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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상】 부총회장 선거, 축제가 싸움판으로
    지난 4월 25일 오전 11시 참좋은교회(이윤찬 목사 시무)에서 대구교직자협의회 제31회 정기총회가 있었다. 이승희 증경총회장의 개회 예배 설교 후 합심기도 시간에 경북교직자협의회 대표회장 강전우 목사가 ‘총회와 영남지역을 위해서’ 기도할 때 부총회장 자격 문제로 소송이 붙은 총회를 염려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소송 관계자인 부총회장 후보 민찬기 목사나 장봉생 목사의 마음은 어떨지 모르나 총회 회관에서 먼 경상도 지역에서도 현 사태를 매우 안타깝게 여기며 탄식으로 기도하고 있다. 아마 이 사태를 지켜보는 대부분의 총대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한 사람의 부총회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물질이 필요하다. 노회와 협의회, 총회 등에서 오래 봉사하며 자신을 알려야한다. 이에 많은 시간이 든다. 그리고 물질로도 많이 섬겨야한다. 그래서 아무나 부총회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시간과 물질로 섬겨온 부총회장 후보들은 모두 총회의 귀한 자산이다. 바람직한 것은 단독 후보로 추대되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경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친했던 사이도 서먹해지거나 “원수” 사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곽선희 목사는 운동을 할 때 서로 마주보는 것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탁구나 테니스나 서로 마주보고 하다보면 감정 싸움이 될 수 있기에 자기는 각자 실력으로 승부하는 볼링을 한다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오래 세월 총회를 섬겨온 민찬기 목사나 장봉생 목사는 현재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내리 누르고 이겨야할 경쟁 상대로 보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런 면에서 선거란 참으로 잔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민찬기 목사 소속 임원회가 민찬기 목사의 후보 자격에 대해 물었을 때 장봉생 목사 소속 노회도 임시노회를 열어 부총회장 출마 자격에 대해 선관위에 질의했다. 선관위가 이 문제를 다룰 때 투표에 처음에는 7:7 동수가 나왔다. 이어 재투표하여 7:8로 세 번 출마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 지나간 일이지만 의견이 7대 7로 나뉘었다는 것은 선관위원 내에서도 의견이 팽팽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문제를 바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좀더 시간 여유를 두고 처리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증경총회장단의 의견을 듣는다든지, 실행위원회에서 의견을 구했다면 모양세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속전속결로 재투표해 7:8로 세 번 출마 불가로 정했다. 그러자 민찬기 목사측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소송을 했고, 소속 노회에서 부총회장 후보로 추천을 받았다. 세상 법정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두고보면 된다. 그런데 성경은 교회 문제를 세상 법정에 끌고가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고전6:1-7]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새로이 총회를 섬길 일꾼을 뽑는 총회 선거가 축제가 아니라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사법의 판결을 받아야하는 싸움판이 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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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4-04-26
  • 취재 기자를 내쫓는 노회들...무엇이 두려운가?
    봄 정기노회가 열리는 계절이다. 서울에서 먼 지방의 몇몇 노회를 취재갔다. 그 중 2개 노회에서 “내쫓김”을 당했다. 이리노회는 북일교회 문제로 회원 호명 때부터 시끄러웠다. 결국 노회원들간에 고성이 오갔다. 이런 가운데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거칠게" 요구했다. 결국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 충청노회도 전 총신대총장 김영우 목사 피소건에 대해 다루며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험악하게” 요구했다. 결국 본당 중이층으로 쫓겨갈 수 밖에 없었다. 기자는 사실을 취재하고 알리기 위해 그 현장에 가 있는 것이다. 북일교회 문제는 대부분의 총회원들이 알고 있을만큼 큰 이슈이다. 당연히 기자들이 가서 취재할 수 밖에 없는 사항이다. 기자는 총회원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대신해서 그 현장에 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기자들을 내쫓는 것인가? 그것이 과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는가? 기자가 보면 안될만큼 감춰야할 문제가 있는가? 사실을 사실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 없는 노회는 취재간 기자들을 반기며 좋게 기사를 써서 노회를 잘 홍보해 달라고 부탁한다. 기자로서도 기분좋은 일이다. 반면 문제 있는 노회는 기자를 내쫓는다. 마치 잡상인 취급을 한다. 부득이 기자를 내보낼 필요가 있다면 “정중하게” 요청했으면 한다. 같은 합동측 목사한테 그렇게 함부로 해서 되겠는가? 앞으로도 “문제 있는” 이리노회와 충청노회 “사태 추이”에 대해 예의주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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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4-04-03
  • 【북토크】 편협한 꼰대가 되지는 말아야 할텐데....
    자기 생각에 갇혀 사는 사람은 편협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하고는 대화도 되지 않는다.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남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개방해야한다. 죽고 사는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럴수도 있구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편협함 공부를 하면서 문득 깨달은 건, 법률 외에 삶의 모든 기준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 기준들은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니어서 주변사람에게 영향을 받아 생성되기도 하고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워지기도 한다. 또 삶의 경험이 켜켜이 쌓이면서 조금씩 견고해지고 구체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여러 기준들을 만들어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일은 어쨌거나 사람이 하는 것이란 점에서 언제나 주관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너무 쉽게 각자가 세운 판단 기준이 ‘정답’이라고 착각한다. 사람은 쉽게 타성에 젖으니 자신의 판단 기준과 결론이 절대적인 단 하나의 정답이라 믿으며 자기 우물 안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기준에 정답이란 없기에 자신이 바르고 타당한 기준을 세워가며 나이 먹고 있다는 생각도 사실 편협한 ‘착각’에 가깝다. 나이를 먹는 일이 무서운 건 나도 모르는 새 나의 판단이 바르고 타당한 정답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조직에 잘 적응한다는 것은 곧 그 곳의 기준을 잘 습득해 체화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공동체에서 튀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공동체의 평가 기준을 답습하기도 하고, 나는 다르다 여기며 살아도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그 밥에 그 나물처럼 사고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쉼 없이 자신의 옳고 그름을 고집하기도 하고 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숨기기 위해 고집스러운 기준으로 타인을 깎아 내리기도 한다. 입만 열면 세상 곳곳에 대한 불만을 쏟아 내는 투덜이 스머프 같은 사람이 있었다(입만 열면 남의 흉을 보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결이랑은 또 다르다). ‘이건 이래서 구리고, 저건 저래서 구리고’, ‘그런 사고방식이 말이 되느냐. 말은 그렇지만 속내는 이런 것 아니겠느냐’하는 식으로 언제나 자신 밖의 사람과 상황에 대해 평가만 늘어놓는 사람이었다. 초반에는 그가 솔직하고 유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어떤 것. 누군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 지 밝히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그 취향과 기준을 고백하는 것이 자신의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데 저렇게 쿨하게 늘어놓다니!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화의 주된 발언이 자기 자신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평가이다 보니 들을수록 의아한 지점이 생겼다. 당신에게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 타인이 당신에게 평가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 평가할 자유가 있다고 해도 당신의 평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는지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의 평가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에 대한 인상 또한 '예리하고 유쾌한 사람이다' 라기 보다 ‘어딘가 모르게 편협하다’, ‘편협함을 자랑하는 태도가 참 멍청하다’까지 이어졌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 몇몇 단정적인 말들에서 그가 타인에 대한 평가를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었던 까닭을 눈치 첼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자신의 말이 정답이라고 여겨서 가능했던 것 이었다. 자기 말이 정답인 사람 곁에 다른 의견들은 오답처리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이 오답이 되 는 대화를 좋아라할 사람은 없다. 그렇게 그는 자기주장이 뚜렷한 사람에서 편협한 사람으로 점차 다르게 기억 됐다. 중학생 때 유독 적이 없었던 한 친구가 떠오른다. 말수가 적어서,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아서, 호불호가 없어서가 아니라 ‘편견’이 없어서 두루두루 모두와 잘 지내는 친구였다. 그는 어떤 친구들에게도 늘 같은 태도로 화답했다. 편견, 그러니까 그 편협함은 끊임없이 나를 위해 타인을 배척하는 수단이 된다. 진정한 세월의 지혜는 오히려 '편견 없음'에 가까울 거라 생각한다. 타인을 판단하는 가장 괜찮은 기준은 포용이 아닐까? 타인과 자신에 대해 사람은 언제나 ‘알 수 없음’ 한 줌은 가지고 사니까. 견고한 기준은 편협한 생각의 방증일지도 모른다(pp. 178-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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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3-31
  • 【북토크】 自害가 생존전략이라니....
    나는 상담, 심리 관련 책도 좋아한다. 대학때부터 지금까지 기회 되는대로 읽고 있다. 우연히 보게 된 이 책에서 “자해도 생존방법”이라는 것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오죽하면 살기 위해 자기 몸에 해를 주는 것인가? 길지 않은 인생을 사는데도 참 힘들다. 세상에 불쌍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들과도 더불어 살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고민하게 된다. 자해하는 게 문제라고 말하며 부모님 권유로 상담실에 온 고등학생 내담자를 만났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사소한 일로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졌고 왕따를 당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학교 가는 게 힘들어서 지각과 결석을 반복하며 적응이 더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친구들이 자신에 대해 안 좋게 말할까 봐 계속 예민한 상태로 있다 보니 피곤하고,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워서 거의 책상에 엎드려 있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온라인에서 만난 학교 밖 친구들과는 관계를 잘 맺고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웃으면서 인기가 많다고 얘기 하다가 이내 걱정하는 얼굴로, 사실 인기가 많은 이유는 친구들을 잃을까 봐 엄청나게 신경을 쓰면서 친구들 비위를 다 맞춰주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왕따니까 밖에서 힘들게 만든 친구들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 친구들이 부르면 거절하지 못하고 모든 모임에 나가고 친구들 말을 들어주고 웃어주느라 에너지가 다 빠진다고 했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도 즐거운 것처럼 친구들과 놀고, 막상 집에 오면 허무하고 외로운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혹시나 말실수해서 친구들이 자신을 싫어하게 될까 봐 매번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자신이 잘못한 게 없는지 확인 한다고 합니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한 상태로 가득 차 있다가 가족들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화를 냅니다. 우울한 기분, 친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공허한 느낌, 불안감이 뒤섞이면서 마음이 터질 것 같은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그럴 때 자해를 하게 된다고,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고, 나지막이 말 합니다. 물속에 오래 있을 때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안 쉬어지다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 숨이 크게 내쉬어지는 것처럼, 자해하고 나면 숨이 쉬어지고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많은 내담자가 말합니다. 자해는 화가 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자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수단입니다. 아무런 감각이나 감정을 느끼지 못할 때 무언가를 느끼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방법입니다. ‘자해는 나쁘다, 절대 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올 수도 있지만, 자해는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생존전략이 됩니다(pp. 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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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3-31
  • 【북토크】 문학을 통해 배운 것들
    이 책의 저자는 문학을 통해 배운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세상을 바라볼 때 시선의 위치와 방향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시야가 달라진다는 것,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일,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는 일,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내 안의 무언가가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일 또한 가능하다는 것, 인간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쓰면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을 꿈꾸면서도 끝내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이 모든 것을 나는 문학을 통해 배웠으며 이 경험이 나를 바꿨다는, 어쩌면 너무나도 문학도 같은 이야기다” 나는 이 글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래서 지금도 이 “재미”에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은 직접 문학 작품을 다루지는 않는다. 저자는 넥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 여러 OTT에 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소재로 이 책 한권을 썼다. 물론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도 많다.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느낌을 갖는다. 나는 이런 글을 쓸 실력이 없어 감탄하면서 봤다. 유홍준 교수는 그의 역작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했다. 모르면 보이지 않는다. 기회가 되면 이 책의 저자처럼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글도 써보고 싶다. 그럴려면 아들이 가입해 놨지만 안 보고 있는 넥플릭스를 열심히 이용해야 할 것 같다. 할 일이 또 하나 늘었다. 이 또한 새로운 도전이니 기대가 된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서른 줄에 접어든 이후로는 이야기할 일이 거의 없긴 하지만, 피치 못할 이유로 전공을 언급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괜히 머쓱해진다. 직업이 작가이기 때문이다. 작가인데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고 하면 "전공을 살리셨구나!" 같은 말을 듣게 되고 만다. 전공을 살린 것일까? 괜히 골똘해졌다가는 국어학과 국문학의 차이라든가, '과연 어디까지가 문학인가'라는 질문이라든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해서 작가가 되면 전공을 살린 것인가 아닌가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되기 때문에, "그런가요?" 하고 대답한 뒤 얼른 소재를 바꾸는 것이 좋다. 그러지 않으면 "국문과가 굶는 과라던데... " 하는 식의 무례한 농담을 듣게 되어버리고 만다. 이 농담을 들을 때면 미소 비슷한 것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재빠른 소재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봐도 국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작가가 된 것 같지는 않다. 인과관계가 없는 일로 보인다. 학과 공부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거나 쓸모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문학이 정말 재미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고, 그래서 상당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 문학 작품을 읽고, 문학을 배우고, 듣고, 공부하며 보낸 20대 초반의 몇 년간, 내가 세상을 보는 법은 달라졌다. 이 시절의 경험이 내 삶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또 나의 어떤 부분을 바꿨는지를 전부 말하자면 너무 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줄여서 말해보자면, 나는 문학을 통해 이런 것들을 배웠다. 세상을 바라볼 때 시선의 위치와 방향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시야가 달라진다는 것,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일,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는 일,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내 안의 무언가가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일 또한 가능하다는 것, 인간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쓰면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을 꿈꾸면서도 끝내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이 모든 것을 나는 문학을 통해 배웠으며 이 경험이 나를 바꿨다는, 어쩌면 너무나도 문학도 같은 이야기다(pp. 139-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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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3-28
  • 【북토크】 한 대형 교회의 탄생과 몰락
    세상에는 별별 사람들이 있고, 별별 책들이 있다. 이 책도 그 중 하나다. 우연히 읽게 됐다. 읽다보니 재밌어서 끝까지 보게 됐다. 세계 여러 곳의 버려진 건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목사 아니랄까봐 그중 교회에 대해 다룬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큰 돈으로 지은 교회가 결국 교인들의 이사로 숫자가 줄자 큰 건물 유지에 실패하고 버려진 이야기다. 얼마전 아랫 지방에서 열린 노회를 취재했다. 교회가 매우 컸다. 그런데 외진 곳이라해서 부목사나 여전도사나 부교역자가 한명도 지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방 작은 동네에 있는 이 큰 교회가 앞으로도 잘 유지가 될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인구감소는 절벽이라 지방은 소멸하고 있고 사람들은 먹고 사느라 종교에 관심이 없는데 앞으로 50년 후에도 그 큰 교회가 교회로서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적의 도시'는 왜 미국의 살인 수도'가 됐을까-시티감리교교회(GARY CITY METHODIST CHURCH) 미국 인디애나주의 공업 도시 가운데 가장 젊은 도시인 게리Gary는 미시간호 남쪽에 40.46제곱킬로미터쯤 펼쳐진 습지에서 1906년에 태어났다. 시카고에서 고작 64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게리는 유나이티드스테이츠철강 United States Steal Corporaton(Us스틸)이 낳은 도시다. US스틸은 게리에 시간과 에너지, 비용을 쏟아 최첨단 공장을 짓는 대신 공장 노동자를 위한 마을은 눈에 띄게 무성의하게 계획했다. 예를 들어 게리에서는 시민이 아니라 철강 공장을 중심으로 전력 공급을 조절했기 때문에 가로등이 깜박거리곤 했다. 하지만 게리를 '기적의 도시' 나 '마법 같은 도시', '금세기의 도시'라고 부르며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금세기의 도시'라는 별칭은 게리의 앞날을 어느 정도 예언했다. 게리는 20세기의 우여곡절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렸고, 도시의 운명은 미국 제조업의 호황과 불황에 따라 요동쳤다. 도시 인구는 유럽 에서 이민자가 쏟아져 들어오고 짐크로Jim Crow법(공공시설에서 백인과 유색 인종을 분리하는 남부 주들의 법률로 1876년부터 1965년까지 시행됐다. 옮긴이)이 시행되는 남부에서 아프리카계 시민이 몰려오며 대거 늘어났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는 실업과 소위 백인 탈출white flight(백인 중산층이 도심에서 교외로 탈출하는 현상. 옮긴이) 탓에 인구가 대폭 줄어들었다. 게리의 인구는 1960년에 17만 8000명으로 절정에 달했지만, 오늘날에는 7만 8000명 미만이다. 도시가 이름을 따온 주인공은 엘버트 H. 게리라는 기업 변호사이자 카운티 지방법원 판사다. 그는 US스틸에 융자해준 존 피어폰트 모건의 의견에 따라 기업의 이사회 회장에 임명되며 기업가로 변신했다. 게리는 노동조합과 노동자 권리에 반대하고자 성경을 선택적으로 인용하는 독실한 사람이었다. 자존심이 강하고 유머 감각이라곤 없는 이 도덕주의자는 하얗게 센 머리와 콧수염을 깔끔하게 정리한 모습으로 귀족적 분위기를 풍겼다. 신도시에 게리라는 이름을 붙이자고 제안한 사람도 그였다. 모건이 “물렁뼈 아첨꾼”이라고 맹비난할 만큼 교활한 수완가였던 그는 이사회의 반대를 노련하게 물리쳤다. 사실 이사회는 새 도시에 US스틸 회장 윌리엄 엘리스 코리의 이름을 붙여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미국 우체국도 신도시의 명칭을 게리로 정하면 메릴랜드주의 게리와 헷갈릴 것이라며 반대했다. 중서부에서 나고 자란 게리는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가 설립된 후에도 계속 뉴욕에 머물렀지만, 내 마음은 인디애나주 게리에 있다"라고 자주 주장했다. 1920년대에 그는 급증하는 게리 인구에 헌신할 새로운 감리교 교회를 세우는 사업도 열정적으로 후원했다. 교회를 지을 부지를 제공하고 기업 자금 35만 달러를 공사 기금으로 내놓는 안을 승인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4단 건반 어니스트 스키너 파이프 오르간까지 개인적으로 기부했다. 아마 게리는 교회가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고, 예배를 보는 본관 외에도 사회적, 교육적 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맡은 별관이 들어선다는 데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이 계획은 진보적인 지역 목사 윌리엄 그랜트 시먼 박사가 주도했다. 인디애나 출신으로 보스턴신학교를 졸업하고 인디애나 그린필드의 드포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시먼은 1916년에 다코타웨슬 리언대학교에서 게리로 왔다. 게리에서 그는 낙천적 성격 덕분에 '서니 짐 Sunny Jim(명랑한 짐. 옮긴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울러 인종적 관용과 더 커다란 통합을 지지하며 큰 목소리를 냈다. 1924년, 그는 큐클럭스클랜(K.K.K)을 영웅으로 묘사하는 D.W. 그리피스의 영화 <국가의 탄생>이 "인종적 편견을 일으킨다"며 오르페움 극장에서 상영을 중단해달라고 게리 시장 R. O. 존슨을 압박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해 12월, 누군가가 어느 흑인 남성을 공격한 후 휘발유를 들이붓고 불을 질러서 심각한 화상을 입혔다. 가해자는 끝내 체포되지 않았고, 게리에서는 인종차별적 공격이 급증했다. 시먼은 교회가 게리의 모든 공동체를 하나로 모으기를 바랐다. 그러나 수많은 백인 신도의 저항과 인종 차별 탓에 모두를 포용하는 교회를 만들겠다는 그의 꿈은 꺾이고 말았다. 시먼은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제작한 팸플릿에서 교회에 관한 자신의 비전을 이렇게 설명 했다. "쇠와 철을 만드는 건장한 노동자, 활발하게 영업하는 상업가, 바쁜 여성, 성장하는 아이들은 주일에 한 시간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매시간 주님의 영향력을 확인하며 그리스도가 살아계신다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시내 교회에서 예배 계획과 포괄적인 목회 활동 계획을 마련했습니다. 교회는 일주일 내내 문을 엽니다. 교회는 청년과 노인을 위해 기독교 교육, 건전한 오락, 매력적이고 순수한 여흥 거리를 제공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도시의 중심부에 기독교의 우애 정신을 불러옵니다" 게리의 시티감리교교회는 고딕 양식을 완벽하게 부활시킨 장중한 작품이자 중서부 최대의 감리교교회였다. 시카고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 회사 로앤드볼렌바허Lowe & Bplenbacher가 인디애나 베드퍼드의 석회암을 사용해서 21개월 만에 완공했다. 1926년 10월 3일에 시먼이 첫 예배를 집전했고, 게리에서는 일주일 동안 밤마다 축하 행사가 열렸다. 목사 관저 뒤로 각종 사무실과 체육관, 극장 홀까지 품은 9층짜리 건물이 들어섰다. 교회에서는 강연과 대담, 연극, 스포츠 행사(정규직 직원 여섯 명 중에는 스포츠 감독도 있었다), 공공 행사, 음악 콘서트, 종파를 초월한 공연과 쇼, 심지어 영화 상영까지 이루어졌다. 그런데 1700명쯤 되는 신도 가운데 일부는 교회 건물이 지나치게 가톨릭적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교회 단지 전체를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시먼이 처음에 계산했던 것보다 더 컸다. 유지비 탓에 자금이 계속 부족해졌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졌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도 찾아오게 만들어서 수익을 개선하고자 카페테리아를 만들자는 계획이 제안되었다. 하지만 자기 식당의 손님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주요 감리교 식당의 주인이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볼링장을 만드는 계획도 거론된 듯하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어쨌든 교회가 춤과 저속한 언어를 반대했으니 젊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느긋함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언행을 조심할 필요가 없는 데다 술도 마실 수 있는 무허가 술집에 드나드는 편을 더 좋아했다. 시먼은 1929년에 결국 신도들에게 쫓겨나서 오하이오주 랭커스터 교구로 옮겼다. 그는 게리를 떠나면서도 이곳에는 "진보와 환대라는 진정 서구적인 정신"이 있다며 게리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밝혔다. 그는 1944년에 자동차 사고로 숨졌다. 유언에 따라 시먼의 유해는 그 자신이 설립에 힘을 보탰던 게리의 교회에 묻혔다. 전후 종교 부흥기였던 1950년대에 게리의 시티감리교교회는 무려 3000명이나 되는 신도수를 자랑했다. 백인과 중산층이 대다수였던 교회 신도는 게리의 심각한 인종간 불평등을 반영했다. 게리는 당대 미국 복부에서 인종 차별이 가장 극심한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960년대로 접어들자 부유한 백인이 교외로 떠나기 시작했다. 철강 산업에서 해외 경쟁이 치열해지고 자동화가 확대되면서 정리해고가 발생하자 도심 범죄율도 증가했다. 결국 교회 신도 숫자가 점차 줄어들었다. 1973년에 교회의 신도는 겨우 320명뿐이었고, 이 중에서 예배에 꾸준히 나오는 사람은 3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2년 후, 시티 감리교 교회는 문을 닫았다. 인디애나대학교가 교회와 이웃한 홀 일부를 인수했지만, 교회를 대신할 용도를 찾지 못했다. 게리가 "미국의 살인 수도"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얻은 1993년, 교회는 이미 무너져가는 겉껍질로 변해 있었다. 4년 후에는 화재가 건물 전체를 휩쓸었고, 복구를 향한 희망을 완전히 꺾어놓았다. 2000년대로 들어선 후 한동안은 철거가 유일한 답인 듯했지만, 이제는 공원 조성이라는 가능성이 새로 생겨났다. 이 도심 속 에덴은 러스트벨트에서 가장 고통받은 도시, 가까운 과거는 괴로웠고 미래는 불안한 이 지역에 위안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pp. 274-282).
    • 오피니언
    • 책소개
    2024-03-28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내이야기】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4년전 담임목회를 중단하고 나올 때 두 명의 목사님이 떠 올랐다. 같은 노회, 같은 시찰회에 내가 시무했던 교회의 나쁜 것을 따라하는 교회가 있었다. 나는 다섯 번째로 담임목사직에서 내쫓겼는데, 같은 시찰회의 그 교회는 3명의 담임목사를 내쫓았다. 첫 번째 목사는 노회에 문제를 일으켜 면직됐고, 이후 부임한 목사는 몇 년 못있다가 갈등하고 결국 사임했다. 이후 또 한 목사가 왔는데 얼마 안있다가 내쫓겼다. 두, 세 번째 목사들과는 시찰회에서 교제를 했었다. 그런데 그들이 교회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결국 사임했을 때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막상 내가 그 일을 당해보니 그 두 목사에게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내가 당해보니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2번째로 내쫓겼던 목사는 나왔던 교회 근처에서 목회하다 이전했는데 나중에는 노회를 옮겨 지방으로 갔다. 3번째로 내쫓겼던 목사는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그 두 목사가 어려울 때 관심을 갖지 않았기에 내가 어려울 때 다른 목사들의 무관심에 놀라기도 했지만 나도 그랬기에 ‘사람이 다 그렇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제 내가 겪은 아픔을 통해 어려움 당하고 있는 목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동정할 수 있게 됐다. 과부가 다른 과부에 대해 진심으로 울어 줄 수 있는 것처럼 내가 그렇게 된 것이다. 성경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했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당해보면 안다. 그래서 함께 울어주는 자가 진짜 나를 사랑하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24년 새해에는 이 한 구절의 말씀을 조금이나마 실천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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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4-01-13
  • 【북토크】 글쓰기는 솔직해야한다
    우리에게 “연탄재” 시인으로 잘 알려진 안도현이 시작법에 대해 좋은 책을 썼다. 읽으면서 많이 느끼고 배웠다. 시를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절감하고 시는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시는 아니라도 목사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이 책을 목사의 글쓰기 관점에서 보면 많은 통찰력을 얻게 될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모든 시가 고백적 양식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게 세 가지가 있다. 당신은 시를 쓰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이것들을 과감하게 배척해야 한다. 첫 번째는 과장이다. 제발 시를 쓸 때만 그리운 척하지 마라. 혼자서 외로운 척하지 마라. 당신만 아름다운 것을 다 본 척하지 마라. 모든 것을 낭만으로 색칠하지 마라. 그런 것들은 우습다. 두 번째는 감상이다. 이 세상의 모든 슬픔을 혼자 짊어진 척하지 마라.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 척하지 마라. 눈물 흘릴 일 하나 없는데 질질 짜지 마라. 그런 것들은 역겹다. 세 번째는 현학이다. 무엇이든 다 아는 척, 유식한 척하지 마라. 철학과 종교와 사상을 들먹이지 마라. 기이한 시어를 주워 와 자랑하지 마라. 시에다 제발 각주 좀 달지 마라. 그런 것들은 느끼하다. 오규원은 “시란 개인적인 욕망에서 이루어지는 욕망의 발산 형식이 아니라 개인적인 '나'의 욕망을 억제하고, '나'의 욕망 가운데 가치 있는 어떤 경험을 선택하고 객관화하는 작업을 통해서 남과 다른 세계를 유형화해 보여주는 의도적 행위"라고 했다. 자신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싶으면 일기에 쓰면 된다. 특정한 상대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싶으면 편지에 쓰면 그만이다. 시는 감정의 배설물이 아니라 감정의 정화조다. 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억누르고 여과시키는 일이 바로 시인의 몫이다(p. 43).
    • 오피니언
    • 책소개
    2024-01-09
  • 【북토크】 남을 죽이는 말과 글
    300만명 이상의 관객이 본 영화 『올드보이』는, 자기와 누나 사이에 대해 험담했다고 의심한 동생이 꾸민 스릴러물이다. 오해의 말 한마디가 비극을 만들었다. 요즘같이 공적, 사적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말과 글로 사람을 죽이고 매장하는 경우가 많다. 화가 세잔은 학교 동창 에밀 졸라의 소설에서 조롱받아 상처를 입고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이 가장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가족, 친인척, 그리고 친구들이. 말과 글은 또 하나의 칼과 흉기이다. 그러나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 화단의 후배이자 세잔의 열렬한 찬미자인 에밀 베르나르 Emile Bernard가 엑상 프로방스를 방문하여 한 달 간 그와 함께 지냈던 생활을 성실히 기록한 이 글은,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세잔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귀중한 일차자료이지. 나 또한 그런 야무진 꿈을 갖고 이 얄팍한 책자를 뒤적거렸지. 세잔이 그린 사과가 왜 그리 단단해 보이는지 그 비밀을 캐고 싶었거든. 그러다 뜻밖에도 내가 만난 건, 주변의 어느 누구에게서도 이해받지 못한 채 자신의 길을 걸어간 한 고독한 영혼의 초상이었어. 비평가들의 냉대에 좌절했던 젊은 시절, 그와 중학교 동창이며 당시 잘 나가던 소설가 에밀 졸라가 소설 『작품』에 나오는 무능한 화가 끌로드의 모델로 자신을 이용했다며 분개하는 세잔. "예술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 예술에 집착하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네.” 졸라의 이 말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겨 그후로 죽을 때까지 세상과 인간을 등지며 살게 만들었지(pp. 17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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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8
  • 【북토크】 세상을 단순하게 살아보자
    시의 매력은 짧다는 것이다. 소설처럼 길지 않고, 학습서처럼 골치가 아프지 않다. 시를 읽으면서 ‘아하!’하고 공감할 때가 있다. 그것을 위해 시를 읽는 것이다. 물론 그런 공감 가는 시를 쓰기 위해 시인은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좋은 시를 만나면 시인에게 고맙다. 반면 쉬운 것을 어렵게 쓰는 시인을 보면 ‘겉멋’이 들었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생각이다. 그런 시는 공감하기가 어렵다. 소개하는 이 시는 짧고 단순하다. 누구나 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로 표현한 것이 바로 시인의 능력이다. 평범한 우리도 시 쓰기에 도전할 용기를 준다. 까칠하지 않은 대화 너 아직도 불행하니? 아니,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아.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거야(p.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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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8
  • 【북토크】나이 든다는 것
    새해 2024년이 되어 모두 한 살을 더 먹었다. 젊은이야 나이 먹는 것에 아직 여유가 있지만 중년과 노년은 다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살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이팔청춘인데 나이가 늘어난다. 아직 한 일은 적고 할 일은 많은데 중천에 떴던 해가 이제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가고 있다. 1952년 태어나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서강대 영문학 교수로 살다 2009년 57세로 세상을 떠난 고 장영희 교수는 「아름다운 그물」이란 제목의 수필에서 나이를 먹을수록 남을 이해하고 그로인해 조금씩 착해진다고 말했다. 이제 그보다 한 살 많은 58세가 된 나도 그처럼 곱게 늙어야하는데 어찌될지는 자신할 수 없다. 추하게나 늙지 않기를 소망해보는 새해 연초이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이들은 나이 들어가는 일은 정말 슬픈 일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나이 들어가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고 노년의 나이가 가장 편하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살아보니 늙는다는 것은 기막히게 슬픈 일도, 그렇다고 호들갑 떨 만큼 아름다운 일도 아니다. 또 나이가 들면 기억력은 쇠퇴하지만 연륜으로 인해 삶을 살아가는 지혜는 풍부해진다는데 그것도 실감이 안 난다. 삶에 대한 노하우가 생기는 게 아니라 단지 삶에 익숙해질뿐이다. 말도 안 되게 부조리한 일이나 악을 많이 보고 살다 보니 타성이 강해져서 그냥 삶의 횡포에 좀 덜 놀라며 살 뿐이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나이 들어가며 내가 새롭게 느끼는 변화가 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나뿐만 아니라 남이 보인다. 살아보니 사는 게 녹록지 않아서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겨서일까, 세상의 중심이 나 자신에서 조금씩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조금씩 마음이 착해진다고나 할까. 결국 인간의 패기와 열정을 받쳐주는 것은 인간의 착함이다. 2006년 7월(pp. 10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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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7
  • 【북토크】 아버지의 기저귀
    내겐 아들 둘이 있는데 어렸을 때 기저귀를 갈아준 적이 별로 없다. 내 새끼라 사랑스러웠지만 똥 냄새가 싫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내가 아이들을 다 키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이 먹어 아버지의 기저귀를 갈게 됐다. 아버지는 1984년 크게 교통사고를 당해 1년 넘게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다리에 철심을 박고 퇴원하셨다. 이후 약간 절뚝이며 걸으셨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아버지는 다리가 아프다며 걷기를 포기하고 침대에 누우셨다. 지나놓고 보니 그때 재수술을 받으셔야했다. 교통사고 보상금을 받을 때 앞으로 있을 재수술비까지 받으셨는데 사고 후 특별한 일 없이 지내시다보니 결국 생활비로 다 써버려 재수술을 받지 않으신 것이다. 또한 1년여 넘는 병원생활을 하며 여러 차례 큰 수술을 하다보니 다시 몸에 칼대는 것을 싫어하셔서 결국 걷기를 포기하시고 누우신지 여러해다. 담임목회 중단 후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어느날 아버지께 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자식이 넷이나 되는데 아버지의 다리가 불편할 때 적극적으로 관심갖고 재수술을 권하지 못했다. 물론 다 사는 것이 여유가 없어 아버지의 재수술 비용을 그때 자식들이 감당했을지는 의문이다. 어찌됐든 벌써 여러해 누워 계시는 아버지를 뵐 때마다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나마 간병인이 아침에 기저귀를 갈고 어머니가 저녁에 갈았는데 그만 재작년에 어머니가 다리 골절로 인해 40여일 이상 병원에 계셨다. 결국 저녁 기저귀 가는 것은 내가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 옛날 같았으면 며느리인 아내가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일은 같이 사는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 기저귀를 갈아드렸다. 내 아이들 기저귀도 몇 번 갈아준 기억이 없는데 아버지 기저귀를 갈아주게 되다니... 기저귀를 갈아주러 갈 때마다 비장하게 마음을 먹어야했다. 아버지는 치아가 거의 없어 두유, 죽 등을 많이 드셔서 묽게 변을 보기에 처리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그런 경험을 한 내게 최영미 시인의 시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나도 그녀와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똥이든, 아이들의 똥이든, 아버지의 것이든 똥은 여전히 더럽다. 그런데 그 똥을 가리켜 “사랑스럽다”, “예쁜 똥”이다, “기쁨”이라고 하니 시인의 심성이 참 곱다. 나는 앞으로도 그렇게는 안 될 것 같다. 간병일기 내가 아는 똥은 더럽지 않다 / 내가 모르는 똥은 더러워, / 6인 병실의 화장실 변기에 묻은 누군가의 흔적은 / 기겁을 하고 치우면서, 비닐장갑을 끼고도 찜찜해 손을 씻고 또 씻으면서, / 열흘 만에 구경한 내 어미의 똥은 사랑스러워 "엄마 오늘 예쁜 똥 쌌다"고 사진을 찍어 동생들에게 보낸다. / 드디어 엄마의 뒷문이 열렸다! / 엄마- 힘좀줘봐 / 안 나온다 / 그래도 1분만 더 앉아 있어 지나가던 1분을 못 참고 일어나 워커를 잡은 당신에게 기저귀를 채워주려는데 가래떡처럼 뽑혀 나오는, / 내가 모르는 어미의 몸을 돌아다니다 세상에 나온 푸르스름한 덩어리를 내 손으로 받으며 출렁이는…………젊었을 적에는 모르던 기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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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1-03
  • 【북토크】새해에는, 힘들더라도 내가 더 버티어야겠구나
    어떤 사람들에게 2023년 연말은 이선균 배우의 자살로 뒤숭숭하게 마무리된 것 같다. 그를 좋아했던 많은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나 또한 영화 「기생충」에서 그를 인상깊게 봤었는데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문득 문득 그를 떠올렸다. 이처럼 한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힘들더라도 버텨야하는지 모르겠다. 예술가들은, 대중 연예인을 포함해서 수입이 천차만별이다. 잘 나가는 사람들은 많은 돈을 벌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한다. 예술가들은 특별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발명가처럼 무엇을 만들어내거나, 사업가처럼 사회를 위한 기업 활동을 하지 않지만 문화의 주역들로 다양한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국가적으로 연예인을 포함한 예술가들을 보호하고 지원해야한다고 본다. 실제로 몇 차례 연예계 종사자들이 생활고로 숨졌을 때 국가적으로 이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특별히 나처럼 다양한 책들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 저자들이 생활고로 책을 쓰지 않는다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마다 저자나 번역자, 출판사에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시와 글이 담백해 즐겨 읽는 최영미 작가는 이전에 근로장려금을 받은 게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 작가는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이라는 책에서 작가로서 사는 삶의 고단함에 대해 군데군데 표현하고 있다. 근로장려금 마포세무서로부터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네? 전화를 끊고 우편함을 여니 2015년도 귀속 근로장려금 신청 안내문이 보인다. 내가 연간 소득이 1,300만원 미만이고 무주택자이며 재산이 적어,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 보조금 신청 대상이란다. 아...... 약간의 충격. 공돈이 생긴다니 반갑고, (베스트셀러 시인이라는 선입견 없이)나를 차별하지 않는 세무서의 컴퓨터가 기특하다. 그런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ARS로 신청하니 귀하의 수령액은 59만 5천 원이라는데 심사를 거쳐야 실지급된다고. 매달이 아니라 일 년에 한번만 나온다니 실망. 충격의 하루가 지나고 내가 아는 교수들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 강의를 달라고 애원했다. "시간 두 강좌만 해도 한 달 생활비가 돼요." 생활이 어려우니 도와달라 말하니 학위를 묻는다. 국문과 석사 학위도 없으면서 시 강의를 달라 떼쓰는 내가 한심했다. 오늘은 S 출판사에 전화해 2년 넘게 밀린 시집 인세 달라고, 그냥 말하면 접수하지 않을 것 같아 "저 근로장려금 대상자......"를 들이대곤 웃었다. 밀린 인세 받는 데는 ‘근로장려금’만 한 협박이 없다! 3년 전에 발행한 책의 인세 89만 원이 그날로 지급되었으니.... 고맙다 마포세무서 컴퓨터여(pp. 25-26). 명색이 서울대 출신에 홍익대 석사를 한 나름 유명 작가의 1년 수입이 1,300만원이 안된다. 그것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기적일지 모른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이 작가가 된 것에 대해 후회했다. 내 인생을 돌아보며 가장 후회스러운 일. 1. 시인이 된 것. 시는 취미로 쓰고 다른 직업을 가질걸... 2. 어린 나이에 저지른 결혼. 3.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대학에 들어가 고생만 하고, 나온 뒤에도 떼어내지 못하는 서울대 꼬리표. 징그럽다(pp. 22-24). 그래서 그는 이런 시도 썼다. 내버려둬 시인을 그냥 내버려둬 / 혼자 울게 내버려둬 / 가난이 지겹다 투덜거려도/ 달을 쳐다보며 낭만이나 먹고살게 내버려둬 / 무슨무슨 보험에 들라고 귀찮게 하지 말고 / 건강검진 왜 안 하냐고 잔소리하지 말고 / 누구누구에게 잘 보이라고 훈계일랑 말고 / 저 혼자 잘난 맛에 까칠해지게 내버려둬 / 사교의 테이블에 앉혀 억지로 박수치게 하지 말고 / 편리한 앱을 깔아주겠다, / 대출이자가 싸니 어서 집 사라, / 헛되이 부추기지 말고 / 집 없이 떠돌아다니게 내버려둬 / 헤매다 길가에 고꾸라지게 / 제발 그냥 내버려둬(pp. 253-254). 그런데 이런 시를 쓴 작가는 어느 날 1인 「이미출판사」를 만든다.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밝힌 미투 시를 쓴 이후 많은 출판사에서 책 출간을 거부하자 이에 맞서 자신의 책을 내기 위해 출판사를 만든 것이다. 이것은 많은 시인과 작가, 예술인들이 “헤매다 길가에 고꾸라지게”된 것을 보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도전이다. 그래서 그는 “제가 저를 내버려두지 않으려고, 출판사 차리고 시집 낸 겁니다. 세상을 원망하며 눈을 감지 않으려고….”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를 이렇게 강하게 만든 한 에피소드가 있다. 2019년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란 신작 시집을 내고 사인회를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찾아줬다. 그 중 같이 온 중학생(?) 딸에게 “너는 이날을 기억하게 될 거야”라고 말하는 젊은 엄마가 있었다. 이것을 보고 작가는 감동 먹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면서 “힘들더라도 내가 더 버티어야겠구나...”라는 다짐을 하게 됐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세상을 등진 한 배우를 보며 자신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많은 팬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힘들더라도 더 버티었어야”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당사자에게는 죽음 이외에는 탈출구가 없다는 중압감이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일로 치이면서 살아간다. 삶에 어려움이 없는 자가 얼마나 있을까? 나에게도 삶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2024년 새해를 출발하며 “힘들더라도 내가 더 버티어야겠구나...”라는 다짐을 해본다. 이런 좋은 글을 써준 작가에게 고맙다. 예전에는 책을 사봤지만 이젠 책을 대출해 보기에 작가들에게 조그마한 도움도 되지 못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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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1-01
  • 【단상】 2023년을 보내며...감사하고 감사하다!
    38년전인 1985년, 총신대 신학과 입학을 위한 면접에서 면접관이 좋아하는 성구를 외워보라고 했다. 그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를 말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아마 면접이라는 떨리는 상황에서 생겨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성구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좋아하고 암송하는 구절이다. 그때 왜 이 구절이 생각났는지는 모르겠다. 이후 자주 이 구절은 기억 속에 떠 올랐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또다시 이 구절이 떠오름에 감사하다. 2023년에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좋았던 일도 있었고 나빴던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거쳐 지금 시간에 이르렀기에 감사하다. 나빴던 일들도 언젠가 협력해 선을 이룰 것이라고 믿기에 그 또한 감사하게 생각한다. 변화를 싫어하고 안정지향적이기에 교회 개척은 생각해 본적도 없이 부목사를 거쳐 담임목회에 나서 15년간 목회를 하다 중단되고 생각지 않은 언론인의 길을 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목회를 했으면 만나지 않았을 다양한 일들을 경험했다. 때로 힘들고 황당했지만 그래도 결론은 은혜였고 감사였다. 이제 몇시간 남지 않은 올 한해 2023년을 돌아보고 또 은혜와 감사로 마무리 하게 되어 감사하다. 인생에 원치않던 급변침이 있었지만 침몰하지 않고 미지의 길로 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내년 말에도 또 다시 은혜와 감사의 마무리가 있을 것을 기대해 본다. 아듀 2023년!
    • 오피니언
    • 칼럼
    2023-12-31
  • 【북토크】 배가 고파야 예술 할 수 있나?
    배고파도 예술인은 예술인의 “가오”를 먹고 사는데 최영미는 그렇지 않다. 시인이기 전에 생활인으로서 책을 출간하거나 원고를 기고하거나 강연을 통해 “생활비”를 벌어 먹고 사는 시인의 고단함에 대해 진솔하게 말했다. 혹시 책을 낼 계획이 있다면 참고할 수도 있고, 먹고사는 일의 신산함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기에 책에 있는 내용을 소개해본다. 성공한 사람만 아니라 실패한 사람에게서도 우리는 무언가 배울 게 있다. 내가 저지른 황당한 실수들을 여러분은 피하시기를 빌며 경험담을 조금 늘어놓겠다. 1994년에 첫 시집을 출간하며 나는 창작과비평사와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당시엔 그런 관행이 아예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시집 이후에 내가 출간한 책들은 계약서를 썼다. 내 글이 해외에서 번역되거나 노래나 영화로 만들어 질 경우에 이익의 분배비율에 집착해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했던, 나는 바보였다. 6:4를 7:3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해 내 의지를 관철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출판사에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고 담당자를 피곤하게해 그들의 마음이 내게서 떠나는, 내게 불리한 결과를 낳았다. 나의 충고 1. 계약서를 쓰되 계약서에 너무 얽매이지 마라. 비율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이 (출판사 대표나 편집자가) 내 책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가가 더 중요하다. 한국사회에서는 실력보다 인간관계가 성공을 좌우한다. 그들이 나를 좋아하지도 않고 내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면 책은 내주더라도 그 책이 잘 될 리가 없다. 2. 계약서는 계약 당일에 가서 읽지 말고 미리 이메일로 초안을 보내 달라고 하라. 집에서 혼자 천천히 검토하며 금액은 물론 지급시기, 계약 기간 같은 중요한 사항들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 계약 당일에 옷차림은 너무 분방하지 않게 약간 격식을 차려입는 게 좋다. 예술가가 이런 시시콜콜한 것들을 신경 쓰냐고 반문할 수도 있으나 옷차림이 제멋대로이면 행동도 제멋대로인 경우를 여러번 경험했다. 3. 약간의 예외는 있겠지만, 계약 기간은 짧을수록 예술가에게 유리하다. 상대방과 뜻이 맞지 않아 계약을 해지하고 싶은데 계약 기간이 길어 5년 10년 마냥 기다려야 한다면 얼마나 속이 터질 일인가. 출판 계약의 경우, 초판 5년에 이후 5년마다 쌍방의 해지의사 표시가 없으면) 자동으로 연장되는 게 업계의 상식인데, 너무 긴 것 같다. 3년으로 하되 그 뒤 1년마다 해지 가능한 조항을 넣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 보기 싫은 표지를 어떻게 5년을 참나. 4. 큰돈이 걸린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계약서를 생략하고 이메일로 대신해도 된다. 일을 할 때마다 무조건 계약서를 쓰자고 덤비지 마라. 계약서보다 이메일이 열람도 쉽고 관리도 편리하다. 5. 계약서들을 종류별로 수납해 기억하기 쉬운 곳에, 생각나면 꺼내보기 쉬운 곳에 두시길. 6. A라는 거래처와 관계가 좋다고 A만 믿고 따르지 말고 거래처를 다양하게, 적어도 두 곳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시길. 지금 해가 쨍쨍하지만 언제 천둥번개가 칠지 모르니 전속계약이나 너하고만 작업한다는 내용의 배타적인 계약은 하지 마시길. 7. 내가 먼저 아쉬워 계약할 때보다 그들이 내게 먼저 제안할 때 내 몸값을 더 높일 수 있다. 누군가 당신에게 어떤 제안을 한다면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감사해야 한다. 8. 얼마를 줄지를 처음부터 밝히지 않고, 돈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작품을 의뢰하거나 강의를 부탁하면 정중히 거절하라. 강연을 요청하며 강연료를 말하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다. 돈 이야기하는걸 두려워 마라. 언젠가 미지급 원고료를 받으려 전화했는데 "시인에게서 이런 (돈 달라는) 전화 받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시인이 시시하게 돈 이야기하지 않게 당신들이 미리미리 챙겨줘야지! 9. 거절할 때는 부드럽게, 상처받지 않게 거절해야 뒤탈이 없다. 10. 배가 고파야 예술을 한다는 말은 믿지 마라. 배가 고프면 아무 생각이 안 나서 창의력도 감퇴한다. 자신이 원하는 작업을 하며 예술가로 살아가려면 돈이 있든가 후원자가 있어야 한다. 월세를 걱정하며 어떻게 긴 호흡의 장편소설을 쓸 것인가. 계약의 기술 혹은 계약의 예술에 정통해야 예술가로 대접받는다(pp. 156-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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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3-12-31
  • 【북토크】메신저가 메시지다
    ‘지식 소상인’을 자처하며 활발하게 글쓰기를 하는 작가 유시민이 2015년에 쓴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으면서 크게 공감한 것 세 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첫째, 왜 우리는 글쓰기를 배워야하는가? 글을 써야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카톡과 문자를 수시로 주고 받는다. 개인적인 사소한 글이지만 이것도 결국 글쓰기이다. 학창 시절에는 학업을 위해 글쓰기가 필요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직장생활을 위해 글쓰기가 필요하다. 이처럼 글쓰는 것은 삶과 땔 수 없다. 이에 대해 유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글쓰기는 두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그 특별함 때문에 사람들은 글을 잘 쓰고 싶어 하고, 또 글쓰기를 두려워한다. 첫째, 세상이 글쓰기를 요구한다. 우리는 때때로 쓰기 싫어도 글을 써야만 한다. 학업과 진학, 취업을 위해서다.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글을 써야 한다. 정보통신혁명으로 인해 인터넷 메신저든 전자우편이든 글로 소통하면서 일상 업무를 처리하는 전문 직종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글을 잘 쓰지 못하면 사는 데에도 지장이 많다. 둘째, 사람들은 글 잘 쓰는 이를 부러워하며 심지어는 우러러본다. 글쓰기 실력을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지성의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글이 글쓴이의 지능, 지식, 지성, 가치관,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는 것은 다툴 여지가 없다. 글을 잘 쓰려면 일단 표현할 내면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 아는 게 많아야 한다. 다양한 어휘와 정확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p 258). 둘째, 그런데 글은 글 쓴 사람과 분리할 수 없다. 글이 힘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가 쓴 글처럼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설교학에서는 ‘설교자인 메신저와 설교의 내용인 메시지는 분리할 수 없다’, ‘메신저가 메시지’라는 말을 한다. 매국노 이완용이 아무리 애국에 대해 그럴듯한 글을 써도 그 글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과 같다. 유시민이 이것을 언급한 것을 보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기자가 아무리 그럴듯한 주장의 글을 써도 그의 삶이 그렇지 않으면 외면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했다. 기자가 아무리 좋은 내용의 글을 써도 그 기자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독자는 그 글을 외면할 것이다. 내게 있어 이것은 이 책을 읽고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이에 대해 유시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술은 필요하지만 기술만으로 잘 쓸 수는 없다. 잘 살아야 잘 쓸 수 있다. 살면서 얻는 감정과 생각이 내면에 쌓여 넘쳐흐르면 저절로 글이 된다. 그 감정과 생각이 공감을 얻을 경우 짧은 글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기술만으로는 훌륭한 글을 쓰지 못한다. 글 쓰는 방법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내면에 표현할 가치가 있는 생각과 감정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훌륭한 생각을 하고 사람다운 감정을 느끼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그런 삶과 어울리는 글을 쓸 수 있게된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려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 무엇이 내게 이로운지 생각하기에 앞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해야 한다. 때로는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원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만으로 쓴 글은 누구의 마음에도 안착하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돌다 사라질 뿐이다(pp. 261-164). 셋째, 글쓰기를 잘 하기 위해서는 결국 노력이 필요하다. 글쓰기를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유시민은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안한다. 글쓰기에는 철칙(鐵則)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어도 글을 잘 쓰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이 읽지 않고도 잘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 축구나 수영이 그런 것처럼 글도 근육이 있어야 쓴다. 글쓰기 근육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쓰는 것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그래서 철칙이다(p 62). 15년간 담임목회를 하다 “어쩌다 기자”가 된 나로서 다행인 것은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꾸준히 다양한 책을 읽고 있다. 이면은 글을 써야하는 기자로서 다행이다. 또한 기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다행히 목회할 때 주로 원고 설교를 했기에 글쓰는 훈련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전문 기자로서 글을 써야하기에 매일 한 건 이상의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있다. 행사가 있다면 취재 기사를 싣겠지만 늘 행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때는 이처럼 책 읽은 것에 대한 기사를 싣든지 아니면 수필, 개인 생각 등 다양한 글을 쓸려고 노력한다. 이 모든 것이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기자의 몸부림이라고 생각하고 어여삐 봐주시기를 바란다. 나는 독서가 취미라 다행이다. 취재 외에 밖으로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저 집 안에서 이 책 저 책 읽는게 좋고, 또 도서관에서 대출 신청하면 집 근처 수유역까지 배달해 주니 책 사는데 돈 쓸 필요도 없고, 책둘 공간도 없기에 매번 책을 대출해 읽으면서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이또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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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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