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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 글을 잘 쓰는 구체적인 방법
    글쓰는 것은 나의 오래된 관심사항이다. 기회 되는대로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는다. 이 책도 그러한 관심에서 봤다. 유익하다. 특별히 이문재 교수는 글쓰기에 대해 매우 잘 설명하고 있어 전문을 게재한다. 잘 읽어보면 많은 유익을 얻을 것이다. 이문재 (시인,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정확해야 아름다울 수 있다 왜 저널리즘적 글쓰기인가? 글쓰기의 장르는 매우 다양합니다. 사적인 글쓰기/공적인 글쓰기, 사적인 글쓰기: 일기, (자서전) 편지, 이메일, 공적인 글쓰기: 시와 소설, 희곡, 에세이, 기행문 등 문학적 글쓰기, 기사, 칼럼 등 저널리즘적 글쓰기, 광고 문안, 연설문, 안내문, 보고서, 기획서, 청원서 등등. 글쓰기는 더 이상 문인, 저널리스트 등 몇몇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미디어 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것과 아울러, '문자시대는 가고 영상 시대가 도래했다고들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봅시다. 영상 이미지 역시 최종적으로는 문자 언어로 번역되어야 이해와 소통이 가능합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와 같은 뉴 미디어 역시 문자 언어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언어를 버리지 않는 한 인간이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문자 문화는 영원할 것입니다. 언어는 대중의 합의에 의해 정착되고, 또 동시에 대중에 의해 변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어에 일정한 규범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언어가 대중(언중)에 의해 생성소멸하고 유통되고 기록(저장)되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말하기와 쓰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문자 시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문자는 영상 혹은 구술 문화에 의해 위축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문자 시대를 능동적으로, 그리고 당당하게 영위하는 교양인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교양인이라면, 적어도 대학교를 졸업한 교양인이라면 전공을 불문하고 정확한 글쓰기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의 개별적 삶은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행위의 연속입니다. 이 중에서 쓰는 행위가 가장 논리적이고 또 정확해야 합니다. 글쓰기의 일차적 목표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한 것을 그대로 쓰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무의식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생각 자체가 정돈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정돈하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은, 설계도도 없이 집을 짓는 경우와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이 잘 정돈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정확히 표현(건축으로 치면 시공 능력)할 수 없다면 글쓰기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갖고 있는 몇 가지 미덕 우리가 저널리즘적 글쓰기(기사 쓰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정확한 사실에 바탕해, 정확하게 표현하는 글쓰기의 모범이기 때문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자기 주장이 강하게 드러나는 칼럼(사설)이든, 쓰는 이의 관점이 가능한 한 배제되는(이른바 '객관적'이라는 스트레이트 기사에 이르기까지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무엇보다도 정확성이 강조됩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가장 적합한 글쓰기 방법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에서 아름다움은 미덕이 아닙니다. 미사여구는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데 있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수사는 사실(fact)을 표현하는 데 있어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를 주목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다른 글쓰기와 달리 취재와 구성이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설이나 드라마 시나리오를 쓸 때에도 취재 과정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널리즘에서처럼 구체적인 현장(인물)과 정확한 사실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저널리즘에서 활용하는 다양한 취재기법은 우리가 다른 장르의 글쓰기를 할 때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습니다. 기획서나 평가 보고서를 작성할 때에도,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꾸밀 때에도 저널리즘의 취재기법을 동원하면 글이 훨씬 입체적이고 풍성해집니다. 셋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사건이나 사고, 사태나 현상 등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고 심층적인 보도 못지않게, 남과 다른 시각에서 분석하려는 태도 역시 저널리즘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넷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독자 대중의 알 권리를 기본으로 하지만, 인물이나 사건 사고, 사태 등에 대한 독자의 기본적 궁금증을 풀어주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여론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사회 변화와 그 변화의 방향성을 파악하는 데 시야를 넓히고 시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다섯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표현뿐 아니라 전달에 큰 비중을 둡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새로운 지식과 정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독자(수용자)에게 전달되고 소통(커뮤니케이션)되지 않는다면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존재 이유가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의 일상적 삶은 우리가 저널리스트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정보를 송신하고 수신하는 환경 속에서 진행됩니다. 송신자이면서 수신자인 우리가 소통 능력을 키우지 못한다면, 그 삶은 심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소통 능력이 있는 시민들로 구성된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마지막으로,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우리는 저마다 '1인 미디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블로그에 이어, 사용자 제작 컨텐츠(UCC, User-created content)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듯이, 우리는 저마다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의견과 주장이 분명하다면, 그 사람은 어디에 있든, 그 의견과 주장을 어떤 미디어를 통해 전달하든 이미 저널리스트인것입니다. 지식정보사회를 살아가면서 단순한 지식 정보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지식과 정보를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동시에 지식과 정보, 의견을 개성적으로 생산하고 소통하기 위해 우리는 저널리즘적 글쓰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를 체득하면, 보고서뿐 아니라 한 권의 책을 집필할 때에도 시간과 노력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한 편의 기사와 한 권의 논픽션의 구조와 글쓰기 방법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기사, 노력한 만큼 잘 쓸 수 있다. 1. 저널리즘적 글쓰기의 유형: 스트레이트 기사, 인터뷰 기사, 스케치 • 분석 및 해설 기사(feature story), 르포르타쥬, 칼럼, 논설 등 2. 기사를 잘 쓰기 위한 몇 가지 방법: 1) 주제를 분명하게 설정합니다. 주제를 한 문장으로 만들 수 있다면, 절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가령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고 하면 각 분야에서한국을 이끄는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하는 기획일 것입니다. 기사의 주제는 분명한 계기가 있어야 하며, 독자에게 유익한 정보가 되어야 합니다. 정보성이 부족하다면 흥미를 끌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2) 주제를 뒷받침할 자료와 전문가, 현장(사례), 관련 기사를 찾습니다. 주제가 정해졌다면 가장 먼저 관련 기사를 검색해야 합니다. 한창 취재하다가 비슷한 기사가 몇 년 전에 나온 사실을 알고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관련 기사를 검토하다 보면, 주제를 바꾸거나, 취재 영역에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3)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역피라미드형: 전문(요약)중요한 사실-흥미 있는 이야기 순으로 구성합니다. 1900년대 초 미국의 AP통신이 개발한 기사 구조로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흔히 사용합니다. ◎피라미드형: 도입-중요한 사실-서스펜스 형성-클라이맥스 순입니다. 피라미드형은 피처 기사에서 자주씁니다. 독자의 관심을 계속 끌고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문학적이고 연대기적인 서술 방식입니다. ◎혼합형: 클라이맥스(요약)-서론-본론 결론 순. 4) 1), 2), 3)이 충분하게 준비되었다면, 기사 작성에 들어갑니다. • 간결하게 써야 합니다. 국내 신문은 일반적으로 5행 이상(65~75자)을 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단문을 쓰라는 것입니다. • 가능하면 구어체를 씁니다. 이야기하듯이 쓰라는 것입니다. ·주어와 술어를 분명히 합니다. • 매력적인 언어를 찾습니다. ・쉽게 씁니다. 좋은 기사의 첫째 조건은 쉬운 문장입니다. 이상은 언론학 입문서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권장하는 지침입니다. 필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기사를 잘 쓰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를 유념 해야합니다. 먼저, 앞에서 말한 대로 기사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십시오. 이것이 나중에 기사 제목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획과 취재의 매 단계에서 판단 기준이 됩니다. '민물낚시, 환경오염 주범'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한다면, 바다낚시의 오염 문제에 관한 자료는 읽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기획과 취재 단계에서 기사의 첫 문장, 즉 리드를 구상하십시오. 첫 문장이 결정되지 않으면 기사를 쓰기 어렵습니다. 취재를 충분하게 해놓고서도 첫 문장, 즉 도입부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기자들이 제법 많습니다. 어디 기사뿐인가요. 모든 종류의 글쓰기가 첫 문장 에서 좌우됩니다. 오죽하면, 작가들이 "첫 문장은 신의 선물이다" 라고 말하겠습니까. 필자는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기획이 정해지면 그때부터 제목과 첫 문장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시를 쓸 때에도, 산문이나 논문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복잡한 사안을 취재할 경우, 취재한 내용을 주위 동료나 가까운 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흥미로운 인물을 인터뷰했을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취재한 내용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상대방의 반응을 체크할 수 있습니다. 가령 상대방으로부터 더 취재해야 할 부분, 더 강조해야 할 부분 등 의외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넷째, 관련 서적을 찾으십시오. 인터넷 검색은 참고자료일 뿐입니다. 가장 새롭고 신뢰할 만한 정보와 자료는 책에 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필자는 특집 기사를 쓸 경우, 기사 검색을 한 다음 대형 서적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관련 서적 한두 권만 읽으면, 그 분야의 권위자가 누구인지, 그 분야와 관련된 최신 이론은 무엇인지 장악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취재해서 기사를 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떤 책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다섯째, 소설을 많이 읽고 영화, TV 드라마를 자주 보십시오. 소설은 어휘력을 풍부하게 해줄 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시각을 갖게 해줍니다. 문학 분야가 아니더라도 베스트셀러 책은 따라 읽어야 합니다. 관객이 많이 드는 영화와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베스트셀러 책과 영화, 드라마에서 한 줄 인용하면서, 혹은 등장인물을 끌고 들어가면서 기사를 시작하면 독자들의 눈길을 더 많이, 또 오래 붙잡을 수 있습니다. 기사의 궁극 목표는 좀 더 많은 독자들이 읽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늘 기사만 생각하십시오. 기자는 늘 기사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심지어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에도 기사를 생각해야 합니다. 카페 옆자리에서 얻어들은 한 마디가 대형 기사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찬반양론이 팽팽한 기사일 경우, 가족이나 친구들의 의견을 청취해보면, 취재나 기사 작성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사는 혼자 쓰는 것이 아닙니다. 기사가 아니라 다른 장르의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고 읽고 느끼고 생각한 만큼 글은 달라집니다. 개성적 글쓰기를 위한 기초체력 다지기 정확한 문장이 관건입니다. 정확하지 않은 문장은 특히 저널리즘에서 문장이 아닙니다.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에서도 정확성이 우선입니다. 아름다운 문장은 그 다음입니다.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하는 작가는 아름다운 문장, 개성적인 글을 쓰기 어렵습니다. 정확하고 개성적인 쓰기를 위해서는 '기초체력'이 필요합니다. 글쓰기를 위한 기초체력을 다지는 필자의 체험적 방법론을 소개합니다. 1. '나쁜 버릇'부터 찾는다 어떤 글이든 좋습니다. 자기가 쓴 글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자주 나타나는 단어나 표현이 발견됩니다. 사람마다 특유의 말투(말버릇)나 몸짓이 있듯이 글에도 특유의 '버릇'이 나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것이다'라는 종결어미를 자주 씁니다. '~것이다'는 가능하면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글 버릇을 찾아내는 눈을 가지고 있다면 가능성이있습니다. 다음으로, 수식어가 많은 문장, 접속사가 많은 문장, 나열이 많은 문장이 나쁜 문장입니다. 자기 글에서 나쁜 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글을 잘 쓰는 사람입니다. 자기 글에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는 수준까지 빨리 올라가야 합니다. 자기 글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문제점만 제거해도 글쓰기는 순식간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됩니다. 자기 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른다면, 정말 큰 문제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자기 글을 들여다보십시오. 자기가 쓴 글들을 '원수가 보내온 편지'라고 생각하고 여러 차례 읽어보십시오. 버릇이 발견될 때까지 읽으십시오. 2.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찾아라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기자나 작가의 글을 집중적으로 읽으십시오. 글쓰기의 모델을 하나 설정하는 것입니다.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은 반드시 좋아하는 가수가 있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가 지망생은 필사하고 싶은 선배 소설가가 한둘은 꼭 있습니다. 좋은 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그대로 베껴 쓰십시오(필사). 외우면 더 좋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적극 모방해보십시오. 그 과정에서 글쓰기 수준이 몰라보게 향상됩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국내 소설가 대부분이 선배 작가의 소설을 필사하면서 습작기를 거쳤습니다. 추천하고 싶은 필자 '모델'은 문인 이외에, 혹은 문인이면서 매체에 자주 기고하는 분들입니다. 제가 추천하고 싶은 분들은 도정일(문학평론가),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 고종석(소설가 겸 언론인), 김훈(소설가 겸 언론인). 배병삼(정치학 및 동양학), 한형조(동양철학), 송호근(사회학), 고미숙(문학평론가),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등입니다. 이외에도 좋은 필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3. 새롭지 않으면 쓰지 말라 저널리즘의 생명은 새로움입니다. 새롭지 않으면 뉴스가 아닙니다. 저널리즘이 아니라도 그렇습니다. 모든 글쓰기는 새로워야 합니다. 사실이나 의견에서 새로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표현이라도 새로워야 합니다. 새롭지 않다면 신기하거나(의외성) 흥미로워야 합니다. 새로움, 의외성, 흥미, 이 세가지 중 한 가지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글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4. 자세히 관찰하라 관찰은 모든 글쓰기의 스타트 라인입니다. 사물이든 사건이든 인물이든자 세히 관찰하지 않고서는 정확한 글쓰기가 불가능합니다. 관찰이 부정확하면 사실관계가 흔들립니다. 정확히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오감 가운데, 시각이 특히 부정확합니다. 주변 환경에 따라 착시 현상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상기해보십시오. 관찰은 단지 시각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많이, 그리고 정확히 느끼는 것도 관찰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책읽기, 영화 감상, 미술 감상 등도 관찰입니다. 관찰은 대상에 대한 집중입니다.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선입견을 버리고, 현상학적으로 말하자면 판단을 중지하고) 대상에 몰입했다가, 다시 대상으로 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상상력은 이 관찰 단계에서 나옵니다. 관찰 훈련의 첫 단계는 자기가 본 것으로 소리 내어 말해보는 것입니다. 관찰 대상이 인물이라면, 머리 모양과 색깔, 길이에서부터 이목구비를 거쳐 구두까지 관찰하면서 하나하나 말해보십시오. 컴퓨터나 텔레비전, 화분, 식탁, 자동차 실내 등 늘 마주치는 대상을 하나 정해서 소리 내어 하나하나 관찰해보십시오. 그동안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것이 발견입니다. 낯익은 것에서 낯선 것을 찾을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최고의 글쓰기 재료입니다. 5. 메모하고, 메모하고 또 메모하라 기억력이 남다르다고 해도, 메모를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뛰어난 작가는 물론이고 예술가, 심지어 기업의 CEO들도 메모를 자주 합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메모광입니다. 인간이 하루에 접하는 새로운 정보(자극)는 수십만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 하루를 돌이켜보십시오. '오늘 내가 새로 느낀 것, 새로 발견한 것'을 떠올려보십시오. 거의 없을 것입니다. 주머니 혹은 핸드백에 작은 수첩과 필기구를 반드시 챙기십시오. 수첩과 필기구를 챙기는 습관이 들었다면, 글쓰기를 위한 가장 필수적인 요건을 갖춘 것입니다. 저는 화장실에도 연필과 포스트잇을 갖다 놓습니다. 주머니에 메모지와 볼펜이 없으면 산책도 하지 못할 만큼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천 번 새로운 생각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글쓰기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좋은 글은 메모지에서 나옵니다. 메모지가 '상상력 발전소'입니다. 개성적인 글쓰기를 위한 세부 지침 1. 나로부터 시작하라 저널리즘적 글쓰기, 특히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나'는 차가운 전달자입니다. 스트레이트 기사에는 글쓰는 사람의 주관이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활자매체의 기사는 연성화하고 있습니다. 피처 기사, 칼럼 등은 대단히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문체를 구사합니다. 기사작성 연습을 하고 싶다면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서전을 써 보거나, 자기가 자기를 인터뷰하는 것입니다. 가족이나 친구를 소개하는 글도 좋은 훈련이 됩니다. 자기가 사는 마을(아파트)을 취재해 사진과 곁들여 기사를 써보는 것도 훌륭한 저널리즘적 글쓰기입니다. 시나 소설을 쓰기 원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쓰십시오. 문학적 글쓰기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 가운데 하나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서 출발하십시오. 나에 대해, 나의 가족과 친구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잘 알고 있는 소재를 글로 쓸 때,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나'에 대한 글쓰기는 자기 삶을 성찰하는 진지한 계기를 제공합니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이 같은 인문학적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은 글쓰기 말고 거의 없습니다. 2. 반복하지 말라 반복은 강조할 때 말고는 피해야 합니다. 반복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표현의 반복과 내용의 반복이 그것입니다. 같은 단어, 같은 표현을 반복하지 마십시오.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유의어를 쓰십시오. '그녀는 아름다운 숄을 두르고, 아름다운 가방을 들었으며, 아름다운 마을에 산다. 이 문장에서 '아름다운'은 반복될 뿐만 아니라, 정확하지도 않습니다. 글쓰기의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내용의 반복입니다. 중언부언하지 마십시오. 같은 내용(견해, 정보, 지식......)이 반복되면 독자는 냉정하게, 즉각 눈을 돌립니다. 친구와 이야기할 때를 떠올려보십시오. 어제 한 얘기를 오늘 하면 친구는 즉각 이렇게 나옵니다. "그거, 어제 들은 얘기야."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3. 한 문장에는 하나의 정보만 담아라 이것은 문장을 짧게 쓰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한 문장에는 하나의 정보, 한문단에도 하나의 정보군을 담는 것입니다. 한 문장에 두 개 이상의 정보를 담는 순간, 문장은 길어집니다. 한 문단에 두 개 이상의 정보군을 담으면, 복잡해지기 때문에 독자가 이해하기 힘들어집니다.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 또는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한 문장, 하나의 정보' 원칙에 따라 글로 써보십시오. 처음에는 대단히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몇 번 고쳐 쓰다보면, 문장을 짧게 쓰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할수 있을 것입니다. 4. 접속사를 쓰지 말라 통학 또는 통근 과정을 '한 문장, 하나의 정보' 원칙에 따라 쓰다 보면, 수시로 접속사가 끼어들 것입니다. 접속사 없이 쓰려고 애써보십시오. 최근에 읽은 소설 가운데 접속사가 거의 ('전혀' 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없는 소설이 있습니다.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인데, 접속사에 유의하며 읽어보십시오. 매우 흥미로운 글읽기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접속사는 글 쓰는 이의 마음속에 있어야 합니다. 특히 연결형, 나열형 접속사를 피하십시오. 5. 나누고 묶어주어라 기사를 쓸 경우, 다양한 정보를 한꺼번에 제공해야 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럴 때는 유사한 것끼리 묶어줘야 독자가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음식 종류를 소개한다면, 국적별 혹은 재료별, 계절별 등으로 나누어 묶어줍니다. 6. 병치할 때 조심하라 같은 기능을 가진 단어, 구, 절 등이 나란히 놓일 때 자주 오류가 나타납니다. '사과와 큰 배' '철수는 중학생이고 영희는 공부를 잘한다'와 같은 문장이 의외로 많습니다. '사과'라는 단어와 '큰 배'라는 구는 병치하면 안 됩니다. 단어는 단어끼리, 구는 구끼리 병치하십시오. '사과와 배' '작은 사과와 큰 배'가 적확한 표현입니다. 앞의 문장은 '철수는 중학생이고, 영희는 초등학생이다로 써야 합니다. '중학생' (단어)과 '공부를 잘한다' (구)가 나란히 놓이면 대단히 어색합니다. '30-3-30 법칙'을 명심한다 언론인들은 30-3-30 법칙'을 자주 언급합니다. 여기서 30. 3. 30은 각각 30초, 3분, 30분을 일컫습니다. 독자들이 기사를 읽을 때, 처음 30초 동안은 제목이나 부제, 사진, 그래픽 요소, 기사의 도입부 등을 살펴본다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처음 30초 안에 기사를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만일 읽기로 마음먹었다면 다음 3분 동안 기사의 도입부를 읽습니다. 그리고 도입부가 흥미롭다면 30분 동안 기사를 끝까지 읽는다는 것입니다. 기자와 편집자는 처음 30초를 3분으로 늘리고, 다시 3분을 30분으로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기사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든 글이 제목과 도입부에서 결정납니다. 시처럼 짧은 글에서도 제목이나 첫 연이 진부하면 독자들은 눈을 돌려버립니다. 소설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보고서나 논문도 마찬가지입니다. '30-3-30 법칙'은 첫 문장에 목숨을 걸라는 저널리즘적 글쓰기의 핵심을 압축하고 있는 법칙입니다. 이문재. 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경희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시사저널 취재부장, 문학동네 편집주간을 역임했고, 현재 <시사IN> 편집위원, <문학동네〉 편집위원,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 등이 있다(pp.197-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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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 【북토크】 가수 장기하의 깨달음
    가수 장기하를 좋아한다. 노래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의 대중적인 첫 노래 “싸구려 커피”, “달이 떠오른다, 가자” 등은 신선했다. 읽을 책들을 검색하다 보니 그가 몇 년 전에 쓴 것이 있어 대출해서 봤다.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첫 장인 ‘안경과 왼손’은 주어진 환경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돌아본 후 감사하는 내용이다. 읽어볼만해 전문을 소개한다. 안경과 왼손 얼마 전 안경을 잃어버렸다. 매우 아끼는 안경이었다. 아니, 아낀다는 표현으로도 모자란다. 이삼 년 전 그 안경을 산 이후로는 오직 그것만 써왔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있을 만한 곳을 전부 다 여러 번씩 싹싹 뒤져봤지만 찾지 못했다. 결국 예전에 썼던 다른 안경을 쓰고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 이삼 일 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마음을 털어버렸다. 그래, 그 안경이랑은 여기 까지였나보지 뭐. 나는 국소성 이긴장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다. 해괴해 보이는 이름이지만 의미는 간단하다. '국소성'이란 특정 부위에 나타남을, '이'는 이상함을, '긴장'은 말 그대로 긴장을 뜻한다. 한마디로 특정 부위가 이상하게 긴장된다는 얘기다. 이 병명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는 '이'다. '이'자가 들어간 병을 선고받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런 상황이다. 몸이 안 좋다. 병원을 찾아가 묻는다. "선생님, 저 왜 아픈건가요?" 의사가 답한다. "그러게요. 이상하네요." 그렇다. 내 병은 원인도 치료법도 알려지지 않은 희귀병이다. 이 병이 처음 생긴 것은 대략 십오년 전쯤으로, 군악대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눈뜨고코베인'이라는 록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었다.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드럼 하나로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연주를 잘하는 사람, 즉 프로 드러머가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외의 진로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학교 공부는 최소한으로 하고 드럼 연습과 밴드 활동 위주로 생활했다. 그러다보니 군복무를 시작도 하지 않은 채 대학 오 년 차를 맞았고, 더이상은 입대를 미룰 수 없게 되었다. 내 선택은 당연히 군악대였다. 군대에 있는 동안 손발이 녹슬면 큰일 아닌가. 일반 부대는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군악대는 록 연주만 잘한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클래식 타악, 특히 행진곡풍의 연주에 능통해야 했다. 자신은 있었다. 이미 연습이라면 많이 해온 터였기 때문이다. 좀 다른 장르의 연주라고 해서 못 해낼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시험을 대비해 맹연습에 돌입했다. 이삼 개월쯤 지났을 때 복병이 나타났다. 연습만 하려고 하면 내 의지와 관계없이 왼손이 꽉 쥐이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드럼 연주의 기본은 그립이다. 누가 툭 치면 놓쳐버릴 듯 살며시 스틱을 잡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만들어야 빠르고 정확한 연주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꾸 나도 모르게 스틱을 힘껏 잡게 되고 그것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연습하다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스틱을 집어던진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결국 군악대는 포기했다. 치료법도 알 수 없고 상태가 호전될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프로 드러머의 꿈도 함께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리 절망스러운 단념은 아니었다. 내 생각의 흐름은 이랬다. '하긴 군악대의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연주하는 게, 내가 멋있는 음악을 하는 데는 오히려 해가 될지도 몰라. 멋있는 음악이라... 그래, 생각해보면 프로 드러머가 되는 것 자체가 멋있는 음악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겠네. 연주로 먹고살려면 돈 되는 음악을 해야 하는데, 내가 지금 멋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음악 중에 돈 되는 게 하나라도 있나? 그리고 나는 우리 밴드 음악이 제일 멋있는데 그걸로 돈을 벌어본 적도 없잖아? 애초에 음악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였어!'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프로 연주자가 아닌, 돈은 안 돼도 '멋있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일반 부대에 입대했다. 제대한 후 나는 그 '멋있는' 뮤지션이 되는 일을 실행에 옮겼다.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한 상태에서, 내가 싱어송라이터로서 이끄는 새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한 것이다. 최소한의 돈과 최대한의 시간을 확보해 자유롭게 음악활동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곡은 군복무중 짬짬이 만들어뒀었다. 물론 큰 인기를 얻으리라는 기대는 전혀 없이 만든 노래들이었다. 눈앞에 있는 관객들만은 확실히 재밌게 해주겠다는 생각이 다였다. 그런데 터졌다. 소위 '대박'이었다. 활동을 시작하고 일 년이 지나기도 전에 전 국민적 히트곡을 보유한 밴드가 된 것이다.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순조로웠다.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왼손에 힘이 들어가는 증상이 기타를 연주할 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 증상이 신기했던 건 유독 드럼 연주를 할 때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다른 일을 할 때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물론 기타 연주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군복무중에도 생활관에 비치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만들었고, '장기하와 얼굴들' 첫 싱글을 녹음할 때도 기타는 내가 다쳤으며, 밴드 활동 초기에는 공연을 할 때도 절반 정도의 곡에서는 내가 기타를 잡았다. 그런데 급격하게 치솟는 인기를 실감하며 공연을 이어가던 어느 날, 기타를 연주할 때도 왼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기타도 포기했다. 이번 단념은 군악대 때와는 달리 좀 절망스러웠다. 공연에서 기타를 연주하지 않기로 했음은 물론이고, 평소에 혼자 치는 것도 거의 못하게 됐다. 늘 자유자재로 하던 기본적인 플레이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니 짜증이 치밀었다. 자연히 심심풀이로 기타를 잡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중학교 때 이후로 그때까지 줄곧 기타는 나의 가장 좋은 취미 중 하나였다. 집에 있을 때면 침대에 누워 기타를 배에 얹고 아무렇게나 퉁겼다. 그러면서 멜로디를 이리저리 흥얼거리다보면 이따금씩 노래가 만들어지곤 했다. 그런 일상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날아가버렸다. 게다가 이번에는 증상이 연주에만 국한돼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일상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곧 타자를 치는 것도, 단추를 잠그는 것도, 왼손을 써야 하는 어떠한 일도 예전만큼 쉽게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로부터 십 년이 흘렀다. 그런데 그 십 년을 돌이켜보면, 이 병이 내게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사실 병에게 엎드려 절하고 싶을 지경이다. 프로 드러머의 길을 포기함으로써 결국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타 연주를 포기한 것 역시 내게 두 가지 커다란 선물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새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 형을 영입한 것, 둘째는 내가 무대에서 악기 없이 자유롭게 퍼포먼스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장기하와 얼굴들’의 활동이 내게 가져다준 희열은 말도 안 되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증상도 아주 조금씩 좋아져 이제는 거의 다 나았다. 지금도 약간의 느낌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일상에서 그것을 의식하게 되는 일은 드물다. 기타와 드럼도 취미 정도로는 다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 연습을 안 했으니 남들 앞에 뽐낼 만한 연주력은 당연히 아니지만, 사실 이제는 그런 능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좋은 연주자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증상이 가장 심했을 때를 떠 올리면 집에서 혼자 재밌게 연주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지금도 이 병의 원인은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듯하고, 물론 나도 아직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이렇게 추측할 뿐이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과도한 것을 강요했고, 몸이 그만두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충분히 쉬게 해주었으며, 그랬더니 시간을 두고 차츰 회복되었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그리고 형체가 없긴 하지만 능력도 마찬가지다. 어제까지 당연히 할 수 있었던 일을 오늘 갑자기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무척 괴롭긴 했지만, 결국 다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 능력은 여기까지인가보다, 하고.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 맞춰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그러고 나면 그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다른 길이 열리곤 했던 것이다. 안경은 며칠 뒤에 소파 밑에서 찾았다. 전날 술에 취해 소파에서 잠들었고, 안경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는 과정에서 소파 아래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거실에서 잠드는 일이 거의 없다보니 그곳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먼지 구덩이 속에 얌전히 놓인 안경을 발견한 순간, 그야말로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많이 아끼는 안경이라 해도, 물건 하나로 그렇게까지 기쁠 수 있다싶었다. 모르긴 해도, 깨끗이 포기했었기 때문일 거다(pp.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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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 【북토크】 편협한 꼰대가 되지는 말아야 할텐데....
    자기 생각에 갇혀 사는 사람은 편협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하고는 대화도 되지 않는다.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남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개방해야한다. 죽고 사는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럴수도 있구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편협함 공부를 하면서 문득 깨달은 건, 법률 외에 삶의 모든 기준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 기준들은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니어서 주변사람에게 영향을 받아 생성되기도 하고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워지기도 한다. 또 삶의 경험이 켜켜이 쌓이면서 조금씩 견고해지고 구체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여러 기준들을 만들어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일은 어쨌거나 사람이 하는 것이란 점에서 언제나 주관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너무 쉽게 각자가 세운 판단 기준이 ‘정답’이라고 착각한다. 사람은 쉽게 타성에 젖으니 자신의 판단 기준과 결론이 절대적인 단 하나의 정답이라 믿으며 자기 우물 안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기준에 정답이란 없기에 자신이 바르고 타당한 기준을 세워가며 나이 먹고 있다는 생각도 사실 편협한 ‘착각’에 가깝다. 나이를 먹는 일이 무서운 건 나도 모르는 새 나의 판단이 바르고 타당한 정답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조직에 잘 적응한다는 것은 곧 그 곳의 기준을 잘 습득해 체화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공동체에서 튀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공동체의 평가 기준을 답습하기도 하고, 나는 다르다 여기며 살아도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그 밥에 그 나물처럼 사고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쉼 없이 자신의 옳고 그름을 고집하기도 하고 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숨기기 위해 고집스러운 기준으로 타인을 깎아 내리기도 한다. 입만 열면 세상 곳곳에 대한 불만을 쏟아 내는 투덜이 스머프 같은 사람이 있었다(입만 열면 남의 흉을 보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결이랑은 또 다르다). ‘이건 이래서 구리고, 저건 저래서 구리고’, ‘그런 사고방식이 말이 되느냐. 말은 그렇지만 속내는 이런 것 아니겠느냐’하는 식으로 언제나 자신 밖의 사람과 상황에 대해 평가만 늘어놓는 사람이었다. 초반에는 그가 솔직하고 유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어떤 것. 누군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 지 밝히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그 취향과 기준을 고백하는 것이 자신의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데 저렇게 쿨하게 늘어놓다니!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화의 주된 발언이 자기 자신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평가이다 보니 들을수록 의아한 지점이 생겼다. 당신에게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 타인이 당신에게 평가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 평가할 자유가 있다고 해도 당신의 평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는지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의 평가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에 대한 인상 또한 '예리하고 유쾌한 사람이다' 라기 보다 ‘어딘가 모르게 편협하다’, ‘편협함을 자랑하는 태도가 참 멍청하다’까지 이어졌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 몇몇 단정적인 말들에서 그가 타인에 대한 평가를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었던 까닭을 눈치 첼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자신의 말이 정답이라고 여겨서 가능했던 것 이었다. 자기 말이 정답인 사람 곁에 다른 의견들은 오답처리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이 오답이 되 는 대화를 좋아라할 사람은 없다. 그렇게 그는 자기주장이 뚜렷한 사람에서 편협한 사람으로 점차 다르게 기억 됐다. 중학생 때 유독 적이 없었던 한 친구가 떠오른다. 말수가 적어서,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아서, 호불호가 없어서가 아니라 ‘편견’이 없어서 두루두루 모두와 잘 지내는 친구였다. 그는 어떤 친구들에게도 늘 같은 태도로 화답했다. 편견, 그러니까 그 편협함은 끊임없이 나를 위해 타인을 배척하는 수단이 된다. 진정한 세월의 지혜는 오히려 '편견 없음'에 가까울 거라 생각한다. 타인을 판단하는 가장 괜찮은 기준은 포용이 아닐까? 타인과 자신에 대해 사람은 언제나 ‘알 수 없음’ 한 줌은 가지고 사니까. 견고한 기준은 편협한 생각의 방증일지도 모른다(pp. 178-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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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1
  • 【북토크】 自害가 생존전략이라니....
    나는 상담, 심리 관련 책도 좋아한다. 대학때부터 지금까지 기회 되는대로 읽고 있다. 우연히 보게 된 이 책에서 “자해도 생존방법”이라는 것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오죽하면 살기 위해 자기 몸에 해를 주는 것인가? 길지 않은 인생을 사는데도 참 힘들다. 세상에 불쌍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들과도 더불어 살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고민하게 된다. 자해하는 게 문제라고 말하며 부모님 권유로 상담실에 온 고등학생 내담자를 만났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사소한 일로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졌고 왕따를 당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학교 가는 게 힘들어서 지각과 결석을 반복하며 적응이 더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친구들이 자신에 대해 안 좋게 말할까 봐 계속 예민한 상태로 있다 보니 피곤하고,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워서 거의 책상에 엎드려 있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온라인에서 만난 학교 밖 친구들과는 관계를 잘 맺고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웃으면서 인기가 많다고 얘기 하다가 이내 걱정하는 얼굴로, 사실 인기가 많은 이유는 친구들을 잃을까 봐 엄청나게 신경을 쓰면서 친구들 비위를 다 맞춰주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왕따니까 밖에서 힘들게 만든 친구들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 친구들이 부르면 거절하지 못하고 모든 모임에 나가고 친구들 말을 들어주고 웃어주느라 에너지가 다 빠진다고 했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도 즐거운 것처럼 친구들과 놀고, 막상 집에 오면 허무하고 외로운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혹시나 말실수해서 친구들이 자신을 싫어하게 될까 봐 매번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자신이 잘못한 게 없는지 확인 한다고 합니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한 상태로 가득 차 있다가 가족들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화를 냅니다. 우울한 기분, 친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공허한 느낌, 불안감이 뒤섞이면서 마음이 터질 것 같은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그럴 때 자해를 하게 된다고,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고, 나지막이 말 합니다. 물속에 오래 있을 때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안 쉬어지다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 숨이 크게 내쉬어지는 것처럼, 자해하고 나면 숨이 쉬어지고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많은 내담자가 말합니다. 자해는 화가 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자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수단입니다. 아무런 감각이나 감정을 느끼지 못할 때 무언가를 느끼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방법입니다. ‘자해는 나쁘다, 절대 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올 수도 있지만, 자해는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생존전략이 됩니다(pp. 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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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1
  • 【북토크】 문학을 통해 배운 것들
    이 책의 저자는 문학을 통해 배운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세상을 바라볼 때 시선의 위치와 방향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시야가 달라진다는 것,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일,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는 일,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내 안의 무언가가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일 또한 가능하다는 것, 인간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쓰면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을 꿈꾸면서도 끝내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이 모든 것을 나는 문학을 통해 배웠으며 이 경험이 나를 바꿨다는, 어쩌면 너무나도 문학도 같은 이야기다” 나는 이 글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래서 지금도 이 “재미”에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은 직접 문학 작품을 다루지는 않는다. 저자는 넥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 여러 OTT에 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소재로 이 책 한권을 썼다. 물론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도 많다.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느낌을 갖는다. 나는 이런 글을 쓸 실력이 없어 감탄하면서 봤다. 유홍준 교수는 그의 역작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했다. 모르면 보이지 않는다. 기회가 되면 이 책의 저자처럼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글도 써보고 싶다. 그럴려면 아들이 가입해 놨지만 안 보고 있는 넥플릭스를 열심히 이용해야 할 것 같다. 할 일이 또 하나 늘었다. 이 또한 새로운 도전이니 기대가 된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서른 줄에 접어든 이후로는 이야기할 일이 거의 없긴 하지만, 피치 못할 이유로 전공을 언급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괜히 머쓱해진다. 직업이 작가이기 때문이다. 작가인데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고 하면 "전공을 살리셨구나!" 같은 말을 듣게 되고 만다. 전공을 살린 것일까? 괜히 골똘해졌다가는 국어학과 국문학의 차이라든가, '과연 어디까지가 문학인가'라는 질문이라든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해서 작가가 되면 전공을 살린 것인가 아닌가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되기 때문에, "그런가요?" 하고 대답한 뒤 얼른 소재를 바꾸는 것이 좋다. 그러지 않으면 "국문과가 굶는 과라던데... " 하는 식의 무례한 농담을 듣게 되어버리고 만다. 이 농담을 들을 때면 미소 비슷한 것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재빠른 소재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봐도 국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작가가 된 것 같지는 않다. 인과관계가 없는 일로 보인다. 학과 공부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거나 쓸모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문학이 정말 재미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고, 그래서 상당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 문학 작품을 읽고, 문학을 배우고, 듣고, 공부하며 보낸 20대 초반의 몇 년간, 내가 세상을 보는 법은 달라졌다. 이 시절의 경험이 내 삶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또 나의 어떤 부분을 바꿨는지를 전부 말하자면 너무 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줄여서 말해보자면, 나는 문학을 통해 이런 것들을 배웠다. 세상을 바라볼 때 시선의 위치와 방향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시야가 달라진다는 것,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일,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는 일,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내 안의 무언가가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일 또한 가능하다는 것, 인간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쓰면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을 꿈꾸면서도 끝내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이 모든 것을 나는 문학을 통해 배웠으며 이 경험이 나를 바꿨다는, 어쩌면 너무나도 문학도 같은 이야기다(pp. 139-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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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8
  • 【북토크】 한 대형 교회의 탄생과 몰락
    세상에는 별별 사람들이 있고, 별별 책들이 있다. 이 책도 그 중 하나다. 우연히 읽게 됐다. 읽다보니 재밌어서 끝까지 보게 됐다. 세계 여러 곳의 버려진 건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목사 아니랄까봐 그중 교회에 대해 다룬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큰 돈으로 지은 교회가 결국 교인들의 이사로 숫자가 줄자 큰 건물 유지에 실패하고 버려진 이야기다. 얼마전 아랫 지방에서 열린 노회를 취재했다. 교회가 매우 컸다. 그런데 외진 곳이라해서 부목사나 여전도사나 부교역자가 한명도 지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방 작은 동네에 있는 이 큰 교회가 앞으로도 잘 유지가 될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인구감소는 절벽이라 지방은 소멸하고 있고 사람들은 먹고 사느라 종교에 관심이 없는데 앞으로 50년 후에도 그 큰 교회가 교회로서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적의 도시'는 왜 미국의 살인 수도'가 됐을까-시티감리교교회(GARY CITY METHODIST CHURCH) 미국 인디애나주의 공업 도시 가운데 가장 젊은 도시인 게리Gary는 미시간호 남쪽에 40.46제곱킬로미터쯤 펼쳐진 습지에서 1906년에 태어났다. 시카고에서 고작 64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게리는 유나이티드스테이츠철강 United States Steal Corporaton(Us스틸)이 낳은 도시다. US스틸은 게리에 시간과 에너지, 비용을 쏟아 최첨단 공장을 짓는 대신 공장 노동자를 위한 마을은 눈에 띄게 무성의하게 계획했다. 예를 들어 게리에서는 시민이 아니라 철강 공장을 중심으로 전력 공급을 조절했기 때문에 가로등이 깜박거리곤 했다. 하지만 게리를 '기적의 도시' 나 '마법 같은 도시', '금세기의 도시'라고 부르며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금세기의 도시'라는 별칭은 게리의 앞날을 어느 정도 예언했다. 게리는 20세기의 우여곡절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렸고, 도시의 운명은 미국 제조업의 호황과 불황에 따라 요동쳤다. 도시 인구는 유럽 에서 이민자가 쏟아져 들어오고 짐크로Jim Crow법(공공시설에서 백인과 유색 인종을 분리하는 남부 주들의 법률로 1876년부터 1965년까지 시행됐다. 옮긴이)이 시행되는 남부에서 아프리카계 시민이 몰려오며 대거 늘어났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는 실업과 소위 백인 탈출white flight(백인 중산층이 도심에서 교외로 탈출하는 현상. 옮긴이) 탓에 인구가 대폭 줄어들었다. 게리의 인구는 1960년에 17만 8000명으로 절정에 달했지만, 오늘날에는 7만 8000명 미만이다. 도시가 이름을 따온 주인공은 엘버트 H. 게리라는 기업 변호사이자 카운티 지방법원 판사다. 그는 US스틸에 융자해준 존 피어폰트 모건의 의견에 따라 기업의 이사회 회장에 임명되며 기업가로 변신했다. 게리는 노동조합과 노동자 권리에 반대하고자 성경을 선택적으로 인용하는 독실한 사람이었다. 자존심이 강하고 유머 감각이라곤 없는 이 도덕주의자는 하얗게 센 머리와 콧수염을 깔끔하게 정리한 모습으로 귀족적 분위기를 풍겼다. 신도시에 게리라는 이름을 붙이자고 제안한 사람도 그였다. 모건이 “물렁뼈 아첨꾼”이라고 맹비난할 만큼 교활한 수완가였던 그는 이사회의 반대를 노련하게 물리쳤다. 사실 이사회는 새 도시에 US스틸 회장 윌리엄 엘리스 코리의 이름을 붙여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미국 우체국도 신도시의 명칭을 게리로 정하면 메릴랜드주의 게리와 헷갈릴 것이라며 반대했다. 중서부에서 나고 자란 게리는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가 설립된 후에도 계속 뉴욕에 머물렀지만, 내 마음은 인디애나주 게리에 있다"라고 자주 주장했다. 1920년대에 그는 급증하는 게리 인구에 헌신할 새로운 감리교 교회를 세우는 사업도 열정적으로 후원했다. 교회를 지을 부지를 제공하고 기업 자금 35만 달러를 공사 기금으로 내놓는 안을 승인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4단 건반 어니스트 스키너 파이프 오르간까지 개인적으로 기부했다. 아마 게리는 교회가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고, 예배를 보는 본관 외에도 사회적, 교육적 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맡은 별관이 들어선다는 데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이 계획은 진보적인 지역 목사 윌리엄 그랜트 시먼 박사가 주도했다. 인디애나 출신으로 보스턴신학교를 졸업하고 인디애나 그린필드의 드포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시먼은 1916년에 다코타웨슬 리언대학교에서 게리로 왔다. 게리에서 그는 낙천적 성격 덕분에 '서니 짐 Sunny Jim(명랑한 짐. 옮긴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울러 인종적 관용과 더 커다란 통합을 지지하며 큰 목소리를 냈다. 1924년, 그는 큐클럭스클랜(K.K.K)을 영웅으로 묘사하는 D.W. 그리피스의 영화 <국가의 탄생>이 "인종적 편견을 일으킨다"며 오르페움 극장에서 상영을 중단해달라고 게리 시장 R. O. 존슨을 압박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해 12월, 누군가가 어느 흑인 남성을 공격한 후 휘발유를 들이붓고 불을 질러서 심각한 화상을 입혔다. 가해자는 끝내 체포되지 않았고, 게리에서는 인종차별적 공격이 급증했다. 시먼은 교회가 게리의 모든 공동체를 하나로 모으기를 바랐다. 그러나 수많은 백인 신도의 저항과 인종 차별 탓에 모두를 포용하는 교회를 만들겠다는 그의 꿈은 꺾이고 말았다. 시먼은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제작한 팸플릿에서 교회에 관한 자신의 비전을 이렇게 설명 했다. "쇠와 철을 만드는 건장한 노동자, 활발하게 영업하는 상업가, 바쁜 여성, 성장하는 아이들은 주일에 한 시간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매시간 주님의 영향력을 확인하며 그리스도가 살아계신다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시내 교회에서 예배 계획과 포괄적인 목회 활동 계획을 마련했습니다. 교회는 일주일 내내 문을 엽니다. 교회는 청년과 노인을 위해 기독교 교육, 건전한 오락, 매력적이고 순수한 여흥 거리를 제공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도시의 중심부에 기독교의 우애 정신을 불러옵니다" 게리의 시티감리교교회는 고딕 양식을 완벽하게 부활시킨 장중한 작품이자 중서부 최대의 감리교교회였다. 시카고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 회사 로앤드볼렌바허Lowe & Bplenbacher가 인디애나 베드퍼드의 석회암을 사용해서 21개월 만에 완공했다. 1926년 10월 3일에 시먼이 첫 예배를 집전했고, 게리에서는 일주일 동안 밤마다 축하 행사가 열렸다. 목사 관저 뒤로 각종 사무실과 체육관, 극장 홀까지 품은 9층짜리 건물이 들어섰다. 교회에서는 강연과 대담, 연극, 스포츠 행사(정규직 직원 여섯 명 중에는 스포츠 감독도 있었다), 공공 행사, 음악 콘서트, 종파를 초월한 공연과 쇼, 심지어 영화 상영까지 이루어졌다. 그런데 1700명쯤 되는 신도 가운데 일부는 교회 건물이 지나치게 가톨릭적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교회 단지 전체를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시먼이 처음에 계산했던 것보다 더 컸다. 유지비 탓에 자금이 계속 부족해졌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졌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도 찾아오게 만들어서 수익을 개선하고자 카페테리아를 만들자는 계획이 제안되었다. 하지만 자기 식당의 손님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주요 감리교 식당의 주인이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볼링장을 만드는 계획도 거론된 듯하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어쨌든 교회가 춤과 저속한 언어를 반대했으니 젊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느긋함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언행을 조심할 필요가 없는 데다 술도 마실 수 있는 무허가 술집에 드나드는 편을 더 좋아했다. 시먼은 1929년에 결국 신도들에게 쫓겨나서 오하이오주 랭커스터 교구로 옮겼다. 그는 게리를 떠나면서도 이곳에는 "진보와 환대라는 진정 서구적인 정신"이 있다며 게리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밝혔다. 그는 1944년에 자동차 사고로 숨졌다. 유언에 따라 시먼의 유해는 그 자신이 설립에 힘을 보탰던 게리의 교회에 묻혔다. 전후 종교 부흥기였던 1950년대에 게리의 시티감리교교회는 무려 3000명이나 되는 신도수를 자랑했다. 백인과 중산층이 대다수였던 교회 신도는 게리의 심각한 인종간 불평등을 반영했다. 게리는 당대 미국 복부에서 인종 차별이 가장 극심한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960년대로 접어들자 부유한 백인이 교외로 떠나기 시작했다. 철강 산업에서 해외 경쟁이 치열해지고 자동화가 확대되면서 정리해고가 발생하자 도심 범죄율도 증가했다. 결국 교회 신도 숫자가 점차 줄어들었다. 1973년에 교회의 신도는 겨우 320명뿐이었고, 이 중에서 예배에 꾸준히 나오는 사람은 3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2년 후, 시티 감리교 교회는 문을 닫았다. 인디애나대학교가 교회와 이웃한 홀 일부를 인수했지만, 교회를 대신할 용도를 찾지 못했다. 게리가 "미국의 살인 수도"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얻은 1993년, 교회는 이미 무너져가는 겉껍질로 변해 있었다. 4년 후에는 화재가 건물 전체를 휩쓸었고, 복구를 향한 희망을 완전히 꺾어놓았다. 2000년대로 들어선 후 한동안은 철거가 유일한 답인 듯했지만, 이제는 공원 조성이라는 가능성이 새로 생겨났다. 이 도심 속 에덴은 러스트벨트에서 가장 고통받은 도시, 가까운 과거는 괴로웠고 미래는 불안한 이 지역에 위안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pp. 274-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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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8

실시간 책소개 기사

  • 【북토크】 책의 오탈자…격을 떨어트린다
    책을 읽다 보면 소위 메이저 출판사에서 나온 것들은 거의 오탈자가 없다. 그런데 마이너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읽다 보면 오탈자가 많이 나온다. 이때 어린 시절 밥을 먹다 돌을 씹는 것처럼 오탈자는 책을 읽는 자들에게 괴로움을 주고 책에 대한 신뢰감을 떨어트린다. 전에 읽은 한 책은 내용이 너무나 좋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오탈자가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일일이 그것을 표시해서 그 책을 쓰신 목사님이 계신 교회에 갈 일이 있을 때 사무원에게 전달을 부탁했다. 제대로 전달이 됐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부디 책이 다시 나온다면 오탈자를 수정해서 나오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최근 책을 내신 한 목사님이 주신 책을 읽고 있다. 그런데 페이지마다 오탈자 풍년이다. 혹시 저자가 오탈자 문제를 일으켰다면 출판사에서 교정보는 사람들이 그것을 제대로 잡으면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교정보는 사람들이 그 책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면 결국 저자의 오탈자를 잡아낼 수 없다. 그래서 오탈자가 한가득한 책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책은 독자에게 고통을 주며 책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이 책도 꾸역꾸역 읽어 원 저자에게 넘겨줄까를 생각하고 있다. 말은 녹음하지 않는 한 듣고 사라지지만 인쇄된 글은 그렇지 않다. 오탈자를 수정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책을 낼 때는 수없이 교정을 해야 한다. 기사를 쓰는 기자 입장에서도 오탈자가 생긴다. 혼자 쓰고 혼자 검토하다 보니 오탈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후 자기 기사를 다시 볼 때 오탈자가 보이면 인터넷 신문은 수정하면 된다. 그런 면에서 지면 신문과 다른 장점이 있다. 때로 독자들이 지적해 주어 고치는 경우도 있다. 오탈자가 나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오탈자가 날 수 있음을 널리 양해 부탁드린다. 그리고 오탈자를 지적해 주면 곧 수정할 것을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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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1
  • 【북토크】 가끔은 시를 읽자
    ‘연탄재’ 시로 유명한 안도현 시인이 좋아하는 시 65편을 소개했다. 그중에는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여럿 있다. 일반인과 시인은 다르다는 것을 많이 절감했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종종 시집을 사 읽었고, 또 시집을 사서 모을지 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이제는 그럴 생각은 없다. 그러나 시를 자주 빌려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시인의 감성, 시인의 표현력을 느껴보고 따라 해보기 위해서이다. 65편의 시 가운데 그나마 내가 쉽게 이해하고 공감했던 시 2편을 올려본다. 결국 내 마음의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 공감을 일으킨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된다. ‘어머니’나 ‘인생’은 결국 대부분 사람의 화두 아니던가? 젓갈 - 이대흠 어머니가 주신 반찬에는 어머니의 몸 아닌 것이 없다 입맛 없을 때 먹으라고 주신 젓갈 매운 고추 송송 썰어 먹으려다 보니 이런, 어머니의 속을 절인 것 아닌 해설) 젓갈은 어패류의 몸을 소금에 오래 삭힌 것. 이 시의 젓갈은 멸치젓이거나 갈치속젓일 것이다. 남도의 바닷가에서 나는 전어속젓일 수도 있겠다. 원래 물고기의 형체는 거의 사라지고 비릿한 냄새와 짠맛만 남은, 거무튀튀하고 질척하고 때로는 달달한 젓갈 말이다. 젓갈에서 어머니의 몸을 발견하는 순간, 이런, 시는 순식간에 짠해지는 어떤 공간 속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오랜 시간 간장이 짓물러지도록 살아온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속을 태우며 살아온 화자의 모습이 이 짧은 시 속에 다 들어 있다. 우리는 시가 반성의 양식이라는 걸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젓갈 때문에 잠시 숙연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속을 절여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건네줘 보았나. 나는 벌써 - 이재무 삼십 대 초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다 오십 대가 되면 일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살겠다 사십대가 되었을 때 나는 기획을 수정하였다 육십 대가 되면 일 따위는 걷어차 버리고 애오라지 먹고 노는 삶에 충실하겠다 올해 예순이 되었다 칠십까지 일하고 여생은 꽃이나 뒤적이고 나뭇가지나 희롱하는 바람으로 살아야겠다 나는 벌써 죽었거나 망해버렸다 해설) 사람은 인생의 계획을 수정하면서 나이를 먹는가 보다. 마음먹은 것들은 이뤄지지 않았는데, 후회하면서 또 새로운 계획을 구상하는 일이 삶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행의 통찰이 아프고 서늘하다. 시인은 수포로 돌아간 시간을 죽음이라고 규정한다. 이 모든 게 노동과 관련이 있다. 꿈꾸는 대로 놀지 못하고 꾸역꾸역 일해야 하는, 늦게까지, 무언가를 위해 밥을 벌어야 하는 당신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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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31
  • 【화제의신간】 이은철 목사 저술, 『출애굽의 비밀』
    나름대로 신앙생활은 열심히 한 것 같은데 과연 나는 천국은 갈 수 있는 것일까? 누가 보장하지? 그 증거는 무엇일까? 교회가 복음과 천국을 선포하지만 많은 성도들이 천국의 확신, 증거, 구원의 증거나 확신을 갖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 있다. 저자 이은철 목사도 오랜 세월 이런 고민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다 영적경험과 성경연구를 통해 구원, 거듭남의 확신과 증거를 가지게 됐고 이를 한국교회에 나누고자 ‘출애굽의 비밀’을 저술하게 됐다. 먼저 저자는 한국교회의 심각한 양극화 현상, 쇠퇴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이는 한국교회 강단에서 생명력 있는 말씀이 선포되지 못하기 때문이고, 이로 인해 삶과 인격의 변화가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따라서 이제 한국교회는 영적인 출애굽의 기적이 일어나야 하며 성경적인 온전한 출애굽의 역사가 지금도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출애굽의 비밀은 출애굽의 원리로 출애굽은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이 과정은 어린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는 과정과 같다. 사람은 짐승과 다르게 성장하는 과정이 있고 성장의 과정마다 반드시 이루어야 할 발달 과업이 있다. 영적 출애굽 역시 마찬가지이다.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과정은 우연히 시간만 지나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과정, 과정의 성취 과업이 있다. 이 책은 총 일곱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1. 애굽 : 애굽의 의미와 애굽의 진단과 과업 2. 출애굽 : 출애굽의 의미와 출애굽의 진단과 과업 3. 홍해 : 홍해의 의미와 홍해의 진단과 과업 4. 광야 : 광야의 의미와 광야의 진단과 과업 5. 요단강 : 요단강의 의미와 요단강의 진단과 과업 6. 신 벗음 : 신 벗음의 의미와 신 벗음의 진단과 과업 7. 가나안 : 가나안의 의미와 가나안의 진단과 과업 그리고 결론으로 각 과업의 원리를 기술했다. 본 책은 가능한 누구나 정독해서 읽으면 이해가 되고 적용이 될 수 있도록 기술되었으며 체계적으로 신앙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특히 성경해석에 있어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들을 바로 잡아주고 있다. 믿음의 삶이 어려운가? 신앙이 성장하지 않고 있는가? 목회가 힘들고 고통스러운가? 교회 성장이 멈춰있는가? 구원의 증거가 없어 두려운가? 이 같은 무수한 질문에 대한 답이 ‘출애굽의 비밀’에 담겨 있다. 〈출애굽의 비밀〉이 개인, 소그룹, 설교, 목양, 상담에서 융통성 있게 적용해서 사용하여 성도들 개개인들이 기초가 튼튼하고 건강한 신앙으로 성장하고 교회들은 건강하게 부흥 성장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저자: 이은철 임마누엘교회 담임목사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졸업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숭실대학교 대학원 풀러신학교 목회학 박사 한서노회, 서한서노회 노회장 역임 제102회 총회선거관리위원장 역임 서북지역노회협의회 대표회장 역임 재경호남협의회 회장역임 전국호남협의회 대표회장 총회 사무총장 역임 극동방송 소망의 기도 인도 저서: 목자의 비밀, 믿음의 비밀 추천사 박성규 (총신대학교 총장) 출애굽을 다양한 각도에서 세밀하게 조명한 이 책은 성도들 개인의 삶과 교회의 삶의 건강을 잴 수 있는 척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도들 개인이 읽으면서도 큰 도움이 되고, 목회자들의 설교와 목양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소그룹 성경공부 교재로도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하여 성도 개인과 교회의 건강을 진단함으로써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통치를 받아 더 건강한 교회, 나아가 승리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김의원 (前 총신대학교 총장) 이 책은 출애굽의 신학을 아주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목회 현장과 삶의 현장에 접목시키고 있습니다. 과정별로 자신의 현재 영적, 신앙적 상태를 점검할 수 있고 치유의 원리까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정독하고 연구하면 성도들은 영적 기초가 튼튼한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고 목회자들은 신앙지도, 교육, 목회상담, 영적 내적치유, 설교, 집단상담, 제자훈련, 소그룹 교재 등에 매우 유용합니다. 목회학 교재로도 매우 유익하며 구원의 증거를 성경적으로 제시하고 성령의 역사를 신학, 신앙,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장영일 (前 장신대 총장)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출애굽 여정의 각 과정이 주는 영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피면서 개개인의 신앙을 점검하게 되고, 그와 같은 신앙 상태의 검진을 토대로 자신을 치유하고 훈련할 수 있는 원리를 배우게 될 것이며, 특히 제1차 출애굽 여정을 시작으로 제5차 출애굽 여정에 이르기까지 영생을 향한 영적 출애굽의 여정을 걸어가는 성도나 교회가 반드시 경험해야 할 영적 진리를 터득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변충구 (신학·철학·의학 박사 / 세계로교회 원로목사) 이 책은 출애굽 사건을 하나님이 성경 전체에서 보여주신 ‘말씀의 원리’, ‘교회 생활의 원리’, ‘삶의 관습의 틀’로 보았습니다. 특히 출애굽을 5차에 걸친 사건으로 세분하고, 단계적으로 보아 알파와 오메가로 논증하여 신앙교육의 매뉴얼로 사용하기를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바입니다. 목차 추천사 들어가면서 출간의 목적(동기) 출애굽의 틀/신학·신앙의 틀/신앙의 뿌리 -출애굽 여정(과정)의 중요성 -출애굽의 유형 -출애굽의 의의 -출애굽의 틀: 여정 -출애굽 과정에 따른 과업 출애굽 여정의 의미/과정별, 단계별 적용/전인적 성장, 상담 -제1단계 출애굽 여정의 도표 이해하기 -제2단계 도표에 자신의 지금까지의 여정 대입 -제3단계 자신을 대입해서 진단하고 자신의 영적 상태를 분석하라. -제4단계 그룹별로 모여 진솔하게 자신의 대입 결과를 나누어라. -제5단계 전인 성장을 위한 것이라면 성경을 배우고 제자 훈련을 받으라. -제6단계 영적 심적 아픔, 상처가 있다면 집단 상담이나 개인 상담을 진행하라. 애굽/세상/자연인/구원의 필연성 -애굽의 삶과 상징 -애굽의 실제 -애굽의 진단 -애굽의 과업 출애굽/거듭남/구원의 길 -유대 백성의 출애굽 -출애굽의 목적 -출애굽의 실제 -출애굽의 진단 -출애굽의 과업 홍해/세례/구원의 확증 -홍해의 중요성 -홍해의 영적, 신앙적 의미 -홍해(세례)의 실제 -홍해 과정의 진단 -홍해(세례)의 과업 -성령 내주의 증거 광야/교회/구원의 삶 -광야의 의의 -광야의 필연성 -광야의 목적 -광야의 실패 -광야교회에서 실패 이유 -광야교회에서 실패한 결과 -광야의 실제 : 교회의 본질 -교회의 은혜 -수르광야 : 수르교회 -수르광야 : 수르교회의 목적 -신광야 : 신교회 -시내광야 : 시내교회 -바란광야 : 바란교회 -광야의 메시야(아사셀) -광야의 진단 -광야의 과업 요단강/성령임재/믿음의 능력 -요단강의 의미 -요단강의 영적, 신앙적 의미 -요단강의 표징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수님과 성령의 사역 (관계) -요단강의 영적 실제 -요단강의 진단 -요단강의 과업 신벗음/낮아짐/영점/구원의 성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신을 벗는 의미 -신벗음의 실제 : 영점 -영점의 진리 -영점의 은혜 -영점에서의 승리 -신벗음의 삶 -신벗음의 진단 -신벗음의 과업 가나안/영적 전쟁/약속의 땅/구원의 번성, 창대 -가나안 -가나안의 의미 -가나안의 영적 의미 -가나안 정복 원리 -가나안 교회의 진단 -가나안 교회의 과업 마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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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9
  • 【북토크】 장애인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현실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한평생을 목발에 의지하며 살다가 세상을 떠난 장연희 교수의 에세이를 또 읽었다. 그녀는 1952년 9월 14일 태어나 2009년 5월 9일 57세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에세이에는 장애인으로 사는 삶의 고단함이 묻어있다. 한번은 대학교수 시절 여동생과 명동에 갔다가 의류 가게 앞에서 옷을 구경하다 거지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갈 때는 많은 대학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이 거부되었다. 그나마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서강대에 입학이 가능해 그곳에서 영문학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박사과정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원하는 대학에서 거부당하자 결국 미국으로 유학해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 서강대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장애인에 대해 이처럼 가혹한가? 장애인으로 태어났거나 혹은 중도에 장애인이 되었거나 이 세상에는 장애인이 많다. 그런 데 장애를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조롱하고 배척하는 그 심보가 참으로 고약하다. 그나마 장영희 교수는 미국으로 유학했기에 박사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교수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장애인으로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국에 가야만 한다. 그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아직도, 여전히 후진국이다. 킹콩의 눈 나는 영화에 문외한이고 또 영화를 볼 기회도 별로 없지만, 누군가 내게 이제껏 본 영화 중 가장 인상 깊은 영화를 꼽으라면 아마 주저 없이 <킹콩>이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줄거리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으므로 '인상 깊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킹콩>은 내가 일부러 극장까지 찾아가서 본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이고, 그 영화를 본 날짜와 장소까지 정확히 기억한다. 1978년 1월 12일, 나는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하고 난 후, 명보극장에서 그 영화를 보았다. 그날은 Y 대학에서 박사 과정 시험을 친 날이었다. 석사 졸업반이었던 나는 딱히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고, 당시 나의 모교에는 박사 과정이 개설되기 전이라 내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것밖에 없었다. 응시자들은 오전에 필답고사를 보고 오후에 면접을 하게 되어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실에 들어서니 네 명의 교수들이 반원으로 앉아 동시에 나와 내 목발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내가 엉거주춤 자리에 앉기도 전에 그중 한 사람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우리는 학부 학생도 장애인은 받지 않아요. 박사 과정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한 사람의 운명을 그렇게 단도직입적이고 명료하게 선언하는 그 교수 앞에서 나는 차라리 완벽한 좌절, 완벽한 거절은 슬프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마음이 하얗게 정화되는 느낌이었고, 미소까지 띠며 차분하게 "그런 규정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인사까지 하고 면접실을 나올 수 있었다. 그날 집에서 기다리시는 부모님께 낙방 소식을 전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지연하기 위해 동생과 함께 본 영화가 <킹콩>이다. 그 영화에서 내가 기억하는 것은 단지 단편적 이미지의 연속뿐이다. 거대한 고릴라가 사냥꾼들에게 잡혀 뉴욕으로 옮겨지는 도중에 우리를 탈출하고, 도시 전체가 공포에 휩싸인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옆에 앉아 있는 킹콩은 건물만큼이나 크고 거대하다. 어떤 이유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킹콩은 한 여자를 손에 쥐고 있고, 그녀는 온몸을 떨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킹콩은 그녀를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 그러나 킹콩은 자신의 운명을 잘 알고 있었다. 마침내 포획되기 전, 킹콩은 그녀를 자신의 눈높이로 들고 자세히 쳐다본다. 그 눈, 그 슬픈 눈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에게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가 인간이 아닌 커다랗고 흉측한 고릴라였기 때문에…. 그때 나는 전율처럼 깨달았다. 이 사회에서는 내가 바로 그 킹콩이라는 걸. 사람들은 단지 내가 그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미워하고 짓밟고 죽이려고 한다. 기괴하고 흉측한 킹콩이 어떻게 박사 과정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나 역시 내 운명을 잘 알고 있었다. 사회로부터 추방당하여 아무런 할 일 없이 남은 생을 보내야 하는 삶, 그것은 사형 선고와 다름없었다. 킹콩이 고통스럽게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쯤 나는 결정을 내렸다. 나는 살고 싶었다. 그래서 편견과 차별에 의해 죽어야 하는 괴물이 아닌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곳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영화관을 나와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토플책을 샀고, 다음 해 8월 내게 전액 장학금을 준 뉴욕 주립 대학으로 가는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이제 나는 돌아왔고, 나를 면접하기조차 거부하고 '운명적'인 선언으로 내 삶의 방향을 재조정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 그 위원회에 진정으로 감사하고 있다(pp. 289-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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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7
  • 【북토크】 글쓰기는 솔직해야한다
    우리에게 “연탄재” 시인으로 잘 알려진 안도현이 시작법에 대해 좋은 책을 썼다. 읽으면서 많이 느끼고 배웠다. 시를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절감하고 시는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시는 아니라도 목사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이 책을 목사의 글쓰기 관점에서 보면 많은 통찰력을 얻게 될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모든 시가 고백적 양식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게 세 가지가 있다. 당신은 시를 쓰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이것들을 과감하게 배척해야 한다. 첫 번째는 과장이다. 제발 시를 쓸 때만 그리운 척하지 마라. 혼자서 외로운 척하지 마라. 당신만 아름다운 것을 다 본 척하지 마라. 모든 것을 낭만으로 색칠하지 마라. 그런 것들은 우습다. 두 번째는 감상이다. 이 세상의 모든 슬픔을 혼자 짊어진 척하지 마라.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 척하지 마라. 눈물 흘릴 일 하나 없는데 질질 짜지 마라. 그런 것들은 역겹다. 세 번째는 현학이다. 무엇이든 다 아는 척, 유식한 척하지 마라. 철학과 종교와 사상을 들먹이지 마라. 기이한 시어를 주워 와 자랑하지 마라. 시에다 제발 각주 좀 달지 마라. 그런 것들은 느끼하다. 오규원은 “시란 개인적인 욕망에서 이루어지는 욕망의 발산 형식이 아니라 개인적인 '나'의 욕망을 억제하고, '나'의 욕망 가운데 가치 있는 어떤 경험을 선택하고 객관화하는 작업을 통해서 남과 다른 세계를 유형화해 보여주는 의도적 행위"라고 했다. 자신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싶으면 일기에 쓰면 된다. 특정한 상대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싶으면 편지에 쓰면 그만이다. 시는 감정의 배설물이 아니라 감정의 정화조다. 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억누르고 여과시키는 일이 바로 시인의 몫이다(p.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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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9
  • 【북토크】 남을 죽이는 말과 글
    300만명 이상의 관객이 본 영화 『올드보이』는, 자기와 누나 사이에 대해 험담했다고 의심한 동생이 꾸민 스릴러물이다. 오해의 말 한마디가 비극을 만들었다. 요즘같이 공적, 사적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말과 글로 사람을 죽이고 매장하는 경우가 많다. 화가 세잔은 학교 동창 에밀 졸라의 소설에서 조롱받아 상처를 입고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이 가장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가족, 친인척, 그리고 친구들이. 말과 글은 또 하나의 칼과 흉기이다. 그러나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 화단의 후배이자 세잔의 열렬한 찬미자인 에밀 베르나르 Emile Bernard가 엑상 프로방스를 방문하여 한 달 간 그와 함께 지냈던 생활을 성실히 기록한 이 글은,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세잔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귀중한 일차자료이지. 나 또한 그런 야무진 꿈을 갖고 이 얄팍한 책자를 뒤적거렸지. 세잔이 그린 사과가 왜 그리 단단해 보이는지 그 비밀을 캐고 싶었거든. 그러다 뜻밖에도 내가 만난 건, 주변의 어느 누구에게서도 이해받지 못한 채 자신의 길을 걸어간 한 고독한 영혼의 초상이었어. 비평가들의 냉대에 좌절했던 젊은 시절, 그와 중학교 동창이며 당시 잘 나가던 소설가 에밀 졸라가 소설 『작품』에 나오는 무능한 화가 끌로드의 모델로 자신을 이용했다며 분개하는 세잔. "예술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 예술에 집착하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네.” 졸라의 이 말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겨 그후로 죽을 때까지 세상과 인간을 등지며 살게 만들었지(pp. 17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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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8
  • 【북토크】 세상을 단순하게 살아보자
    시의 매력은 짧다는 것이다. 소설처럼 길지 않고, 학습서처럼 골치가 아프지 않다. 시를 읽으면서 ‘아하!’하고 공감할 때가 있다. 그것을 위해 시를 읽는 것이다. 물론 그런 공감 가는 시를 쓰기 위해 시인은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좋은 시를 만나면 시인에게 고맙다. 반면 쉬운 것을 어렵게 쓰는 시인을 보면 ‘겉멋’이 들었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생각이다. 그런 시는 공감하기가 어렵다. 소개하는 이 시는 짧고 단순하다. 누구나 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로 표현한 것이 바로 시인의 능력이다. 평범한 우리도 시 쓰기에 도전할 용기를 준다. 까칠하지 않은 대화 너 아직도 불행하니? 아니,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아.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거야(p.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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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8
  • 【북토크】나이 든다는 것
    새해 2024년이 되어 모두 한 살을 더 먹었다. 젊은이야 나이 먹는 것에 아직 여유가 있지만 중년과 노년은 다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살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이팔청춘인데 나이가 늘어난다. 아직 한 일은 적고 할 일은 많은데 중천에 떴던 해가 이제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가고 있다. 1952년 태어나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서강대 영문학 교수로 살다 2009년 57세로 세상을 떠난 고 장영희 교수는 「아름다운 그물」이란 제목의 수필에서 나이를 먹을수록 남을 이해하고 그로인해 조금씩 착해진다고 말했다. 이제 그보다 한 살 많은 58세가 된 나도 그처럼 곱게 늙어야하는데 어찌될지는 자신할 수 없다. 추하게나 늙지 않기를 소망해보는 새해 연초이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이들은 나이 들어가는 일은 정말 슬픈 일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나이 들어가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고 노년의 나이가 가장 편하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살아보니 늙는다는 것은 기막히게 슬픈 일도, 그렇다고 호들갑 떨 만큼 아름다운 일도 아니다. 또 나이가 들면 기억력은 쇠퇴하지만 연륜으로 인해 삶을 살아가는 지혜는 풍부해진다는데 그것도 실감이 안 난다. 삶에 대한 노하우가 생기는 게 아니라 단지 삶에 익숙해질뿐이다. 말도 안 되게 부조리한 일이나 악을 많이 보고 살다 보니 타성이 강해져서 그냥 삶의 횡포에 좀 덜 놀라며 살 뿐이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나이 들어가며 내가 새롭게 느끼는 변화가 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나뿐만 아니라 남이 보인다. 살아보니 사는 게 녹록지 않아서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겨서일까, 세상의 중심이 나 자신에서 조금씩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조금씩 마음이 착해진다고나 할까. 결국 인간의 패기와 열정을 받쳐주는 것은 인간의 착함이다. 2006년 7월(pp. 10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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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7
  • 【북토크】 아버지의 기저귀
    내겐 아들 둘이 있는데 어렸을 때 기저귀를 갈아준 적이 별로 없다. 내 새끼라 사랑스러웠지만 똥 냄새가 싫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내가 아이들을 다 키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이 먹어 아버지의 기저귀를 갈게 됐다. 아버지는 1984년 크게 교통사고를 당해 1년 넘게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다리에 철심을 박고 퇴원하셨다. 이후 약간 절뚝이며 걸으셨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아버지는 다리가 아프다며 걷기를 포기하고 침대에 누우셨다. 지나놓고 보니 그때 재수술을 받으셔야했다. 교통사고 보상금을 받을 때 앞으로 있을 재수술비까지 받으셨는데 사고 후 특별한 일 없이 지내시다보니 결국 생활비로 다 써버려 재수술을 받지 않으신 것이다. 또한 1년여 넘는 병원생활을 하며 여러 차례 큰 수술을 하다보니 다시 몸에 칼대는 것을 싫어하셔서 결국 걷기를 포기하시고 누우신지 여러해다. 담임목회 중단 후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어느날 아버지께 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자식이 넷이나 되는데 아버지의 다리가 불편할 때 적극적으로 관심갖고 재수술을 권하지 못했다. 물론 다 사는 것이 여유가 없어 아버지의 재수술 비용을 그때 자식들이 감당했을지는 의문이다. 어찌됐든 벌써 여러해 누워 계시는 아버지를 뵐 때마다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나마 간병인이 아침에 기저귀를 갈고 어머니가 저녁에 갈았는데 그만 재작년에 어머니가 다리 골절로 인해 40여일 이상 병원에 계셨다. 결국 저녁 기저귀 가는 것은 내가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 옛날 같았으면 며느리인 아내가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일은 같이 사는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 기저귀를 갈아드렸다. 내 아이들 기저귀도 몇 번 갈아준 기억이 없는데 아버지 기저귀를 갈아주게 되다니... 기저귀를 갈아주러 갈 때마다 비장하게 마음을 먹어야했다. 아버지는 치아가 거의 없어 두유, 죽 등을 많이 드셔서 묽게 변을 보기에 처리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그런 경험을 한 내게 최영미 시인의 시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나도 그녀와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똥이든, 아이들의 똥이든, 아버지의 것이든 똥은 여전히 더럽다. 그런데 그 똥을 가리켜 “사랑스럽다”, “예쁜 똥”이다, “기쁨”이라고 하니 시인의 심성이 참 곱다. 나는 앞으로도 그렇게는 안 될 것 같다. 간병일기 내가 아는 똥은 더럽지 않다 / 내가 모르는 똥은 더러워, / 6인 병실의 화장실 변기에 묻은 누군가의 흔적은 / 기겁을 하고 치우면서, 비닐장갑을 끼고도 찜찜해 손을 씻고 또 씻으면서, / 열흘 만에 구경한 내 어미의 똥은 사랑스러워 "엄마 오늘 예쁜 똥 쌌다"고 사진을 찍어 동생들에게 보낸다. / 드디어 엄마의 뒷문이 열렸다! / 엄마- 힘좀줘봐 / 안 나온다 / 그래도 1분만 더 앉아 있어 지나가던 1분을 못 참고 일어나 워커를 잡은 당신에게 기저귀를 채워주려는데 가래떡처럼 뽑혀 나오는, / 내가 모르는 어미의 몸을 돌아다니다 세상에 나온 푸르스름한 덩어리를 내 손으로 받으며 출렁이는…………젊었을 적에는 모르던 기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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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3
  • 【북토크】새해에는, 힘들더라도 내가 더 버티어야겠구나
    어떤 사람들에게 2023년 연말은 이선균 배우의 자살로 뒤숭숭하게 마무리된 것 같다. 그를 좋아했던 많은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나 또한 영화 「기생충」에서 그를 인상깊게 봤었는데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문득 문득 그를 떠올렸다. 이처럼 한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힘들더라도 버텨야하는지 모르겠다. 예술가들은, 대중 연예인을 포함해서 수입이 천차만별이다. 잘 나가는 사람들은 많은 돈을 벌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한다. 예술가들은 특별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발명가처럼 무엇을 만들어내거나, 사업가처럼 사회를 위한 기업 활동을 하지 않지만 문화의 주역들로 다양한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국가적으로 연예인을 포함한 예술가들을 보호하고 지원해야한다고 본다. 실제로 몇 차례 연예계 종사자들이 생활고로 숨졌을 때 국가적으로 이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특별히 나처럼 다양한 책들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 저자들이 생활고로 책을 쓰지 않는다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마다 저자나 번역자, 출판사에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시와 글이 담백해 즐겨 읽는 최영미 작가는 이전에 근로장려금을 받은 게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 작가는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이라는 책에서 작가로서 사는 삶의 고단함에 대해 군데군데 표현하고 있다. 근로장려금 마포세무서로부터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네? 전화를 끊고 우편함을 여니 2015년도 귀속 근로장려금 신청 안내문이 보인다. 내가 연간 소득이 1,300만원 미만이고 무주택자이며 재산이 적어,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 보조금 신청 대상이란다. 아...... 약간의 충격. 공돈이 생긴다니 반갑고, (베스트셀러 시인이라는 선입견 없이)나를 차별하지 않는 세무서의 컴퓨터가 기특하다. 그런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ARS로 신청하니 귀하의 수령액은 59만 5천 원이라는데 심사를 거쳐야 실지급된다고. 매달이 아니라 일 년에 한번만 나온다니 실망. 충격의 하루가 지나고 내가 아는 교수들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 강의를 달라고 애원했다. "시간 두 강좌만 해도 한 달 생활비가 돼요." 생활이 어려우니 도와달라 말하니 학위를 묻는다. 국문과 석사 학위도 없으면서 시 강의를 달라 떼쓰는 내가 한심했다. 오늘은 S 출판사에 전화해 2년 넘게 밀린 시집 인세 달라고, 그냥 말하면 접수하지 않을 것 같아 "저 근로장려금 대상자......"를 들이대곤 웃었다. 밀린 인세 받는 데는 ‘근로장려금’만 한 협박이 없다! 3년 전에 발행한 책의 인세 89만 원이 그날로 지급되었으니.... 고맙다 마포세무서 컴퓨터여(pp. 25-26). 명색이 서울대 출신에 홍익대 석사를 한 나름 유명 작가의 1년 수입이 1,300만원이 안된다. 그것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기적일지 모른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이 작가가 된 것에 대해 후회했다. 내 인생을 돌아보며 가장 후회스러운 일. 1. 시인이 된 것. 시는 취미로 쓰고 다른 직업을 가질걸... 2. 어린 나이에 저지른 결혼. 3.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대학에 들어가 고생만 하고, 나온 뒤에도 떼어내지 못하는 서울대 꼬리표. 징그럽다(pp. 22-24). 그래서 그는 이런 시도 썼다. 내버려둬 시인을 그냥 내버려둬 / 혼자 울게 내버려둬 / 가난이 지겹다 투덜거려도/ 달을 쳐다보며 낭만이나 먹고살게 내버려둬 / 무슨무슨 보험에 들라고 귀찮게 하지 말고 / 건강검진 왜 안 하냐고 잔소리하지 말고 / 누구누구에게 잘 보이라고 훈계일랑 말고 / 저 혼자 잘난 맛에 까칠해지게 내버려둬 / 사교의 테이블에 앉혀 억지로 박수치게 하지 말고 / 편리한 앱을 깔아주겠다, / 대출이자가 싸니 어서 집 사라, / 헛되이 부추기지 말고 / 집 없이 떠돌아다니게 내버려둬 / 헤매다 길가에 고꾸라지게 / 제발 그냥 내버려둬(pp. 253-254). 그런데 이런 시를 쓴 작가는 어느 날 1인 「이미출판사」를 만든다.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밝힌 미투 시를 쓴 이후 많은 출판사에서 책 출간을 거부하자 이에 맞서 자신의 책을 내기 위해 출판사를 만든 것이다. 이것은 많은 시인과 작가, 예술인들이 “헤매다 길가에 고꾸라지게”된 것을 보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도전이다. 그래서 그는 “제가 저를 내버려두지 않으려고, 출판사 차리고 시집 낸 겁니다. 세상을 원망하며 눈을 감지 않으려고….”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를 이렇게 강하게 만든 한 에피소드가 있다. 2019년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란 신작 시집을 내고 사인회를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찾아줬다. 그 중 같이 온 중학생(?) 딸에게 “너는 이날을 기억하게 될 거야”라고 말하는 젊은 엄마가 있었다. 이것을 보고 작가는 감동 먹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면서 “힘들더라도 내가 더 버티어야겠구나...”라는 다짐을 하게 됐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세상을 등진 한 배우를 보며 자신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많은 팬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힘들더라도 더 버티었어야”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당사자에게는 죽음 이외에는 탈출구가 없다는 중압감이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일로 치이면서 살아간다. 삶에 어려움이 없는 자가 얼마나 있을까? 나에게도 삶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2024년 새해를 출발하며 “힘들더라도 내가 더 버티어야겠구나...”라는 다짐을 해본다. 이런 좋은 글을 써준 작가에게 고맙다. 예전에는 책을 사봤지만 이젠 책을 대출해 보기에 작가들에게 조그마한 도움도 되지 못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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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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