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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 글을 잘 쓰는 구체적인 방법
    글쓰는 것은 나의 오래된 관심사항이다. 기회 되는대로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는다. 이 책도 그러한 관심에서 봤다. 유익하다. 특별히 이문재 교수는 글쓰기에 대해 매우 잘 설명하고 있어 전문을 게재한다. 잘 읽어보면 많은 유익을 얻을 것이다. 이문재 (시인,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정확해야 아름다울 수 있다 왜 저널리즘적 글쓰기인가? 글쓰기의 장르는 매우 다양합니다. 사적인 글쓰기/공적인 글쓰기, 사적인 글쓰기: 일기, (자서전) 편지, 이메일, 공적인 글쓰기: 시와 소설, 희곡, 에세이, 기행문 등 문학적 글쓰기, 기사, 칼럼 등 저널리즘적 글쓰기, 광고 문안, 연설문, 안내문, 보고서, 기획서, 청원서 등등. 글쓰기는 더 이상 문인, 저널리스트 등 몇몇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미디어 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것과 아울러, '문자시대는 가고 영상 시대가 도래했다고들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봅시다. 영상 이미지 역시 최종적으로는 문자 언어로 번역되어야 이해와 소통이 가능합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와 같은 뉴 미디어 역시 문자 언어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언어를 버리지 않는 한 인간이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문자 문화는 영원할 것입니다. 언어는 대중의 합의에 의해 정착되고, 또 동시에 대중에 의해 변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어에 일정한 규범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언어가 대중(언중)에 의해 생성소멸하고 유통되고 기록(저장)되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말하기와 쓰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문자 시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문자는 영상 혹은 구술 문화에 의해 위축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문자 시대를 능동적으로, 그리고 당당하게 영위하는 교양인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교양인이라면, 적어도 대학교를 졸업한 교양인이라면 전공을 불문하고 정확한 글쓰기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의 개별적 삶은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행위의 연속입니다. 이 중에서 쓰는 행위가 가장 논리적이고 또 정확해야 합니다. 글쓰기의 일차적 목표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한 것을 그대로 쓰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무의식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생각 자체가 정돈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정돈하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은, 설계도도 없이 집을 짓는 경우와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이 잘 정돈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정확히 표현(건축으로 치면 시공 능력)할 수 없다면 글쓰기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갖고 있는 몇 가지 미덕 우리가 저널리즘적 글쓰기(기사 쓰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정확한 사실에 바탕해, 정확하게 표현하는 글쓰기의 모범이기 때문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자기 주장이 강하게 드러나는 칼럼(사설)이든, 쓰는 이의 관점이 가능한 한 배제되는(이른바 '객관적'이라는 스트레이트 기사에 이르기까지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무엇보다도 정확성이 강조됩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가장 적합한 글쓰기 방법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에서 아름다움은 미덕이 아닙니다. 미사여구는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데 있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수사는 사실(fact)을 표현하는 데 있어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를 주목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다른 글쓰기와 달리 취재와 구성이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설이나 드라마 시나리오를 쓸 때에도 취재 과정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널리즘에서처럼 구체적인 현장(인물)과 정확한 사실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저널리즘에서 활용하는 다양한 취재기법은 우리가 다른 장르의 글쓰기를 할 때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습니다. 기획서나 평가 보고서를 작성할 때에도,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꾸밀 때에도 저널리즘의 취재기법을 동원하면 글이 훨씬 입체적이고 풍성해집니다. 셋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사건이나 사고, 사태나 현상 등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고 심층적인 보도 못지않게, 남과 다른 시각에서 분석하려는 태도 역시 저널리즘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넷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독자 대중의 알 권리를 기본으로 하지만, 인물이나 사건 사고, 사태 등에 대한 독자의 기본적 궁금증을 풀어주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여론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사회 변화와 그 변화의 방향성을 파악하는 데 시야를 넓히고 시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다섯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표현뿐 아니라 전달에 큰 비중을 둡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새로운 지식과 정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독자(수용자)에게 전달되고 소통(커뮤니케이션)되지 않는다면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존재 이유가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의 일상적 삶은 우리가 저널리스트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정보를 송신하고 수신하는 환경 속에서 진행됩니다. 송신자이면서 수신자인 우리가 소통 능력을 키우지 못한다면, 그 삶은 심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소통 능력이 있는 시민들로 구성된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마지막으로,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우리는 저마다 '1인 미디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블로그에 이어, 사용자 제작 컨텐츠(UCC, User-created content)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듯이, 우리는 저마다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의견과 주장이 분명하다면, 그 사람은 어디에 있든, 그 의견과 주장을 어떤 미디어를 통해 전달하든 이미 저널리스트인것입니다. 지식정보사회를 살아가면서 단순한 지식 정보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지식과 정보를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동시에 지식과 정보, 의견을 개성적으로 생산하고 소통하기 위해 우리는 저널리즘적 글쓰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를 체득하면, 보고서뿐 아니라 한 권의 책을 집필할 때에도 시간과 노력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한 편의 기사와 한 권의 논픽션의 구조와 글쓰기 방법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기사, 노력한 만큼 잘 쓸 수 있다. 1. 저널리즘적 글쓰기의 유형: 스트레이트 기사, 인터뷰 기사, 스케치 • 분석 및 해설 기사(feature story), 르포르타쥬, 칼럼, 논설 등 2. 기사를 잘 쓰기 위한 몇 가지 방법: 1) 주제를 분명하게 설정합니다. 주제를 한 문장으로 만들 수 있다면, 절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가령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고 하면 각 분야에서한국을 이끄는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하는 기획일 것입니다. 기사의 주제는 분명한 계기가 있어야 하며, 독자에게 유익한 정보가 되어야 합니다. 정보성이 부족하다면 흥미를 끌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2) 주제를 뒷받침할 자료와 전문가, 현장(사례), 관련 기사를 찾습니다. 주제가 정해졌다면 가장 먼저 관련 기사를 검색해야 합니다. 한창 취재하다가 비슷한 기사가 몇 년 전에 나온 사실을 알고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관련 기사를 검토하다 보면, 주제를 바꾸거나, 취재 영역에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3)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역피라미드형: 전문(요약)중요한 사실-흥미 있는 이야기 순으로 구성합니다. 1900년대 초 미국의 AP통신이 개발한 기사 구조로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흔히 사용합니다. ◎피라미드형: 도입-중요한 사실-서스펜스 형성-클라이맥스 순입니다. 피라미드형은 피처 기사에서 자주씁니다. 독자의 관심을 계속 끌고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문학적이고 연대기적인 서술 방식입니다. ◎혼합형: 클라이맥스(요약)-서론-본론 결론 순. 4) 1), 2), 3)이 충분하게 준비되었다면, 기사 작성에 들어갑니다. • 간결하게 써야 합니다. 국내 신문은 일반적으로 5행 이상(65~75자)을 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단문을 쓰라는 것입니다. • 가능하면 구어체를 씁니다. 이야기하듯이 쓰라는 것입니다. ·주어와 술어를 분명히 합니다. • 매력적인 언어를 찾습니다. ・쉽게 씁니다. 좋은 기사의 첫째 조건은 쉬운 문장입니다. 이상은 언론학 입문서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권장하는 지침입니다. 필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기사를 잘 쓰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를 유념 해야합니다. 먼저, 앞에서 말한 대로 기사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십시오. 이것이 나중에 기사 제목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획과 취재의 매 단계에서 판단 기준이 됩니다. '민물낚시, 환경오염 주범'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한다면, 바다낚시의 오염 문제에 관한 자료는 읽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기획과 취재 단계에서 기사의 첫 문장, 즉 리드를 구상하십시오. 첫 문장이 결정되지 않으면 기사를 쓰기 어렵습니다. 취재를 충분하게 해놓고서도 첫 문장, 즉 도입부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기자들이 제법 많습니다. 어디 기사뿐인가요. 모든 종류의 글쓰기가 첫 문장 에서 좌우됩니다. 오죽하면, 작가들이 "첫 문장은 신의 선물이다" 라고 말하겠습니까. 필자는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기획이 정해지면 그때부터 제목과 첫 문장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시를 쓸 때에도, 산문이나 논문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복잡한 사안을 취재할 경우, 취재한 내용을 주위 동료나 가까운 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흥미로운 인물을 인터뷰했을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취재한 내용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상대방의 반응을 체크할 수 있습니다. 가령 상대방으로부터 더 취재해야 할 부분, 더 강조해야 할 부분 등 의외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넷째, 관련 서적을 찾으십시오. 인터넷 검색은 참고자료일 뿐입니다. 가장 새롭고 신뢰할 만한 정보와 자료는 책에 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필자는 특집 기사를 쓸 경우, 기사 검색을 한 다음 대형 서적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관련 서적 한두 권만 읽으면, 그 분야의 권위자가 누구인지, 그 분야와 관련된 최신 이론은 무엇인지 장악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취재해서 기사를 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떤 책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다섯째, 소설을 많이 읽고 영화, TV 드라마를 자주 보십시오. 소설은 어휘력을 풍부하게 해줄 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시각을 갖게 해줍니다. 문학 분야가 아니더라도 베스트셀러 책은 따라 읽어야 합니다. 관객이 많이 드는 영화와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베스트셀러 책과 영화, 드라마에서 한 줄 인용하면서, 혹은 등장인물을 끌고 들어가면서 기사를 시작하면 독자들의 눈길을 더 많이, 또 오래 붙잡을 수 있습니다. 기사의 궁극 목표는 좀 더 많은 독자들이 읽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늘 기사만 생각하십시오. 기자는 늘 기사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심지어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에도 기사를 생각해야 합니다. 카페 옆자리에서 얻어들은 한 마디가 대형 기사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찬반양론이 팽팽한 기사일 경우, 가족이나 친구들의 의견을 청취해보면, 취재나 기사 작성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사는 혼자 쓰는 것이 아닙니다. 기사가 아니라 다른 장르의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고 읽고 느끼고 생각한 만큼 글은 달라집니다. 개성적 글쓰기를 위한 기초체력 다지기 정확한 문장이 관건입니다. 정확하지 않은 문장은 특히 저널리즘에서 문장이 아닙니다.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에서도 정확성이 우선입니다. 아름다운 문장은 그 다음입니다.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하는 작가는 아름다운 문장, 개성적인 글을 쓰기 어렵습니다. 정확하고 개성적인 쓰기를 위해서는 '기초체력'이 필요합니다. 글쓰기를 위한 기초체력을 다지는 필자의 체험적 방법론을 소개합니다. 1. '나쁜 버릇'부터 찾는다 어떤 글이든 좋습니다. 자기가 쓴 글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자주 나타나는 단어나 표현이 발견됩니다. 사람마다 특유의 말투(말버릇)나 몸짓이 있듯이 글에도 특유의 '버릇'이 나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것이다'라는 종결어미를 자주 씁니다. '~것이다'는 가능하면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글 버릇을 찾아내는 눈을 가지고 있다면 가능성이있습니다. 다음으로, 수식어가 많은 문장, 접속사가 많은 문장, 나열이 많은 문장이 나쁜 문장입니다. 자기 글에서 나쁜 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글을 잘 쓰는 사람입니다. 자기 글에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는 수준까지 빨리 올라가야 합니다. 자기 글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문제점만 제거해도 글쓰기는 순식간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됩니다. 자기 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른다면, 정말 큰 문제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자기 글을 들여다보십시오. 자기가 쓴 글들을 '원수가 보내온 편지'라고 생각하고 여러 차례 읽어보십시오. 버릇이 발견될 때까지 읽으십시오. 2.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찾아라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기자나 작가의 글을 집중적으로 읽으십시오. 글쓰기의 모델을 하나 설정하는 것입니다.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은 반드시 좋아하는 가수가 있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가 지망생은 필사하고 싶은 선배 소설가가 한둘은 꼭 있습니다. 좋은 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그대로 베껴 쓰십시오(필사). 외우면 더 좋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적극 모방해보십시오. 그 과정에서 글쓰기 수준이 몰라보게 향상됩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국내 소설가 대부분이 선배 작가의 소설을 필사하면서 습작기를 거쳤습니다. 추천하고 싶은 필자 '모델'은 문인 이외에, 혹은 문인이면서 매체에 자주 기고하는 분들입니다. 제가 추천하고 싶은 분들은 도정일(문학평론가),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 고종석(소설가 겸 언론인), 김훈(소설가 겸 언론인). 배병삼(정치학 및 동양학), 한형조(동양철학), 송호근(사회학), 고미숙(문학평론가),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등입니다. 이외에도 좋은 필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3. 새롭지 않으면 쓰지 말라 저널리즘의 생명은 새로움입니다. 새롭지 않으면 뉴스가 아닙니다. 저널리즘이 아니라도 그렇습니다. 모든 글쓰기는 새로워야 합니다. 사실이나 의견에서 새로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표현이라도 새로워야 합니다. 새롭지 않다면 신기하거나(의외성) 흥미로워야 합니다. 새로움, 의외성, 흥미, 이 세가지 중 한 가지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글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4. 자세히 관찰하라 관찰은 모든 글쓰기의 스타트 라인입니다. 사물이든 사건이든 인물이든자 세히 관찰하지 않고서는 정확한 글쓰기가 불가능합니다. 관찰이 부정확하면 사실관계가 흔들립니다. 정확히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오감 가운데, 시각이 특히 부정확합니다. 주변 환경에 따라 착시 현상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상기해보십시오. 관찰은 단지 시각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많이, 그리고 정확히 느끼는 것도 관찰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책읽기, 영화 감상, 미술 감상 등도 관찰입니다. 관찰은 대상에 대한 집중입니다.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선입견을 버리고, 현상학적으로 말하자면 판단을 중지하고) 대상에 몰입했다가, 다시 대상으로 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상상력은 이 관찰 단계에서 나옵니다. 관찰 훈련의 첫 단계는 자기가 본 것으로 소리 내어 말해보는 것입니다. 관찰 대상이 인물이라면, 머리 모양과 색깔, 길이에서부터 이목구비를 거쳐 구두까지 관찰하면서 하나하나 말해보십시오. 컴퓨터나 텔레비전, 화분, 식탁, 자동차 실내 등 늘 마주치는 대상을 하나 정해서 소리 내어 하나하나 관찰해보십시오. 그동안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것이 발견입니다. 낯익은 것에서 낯선 것을 찾을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최고의 글쓰기 재료입니다. 5. 메모하고, 메모하고 또 메모하라 기억력이 남다르다고 해도, 메모를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뛰어난 작가는 물론이고 예술가, 심지어 기업의 CEO들도 메모를 자주 합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메모광입니다. 인간이 하루에 접하는 새로운 정보(자극)는 수십만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 하루를 돌이켜보십시오. '오늘 내가 새로 느낀 것, 새로 발견한 것'을 떠올려보십시오. 거의 없을 것입니다. 주머니 혹은 핸드백에 작은 수첩과 필기구를 반드시 챙기십시오. 수첩과 필기구를 챙기는 습관이 들었다면, 글쓰기를 위한 가장 필수적인 요건을 갖춘 것입니다. 저는 화장실에도 연필과 포스트잇을 갖다 놓습니다. 주머니에 메모지와 볼펜이 없으면 산책도 하지 못할 만큼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천 번 새로운 생각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글쓰기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좋은 글은 메모지에서 나옵니다. 메모지가 '상상력 발전소'입니다. 개성적인 글쓰기를 위한 세부 지침 1. 나로부터 시작하라 저널리즘적 글쓰기, 특히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나'는 차가운 전달자입니다. 스트레이트 기사에는 글쓰는 사람의 주관이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활자매체의 기사는 연성화하고 있습니다. 피처 기사, 칼럼 등은 대단히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문체를 구사합니다. 기사작성 연습을 하고 싶다면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서전을 써 보거나, 자기가 자기를 인터뷰하는 것입니다. 가족이나 친구를 소개하는 글도 좋은 훈련이 됩니다. 자기가 사는 마을(아파트)을 취재해 사진과 곁들여 기사를 써보는 것도 훌륭한 저널리즘적 글쓰기입니다. 시나 소설을 쓰기 원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쓰십시오. 문학적 글쓰기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 가운데 하나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서 출발하십시오. 나에 대해, 나의 가족과 친구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잘 알고 있는 소재를 글로 쓸 때,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나'에 대한 글쓰기는 자기 삶을 성찰하는 진지한 계기를 제공합니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이 같은 인문학적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은 글쓰기 말고 거의 없습니다. 2. 반복하지 말라 반복은 강조할 때 말고는 피해야 합니다. 반복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표현의 반복과 내용의 반복이 그것입니다. 같은 단어, 같은 표현을 반복하지 마십시오.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유의어를 쓰십시오. '그녀는 아름다운 숄을 두르고, 아름다운 가방을 들었으며, 아름다운 마을에 산다. 이 문장에서 '아름다운'은 반복될 뿐만 아니라, 정확하지도 않습니다. 글쓰기의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내용의 반복입니다. 중언부언하지 마십시오. 같은 내용(견해, 정보, 지식......)이 반복되면 독자는 냉정하게, 즉각 눈을 돌립니다. 친구와 이야기할 때를 떠올려보십시오. 어제 한 얘기를 오늘 하면 친구는 즉각 이렇게 나옵니다. "그거, 어제 들은 얘기야."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3. 한 문장에는 하나의 정보만 담아라 이것은 문장을 짧게 쓰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한 문장에는 하나의 정보, 한문단에도 하나의 정보군을 담는 것입니다. 한 문장에 두 개 이상의 정보를 담는 순간, 문장은 길어집니다. 한 문단에 두 개 이상의 정보군을 담으면, 복잡해지기 때문에 독자가 이해하기 힘들어집니다.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 또는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한 문장, 하나의 정보' 원칙에 따라 글로 써보십시오. 처음에는 대단히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몇 번 고쳐 쓰다보면, 문장을 짧게 쓰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할수 있을 것입니다. 4. 접속사를 쓰지 말라 통학 또는 통근 과정을 '한 문장, 하나의 정보' 원칙에 따라 쓰다 보면, 수시로 접속사가 끼어들 것입니다. 접속사 없이 쓰려고 애써보십시오. 최근에 읽은 소설 가운데 접속사가 거의 ('전혀' 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없는 소설이 있습니다.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인데, 접속사에 유의하며 읽어보십시오. 매우 흥미로운 글읽기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접속사는 글 쓰는 이의 마음속에 있어야 합니다. 특히 연결형, 나열형 접속사를 피하십시오. 5. 나누고 묶어주어라 기사를 쓸 경우, 다양한 정보를 한꺼번에 제공해야 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럴 때는 유사한 것끼리 묶어줘야 독자가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음식 종류를 소개한다면, 국적별 혹은 재료별, 계절별 등으로 나누어 묶어줍니다. 6. 병치할 때 조심하라 같은 기능을 가진 단어, 구, 절 등이 나란히 놓일 때 자주 오류가 나타납니다. '사과와 큰 배' '철수는 중학생이고 영희는 공부를 잘한다'와 같은 문장이 의외로 많습니다. '사과'라는 단어와 '큰 배'라는 구는 병치하면 안 됩니다. 단어는 단어끼리, 구는 구끼리 병치하십시오. '사과와 배' '작은 사과와 큰 배'가 적확한 표현입니다. 앞의 문장은 '철수는 중학생이고, 영희는 초등학생이다로 써야 합니다. '중학생' (단어)과 '공부를 잘한다' (구)가 나란히 놓이면 대단히 어색합니다. '30-3-30 법칙'을 명심한다 언론인들은 30-3-30 법칙'을 자주 언급합니다. 여기서 30. 3. 30은 각각 30초, 3분, 30분을 일컫습니다. 독자들이 기사를 읽을 때, 처음 30초 동안은 제목이나 부제, 사진, 그래픽 요소, 기사의 도입부 등을 살펴본다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처음 30초 안에 기사를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만일 읽기로 마음먹었다면 다음 3분 동안 기사의 도입부를 읽습니다. 그리고 도입부가 흥미롭다면 30분 동안 기사를 끝까지 읽는다는 것입니다. 기자와 편집자는 처음 30초를 3분으로 늘리고, 다시 3분을 30분으로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기사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든 글이 제목과 도입부에서 결정납니다. 시처럼 짧은 글에서도 제목이나 첫 연이 진부하면 독자들은 눈을 돌려버립니다. 소설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보고서나 논문도 마찬가지입니다. '30-3-30 법칙'은 첫 문장에 목숨을 걸라는 저널리즘적 글쓰기의 핵심을 압축하고 있는 법칙입니다. 이문재. 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경희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시사저널 취재부장, 문학동네 편집주간을 역임했고, 현재 <시사IN> 편집위원, <문학동네〉 편집위원,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 등이 있다(pp.197-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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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 “흥청망청” 108회 선관위... 명분없는 돈 낭비
    본 기사는 교회발전연구소 대표 이능규 목사에게 모 인사가 108회 선관위(위원장 권순웅 목사)에 대해 제보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기사임을 밝힌다. 제보 내용에 따르면 선관위가 불필요한 돈을 낭비하고 있다. 제108회기 선관위는 공정선거감시단 해외 활동에 이미 많은 경비를 집행했다. ▲전국장로회연합회 임역원수련회(일본) : 고정식, 손정호, 김삼주, 신덕수, 한기영(750만원 집행) ▲농어촌교역자부부수양회(다낭) : 권순웅, 신덕수, 지동빈, 임종환, 최병도(613만원 집행) ▲전국교역자하기수양회(필리핀) : 전웅구, 김상원, 유병희, 한기영, 이상돈(599만5천원 예산). 이때 위원장 권순웅 목사와 서기 한기영 목사가 강사를 맡았다고 한다. 현재 바뀐 선거규정에 따라 후보자는 행사에 참석할 수 없다. 그런데 선관위 공정선거감시단은 누구를 감시하기 위해 해외 행사에 동행하는 것인가? 제보자는 “돈**”이라는 격한 표현을 사용했다. 또한 선관위는 민찬기 목사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비로 5천 5백만원을 지출했다. 선관위원들이 1차 투표해 7대7로 나왔다면 의견이 팽팽하다는 것인데 굳이 다시 투표해 7대8로 만든 것이 화근이다. 증경총회장단이나 실행위원회에 넘겨 자문을 구했다면 굳이 총회 돈을 지출할 소송에 휘말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감사부는 107회기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배광식 목사)에 대해 특별재정감사를 하고 있다. 어제는 서기와 회계를, 오늘은 위원장과 심의분과장을 부른다. 안건은 선관위가 재정을 과잉지출했다는 것이다. 모 선관위원은 자기들은 비용을 아껴서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기에 특별재정감사를 받는 것이다. 앞으로 108회기 선관위도 감사부에 의해 특별재정감사를 받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이 악순환을 끊어야한다. 선관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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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 【북토크】 가수 장기하의 깨달음
    가수 장기하를 좋아한다. 노래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의 대중적인 첫 노래 “싸구려 커피”, “달이 떠오른다, 가자” 등은 신선했다. 읽을 책들을 검색하다 보니 그가 몇 년 전에 쓴 것이 있어 대출해서 봤다.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첫 장인 ‘안경과 왼손’은 주어진 환경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돌아본 후 감사하는 내용이다. 읽어볼만해 전문을 소개한다. 안경과 왼손 얼마 전 안경을 잃어버렸다. 매우 아끼는 안경이었다. 아니, 아낀다는 표현으로도 모자란다. 이삼 년 전 그 안경을 산 이후로는 오직 그것만 써왔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있을 만한 곳을 전부 다 여러 번씩 싹싹 뒤져봤지만 찾지 못했다. 결국 예전에 썼던 다른 안경을 쓰고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 이삼 일 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마음을 털어버렸다. 그래, 그 안경이랑은 여기 까지였나보지 뭐. 나는 국소성 이긴장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다. 해괴해 보이는 이름이지만 의미는 간단하다. '국소성'이란 특정 부위에 나타남을, '이'는 이상함을, '긴장'은 말 그대로 긴장을 뜻한다. 한마디로 특정 부위가 이상하게 긴장된다는 얘기다. 이 병명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는 '이'다. '이'자가 들어간 병을 선고받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런 상황이다. 몸이 안 좋다. 병원을 찾아가 묻는다. "선생님, 저 왜 아픈건가요?" 의사가 답한다. "그러게요. 이상하네요." 그렇다. 내 병은 원인도 치료법도 알려지지 않은 희귀병이다. 이 병이 처음 생긴 것은 대략 십오년 전쯤으로, 군악대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눈뜨고코베인'이라는 록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었다.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드럼 하나로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연주를 잘하는 사람, 즉 프로 드러머가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외의 진로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학교 공부는 최소한으로 하고 드럼 연습과 밴드 활동 위주로 생활했다. 그러다보니 군복무를 시작도 하지 않은 채 대학 오 년 차를 맞았고, 더이상은 입대를 미룰 수 없게 되었다. 내 선택은 당연히 군악대였다. 군대에 있는 동안 손발이 녹슬면 큰일 아닌가. 일반 부대는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군악대는 록 연주만 잘한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클래식 타악, 특히 행진곡풍의 연주에 능통해야 했다. 자신은 있었다. 이미 연습이라면 많이 해온 터였기 때문이다. 좀 다른 장르의 연주라고 해서 못 해낼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시험을 대비해 맹연습에 돌입했다. 이삼 개월쯤 지났을 때 복병이 나타났다. 연습만 하려고 하면 내 의지와 관계없이 왼손이 꽉 쥐이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드럼 연주의 기본은 그립이다. 누가 툭 치면 놓쳐버릴 듯 살며시 스틱을 잡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만들어야 빠르고 정확한 연주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꾸 나도 모르게 스틱을 힘껏 잡게 되고 그것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연습하다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스틱을 집어던진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결국 군악대는 포기했다. 치료법도 알 수 없고 상태가 호전될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프로 드러머의 꿈도 함께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리 절망스러운 단념은 아니었다. 내 생각의 흐름은 이랬다. '하긴 군악대의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연주하는 게, 내가 멋있는 음악을 하는 데는 오히려 해가 될지도 몰라. 멋있는 음악이라... 그래, 생각해보면 프로 드러머가 되는 것 자체가 멋있는 음악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겠네. 연주로 먹고살려면 돈 되는 음악을 해야 하는데, 내가 지금 멋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음악 중에 돈 되는 게 하나라도 있나? 그리고 나는 우리 밴드 음악이 제일 멋있는데 그걸로 돈을 벌어본 적도 없잖아? 애초에 음악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였어!'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프로 연주자가 아닌, 돈은 안 돼도 '멋있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일반 부대에 입대했다. 제대한 후 나는 그 '멋있는' 뮤지션이 되는 일을 실행에 옮겼다.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한 상태에서, 내가 싱어송라이터로서 이끄는 새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한 것이다. 최소한의 돈과 최대한의 시간을 확보해 자유롭게 음악활동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곡은 군복무중 짬짬이 만들어뒀었다. 물론 큰 인기를 얻으리라는 기대는 전혀 없이 만든 노래들이었다. 눈앞에 있는 관객들만은 확실히 재밌게 해주겠다는 생각이 다였다. 그런데 터졌다. 소위 '대박'이었다. 활동을 시작하고 일 년이 지나기도 전에 전 국민적 히트곡을 보유한 밴드가 된 것이다.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순조로웠다.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왼손에 힘이 들어가는 증상이 기타를 연주할 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 증상이 신기했던 건 유독 드럼 연주를 할 때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다른 일을 할 때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물론 기타 연주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군복무중에도 생활관에 비치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만들었고, '장기하와 얼굴들' 첫 싱글을 녹음할 때도 기타는 내가 다쳤으며, 밴드 활동 초기에는 공연을 할 때도 절반 정도의 곡에서는 내가 기타를 잡았다. 그런데 급격하게 치솟는 인기를 실감하며 공연을 이어가던 어느 날, 기타를 연주할 때도 왼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기타도 포기했다. 이번 단념은 군악대 때와는 달리 좀 절망스러웠다. 공연에서 기타를 연주하지 않기로 했음은 물론이고, 평소에 혼자 치는 것도 거의 못하게 됐다. 늘 자유자재로 하던 기본적인 플레이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니 짜증이 치밀었다. 자연히 심심풀이로 기타를 잡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중학교 때 이후로 그때까지 줄곧 기타는 나의 가장 좋은 취미 중 하나였다. 집에 있을 때면 침대에 누워 기타를 배에 얹고 아무렇게나 퉁겼다. 그러면서 멜로디를 이리저리 흥얼거리다보면 이따금씩 노래가 만들어지곤 했다. 그런 일상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날아가버렸다. 게다가 이번에는 증상이 연주에만 국한돼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일상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곧 타자를 치는 것도, 단추를 잠그는 것도, 왼손을 써야 하는 어떠한 일도 예전만큼 쉽게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로부터 십 년이 흘렀다. 그런데 그 십 년을 돌이켜보면, 이 병이 내게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사실 병에게 엎드려 절하고 싶을 지경이다. 프로 드러머의 길을 포기함으로써 결국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타 연주를 포기한 것 역시 내게 두 가지 커다란 선물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새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 형을 영입한 것, 둘째는 내가 무대에서 악기 없이 자유롭게 퍼포먼스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장기하와 얼굴들’의 활동이 내게 가져다준 희열은 말도 안 되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증상도 아주 조금씩 좋아져 이제는 거의 다 나았다. 지금도 약간의 느낌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일상에서 그것을 의식하게 되는 일은 드물다. 기타와 드럼도 취미 정도로는 다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 연습을 안 했으니 남들 앞에 뽐낼 만한 연주력은 당연히 아니지만, 사실 이제는 그런 능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좋은 연주자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증상이 가장 심했을 때를 떠 올리면 집에서 혼자 재밌게 연주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지금도 이 병의 원인은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듯하고, 물론 나도 아직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이렇게 추측할 뿐이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과도한 것을 강요했고, 몸이 그만두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충분히 쉬게 해주었으며, 그랬더니 시간을 두고 차츰 회복되었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그리고 형체가 없긴 하지만 능력도 마찬가지다. 어제까지 당연히 할 수 있었던 일을 오늘 갑자기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무척 괴롭긴 했지만, 결국 다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 능력은 여기까지인가보다, 하고.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 맞춰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그러고 나면 그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다른 길이 열리곤 했던 것이다. 안경은 며칠 뒤에 소파 밑에서 찾았다. 전날 술에 취해 소파에서 잠들었고, 안경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는 과정에서 소파 아래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거실에서 잠드는 일이 거의 없다보니 그곳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먼지 구덩이 속에 얌전히 놓인 안경을 발견한 순간, 그야말로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많이 아끼는 안경이라 해도, 물건 하나로 그렇게까지 기쁠 수 있다싶었다. 모르긴 해도, 깨끗이 포기했었기 때문일 거다(pp.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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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 【단상】 부총회장 선거, 축제가 싸움판으로
    지난 4월 25일 오전 11시 참좋은교회(이윤찬 목사 시무)에서 대구교직자협의회 제31회 정기총회가 있었다. 이승희 증경총회장의 개회 예배 설교 후 합심기도 시간에 경북교직자협의회 대표회장 강전우 목사가 ‘총회와 영남지역을 위해서’ 기도할 때 부총회장 자격 문제로 소송이 붙은 총회를 염려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소송 관계자인 부총회장 후보 민찬기 목사나 장봉생 목사의 마음은 어떨지 모르나 총회 회관에서 먼 경상도 지역에서도 현 사태를 매우 안타깝게 여기며 탄식으로 기도하고 있다. 아마 이 사태를 지켜보는 대부분의 총대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한 사람의 부총회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물질이 필요하다. 노회와 협의회, 총회 등에서 오래 봉사하며 자신을 알려야한다. 이에 많은 시간이 든다. 그리고 물질로도 많이 섬겨야한다. 그래서 아무나 부총회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시간과 물질로 섬겨온 부총회장 후보들은 모두 총회의 귀한 자산이다. 바람직한 것은 단독 후보로 추대되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경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친했던 사이도 서먹해지거나 “원수” 사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곽선희 목사는 운동을 할 때 서로 마주보는 것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탁구나 테니스나 서로 마주보고 하다보면 감정 싸움이 될 수 있기에 자기는 각자 실력으로 승부하는 볼링을 한다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오래 세월 총회를 섬겨온 민찬기 목사나 장봉생 목사는 현재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내리 누르고 이겨야할 경쟁 상대로 보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런 면에서 선거란 참으로 잔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민찬기 목사 소속 임원회가 민찬기 목사의 후보 자격에 대해 물었을 때 장봉생 목사 소속 노회도 임시노회를 열어 부총회장 출마 자격에 대해 선관위에 질의했다. 선관위가 이 문제를 다룰 때 투표에 처음에는 7:7 동수가 나왔다. 이어 재투표하여 7:8로 세 번 출마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 지나간 일이지만 의견이 7대 7로 나뉘었다는 것은 선관위원 내에서도 의견이 팽팽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문제를 바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좀더 시간 여유를 두고 처리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증경총회장단의 의견을 듣는다든지, 실행위원회에서 의견을 구했다면 모양세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속전속결로 재투표해 7:8로 세 번 출마 불가로 정했다. 그러자 민찬기 목사측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소송을 했고, 소속 노회에서 부총회장 후보로 추천을 받았다. 세상 법정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두고보면 된다. 그런데 성경은 교회 문제를 세상 법정에 끌고가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고전6:1-7]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새로이 총회를 섬길 일꾼을 뽑는 총회 선거가 축제가 아니라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사법의 판결을 받아야하는 싸움판이 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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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4-04-26
  • 취재 기자를 내쫓는 노회들...무엇이 두려운가?
    봄 정기노회가 열리는 계절이다. 서울에서 먼 지방의 몇몇 노회를 취재갔다. 그 중 2개 노회에서 “내쫓김”을 당했다. 이리노회는 북일교회 문제로 회원 호명 때부터 시끄러웠다. 결국 노회원들간에 고성이 오갔다. 이런 가운데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거칠게" 요구했다. 결국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 충청노회도 전 총신대총장 김영우 목사 피소건에 대해 다루며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험악하게” 요구했다. 결국 본당 중이층으로 쫓겨갈 수 밖에 없었다. 기자는 사실을 취재하고 알리기 위해 그 현장에 가 있는 것이다. 북일교회 문제는 대부분의 총회원들이 알고 있을만큼 큰 이슈이다. 당연히 기자들이 가서 취재할 수 밖에 없는 사항이다. 기자는 총회원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대신해서 그 현장에 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기자들을 내쫓는 것인가? 그것이 과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는가? 기자가 보면 안될만큼 감춰야할 문제가 있는가? 사실을 사실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 없는 노회는 취재간 기자들을 반기며 좋게 기사를 써서 노회를 잘 홍보해 달라고 부탁한다. 기자로서도 기분좋은 일이다. 반면 문제 있는 노회는 기자를 내쫓는다. 마치 잡상인 취급을 한다. 부득이 기자를 내보낼 필요가 있다면 “정중하게” 요청했으면 한다. 같은 합동측 목사한테 그렇게 함부로 해서 되겠는가? 앞으로도 “문제 있는” 이리노회와 충청노회 “사태 추이”에 대해 예의주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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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4-04-03
  • 【북토크】 편협한 꼰대가 되지는 말아야 할텐데....
    자기 생각에 갇혀 사는 사람은 편협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하고는 대화도 되지 않는다.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남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개방해야한다. 죽고 사는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럴수도 있구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편협함 공부를 하면서 문득 깨달은 건, 법률 외에 삶의 모든 기준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 기준들은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니어서 주변사람에게 영향을 받아 생성되기도 하고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워지기도 한다. 또 삶의 경험이 켜켜이 쌓이면서 조금씩 견고해지고 구체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여러 기준들을 만들어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일은 어쨌거나 사람이 하는 것이란 점에서 언제나 주관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너무 쉽게 각자가 세운 판단 기준이 ‘정답’이라고 착각한다. 사람은 쉽게 타성에 젖으니 자신의 판단 기준과 결론이 절대적인 단 하나의 정답이라 믿으며 자기 우물 안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기준에 정답이란 없기에 자신이 바르고 타당한 기준을 세워가며 나이 먹고 있다는 생각도 사실 편협한 ‘착각’에 가깝다. 나이를 먹는 일이 무서운 건 나도 모르는 새 나의 판단이 바르고 타당한 정답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조직에 잘 적응한다는 것은 곧 그 곳의 기준을 잘 습득해 체화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공동체에서 튀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공동체의 평가 기준을 답습하기도 하고, 나는 다르다 여기며 살아도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그 밥에 그 나물처럼 사고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쉼 없이 자신의 옳고 그름을 고집하기도 하고 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숨기기 위해 고집스러운 기준으로 타인을 깎아 내리기도 한다. 입만 열면 세상 곳곳에 대한 불만을 쏟아 내는 투덜이 스머프 같은 사람이 있었다(입만 열면 남의 흉을 보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결이랑은 또 다르다). ‘이건 이래서 구리고, 저건 저래서 구리고’, ‘그런 사고방식이 말이 되느냐. 말은 그렇지만 속내는 이런 것 아니겠느냐’하는 식으로 언제나 자신 밖의 사람과 상황에 대해 평가만 늘어놓는 사람이었다. 초반에는 그가 솔직하고 유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어떤 것. 누군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 지 밝히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그 취향과 기준을 고백하는 것이 자신의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데 저렇게 쿨하게 늘어놓다니!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화의 주된 발언이 자기 자신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평가이다 보니 들을수록 의아한 지점이 생겼다. 당신에게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 타인이 당신에게 평가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 평가할 자유가 있다고 해도 당신의 평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는지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의 평가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에 대한 인상 또한 '예리하고 유쾌한 사람이다' 라기 보다 ‘어딘가 모르게 편협하다’, ‘편협함을 자랑하는 태도가 참 멍청하다’까지 이어졌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 몇몇 단정적인 말들에서 그가 타인에 대한 평가를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었던 까닭을 눈치 첼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자신의 말이 정답이라고 여겨서 가능했던 것 이었다. 자기 말이 정답인 사람 곁에 다른 의견들은 오답처리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이 오답이 되 는 대화를 좋아라할 사람은 없다. 그렇게 그는 자기주장이 뚜렷한 사람에서 편협한 사람으로 점차 다르게 기억 됐다. 중학생 때 유독 적이 없었던 한 친구가 떠오른다. 말수가 적어서,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아서, 호불호가 없어서가 아니라 ‘편견’이 없어서 두루두루 모두와 잘 지내는 친구였다. 그는 어떤 친구들에게도 늘 같은 태도로 화답했다. 편견, 그러니까 그 편협함은 끊임없이 나를 위해 타인을 배척하는 수단이 된다. 진정한 세월의 지혜는 오히려 '편견 없음'에 가까울 거라 생각한다. 타인을 판단하는 가장 괜찮은 기준은 포용이 아닐까? 타인과 자신에 대해 사람은 언제나 ‘알 수 없음’ 한 줌은 가지고 사니까. 견고한 기준은 편협한 생각의 방증일지도 모른다(pp. 178-181).
    • 오피니언
    • 책소개
    2024-03-31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내일】 나는 성범죄자가 아닙니다
    성범죄자로 오해받을 뻔 했다. 전립선 약 ‘하루날’ 처방을 위해 3개월에 한번 가는 동네 비뇨기과가 있다. 최근 사타구니에 염증이 생겼는데 전에도 있다가 사라져서 그냥 뒀더니 너무 커지고 음낭까지 부어올라 병원을 찾았다. 초음파 검사를 하니 별 문제가 없어 주사와 항생제 약 처방을 받았다. 그런데 의사가 음낭에 생긴 쥐젖같은 것에 대해 말하면서 혹시 음경사마귀인지 모르니 떼서 조직 검사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그것이 생겨 그냥 뜯어 버릴까하다가 내버려두었는데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그것을 보고 한 말이다. ‘음경사마귀’라는 것은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는데 종이에 설명을 해가며 그것을 성병이라고 기재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조직 검사 결과 음경사마귀이면 아내가 자궁경부암에 걸릴 수 있기에 검사를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런가보다 하다가 음경사마귀가 성병에 의해 생긴다는 말을 듣고 내 히든 카드를 꺼냈다. “저는 목사라 다른 여자를 만나본적이 없는데요” 그러자 의사가 당황해하며 곧 태세전환을 했다. “아 그러면 쥐젖일 가능성이 많겠네요” 그 의사가 신자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적어도 목사라면 외도나 불륜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으니 다행이다. 만약 내가 목사라는 것을 밝혔는데, “요즘 목사님들도 성병 많이 걸리던데요”하거나 “목사라고 별다른가요? 같은 남자인데요”했다면 참 난감했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 세상은 목사라면 적어도 외도나 불륜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다. 그래서 그 의사는 조직검사를 해도 쥐젖일 가능성이 많다고 한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타락해도 목사는 절대로 외도, 불륜 안할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기대이다. 그러나 이 기대를 깨는 목사들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잊을만하면 목사의 성범죄가 드러나 전체 목사를 망신주는 일들이 많다. 목사에 대한 세상의 기대를 저버리는 목사들은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목사직을 내려놔야한다. 세상 사람들도 잘 하지 않는 성범죄자가 무슨 목사 노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얼굴 들고 사는 인간들이 많아 참 깝깝하다. 성범죄자에게 하고픈 내 말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 있어 게재한다. 불륜과 외도를 하고자하는 자는 “거시기”를 걸고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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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3-11-07
  • 【단상】 월 1만원의 재정 후원....티끌모아 태산
    나는 1989년 2월 총신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총신신대원에 진학했다. 그리고 그해 9월에 화곡동에 소재한 람원교회에 교육전도사로 갔다. 그당시 장년부가 대략 800여명 가량 모이던 교회였고 신학교에 재학 중인 교육전도사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줬다. 그래서 신대원 2, 3학년 때 혜택을 받았다. 이에 대해서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다. 현재도 교육 전도사로 사역하는 신학생들에게 규모가 있는 교회에서는 전액 장학금을, 규모가 작은 교회에서는 일부라도 학비를 지원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또한 고마운 일이다. 총신대학의 박성규 총장은 신대원생 전액 장학금 지급을 목표로 열심히 뛰고 있다. 매년 장학금에 필요한 액수는 68억이다. 이를 위해 총회에 지원금을 요청했고 총회는 10억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동문, 선후배, 교회, 개인 등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 재정을 후원하고 있다. 총신의 재정 후원 약정서를 봤다. 제일 위에 “한국교회를 살리는 10만 재정 후원인이 되어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여기 10만명은 월 1만원씩 연 12만원을 후원할 개인을 말하는 것이다. 10만명이 월 1만원씩 내면 10억이다. 1년이면 120억이다. 요즘 만원 가지고 할게 별로 없는데 이것도 모이니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또한 교회적으로는 월 10만원씩 연간 120만원을 후원할 교회가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렇게 모여진 돈으로 무엇을 하는가? 신학대학원생 전액 장학생화 기금 / 신학생 경건훈련과 복지 기금 / 교원학보와 교수연구지원 기금 / 기숙사 건립 / 도서관 건립 / 결식 학생을 위한 사랑의 식권 등의 사업을 한다. 총신신대원은 한국교회의 보수 개혁 신학의 보루요, 합동측 모든 목사의 모교이다. 합동측 모든 목사는 정규나 특별, 편목 등의 과정을 거쳐 합동측 목사로 목회하고 있다. 그런 모교에 재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많이는 못해도 월 1만원 회원이 되기로 했다. 목회를 하면 월 10만원 후원도 할 수 있을텐데 현재는 중단한 상태라 그렇게 하지 못해 아쉽다. 모든 합동측 목사의 모교인 총신신대원을 위해, 우리의 후배들을 위해 선배들이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티끌모아 태산의 정신으로 재정 후원에 동참했으면 한다. 참고로, 학교에 500만원을 후원하겠다고 나팔이 터지도록 불었는데 어떻게 됐는지는 후원 약정서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한번만 주면 정이 없다”는 말이 이번에도 내 발목을 잡았다. 지난번에는 GMS의 만만만 운동이 그러더니만.... 사족으로, 후원금을 보내겠다고 하니 박성규 총장이 차일피일 미뤘다. 아마도 "기자가 뭔 돈이 있어서 후원을 할 수 있겠는가?"하는 군목 선배로서의 마음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꾸 미루면 이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반 협박해서 간신히 처리할 수 있었다. 박성규 총장은 참으로 마음이 따뜻한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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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06
  • 【단상】 잊어버린 과거는 영원히 반복된다
    2004년 한 여성 작가가 샌프란시스코 근처에서 자살한다. 그 여성은 미국 국적의 중국인 2세 아이리스 장이다. 그녀는 1967년 미국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일본인들이 난징 대학살에 대한 기록물 『The Rape of Nanking』(역서,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난징 대학살, 그 야만적 신실의 기록)을 1997년에 써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후 일본 우익세력으로부터 협박과 위협에 정신적 압박감이 상당해 치료를 받았고 이를 이겨내지 못해 남편과 아이를 두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어떤 책을 읽다가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을 보고 책을 읽게 됐다. 이 책은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난징에 진입하며 난징 주변과 시내로 도망친 중국군 잔당을 수색한다는 명분으로 6주 동안 중국군 포로들과 난징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한 사건을 다룬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중일관계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치는 사건 중 하나로 학살의 정확한 규모는 불명확하지만, 전후 일부 유골 매립지를 근거로 든 연구결과가 수만명 단위 이하로 내려가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볼 때 최소 수만 명 이상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극동국제재판 판결에 따르면 최소가 12만명이며 최대 추정숫자는 약 35만명 정도이다. 일본군들은 무력한 패잔병들과 양민들을 무참하게 살육하고 강간했다. 그들은 포로들을 먹일 것이 없다는 핑계로 다 도륙했다. 또한 중국인들은 돼지와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하고 거침없이 칼로 베고 생매장하거나 불에 산채로 태워 죽였다. 그리고 여자는 어린아이나 노인을 불문하고 보는 족족 대낮에도 강간하거나 윤간하고 잔인하게 살해했다. 이때 당시 그곳에 있었던 선량한 외국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더 많은 살육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전후 일본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일은 날조요 조작이라고 주장하며 외면하고 있다. 오랫동안 학교를 다녔지만 난징대학살에 대해 제대로 배운 기억이 없다. 아니면 잊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번 일본 군국주의의 실체를 보았다. 그리고 왜 중국이 일본에 대해 적대적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에 자신들에게 저지른 악행을 반성하거나 배상하지 않는데 어떻게 우호관계를 맺을 수 있겠는가? 같은 전범 국가이면서 여전히 이스라엘에게 반성하는 독일과 너무나 다른 행보이다. 그래서 일본은 비록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지만 국민성이나 도덕성면에서는 결코 선진국이라 할 수 없는 국가이다. 최근 일본이 원전 사고 발생 12년 만에 후쿠시마 발전소에서 처리한 방사성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중국은 일본산 어류의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반면 대한민국은 대통령부터 나서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국민의힘 의원들도 너나 없이 바닷물을 마시고 회를 먹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다 일본에게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당했다. 우리는 36년간 지배를 당했다. 정신대로 끌려가고 전쟁터로 끌려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 그런데 사과하지 않는 일본에게 저자세로 나가는 것이 과연 자주 국가인가를 의심케하며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일본은 아시아 여러 국가를 번영으로 이끌기 위해 침략 전쟁을 벌였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금도 하고 있다. 하긴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도 일본 때문에 근대화가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문이 막힌다. 자신의 목숨과 바꾼 한 작가의 유작을 읽으며 인간이 도대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으며, 전쟁의 광기가 인간 속에 있는 악마의 근성을 어떻게 드러내는 가를 보게 된다. 그리고 반성없이 여전히 그때의 과거를 그리워하며 군비증강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일본과 이를 방조하는 미국 그리고 그 장단에 춤추는 현 정부를 보며 암담함을 느낀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하며, 역사를 무시하는 사람은 역사의 희생물이 되기 싶다”는 책에 있는 경고가 요즘 일본과의 관계를 볼 때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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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8
  • 【단상】 부품비 2200원, 기술료 107000원
    18년된 차에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일 없는 날에 장안동을 들려 12만원에 마후라를 교체하고, 동네 현대차 블루핸즈를 찾아 윈도우를 수리했다. 언제부턴가 차 유리창 내리는 것이 됐다 안됐다했다. 108회 총회 후 운전석과 조수석에 내린 유리창이 올라가지 않아 다음날 베트남 다낭에 갈 때 차를 인천공항 주차장에 주차하면서 빗물 들어가지 말라고 비닐로 막고 다녀온 코미디를 연출했다. 혹시나 하고 했는데 정말 그 주간에 비가 왔었다. 그러다 어쩌다 다시 작동해 유리창을 올렸는데 그 후 더 이상 작동을 안해 할 수 없이 블루핸즈를 찾은 것이다. 엔지니어가 운전석 아래를 뜯고 점검하더니 원인을 알아내고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내민 청구서를 보고 기절할 뻔 했다. 차 유리창을 조절하는 파워 스위치에 전기를 전달하는 릴레이가 고장났는데 부품값은 2,200원, 기술료는 107,000원, 세금 10,900원으로 총 120,120이 나왔다. 부품값의 60배라니 참 어이가 없다. 그래도 어떡하겠는가? 울며 겨자먹기로 결제했다. 결국, 내가 할 수 없어 전문가에게 의뢰했기에 그 값을 지불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었다면 단돈 2천원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가입한 자동차 동호회에서 수리 정보를 찾아 봤으나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직원이 수리를 할 때 곁에서 유심히 지켜봤다. 이후 똑같은 문제가 생기면 고쳐볼 요령으로 한 것이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한 수 배웠다는 생각으로 쓰린 속을 달랬다. 이게 바로 전문가의 값어치라는 것이다. 그 직원은 차 수리의 전문가이다. 그래서 2천원짜리 부품으로 60배의 이익을 남겼다. 이런 기술을 갖기 위해 많은 시간 노력했기에 전문가의 기술비는 그만큼 비싸게 책정된 것 같다. 그러면 나는 무엇의 전문가인가? 이제는 신문사를 운영하기에 운영의 전문가, 취재의 전문가, 기사의 전문가가 되야한다. 그를 통해 나의 가치와 몸값을 올려야하는 것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도전이 됐다. 한동안 60배의 놀라운 이익을 낸 이 일이 기억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다. 성경에도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에 대한 말씀이 있기는 하다. 이렇게 현대자동차가 성경의 원리를 구현하고 있다니.... 하긴 오너가 신자가 아님에도 현대자동차에는 GRACE란 이름의 승합차도 있었고, 지금은 GENESIS(창세기)란 브랜드도 갖고 있다. 그래서 요즘 목사들이 이 차를 많이 타는 것 같다. 나는 신약 바울서신으로 Th.M을 했기에 이 차는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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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8
  • 【기자생각】 전국장로회연합회 수석부회장 선거
    “국민들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선택한다”는 말이 있다. 투표를 통해서 지도자를 선택한다는 전제하에서 하는 말이다. 얼마 남지 않은 11월 23일, 영광대교회에서 열리는 전국장로회연합회(회장 정채혁 장로) 정기총회가 경선으로 후끈 달아올라 보인다. 차기 회장이 되는 수석부회장에 김경환 장로와 홍석환 장로가 경쟁하고 있다. 들리는 말에 회장인 정채혁 장로와 차기 회장인 오광춘 장로가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다고 한다. 두 후보간 경선에 물러나는 권력과 신생 권력이 뒤엉킨 상황이다. 총대들은 두 경쟁 후보와 아울러 두 후보를 지지하는 세력도 신경쓰며 투표해야할 상황으로 보인다. 만약 정 장로가 지지하는 후보가 되면 신임회장이 될 오 장로에게 처음부터 데미지가 주어진 것처럼 될 것으로 보이고, 정 장로가 지지하는 후보가 되지 않으면 정 장로의 회장직에 대한 평가처럼 비칠수도 있다. 경선은 과열되지 않고 선을 넘지 않으면 유익한 점이 많다. 경선에 이기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고, 총대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표를 얻기 위해 후보 간 좋은 공약을 내놓게 된다. 이를 통해 그 단체는 발전할 기회를 갖게 된다. 얼마남지 않는 기간에 흑색선전 등과 같은 혼탁한 양상 없이 선의의 경쟁을 통해 좋은 후보가 당선 되기를 바래본다. 다시한번 “국민들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선택한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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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7
  • 【내이야기】 나의 산티아고, 뒷동산
    한 때 산티아고 순례길 열풍이 불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산티아고(Santiago)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성(聖)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이다. 야고보가 헤롯 왕에게 참수되면서 열두 제자 중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는데, 그 유해가 안치된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이어지는 여러 갈래의 길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현대에 이르러 파울로 코엘료가 1987년도에 이 길을 걷고 <순례자>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해 대성공을 거두면서 종교인뿐 아니라 세계인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종교인들만의 순례길에서 일반인들의 사색의 길, 자기 성찰의 길로 유명해진 것이다. 내게는 나만의 산티아고가 있다. 바로 집 뒤에 있는 오패산이다. 3년전 교회를 사임하고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면서 참 많이 찾았던 곳이다. 3년전 12월 말에 이사를 와서 한 겨울 저녁에 밥을 먹고 소화를 시킬겸해서 뒷동산을 오르내렸다. 작년에 데크 산책로가 둘래길로 만들어져 이제는 편하게 정해진 길을 왔다갔다하면 되지만 그때는 동산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1시간 가량 산에 있었다. 그러면서 이생각 저생각을 하거나, 기도를 하거나하며 시간을 보냈다. 취재할 곳이 없어 쉴 때는 점심과 저녁 식사 후 뒷동산을 찾았다. 그러면서 나무를 보고 흐르는 작은 계곡물을 보며 또 새소리를 듣고 꽃을 보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목회를 하는 동안 ‘나는 자연인이다’란 TV프로를 즐겨봤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떠나 산으로, 외딴 섬으로 가서 사는 것을 보는 것이 그 당시에 위로가 됐다. 한편으로 유튜브를 통해 UFC격투기를 즐겨봤다. 아마 목회 스트레스를 그렇게 풀었던 것 같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가? 목회를 그만둔 후로 ‘나는 자연인이다’와 격투기에 관심이 없다. 어느날 이런 변화를 깨닫고 내 자신도 깜짝 놀랐다. 아마도 수없이 뒷동산을 찾아 오르내리면서 내 마음이 안정과 평화를 찾았던 것 같다. 지금도 저녁 식사 후에는 거의 대부분 뒷동산을 오른다. 데크 길을 따라 왕복하면 약 40여분이 걸린다. 그 시간 동안 이생각 저생각을 하고, 기도도 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낮 시간에는 주민들이 여럿 보이지만 밤 시간에는 나 밖에 없다. 혼자 그 길을 걸을 때의 느낌은 가보지는 않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과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이 동산을 중심으로 삼면을 이동하며 오랜 세월 살아오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동산이 친숙하다. 어렸을 때는 동산길에 눈이 내리면 비닐 비료 부대를 들고 올라가 눈썰매를 탔고, 아이들과 함께 산길을 헤쳐 정상에 올라가기도 했다. 지금은 그때와 모습이 많이 변해 동산 아래쪽에는 연립주택들이 많이 생겼지만 동산 정상은 예전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동네 주변도 많이 변했지만 어렸을 때의 기억이 여전하다. 이제는 복개되어 차가 다니고 있지만 하수물이 흐르던 개천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초등학교 때 늘 가던 옛 만화방이 있던 자리도 기억에 선명하다. 부모님은 이 근처에서 50여년을 살고 계시며 나도 수십년의 세월을 이곳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뒷동산이 있다. 오늘도 저녁 시간에 뒷동산을 다녀왔다. 역시 혼자였다. 집에서 1분만 걸으면 바로 뒷동산에 갈 수 있으니 너무나 좋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곳에서 오래 살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놀이터로, 나이들어서는 나의 근심과 걱정을 받아주는 뒷동산이야말로 나의 산티아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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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6
  • 【잡글】 155만원의 출혈
    아이폰 15 프로를 샀다. 현금 155만원이 들었다. 내가 타고 있는 18년된 트라제 디젤보다 비싸다. 현재 사용하는 것은 아이폰 미니 12인데 메모리 용량이 64g이고 카메라 선명도가 떨어져 새로 구입한 것이다. 얼마전부터 “빛과소금뉴스방송”이라는 유튜브를 본격적으로 병행하고 있다. 취재 현장에서 좋은 강의, 설교 등등을 글로 적어 기사로 만드는 것도 좋은데 이왕이면 동영상으로 남겨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메모리 64g는 너무 용량이 적어 다른 앱들을 깔고 나니 가용할 수 있는 것이 적어 긴 촬영이 어렵다. 그리고 카메라 성능도 떨어진다. 그래서 고민을 거듭하다가 더 나은 영상 촬영을 위해 신제품 아이폰 15 프로 256g를 구입했다. 정가는 170인데 자급제로 이용하기 위해 통신사 없이 중고나라에서 개인 직거래로 미개봉 제품을 구입했다. 열어보니 “역시”하는 말이 나온다. 아직은 중국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미리 주문한 케이스, 액정보호필림이 오지 않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주문한 것들이 오면 좀 더 나은 동영상과 사진이 나올 것 같아 기대가 된다. 155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였지만 좀 더 나은 영상이 나올 수 있다면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유튜브 구독자 수가 적으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빛과소금뉴스방송”을 구독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찾기 편하시라고 아래에 동영상을 하나 첨부해 드린다. 클릭하시면 제 채널로 올 수 있으니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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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5
  • 【기자생각】 총회회관 1층 공실 사태 장기화....그 대책은?
    지난 9월 13일 "총회회관 1층 인테리어 감사예배"가 있었다. 그리고 한 달 반이 되가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1층은 휑하다. 카페 장소에는 의자 등 집기가 들어왔지만 업체가 선정되지 않았고, 역사관은 시작도 하지 않고 있다. 총회에 갈 때마다 휑한 모습에 알아보니 카페는 월세가 높아 신청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월 500만원을 예상했다가 계속 내렸지만 여전히 아무도 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과연 월세가 얼마로 내려가야 업자가 나설지 궁금하다. 또한 카페에서 얼마의 수입이 날지 궁금하다. 일반인을 상대로 하기 위해 별도의 출입구를 냈다고 하지만 과연 일반인들이 총회건물에 들어와 줄지도 미지수다. 이 사태가 장기화 될수록 결국 총회 재정에 문제가 될 수 있는데 뾰족한 수가 있는지나 모르겠다. 일각에서는 왜 식당을 내보냈는지 모르겠다는 소리도 나온다. 어차피 식당에서 커피나 기타 음료를 취급했기 때문이다. 이제 총회에 와서 저렴하게 밥 먹을 식당이 없어 인근의 비싼 식당에서 해결해야한다는 불만의 소리가 있다. 한편 역사관도 이전에 비해 공간이 협소해 과연 제대로 역사를 담아낼지 의문이다. 새로남교회(오정호 목사 시무)에서 2013년 새로남기독학교를 개교할 때 건물 1층을 과감하게 학생들은 물론이고 만인을 위한 기독교역사전시관으로 꾸몄다. 그 규모와 전시물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그에 비하면 총회회관 한쪽 절반에 마련된 공간은 매우 협소하다. 이 작은 공간에 무엇을 전시할지 궁금하다. 옛 것을 없애고 새 것을 만들 때는 명분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새 것을 만들었는데 그 내용물이 부실하면 왜 옛 것을 없앴느냐하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이 현재 총회회관 1층의 현실이다. 1층의 휑한 공실 사태가 언제 끝날지 그리고 또 얼마의 비용이 추가될지 관심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이 사태가 장기활 될수록 이 일을 주도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론이 재기되고, 의혹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총회유지재단이 공개 입찰을 통해 디자인업체 두로와 3억9780만원에 계약을 맺고 공사를 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겨둔다. 총회회관 1층을 생각하면 걱정을 떨쳐 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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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3-10-25
  • 【단상】 목사와 자가용...탐욕에 브레이크를 밟아라
    목사들의 자가용이 점점 비싸지고 있다. 자동차 업체들이 더 비싼 고급 승용차들을 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랜져가 최상위였다. 이제는 제네시스가 최상위이다. 이에따라 목사들 중에 제네시스를 타는 경우가 많이 늘었다. 몇 년전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어느 모임에 취재를 갔는데 아는 목사가 제네시스를 끌고 왔다. 그가 경기 북부 지역에 개척한 교회는 아직도 은행 융자를 갚고 있는 형편이며 교세도 약했다. 그런데 제네시스라니! 내가 시험에 들었다. 과거 목회할 때 한 여집사가 시험에 들었다. 목양실에 커피 원두를 산 것이 이유였다. 목양실을 찾는 사람들에게 원두 커피를 대접하고 싶어 2-3만원에 구입한 것이다. 실제로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늦은 시간에 먹으면 잠을 설치기도 한다. 그런데 거기에 시험이 들었다. 그 당시 남편은 돈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여집사가 벌어 먹고 살았다. 그래서 그게 시험거리가 된 것이다. 알겠는가? 교인들은 상상을 초월한 것에 시험이 든다. 이후 원두 커피 기계와 커피 원두를 교회 식당으로 옮겨 버렸다. 통상 교인수가 늘면 그에 비례해 목사 사례비와 판공비가 늘고 자가용이 좋아진다. 우리는 이것을 당연시한다. 교회도 자본주의 논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했다. “한국에는 대형교회와 대형교회를 갈망하는 두 종류의 교회가 있다”고. 교회 규모에 따라 목회자 대접이 달라지니 그럴 수 밖에 없나보다. 세상 기업과 교회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다. 소위 ‘부흥’한 교회는 자신에 대한 대접이 달라지기를 원하고 심지어 요구한다. 그 안에는 사례비나 판공비 그리고 자동차가 포함되어 있다. 대령에서 장군이 되면 30가지가 달라진다고 한다. 작은 교회에서 큰 교회가 되면 몇 가지나 달라지는지는 내가 큰 교회를 이루지 못해 모르겠다. 담임으로 부임했을 때 차량구입을 했다. 교회에 차량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용차로 구하지 않고 트라제 디젤 9인승으로 구입했다. 내 자가용 용도이기에 승합차를 구하는 것이 거시기해서 다인승차를 구입한 것이다. 그리고 주일에는 교회 공용으로 차를 사용했다. 15년 담임목회를 정리하고 나올 때 15년된 차를 받아 왔다. 어차피 폐차할 것인데 임시당회장이 교회에 요구한 내 퇴직 후 사례 3개월치에서 1개월치를 제하는 것으로 퉁쳐 내게 넘겨줬다. 그 액수는 240만원이었는데 15년된 디젤차를 참 잘도 팔아넘긴 셈이다. 교회에 분쟁이 나면 교인들이 이렇게 치사해질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아두기 바란다. 나는 지금도 3년간 그 차를 이용하고 있다. 잘 해야 일주일에 한번 이용한다. 그래서 18년된 차가 15만키로정도 밖에 안된다. 오늘 마후라를 교체하러 장안평에 들려 거금 12만원을 지출했다. 앞으로 70세까지는 운행하고 싶은데 모르겠다. 아내는 차가 낡아 바꾸자고 하는데 굳이 잘 굴러가는 차를 바꾸는데 돈을 지출하고 싶지는 않다. 내 선배는 서울 시내 중심의 유서 깊은 교회를 담임하는데 담임목사용으로 매번 소나타를 사주고 있다. 교회 규모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것이 장로들의 “소신”이라면 받아들여야지 어떻게 하겠는가? 자기들은 외제차를 타도 담임목사는 소처럼 일하라고 소나타만 사주니 그 교회도 참 알만하다. 그러나 그 선배는 “미국에 있을 때 좋은 차 많이 타봐서 차에 대해 별 미련이 없다”고 하고 잘 끌고 다닌다. 교회 분수에 맞게 차를 골라야한다. 작은 교회라면 그 수준에 맞는 차를 타야 손가락질 안 받는다. 그리고 큰 교회라고해도 한 단계 아래 등급의 차를 타면 겸손하다고 “존경”받는다. 분수에 맞지 않는 차를 타서 입에 오르내리고, 교인들을 시험들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야 본인의 자유이지만 왜 바울이 2천년 전에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 8:13)”고 했는지 잠시 묵상해 보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만일 내 차가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급 승용차를 타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이렇게 바꾸어 묵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목사는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는 브레이크가 좋아야한다. 덜 가지고 덜 누릴수록 교인들이 존경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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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3-10-24
  • 【북토크】국가란 무엇인가? 안중근 가족의 비극을 돌아보며
    김 훈 작가가 쓴 『하얼빈』을 읽었다. 몇 권 읽은 김 작가의 소설과 수필은 늘 담백하다. 그런데 이 책은 더욱 담백했다. 일체 간을 하지 않은 음식을 먹는 느낌을 내내 지울 수 없었다. 우리가 민족의 영웅으로 대하는 안중근에 대해 이렇게 담백하게 쓸 수 있는 것 또한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안중근의 세 자녀의 삶에 대해 알게 됐다. 그에게는 세 자녀가 있었다. 첫째 아들 분도는 안중근이 천주교 신부로 키워 달라고 유언했으나 일곱 살에 누군가 건네준 독이든 과자를 먹고 죽었다. 둘째이자 딸인 현생은 이후 남동생 준생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 사후 그를 위해 마련된 사찰 박문사를 찾아 “아버지의 죄를 사죄한다”고 말했다. 친일 변절자로 살다 대구 효성여대(대구가톨릭대 전신)에서 불문학 교수를 지냈으며 57세 때 서울의 단칸방에서 고혈압으로 죽었다. 남편 황일청 또한 친일배신자로 낙인찍혀 1945년 12월에 광복군에게 암살된다. 귀국행 배를 타려고 가족들과 함께 충칭에서 상하이로 내려오던 중 여관에서 총을 맞고 숨진다. 셋째 준생은 둘째 아들로 30세까지 일제의 감시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냈다. 일제는 그를 회유해 이토의 차남 이토 분키치에게 아버지 안중근의 죄를 사죄하고 함께 박문사를 참배하고 분향하게했다. 이에 김구는 광복 직후 중경에서 장개석을 만났을 때 안준생을 교수형에 처해달라고 요구했다. 일본은 상하이의 안준생에게 유럽계 세관장이 살던 관사를 내줬다. 그들에게 영혼을 내준 댓가로 난데없는 호강을 누렸지만 오래 가진 못했다. 1945년 일제 패망 이후 상하이까지 들어온 중국 공산당을 피해 홍콩으로 이주한다. 그는 아내 정옥녀와 아들 안웅호와 안연호를 미국으로 보낸 뒤 1951년 한국전쟁 와중의 국내로 들어온다. 그가 왜 가족 없이 혼자 귀국했는지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자신이 한 친일행위가 해방된 국가에서 단죄되는 상황을 아내와 자식에게 부담지우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안준생은 부산 피난지에서 폐결핵을 앓다가 1952년 숨진다. 그의 아들 안웅호는 미국에서 의박사가 됐다. 안준생은 아들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 아들은 의사예요. 미국에서 제법 성공했고 주위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잘 살고 있어요. 내가 사람들의 경멸을 받으며 모은 돈으로 가족을 부양한 덕분에 사람답게 살게 된 거죠. 우습지 않나요. 영웅의 아들은 개같은 삶을 살고 변절자의 자식은 다시 성공했죠" 안중근은 국가의 영웅이지만 가정에게는 재앙이 됐다. 일제의 감시로 가족은 비참하게 살았고 자식들은 아버지를 부정하고 변절의 길을 걷게 됐다. 이에 대해 쉽게 비판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가, 독립투쟁 단체가, 아니면 개인이 안중근의 가족을 돌봤더라면 자식들이 변절의 길을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훈 작가는 안중근이 사후에 철저하게 버려졌다는 것을 책 말미에 무심하게 기록하고 있다. 안정근, 안공근이 감옥 문 앞에 와서 시신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구리하라가 옥리를 보내서 ‘불가하다’라고 통보했다. 안정근, 안공근은 땅을 치며 울었다. 옥리들이 안중근의 몸을 마차에 싣고 가서 감옥 공동묘지에 묻었다. 하관 때 가는 비가 내렸고, 문상객은 없었다(책 277p). 3월 25일에 대한제국 황제 순종은 서른일곱 살의 생일을 맞았다. 아침에 황제는 덕수궁으로 가서 태황제 고종에게 인사를 드렸다. 오후에는 창덕궁으로 돌아와서 인정전에서 생일 하례를 받았다. 소네 통감과 통감부 고위 관리, 내각 대신들, 각국 영사들이 입궐해서 황제의 만수무강과 대한제국의 번영을 기원했다. 황제는 귀빈들에게 음식을 베풀어서 답례했고 시종무관들과 근위대 장교들에게는 따로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산수유와 매화가 잇달아 피어서 창덕궁의 봄은 화사했다. 후원 숲에서 뻐꾸기가 울었다(책 278p). 3월 27일은 부활절이었다. 조선 대목구장 뮈텔 주교는 서울명동대성당에서 부활 대축일 미사를 드렸다. 여러 나라의 외교관들과 통감부 관리들과 서양인 기술자들과 신자들이 참례했다. 봄의 햇살이 비쳐서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이 영롱했다. 팔십여명이 영성체했고 예비 신자들이 영세 받고 입교했다(책 278p). 3월 29일에 관동도독부는 안중근 사건의 수사와 재판과 사형집행에 이르는 과정에서 애쓴 관리들에게 직급에 따라서 상여금을 내렸다(책 279p). 3월 26일 저녁에 빌렘은 안중근의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27일 아침에 빌렘이 신자들을 소집했다. 안중근의 문중 사람들과 마을의 신자들이 청계동성당에 모였다. 빌렘은 여순감옥에서 안중근을 만나 고해성사를 베푼 일을 마을 신자들에게 말했다(책 280p).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한 목숨을 내놓고 가정을 포기했는데 세상은 이에 대해 무심하다. 현재도 우리는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고, 독립군의 후손들은 비참하게 살고 친일세력은 여전히 호의호식하는 것을 보면 이 나라가 유지되는 것이 기적이다. 그래서 내 두 아들에게 “다시 일제가 우리를 지배하는 일이 벌어지면 괜히 독립운동하지 말고 친일해라”고 말해야하는 이 현실이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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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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