하며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도 선한 일에 동참할 기회를 주고자 함이다. 이날 명신홍 박사가 수많은 장서를 학교를 위해 기증한 것을 학교가 늦게나마 그에 대한 감사로 도서관에 이름을 넣어 감사하고 이에 후손들이 또 다시 학교를 위해 발전기금을 전달하고 학교는 이에 도너월에 그 이름을 새겨 기념하고 감사하는 아름다운 선순환이 일어난 것이다. 곧 작은 발전기금을 낼 계획인 나에게 한 총신 선배가 “너도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다. “형님도 도너월을 쳐다보고 묵상하다보면 나같은 마음이 생길겁니다”라고 답했다. 그렇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 1’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고 말했다. 총신대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종합관 1층 로비 우측에 있는 도너월에 멈춰 거기에 적혀 있는 명단들을 자세히 보고, 오래 바라보기 바란다. 그러면 어느땐가 불쑥 저들과 같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내가 바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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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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