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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 ‘절판’ 앞에서....책이란 무엇인가?
    과거 취미란에 ‘독서’를 쓰는 것이 유행이었다. ‘클래식 음악 듣기, 영화 감상’등도.. 독서가 취미인 나로서는 책이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책을 쓰는 작가, 출판하는 출판사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산다. 책이 없는 세상은 매우 심심할 것이다. 다행히 어려서부터 책 사는 것을 좋아했고 지금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이 책은 책에 대한 책이다. 어떤 책을 읽다 소개 되어 읽었는데 2006년에 발간된 책이라 소개된 책 중에는 ‘절판’된 책들이 많았다. 책에도 수명이 있고 유행이 있다. 무수한 책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죽을 때까지 다 볼 수 없는 책을 읽는 것이 취미인 것이 감사하다! (기사 화면에 이 책 '빠삐용의 책읽기' 사진을 실을려고 교보문고를 검색해 보니 이 책도 절판됐다. 다행히 도서관에 있어 빌려보게 된 것이다). 칼날 위에 서 있는 사랑 어떤 사람들에게 사랑이 가장 고결한 단어라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금기어입니다. 믿을 수 없으시다고요? 유희처럼, 하룻밤 욕망 해소처럼 가볍게 사랑을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매 순간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장편소설 『카불의 책장수』를 읽다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에는 참 다양한 삶들이 부대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프가니스탄 여인들에게 '사랑'은 금기어입니다. 그들이 지하에서 펴내는 시집에 사랑을 표현하려면 피어린 절규가 담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손을 주세요, 사랑하는 이여, 그리고 우리 함께 초원에 숨어요. 사랑하거나 칼 아래 쓰러지거나 둘 중 하나.' 이곳에 사는 여인들은 묻는 말에 대답하거나 요리를 칭찬하는 말에 답례를 표하기는 하지만, 외방인 앞에서 절대로 먼저 대화를 시작하는 법이 없습니다. 부모 몰래 금지된 사랑을 나누다 들키면 죽음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칼날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나라에서 적용되던 이슬람 율법은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동시에 비정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율법을 비켜가기 위해 그녀들은 란다이(landay)라고 불리는 시를 읊습니다. 란다이는 "비명이나 칼로 찌르는 것처럼" 짧고 율동적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한반도에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동시에 지구의 다른 쪽을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춘 인간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균형이 교양이고, 그것이 문화적 경쟁력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노르웨이 출신 여성 종군기자입니다. 2001년에 9·11 테러가 있었고, 그해 10월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테러 비호세력으로 지목하면서 대대적인 공습을 때립니다. 2002년 봄 사이에르스타드는 카불에서 책장수로 살아가는 술탄 칸의 집에 3개월 동안 머무릅니다. 이 책은 그때 목격한 것을 소설로 쓴 것입니다. 이 소설은 정치적 격변과 국가재건, 그리고 근본주의 이슬람 문화 밑에서 학대받는 여성 문제, 빈곤 문제를 소설 형식으 로 묘사합니다. 폐허가 된 카불의 방 네 칸짜리 아파트에서 술탄 칸은 홀어머니와 아내 둘, 그리고 아이 다섯과 동생, 사촌 두어 명을 데리고 삽니다. 가혹한 시련은 언제나 곁에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일을 하고, 돈을 모으고, 저잣거리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혼례를 준비하고, 혼례를 치르고, 경찰서와 감옥을 왕래하며 갈등하고 기뻐하고 슬퍼합니다. 국민의 4분의 3이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나라에서 책장수의 가족이란 원래가 드문 경우지만, 주인공 술탄 칸은 30여 년 간 서적 판매업에 종사했습니다. 무엇보다 문학과 책을 사랑했습니다. 공산주의자, 무자헤딘, 탈레반 같은 여러 정권의 하수인들은 차례로 쳐들어와서 책을 불태웁니다. 자신도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곤 했습니다. 그러나 책에 대한 열정을 굽히지 않습니다. 책을 숨기고, 감옥에서 살아나오고, 서점을 다시 세웁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교과서를 출판하려고 하고, 부르카를 감옥이라 규정하며 여성의 권리를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술탄 칸은 집안에서는 누구보다 억압적인 또 다른 가부장일 뿐입니다. 전통의 고수와 근대화 사이에 끊임없이 혼란을 겪어온 그들의 역사는 멀지 않은 과거에 있었던 한국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마치 증기탕에서 부르카를 뒤집어 쓴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부르카가 얼마나 머리를 죄고 두통을 일으키는지, 얼마나 밀폐된 공간인지, 얼마나 공기가 부족한지, 얼마나 금방 땀이 삐질삐질 나게 하는지에 대한 얘기입니다. 책을 덮고서 우리는 비로소 시원한 공기에 감사하고, 그것을 공유해야 한 다는 사명감을 느낍니다. 이 소설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인 청년이 탈레반 치하에서 친구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아프간을 찾는다는 내용의 『연을 쫓는 아이』란 베스트셀러에 필적합니다.(※1996년 9월 탈레반은 연날리기를 금지했었습니다.)(pp. 9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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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5-06
  • 【북토크】 글을 잘 쓰는 구체적인 방법
    글쓰는 것은 나의 오래된 관심사항이다. 기회 되는대로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는다. 이 책도 그러한 관심에서 봤다. 유익하다. 특별히 이문재 교수는 글쓰기에 대해 매우 잘 설명하고 있어 전문을 게재한다. 잘 읽어보면 많은 유익을 얻을 것이다. 이문재 (시인,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정확해야 아름다울 수 있다 왜 저널리즘적 글쓰기인가? 글쓰기의 장르는 매우 다양합니다. 사적인 글쓰기/공적인 글쓰기, 사적인 글쓰기: 일기, (자서전) 편지, 이메일, 공적인 글쓰기: 시와 소설, 희곡, 에세이, 기행문 등 문학적 글쓰기, 기사, 칼럼 등 저널리즘적 글쓰기, 광고 문안, 연설문, 안내문, 보고서, 기획서, 청원서 등등. 글쓰기는 더 이상 문인, 저널리스트 등 몇몇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미디어 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것과 아울러, '문자시대는 가고 영상 시대가 도래했다고들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봅시다. 영상 이미지 역시 최종적으로는 문자 언어로 번역되어야 이해와 소통이 가능합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와 같은 뉴 미디어 역시 문자 언어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언어를 버리지 않는 한 인간이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문자 문화는 영원할 것입니다. 언어는 대중의 합의에 의해 정착되고, 또 동시에 대중에 의해 변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어에 일정한 규범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언어가 대중(언중)에 의해 생성소멸하고 유통되고 기록(저장)되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말하기와 쓰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문자 시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문자는 영상 혹은 구술 문화에 의해 위축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문자 시대를 능동적으로, 그리고 당당하게 영위하는 교양인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교양인이라면, 적어도 대학교를 졸업한 교양인이라면 전공을 불문하고 정확한 글쓰기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의 개별적 삶은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행위의 연속입니다. 이 중에서 쓰는 행위가 가장 논리적이고 또 정확해야 합니다. 글쓰기의 일차적 목표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한 것을 그대로 쓰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무의식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생각 자체가 정돈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정돈하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은, 설계도도 없이 집을 짓는 경우와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이 잘 정돈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정확히 표현(건축으로 치면 시공 능력)할 수 없다면 글쓰기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갖고 있는 몇 가지 미덕 우리가 저널리즘적 글쓰기(기사 쓰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정확한 사실에 바탕해, 정확하게 표현하는 글쓰기의 모범이기 때문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자기 주장이 강하게 드러나는 칼럼(사설)이든, 쓰는 이의 관점이 가능한 한 배제되는(이른바 '객관적'이라는 스트레이트 기사에 이르기까지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무엇보다도 정확성이 강조됩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가장 적합한 글쓰기 방법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에서 아름다움은 미덕이 아닙니다. 미사여구는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데 있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수사는 사실(fact)을 표현하는 데 있어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를 주목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다른 글쓰기와 달리 취재와 구성이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설이나 드라마 시나리오를 쓸 때에도 취재 과정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널리즘에서처럼 구체적인 현장(인물)과 정확한 사실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저널리즘에서 활용하는 다양한 취재기법은 우리가 다른 장르의 글쓰기를 할 때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습니다. 기획서나 평가 보고서를 작성할 때에도,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꾸밀 때에도 저널리즘의 취재기법을 동원하면 글이 훨씬 입체적이고 풍성해집니다. 셋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사건이나 사고, 사태나 현상 등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고 심층적인 보도 못지않게, 남과 다른 시각에서 분석하려는 태도 역시 저널리즘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넷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독자 대중의 알 권리를 기본으로 하지만, 인물이나 사건 사고, 사태 등에 대한 독자의 기본적 궁금증을 풀어주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여론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사회 변화와 그 변화의 방향성을 파악하는 데 시야를 넓히고 시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다섯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표현뿐 아니라 전달에 큰 비중을 둡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새로운 지식과 정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독자(수용자)에게 전달되고 소통(커뮤니케이션)되지 않는다면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존재 이유가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의 일상적 삶은 우리가 저널리스트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정보를 송신하고 수신하는 환경 속에서 진행됩니다. 송신자이면서 수신자인 우리가 소통 능력을 키우지 못한다면, 그 삶은 심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소통 능력이 있는 시민들로 구성된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마지막으로,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우리는 저마다 '1인 미디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블로그에 이어, 사용자 제작 컨텐츠(UCC, User-created content)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듯이, 우리는 저마다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의견과 주장이 분명하다면, 그 사람은 어디에 있든, 그 의견과 주장을 어떤 미디어를 통해 전달하든 이미 저널리스트인것입니다. 지식정보사회를 살아가면서 단순한 지식 정보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지식과 정보를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동시에 지식과 정보, 의견을 개성적으로 생산하고 소통하기 위해 우리는 저널리즘적 글쓰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를 체득하면, 보고서뿐 아니라 한 권의 책을 집필할 때에도 시간과 노력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한 편의 기사와 한 권의 논픽션의 구조와 글쓰기 방법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기사, 노력한 만큼 잘 쓸 수 있다. 1. 저널리즘적 글쓰기의 유형: 스트레이트 기사, 인터뷰 기사, 스케치 • 분석 및 해설 기사(feature story), 르포르타쥬, 칼럼, 논설 등 2. 기사를 잘 쓰기 위한 몇 가지 방법: 1) 주제를 분명하게 설정합니다. 주제를 한 문장으로 만들 수 있다면, 절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가령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고 하면 각 분야에서한국을 이끄는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하는 기획일 것입니다. 기사의 주제는 분명한 계기가 있어야 하며, 독자에게 유익한 정보가 되어야 합니다. 정보성이 부족하다면 흥미를 끌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2) 주제를 뒷받침할 자료와 전문가, 현장(사례), 관련 기사를 찾습니다. 주제가 정해졌다면 가장 먼저 관련 기사를 검색해야 합니다. 한창 취재하다가 비슷한 기사가 몇 년 전에 나온 사실을 알고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관련 기사를 검토하다 보면, 주제를 바꾸거나, 취재 영역에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3)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역피라미드형: 전문(요약)중요한 사실-흥미 있는 이야기 순으로 구성합니다. 1900년대 초 미국의 AP통신이 개발한 기사 구조로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흔히 사용합니다. ◎피라미드형: 도입-중요한 사실-서스펜스 형성-클라이맥스 순입니다. 피라미드형은 피처 기사에서 자주씁니다. 독자의 관심을 계속 끌고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문학적이고 연대기적인 서술 방식입니다. ◎혼합형: 클라이맥스(요약)-서론-본론 결론 순. 4) 1), 2), 3)이 충분하게 준비되었다면, 기사 작성에 들어갑니다. • 간결하게 써야 합니다. 국내 신문은 일반적으로 5행 이상(65~75자)을 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단문을 쓰라는 것입니다. • 가능하면 구어체를 씁니다. 이야기하듯이 쓰라는 것입니다. ·주어와 술어를 분명히 합니다. • 매력적인 언어를 찾습니다. ・쉽게 씁니다. 좋은 기사의 첫째 조건은 쉬운 문장입니다. 이상은 언론학 입문서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권장하는 지침입니다. 필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기사를 잘 쓰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를 유념 해야합니다. 먼저, 앞에서 말한 대로 기사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십시오. 이것이 나중에 기사 제목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획과 취재의 매 단계에서 판단 기준이 됩니다. '민물낚시, 환경오염 주범'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한다면, 바다낚시의 오염 문제에 관한 자료는 읽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기획과 취재 단계에서 기사의 첫 문장, 즉 리드를 구상하십시오. 첫 문장이 결정되지 않으면 기사를 쓰기 어렵습니다. 취재를 충분하게 해놓고서도 첫 문장, 즉 도입부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기자들이 제법 많습니다. 어디 기사뿐인가요. 모든 종류의 글쓰기가 첫 문장 에서 좌우됩니다. 오죽하면, 작가들이 "첫 문장은 신의 선물이다" 라고 말하겠습니까. 필자는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기획이 정해지면 그때부터 제목과 첫 문장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시를 쓸 때에도, 산문이나 논문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복잡한 사안을 취재할 경우, 취재한 내용을 주위 동료나 가까운 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흥미로운 인물을 인터뷰했을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취재한 내용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상대방의 반응을 체크할 수 있습니다. 가령 상대방으로부터 더 취재해야 할 부분, 더 강조해야 할 부분 등 의외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넷째, 관련 서적을 찾으십시오. 인터넷 검색은 참고자료일 뿐입니다. 가장 새롭고 신뢰할 만한 정보와 자료는 책에 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필자는 특집 기사를 쓸 경우, 기사 검색을 한 다음 대형 서적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관련 서적 한두 권만 읽으면, 그 분야의 권위자가 누구인지, 그 분야와 관련된 최신 이론은 무엇인지 장악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취재해서 기사를 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떤 책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다섯째, 소설을 많이 읽고 영화, TV 드라마를 자주 보십시오. 소설은 어휘력을 풍부하게 해줄 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시각을 갖게 해줍니다. 문학 분야가 아니더라도 베스트셀러 책은 따라 읽어야 합니다. 관객이 많이 드는 영화와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베스트셀러 책과 영화, 드라마에서 한 줄 인용하면서, 혹은 등장인물을 끌고 들어가면서 기사를 시작하면 독자들의 눈길을 더 많이, 또 오래 붙잡을 수 있습니다. 기사의 궁극 목표는 좀 더 많은 독자들이 읽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늘 기사만 생각하십시오. 기자는 늘 기사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심지어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에도 기사를 생각해야 합니다. 카페 옆자리에서 얻어들은 한 마디가 대형 기사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찬반양론이 팽팽한 기사일 경우, 가족이나 친구들의 의견을 청취해보면, 취재나 기사 작성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사는 혼자 쓰는 것이 아닙니다. 기사가 아니라 다른 장르의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고 읽고 느끼고 생각한 만큼 글은 달라집니다. 개성적 글쓰기를 위한 기초체력 다지기 정확한 문장이 관건입니다. 정확하지 않은 문장은 특히 저널리즘에서 문장이 아닙니다.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에서도 정확성이 우선입니다. 아름다운 문장은 그 다음입니다.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하는 작가는 아름다운 문장, 개성적인 글을 쓰기 어렵습니다. 정확하고 개성적인 쓰기를 위해서는 '기초체력'이 필요합니다. 글쓰기를 위한 기초체력을 다지는 필자의 체험적 방법론을 소개합니다. 1. '나쁜 버릇'부터 찾는다 어떤 글이든 좋습니다. 자기가 쓴 글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자주 나타나는 단어나 표현이 발견됩니다. 사람마다 특유의 말투(말버릇)나 몸짓이 있듯이 글에도 특유의 '버릇'이 나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것이다'라는 종결어미를 자주 씁니다. '~것이다'는 가능하면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글 버릇을 찾아내는 눈을 가지고 있다면 가능성이있습니다. 다음으로, 수식어가 많은 문장, 접속사가 많은 문장, 나열이 많은 문장이 나쁜 문장입니다. 자기 글에서 나쁜 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글을 잘 쓰는 사람입니다. 자기 글에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는 수준까지 빨리 올라가야 합니다. 자기 글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문제점만 제거해도 글쓰기는 순식간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됩니다. 자기 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른다면, 정말 큰 문제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자기 글을 들여다보십시오. 자기가 쓴 글들을 '원수가 보내온 편지'라고 생각하고 여러 차례 읽어보십시오. 버릇이 발견될 때까지 읽으십시오. 2.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찾아라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기자나 작가의 글을 집중적으로 읽으십시오. 글쓰기의 모델을 하나 설정하는 것입니다.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은 반드시 좋아하는 가수가 있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가 지망생은 필사하고 싶은 선배 소설가가 한둘은 꼭 있습니다. 좋은 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그대로 베껴 쓰십시오(필사). 외우면 더 좋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적극 모방해보십시오. 그 과정에서 글쓰기 수준이 몰라보게 향상됩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국내 소설가 대부분이 선배 작가의 소설을 필사하면서 습작기를 거쳤습니다. 추천하고 싶은 필자 '모델'은 문인 이외에, 혹은 문인이면서 매체에 자주 기고하는 분들입니다. 제가 추천하고 싶은 분들은 도정일(문학평론가),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 고종석(소설가 겸 언론인), 김훈(소설가 겸 언론인). 배병삼(정치학 및 동양학), 한형조(동양철학), 송호근(사회학), 고미숙(문학평론가),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등입니다. 이외에도 좋은 필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3. 새롭지 않으면 쓰지 말라 저널리즘의 생명은 새로움입니다. 새롭지 않으면 뉴스가 아닙니다. 저널리즘이 아니라도 그렇습니다. 모든 글쓰기는 새로워야 합니다. 사실이나 의견에서 새로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표현이라도 새로워야 합니다. 새롭지 않다면 신기하거나(의외성) 흥미로워야 합니다. 새로움, 의외성, 흥미, 이 세가지 중 한 가지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글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4. 자세히 관찰하라 관찰은 모든 글쓰기의 스타트 라인입니다. 사물이든 사건이든 인물이든자 세히 관찰하지 않고서는 정확한 글쓰기가 불가능합니다. 관찰이 부정확하면 사실관계가 흔들립니다. 정확히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오감 가운데, 시각이 특히 부정확합니다. 주변 환경에 따라 착시 현상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상기해보십시오. 관찰은 단지 시각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많이, 그리고 정확히 느끼는 것도 관찰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책읽기, 영화 감상, 미술 감상 등도 관찰입니다. 관찰은 대상에 대한 집중입니다.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선입견을 버리고, 현상학적으로 말하자면 판단을 중지하고) 대상에 몰입했다가, 다시 대상으로 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상상력은 이 관찰 단계에서 나옵니다. 관찰 훈련의 첫 단계는 자기가 본 것으로 소리 내어 말해보는 것입니다. 관찰 대상이 인물이라면, 머리 모양과 색깔, 길이에서부터 이목구비를 거쳐 구두까지 관찰하면서 하나하나 말해보십시오. 컴퓨터나 텔레비전, 화분, 식탁, 자동차 실내 등 늘 마주치는 대상을 하나 정해서 소리 내어 하나하나 관찰해보십시오. 그동안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것이 발견입니다. 낯익은 것에서 낯선 것을 찾을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최고의 글쓰기 재료입니다. 5. 메모하고, 메모하고 또 메모하라 기억력이 남다르다고 해도, 메모를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뛰어난 작가는 물론이고 예술가, 심지어 기업의 CEO들도 메모를 자주 합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메모광입니다. 인간이 하루에 접하는 새로운 정보(자극)는 수십만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 하루를 돌이켜보십시오. '오늘 내가 새로 느낀 것, 새로 발견한 것'을 떠올려보십시오. 거의 없을 것입니다. 주머니 혹은 핸드백에 작은 수첩과 필기구를 반드시 챙기십시오. 수첩과 필기구를 챙기는 습관이 들었다면, 글쓰기를 위한 가장 필수적인 요건을 갖춘 것입니다. 저는 화장실에도 연필과 포스트잇을 갖다 놓습니다. 주머니에 메모지와 볼펜이 없으면 산책도 하지 못할 만큼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천 번 새로운 생각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글쓰기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좋은 글은 메모지에서 나옵니다. 메모지가 '상상력 발전소'입니다. 개성적인 글쓰기를 위한 세부 지침 1. 나로부터 시작하라 저널리즘적 글쓰기, 특히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나'는 차가운 전달자입니다. 스트레이트 기사에는 글쓰는 사람의 주관이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활자매체의 기사는 연성화하고 있습니다. 피처 기사, 칼럼 등은 대단히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문체를 구사합니다. 기사작성 연습을 하고 싶다면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서전을 써 보거나, 자기가 자기를 인터뷰하는 것입니다. 가족이나 친구를 소개하는 글도 좋은 훈련이 됩니다. 자기가 사는 마을(아파트)을 취재해 사진과 곁들여 기사를 써보는 것도 훌륭한 저널리즘적 글쓰기입니다. 시나 소설을 쓰기 원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쓰십시오. 문학적 글쓰기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 가운데 하나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서 출발하십시오. 나에 대해, 나의 가족과 친구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잘 알고 있는 소재를 글로 쓸 때,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나'에 대한 글쓰기는 자기 삶을 성찰하는 진지한 계기를 제공합니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이 같은 인문학적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은 글쓰기 말고 거의 없습니다. 2. 반복하지 말라 반복은 강조할 때 말고는 피해야 합니다. 반복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표현의 반복과 내용의 반복이 그것입니다. 같은 단어, 같은 표현을 반복하지 마십시오.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유의어를 쓰십시오. '그녀는 아름다운 숄을 두르고, 아름다운 가방을 들었으며, 아름다운 마을에 산다. 이 문장에서 '아름다운'은 반복될 뿐만 아니라, 정확하지도 않습니다. 글쓰기의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내용의 반복입니다. 중언부언하지 마십시오. 같은 내용(견해, 정보, 지식......)이 반복되면 독자는 냉정하게, 즉각 눈을 돌립니다. 친구와 이야기할 때를 떠올려보십시오. 어제 한 얘기를 오늘 하면 친구는 즉각 이렇게 나옵니다. "그거, 어제 들은 얘기야."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3. 한 문장에는 하나의 정보만 담아라 이것은 문장을 짧게 쓰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한 문장에는 하나의 정보, 한문단에도 하나의 정보군을 담는 것입니다. 한 문장에 두 개 이상의 정보를 담는 순간, 문장은 길어집니다. 한 문단에 두 개 이상의 정보군을 담으면, 복잡해지기 때문에 독자가 이해하기 힘들어집니다.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 또는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한 문장, 하나의 정보' 원칙에 따라 글로 써보십시오. 처음에는 대단히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몇 번 고쳐 쓰다보면, 문장을 짧게 쓰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할수 있을 것입니다. 4. 접속사를 쓰지 말라 통학 또는 통근 과정을 '한 문장, 하나의 정보' 원칙에 따라 쓰다 보면, 수시로 접속사가 끼어들 것입니다. 접속사 없이 쓰려고 애써보십시오. 최근에 읽은 소설 가운데 접속사가 거의 ('전혀' 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없는 소설이 있습니다.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인데, 접속사에 유의하며 읽어보십시오. 매우 흥미로운 글읽기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접속사는 글 쓰는 이의 마음속에 있어야 합니다. 특히 연결형, 나열형 접속사를 피하십시오. 5. 나누고 묶어주어라 기사를 쓸 경우, 다양한 정보를 한꺼번에 제공해야 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럴 때는 유사한 것끼리 묶어줘야 독자가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음식 종류를 소개한다면, 국적별 혹은 재료별, 계절별 등으로 나누어 묶어줍니다. 6. 병치할 때 조심하라 같은 기능을 가진 단어, 구, 절 등이 나란히 놓일 때 자주 오류가 나타납니다. '사과와 큰 배' '철수는 중학생이고 영희는 공부를 잘한다'와 같은 문장이 의외로 많습니다. '사과'라는 단어와 '큰 배'라는 구는 병치하면 안 됩니다. 단어는 단어끼리, 구는 구끼리 병치하십시오. '사과와 배' '작은 사과와 큰 배'가 적확한 표현입니다. 앞의 문장은 '철수는 중학생이고, 영희는 초등학생이다로 써야 합니다. '중학생' (단어)과 '공부를 잘한다' (구)가 나란히 놓이면 대단히 어색합니다. '30-3-30 법칙'을 명심한다 언론인들은 30-3-30 법칙'을 자주 언급합니다. 여기서 30. 3. 30은 각각 30초, 3분, 30분을 일컫습니다. 독자들이 기사를 읽을 때, 처음 30초 동안은 제목이나 부제, 사진, 그래픽 요소, 기사의 도입부 등을 살펴본다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처음 30초 안에 기사를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만일 읽기로 마음먹었다면 다음 3분 동안 기사의 도입부를 읽습니다. 그리고 도입부가 흥미롭다면 30분 동안 기사를 끝까지 읽는다는 것입니다. 기자와 편집자는 처음 30초를 3분으로 늘리고, 다시 3분을 30분으로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기사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든 글이 제목과 도입부에서 결정납니다. 시처럼 짧은 글에서도 제목이나 첫 연이 진부하면 독자들은 눈을 돌려버립니다. 소설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보고서나 논문도 마찬가지입니다. '30-3-30 법칙'은 첫 문장에 목숨을 걸라는 저널리즘적 글쓰기의 핵심을 압축하고 있는 법칙입니다. 이문재. 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경희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시사저널 취재부장, 문학동네 편집주간을 역임했고, 현재 <시사IN> 편집위원, <문학동네〉 편집위원,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 등이 있다(pp.197-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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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 “흥청망청” 108회 선관위... 명분없는 돈 낭비
    본 기사는 교회발전연구소 대표 이능규 목사에게 모 인사가 108회 선관위(위원장 권순웅 목사)에 대해 제보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기사임을 밝힌다. 제보 내용에 따르면 선관위가 불필요한 돈을 낭비하고 있다. 제108회기 선관위는 공정선거감시단 해외 활동에 이미 많은 경비를 집행했다. ▲전국장로회연합회 임역원수련회(일본) : 고정식, 손정호, 김삼주, 신덕수, 한기영(750만원 집행) ▲농어촌교역자부부수양회(다낭) : 권순웅, 신덕수, 지동빈, 임종환, 최병도(613만원 집행) ▲전국교역자하기수양회(필리핀) : 전웅구, 김상원, 유병희, 한기영, 이상돈(599만 5천원 예산). 이때 위원장 권순웅 목사와 서기 한기영 목사가 강사를 맡았다고 한다. 현재 바뀐 선거규정에 따라 후보자는 행사에 참석할 수 없다. 그런데 선관위 공정선거감시단은 누구를 감시하기 위해 해외 행사에 동행하는 것인가? 제보자는 “돈**”이라는 격한 표현을 사용했다. 또한 선관위는 민찬기 목사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비로 5천 5백만원을 지출했다. 선관위원들이 1차 투표해 7대7로 나왔다면 의견이 팽팽하다는 것인데 굳이 다시 투표해 7대8로 만든 것이 화근이다. 증경총회장단이나 실행위원회에 넘겨 자문을 구했다면 굳이 총회 돈을 지출할 소송에 휘말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감사부는 107회기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배광식 목사)에 대해 특별재정감사를 하고 있다. 어제는 서기와 회계를, 오늘은 위원장과 심의분과장을 부른다. 안건은 선관위가 재정을 과잉지출했다는 것이다. 모 선관위원은 자기들은 비용을 아껴서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기에 특별재정감사를 받는 것이다. 앞으로 108회기 선관위도 감사부에 의해 특별재정감사를 받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이 악순환을 끊어야한다. 선관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때다.
    • 오피니언
    • 칼럼
    2024-05-03
  • 【북토크】 가수 장기하의 깨달음
    가수 장기하를 좋아한다. 노래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의 대중적인 첫 노래 “싸구려 커피”, “달이 떠오른다, 가자” 등은 신선했다. 읽을 책들을 검색하다 보니 그가 몇 년 전에 쓴 것이 있어 대출해서 봤다.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첫 장인 ‘안경과 왼손’은 주어진 환경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돌아본 후 감사하는 내용이다. 읽어볼만해 전문을 소개한다. 안경과 왼손 얼마 전 안경을 잃어버렸다. 매우 아끼는 안경이었다. 아니, 아낀다는 표현으로도 모자란다. 이삼 년 전 그 안경을 산 이후로는 오직 그것만 써왔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있을 만한 곳을 전부 다 여러 번씩 싹싹 뒤져봤지만 찾지 못했다. 결국 예전에 썼던 다른 안경을 쓰고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 이삼 일 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마음을 털어버렸다. 그래, 그 안경이랑은 여기 까지였나보지 뭐. 나는 국소성 이긴장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다. 해괴해 보이는 이름이지만 의미는 간단하다. '국소성'이란 특정 부위에 나타남을, '이'는 이상함을, '긴장'은 말 그대로 긴장을 뜻한다. 한마디로 특정 부위가 이상하게 긴장된다는 얘기다. 이 병명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는 '이'다. '이'자가 들어간 병을 선고받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런 상황이다. 몸이 안 좋다. 병원을 찾아가 묻는다. "선생님, 저 왜 아픈건가요?" 의사가 답한다. "그러게요. 이상하네요." 그렇다. 내 병은 원인도 치료법도 알려지지 않은 희귀병이다. 이 병이 처음 생긴 것은 대략 십오년 전쯤으로, 군악대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눈뜨고코베인'이라는 록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었다.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드럼 하나로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연주를 잘하는 사람, 즉 프로 드러머가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외의 진로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학교 공부는 최소한으로 하고 드럼 연습과 밴드 활동 위주로 생활했다. 그러다보니 군복무를 시작도 하지 않은 채 대학 오 년 차를 맞았고, 더이상은 입대를 미룰 수 없게 되었다. 내 선택은 당연히 군악대였다. 군대에 있는 동안 손발이 녹슬면 큰일 아닌가. 일반 부대는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군악대는 록 연주만 잘한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클래식 타악, 특히 행진곡풍의 연주에 능통해야 했다. 자신은 있었다. 이미 연습이라면 많이 해온 터였기 때문이다. 좀 다른 장르의 연주라고 해서 못 해낼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시험을 대비해 맹연습에 돌입했다. 이삼 개월쯤 지났을 때 복병이 나타났다. 연습만 하려고 하면 내 의지와 관계없이 왼손이 꽉 쥐이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드럼 연주의 기본은 그립이다. 누가 툭 치면 놓쳐버릴 듯 살며시 스틱을 잡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만들어야 빠르고 정확한 연주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꾸 나도 모르게 스틱을 힘껏 잡게 되고 그것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연습하다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스틱을 집어던진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결국 군악대는 포기했다. 치료법도 알 수 없고 상태가 호전될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프로 드러머의 꿈도 함께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리 절망스러운 단념은 아니었다. 내 생각의 흐름은 이랬다. '하긴 군악대의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연주하는 게, 내가 멋있는 음악을 하는 데는 오히려 해가 될지도 몰라. 멋있는 음악이라... 그래, 생각해보면 프로 드러머가 되는 것 자체가 멋있는 음악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겠네. 연주로 먹고살려면 돈 되는 음악을 해야 하는데, 내가 지금 멋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음악 중에 돈 되는 게 하나라도 있나? 그리고 나는 우리 밴드 음악이 제일 멋있는데 그걸로 돈을 벌어본 적도 없잖아? 애초에 음악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였어!'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프로 연주자가 아닌, 돈은 안 돼도 '멋있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일반 부대에 입대했다. 제대한 후 나는 그 '멋있는' 뮤지션이 되는 일을 실행에 옮겼다.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한 상태에서, 내가 싱어송라이터로서 이끄는 새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한 것이다. 최소한의 돈과 최대한의 시간을 확보해 자유롭게 음악활동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곡은 군복무중 짬짬이 만들어뒀었다. 물론 큰 인기를 얻으리라는 기대는 전혀 없이 만든 노래들이었다. 눈앞에 있는 관객들만은 확실히 재밌게 해주겠다는 생각이 다였다. 그런데 터졌다. 소위 '대박'이었다. 활동을 시작하고 일 년이 지나기도 전에 전 국민적 히트곡을 보유한 밴드가 된 것이다.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순조로웠다.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왼손에 힘이 들어가는 증상이 기타를 연주할 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 증상이 신기했던 건 유독 드럼 연주를 할 때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다른 일을 할 때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물론 기타 연주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군복무중에도 생활관에 비치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만들었고, '장기하와 얼굴들' 첫 싱글을 녹음할 때도 기타는 내가 다쳤으며, 밴드 활동 초기에는 공연을 할 때도 절반 정도의 곡에서는 내가 기타를 잡았다. 그런데 급격하게 치솟는 인기를 실감하며 공연을 이어가던 어느 날, 기타를 연주할 때도 왼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기타도 포기했다. 이번 단념은 군악대 때와는 달리 좀 절망스러웠다. 공연에서 기타를 연주하지 않기로 했음은 물론이고, 평소에 혼자 치는 것도 거의 못하게 됐다. 늘 자유자재로 하던 기본적인 플레이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니 짜증이 치밀었다. 자연히 심심풀이로 기타를 잡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중학교 때 이후로 그때까지 줄곧 기타는 나의 가장 좋은 취미 중 하나였다. 집에 있을 때면 침대에 누워 기타를 배에 얹고 아무렇게나 퉁겼다. 그러면서 멜로디를 이리저리 흥얼거리다보면 이따금씩 노래가 만들어지곤 했다. 그런 일상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날아가버렸다. 게다가 이번에는 증상이 연주에만 국한돼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일상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곧 타자를 치는 것도, 단추를 잠그는 것도, 왼손을 써야 하는 어떠한 일도 예전만큼 쉽게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로부터 십 년이 흘렀다. 그런데 그 십 년을 돌이켜보면, 이 병이 내게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사실 병에게 엎드려 절하고 싶을 지경이다. 프로 드러머의 길을 포기함으로써 결국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타 연주를 포기한 것 역시 내게 두 가지 커다란 선물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새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 형을 영입한 것, 둘째는 내가 무대에서 악기 없이 자유롭게 퍼포먼스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장기하와 얼굴들’의 활동이 내게 가져다준 희열은 말도 안 되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증상도 아주 조금씩 좋아져 이제는 거의 다 나았다. 지금도 약간의 느낌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일상에서 그것을 의식하게 되는 일은 드물다. 기타와 드럼도 취미 정도로는 다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 연습을 안 했으니 남들 앞에 뽐낼 만한 연주력은 당연히 아니지만, 사실 이제는 그런 능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좋은 연주자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증상이 가장 심했을 때를 떠 올리면 집에서 혼자 재밌게 연주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지금도 이 병의 원인은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듯하고, 물론 나도 아직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이렇게 추측할 뿐이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과도한 것을 강요했고, 몸이 그만두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충분히 쉬게 해주었으며, 그랬더니 시간을 두고 차츰 회복되었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그리고 형체가 없긴 하지만 능력도 마찬가지다. 어제까지 당연히 할 수 있었던 일을 오늘 갑자기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무척 괴롭긴 했지만, 결국 다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 능력은 여기까지인가보다, 하고.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 맞춰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그러고 나면 그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다른 길이 열리곤 했던 것이다. 안경은 며칠 뒤에 소파 밑에서 찾았다. 전날 술에 취해 소파에서 잠들었고, 안경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는 과정에서 소파 아래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거실에서 잠드는 일이 거의 없다보니 그곳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먼지 구덩이 속에 얌전히 놓인 안경을 발견한 순간, 그야말로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많이 아끼는 안경이라 해도, 물건 하나로 그렇게까지 기쁠 수 있다싶었다. 모르긴 해도, 깨끗이 포기했었기 때문일 거다(pp.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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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5-02
  • 【단상】 부총회장 선거, 축제가 싸움판으로
    지난 4월 25일 오전 11시 참좋은교회(이윤찬 목사 시무)에서 대구교직자협의회 제31회 정기총회가 있었다. 이승희 증경총회장의 개회 예배 설교 후 합심기도 시간에 경북교직자협의회 대표회장 강전우 목사가 ‘총회와 영남지역을 위해서’ 기도할 때 부총회장 자격 문제로 소송이 붙은 총회를 염려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소송 관계자인 부총회장 후보 민찬기 목사나 장봉생 목사의 마음은 어떨지 모르나 총회 회관에서 먼 경상도 지역에서도 현 사태를 매우 안타깝게 여기며 탄식으로 기도하고 있다. 아마 이 사태를 지켜보는 대부분의 총대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한 사람의 부총회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물질이 필요하다. 노회와 협의회, 총회 등에서 오래 봉사하며 자신을 알려야한다. 이에 많은 시간이 든다. 그리고 물질로도 많이 섬겨야한다. 그래서 아무나 부총회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시간과 물질로 섬겨온 부총회장 후보들은 모두 총회의 귀한 자산이다. 바람직한 것은 단독 후보로 추대되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경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친했던 사이도 서먹해지거나 “원수” 사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곽선희 목사는 운동을 할 때 서로 마주보는 것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탁구나 테니스나 서로 마주보고 하다보면 감정 싸움이 될 수 있기에 자기는 각자 실력으로 승부하는 볼링을 한다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오래 세월 총회를 섬겨온 민찬기 목사나 장봉생 목사는 현재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내리 누르고 이겨야할 경쟁 상대로 보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런 면에서 선거란 참으로 잔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민찬기 목사 소속 임원회가 민찬기 목사의 후보 자격에 대해 물었을 때 장봉생 목사 소속 노회도 임시노회를 열어 부총회장 출마 자격에 대해 선관위에 질의했다. 선관위가 이 문제를 다룰 때 투표에 처음에는 7:7 동수가 나왔다. 이어 재투표하여 7:8로 세 번 출마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 지나간 일이지만 의견이 7대 7로 나뉘었다는 것은 선관위원 내에서도 의견이 팽팽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문제를 바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좀더 시간 여유를 두고 처리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증경총회장단의 의견을 듣는다든지, 실행위원회에서 의견을 구했다면 모양세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속전속결로 재투표해 7:8로 세 번 출마 불가로 정했다. 그러자 민찬기 목사측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소송을 했고, 소속 노회에서 부총회장 후보로 추천을 받았다. 세상 법정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두고보면 된다. 그런데 성경은 교회 문제를 세상 법정에 끌고가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고전6:1-7]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새로이 총회를 섬길 일꾼을 뽑는 총회 선거가 축제가 아니라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사법의 판결을 받아야하는 싸움판이 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 오피니언
    • 논단
    2024-04-26
  • 취재 기자를 내쫓는 노회들...무엇이 두려운가?
    봄 정기노회가 열리는 계절이다. 서울에서 먼 지방의 몇몇 노회를 취재갔다. 그 중 2개 노회에서 “내쫓김”을 당했다. 이리노회는 북일교회 문제로 회원 호명 때부터 시끄러웠다. 결국 노회원들간에 고성이 오갔다. 이런 가운데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거칠게" 요구했다. 결국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 충청노회도 전 총신대총장 김영우 목사 피소건에 대해 다루며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험악하게” 요구했다. 결국 본당 중이층으로 쫓겨갈 수 밖에 없었다. 기자는 사실을 취재하고 알리기 위해 그 현장에 가 있는 것이다. 북일교회 문제는 대부분의 총회원들이 알고 있을만큼 큰 이슈이다. 당연히 기자들이 가서 취재할 수 밖에 없는 사항이다. 기자는 총회원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대신해서 그 현장에 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기자들을 내쫓는 것인가? 그것이 과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는가? 기자가 보면 안될만큼 감춰야할 문제가 있는가? 사실을 사실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 없는 노회는 취재간 기자들을 반기며 좋게 기사를 써서 노회를 잘 홍보해 달라고 부탁한다. 기자로서도 기분좋은 일이다. 반면 문제 있는 노회는 기자를 내쫓는다. 마치 잡상인 취급을 한다. 부득이 기자를 내보낼 필요가 있다면 “정중하게” 요청했으면 한다. 같은 합동측 목사한테 그렇게 함부로 해서 되겠는가? 앞으로도 “문제 있는” 이리노회와 충청노회 “사태 추이”에 대해 예의주시할 것이다.
    • 오피니언
    • 칼럼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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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 연등회와 부활절 퍼레이드
    긴 봄비가 내리고 있다. 그동안 메말랐던 대지를 적셔주는 반가운 비다. 이 비는 26일 시작해서 29일까지 내릴 예정이다. 27일 토요일은 사월초파일이었다. 전날부터 비가 내려 연등행사를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검색해 보니 지난 20일 벌써 했다. 다른 종교 기념일에 관심이 없었기에 생겨진 착각이다. 과거 5년간 종로에 있는 승동교회에서 부목사로 있으며 매년 벌어지는 초파일 연등행사를 봤다. 가서 행사를 봤다는 것이 아니라 행사로 인해 벌어진 교통 통제의 불편함을 봤다는 것이다. 차선을 통제하고 벌이는 축제로 인해 벌어지는 교통 혼잡은 말로 다할 수 없다. 그래서 ‘도대체 왜 자기들의 행사를 대중 교통을 통제하면서까지 하나?’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이 그곳에서 5년을 보냈다. 부처가 자기 탄생일이라고 이렇게 민폐를 끼쳐가며 하는 행사를 좋아할까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그리고 역으로 올해 처음 있었던 부활절 퍼레이드를 생각했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여 이르는 말로, 남은 비난하지만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을 일컫는다. 목사지만 부활절 퍼레이드 행사에 대해 결코 내로남불할 생각은 없다. 올해 뜬금없이 한교총에서 4월 9일 주일 부활절 오후 2-4시에 광화문 광장을 출발해 세종대로를 따라 서울광장까지 간 뒤 광화문 광장으로 돌아오는 『2023 부활절 퍼레이드』를 개최했다. 퍼레이드는 언약궤 행렬, 교단 대표 행진, 십자가 조형물 이송 등과 타악기 밴드, 캐릭터 퍼포먼스, 풍물놀이단 공연에 이어 K-POP, 트로트 콘서트로 진행됐다고 한다. 당일 기자는 다른 행사를 취재하느라 현장에 가지는 못했다. 이 행사의 실무대회장을 맡은 소강석 목사는 이 행사를 정례화하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론부터 말해서, 기자는 이 행사의 정례화에 반대한다. 일차적으로, 기독교가 그동안 이런 행사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이런식으로 알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하지 않은 것이지, 못해서 안한 것이 아니다. 이런 구성의 행사를 한다고 해서 예수님의 부활이 축하되는가? 행사의 마지막이 “K-POP, 트로트 콘서트”였다면 “용두사미”아닌가? 또한, 거룩한 주일에 각자의 교회에서 부활절 예배와 행사를 하는데 굳이 서울 한복판에 성도들을 불러모아 이런 행사를 할 필요가 있는가? 합동교단은 주일성수를 위해 별도의 행사를 금하고 있지 않은가? 그동안 소강석 목사는 합동 교단 증경총회장이면서도 주일에 트로트 콘서트 등 많은 행사를 하면서 우려를 자아냈다. 이제 곳곳에서 주일에 임직식 등을 하면서 소강석 목사를 핑계되고 있을 지경이다. 그러나 헌법은 주일에는 임직식 등의 행사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교통통제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는 행사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교통 통제로 불편을 겪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예외없이 쌍욕이 나온다.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가 있는 사람들이 기독교가 부활절 행사를 한다고 교통 통제를 하면 좋은 소리를 하겠는가? 가뜩이나 살기 힘든 서민들의 발을 묶어 놓고 하는 기독교 행사가 과연 기독교 전파에 도움이 되겠는가? 결국, 『2023 부활절 퍼레이드』는 그 행사를 원하는 “그들”만의 행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불교 연등행사는 저녁 시간 어두운 거리를 밝히는 불빛으로 인해 볼거리라도 있어 관광객의 발길을 잡지만 한낮에 하는 『2023 부활절 퍼레이드』는 공공의 도로를 점거한 그들만의 행사로 끝난 것으로 보인다. 부활절 퍼레이드는 불교 연등회의 초라한 "기독교 버전"인가? 과연 내년에도 또 할려나? 답은 실무대회장이었던 소강석 목사에게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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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28
  • 사조직 『합동포럼』, 또 하나의 총회인가? 총회임원 등용문인가?
    요즘 총회의 핫 이슈는 두 개라 생각한다. 첫째, 작년 총회 때 1,600여명의 총대에 의해 폐지된 구 충남노회가 부활을 시도할려다가 지지부진한 것. 둘째, 구 충남노회 소속 천안중부교회가 점점 아수라장이 되가는 것이다. 그동안 본지 빛과소금뉴스는 구 충남노회 부활과 천안중부교회 사태를 꾸준하게 연속기사로 쓰고 있다. 앞으로 3개월 남짓남은 108회 총회에서 이 두 문제는 핫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총회는 총회장과 충남노회폐지후속처리소위원장의 이름으로 충남노회 정상화를 위한 소집 공문을 노회장 고영국 목사와 서기 이상규 목사에게 발급했다. 그러나 새로 노회를 구성하기로한 53개 교회는 전혀 동조하고 있지 않아 유야무야됐다. 어르고 달래도 그동안 너무나 시달렸기에 더 이상 함께 하고자 할 마음이 1도 없는 것이다. 결국 “충남노회 정상화”는 안하니만 못한 일이 되고 말았다. 이 와중에 제일 큰 피해를 본 것은 천안중부교회이다. 2년여간 내분을 하고 있는 가운데 3월 발급된 공문을 근거로 이상규가 임시당회장으로 가서 교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 결국 자신이 담임이 되고자하는 욕망에 눈이 어두워 그렇게 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사태에 한 사조직인 합동포럼에 같이 있는 인물들이 관련되어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충남노회폐지후속처리소위원회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위원장 김상현 목사, 부위원장 지동빈 장로, 서기 고광석 목사, 회계 원태연 장로, 총무 박태천 목사, 전문위원 주진만 목사. 그리고 천안중부교회와 깊이 관련된 인물이 둘 있다. 임시당회장을 자처하는 이상규와 주일 설교를 하고 있는 주진만이다(이 둘은 5월 28일 공동의회를 통해 한 명이 담임 청빙될 예정이다. 그러나 법원은 공동의회를 금지하는 가처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전 행태를 보아 강행할 것으로 보여진다) 만들어진지 얼마 안된 합동포럼이라는 한 사조직이 최근에 기독신문에 처음으로 임원조직광고를 냈다. 구성 면면을 보면 참으로 화려하다. 증경총회장들, 현 총회임원들, 상비부 임원들, 총회 임원 출마 예정자 등등. 마치 또 하나의 총회를 보는 듯하다. 이 사조직이 자신있게 기독신문에 광고를 낼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세력을 과시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앞으로 총회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조직에 가입해야할 것 같은 유무형의 압박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기, 차차기 목사 부총회장으로 거론되는 인물들도 그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구성원들 중에 총회적으로 큰 물의를 끼치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조직에서는 그냥 그들을 방치해 둘 것인가? 물의를 끼치는 인물을 제재하거나 내보내는 규정이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그 인물들에게 어떤 제재도 하지 않고 그냥 간다면 결국 합동포럼이라는 사조직도 함께 동일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권순웅 총회장은 지난 3월 14일 총회회관에서 「샬롬부흥 클린개혁 성명서」를 발표했다. 둘째는 총회본부에 대한 클린개혁이며, 셋째는 총회산하 교회의 윤리에 대한 클린개혁이고, 첫째는 총회 선거운동의 클린개혁이다. 다음은 첫째 항 전문이다. “총회선거 입후보자는 총회 선거관리법을 준수해 주기 바랍니다. 금권선거 및 부정 선거를 금합니다. 후보자들의 선거운동은 선거관리위원회뿐 아니라 전 총회가 주시하며 부정선거를 추방할 것입니다. 입후보자는 정책과 인물중심으로 허락된 범위 안에 운동을 하고 전 총회 구성원은 샬롬의 개혁적 정신으로 선거에 참여해 주십시오. 먼저 투명하고 깨끗한 선거문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총회를 섬길 일꾼을 선출하는 과정을 보면 임원선거에 출마 의지를 보이는 인물들을 대상으로 각 총회 내에 각종 조직의 수련회, 세미나, 기도회 모임의 강사초청을 통해 후원금, 협찬비를 요구하는 관행을 근절시켜야 합니다. 또 총회 선거가 일부 사조직에 의해 지나치게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우려할 일입니다. 이에 각종 사조직의 선거 개입은 단절 되어야 하고, 총회 정치 개입을 차단해야 합니다. 총회는 총회 선거관리위원회가 공명선거 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총회임원회는 허락된 권한을 십분 발휘하여 클린개혁을 시행하겠습니다” 총회장은 사조직의 선거 개입은 단절 되어야 하며 차단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총회에 임원으로 출마하는 자들이 지난 4월 20일 대전판암교회에서 있었던 합동포럼 모임에 가서 인사를 했다. 이것은 총회장이 금지한 사조직의 선거개입으로 볼 수 있지 않는가? 아니라면 오해받을 짓을 해서는 안된다. 사조직 합동포럼에게 요구한다. 구성원 중에 현재 총회적으로 물의를 끼치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 합당하게 제재하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제 식구 감싸기”나 하는 그렇고 그런 사조직이라고 평가될 것이다. 또한 총회임원 등용문의 역할을 하지 말기 바란다. 무슨 의도로 합동포럼을 만들었는지는 모르나 보여지는 모습은 총회임원 등용문처럼 보인다. 그러니 총회 임원 후보들이 그 자리를 찾아가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과거 군대내 “하나회”처럼 총회내 또 하나의 사조직이 되는 것이다. 하나회가 선후배로 서로 끌어주며 주요 보직을 차지해 결국 군사반란(쿠데타)을 일으켜 전두환과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던가? 총회장이 총회 선거운동의 클린개혁을 목 터지게 외쳤다. 그러나 “0야 짖어라 기차는 간다”는 심보로 며칠 후 버젓이 합동포럼 광고를 교단지에 광고했다. 합동포럼은 총회와 상관없는, 총회장의 말도 대놓고 무시하는 막강하고 막나가는 사조직인가? 그 속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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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3-05-27
  • 총신과 부전교회, 그 깊고 아름다운 인연이여!
    5월 25일 오전 11시, 총신대학교 종합관 백남조홀에서 박성규 박사가 22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이날 재학생들을 비롯해 많은 축하객들이 홀을 가득 채우고 박 총장의 취임을 축하했다. 1부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오정호 부총회장의 설교도중 크게 “아멘”하는 중년 여성들의 목소리가 홀 뒷자석에서 자주 들렸다. 이때 오 부총회장은 그들이 부전교회 성도들이라는 것을 밝히고 아침 일찍 버스를 대절해 이 자리에 참석했다고 깊은 고마움을 표시했다. 부전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박 총장이 2006년 3월부터 2023년 4월까지 17년간 담임했던 교회이다. 박 총장은 부임해서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고 또 크게 교회를 건축했다. 그동안 안정적으로 목회를 했으며 3년만 있으면 원로목사가 될 수 있는데 하나님의 또 다른 부르심에 순종해 담임자리를 내려 놓았다. 그리고 압도적인 표차로 총장에 당선됐다. 박 총장이 학교를 위해 교회를 사임하고자 할 때 교인들은 반대했지만 결국 성숙한 자세로 한국교회와 총신대학을 위해 사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침 일찍 버스를 대절해 올라와 총장이 된 담임목사를 축하했다. 총장 취임식이 진행된 백남조홀은 부전교회와 깊은 인연이 있다. 백남조 장로가 부전교회 장로였기 때문이다. 종합관 구 건물을 헐고 신축 후 홀을 백남조홀로 정했다. 국민일보 2019년 9월 4일자 기사는 이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다음은 기사 전문이다. 총신대 초석 놓은지 54년 만에 대강당 ‘백남조 기념홀’ 명명 “목사님, 누군가 신학교를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할 텐데 미력하지만 제가 학교 부지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고 백남조(부전교회) 장로가 1964년 노진현(당시 총신대 이사장) 목사에게 전한 이 한마디가 총신대의 초석이 됐다. 이듬해 3월 백 장로는 서울 동작구 사당동 부지 1만8000평(약 5만4000㎡)을 구입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에 헌납했다. 부지 구입 비용은 당시 돈으로 200만원. 사당동 캠퍼스 건축을 위해 당시 노회들이 모았던 헌금이 평균 12만원이었다는 기록에 비춰보면 얼마나 큰 기여였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부전교회 시무장로로 사역하며 광목을 표백하는 기업을 운영하던 백 장로는 번듯한 집 한 채 마련하지 않고 공장 안에 있는 작은 공간에 기거하면서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 총신대 부지 마련에 사용한 재원은 노모에게 집을 지어드리려고 모았던 돈이었다. 총신대는 3일 백 장로의 헌신을 기리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총신대 구성원들의 영적 산실인 종합관 대강당의 이름을 ‘백남조 기념홀’로 명명(命名)하는 감사예배를 드린 것이다. 예배에는 백 장로의 후손, 부전교회(박성규 목사) 성도, 총신대 학생들과 교수, 예장합동 총회 임원 등이 참석해 고인의 숭고한 신앙정신을 되새겼다. 박성규 목사는 “54년 전 채플실조차 없어 학생들이 복도에서 설교를 들어야 했던 시절, 장로님은 민족과 세계복음화를 위해 훌륭한 기독인재를 배출해야 한다며 결단을 내리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늘 예배를 계기로 총회와 총신을 넘어 한국교회에 제2, 제3의 백남조 장로가 일어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승희 예장합동 총회장은 ‘후손들이 기억하게 하라’를 주제로 설교했다. 그는 “백 장로는 총신대 부지를 헌납한 후에도 21년간 재단 이사장으로 봉직하면서 성지순례여행, 회갑·고희연 등도 마다하며 절약해 오로지 총신이 세워지는 일에 헌신했다”고 말했다. 또 “삶을 던져 하나님을 사랑했던 신앙선배로서 현시대에 우리가 믿음의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정표가 된다”며 “지식 몇 줄을 쌓는 것보다 백 장로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을 갈고닦는 총신인이 되길 바란다”고 권면했다. 이재서 총장과 정용덕 법인이사장은 축사를 통해 총신대 학생들이 백 장로가 보여준 섬김의 리더십을 추구할 것을 요청했다. 백 장로의 장남 백성기(부전교회) 장로는 답사에서 “선친이 목적한 것은 큰 영광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전도와 선교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었다”며 “소천 31주년 되는 올해 선친의 헌신을 기억해줘 감사하다”고 전했다. 부전교회 백남조 장로가 헌납해 세워진 총신대학의 백남조홀에서 부전교회 6대 담임목사 박성규 박사가 총장으로 취임하고, 부전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참여해 축하해준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운 삼위일체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끝까지 부전교회 목회를 함께하지 못한 박 총장의 마음은 편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총신대학을 위해 크게 물질을 내놓은 백남조 장로의 마음으로 부전교회는 기꺼이 박성규 담임목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담임목사와 교인들이 백남조홀에서 한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이 얼마나 놀라운 헌신인가? 박 총장은 17년간 부전교회를 성실하게 목회해 큰 부흥을 이뤘듯이 앞으로 총장으로서 총신대학을 크게 발전 시킬 것이다. 그의 삶의 이력을 보면 우리는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이제 아쉬움을 뒤로하고 부전교회는 새로운 담임목사를 모시기 위한 청빙공고를 냈다. 박성규 담임목사보다 더 좋은 목회자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원해 본다. 총신대학 설립을 위해 헌금을 드리고 담임목사를 드린 부전교회여, 길이 복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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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25
  • 기자여, 용비어천가를 불러라?
    기자는 뭐하는 사람인가? 나무위키에 따르면 “기자(記者, reporter, journalist)는 사회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세상에 알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다”라고 한다. 기자(記者)는 한자로 쓰는 사람이다. “기자가 쓰지 않으면 기사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세상에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누군가 그에 대해 알리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 영상이든, 신문이든 우리는 어떤 기자가 취재하고 썼길래 소식을 접하는 것이다. 또한 기자는 영어로 reporter로서 “알리고, 보고하는 자”이다.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고 했다. 그래서 기자는 다양하게 취재를 하고 생각을 하고 글로 표현해 기사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사가 사람들에게 읽혀지면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그래서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한다. 기자는 무엇보다 보고, 듣고, 관찰하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글을 쓴다.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 주관적인 글을 쓴다. 읽는 사람이야 쉽게 읽지만 그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사가 만들어지면 그 기사는 때로 널리 읽히기도 하고 때로 소수만 읽고 사라지기도 한다. 이때 독자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긍정하거나 부정한다. 좋아하거나 싫어한다. 그래서 기사에 항의를 하거나, 기사를 내리라고 하거나, 또는 고소하겠다고 핏대를 올린다. 그래도 기자는 자신의 양심에 기초해 기사를 쓴다. 마치 판사가 자신의 양심에 따라 판결하듯이 말이다. 기사가 틀렸다고 지적하면 검토해 고칠 수 있다. 그러나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기사를 고쳐줄 수는 없다. 독자가 왜 그 기사가 불편한지 먼저 생각해야한다. 자신의 치부와 잘못을 드러내는 기사라면 자신이 고칠 생각을 해야지 기자를 밟을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그런다고 기자가 밟혀지겠는가? “감시없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기자는 약자를 대변하고 강자를 감시한다. 기자가 감시하고 있다면 그만큼 자신에게 권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 권력을 제대로 쓰라고 기자는 감시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왕관을 쓰기 원하는 자 그 무게를 견디라”고 했다. 기자에게 자신에 대해 용비어천가를 부르라고 하는 것은 기자를 모독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잘하면 어련히 용비어천가를 불러주지 않겠는가? 기꺼이 춤이라도 춰줄 수 있다. Shall we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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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24
  • 【구 충남노회 사태6】만시지탄, 구 충남노회•천안중부교회 사태
    최근 기독신문은 108회 총회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구 충남노회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총회임원회(총회장:권순웅 목사)가 제24차 임원회를 5월 18일 총회회관에서 갖고, 충남노회 폐지 후속처리 건 등 안건을 처리했다. 지난 107회 총회에서 폐지키로 결의한 충남노회에 대한 후속처리가 난항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임원회는 사회소송시행세칙에 따라 대표권을 부여한 고영국 목사의 노회 소집이 원만하지 못하므로 기존에 부여한 권한을 중지키로 했다. 아울러 충남노회폐지후속처리위원회(위원장:김상현 목사)로 하여금 다시 각 측의 입장을 듣고 협상을 지시하기로 했다. 단 충남노회폐지후속처리위원회가 천안중부교회문제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했다” 참으로 만시지탄할 일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은 '어떤 일에 알맞은 때가 지났음을 안타까워하는 탄식'을 의미한다. 그간 8개월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가 남은 4개월 동안 해결되겠는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총회장 이름으로 발급된 지난 3월 노회 소집 공문으로 인해 구 충남노회와 천안중부교회는 쑥대밭이 됐다. 이 사태에 대해 교단지 기독신문은 외면했고 임원들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본지를 포함해 소수의 교계 언론만이 소리를 냈다. 샬롬부흥의 107회 총회도 이제 저물어 간다. 공을 세우기 보다는 과를 줄여야 할 때 이제서야 구 충남노회와 천안중부교회 문제를 다시 다루겠다는 것이다. 면피를 위한 눈가리고 아웅이다. 지난 3월 발급된 공문을 쥐고 소위 충남노회 서기 이상규 목사가 어떤 망나니 칼부림(?)을 했는지 모르는가? 몰랐다면 임원회의 직무 유기다. 이제 분노에 찬 당사자들은 임원들과 후속처리위원들에게 그 책임을 묻고자 한다. 이걸 알고 임원회는 보신용 결의를 했다. “또한 충남노회 사건과 관련해 총회장과 총회임원, 충남노회폐지후속위원회 위원 교회에서 시위할 경우 사법 대응과 언론 대응을 총회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시간은 묵묵히 108회 총회를 향해 가고 있다. 떨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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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3-05-24
  • 인생, 그것 참...
    어제 오후에 장례식장에서 연락이 왔다. ㅇㅇ호실 상주(부인)가 꼭 나에게 장례식을 부탁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고인의 부인이 '10여년 전에 목사님이 주례를 해 주셨는데, 장례식까지 해 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급차가 집 근처 병원에서 다른 장례식장으로 운구했지만, 다시 우리 병원 장례식장으로 왔다고...깜짝 놀라서 직원에게 고인의 이름을 확인했다. 김ㅇㅇ. 아~~~다시 물었다. "사인이 뭐에요?" 직원이 하는 말, "결혼 후 아들 하나 낳고 외국계 회사 다니며 잘 살았는데, 어제 밤에 집에서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다. 오늘 오후 4시 입관예배. 내일 아침 6시 발인예배. 주례예배와 장례예배를 10년만에...참 얄굳다. 인생이란 뭘까? 사는게 뭘까? 소위 말하는, 잘 사는 것은 뭘까? 별 생각을 다하게 된다. 병원에서 사역을 하다보니 그런건가? 아님 나의 삶이 별난건가? 환갑이 아직 2년이나 남았는데, 참 많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특히 많은 장례 중에서 마음에 남아 있는 장례는, 태중에서 사산된 아이의 장례. 2살된 아이의 장례. 오히려 엄마와 아빠를 위로하던 11살 소년. 그토록 살기를 원했던 22살, 26살, 27살 ...코에 발병한 암의 통증으로 인해 괴로움 중에도 요한계시록 21장을 묵상하던 32살 자매. 이 땅에 두고가야 할 11살 아들 걱정에 암의 무서운 고통을 끝까지 참으며 아들을 향해 웃던 39살 엄마. 그 외에도 마음에 남은 수많은 분들. 후에 천국에서 만날 사람들... 아무튼지 결혼 주례에 이어 10년만에 장례 집례를 하면서 오늘이라는 삶의 소중함을 알고 지금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늘 마지막, 곧 죽음을 기억하는 삶(Memento mori)을 살아야 함을 다시 마음에 새겨본다.
    • 오피니언
    • 칼럼
    2023-05-23
  • 기독교 연합기관 통합, 가능하고? 필요한가?
    소강석 증경총회장은 기독교 연합기관 통합에 사력을 다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 목사는 한교총 대표회장을 할 때도 한교총과 한기총, 한교연 세 기관의 통합을 위해 애썼었다. 현재도 소 목사는 한교총 기관통합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지난 5월 13일 새에덴교회에서 가진 회기 첫 모임에서 한교총과 한기총, 한교연 세 기관의 통합 필요성을 공유하고, 이를 연구·추진키로 결의했다. 이어 한교총은 5월 19일 한교총 회의실에서 제6-3차 상임회장회의를 개최해 기관통합에 관한 건을 다뤘다. 이 자리에서 이영훈 대표회장은 “소강석 위원장이 한기총과 한교연을 대표하는 사람들과 만나 의논한 결과 각 기관이 먼저 임원회를 열어 통합에 대해 결의한 뒤 공증을 받으면, 추후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각각 임시총회를 열어 대의원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밟기로 했다”며 이후에는 통합 총회를 열고 법인을 합치는 것까지를 로드맵으로 제시했다. 연합기관이 분열될 때는 나름의 이유와 명분이 있다. 그리고 분열 이후에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되어있다. 한기총에서 한교연이 분리됐고 이후 한교총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한기총은 2년간의 임시대표체재에 있다가 최근 정서영 목사가 대표로 선출됐다. 그런데 정 목사는 현재 한장총의 대표회장도 겸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 한교연의 대표회장도 역임했다. 한기총은 현재 대부분의 주요 교단이 탈퇴한 상태라 과거의 영향력이 진작에 사라진 상태이다. 한교연은 어떠한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정도로 친(親)청치적이며 현재 가장 규모가 작은 연합기관이다. 한교총은 어떠한가? 한국교회 교단장회의를 모태로 출범한 한국교회 교단연합기관이다. 현재 대한민국 최대의 교회 협의체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개신교계 전체에 대한 대표성을 확보하고 있다. 개신교계 주요 대형 교단 대부분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회원 교단의 규모는 대한민국 전체 개신교인 수의 95% 가량에 해당한다. 이것이 현재 연합기관의 실태이다. 연합기관마다 성향이 다르고 지향점도 다르다. 그런 가운데 3개 기관을 통합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통합하고자 하는가? 설사 통합이 된다해도 과연 유지가 가능할 것인가? 어떤 사안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통합하고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천주교나 불교같이 한 집단의 목소리를 내고자 함인가? 나눠질 때는 그 이유와 명분이 있었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통합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각자의 성향이 다른데 무리하게 통합한들 얼마나 유지될 것인가? 또 “탈퇴한다”, “분립한다”는 소리가 나올 것이 뻔하다. 사안별로 함께 하고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억지로 통합해 시끄러운 것보다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 기관이 삼위일체식으로 존재해야한다. 연합기관 통합이 지상명령인줄 알고 뛰어다니는 소강석 증경총회장의 속마음이 궁금하다. 한편 고영기 총무는 지난 4월 23일 소강석 목사의 새에덴교회 저녁 예배에서 ‘한국교회 연합의 꿈, 반드시 이루리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 총회총무 재선에 도전하면서 “한국 교회 연합사역에 가시적 열매를 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연합사역이 총회를 유익하게 하는 것인가? 소강석 목사의 꿈에 유익한 것인가? 이 선거 전략이 본인에게 득이 될까, 독이 될까? 총대들이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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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3-05-23
  • 이영훈 목사 옹호발언 파문... 전광훈은 불가촉천민인가?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에 대해 나무위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도의 신분제인 와르나(Varna)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제도 외의 계급이다. 이는 산스크리트어 찬달라(Chandala)를 번역한 한자어로, 찬달라는 '부정 타는 자', '닿으면 안 되는 (미천한)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전광훈은 이 시대의 불가촉천민인가? 그와 가까이하는 자는 구설수에 오르고 화를 당한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그렇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그러하며 이제 이영훈 목사가 그렇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 이영훈 목사가 전광훈이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당사 개소식에서 전광훈과 자유통일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 목사는 5월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자유통일당 당사 중앙당 개소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주사파가 들끓고 공산주의로 빨갛게 물들어가는 이때 자유통일당이 이들을 타파하고 뿌리 뽑는 사명을 받은 것에 감사드린다. 십자가 복음을 들고 나아가 공산주의 주사파를 잡고 복음통일 이루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자”고 했다. 그리고 “그 선봉장으로 전광훈 목사님을 세우셨는데, 지키시고 함께하셔서 주님의 귀한 뜻을 이루게 하실 줄 믿는다”는 발언을 했다. 전광훈은 한기총 등에서 이단 시비중인데 한교총 대표회장이기도 한 이영훈 목사가 전광훈을 지지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논란을 자초했다. 예장합동교단은 전광훈과 관련해 집회 참여 금지를 결의했었다. 2021년 106회 총회에서 “전광훈 목사의 순간적 발언에 이단성이 있었던 적은 있었지만 아직 명백하게 이단으로 규정하기에는 이르다. 발언 내용을 인정하고 회개할 때까지 신앙적 집회 참여 금지를 촉구한다”고 했다. 이로써 합동교단은 일찍이 전광훈을 가까이하면 부정타는 불가촉천민(?)으로 규정한 것이다. 우리는 현금의 사태를 보고 합동교단의 판단이 옳은 것이었음을 보게된다. 전광훈을 가까이하거나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 자는 부정(不淨)해진다. 그래도 그 곁에 가까이하는 합동 측 인사들이 많다는 것이 현실이니 총회 결의가 무슨 소용인가? 이영훈 목사 다음에 그 누가 전광훈을 가까이해 화를 입을려나 기다려진다.
    • 오피니언
    • 논단
    2023-05-21
  • “세습이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덕이 되지 않는다"
    지난 5월 20일 오후 행사취재로 남현교회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본당 앞 로비에서 남현교회 이춘복 원로목사님을 뵐 기회가 있었다. 목사님께 기자임을 밝히고 목사님께서 쓰신 「쉬운 목회」를 한 권 얻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목사님께서 책 출간 기자회견을 했는데 오지 않았느냐고 묻길래 연락 받은바가 없었다고 말씀드렸다(담당자인 누군가가 일부 기자에게는 고의로 연락하지 않은 것 같다). 결국 다른 기자의 기사를 통해 출간 기자회견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책에 대한 관심이 있어 목사님께 한권 받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하루만에 다 읽고 내용이 너무나 훌륭해 이 책에 대한 기사를 싣게 되었다.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은 목사님의 인품이 참으로 훌륭하시다는 것이다. 인격목회, 화평목회, 인내목회, 섬기는 목회 등등이 개척해서 40년 목회를 가능하게 했고 크고 건강한 교회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탈무드에 보면 “노인은 다음 세대를 위해 책을 써야한다”는 말이 있다. 삶의 경험을 글로 남김으로써 다음세대에게 교훈을 주고자 함일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 목사님의 책은 40년 목회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권으로 준비하고 있는 「쉬운 성장, 쉬운 은퇴」도 기다려진다. 책을 꼼꼼히 보면서 여러 군대의 오탈자를 잘 표시해뒀다. 다음번에 뵙게되면 전달해 드려 책이 재판될 때에 교정됐으면 한다. 모든 내용이 좋았지만 특히 교회 후임자 선정과 세습에 대한 목사님의 생각이 귀하기에 이 부분의 전문을 게재한다. 이 목사님은 세습에 대해 “세습이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덕이 되지 않는다. 반대자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이것 때문에 얼마나 하나님 영광을 가리고 전도 길이 막히는지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교회세습이 너무나 일반화되어있다. 그러나 결코 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동안 목회한 아버지의 은퇴 말년에 먹칠을 하는 것이며 아들 목사에게 평생 “세습 목사”라는 꼬리표를 달아주는 것이다. 결코 덕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명성교회처럼 반대자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당하게 된다. 아울러 후임자를 잘 선정해 교육시켜 목회를 이어받게 하는 것도 참 신선하다. 보통은 자격을 다 갖춘 목사를 후임자로 선정하는데 교회에서 후임자 유학비까지 부담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이것이 규모있는 교회의 트랜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목회에 “뼈가되고 살이되는” 이 책의 일독을 강추한다! 다음은 저자의 교회 세습에 대한 확고한 견해와 후임자 목회 승계에 대한 좋은 방안을 제시하는 내용의 전문이다. 이 년만 배우게 해주세요(p 159-163) 2015년 연말에 아들을 우리 교회 부목사로 청빙하는 문제 때문에 큰 홍역을 치렀다. 아들이 신학을 하면서 나에게 부탁을 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 목회가 제 모델입니다. 아버지 밑에서 이 년만 배우게 해주세요. 아버지의 목회 철학과 목회 운영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자 내가 말했다. "나에게 와서 배우는 것은 좋다. 그러나 우리 교회 오려면 후계자가 다 결정된 다음에 와라. 그래야 오해를 받지 않는다. 한국 교회 성도들은 세습 문제로 상처가 크기 때문에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오면 오해를 받는다.” 남현교회는 내가 은퇴하기 십 년 전 후임을 정했고 유학까지 시켜 목회를 이양했다. 은퇴 십년 전 당회에서 장로님들에게 후임을 정하자고 했을 때 장로님들이 반대를 했다. "목사님, 지금 새 성전을 건축하고 입당해서 재정적으로 너무 어려운데 후계자 문제는 나중에 말씀하시면 안 되나요? 목사님 은퇴가 십 년도 더 남았는데 벌써 후계자를 정해야 하나요? 목사님 은퇴 문제를 꺼내면 레임덕 현상이 있어 교회가 어려워지지 않을까요?" 그때 내가 이렇게 말씀드렸다. "장로님들 말씀도 맞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이요 은퇴는 총회 헌법에 정한 법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준비하는 사람이요 미련한 사람은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요즘 교회들 후계 문제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후계자를 미리 정하고 잘 키워서 은혜롭게 교회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당회에서 잘 말씀드려 허락을 받고 후임을 모셔오게 되었다. 오래 전 우리 교회에서 사 년을 시무했고 분당우리교회에서 육 년을 시무한 목사님이다. 목사님은 다시 남현교회에 오셔서 삼 년을 시무하고 유학을 떠났고 유학 사 년 후 돌아오셔서 이 년 동안 동사 사역을 하고 목회를 이양했다. 내가 후임을 일찍 정한 것은 네 가지 이유가 있다. 1) 후임을 일찍 정하고 잘 키워서 물려주고 싶었다. 한국 교회가 후임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준비만 잘하면 되는데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갑자기 후임을 정하니까 어려운 일들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은퇴하기 십년 전에는 후계자를 정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 왔다. 한국 교회에서 가장 은혜롭게 후임에게 이양한 모델 교회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었다. 2) 사람은 나이가 육십오 세가 넘으면 명예욕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3) 담임 목사 나이 육십오 세가 넘으면 본인이 원하는 후임을 정하기 힘들다. 4) 아들이 신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습이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덕이 되지 않는다. 반대자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이것 때문에 얼마나 하나님 영광을 가리고 전도 길이 막히는지 모른다. 아무리 좋은 은사도 덕이 되지 않으면 행하지 않는 게 좋다. 내가 장로님들에게 여러 번 말씀드렸다. "만약 교회 전체가 아들을 후계로 결정해도 나는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법의 문제가 아니라 건덕상의 문제입니다." 후임을 정해서 유학 보냈고 은퇴할 때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 목사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목사로 청빙하려고 했다. 그것도 아들 목사를 이 년만 있다가 유학을 보내겠다고 당회에서 분명히 말했는데 이상한 소문이 걷잡을 수 없게 퍼져나갔다. "담임 목사님께서 아들 목사를 부목사로 데려오는데 세습할지도 모른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내가 일생 목회하면서 그래도 진실하게 목회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중직자 중에서 몇 분이 아들 목사 데려오는 것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교역자들은 담임 목사 편을 들어야 한다. "우리 목사님 결코 세습하실 분 아니십니다. 이미 후임까지 결정하셨는데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지금까지 사십 년 동안 진실하게 목회하신 목사님을 못 믿으시면 누구를 믿습니까?" 그런데 그렇질 않았다. 부교역자 중 한두 명이 성도들에게 부채질을 했다. "어떤 교회는 세습 안 한다고 약속했다가 갑자기 세습했습니다." 나는 그래도 교역자들만은 적극적으로 내 편인 줄 알았다가 큰 실망이 왔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깊이 생각했다. "부교역자들은 내 자녀나 마찬가지다. 자녀를 양육하다 보면 얼마나 말을 안 듣는가? 얼마나 엉뚱한 소리를 하는가? 아빠! 이제부터 내 아빠 아냐? 아빠하고 안 놀 거야. 아빠 미워 투정부릴 자격이 없는데도 투정을 부린다. 그래도 부모는 자녀를 사랑한다. "부교역자들 아무리 속을 썩여도 내 자녀지. 성도들이 아무리 속을 썩여도 내 자녀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할 때는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거야! 자녀에대한 부모의 사랑은 짝사랑이야! 지금까지도 그래 왔지만 앞으로도 일방적으로 사랑만 해야지!" 이런 마음으로 목회를 하니 모든 소란이 잠잠해졌고 아들이 부목사로 왔다. 그리고 이 년 동안 잘 시무하고 후임 목사가 유학을 마치고 들어오기 두 주 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나는 부목사님 중 어느 목사님이 그런 일 한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목사님을 불러 “그럴 수 있느냐? 왜 그랬느냐?" 한 번도 묻지도 책망하지도 않았고 다 용서하고 계속 시무하게 했다. 우리 교회는 부교역자가 오면 다른 교회 알아보라는 소리를 안 하고, 있을 때까지 계속 있게 한다. 그리고 부교역자들이 원하는 대로 교회를 개척시켜주던지 선교사로 파송시켜 준다. 나는 문제를 일으켰던 부교역자들도 다른 부교역자와 똑같은 예우를 했다. 목사님들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나는 용서하고 사랑만 하면 된다. 이것이 짝사랑 아버지 사랑이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한다. "목사님! 목사님은 십 년 전에 후임을 정해 유학까지 시켰는데 목사님 은퇴하신 후 후임 목사님이 목사님을 배반하면 어떻게 합니까?" 제가 이렇게 대답했다. “후임 목사님을 일찍 정한 것은 제가 대접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물려주어야 교회가 안정되고 유익할까? 오직 교회를 위해 일찍 정한 것입니다. "후임 목사님이 나를 배반하지도 않겠지만 혹시 배신한다 해도 괜찮습니다. 나는 계속 일방적으로 사랑만 하면 됩니다." 아가페 사랑을 하니까 마음이 편하고 성도들을 바라만 봐도 행복하다. 하나님 사랑이 바로 이런 사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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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21
  • 괴멸하는 헬조선...백약무효 저출산 문제
    짧지만 강렬한 뉴스였다. 한 노인이 어릴적 다녔던 초등학교가 요양원으로 변해 입소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저출산으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자 결국 요양원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한국판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돼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대 상황에서 “어린이집”이 “어른이집”이 되고 “어린이집 원장”은 “요양원 원장”이 됐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궤멸하고 있는 헬조선의 현실이다. 과거 헬조선이라는 말이 회자됐다. 헬조선(hell朝鮮)은 지옥을 의미하는 ‘헬(hell)’과 우리나라를 의미하는 ‘조선’을 결합하여 만든 말로, 열심히 노력해도 살기가 어려운 한국 사회를 부정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때는 그런 말이 있나 보다 했는데 진짜 대한민국이 헬조선, 생지옥이 돼가고 있다. 통계가 이것을 생생히 경고하고 있다. 2016년만 해도 40만 명대였던 출생아 수는 지난해엔 24만 9천 명, 불과 6년 만에 절반 가까이 줄었다. 출산율은 0.78까지 떨어졌다. 전쟁이 나도 합계출산율은 1.0보다 높다고 한다. 이것은 괴멸(壞滅)적 수준으로 나라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졌을 때 나오는 숫자라고 한다. 내부에서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괴멸”(壞滅)이라고 하고 외부 공격으로 파괴되는 것을 “궤멸”(潰滅)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은 외부 세력과의 전쟁으로 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망해가고 있다. 그 이유는 모두 알다시피 바로 저출산 때문이다. 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70년대 초만해도 한 반이 80명이었고 한 학년이 10반이 넘었으며 심지어 오전, 오후반으로 수업했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이 없어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가 사라지고 있고, 군부대도 축소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서서히 대한민국이 모래알처럼 사라지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결국 이것은 국가 전체의 연령을 높이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은 이제 2년 뒤면 20%대,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가 된다. 65세 이상이 전체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이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도달하는 기간이 일본보다도 3년 빠르고, 미국 캐나다보다는 두 배, 유럽 선진국에 비하면 세 배 이상 빠르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는 너무나 빠른 저출산과 고령화이다. 아이들이 사라지고 노인들만 가득한 나라가 됐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가 사라지고 요양시설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6년부터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추진하며 지금까지 322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부었다. 그 돈은 다 어디로 갔는가? 어느 누구의 주머니로 갔는가? 저출산의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가 다 알다시피 청년층의 고용과 주거 불안, 양육과 교육비 부담 등 고질적인 사회 문제이다. 젊은이들이 취직을 제대로 못하고 알바를 전전하는데 어떻게 연애를 하겠는가? 그리고 하늘처럼 비싼 집을 구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겠는가? 혹시나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해도 맞벌이로 인한 자녀 양육의 고단함과 수입보다 높은 양육, 교육비를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N포세대”이다. 사회,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연애, 결혼, 주택 구입 등 많은 것을 포기한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포기한 게 너무 많아 셀 수도 없다는 뜻이다.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이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주지 않고 “결혼해라”, “아이 낳아라” 한다고 해서 될 일인가?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골든 타임은 이미 지나갔다. 대한민국은 스스로 멸망하고 있으며 타이타닉호처럼 가라앉고 있다. 영화 '타이타닉'에 보면 침몰 중에도 갑판 위에서 현악4중주 연주자들이 끝까지 연주하던 장면이 나온다. 그 곡은 ‘내 주를 가까이’였다. 대한민국이, 우리가 소멸해 ‘내 주를 가까이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것도 너무나 빨리. 기성세대로서 내 아들들에게, 젊은이들에게 헬조선, 생지옥을 만들어줘 미안할뿐이다. Κύριε, ἐλέησον(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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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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